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문학이라는 용어가 책의 표지와 제목에 자주 사용되는데 적어도 학이라는 글자를 붙일 때에는 학에 걸맞는 내용을 써야 한다. 인문학과 수필 혹은 에세이 산문 등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 생각이지만 수필에는 근거가 필요없다. 잘 표현된 말끔한 생각의 매끄러운 흐름이 필요할 뿐이다. 독자는 이해하거나 습득할 필요없이 공감하고 느끼고 감동하면 된다. 인문학이라면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뭔가 배울 게 있어야 된다. 산문에서도 다른 이의 생각을 통해 드러나는 관점을 배울 수 있지만 애초 인문학 서적이라면 생각의 탄생 과정이 공상이 아니라야 한다. 뚜렷한 증거와 논리로 생각의 발생 과정을 납득 가능한 텍스트로 나열해야 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스맛폰은 몸에 해로워. 자본주의 꺼져.성형은 개객끼야. 이런 류의 호소는 대개 어떤 식으로 말해도 먹힌다. 하지만 이건 북한을 신뢰할 수 없으니 관계개선 마저도 부정하는 정치집단과 아베 세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스마트폰의 여러가지 폐해에 대해 한번쯤 환기해 가며 사는 것도 좋다. 자본주의도 그렇고 싱형도 그렇고. 하지만 그걸 누가 모르나. 오죽하면 몇년전 떠돌던 사진에 모임에서 스맛폰을 다 걷어 중앙에 쌓아놓은 모습이나 제일먼저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인간이 밥사는 내기같은 것이 생겼을까. 자본주의는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는 현대 국가의 선택이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한 이후 화폐가 등장하면서 언제 자본주의가 아닌 적 아닌 곳이 있었나. 고대 중세의 중국이나 페르시아 같은 곳에서도 상인들이 늘 등장하고 화폐가 없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소금이니 조개껍질이니 하는 것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바꾸고 물물교환을 했는데 말이다. 단지 국가의 제재가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체제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 뿐. 게다가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때문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했던 폭력과 전체주의 때문에 이미 가치는 훼손되었고 나란히 경쟁하던 자본주의와의 격차 때문에라도 후진제도로 낙인 찍혔다. 그러니 무슨 대안이 있나


대안은 사회제도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문제점을 끊임없이 교정해 나가는 것이다. 누구나 다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문제를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정확히는 아무도 모른다. 국가마다 처한 환경과 역사와 사회 구성원과 집단적 종교적 믿음이 다르기에 성공한 나라의 제도가 다른 나라에 똑같이 성공할 수도 똑같이 적용가능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모순을 말하려면 정치관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다. 보수는 자유와 욕망을 헷갈려하는 듯 하지만 청년 실업 문제를 더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진보는 국가가 나서서 도와줘야한다고 믿는데 그 믿음의 기저에 있는 지식과 철학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를 말하려면 정치와 경제를 먼저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공허한 외침과 다를 게 없다. 이 책은 그 책과는 달리 문장이 힘차고 세련되었고 호탕하게 단정짓는 결기에서 시원한 느낌을 준다. 


음양오행 이론이니 역학이니 하는 고전을 폄하할 의도는 없지만 그리고 저자의 주장 대로 몸은 하나의 우주라는 관점도 지지하지만 그 음과 양의 개념은 단지 사물을 보는 하나의 방법이지 그것을 책으로 논할 때는 납득가능한 증거나 논리를 제시해야 과학이 아닌가.  특히 남자는 양기 여자는 음기 이런 관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서구 문화의 많은 언어권에서 사물에 여성과 남성 중성을 부여하는데 예를 들어 배는 여성이면 언어가 이미 고착된 상태에서 나타난 명사들 차 스마트폰 에어컨 이런건 여성인건가 남성인건가. 음기 양기를 따질 때도 오랜 맹신을 체계적 맹신으로 교묘히 바꾼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읽을 땐 나름 재미있었는데 이게 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재활용한거라 호흡이 짧다. 주장이 먼저 있으면 그다음 근거를 기대하게 되는데 대략적인 맥락만 있고, 주제로 넘어간다. 개별 주제가 짧다보니 공백많고 텍스트는 상대적으로 적은데 텍스트의 양에 비해 두꺼워지는 비효율적 선택. 과학은 우리시대의 주술이라며 무당들의 주술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이 온통 수치로 이루어졌다고, 오진률, 근거가 희박한 정황들, 맹목적 의존성 등의 측면을 예로 들었는데 과학을 이렇게 일반화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타 쪼가리 하나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 맹신과 이 맹신은 어떻게 다른가. 차라리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에서 지우고 편히 자기계발서나 뭐 수필 같은 걸로 포장하는 게 정직할 듯하다. 


글이 더 세련되고 글의 틈새에 저자의 유식함을 드러내는 지식 조각들이 많을 끼어 있는 게 다를 뿐 근본적으로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 얘기를 자꾸하는 이유는 저자가 책에서 그 측을 까는 부분이 있어서다. 앞서도 말했지만 문장이 힘차고 찰져서 읽는 재미는 있고 공감가는 부분도 많다. 공감 안되는 부분이 그만큼 많은데 설명이 없으니 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사탕 2018-09-30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들고 안들고가 어딨어요. 그게 삼라만상의 이치이고 순리인 것을요. 물론 귀하처럼 여성이지만 양(+)적인 분들이 있고 반대로 남자지만 음(-)적인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양과 음의 이치는 상대적인 가치이기도 합니다. 여성이 음인 것이 기분 나쁠 것도 없습니다. 양은 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양은 항상 드러나기 때문에 속을 알수 없는 음을 이길 도리가 없습니다. 연애에 있어서도 양의 존재인 남자 보다 음의 존재인 여자가 원하는 이성을 내 것으로 빨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이것은 음의 존재 블랙홀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핵심은 그 존재는 그 존재로서 온전히 빛날 때 가장 귀하고 빛이 납니다. 이를테면 음이 양의 기운을 다른 음보다 조금 더 지녔다 해도 그 양적인 기운이 남자 보단 못할 것이고 자신의 본질인 음의 기운마저 같은 여성들 보다 못하니 그보다 매력 없고 불리한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가을이라 독서하기 참 좋은 시기네요. 행복하세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현준 교수의 공간에 대한 철학, 건축과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동안 내가 여행을 하거나 거리를 걷거나 낯선 공간을 체험하면서 느낀 막연한 생각들을 제대로 설명해주었다. 그만큼 공감되는 게 많았다. 예를 들어 중소 규모의 도시에 가면 나는 늘 허름하고 좁은 골목길에 매료되곤 하는데 점점 그러한 공간들이 없어져간다. 남아 있다 하더라도 새로 지은 원룸촌이 지나다니기도 어려울만큼 빽빽하게 주차된 차들과 함께 원형을 잃은 낯선 공간으로 변한 모습에 안타까워하곤 한다. 

왜 골목길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었는데 나는 그것이 일종의 향수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곤 했다. 물론 그런 이유도 크다.  아파트에서만 살아본 아이들이 골목길의 정겨움을 알 턱이 있을까. 저자의 설명은 다르다. 공간에 속도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 이론은 저자가 직접 연구한 이론이라 여겨지는데 어렵지않은 단순한 계산 방법이지만 도시 공간의 걷고싶은 길에 대한 많은 단서를 준다.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공간을 체험하는 거다. 우선 이걸 먼저 생각해보자. 뭘하든 수동적인 행동보다 능동적인 활동이 훨씬 재미있다.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 역시 수동적인 행위가 될 수도 보다 능동적인 행위가 될 수도 있는데 그것은 공간의 구성에 따라 결정된다. 만일 어떤 공간이 보행자에게 다른 길로 갈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고 똑같이 생긴 변함없는 담벼락으로만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면 스스로 걷고 있다 해도 걷는 행위 자체에 선택귄도 없고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도 변화가 없어서 내가 걷는다기 보다는 길이 나를 태우고 가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행위가 될 것이다. 


반면 골목이 많고 단위당 출입구 수가 많으면 계속해서 보행자가 선택할 수 있는 이벤트의 수가 풍부해지면서 보행 자체는 걸으면서 흘끔거리거나 들러서 뭔가를 산다거나 혹은 코너에서 턴을 한다거나 하는 수많은 이벤트를 만들수 있고 그러한 작은 공간의 조밀한 연결이 비행자의 다채로운 체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형건물들이 밀집한 곳에 사람들이 걷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의도의 마포대교 오른쪽 편 산업은행이 있는 주변엔 대규모 건물이 엄청난 수의 사무원들을 아침마다 깔대기로 흡입하듯 거리의 출근자들을 빨아들였다가 저녁이면 뱉어낸다. 점심 시간에는 사무원들로 활기찬 이 곳이 퇴근 시간이 지나면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싶을만큼 인적이 드물다. 그러나 다리 하나만 더 건너가면 자연스레 형성된 구도심 상가 지역에, 지저분한 간판을 달고, 작은 술집과 밥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경은 달라진다. 사람들로 붐벼나는 것이다. 


유현준 교수는 공간의 효율성을 위해 어쩔수 없이 선택한 큰 덩치의 고층 대형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걷고 싶은 거리 더 나아가 살고 싶은 도시 보러 오고 싶은 거리를 만들려면 필요한 조건들을 제시한다. 잘 디자인된 국내외 건물들의 예도 친절하게 설명한다.  여행이나 책을 통해 익숙한 건축가, 익숙한 건물들이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컨셉에 잘 조화롭게 어울려,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피터 춤토르, 안도 다다오, 프랭크 로이드 등등 건축물을 계획할 때에는 단지 외형적인 디자인 뿐만 아니라 그 건축 공간 내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시선도 고려되어야 하는데 때로 외형적으로만 예쁘게 만들려고 하는 크리에이티브 아트 디렉터 얘기도 나온다.

저자는 또한 19세기 이전 건축이 왜 오늘날의 건축에 비해 아름답다고 느끼는가에 대해 이런 견해를 가진다. 산업화 이전의 건축은 당연하게도 건축 재료가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하다보니 주변경관과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진 주변에 통일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리스나 발칸반도의 해변 경사진 마을의 새하얀 집들이 대단한 건축물이 아님에도 유명 관광지가 된건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집들이 통일성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서울의 언덕위에 지어진 달동네 주택들은 비록 예쁘자는 않지만 작은 집들과 골목들로 충분히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를 좁혀준다. 지금은 그런 풍경을 볼 수 없지만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그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엄마들이 함께 하던 사회적 기능을 하던 골목이라는 공간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공원이 대신하게 되는데 이런 개념은 르 코르뷔지에의 머리속에서 나온 개념을 흉내낸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들이 도심속 공원을 제공한다고 광고의 판타지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게 잃는 것이 바로 집을 찾을 때 걷던 길과 골목으로 이제는 엘리베이터와 숫자와 복도가 이를 대신한다. 저자의 이런 생각에 너무 공감이 되어 울컥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오래전 새벽마다 커다란 스피커로 새마을 운동 노래를 틀어놓고 마을 사람들을 깨우며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그렇게 정겨운 우리것들을 다 때려없애자던 박정희 정권이 끝난 후에도 옛 것 특히 건물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이를 갈고 없애는데 혈안이 되어왔다. 일이십년만 지나면 때려 부수고 더 효율적인 공간의 활용을 위해 새로 짓고 부수고 또 새로지어 주택가로 온전히 남아있는 골목길이 멸종 위귀의 희귀종이 되고 난 후에 남겨진 골목은 이제 수십년간 그곳에서 그곳을 만들고 살아온 예술인들과 원주민, 상인들을 더이상 임대료도 지불할 수 없게 임대료를 올려 쫓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 잔치를 벌이는 중이다. 


할렘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는 입장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곳에서 수십년간 터잡고 살던 가난한 흑인들을 뉴욕 외곽으로 내쫓는 자본주의적 개발논리에 의해 소외되는 원주민 문제이고 또 하나는 더이상 손써볼 수도 없이 우범화되어 범죄의 온상이 되는 곳을 살리고자 하는 시당국의 노력이다. 빈잡이 속출하고 건물 곳곳은 손상되는 상태에서 어떻게 그 지역을 살려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그런 선택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거란 생각을 해보니 할렘의 경우, 너무나도 고질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젠트리피케이션 그 자체만을 문제삼을 게 아니라 양면성을  모두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때,  이미 너무 우범지역이 된 곳이라 집 하나 새로 고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개발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주어 블럭 하나를 통채로 손본 것이다. 브라운스톤의 아주 오래된 건물은 헐리는 대신 조심스럽게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도록 복구 되었으며 주변에는 스타벅스와 반스앤노블 조합의 체인점을 유치했는데 그 두개가 뭔 성장성 같은게 있는지 그 가게가 같이 있으면 동네가 급이 달라 진단다. 그렇게 개발된 곳은 흑인 변호사나 전문작들에게 임대해 주어 조금씩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고. 결국 있는 사람이 이사오게 하여 그 블록 자체에서 못사는 흑인들을 쫓아내는 데 성공하고, 그 젠트리피케이션은 조심스럽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데, 이제는 낮에도 관광객들이 기 지역을 활보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흑과 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개발이 아닐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소재의 소설은 다니엘 키스가 퍽이나 공을 들인 작품인 듯하다. 동일 제목의 단편과 장편 두 버전이 있다. 단편을 써서 잡지사에 낸 후 같은 소재 같은 내으로 장편을 또 썼고, 계속해서 여러 차례 업데이트 해 나갔다고 한다.  두 작품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아서. 하나는 휴고상을 하나는 네뷸러 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세 번의 영화와 여러 버전의 뮤지컬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중편 작품이 또 있는 듯). 국내에서는 '안녕하세요 하느님' 이라는 드라마로 방영했었다고.







나는 짧은 버전을 <SF명예의 전당> 단편집 2에서 읽고, 영어로 읽었다. 찰리 고든이 주인공인데 아이큐 68의 바보에서 200이 넘는 천재가 되었다가 추락하는 내용을 1인칭 일기 형식으로 쓰여 있다.  맞춤법이 완전 엉망에 문장도 단순하가 짝이 없어 딱 초딩 저학년이 쓴 것 같이 시작된다. 아무 것도 몰라서 행복하고, 사람들을 좋아하기만 한 아이같은 찰리. 하지만 아이큐가 점점 높아지면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사람들의 언행과 관계의 복잡성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과거 역시 이해하게 된다.  수술로 아이큐가 세 배 이상 좋아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만일 그 수술이 안전하다고 증명된다면 아마도 그 수술을 하고 싶어질 것 같다. 하지만 몰라서 편했던 이해 불가능했던 현실 세계들을 알게 되는 것 때문에 괴로워 진다면? 하지만 모르는 것을  알기 전엔 그 모르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었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의 주제는 현재 읽고 있는 임마누웰 카레르의 <왕국>과도 통한다. 찰리는 자기가 바보라는 걸 알고 있고, '영리'해지고 싶어 그 수술에 실험 대상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바보가 바보라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자기가 바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만, 바보가 아닌 상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글을 쓰고 읽게 되면 단지 다른 사람과 같이 영리해지지리라는 막연한 희망 속에서, 글쓰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찰리. 그 '동기'라는 또다른 영역의 심리적 특성 덕분에 그는 실험 대상자로 선택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보지 못한 세계는 상상할 수 없다. 수술 이후 빠르게 아이큐가 향상되면서 자신이 바보일 때는 몰라서 행복했던 많은 일들이 사실은 자신을 골탕먹이던 거였음을 깨달으면서 불행은 시작된다. 더욱이 바보였던 그를 골려먹으면서도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어주었던 3백여명의 공장 친구들은 이제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그를 놀려먹던 자산들보다 훨씬 똑똑해진 그가 뭔가 부당한 짓을 한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결국 1명을 제외한 모든 직원은 그를 해고하라는 청원서에 서명을 하고 그 한명 조차도 찰리에게 이런말을 한다. 아담은 사과를 훔쳐먹었고 그래서 선악을 알게되었고 그것은 죄악이라고...선악을 모르는 바보로 태어난 인간이 선악을 깨닫게 된 것이 원죄가 된 것처럼 찰리는 이제 더는 예전의 찰리로 돌아갈 수 없다.

찰리가 똑똑해지기 전 그와 미로 경쟁을 하던 쥐 이름이 앨저넌이다. 그 실험적 수술을 가장 먼저 실험한 대상은 당연히 실험살의 쥐다. 수술 전 그리고 수술후에도 얼마간는 늘 앨저넌과의 미로 경쟁에서 졌고 그래서 앨저넌을 싫어했지만 어느날 자신이 이기고 난 후로는 앨저넌에게 미안해하고 쥐와 친구가 된다. 맞춤법과 구두점 문법이 엉망이었던 그의 일기 형식의 실험보고서는 점점 제대로된 문법과 어려운 단어들로 수준 높아져 가고, 끝내는 그를 실험했던 박사들조차 그의 눈엔 바보로 보인다. 어느날 앨저넌에게서 이상한 징후들을 보게 되고 그것이 자신의 미래라는 것을 깨닫는다. 

명작 중의 명작이다. 장편도 읽어볼 생각인데 저위의 별점은 '내가 장담컨데' 하는 거다. 단편의 경우에도 짧지만 너무도 강렬하고 먹먹하고 안타깝고 슬프면서도 더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오히려 짧은 단편에 농축되고 생략된 여운이 좋았다. 

찾아보니, 다니엘 키스 작품이 앨저넌에게 꽃을 말고도 국내에 번역된 게 또 있는데, <빌리밀리건- 스물네 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이라는 책이다. 다중인격이라는 소재가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쓰이는 건줄 알았는데 24개의 인격이라는 말도 흥미롭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이라고 하니. 흥미롭다. '1977년 납치와 강간 혐의로 기소됐다가 다중인격장애와 정신이상으로 무죄 혐의를 받은 '빌리 밀리건'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구성한 논픽션(출판사 소개글)'이라는 설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 유고상은 AI와 로봇에 대한 소재가 봇물을 이루었다. 제목만으로도 그렇다. 'OObot'이 제목에 들어가는 봇 소재 SF가 장편을 제외하고, 중편, 중단편, 단편 모두에서 후보작에 올랐으며 그 중 두 편은 수상작이다. 


마샤 웰스의 <All systems red>는 현재 <The Murderbot Diaries> 시리즈로 3편까지 나와 있으며, 마지막 편인 4편은 10월중 출간 예정이다. 곧 굿리즈와 아마존 등에서 좋은 반응이어서 곧 번역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중편인데다가, 영문판 이북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직접 원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단 1편만 읽고 멈출 수가 없는 게 문제다. 














1편 <All Systems Red>는 SecUnit이라고 불리는 로봇이 어떤 행성에서 인간을 구하는 게 전체적인 스토리이다. 스토리상으로는 그닥 특별한 점은 없지만, 이 보안유닛의 행동이 굉장히 유니크하고 귀엽다. 더욱이 로봇의 시선으로 1인칭 화자가 진행하는 스토리이기에 인간이 만든 봇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이 책의 매력이다.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보안유닛은 알고 보면 유기적 부분과 기계적 부분이 섞여 있는 반로봇반인간 상태로, 의식이 있다는 설정이다. 감정을 느낀다는 설정이다. (상세한 이야기는 리뷰를 통해). 2편에 가서는 더욱 진지해지는데, 기계적으로 지워진 기억을 찾기 위해 안전한 '주인'을 떠나 뇌의 유기적 티슈에 얽혀져 남겨진 기억을 단서로 과거를 찾아 행성을 여행하는 부분으로, 이번에는 인간이 아닌 기계와 교감한다. 2편은 아직 1/5 정도 밖에 읽지 않았지만 1편에서 축적된 배경과 캐릭터와 쌓은 친분으로 더욱 사랑스러워진 murderbot의 행동이 더욱 흥미롭다. 



편이 Novella와 Novellete로 나뉘는데, Novella는 헐렁헐렁하게 편집하면 책 한권으로도 엮을 수 있을만한 분량이고, Novellete는 도저히 그거 하나로 책 한 권 냈다가는 욕만 디지게 먹을만큼 짧은 중편, 즉 단편과 중편의 중간정도 분량이다. 수잔 팔머의 <Secretes life of bots>는 Clarkesworld Magazine September 호에 실린 작품으로 해당 매가진의 온라인 판을 통해 인터넷에서 바로 읽을 수 있고, 팟캐스트로 오디오북까지 제공된다. 어느날 잠에서 깨어난 다용도 로봇은 자기가 비활성화된 동안 엄청난 시간이 흘렀으며, 그 엄청난 시간 속에서 봇들의 세계 역시 완전히 달라진 것을 알게 된다. 봇들은 전문화되었고, 자신에게는 보도 듣도 못한 봇넷이라는 커뮤니티를 통해 수많은 봇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수세대만에 깨어나서 겨우 해충 퇴치 역할을 부여받은 봇9은 다른 봇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들이 탄 우주선과 승무원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지구를 공격하는 외계 우주선과 충돌해 모두 파괴될 위험에 있음을 알게 되고 독자적 행동을 하는 내용이다. 


단편 부분에서 AI와 로봇 분야의 후보에 오른 작품은 Vina Jie-Min Prasad의 <Fandom for robot>이다. Uncanny Magazine Sep/Oct 2017에 실렸고, 역시 온라인 판에서 직접 읽을 수 있다. 이 잡지도 팟 캐스트를 통해 오디오북을 제공하는데, 이 작품은 오디오북으로는 제공되지 않는 듯하다. 내용은 50년대 제작된 지능형 로봇 로봇트론이 투박하고 오래된 지능형 로봇이라는 이유로 폐기되지 않고 살아남아 로봇 박물관에서 지각이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쇼를 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중,  어떤 소녀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일본 애니를 조사하다가 그 애니에 빠져 팬픽도 쓰고, 인간과 교감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챕터에서, 과학소설들이 지능과 의식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로봇에게 지능은 있지만 의식은 없다는 것이다. AI와 관련된 모든 영화와 과학 소설의 기본 플롯이 의식을 갖게 되는 마법적인 순간을 갖게 되고, 이후 인간과 로봇은 사랑(혹은 우정)에 빠지거나 로봇이 인간을 모두 죽이거나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형적인 틀을 휴고상의 세 후보작 및 수상작들은 극복했을까? 우선 <murderbot>을 보면, 이 SecUnit은 분명 의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굉장히 민감한 상태의 감정에 처하고, 그것을 표정으로 나타나는 것을 숨기지도 못한다. 이 소설에서의 '매직'이라면 2편에서 밝혀지는 것인데 단순 기계가 아니라 construct라 불리는 유기체와 기계의 합성체라는 사실이다. 결국 인간 생체적 신호를 처리하는 두뇌를 모방해 의식과 감정과 관련된 처리를 맡긴다는 것 같은데, 이 때문에 이 murderbot에게 더욱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두번째 소설에서는 단순 기계들로서, 네트웍을 통해 지식을 교환하는데, 거대한 선체를 가진 우주선 자체가 마스터 로봇이고, 그 마스터 로봇이 모든 로봇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설정으로, 우리가 주변에서 대하는 모든 기계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듯 인공지능 모듈을 심고 네트웍 연결을 통해 빅데이터와 연결하기에,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유사한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의식의 측면과 인간과의 관계 측면에서는, 하라리의 일반화에 반은 들어맞지만 반은 그렇지 않다. 봇들은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데, 만일 우주선과 승무원을 구하는 일이 승무원들의 명령을 위반하는 일과 상호 모순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도 알고리즘이 처리할 수 있으므로 그들의 행동을 의식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팬덤 오브더 로봇은 보다 판타지에 가까운 과학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 짧은 소설 속에 인간과 기계에 대한 교감을 담았다는 면에서 하라리의 귀결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로봇이 팬픽을 쓰는 이유는 의식의 결과라기 보다는 머신 러닝의 결과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서만 볼 수 있는 오타쿠적 행위를 통해 기계와 인간이 교감하는 것은 시사하는 게 크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가졌다는 그 '대단한' 의식이란 게 결국 무엇이냐라는 문제로 방향을 틀기 때문이다. 





Best Novel

  • The Stone Sky, by N.K. Jemisin (Orbit)
  • The Collapsing Empire, by John Scalzi (Tor)
  • Provenance, by Ann Leckie (Orbit)
  • Six Wakes, by Mur Lafferty (Orbit)
  • Raven Stratagem, by Yoon Ha Lee (Solaris)
  • New York 2140, by Kim Stanley Robinson (Orbit)

Best Novella

  • All Systems Red, by Martha Wells (Tor.com Publishing)
  • “And Then There Were (N-One),” by Sarah Pinsker (Uncanny, March/April 2017)
  • Down Among the Sticks and Bones, by Seanan McGuire (Tor.Com Publishing)
  • Binti: Home, by Nnedi Okorafor (Tor.com Publishing)
  • The Black Tides of Heaven, by JY Yang (Tor.com Publishing)
  • River of Teeth, by Sarah Gailey (Tor.com Publishing)

Best Novelette

  • “The Secret Life of Bots,” by Suzanne Palmer (Clarkesworld, September 2017)
  • “Wind Will Rove,” by Sarah Pinsker (Asimov’s, September/October 2017)
  • “A Series of Steaks,” by Vina Jie-Min Prasad (Clarkesworld, January 2017)
  • “Extracurricular Activities,” by Yoon Ha Lee (Tor.com, February 15, 2017)
  • “Children of Thorns, Children of Water,” by Aliette de Bodard (Uncanny, July-August 2017)
  • “Small Changes Over Long Periods of Time,” by K.M. Szpara (Uncanny, May/June 2017)

Best Short Story

  • “Welcome to your Authentic Indian Experience™,” by Rebecca Roanhorse (Apex, August 2017)
  • Fandom for Robots,” by Vina Jie-Min Prasad (Uncanny, September/October 2017)
  • “The Martian Obelisk,” by Linda Nagata (Tor.com, July 19, 2017)
  • “Sun, Moon, Dust” by Ursula Vernon, (Uncanny, May/June 2017)
  • “Carnival Nine,” by Caroline M. Yoachim (Beneath Ceaseless Skies, May 2017)
  • “Clearly Lettered in a Mostly Steady Hand,” by Fran Wilde (Uncanny, September 2017)

출처(http://www.thehugoawards.org/hugo-history/2018-hugo-awards/)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9-13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9-13 15:58   좋아요 0 | URL
대적하는건 한 물 간 SF 적 공상인 거 같고요(하라리 선생도 동의) 보다는 인공지능을 독점하는 자의 윤리에 좌지우지할 위험성이 있겠죠 ^^
 
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래드릭 배크먼의 소설을 꽤 많이 읽었다. 읽은 책의 개수 만큼 광팬이라 할 수는 없는데, 알고 보니 국내 출간된 저자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거의 전 작에 걸쳐서 배크맨의 고유한 문체가 약간 닭살돋는다고나 할까, 취향에는 조금 안맞는 다고도 할 수 있는 문체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러한 특징은 결국 읽을 때나 또 읽고 나서 인간에 대한 따스함과 연결되기에 대체로 만족감을 느낀 것 같다.


이번 책은 다른 책과는 조금 달리 주제 자체가 무겁고 어두운 내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닭살스러운 문체의 유지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조금은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던 전작들에 비해 몇가지 큰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사회적 민감성과 범위가 전례없이 넓고 크고 진지해졌다. 크게 보면 작은 마을의 폐쇄적인 스포츠 문화와 십대의 강간이라는 큰 주제로 요약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너무 많은 생략을 전제할 때만 가능하다.


베어타운이라는 문화의 폐쇄성은 눈으로 뒤덮힌 그림처럼 아름다운 꽝꽝 얼어붙은 북구의 시골마을이라는 우리의 편견적 환상을 가차없이 무너뜨린다. 북구의 작은 마을에서 연상되는 웰빙 라이프 역시 상상속의 판타지였음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토록 잘 사회안전망이 잘 구축되고 정비된(되었다고 하는) 그곳의 사회 곳곳에서 자본의 규칙이 배제될 리가 없다.


마을 사람들은 공장에 나가 일을 하고, 마을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하키팀을 응원한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 스케이트를 함께 배우는 아이들은 하키에 모든 걸 건다. 이 마을에서 하키는 가난하고 고립된 작은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위안이자, 자존심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볼 때 이 마을에서 하키는 폭력이기도 하다. 하키를 하던 여자 아이들은 십대가 지나면 플레이를 하는 대신 응원을 하고, 하키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괴짜로 취급받기도 한다. 마을의 권력은 하키팀을 후원하는 사람들에 집중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은 하키팀의 관점에서 해결된다.


마을 사람들이 거의 모두 무대에 등장할 정도로 많은 등장 인물이 자신만의 고유의 번민과 사연을 가지고 등장하는데 이 때문에 인물들이 헷갈려 가독성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들의 크고 작은 사연들은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주요 동력이 된다. 분명 커다란 주제와 몇몇 두드러진 등장 인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개별 인물들의 사연들은 그저 주변의 백그라운드 형성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하키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 얽혀 있으며, 한결같이 마을의 하키팀의 흥망성쇠에 운명이 걸쳐져 있다.


탕탕탕 이 반복적인 구절이 자주 거슬렸고, 너무 많은 인물의 등장과 사소한 사건들의 나열로 인해 중간에 좀 흥미를 잃었었으나, 만족스런 결말이 전체적인 독서를 대만족 상태로 결론내도록 이끌었다. 강간을 당하고도, 그 대상이 마을의 가장 유망하고 가장 인기있고 가장 부유한 집안의 하키 선수라는 점 때문에, 무차별한 폭격인 2차 피해를 당하는 소녀가 안타깝지만, 끝내 마을을 떠나지 않고 복수를 결심한 소녀의 행동을 아슬아슬하고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던 마음이 통쾌한 복수와 한 두 사람에서 시작한 진실 밝히기가 이후 마을 사람들의 작은 변화로 이어지던 모습이 참으로 따뜻하고 인상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