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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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볼 수 없는 캄캄한 세계에 어떤 희망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세계를 상상으로 그려본 적은 있다. 달빛도 잠든 캄캄한 날 잠에서 깼을 때 불을 켜지 않고 물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려고 손으로 벽을 더듬다 보면 잠깐이나마 그 어두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잠깐이지만, 그 경험은 빛의 소중함을 섬뜩하리만큼 강하게 주지시켜준다. 본다는 것의 감각은 인간의 모든 감각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가냘프고 여린 6세 딸에게 찾아온 실명을 상대하는 아버지는 보석 박물관의 성실한 자물쇠 장인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로 아이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실제 축적과 모양을 그대로 복사한 앙증맞은 모형 도시는 소녀가 손으로 더듬어 위치를 숙지한 후, 스스로 길을 찾아 걷게 해줄 도시의 축소판이다. 축소된 도시에서 손가락으로 더듬어 위치를 파악하고 외운 곳들을 소녀는 지팡이로 짚어가며 방향을 찾고 발걸음으로 거리를 헤아려 길을 찾는다. 아버지는 이 바스라질 듯 연약한 아이가 한발 한발 내딪어 길을 찾는 모습에 가슴이 터질 듯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빛은 우리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광선을 뿜는다. 빛의 스펙트럼 바깥에서 빨강색 보다도 파장이 긴 적외선과 보라색 보다도 파장이 짧은 자외선을 우리는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가시광선을 감각할 수 없는 세계가 장님 소녀에게 빛이 전혀 없는 세계가 아니다. 그녀는 소리를 이용해서 사물을 본다. 본다는 것의 원 목적이 단순히 눈으로 빛을 흡수하는 것만이 아닌, 빛을 망막에 투사하고 그 이미지를 전기적 신호로 바뀌어 뇌로 보내면 그것을 뇌가 해석해야 비로서 인지하는 것이기에 보는 것의 이면에는 이해라는 자극의 이해라는 차원의 인지 기능이 함께 작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는 것 대신 소리와 냄새와 극도로 예민하게 발달한 다른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주변의 사물을 인지한다면, 빛이 없는 세계에서 소녀는 일반인인 우리가 볼 수 없는 빛을 보는 셈이다. 


소리가 또 다른 종류의 빛이라면, 그 빛을 보는 또다른 소년이 있다. 독일의 한 고아 소년이다. 부모의 운명처럼 시체도 찾지 못한 무너져 내린 광산의 어딘가에 묻힌 부모처럼 텅빈 눈동자로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렇게 죽어갈 운명이라면, 나치의 개가 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 될지 모른다. 고아원에서 자라며, 동네 쓰레기장을 뒤지던 아이는 동생과 함께 망가져 버린 라디오를 스스로 고쳐서 듣고 꿈을 키운다. 전쟁의 광기가 유럽 대륙에 꿈틀거리덥 무렵 공기를 가르고 멀고 먼 대륙을 가로질러 찾아온, 목소리는 아이의 인생에 하나의 반짝 반짝 빛나는 빛이 된다. 


전쟁은 잔인했다. 어린 소녀는 파리를 떠나 걷고 또 걸어 생말로의 작은 할아버지 집으로 피난을 왔고, 오린 소년은 나치의 학교에서 군대 수업을 받는다. 소녀에게 빛을 선사하기 위해 생말로의 구석구석을 발걸음으로 재어 모형을 만들던 아버지는 사라졌고 독일 소년은 레지스탕스들의 라디오 송신 전파를 탐지하기 위해 나치가 점령했던 온 도시를 누빈다. 아버지를 잃은 눈먼 소녀는 용감한 레지스탕스가 되고, 나치 소년은 점차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시처럼 아름다운 문체 때문에, 평소 읽던 다른 책에 비해 두 세배는 더 걸렸다. 지치고 타락한 고아 소년에게 어둠속에 스며든 소녀의 목소리. 그리고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들었던 음악. 그 라디오 전파를 타고 소년과 소녀는 교감하고, 둘은 잠시지만 아주 잠시지만 만난다. 그토록 생고생을 해서 이루어진 두 사람의 만남이 그토록 짧을 수밖에 없었던 숙명적 만남이 안타깝고 원망스럽다. 비련의 주인공이 공중에 흩어지는 파편이 되어 스러지는 결말은 그것이 바로 100년이 채 안된 흉포한 역사적 사건이 한바탕 몰고 갔던 기억해야 할, 배워야 할 그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스토리는 시간 순으로 진행되지 않고 소녀가 생말로의 작은 할아버지 집에 홀로 남아 연합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은 상태에서, 아버지가 남긴 무엇을 찾기 위해 집으로 침입한 독일 원사를 피해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가 오래 전 송신했고, 레지스탕스의 전파로 이용했던 다락방에 숨는 장면과, 그렇게 되기 한참 전, 소녀가 눈이 멀기 전 아버지와 함께 파리에서 지내며 전쟁을 맞이하는 시간이 교차한다. 고아 소년 역시 마찬가지로 어린시절 고아원에서 동생과 라디오를 들으며 꿈을 키우던 시절과 전쟁을 수행하는 현재가 교차되며 시간이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은 책 속과 바깥에서 많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라고 말했던 어린왕자의 말이 생각난다. 눈먼 아이의 예민한 감각속에 포착되는 숨소리 냄새 촉각 등의 가능한 인지 체계 역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이의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라디오 전파를 통한 멀고 먼 다른 종류의 사람들 사이에서 나누는 정서적 교감 역시 보이지는 않지만 이 책 전체를 관통해서 스토리라인을 만들어가는 주요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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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모건은 유전자를 염색체 목걸이에 꿰인 채 제자리에 고정돼 있는 진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매클린톡은 진주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즉, 한 염색체에서 다른 염색체로 건너뛰면서(도약하면서) 다른 염색체에 자리를 잡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도약 유전자는 색소 생산을 제어했다... 이 제어장치는 적절한 순간에 유전자를 켜거나 끄는 과정에 관여했다.

 

150

이동성 DNA는 종들 사이의 진화 관계를 추적하는 데에도 중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이유는. 만약 몇몇 종을 비교한 결과 그중 두 종만이 수십억 개의 염기가 늘어선 염색체에서 똑같은 장소에 동일한 이동성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두 종은 최근에 같은 조상에서 유래한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157

모든 동물은... 혹스라는 유전자 집단을 공유한다.... (이것은) 동물의 체형이 기본적으로 똑같은 설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설명해준다. 혹수 유전자들은 진화가 수억 년 이상 지난 뒤에도 서로 단단히 들러붙은 채 남아 있고, DNA 가닥에서 연속적으로 뻗어 있는 지역들을 따라 늘 함께 나타난다.

 

 

188

바이러스와 세균과 원생동물은 가끔 동물에게 새로운 유전자를 물려주는데, 그런 유전자는 우리 몸의 작용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심지어 동물의 마음까지 조종할 수 있다.

 

191

고양이를 많이 키우는 데 집착하는 사람이 고양이 무리에 집착하는 이유 중 최소한 일부는 톡소포자층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되었기 때문임을 시사한다. ... 과학자들은 톡소포자층의 유전자 8000여 개 중에서 2개가 도파민이라는 화학물질을 만드는 일을 돕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91). ... 감염된 뇌가... 고양이 오줌 냄새를 감지할 때마다 톡소포자충은 우리 뇌에 도파민을 분비하게 한다(193). 톡소 포자층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일부 응급실 담당 의사들은 오토바이 사고 희생자들의 뇌에 톡소포자충 낭종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경우가 있다고 보고한다.

 

200

미생물이 우리의 방어력을 무력화시키고 침입한 뒤, 포유류가 진화하는 데 꼭 필요했던 환상적인 유전 도구를 우연한 사건을 통해 우리 유전체에 집어넣었다는 주장과, 포유류가 작은 병균을 위협해 그 유전자를 강탈했다는 주장 중 어느 쪽이 우리 마음에 더 드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그리고 일부 경우에 이런 사건은 정말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진전 혹은 도약이었다.

 

201

보르나 바이러스는 두 귀 사이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활동하는데, 일부 과학자는 보르나 바이러스가 뇌를 만들고 작동시키는 dna에 다양성을 추가한 주요 원천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9

태반이 우리의 오랜 친구 레트로 바이러스에서 진화한 게 거의 틀림없다는 사실

 

 

부계를 통해 전달되는 Y 염색체는 어떤 사람을 다소 좁게 정의한다. 즉, 어떤 세대에 존재한 많은 조상들 중에서 오직 한 사람에 관한 정보만 알아낼 수 있다...지구 상에 살고 있는 남성 200명당 한 명은 칭기즈 칸이 물려준 Y 염색체를 갖고 있다... 학자들은 유대인 성직자 계급의 유전적 기원도 추적했다... 실제로 전 세계rkrwldml 제사장들은 아주 비슷한 Y 염색체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것은 부계조사장이 한 사람에게서 기원했음을 시사한다. 추가 연구를 통해 이 ‘Y 염색체 아론’은 대략 모세의 시대에 산 것으로 드러나 유대교 성경 내용이 옳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게다가 유대인 DNAdusrnsms 아프리카 렘바족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한 때 믿기 어려웠던 전설을 확인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렘바족은 자신들의 뿌리가 유대인이라고 주장해왔다...렘바족은 DNA는 자신들의 뿌리가 유대인임을 입증했다. 렘바족 전체 남성 중 10%,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존경받는 집안-성직자 계급-의 남성들 중 약 절반이 바로 유대인 제사장 계급의 Y 염색체 지문을 갖고 있었다. (p360)

 

우리는 DNA를 세속적인 영혼, 즉 우리를 이루는 화학 물질의 본질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DNA를 완전히 해석한다 하더라도 거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전체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p368)

 

기업들이 염기 서열을 분석해 발견한 유전자에 대해 모조리 특허를 신청해놓고, 장래에 누가 그것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든지 ‘사용료’를 청구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게놈 선점 경쟁’이 벌어질 게 눈에 뻔했다.(p373)

 

염기 서열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하면서 중요한 통찰들이 쏟아져나왔다. 하나는 인간이 미생물의 것으로 보이는 DNA를 아주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는데, 이것은 아주 놀라운 가능성을 시사했다. 게다가 우리는 유전자를 충분히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p385)

 

그 질병에 걸린 사람들의 유전자를 샅샅이 조사해도 공통적인 유전자 결함을 발견하는 경우가 드물다. ‘범인DNA'가 실종된 셈이다... 무엇보다 섬뜩한 전망은 보편적인 단일 ’질병‘이 환상에 불과할지 모를 가능성이다. 과학자들은 왓슨의 유전체에서 치명적인 열성 돌연변이 복제 2개가 있는 장소를 두 군데 발견했다. 하나는 눈과 귀를 멀게하는 어셔 증후군, 또 하나는 성장을 방해하고 노화를 앞당기는 코케인 증후군을 일으키는 돌연변이였다. 하지만 80대에 접어든 왓슨은 아직까지 그런 문제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p394)

 

환경적 경험은 메틸기와 아세틸기를 첨가하거나 제거하여 그러한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사실상 이것은 해당 생물이 한 일이나 경험한 일에 대한 기억이 그 세포에 새겨진다는(라마르크식 유전에 필요한 첫 단계) 뜻이다... 비정상적인 메틸기 패턴이 일찍부터 각인되면, 신경 세포들이 분열을 계속하고 뇌가 성장함에 따라 이 패턴이 영속적으로 전해진다.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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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7-09-02 14:37   좋아요 0 | URL
오 영광입니다. 괜찮습니다.제가 광주에 사는 관계로 바로 가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놀러 갈께요. 이 글은
인용글을 올린 것 같고, 리뷰가 따로 있습니다.
 
한국문학의 거짓말 -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
정문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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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체제 순응적인이라는 말은 자기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은 풀 수 있을 것도 같다. 예를 들어 왜 신경숙을 좋아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대개는 조용히 그러나 매우 은밀한 곳까지 그 내면을 끝까지 파고 해부하면서도 그 글이 따스하고 아늑하기 때문일 거라는 말에 대개의 독자들이 동의할 것 같다. 그것은 체제 순응적인 자신을 토닥 토닥 다독이기 때문이다. 괜찮아. 괜찮아. 그의 글을 따라 읽다 보면 보잘 것 없는 자신이, 용기 없는 자신이, 정의보다는 침묵을 선택하는 자신이, 저항보다는 순응을 선호하는 자신이 위안받는다. 그리고 잠시 읽는 동안에는 저 밑바닥 어디엔가 피 철철 흘리며 죽어간 어떤 희생들 위에서 부서질 듯 펼쳐진 우리들의 안락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된다. 


신경숙은 1980 년대의 민중가요, 정확하게는 민족 문학이 사람을 억압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런 1980 년대 문학에 대한 전면적 부정에서 그녀의 소설은 둥지를 틀고 있다. (p13)


‘생은 내 앞에서만은 더 이상 곡예를 부리지 않았으면 한다(286쪽)’와 ‘인생은 또 한번 나에게서 내 동생을 빼앗아갔다(286쪽)’라는 구절은 상당히 껄끄러운데, 왜냐하면 인생이나 ‘나’바깥에 있는 존재인 양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숙은 사람의 세상살이에 뜻하지 않게 겪게 되는 불행 같은 부류를 ‘생’이나 ‘인생’이란 용어와 동일시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볼 때 한 개인의 인생이란 개인이 사회와 교서 파여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인데, 신경숙은 개인의 의지가 미치지 못하는 바깥의 일을 ‘인생’의 의미에 편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신경숙 인물들의 자아를 허약성과 내면 풍경의 알맹이 없음을 보여주면 실례라고 하겠다 (p19 각주)


사실은 신경숙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 잘 알지 못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캐보고 싶지 않아서 그냥 무지의 범주 속에 가두고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이 책에 있는 1990년과 2000년 여성 문학에 대한 비평들을 읽어보니, 특히 그 중 조금은 읽어라도 본 신경숙 비평에 대한 글을 집중적으로 읽어보니. 내가 비록 정문숙 비평가처럼 구체적으로 쏙쏙 짚어내어 비판할 능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1980년대 문학을 ‘억압’으로 간주하면서 알맹이 없이 공허한 문장으로 치장한 비판없는 순응성에 불편함을 느꼈었던 거다. 


신경숙의 글쓰기는 자신의 허약한 내면을 감당하지 못하고 상처를 내면화시킨 자가 현실을 견디도록 길들여지는 방편이다. 신경숙이 표절 의혹을 이기지 못한 것도 허약한 그녀의 내면이 밟아갈 수순이었다. 세계사적 전망을 상실해 버린 평자들이 고작 자신을 달래는 자기만족의 글을 쓰는 작가에게서 얼마나 많이 살아갈 희망을 얻었는지 의문이다. 상업성이 번뜩이는 신경숙을 포용하는 힘들다. 범상한 독자들과 진데 없이 세상을 깊이 고민 하려 하지 않고 살가움과 따뜻함을 덥썩 받아 들이는 범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p32)


이제 표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보자. 신경숙은 사과를 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은 의도적으로 베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쁨을 아는 몸’ 관련 텍스트가 전국을 휩쓸던 때까지 나는 한 작가의 양심을 믿고 싶은 마음이 깊은 어디엔가 있었다. 필사하고 외우고 했던 우국의 문장들이 내면에 체화되었었을 수도 있어..



우국

전설

214

두사람의 뛰어난 미남미녀 모습에 저도 모르게 감탄의 소리가 나오게 마련이었다.

92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누구나 두 사람의 뛰어난 조화에 감탄의 소리를 내뱉게 된다

214

사람들은 자주 이 사진을 꺼내들어 바라보고는 이렇듯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 남녀 결합이란 자칫. 불길한 것을 품더라고 한탄하였다.

93

그들은 두 남녀의 완벽한 조화를 바라보며 각자 인생을 뒷면에 생각해 보냈다 어떤 프라 이미 그들 사이에 끼어 들지 않을까 하는 그땐 저들이 저렇게 아름다운만큼 쓰라린 관통해 가는 자리 또 한 꼭 저렇게 뚫어 질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고 냈다

215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

95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

218

그 녀석들은 날 불러내지 않았어 그리고 내가 쉬는 중인 걸 생각 했던 거

96

내가 신혼이라 친구들은 내게 말도 없이 자원 했소



이렇게 눈앞에 가득 펼쳐진 빤한 진실을 보고도 문단은 입을 꽉 처닫고 있었다. 당시 이를 폭로한 박철화를 향해 신경숙은 ‘“위험천만한 단세포” “그리(표절했다고-인용자) 보자고 마음 먹은 사람” 운운하며 격한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다가, “거론할 의욕도 없”었지만 “독자에 대한 예의” 때문에 마지못해 응대했다는 말로써 입장 표명을 끝냈다(p31)’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표절 공방이 한겨레 ‘신문의 한 지면에서 외롭게 벌어지고 있는 동안 다른 신문들과 문단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p31)’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사실 신경숙 표절 사건이나 1990년대 여성 문학의 비평에 관심이 잆어서가 아니었다. 제 2부 체제의 하수인이 된 문학에서는 탈주와 전복 내세운 순응과 패배의 찬가들이라는 이름으로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와 박진구의 <<수상한 식모들>>에 대한 비평이 실려있었고, 거기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았겠다 싶었지만, 제 3부 그리고 부스러기들의 끄트머리에서 발견한 길잃은 한국 소설, 역사 없는 역사 소설 이라는 이름으로 게재된 <<칼의 노래>>, <<검은 꽃>>을 통해 돌아본 2004년 문단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 싶어서였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생각해보니 사실 김훈도 그렇고 김영하도 그렇고, 입으로는 좋아한다고 광팬이라고 떠들었어도 막상 읽은 책은 김훈의 경우 칼의 노래 외 서너권 정도, 김영하의 경우 검은 꽃 외에 서너권 정도에 불과했다. 무늬도 뭐도 팬도 아니고, 그냥 읽은 책이 너무 좋아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 책만 잔뜩 모셔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숨막히게 아름답고 단호하고 단단하고 빈틈없는 문장들에게 어찌 ‘길잃은’ 혹은 ‘역사 없는’ 이라는 비판의 수식어를 들이댈 수 있나. 나는 그것이 의아했다. 


칼의 노래가 쓰여지기 전에 김훈은 말 실수 같은 걸 했는지 어떤 잘못된 행동을 했는지, 아무튼 그 세계에서(기자, 혹은 작가들 세계) 물러나 홀로 되었다. 작가는 칼의 노래에 대해, ‘반사회적 발언으로 물의를 빚다 침잠하던 시절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집필에 파고든 책이 이 소설로서,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충무공을 끌어왔으니 수긍할 수 없다’는 언짢은 반응을 빼고는 이 책을 혹평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역사가 아닌 자기 내면 속에 갇힌 사람의 폐쇄성, 무력한 개인의 합리화는 한 개인만 흠집을 내는 것이 아니라 힘에 대한 자발적 동의로 귀결될 수 있다는 통찰을 이끌어낸다. 나는 조금 혼란스럽다. 나는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던 그 허무한 개인이 역사 속의 정의의 주체로서 행동하기 위해 적과 싸우는 충무공의 그 스산한 모습이 아직도 맘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신경숙의 순응과 충무공의 순응은 다르다. 라고 쓰고 다시 물러나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 팬심 때문에 김훈을 변론하고 있는가. 예술은 순응하면 안되나. 나는 어디에 순응하나. 나는 왜 순응하나.  


*조경란의 혀에 대한 표절 논쟁도 다루었는데, 기회있으면 간단하게 포스트로 내용 정리해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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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린 2015-08-01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경숙 표절은 `응 그런가보다 한국문학이 그렇지머ㅋㅋㅋ 어차피안잃음ㅋㅋ` 이렇게 가벼운 인터넷찌질이마인드로 접근했다가, 이틀 후쯤에 나온 창비와 문단관계자의 `그건 표절이 아니다 그쯤은 다 한다(?)` 는 듯한 반응을 보고 표절논쟁에 가세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열기가 좀 식을때쯤에 문동에서 표절비판자들을 `찍어서` 찍어내기식 공개좌담신청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과 쇼크를 받고 불매운동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창비 문동 불매 약40일차?)문동 표절옹호찍어내기식 좌담회신청과 창비 표절옹호 사과하면 즉시! 멈춤; // 지금 문동 2015봄호 도서관에 있길래(악스트가 하두 재미없길래, 어떤분이 문학언어로 독자들이 일정부분 알고 있을거라 생각해서 어려울 수 있다고, 라고 하셔서 정말 그런지, 도서관에 창비 문동 독파중. 중간결론은 `그런거 없당;` 그냥 잘쓰면 잘읽히고 재밌고 못쓰면 재미없다) 읽고 있는데, 너무 재미나네요; 재미나서 화가 나네요. 자신들이 말하고 떠드는거와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고 있어서... // 문동은 자신들 `잡지`에(잡지라고 쓴건 공허하고 무게없는 말들이기 때문.그게 아니라면 증명하길) 실린 말 마따나 진격의갑질(박민규)을 멈추고, 침묵의 그물(윤이형)에 쌓여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것도 끝나지 않습니다.(최민우)

CREBBP 2015-08-03 17:02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말내내 폰이 고장이 나서리.
`문동에서 표절 비판자들을 찍어서 직어내기식 공개좌담 신청을 하는` 사건이 있었군요. 저도 우연히 들어갔다가, 공지 형식으로 된 문동에서 올려놓은 글을 읽긴 했는데, 이쪽이건 저쪽이건 제대로 잘 모르면서 말려들어 시간 없앨까봐 일부러 안읽었습니다. 문동에서 한 말 중 제가 기억하는 구절은 `문학권력의 실체가 무엇이냐,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을 토론으로 진행하자` 뭐 그런 류의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프레임이라는 것이 무서워서, 한 번 뇌리에 찍히면 그것을 벗어나기가 어렵지요. 코끼리처럼 문학권력이란 말도 그런 것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것을 직접 이해하려면 정말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자정은 독자들의 몫이죠.

그러니까 계간지중 악스트는 재미없고 문동은 재미있게 읽고 계시다는 거죠? 저는 문학지는 안읽습니다. 딱히 까닭이 있어서 안읽는 건 아니고, 그들 세상이 따로 있다라는 막연한 느낌도 있는 것 같고. 진격의 갑질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 근거가 있을 테지 라고 생각하고 있고, 침묵의 그늘은 신경숙 표절 사건에 대해서는 확실히 동의합니다.
 
욕망의 힘 - 착한 욕망을 깨우는 그림
이명옥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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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왜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또다른 종류의 욕망을 품고 마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역사를 통해 헛된 종교 활동을 해왔던걸까.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줄을 자르고 가진 것을 다 걸면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p223)'. 책에서 인용된 문장이 있다. 


두목,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긴 줄 끝에 묶여 있으니까요.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의 줄과 다를 지 모릅니다. (...) 당신이 줄 사이를 오고가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


과연 그럴까. 작가 이명옥은 인간이 가진 욕망의 정체를 원초적 욕망, 사랑과 권력과 야망 등의 탐욕, 존재 추구에 대한 욕망, 성취욕, 그리고 관계 회복에 대한 소통의 욕망 이렇게 네 가지로 분류하고,그것들을 예술 로 표현한 작품들을 찾아 미술과 문학을 함께 연결시켰다. 그림이 주가 되는 책이면서, 그 그림 설명과 해석, 그리고 그것과 통하는 문학 작품 속 문장들을 짧게 인용한다. 


미술과 관련된 책이 휴식과 위안을 주는 까닭은 예술가의 영감이 표현한 그림이나 사진 그 자체에서 주는 힘도 크지만, 그 작품과 함께 하는 여백과 텍스트의 힘도 무언가 보탬이 된다. 예술적 사조와 표현 방법, 역사, 미학 등 그림과 관련된 이론을 공부하기 위한 목적인 경우, 휴식보다 앎의 기쁨을 더 기대하게 되지만 읽어야 할 텍스트가 많고 그러다보면 미술작품 자체에 보다는 그 미술 작품의 의미와 의의에 대한 텍스트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 책은 미술 작품에 대한 텍스트는 하나의 그림 당 1~2페이지 정도로 짧다. 텍스트들의 내용 역시 그림에 대한, 욕망이라는 주제하에서의 의미에 대해서 성찰적 방법으로 가볍게 적고, 문학작품에서 빌려온 인용 텍스트들을 통해 그림을 설명한다. 


이런 미술책의 대부분이 전세계적 메이저급의 서구 화가들의 그림을 다루는 데 비해, 이 책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개한다. 국내와 해외 거의 반반인 것 같다. 또한 21세기의 최근 작품을 비롯해 우리가 책으로는 접하기 어려웠던 많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설명하고 있어서 새롭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죽음은 언제나 예술가에게 치열한 주제다. 예술가이기 때문에 아마도 더욱 죽음의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기댄 채로 그 바로 앞의 죽음에의 영감으로 작품을 완성한 이들도 많았다. 


죽기로 결심하는 데 필요한 정신적 강인함과 삶을 견디는 데 요구되는 정신적 강인함 중 어떤 것이 더 강한가(p255)


천재작가 리하르트 게르스가 1908년 25세의 나이로 자살하면서 남겼던 절대 절망의 웃음은 자신의 모든 그림과 자료들을 불태우고 마지막 자신의 비극적 최후를 담고 있다. 친구 작곡가 쇤베르크의 아내 마틸데와의 불행한 사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이 세기말적 불안, 절망, 허무함이 짙게 깔린 비엔나의 분위기와 겹치면서 죽음을 선택했을 거라는 작가의 추측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무섭고 두려운 죽음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간 천재작가의 최후의 모습이 베일 속에 감추어진 예술가 내면의 삶과 내면의 죽음에 대해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반면 미국의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에이즈에 걸려 임종을 앞둔 죽음의 공포를 '조화, 균형, 비례 등과 같은 고전적 형식미에 완벽하게 녹여내(p258)'었다. 저자가 인용한 몽테뉴의 수상록은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은 단 한 번 밖에 겪지 못하기에 괴로울 것이 없다. 그렇게 순간적인 일을 그토록 오랫동안 두려워할 이유가 있는가? 오래 산다는 것과 짧게 산다는 것은 죽어버리면 마찬가지 일이다. 왜냐하면 길다든지 짧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백 년 뒤에 살아있지 않음을 슬퍼하는 것은 지금부터 백년 전에 살아있지 않았다고 슬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다(p259)

알겠슴다. 몽테뉴삼촌.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고 한들 1~2년이겠지. 노년과 죽음을 너무 미리 슬퍼하지 말자.

많은 국내 작가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는데, '인간의 주거공간과 대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꿈의 장소(p273)'를 주재료로 작업한 원성원이라는 작가의 발견이 정말 기쁘다. 책에 나와 있는 작품은 Dream-Michalis라는 작품인데, 절친인 미할리스가 어릴 때 개울물에서 물고기를 잡아 구워먹던 얘기며 자신의 작고 소박한 방에 그리스 신전의 기둥을 가져오고 싶다는 말에서 착안하여, 그가 꿈꾸는 것들을 작품속에 구현하였다.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촬영한 강원도의 계고고가 개울 풍경, 그리스식 기둥 등의 사진을 합성해 꿈과 현실이 통합되는 이상향을 창조했다. 그가 창조한 환상적 세계를 뒤져 인터넷을 누볐다. Art Project 사이트 https://www.google.com/culturalinstitute/entity/%2Fm%2F0t504sj?hl=ko&projectId=art-project 를 가면 환상적인 공간을 창조해 낸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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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30 2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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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30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3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31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궐 2015-07-31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병통치약 님이 싫어하시는 분이라고 해서 왔다가 좋은 글들 잘 읽고 갑니다.^^

CREBBP 2015-07-31 20:3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도 치약님 엄청 싫어해요. ㅎㅎ 독서로 역사쪽 분야를 끝장낼 기세거덩요
 

선의 법칙(편혜영)                     ★★★★★

과학수다 1,2                          ★★★★☆

앵무새죽이기(하러 리)                ★★★★☆

정리하는 뇌(대니얼 J. 레비틴)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             ★★★★☆

유재원의 그리스 신화 올림푸스 신들 ★★★★

걸 온더 트레인

사랑에 독해져라

하리하라의 음식 과학

로버트라이시의 1대 99를 넘어

로맨틱 한시

트렁크(김려령)

네메시스(필립 로스)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생각수업(박웅현 외)


이번 달은 편혜영의 《선의 법칙》을 최고의 책으로 꼽고 싶습니다. 예스24에서 소설학교라는 이름으로 이벤트성으로 매달 행사하는 한국 소설들이 경험상 모두 좋았습니다. 이 책에 대한 제 리뷰는 여기에 있습니다. 《정리하는 뇌는 새로운 내용보다는, 기존의 많은 뇌과학 지식들을 총망라한 듯한 느낌이드는 책이지만 구성이 좋았습니다. 유재원의 그리스 신화:올림푸스 신들는 신화를 해석하는 저자의 관점이 와 닿았습니다. 필립로스의 마지막 소설은 네메시스는 저자의 명성과 저의 팬심에 비해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습니다. 한국이 싫어서는 매우 재미있게 잘 읽히는 책이지만 개인적으로 담긴 메시지가 현실도피적이고 이민자가 이방인으로서 처한 현실을 외면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점수를 줄 수 없었습니다. 트렁크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비해 뭔가가 허술하게 느껴졌고, 로맨틱 한시는 최고의 한시와 최고의 일러스트 그리고 그 풀이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 정체모를 에세이가 유치하고 산만하게 느껴졌습니다. 로버트 라이시의 1대 99는 좋은 책인데, so what이라는 현실적 무력감을 어찌할 수 없었고, 하리하라의 음식과학은 구성도 좋고 내용도 매우 쉽게 잘 쓰여졌는데 두께와 가격에 비해 컨텐츠가 조금 빈약하다는 느낌이 어린이용 책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걸온더트레인은 아마도 중간에 덮지 못하고 제일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흠잡을 데는 없이 재미있지만, 덮고 나면 잊힐 책입니다. 사랑에 독해져라는 횡설수설 김진애님을 다시 보게 만든 책으로 남녀 사이의 가치관들을 한 번쯤 가볍게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책들이 다 고만고만 비슷비슷하게 좋고, 아 이 책 정말 별로다 라는 생각을 갖게 한 책은 없었습니다. 생각수업을 빼먹어서 추가합니다. 국내 최고의 멘토들이 나와서 생각하는 법에 대한 읽을 때는 주억거리지만 읽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 하나마나한 연설들을 하는데, 이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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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5-07-31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에서는 꺽쇠 속의 책이름이 모그 사라지는구나... 그래서들 이중 꺽쇠를 쓰는 거였구나

라스콜린 2015-08-01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많이 읽으셨네요! 독서량이 상당하시네요!!

CREBBP 2015-08-03 17:04   좋아요 0 | URL
지난달과 그 전달 사상 최고점을 찍은 것 같습니다. 많이 읽는 것 보다는 무엇이 남아있느냐가 중요하겠죠. 그런 면에서 리뷰로 남긴 텍스트 밖에 남은 게 없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