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p Studio Paint, 캐릭터를 살리는 배경 그리기 노하우
요-시미즈 지음, 김재훈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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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상세히 얘기하기 전에 우선 클립 스튜디오 페인트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먼저 알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림 및 아트 분야에 문외한이지만, 최신 도구를 이용하여 멋진 일러스트를 그리는 과정 자체에 관심을 가진 나로서는 실제 산업에서 어떤 툴들이 이용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도 근사한 일이다. 제목이 시사하듯, 당연히 이 책은 클립 스튜디어 아트의 기초 사용법이나 강의가 아니라, 배경 그리기 노하우에 관한 책이다. 붓으로 그림을 그릴 때 붓의 선택과 붓에 대한 성질 사용 법 물감과 캔버스 등의 자재에 대해 이미 숙지하고 있어야 하듯, 디지털 일러스트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이 선택한 프로그램에 대한 사용법은 대략적으로 숙지하고 있을 것이다. 문외한인 나로서는 일러스트 하나로 모든 걸 다 하는 줄로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프로들은 채색 소프트웨어를 별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클립 스튜디오 페인트가 바로 그 채색 프로그램이다. 


물론 책에서 제공하는 테크닉으로 그림을 그리는 기본적이고 단편적인 방법은 책에 나와있지만,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소개는 없어서 클립 스튜디오 아트 한국어 페이지를 방문해 보았다. 짐작했던 것처럼 클립 스튜디오 아트는 그리기와 채색 작업에 특화된 소프트웨어이며, 종이에 펜과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우수한 태블릿 엔진을 장착하여, 현존하는 최고의 필압인 8192 단계를 제공하는 와콤 태블릿의 8192 단계의 필압을 모두 지원하여 정교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책과 함께 세 개의 커스터마이징된 브러시를 제공하는데, 이미 1천여종의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브러쉬가 제공되고 있다는 홈페이지 소개를 토대로, 얼마나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쓸 수 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매뉴얼은 영어로만 지원되는 듯하고, 딥러닝에 디반한 AI 자동 채색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아도브사의 모든 도구들이 CS 버전으로 매달 통장에서 돈을 뜯어가는 것과 달리, 무엇보다도 이 소프트에어는 전통적인 판매 방식으로 한 번 구입하면 영원히(?) 소유하고 업데이트도 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책을 읽기 전에, 책의 부록으로 영진닷컴에서 함께 제공하는 부록 파일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http://www.youngjin.com/reader/pds/pds.asp 에서 스케치로 시작하여 다양한 과정을 거쳐 채색이 완성되어 가는 부록 파일들을 살펴볼 수가 있다. 워낙 많아서 그림 완성 및 변형 단계의 일부를 축소해서 화면을 배치해봤다. 


그림에서 살펴보듯,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실무에서 직접 응용이 가능한 그리기 제작 과정을 담고 있다. 클립 스튜디오 페인트의 아주 기본적인 사용법과 용어, 특전 브러시의 사용법, 입체를 그리는 기본 방법들이 매우 간략하게 그림 위주로 소개되어 있고, 33쪽부터 바로 실무에 들어간다. 위에서 예를 들은 배경의 이름이 벚꽃 지는 거리인데, 이 씬 외에도 총 8 개의 씬의 초기 스케치에서부터, 마지막 완성 단계, 그리고 변형까지를 단계별로 설명하고, 상세한 단계 컷은 jpeg 파일로 제공된다. 


배경은 원근법적 지식이 없어도 그럴 듯하게 그릴 수 있는 하늘, 구름, 자연물 등과  원근법이 필요한 배경으로 나뉠 수 있다. 위의 그림과 같이 지면이 포함되지 않으면, 원근법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건물이 포함되거나 실내, 지면 등이 있다면 원근법의 지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처음 세 개의 씬은 원근법이 필요없는 모티브와 구도를 선택하여, 주로 무플 위 부분을 중심으로 자연적 배경을 하는 그림을 설명하고, 이후 씬은 보다 복잡한 원근법적 지식이 필요한 씬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린다.  처음 배경은 회색으로 채우는데, 완성 이미지와의 인상 차이를 줄인다. 배경 채색이 끝나면 캐릭터의 채색 후 머리속의 이미지와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실루엣을 가장 먼저 그린다. 이후 간단한 러프를 그리고, 라이팅을 넣고 배경 이미지를 조금씩 완성해 나간다. 


8개의 씬에 필요한 테크닉이 각 단게별로 그 때 그 때 소개되어 있어 유용하다. 초원 그리는 방법 나무 그리는 법, 소품 그리는 법 같은 기본적인 그림 기법도 틈틈히 소개되고, 사진 합성, 색함성 등의 트릭, 인상주의나 추상주의를 연상시키는 고난이도 <인식 그리기> 기법 등도 소개된다. 저자가 진격의 거인, 갑칠성의 카바네리 등의 일러스트에 참여했다고 소개되어 있으며, 여기 나온 그림들이 영화나 포스터에서 익숙한 듯한 씬이라서, 이런 씬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느낄만한 책이었는데, 일러스트에 관심이 있거나, 직접 제작을 원하는 사람들이 입문하고 실습까지 실무적 느낌으로 해보기에 적당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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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 문학동네 / 1918년 7월


이안 매큐언 소설을 몇 권 읽은 독자로서,  그의 소설에 대한 인상은 대체적으로, 심각한 역사적 혹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블랙 유머가 지적으로 세련되게 잘 배합한다는 것이다. 태아의 입장에서 햄릿을 재해석한 <넛셀>이 어두운 인간의 이면을 매우 영국스러운 유머로 풍자했다면, <솔라>는 작품은 조금은 더 소리내서 웃을 수 있는 코믹스러운 요소가 구석구석 배어있다.


피부가 노출되면 바로 얼어버리는 북극의 살인적 한파 속에서 스노우 모빌로 신속해 이동해야 하는 상황의 한 복판에서도 신체는 그 환경과는 무관하게 한결같이 자신의 순환 사이클을 멈추지 못해서 생기는 비극이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낸다, 그 잠시의 빙벽 배설 행위로 인해 저온에 노출된 신체의 중요한 일부가 스노우 모빌에 돌아와 달릴 때, 똑 떨어져 겹겹으로 입은 바지 밑으로 흘러내리고 있음을 마비된 감각으로 느끼는 장면이 그 중 압권이다. 


작품이 주는 웃김이 순수한 웃음이 아닌 씁쓸한 웃음을 주는 이유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에 있다. 지구를 구한다면서 자기 집 관리나 자기 자신 조차 건사하지 못해, 사랑하지도 않고 결혼 생각도 없는 여자 집으로 향하는 남자.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환경보호자들이 당연히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이나 단체에서 지원하는 행사인 북극의 환경 파괴 현장 체험에 가서 목격하는 탈의실의 카오스. 신체적 약점(뚱보에 늙고, 키작고 등등)과는 반대로 지속적으로 꼬이는 온갖 타입의 여자들.


다섯번의 이혼과 그로 인한 노벨상에 걸맞지 않은 빈털털이 신세의 이 남자에게 여자가 꼬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화자가 굳이 독자에게 드러내지 않은 숨은 매력이 있을 수는 있겠다. 재치있는 말주변이라든가 혹은 (겉으로 보이는) 세심한 심적 배려라든가. 가장 설득력있는 추측은 끊임없이 여성을 쫓고 평가하고 작업거는 평소 한결같은 태도에 20년 전에 성취한 노벨상의 권위가 합쳐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외모지상주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권위가 상쇄시키는 이성적 인간적 불호감은 철통같다. 노벨상은 말할 것도 없고, 돈과 권력, 스타적 유명세 같은 것들 말이다. 사실 이안 매큐언이 워낙 유명해서 노벨상 수상자인가 했더니 부커상을 몇 번 받았지만, 노벨상은 아닌 듯하다(어쩐지 읽는 재미가 있다 했더니ㅋ).  하지만, <솔라>에 등장하는 마이클 비어드는 노벨상 수상자이고, 젊은 시절 넝쿨째 굴러들어온 이 노벨상이라는 세계적 권위의 수상이력은 그의 나머지 삶의 대부분의 부분을 떠받치고 부양하는 토양이 된다. 


20년동안 아무 연구도 진척된 것 없이, 이런 저런 위원회의 장과 같은 한직을 쫓아다니고 대중강연과 연설로 먹고 사는 동안에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일차원적 탐욕이다. 돈, 여자, 술, 음식, 권력. 노벨상 수상자가, 자신의 외도로 인해 이미 관계가 끝난 네번째 부인의 외도를 질투해, 그를 살인자로 조작하고, (자신 때문에) 죽은 연구원이 남긴 연구 내용을 가로채, 지구를 구한다는 명분과 유명세, 돈을 탐닉하는 모습은 악한자의 전형이지만, 이상하게도 책을 읽다보면, 그런 그가 그렇게 악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만연된 사회의 부조리에 익숙해지면, 그런 일은 특히 큰 권위를 등에 업고 사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럽게) 살아가는 방식은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분명 윤리적으로 아주 엄청나게 큰 잘못을 하고 있는데도, 마이클 비어드에게는 지구를 지킨다는 명분이 있다. 자신이 훔친 아이디어를 제안한 연구원이 살아있을 때는 포스트닥인 위치에서는 구현 가능성이 없는 그 아이디어를,  마이클 비어드는 노벨상의 이름으로  구현하고자 설득하고 애쓰는 모습이 악의 이면을  드러내고, 외면했던 그 태양광 합성 에너지를 구현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고 연설을 하던 와중에 남성우월주의로 오해받아 분노한 대중에게 조소와 모멸을 받는 장면은 악의 경계를 더욱 흐리게 한다.


그의 악은 마블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절대적 악이 아니다.  빙산의 일각처럼, 사회의 저변에 만연했지만 전체가 한꺼번에 모두 드러나기 전에는 그 깊이와 밀도를 알 길이 없는, 그저 원래 사회라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게 그렇다는 듯 조금 못마땅하게 인정하고 모두들 조금씩 그 사회의 작동 원리에 동조하는 어떤 거대한 힘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탐욕을 방해한 타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그런 대가를 치를만한 인간임을 꾸준히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모습, 죽은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쳐 대규모 사업을 벌리고 다니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노력에 밥숟가락 하나 더 얹으려는 사기꾼 집단 취급하는 심리. 이렇게 그가 악을 행하는 상대들은 마이클 비어드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속물이고 탐욕스럽게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나누자고 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악한 인간이 또다른 악한 인간들을 볼 때의 시선. 그것 때문에, 마이클 비어드의 행위가, 결코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 악의 행위로 읽히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영화 <어톤먼트> 덕분에 더욱 널리 알려진 작가지만, 영화적 비주얼이 주는 강렬한 느낌을 바꾸고 싶지 않아, 가장 재미있다는 대표작 <속죄>를 책으로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책표지가 바래가고 있는 중.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던 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칠드런 액트>를 꼽고 싶다. <검은 개>는 1992년 작인 것 같은데, 첫번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다. 두 마리 검은 개를 서로 다르게 의미 부여하고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의 삶이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려지는 듯하다.


검은 개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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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5-28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칠드런 액트> 재미나게 읽었더랬습니다. 이언 매큐언은, 책이 나오면 어쨌든 사두게 되는 작가 중의 하나인 듯.

CREBBP 2019-05-29 07:59   좋아요 0 | URL
현존 영국 작가 중에서는 줄리안 반스와 이언 매큐언을 좋게 읽은 것 같은데, 이 분이 좀 더 웃긴 거 같아요
 
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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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일처의 평생혼 제도가 인류 공통의 문화로 자리잡은 시점은 언제부터일까. 만일 이 제도가 따지고 따져 결국 진화의 산물이라고 결론짓는다면 유전자의 무작위적 변이는 전혀 다른 방향의 문화와 제도로 인류를 이끌었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의 작가가 상상한 세계에서는 인공수정 기술의 보편화와 성욕의 소멸화로 인해 전혀 다른 결혼제도를 갖는다. 이 사회는 남녀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함께 아이를 만들 수는 있지만 성교는 터부시된다. 성교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어서 부부 이외의 애인을 갖는게 보편화되어 있는데 혼외 애인 사이에서 성교가 보편적인 건 아니다. 성교는 욕망이라기 보다 동물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로 인식된다. 게다가 혼외 애인은 살아있는 인간인 경우보다는 캐릭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사회애서 주인공 여자는 자라면서 자신이 엄마와 아빠 사이의 교미로 태어난 사실이 비정상이고 구역질나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수치스러워하고 숨기지만 부모로부터 받은 저주 혹은 비정상의 유전자만은 피해갈 수 없다. 그녀는 성욕이 왕성하여 첫사랑인 어떤 만화 캐릭터와 성교를 경험하고(실은 마스터베이션)는 현실에서도 끊임없이 사랑에 빠지고 성교 행위를 탐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혼내 정사라는 근친상간 행위에는 큰 저항감을 느껴 어느날 남편이 성적으로 접근하자 역겨움에 토하고 난리 부르스. 현재의 남편과는 성적인 이끌림없이 편안하고 친근한 가족적 친밀함으로 오누이처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서로에게 생긴 혼외 연애를 격려하며 북돋아주며 훈훈하게 살아가지만 둘다 연애 자체에 큰 상처를 입고 실험 도시 지바로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상처받은 이유가 재미있는데 끊임없는 연애와 성교를 하는 여주는 어느 날 남친이 그걸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짤 수 없이 해왔지만 도저히 더이상은 못하겠다는 고백을 듣고 사실상 두 사람의 행위는 성교가 아니라 마스터베이션이었음울 깨닫는다. 반면 남편은 정신적으로 사랑 자체가 감정적으로 너무 힘겨워 우울증과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반복적 자살 충동을 겪는다.

여기까지가 1부인데 성진국의 면모를 아주 잘 드러내는 전개와 적나라한 묘사 때문에 불편을 느낄 한국 독자가 많을 것 같다. 그렇다고 설레게 야시시한 느낌이 아니라 뭔가 날것의 묘사를 그대로 포르노 화면처럼 전달하는 느낌이다. 캐릭터를 사랑한다던지 성교 과정을 탐구하며 따라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 조금은 장난과 과장이 큰 청소년 대상의 수위있는 라노벨 정도쯤에 해당된다고 생각했는데 2부가 되자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어 디스토피아처럼 여겨지는 세계관이 펼쳐진다. 


그들이 정착한 실험도시 지바에서 인공수정으로 남편이 아이를 낳고 그토록 거부해왔던 그 사회의 시스템에 시간차를 두고 서서히 동화되는 과정인데. 여기서 핵심은 공동육아 시스템이다. 인공수정으로 임신하고 누가 누구의 아이인지 누가 누구의 엄마인지 구분이 없는 곳. 양재추 밭처럼 끝없이 펼쳐진 신생아의 밭에서 '아가'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공동으로 양육되고 똑같은 표정과 똑같은 스타일로 자라나는 곳. 식탁의 치킨이 되기 위해 혹육 소고기가 되기 위해 비좁은 우리에 때가 되면 쏟아지는 닭장 속의 닭들이 샹각난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의 성이 더이상 세대 전달이라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성욕 자체도 퇴화할 수 있다는 가정은 흥미롭다.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반복적인 성행위의 탐구라는 묘사는 때때로 불편하다. 흥미로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진지하지 못한 세계관의 설절, 가령 캐릭터와의 섹스나 연애 같은 설정은 다소 유치한 느낌도 있다. 세계관과 서사가 자연스럽게 융합되지 못하고 따로 논다는 느낌도 받는다 작가가 만든 세계관과 주제에 주인공이 억지로 끌려간다는 느낌도 떨칠 수 없다. 

SF로서는 아쉬운 작품이지만 서사적으로는 꾸준한 충격 요법 때문애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은 작품이었다. 후반부의 디스토피아적 세계와 충격적 결말은 인상적이었으나 지나친 동어반복적 설명은 지루함을 피할 수 없다. 단편이나 중편 정도로 압축해서 여운을 살렸다면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훌륭한 작퓸이 되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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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하는 여자들
조안나 러스 외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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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텔라는 늑대여자다. 늑대일 때는 제시, 여자사람일 때는 스텔라로 불린다. 여자는 한달 중 며칠은 늑대로 변신한다. 늑대와 인간의 시간은 7배 차이가 있다. 시간은 삶의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 늑대이거나 인간이거나 사는 시간에 상관없이 스텔라는 제시의 시간을 산다. 늑대의 시간을 2년간 살았을 때 인간의 나이로 14세가 되었고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녀를 발견한 생물학 교수는 그녀의 변신 사실을 학계에 알리지 않고 그녀를 소유한다. 늑대일 때는 길들이고 소녀일 때는 사랑한다. 남자는 서른 중반이다. 1년에 7살씩 나이가 먹는 소녀는 몇년 내 그녀가 남자보다 나이가 많아지는 날이 올 테고 늙고 병들어 죽는 날도 뒤따르리라는 사실을 걱정한다. 그는 그녀가 영원히 아름다울 거라고 안심시킨다. 

매달 돌아오는 변신이지만 변신 그 자체에는 극심한 고통이 뒤따른다. 뼈가 뒤틀리고 새 자리를 잡기 위해 고통으로 신음하고 소리지르고 몸을 뒤트는  동안 그는 그녀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보살펴준다. 늑대일 때도 소녀일 때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를 매혹시킨다. 변신 과정의 고통마저도 성적인 자극이다. 제시(늑대)가 3살이 되고 스텔라(그녀)가 20살이 되자 그녀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다다르고 교수들 모임에서 늘 다른 교수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이로 인해 교수 부인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그들 모두는 스텔라와 섹스하고 싶어하고 조나선은 그런 스텔라를 소유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4발짐승 제시의 나이로 4살이 되자  스텔라는 27세가 되고 여전히 아름답다.  5살이 되자 남자와 같은 나이가 된다. 여전히 그윽한 아름다움과 지적인 매력이 솟아나지만 평평한 배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엄청난 시간을 복근 운동에 쏟아야 하고 가느다란 주름을 감추기 위해 세심한 화장을 하고 타이트하고 섹시한 옷 대신 이국풍의 느슨하고 세련된 패션 감각이 필요하다. 이제 다른 교수의 부인들은 그다지 그녀를 미워하지 않으며 그녀의 지적 매력이 더욱 돋보인다.  점점 스텔라는 남편의 사랑과 새로운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식 탐구에 보다 몰두한다. 모임에서 그녀가 가진 방대한 지적 세계를 우아하게 드러내고 여전히 매력적이다. 


늑대 나이로 5살 6살이 되자 40세 50세로 급격히 진행되는 노화를 주변에서도 눈치채고 괜찮은지 어디가 아픈지를 묻는다. 늘어진 피부와 주름은 진한 화장으로도 더는 감출 수 없고 노쇠하고 무거운 몸은 나이를 속일 수 없다. 이제 여자들은 그녀를 더이상 미워하지 않지만 그녀 자신이 새로 들어온 젊은 여자 교수를 미워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녀를 보던 욕망하는 눈길로 새로 온 젊은 여자 교수를 모두가 바라본다. 그녀도 똑같이 자신의 남편이 그녀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불안과 질투를 느낀다.


그녀의 나이는 70세 80세로 급격히 노화된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서서히 변해가던 남편은 이제 그녀의 고통스런 변신을 지켜보거나 돌보지 않으며 제시에게도 학대에 가까운 방치로 그녀를 섭섭하게 한다. 조나선이 돌보지 않아, 늑대는 인간으로 변신한 후에야 무겁고 노쇠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똥들을 스스로 치우며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지쳐간다. 이제 그녀는 남자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것 같다. 출렁거리는 살들을 지방흡입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보지만 잠자리마저 회피하고 침대에서는 멀찌막한 구석으로 몸울 웅크리고그녀를 점점 멀리한다. 외로움에 지쳐 울다 지쳐 잠드는 날들이 늘어간다.


그러던 중 미술관에서 19세기에 그린 그림에서 한 여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굽은 등으로 차를 따르는 노인의 모습은 숨막히도록 아름답다. 그녀는 화가도 그 여인을 자신이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았음을 안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 아픈 자각은 그녀에게 무엇을 알려주었을까.  조나선을 떠나 자신의 무리들이 있는 곳 자기가 떠나온 곳 (유럽)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왜 미련이 남았나. 무거운 몸으로 반나절동안 멋진 요리를 하고 식탁과 자신을 꾸며 놓고 대화를 시도하지만 마음이 떠난 사람에게 진정한 대화가 될 리가 없다. 대화는 돌이킬 수 없는 더 큰 상처를 남긴다. 그는 함께 쓰던 방마저 떠나 다른 방에서 잔다. 침실에 남겨진 그녀는 후회한다. 똥 얘기를 하지 말 걸 그랬나 다른 방식으로 얘기를 꺼낼 걸 그랬나. 홀로 침실에 남겨진 스텔라는 울다 지쳐 잠들고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이른 변신이 찾아와 고통에 몸부림치는데 침실 문을 안에서 닫아 놓은 걸 이미 때가 늦은 변신 단계에서 깨닫는다. 늑대 제시는 문을 스스로 열 수 없음과 방에는 먹을 것이 없음을 그리고 조나선이 그를 꺼내주지 않을 것임을 안다. 침실에 갇혀 화장실 변기 물로 갈증을 때우며 울부짖는 제시를 조나선이 꺼내주는 반전(?)이 일아나고 조나선은 제시를 착한 개주인처럼 달랜다.

그는 제시에게 참으로 오랜만에 다정하게 대한다 불쌍한 제시 배고팠지? 하지만 거기까지. 늑대를 꺼낸 조나선은 제시를 목줄에 짧게 매어 기둥에 묶어둔다. 조금 후 웬 젊은 여자가 집으로 찾아오는데 그에게 아내가 떠난 걸 위로하는 소리가 들린다. 조나선은 그 젊은 여자에게 밖에 있는 개는 누이가 맡겨두고 간 개라고 둘러댄다. 조너선은 어쩔 작정으로 왜 스텔라를 떠나지 말도록 말렸을까.  스텔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독특하게도 이 소설은 2인칭이다. 너라는 지칭으로 서술되기에, 마치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스텔라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우리가 여성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전혀 나의 이야기가 아닐 때조처 일부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철저하게 남성의 성적 욕망만을 위해 대상화된 스텔라는 자신이 네 발일 때조차 본능을 억제하고 개처럼 조나선에 의해 길들여진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어떤 작은 별에서 어린 왕자의 사랑을 얻기 위한 장미의 밀당처럼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길들여진다는 건 상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내가 온전히 내가 아닌 상대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변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본성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계속 사랑하도록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이 소설에서 스텔라는 늙어가는 자신의 육체적 매력의 감소를 왕성한 지식욕으로 무장하여 새로운 매력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애초 조나선이 했던 말을 돌이켜보면 헛된 소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늙고 못생겨지면 자신을 떠날거냐고 물었을 때 조나선은 뭐라고 대답했나. 늘고 못생겨져도 당신을 여전히 사랑할거가 아니라 안돼 당신은 늘 아름다울 거야라고 대답하지 않았나. 이 대답은 중의적이다. 당신이 늙어도 여전히 아름다울 거라는 뜻과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당신의 아름다움이므로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당신을 떠날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늙어도 그 초상화 속의 그림처럼 내적 아름다움을 그가 알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착각이었다. 

발화 당시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도 모를 것이다. 다만 그가 사랑한 건 그녀의 외적인 아름다움이란 것만은 확실하다. 노화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오는데 만일 남성과 여성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늑대와 인간의 수명 및 성장 차를 이용하여 늑대인간을 페미니즘적으로 접근한 이 작품이 스토리 구조만 본다면 그냥 뻔한 나쁜 남자에게 당하는 바보같은 여자의 뒤늦은 자각이라는 프레임 속에 있다. 시대는 변했고 이런 식의 프레임이 식상한 건 사실이지만 너라는 인칭의 영리하고 단아한 문체는 이야기가 의도한 메시지를 떠나 문학적으로 반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있다. 

페미니즘, SF, 동식대 여성 작가, 등을 키워드로 하는 이 단편집에는 흔히 접항 수 없는 다양한 동시대 여성 작가의 단편들이 들어있다. 좋은 기획,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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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귄의 초기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은 굉장히 오래된 책이지만 시공사에서 재출간되면서, 표지가 사람 마음을 홀랑 앗아간다. 2004버전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영문판 표지도 오래돼서 별로 읽고 싶지 않게 만드는데, 이 책 실물로 보면 더욱 예쁘다. 단편집으로 6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약 10여년 동안 출간된 단편을 작가 스스로 선택한 선집이다. 각 단편마다 해당 작품에 대한 작가의 말이 첨부되어 있어 무엇보다도 특별한 느낌을 준다. 특히 젊었을 때 쓴 초창기 단편집이라 작은 이야기 속에 담긴 거대한 메시지와 대담한 이야기 구성이 매력적이다. 


사실 르귄의 작품이 그렇게 술술 잘 읽히는 편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 비하면 몇달 전 나온 에세이 집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는 심심하리만큼 평이한 문장에 속한다. 첫 작품 <샘레이의 목걸이>를 읽었을 때 가슴에 뭔가 쿵 하는 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이 이야기를 토대로 헤인 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이 탄생할 거였다는 걸 이 소설을 쓸 때 작가가 알았을까 궁금하다. 그래서, 이 단편이 남긴 아쉽고 마음아픈 여운이 다소 풀리기를 기대하며 헤인 시리즈 첫 편인 <로캐넌의 세계>를 읽었는데, 결론은 더욱 아쉬웠다. 얘기를 만들자면, 샘레이가 목걸이를 찾아 돌아온 그 충격적인 순간부터 얼마든지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을 텐데, <로캐넌의 세계>에서 샘레이는 이미 그 목걸이를 자신의 시누이인지, 딸인지에게 맡긴 채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혼란스럽고 복잡하며 마음을 온통 흐트러놓고, 자꾸 그 작은 단편 속의 이야기 속으로 향하고 집착하게 만드는 <겨울의 왕>을 읽고는 책을 잠시 덮고 여운을 즐기기로 했다. 르 귄의 작품을 읽으면 판타지 SF라는 쟝르에 가두기엔 너무 아쉬운 다채로운 색깔의 문학적 세계를 발견한다. 단편들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다채롭고 역동적인 서사는 아름답고 몽환적인 산문을 통해 전달되고, 섬세한 배경 묘사는 독자를 책과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글을 썼지만, 매번 출판사에서 거절당했고, 그 중 첫번째로 원고료를 지급받은 소설이라는 설명도 있고, 소설의 결말에 등장한 인물이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의 주요 인물이 되기도 했다는 각 단편의 앞에 들어있는 여러 설명은 더없이 소중하다. 특히 <겨울의 왕>에 대한 르 귄의 설명이 특별하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을 지칭할 때 남자와 여자를 he와 she로 구분해야 하는 영어권 문학의 애로 사항을 실감하게 된다. 르귄님 왈, <겨울의 왕>의 초기 집필 당시 양성인의 대명사를 남성으로 취급하여 he로 썼는데, 개정판을 내면서 she로 바꾸었다고. 그러고 보면 르귄의 영향력은 굉장하다. 앤 레키의 사소한 정의 시리즈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나오는데, 모든 인물들이 she 로 지칭된다. 시리즈의 후반에서 더욱 중요한 사실이 드러나겠지만, 르귄이 집필 당시 남녀구분이라는 단단하게 굳어진 세상의 틀을 깨고 구분을 모호하게 한 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내 나이의 사람이 봤을 때 겨우 아이로 느껴지는 데뷰 초창기 나이의 르귄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당시 SF 문단의 생태계도 그렇고, 당연히 남성위주의 세계관에 익숙해져있었을 것이다. 또한 서구인의 언어에서 남과 여를 극도로 구분하는 문화 자체가 그와 그녀를 동시에 나타내는 자연스러운 인칭대명사를 찾을 수 없는 언어 문화적 빈곤함(?)이 양성인을 지칭할 때 He를 사용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더욱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이 양성인 주인공이 왕이라는 사실인데, 왕이라는 최고 권력자의


명칭 역시 나뉘어져 있고, 최고 권력자는 남성적 명칭이 더 어울렸을 테니 왕에는 그녀보다는 그가 어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양성인의 체계가 뭔가 복잡해서 왕은 아이를 낳고, 왕의 행동 역시 어떤 섬세함을 연상시킨다. 어쨌든 명칭의 문제는 페미니즘과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 같다.  만일 내가 이 소설의 초기 버전을 읽으면서 He와 매치되는 번역인 그 혹은 그남자로 아르가벤을 접했다면 이 소설에 대해 아주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 


말했다시피 소설에 등장하는 행성에 사는 게센인들은 양성인이고, 이들은 <어둠의 왼손>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이 작품은 눈쌓인 왕국의 동화같은 풍경과, 아인스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광속 여행에서 발생하는 시간차, 통치와 반역, 출생의 비밀 같은 서로 잘 매치되지 않을 것 같은 키워드들로 설명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게 납치되어 세뇌된 젊은 왕 아르가벤은 자신이 왕국을 멸망케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음을 알고, 아직 아이인 자기 자식 암렌에게 선양하고 대신에게 섭정을 맡긴 후, 자신은 올룰이라고 불리는 24광년 떨어진 행성으로 간다. 가는동안 우주선 안에서는 겨우 몇 시간의 시간만 흐를 뿐이지만, 각각의 행성에서는 24년이 흐른다. 아르가벤은 올룰에 12년간 거주하면서 자신의 아이가 왕국을 슬기롭게 잘 통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가 다시 겨울 행성으로 돌아갔을 때 자식은 늙고 폭군이 되어 왕국은 멸망의 위기에 서 있지만 자신은 여전히 패기넘치고 젊은, 왕국을 구할 유일한 인물이다. 사람들은 아르가벤을 알아보고 다시 반역을 꾀하여 아르가벤을 옹립하고자 한다. 늙은 왕이자 자신의 딸(아들)의 목을 베는 젊은 왕. 얼마나 아름답고 비극적인가. 


이렇게 쓰니 스토리 구조가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풍성한 은유와 아름다운 시적 판타지 사이를 넘실거린다. 소설의 구조는 몇몇 개의 스냅 사진을 설명하는 식으로 띄엄띄엄 시간을 점프하고, 그 빈 시간의 공백들은 더욱 많은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젊은 엄마(아빠)와 늙은 딸(아들)이라는 반전된 구조. 아르가벤->암렌->아르가벤->암렌으로 순환되는 통치자의 이름이 암시하는 영원한 부모-자식 간의 반역과 선양 구조는 더욱 깊은 사색과 추리 속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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