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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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무기를 몰래 연구하던 한 대학의 연구실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미립자 형태의 탄저균을 개발한다. 개발 소식이 알려지면 동네 주민이 들고 일어나 연구에 차질이 있을 거라는 이유로 몰래 연구가 이루어졌던 것인데 연구 결과를 혼자서 독식하려던 연구 소장에게 해고된 후 이를 복수하기 위해 이 병균을 스키장 근처의 눈쌓인 나무 밑에 숨겨 두고 나무위에 위치정보 수신기를 테디베어 속에 장착해 걸어둔 후 소장 도고을 협박 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그 유전자조작된 기밀 병기는 온도가 10도만 올라가도 용기가 깨지는 매우 민감한 재질로 되어 있거 만일 그것이 깨져 가루가 날아가게 되면 가루 한 알갱이만 흡입되어도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거액의 돈을 입금하지 않는다면 겨울이 지나 해빙기가 되면서 용기는 깨지고 바람에 흩어진 탄저병균이 수없이 많은 인명을 살상시킬 것이라고 협박하며 그것을 숨긴 눈쌓인 산속 사진을 찍어 보낸 고즈하라는 우연히 사고로 죽게 된다.

도고는 부하직원 구리바야시를 이용하여 병균이 묻힌 장소를 찾게 하고 구리바야시는 스키 광인 아들에게 도움을 청해 죽은 고즈하라의 소지품에서 빼낸 사진 몇장에서 나온 힌트와 그가 사고를 당한 고속도로의 위치만으로 스키장을 알아내고, 역시 사고 차량에서 빼돌린, 300미터까지 추적이 가능한 위치추적기를 가지고 다니며 20대 대학생때 마지막으로 탔던 스키 솜씨로 맨꼭대기 상급자 코스에까지 올라가 코스가 아닌 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위치를 찾으려고 애쓰지만 넘어지고 자빠지고 눈속에 파묻히고 너덜너덜 꼴이 말이 아니다.

수준급의 솜씨로 아버지와 동행한 슈카는 마을 학교에서 단체 스키 수업차을 온 이쿠미와 부딪치는 사고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는데, 이 학교의 아이들은 몇달 전 유행한 인플루엔자에 걸렸다가 안타깝게도 한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그 희생자의 오빠가 슈키와 동급생인 유키인데 유키의 무리들은 비정규코스를 누비고 다니다가 문제의 나무에 걸려있는 테디베어를 발견하고 이것울 갖고 싶어하던 겐타는 후일 다시 와서 이것을 가져갔다가 스키중 부딪힌 어린 아이에게 사과의 뜻으로 주어버린다.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할 위치수신기는 아이가 스키를 타는 곳마다 번쩍거리며 위치 추적기의 불빛을 반짝이게 만들고 병균을 쫓는 사람들은 아무리 확신하는 나무의 위치에 가까이 가도 추적기가 신호를 잡아내지 못하고 대신 엉뚱한 곳에서 번쩌꺼리다 급하게 사라져버리는 현상에 어리둥절하다. 한편 활강이라는 휴게소는 마을 학교의 아이들이 식권 대신 저렴하게 음료를 사먹을 수 있는데 그집 주인 딸이 바로 인플루엔자로 죽었던 것으로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딸을 감염시킨 다른 아이들은 살아서 즐겁게 놀고 있는데 자기 딸만 죽은 것이 분해 복수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슈카와함께 음료를 먹으러 왔던 이타미는 자신을 보고 외면하는 유키의 엄마를 보고 우울해진다. 결국 이 모든 인물들에 얌전한 회사 여직원까지 가세해 사건에 개입을 하게 되고 설원에서는 쫓고 쫓기고 너머지고 자빠지며 구르고 날고 돌며 스키와 보드를 탄 채 결투를 벌이는 씬이 코믹하게 벌어진다.

히가시노 게아고 소설치고는 긴장감보다는 코믹함이 돋보였고, 특유의 막판 긴장과 막판 뒤집기, 결론에서 뭔가 교훈을 주어야 하는 것같은 대사는 판에 박은듯 비슷한 유형, 빠르게 쓰고, 빠르게 읽히고, 쉽게 소비하기에 적당한 인스턴트적인 소설, 스릴러물이라기에도 좀 뻔한, 너무 많이 본듯한 장면들..  독자인, 우리는 천천히 음미하고 책을 읽으며 생각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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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에 고백할게 하나 있는데, 다름아닌 밤마다 잠자기 전 유튜브나 커뮤니티에서 찾아보는 영상/사진이 있다는 거다. 그건 야동이 아니라 고양이와 개, 그리고 아기들이다. 고것들을 담은 영상과 사진은 하루종일 뭔가를 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준다. 그렇다고 내가 현실에서 동물을 좋아하거나 빽빽 우는 아기를 막 좋아라 하는 편이 아니다. 엘리베이터나 버스 같은데서 아기가 타고 있으면 꼬물거리는 작디 작은 손가락도 만져보고 싶지만 그냥 들이다보고 만다(남의 아기를 더러운 손으로 함부로 만지면 안돼요). 개들은 누가 안고 있거나 데리고 다니면 쳐다도 안보지만 교외 카페나 절 혹은 교외 사는 지인 집 같은데 가면 유독 꼬리를 살란살랑 흔들며 놀자고 애교를 떠는 개들을 가끔 보는데 가까이 다가오면 살짝 겁나고 만지면 뭉클한 촉감과 낯선 털의 감촉 때문에 피하지만 무슨 생각할까 신기한 생각이 들어 사진 찍어두고 연구한다. 고양이는 아이가 어릴 때 늘 아파트 화단을 뒤지며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놀기에 길고양이들에게 뭔가 친근함을 느껐지만, 토끼 한마리를 키우다 한달 만에 죽은 후로 집에서 애완동물을 키울 생각은 버렸다.

사실 아파트 쓰레기 버리는 곳에 가면 늘 고양이들은 볼 수가 있다. 누군가는 밥을 주는 것 같고 누군가는 또 싫어하는 것 같고 , 경비님들도 여러 분이 계신데 어떤분은 싫어하시고 어떤 분은 열심히 밥 챙겨 주시고 하는 것 같다. 나로 말하자면 쓰레기버리러 가거나 집을 나설때 한번씩 만나고,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 안녕 하고 말걸어보지만 도무지 그 고양이가 날 아는지 어쩌는지는 알 길이 없는 사이다. 밥을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날 쳐다보긴 하는데 몹시 경계하고 내가 다가가면 달아나버리기 때문에 그냥 멀뚱히 말만 붙여보고 대답도 못듣고 돌아선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 사라에게도 여러 불행이 한꺼번에 왔다. 2천년대 초반 닷컴 붕괴와 더불어 대형회사에 병합된 후 탐욕적 대기업의 이미지 세탁용 디자인을 의뢰받았지만 애써 준비한 발표 자료를 포함해 모든 작업 내용이 담겨있는 노트북 컴퓨터를 지하철에 두고 내려 발표장에서 빈 손으로 아무 것도 없는 하얀 칠판 앞에 섰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매몰되고 권태 속에 빠진 동거 생활도 지쳐 우울증을 보이던 사라는 발표중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고 짧지만 병가를 얻을 수 있게 된 사라에게 길고양이 한마리가 나타난다. 냄새를 맡으라는 고양이의 충고에 동거남의 냄새를 맡으니 수상쩍은 냄새가 난다.

인간이 짝을 이루며 평생 한 사람과만 사랑을 하도록 문명을 가꿔왔지만, 그래서 일부다처, 일처다부 등의 관습이 많은 문화권에서 야만이지만, 사랑은 영원하지 못하고 인간의 마음은 간사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매일 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아도 사실은 늘 조금씩 변해가고 엤기 때문에 한 번 사랑했다고 영원히 둘만 서로 사랑해야 하는 건 아무리 합리적인 인간이라지만 뭔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결혼 십년차 정도가 되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래도 둘이 계속 살아가는 건 둘이 함께 공유해온 것들 ,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공유하게 될 것들 때문이다. 둘이 함께 유전자를 섞어 만든 아이들, 집, 함께 먹는 밥상, 함께 보는 티브이, 소파 부엌가구들, 집, 저축, 빚, 함께 아는 친구들..사랑이 식어도 관계를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니것 내것 가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나마 물건이라면 돈만 엤으면 새로 사면 되는 거지만 아이는 어쩔거며, 둘이 함께 영원히 같이 살게 될 거로 생각하고 헌신한 시간들, 함께 만들어온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 상호 의존 관계 모두를 고려한다면 헤어지는 일이 그냥 그렇게 엉망인 채로 사는 편에 비해 더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사라는 아이가 없었고 집도 남친의 부모님이 투자목적으로 구입한 집이었고, 무엇보다도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파트너의 외도가 엄청난 충격과 절망적 샅황을 만들었지만 질척거릴 필요 없이 비교적 빠르고 덜 고통스럽게 헤어진다 부자 동네서 살다가 월 500파운드의 월세를 찾으려니 대낮을 걷기에도 위험하고 불결하기 짝이 없는 빈민가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사랑하는 아빠와 남동생은 파산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배신감으로 몸을 떨며 우울증에 날마다 울며 지내는 사라에게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고양이이다.

저자의 약력을 보면 긍정의 심리학을 연구하고 컨설팅하는 학자인데, 이 책은 소설이지만 자기계발서적인 성격을 가졌는데, 이렇게 진퇴양난에 빠진 사라에게 나타나 이제까지의 자신은 템즈강 속에 빠뜨려 죽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조언해주는 조언자의 역할을 해주며 사라가 천천히 우울의 밑바닥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멘토이자 친구가 된다.

인간은 어떤 상태에서도 적응할 수 있도록 태어났다. 당장 없으면 죽을 거 같은 연인, 고르고 골라 아껴 두었던 가방과 신발과 예쁜 옷들, 아빠가 평생 모은 장서들, 이런 것들은 갑작스런 상태의 변화에 따라 모두 처분하거나 보내버려야 하는 것들이다. 한 때 모든 것일만큼 소중했던 것들을 버리려면 길고 어두운 고통 속을 통과해야 한다. 그것도 믿었던 연인에 대한 배신 때문이라면 고통은 치욕이 된다. 사라의 변신은 고양이 관점에서 본 인간의 탐구가 직접적으로 사라에게 충고와 조언으로 시작된다. 당연한 걸로 알던 탐욕스레 육식을 먹으면서 고양이가 새를 물어오자 끔찍해 하던 사라는 고양이에게 설득되어 채식주의를 실천해보고 그 풍성하고 오묘한 맛의 세계를 날게 된다.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다니던 일상에 걷기와 자전거타기로 생확 패턴이 바뀐다.

내가 지굼 가진 것 중 무엇이 소중할까? 그것은 사실 그렇게 소중한 걸까? 만일 그게 없다면 어떨까. 소석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혹시 지금 가장 소중한 것 이라고 생각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경험할 기회를 잃는 건 아닐까? 소설이라기 보다는 인생의 실패를 만났을 때 고양이에게서 배우는 지혜라고 할 수 있을만큼 자기계발서적 성격이 강한데, 고양이가 하는 충고와 설명 , 사라의 투덜거림이 조금 조금 장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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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독학 일본어 첫걸음 - 왕초보부터 JLPT까지 한 달 완성 GO! 독학 시리즈
시원스쿨 일본어연구소 지음, 곽은심 감수 / 시원스쿨닷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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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알 전 일무따(일본어 무작정 따라하기)를 이북으로 구매하고, 함께 제공되는 mp3 음성 파일을 다운받아, 휴대폰에 넣어두고 다니면서 생각없이 틀어놓고 버스에서 듣는데, 사실 이걸 시작할 때까지도, 히라가나나 가타가타를 알지 못했어요. 글자는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듣기만 한 거죠. 교재가 휴대폰에 같이 있으니까 간간히 교재를 보면서 듣기를 하니까 대략 글자들이 눈에 익긴 한데, 이제 서서히 책을 읽고 교재를 보면서 공부해야 할 단계가 되니, 히라가나를 외우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종이책으로 된, 초급도 아닌 완전 초급, 첫걸음 교재로 왕초보가 알아야 할 기초 사항(쓰기와 읽기)을 함께 공부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따로 공부할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 아주 쉽고 기초적인 교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이 여러가지 니드를 만족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한 권의 책에 여러가지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일본어 첫걸음에 필요한 쓰기 연습장입니다. 책에 붙어 있습니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쓰기 연습과 매 주별로 배운 내용을 복습해서 써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뒷편에는 본문의 일본어 음을 녹음한 Mp3 CD 한 장과, 단어장이 별책 부록으로 들어있습니다. 또 첫장에는 시원스쿨 동영상 강의를 1년동안 수강할 수 있는 수강쿠폰이 번호로 들어있는데, 하라는 대로 쿠폰 등록을 시도했더니 이벤트 페이지 가서 하라고 하고, 이벤트 페이지에는 그런 거 없음 하고 입을 닦습니다. 그런데 사실, 책에 내용이 설명되어 있고, 그림도 나와있고, mp3로도 음성 파일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굳이 동영상 강의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강의가 어떨지, 궁금한 건 풀 수 없다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음성 파일의 경우 각 챕터별로 여러 개의 파일로 나뉘어져서 200여개의 파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걸 다 PC에 복사했다가 다시 휴대폰 연결해서 가져오고 하는 것이 좀 번거롭더군요. 사실 홈페이지에 등록한 이유는 동영상 강의 때문이 아니라 음성 파일을 웹에서 손쉽게 다운받을 수 있는가를 보려고 했던 건데, 따로 제공되지 않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요즘 CD 자체가 없는 노트북 컴퓨터 사용자들도 많고, 탭이나 휴대폰으로만 모든걸 처리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굳이 CD를 함께 제공하기보다는, 어차피 교재가 있어야 음성 파일 듣는 게 의미가 있으므로 웹에서 쉽게 다운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더 편나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하루 15분씩 8주 스케줄과 하루 30분씩 스피드 속성 스케줄을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고, 캘린더를 함께 제공하고 있는데, 암기력이 뛰어나다면 15분으로도 한 유닛을 끝낼 수 있겠지만, 단어 하나 외우고 다음 단어 들으면 그 전 단어 까먹는 나이에 이른 사람에게는 15분이 아니라 150분씩 잡아야 4주만에 초보 탈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첫 유닛(Unit1) 입니다.  간단한 인사말이 소개되어 있고, 뒷부분은 히라카나와 해당 단어들을 엮어서 공부하는데, 사실 히라카나는 제 경우 일본어 학습 앱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 아는 것 같아도 막상 혼자 읽으려면 버버버벅 거리게 되니까, 이렇게 교재를 가지고 스스로 책을 읽어보는 게 필요할 거 같아요.



마지막 근처 단원입(UNIT 48)입니다. 문법 포인트를 이런 식으로 제공합니다. 중요한 것은 빨간 색으로, 반복되는 부분은 파란색으로 표기하고, 문형연습하는 예도 나와있습니다. 스파게티처럼 일본의 문화를 소개하는 코너도 짬짬히 보입니다. 


UNIT 6개를 한 주의 분량으로 엮어서 연습문제가 있습니다. 연습문제를 풀어보고 나서야, 어느정도 실력이 향상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지요. 일무따로는 주로 말하고 듣기 연습이고, 이 책은 문법과 쓰기 공부가 되니까, 두 책 모두 병행하면 될 거 같습니다. 대신 진도가 더 느려지겠지요. 


1월 말에 일본 홋카이도를 가는데, 그 때까지 유창~하게 일본말을 하게 되는 건 꿈이지만, 한두마디 알아듣는 건 가능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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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 어떤 애도와 싸움의 기록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기획.채록 / 나무연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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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절반은 여성이다.  나머지 세상의 절반은 남성이다. 차이를 인정하기 전에 해결되어야 할 과제, 평등을 말하기 이전에 이미 확립되어야 했을 것들의 부재속에서 쌓아올려진 여성해방이라는 허상은 밤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칼에 맞아도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두 성간의 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확고한 성벽 속에서 남성이 안전하게 몸을 펴고 활보하는 동안, 성벽 밖의 여성은 익명의 남성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또 다른 남성을 필요로 한다. 데이트를 끝내고 여친을 바래다주는 문화가 서구에서도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이시대의 페미니스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밤에 화장실을 혼자가는 일이 불안한 이 사회에서 , 저 포스트잇들을 붙이기 위해 얼굴을 마스크로 가려야 하는 세상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어쩐지 사치처럼 느껴진다. 

천사 개의 포스트잇은 보존을 위해 잘 옮겨졌고,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북은 공짜다(메갈이니 어쩌니 해서 쓸데없는 논쟁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공짜인 이북을 소개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이 사건을 바라보며 느꼈던 이 땅의 모든 여성들 개개인의 목소리다. 


시스템 속에서 이득을 취하며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등을 돌리고 스스로 속인 것 역시 분명한 잘못입니다. 저는 잠재적 가해자입니다. 바꾸기 위해 이제부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겠습니다. 슬프고 화가 납니다. 부디 고인의 명복을

923 여성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보호받지 않아도 누군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정신분열증 때문이라고 합리화하지 마세요. 제 동생은 정신분열증 환자이자 페미니스트입니다.

피의자는 정신분열증을 앓았다고 합니다. 언론들은 여성 혐오가 아닌 개인의 범죄라고 보도합니다. 그러나 그가 여성에게 무시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요? Misogyny가 만연한 우리 사회가 아닌가요?

892 여성 혐오 범죄=열등 범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여성에게 화풀이하지 마세요.

만나주지 않는다고 폭행당하고, 헤어지자 했다고 염산 테러를 당하고, 여성이란 이유로 살해를 당하는 나라. 이런 이유는 어느 나라에서도 정당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딸을 ‘단속’하지 말고 아들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 성소수자 혐오, 이주민 혐오. 온갖 혐오를 낳는 사회구조에 맞서 새날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고 싶지 않다는 게 왜 남혐인가요.

나는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보상품이 아닙니다. 마구 대하고 죽여도 되는 존재도 아닙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

화장실을 같이 가달라는 게 아닙니다. 혼자 가도 안전하고 싶다고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사회는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뿌리를 뽑아야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이 추모 공간 보존할 예산으로 공공 화장실이나 설치하려는 발상이야말로 여성들과 소수자들을 사회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누군가의 말을 들어야 하는

남자에게 보호받고 싶지 않습니다. 남자 없이도 안전하고 싶을 뿐이에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잠재적 가해자라서 듣기 싫은가요. 나는 ‘잠재적 피해자’라서 무섭습니다.


오래 전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 기숙사의 한 친구에게 짝사랑하게 된 동향 출신의 선배가 생겼다. 동향의 모임이 있을 때마다 볼 기회가 있었고, 모임이 있을 때마다 늘 선배 얘기 뿐이었다. 스무살 청춘을 흔들어 놓았던 그 선배의 나이 역시 스무살 청춘. 선량하고 푸른 청춘이었다. 그 선배가 친구가 좋아하는 걸 눈치채고 하숙하던 집으로 불렀던 날, 그 친구는 울면서 돌아왔다. 매일매일 꿈꾸던 그 멋있던 선배와의 첫 데이트는 선배의 강간 미수로 끝났다. 강하게 저지하는 친구의 청바지를 거의 반을 완력으로 벗겨냈다. 저항을 하는 데 어떻게 바지 단추를 푸르고 지퍼를 벗기고 그 빡빡한 청바지를 내릴 수가 있지? 나는 순박한 그녀를 의심했을까. 이해하지 못했다. 내 앎의 한계로는 무언의 동의가 있지 않은 이상 옷을 벗기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이 아직까지 떠나질 않는다. 힘이 너무너무 센거야. 한 손으로는 내 손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바지를 벗기고, 아무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힘이 너무너무 세서 꼼짝할 수가 없었어. 그렇다. 그들은 힘이 세다는 것이 나에게 평생 각인된 첫 이성의 차이에 대한 배움이었다.  힘이 너무 세다는 것. 막판에 어떤 순간이 왔을 때, 힘으로는 절대로 남자를 당할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멋있는 남자라 하더라도 그의 욕망이 시키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힘으로 강간할 수도 있다는 교훈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신뢰적 인간관계 형성을 취약하게 한다. 힘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세상 어디에서곤 만연되어 있다. 그리고 그 힘의 논리 앞에서 꼼짝 달싹할 수 없는 위치에 서 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어른은 아이들보다 힘이 너무너무 세다. 남성은 여성보다 힘이 너무너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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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5 2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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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6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사의 회전 - 헨리 제임스 장편소설 열린책들 세계문학 192
헨리 제임스 지음, 이승은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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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스퀘어>를 재미있게 읽어서, 큰 기대를 가지고 읽었는데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달랐다기 보다는, 문장적으로나 전체 스토리 구조적으로나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개별 문장의 불가해적인 부분은 아마도 번역투의 거친 문장 때문에 문맥을 알아차리가 어려운 부분이었을 것 같은데, 원문 자체가 애초에 쉽게 번역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을테니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내용적으로 뭐가 뭔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가장 먼저 의문이 드는 것은 주인공인 가정교사의 정신이 온전한가 하는 것이다.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고, 액자 바깥의 이야기 도입에서는 더글라스라는 사내가 난로 앞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자기가 엄청 무서운 얘기가 있는데 귀신들과 아이들 둘이 연관되어 있으니 무서운 이야기에 나사를 두 번 조여주는 효과가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해달라고 해달라고 하니까, 아 그 얘기는 집 서랍에 글로 되어 있는데, 원하면 그걸 하인에게 가져오게 하겠다고 하고, 다음 날 뻥치고 있네 하던 사람들 일부는 가고 남아있는 액자 바깥 화자에게 그 서랍속에 글을 읽어주는걸로 시작된다. 쓸데없이 프레임 속과 프레임 바깥의 인물은 아무 관련도 없는데 왜 이런 구조를 사용했을까 의문이 들어서 다 읽고 나중에 뒤적뒤적 살펴보니 새로운 사실을 상상할 수 있었는데, 이 파트가 무섭다. 그렇다면 이건 스포가 되니까, 일단 뒤로 뺀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아이들의 보호자인 삼촌에게 반한 그녀는 플로라에게도 매료되어 아직 만나보지도 않은 아이의 오빠 마일스가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확신하는데, 따라서 아이를 만나기도 전에 열어보게 된 퇴학통지서는 부당한 것이라는 확신을 그로즈 부인에게서 듣고 싶어한다. 아이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자기 식대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마일스가 집에 온 이후에도 그녀에게는 마일스가 순수하고 신선하고 다정한 아이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보호자인 삼촌은 가정교사에게 아이들 문제로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고 알아서 처리하는 조건으로 월급을 많이 주었기 때문에, 퇴학 건은 가정교사가 가장 먼저 처리해야 일순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이들과의 달콤한 관계에 빠져, 그 일을 뒤로 미루는데 아이 역시, 퇴학 건에 대해 새 가정교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시간을 보낸다. 자신이 맡게 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퇴학당했었다면 그것도 처음 다루게 되었으니만큼 그로즈 부인에게 아이의 어떤 행동에게서 나쁜 행동을 보았는지 캐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로즈 부인이 본 아이의 나쁜 행동이라는 것도 결국은 엉뚱하게 아이의 순수한 장난기로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이후 더욱 이상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데, 그것은 더글라스가 미리 예고했던 대로, 집안 구석구석에서 귀신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귀신의 정체는 집에서 일했던 하인 퀸트와 그 하인의 애인이었던 전 가정교사 제셀이다. 그런데 이 아름답고 순진하지만 어딘지 불한하고 엉뚱한 가정교사는 그 귀신들이 아무때나 불쑥 불쑥 나타나서는 아이들을 조정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러한 믿음은 단지 그녀의 생각 속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하지만, 귀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서는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을 포함한다. 어린 플로라가 갑자기 없어지자 가정교사는 제셀 귀신의 짓이라 확신하여 연못 건너편 제셀 무덤가에 아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 하인 퀸트의 생김새를 알지 못했음에도 그의 모습을 그로즈 부인에게 묘사하는 것, 가정교사가 확신하듯 마일스를 조정하던 귀신이 사라지자 마일스가 가정교사의 품안에서 죽는 일 등이 그렇다.

 

그로즈 부인의 설명에 의하면 퀸트와 제셀은 살아 생전 서로 남녀 관계를 맺어왔는데, 가정교사는 이 관계 자체를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신분이 낮은 퀸트와 제셀이 어울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결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또한 아이들이 한명은 제셀 한명은 퀸트에게 맡겨져 나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죽고 나서 그 아이들을 조정하여 일을 꾸미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녀가 이전 가정교사와 하인, 그리고 아이들과의 관계를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하인이라는 신분, 그리고 그로즈 부인이 언급한 바람둥이 기질 같은 것으다. 설사 귀신이 되었다 한들 죽어서 어떤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왜 아이들 곁을 배회하면서 악의 기운을 퍼뜨린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이 점에 대해서는 가정교사가 목사의 딸이라는 점, 그래서 악령의 존재를 믿을지도 모른다고 해석할 수 있겠으니, 만일 정신착란증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이 자신에게 존경을 품고 착하고 귀엽게 군다는 가정교사의 말과는 달리, 궁극적으로는 가정교사를 보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심리가 그녀의 집착적인 행동을 차차 눈치채면서 거부감이 생겼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반면, 만일 그 귀신들의 존재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에게서 악령을 떼어놓으려는 것을 방해하는 가정교사를 퀸트와 제셀이 아이들을 조정하여 밀어내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스포라고 얘기했던 부분인 액자 바깥으로 돌아가 보자. 그것은 어쩌면 이야기 속의 남자 아이 마일스가 글을 읽어주는 더글라스와 동일인물일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다. 일단 마일스와 가정교사의 나이를 따져보니 이야기는 그녀가 스무살이었을 때 이야기이고 그 때 마일스가 채 10살이 안되었다고 하니 둘의 나이 차이가 10살 난다는 것인데, 액자 바깥에서 더글러스가 이야기의 화자와 자신이 10살 차이나는 연상이라고 밝힌다. 또한 액자 바깥의 화자는 그 글을 쓴 가정교사가 자신의 누이의 가정교사였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데,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그녀는 가정교사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가정교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방학때 찾아왔을 때 그녀와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하며 더없이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점도 동일인물임을 설명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일스는 죽었기 때문에 더글라스가 만일 이야기속의 주인공 마일스라면 더글라스는 귀신이 되는 게 된다. 더글라스가 처음에 엄청나게 무서운 이야기라고 했는데 사실 읽을 때는 가정교사가 뭔가 좀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이상한 것 말고는 귀신들이 뭐 피를 뚝뚝 흘리며 너잡아먹지 하며 무섭게 묘사되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진짜 무서우려면 이야기되지 않은 곳에서 무서움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만일 더글라스가 만일 귀신이라면 이게 진짜 무서운 이유가 된다. 가장 중요한 단서로 액자의 존재를 들 수 있다. 이 액자는 가정교사가 누구냐를 설명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더글라스의 존재가 필요없어진다. 더글라스의 역할은 단지 자신이 좋아했던 10세 많은 여인이 자신에게 준 글을 읽어주기만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 등장한 난로가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또다른 액자 밖의 화자들이 그렇게 쓸데없이 한 겹 둘러싸고 있을 이유가 없어보인다.

 

여기까지가 내 생각이고,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발표되면서 더욱 그녀의 (삼촌에 대한) 억압된 욕망과 불안한 심리를 재료로 다각적인 방향으로 해석과 비평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어쨌든 수도 없이 많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작품 자체의 모호하고도 불확실한 성격 때문인 것인데, 이러한 방식의 책들이 요즘에야 널리고 널렸지만, 당시에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매우 혁명적인 시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식스센스 급의 반전이 가능한 것도 이러한 개척자의 시도가 있어서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공감돼서 퍼온 것이 아니라, 이게 뭔 뜻인가 이렇게 밖에는 번역이 안되는가 의아해서, 영문본을 찾아보려고 표시해둔 곳인데, 영문본PDF는 받아놓고 찾아 보다 말았다. (번역이야 알아서 잘 했겠지 싶은데, 내 머리가 잘 안돌아가는 거 같다)


나의 태도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과시하듯 돌아다녔다. 194/241

 

그러나 그렇게 돌아다님으로써, 그 아이가 전날 플로라를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아 나를 속이고 우롱함으로써 우리 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를 더욱 공공연히 알리게 되었다. 194/241 (몬소리야 망이 안되자나)

 

이후 다가올 고뇌를 예고하는 불꽃으로 우리의 흐릿한 눈이 이미 타오르고 있는 광경이 지금도 보이는 듯하므로 205/241

 

늘 너무 놀란 상태로 지낸다는 것을 이유로 우리 두 사람은 전보다 더 친밀해졌다. 35/241

 

몇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생생한 모습을 다시 재현할 수 있는 당혹스러운 환영이 나타났다. 41/241 (즉몇년 뒤에 썼다)

 

내가 본 것을 받아들이는 사이, 마치 주변 모든 광경은 죽음의 빛을 띠고 있는 듯했다. 4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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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9 2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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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9 2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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