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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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만물에 깃든 영혼과 그것을 움직이는 신들의 힘과 신이 부여한 운명을 믿었다. 트로이아인들의 운명은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에르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향해 황금사과를 던지던 순간,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이렇게 가장 아름다운 세 명의 신들이 서로 각자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통치하고 있는 범위 내의 것들로 한정지어진다. 헤라가 아름다운 여인 대신 아시아의 통치권을 약속한 것도, 아프로디테가 전쟁에서의 승리 대신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약속한 것도, 아테나가 아름다운 여인 대신 전쟁에서의 승리를 약속한 것도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이 그들이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멍청한 파리스에게 그런 걸 고르라고 한 여신들도 멍청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파리스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탐욕이 불러올 역사적 비극을 알지 못했다. 선택받지 못한 두 여신 헬라와 아테네의 힘은 막강하다. 


일리아스가 트로이아 전쟁을 다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실제로 800쪽 짜리 이 두꺼운 서사시의 내용은 트로이아 전쟁의 막바지 약 50일 정도 되는 시간을 다룬다. 그 전까지도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겠지만, 일리아스의 시작과 함께 전개되는 마지막 전투의 양상은 신들의 개입과, 신들의 편갈림, 그리고 그리스 연합군의 수장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사이의 불화로 인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신들은 패가 갈렸다. 트로이아인의 편에는 아프로디테와 태양의 신 아폴론,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있고, 그리스 연합군 편에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 전쟁의 신 아테나, 그리고 포세이돈과 테티스 등이 있다.


전쟁은 신들에 의해 이미 결정된 운명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신들 역시 전쟁의 일부가 된다. 분노하고 질투하고 계략을 꾸미고 편을 가르고 하는 모든 인간적인 본성을 가진 신들이다. 하지만 누가 주인공인가, 그들의 존재 의미는 인간들의 삶을 지배하는 데 있다. 인간들이 자신을 숭배하고 재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려야 그들의 삶은 의미가 생긴다. 인간이 인간 자신에게 관심이 있고 구복이라는 불손한 목적으로 신을 숭배하는 것과는 달리 신들에게 인간은 자신들의 힘으로 조정가능한 세계이면서 신들의 세계를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리아스 서사시가 시작되기 전의 일이지만, 트로이아 전쟁의 발단은 왕의 아내를 납치했기 때문이었다. 아프로디테가 약속한 '가장 아름다운 여자'란 다름아닌 남의 아내였는데, 간덩이가 부은 파리스는 좋다고 여신의 계획대로 헬레네를 납치해냈던 것이다. 거대 서사시의 전개 역시 '아름다운 여성'이 발단이 된다. 가장 용맹하고 위대한 전사인 아킬레우스의 여자를 아가멤논이 데려가 버리자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간의 갈등이 연합군을 분열시킨 것이다. 그는 자신이 데리고온 군대를 움직이지 않고 함선에 틀어박힌다.


연합군의 수장인 아가멤논은 트로이아에서 노획한 크리세이스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아폴론의 사제인 크리세이스의 아버지가 몸값을 지불하고 딸을 데려갈 수 있도록 부탁한다. 아가멤논이 크리세이스를 내어주길 거부하자, 아폴론은 그를 위해 그리스 연합군에게 흑사병을 내린다. 회의 끝에 소녀를 돌려주기로 결정되자 아가멤논은 길길이 날뛰며 왜 자기 것만 빼앗겨야 하느냐 그럼 니꺼라도 내놔라 하면서 아킬레우스가 데리고 있던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간다.


소녀 브리세이스는 전리품에 지나지 않는다. 아가멤논이 빼앗긴 크리세이스 역시 전리품이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전쟁의 댓가로 선물로 받은 이 여인들에 대한 애정이나 사랑이 아니라, 명예를 더럽혔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전리품을 사이에 두고 그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에 관심이 많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혁혁한 전공으로 인해 수많은 전리품을 아가멤논에게 안기고, 그 전공의 하나로 자신이 직접 노획했으며 선물받은 그 소녀를 빼앗긴 것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모욕감과 비애감을 느낀다. 더욱이 아킬레우스는 한 때 제우스의 아내가 될 뻔 했던 여신 테티스의 아들로 신의 아들이라는 대단한 가문을 등에 엎고 있으면서도 필멸하는 인간의 씨를 받아 태어났고, 그뿐만 아니라 명이 짧은 운명을 가졌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슬퍼하는 아들을 위해 제우스에게 아들의 명예를 복구시켜달라고 호소하고, 제우스는 아가멤논을 벌주기로 작정을 하고, 트로이아의 편에 선다. 즉, 제우스의 계획은 아킬레우스가 빠진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엄청난 피값을 치르고 트로이아에게 쫓겨 아킬레우스에게 빌며 제발 전쟁을 도와달라고 호소하게 되기를 원한 것이다. 어마무시한 힘을 얻은 헥토르를 선두로 트로이아 군은 벌판으로 나와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전세는 점점 트로이아 편으로 흐른다.


그 과정에서 트로이아를 증오하는 헤라와 아테나를 비롯한 그리스 편에 선 신들은 제우스를 속여가며, 전쟁에 가담하여 제우스의 계획을 방해한다. 때로 용기를 불어넣고 때로 안개와 어둠 등의 힘으로 때로 물리적인 힘을 이용하여, 또 때로는 사람의 모습을 빌어 직접 행동을 지시하면서 신들이 인간의 전쟁에 깊숙히 개입되면서, 트로이아 진영의 신들 역시 자신들의 능력을 이용하여 거듦으로써 전쟁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동이 속으로 마구 흐른다. 화가 난 제우스는 이렇게 신들의 개입에 제동을 걸어 금지시키지만, 그를 속이려는 헤라의 계략이 판치고 조절 불가능해지자, 마침내 더이상 개입했다가는 엄벌을 처한다는 제우스의 강한 명령을 듣고서야 한쪽으로 물러선다.


헥토르의 지휘를 받은 트로이아인들이 그리스 대군을 모두 물리치고 가장 강력한 장군들인 아가멤논, 디오메데스, 오디스에게까지 부상을 입히고 함선 정박지까지 몰아가 결국 함선에 불을 붙이는 상황에 까지 이른다. 이 꼴을 본 아킬레우스의 전우(혹은 애인?),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를 설득하여 자신이 직접 그의 무장을 빌려 입고 트로이아군을 물리치지만, 결국 헥토르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이를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오열하며, 전쟁에 가담한다.


인간이 인간대로 창으로 찌르고 돌로 치고 칼로 베는 참혹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신들 역시 자신이 편들고 있는 쪽을 위해 온갖 계략과 술수를 마다하지 않는다. 헤라가 제우스를 유혹하여 동침한 후 잠의 신과 짜고 잠들게 하여 그 틈에 제우스와 서열상으로는 동급인 포세이돈을 끌어들이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후에 제우스는 이 일을 알고 불호령을 내리는 것이 한 예이다. 이렇게 신들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의 결정은 서사히가 시작되기 전 세 여신의 질투와 경쟁에서부터 이미 그 시작의 기반을 두고 있다.


필멸의 인간과 불멸의 신들, 불멸의 신들은 멀하지 않는 자신들에게 전쟁이 어떤 의미도 주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힘의 균형을 찾기 위해, 필멸의 인간을 이용한다. 인간들은 신들에 의해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전쟁 역시 신들의 뜻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을 이해하고 또한 의지하고 있다.


일리아스는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문학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이자, 유럽인들의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원점이다, 서구의 문학이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저자로 알려져 있는 호메로스는 실제로 '호메로스'라는 이름으로 실존했던 인물인지 여러 명의 작가들의 합작품인지 혹은 노래하는 음유시인의 시를 누군가 옮겨적은 것인지 알 수 없다. 고대에는 그가 기원전 8세기 경에 실존했었다고 믿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오늘날 여러 문학의 형태로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의 원형이 당대의 인간의 이야기들이 신들의 이야기와 섞여져서 존재하고 있으며, 당대의 사람들이 신과 더불어 살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오늘날과는 달리 고대 그리스인들의 의식속에는, 그리스 신화속의 여러 신들이 한치의 의심도 없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운명마저도 이미 신들의 이해 관계 속에서 정해져 있다는 사실마저도 한치의 저항도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증명하느냐 증명할 수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든 일상과 행동, 그리고 의식의 저변에 신들의 존재가 함께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신들을 믿지 않지만, 과거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다. 누적된 시간의 끝에서 오늘이 있으며,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 한 오늘도 내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때 있었던 것이 지금 사라졌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지금 우리에게 없지만, 우리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는 그 모든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와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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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 - 5천만 경제 호구를 위한
선대인 지음, 오종철 기획 / 다산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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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장 고금리 시대에는 어디에 투자하든 무슨 장사를 하든 대체로 수익이 높았다. 부모님세대들이 땅이든 집이든 사주면 오른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계신 건 그 때문이다. 어른들의 경험이 현재와 미래에도 통한다고 믿다가는 파산할 지 모른다. 대신 경제를 알자. 알고 싶지 않지만 거지꼴을 면하지 않으려면 읽어야 한다.



금리
돈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금리가 높은 곳으로 흐른다 2015 년을 기준으로 외국인 단기투자 자금은 650조 원 규모다 gdp 총액 절반 가량인 엄청난 규모다 .외국인 전체 투자자금은 1100 조 원을 넘는다. 경제규모가 작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따라서 올릴 수밖에 없다. 미국이 기준 금리를 올리면 한국에 있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 나 가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금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다. 트럼프는 기준 금리를 계속 올릴 태세고 그 경우 그동안 미국의 양적완화로 인해 국내에 들어와 있던 수많은 외국인 자금들이 다시 빠져 나갈 것이다. 이는 주식 시장과 주택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업이 영업을 해서 겨우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만큼 이자보상배율이 1이 안되는 기업들이 꽤 많다.

환율
환율은 미 국 달러 대비 우리나라 화폐의 가치를 나타낸다.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한국 원화 환율은 상승한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실시하면 원 달러 환율이 떨어진다. 우리나라의 금리가 올라가면 안 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환율이 떨어지게 된다. 2011년 이후 삼성전자가 거둔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 25% 정도는 기술력이 아닌 단순히 환율효과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일반 소비자들은 수입 물가 상승에서 기인한 장바구니 물가가 올라 더욱 힘겹게 살게 되었다. 대기업이지 환율 정책으로 원하지 않아도 1 2만원씩 수출 대기업에게 보조금을 지원해주고 있는 셈이다. 다수의 배가 고픈 이유는 누군가가 조금씩 다수의 몫을 빼가고 있기 때문인데 어떻게 빼가고 있었는지는 경제가 설명한다.

금융위기
트럼프 행정부의 금리 정책에 따른 영향으로 한국의 제 2의 금융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는데, 2008년도와는 다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제시된 시나리오는 이렇다. 외환 보유고는 훨씬 높아졌고, 단기부채도 많이 줄었다는 긍정적인 상황도 있지만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높고 (자본 대비 기업 부채의 비율이 200%가 넘는 기업이 전체 대기업집단의 40%에 육박, 800%가 넘는 대기업 일도 꽤 존재. 조선 해운 철강 등 국내 주력 산업군의 기업 재무 상태와 경쟁력이 크게 악화된 상황). 이런상황에서 트럼프 정부가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동시에 추진한다면 국채발생으로 이어져 국채 가격 하락(국채 금리 상승)과 이로 인한 물가 상승 => 기준 금리 인상이르 이어지고 이는 다시 달러 강세로 인한 급격한 미달러 유출을 막기 위한 국내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그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금리만 믿고 버티던 기업들은 줄도산을 피할 수 없고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의 급격한 유출과 급락으로 다시 이어지고 서민들 역시 가계 대출 이자의 부담과 부동산 하락으로 인한 고통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이는 단지 최악의 시나리오일 뿐이지만 낮은 금리를 이용하여 대출을 늘리고 과감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할 일이다.

책은 일반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용어로 많은 인포그래픽스가 동원되어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총 12상으로 되어 있고 각각의 장은 금리, 환율, 주식, 부동산, 소비, 노후, 세금과 복지, 기술과 일자리, 인구, 한국 경제, 중국 경제, 세계경제로 나누어 져 있다. 각 장은 소재 목 들 만 읽어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저성장 궤도에 진입했지만 일부 수출 대기업인들만을 위한 경제 정책에 보이지 않는 희생을 치르며 땀흘리는 서민들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가 여기에 적혀있다. 책임없이 여기에 투자해라 저기에 투자해라 라고 부축이거나 나는 뭘해 몇억 벌었다라는 식의 바극적 제목을 가진 얇팍한 상술의 경제서들에 너무 많아 책이 오히려 공해가 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국내 현실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 책을 제대로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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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데드 다루는 법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2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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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필력의 작가라면 믿을 수 있는 신간이겠군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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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 꼿꼿하고 당당한 털의 역사 사소한 이야기
커트 스텐 지음, 하인해 옮김 / Mid(엠아이디)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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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 까마득한 생명의 탄생과 진화 과정 속에서 인간으로 도달했을 때, 살아가는데 매우 도움이 될만한 기능들을 잃는 케이스가 종종 있는데, 털이 그 한 예가 아닐까 생각했다. 털이 없으니 온갖 동물을 잡아서 털옷을 입고, 그 동물들은 멸종시키지 않았는가. 왜 필요한 털을 진화 과정 속에서 떨어뜨려놓고 머리카락과 몇몇 털들만 남겨놓았을까 궁금했다. 물고기가 숨 한 번 크게 쉬고 물밖에 나와서 생활하고 들어가고 하기 시작하던 시절, 그러니까 물밖으로 나오던 시절엔 털이 없었기에 양서류들은 털이 없는 것일텐데, 포유류로 진화하면서 만들었던 털을 왜 인간은 다시 없앴을까, 이 추운 겨울을 털들이 있었다면 난방비 걱정 없이 훨씬 따뜻하게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진화과정에서 직립보행을 선택한 인간이 멀리 보는 것에 대한 대가로 요통을 선물로 받았다면 추운 겨울에 개고생하는 댓가로 주어진 것은 뭔가 굉장히 큰 이점일 것이다. 


털없는 인간의 진화과정을 이해하려면 피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최초의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로 진화하고, 액체로 된 환경을 벗어나 육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보호장치가 필요했는데, 그 보호장치는 달팽이처럼 외피세포를 딱딱하게 만드는 경우와 내피 세포가 진화하여 척추를 포함한 골격으로 진화한 두 경우로 나뉜다. 최초의 척추가 원시 어류에서 발견된 것은 5억년 전. 그리고 이후 1억년이 지나 바다를 떠난 척추 동물이 육지로 진출했는데, 이 때 피부 구조가 단일 세포층에서 다중 세포층으로 바뀐다. 털의 구조는 다중 세포층에서만 가능하다. 


동물이 원시 바다를 떠나 육지에 도달했을 때 피부는 극단적 환경을 견뎌기 위해 표피 일부가 변화하며 보호막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어류와 파충류의 표피는 돌출되면서 비늘고 진화했고, 조류와 포유류는 돌출된 부분이 가느다란 섬유형태로 자라 깃털과 털로 각각 진화했다.  파충류와 같은 냉혈동물들은 스스로 열을 낼 수 없으므로 태양에서 나오는 자연 복사 에너지를 받아야 하므로 주변 열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털없이 진화했다. 신진대사를 통해 스스로 열을 낼 수 있었던 포유류는 수십억년동안 진화해 단열 효과가 뛰어난 털외투를 입게 된었다.


빽빽하게 덮힌 털은 열 손실을 최소화하는데 적합하지만, 반대로 체온이 외부로 방출되는 것을 막기에 더운 기후에 적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온도 상승에 매우 민감한 큰 뇌를 지닌 인간은 체온을 37도로 유지해야 했기에 털외투를 벗어야 했다는 게, 인간이 털이 없게 된 것에 대한 진화적인 설명이다. 40도에서 열사병이 42도에서 뇌사가 일어나므로, 빠르게 열을 식히기 위해서는 털이 없는 것이 진화상으로 유리했다는 것이다. 


진화하면서 다 없어지고 남아 있는 털인 머리카락은 인간에게 기능적 의미 이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매일 머리를 씻고 말리고 세팅하는 시간과 이발과 미용 산업의 규모를 생각해본다면 그렇다. 헤어 스타일은 사회적인 언어로서도 기능한다. 자주, 젊은이들은 반항의 상징으로 시대의 흐름과 다른 머리 모양을 만들곤 한다. 짧은 머리가 그 사회를 대표할 때 반항하는 젊은이들은 치렁치릉 머리를 길렀고, 긴 머리가 정숙한 여성의 상징일 때 틀을 바꾸고자 하는 여성들은 짧게 머리를 잘랐다. 명이 망했을 때 변발을 강요당한 한족은 저항하다 자살하기도 했고, 또다시 청이 멸망할 때 단발령이 내려져 변발을 잘라야 했던 그들은 저항하다 자살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근대가 지난 박정희 정권때조차 장발과 짧은 치마를 금하고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자르러 돌아다니던 경찰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이 책은 털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털의 진화적 생물학적 특징 뿐만 아니라, 인류가 털을 다루어온 역사, 그 속에서 털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여러가지 주제를 통해 담아낸다. 털이 자라는 방식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와 머리카락에 관련된 역사와 문화적 사실들, 거기에 더 나아가서 동물의 털을 이용하게 된 사실에 기반한 양모 산업과 기타 털코트 산업에 대한 이야기거리 등 재미있는 이야기거리가 풍부하다. 헤어와 관련된 상식들은 심지어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큐티클의 구조를 잘 이해하면 퍼머와 염색 그리고 가발에 이르기까지 매일 관리하는 머리카락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왜 퍼머와 염색을 하면 머리가 푸석거려지는지 알게 되었으며, 염색과 퍼머의 개략적인 원리까지 이해할 수 있다. 동양인과 서양인들,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의 머리카락 직모와 곱슬머리의 원리, 그리고 머리카락 색깔에 대한 원인 역시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가발을 위한 여러가지 혁신적인 인공모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자연 머리카락만큼 자연스러운  것은 개발하지 못했으며, 머리카락이 어떤 식으로 유통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금발이 수요가 많은 데 비해 공급이 적어 60cm에 100달러나 하고 아시안 머리카락이나 라틴게의 검은 직모는 20달러라고 한다. 금발이 수요가 많은 까닭은 금발을 선호하는 이유도 있지만, 금발은 다른 색으로 손상 없이 비교적 쉽게 바꿀 수 있고, 흑모는 탈색을 해야 색깔 변형이 가능한데, 그렇게 되면 큐티클 층이 파괴되어 머리결 손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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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2-12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읽고 있는 책입니다. 책 내용을 잘 소개해주셨네요ㅎ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CREBBP 2017-02-12 19:39   좋아요 1 | URL
책 내용은 정말 풍부하고 재미있지요. 너무 전문적이지도 않아서 적당한 수준에서 잘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2-13 01:02   좋아요 0 | URL
저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데 역시 내공이 남다르시네요ㅠㅋ
 
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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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도 연결되지 못하고, 물방울처럼 홀로 고립된 존재인 것 같은 고단한 저녁,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위안이다. 날숨과 들숨을 통해 공기를 떠다니는 작은 원자들을 공유하는 그 곳에서 몸을 눕히면 살이 만져지는 사람이 있다면, 설사 그들이 웬수처럼 으르렁거리던 사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따스한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지치고 힘겨울 때 상처받은 영혼을 끌고 돌아갈 곳이, 아파도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고 저녁을 함께 먹을 사람도 없는 반지하 월세방이 아니라는 사실은 얼마나 이기적인 위안인가.


고독과 소외에 단짝처럼 동반하는 친구가 궁핍이다. 결핍은 자주 궁핍에서 비롯된다. 집이 없는 이유, 돌아갈 곳이 없는 까닭은, 실패가 낭패감과 절망 같은 정신적 고통만을 야기해서가 아니다. 최소한의 정신적 만족을 누리기 위한 물리적 환경을 지배하는 가난을 함께 부르기 때문이다. 마마가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불러들인 상처받은 영혼들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산산조각 깨어질 것처럼 위태롭고 연약하다. 마마가 사람들을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부르는 까닭은 자신 역시 그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족도 없이 홀로 늙어가는 노인이지만 그녀에게는 연립주택이 있다. 어두운 시대 그리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는 방법으로 긁어 모아 두었던 두둑한 돈도 있다. 북카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절망을 가슴에 끼고 떠도는 도시 난민들을 불러모아 제공하는 아몬드나무 하우스가 그녀에게 제공하는 것 역시 그들에게 주는 것 못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상처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만,  마마 역시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조카 앞에 털어 놓아야 하는 한많은 사연이 있다. 난파선처럼 출렁이던 한국 현대사를 요리조리 통과하며 약삭빠르게 마마가 누린 것들은 그로 인해 잃은 것들을 상쇄할 수 없다. 가혹한 시대가 야기한 타인들의 개인적 불행을 안아주기로 한 마마의 행동은 죽을 날을 앞둔 마마의, 삶에 대한 회한이기도 하다. 


배우의 전라 연기로 획기적인 작품 연출을 갈망하던 명우는 자극적 연출 효과로 관객은 확보할 수는 있었지만, 명성에 치명적인 금을 그었고, 수익 역시 보잘것 없었다. 여배우로서 잘 나가는 듯해 보이던 여자친구가 이별 선고도 없이 사라져버린 사건은 엎친데 덮친 격이다. 치명적 실패작으로 인해 직업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적 관계까지 잃게 된 명우는 절망을 술에 의지한 채 폐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던 중, 마마의 눈에 띄어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북카페를 맡아 하게 된다. 시큰둥하게 받아들인 명우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제각각 각자의 상처와 결핍을 끌어안고 따로따로 살아가고 있는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입주자들은 조금씩 그에게 보이지 않는 곁을 내어준다. 마마가 떠난 후에도 그들의 말을 들어줄 유일한 사람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빈곤, 가정폭력, 상실, 학교 폭력, 집단 따돌림, 강간피해 등의 피해자들이며 동시에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 걸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결핍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마마의 조카는 반대로 불안정하고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세상을 조소한다. 


아몬드나무 하우스에서 북카페의 책임을 맡은 명우는 술을 완전히 끊지는 못하지만 규칙적인 생활과 카페의 책임이라는 임무를 통해 서서히 사회성을 회복되어간다. 하지만 그를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아몬드나무 하우스 입주자들이다. 명우 자신도 커다란 절망과 상처, 그리고 결핍과 소외를 짊어진 피곤하고 지친 현대인이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마마가 차려주는 식사상에서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식사를 하는 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더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느낌이다. 소설이 빠르고 잘 읽히는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것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미약해보이는 화자로서, 그리고 어떤 해결자로서의 명우의 역할이 존재한다. 말을 잃은 아이 윤태는 명우를 따라 나서고 말없이 시작된 걷기는 두 사람의 마음이 길을 따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윤태의 비행을 알고, 그의 불행까지 알고 있는 명우는 말을 잃은 아이에게 아무 설명도 요구하지 않고 길상사를 거쳐 도시의 산책을 계속한다. 그 말없는 동행 속에서 이제껏 꽁꽁 싸매두고 혼자서만 감당해왔던 그 터질 듯한 감정이 울음으로 폭발될 때, 휴 하고 작은 안도감이 느껴졌다. 마마의 죽음 전에 밝혀져야 했던 소설의 큰 축이었던, 충격적 출생의 비밀도 명우의 개입으로 밝혀진다. 


어쩌면 이 소설은 연출가 명우의 성장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입주자들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명우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자기 앞에 떨어진 불등보다 더욱 절박한 사연들을 끌어안고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채 말을 잃은 고독한 청춘들을 위해 그닥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에도 자신이 그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단지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깨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삶이 덜 불안한 궤도로 방향을 틀 수 있다. 그리 적극적으로 보이지는 않는 명우의 작은 노력은 이들을 어렵게 이어주던 마마의 죽음이 가져올 뿔뿔이 흩어져 각자 돌아설 도시 난민의 길을 회피하고 다시 서로에게 의지가 되게 한다. 하지만 풀리지 않던 의문 '그녀가 나를 왜 떠났을까'에 대한 잔인한 대답이 감당해야 할 몫은 여전히 명우의 몫이다. 그럴까. 내민 손을 잡으려 주저주저하던 윤정을 떠나 지나간 옛사랑의 의문을 풀던 시간동안 윤정을 어지럽히던 타인과 타인과의 틈, 그리고 간격.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따로 따로 같이 있는 사람들을 품은 도시 풍경은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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