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 꼿꼿하고 당당한 털의 역사 사소한 이야기
커트 스텐 지음, 하인해 옮김 / Mid(엠아이디)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저 까마득한 생명의 탄생과 진화 과정 속에서 인간으로 도달했을 때, 살아가는데 매우 도움이 될만한 기능들을 잃는 케이스가 종종 있는데, 털이 그 한 예가 아닐까 생각했다. 털이 없으니 온갖 동물을 잡아서 털옷을 입고, 그 동물들은 멸종시키지 않았는가. 왜 필요한 털을 진화 과정 속에서 떨어뜨려놓고 머리카락과 몇몇 털들만 남겨놓았을까 궁금했다. 물고기가 숨 한 번 크게 쉬고 물밖에 나와서 생활하고 들어가고 하기 시작하던 시절, 그러니까 물밖으로 나오던 시절엔 털이 없었기에 양서류들은 털이 없는 것일텐데, 포유류로 진화하면서 만들었던 털을 왜 인간은 다시 없앴을까, 이 추운 겨울을 털들이 있었다면 난방비 걱정 없이 훨씬 따뜻하게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진화과정에서 직립보행을 선택한 인간이 멀리 보는 것에 대한 대가로 요통을 선물로 받았다면 추운 겨울에 개고생하는 댓가로 주어진 것은 뭔가 굉장히 큰 이점일 것이다. 


털없는 인간의 진화과정을 이해하려면 피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최초의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로 진화하고, 액체로 된 환경을 벗어나 육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보호장치가 필요했는데, 그 보호장치는 달팽이처럼 외피세포를 딱딱하게 만드는 경우와 내피 세포가 진화하여 척추를 포함한 골격으로 진화한 두 경우로 나뉜다. 최초의 척추가 원시 어류에서 발견된 것은 5억년 전. 그리고 이후 1억년이 지나 바다를 떠난 척추 동물이 육지로 진출했는데, 이 때 피부 구조가 단일 세포층에서 다중 세포층으로 바뀐다. 털의 구조는 다중 세포층에서만 가능하다. 


동물이 원시 바다를 떠나 육지에 도달했을 때 피부는 극단적 환경을 견뎌기 위해 표피 일부가 변화하며 보호막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어류와 파충류의 표피는 돌출되면서 비늘고 진화했고, 조류와 포유류는 돌출된 부분이 가느다란 섬유형태로 자라 깃털과 털로 각각 진화했다.  파충류와 같은 냉혈동물들은 스스로 열을 낼 수 없으므로 태양에서 나오는 자연 복사 에너지를 받아야 하므로 주변 열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털없이 진화했다. 신진대사를 통해 스스로 열을 낼 수 있었던 포유류는 수십억년동안 진화해 단열 효과가 뛰어난 털외투를 입게 된었다.


빽빽하게 덮힌 털은 열 손실을 최소화하는데 적합하지만, 반대로 체온이 외부로 방출되는 것을 막기에 더운 기후에 적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온도 상승에 매우 민감한 큰 뇌를 지닌 인간은 체온을 37도로 유지해야 했기에 털외투를 벗어야 했다는 게, 인간이 털이 없게 된 것에 대한 진화적인 설명이다. 40도에서 열사병이 42도에서 뇌사가 일어나므로, 빠르게 열을 식히기 위해서는 털이 없는 것이 진화상으로 유리했다는 것이다. 


진화하면서 다 없어지고 남아 있는 털인 머리카락은 인간에게 기능적 의미 이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매일 머리를 씻고 말리고 세팅하는 시간과 이발과 미용 산업의 규모를 생각해본다면 그렇다. 헤어 스타일은 사회적인 언어로서도 기능한다. 자주, 젊은이들은 반항의 상징으로 시대의 흐름과 다른 머리 모양을 만들곤 한다. 짧은 머리가 그 사회를 대표할 때 반항하는 젊은이들은 치렁치릉 머리를 길렀고, 긴 머리가 정숙한 여성의 상징일 때 틀을 바꾸고자 하는 여성들은 짧게 머리를 잘랐다. 명이 망했을 때 변발을 강요당한 한족은 저항하다 자살하기도 했고, 또다시 청이 멸망할 때 단발령이 내려져 변발을 잘라야 했던 그들은 저항하다 자살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근대가 지난 박정희 정권때조차 장발과 짧은 치마를 금하고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자르러 돌아다니던 경찰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이 책은 털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털의 진화적 생물학적 특징 뿐만 아니라, 인류가 털을 다루어온 역사, 그 속에서 털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여러가지 주제를 통해 담아낸다. 털이 자라는 방식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와 머리카락에 관련된 역사와 문화적 사실들, 거기에 더 나아가서 동물의 털을 이용하게 된 사실에 기반한 양모 산업과 기타 털코트 산업에 대한 이야기거리 등 재미있는 이야기거리가 풍부하다. 헤어와 관련된 상식들은 심지어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큐티클의 구조를 잘 이해하면 퍼머와 염색 그리고 가발에 이르기까지 매일 관리하는 머리카락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왜 퍼머와 염색을 하면 머리가 푸석거려지는지 알게 되었으며, 염색과 퍼머의 개략적인 원리까지 이해할 수 있다. 동양인과 서양인들,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의 머리카락 직모와 곱슬머리의 원리, 그리고 머리카락 색깔에 대한 원인 역시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가발을 위한 여러가지 혁신적인 인공모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자연 머리카락만큼 자연스러운  것은 개발하지 못했으며, 머리카락이 어떤 식으로 유통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금발이 수요가 많은 데 비해 공급이 적어 60cm에 100달러나 하고 아시안 머리카락이나 라틴게의 검은 직모는 20달러라고 한다. 금발이 수요가 많은 까닭은 금발을 선호하는 이유도 있지만, 금발은 다른 색으로 손상 없이 비교적 쉽게 바꿀 수 있고, 흑모는 탈색을 해야 색깔 변형이 가능한데, 그렇게 되면 큐티클 층이 파괴되어 머리결 손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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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2-12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읽고 있는 책입니다. 책 내용을 잘 소개해주셨네요ㅎ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CREBBP 2017-02-12 19:39   좋아요 1 | URL
책 내용은 정말 풍부하고 재미있지요. 너무 전문적이지도 않아서 적당한 수준에서 잘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2-13 01:02   좋아요 0 | URL
저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데 역시 내공이 남다르시네요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