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르고 윈치 - Largo W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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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부터 도망하고자 했지만 돈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부자의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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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2주

난해하고 복잡한 액션, 정말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까지 끼었다면 정말 지겹지 않아요? 트랜스포머 2탄이 나왔을 때 별 내용은 없었지만 화려한 액션으로 대히트를 쳤지요. 700백만 이상의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는 것은 액션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큰 지 알 것 같네요.  

그래서 제가 영화 제목들을 보니까 액션이 살아 있을 것 같은 두 편의 영화가 눈에 확 띕니다. 우선 지아이죠가 눈에 띄고 또 하나는 라르고 윈치 입니다.  

 1.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2009)  



제목부터 2부 만들 것같은 분위기가 물씬 나는 전형적인 액션물이죠. 내용은 모르지만 그래도 화려한 액션들이 나올 것 같은 이미지들은 정말 멋집니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세 개입니다. 우선 내가 이 포스트를 쓴 액션, 그리고 멋진 연기자들  


 그리고 한류스타 중 하나이자 미국 스타로 발돋음하고 있는 이병헌입니다.  



그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역시 흥미진진합니다.  

2. 라르고 윈치 

뻔한 구성입니다. 재벌의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잃어버릴 것들을 다시 재탈환하기 위해 벌이는 어느 재벌 2세의 액션 도전기입니다.   

라르고 윈치란 사내의 매력이 이 영화 포인트인데 여성의 감성을 뒤흔들 재력과 매력이 우선이겠죠.



여기에 액션에서 뛰어난 그의 능력?  



그리과 위기에 대처하는 그의 신념 들이 보이네요.  



여름방학도 끝나가는 요즘, 한국 영화가 괴력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외국 영화의 매력 역시 있을 것 같네요.  

무엇보다 편식은 좋을 것 같지 않네요. 한국의 국부 유출이라고 걱정하기 보단 한국 사람들의 영화적 안목이 계속 넓혀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외국 액션물도 많이 봤으면 합니다.  

 # 참 공공의 적 (퍼블릭 에너미) 보셨나요? 무척 기대되는 액션물이자 사회적 성격을 아울러 갖고 있는 영화인데 무척 좋은 영화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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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지옥 - Poss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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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욕은 지역과 시대를 넘어 언제나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자고 있다. 다만 그것이 발현되는 형태는 시간과 공간에 기인해 만들어진 매체의 독특성으로 인해 좀 더 다르고 개성 있게 변할 뿐이다. 그런 매체에 종교가 포함된다.
  신은 언제나 나를 위한 것이다. 우리라는 공동체를 위해 존재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를 위한 것이다. 이런 자기애를 이루어 줄 수 있는 신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존경 받을 존재이다. 그래서 신에 대한 해석은 나를 위한 것이고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기적 역시 자기만을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여야만 한다. 무당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기복종교가 여기에 예외는 아니다. 이런 인식은 오늘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류 보편적인 사실이다.
  [불신지옥]은 그래서 무서운 영화다. 신들린 여자 중학생 한 명을 두고 무당이 나서고 기독교에 함몰된 어머니가 나섰다. 다들 자신의 기준에 맞는 신을 원했을 뿐, 신들려서 행복이 빼앗긴 어린 여자 아이에겐 관심도 없었다. 어린 소녀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할지언정 다른 것에 관심도 없었다. 도리어 신통력이 사라진 그녀를 닥달하거나 당장의 효과를 위해 위험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신에게 원한 것은 신에 대한 경배가 아닌 신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자기 만족이었던 것이다. 나만의, 아니 나만을 위해야 하는 신의 존재, 그것이 바로 [불신지옥]의 진정한 공포다.
  영화는 어두운 곳을 배경으로 했다. 추운 겨울, 인간적 관계가 파괴된 어느 도시의 아파트,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듯한 아파트 실내, 그리고 콜록콜록하면서 힘들게 살고 있는 언니, 희진(남상미), 뒷목의 깊은 상처를 갖고 있는 신들린 여중생 동생 소진(심은경), 그리고 기독교에 맹신만 하는 엄마(김보연), 이들이 사는 공간은 우울과 불안의 공간, 그곳이다. 이웃이라고 불리는 인간관계는 그다지 건강하지 못했다. 싱글들로만 구성된, 따뜻한 인정이 사라진, 탐욕과 열망만 있는 전형적인 도시인의 그들. 우울한 겨울은 단순히 계절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들 주변의 모든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자신들 주변에서 줄 수 없는 불행한 기적이다. 위로 받기엔 더 없이 외롭고 가련한 그들이기에, 열심히 살지만 그 어떤 행복도 마련할 수 없기에, 그들은 탐욕스런 갈망만을 잉태하고 말았을 것이다. 여기에 상대의 가치는 무의미해진다. 나 자신의 가치가 상대의 가치보다 우월하고 우월해야 한다고 느낄 때, 그것은 상대에 대한 폭력도 합리화시킨다. 그것이 영화에선 난 힘들고 외롭다는 기본적 피해의식으로 인해 더욱 파괴적으로 양산된다.
신들린 소녀는 죽는다. 아니 자신들을 위해 존재해야 할 신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녀는 부활한다. 분노한 채.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선 가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지만 인간의 허약함과 본능은 그것들 모두를 부정한다. 그래서 영화에서의 분노한 신의 보복에 따른 비극은 솔직히 비극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동생을 찾기 위해 찾아온 언니는 주변의 참상을 보면서 더욱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공포 속에서 그 주변을 둘러다 보는 또 다른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주변인물들의 탐욕에 눈 먼 자들을 보고 또한 공포스러워한다.
  영화는 정말 무섭다. 저주 받은 신들린 귀신이 무서워서가 아닌 그런 것들에 얽힌 탐욕과 피해, 그리고 파국이 무섭다. 이런 공포의 본질은 바로 우리 자신이 극 중의 이웃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솔직한 마음의 독백을 들어서이다. 인류의 보편적인 본능과 갈망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 한 번 영화에서 독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범주에 나 역시 포함될 수밖에 없음을 솔직히 자인하도록 만든 이 영화는 그래서 더욱 공포스럽고 슬프다. 영화의 밖으로 조금 벗어나면 우린 그것들을 너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차라리 신들린 여자의 심판이 공정한 재판이 될 수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너무 슬픈 영화다.
  영화는 매우 뛰어난 영화다. 남상미의 재발견은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원래 그녀는 뛰어난 배우다. 형사 태환의 류승룡, 엄마 김보연과 괴이한 공포를 자극시킨 심은경 등 역시 원래 뛰어난 배우다. 주변 이웃들 역시 뛰어난 연기파들이다. 우린 그들의 푸닥거리를 즐겁게 볼 뿐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불신지옥]이란 영화가 뛰어난 공포영화란 점이다. 무서운 모습의 피 흘리는 귀신보다 인간의 탐욕을 더욱 공포스런 소재로 발굴한, 작가이자 감독인, 이용주 감독의 발견이야말로 이 영화에서의 가장 큰 수확이다. 또한 [불신지옥]이란 영화가 아마도 한국 공포영화의 하나의 교과서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아마도 공포 영화를 만들 다음 감독들은 [불신지옥]을 넘어야 할 숙제에 직면하게 될 것만 같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음 감독들에겐 정말 공포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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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워즈 - Summer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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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썸머 워즈]엔 두 개의 세상이 공존한다. 미래의 가상공간의 모습을 담은, 아바타로 이루어진 유비쿼터스란 세계가 소개된다. 또 다른 자신이 존재하는 가상공간에서 이 영화는 다른 운영규칙들이 존재하면서도 현실과 똑 같은 가치를 지닌 채 운영되고 있다. 특히 우리들의 소비는 물론 다양한 서비스들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조만간 다가올 가상공간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다. 그곳에서의 인간관계는 현실 속의 누군가를 모른 체 자신이 만든 가상공간의 나를 통해 가상공간의 타인과 접촉하고 서로 생활하며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공간과 본질적으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비현실적 공간으로 느껴지는 곳이 바로 이 영화에서 표현한 현실공간이다. 그곳을 이 영화는 환타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 현실 속에선 역설적으로 도시인들의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도시엔 없는 것들 천국이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인 대가족, 의지가 되는 어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가족애. 이런 것들은 이미 도시 속에 살고 있는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에게도 없는 것들이다. 아마 도시라는 공간이 유달리 크게 성장한 국가나 사회에선 없어 보이는 그런 것들이 이 영화엔 넘친다. 이미 환타지로 치장된 배경을 갖고 있는 이 영화는 도시인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제작됐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현실이 더욱 현실적이지 못한 역설이 존재하는 것이다.
  주인공 캐릭터는 좀 더 현실적이다. 아마 일본적 현실이 투영된 것이지만 한국 사회라고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에반겔리온]이란 영화에서 제시된 자신감 하나 없는 남자 아이, 이에 반해 활동적이고 열렬한 여자, 아마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모습처럼 느껴진다. 자기 주장을 거의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난관을 헤쳐나가기엔 자신감 하나 없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투영된다. 언제나 억눌린 체 책임과 무능력이란 자괴감에 억눌린 남자, 그들을 볼 수 있다. 이것과 대비적으로 여자 주인공은 활동적이고 강하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자못 강하다. 이 둘의 관계는 그러나 재미있게도 고전적이다. 그래도 남자는 여자를 책임지는 것에 결코 자유롭지 못하고 할머니로부터 다짐을 받는 상황까지 보인다. 그래도 과거의 그런 관계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 느껴진 것일까? 아님 이런 모습 역시 환타지의 또 다른 표현일 것처럼 보인다. 어느 여자들 역시 책임지는 남자를 원하는 것은 분명 존재하니까. 그러나 이 영화 뒤편엔 현실이 엄혹하게 존재한다. 
  20대의 모습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별 다를 것도 없다. 드센 여성이 나오는 저편엔 약하고 책임지길 싫어하는 남자가 있다. ‘초식남’의 어원이 일본인데 그것이 한국에 적용해도 문제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일본에서 인기를 끈 한류 드라마에서 나오는 남자 캐릭터가 남성적이란 것은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 남자 역시 이젠 일본남자처럼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여성들이 창출한 말도 안 되는 로맨틱한 남자들 역시 이젠 없어지고 있다. 중국과 일본, 더 나아가 아시아를 석권했던 멋진 남자 캐릭터가 이젠 사라지고 있다. 그런 전형적인 모습을 담은 일본 애니매이션은 사실 우리들의 미래일 것이다. 아니 지금 ‘88만원 세대’는 이미 일본의 그것일지 모른다. 
  영화는 멋지게 문제를 해결한다. 기이하게도 남자는 남성성을 찾고 있고 여성은 중성적인 것보다 여성성을 회복하고 있다. 나만의 독선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난 그렇게 봤다. 그러나 그런 해결책이든 각자의 성의 대한 역할을 자각하든 그것 역시 환타지적인 해결책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우린 중성이란 새로운 성으로 가고 있으며 그것이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일지 모른다.
  도시는 우리들에게 스스로 살기에도 벅찬 정글임이 분명하다. ‘초식남’이든 ‘건어물녀’든 그 어휘에는 책임지느니 혼자 살겠다는 개인적이면서도 도시 속에서 살아남는 현명한 처방이 들어있다. 어쩌면 가족은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보단 불행을 만들어준 제도였는지 모른다. 영화 속에서나 있는 대가족이란 공동체는 이미 사라지고 있으며 설사 존재해도 과거만큼의 따뜻한 감정은 사라지고 있다. 가족이라고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시기가 현재는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모든 이가 갖고 싶어하는 귀여운 인형을 갖고 있다. 비록 비현실적이지만 그래도 그 곳에서 행복하고 싶은 그 무엇이 있다. 역설적이 시각에서 본 영화는 어쩌면 나에게 슬픈 자화상처럼 보였다. 차라리 인류 모두가 멸망하는 [에반겔리온]이 더 현실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경쟁과 냉혹성, 그리고 소외감과 외로움이 제거된 현실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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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 A Mi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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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본능들이 꿈틀거렸다. 돈 때문에, 그리고 복수 때문에, 그리고 살고자 하는 본능 때문에, 어느 이름 모를 장소에서 그들은 괴이하고 위험한 인터넷 방송을 찍고 말았다.
  영화는 시작부터 반전이었다. 10억을 경품으로 하는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 그것이 시작될 때 관객 모두일 뿐만 아니라 영화 속의 참가자들 역시 일종의 낭만을 가진 ‘무한도전’이나 ‘1박 2일’과 같은 방송용 프로그램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재미와 흥미 위주의 그런 방송 정도로만 여겨질 수 있는 우리들의 통념을 영화는 여지없이 깨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꿈꾸고 있는 자연 속의 낭만적인 공간이라 여겨 질만한 멋진 장소, 어느 이름 모를 외딴 섬과 같은 공간. 누구에게는 도심을 벗어난 낭만의 장소일 수도 있었지만 영화에서 설정한 공간은 결코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공간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은 그들에겐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 죄의 심판의 장소였고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장소였다. 이런 응징과 탐욕이 뒤엉킨 곳에서 여덟 명의 참가자들과 두 명의 촬영진들, 이렇게 그들은 미국의 서바이벌 경기를 하기 위해 모였다. 그러나 그들 앞엔 실패와 성공이 곧 죽음과 대박이란 양극단만이 존재하는 경기인 것이 차이였다. 그래서였는지 참가자들은 생존과 승리를 위해 동료애와 불신이 상존하는 공간에 처박히게 된다. 생존을 위해 서로 도와야 하는 기묘한 관계? 그러나 동료애 역시 어떤 점에선 유리처럼 약한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감독의 의도대로 행동했다. 불신과 공포, 그러면서도 얻고자 한 10억은 인간의 가련한 탐욕과 불운을 실험한다. 결국 희생된 자들과 남는 자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남는 자라고 마음이 편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탐욕을 억제하진 않았다. 바로 이게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래, 그런 게 인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런 인간유형은 현대 도시문명이 만들었는지 모른다. 인간관계는 해체된 지 오래고 믿음이나 신뢰야 잘 모르던 사람들이 모인 관계로 쉽게 얻어질 리는 없다. 그나마 그 속에서 사랑이 싹텄어도 결국 쉽게 무너지는 유리성이었을 뿐이다. 이게 머나먼 호주 서해안에서만 있을 법한 사실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한복판에서도 쉽게 일어날 일들이다. 개연성으로는 무척 높은 수준이다.
  인간은 본능을 억제하며 발전했다. 그리고 본성을 이성이 억제해야 한다고 믿어왔고 그래서 교육을 받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쉽게 절제되지 않는 이 본성은 그러나 아직도 도시 속의 인간관계라는 유리성을 여지없이 파괴시킬 수 있는 힘을 언제나 갖고 있다. 어쩌면 이성이나 성숙한 관계 역시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자신을 위한 최선의 방책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성이 도구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성의 가르침을 받기 보다 그것을 수단으로 사용해서 인간적 감성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영화는 몇 가지 단점이 있었다. 극적 효과를 강하게 어필하는 부분이 부족했고 구성에서도 유감인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영화라 느껴졌다. 무엇보다 주제의 강렬함이 느껴진 영화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도, 그리고 그렇게 볼 필요는 없었다. 영화 속엔   인간적 고뇌와 상처, 그리고 그것들을 치유하기엔 문제가 많은 도시가 그 뒤에서 보인다. 그리고 이제 다 알고 있는 인간과 도시의 문제점은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우리들의 연약함이 보인다. 그것들에 우린 얽혔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보인 인간에 대한 냉소적 어조가 마지막에 슬픈 어조로 바뀔 때 극의 반전보다 인간미의 회복이 있었으면 했는데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인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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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icahandbag 2010-07-23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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