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지난 미리보기에서는 이야기가 왜 우리의 삶을 치유할 수 있는지, 그리고 왜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 미리보기에서는 악마와 창의력의 관계를 소개하겠습니다.

1화 보실 분은 다음 링크를 타고 가세요. (링크 : http://goo.gl/1zQExc)​

2화를 읽고 나면 평생 내면의 악마와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싸우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하니까요. 악마도 이기고 인생도 펴고 일타이피, 일거양득군요.^^

그럼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랍니다.

*

이 책에 나오는 '신화'라는 단어는 '이야기'라는 단어로 바꿔서 읽어도 내용 이해에 무리는 없으며, 미리보기로 보여드리는 내용은 도서의 내용을 요약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_문예남 올림


 

하나님은 악이 세상이라는 옷감 속에 엮인 채로 존재하도록 허락했다. 악을 이길 도덕적 능력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인간의 자유와 의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영지주의 철학

 

 


 

 

갈등하는 악마가 

인생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악마 신화와 현대인의 관계가 정말 놀랍다. 1장에서 우리는 1970년대에 진행된 연구를 인용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감소하는데, 악마에 대한 믿음은 증가한다는 점이 연구에서 밝혀졌다.

이 현상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많은 현대인이 삶에 환멸을 느끼고 동료를 불신하며, 무서울 정도로 미래를 불안해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저명한 현대 작가들이 사탄을 주제로 쓴 책들을 자세히 보면, 그 자료가 우리를 압도할 정도다.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헨리 머레이 교수의 <사탄의 성격과 경력>은 악마에 대한 탁월한 연구다. 머레이는 악마를 묘사하기 위해 처음으로 성경 구절을 언급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구약성경 <이사야> 14:12~13]

 

그러고 나서 머레이는 오리게네스를 말한다.

 

교부(고위 성직자) 오리게네스는 <이사야>에서 말하는 왕이 사탄이라고 동료 신학자들을 설득했다. 땅 위의 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사탄은 자랑스러운 왕이 되었다. 사탄의 눈썹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지극히 높은 자와 같이 되리라!' 이로써 사탄은 올림포스 산에 올라가 제우스의 자리를 빼앗으려 한 거인들과 같은 부류에 들어갔다. 실패한 반항적인 등산가나 좌절한 독재자, 신을 죽이는 사람, 국왕 시해자 존속 살해자도 한 무리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악마 신화의 현실을 봐야 한다. 악마라는 개념을 구체화거나, 시공간 속에서 악마를 볼 필요는 없다. 악마는 우리에게 금지된 환상을 투사하기 좋은 피조물이라는 현실임을 봐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상한 모순이 있다.

 

이 모순은 《파우스트》에서 잘 나타난다. 메피스토펠레스(악마)는 사탄의 대리자이지만,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과정에서 영혼을 팔지 말라고 설득한다. 또한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천국의 영원한 기쁨을 맛볼" 기회를 잃고 얼마나 후회하는지 말한다. 결국, 신화(이야기)의 악마들은 갈등하는 존재들이며, 그들의 갈등은 지옥에서도 계속된다.

 

이런 이야기는 모고통이나 위기를 맞이한 사람의 위태로운 모습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화에서 지옥의 땅을 탐험하거나 악마와 계약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한 가지 분명하게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사람은 악마의 거처인 지하 세계, 즉 고통이나 위기의 순간을 방문해야 귀중한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창의력의 원천, 

사사건건 부정만 하는 악마

                                           

악마(고통이나 위기)를 경험하면 삶의 귀중한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악마가 창의력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은 악마와 대화한다. 

 

"아니, 너는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다. 너는 나다. 너는 나일 뿐, 다른 누구도 아니다."

 

이반은 대답한다.

 

"너는 내 화신이다. 하지만 한 면만 닮았다. (...) 내 생각과 감정, 가장 추잡하고 미련한 생곽과 감정을 닮았지. 얼굴은 달라도 너는 나다. 너는 내 생각을 말할 뿐이야. 새로운 것을 이야기할 수 없지."

 

이것은 악마의 한 측면을 나타낸다. 독특한 것을 창조하는 것이 인간의 진정한 독창성이고 독창성을 부인하는 것이 악마라는 것이다. 하지만 악마가 없으면 창의력은 생기지 않는다. 악마는 부정하는 존재다. 인간의 경험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부정하고, 세상의 법칙을 부정한다. 이런 부정이 인간의 창의력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이런 면에서 시인 릴케가 딱 한 번 심리 치료를 받고 한 말이 옳다.

"내 악마들을 빼앗긴다면, 나는 내 천사들이 나는 것도 두려워할 것이다."

천사와 악마의 긴장 관계는 창조적 관정에서 꼭 필요하다. 악마가 없다면 창조가 아니라 침체만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악마와 투쟁한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이비 종교의 방식과 유사하다. 사이비 종교 추종자들은 일어날 일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지우고, 교주의 신념에 묵상하는 일에 집중한다. 사이비 종교 진단의 신도는 그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아우성에 귀와 눈을 닫는다. 사이비 종교 집단의 집단 자살과 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는 자신의 눈과 귀를 닫고 내면의 악마와 투쟁하는 대신 교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갈등을 부인하는 모든 활동은 이런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영감과 악마 사이에서 긴장한다. 그 때문에 그들은 창조한다. 베토벤이 작곡할 때, 세잔이 그림을 그릴 때 그들은 독창성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자유와 도덕적 힘 그리고 창의성의 문제는 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화 《오디세이》에서 호메로스는 외친다.

"맙소사, 이제 사람이 신들을 비난하는 구나. 사람들은 악이 우리 신들에게서 나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죄 때문에, 운명 지어진 것보다 큰 고통을 받는다."

우리는 악의 얼굴, 악마의 얼굴을 똑바로 보기 거부할 수 있고 그럴 때 가장 큰 죄를 범한다.

 

 

악과 싸우며 느끼는 즐거움

                                          

모든 위대한 신화는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독자와 후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창조적인 일을 경험한 사람은 이런 사실을 안다.

 

《모비 딕》에서 악마의 화신 에이햅 선장이 죽을 때 우리는 위대한 종교적 체험을 했을 때처럼 감정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카타르시스는 단순히 악마에 대한 '승리'나 악을 씻어버렸다는 느낌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감상적인 생각이 될 뿐이다. 사람이 악마와 싸우면서 감정이 정화되는 것이 카타르시스다. 사람이 마음과 정신 속에 있는 비전을 표현하기 위해 반항하는 말로 싸우는 것이며, 악마와의 맹렬한 분쟁이 정화되는 경험이다.

 

(* 카타르시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소위 감동이라고 말해지는 카타르시스는 감정의 배설을 의미합니다.  감정의 배설은 책이나 연극 등을 보고 마음에 있던 불안이나 우울함이 해소되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 이후 어떤 교훈을 얻고 행동이나 사고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의미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말해주는 것을 직접 실천하게 될 정도의 큰 감동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악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작가가 악마적인 존재와 싸우면서 배운 것이 있다는 말이다. 작가나 창의적인 사람들은 악을 만나지만, 그 악과의 싸움으로 우리를 즐겁고 아름답고 건강하게 하는 것을 만든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은 결코 이 싸움을 끝낼 수 없다.

 

오이디푸스가 자기 눈을 뽑은 것도, 프로메테우스가 원시인에게 지식을 전해주며 고통받은 것도, 아테나가 《오레스테이아》에서 악마를 만난 것도, 소크라테스가 독미나리 즙을 마신 것도  그런 싸움이다.

 

여기 사탄이 있고 영혼의 필연적인 전쟁이 있다. 조지 버나드 쇼의 《성녀 조앤》에서 잔 다르크는 매달린 채 화형당하면서, 위대한 질문을 던진다.

 

"언제까지입니까? 오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이 외침은 사람들이 악마를 아는 한 영원히 들릴 것이다. 이 싸움에서 우리를 사람답게 하는 특성이 나온다. 이 깊은 곳에서 위대한 문학작품이 나온다. 이 전투는 우리가 인간인 이상 계속되며, 우리에게 가장 깊고 즐거운 경험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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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신화를 찾는 인간》에서 '신화'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고전문학'이나 '새롭게 만들어진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목에 응용을 하여 책의 주제를 요약하면 '왜 인간은 고전문학을 찾는가' 혹은 '왜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아야 하는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이야기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거나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한 사회의 구성원이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일에 도움을 줍니다. 만약 가치있는 이야기를 알지 못하거나 미래 세대에 전달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삶도 불행해지고 사회의 단결도 무너진다는 것이죠.

 

예로 오늘날의 사회 구성원들은 다음 세대에 '부모님을 잘 만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야 행복하다'는 이야기와 '개천에서 용난다'는 이야기 중 하나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고 구전하느냐에 따라 불행해지는 사람이 달라지고 사회 구성원의 공통된 가치관이 변화하게 되겠죠.

 

독설을 통해서라도 미래에 대한 조언을 받고 싶고, 잠 못 이루게 하는 사랑에 대한 조언을 받고 싶은 마음도 모두 이야기를 찾고 싶은 마음에 해당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어떤 이야기를 자신과 맞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지금과 미래가 변화되겠죠.

이야기의 역사와 이야기가 만들어낸 행복과 불행을 통해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나만의 인생에 이야기를 만들어가시길 바라겠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수많은 부모님들의 인생 이야기가 자녀들에게 신화 속 영웅 이야기처럼 가치 있어지길 바라며 들어가는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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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신화'라는 단어는 '이야기'라는 단어로 바꿔서 읽어도 내용 이해에 무리는 없으며, 미리보기로 보여드리는 내용은 도서의 내용을 요약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_문예남 올림


 

 

신화(이야기)란 무엇인가?

                                         

신화는 의미 없는 세계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신화는 우리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 방식이다. 그 실존의 의미가 사르트르의 주장대로 단지 우리가 용기를 내어 우리 삶에 부여한 것이든지, 키르케고르의 주장처럼 우리가 발견해야 할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든지 간에 결과는 동일하다. 즉 신화는 우리가 실존의 의미와 중요서을 발견하는방식이다. 그런 면에서 신화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집을 지탱시켜서 그 안에 사람이 살게 해주는 들보와 같다.

 

'신화 만들기'는 정신 건강에 꼭 필요하다. 동정심 많은 정신과 의사라면 그것을 막지 않을 것이다. 사실 현대 심리학은 신화가 무너지면서 탄생하고 확산되었다.

 

건강한 사회는 그 사회의 신화로 구성원의 신경증적 죄책감과 과도한 불안을 완화한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에서 신화가 활기를 띠고 강력해진 때, 그리스인은 불안해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실존의 문제와 맞닥뜨렸다. 우리는 인간 생활의 가치인 진선미와 용기에 대해 논의하는 그 시대의 철학자들과 지금도 만날 수가 있다. 그 신화 때문에 플라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는 우리에게 보물로 전해 내려오는 위대한 철학 작품과 문학작품을 자유롭게 창작했다.

 

하지만 2세기와 3세기에 그랬듯이 고전 그리스의 신화가 무너지자 루크레티우스(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고대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는 "집집마다 진정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끊임없이 괴로워하며, 다루기 어려운 불평을 마지못해서 늘어놓는 마음 아픈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의 우리도 '아픈 마음'과 '불평'이라는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우리의 신화는 이제 존재의 의미를 창조하지 못한다. 현대인은 인생의 방향이나 목적을 모르고, 불안과 지나친 죄책감을 통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도와달라며 심리 치료사나 심리 치료사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몰려온다.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가

 

"지배적 신화가 인간의 다양한 곤경과 일치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신화 파괴에서, 그다음으로 내적 정체성을 찾는 고독한 탐색에서 좌절감이 나타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적 정체성을 찾는 고독한 탐색"은 우리 사회에서 정신분석이나 형식과 효과가 다양한 심리 치료뿐만 아니라 건설적일 수도, 파괴적일 수도 있는 만병통치약과 사이비 종교의 발달을 가져오는 욕구다.

 

 

사이비 종교와 신화

                                

 

지난 몇십 년간 젊은이들의 자살에 대한 통계는 끔찍하다. 이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다양한 상담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지상 목표가 되고, 가정이나 정부가 본을 보이며 윤리를 가르치지 않고, 삶의 철학을 형성하라고 젊은이들을 고무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법을 배울 멘토가 없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폭력과 섹스로 넘친다면, 젊은이들 사이에는 무서운 우울증과 자살이 계속될 것이다.

 

최근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학생 연설자가 동기생들이 "과거와 미래를 연관시키는 방법을 모르고, 현재에 대한 개념도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또 세속적이든 종교적이든 삶을 지탱시키는 신념이 없어서 "효과적인 행동에 대한 어떤 목표와 방향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 세계와 사회에 신념과 도덕적 목표를 표현하는 신화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한 우울증이 발생하고, 자살이 상존할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우리의 이 윤리적 공백의 몇 가지 원인을 알아볼 것이다. 이 장에서는 우리 사회에 신화가 없다는 것은 그런 문제에 대해 소통할 언어조차 없다는 것이라는 점만 주장할 것이다.

 

오늘날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이비 종교에 몰린다. 또 과거의 사이비 종교를 부활시키며, 자신의 불안에 대한 담을 구한다. 죄책감이나 우울증에서 위안을 갈망하고, 삶의 공백을 메워줄 무엇을 동경한다. 이 모든 현상은 우리가 처한 방향 없는 상태를 고려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사람들은 점성술사에게 삶의 길을 안내해달라고 간청한다. 또 원시적인 과어에서 유래했지만, 마법 시대를 연상시키는 미신에 매달린다.

 

20세기는 본래 함리주의로 장식되 세기, 계몽된 교육이 확산되고 종교가 마침내 모든 미신을 청산하고 그 자신도 계몽될 세기로 알려졌다. 사실 계몽주의가 제멋대로 뭎은 거의 모든 목표는 일부라도 실현되었다. 현대인은 소수를 위한 엄청난 부를 획득했고, 서구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폭정에서 자유를 얻었으며, 끝없는 과학의 보급을 경험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났나?

 

사람들은 도덕적 이상을 상실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며,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자신의내적 생활을 지켜낼지도 모른 채 혼란스러워한다.

 

(...) 신화가 사라지면 삶에 개인적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적 온정과 개성, 친근한 의미와 가치도 사라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의 주관적 의미를 확인하고, 중요한 단어가 그들의 세계(생각)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함으로써 상대방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신화가 없다면 우리는 말의 숨겨진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뇌가 손상된 사람과 마찬가지다. '신화는 허구다!'라는 대중적인 정의보다 현대 문화의 빈곤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는 없을 것이다.

 

신화 부정하기

                       

 

우리 문화는 신화를 허위로 여기는 데 익숙하다. 신화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표현하면 사람들은 당황할 것이다.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들조차 "단지 신화일 뿐"이라는 경멸적인 표현을 쓰지 않던가? 예를 들어 성경의 창조 설화는 단지 신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신화를 비난하기 위해 '단지'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기원후 3세기 교부(고위 성직자)들이다. 이들은 당시 보통 사람들의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믿음에 맞서 싸우려고 이 표현을 사용했다. 교부들은 오직 기독교의 메시지가 진리며, 그리스와 로마의 이야기는 '단지' 신화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부들이 기독교와 함께 등장한 신화의 풍부함 - 동방박사, 크리스마스, 부활 신화 등 - 을 좀 더 확신했다면, 고대 그리스로마의 위대한 신화를 그렇게 공격할 필요는 없었다.

 

현대인이 신화를 허구로 오해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는 대부분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배워왔다. 우리는 모두 합리적으로 말할수록 진실한 것이라는 편견의 희생자다. 이렇게 좌뇌 활동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사이비 과학이다. 그레고리 베이트슨(언어학자이자 인류학자)이 정확하게 일깨웠듯이 "예술, 종교, 꿈 .... 이 같은 현상을 무시하고 의도적일 뿐인 합리성은 반드시 삶을 병들게 하며, 파괴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전 세대의 신화에 만족하지 못할 때 우리의 첫 반응은 신화 파괴다. 즉 우리는 신화라는 개념 자체를 공격한다. 하지만 앞으로 살펴볼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신화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과 사회의 현실을 직면하지 않는 것이다.

 

막스 뮐러는 "호메로스의 시대와 마찬가치로 오늘날에도 신화는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 모두 그 신화의 그림자 속에 살며, 진리의 가장 밝은 빛을 피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신화의 교훈

                   

 

신화는 사람이 겪는 모순을 통합하고 의식과 무의식, 역사와 현재, 개인과 사회를 하나로 묶는다. 신화는 인간 경험의 본질과 인생의 의미를 말한다.

 

 

 

(예로) 오이디푸스 신화를 말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처음 호메로스의 이야기에서 신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다가, 소포클레스가 자신의 실체를 찾으려는 영웅의 신화로 바꿨다.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실체를 추구하는 것을 정체성 탐색이라 부른다.

 

 

오이디푸스처럼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해!"라고 외치며 자기 운명에 저항하는 사람은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불안정한 투쟁을 하는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이런 이유로 프로이트는 현대 심리학에서 오이디푸스 신화를 중심 개념으로 삼았다. 누구나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부모에게 반항해야 한다. 그것이 오이디푸스 같은 고전이 주는 교훈이다.

 

모든 사람은 안팎에서 자신의 의식에 들어오는 감각과 정서, 개념의 흐름 속에 어느 정도 질서와 일관성을 부여하기를 원한다.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 질서와 일관성을 부여하기를 원해야 한다. 우리는 이전 세대에서 가족이나 관습, 교회, 국가가 하던 일, 즉 우리의 경험을 이해하게 해줄 신화를 지어내는 일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한다.

 


 

사람들은 신화로 일상적인 능력을 초월하고, 미래에 대한 강력한 환상을 보며, 그런 환상을 실현한다.

 

- 피터 버거, 《희생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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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소비다 - 상품 미학적 교육에 대한 비평
볼프강 울리히 지음, 김정근.조이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기업과 소비자의 '욕망을 비추는소비문화에 관한 필독서!!

<모든 것은 소비다>, 볼프강 올리히 지음

- 2015 세종도서 학술부분 선정도서(이면서도 훌륭한 교양도서!)

* 세종도서는 과거 우수학술도서의 새로운 명칭입니다.

 

들어가며

 

"거울아거울아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약 200년 전그림형제에 의해 지어진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등장하는 주문이 21세기인 지금에도 사용되고 있다고 말하면 과장일까요?

 

주문에 담긴 왕비의 속마음은 '거울아내가 제일 예쁘다고 말해'가 아닐까합니다거울이 진실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비춰주길 바란 것이죠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마법의 거울이 직접 현실을 바꿔주진 않습니다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왕비가 독사과를 들고 직접 백설공주를 죽음에 이르게 해야죠.

 

동화 속에서 '거울'은 현실에 존재하지만 마법처럼 욕망을 현실로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꿈이나 상상과 같은 것은 아닐까요?왕비의 무의식에서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지고 싶어 하는 소망이 있지만현실에서 그 소망은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인간은 늙고,미의 기준은 다 다르니까요.

 

심리학자인 프로이트는 이렇게 소망이 좌절되었을 때 어떤 대리물에 집착하는 현상이 생긴다고 합니다소망은 있지만 현실에서 이룰 수는 없으니 자기에게 좋은 말만 해줄 '마법의 거울'에 만족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는 것이죠.

 

이런 왕비의 마음결핍된 마음이 오늘날의 소비문화를 주도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떠세요?

기업이 그런 마음을 이용하여 '대리물'에 집착하는 소비자를 만들고 있다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소비자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해야 할까요?

 

비유적으로 '마법 거울'과 '왕비'의 이야기를 인용했지만오늘날에도 소비자의 소망을 대변하는 상품과 결점을 가진 소비자가 극적으로 결합되어 있을 때 발생하는 선택과 책임의 문제는 많은 윤리적인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빚을 내서 고가의 물건을 산다거나사용하는 물건이 계급을 구분한다는 등의 행동과 사고가 이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를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모든 것은 소비이다>의 저자인 볼프강 울리히 교수를 통해 만나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아래 3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1. 상품의 거울화와 미신화

 

2. 기업이 소비자를 유혹하는 방식 결점의 논리

 

3. 가치를 말하는 기업과장된 착한 자본주의와 소비자는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럼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래 이야기는 <모든 것은 소비이다>의 글을 편집요약한 것으로 책의 내용과 다릅니다정확한 내용을 확인하시고 싶으신 분은 책을 보시길 바랍니다.

_문예남 올림​

 

 

 

1. 상품의 거울화(동일시)와 미신화

 

상품의 미신화 시대

 

사람들은 고객을 완전히 어린아이 취급하는 (기업)영업을 거부하면서 어떤 조처를 취해야만 할까?

 

솔직한 사람은 때때로 어떤 물건이 건강인내력조화안전을 약속하기 때문에 그것을 산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남녀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사람은 상품이 하는 약속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껴서 어떤 물건을 사지 않았던 경우가 최소한 한 번은 있었을 것이다.

 

자극적이라고 알려진 크림에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광고를 한다는 이유로 그 크림을 사지 않는 사람도 그 제품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제품이 내세우는 약속을 즐겨 조롱의 대상으로 삼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약속에서 벗어나 초연한 것만은 아니다별자리 점이나 칭찬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별자리 점이나 칭찬을 불신하면서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한다사람들은 불신을 드러내는 태도에서도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 오늘날 사람들은 소비품을 전통적인 미신의 대상이었던 것과 비슷하게 다룬다. 소비가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미신을 믿었던 과거 세계의 새롭고 일반적인 모습을 인식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사회에 혼자의 힘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희망과 소원을 비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은가? 일신교를 믿는 여러 문화도 치유에 대한 모든 기대를 단 하나의 판단 기구에 집중하고 미신은 물론이고 미신을 넘어서는 모든 믿음의 형태를 제거하는 일에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 미신을 믿는 많은 사람은 어떤 사물이나 제식에 도움을 주는 힘이 있다고 믿는 자신들의 행위를 언제라도 부인할 수 있었다혹은 그들은 적어도 미신의 효과에 회의적이었다물론 그들은 약간 단순한 세계상을 인식하고자 할 때는 좀 더 심사숙고했다단순한 세계상에 따르면 인류 역사에는 신화에서 로고스(이성),마법의 세계에서 합리적 세계로 넘어간 진보가 존재했다미신이 점점 사라지면서 세계가 마법에서 벗어났다고 가정하는 대신미신적 행위의 대상이나 형태가 변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 그로써 미신(상품)을 믿는 사람은역사가 파울 파이네(Paul Veyne)가 다듬어 표현한 것처럼 신들을 믿기는 하지만 무조건적인 확신 없이 믿었던 고대 그리스인과 비슷해진다.

 

그리스인들에게 신들은 하늘에 사는 존재였지만실제로 신들을 하늘에서 보게 된다면 그들은 적지 않게 놀랐을 것이다.”

 

그리스인은 자신이 믿는 신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쳤지만그보다는 방탕하고 극적이고 효과가 풍부한 이야기 때문에 즐거워했다그 이야기 속에서 신들은 전혀 훌륭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헤겔(Georg W. F. Hegel)은 그리스인들이 신들과 맺었던 관계에 대해 그리스인들은 실제로 경배의 태도 속에 반어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오늘날 소비사회와의 유사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특별히 갈망하던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제품을 사면서도 소비에 비판적이고 상품 연출의 모든 술책을 꿰뚫어본다. 예를 들면 체취 제거제가 일정한 힘을 주겠다고 제시하는 것처럼 많은 제품이 분명 과장되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다는 사실은거리를 유지하는 반어적인 소비 행태를 간접적으로 요구한다.그리고 사람들은 제품 생산자가 구매자에게 비판적이고 우월하다는 좋은 감정을 주는 것처럼 약속한 것이 기대로서 점점 자리를 잡게 된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상품만일까상품 가격에 대한 미신도 존재한다.

 

높은 가격이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심리 효과를 낸다면여러 경우에 낮은 가격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제품을 너무 싼 가격에 얻은 것 때문에 자신이 긍정적 효과를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은 낮은 가격의 상품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더불어 오늘날에 싼 물건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싼 물건으로 스스로를 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함께 계산에 포함해야만 한다.

 

싼 물건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자신을 고소하게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와 직면하게 된다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서 특별 할인 행사나 특정 유형의 제품을 값싸게 변형한 물건에 의존해야만 하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실시한 여러 실험 결과는 걱정스러울 정도다그들에게는 플라세보효과가 생기지 않고 노시보효과라는 위험도 있기 때문에사회계층적 구분이 더욱 뚜렷해질 수도 있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특권을 박탈당한 사람은 값싼 소비를 통해 패배자 역할에 고정된다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물질적·사회적 상승의 전제 조건일 수 있는 여러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반대로 부유한 사람들은 좀 더 비싼 제품을 소비할 뿐만 아니라유행을 다루는 전문 잡지에서건 영화관에서건 혹은 상영되는 광고 영상을 통해서건 종종 플라세보효과를 높여주는 광고를 더 많이 접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높일 수 있다.

 

 

거울화동일시라는 문제

 

높은 가격의 상품을 이용하며 더 많은 자신감을 가지는 행동은 계급적인 구별 외에 또다른 문제를 일으킨다즉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상표와 제품이 소비자에게 구원을 가져다는 어떤 사람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며이는 상품을 예술처럼 여기는 시각이다.

 

몇 세대 전부터 많은 사람은 마치 신앙고백을 하듯 예술을 대했다사람들은 작품에 압도당하기를 바라며시간이 지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주게 되었다즉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가 여전히 기업의 영업 전략에 영향 받는다고 평가하고 자신이 제품에 압도되는 체험을 하는 건 냉정하지 못하고 순진한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예술 영역(스스로 예술 같다고 여기는 상품)에서는 압도당하고자 하는 자신들의 희망을 순수한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높은 가격의 상품으로 '순수'하게 자신을 포장한 사람을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2. 기업이 소비자를 유혹하는 방식 결점의 논리

 

결점에 주목하도록 만드는 것은 시장경제가 지닌 논리에 속한다. 그 논리나 시장의 틈새를 알고 감출 수 있는 사람은 매출과 이익을 늘릴 기회를 개선할 수 있다정확하게 말하자면 여기에서는 이중의 극적인 행위가 문제가 된다.

 

1. 우선 소비자가 결점을 우려할 만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든 다음,

2. 그들에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상적인 경우 한 제품에서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제품은 경고하는 동시에 동요하지 않도록 해준다불쾌한 감정과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고보상 욕구를 드러내 보여주면서 보상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동시에 한다.

 

가끔 상표가 이중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화장품 상표인 클리니크(Clinique)’는 신체 손상이나 병이 있다고 신호를 보내지만곧 그것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알려준다(이 과정에는궁극적으로 세 단계로 이루어진 역사가 구성된다.

 

1. 먼저 상상 속에 남은 과거에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2. 그다음에 분명하게 위기나 변형이 생겼다.

 

3. 그리고 세 번째 단계에서는 그것이 해결되어야만 한다.

 

이런 유형의 역사는 철학에 토대를 둔 문화 비평가가 모든 시대에서그리고 루소(Jean-Jaques Rousseau),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노발리스(Novalis) 이후 현대에서 특히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것과 맞아떨어진다.

 

1. 그들에게는 자연이나 신에 의해 견고하게 자리 잡았던 훌륭한 초기 상태가 존재한다.

 

2. 그다음 타락고대의 종말중세의 종말근대의 시작과 함께 무시무시한 것이 나타나는 동시에

3. 되도록이면 가까운 미래에 타락한 상태에서 벗어나 초기 상태나 그와 같은 가치를 지닌 상태로 돌아가려는 소망이 생겨난다.

 

좌파는 현대의 위기를 소외로우파는 퇴폐로 파악하고그 밖에 다른 사람은 중심의 상실신의 죽음정지속도과열 혹은 차가움을 이야기한다.

 

시장경제의 지위 상승과 문화 비판적인 줄거리를 지닌 이야기가 성공을 거두는 것이 모두 현대적 현상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대부분의 문화 비평가가 시장경제상업화소비 지향주의를 공동 원인 혹은 비난을 받는 악과 결핍의 징후라고 확인했지만그들의 사고 형태는 시장경제와 시장을 움직이는 장치가 없었다면 커다란 반향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다른 어떤 곳보다도 소비품을 연출하는 것에서 이런 연관 관계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제품 연출에서는 현재를 문제로 삼는 일이 항상 여러 변형된 형태로 연습되고매번 새롭게 극적 모습으로 꾸며진다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에서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까지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에서 게오르게 슈타이너(George Steiner)까지닐 포스트맨(Neil Postman)에서 만프레드 슈피처(Manfred Spitzer)까지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에서 마르틴 모제바흐(Martin Mosebach)까지 많은 문화 비판가가 주장했던 것이 피부 크림체취 제거제건강 식품관광 상품 소개 안내서공정 무역에서 반향을 얻고 확인을 받는다.

 

 

 

 

3. 가치를 말하는 기업과장된 착한 자본주의와 소비자는 공존할 수 있을까

 

기업의 과장과 소비자의 반응

 

시장경제의 경쟁에서는 무엇보다도 눈에 띄게 요란하고 놀라게 만드는 제품이 당연히 기회를 얻게 된다소비 행위에 익숙하지 않고 제품을 통해 생겨나는 느낌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때때로 소비에 마음을 빼앗긴다. (...) 강력한 은유로 낯설어지고 극단적인 약속이 적혀 있으며 순수한 단어로 시장에서 판매되는 어떤 제품과 맞닥뜨리게 될 경우최소한 세 가지 행동 방식이 가능하다.

 

1. 몇몇은 그런 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강력한 동일화)

생수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일 경우 자신들이 실제로 충분한 자격을 지녔으며 샤워용 젤이 새로운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그리고 자신들이 깨끗한 양심의 일부를 담고 있는 제품을 산다면세계가 약간은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적어도 그들은 어렵지 않게 많은 상표와 제품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2. 반대로 다른 사람들은 과장을 원칙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도덕적 우월)

그들은 과장 속에서 부정직함심한 경우에는 외설을 알아차린다. (..._ 그들은 자신들이 냉소받는다고 느끼고 속임수에 넘어가고 있으며 이용당한다고 느낀다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다른 소비자들과는 달리 조작의 사악한 장난을 꿰뚫어볼 수 있을 만큼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느낀다만일 그들이 정말로 정직하다면그들이 제품 연출을 절제가 없고 기괴하며 공격적인 과장으로 폭로할 수 있는 기회를자신들의 반소비적인 행동이 옳았다는 느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얻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분노가 그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자신이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그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3. 세 번째 유형의 소비자는 과장의 전략을 꿰뚫어보기는 하지만도덕적인 반응을 포기한다.(지적 즐거움)

오히려 이런 유형의 대표자들은 과장을 과장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그들은 생산자의 뻔뻔함에 놀라지 않으며개별 제품의 변형과 과도함을 즐기고몹시 불합리하고 어울리지 않지만 독창적인 과정을 선호하고 즐긴다그들은 그것에서 특별히 시대정신의 여러 경향이 드러나는 분명한 예를 본다경우에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특별히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수집하기도 한다.

 

이 세 가지 유형 중 어느 하나에 분명하게 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 과장은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세 가지 경험즉 강력한 동일화도덕적 우월미학적·지적 즐거움을 좇도록 만든다결과적으로 과장은 좋은 형식을 얻기 위한 모든 노력과 비교해보면 좀 더 성공적인 전략임이 입증된다.

 

​ 

과장된 착한 자본주의의 시대의 기업과 소비자

 

몇십 년 전부터 복지사회가 출현한 이후로 과장의 원칙이 지배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특히 세 번째 소비 태도인 반어적 유형이 형성되었다.

 

(...)

여기에서 무엇보다 작가와 예술가를 위한 새롭고도 커다란 영역이 생겼다소비 미학의 형식을 좀 더 자유롭고 지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소비자에게 제시할 수 있을 때만 그들은 아직도 아방가르드 예술가이거나 다시 그런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슈테파니 젱에(Stephanie Senge) 같은 예술가는, 1990년부터 여러 나라의 슈퍼마켓에서 다양한 기준에 따라 상품을 사 모았다그녀는 자기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모은 수집품 중에서 사랑’, ‘한정판’, 혹은 시간 조절이라는 범주에 따라 각각의 제품을 가려냈다예를 들면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사치를” 혹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같이 기업들이 사용했던 구호를 천에 옮겨 적고시위자들과 함께 거리로 나갔다. 구호는 추가로 준비한 메가폰과 휴대용 마이크를 통해 거리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젱에는예술적 수단을 통해서 매일 소비 때문에 도전을 받는 사람들에게, “강인한 소비자가 되도록” 자극하려 했다.

 

(...)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품과 영업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과장은 소비자가 과장된 동일화나 거부의 형태로 반응하도록 잘못 이끌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상표 이름을 자신의 피부에 문신으로 새겨 넣거나 상표를 따서 자녀의 이름을 지으려고 시도한다.혹은, ‘애플’ 컴퓨터같이 과장되게 선전하는 애플의 최신 제품을 폭력으로 분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많은 사람이 그 제품을 손에 넣으려는 갈망으로 가득 차서 초초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막 출시된 신형의 변형 제품을 제일 먼저 망가트리는 사람은 가장 큰 주목을 받는다.

 

그런 행위에서는 항상 침착하면서도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냉정함은 과장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다른 태도를 덜 냉정하다고 폄하하는 데서 가장 잘 증명된다결론적으로비싸고 배타적이고 디자인을 강조한 상표의 제품을 소유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침착하면서도 냉정한 태도로 여기는 반면어떤 사람들은 같은 제품을 파괴하는 것이 침착하면서도 냉정한 태도라고 생각한다특히 파괴된 유명 상표의 제품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모욕을 당하고 미쳤다고 간주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공격받는 것을 계산에 넣는다면그것은 일종의 담력 시험과 같다.

 

(...)

오늘날에는 의미론적 과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소비자는 사용자가 아니라 수용자로 불리며모든 것을 행복한 결말에 맞춰서 제작하는 통속소설(과장된 제품)희망으로 가득 차서 더 나은 세계를 동경하는 독자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자신이 주제를 직접 정의할 때 더 많은 과장과 마찰을 만들어내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시장조사 연구는 소비자가 언제 긴장 완화를 바라고 언제 자극을 바라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 연구는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고 독창적인 오락 형식을 발전시키는 일에는 적합하지 않다애플의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 생산자의 임무이며,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

어쨌든기업은 처음에는 시대정신과 시장조사를 고려해서 받아들인 것을 실제로 중요하다고 여기고이익 전망과는 무관하게 대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의 도덕적 참여를 기록하는 지속성에 관한 보고에서 새로운 후원 형식이나 생태 사회적 실험에 고객을 묶어두기 위한 조처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활동은 책임 있는 경영자에게 효과를 발휘한다.

 

그로써 고대 이후 계속해서 철학의 주제였던 발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우리는 현실이 새로운 습관을 통해서만 변화 가능한지 생각하게 된다그렇다고 확신했던 키케로(Cicero)는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라는 공식을 만들었다이 주제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쉴트뷔르거Schildbürger : ‘바보라는 뜻의 독일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랄레부크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생겨났다이곳 시민은 선천적으로 아주 머리가 좋고 현명했다그래서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조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았고결국에는 자신들의 일을 등한시하게 되었다어느 날 그들은 그 때문에 신경질이 났고방해받지 않기 위해 바보 행세를 하기로 했다그들이 한동안 바보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다음에 그들은 정말로 바보가 되어버렸다. “다른 습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그들은 더는 간단히 어리석음을 내려놓을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지 환경과 작업 조건에 대해서 걱정하는 시늉만 하던 기업의 영업 분야를 책임진 경영자도 점점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행동하는 것 말고 다르게 행동하는 법을 잊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것을 아주 내면화해서 결과적으로 확신에 찬심지어는 선교사 같은 판단 기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자의식이 넘쳐나는 그들은 자신을 교육자로 이해하고궁극적으로는 교양감수성 혹은 행위로 옮기려는 마음의 준비가 부족한 소비자를 질책한다.

 

렇게 되면 기업은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주제생각 혹은 이상을 전파하려는 두 번째 목표도 추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기업에서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익과는 무관하게 좀 더 극단적인 오락 형식이나 학문과 기술에서 일어날 여러 발전에 호기심을 갖게 될 수도 있다그것은 행동, ‘사회 연결망’ 사이트와 대규모 행사를 통해서 여태껏 그랬던 것보다 훨씬 훌륭하게 소비자의 감정과 입장을 변화시키며더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들고자 하는 추가적인 동기를 소비자에게 부여한다.

 

(...)

자본주의의 성장 지향이라는 고전적이고 일차원적인 틀을 따르지 않는 기업들은 이전에도 창설된 적이 있었다.

 

교회는 항상 이익에 맞춰서 행위를 결정했지만동시에 자신의 가치와 목표를 관철하는 것을 잊지 않았던 사회제도였다.

 

시장에서 계속 살아남아야 하지만 종종 상업적 목표만을 추구하지 않는 출판사들도 생각할 수 있다이 출판사들은 자신들이 지닌 강령을 통해 이념적 관심을 표현하거나 정치적 혹은 종교적인 태도를 표현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세운 강령을 따르는 출판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내용보다 이익을 우위에 놓는 것처럼 출판사가 전부 자본주의 논리 외에 다른 목표를 추구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반대로 두 종류의 출판사를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대량생산 제품으로서의 책은 계속해서 수요를 따르게 될 것이고오직 매출이라는 관심에서만 시장에 공급될 것이다.

 

반면지위를 보여주거나 특정 가치를 지지하는 상징적 제품 유형인 책은 지금껏 그랬던 것보다 빈번하게 생산자의 이념적이거나 허구적인 참여를 증명하게 된다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을 즐거움과 교훈이라는 고전적 원칙에 따라 매력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그들은 자신들의 소명 의식을 충족하기 위해 많은 돈을 사용한다그들이 바라는 이익은 더 많은 자본이 아니라 늘어난 추종자의 수다.

 

(...)

성장이 아니라 가치가 중요해지는 이런 미래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변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어쨌든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모험을 즐기는 열정적인 신봉자만 기업가로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것은 아니다종교적 분파의 대표자나 극단적인 견해를 지닌 사람은 물론종교적·세계관적·정치적 이데올로기 생산자들도 팜플렛이나 설교보다는 소비품으로 좀 더 쉽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마음을 빼앗아 선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소비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즐겨 제기했던 비난인 소비자 조작은대규모로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슈퍼마켓은 앞으로는 한 유형의 제품 전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에 들어맞는 제품만을 팔기로 결정할 것이다그들의 역할은 오늘날 커다란 규모의 잡지가 차지하고 있는 역할과 유사하다그 잡지를 위해 수많은 편집자와 독립적인 작가들이 동시에 글을 쓴다.

 

권력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은 우선 하나의 상표를 만들어내고제품을 고안하고, 동시에 다른 가치를 대표하는 상표를 사지 말라고 호소한다혁명가들은 앞으로는 방송국만을 점령해서는 안 되고냉장 진열대와 잡화점의 상품 종류를 바꾸어야만 할 것이다. (...) 미래의 독재자는 이미지 편집자와 제품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서 독재정치를 하게 될 것이다.

 

늦어도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의 기업이나 분야가 아직 특정 가치를 지향하지 않았던 순수한 자본주의의 시대가 지나간 것을 애도하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이미 사람들은 모든 소비 행위와 동시에 생겨나는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 지치게 되는 순간독점 자본주의가 지배했던 이전의 멋진 시대에는 최소한 반쯤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며그때에는 자신이 선전의 대상물이 될 수도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최악의 경우 사람들은 생산자가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계속해서 얻으려는 단 하나의 유일한 관심만을 지녔던 것조차 우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 지은이 소개

 

볼프강 울리히(Wolfgang Ullrich, 1967~)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카를스루에 조형학교에서 예술학과 방법론을 가르치고 있다. 
소비를 부정적 현상으로 보았던 전래의 이론에 맞서면서도, 그만큼 오늘날의 소비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보낸다. 울리히는 소비문화를 연구하면서 소비 상품들이 개인이나 사회에 대해 본격적으로 위험을 미치게 되는 여러 요소들을 발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상품 미학이 하나의 긍정적인 교육적 효과를 지녀야만 한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오늘날의 소비 상품들은 다른 대중매체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울리히의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샤워 젤, 티백, 요구르트 같은 상품들을 지금껏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될 것이며, 소비에 대한 결정을 새로운 기준으로 내리게 될 것이다. 
울리히가 지은 책으로는 《정제된 예술 : 모사 훈련(Raffinierte Kunst : Übung vor Reproduktion)》, 《소유욕 : 소비문화는 어떻게 작동하는가?(Habenwollen: Wie funktioniert die Konsumkultur?)》, 《불명료함의 역사(Die Geschichte der Unschärf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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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atros 2015-07-1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서 베블런의 향기가 짙게 풍기는군요. 한 번 읽어보고싶네요

문예출판사 2015-07-17 18:07   좋아요 0 | URL
앗! 감사합니다. 페이스북에 이 글을 올렸더니, 소비자학을 공부하시는 분께서 아주 만족하셨다고 하셨어요. 다소 학술적이긴 하지만요.^^ 소비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꼭 만나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신화를 찾는 인간
롤로 메이 지음, 신장근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오늘날 우리 세대는 신화를 뿌리 뽑는 데 열중한다.

신화를 빼앗긴 현대인은 과거 속에 굶주린 채 있으며, 그 신화가 오래된

유물 가운데 하나인 것처럼 미친 듯이 뿌리를 캐내야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우리 이론이 당신께 신화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모든 과학이 결국 이와 같은 신화가 아닐까요?

오늘날 당신의 물리학도 똑같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 프로이트가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

​"삶을 치유하는 이야기(신화)의 힘을 말하다"

여러분은 자신의 아이에게 인생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여 주고 싶으세요?

최근에 출간된 《왜 목소리가 중요한가》란 책에선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부모가 아이에게 '나는 이렇게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현상을 꼽습니다. 이건 오늘날의 부모가 자식에게 들려주고, 물려주고 싶은 반짝이는 삶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는 하소연이기도 하지만, 야근과 대출, 살아남기 위한 경쟁으로 뒤범벅된 자신의 삶을 아이에게 대물림할 것이란 상상에서 오는 부모의 죄책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식에게 물려주고 자신의 고된 삶을 지켜줄 이야기를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의 자신을 위해 미래를 위해 이야기를 필요로 할까요? 《신화를 찾는 인간》의 저자 롤로 메이는 말합니다. 오랜 시간 전해진 이야기(신화)에는 삶의 패턴이 담겨 있으며, 사람은 그 이야기(패턴)를 통해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충실하게 살아나갈 수 있다고 말이에요. 우리에게 이야기(신화)가 없다는 것은 지금과 미래의 삶을 살펴보기 위한 과거(역사)가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이죠.

철학가 니체는 그의 저서 《비극의 탄생》을 통해 그리스 인들은 비극을 통해 삶을 사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니체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그리스 비극을 가장 뛰어난 이야기(신화)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비록 성공하진 못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이겨내고자 운명을 바꾸는 영웅의 이야기는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주기 때문일까요.

<오이디푸스왕>은 그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테베의 왕이 된 이후에도 그 능력으로 15년 동안이나 태평성대를 이루기도 하죠.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란 자신의 숙명에선 벗어나지 못합니다. 숙명에서 벗어나고자 코린토스 왕 폴리보스의 양아들이란 자리를 버리고 나왔음에도 말이죠. 결국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오이디푸스는 죄책감에 자신의 두 눈을 뽑고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도시 밖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이디푸스는 왕이 되는 기쁨과 아버지를 살해하는 고통을 반복하여 경험하고 자신의 선이 악이 되는 고통을 경험합니다. 그 고통의 순간에서도 자신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지요. 그리스 비극의 영웅은 고통의 순간에도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후세에 전합니다. 니체는 이렇게 현실의 고통을 마주하는 인간이 고민 끝에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위대한 문학, 위대한 이야기(신화)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신화를 찾는 인간》의 신화(神話, myth)를 편한 말로 한다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전되어온 이야기, 사람의 삶을 압축시켜 보여주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선 그리스의 비극처럼 인간을 좀 더 인간적이게 하는 이야기만을 강조하진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사용하는 방식은 다양하니까요.

누군가는 자신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증명하는 이유로 이야기를 사용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자신이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모범을 찾기 위해 이야기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타인을 현혹시키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지요. 이 책 《신화를 찾는 인간》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사용법이 나오며, 사용법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왜 우리가 가치 있는 이야기(신화)를 찾아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자신과 미래를 위한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발견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_문예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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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삶과 메시지 - 간디 자서전과 함께 읽을 세계적인 간디 평전
루이스 피셔 지음, 박홍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지금보다 정치적으로 더 어려운 시기가 있다면 아마도 식민지 시기가 아닐까요? ‘지배’당하기 때문에 인권은 물론 지배층의 부정부패에 대해선 말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시기에도 모두가 침묵하며 살지는 않았습니다. 지배당하는 다수의 사람의 삶을 위해 노력한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세상이 있게 된 것이니까요. 그중 한 분을 뽑으라면 문예남은 위대한 스승 ‘간디’를 뽑겠습니다.

간디는 뛰어난 지혜로 사람을 일깨우는 수많은 말을 남겼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발언을 할 때는 독설에 가깝게 말하기도 하는데요. 인간의 이기심에 관한 간디의 통찰은 그중에서도 일품입니다. 세계적인 언론인 루이스 피셔가 저술한 간디 자서전인 <간디의 삶과 메시지>에서 정치와 인간에 관한 간디의 명언들을 뽑아보았습니다.

_문예남 올림

 

*
정치적인 교훈을 주는 간디의 독설

<간디의 삶과 메시지>
- 2015년 올해의 청소년교양도서 선정도서 

(더 많은 2015년 청소년교양도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하세요. 링크 : http://goo.gl/EPgM5h)

 

1.
(정치적) 이익이 따르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_
간디는 ‘당신이 말하는 무욕과 절제는 국가의 빈곤과 기아를 부른다’는 비난을 받자 이익을 포기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정치에 있어) 진정한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며 말합니다.

“결과(실패, 손실)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정치의) 의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종종 용기를 잃어버린다. 그는 초조해져서 화를 내고, 품위 없는 짓들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 행동 저 행동으로 우왕좌왕하다가 어떤 일도 믿음직하게 하지 못한다. 결과에 집착하는 사람은 감각을 자극하는 사물에 의해 타락한 사람과 같다. 그는 항상 주의가 산만하고 뭐든 신중한 사고를 기피한다. 자신의 판단으로는 모든 것이 옳으므로, 그것이 옳든 옳지 않은 모든 수단에 호소해 자기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절제할 수 있다면, 추악한 수단으로 오염되지 않은 중요한 결과를 얻는 데 필요한 마음의 평정과 균형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죠.


2.
이익을 얻고자 하는 정치적 단식에 대하여

_
간디에게 단식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이르는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간디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개조하고자 단식을 한다”며 “독재자에게 대항해 단식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왜냐하면 독재자는 남을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에 단식 같은 무기는 그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죠.

간디는 단식은 이기적일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입니다.

“나는 아버지를 악에서 구제하고자 단식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고자 단식할 수는 없다.”

3.
평민의 삶에는 관심 없는 정치인(인도를 지배하고 있는 영국 총독 어윈)의 생활비에 대하여

_
1928년 인도는 노동분쟁과 민족주의 분쟁으로 들끓었습니다. 일부에선 독립전쟁이 나오고 있었고 간디는 영국 총독이 인도의 상황을 이해하여 주길 바라며 총독의 삶과 일반 평민의 삶을 비교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냅니다.

“당신의 월급을 예로 들어봅시다. 한 달에 2만 1,000루피, 즉 7,000달러 이상이 아닌가요? 그 밖에 여러 가지 간접 수입을 제외해도 말이지요. (...) 당신은 하루 700루피(233달러)를 버는 반면, 인도인의 평균 수입은 하루 2아나(4센트)를 넘지 못합니다. 따라서 당신은 인도인의 평균 수입보다 5천 배나 넘게 버는 셈입니다. 영국 수상은 영국인 평균 수입의 90배 정도를 버는데 말이죠. 이러한 현상을 심사숙고하기를 무릎 꿇고 요청합니다. 내가 개인적인 예를 든 것은, 고통스러운 진실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 당신은 지금 받는 월급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아마 그 월급 전체를 자선단체에 기부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차이를 만드는 시스템은 하루 빨리 폐기되어야 합니다. 총독의 월급에 대한 진실은 행정 전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4.

그리고 사람의 죄악은 언제 오는가

_​

간디는 많은 아이를 사랑했고 그들의 선함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죄악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죠.

“죄악은 늙었을 때 찾아온다.”고 말이죠.

*
<간디의 삶과 메시지> 도서 소개

http://goo.gl/n1l46Y

*
서점가기
알라딘 : http://goo.gl/yJOV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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