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신화를 찾는 인간》에서 '신화'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고전문학'이나 '새롭게 만들어진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목에 응용을 하여 책의 주제를 요약하면 '왜 인간은 고전문학을 찾는가' 혹은 '왜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아야 하는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이야기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거나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한 사회의 구성원이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일에 도움을 줍니다. 만약 가치있는 이야기를 알지 못하거나 미래 세대에 전달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삶도 불행해지고 사회의 단결도 무너진다는 것이죠.

 

예로 오늘날의 사회 구성원들은 다음 세대에 '부모님을 잘 만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야 행복하다'는 이야기와 '개천에서 용난다'는 이야기 중 하나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고 구전하느냐에 따라 불행해지는 사람이 달라지고 사회 구성원의 공통된 가치관이 변화하게 되겠죠.

 

독설을 통해서라도 미래에 대한 조언을 받고 싶고, 잠 못 이루게 하는 사랑에 대한 조언을 받고 싶은 마음도 모두 이야기를 찾고 싶은 마음에 해당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어떤 이야기를 자신과 맞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지금과 미래가 변화되겠죠.

이야기의 역사와 이야기가 만들어낸 행복과 불행을 통해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나만의 인생에 이야기를 만들어가시길 바라겠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수많은 부모님들의 인생 이야기가 자녀들에게 신화 속 영웅 이야기처럼 가치 있어지길 바라며 들어가는 글을 줄입니다.

*

이 책에 나오는 '신화'라는 단어는 '이야기'라는 단어로 바꿔서 읽어도 내용 이해에 무리는 없으며, 미리보기로 보여드리는 내용은 도서의 내용을 요약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_문예남 올림


 

 

신화(이야기)란 무엇인가?

                                         

신화는 의미 없는 세계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신화는 우리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 방식이다. 그 실존의 의미가 사르트르의 주장대로 단지 우리가 용기를 내어 우리 삶에 부여한 것이든지, 키르케고르의 주장처럼 우리가 발견해야 할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든지 간에 결과는 동일하다. 즉 신화는 우리가 실존의 의미와 중요서을 발견하는방식이다. 그런 면에서 신화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집을 지탱시켜서 그 안에 사람이 살게 해주는 들보와 같다.

 

'신화 만들기'는 정신 건강에 꼭 필요하다. 동정심 많은 정신과 의사라면 그것을 막지 않을 것이다. 사실 현대 심리학은 신화가 무너지면서 탄생하고 확산되었다.

 

건강한 사회는 그 사회의 신화로 구성원의 신경증적 죄책감과 과도한 불안을 완화한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에서 신화가 활기를 띠고 강력해진 때, 그리스인은 불안해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실존의 문제와 맞닥뜨렸다. 우리는 인간 생활의 가치인 진선미와 용기에 대해 논의하는 그 시대의 철학자들과 지금도 만날 수가 있다. 그 신화 때문에 플라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는 우리에게 보물로 전해 내려오는 위대한 철학 작품과 문학작품을 자유롭게 창작했다.

 

하지만 2세기와 3세기에 그랬듯이 고전 그리스의 신화가 무너지자 루크레티우스(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고대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는 "집집마다 진정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끊임없이 괴로워하며, 다루기 어려운 불평을 마지못해서 늘어놓는 마음 아픈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의 우리도 '아픈 마음'과 '불평'이라는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우리의 신화는 이제 존재의 의미를 창조하지 못한다. 현대인은 인생의 방향이나 목적을 모르고, 불안과 지나친 죄책감을 통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도와달라며 심리 치료사나 심리 치료사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몰려온다.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가

 

"지배적 신화가 인간의 다양한 곤경과 일치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신화 파괴에서, 그다음으로 내적 정체성을 찾는 고독한 탐색에서 좌절감이 나타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적 정체성을 찾는 고독한 탐색"은 우리 사회에서 정신분석이나 형식과 효과가 다양한 심리 치료뿐만 아니라 건설적일 수도, 파괴적일 수도 있는 만병통치약과 사이비 종교의 발달을 가져오는 욕구다.

 

 

사이비 종교와 신화

                                

 

지난 몇십 년간 젊은이들의 자살에 대한 통계는 끔찍하다. 이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다양한 상담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지상 목표가 되고, 가정이나 정부가 본을 보이며 윤리를 가르치지 않고, 삶의 철학을 형성하라고 젊은이들을 고무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법을 배울 멘토가 없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폭력과 섹스로 넘친다면, 젊은이들 사이에는 무서운 우울증과 자살이 계속될 것이다.

 

최근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학생 연설자가 동기생들이 "과거와 미래를 연관시키는 방법을 모르고, 현재에 대한 개념도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또 세속적이든 종교적이든 삶을 지탱시키는 신념이 없어서 "효과적인 행동에 대한 어떤 목표와 방향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 세계와 사회에 신념과 도덕적 목표를 표현하는 신화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한 우울증이 발생하고, 자살이 상존할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우리의 이 윤리적 공백의 몇 가지 원인을 알아볼 것이다. 이 장에서는 우리 사회에 신화가 없다는 것은 그런 문제에 대해 소통할 언어조차 없다는 것이라는 점만 주장할 것이다.

 

오늘날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이비 종교에 몰린다. 또 과거의 사이비 종교를 부활시키며, 자신의 불안에 대한 담을 구한다. 죄책감이나 우울증에서 위안을 갈망하고, 삶의 공백을 메워줄 무엇을 동경한다. 이 모든 현상은 우리가 처한 방향 없는 상태를 고려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사람들은 점성술사에게 삶의 길을 안내해달라고 간청한다. 또 원시적인 과어에서 유래했지만, 마법 시대를 연상시키는 미신에 매달린다.

 

20세기는 본래 함리주의로 장식되 세기, 계몽된 교육이 확산되고 종교가 마침내 모든 미신을 청산하고 그 자신도 계몽될 세기로 알려졌다. 사실 계몽주의가 제멋대로 뭎은 거의 모든 목표는 일부라도 실현되었다. 현대인은 소수를 위한 엄청난 부를 획득했고, 서구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폭정에서 자유를 얻었으며, 끝없는 과학의 보급을 경험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났나?

 

사람들은 도덕적 이상을 상실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며,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자신의내적 생활을 지켜낼지도 모른 채 혼란스러워한다.

 

(...) 신화가 사라지면 삶에 개인적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적 온정과 개성, 친근한 의미와 가치도 사라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의 주관적 의미를 확인하고, 중요한 단어가 그들의 세계(생각)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함으로써 상대방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신화가 없다면 우리는 말의 숨겨진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뇌가 손상된 사람과 마찬가지다. '신화는 허구다!'라는 대중적인 정의보다 현대 문화의 빈곤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는 없을 것이다.

 

신화 부정하기

                       

 

우리 문화는 신화를 허위로 여기는 데 익숙하다. 신화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표현하면 사람들은 당황할 것이다.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들조차 "단지 신화일 뿐"이라는 경멸적인 표현을 쓰지 않던가? 예를 들어 성경의 창조 설화는 단지 신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신화를 비난하기 위해 '단지'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기원후 3세기 교부(고위 성직자)들이다. 이들은 당시 보통 사람들의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믿음에 맞서 싸우려고 이 표현을 사용했다. 교부들은 오직 기독교의 메시지가 진리며, 그리스와 로마의 이야기는 '단지' 신화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부들이 기독교와 함께 등장한 신화의 풍부함 - 동방박사, 크리스마스, 부활 신화 등 - 을 좀 더 확신했다면, 고대 그리스로마의 위대한 신화를 그렇게 공격할 필요는 없었다.

 

현대인이 신화를 허구로 오해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는 대부분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배워왔다. 우리는 모두 합리적으로 말할수록 진실한 것이라는 편견의 희생자다. 이렇게 좌뇌 활동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사이비 과학이다. 그레고리 베이트슨(언어학자이자 인류학자)이 정확하게 일깨웠듯이 "예술, 종교, 꿈 .... 이 같은 현상을 무시하고 의도적일 뿐인 합리성은 반드시 삶을 병들게 하며, 파괴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전 세대의 신화에 만족하지 못할 때 우리의 첫 반응은 신화 파괴다. 즉 우리는 신화라는 개념 자체를 공격한다. 하지만 앞으로 살펴볼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신화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과 사회의 현실을 직면하지 않는 것이다.

 

막스 뮐러는 "호메로스의 시대와 마찬가치로 오늘날에도 신화는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 모두 그 신화의 그림자 속에 살며, 진리의 가장 밝은 빛을 피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신화의 교훈

                   

 

신화는 사람이 겪는 모순을 통합하고 의식과 무의식, 역사와 현재, 개인과 사회를 하나로 묶는다. 신화는 인간 경험의 본질과 인생의 의미를 말한다.

 

 

 

(예로) 오이디푸스 신화를 말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처음 호메로스의 이야기에서 신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다가, 소포클레스가 자신의 실체를 찾으려는 영웅의 신화로 바꿨다.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실체를 추구하는 것을 정체성 탐색이라 부른다.

 

 

오이디푸스처럼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해!"라고 외치며 자기 운명에 저항하는 사람은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불안정한 투쟁을 하는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이런 이유로 프로이트는 현대 심리학에서 오이디푸스 신화를 중심 개념으로 삼았다. 누구나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부모에게 반항해야 한다. 그것이 오이디푸스 같은 고전이 주는 교훈이다.

 

모든 사람은 안팎에서 자신의 의식에 들어오는 감각과 정서, 개념의 흐름 속에 어느 정도 질서와 일관성을 부여하기를 원한다.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 질서와 일관성을 부여하기를 원해야 한다. 우리는 이전 세대에서 가족이나 관습, 교회, 국가가 하던 일, 즉 우리의 경험을 이해하게 해줄 신화를 지어내는 일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한다.

 


 

사람들은 신화로 일상적인 능력을 초월하고, 미래에 대한 강력한 환상을 보며, 그런 환상을 실현한다.

 

- 피터 버거, 《희생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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