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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소비다 - 상품 미학적 교육에 대한 비평
볼프강 울리히 지음, 김정근.조이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기업과 소비자의 '욕망을 비추는' 소비문화에 관한 필독서!!
<모든 것은 소비다>, 볼프강 올리히 지음
- 2015 세종도서 학술부분 선정도서(이면서도 훌륭한 교양도서!)
* 세종도서는 과거 우수학술도서의 새로운 명칭입니다.
들어가며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약 200년 전. 그림형제에 의해 지어진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등장하는 주문이 21세기인 지금에도 사용되고 있다고 말하면 과장일까요?
주문에 담긴 왕비의 속마음은 '거울아, 내가 제일 예쁘다고 말해'가 아닐까합니다. 거울이 진실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비춰주길 바란 것이죠.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마법의 거울이 직접 현실을 바꿔주진 않습니다.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왕비가 독사과를 들고 직접 백설공주를 죽음에 이르게 해야죠.
동화 속에서 '거울'은 현실에 존재하지만 마법처럼 욕망을 현실로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꿈이나 상상과 같은 것은 아닐까요?왕비의 무의식에서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지고 싶어 하는 소망이 있지만, 현실에서 그 소망은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늙고,미의 기준은 다 다르니까요.
심리학자인 프로이트는 이렇게 소망이 좌절되었을 때 어떤 대리물에 집착하는 현상이 생긴다고 합니다. 소망은 있지만 현실에서 이룰 수는 없으니 자기에게 좋은 말만 해줄 '마법의 거울'에 만족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는 것이죠.
이런 왕비의 마음. 즉, 결핍된 마음이 오늘날의 소비문화를 주도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떠세요?
기업이 그런 마음을 이용하여 '대리물'에 집착하는 소비자를 만들고 있다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소비자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해야 할까요?
비유적으로 '마법 거울'과 '왕비'의 이야기를 인용했지만, 오늘날에도 소비자의 소망을 대변하는 상품과 결점을 가진 소비자가 극적으로 결합되어 있을 때 발생하는 선택과 책임의 문제는 많은 윤리적인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빚을 내서 고가의 물건을 산다거나, 사용하는 물건이 계급을 구분한다는 등의 행동과 사고가 이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를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모든 것은 소비이다>의 저자인 볼프강 울리히 교수를 통해 만나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아래 3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1. 상품의 거울화와 미신화
2. 기업이 소비자를 유혹하는 방식 ‘결점의 논리’
3. 가치를 말하는 기업, 과장된 착한 자본주의와 소비자는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럼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래 이야기는 <모든 것은 소비이다>의 글을 편집, 요약한 것으로 책의 내용과 다릅니다.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시고 싶으신 분은 책을 보시길 바랍니다.
_문예남 올림
1. 상품의 거울화(동일시)와 미신화
상품의 미신화 시대
사람들은 고객을 완전히 어린아이 취급하는 (기업)영업을 거부하면서 어떤 조처를 취해야만 할까?
솔직한 사람은 때때로 어떤 물건이 건강, 인내력, 조화, 안전을 약속하기 때문에 그것을 산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남녀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사람은 상품이 하는 약속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껴서 어떤 물건을 사지 않았던 경우가 최소한 한 번은 있었을 것이다.
자극적이라고 알려진 크림에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광고를 한다는 이유로 그 크림을 사지 않는 사람도 그 제품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제품이 내세우는 약속을 즐겨 조롱의 대상으로 삼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약속에서 벗어나 초연한 것만은 아니다. 별자리 점이나 칭찬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별자리 점이나 칭찬을 불신하면서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불신을 드러내는 태도에서도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 오늘날 사람들은 소비품을 전통적인 미신의 대상이었던 것과 비슷하게 다룬다. 소비가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미신을 믿었던 과거 세계의 새롭고 일반적인 모습을 인식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사회에 혼자의 힘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희망과 소원을 비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은가? 일신교를 믿는 여러 문화도 치유에 대한 모든 기대를 단 하나의 판단 기구에 집중하고 미신은 물론이고 미신을 넘어서는 모든 믿음의 형태를 제거하는 일에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 미신을 믿는 많은 사람은 어떤 사물이나 제식에 도움을 주는 힘이 있다고 믿는 자신들의 행위를 언제라도 부인할 수 있었다. 혹은 그들은 적어도 미신의 효과에 회의적이었다. 물론 그들은 약간 단순한 세계상을 인식하고자 할 때는 좀 더 심사숙고했다. 단순한 세계상에 따르면 인류 역사에는 신화에서 로고스(이성)로,마법의 세계에서 합리적 세계로 넘어간 진보가 존재했다. 미신이 점점 사라지면서 세계가 마법에서 벗어났다고 가정하는 대신, 미신적 행위의 대상이나 형태가 변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 그로써 미신(상품)을 믿는 사람은, 역사가 파울 파이네(Paul Veyne)가 다듬어 표현한 것처럼 신들을 믿기는 하지만 무조건적인 확신 없이 믿었던 고대 그리스인과 비슷해진다.
“그리스인들에게 신들은 ‘하늘’에 사는 존재였지만, 실제로 신들을 하늘에서 보게 된다면 그들은 적지 않게 놀랐을 것이다.”
그리스인은 자신이 믿는 신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쳤지만, 그보다는 방탕하고 극적이고 효과가 풍부한 이야기 때문에 즐거워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신들은 전혀 훌륭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헤겔(Georg W. F. Hegel)은 그리스인들이 신들과 맺었던 관계에 대해 그리스인들은 실제로 “경배의 태도 속에 반어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오늘날 소비사회와의 유사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특별히 갈망하던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제품을 사면서도 소비에 비판적이고 상품 연출의 모든 술책을 꿰뚫어본다. 예를 들면 체취 제거제가 일정한 힘을 주겠다고 제시하는 것처럼 많은 제품이 분명 과장되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다는 사실은, 거리를 유지하는 반어적인 소비 행태를 간접적으로 요구한다.그리고 사람들은 제품 생산자가 구매자에게 비판적이고 우월하다는 좋은 감정을 주는 것처럼 약속한 것이 기대로서 점점 자리를 잡게 된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상품만일까? 상품 가격에 대한 미신도 존재한다.
높은 가격이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심리 효과를 낸다면, 여러 경우에 낮은 가격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제품을 너무 싼 가격에 얻은 것 때문에 자신이 긍정적 효과를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은 낮은 가격의 상품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더불어 오늘날에 싼 물건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싼 물건으로 스스로를 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함께 계산에 포함해야만 한다.
싼 물건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자신을 고소하게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와 직면하게 된다.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서 특별 할인 행사나 특정 유형의 제품을 값싸게 변형한 물건에 의존해야만 하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실시한 여러 실험 결과는 걱정스러울 정도다. 그들에게는 플라세보효과가 생기지 않고 노시보효과라는 위험도 있기 때문에, 사회계층적 구분이 더욱 뚜렷해질 수도 있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특권을 박탈당한 사람은 값싼 소비를 통해 패배자 역할에 고정된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물질적·사회적 상승의 전제 조건일 수 있는 여러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반대로 부유한 사람들은 좀 더 비싼 제품을 소비할 뿐만 아니라, 유행을 다루는 전문 잡지에서건 영화관에서건 혹은 상영되는 광고 영상을 통해서건 종종 플라세보효과를 높여주는 광고를 더 많이 접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높일 수 있다.
거울화, 동일시라는 문제
높은 가격의 상품을 이용하며 더 많은 자신감을 가지는 행동은 계급적인 구별 외에 또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즉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상표와 제품이 소비자에게 구원을 가져다는 어떤 사람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며, 이는 상품을 예술처럼 여기는 시각이다.
몇 세대 전부터 많은 사람은 마치 신앙고백을 하듯 예술을 대했다. 사람들은 작품에 압도당하기를 바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주게 되었다. 즉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가 여전히 기업의 영업 전략에 영향 받는다고 평가하고 자신이 제품에 압도되는 체험을 하는 건 냉정하지 못하고 순진한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예술 영역(스스로 예술 같다고 여기는 상품)에서는 압도당하고자 하는 자신들의 희망을 순수한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높은 가격의 상품으로 '순수'하게 자신을 포장한 사람을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2. 기업이 소비자를 유혹하는 방식 ‘결점의 논리’
결점에 주목하도록 만드는 것은 시장경제가 지닌 논리에 속한다. 그 논리나 시장의 틈새를 알고 감출 수 있는 사람은 매출과 이익을 늘릴 기회를 개선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기에서는 이중의 극적인 행위가 문제가 된다.
1. 우선 소비자가 결점을 우려할 만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든 다음,
2. 그들에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상적인 경우 한 제품에서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제품은 경고하는 동시에 동요하지 않도록 해준다. 불쾌한 감정과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고, 보상 욕구를 드러내 보여주면서 보상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동시에 한다.
가끔 상표가 이중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화장품 상표인 ‘클리니크(Clinique)’는 신체 손상이나 병이 있다고 신호를 보내지만, 곧 그것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알려준다. (이 과정에는) 궁극적으로 세 단계로 이루어진 역사가 구성된다.
1. 먼저 상상 속에 남은 과거에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2. 그다음에 분명하게 위기나 변형이 생겼다.
3. 그리고 세 번째 단계에서는 그것이 해결되어야만 한다.
이런 유형의 역사는 철학에 토대를 둔 문화 비평가가 모든 시대에서, 그리고 루소(Jean-Jaques Rousseau),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노발리스(Novalis) 이후 현대에서 특히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것과 맞아떨어진다.
1. 그들에게는 자연이나 신에 의해 견고하게 자리 잡았던 훌륭한 초기 상태가 존재한다.
2. 그다음 타락, 고대의 종말, 중세의 종말, 근대의 시작과 함께 무시무시한 것이 나타나는 동시에
3. 되도록이면 가까운 미래에 타락한 상태에서 벗어나 초기 상태나 그와 같은 가치를 지닌 상태로 돌아가려는 소망이 생겨난다.
좌파는 현대의 위기를 소외로, 우파는 퇴폐로 파악하고, 그 밖에 다른 사람은 중심의 상실, 신의 죽음, 정지, 속도, 과열 혹은 차가움을 이야기한다.
시장경제의 지위 상승과 문화 비판적인 줄거리를 지닌 이야기가 성공을 거두는 것이 모두 현대적 현상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문화 비평가가 시장경제, 상업화, 소비 지향주의를 공동 원인 혹은 비난을 받는 악과 결핍의 징후라고 확인했지만, 그들의 사고 형태는 시장경제와 시장을 움직이는 장치가 없었다면 커다란 반향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다른 어떤 곳보다도 소비품을 연출하는 것에서 이런 연관 관계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제품 연출에서는 현재를 문제로 삼는 일이 항상 여러 변형된 형태로 연습되고, 매번 새롭게 극적 모습으로 꾸며진다.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에서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까지,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에서 게오르게 슈타이너(George Steiner)까지, 닐 포스트맨(Neil Postman)에서 만프레드 슈피처(Manfred Spitzer)까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에서 마르틴 모제바흐(Martin Mosebach)까지 많은 문화 비판가가 주장했던 것이 피부 크림, 체취 제거제, 건강 식품, 관광 상품 소개 안내서, 공정 무역에서 반향을 얻고 확인을 받는다.
3. 가치를 말하는 기업, 과장된 착한 자본주의와 소비자는 공존할 수 있을까
기업의 과장과 소비자의 반응
시장경제의 경쟁에서는 무엇보다도 눈에 띄게 요란하고 놀라게 만드는 제품이 당연히 기회를 얻게 된다. 소비 행위에 익숙하지 않고 제품을 통해 생겨나는 느낌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때때로 소비에 마음을 빼앗긴다. (...) 강력한 은유로 낯설어지고 극단적인 약속이 적혀 있으며 순수한 단어로 시장에서 판매되는 어떤 제품과 맞닥뜨리게 될 경우, 최소한 세 가지 행동 방식이 가능하다.
1. 몇몇은 그런 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강력한 동일화)
생수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일 경우 자신들이 실제로 충분한 자격을 지녔으며 샤워용 젤이 새로운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깨끗한 양심의 일부를 담고 있는 제품을 산다면, 세계가 약간은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그들은 어렵지 않게 많은 상표와 제품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2. 반대로 다른 사람들은 과장을 원칙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도덕적 우월)
그들은 과장 속에서 부정직함, 심한 경우에는 외설을 알아차린다. (..._ 그들은 자신들이 냉소받는다고 느끼고 속임수에 넘어가고 있으며 이용당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다른 소비자들과는 달리 조작의 사악한 장난을 꿰뚫어볼 수 있을 만큼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느낀다. 만일 그들이 정말로 정직하다면, 그들이 제품 연출을 절제가 없고 기괴하며 공격적인 과장으로 폭로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들의 반소비적인 행동이 옳았다는 느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얻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분노가 그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자신이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그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3. 세 번째 유형의 소비자는 과장의 전략을 꿰뚫어보기는 하지만, 도덕적인 반응을 포기한다.(지적 즐거움)
오히려 이런 유형의 대표자들은 과장을 과장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들은 생산자의 뻔뻔함에 놀라지 않으며, 개별 제품의 변형과 과도함을 즐기고, 몹시 불합리하고 어울리지 않지만 독창적인 과정을 선호하고 즐긴다. 그들은 그것에서 특별히 시대정신의 여러 경향이 드러나는 분명한 예를 본다. 경우에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특별히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수집하기도 한다.
이 세 가지 유형 중 어느 하나에 분명하게 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 과장은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세 가지 경험, 즉 강력한 동일화, 도덕적 우월, 미학적·지적 즐거움을 좇도록 만든다. 결과적으로 과장은 ‘좋은 형식’을 얻기 위한 모든 노력과 비교해보면 좀 더 성공적인 전략임이 입증된다.
과장된 착한 자본주의의 시대의 기업과 소비자
몇십 년 전부터 복지사회가 출현한 이후로 과장의 원칙이 지배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 특히 세 번째 소비 태도인 반어적 유형이 형성되었다.
(...)
여기에서 무엇보다 작가와 예술가를 위한 새롭고도 커다란 영역이 생겼다. 소비 미학의 형식을 좀 더 자유롭고 지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소비자에게 제시할 수 있을 때만 그들은 아직도 아방가르드 예술가이거나 다시 그런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슈테파니 젱에(Stephanie Senge) 같은 예술가는, 1990년부터 여러 나라의 슈퍼마켓에서 다양한 기준에 따라 상품을 사 모았다. 그녀는 자기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모은 수집품 중에서 ‘사랑’, ‘한정판’, 혹은 ‘시간 조절’이라는 범주에 따라 각각의 제품을 가려냈다. 예를 들면,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사치를” 혹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같이 기업들이 사용했던 구호를 천에 옮겨 적고, 시위자들과 함께 거리로 나갔다. 구호는 추가로 준비한 메가폰과 휴대용 마이크를 통해 거리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젱에는, 예술적 수단을 통해서 매일 소비 때문에 도전을 받는 사람들에게, “강인한 소비자가 되도록” 자극하려 했다.
(...)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품과 영업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과장은 소비자가 과장된 동일화나 거부의 형태로 반응하도록 잘못 이끌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상표 이름을 자신의 피부에 문신으로 새겨 넣거나 상표를 따서 자녀의 이름을 지으려고 시도한다.혹은, ‘애플’ 컴퓨터같이 과장되게 선전하는 애플의 최신 제품을 폭력으로 분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많은 사람이 그 제품을 손에 넣으려는 갈망으로 가득 차서 초초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막 출시된 신형의 변형 제품을 제일 먼저 망가트리는 사람은 가장 큰 주목을 받는다.
그런 행위에서는 항상 침착하면서도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냉정함은 과장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다른 태도를 덜 냉정하다고 폄하하는 데서 가장 잘 증명된다. 결론적으로, 비싸고 배타적이고 디자인을 강조한 상표의 제품을 소유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침착하면서도 냉정한 태도로 여기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같은 제품을 파괴하는 것이 침착하면서도 냉정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특히 파괴된 유명 상표의 제품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모욕을 당하고 미쳤다고 간주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공격받는 것을 계산에 넣는다면, 그것은 일종의 담력 시험과 같다.
(...)
오늘날에는 의미론적 과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소비자는 사용자가 아니라 수용자로 불리며, 모든 것을 ‘행복한 결말’에 맞춰서 제작하는 통속소설(과장된 제품)은, 희망으로 가득 차서 더 나은 세계를 동경하는 독자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자신이 주제를 직접 정의할 때 더 많은 과장과 마찰을 만들어내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시장조사 연구는 소비자가 언제 긴장 완화를 바라고 언제 자극을 바라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연구는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고 독창적인 오락 형식을 발전시키는 일에는 적합하지 않다. 애플의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 생산자의 임무이며,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
어쨌든, 기업은 처음에는 시대정신과 시장조사를 고려해서 받아들인 것을 실제로 중요하다고 여기고, 이익 전망과는 무관하게 대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의 도덕적 참여를 기록하는 지속성에 관한 보고에서 새로운 후원 형식이나 생태 사회적 실험에 고객을 묶어두기 위한 조처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활동은 책임 있는 경영자에게 효과를 발휘한다.
그로써 고대 이후 계속해서 철학의 주제였던 ‘발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현실이 새로운 습관을 통해서만 변화 가능한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확신했던 키케로(Cicero)는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이 주제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쉴트뷔르거〔Schildbürger : ‘바보’라는 뜻의 독일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랄레부크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생겨났다. 이곳 시민은 선천적으로 아주 머리가 좋고 현명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조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았고, 결국에는 자신들의 일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들은 그 때문에 신경질이 났고, 방해받지 않기 위해 바보 행세를 하기로 했다. 그들이 한동안 바보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다음에 그들은 정말로 바보가 되어버렸다. “다른 습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들은 더는 간단히 어리석음을 내려놓을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지 환경과 작업 조건에 대해서 걱정하는 시늉만 하던 기업의 영업 분야를 책임진 경영자도 점점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행동하는 것 말고 다르게 행동하는 법을 잊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것을 아주 내면화해서 결과적으로 확신에 찬, 심지어는 선교사 같은 판단 기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의식이 넘쳐나는 그들은 자신을 교육자로 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교양, 감수성 혹은 행위로 옮기려는 마음의 준비가 부족한 소비자를 질책한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주제, 생각 혹은 이상을 전파하려는 두 번째 목표도 추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기업에서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익과는 무관하게 좀 더 극단적인 오락 형식이나 학문과 기술에서 일어날 여러 발전에 호기심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은 행동, ‘사회 연결망’ 사이트와 대규모 행사를 통해서 여태껏 그랬던 것보다 훨씬 훌륭하게 소비자의 감정과 입장을 변화시키며,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들고자 하는 추가적인 동기를 소비자에게 부여한다.
(...)
자본주의의 성장 지향이라는 고전적이고 일차원적인 틀을 따르지 않는 기업들은 이전에도 창설된 적이 있었다.
교회는 항상 이익에 맞춰서 행위를 결정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가치와 목표를 관철하는 것을 잊지 않았던 사회제도였다.
시장에서 계속 살아남아야 하지만 종종 상업적 목표만을 추구하지 않는 출판사들도 생각할 수 있다. 이 출판사들은 자신들이 지닌 강령을 통해 이념적 관심을 표현하거나 정치적 혹은 종교적인 태도를 표현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세운 강령을 따르는 출판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보다 이익을 우위에 놓는 것처럼 출판사가 전부 자본주의 논리 외에 다른 목표를 추구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반대로 두 종류의 출판사를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 대량생산 제품으로서의 책은 계속해서 수요를 따르게 될 것이고, 오직 매출이라는 관심에서만 시장에 공급될 것이다.
반면, 지위를 보여주거나 특정 가치를 지지하는 상징적 제품 유형인 책은 지금껏 그랬던 것보다 빈번하게 생산자의 이념적이거나 허구적인 참여를 증명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을 ‘즐거움과 교훈’이라는 고전적 원칙에 따라 매력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명 의식을 충족하기 위해 많은 돈을 사용한다. 그들이 바라는 이익은 더 많은 자본이 아니라 늘어난 추종자의 수다.
(...)
성장이 아니라 가치가 중요해지는 이런 미래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변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모험을 즐기는 열정적인 신봉자만 기업가로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분파의 대표자나 극단적인 견해를 지닌 사람은 물론, 종교적·세계관적·정치적 이데올로기 생산자들도 팜플렛이나 설교보다는 소비품으로 좀 더 쉽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마음을 빼앗아 선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소비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즐겨 제기했던 비난인 소비자 조작은, 대규모로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슈퍼마켓은 앞으로는 한 유형의 제품 전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에 들어맞는 제품만을 팔기로 결정할 것이다. 그들의 역할은 오늘날 커다란 규모의 잡지가 차지하고 있는 역할과 유사하다. 그 잡지를 위해 수많은 편집자와 독립적인 작가들이 동시에 글을 쓴다.
권력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은 우선 하나의 상표를 만들어내고, 제품을 고안하고, 동시에 다른 가치를 대표하는 상표를 사지 말라고 호소한다. 혁명가들은 앞으로는 방송국만을 점령해서는 안 되고, 냉장 진열대와 잡화점의 상품 종류를 바꾸어야만 할 것이다. (...) 미래의 독재자는 이미지 편집자와 제품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서 독재정치를 하게 될 것이다.
늦어도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의 기업이나 분야가 아직 특정 가치를 지향하지 않았던 순수한 자본주의의 시대가 지나간 것을 애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이미 사람들은 모든 소비 행위와 동시에 생겨나는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 지치게 되는 순간, 독점 자본주의가 지배했던 이전의 멋진 시대에는 최소한 반쯤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며, 그때에는 자신이 선전의 대상물이 될 수도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사람들은 생산자가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계속해서 얻으려는 단 하나의 유일한 관심만을 지녔던 것조차 우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 지은이 소개
볼프강 울리히(Wolfgang Ullrich, 1967~)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카를스루에 조형학교에서 예술학과 방법론을 가르치고 있다.
소비를 부정적 현상으로 보았던 전래의 이론에 맞서면서도, 그만큼 오늘날의 소비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보낸다. 울리히는 소비문화를 연구하면서 소비 상품들이 개인이나 사회에 대해 본격적으로 위험을 미치게 되는 여러 요소들을 발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상품 미학이 하나의 긍정적인 교육적 효과를 지녀야만 한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오늘날의 소비 상품들은 다른 대중매체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울리히의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샤워 젤, 티백, 요구르트 같은 상품들을 지금껏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될 것이며, 소비에 대한 결정을 새로운 기준으로 내리게 될 것이다.
울리히가 지은 책으로는 《정제된 예술 : 모사 훈련(Raffinierte Kunst : Übung vor Reproduktion)》, 《소유욕 : 소비문화는 어떻게 작동하는가?(Habenwollen: Wie funktioniert die Konsumkultur?)》, 《불명료함의 역사(Die Geschichte der Unschärf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