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 서머싯 몸이 뽑은 최고의 작가 10명과 그 작품들
서머셋 모옴 지음, 권정관 옮김 / 개마고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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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엔 위대한 작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을 정교한 논리로 치밀하게 분석한 평론집 내지는 중수필로 생각했습니다. 하여 새 책을 대할 때 느끼는 설렘보다는 진입장벽을 대한 듯 막막함이 앞섰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웬걸 이건 거의 소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픽션보다 더 리얼하게 작가들의 실상을 묘파함은 물론 이를 잘 버무려 맛깔스런 얘기로 엮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열 명의 작가와 그들의 대표작에 대해 별반 배경지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 내밀한 영역까지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말미에 있는 소설가-미덕과 결함의 이중주 부분이었습니다. 특히나 열 명의 작가들을 등장인물로 설정한 가상의 파티 대목은 인상적이다 못해 웃음까지 나왔습니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룹을 지어 넓은 방 여기저기로 흩어졌을 때, 오스틴 양은 그들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를 본 스탕달은 여자에 관한 한 도무지 수줍음을 극복할 수 없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수작을 거는 것이 거의 자신의 의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재미있다는 듯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스틴의 모습에 당황한 스탕달은 그녀를 지나쳐 허먼 멜빌과 이야기 중이던 헨리 필딩을 흘깃 쳐다본 후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는 발자크, 디킨스, 플로베르 무리에 끼어들었다. 오스틴은 방해받지 않고 초대받은 나머지 손님들을 혼자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을 즐겼다. 그녀는 브론테 양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지껄여대던 작고 못생긴 남자에게서 벗어나 한쪽 구석에 있는 소파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가엾어라. 어깨 부분은 부풀고 소맷부리는 좁은 저런 옷을 입고 있다니! 너무 형편없는 옷차림이잖아. 맑은 눈에다 머리카락도 예쁜데 왜 저렇게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하고 있을까? 애처롭게도 마치 가정교사 같은 꼴을 하고 있잖아. 두말할 필요 없이 목사의 딸일 테고 출신 성분은 매우 천할 테지. (474쪽)

특별하고 비범한 소설가들의 이야기를 역시 유별난 방식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흥미 있게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데만 함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불멸의 작가들이 지니고 있는 위대한 상상력의 원천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몸은 어떤 특징을 지닌 작품들이 하나 같이 위대하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는가 하는 점에 착안하여 그 비결을 실타래 풀듯 가지런히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들의 감정은 강하고 심지어는 열정적이기까지 했으며, 풍부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관찰력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자신이 창조한 인물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기뻐하면 함께 즐거워하고 그들이 고통 받으면 함께 괴로워할 수 있었다. 또한 궁극적으로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상상한 것을 구현하고 형상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482쪽)

소설가가 지녀야 할 덕목들을 잘 함축하고 있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몸은 우리의 선입견을 깨는 몇 가지 지적을 덧붙여 약간 의아하게도 만들었습니다. 물론 곧 그의 주장에 공감하게 되기는 했지만요. 우선 작가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지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존재하는데 이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작가의 관심은 명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례에 있고 그런 구체적인 것들만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소설은 관념의 결정체가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재미있는 놀이 같은 것인데 여기에 고도의 지적인 측면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또 하나 소설가는 훌륭한 문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부분적으로 옳은 정도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소설가의 필수적인 자질은 글쓰기 능력 보다는 오히려 힘과 생명력, 상상력, 예리한 관찰력, 인간 본성에 대한 안목, 풍부한 창의력이나 지력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아 있는 글이 우러나올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몸은 글의 말미에서 상궤를 벗어난 일탈적인 주장을 하여 논지를 흐리는 것은 아닌가 약간의 걱정도 되었습니다. 작가들의 이런 위대한 재능, 지성과 감성에다가 외적인 영감이 더해져야 비로소 그들 작품이 빛을 발한다는 것입니다. 의식의 영역을 초월한 신비주의적인 견해여서 내심 석연치 않았지만 그가 든 예를 따라가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영감은 작가로 하여금 자신이 그러한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할 어떤 것을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어서, 후일 뒤돌아보며 이렇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중략) 샬럿 브론테는 자신의 동생인 에밀리가 그녀의 지식으로는 절대 알 리 없는 사물과 사람에 대해 써내려가는 것을 보고 당황스러워했었다. 작가가 이 환영할 만한 힘에 일단 사로잡히면 갖가지 생각, 심상, 비유, 구체적 사실들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그는 마치 하나의 도구, 말하자면 구술하는 것을 받아쓰는 속기사에 불과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작가가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다 한들 이 신비스런 어떤 것의 영향이나 힘이 미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485쪽)

그리하여 불멸의 작가가 지닌 위대한 상상력의 원천은 작가의 지성과 감성이 결합된 빼어난 재능에다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운명적인 만남의 상황이라는 외적인 여건이 상호 조응하는 지점에 있음을 밝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몸은 이렇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수법으로 재미있게 짜 맞추어 작가들의 내면, 그 은밀한 세계의 일단을 또렷하게 그려내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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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아이 2008-02-29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고서 며칠째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리뷰를 보니깐 더 이상의 고민은 쓸데없는 짓이겠네요. ^^ 안또니우스님께서 이 책으로 인해서 얻으신 좋은 감정과 감동들이 글에서도 충분히 전달되네요. 리뷰 잘 보고 갑니다요.
 
미래의 물결 - 자크 아탈리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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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상상력 직관력은 익히 알고있었지만 이번 책은 이론적배경까지 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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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리스 로마 신화 1
한도훈 지음 / 은행나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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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업인지라 늘 마음결 가다듬어 의연하게 다가가고자 스스로 다잡곤 합니다. 간혹 억장 무너지는 일이 있어도 교육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추스르려 마음먹습니다. 그래도 어이하지 못하고 뚜껑이 열릴 때면 되뇌는 말이 있습니다. 피그말리온! 아이들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지 않으려 언제부턴가 자기 암시를 걸듯 입에 올리곤 합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변화될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간곡하게 염원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열어갈 미래의 일정 부분은 나의 머리와 가슴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주제넘게 생각하며 말입니다.

요즘 들어선 우리 아이들에게 생태적 감수성을 심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필이 꽂혔습니다. 이 총체적인 문명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생태론적 세계관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 첫 단추를 끼우는 일이 감성적으로 자연을 품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런 의식을 내면에 붙박이게 할까 고민하다가 가이아 이론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하여 틈날 때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넣어 그럴듯한 얘기를 꾸미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곰곰 따져보니, 아뿔싸 나의 이야기는 온통 그리스 로마 신화 일색이라는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무모하게 치닫는 성장지상주의에 대해서는 이카로스의 날개라고 공박하고 인간의 고달픈 숙명을 떠올릴 땐 시지포스 얘기를 처연하게 주저리주저리 엮어나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입니다. 어느새 그리스 로마 신화는 내면에 깊이 스며들어 의식의 일단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도 크게 예외는 아닐 터, 그러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책이 범람할 밖에요. 그런데 관련된 책은 무수히 많지만, 동양으로 치자면 가히 삼국지에 비길 정도로, 읽다보면 조금씩 마뜩찮은 구석을 대부분 지니고 있어 마음 한편 찜찜하기 일쑤입니다. 근자에는 만화 시리즈가 석권하였는데 그림으로 보여주니 오히려 발산적 상상력을 상당 부분 제약하는 듯하여 아쉬운 감을 금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신화 원전을 그대로 소개한 책이나 관련 해설서도 꽤 출간되었는데 지루한 감을 떨칠 수 없거나 교훈적인 내용 일색이어서 또 그렇고 그런 거구나 하는 식상함에 책을 놓아버리고 만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원작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흥미진진함을 잃지 않는, 그리하여 머리와 가슴을 쏙 빨아들일만한 흡인력을 지닌 저작에 대한 목마름이 늘 있어왔다 하겠습니다.

이번에 나온 <소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러한 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해 줄 듯 합니다. 가볍게 읽히면서도 의미심장함을 견지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입니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끌고 나감으로써 신화 자체가 갖고 있는 스토리 라인의 극적인 재미를 배가한 것은 물론, 신화가 지니고 있는 내밀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는 장치를 군데군데 깔아두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신화에 내재되어 있는 심원한 의미를 또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나름의 주제를 설정하여 산발적으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맥락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먼저 짚어볼 수 있는 것이 신화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라는 사실에 대한 일깨움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가상적인 신들의 세계에 대해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모습과 생활에 빗댄 인간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질투, 야망과 모략, 전쟁과 모험 등이 교차하는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바로 인간 세계의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화라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통해 진면목을 비로소 확인하여 존재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작가는 가공으로서의 신화에 열광할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라고 슬몃 권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또 하나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이 신화는 인간에 의해 씌어졌다는 자각입니다. 이런 인식은 인간의 필요가 신화를 낳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터입니다. 더 나아가 저자는 신화가 인간을 위해 씌어졌다는 사실에도 굵은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의 물질적, 정신적 발전을 고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신화라는 형식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폴론의 태양마차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사한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루게 되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부터 인간 사회의 유지 존속에 꼭 필요한 정신적인 가치인 사랑의 감정을 배운 것을 의미 있게 자리매김할 밖에요. 그리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피그말리온 얘기에서 인간 사회의 진보를 염원하는 인류의 의지에 열렬한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신화가 인간의 발전을 위한 합목적적 필요에서 인간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을 밝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화도 결국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것임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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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꾸와 오라이 - 황대권의 우리말 속 일본말 여행
황대권 글.그림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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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야기만 나오면 어린 학생들까지 파르르 떠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일시적으로 의식이 판단 정지 상태가 되는 듯 오로지 부정적인 면만 떠올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근거도 없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정부 차원의 종군 위안부 동원이라는 뻔한 사실까지 부인하며, 심지어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들에 대해 그들의 근대화를 도운 은인 국가라고 강변하며 동아시아의 맹주로 자임하는 후안무치한 모습에 할 말을 잃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실상은 이와 딴판입니다.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의식과 행동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본 만화나 패션 잡지에 열광하는 것은 기본이고, 요즘은 일본 소설에 탐닉하는 매니아층까지 형성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일본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별반 거부감이 없는 듯합니다. 만화나 패션 잡지, 소설책을 통해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에 일본어가 스며들어 있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일본어 사용 빈도는 훨씬 더 잦은 편입니다. 술자리에서 옆에 시중드는 사람들 몰래 자기들만의 대화를 나누고자 할 때 일본어를 사용하여 은밀히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일제시대를 직접 경험한 세대들은 물론, 그 이후에 출생한 이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렇게 된 데는 아마 군대 생활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무대뽀’로 통하는 선임하사관의 지시에 따라 무수히 ‘가라’ 공문을 양산하고, ‘야마’ 굴리지 말고 ‘구루마’끌고 사역이나 열심히 하라고 독촉 받는 등 거의 일본어 일색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경험이 이후의 언어생활에도 관성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이런저런 일본말과 일본식 어법에 워낙 익숙하여 어떤 때는 일본어인지도 모르고 스스럼없이 쓰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더러는 농담조로 “오늘 작업 시마이데쓰.”라며 웃음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황대권 님도 말했듯이 일본에 관련된 것이라 하여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우리말이 버젓이 있는데도 부득부득 일본말을 골라 쓰며 태연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의식에 배어 있는 문화적 외세 의존 경향인 것입니다. 빼어난 언어와 문자를 보유하고 있고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운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이웃 나라의 말, 그것도 우리를 폭압적으로 지배하여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는 상대인 일본의 그것을 쓴단 말입니까?  의지적 결단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물론 저도 단단히 마음먹어야 할 부류의 인간임에 틀림없고요.

하여 배척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어 사용이 만연하고 있는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여 문제로 인식하고 가급적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을 찾아내어 바르게 사용하려는 의식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개인 차원의 의식 개혁뿐 아니라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할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황대권 님의 <빠꾸와 오라이>는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실상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미래지향적으로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 의미심장한 권고와 제언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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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7대 불가사의 - 과학 유산으로 보는 우리의 저력
이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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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탄을 넘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우리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은 갖고 있다 자부하는 편이었는데 웬걸, 상식의 범주를 훨씬 일탈하는 새로운 사실에 속수무책으로 압도당하며 터무니없이 빈약한 내공을 자인해야 했습니다. <한국의 7대 불가사의>에는 아예 모르고 있었거나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나 중요한지 미처 생각 못했던 우리의 불가사의한 문화유산들로 빼곡합니다.  의미 없이 잊혀져있던 소중한 우리 것들의 가치가 도드라지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나의 그릇을 아프게 깨닫는 경험도 더불어 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무릎을 치게 만든 것은 다뉴세문경이었습니다. 이 청동 거울은 21.2센티미터 안에 약 13,000개의 원과 선이 0.3밀리미터 간격으로 채워져 있다 합니다. 선과 골의 굵기는 약 0.22밀리미터이고 골의 깊이는 0.07밀리미터 정도이며 한 곳도 빈틈없이 절묘하게 새겨져 있다 합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단 말입니까? 그 시절에 될 법이나 한 일입니까? 가히 나노 기술을 방불케 하는 다뉴세문경의 빗금 장식 대목을 보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정말 경탄 정도의 말로는 그 충격을 제대로 표현 못했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슬몃 의심도 되었습니다. 그 정밀하게 그은 것이 청동판에 직접 새긴 게 아니라 주물로 녹여 만든 완제품이라니요. 거푸집을 어떻게 그리 정교하게 제작할 수 있단 말입니까? 가희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고인돌 별자리는 또 무어란 말입니까? 그 시절에 어떻게 복잡하고 오묘한 천문의 이치를 깨달아 이를 정교한 별자리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는지요, 정말 의문이 갑니다. 또 이를 계승 발전시킨 천상 분야 열차 지도는 유례없는 거의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렀다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인 문자체계인 우리의 한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자모음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아. 설. 순. 치. 후 등 5가지 자음을 각각 오행의 나무. 불. 흙. 쇠. 물에 대응시켜 철학적 의미까지 담았으며, 모음도 음양설과 태극설을 원용하여 고안하는 등 사상과 과학이 오롯이 녹아있는 관념 문화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거나 그게 무어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하고 자조하고 있던 소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아본 작가의 탁월한 안목에 대한 것입니다. 또 불가사의한 우리 문화유산의 진면목을 또렷이 드러내어 새삼 의미를 부여한 다음 잘 포장하여 누구나 쉽게 값어치를 알아볼 수 있도록 안내해준 작가의 의지와 필력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것은 물론 풍부한 배경지식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 것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이런 것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남다른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작가의 빼어난 문장력이 실감을 더하게 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고요.


그리하여 <한국의 7대 불가사의>는 경탄과 충격, 그리고 놀라운 지적 충만감, 더불어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까지 느낄 수 있는 뜻 깊은 경험을 제공해주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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