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꾸와 오라이 - 황대권의 우리말 속 일본말 여행
황대권 글.그림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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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야기만 나오면 어린 학생들까지 파르르 떠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일시적으로 의식이 판단 정지 상태가 되는 듯 오로지 부정적인 면만 떠올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근거도 없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정부 차원의 종군 위안부 동원이라는 뻔한 사실까지 부인하며, 심지어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들에 대해 그들의 근대화를 도운 은인 국가라고 강변하며 동아시아의 맹주로 자임하는 후안무치한 모습에 할 말을 잃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실상은 이와 딴판입니다.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의식과 행동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본 만화나 패션 잡지에 열광하는 것은 기본이고, 요즘은 일본 소설에 탐닉하는 매니아층까지 형성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일본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별반 거부감이 없는 듯합니다. 만화나 패션 잡지, 소설책을 통해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에 일본어가 스며들어 있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일본어 사용 빈도는 훨씬 더 잦은 편입니다. 술자리에서 옆에 시중드는 사람들 몰래 자기들만의 대화를 나누고자 할 때 일본어를 사용하여 은밀히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일제시대를 직접 경험한 세대들은 물론, 그 이후에 출생한 이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렇게 된 데는 아마 군대 생활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무대뽀’로 통하는 선임하사관의 지시에 따라 무수히 ‘가라’ 공문을 양산하고, ‘야마’ 굴리지 말고 ‘구루마’끌고 사역이나 열심히 하라고 독촉 받는 등 거의 일본어 일색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경험이 이후의 언어생활에도 관성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이런저런 일본말과 일본식 어법에 워낙 익숙하여 어떤 때는 일본어인지도 모르고 스스럼없이 쓰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더러는 농담조로 “오늘 작업 시마이데쓰.”라며 웃음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황대권 님도 말했듯이 일본에 관련된 것이라 하여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우리말이 버젓이 있는데도 부득부득 일본말을 골라 쓰며 태연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의식에 배어 있는 문화적 외세 의존 경향인 것입니다. 빼어난 언어와 문자를 보유하고 있고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운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이웃 나라의 말, 그것도 우리를 폭압적으로 지배하여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는 상대인 일본의 그것을 쓴단 말입니까?  의지적 결단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물론 저도 단단히 마음먹어야 할 부류의 인간임에 틀림없고요.

하여 배척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어 사용이 만연하고 있는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여 문제로 인식하고 가급적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을 찾아내어 바르게 사용하려는 의식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개인 차원의 의식 개혁뿐 아니라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할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황대권 님의 <빠꾸와 오라이>는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실상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미래지향적으로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 의미심장한 권고와 제언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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