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화폐적 자본과 현실적 자본 (Ⅰ)

 

신용 제도와 관련하여 고찰해야 할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화폐 자본 그 자체의 축적이 실물 자본의 축적, 곧 확대 재생산의 지표로 기능하는 범위에 관한 문제이다. 이자 낳는 자본 (화폐 자본)에 국한되어 사용되는 ‘자본의 과다’라는 표현이 단순히 산업적 과잉 생산의 특수한 발현 형태인지, 또는 그와는 독립된 별개의 현상인지 규명해야 한다. 아울러 화폐 자본의 과잉 공급이 대량의 현실적 화폐 (금, 금주화, 은행권) 축적과 반드시 일치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현실적 화폐의 과잉이 곧 대부 자본의 과다라는 현상의 발현이자 형태인지 분석하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화폐의 핍박과 대부 자본의 부족이 현실적 자본 (상품 자본과 생산 자본)의 결핍을 어느 정도까지 대변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화폐의 핍박이 실물 자본의 문제와 무관하게 화폐 그 자체의 절대적 부족이나 유통 수단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현상인지에 대한 논리적 검토가 요구된다.

 

지금까지 고찰한 화폐 자본 (화폐 재산 일반) 축적의 특수 형태는 결국 노동에 대한 청구권의 축적에 귀결된다. 국채 형태의 자본 축적은 이미 규명한 바와 같이, 조세 총액 중 일정액을 수취할 권리를 지닌 채권자 계급의 형성을 의미할 뿐이다. 특히 채무의 축적조차 자본의 축적으로 현상한다는 사실, 예컨대 예금의 증가가 은행 자본의 축적으로 간주되는 현상은 신용 제도로 인해 왜곡이 극단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차입을 매개로 이미 오래전에 소비된 자본에 대하여 발행된 이 채무 증서인 국채는 비록 실체적 자본이 소멸한 종이 사본에 불과할지라도, 시장에서 매각이 용이하여 자본으로 재전환될 수 있는 한 소유자에게는 여전히 자본으로 기능한다.

 

주식회사, 철도, 광산 등의 소유권 증서인 주식은 실질적으로 현실적 자본에 대한 권리 증서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 증서는 현실적 자본에 대한 직접적인 처분권이나 자본 회수권을 부여하지 않으며, 단지 해당 자본이 창출하는 잉여 가치의 일부를 수취할 법적 청구권만을 제공할 뿐이다. 선하 증권이 화물과 별개로 가치를 획득하듯, 소유권 증서는 현실적 자본의 ‘종이 사본’이 되어 실재하지 않는 자본을 명목상으로 대표하게 된다. 현실적 자본은 법인인 주식회사 내에 별도로 존재하므로, 이 사본의 매매가 자본 자체의 소유 구조를 변경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소유권 증서는 일정 수입을 보장하고 증서 매각을 매개로 투하 자본을 회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자 낳는 자본의 형태를 취한다. 주식의 축적이 철도, 광산, 해운 등의 실물 축적을 대변하는 한, 이는 현실적 재생산 과정의 확대를 의미하며, 이는 동산 과세액의 증가가 동산 자체의 확대를 시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주식이 독립된 상품으로 자본 가치로 유통되는 사본인 이상, 그 가치는 가공적 성격을 띠며 현실적 자본의 가치 변동과는 무관하게 운동할 수 있다. 특히 주가는 이윤율 저하 경향에 따른 이자율 하락에 대응하여 필연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자본주의 생산이 발달할수록 명목 가치에 기반한 이 가공적인 부는 더욱 증대된다. 이러한 소유권 증서의 가격 변동에 따른 손익과 자본가 수중으로의 주식 집중은 점차 투기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로부터 투기는 노동이나 직접적 폭력을 대신하여 자본을 획득하는 독자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 이와 같은 가상적 화폐 재산은 오늘날 개인의 자산뿐만 아니라 은행 자본에서도 매우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화폐 자본의 축적은 직업적 화폐 대부자인 은행업자, 곧 사적 화폐 자본가와 국가·지방 정부 및 재생산 과정에 종사하는 차입자 사이를 매개하는 자들의 수중에 부가 집중됨을 의미할 수 있다. 이는 신용 제도의 비약적 팽창에 힘입어 사회 전체의 신용이 은행업자의 사적 자본으로 전용되기 때문이다. 은행업자는 자본과 수입을 상시로 화폐 형태나 화폐에 대한 직접적 청구권의 형태로 보유한다. 이들 계급이 주도하는 부의 축적 방식은 현실적 축적 과정과는 상이하게 전개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현실적 축적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게 된다.

 

분석의 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한정하면 다음과 같다. 국채, 주식 및 모든 종류의 유가 증권은 이자 낳는 자본으로 대부 자본의 투자 대상이자 대부의 한 형태일 뿐, 그 자체가 대부 자본 (그것에 투하되는 자본)인 것은 아니다. 재생산 과정에서 신용이 직접적인 기능을 수행할 때, 산업가나 상인이 어음을 할인받거나 대부를 받고자 할 때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유가 증권 (주식이나 국채)이 아닌 화폐이다. 따라서 화폐 확보가 어려워진 상황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이러한 유가 증권의 매각이나 담보 제공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핵심은 대부 자본의 축적, 특히 대부 가용한 화폐 자본의 축적이다. 이는 가옥, 기계 등 고정 자본의 대부를 의미하지 않으며, 산업가와 상인들이 재생산 과정의 순환 속에서 상호 간에 상품 형태로 제공하는 대부와도 구별된다. 본 고찰은 오직 중개자인 은행업자가 산업가와 상인에게 집행하는 화폐 대부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재생산 과정에 종사하는 자본가들이 상호 간에 제공하는 신용인 상업 신용의 분석에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상업 신용은 신용 제도 전반의 토대를 형성하며, 이를 대표하는 수단은 확정된 지불 기일을 명시한 채무 증서 (‘후불 증서’)인 환어음이다. 이 과정에서 각 경제 주체는 신용의 제공자인 동시에 수취인이 된다. 본 고찰에서는 우선 은행업자의 신용을 상업 신용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판이한 요소로 간주하여 논외로 한다.

 

환어음이 상인 간의 이서를 거쳐 별도의 할인 없이 지불 수단으로 유통될 경우, 이는 채권이 A에서 B로 이전되는 것에 불과하며 사태의 본질적 구조에는 변화가 없다. 단지 채권자의 지위가 승계될 뿐이며, 결제 과정에서 화폐의 개입은 생략될 수 있다. 예컨대 방적업자 A가 면화 중개인 B에게, B가 수입업자 C에게 지불 의무가 있다고 전제하자. C가 면사 수출을 겸하고 있다면, C는 A로부터 면사를 구매하면서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이 경우 A는 C로부터 받은 B의 어음을 활용해 B에 대한 자신의 채무를 결제할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극히 일부의 차액만이 화폐로 정산된다. 결과적으로 이 거래 전체는 면화와 면사 간의 실물 교환을 매개할 뿐이며, 각 중개인은 원료 재배자와 생산자를 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순수한 상업 신용의 순환과 관련하여 다음 두 가지 사항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상호 채권의 결제는 자본의 환류, 곧 연기된 상품 판매 (C-M)의 실현 여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방적업자가 수취한 환어음의 대금 지불은 면제품 제조업자가 시장에 내놓은 제품을 만기 전까지 판매하여 대금을 회수할 때 비로소 담보된다. 따라서 이러한 상환 구조는 재생산 및 생산·소비 과정의 원활성에 기반하며, 각 경제 주체의 지불 능력은 타인의 지불 능력과 연동된다. 어음 발행 시 자신의 사업이나 제3자의 사업에서 발생할 자본 환류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예상된 환류가 지체될 경우, 지불은 오직 어음 발행인이 보유한 준비 자본에 의존하여 이행될 수 있다.

 

둘째, 상업 신용 제도가 현금 지불의 필요성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임금이나 조세와 같은 주요 비용은 상시 현금으로 결제되어야 하며, 어음을 수취한 경제 주체가 자신의 채무 만기에 직면했을 때 수취 어음의 만기가 도래하지 않았다면 별도의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재생산의 원활한 순환에 기반한 (제Ⅱ권 제3편 제20장 6절) 채권·채무의 상쇄는 불변 자본 생산자 간의 교환이나 생산의 상향 연쇄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발생할 뿐이며, 모든 거래 체계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생산 부문 간 생산물의 성격이 상이하여 재생산 과정의 요소로 환류되지 않는 경우, 해당 채권은 반드시 화폐로 결제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상업 신용의 한계는 (1) 산업가와 상인의 준비 자본 규모 및 자본 환류의 안정성에 규제된다. (2) 환류는 시간적 지체, 가격 하락, 공급 과잉 등 각종 변수에 따라 불확실해지며, 어음 기간이 장기화될수록 이러한 위험성과 준비 자본의 필요량은 증대된다. 특히 노동 생산성의 향상과 생산 규모의 확대로 인해 (1) 시장이 원격화됨에 따라 (2) 신용의 장기화와 (3) 투기적 요소의 개입은 불가피해진다. 대규모 생산물 전체를 상업 자본만으로 수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신용은 필수적이며, 생산 가치의 증대와 시장의 확장은 신용의 규모와 기간을 동반 확장시킨다. 이 과정에서 생산 과정의 발달이 신용을 확대하고, 다시 신용이 산업 및 상업 활동을 촉진하는 상호 작용이 발생한다.

 

상업 신용을 은행 신용과 분리하여 고찰할 때, 상업 신용의 규모가 산업 자본의 확장과 비례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단계에서 대부 자본과 산업 자본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범주를 형성한다. 대부되는 자본은 곧 상품 자본으로, 이는 개인적 소비로 이어지거나 생산 자본의 불변적 요소를 보전하는 데 투입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부 자본으로 현상하는 것은 재생산 과정의 특정 단계에 놓인 자본이며, 매매를 거쳐 소유권이 이전된 후 약정된 기일에 그 등가가 지불되는 구조를 취한다.

 

예컨대 면화가 어음과 교환되어 방적업자에게 인도되고, 생산된 면사가 다시 어음과 교환되어 직포업자에게, 직포는 상인과 수출업자를 거쳐 최종적으로 해외 시장의 구매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상정할 수 있다. 이 연쇄적인 이전 과정 동안 면화는 완제품으로 변모하고, 최종 판매를 거쳐 획득한 등가는 다시 새로운 원료를 구매하는 자본을 환류되어 재생산 과정에 재투입된다. 이처럼 재생산의 각 단계는 신용을 매개로 하며, 방적업자나 직포업자 및 상인은 해당 물품에 대한 즉각적인 현금 지불 없이 생산과 유통을 지속한다.

 

이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된다. 첫째는 신용이 상품 생산의 실질적이고 순차적인 단계들을 매개하는 국면이며, 둘째는 완성된 상품이 상인 간의 수송과 이전 (C-M)을 거치며 유통되는 국면이다. 비록 후자가 단순히 소유권의 이전을 매개할 뿐이라 할지라도, 상품은 그 과정 전반에서 끊임없이 유통 행위 속에 머물며 재생산 과정의 필수적 일환을 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 대부되는 대상은 결코 유휴 자본이 아니라, 소유자의 수중에서 필연적으로 형태를 변경해야 하는 자본이다. 곧, 소유자에게는 단순히 상품 자본의 형태로 존재할 뿐이어서 재생산을 위해 최소한 화폐 형태로 재전환되어야만 하는 자본을 의미한다. 이 국면에서 신용이 매개하는 것은 상품의 상품 형태 (C-M 및 M-C)과 현실의 생산 과정 그 자체다. 재생산 순환 과정에서 은행 신용을 제외한 상업 신용의 규모가 방대하다는 사실은, 대부를 위해 유리한 투자처를 모색 중인 유휴 자본이 많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재생산 과정 내에서 자본이 고도로 가동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여기서 신용이 수행하는 매개적 기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산업 자본가의 관점에서는 산업 자본을 한 공정에서 다음 공정으로 이전시키고,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된 생산의 제반 영역들을 연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둘째, 상인의 관점에서는 상품을 한 상인으로부터 다른 상인에게 수송 및 이전시키면서, 화폐와의 교환을 매개로 한 최종적 판매를 실현하거나 다른 상품과의 교환을 완결 짓는다.

 

이 국면에서 신용의 최대 한도는 산업 자본의 가장 완전한 운용, 곧 소비의 제약을 도외시한 채 산업 자본의 재생산력을 극한으로 발휘하는 상태와 일치한다. 이러한 재생산 과정의 극대화는 소비의 한계를 스스로 확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본의 생산력 발휘가 한편으로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수입을 늘려 개인적 소비를 증대시키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과정 자체가 생산적 소비의 질적·양적 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재생산 과정의 원활한 순환에 따라 환류가 담보되는 한 상업 신용은 지속적으로 확장되며, 이러한 신용의 증대는 재생산 과정 자체의 외연적 확대에 그 근거를 둔다. 그러나 환류가 지체되거나 시장 포화 및 가격 하락으로 인해 정체가 발생하면, 산업 자본의 과잉 상태가 가시화된다. 이때의 과잉은 자본이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형태의 과잉을 의미한다. 곧, 방대한 상품 자본이 존재하나 매각되지 않으며, 대규모 고정 자본 또한 재생산의 정체로 인해 가동이 중단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러한 국면에서 상업 신용은 급격히 수축된다. 그 원인은,

 

첫째, 산업 자본이 형태 변화를 완결하지 못한 채 재생산의 특정 단계에 정체되면서 유휴화되기 때문이다.

 

둘째, 재생산 과정의 연속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붕괴하기 때문이다.

 

셋째, 상업 신용 자체에 대한 수요가 감퇴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방적업자는 생산을 축소하고 미판매된 면사 재고를 대량으로 보유하게 되므로, 신용에 기반한 면화 구입의 유인이 사라지며, 상인 또한 과잉 재고로 인해 신용에 기반한 추가 상품 매입을 중단하게 된다.

 

재생산 과정의 확대나 원활한 가동에 교란이 발생하면 신용의 결핍이 나타나며, 신용을 매개로 한 상품 매입은 극도로 어려워진다. 특히 신용 판매를 기피하고 현금 결제를 고집하는 현상은 산업 순환 중 파국을 통과한 직후 국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파국 직전의 공황 단계에서는 모든 주체가 판매할 상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처분이 저지되며, 특히 누적된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매각이 절박해진다. 이로 인해 재생산 과정에 묶여 있는 자본량은 신용 부족이 정점에 달하고 은행 할인율이 최고조에 이르는 바로 그 시기에 최대 규모에 도달한다. 이미 투하된 자본은 재생산의 정체로 인해 사실상 유휴 상태에 빠지며, 공장은 가동을 멈추고 원료와 완제품은 시장에 과잉 축적된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 상황을 생산 자본의 절대적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오히려 이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축소된 재생산의 적정 규모에 비해서나, 위축된 사회적 소비 수준에 비해서나 생산 자본이 극심한 과잉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오직 산업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전제하자. 아울러 총자본의 원활한 보충을 저해하는 가격 변동이나 신용 제도에서 기인하는 투기적 거래 및 사기적 사업 등 부수적 요인을 배제한다면, 공황은 생산 부문 간의 불비례나 자본가의 소비와 축적 사이의 불일치만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생산에 투하된 자본의 회수는 금리 생활자와 같은 비생산 계급의 소비 능력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반면, 노동자의 소비 능력은 임금 규제 법칙과 더불어, 오직 자본가 계급의 이윤 창출에 기여할 때만 고용될 수 있다는 구조적 한계에 종속된다. 결국 모든 실질적 공황의 궁극적 원인은 사회의 절대적 소비 능력만이 생산의 한계인 양 생산력을 맹목적으로 확장하려는 자본주의적 맹동과, 그에 대비되는 인민의 빈곤 및 제한된 소비 능력 사이의 모순에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에서 생산 자본의 실질적 부족이 발생하는 유일한 경우는 흉작으로 인해 식량이나 주요 공업 원료가 절대적으로 결핍되는 상황뿐이다.

 

이러한 상업 신용의 토대 위에는 실질적인 화폐 신용이 결부되어 있다. 산업가와 상인 간의 대부는 은행업자 및 화폐 대부자의 화폐 대부와 밀접하게 결합한다. 어음 할인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부는 명목적으로는 어음의 매매이나, 실질적으로는 어음 중개인이 은행의 신용을 빌려 주는 것이며, 은행은 다시 산업가, 상인, 노동자 (저축 은행), 지주 등 비생산 계급의 예금을 재원으로 대부를 실행하는 구조다. 이로부터 개별 자본가는 막대한 준비 자본을 보유하거나 현실적 환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융통 어음의 남발이나 어음 발행만을 목적으로 한 허위 상품 거래는 순환의 전 과정을 극도로 왜곡한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환류가 중단되어 화폐 대부자와 생산자가 잠재적 손실을 입고 있음에도, 사업은 겉보기에 원활하고 건전한 것처럼 위장된다.

 

따라서 공황 직전의 사업 상태는 언제나 기만적일 만큼 건전해 보이기 마련이다. 1857년 8월 공황이 폭발하기 불과 한 달 전까지,『은행법 (1857, 1858)』 조사에 소환된 오브스톤을 비롯한 은행 이사들과 상인들이 경제적 번영을 예찬했던 기록은 이를 뒷받침하는 명백한 증거다. 공황의 역사가인 투크조차 『물가와 통화 상태의 역사』 (1848: 329-348; 뉴마치와 공저. 1857: 218-229)에서 이러한 착시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은 이례적이나, 자본주의 경제에서 사업은 갑작스러운 붕괴의 순간까지 항상 극도의 번영을 유지하는 속성이 있다.

 

 

 화폐 자본의 축적 문제로 다시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대부 가용한 화폐 자본의 증가가 반드시 실질적인 자본 축적이나 재생산 과정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공황 이후 대부 자본이 대규모로 유휴화되는 산업 순환 국면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실제로 1847년 공황 이후 영국 공업 지대의 생산이 1/3만큼 줄었듯이, 생산 과정이 축소되고 상품 가격이 최저치로 하락하며 기업가 정신이 침체되는 시기에는 이자율이 저하하는데, 이는 산업 자본의 위축과 정체로 인해 대부 가용 자본이 상대적으로 과잉된 결과일 뿐이다.

 

상품 가격 하락과 거래 감소, 임금 자본의 수축으로 유통 수단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고, 금 유출이나 파산 등에 따른 대외 부채 청산 이후 세계 화폐 수요가 소멸하며, 할인 대상 어음이 급감함에 따라 할인 업무 규모 또한 축소된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투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수요가 감퇴함에 따라 대부 가용 화폐 자본은 상대적 과잉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부 가용 화폐 자본의 공급 자체가 적극적으로 증가하는 현상도 수반된다.

 

일례로 1847년 공황 이후 발생한 ‘거래의 격감과 화폐의 거대한 과잉’ 국면에서는 ‘상업의 파괴로 인해 화폐의 사용처가 부재했으며, 이자율은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상업 불황, 1847-1848』: 증언 제1664호 및 45, 로얄 뱅크 오브 리버풀 이사 호지슨의 증언). 당시 이러한 현상을 해명하기 위해 제시된 다음의 주장은 신용 제도의 본질을 오도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며, 호지슨의 견해가 그 대표적인 논리이다.

 

‘1847년의 화폐 핍박은 수입 대금의 금 결제와 유동 자본의 고정 자본화로 인한 국내 대부 자본의 실질적 감소에서 기인했다.’는 식의 논리는 현상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유동 자본이 고정 자본으로 흡수되면서 일국의 화폐 자본이 감소한다는 주장은 그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다. 당시 주요 투자처였던 철도 건설의 사례를 보면, 교량이나 선로 구축에 금이나 은행권이 직접 소모되는 것은 아니다. 철도 주식에 투하된 화폐는 납입 자본금으로 예탁되는 동안 은행 내의 다른 예금과 동일하게 기능하며, 오히려 대부 가용 화폐 자본을 일시적으로 증대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또한 해당 자본이 실제 건설 비용으로 집행될 때에도 이는 국내에서 구매 및 지불 수단으로 유통될 뿐이다. 고정 자본의 형성이 화폐 자본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려면, 수출에 기여할 수 없는 자본의 축적으로 인해 해외로부터 유입되어야 할 현금이나 금의 유입이 차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영국의 상황은 수출품이 해외 시장에서 매각되지 못해 대규모 재고로 체화되어 있었을 뿐이다.


맨체스터 등의 상인이나 제조업자들이 영업 자본의 일부를 철도 주식에 고정하고 본업 운영을 차입 자본에 의존했다면, 이는 개별 주체의 유동 자본의 고착된 문제이지 화폐 자본 전체의 소멸로 볼 수 없다. 그들이 본업 자본을 인출하여 철도 대신 유동 자본의 범주에 속하는 광산이나 그 생산물인 철, 석탄, 구리 등에 투자했더라도 결과는 동일했다. 흉작으로 인한 곡물 수입과 그에 따른 금 유출이야말로 화폐 자본의 현실적 감소를 초래한 원인이며, 이는 철도 투기와는 무관한 독립적 사건이다.

 

그럼에도 당시의 증언들은 ‘거의 모든 상사가 상업 자본의 일부를 철도에 투하하며 본업을 위축시켰고, 무리한 투자의 결과, 상업 활동 유지를 위해 은행 어음 할인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었다.’ (『상업 불황, 1847-1848』: 67, 호지슨의 증언)거나 ‘맨체스터에서는 철도 투기로 인해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 (『상업 불황, 1847-1848』: 가드너의 증언, 제4884호)는 점을 지적하며 개별 자본의 유동성 위기를 화폐 자본 일반의 결핍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1847년 공황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동인도 시장에서의 막대한 공급 과잉과 동인도 무역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사기 사건이었다. 이와 더불어 여러 부수적 요인들이 동인도 무역을 주도하던 부유한 상인들의 연쇄적 몰락을 가속화했다.

 

‘이들 상인은 표면적으로는 막대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를 즉각 화폐로 전환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자본 전액이 모리셔스의 농장이나 염료 및 설탕 공장 등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50만 내지 60만 파운드에 달하는 부채 상환 기일이 도래했을 때, 이들에게는 어음을 결제할 가용 자산이 전무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결과적으로 이들의 사업 전체가 실체 없는 신용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음이 판명되었다.’ (『상업 불황, 1847-1848』: 리버풀의 대규모 동인도 상인 터너의 증언, 제730호)

 

‘1842년 8월 난징 조약 체결 직후 중국 시장의 확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확산되면서 대규모 면직물 공장들이 증설되었다.’ (『상업 불황, 1847-1848』, 가드너의 증언, 제4872호).

 

‘실제 거래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1844년과 1845년 중국으로 선적된 총액 중 2/3 이상이 회수되지 못했는데, 이는 주요 대금 상환 품목인 차 (茶)의 관세가 인하될 것이라는 제조업자들의 오판에서 기인했다 (제4874호).’

 

이 과정에서 영국 제조업자들의 특유한 신념이 드러난다.

 

‘해외 시장과의 무역은 상대국의 구매 능력이 아니라 수출품의 대가로 받는 물품에 대한 영국의 소비 능력에 제약된다.’

 

이는 빈곤한 교역 상대국이 영국 제품을 무진장하게 소비할 수 있음에도, 부유한 영국이 그 대가로 받은 생산물을 흡수하지 못해 무역이 정체된다는 아전인수 격 해석이다.

 

‘상품 수출에서 약 15%의 손실을 보더라도 수입한 차에 기대어 이를 상쇄하고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도리어 25-50%의 추가 손실을 보았다 (제4876호).’

 

‘초기에는 제조업자들이 직접 자기 계산으로 수출을 주도했으나, 위험 부담을 간파한 상인들이 제조업자들에게 직접 수출 대신 위탁 판매를 권장하며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 (제4877호).’

 

그러나 1857년의 공황기에는 제조업자들이 상인들로 하여금 ‘상인 자신의 계산으로’ 해외 시장에 상품을 투하하도록 유도하면서, 거액의 손실과 파산의 부담은 주로 상인 계급에 귀착되었다.

 

 

 은행 제도의 보급으로 인해 종전 개인의 퇴장 화폐나 주화 예비금이었던 자산이 일정 기간 대부 자본으로 상시 전환됨에 따라 증가한 화폐 자본은 결코 생산적 자본의 증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1857년 직전 입스위치 은행에서 차지 농업가의 예금이 4배 이상 증가한 사례나, 런던 주식 은행들이 예금 이자를 지급하기 시작하며 예금액이 급증한 현상 역시 생산적 자본의 실질적 확대와는 무관하다. 생산 규모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화폐 자본의 확충은 실물 생산 자본에 비해 대부 가용 화폐 자본만을 상대적으로 과잉하게 할 뿐이며, 결과적으로 이자율 하락을 유도하는 요인이 될 뿐이다.

 

재생산 과정의 과도한 확장 이전인 번영기에는 상업 신용이 비약적으로 팽창하며, 이는 원활한 환류와 생산 확대를 뒷받침하는 실질적이고 ‘건전한’ 토대를 형성한다. 이 시기의 이자율은 최저 수준을 상회하나 여전히 낮은 상태를 유지한다. 사실상 낮은 이자율, 곧 대부 자본의 상대적 과잉이 산업 자본의 현실적 확대와 보조를 맞추는 유일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환류의 용이성과 규칙성이 상업 신용의 확대와 결합함에 따라, 수요의 증대에도 대부 자본의 공급이 원활히 보장되어 이자율의 급격한 상승을 저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는 자기 자본이나 준비 자본 없이 오직 화폐 신용에만 의존하여 사업을 영위하는 모험적 투기꾼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여기에 모든 형태의 고정 자본이 대대적으로 확장되고 새로운 대규모 사업체들이 우후죽순 설립되면서, 이자율은 비로소 평균 수준까지 상승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공황의 전조가 나타나는 즉시 이자율은 다시 최고점에 도달한다. 신용은 급격히 결핍되고 지불 체계가 정체되며 재생산 과정 전반이 마비되는 가운데, 유휴 산업 자본의 과잉 현상과 대부 자본의 절대적 부족 현상이 동시에 가시화된다.

 

그러므로 이자율에 집약된 대부 자본의 운동은 대체로 산업 자본의 운동 방향과 역행하는 궤적을 그린다. 공황 이후 경기가 ‘호전’되고 신뢰가 복원되면서 이자율이 최저 수준을 상회하되 여전히 낮은 상태를 유지하는 국면, 그리고 이자율이 최저와 최고 사이의 평균적 수준에 도달하는 국면만이 대부 자본의 과잉과 산업 자본의 강력한 팽창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반면, 산업 순환의 초기 국면에서는 낮은 이자율과 산업 자본의 수축이 병행되며, 순환의 종말 국면에서는 높은 이자율과 산업 자본의 과잉 현상이 동시에 나타난다. 경기 ‘호전기’에 확인되는 낮은 이자율은 상업 신용이 여전히 자생적 결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은행 신용에 대한 의존도가 극히 낮은 상태임을 실증한다.

 

산업 순환은 일단 최초의 동력이 가해지면 동일한 주기를 반복하는 구조를 지닌다. 불황 국면에서 생산은 직전 주기에 도달했던 지점은 물론, 현존하는 기술적 토대가 달성할 수 있는 수준 이하로 급격히 위축된다. 이후 전개되는 번영 국면 및 중간 단계에 이르러 생산은 해당 기술적 토대 위에서 더욱 고도화된 발전을 이룩한다. 최종적으로 과잉 생산과 투기의 국면에서는 생산력이 극한으로 발휘되며, 마침내 생산 과정이 지닌 자본주의적 한계선을 돌파하기에 이른다.

 

공황기에는 지불 수단의 결핍 현상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이는 상품 자체의 가치 실현 (형태 변화)보다 어음의 현금화 여부가 생존의 결정적 요인이 되기 때문이며, 특히 이 시기에는 실체 없이 전적으로 신용에만 의존해 온 기업들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1844-1845년의 은행법과 같이 경제적 실상에 무지한 불합리한 입법은 이러한 화폐 공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 다만, 어떠한 형태의 은행 입법이라 할지라도 자본주의적 생산 체계가 내포한 공황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소멸시킬 수는 없다.

 

재생산 과정의 전반적인 상호 유기적 연관이 신용에 기초한 생산 체제에서는, 신용이 갑자기 중지되고 현금 결제만이 강제될 때 지불 수단을 확보하려는 격렬한 쇄도와 함께 공황이 발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공황은 표면적으로는 어음을 화폐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순한 신용 · 화폐 공황의 양상을 띤다. 그러나 이러한 어음들의 대다수가 실제 매매를 체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공황의 근저에는 사회적 필요를 초과하여 비대해진 매매의 팽창이 자리 잡고 있다. 나아가 상당수의 어음은 붕괴 직전의 사기적 거래나 차입 자본에 기반한 투기 실패, 가치가 감가되어 매각이 봉쇄된 상품 자본, 또는 회수 불능 상태에 빠진 자본의 환류를 대변할 뿐이다.

 

여기서 명백한 사실은, 잉글랜드 은행과 같은 발권 은행이 투기꾼들의 부족한 자본을 무제한 공급하거나 감가된 상품을 명목 가치로 매입해 준다고 해서, 재생산의 확장을 강요해 온 인위적 제도 전체가 구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른바 ‘종이 세계’에서는 실질 가격과 그 구성 요소들이 은폐된 채 지금, 주화, 어음, 은행권, 유가 증권만이 가시화되기에 모든 경제적 현상이 왜곡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왜곡은 국가의 화폐 거래가 집중되는 런던과 같은 중심지에서 특히 심화되며, 이로 인해 공황의 본질적 전개 과정은 생산 중심지에서보다 훨씬 파악하기 어려운 형태로 고착된다.

 

공황기 산업 자본의 과잉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점은, 상품 자본이 그 내재적 속성상 이미 화폐 자본 (상품 가격으로 환산된 일정 가치액)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용 가치의 측면에서 상품 자본은 특정한 유용물들의 집합이며, 공황기에는 이러한 유용물의 절대적 과잉이 발생한다. 그러나 잠재적 화폐 자본으로의 상품 자본은 가치의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특히 공황 직전과 공황기에는 잠재적 화폐 자본으로 상품 자본의 지위가 위축된다. 상품 자본은 소유주나 채권자에게, 또는 어음 할인 및 대부의 담보로, 최초 매입 시점이나 담보 설정 당시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의 화폐 가치만을 대변하게 된다. 화폐 핍박기에 일국의 화폐 자본이 감소한다는 주장이 이러한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이는 결국 상품 가격의 일반적 하락을 의미할 뿐이다. 또한 이러한 가격 하락은 실상 이전의 이례적인 가격 등귀를 상쇄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비생산적 계급 및 고정 수입에 의존하는 계급의 소득은 과잉 생산과 과잉 투기가 수반되는 가격 등귀의 시기에도 대개 변동 없이 유지된다. 따라서 물가 상승에 따라 이들의 실질적 소비 능력은 상대적으로 감퇴하며, 총 재생산물 중 이들의 소비로 보충되던 부분의 회수 능력 또한 저하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수요는 명목상 동일한 수준을 유지할지라도 실질적으로는 감소하게 된다.

 

수출입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모든 국가가 순차적으로 공황에 휩쓸린다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과잉 수출과 과잉 수입이 동시에 발생하며, 이에 따라 개별 국가의 지불 차액은 예외 없이 적자로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공황의 본질적 원인이 단순한 지불 차액의 불일치에 있지 않음이 분명해진다.

 

영국이 금 유출로 타격을 입는 상황을 예로 들면, 표면적으로는 영국의 과잉 수입이 원인인 듯 보이나 실제로는 타국 시장 역시 영국산 상품으로 포화 상태에 있다. 곧, 타국들 또한 과잉 수입을 했거나 이를 강요받는다. 여기서 신용을 주로 제공하는 국가 (영국)와 신용에 의존해 수입하는 국가 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단, 후자는 신용으로 수입하는데, 상품이 위탁 판매로 후자에게 수출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영국의 무역 차액이 흑자임에도 즉시 결제해야 할 만기 지불들의 차액이 적자를 기록하여 공황이 영국에서 선제적으로 폭발할 수 있는데, 이는 영국이 제공한 막대한 대외 신용과 해외 투기 자본의 환류 지체에서 기인한다. 때로는 영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신용을 제공받은 미국 등지에서 공황이 촉발되기도 한다.

 

금 유출로 촉발된 영국의 공황은 수입업자의 파산, 해외 시장에서의 상품 투매, 외국 유가 증권의 매각 등으로 지불 차액을 강제로 청산한다. 이 과정이 완료되면 공황의 여파는 타국으로 이전된다. 일시적으로 흑자였던 타국의 지불 차액은 공황의 확산과 함께 무역 차액과의 간극이 상쇄되며, 모든 지불들의 즉각적인 결제가 요구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결국 영국에서는 금이 유입되고 타국에서는 금이 유출되는 동일한 현상이 반복된다.

 

결론적으로 일반적 공황 국면에서 나타나는 각국의 과잉 수입과 과잉 수출은 신용 팽창과 그에 따른 일반적 가격 등귀가 추동한 과잉 생산의 결과물이다. 한 나라의 과잉 수입이 다른 나라의 과잉 수출로 현상할 뿐, 그 실체는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적 과잉 생산에 있다.

 

1857년 미국에서 발발한 공황은 영국으로부터의 금 유출을 촉발했다. 그러나 미국의 거품이 붕괴함과 동시에 광황의 여파가 영국에 상륙하자, 금의 순환은 다시 미국에서 영국으로 역전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과 유럽 대륙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일반적 공황기에 상업이 발달한 모든 국가는 지불 차액의 적자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는 각국의 결제 시점이 도래함에 따라 연쇄적인 폭발 양상으로 나타난다. 영국과 같은 중심지에서 공황이 시작되면 각국의 지불 기일은 극히 짧은 기간 내로 압축되며, 이로부터 모든 국가가 동시적으로 과잉 생산 (과잉 수출)과 과잉 무역 (과잉 수입)을 자행했음이 드러난다. 모든 국가에서 발생한 가격 등귀와 신용의 과도한 팽창은 결국 동일한 붕괴가 야기한다.

 

이러한 각국을 순차적으로 엄습하는 금 유출 현상은 다음의 사실을 명증한다.

 

첫째, 금 유출은 공황의 본질적 원인이 아닌 공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단순한 현상에 불과하다.

 

둘째, 금 유출이 국가별로 이전되는 순서는 단지 개별 국가의 총결산 시점이 언제 도래하는지, 그리고 각국에 내재한 공황의 잠재적 요소들이 어느 시점에 분출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다.

 

1830년 이후 통화, 신용, 공황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아온 영국의 경제학 저술가들은 공황기의 귀금속 수출 현상을 환율의 변동이 일어남에도 순수하게 자국 내의 국지적 현상으로만 한정하는 한계를 보인다. 이들은 잉글랜드 은행의 이자율 인상이 여타 유럽 은행들의 연쇄적인 금리 인상을 촉발한다는 사실과, 영국에서 발령된 금 유출 비상 경보가 시차를 두고 미국, 독일, 프랑스로 확산되는 세계적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철저히 방관하고 있다.

 

‘1847년 영국의 막대한 곡물 ‘수입 채무’는 상당 부분 파산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매개로 청산되었다. 곧, 부유한 영국이 대륙과 미국에 대한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위기를 모면한 셈이다. 파산으로 처리되지 않은 잔여 채무만이 지금 수출을 거쳐 해결되었을 뿐이다.’ (『은행법, 1857』)

 

이러한 관점에서 영국의 은행법은 공황을 격화시키는 요인일 뿐만 아니라, 기근 시기에 곡물 수출국으로부터 곡물을 우선 사취한 뒤 그 대금 지급을 회피하는 약탈적 수단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영국발 파산에 따른 ‘채무 청산 전략’에 대응하여, 곡물 수출국들이 자국 내 물가 등귀를 방어하기 위해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는 지극히 합리적인 자구책이다. 수출국의 생산자와 투기꾼의 입장에서도 영국의 자본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해 자신의 자본을 희생하는 것보다, 자국 내 이윤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 훨씬 전략적으로 우월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상품 자본은 공황기나 일반적 불황기에 잠재적 화폐 자본으로의 가치 실현 능력을 크게 상실한다. 이러한 현상은 증권 거래소에서 화폐 자본으로 유통되는 가공 자본, 곧 이자 낳는 증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자율이 상승하면 이자 낳는 증권의 가격은 하락하며, 신용 부족에 직면한 증권 소유자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증권을 대량 매도 (방출)할 경우 그 하락 폭은 더욱 확대된다.

 

주식의 경우, 기업 수익의 감소나 사업 자체의 사기적 성격이 폭로됨에 따라 추가적인 가격 하락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가공적 화폐 자본의 가치 급락은 공황 중 해당 자산의 담보 능력을 현저히 약화시키며, 결과적으로 시장에서의 화폐 차입력을 극도로 위축시킨다. 증권 시세표상의 명목 가치 하락은 그것이 대표하는 현실 자본의 실체와는 직접적으로 무관할 수 있으나, 증권 소유자들의 실질적인 지불 능력에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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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은행 자본의 구성 부분

 

이제 은행 자본의 구체적인 구성 요소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풀라턴을 비롯한 이론가들은 유통 수단으로의 화폐와 지불 수단 (또는 세계적 금 유출 시의 세계 화폐)으로의 화폐를 구분하면서, 이를 ‘통화’와 ‘자본’ 사이의 구별로 치환하였다.

 

화폐가 결코 자본이 될 수 없다고 설파한 계몽주의 경제학과는 대조적으로, 은행업자의 경제학은 화폐야말로 자본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는 가장 탁월한 자본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심층적인 분석에서 확인되는 점은, 이들의 체계 안에서 화폐 자본이 이자 낳는 자본을 의미하는 ‘화폐적 자본’과 혼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질적으로 화폐 자본은 상품 자본이나 생산 자본과 마찬가지로, 산업 자본이 순환 과정에서 취하는 일시적인 통과 형태에 불과하다. 따라서 은행업자들이 규정하는 화폐의 자본적 성격은 자본의 전체 순환 체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이를 단순히 이자 증식의 수단으로 국한하는 것은 화폐 자본의 실질적인 기능과 형태 변화를 간과한 결과이다.

 

은행 자본은 (1) 금이나 은행권 형태의 현금과 (2) 유가 증권으로 구성된다. 유가 증권은 다시 만기 구조를 지니며 은행업자의 고유 업무인 할인의 대상이 되는 상업 증권 (환어음)과, 국채·국고 증권·주식·저당 증서 등 이자를 낳는 공적 유가 증권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물적 구성 요소들로 이루어지는 은행 자본은 소유 원천에 따라 은행업자 자신의 투하 자본과 예금 (차입 자본 또는 은행 영업 자본)으로 구분되며, 발권 은행의 경우에는 대출 수단으로 활용되는 은행권이나 일람불 자기앞 어음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은행 자본을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화폐, 환어음, 이자 낳는 증권 등의 물적 성격은 그것이 자기 자본을 대표하는지 또는 타인의 자본 (예금)을 대표하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곧, 운용 주체가 자기 자본으로 사업을 영위하든 예탁된 자본을 활용하든, 은행 자본의 객관적 구성 부분은 동일하다.

 

이자 낳는 자본이라는 형태적 특성으로 인해, 그것의 실질적 원천이 자본인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정기적인 화폐 수입은 자본에 대한 이자로 간주된다. 곧, 화폐 수입이 우선적으로 이자의 성격을 띠게 되고, 이와 반대로, 이 이자를 매개로 그 원천인 자본의 규모가 환산되어 결정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자 낳는 자본의 논리 아래에서 모든 가치액은 수입으로 소진되지 않는 한 자본화되며, 이는 곧 해당 가치가 창출할 수 있는 잠재적 또는 현실적 이자에 대응하는 ‘원금’의 형상을 취하게 됨을 의미한다.

 

사정은 명확하다. 평균 이자율이 연 5%일 때, 500의 가치액이 이자 낳는 자본으로 운용된다면 연간 25의 수익을 창출한다. 이에 따라 모든 고정적인 연간 수입 25은 환산된 원금 500에 대한 이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은 해당 수입의 원천이 오직 소유권 및 청구권이든 아니면 토지와 같은 실재적 생산 요소이든 직접 양도되거나 또는 양도성을 갖춘 형태를 구비하고 있지 않은 한, 순전히 관념적인 가공이자 가상에 불과하다. 국채와 임금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가는 차입 자본에 대하여 매년 일정한 이자를 채권자에게 지불할 의무를 지지만, 채권자는 국가로부터 원금을 상환받는 대신 자신의 청구권인 소유권을 매각하면서 자본을 회수할 수 있을 뿐이다. 이때 투하된 자본은 국가의 지출을 거쳐 이미 소비되어 실재하지 않는다. 국가 채권자는 (1) 100의 국채 증서를 보유하면서 (2) 연간 조세 수입 중 일정액인 5를 청구할 권리를 가지며, (3) 이를 시장에서 자유로이 매매할 수 있다.

 

시장 이자율이 5%이고 국가의 신용이 담보된다면, 국채 소유자 A는 해당 증서를 B에게 100에 매각할 수 있는데, 이는 B의 입장에서 100을 직접 대부하여 5%의 이자를 얻는 것과 국채로부터 연간 5를 확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자 지불의 토대로 상정되는 자본은 가공된 관념에 불과하다. 국가에 대부된 금액은 이미 소멸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치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으로 투하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해당 금액이 본래적 의미에서 자본으로 투하되었다면 스스로를 보존하고 증식하는 가치 형태로 전환되었어야 한다. 결국 최초 채권자 A가 수령하는 조세 수입의 일부는 실재하지 않는 자본에 대한 이자를 형식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고리대금업자가 수취하는 채무자의 자산 일부가 형식상 자기 자본에 대한 이자로 표상되는 것과 같은 형식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대부된 화폐액이 실질적인 생산 자본으로 지출된 것은 아니다. 국채의 매매 유동성은 최초 채권자 A에게는 원금 회수의 기회를 의미하며, 새로운 구매자 B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자본을 이자 낳는 자본으로 투하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B는 A의 지위를 승계하여 국가에 대한 청구권을 양수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거래가 반복되더라도 국채가 자본이라는 성격은 여전히 관념적 가공물에 머물며, 국채의 유동성이 상실되어 매각이 마비되는 순간 자본이라는 가상은 즉각 소멸한다. 그럼에도 국채와 같은 가공 자본은 시장 이자율의 변동에 따라 가격이 등락하는 등 자신만의 고유한 운동 법칙을 지니며 경제 체계 내에서 작동한다.

 

이자 낳는 자본 일반은 모든 불합리한 형태의 원천이 된다. 은행업자의 관념 속에서 채무 가 상품으로 오인되듯, 국채라는 가공 자본에서는 국가의 부채라는 음 (-)의 수치가 자본으로 표상된다. 이러한 논리를 노동력에 적용할 경우, 임금은 이자로, 노동력은 그 이자를 창출하는 자본으로 간주된다. 연간 임금이 50이고 이자율이 5%라면, 노동력의 가치는 1,000의 자본과 등가물로 치환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지닌 이러한 전도된 성격은 여기서 극단에 이른다. 자본의 가치 증식을 노동력 착취에서 도출하는 대신, 노동력의 생산성을 노동력 자체가 보유한 ‘이자 낳는 자본’이라는 물신적 속성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17세기 후반 윌리엄 페티 등에게서 나타난 이 관념은 오늘날 속류 경제학자와 통계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진지하게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적 관념은 두 가지 실증적 한계에 직면한다. 첫째, 노동자는 이른바 ‘이자의 형태를 띤 임금’을 수취하기 위해 반드시 노동을 수행해야만 한다. 둘째,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타인에게 양도하면서 그 자본 가치를 화폐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력의 실질적 가치는 평균 연간 임금에 해당하며,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의 지출로 이 가치와 더불어 잉여 가치를 생산하여 구매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반면, 노예 제도 아래에서의 노예는 실질적인 구매 가격인 자본 가치를 지니며, 임차인은 이 자본에 대한 이자와 더불어 노예라는 자본의 연간 마멸분을 보상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의제 자본 (또는 가공 자본)의 형성을 ‘자본화’라 칭한다. 모든 규칙적이고 주기적인 수입은 평균 이자율을 기초로 산정하면서, 해당 평균 이자율로 대출된 일정 자본이 창출하는 수익으로 간주하여 자본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간 수입이 100이고 이자율이 5%라면, 이 수익은 원금 2,000에 대한 연간 이자로 환산되며, 이에 따라 2,000은 해당 수입을 수취할 법적 소유권의 자본 가치로 규정된다.

 

이 소유권을 취득한 매수자에게 연간 수입 100은 자신의 투하 자본에 대한 실질적인 5%의 이자를 의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본이 현실적인 가치 증식 과정과 맺고 있던 모든 연관성은 최후의 흔적까지 소멸하며, 자본이 고유한 내적 힘에 따라 스스로 증식한다는 관념이 확고히 고착된다.

 

채무 증서와 같은 유가 증권이 국채처럼 순전한 가공의 자본을 표상하지 않는 경우에도, 해당 증권의 자본 가치인 가격은 여전히 관념적 성격을 지닌다. 신용 제도가 창출하는 주식 자본과 그 소유권을 구체화하는 주식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철도나 채굴, 해운 회사의 주식은 해당 사업에 실제로 투하되어 기능하는 자본 또는 주주들이 납입한 화폐액을 표상한다.

 

그러나 이 자본이 소유권 증서인 주식의 자본 가치로 한 번, 그리고 사업 현장에 투하된 실재 자본으로 또 한 번, 이중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오직 후자의 실물적 형태로만 존재하며, 주식은 그 자본이 실현할 잉여 가치에 대하여 보유 지분만큼 배당을 요구할 수 있는 소유권 증서에 불과하다. A가 이 증서를 B에게, 다시 B가 C에게 매각하는 일련의 거래는 사태의 본질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A나 B는 자신의 소유권 증서를 화폐 자본으로 회수한 것이며, 구매자 C는 자신의 실제 자본을 향후 기대되는 잉여 가치에 대한 단순한 청구권으로 치환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소유권 증서인 국채나 주식의 가치 곧 시장 가격이 실물 자본의 변동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운동함에 따라, 이들 증서가 실제 자본이나 청구권과는 별개로 그 자체의 현실적 자본을 구성한다는 가상이 더욱 공고해진다. 이는 소유권 증서가 시장에서 상품으로 유통되며 그 가격 또한 특수한 법칙에 따라 독자적으로 결정되는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식과 같은 소유권 증서의 시장 가치는 현실적 자본의 가치 자체에 변동이 없더라도, 비록 그 자본이 실현되는 가치 증식 정도가 변할 수는 있으나 증서에 명시된 명목 가치인 액면 가격과는 현격히 상이할 수 있다.

 

소유권 증서의 시장 가치는 해당 증서가 보장하는 수익의 크기와 확실성에 비례하여 변동한다. 액면가 100인 주식의 배당률이 5%에서 10%로 상승할 경우,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시장 가치는 상승한다. 연 10의 배당을 시장 이자율 5%로 자본화하면 해당 주식은 200의 의제 자본을 표상하게 되며, 이를 200에 매수한 투자자는 투하 자본 대비 5%의 수입을 얻기 때문이다. 반대로, 배당 수익이 감소하면 가치는 하락한다. 이처럼 증권의 시장 가치는 실질 수익뿐 아니라 기대 수익에 따라서도 결정되므로, 부분적으로 투기적 성격을 띤다.

 

다른 한편으로 실물 자본의 가치 증식이 일정하거나 국채처럼 실물 자본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연간 수입이 법적으로 확정되어 있다면 증권 가격은 이자율과 반비례하여 등락한다. 이자율이 5%에서 10%로 상승하면 5의 수입을 보장하는 증권의 자본 가치는 50으로 축소되나, 이자율이 2.5%로 하락하면 동일한 증권의 가치는 200으로 증대된다. 결국 증권 가격은 기대 수입을 현재 이자율로 나눈 가공의 자본화 금액에 불과하다.

 

따라서 화폐 시장이 압박되는 시기에는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증권 가격이 급락한다.

 

첫째, 이자율의 상승이다.

 

둘째, 유동성 확보를 위한 증권의 대량 매도세이다.

 

이러한 가격 하락은 수입이 고정된 국채뿐만 아니라, 재생산 과정의 마비로 가치 증식이 타격을 받는 기업 주식에서도 공통적으로 발생한다. 주식의 경우 이자율 상승에 따른 가치 감소에 실물 경제의 위축이라는 추가적인 하락 요인이 결합될 뿐이다. 경제적 혼란이 수습되면 파산이나 사기에 연류되지 않은 증권들은 본래의 가격 수준을 회귀하며, 공황기에 발생하는 이러한 자산 가치의 하락은 화폐 재산을 소수에게 집중시키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한다.

 

증권 가격의 등락이 실물 자본의 가치 운동과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면, 가격 변동 전후 한 국가의 실질적인 부의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

 

‘1847년 10월 23일까지 은행 총재 모리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공채와 운하 및 철도 주식의 가치는 이미 총액 1억 1,475만 2,225 파운드만큼 감가되었다.’ (『상업 불황, 1847-1848』)

 

그러나 이러한 가치 감소가 생산의 중단, 철도·운하 등 교통의 중단, 또는 자본의 실질적 낭비를 의미하지 않는 한, 명목적 화폐 자본이라는 거품의 붕괴가 인민을 실제로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들 증권은 본질적으로 장래 생산물에 대한 축적된 청구권이자 법률적 권리를 표상할 뿐이다. 그 화폐 가치나 자본 가치는 국채의 경우처럼 실재하는 자본을 전혀 체현하지 않거나, 또는 그것이 표상하는 현실적 자본의 가치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국가에서 막대한 규모의 이자 낳는 자본 (화폐적 자본)은 대개 이러한 형태로 존재하며, 따라서 화폐 자본의 축적은 상당 부분 생산에 대한 청구권의 축적과 그 시장 가격, 곧 가상적인 자본 가치의 축적을 의미할 뿐이다.

 

은행 자본의 일부는 이러한 이자 낳는 증권에 투하되어 준비 자본의 역할을 수행하나, 이들은 실제 은행 업무 과정에서 직접 기능하지는 않는다. 은행 자본의 가장 핵심적인 구성 요소는 산업 자본가나 상인이 발행한 지불 약속인 환어음이다. 화폐 대부자의 입장에서 환어음은 만기 시점까지의 이자를 미리 공제하고 구매한다는 점에서 이자 낳는 증권의 성격을 지닌다. 이를 할인이라 하며, 액면 금액에서 공제되는 할인료의 규모는 당대의 이자율에 따라 결정된다.

 

은행 자본의 종국적인 부분은 금이나 은행권 형태의 화폐 준비금으로 구성된다. 예금은 계약에 따라 비교적 장기간 구속되지 않는 한 예금자의 요구에 따라 언제든 인출될 수 있으나, 유출과 유입은 부단히 반복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보충이 이루어지므로, 통상적인 경제 상황 하에서는 그 평균액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자본주의 생산이 고도화된 국가에서 은행 준비금은 평균적인 퇴장 화폐량을 표상하며, 이 중 일부는 금에 대한 단순 청구권일 뿐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는 증권의 형태를 취한다. 결과적으로 은행 자본의 상당 부분은 순전한 의제적 성격을 띠며, 구체적으로는 환어음과 같은 채권, 이미 지출되어 소멸한 자본을 대표하는 국채, 그리고 장래 수입에 대한 청구권인 주식 등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은행 금고에 보관된 증권들이 표상하는 화폐 가치가 본질적으로 가공적이라는 사실이다. 설령 그 증권이 확실한 수입에 대한 청구권이거나 현실적 자본에 대한 소유권이라 할지라도, 그 화폐 가치는 그것이 대표하는 실재 자본의 가치와는 독립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을 전혀 대표하지 못한 채 수입 청구권만을 대변하는 경우에도, 그 가치는 부단히 변동하는 가공적 화폐 자본의 형태로 표현된다. 더욱이 이러한 가공적 은행 자본의 대부분은 은행업자 자신의 자본이 아니라, 인민이 예탁한 타인의 자본이라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본질적 특성이다.

 

예금은 언제나 화폐 (금이나 은행권) 또는 화폐 청구권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예금은 현실의 유통 필요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금을 제외하면, 산업 자본가나 상인의 환어음 할인 및 대출에 투입되어 사실상 그들의 수중에 있거나 유가 증권 중개인, 증권 판매인, 그리고 정부의 수중 (재무성 증권과 신규 국채 등)에 존재하게 된다.

 

예금은 이 과정에서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우선 예금은 이자 낳는 자본으로 대출되면서 은행 금고에 실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 장부상 예금자 계좌의 대변에 기재된 수치로만 남게 된다. 동시에 예금은 예금자들 사이의 상호 신용이 수표로 결제되고 상쇄되는 과정에서 장부상의 기입 항목으로 기능한다. 이때 예금이 동일한 은행을 이용하여 은행 내부에서 계좌가 상쇄되는지, 또는 서로 다른 은행들을 거쳐 수표를 교환하고 그 차액을 정산하는지의 여부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이자 낳는 자본과 신용 제도의 비약적 발달에 따라, 동일한 자본 또는 청구권이 각종 형태로 다수의 수중에 중복되어 나타나면서 모든 자본은 외견상 두 배 또는 세 배로 증폭된 것처럼 현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화폐 자본’의 상당 부분은 순전한 의제적 가공물에 불과하다.

 

예금은 지급 준비금을 제외하면 본질적으로 은행업자의 채무일 뿐, 은행 금고 내에 실물 현금으로 잔존하는 것이 아니다. 예금이 어음 교환소의 결제 과정에 투입되는 한, 이는 은행업자가 이미 대출한 이후임에도 여전히 그를 위한 자본으로 기능하게 된다. 곧, 은행업자들은 상호 간의 지불 차액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예금에 대한 청구권 형식으로 정산하는 셈이다.

 

애덤 스미스는 화폐 대부 과정에서 자본이 수행하는 역할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화폐 소유를 매개로 얻는 이익의 관점에서 볼 때, 화폐는 자본 소유자가 직접 운용하지 않으려는 자본을 타인의 수중으로 이전시키는 양도 증서에 불과하다. 이때 이전되는 자본의 총량은 매개 도구인 화폐량에 비해 훨씬 클 수 있다. 동일한 화폐 개체가 다수의 상이한 구매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듯, 다수의 대부 과정에도 계속해서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가 W에게 1,000파운드를 대부하고, W가 B로부터 1,000파운드 상당의 재화를 구매한다고 전제하자. 현금을 보유할 필요가 없는 B는 해당 화폐를 다시 X에게 대부하며, X는 이를 사용하여 C로부터 다른 재화를 구입한다. C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해당 화폐를 Y에게 대부하고, Y는 D의 재화를 구입한다. 이처럼 동일한 화폐 개체는 단 며칠 사이에 각기 다른 세 건의 대부와 구매를 매개하며, 각각의 거래 가치는 화폐의 액면가와 동일하다.

 

결국 대부자 A, B, C가 차입자 W, X, Y에게 실질적으로 양도하는 것은 재화를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며, 대부의 진정한 가치와 용도는 바로 이 구매력에 존재한다. 세 명의 화폐 소유자가 대부한 자본의 총액은 구매된 재화의 가치 합계와 같으므로, 투입된 화폐 가치의 세 배에 달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대부 체계는 어김없는 상환을 보장받는다. 각 채무자가 구매한 재화는 적절한 시기에 이윤과 함께 동일한 가치로 회수되도록 운용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동일한 화폐 개체는 자기 가치의 세 배 또는 서른 배에 달하는 대부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상환 수단으로도 순차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국부론』 제2편 제4장: 431-432).

 

동일한 화폐 개체가 유통 속도에 따라 다수의 구매를 매개할 수 있듯, 이는 각종 대부 과정에도 반복적으로 투입될 수 있다. 구매가 화폐를 일방에서 타방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라면, 대부는 구매라는 매개 없이 화폐 실체의 점유를 이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경제 체제에서 모든 상품이 자본 가치로 치환됨에 따라, 화폐가 순차적으로 다른 대부에서 각기 다른 자본을 대표한다는 것은 결국 화폐가 연속적으로 상이한 상품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명제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화폐는 유통 수단으로 소재적 자본을 이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대부 행위 자체에서 화폐가 이전될 때, 그것이 단순한 유통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화폐가 대부자의 수중에 머무는 동안 그것은 유통 수단이 아닌 자본의 가치적 현존이며, 대부자는 바로 이 가치 형태를 타인에게 이전하는 것이다. A가 B에게, 다시 B가 C에게 어떠한 상품 구매의 매개 없이 화폐를 대부한다면, 이 동일한 화폐는 세 개의 독립된 자본이 아니라 단 하나의 자본 가치를 대표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동일한 화폐 개체가 실질적으로 몇 개의 자본을 대표하는가는, 해당 화폐가 서로 다른 상품 자본의 가치 형태로 얼마나 빈번히 기능하는가에 따라 규정된다.

 

애덤 스미스가 대부 일반에 대해 서술한 원리는 예금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금이란 본질적으로 인민이 은행업자에게 제공한 대부의 특수한 명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한 화폐 개체는 반복적인 이전을 거쳐 다수의 예금을 형성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어떤 이가 오늘 A 은행에 예금한 1,000의 화폐가 내일 다시 시중에 방출되어 B의 예금을 형성하고, 모레는 다시 C의 예금을 형성하는 과정은 무수히 반복될 수 있다. 이처럼 동일한 화폐 1,000은 계속되는 이전을 거쳐 그 총량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예금액으로 증폭된다.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 예금의 9/10는 은행업자의 장부상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일례로 스코틀랜드의 경우, 실제 통화량이 300만 파운드를 초과하지 않았음에도 은행 예금은 2,700만 파운드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은행에 대한 인출 폭주가 발생하지 않는 한, 동일한 1,000의 화폐는 위와 반대 경로를 거쳐 막대한 금액의 채무를 손쉽게 결제할 수 있다. 개인이 소매상에 지불한 1,000이 이튿날 도매상에 대한 소매상의 채무 변제에 쓰이고, 그다음 날 다시 은행에 대한 도매상의 채무 결제에 사용되는 식의 연쇄적 진행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통화 이론 검토』: 62-63).

 

이러한 신용 제도 하에서는 모든 가치가 결합되어 나타나면서 실재가 단순한 가공의 산물로 치환된다. 이는 사람들이 경제의 가장 견고한 보루로 신뢰하는 은행의 ‘준비금’ 영역에서도 예외 없이 발생한다.

 

잉글랜드 은행 총재 모리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개별 은행의 준비금은 잉글랜드 은행에 대한 예금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금의 수출은 우선적으로 잉글랜드 은행의 준비금에 타격을 주지만, 개별 은행들이 잉글랜드 은행에 예치한 준비금을 인출하는 과정을 거치며 결국 전국 모든 은행의 준비금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상업 불황, 1847-1848』, 제3639호, 제3642호)

 

이처럼 모든 준비금은 최종적으로 잉글랜드 은행으로 수렴되나, 잉글랜드 은행의 준비금은 이중적 구조를 지닌다. 은행부의 준비금은 법정 발행 한도액에서 실제 유통액을 차감한 잔액이다. 발행 한도는 귀금속 담보가 필요 없는 1,400만 파운드 (정부 채무액)와 실제 귀금속 보유액의 합계로 결정된다. 예컨대 귀금속 보유액이 1,400만 파운드일 때 총 2,800만 파운드의 은행권 발행이 허용되며, 이 중 2,000만 파운드가 유통 중이라면 나머지 800만 파운드가 은행부의 준비금이 된다. 이 800만 파운드는 잉글랜드 은행의 법률상 영업 자본인 동시에 예금에 대한 준비금으로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금 유출로 귀금속 준비가 600만 파운드 감소하면, 동일 액수의 은행권을 폐기해야 하므로, 은행부의 준비금은 800만 파운드에서 200만 파운드로 급감한다. 이 경우 잉글랜드 은행은 이자율을 대폭 인상하게 되며, 예금주들은 지급 준비금의 급격한 위축을 직시하게 된다.

 

실제로 1857년 런던의 4대 주식 은행은 1844년 은행법을 정지시키는 ‘정부의 특단 조치’가 없을 경우 예금을 전액 인출하여 은행부를 파산시키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발권부에 유통 은행권의 태환 보증을 위한 수백만 파운드가 잔존함에도, 은행부는 1847년의 (800만 파운드)의 사례처럼 파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신용 체제 아래에서의 태환 보증 자체가 하나의 허울에 불과함을 실증한다.


‘은행업자가 수취한 예수금 (예치금) 중 유휴 자금의 대부분은 어음 중개인에게 유입되며, 어음 중개인은 그 담보로 런던이나 지방의 거래처로부터 이미 할인한 상업 어음을 은행업자에게 선대에 대한 담보로 제공한다. 어음 중개인은 은행업자의 요구 시 즉각 상환해야 하는 이른바 수시 상환 자금 (콜자금)의 상환 의무를 지게 된다. 이러한 거래의 규모는 잉글랜드 은행 총재 니브의 증언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당시 한 어음 중개인이 보유한 예금액은 500만 파운드에 달했으며, 여타 중개인들 또한 적게는 350만 파운드에서 많게는 1,000만 파운드 이상의 예금을 수중에 두기도 하였다. 이는 신용 체계 내에서 어음 중개인의 수중으로 집중된 예치 자산의 막대한 규모를 실증한다.’ (『은행법 1857-1858』: 5, 제8항)

 

‘런던의 어음 중개인들은 사실상 현금 준비금 없이 막대한 규모의 거래를 수행해 왔으며, 만기 어음의 회수금이나 긴급 시 잉글랜드 은행으로부터 받는 어음 담보 선대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1847년 지불을 정지했다가 재개한 런던의 두 어음 중개 상사는 1857년 다시 지불 정지에 이르렀다. 그중 한 상사는 1847년 당시 18만 파운드의 자본으로 268만 3천 파운드의 부채를 안고 있었으며, 1857년에는 자본이 1847년의 1/4로 축소되었음에도 부채는 530만 파운드까지 급증하였다. 다른 상사 역시 두 차례의 지불 정지 시기마다 자본금은 4만 5천 파운드에 불과했으나 부채 규모는 300만에서 400만 파운드에 달했다.’ (『은행법 1857-1858』: xxi, 제5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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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유통 수단과 자본. 투크와 풀라턴의 견해

 

투크와 윌슨 등이 제시하는 통화와 자본의 구별은 화폐적 유통 수단, 일반적 화폐 자본, 그리고 이자 낳는 자본의 유통 수단 사이의 기능을 혼동한 결과이며, 이는 결국 다음과 같은 논리로 귀착된다.

 

한편으로 유통 수단은 수입의 지출, 곧 개별 소비자와 소매상 사이의 거래을 매개하는 한 주화 (화폐)로 유통된다. 이 소매상 범주에는 생산적 소비자나 생산자와 구별되는 개인적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모든 상인이 포함된다. 여기서 화폐는 끊임없이 자본을 보전하는 역할을 수행함에도 주화의 기능으로 유통되며, 일국의 화폐량 중 일정 부분은 비록 개별 통화들은 교체될지언정 항상 이 기능에 점유된다.

 

다른 한편으로 화폐가 구매 수단 또는 지불 수단으로 자본의 이전을 매개하는 한, 이 화폐는 자본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화폐를 주화와 구별 짓는 결정적 요인은 구매 수단이나 지불 수단이라는 기능적 측면이 아니다. 상인 간의 현금 거래에서도 화폐는 구매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상인과 소비자 사이의 신용 거래에서도 수입의 선소비 후지불이 이루어지는 한 화폐는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본질적인 차이는 자본 이전의 국면에서 이 화폐가 판매자에게는 자본을 보전해 줄 뿐만 아니라, 구매자 측면에서도 자본으로 지출 및 투하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구별은 통화와 자본 사이의 구별이 아니라, ‘수입의 화폐 형태’와 ‘자본의 화폐 형태’ 사이의 구별이다. 일정량의 화폐는 상인과 소비자 간 거래와 상인 상호 간 거래 모두에서 유통되므로, 두 영역 모두에서 동일하게 통화로의 성격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크의 견해는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 혼란을 야기한다.

 

첫째, 화폐의 기능적 특성을 혼동한다.

 

둘째, 두 가지 상이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며 유통되는 화폐 총량의 문제를 부적절하게 도입한다.

 

셋째, 재생산 과정의 각 국면에서 상이한 기능을 수행하며 유통되는 유통 수단량의 상대적 비율 문제를 설정하면서 논리적 왜곡을 초래한다.

 

(1) 화폐를 한 국면에서는 통화 (유통 수단)로, 다른 국면에서는 자본으로 규정하는 견해는 화폐의 기능적 특성을 오인한 결과이다. 화폐가 수입의 실현을 위해 사용되든 자본의 이전을 위해 사용되든, 매매나 지불의 과정에서 구매 수단 또는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는 한 넓은 의미에서 유통 수단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지출자나 수취인의 계정에서 해당 화폐가 자본을 표상하는지 또는 수입을 표상하는지 여부와 같은 구체적 성격은 이러한 기능적 규정성을 변경시키지 못하며, 이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증명된다.

 

수입 지출 영역과 자본 이전 영역에서 유통되는 화폐의 종류가 외견상 다를지라도, 동일한 화폐 단위는 영역 간을 이동하며 두 기능을 차례로 수행한다. 소매상은 구매자로부터 수취하는 주화의 형태로만 자신의 자본에 화폐 형태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매업 전반에 걸쳐 보조 주화의 유통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나, 소매상은 가치 척도인 금화나 소액 은행권 또한 수취한다. 이들은 매일 또는 매주 단위로 은행에 예금되어 소매상의 구매 결제를 위한 수표의 근거가 된다. 동시에 이 동일한 화폐들은 일반 대중의 수입 화폐 형태로 은행에서 인출되어 다시 소매상에게 환류하며, 그 과정에서 소매상의 자본 가치와 잉여 가치를 동시에 실현한다.

 

여기서 투크가 간과한 결정적 사실은 상품이 자본 가치뿐만 아니라 잉여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생산 과정의 시점 (제Ⅱ권 제1편)에서 투하되는 화폐 자본만이 순수한 자본 가치로 존재할 뿐, 생산된 상품은 이미 가치 증식된 자본이자 수입 원천이 결합된 상태이다. 따라서 소매상이 환류하는 화폐와 교환하여 내놓는 상품은 그에게 있어 ‘자본+이윤’이자 ‘자본+수입’의 결합체이다. 결국 유통하는 화폐는 소매상에게 환류하면서 그의 자본이 가졌던 화폐 형태를 회수시켜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수입의 실현을 위한 유통과 자본의 이전을 위한 유통 사이의 차이를 ‘통화 (유통 수단)’와 자본 자체의 구별로 치환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투크가 이러한 왜곡된 표현 방식을 취하게 된 배경에는 은행권 발행 주체인 은행업자의 관점이 내재되어 있다.

 

인민들 사이에서 유통 수단으로 기능하며 항상 수중에 머무는 은행권 총량은, 비록 개별 은행권의 실체는 끊임없이 교체될지라도 은행업자에게는 종이와 인쇄 비용 외에 어떠한 실질적 비용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은행권은 본질적으로 은행업자 자신을 수취인으로 하여 발행된 유통성 채무 증서 (환어음)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그에게 화폐를 유입시켜 자본을 증식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결국 은행업자의 관점에서는 통화와 자본을 구분할 실무적 필요성이 제기되나, 이러한 구별은 화폐나 자본의 본질적 개념 규정과는 무관하며 투크가 내세우는 이론적 범주와도 논리적 정합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 구별은 오직 은행 경영상의 관점에서 파생된 특수한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화폐가 수입의 화폐 형태로 기능하는지 또는 자본의 화폐 형태로 기능하는지의 여부는 유통 수단으로 화폐가 갖는 본질적 성격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화폐는 어느 국면에서나 유통 수단으로의 속성을 견지한다. 다만 수입의 화폐 형태로 기능할 때는 판매와 구매의 분리가 빈번하고, 수입 지출자의 대다수인 노동자가 신용 거래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는 특성상 진정한 의미의 유통 수단 (주화 및 구매 수단)으로 작용하는 비중이 높을 뿐이다.

 

반면, 자본의 화폐 형태가 주를 이루는 사업적 거래에서는 거래의 집중과 신용 제도의 발달로 인해 화폐는 주로 지불 수단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지불 수단과 구매 수단 (유통 수단) 사이의 차이는 화폐 자체의 기능적 분화일 뿐, 화폐와 자본 사이의 본질적 구별은 아니다. 이는 소매업에서 동전과 은화가, 도매업에서 금화가 주로 유통된다고 하여 금속 종류에 따른 구분을 통화와 자본의 구별로 치환할 수 없는 것과 같다.

 

(2) 화폐가 구매 수단 또는 지불 수단 중 어떠한 형태로 유통되든, 또한 그 기능이 수입을 실현하는지 자본을 실현하는지에 관계없이 유통 화폐량에 관한 법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는 단순 상품 유통의 분석에서 도출된 원리 (제Ⅰ권 제3장 제2절 b)와 부합한다.

 

구체적으로 유통 화폐량 (통화량)을 결정하는 요인은 유통 속도 (일정 기간 동일한 화폐 개체가 수행하는 구매 및 지불 기능의 반복 횟수),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매매 및 지불의 규모, 유통 상품의 가격 총액, 그리고 동일 시점에 결제되어야 할 지불액 간의 차액 등이다. 이러한 객관적 요인들이 수입의 유통과 자본의 유통 전반에 걸쳐 통화량을 결정할 뿐이다.

 

따라서 기능하는 화폐가 지불자나 수취자에게 자본을 표상하는지 또는 수입을 표상하는지 여부는 유통 화폐량의 결정 원리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유통 화폐량은 오직 구매 수단과 지불 수단이라는 화폐 고유의 기능적 필요에 따라 규정된다.

 

(3) 두 기능을 수행하며 각 영역에서 유통되는 유통 수단량의 상대적 비율 문제에 관하여. 수입 지출과 자본 이전이라는 두 유통 영역은 내적으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지출되는 수입액은 사회적 소비 규모를 표현하며,

 

생산 및 상업 분야에서 유통되는 자본액은 재생산 과정의 규모와 속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일한 경제적 요인이 각 영역의 유통 화폐량 (통화량)에 미치는 영향은 상이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투크가 통화 (유통 수단)와 자본을 부적절하게 구분한 배경에는 이러한 현상적 차이에 대한 오해가 자리 잡고 있다. 통화주의자들이 서로 다른 성격의 사물들을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사물들을 본질적인 개념적 구별로 제시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영역별 유통량의 상대적 비율 차이는 화폐와 자본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정당한 논거가 되지 못한다.

 

재생산 과정이 활성화되는 번영기 또는 대 팽창기에는 완전 고용이 실현된다. 대다수 국면에서 임금 인상이 동반되며, 이는 산업 순환의 타 시기에 발생한 평균 이하의 임금 하락을 보전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자본가의 수입 또한 대폭 증대되어 전반적인 소비 수준이 상승한다. 특히 주요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상품 가격의 상승이 수반되며, 유통 속도의 가속화가 화폐량의 무제한 팽창을 제한함에도 결과적으로 유통 화폐량은 일정 범위 내에서 증가하게 된다.

 

사회적 수입 중 임금 부분은 본래 산업 자본가로부터 가변 자본의 형태, 곧 화폐 형태로 투하되기에 번영기에는 그 유통을 위해 더 많은 화폐량을 요구한다. 다만 이를 가변 자본 유통을 위한 화폐와 노동자 수입 유통을 위한 화폐로 중복 계상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에게 지급된 화폐는 소매업에서 지출된 후 각종 중간 거래를 거쳐 매주 규칙적으로 소매상의 예금을 거쳐 은행으로 환류하기 떄문이다. 번영기에는 이러한 화폐 환류가 산업 자본가에게 매우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임금 지급액의 증가나 가변 자본 유통을 위한 화폐 수요의 증대가 산업 자본가들의 화폐 융통에 대한 추가적인 요구로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다.

 

총괄적인 결과로, 번영기에는 수입의 지출에 충당되는 유통 수단의 양이 결정적으로 증대한다.

 

자본가 상호 간의 거래 및 자본 이전에 필요한 유통 수단의 측면에서 볼 때, 호황기는 신용의 탄력성이 극대화되어 자금 확보가 가장 용이한 시기이다. 자본 간 유통 속도는 신용에 직접적으로 규정되므로, 지불 결제와 현금 구매에 요구되는 유통 수단량은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그 절대량은 증가할 수 있으나, 재생산 과정의 확장 규모와 비교하면 비중은 언제나 축소된다. 이는 한편으로 대규모 지불들이 화폐의 직접적 개입 없이 결제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재생산 과정의 활성화로 인해 동일한 화폐량이 구매 및 지불 수단으로 더욱 신속하게 회전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화폐량이 더 많은 개별 자본의 환류를 매개하게 된다.

 

종합적으로 볼 때, 번영기에는 자본 이전 영역 (제Ⅱ분야)의 화폐 유통이 상대적으로 수축하고 수입 지출 영역 (제Ⅰ분야)의 유통이 절대적으로 팽창함에도, 전체적인 화폐 유통은 매우 원활하고 ‘풍부한’ 양상을 띤다.

 

환류는 상품 자본이 화폐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과정 (M-C-M´)을 의미하며, 이는 제Ⅱ권 제1편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재생산 과정의 본질적 국면이다. 그러나 신용 제도의 개입으로 인해 산업 자본가와 상인이 체감하는 화폐적 환류 시점은 실질적 환류 시점과 분리된다. 자본가는 신용으로 상품을 판매하면서 실질적인 화폐 유입 이전에 상품을 인도하며, 동시에 신용 구매를 거쳐 상품 대금의 만기 지불 이전에 이미 그 가치를 생산 자본이나 상품 자본으로 재전환시킨다.

 

이러한 번영기에는 소매상에서 도매상으로, 다시 제조업자와 원료 수입상으로 이어지는 지불 연쇄가 확실하게 유지되므로, 환류는 표면상 매우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전개된다. 급속하고 확실한 환류라는 이러한 외관은 실제 환류가 종료된 이후에도 기존에 제공된 신용을 매개로 일정 기간 지속되는데, 이는 신용의 환류가 실질적 환류를 대체하기 때문이다. 은행은 고객의 예금 구성에서 현금 비중이 낮아지고 환어음 비중이 높아지는 시점부터 잠재적 위기를 감지하기 시작한다 (제25장에서 인용한 유니언 뱅크 오브 리버풀 이사 리스터의 증언 참조).

 

이전에 지적한 바와 같이, ‘신용 팽창기에는 통화의 유통 속도가 상품 가격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신용 수축기에는 유통 속도가 가격보다 급격히 감소한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CW 29: 340]

 

공황기에는 이러한 양상이 정반대로 나타난다. 수입의 지출이 이루어지는 제Ⅰ분야에서는 화폐 유통이 축소되고 가격과 임금이 하락하며, 취업 노동자 수와 거래량 또한 감소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본의 이전이 발생하는 제Ⅱ분야에서는 신용 수축에 따른 화폐 융통 수요가 증대한다.

 

재생산 과정의 정체와 신용 감퇴가 동시에 진행됨에 따라 제Ⅰ분야의 필요 통화량은 감소하나, 제Ⅱ분야의 필요 통화량은 증가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다만 이러한 사실이 ‘대부 자본에 대한 수요와 추가 유통 수단에 대한 수요는 완전히 별개이며 결합되는 경우도 드물다.’ (풀라턴, 『통화 운용론』: 82, 제5장의 제목)는 풀라턴 등의 주장과 어떻게 부합하는지는 면밀한 검토를 요한다.

 

우선 번영기의 경우, 유통 수단의 절대량이 증대함에 따라 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러나 제조업자가 가변 자본 지출을 위해 은행에서 금이나 은행권을 인출할 때, 이는 자본 자체에 대한 수요 증대가 아니라 자본을 지출하기 위한 이 ‘특수한 화폐적 형태’에 대한 수요 증대일 뿐이다.

 

이러한 수요는 자본을 유통에 투입하는 기술적 방식과 연관될 뿐이며, 이는 신용 제도의 발달 수준에 따라 동일한 가변 자본이라도 국가마다 필요로 하는 유통 수단량이 상이한 것과 같은 이치다. 농업 분야에서도 재생산 과정에 투입된 동일 규모의 자본이 계절적 요인에 따라 서로 다른 화폐량을 요구하는 것 역시 이와 동일한 원리에 기초한다.

 

그러나 풀라턴이 제시한 대비는 타당하지 않다. 번영기와 경기 후퇴기를 구분 짓는 본질적 요소는 그가 주장하는 대부 수요의 강도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수요의 충족이 번영기에는 용이하고 후퇴기에는 극히 어렵다는 사실에 있다. 사실상 번영기에는 신용 제도가 비약적으로 팽창함에 따라 대부 자본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며, 이러한 수요가 공급을 매개로 원활히 충족되는 과정이 오히려 후행하는 경기 후퇴기의 신용 핍박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따라 두 경제적 국면을 구분하는 결정적 기준은 대부 수요의 양적 크기가 아니라, 신용 체계 내에서의 수급 구조와 그 충족 여부에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번영기와 경기 후퇴기를 구분하는 핵심은 유통 수단에 대한 수요의 주체와 성격이 변화한다는 사실에 있다. 번영기에는 소비자와 상인 간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유통 수단 수요가 우세한 반면, 경기 후퇴기에는 소비자 측의 수요는 감소하고 자본가들 사이의 유통 수단 수요가 압도적으로 증가한다.

 

풀라턴을 비롯한 이론가들이 결정적으로 주목한 현상은 잉글랜드 은행의 유가 증권 보유액과 은행권 유통액이 역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유가 증권 보유액은 화폐 융통의 규모, 곧 할인된 환어음이나 담보 대부의 크기를 나타낸다.

 

풀라턴은 이를 근거로 (앞의 주 90 참조) 잉글랜드 은행의 유가 증권 보유액이 은행권 유통액과 반대로 변동하는 현상이 개별 은행의 내재적 원칙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곧, 어떠한 은행도 고객의 수요에 부응하여 결정되는 일정 수준을 초과하여 은행권을 발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은행이 이 한도를 초과해 대부를 확대하고자 한다면, 유가 증권을 매각하거나 기존 예금을 활용하는 등 자신의 실질 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여기서 풀라턴이 규정하는 자본의 실질적 의미가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잉글랜드 은행이 비용 발생이 없는 자기 앞 지불 약속인 은행권으로 더 이상 대부할 수 없게 되는 지점부터 자본이 개입한다. 이 경우 은행은 국채, 주식 등 보유 중인 ‘이자 낳는 증서 (유가 증권)’의 매각 대금을 확보하여 대부를 실행한다. 은행은 유가 증권을 판매하면서 금이나 법화인 은행권을 획득하며, 결과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은행이 대부하는 실체는 화폐가 된다.

 

이 시점의 화폐는 잉글랜드 은행 자본의 일부를 구성한다. 금을 대부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은행권을 대부하는 경우에도 해당 은행권은 자본을 표상한다. 은행이 그 은행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자 낳는 유가 증권이라는 현실적 가치를 양도했기 때문이다. 개인 은행의 경우 유가 증권 매각으로 회수하는 화폐는 대개 잉글랜드 은행권이거나 자기 자신의 은행권이다. 특히 잉글랜드 은행의 경우, 회수된 자기 앞 은행권은 결과적으로 이자 낳는 증권이라는 비용을 대가로 치른 셈이 된다.

 

따라서 잉글랜드 은행이 회수된 은행권을 재발행하거나 동일 금액의 새로운 은행권으로 발행한다면, 그 은행권은 자본을 대표하게 된다. 이는 자본가에 대한 대부 방식이든, 화폐 융통 수요 감퇴에 따른 유가 증권 재투자 방식이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결국 이러한 이론적 범주에서의 ‘자본’은 은행업자적 관점의 용어일 뿐이며, 이는 은행이 자신의 신용 (은행권 발행)을 초과하여 대부해야만 하는 강제적 상황을 의미한다.

 

잉글랜드 은행이 자기 앞 은행권으로 대부를 실행함에도, 할인 어음과 담보 등의 대부액 증가에 반해 은행권 유통액이 감소한다면, 투입된 은행권의 환류 경로는 다음과 같다.

 

국제 수지 적자로 인한 금 유출이 화폐 융통 수요를 촉발하는 경우 사태는 명확해진다. 어음 할인으로 발행된 은행권이 은행의 발권부에서 금과 교환되어 국외로 수출되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은행이 은행권의 매개 없이 금을 직접 지불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수요 증대는 국내 유통에 단 한 장의 은행권도 추가하지 않는다. 이 국면에서 잉글랜드 은행이 ‘통화’가 아닌 ‘자본’을 대부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 은행이 단순한 신용이 아닌 현실적 가치, 곧 자기 자본이나 예금 자본의 일부를 대부한다는 점이다.

 

둘째, 대부되는 화폐가 국내 유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세계 유통 수단인 ‘세계 화폐’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화폐는 반드시 퇴장 화폐의 형태인 금속 상태로 존재해야 하며, 이 형태에서 화폐의 가치는 금속 자체의 가치와 일치한다. 이때 금은 은행이나 수출상에게 자본을 표상할지라도, 그 수요의 본질은 자본 일반이 아닌 화폐 자본의 절대적 형태로의 금에 집중된다. 해외 시장이 실현될 수 없는 상품 자본으로 정체된 시점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수요는, 자본 그 자체가 아니라 세계 시장의 일반적 상품이자 화폐의 시초 형태인 ‘화폐로의 자본’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금 유출은 풀라턴이나 투크의 주장처럼 단순히 ‘자본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으며, 특수 기능을 수행하는 ‘화폐의 문제’로 파악되어야 한다. 금 유출이 통화주의자들의 견해처럼 국내 유통 수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곧바로 그것이 단순히 자본의 문제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화폐가 ‘세계적 지불 수단’의 형태를 취하면서 발생하는 엄연한 화폐적 현상이다. 흉작 시 곡물 수입 대금을 상품으로 지불하든 금으로 지불하든 거래의 성격에 영향이 없다는 풀라턴의 주장은 이러한 화폐의 특수 기능을 간과한 오류이다. (풀라턴, 1845: 131)

 

금 유출 여부는 경제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곡물 구매 대금과 같은 자본을 귀금속 형태로 지출하는 이유는, 상품 형태로는 수출이 여의치 않거나 막대한 손실 없이는 송금이 어렵기 때문이다. 근대 은행 제도가 금 유출에 대해 갖는 공포는 중금주의자들이 가졌던 착각을 능가한다. 1847-1848년 공황 당시 잉글랜드 은행 총재 모리스의 의회 증언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상업 불황』, 1847-1848)

 

‘질문자: 본인이 주식과 고정 자본의 가치 하락에 언급했을 때, 주식과 생산물에 투하된 모든 자본이 동일하게 감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원면, 생사, 원모가 헐값에 대륙으로 수출되고 설탕, 커피, 차가 투매로 처분되지 않았나. 식량의 대량 수입으로 인한 금 유출에 대처하기 위해 인민이 이와 같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는 것이 과연 불가피했는가.

 

모리스: 그렇다. (그와 같은 희생은 불가피했다.) (제3846호).’

 

‘질문자: 그렇다면 그러한 막대한 희생을 강요하며 금을 회수하려 노력하기보다, 잉글랜드 은행 금고에 잠자고 있는 800만 파운드의 금 준비금에 손을 대는 (사용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았겠는가.

 

모리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3848호).’

 

모리스는 식량 수입으로 인한 금 유출에 대응하기 위해 인민적 희생이 불가피했음을 시인한다. 당시 주식과 고정 자본은 물론 원면, 생사, 원모 등 원자재가 헐값에 유럽으로 유출되었고 설탕, 커피, 차와 같은 식료품조차 투매로 처분되며 자산 가치가 급락했다. 이러한 가혹한 희생을 치르기보다 은행 금고의 예비금에 손을 대는 것이 낫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결코 그렇지 않다며 단호히 거부한다. 이는 현대 금융 제도 하에서도 금이 여전히 ‘유일한 진정한 부’이자 최후의 결제 수단으로 물신화되고 있음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풀라턴이 인용한 투크의 견해는 지난 반세기 동안 금 유출을 동바한 현저한 환율 하락이 오히려 유통 수단이 상대적으로 희소한 상태와 일치했음을 보여준다. (풀라턴, 1845: 121) 이는 금 유출이 대개 호황과 투기 국면 이후에 발생하며, 시장의 공급 과잉, 해외 수요의 중단, 환류의 지연, 그리고 그 필연적 결과인 상업적 불신과 산업 침체를 알리는 붕괴의 지표임을 입증한다. (129)

 

이러한 사실은 ‘유통 수단의 과잉이 금을 밀어내고, 부족이 금을 끌어들인다.’는 통화주의자들의 기계적인 도식에 대한 강력한 반증이 된다. 통화주의자들의 가설과 정반대로, 잉글랜드 은행은 번영기에 거대한 금준비를 보유하며, 이러한 준비금은 항상 격동기 이후의 불황기에 형성되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금 유출에 관한 논의의 핵심은 세계적 유통·지불 수단에 대한 수요가 국내적 수요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풀라턴이 지적하듯 ‘금유출의 존재가 반드시 국내 유통 수단 수요의 감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귀금속의 국외 수출은 은행권이나 주화를 국내에 유통하는 행위와 동일시될 수 없다. 세계 지불을 위한 준비금으로의 퇴장 화폐 운동은 유통 수단으로의 화폐 운동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장 화폐의 여러 기능, 곧 국내 지불 준비금, 유통 수단 준비금, 그리고 세계 화폐로의 준비금 기능이 단일한 예비금에 집중되면서 문제는 심화된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CW 29: 382-384) 상황에 따라 국내로의 금 유출이 해외 유출과 결부될 수 있으며,

 

특히 신용 제도 하에서 이 퇴장 화폐에 ‘은행권 태환 보증’이라는 추가적 기능이 부여되면서 모순은 가중된다. 여기에 (1) 전국의 준비금이 중앙은행으로 집중되고 (2) 이를 최저 한도로 축소 운용하는 방식이 더해진다. 이 때문에 풀라턴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영국에서는 금준비 고갈 시마다 극심한 불안과 경악이 수반된다. 이는 환율 변동이 평온하게 유지되는 대륙의 금속 통화 체제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143)

 

이제 금 유출 요인을 배제한다면, 잉글랜드 은행과 같은 발권 은행이 은행권 발행액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대부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인지 검토해야 한다.

 

잉글랜드 은행의 관점에서 자사 보유고를 벗어난 모든 은행권은 실쩨 유통 여부와 관계없이 유통 상태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은행이 할인 업무나 유가 증권 담보 대부를 확대함에도 은행권 유통액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발행된 은행권은 반드시 은행으로 환류해야 하며 그 경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으로 요약된다.

 

첫째, 잉글랜드 은행이 유가 증권을 대가로 A에게 은행권을 지급하고, A가 B에 대한 만기 어음을 이 은행권으로 결제하면, B가 이를 다시 잉글랜드 은행에 예금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해당 은행권의 유통은 종결되나 대부 관계는 소멸하지 않고 유지된다. 곧, ‘대부 총액은 변함없으나 불필요해진 통화만이 발행자인 은행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풀라턴: 97)

 

이때 은행은 A에 대해서는 채권자 지위를 유지하는 한편, B에 대해서는 예입된 은행권 가치만큼의 채무자 지위를 갖게 되며, 결과적으로 B는 은행 자본 중 해당 가치분에 대한 처분권을 획득한다.

 

둘째, A가 B에게 지불하고, B 또는 그다음 수취인인 C가 만기 어음을 결제하기 위해 해당 은행권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은행에 납입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자신의 채권을 자기 앞 은행권으로 회수하게 되며, A의 최종 상환 절차를 제외한 개별 거래는 완결된다.

 

이러한 환류 원리를 바탕으로, 은행이 A에게 실행한 대부를 어느 지점까지 ‘자본의 대부’로 규정하고 어느 지점까지 ‘지불 수단의 대부’로 파악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검토가 요구된다.

 

(엥겔스: 대부의 성격에 따라 다음의 세 가지 사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A가 담보 없이 개인 신용에 의거해 대부를 받는 경우이다. 이때 A는 지불 수단을 획득함과 동시에 명백히 새로운 자본을 대부받는 셈이 된다. 그는 상환 시점까지 이 자본을 자신의 사업 내에서 추가 자본으로 운용하며 가치를 증식시킬 수 있다.

 

둘째, A가 국채나 주식 등 유가 증권을 담보로 제공하고 시가의 일정 비율 (예: 2/3)을 현금으로 대부받는 경우이다. 이 과정에서 A는 필요한 지불 수단을 확보하지만, 추가 자본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은행에 제공한 담보 가치가 수령한 현금보다 크기 때문이다. 다만 A는 이자를 낳는 유가 증권 형태의 자본을 지불 수단으로 즉각 전환하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해당 유가 증권을 준비 자본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다. 결과적으로 A와 은행 사이에는 자본의 일시적 상호 이전이 발생한다. A는 추가 자본 없이 지불 수단을 확보하고, (실상 A가 수령한 현금보다 더 큰 자본 가치를 은행에 제공한다!) 은행은 화폐 자본을 대부의 형태로 묶어두며 그 형태를 전환시키는데, 이는 은행업의 본질적 기능에 해당한다.

 

셋째, A가 어음을 할인하여 현금을 수취하는 경우이다. 이는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비유동적 화폐 자본인 어음을 은행에 매각하고, 유동적 형태인 현금을 확보하는 행위이다. 어음의 소유권은 은행으로 이전되나, 부도 시 최종 이서인인 A가 상환 책임을 진다는 점은 변함없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거래는 대부가 아닌 통상의 매매에 가깝다.

 

A는 은행에 상환 의무가 없으며, 은행은 만기일에 어음 발행인으로부터 대금을 회수한다. 이 역시 다른 상품의 매매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상호 이전일 뿐, A에게 추가 자본이 유입되는 것은 아니다. A는 지불 수단 확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은행은 화폐 자본의 형태를 어음에서 화폐로 전환해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자본 대부가 성립하는 것은 오직 첫째 경우뿐이다. 둘째와 셋째 사례의 경우, 모든 자본 투하가 넓은 의미에서 ‘대부’ 성격을 내포한다는 수준에서만 자본 대부라 칭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은행이 A에게 화폐 자본을 대부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A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신의 자본 일반 중 일부인 화폐 형태일 뿐이다.

 

더욱이 A는 이를 자본으로 투하하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불 수단으로 요구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자본 대부로 간주한다면, 지불 수단 마련을 목적으로 행해지는 모든 일반 상품의 판매 행위 또한 자본 대부를 받는 것으로 규정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은행권을 발행하는 개인 은행의 경우 다음과 같은 기능적 차이가 발생한다. 발행된 은행권이 지방 유통 영역에 머물지 않고 예금이나 만기 어음 결제의 형태로 해당 은행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그 은행권은 결과적으로 발행 은행이 금이나 잉글랜드 은행권을 지불해야만 하는 채권자들의 수중에 놓이게 된다. 이 국면에서 은행권의 대부는 실질적으로 잉글랜드 은행권이나 금의 대부, 곧 은행 자본의 직접적인 이전을 의미한다.

 

이는 은행권 발행에 법정 최고 한도가 설정된 잉글랜드 은행이나 기타 발권 은행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은행이 유가 증권을 매각하면서 이미 유통 중인 자기 앞 은행권을 회수하고 이를 다시 대부로 발행해야만 한다면, 이때의 은행권은 은행이 동원할 수 있는 실질 자본의 일부를 대표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조건 하에서 은행권은 단순한 신용의 팽창이 아니라, 구체적인 가치를 지닌 은행 자본의 화폐적 표상으로 기능한다.

 

통화 제도가 순수한 금속 통화 제도라 전제하더라도, 다음의 두 현상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첫째, 잉글랜드 은행의 금고를 고갈시키는 수준의 금 유출이 일어나는 경우이다 (엥겔스: 이는 국내에 비축된 금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유출됨을 의미한다).

 

둘째, 은행의 주된 금 수요가 이전 거래의 결제를 위한 지불 용도에 집중됨에 따라, 은행의 담보 대부는 대폭 증가하는 반면, 발행된 은행권은 예금이나 만기 어음 상환의 형태로 다시 은행에 복귀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잉글랜드 은행의 유가 증권 보유액은 대부 확대로 인해 증가하지만, 발행 준비금은 금 유출로 인해 감소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은행은 종전 자사 소유로 보유했던 동일한 금액을 이제는 예금자에 대한 채무 형태로 보유하게 되며, 사회 전체의 통화 총량은 수축 국면에 진입한다.

 

지금까지는 대부가 은행권 발행을 매개로 이루어지며, 그에 따라 일시적인 통화량 증가가 수반된다고 전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잉글랜드 은행은 실물 은행권을 발행하는 대신 A에게 신용 계좌를 개설해 줄 수 있으며, 따라서 채무자인 A는 장부상 예금자로의 지위를 얻는다.

 

A는 자신의 채권자에게 잉글랜드 은행 앞 수표로 대금을 지불하면, 수취인은 해당 수표를 자신의 거래 은행에 입금하고, 각 은행은 어음 교환소를 경유하여 수표를 상호 결제한다. 이 과정에서 현실적인 은행권의 개입은 배제된다.

 

거래의 실체는 은행이 A에 대한 채권을 확보하면서 자산을 구성하는 동시에, 자기 앞으로 발행된 수표를 매개로 자신의 채무를 결제하는 방식으로 국한된다. 결과적으로 은행은 자기 채권의 일부라는 형태로 은행 자본의 일부분을 A에게 대부한 셈이 된다.

 

화폐 융통에 대한 수요가 자본에 대한 수요로 기능하는 한, 이는 오직 은행업자의 관점에서의 자본, 곧 화폐 자본에 대한 수요에 국한된다. 이는 국외 유출을 위한 금이나, 개인 은행이 등가물을 지불하고 확보해야 하는 중앙 은행권에 대한 수요를 의미한다. 또한 금이나 은행권을 획득하기 위해 매각하는 국채·주식 등 이자 낳는 유가 증권 역시 은행업자의 입장에서는 자본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러한 유가 증권은 그것을 구매하여 자본을 투하한 소유자에게만 자본을 대표할 뿐, 그 자체로는 자본이 아닌 단순한 채권에 불과하다. 지대 청구권인 토지 저당 증서나 잉여 가치 분배권인 주식은 실물 자본의 구성 부분도,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가치도 아니다. 이와 비슷한 신용 거래를 매개로 하여 은행 내 화폐가 예금으로 전환되어 은행의 지위가 소유자에서 채무자로 변동될 수 있으나, 이러한 회계적 변화가 국내에 현존하는 실물 자본이나 화폐 자본의 총량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여기서 자본은 오직 화폐 자본으로만 나타나며, 현실적인 화폐 형태를 취하지 않을 때는 단순한 자본 소유권으로 기능할 뿐이다. 이러한 구별은 매우 중요하다. 은행 자본의 결핍이나 이에 대한 절박한 수요가 실물 자본의 감소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로, 실물 자본은 생산 수단과 생산물의 형태로 과잉 상태가 되어 시장을 범람시키는 국면에서 이러한 화폐 자본의 핍박이 발생한다.

 

유통 수단 총량이 불변하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상황에서 잉글랜드 은행이 담보 유가 증권 보유액을 늘리며 화폐 융통 수요를 충족시키는 원리는 명확하다. 화폐 핍박의 시기에 유통 수단 총량은 (1) 금유출과 (2) 단순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수요로 인해 제약된다. (2)의 경우 이때 발행된 은행권은 즉각 환류하거나, 실물 화폐의 매개 없이 장부상 신용 계정으로 처리된다. 이 경우 모든 결제는 신용 거래만으로 수행되며, 화폐는 단순히 이전 거래를 청산하기 위한 지불의 완결자로 기능할 뿐이다.

 

공황기에 대부를 받는 목적은 새로운 구매가 아니라 이전 거래의 청산에 있다. 화폐가 지불의 결제를 위해 기능할 때, 비록 신용 상쇄만으로 완결되지 않아 화폐가 개입하더라도 그 현실적 유통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화폐 융통에 대한 수요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유통 수단 총량의 팽창 없이 거액의 결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은 화폐 고유의 특성이다.

 

잉글랜드 은행이 대규모 화폐 융통을 실시함에도 은행권 유통액이 안정되거나 감소한다는 사실이,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의 유통액 자체가 미미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풀라턴이나 투크 등은 화폐 융통을 대부 자본의 차입이나 추가 자본의 확보와 동일시하면서 이러한 본질을 오독하였다.

 

사업 침체기에는 구매 수단으로의 은행권 유통액이 급감하기 때문에, 지불 수단으로의 유통액이 증가하더라도 그 합계인 유통 수단 총액은 변하지 않거나 줄어들 수 있다. 지불 수단으로 투입된 은행권은 발행 은행으로 신속히 환류하므로, 이를 포착하지 못한 경제학자들의 안목에는 그것이 유통액으로 간주되지 않았을 뿐이다.

 

지불 수단으로의 유통액 증가분이 구매 수단으로의 유통액 감소분보다 크다면, 구매 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량이 뚜렷하게 수축하더라도 총 유통액은 오히려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공황의 특정 국면, 곧 신용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어 상품과 유가 증권의 매각이 중단되고 어음 할인마저 정지되면서 오직 현금 지불만이 유일한 결제 수단으로 통용되는 시점에서 실제로 발생한다.

 

풀라턴 등은 이처럼 화폐 부족 시기에 나타나는 지불 수단으로의 은행권 유통이 지닌 구조적 특징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이러한 필연적 현상을 단지 우연한 사태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공황기의 특징인 은행권 확보를 위한 격렬한 경쟁은, 1825년 말의 사례처럼 금 유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은행권 발행액의 일시적이고 급격한 증대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낮은 환율에 수반되는 필연적 결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이 시기의 수요는 유통 수단 (정확히는 구매 수단으로의 유통 수단)에 대한 수요가 아니라, 화폐 퇴장을 위한 수요이기 때문이다. 곧, 이는 금 유출이 장기화된 공황의 종결부에서 신용적 타격을 입은 은행업자와 자본가들이 지불 수단의 예비금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발생하는 수요이며, 동시에 금 유출이 멈추리라는 전조이기도 하다.’ (풀라턴: 130)

 

지불 연쇄가 급격히 중단될 때, 화폐가 순전히 관념적인 계산 화폐의 형태를 벗어나 상품들에 대립하는 가치의 물질적이고 절대적인 형태로 전환되는 과정은 이미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를 고찰하며 (제Ⅰ권 제3장 3절 b; 실례는 주 51과 52 참조) 논의한 바 있다. 이러한 지불 연쇄의 중단 및 파괴는 신용의 동요와 그에 수반되는 시장의 포화, 상품의 감가, 생산 중단 등의 결과인 동시에, 다시 그 현상들을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풀라턴은 구매 수단으로의 화폐와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사이의 기능적 구별을 통화와 자본 사이의 본질적 구별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의 기저에는 유통 현상에 매몰된 은행업자 특유의 편협한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화폐 핍박 시기에 공급이 부족하여 위기를 초래하는 실체는 자본 그 자체인가, 아니면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인가. 이는 정치경제학의 역사에서 지속되어 온 핵심적인 논쟁점이다.

 

경제적 핍박이 금 유출의 형태로 표면화되는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실체는 세계적 지불 수단임이 명백하다. 세계적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는 금속 상태의 금이며, 이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실체이자 체현된 가치물이다. 이 화폐는 곧 자본을 의미하나, 상품 자본이 아닌 화폐 자본으로의 자본이며, 일반적인 세계 시장 상품인 화폐의 형태를 취한 자본이다.

 

따라서 이 국면에서는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수요와 자본 수요 사이의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립의 본질은 오히려 상품 형태의 자본과 화폐 형태의 자본 사이에 놓여 있다. 자본이 요구되는 유일한 형태이자 실제 기능할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이 오직 자본의 화폐 형태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금·은에 대한 수요를 제외한다면, 공황기에 일반적인 의미의 자본이 부족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흉작으로 인한 곡물 가격의 등귀나 면화 기근 등과 특수한 생산 조건의 악화가 발생할 경우 자본의 실질적 부족이 나타날 수 있으나, 이는 공황기에 필연적 또는 규칙적으로 수반되는 고유한 현상은 아니다. 따라서 화폐 융통에 대한 수요가 격증한다는 사실로부터 자본 자체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직접 도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태의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깝다. 시장은 이미 공급 과잉 상태에 놓여 있으며, 처분되지 못한 상품 자본으로 범람하고 있다. 곧, 위기를 심화시키는 결정적 원인은 결코 상품 자본의 물리적 결핍에 있지 않다. 이 논점에 대해서는 차후에 보다 상세히 상술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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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

 

신용 제도에 관한 일반적 고찰과 주식회사의 등장이 갖는 경제적 함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Ⅰ. 이윤율의 균등화와 신용 제도

 

자본주의적 생산 전체의 기초인 이윤율의 균등화, 또는 그 균등화 운동을 매개하기 위해 신용 제도는 필연적으로 형성된다.

 

Ⅱ. 유통 비용의 절감과 자본 회전의 가속화

 

1) 화폐 자본의 절약: 화폐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는 한, 화폐는 주요한 유통 비용이 된다. 신용은 세 가지 방식에 의거하여 이를 절약한다.

 

A. 거래의 상당 부분에서 실물 화폐의 사용을 배제함.

 

B. 유통 수단 유통의 가속화는 유통 속도의 증대를 의미하며, 부분적으로 아래 Ⅱ의 2)와 일치한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실현된다. 첫째는 기술적 측면으로, 은행업 기술의 발달을 매개로 실질적 상품 거래의 양과 규모가 동일하더라도 더 적은 양의 화폐나 화폐 표상으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둘째는 신용의 기능적 측면으로, 신용이 상품의 형태 변화 (자본 회전) 속도를 높이면서 결과적으로 화폐 유통 속도 자체를 가속화하는 것이다.

 

C. 금화를 지폐로 대체함.

 

2) 재생산 과정의 촉진: 신용은 상품 형태 변화의 각 국면을 가속화여 자본의 회전 및 재생산 과정 전반을 촉진한다. 다만, 신용은 구매와 판매를 장기간 분리시켜 투기의 토대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준비금의 축소는 유통 수단의 감축인 동시에, 자본 중 화폐 형태로 유지되어야 하는 유휴 부분의 감축을 의미한다.

 

Ⅲ. 주식회사의 형성과 자본의 사회화

 

1) 생산 규모의 확장: 개인 자본으로는 한계에 부딪쳤던 거대 규모의 기업 팽창이 실현되었으며, 종래의 정부 기업들 또한 회사 기업의 형태로 전환된다.

 

2) 사적 자본의 사회적 자본화: 생산의 사회적 방식에 근거하며 생산 수단과 노동력의 사회적 집중을 전제하는 자본은, 이제 사적 자본과 대비되는 사회적 자본 (직접적으로 연합한 개인들의 자본)의 형태를 취한다. 이에 따라 해당 자본에 기반한 기업 역시 사적 기업에 대립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등장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라는 한계 내부에서, 사적 소유로서의 자본을 철폐하는 것이다.

 

3) 기능과 소유의 분리: 현실의 기능 자본가는 타인의 자본을 관리하는 ‘경영자’로, 자본 소유자는 ‘화폐 자본가’로 분리된다. 이윤은 이제 오직 이자의 형태, 곧 재생산 과정상의 실제 기능과 분리된 ‘자본 소유에 대한 보상’으로만 취득된다. 경영자의 봉급은 숙련 노동에 대한 임금으로 규정되며, 모든 이윤은 생산 수단이 실제 생산자로부터 분리되어 타인의 소유로 대립하는 데서 발생하는 ‘타인의 잉여 노동 취득’임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러한 자본 기능과 소유의 분리, 노동과 잉여 노동 소유의 완전한 분리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최고 발전 단계이자, 자본을 다시 연합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소유’로 재전환시키기 위한 필연적인 이행 단계로 기능한다.

 

주식회사의 등장이 갖는 경제적 함의 중 하나는 이윤이 오직 이자의 형태를 취하면서, 이자 수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의 존속이 허용된다는 점이다. 이는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를 저지하는 주요 기제로 작용한다. 가변 자본 대비 불변 자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거대 주식회사들은 일반적 이윤율의 균등화 과정에 반드시 참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3편 제14장 6절 참조).

 

(엥겔스: 마르크스 이후 산업 조직은 주식회사의 고도화를 거쳐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였다. 대공업 분야의 생산력은 급격히 팽창하는 반면 시장의 확대 속도는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여기에 각국의 보호주의 정책이 더해져 국내 생산 능력만 인위적으로 증대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불일치는 만성적 과잉 생산, 가격 하락, 이윤 감소를 야기하며 마침내 자유 경쟁의 파산과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대기업가들은 생산 통제를 목적으로 기업 연합 (카르텔)을 결성하기 시작했다. 기업 연합 위원회는 각 기업의 생산량을 규제하고 주문을 배분하며, 때로는 일시적인 세계 기업 연합 (신디케이트)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별 기업 간의 이해 대립으로 인해 이러한 결합마저 붕괴하고 경쟁이 재연되는 한계가 드러났다.

 

미국은 이미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이러한 단계를 달성했으며, 유럽에서는 1890년 48개 화학 회사의 합병으로 탄생한 ‘유나이티드 알칼리 트러스트’가 그 정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영국의 알칼리 생산 전체가 단일 회사의 수중으로 집중되었다. 30개 이상 공장의 이전 소유주들은 자산 가치를 주식으로 전환 받아 약 500만 파운드 규모의 트러스트 고정 자본을 형성했다. 비록 기술적 경영은 기존 인력 사람들에게 맡겨져 있으나, 금융적 지배권만큼은 이사회에 완전히 집중되었다. 여기에 공모에 따른 유동 자본 100만 파운드가 더해져 총자본은 600만 파운드에 이르렀다. 이처럼 화학 산업의 근간에서 경쟁은 독점으로 대체되었고,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 곧 인민이 수취하기에 가장 만족스러운 형태가 준비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생산 조직은 산업 전반의 총생산을 단일한 경영 기구 아래 집중시키는 거대 주식회사, 곧 트러스트의 단계로 이행한다. 미국의 사례와 영국의 ‘유나이티드 알칼리 트러스트’가 보여주듯, 개별 공장 소유주들은 자산을 주식으로 전환하여 고정 자본을 형성하고 금융적 지배권을 이사회에 집중시켰다. 따라서 특정 산업 분야에서 경쟁은 독점으로 대체되었으며, 이는 사회 전체가 생산 수단을 장악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인 ‘사회적 독점’으로의 이행을 예비하는 과정이다.

 

주식회사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내부에서 해당 양식의 원리를 부정하며 스스로를 철폐해 나가는 내적 모순을 내포한다. 이는 명백히 새로운 생산 형태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적 단계를 대표하며, 현상적으로도 다음과 같은 모순적 양태를 드러낸다.

 

첫째, 주식회사는 특정 산업 분야에서 독점을 형성하면서 필연적으로 국가의 개입을 유도한다.

 

둘째, 주식회사는 새로운 금융 귀족을 창출하며 회사 발기인, 투기꾼, 명목상의 임원과 같은 불로소득 계급 (기생 계급)을 재생산한다. 이와 동시에 회사 창립, 주식 발행 및 거래를 둘러싼 투기와 사기 체제 전반을 고착화한다. 결과적으로 주식회사는 사적 소유의 지배 범위를 벗어난 ‘사적 생산’이라는 형용모순의 극치를 보여준다.

 

Ⅳ. 신용 제도와 자본의 사회적 지배 및 수탈의 심화

 

주식회사 제도가 자본주의적 토대 위에서 사적 산업을 해체하고 새로운 생산 분야를 장악해 나가는 것과 별개로, 신용은 개별 자본가에게 타인의 자본과 노동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부여한다. 자본가가 행사하는 처분권은 이제 자기 자본이 아닌 ‘사회적 자본’에 근거하며, 이는 곧 사회적 노동에 대한 지배권으로 직결된다. 특히 도매업 단계에서 두드러지듯, 개인의 실질적 소유 자산은 신용이라는 거대한 상부 구조를 지탱하는 명목상의 토대에 불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생산 양식을 정당화하던 기존의 논리들은 그 근거를 상실한다. 투기적 자본가가 도박의 담보로 삼는 것은 자신의 소유가 아닌 사회적 소유이며, 자본의 기원을 개인의 ‘저축’이나 ‘절약’에서 찾던 담론 역시 기만적임이 드러난다. 오히려 자본가의 사치는 신용을 획득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 전도되며, 이전의 경제적 관념들은 무의미해진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전에 따른 성공과 실패는 모두 자본의 집중을 가속화하며, 이는 거대한 규모의 수탈로 이어진다. 수탈의 대상은 직접적 생산자뿐만 아니라 중소 자본가에게까지 확대된다. 자본주의의 궁극적 지향점은 수탈을 완성하여 모든 개인으로부터 생산 수단을 분리하는 것이며,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생산 수단은 필연적으로 ‘연합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소유’로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이러한 수탈은 ‘소수가 독점하는 사회적 소유의 사유화’라는 모순적 형태로 나타난다. 신용은 이들 소수에게 사기적 성격을 부여하며, 소유가 주식의 형태로 전환됨에 따라 부의 이전은 증권 거래소의 투기 결과로 전락한다. 그곳은 작은 물고기들이 상어의 먹이가 되고, 양들이 거래소 이리들의 밥으로 던져지는 약육강식의 각축장이다. 이처럼 주식회사는 사회적 생산 수단과 개인적 소유라는 낡은 형태 사이의 대립을 드러내지만, 여전히 자본주의적 한계 내에 머물러 있다. 결국 주식회사는 사회적 부와 사적 부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더욱 고도화된 새로운 형태로 전개시킬 뿐이다.

 

노동자 협동조합 공장은 비록 현존 조직 체계 내에서 기존 제도의 결함을 재생산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나, 낡은 생산 양식 내부에서 새로운 형태가 발현되는 최초의 실례로 평가된다. 여기에서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본가의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의 노동을 가치 증식시키는 방식을 취하면서,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립이 우선적으로 철폐된다. 이는 물질적 생산력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생산 형태가 일정 단계에 도달했을 때, 새로운 생산 양식이 낡은 생산 양식으로부터 어떻게 자연적으로 도출되고 형성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협동조합 공장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서 파생되는 공장 제도와 신용 제도를 토대로 비로소 성립된다. 신용 제도가 자본주의적 개인 기업을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기초가 되듯, 협동조합 기업을 인민적 규모로 확장하는 핵심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적 주식회사와 협동조합 공장은 모두 자본주의에서 ‘연합한 생산 양식’으로 이행하는 과도적 형태에 해당한다. 다만 주식회사에서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소극적으로 철폐되는 반면, 협동조합 공장에서는 그것이 적극적으로 철폐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지금까지 신용의 발달과 그에 내포된 자본 소유의 잠재적 철폐 과정을 주로 산업 자본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고찰하였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신용을 이자 낳는 자본 그 자체와 관련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곧, 신용이 이자 낳는 자본에 미치는 영향과 그 과정에서 신용이 취하는 구체적 형태를 분석하고, 나아가 보다 특수한 경제학적 비판을 제기할 것이다.

 

다만, 먼저 다음의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용 제도가 과잉 생산과 과도한 상업 투기의 주요한 지렛대로 작용하는 이유는, 그 본질상 탄력적인 재생산 과정이 신용을 매개로 극한까지 강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행이 추동되는 것은 사회적 자본의 상당 부분이 실제 소유주가 아닌 비소유자들의 수중에서 운용되기 때문이며, 이들은 자기 자본의 한계를 신중히 타산하는 소유주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본을 집행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대립적 성격에 기초한 자본 가치 증식이 생산력의 자유로운 발전을 특정 지점에서 제약하며, 생산에 대한 내재적 속박과 한계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실증한다. 신용 제도는 이러한 속박을 끊임없이 돌파하면서 생산력의 물질적 발전과 세계 시장의 창출을 촉진한다. 이러하 성과를 새로운 생산 형태의 물질적 기초로 확립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역사적 사명이다. 동시에 신용은 내재된 모순의 격렬한 폭발인 공황을 야기하고, 낡은 생산 양식을 해체하는 요소들을 심화시키면서 체제 이행을 가속화한다.

 

신용 제도는 양면적 성격을 내포한다. 한편으로는 타인 노동의 착취에 기반한 치부라는 자본주의적 생산 동기를 극단적인 도박과 사기 체제로 발전시키며, 소수에 불과한 사회적 부의 수탈자 수를 더욱 제한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생산 양식으로의 이행을 예비하는 과도적 형태를 구축한다. 이러한 이중적 특성으로 인해, 로에서 페레르에 이르는 신용 제도의 주요 주창자들은 사기꾼과 예언자라는 상반된 면모를 동시에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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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화폐 자본의 축적. 이자율에 미치는 영향

 

‘영국 내 부의 지속적인 축적은 필연적으로 화폐 형태의 자본 증대로 이어진다. 그러나 화폐 그 자체로는 가치를 증식시키지 못하기에, 자본가에게는 화폐를 획득하려는 욕구만큼이나 이를 이자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처로 재방출하려는 동기가 강력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과잉 자본이 끊임없이 유입되는 상황에서 그 운용 영역이 충분히 확장되지 못한다면,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휴 화폐 자본의 주기적인 퇴적은 불가피한 현상이 된다. 이전에 오랜 기간 국채는 영국의 잉여 부를 흡수하는 주요한 수단이었으나, 1816년 국채 발행액이 한계치에 도달하며 그 기능을 상실하자 매년 최소 2,7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자본이 새로운 투자 대상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여기에 기존 자본의 상환까지 더해지며 유휴 자본의 압력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러한 구도 하에서 대규모 자본 투하를 요하는 대형 사업은 유휴 화폐 자본의 배출구로 경제적 필연성을 지닌다. 일반적인 투자 영역에서 수용되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정체되는 사회적 과잉 부를 처분하면서 자본 순환의 마찰을 해소하기 때문이다.’ (『통화 이론 검토』, 1845: 32-34)

 

1845년의 상황에 대하여, 앞서 언급한 익명의 저자 (잉글랜드의 한 은행업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최근 물가는 불황의 최저점을 지나 반등하기 시작했다. 3% 영구 국채인 콘솔 시세는 액면가에 육박하며, 잉글랜드 은행의 금고 내 금 보유고는 창립 이래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각종 주가 또한 평균적으로 사상 최고 수준을 경신하는 가운데 이자율은 명목적인 수준으로 급락했다. 이러한 지표들은 현재 영국 내에 유휴 부가 거대하게 퇴적되어 있음을 방증하며, 조만간 또 한 번의 투기 과열 시기가 도래할 것임을 예고한다.’ (36)

 

‘금 수입이 해외 무역 이익을 나타내는 절대적 지표는 아닐지라도, 다른 변수가 없는 상황에서 이는 명백히 무역 이익의 일부를 대표한다.’ (허바드, 1843: 40-41)

 

‘호황기가 지속되어 물가가 안정적이고 화폐 유통이 원활한 시점에, 흉작으로 인한 곡물 수입으로 500만 파운드의 금이 유출된다면 유휴 화폐 자본으로의 통화량은 그만큼 감소하게 된다. 이때 개인이 보유한 통화량은 변함이 없을지라도, 상인의 은행 예금이나 금융 중개인 (브로커)에 대한 대출 잔액, 그리고 은행의 지급 준비금은 일제히 줄어든다. 이러한 유휴 자본의 감소는 즉각적으로 이자율 상승을 유도하며, 사업의 건전성과 신뢰도가 유지되더라도 신용의 가치는 더욱 높게 평가된다.’ (『통화 이론 검토』: 42)

 

‘반대로, 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한는 국면에서는 유통 영역에서 불필요해진 통화가 예금 증대의 형태로 은행에 환류하며, 이로 인한 유휴 자본의 과잉은 이자율을 최저 수준으로 하락시킨다. 이러한 상태는 물가 상승이나 경기 활성화로 인해 유휴 통화가 다시 동원될 때까지, 또는 해당 자본이 해외 주식이나 외국 상품 투자에 흡수되어 해소될 때까지 지속된다.’ (68)

 

다음은 영국 의회 보고서 『상업 불황, 1847-1848』에서 재인용한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1846년에서 1847년에 걸친 흉작과 기근으로 인해 대규모 식량 수입이 불가피해졌다.

 

‘1846-1847년의 흉작과 기근으로 인한 대규모 식량 수입은 수입액이 수출액을 크게 상회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는 은행권으로부터 막대한 화폐 유출과 할인 상사에 대한 어음 할인 신청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이에 할인 상사들이 어음 심사를 대폭 강화하자 기업의 자금 사정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신용에 의존하던 취약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연쇄 파산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태는 시장 내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은행업자들은 자산의 유동화, 곧 어음이나 유가 증권을 은행권으로 전환하여 채무를 상환하는 것이 이전처럼 용이하지 않으리라는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결과적으로 금융 기관은 대출을 극도로 제한하거나 거절하기에 이르렀고, 확보한 은행권은 자금 결제를 위해 수중에 동결한 채 시장에 방출하지 않았다. 금융 시장의 불안과 혼란이 심화되는 가운데, 당시 수상 존 러셀이 (영국 수상, 재임 1846-1852)이 잉글랜드 은행에 서한을 발송하여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국가적 수준의 전반적인 파산 사태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74-75)

 

수상 존 러셀의 서한은 결국 은행법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당시 상황에 대해 터너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상당수의 기업이 대규모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그 자산의 유동성은 극도로 결여되어 있었다. 자본의 전량이 모리셔스의 농장이나 인디고 및 설탕 공장 등에 고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이미 50만 내지 60만 파운드에 달하는 채무를 지고 있었으나, 당장 어음을 결제할 수 있는 유동성 자산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이들이 어음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외부 신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81)

 

위의 사안에 대해 거니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1848년 당시의 경제 상황에 대해 거래의 급격한 축소와 화폐의 대규모 과잉 현상이 확인된다 (제1664호).’

 

‘이자율이 과도하게 급등한 원인을 단순한 자본의 물리적 부족이 아닌, 시장에 팽배한 공포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한다 (제1763호).’

 

실제로 1847년 영국은 극심한 식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최소 900만 파운드 규모의 금을 해외로 유출하며 수입 대금을 결제하였다. 이 중 750만 파운드는 잉글랜드 은행의 보유고에서 충당되었으며, 나머지 150만 파운드는 기타 민간 및 금융 원천에서 충당되었다. 이러한 대규모 금 유출은 국내 금융 시장의 유동성 압박을 심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301)

 

당시 잉글랜드 은행 총재 모리스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1847년 10월 23일까지 공채와 운하 및 철도 주식의 가치는 이미 총액 1억 1,475만 2,225파운드나 하락하였다.’ (312)

 

이에 대해 상원 의원 벤팅크와 모리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오갔다.

 

‘벤팅크: 각종 주식과 생산물에 투입된 자본이 일제히 감가되었으며, 원면·생사·양모가 헐값에 대륙으로 수출되고 설탕·커피·차가 투매로 처분되었음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영웅적 희생 대신 잉글랜드 은행 금고의 8백만 파운드를 활용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았는가.

 

모리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식량 수입에 따른 금 유출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이 막대한 희생을 치르는 것은 불가피하였다.’

 

이러한 ‘영웅적 희생’의 실상은 디즈렐리와 잉글랜드 은행 전임 총재 코튼의 심문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디즈렐리: ‘1844년 잉글랜드 은행 주주들에게 지급된 배당률은 몇 퍼센트 (%)였는가.

 

코튼: 7퍼센트 (%)였다.’

 

‘디즐레리: 그렇다면 1847년에는 몇 퍼센트 (%)였는가.

 

코튼: 9퍼센트 (%)이다.’

 

1844년 7%였던 잉글랜드 은행의 주주 배당률은 위기 국면인 1847년 오히려 9%로 상승하였다.

 

‘디즈렐리: 잉글랜드 은행은 금년에 주주를 대신해 소득세까지 지불하는가.

 

코튼: 그렇다.’

 

더욱이 1844년에는 주주가 직접 부담하던 소득세를 1847년엔는 은행이 대납하기 시작하였다.

‘디즈렐리: 1844년에도 그렇게 (소득세 대납) 하였는가.

 

코튼: 하지 않았다.’

 

‘디즐렐리: 그렇다면 이 1844년의 은행법은 주주들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그 법이 통과된 이래 주주에 대한 배당은 7%에서 9%로 상승하였고, 법 제정 이전에는 주주가 직접 지불했던 소득세를 지금은 잉글랜드 은행이 지불하는 결과가 된 것이 아닌가.

 

코튼: 바로 그렇다.’ (제4356-61호)

 

결과적으로 1844년 제정된 은행법은 인민적 희생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은행 주주들에게는 배당률 상승과 세금 대납이라는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며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였음이 입증되었다.

 

지방 은행업자 피스는 1847년 공황 당시 은행의 화폐 퇴장 현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잉글랜드 은행이 이자율을 지속적으로 인상함에 따라 시장 전반에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이에 지방 은행업자들은 수중에 보유한 금과 은행권의 비축량을 대폭 늘리기 시작했다. 평시에는 수백 파운드 수준의 금과 은행권만을 보유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다수의 은행업자가 즉각적으로 수천 파운드에 달하는 화폐를 퇴장시켰다. 이러한 일반적인 화폐 퇴장 현상은 자금 할인에 대한 압박과 보유한 어음의 시장 유통 잠재력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제4605호).’

 

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은 지난 12년간 전개된 경제 상황의 귀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그 결과는 생산적 계급 일반보다는 고리대금업자를 포함한 화폐 거래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제4691호).’

 

투크 또한 공황 시기 화폐 거래 업자들이 누렸던 유리한 국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1847년 워릭셔와 스태퍼드셔의 금속 제조업 분야에서는 신규 주문 수주가 급감하였다. 이는 제조업자가 어음 할인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이자율이 기대 이윤 전액을 상회할 정도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제5451호).’

 

결과적으로 실물 경제의 침체 속에서도 금융 자본만이 독점적인 이득을 취하는 모순적 구조가 심화되었다.

 

1857년 『은행법 특별 위원회 보고서』 (이하 『은행법, 1857』 약칭)에 기록된 잉글랜드 은행 이사 노먼의 증언은 통화주의적 관점의 전형을 보여준다. 노먼은 이자율이 은행권의 양이 아닌 자본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하며, 이때 자본을 ‘생산에 사용되는 모든 상품과 용역 (서비스)’으로 정의하였다.

 

‘질문자: 당신은 이자율이 은행권의 양이 아니라 자본의 수요와 공급에 달려 있다고 하였는데, 이때 자본에는 은행권과 주화 외에 무엇을 포함시키는가. (제3635호).

 

노먼: 나는 자본의 일반적 정의를 생산에 사용되는 상품이나 용역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질문자: 그렇다면 이자율에 관해 말할 때, 자본이라는 단어에 모든 상품을 포함시킨다는 의미인가 (제3636호).

 

노먼: 생산에 사용되는 모든 상품을 포함시킨다.’

 

‘질문자: 이자율을 규정하는 요소로 그 모든 상품을 자본에 포함시킨다는 말인가 (제3637호).

 

노먼: 그렇다. 가령 면 공장주가 면화를 필요로 한다면, 그는 은행에서 대출받은 은행권을 가지고 리버풀에 가서 면화를 구매할 것이다.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면화이지, 은행권이나 금은 면화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노동자의 임금을 지불할 때도 마찬가지다. 차입한 은행권은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식량과 주거를 지불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뿐이다.’

 

‘질문자: 그런데 그 화폐에 대해 이자가 지불되는 것이 아닌가. (제3638호).

 

노먼: 우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그가 은행에 가지 않고 면화를 신용 (외상)으로 구매한다면, 현금 가격과 신용 가격 사이의 차액이 곧 이자의 척도가 된다. 곧, 화폐가 전혀 없는 경우에도 이자는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면 공장주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본질적인 목적은 화폐 그 자체가 아니라 면화 구매나 노동력 고용을 위한 수단을 확보하는 데 있다. 화폐는 단지 식량, 주거, 원자재 등 실물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매개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노먼은 외상 거래 시 현금가와 신용가의 차액이 곧 이자의 척도가 된다는 점을 들어,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자는 성립할 수 있다는 궤변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이자율의 본질을 왜곡하는 통화주의 특유의 논리적 허점을 내포한다. 화폐나 금이 교환 수단에 불과하다는 전제하에 이자율이 상품의 수급에 따라 규제된다면, 이는 결국 상품 가격의 결정 원리와 이자율의 결정 원리를 동일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상품의 수급은 시장 가격을 규제할 뿐이며, 동일한 상품 가격 하에서도 이자율은 금융 시장의 상황에 따라 판이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자란 화폐 그 자체의 사용에 대해 지불되는 대가가 아닌가’라는 근본적인 반론은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곧, 상품을 직접 거래하지 않는 은행업자가 수취하는 이자가 실물 상품과 어떤 상관관계를 지니는지는 의문이다. 제조업자들이 상이한 수급 조건이 지배하는 각기 다른 시장에 차입금을 투자함에도 동일한 시장 이자율을 적용받는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에 대해 노먼은 외상 구매 시 발생하는 ‘현금 가격과 신용 가격의 차액이 이자의 척도’라고 강변하나, 실상은 그 반대다. 현행 이자율이야말로 현금 가격과 신용 가격 사이의 차액을 결정하는 실질적인 기준이 된다.

 

구체적으로 면화 거래를 예로 들면, 현금 결제 시 가격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 시장 가격 (예: 1,000)을 따른다. 매매 당사자 간의 거래는 이 지점에서 종결된다. 그러나 여기에 대부자와 차입자 사이의 제2의 거래가 결합한다. 1,000의 가치를 지닌 면화가 대부되고 이를 3개월 후에 상환하기로 한다면, 시장 이자율에 근거하여 산출된 3개월 분의 이자가 현금 가격 위에 부가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자는 상품 수급의 결과물이 아니라, 화폐 자본의 대차 관계에서 발생하는 독립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면화의 시장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나, 그 가치 1,000에 대한 3개월간의 대부 가격은 철저히 이자율에 근거하여 규정된다. 면화가 이처럼 화폐 자본의 형태로 운용되는 상황을 두고 노먼은 화폐의 부재 시에도 이자가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 하나, 화폐라는 매개 없이는 일반적 이자율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여기서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자본을 단순히 ‘생산에 사용되는 상품들’로 규정하는 속류적 견해다. 상품이 자본으로 기능할 때 그 가치는 일반 상품으로의 가치와 달리, 생산적 또는 상업적 활용을 매개로 획득되는 이윤으로 표현된다. 이때 이윤율은 전혀 다른 요인들에 따라 결정되면서도, 구매된 상품의 시장 가격 및 수급 상황과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맺는다.

 

이자율이 일반적으로 이윤율을 그 한계로 삼는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노먼이 해명해야 할 핵심은 이 한계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여타 자본 형태와 구별되는 화폐 자본만의 독자적인 수요와 공급의 상호 작용으로 결정된다. 물적 자본의 공급과 화폐 자본의 공급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산업 자본가의 화폐 자본 수요 또한 현실적인 생산 여건에 맞추어 규정된다.

 

그럼에도 노먼은 이러한 본질적 주제를 외면한 채, 화폐 자본에 대한 수요가 화폐 자체에 대한 수요와는 다르다는 공허한 명제만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그와 오브스톤을 비롯한 통화주의자들이 인위적인 법적 개입을 매개로 유통 수단 그 자체를 자본으로 둔갑시키고, 이로부터 이자율을 인상시키려는 작위적 의도를 품고 있기 때문에 도출된 것에 불과하다.

 

로드 오브스톤, 본명 사뮤엘 존스 로이드는 국내 ‘자본’의 희소성을 근거로 ‘화폐’에 대해 10%의 고율 이자를 수취하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자율 변동의 원인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는 자본 가치의 변동이며, 둘째는 국내 화폐량의 변동이다 (제3653호).’

 

그러나 그가 언급한 ‘자본의 가치’가 통상 이자율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이자율의 변동 원인을 다시 이자율의 변동에서 찾는 순환 논리에 불과하다. 이를 이윤율의 변동으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결국 이자율이 이윤율에 따라 규제된다는 기존의 사실로 회귀할 뿐이다!

 

‘지속 기간이나 폭이 큰 이자율의 주요 변동은 자본 가치의 변화로 귀결되며, 1847년 및 1855-1856년의 이자율 상승이 이를 입증한다. 반면, 화폐량의 변화에 따른 소규모 변동은 그 폭이 작고 일시적이지만, 이러한 변동이 빈번할수록 금융업자들은 자신의 목적, 곧 자본 축적을 더욱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사뮤엘 거니는 1848년 상원 위원회 증언에서 금융업자의 입장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상업 불황, 1848-1857』.

 

‘질문자: 귀하는 지난 한 해 발생한 극심한 이자율 변동이 은행업자나 화폐 거래업자에게 유리하다고 보는가, 아니면 불리하다고 보는가.

 

거니: 화폐 거래업자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무릇 사업상의 모든 변동이란,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는 법이다 (제1324호.)’

 

‘질문자: 하지만 높은 이자율이 지속되면 귀하의 우량한 고객들이 궁핍해질 것이고, 이는 결국 은행업자에게도 손해가 아닌가.

 

거니: 그렇지 않다. 그러한 영향이 실제로 유의미하게 나타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1325호).’

 

그는 이자율의 급격한 변동이 화폐 거래업자에게 명백히 유리하며, 모든 사업상의 변동은 전문가들에게 수익 창출의 기회가 된다고 단언하였다 (제1324호). 또한 높은 이자율이 우량 고객을 궁핍하게 만들어 은행에 장기적인 손실을 입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러한 영향이 유의미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답변하며 금융 자본의 약탈적 속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제1325호).

 

현존하는 화폐량이 이자율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오브스톤의 논리적 오류는 재고되어야 한다. 1847년 당시 화폐 자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원인은 화폐 자체의 물리적 부족이 아니라 실물 경제의 구조적인 요인에 있었다. 곡물 및 면화 가격의 급등, 과잉 생산으로 인한 설탕의 판로 막힘, 철도 투기의 파국적 결말, 해외 시장의 면제품 과잉, 그리고 환어음 투기를 목적으로 한 인도와의 무리한 수출입 거래 등이 그것이다. 곧, 공업의 과잉 생산과 농업의 과소 생산이라는 실물 경제적 불일치가 화폐 자본 및 신용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켰으며, 이는 생산 과정 내부의 운동 법칙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이자율, 곧 화폐 자본의 가격을 상승시킨 결정적 요인은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화폐 자본에 대한 수요 그 자체였다. 오브스톤이 화폐 자본의 가치 (이자율) 상승 원인을 단순히 화폐 자본 가치의 상승으로 돌린다면 이는 무의미한 동어 반복에 불과하다. 또한 그가 ‘자본의 가치’를 이윤율로 전제하고 이윤율의 상승이 이자율 상승을 견인했다고 주장한다면, 당시의 위기 상황과 배치되는 해당 명제의 오류는 곧 자명해진다.

 

화폐 자본에 대한 수요와 그에 따른 ‘자본의 가치’ (이자율)는 이윤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도리어 증가할 수 있으며, 화폐 자본의 공급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경우 그 가치는 더욱 상승한다. 오브스톤의 논지는 1847년의 공황과 높은 이자율이 실질적인 ‘화폐량’과는 무관하며, 따라서 자신이 주도한 1844년 은행법의 규정과도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변하는 데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 은행 준비금의 고갈에 대한 공포가 1847-1848년의 경제 위기에 화폐 공황의 성격을 가중시킨 이상, 당시의 공황과 이자율 상승이 은행법의 운용 원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당시 발생한 화폐 자본의 부족은 가용 자금의 범위를 초과한 과도한 영업 활동에서 기인한 것이었으며, 이는 재생산 과정의 심각한 교란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구체적으로는 흉작과 철도에 대한 과잉 투자, 면제품의 과잉 생산, 그리고 인도와 중국 무역에서의 투기와 설탕 등 특정 품목의 과잉 수입이 총체적으로 작용하여 자본의 정체와 부족을 야기한 것이다.

 

쿼터당 120실링에 구매한 곡물 가격이 60실링으로 하락했을 때 매입자가 입는 손실은, 60실링의 초과 지불액 발생과 더불어 곡물을 담보로 한 대부로 확보할 수 있었던 60실링 상당의 신용 공여가 증발했음을 의미한다.

 

그가 곡물을 이전 가격인 120실링으로 현금화하지 못한 원인은 은행권의 물리적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과잉 수입으로 인해 판매 불능 상태에 빠진 설탕 수입업자들이나, 유동 자본을 철도 건설에 고착시킨 채 ‘본업’의 운영 자금을 신용에 의존했던 사업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브스톤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화폐 가치 상승이 내포하는 도덕적 의미’라는 관념적 해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러한 화폐 자본의 가치 상승은 상품 자본과 생산 자본을 포괄하는 실물 자본의 화폐 가치 하락에 직접적으로 대응한 결과일 뿐이다. 곧, 자본의 형태 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치의 이전과 파괴가 화폐 자본의 희소성과 가격 상승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특정 형태의 자본 가치가 증대한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형태의 자본 가치가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브스톤은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자본 가치를 ‘자본 일반의 단일 가치’로 무리하게 동일시하려 하며, 이를 현존 화폐량의 부족이라는 유통 수단의 문제와 대립시킨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통 수단의 양적 수준과 무관하게 동일한 금액의 화폐 자본 대부가 이루어지므로, 이 둘을 동일시하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오브스톤이 제시한 1847년의 실례로부터 확인되는 잉글랜드 은행의 공정 할인율 추이는 다음과 같았다.

 

1월: 3.0-3.5% (위기 전조)

2월: 4.0-4.5%

3월: 4.0% (대체로 유지)

4월: 4.0-7.5% (공황기)

5월: 5.0-5.5%

6월: 5.5% (대체로 유지)

7월: 5.0%,

8월: 5.0-5.5%

9월: 5.0%-6.0% (소규모 변동 빈발)

10월: 5.0%-7.0% (급등세 재개)

11월: 7.0-10% (최정점 공황기)

12월 7.0-5.0% (하락세 전환)

 

1847년의 실례로부터 잉글랜드 은행의 공정 할인율 추이를 살펴보면, 이자율은 1월 3-3.5%에서 시작하여 공황기인 4월 4-7.5%, 11월에는 7-10%까지 급등했다. 이러한 이자율 상승은 이윤이 감소하고 상품의 화폐 가치가 급락하는 국면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오브스톤이 1847년의 이자율 상승을 ‘자본 가치의 상승’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여기서의 자본 가치는 화폐 자본의 가치인 이자율 그 자체를 의미하는 동어 반복에 불과하다. 결국 그는 이후의 논의에서 이러한 언어적 유희를 포기하고 자본의 가치를 이자율과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또한 1856년의 높은 이자율 현상에 대해 오브스톤은 그것이 실질적 이윤이 아닌 타인의 자본으로 이자를 충당하는 신용 사기적 거래의 확산 전조임을 간과하였다. 그 결과 1857년 공황이 발생하기 불과 수개월 전까지도 그는 ‘사업 여건이 매우 건전하다.’는 오판을 지속하였다.

 

계속해서 오브스톤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은행법, 1857』)

 

‘이자율 상승이 사업 이윤을 소멸시킨다는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첫째로, 이자율 상승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뿐이다.

 

둘째로, 그것이 장기간이고 대규모로 발생한다면 이는 이윤율 상승에 따른 자본 가치의 실질적 증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제3722호).’

 

이 지점에서 그가 전제하는 ‘자본의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나나, 현실에서는 이윤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상승한 이자가 이윤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여 기업가 이득을 감소시키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

 

‘이자율 상승은 국내 사업의 대규모 확장과 이윤율 상승의 결과이다. 따라서 이자율 상승이 그 원인이 된 사업 확장과 이윤율을 다시 파괴한다고 불평하는 것은 해결될 수 없는 논리적 모순이다 (제3724호).’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투기로 인해 발생한 가격 상승이 결국 그 투기 자체를 파괴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사물이 자신의 원인을 궁극적으로 파괴하는 현상은 이자율에 매몰된 고리대금업자에게만 모순으로 보일 뿐이다. 로마의 위대함이 정복을 낳고 그 정복이 다시 로마를 파괴했듯, 부가 사치를 낳고 사치가 다시 부를 파괴하는 것은 역사의 자명한 이치다.

 

부르주아적 맹목성을 대변하는 이러한 논리는 높은 이윤율이 높은 이자율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만 강조할 뿐, 높은 이자율이 결코 높은 이윤율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따라서 핵심적인 문제는 실제 공황 국면에서 그러하듯 높은 이윤율이 소멸한 이후에도 높은 이자율이 지속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야 이자율이 정점에 도달하였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할인율의 급격한 상승이 전적으로 자본 가치의 증대에서 기인하며, 그 원인은 명백하다. 지난 13년간 영국의 수출 규모가 4,500만 파운드에서 1억 2,000만 파운드로 폭증함에 따라 거대한 자본 수요가 발생한 반면, 이를 충당할 자연적 원천인 연간 저축이 크림 전쟁 비용으로 소진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 부족 사태 속에서 이자율이 현재 수준보다 더 높게 치솟지 않은 점에 오히려 경악을 표한다 (제3718호).’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심각한 용어 혼동과 모순을 내포한다! 오브스톤은 실물 자본의 축적과 무역의 팽창을 언급하면서도, 정작 이 수요를 충족해야 할 ‘자본’을 이와 분리된 별개의 실체로 간주한다! 거대한 생산 증대는 그 자체로 자본의 증가를 의미하며, 화폐 자본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동시에 그 공급의 원천 또한 제공한다. 이자율의 상승은 단순히 화폐 자본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신속하게 증대했음을 나타낼 뿐이며, 이는 산업 팽창이 더 큰 규모의 신용, 곧 ‘융자’에 의존하여 진행되었음을 입증한다.

 

또한 오브스톤이 전쟁으로 탕진되었다고 주장하는 ‘연간 저축’이 자본 수요의 유일한 자연적 원천이라는 견해 역시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전 나폴레옹 전쟁 시기 (1792-1815) 영국은 크림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전쟁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축적을 지속해 왔다. 그가 말하는 자연적 원천이 고갈되었다면, 당시의 거대한 사업 확장을 뒷받침한 자본은 어디에서 유입되었단 말인가. 영국은 외부로부터 자본을 차입하지도 않았다.

 

그는 연간 저축이 오직 화폐 자본의 형태로만 전환된다고 맹신하나, 실물적 축적 곧 생산 수단의 증가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화폐 형태의 채권 축적은 무의미하다. 고리대금업적 관점에 매몰된 그는 실물 자본의 운동과 화폐 자본의 유동성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오브스톤은 높은 이윤율에 기인한 실물 ‘자본의 가치’ 상승과 화폐 자본에 대한 수요 증대로 인한 가치 상승을 의도적으로 혼용하고 있다. 화폐 자본의 수요는 이윤율과 무관한 요인들에 근거하여서도 충분히 증가할 수 있으며, 1847년의 사례처럼 실물 자본의 가치 하락에 대응하여 급증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논리에 편의적인 방식으로 ‘자본의 가치’라는 용어를 실물 자본과 화폐 자본에 번갈아 적용하며 본질을 흐리고 있다.

 

우리의 은행 귀족이 지닌 부정직함과 협소한 은행업자적 시각은 그가 이를 학구적인 체하며 (교수풍으로) 극단까지 치닫게 하는 대목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질문자: 당신은 앞서 할인율 (이자율)의 변동이 상인들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증언하였다. 그렇다면, 당신이 전제하는 ’일반적 이윤율‘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 수치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가. 이자율의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당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비교 기준을 제시해 달라.

 

오브스톤: 그 질문에는 답변할 수 없다. (제3728호).’

 

‘평균 이윤율이 예컨대 7-10%라고 전제한다면, 할인율이 2%에서 7-8%로 치솟을 때 상인의 이윤이 실질적인 타격을 입는다는 점은 자명하지 않은가 (제3729호).’

 

오브스톤은 할인율 상승이 이윤율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에 대해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질문자가 이윤율과 기업가 이득률을 혼동하고 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오브스톤의 답변은 경제적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사업가들이 이윤을 잠식하는 고율의 할인을 지불하기보다 사업을 중단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파산을 면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를 감내해야만 하는 사업가들의 절박한 처지를 완전히 묵살한 것이다.

 

오브스톤은 ‘사업가들이 이윤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할인율을 지불하느니 차라리 사업을 중단할 것’이라 강변한다. (물론 파멸을 피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그리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이 고율의 할인을 감수하는 이유는 이윤이 높을 때는 더 큰 이득을 ‘원하기’ 때문이지만, 이윤이 낮을 때는 당장 생존을 위해 할인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어음을 할인받는 목적은 오직 더 큰 자본을 얻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이 또한 본질을 흐리는 말이다! 어음 할인의 본질은 고착된 자본의 화폐 환류를 앞당겨 사업의 중단을 막고, 만기된 채무를 이행하기 위함이다. 곧, 할인은 단순한 확장 수단이 아니라 지불 불능 상태를 막기 위한 필사적인 자구책인 것이다.)

 

‘그러면 왜 더 큰 자본을 얻고자 하는가. 그 자본을 사용하여 이윤을 창출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인료가 이윤을 모두 잠식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이윤을 낳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윤이 없는 할인을 상인이 선택할 리 없다는 결론이다.)’

 

또한 그는 어음 할인의 목적을 단순히 ‘추가 자본의 획득’으로 규정하며, 할인료가 이윤을 상쇄하면 할인을 받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어음 할인의 본질은 자본의 확장이 아니라, 고착된 자본의 화폐 환류를 앞당겨 재생산 과정의 단절을 막고 만기 채무를 이행하는 데 있다. 곧, 할인은 이미 수중에 있는 자본의 형태를 전환 (환어음에서 현금으로)하는 행위이지, 근본적인 자본 증식 수단이 아니다. 사업을 확장하려는 이라면 오히려 장기 대부를 모색할 것이다. 오브스톤은 할인을 화폐로의 형태 변환이 아닌 추가 자본의 차입으로 등치시킨 뒤, 자신의 논리가 궁지에 몰리자 비겁하게 후퇴하고 있다.

 

‘질문자: 상인들은 일단 사업에 종사하는 이상, 할인율이 일시적으로 급등하더라도 사업을 중단하지 못하고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아닌가.

 

오브스톤: 어느 특정한 거래에서 낮은 이자율로 자본을 얻는 것이 높은 이자율보다 유리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태를 그러한 제한된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것은 확실히 그 상인에게 더 유리하다. (제3730호).’

 

상인들이 일단 사업에 착수하면 할인율의 일시적 상승에도 사업을 지속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질문 (제3730호)에 대해, 오브스톤은 특정 거래에서 낮은 이자율로 자본을 확보하는 것이 개별 당사자에게 유리할 뿐이라는 지극히 제한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그러나 정작 오브스톤 본인이 자신의 은행 자본만을 유일한 ‘자본’이라 규정하는 편협한 시각에 매몰되어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그는 어음을 할인받으려는 상인을 자본이 결핍된 자로 간주하는데, 이는 해당 상인의 자본이 상품 형태로 존재하거나 화폐적 대용물인 어음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을 무시한 처사다.

 

상인이 어음을 할인받는 행위는 자본의 부재를 메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자본의 화폐 형태를 어음에서 현금으로 전환하여 지불 수단을 확보하는 과정일 뿐이다. 이러한 자본의 형태 변화를 자본의 결핍으로 오인하고 자신의 화폐 자본만을 절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사태에 대한 가장 제한된 관점이라 할 수 있다.

 

‘1844년 은행법과 관련하여 묻겠다. 당신은 평균 이자율과 잉글랜드 은행의 금 준비액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는가. 실제로 금 준비액이 약 900만-1,000만 파운드일 때는 이자율이 6-7%였고, 금 준비액이 1,600만 파운드로 늘어났을 때는 이자율이 3-4%로 낮아지지 않았는가.’

 

(질문자는 이자율이 금 준비액 화폐적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시인하게 하면서, ‘이자율은 자본의 가치에만 의존한다.’는 오브스톤의 전제를 무너뜨리려 압박한 것이다.)

 

‘오브스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의 논리대로 금 준비액이 늘어날수록 이자율이 낮아지는 것이 사실이라면, 1844년 은행법보다 훨씬 더 엄격한 정책을 펴야만 할 것이다. 그러한 견해라면 금 준비액을 계속해서 늘릴수록 이자율을 0%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제3732호).’

 

질문자는 1844년 은행법과 관련하여 잉글랜드 은행의 금 준비액과 이자율 사이의 상관관계를 추궁하였다. 금 준비액이 900만-1,000만 파운드일 때 이자율이 6-7%를 기록한 반면, 준비액이 1,600만 파운드에 달했을 때는 이자율이 3-4%로 하락했다는 사실을 들어, 은행의 금 보유고가 이자율을 규정하는 실질적 동인임을 입증하려 한 것이다 (제3732호). 이에 대해 오브스톤은 금 준비액과 이자율이 반비례한다는 논리를 극단화하여, 금 준비를 계속 늘리면 이자율을 0으로 만들 수 있다는 졸렬한 농담으로 핵심을 회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질문자 케일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500만 파운드의 금이 환류하여 준비액이 1,600만 파운드로 증대됨에 따라 이자율이 하락하는 상황을 어떻게 사업 규모의 축소로 설명할 수 있느냐고 재차 압박하였다.

 

‘질문자 (케일리): 그렇다면 500만 파운드의 금이 잉글랜드 은행으로 환류하여, 다음 6개월 사이에 금 준비액이 1,600만 파운드에 이르게 된다면, 그에 따라 이자율은 3-4%로 하락할 것입니다. 이 경우, 당신은 이자율의 하락이 단지 사업 규모의 감소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앞서 지적한 본질은 이자율의 하락이 아니라, 최근의 이자율 상승이 사업의 대규모 확장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제3733호.) ’

 

케일리의 논지는 금 준비 축소에 따른 이자율 상승이 사업 확장의 증거라면, 반대로, 금 준비 증대에 따른 이자율 하락은 사업 축소의 증거로 보아야 한다는 논리적 일관성을 요구한 것이다. 오브스톤은 자신의 주장이 지닌 이러한 이면의 모순에 대해 끝내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못하였다.

 

‘질문자: 당신의 주장은, 화폐를 그저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묻겠다. 잉글랜드 은행의 금 준비액이 감소할 때, 정작 자본가들이 화폐를 구하지 못해 큰 곤란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닌가.’

 

(질문자는 화폐가 자본의 한 형태라는 점을 간과하는 오브스톤의 착오를 찌르며, 화폐 부족이 곧 자본가들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실증적 사실을 들이댄 것이다.)

 

‘오브스톤: 그렇지 않다. 화폐를 얻기를 원하는 이들은 자본가들이 아니라 바로 비자본가들이다. 그들이 왜 그토록 화폐를 얻으려 하겠는가. 그것은 화폐라는 수단을 빌려 자본가들의 자본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하고, 자본도 없는 자들이 감히 사업을 경영해 보려 하기 때문이다. (제3736호).’

 

오브스톤은 실제 생산을 담당하는 제조업자와 상인을 자본가에서 제외하는 한편, 오직 화폐 자본만을 진정한 자본으로 간주한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질문자: 그렇다면 환어음을 발행하는 이들도 자본가가 아닌가.

 

오브스톤: 그들은 자본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제3737호).’

 

오브스톤은 화폐를 자본 획득을 위한 단순한 도구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제3736호). 잉글랜드 은행의 금 준비액이 감소할 때 발생하는 화폐 확보의 난관에 대해, 그는 화폐를 원하는 이들은 자본가가 아닌 ‘비자본가’들이라고 강변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화폐를 매개로 타인의 자본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여 사업을 영위하려는 존재들에 불과하다. 이는 제조업자와 상인을 자본가의 범주에서 배제하고, 오직 화폐 자본만을 진정한 자본으로 간주하는 은행가 특유의 편협한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환어음 발행인들의 정체를 묻는 질문에서 곧바로 한계에 봉착한다 (제3737호). 그는 이들이 자본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응수하며 궁지에 몰린다. 더욱이 상인의 환어음이 이미 판매되었거나 선적된 실물 상품을 대표한다는 사실, 곧 은행권이 금을 화폐적으로 대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음이 상품의 가치를 대리한다는 지극히 기초적인 경제적 사실조차 부인하기에 이른다 (제3740, 3741호). 이는 자본의 운동 법칙을 망각한 채 화폐 자본의 절대적 우위만을 옹호하려는 몰상식한 태도의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질문자: 상인이 어음을 발행하는 목적이 결국 화폐를 얻기 위함이 아닌가.

 

오브스톤: 그렇지 않다. 어음을 발행할 때의 목적은 화폐를 얻는 것이 아니다. 화폐를 얻는 것은 어음을 할인할 때의 목적이다. (제3742호).’

 

(오브스톤은 여기서 중대한 말실수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는 할인이 ‘자본의 형태 전환’이 아니라 ‘추가 자본을 얻는 행위’라고 주장했으나, 이제는 할인의 목적이 ‘화폐를 얻는 것’임을 스스로 인정해버린 꼴이 되었다.)

 

오브스톤은 상인의 목적이 화폐 획득에 있지 않으며, 어음을 발행하는 단계가 아닌 이를 할인하는 단계에서야 비로소 화폐 획득이 목적이 된다고 주장한다 (제3742호). 본래 환어음을 발행하는 행위는 상품을 신용 화폐의 일종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이를 할인받는 것은 해당 신용 화폐를 다시 은행권이라는 다른 형태의 신용 화폐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오브스톤은 여기서 할인의 목적이 화폐 획득에 있음을 시인하면서, 할인이 오직 ‘추가 자본’의 확보를 위한 것이라던 자신의 이전 주장과 모순되는 입장을 보였다.

 

‘질문자: 그렇다면 당신의 말대로 1825년, 1837년, 1839년의 혹독한 공황기 속에서, 도산 위기에 처한 사업가들이 간절히 바랐던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목적이 자본을 얻는 것인가, 아니면 당장 결제에 필요한 법정 화폐를 얻는 것인가.

 

오브스톤: 그들의 목적은 그저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자본에 대한 지배권를 얻는 것이었을 뿐이다 (제3743호).’

 

오브스톤은 1825년, 1837년, 1839년의 공황기 당시 경제 주체들의 절실한 요구가 법정 화폐가 아닌 ‘자본에 대한 지배’를 얻는 데 있었다고 강변한다 (제3743호).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그들의 실질적인 목적은 만기 도래한 어음을 결제하기 위한 지불 수단을 확보하는 데 있다. 자금 압박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상품을 헐값에 투매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지불 수단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자본을 전혀 보유하지 못한 상태라면 지불 수단과 자본을 동시에 획득하는 셈이 되겠으나, 이는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결국 화폐에 대한 수요는 자산의 가치를 상품이나 채권의 형태에서 화폐의 형태로 전환하려는 동인의 발현이다. 따라서 공황이라는 특수 상황을 제외하더라도, 일반적인 자본 차입과 할인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할인은 근본적으로 화폐 채권을 실물 화폐라는 다른 형태로 변환하는 유동화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엥겔스: 노먼과 오브스톤의 견해에 따르면, 은행업자는 언제나 ‘자본을 대부하는’ 주체이며 고객은 그로부터 ‘자본’을 요구하는 존재로 규정된다. 이러한 구도하에서 오브스톤은 어음을 할인받는 행위의 본질을 ‘자본을 얻기를 위한 동기로 정의하고’ (제3729호), 차입자가 ‘낮은 이자율로 자본에 대한 지배를 획득하는 것’이 그에게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제3730호).

 

또한 그는 ‘화폐를 단순히 자본을 얻기 위한 도구’로 간주하며 (제3736호), 공황기 산업 부문의 절실한 소망 역시 ‘자본에 대한 지배력 확보’에 있다고 강변한다 (제3743호).

 

자본의 정의에 관한 오브스톤의 난해한 논리적 모순 속에서도 한 가지 사실만은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자본’이라 명명한 실체는 결국 은행업자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며, 고객이 기존에는 소유하지 못했던 것이자 그가 현재 처분 가용한 자산에 추가적으로 대부되는 형태인 것을 의미한다. 곧, 오브스톤은 자본의 실질적인 생산 과정이나 형태 변화보다는 은행업자의 관점에서 본 대부 자산의 이동만을 자본의 본질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업자는 대부를 매개로 사회적 가용 화폐 자본을 분배하는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화폐를 내어주는 모든 행위를 대부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가 지출하는 모든 화폐는 대부의 형태로 규정되는데, 화폐가 직접 대출되는 경우는 물론 어음 할인에 사용되는 경우에도 만기 시점까지 화폐를 빌려주는 것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업적 특성은 은행업자의 머릿속에 ‘모든 지불은 곧 대부’라는 관념을 고착시킨다. 이때의 대부란 단순히 이윤 추구를 위한 화폐 투하라는 추상적 의미만이 아니라, 은행업자가 고객에게 특정 금액을 이전하면서 고객 수중의 자본 총량을 그만큼 증대시킨다는 구체적 의미까지 포괄한다.

 

이러한 은행 관념이 은행 창구에서 정치경제학의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은행업자가 현금으로 제공하는 실체가 ‘자본’인지 아니면 단순한 ‘화폐 (유통 수단)’인지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을 야기했다. 이 근본적으로 단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급자인 은행이 아닌 수요자인 고객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 곧, 고객이 실질적으로 요구하고 획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다.

 

은행이 담보 없이 고객의 개인적 신용에만 근거하여 대부를 승인하는 경우,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고객은 기존의 운용하던 자본에 더해 일정액의 가치를 추가로 확보하게 되며, 이를 화폐 형태로 수령하면서 실질적인 화폐 자본을 획득하게 된다.

 

반면, 유가 증권을 담보로 대부를 받는 경우는 다르다. 이는 상환 의무가 수반되는 화폐의 지불이라는 점에서는 대부의 형식을 띠지만, 본질적인 의미의 자본 대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담보로 제공된 유가 증권 자체가 이미 대부금 이상의 자본 가치를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폐 수령자는 자신이 제공한 담보의 가치보다 적은 액수를 수령하므로, 이를 두고 추가 자본의 획득이라 할 수 없다. 그가 이러한 거래를 수행하는 이유는 자본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이미 유가 증권의 형태로 자본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단지 유동성 곧 화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화폐의 대부만이 존재할 뿐 자본의 대부는 성립하지 않는다.

 

대부가 어음 할인의 형태를 취한다면 대부라는 형식마저 사라진다. 이 과정의 본질은 단순한 매매에 불과하다. 어음은 이서를 거쳐 은행의 소유가 되고, 화폐는 고객의 소유가 되며, 고객 측에 상환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객이 어음이나 그에 준하는 신용 수단으로 현금을 매수하는 행위는 면화나 철, 곡물과 같은 여타 상품으로 현금을 구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부가 아니다. 나아가 이를 자본의 대부라 칭할 수도 없다.

 

상인 간의 모든 매매는 자본의 이전을 수반하나, 대부라는 현상은 자본의 이전이 상호적으로 즉시 완료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일정 기간 지속될 때에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음 할인이 자본의 대부로 기능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그 어음이 실물 상품을 대표하지 않는 융통 어음일 때뿐이지만, 통상적인 은행업자는 융통 어음임을 인지하면서 이를 인수하지 않는다. 결국 일반적인 할인 거래에서 고객은 자본이나 화폐의 대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판매한 상품인 어음의 대가로 화폐를 수령하는 것이다.

 

고객이 은행에서 자본을 요구하여 획득하는 경우는, 은행으로부터 단순히 화폐를 대부받거나 어음 매각을 거쳐 화폐를 구매하는 경우와 엄격히 구별된다. 특히 오브스톤은 담보 없는 자금 대부를 거의 시행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따라서 관대한 은행업자가 곤경에 처한 공장주에게 거액의 자본을 대부한다는 그의 수사는 전적으로 기만이며 사실과 무관하다.

 

마르크스는 제32장 ‘화폐적 자본과 현실적 자본 (Ⅲ)’에서 ‘상인과 생산자가 확실한 담보를 제공할 수 있는 한, 지불 수단에 대한 수요는 자산의 화폐로의 전환을 의미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담보가 부재하여 지불 수단의 대부가 화폐 형태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등가 가치까지 제공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비로소 화폐 자본에 대한 수요가 성립한다. 또한 제33장 ‘신용 제도 아래의 유통 수단’에서 ‘신용 제도의 발달로 화폐가 은행에 집중될 때 은행이 수행하는 대부는 명목상 화폐의 대부, 곧 통화의 대부일 뿐이며, 그 통화로 유통되는 자본의 대부는 아니다.’라고 명시한다.

 

이러한 논리적 귀결은 할인 업무에 종사하는 챕만의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은행법, 1857』) 그는 ‘은행업자가 어음을 소유하고 이를 구매한 것’ (증언, 질문 제5139호)이라고 명확히 규정하며 할인 거래의 본질을 뒷받침한다. 이상의 쟁점들은 제28장에서 더욱 심도 있게 다루어질 것이다.]

 

‘질문자: 당신이 말하는 자본이란 실제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오브스톤: 자본은 사업 경영에 투입되는 각종 상품들이다. 여기에는 고정 자본 (선박, 부두 등)과 유동 자본 (식량, 의복 등)이 모두 포함된다 (제3744호).’

 

‘질문자: 금이 해외로 유출되면 우리나라는 경제적 압박을 받는가.

 

오브스톤: 그 단어의 합리적인 의미로 본다면, 그렇지 않다 (제3745호).’

 

설명: (낡은 리카도식 화폐 이론에 근거함): 사물의 자연적 상태에서 세계의 화폐는 각국에 일정한 비율로 분배되며, 이러한 배분 상태에서 국가 간 교역은 사실상 물물 교환과 같다. 다만 교란 요인이 발생할 때 한 국가 내 화폐의 일부가 타국으로 유출될 뿐이다. (CW 29: 400-409).

 

‘질문자: 당신은 지금 화폐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앞서 화폐의 유출은 곧 자본의 상실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오브스톤: 내가 언제 무엇을 자본의 상실이라고 불렀다는 말인가 (제3746호).’

 

‘질문자: 금 유출을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오브스톤: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 당신이 금을 자본으로 취급한다면 금 유출은 자본의 상실이겠지만, 금 유출은 단지 세계 화폐인 귀금속의 일부를 방출하는 것일 뿐이다 (제3747호).’

 

‘질문자: 당신은 할인율의 변경이 곧 자본의 가치 변동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인가.

 

오브스톤: 그렇다 (제3748호).’

 

‘질문자: 당신은 할인율 (이자율)이 대개 잉글랜드 은행의 금준비 상태에 따라 변동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오브스톤: 그렇다. 하지만 한 나라의 화폐량 (실제로는 금의 양)의 변동 때문에 일어나는 이자율 변동은 그 크기가 매우 미미할 뿐이다 (제3749호).’

 

‘질문자: 그렇다면 할인율이 일시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상승할 경우, 당신은 그것을 자본의 감소라고 부르려는 것인가.

 

오브스톤: 자본 감소라는 단어의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 그것은 자본과 그 수요 사이의 비율이 변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수요가 늘어난 탓이지, 자본량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닐 것이다 (제3750호).’

 

오브스톤은 자본의 실체를 사업 경영에 투입되는 각종 상품군으로 규정하며, 선박이나 부두와 같은 고정 자본과 식량, 의복 등의 유동 자본으로 이를 분류한다 (제3744호). 이어지는 금 유출의 영향에 대한 질의에서 그는 리카도식 화폐 이론을 차용하여, 세계의 화폐가 각국에 일정 비율로 분배되어 세계 교역을 실질적인 물물 교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자연적 상태라고 주장한다 (제3745).

 

그러나 금 유출을 자본의 상실로 규정했느냐는 추궁에 직면하자 (제3746호), 그는 금을 자본으로 간주할 때만 그러한 정의가 성립할 뿐이라며 교묘히 답변을 회피한다 (제3747호). 더욱이 할인율의 변동이 자본 가치의 변동을 대변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제3748호), 할인율이 금 준비액의 변동에 종속된다는 사실을 시인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현실적인 금 보유량의 변화가 이자율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모순된 강변을 내놓는다 (제3749호).

 

결국 오브스톤은 이자율이 평상시보다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자본과 수요 사이의 비율 변동, 특히 수요의 증가에 따른 자본 감소로 해석한다 (제3750호). 여기서 그가 말하는 자본은 앞서 정의한 실물 상품이 아닌 화폐 또는 금을 지칭하고 있다. 조금 전까지 이자율의 상승을 자본의 확장에 따른 높은 이윤율의 결과로 설명하던 그가, 이제는 이를 자본 (화폐)의 상대적 희소성으로 설명하며 전형적인 논리적 파행을 보이고 있다.

 

‘질문자: 당신이 여기에서 특히 염두에 두고 있는 자본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브스톤: 그것은 각자가 원하는 자본이 무엇인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그것은 인민이 사업 경영을 위해 지배하에 두고 있는 자본을 의미한다. 사업 규모가 두 배로 커진다면, 그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자본 수요 역시 크게 증대할 수밖에 없다 (제3751호).’

 

[이 교활한 은행업자는 먼저 사업 활동을 두 배로 전제해 놓고, 그 다음에 그것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본 수요를 두 배로 늘려 잡는다. 그는 오로지 자기 사업을 키우기 위해 자신에게 더 많은 돈을 빌리러 오는 고객들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오브스톤: 자본은 다른 어떤 상품과도 동일하며,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그 가격이 변동한다.’

 

[오브스톤은 앞서 자본이란 ‘상품들의 총체’에 불과하다고 정의한 바 있다 (제3744호). 그런데 이제 와서 자본 전체가 상품과 같이 가격 (이자율)이 변동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상품은 가격이 두 번 변동하는 셈이다. 한 번은 상품 그 자체로, 또 한 번은 자본으로 말이다.]

 

오브스톤은 염두에 두고 있는 자본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것은 각자가 원하는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고 답변하며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그는 이를 인민이 사업 경영을 위해 지배하는 자본으로 규정하면서, 사업 규모가 두 배로 확장될 경우 이를 수행하기 위한 자본 수요 역시 비례하여 증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제3751호).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사업 활동의 팽창을 기정사실화한 뒤, 그 결과로 나타나는 화폐 자본의 수요 증대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의 시야에는 오직 사업 확장을 위해 자본에게 더 많은 자본을 요구하는 은행 고객들의 형편만이 매몰되어 있을 뿐이다.

 

나아가 그는 자본이 다른 여타의 상품과 동일하며, 오직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그 가격이 변동한다고 강변한다. 이는 자본을 상품들의 총체로 규정했던 자신의 이전 정의와 충돌할 뿐만 아니라, 상품의 가격이 상품 자체로 한 번, 그리고 자본으로 또 한 번 변동한다는 이중적 가격 체계의 모순을 빚는다. 결국 오브스톤은 자본의 본질적 가치와 화폐 현상을 의도적으로 혼용하면서 은행업자로의 이해관계를 이론적 보편성으로 포장하고 있다.

 

‘질문자: 일반적으로 할인율의 변동은 잉글랜드 은행의 금 보유량 변동과 결부된다. 이것이 당신이 말하는 자본인가.

 

오브스톤: 아니다 (제3752호).’

 

‘질문자: 그렇다면 잉글랜드 은행에 자본이 대규모로 적립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할인율이 높았던 실례가 있는가.

 

오브스톤: 잉글랜드 은행은 자본을 예치하는 곳이 아니라 화폐를 예치하는 곳이다 (제3753호).’

 

‘질문자: 당신은 이자율이 자본량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잉글랜드 은행에 금준비가 막대한데도 이자율이 높았던 실례를 대보라.

 

오브스톤: 잉글랜드 은행의 금 축적과 낮은 이자율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자본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시기 (1844-1845년의 번영기)는 자본을 지배하는 수단이나 도구 (화폐)가 축적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제3754호).’

 

‘질문자: 그렇다면 할인율과 잉글랜드 은행의 금 보유량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뜻인가.

 

오브스톤: 관련이 있을지 모르나 원리적인 관련은 아니다. 때때로 동시에 변동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제3755호).’

 

[정말인가! 오브스톤 자신이 만든 ‘1844년 은행법’은 금 보유량에 따라 이자율을 규제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것이 ‘원리적 관련’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자기 존재 근거를 스스로 허무는 꼴이다.]

 

‘질문자: 화폐가 핍박한 시기에 상인들이 겪는 난경이 자본을 구하지 못해서이지, 화폐를 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말인가.

 

오브스톤: 당신은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들의 곤란은 자본을 얻는 데도 있고 화폐를 얻는 데도 있다. 그것은 동일한 곤란을 진행 과정의 서로 다른 두 단계에서 파악한 것일 뿐이다 (제3758호).’

 

할인율의 변동이 잉글랜드 은행의 금 보유고 변화와 결부되는 현상을 두고, 오브스톤은 이것이 곧 자신이 정의한 자본은 아니라고 부인한다 (제3752호). 그는 잉글랜드 은행이 자본이 아닌 화폐를 예치하는 곳이라 선을 그으면서도 (제3753호), 이자율이 자본량에 규정된다는 자신의 원칙과 금 보유고 사이의 실증적 모순에 직면하자 궁색한 답변을 내놓는다. 그는 자본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시기에 자본의 지배 수단인 화폐가 축적될 수 있으므로, 금의 축적과 낮은 이자율이 양립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제3754호).

 

심지어 그는 할인율과 금 보유량 사이의 상관관계를 원리적인 것이 아닌 우연적인 동시 변동으로 치부하기에 이른다 (제3755호). 이는 금 보유량에 따라 이자율을 규제하려 했던 1844년 은행법의 근간을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다. 또한 그는 화폐 핍박기에 상인들이 겪는 난경이 자본을 얻는 문제인지 화폐를 얻는 문제인지를 묻는 질문에, 두 곤란이 동일한 진행 과정의 서로 다른 단계일 뿐이라고 답변하며 논점 회피를 시도한다 (제3758호).

 

여기서 고기는 다시 어망에 잡힌다. 결국 오브스톤은 자신의 논리에 스스로 매몰된다. 상인이 직면한 우선적인 난관은 어음 할인이나 상품 담보 대출의 장애, 곧 자본 또는 그 가치의 표상을 화폐로 전환하는 과정에서의 난관이며, 이는 높은 이자율로 관철된다.

 

그러나 일단 화폐를 확보한 이후에 어떤 추가적인 난관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지불이 목적이라면 화폐를 지출하는 데 장애가 있을 리 없고, 구매가 목적이라 해도 공황기에 화폐를 보유한 자가 구매에 난항을 겪는 경우는 전제하기 어렵다. 설령 특정 상품의 가격 등귀라는 특수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는 상품 가격의 문제이지 이자율의 영역이 아니며, 화폐를 이미 획득한 시점에서 그 난관은 본질적으로 해소된 것이다.

 

‘질문자: 하지만 높은 할인율은 결국 화폐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 아닌가.

 

오브스톤: 화폐를 얻는 곤란이 증대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당신이 단순히 화폐를 원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높은 할인율이란, 문명 사회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화폐 획득의 곤란이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형태일 뿐이다 (제3760호).’

 

[하지만 이 ‘형태’는 은행업자의 주머니에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주는 아주 ‘실속 있는 형태’다.]

 

‘질문자: 그렇다면 은행업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오브스톤: 은행업자는 예금을 받아들여, 그것을 다시 자본의 형태로 타인에게 맡기는 중개자일 뿐이다 (제3763호).’

 

여기서 우리는 그의 속내를 보게 된다. 그는 화폐를 ‘맡긴다’고 말하지만, 더 솔직히 말해 이자를 받고 대부하면서 화폐를 자본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오브스톤은 할인율의 변동이 잉글랜드 은행의 금 준비액이나 현존 화폐량의 증감과는 본질적 관련이 없으며, 기껏해야 우연히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는 이후의 진술에서도 이 모순된 강변을 되풀이한다.

 

 

‘질문자: 당신은 방금 전 할인율의 변동이 금 보유고나 화폐량의 변동과 본질적 관련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오브스톤: 내 말은, 국내 화폐가 유출되어 감소하면 화폐의 가치가 상승한다는 뜻이다. 잉글랜드 은행은 그 변동에 적응해야 하며, 이것을 전문 용어로 이자율 인상이라 부른다 (제3805호).’

 

[여기서 말하는 화폐의 가치는 자본으로의 화폐 가치, 곧 이자율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상품과 대비되는 화폐 그 자체의 가치는 이 상황에서 불변이기 때문이다.)

 

‘질문자: 화폐와 자본을 혼동하고 있는 것 아닌가.

 

오브스톤: 나는 이 둘을 결코 혼동하지 않는다 (제3819호).’

 

[당연하다. 그는 이 둘을 제대로 구별해 본 적조차 없으니 혼동할 일도 없는 것이다.]

 

‘질문자: 1847년에 곡물을 수입하기 위해 지불한 그 막대한 돈은 무엇이었는가.

 

오브스톤: 그것은 사실상 자본이었다 (제3834호).’

 

‘질문자: 결국 할인율은 잉글랜드 은행의 금 보유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뜻인가.

 

오브스톤: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금준비 상태는 국내 화폐량 증감의 지표이고, 화폐량에 따라 화폐 가치가 변하며, 할인율은 그 가치 변동에 적응하는 것이다 (제3841호).’

 

오브스톤은 제3755호에서 그토록 단호하게 부인했던 사실을 여기에서 스스로 인정하고 만다.

 

높은 할인율이 화폐 융통의 난경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오브스톤은 그것이 화폐 수요 때문이 아니라 문명 사회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하나의 형태일 뿐이라고 답변한다 (제3760호). 그러나 이 ‘형태’의 실질적 결과는 은행업자의 이윤 증대로 귀결된다. 그는 은행업자를 예금을 수취하여 타인에게 자본의 형태로 인도하는 중개자로 정의하면서 (제3763호), 이자를 목적으로 화폐를 대부하는 행위 자체를 화폐의 자본 전환으로 규정하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오브스톤은 할인율의 변동이 금 준비액이나 화폐량의 변화와 본질적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면서도, 정작 화폐 유출로 인한 가치 상승에 적응하기 위해 이자율을 인상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제3805호). 여기서 그가 언급하는 화폐 가치는 상품 가격에 대한 구매력이 아니라, 화폐 자본으로의 가치 곧 이자율을 의미할 뿐이다.

 

그는 화폐와 자본을 결코 혼동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지만 (제3819호), 실제로는 1847년 곡물 수입을 위해 지불된 막대한 대금을 자본으로 규정하는 등 시종일관 자의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제3834호). 결국 그는 할인율의 변동이 국내 화폐량의 지표인 금 준비 상태와 밀접하게 관련되며, 잉글랜드 은행은 이러한 화폐 가치의 변동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제3841호). 이는 할인율과 금 보유량 사이의 원리적 관련성을 단호히 부인했던 자신의 이전 진술 (제3755호)을 스스로 뒤집는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오브스톤: 둘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3842호).’

 

오브스톤은 잉글랜드 은행 발권부의 금 보유량과 은행부의 영업용 은행권 준비금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인정한다 (제3842호).

 

오브스톤은 이 대목에서 이자율의 변동을 화폐량의 변동으로 설명하려 시도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다. 실제로는 국내 유통 화폐량이 증가함에 따라 은행부의 준비금이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발권부의 금속 준비에 변화가 없더라도 대중의 은행권 보유가 늘어나면 이자율은 상승한다. 이는 잉글랜드 은행의 은행 자본이 1844년 은행법에 따라 인위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브스톤은 해당 법령상 발권부와 은행부가 완전히 독립된 제도로 규정되어 있다는 모순 때문에 이러한 실질적 원리를 제대로 논증하지 못한다.

 

‘오브스톤: 높은 이윤율은 언제나 자본 수요를 증대시키며, 이러한 자본 수요의 증가는 곧 자본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제3859호).’

 

높은 이윤율이 언제나 자본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며, 그 결과 자본의 가치 역시 상승하게 된다는 오브스톤의 주장에서 그가 생각하는 이윤율과 자본 수요 사이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게 된다 (제3859호). 가령 1844년부터 1845년 사이 면공업의 이윤율이 높았던 이유는 면제품에 대한 수요는 거대했으나 원재료인 면화 가격은 저렴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오브스톤의 이전 정의에 따르자면 자본은 개별 사업자가 필요로 하는 실물 상품을 의미하므로, 이 시기 제조업자들에게 면화라는 자본의 가치가 상승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높은 이윤율이 다수의 면제품 제조업자로 하여금 사업 확장을 추진하게 했을 때, 실질적으로 증대된 것은 사업 확장에 필요한 ‘화폐 자본’에 대한 수요였을 뿐 그 외 실물 자본에 대한 수요가 아니었다. 오브스톤은 이러한 화폐적 수요의 팽창을 일반적인 자본 가치의 상승으로 오인하면서, 실물 자본과 화폐 자본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다시금 간과하고 있다.

 

‘질문자: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금은 언제나 절대적인 화폐여야 하지 않는가.

 

오브스톤: 아니다. 금은 화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마치 종이가 은행권일 수도 있고, 그저 단순한 종이 조각일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3889호).’

 

‘질문자: 당신은 1840년에 ‘시중에 유통되는 은행권의 양은 반드시 금 준비량의 변동과 일치해야 한다.’라고 강변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논리를 포기하려는 것인가.

 

오브스톤: 내가 그 논리를 포기하려는 것은, 우리가 도달한 지식에 근거한 것이다. 이제는 시중 유통량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은행의 ‘은행부’가 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은행권까지도 유통량에 포함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제3896호).’

 

금과 종이가 은행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화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궤변이 등장한다 (제3889호). 오브스톤은 잉글랜드 은행권의 외부 유통량이 금 준비량의 변화를 따라야 한다는 이전 논리를 포기하며, 유통 중인 은행권에 은행부의 은행권 준비금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제3896호).

 

이는 그야말로 최상급의 엉터리 논리라 할 수 있다. 금 준비액에 1,400만 파운드를 가산한 범위 내에서만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다는 자의적인 규정은, 본래 은행권 발행이 금 준비 상태에 종속되어야 함을 전제한다. 그러나 ‘도달한 지식에 근거하면’ 현실적으로 잉글랜드 은행이 발행하여 내부의 두 부서 (발권부와 은행부) 사이에서 주고받는 은행권의 양이 금 준비액에 따라 변동한다고 해서, 그것이 은행 외부의 실제 유통량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결국 오브스톤은 실질적인 화폐 유통의 변동을 도외시한 채, 은행 내부의 두 부서 간 유통과 그 차이를 보여주는 ‘은행권 준비’만을 결정적인 지표로 내세우기에 이른다. 이 내부적 유통이 외부 세계에 의미를 갖는 유일한 지점은, 잉글랜드 은행이 법정 발행 한도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따라서 고객들이 향후 은행부로부터 확보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로 기능할 때뿐이다.

 

오브스톤의 불성실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질문자: 최근 몇 년간 할인율 (이자율)이 급격히 변동하였다. 자본의 양이 매달 그토록 요동치기에 자본의 가치 또한 그처럼 변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오브스톤: 자본의 수요·공급 관계는 짧은 기간에도 변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가 내일이라도 거액의 차입을 발표한다면, 그것은 즉각 영국의 화폐 가치, 곧 자본의 가치에 큰 변동을 일으킬 것이다 (제4243호).’

 

‘질문자: 프랑스의 차입이 어떻게 자본 수요가 되는가.

 

오브스톤: 프랑스가 어떤 목적을 위해 3,000만 파운드어치의 상품을 필요로 한다고 발표한다면, (더 과학적이고 간결한 용어를 쓰자면) 그것이 바로 자본에 대한 거대한 수요가 발생하는 것이다 (제4245호).’

 

‘질문자: 하지만 프랑스가 빌리려는 자본 (상품)과 그 자본을 사기 위해 동원하는 화폐는 전혀 다른 것 아닌가. 실제 가치가 변동하는 것은 자본인가, 아니면 화폐인가.

 

오브스톤: 우리는 또 이전의 문제로 되돌아가고 있는데, 그 문제는 이 위원회 회의실보다는 학자의 연구실에나 어울리는 탁상공론이라고 생각한다 (제4246호).’

 

자본의 양이 최근 몇 년간의 할인율 변동처럼 매월 급격히 변화하며 자본의 가치를 변동시킬 수 있느냐는 질문 (제4243호)에 대해, 그는 자본의 수급 관계가 단기적으로도 변동할 수 있다고 답변한다. 예컨대 프랑스가 내일이라도 거액의 차입을 발표한다면, 그것이 즉각적으로 영국의 화폐 가치, 곧 자본의 가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논리다.

 

이어지는 문답 (제4245호)에서 그는 프랑스가 특정 목적을 위해 3,000만 파운드 상당의 상품을 필요로 한다면, 이를 보다 과학적이고 간결한 용어로 ‘자본에 대한 거대한 수요’라 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가 차입으로 구매하려는 ‘자본’과 그 자본을 구매하기 위해 동원되는 ‘화폐’는 전혀 별개의 대상이 아니냐는 추궁 (제4246호)에 직면하자, 그는 태도를 돌변한다.

 

오브스톤은 가치가 변동하는 주체가 화폐인지 자본인지 묻는 본질적인 질문을 두고 ‘우리는 다시 이전의 문제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회피하며, ‘이러한 논의는 위원회 회의실보다는 학자의 연구실에나 적합한 문제’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는 이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나지만, 그가 향한 곳은 결코 학술적 진리를 탐구하는 연구실이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서둘러 논쟁의 장을 퇴장하지만, 그가 향한 곳은 ‘학자의 연구실’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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