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은행 자본의 구성 부분

 

이제 은행 자본의 구체적인 구성 요소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풀라턴을 비롯한 이론가들은 유통 수단으로의 화폐와 지불 수단 (또는 세계적 금 유출 시의 세계 화폐)으로의 화폐를 구분하면서, 이를 통화자본사이의 구별로 치환하였다.

 

화폐가 결코 자본이 될 수 없다고 설파한 계몽주의 경제학과는 대조적으로, 은행업자의 경제학은 화폐야말로 자본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는 가장 탁월한 자본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심층적인 분석에서 확인되는 점은, 이들의 체계 안에서 화폐 자본이 이자 낳는 자본을 의미하는 화폐적 자본과 혼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질적으로 화폐 자본은 상품 자본이나 생산 자본과 마찬가지로, 산업 자본이 순환 과정에서 취하는 일시적인 통과 형태에 불과하다. 따라서 은행업자들이 규정하는 화폐의 자본적 성격은 자본의 전체 순환 체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이를 단순히 이자 증식의 수단으로 국한하는 것은 화폐 자본의 실질적인 기능과 형태 변화를 간과한 결과이다.

 

은행 자본은 (1) 금이나 은행권 형태의 현금과 (2) 유가 증권으로 구성된다. 유가 증권은 다시 만기 구조를 지니며 은행업자의 고유 업무인 할인의 대상이 되는 상업 증권 (환어음), 국채·국고 증권·주식·저당 증서 등 이자를 낳는 공적 유가 증권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물적 구성 요소들로 이루어지는 은행 자본은 소유 원천에 따라 은행업자 자신의 투하 자본과 예금 (차입 자본 또는 은행 영업 자본)으로 구분되며, 발권 은행의 경우에는 대출 수단으로 활용되는 은행권이나 일람불 자기앞 어음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은행 자본을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화폐, 환어음, 이자 낳는 증권 등의 물적 성격은 그것이 자기 자본을 대표하는지 또는 타인의 자본 (예금)을 대표하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 운용 주체가 자기 자본으로 사업을 영위하든 예탁된 자본을 활용하든, 은행 자본의 객관적 구성 부분은 동일하다.

 

이자 낳는 자본이라는 형태적 특성으로 인해, 그것의 실질적 원천이 자본인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정기적인 화폐 수입은 자본에 대한 이자로 간주된다. , 화폐 수입이 우선적으로 이자의 성격을 띠게 되고, 이와 반대로, 이 이자를 매개로 그 원천인 자본의 규모가 환산되어 결정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자 낳는 자본의 논리 아래에서 모든 가치액은 수입으로 소진되지 않는 한 자본화되며, 이는 곧 해당 가치가 창출할 수 있는 잠재적 또는 현실적 이자에 대응하는 원금의 형상을 취하게 됨을 의미한다.

 

사정은 명확하다. 평균 이자율이 연 5%일 때, 500의 가치액이 이자 낳는 자본으로 운용된다면 연간 25의 수익을 창출한다. 이에 따라 모든 고정적인 연간 수입 25은 환산된 원금 500에 대한 이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은 해당 수입의 원천이 오직 소유권 및 청구권이든 아니면 토지와 같은 실재적 생산 요소이든 직접 양도되거나 또는 양도성을 갖춘 형태를 구비하고 있지 않은 한, 순전히 관념적인 가공이자 가상에 불과하다. 국채와 임금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가는 차입 자본에 대하여 매년 일정한 이자를 채권자에게 지불할 의무를 지지만, 채권자는 국가로부터 원금을 상환받는 대신 자신의 청구권인 소유권을 매각하면서 자본을 회수할 수 있을 뿐이다. 이때 투하된 자본은 국가의 지출을 거쳐 이미 소비되어 실재하지 않는다. 국가 채권자는 (1) 100의 국채 증서를 보유하면서 (2) 연간 조세 수입 중 일정액인 5를 청구할 권리를 가지며, (3) 이를 시장에서 자유로이 매매할 수 있다.

 

시장 이자율이 5%이고 국가의 신용이 담보된다면, 국채 소유자 A는 해당 증서를 B에게 100에 매각할 수 있는데, 이는 B의 입장에서 100을 직접 대부하여 5%의 이자를 얻는 것과 국채로부터 연간 5를 확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자 지불의 토대로 상정되는 자본은 가공된 관념에 불과하다. 국가에 대부된 금액은 이미 소멸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치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으로 투하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해당 금액이 본래적 의미에서 자본으로 투하되었다면 스스로를 보존하고 증식하는 가치 형태로 전환되었어야 한다. 결국 최초 채권자 A가 수령하는 조세 수입의 일부는 실재하지 않는 자본에 대한 이자를 형식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고리대금업자가 수취하는 채무자의 자산 일부가 형식상 자기 자본에 대한 이자로 표상되는 것과 같은 형식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대부된 화폐액이 실질적인 생산 자본으로 지출된 것은 아니다. 국채의 매매 유동성은 최초 채권자 A에게는 원금 회수의 기회를 의미하며, 새로운 구매자 B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자본을 이자 낳는 자본으로 투하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BA의 지위를 승계하여 국가에 대한 청구권을 양수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거래가 반복되더라도 국채가 자본이라는 성격은 여전히 관념적 가공물에 머물며, 국채의 유동성이 상실되어 매각이 마비되는 순간 자본이라는 가상은 즉각 소멸한다. 그럼에도 국채와 같은 가공 자본은 시장 이자율의 변동에 따라 가격이 등락하는 등 자신만의 고유한 운동 법칙을 지니며 경제 체계 내에서 작동한다.

 

이자 낳는 자본 일반은 모든 불합리한 형태의 원천이 된다. 은행업자의 관념 속에서 채무 가 상품으로 오인되듯, 국채라는 가공 자본에서는 국가의 부채라는 음 (-)의 수치가 자본으로 표상된다. 이러한 논리를 노동력에 적용할 경우, 임금은 이자로, 노동력은 그 이자를 창출하는 자본으로 간주된다. 연간 임금이 50이고 이자율이 5%라면, 노동력의 가치는 1,000의 자본과 등가물로 치환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지닌 이러한 전도된 성격은 여기서 극단에 이른다. 자본의 가치 증식을 노동력 착취에서 도출하는 대신, 노동력의 생산성을 노동력 자체가 보유한 이자 낳는 자본이라는 물신적 속성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17세기 후반 윌리엄 페티 등에게서 나타난 이 관념은 오늘날 속류 경제학자와 통계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진지하게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적 관념은 두 가지 실증적 한계에 직면한다. 첫째, 노동자는 이른바 이자의 형태를 띤 임금을 수취하기 위해 반드시 노동을 수행해야만 한다. 둘째,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타인에게 양도하면서 그 자본 가치를 화폐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력의 실질적 가치는 평균 연간 임금에 해당하며,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의 지출로 이 가치와 더불어 잉여 가치를 생산하여 구매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반면, 노예 제도 아래에서의 노예는 실질적인 구매 가격인 자본 가치를 지니며, 임차인은 이 자본에 대한 이자와 더불어 노예라는 자본의 연간 마멸분을 보상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의제 자본 (또는 가공 자본)의 형성을 자본화라 칭한다. 모든 규칙적이고 주기적인 수입은 평균 이자율을 기초로 산정하면서, 해당 평균 이자율로 대출된 일정 자본이 창출하는 수익으로 간주하여 자본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간 수입이 100이고 이자율이 5%라면, 이 수익은 원금 2,000에 대한 연간 이자로 환산되며, 이에 따라 2,000은 해당 수입을 수취할 법적 소유권의 자본 가치로 규정된다.

 

이 소유권을 취득한 매수자에게 연간 수입 100은 자신의 투하 자본에 대한 실질적인 5%의 이자를 의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본이 현실적인 가치 증식 과정과 맺고 있던 모든 연관성은 최후의 흔적까지 소멸하며, 자본이 고유한 내적 힘에 따라 스스로 증식한다는 관념이 확고히 고착된다.

 

채무 증서와 같은 유가 증권이 국채처럼 순전한 가공의 자본을 표상하지 않는 경우에도, 해당 증권의 자본 가치인 가격은 여전히 관념적 성격을 지닌다. 신용 제도가 창출하는 주식 자본과 그 소유권을 구체화하는 주식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철도나 채굴, 해운 회사의 주식은 해당 사업에 실제로 투하되어 기능하는 자본 또는 주주들이 납입한 화폐액을 표상한다.

 

그러나 이 자본이 소유권 증서인 주식의 자본 가치로 한 번, 그리고 사업 현장에 투하된 실재 자본으로 또 한 번, 이중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오직 후자의 실물적 형태로만 존재하며, 주식은 그 자본이 실현할 잉여 가치에 대하여 보유 지분만큼 배당을 요구할 수 있는 소유권 증서에 불과하다. A가 이 증서를 B에게, 다시 BC에게 매각하는 일련의 거래는 사태의 본질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AB는 자신의 소유권 증서를 화폐 자본으로 회수한 것이며, 구매자 C는 자신의 실제 자본을 향후 기대되는 잉여 가치에 대한 단순한 청구권으로 치환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소유권 증서인 국채나 주식의 가치 곧 시장 가격이 실물 자본의 변동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운동함에 따라, 이들 증서가 실제 자본이나 청구권과는 별개로 그 자체의 현실적 자본을 구성한다는 가상이 더욱 공고해진다. 이는 소유권 증서가 시장에서 상품으로 유통되며 그 가격 또한 특수한 법칙에 따라 독자적으로 결정되는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식과 같은 소유권 증서의 시장 가치는 현실적 자본의 가치 자체에 변동이 없더라도, 비록 그 자본이 실현되는 가치 증식 정도가 변할 수는 있으나 증서에 명시된 명목 가치인 액면 가격과는 현격히 상이할 수 있다.

 

소유권 증서의 시장 가치는 해당 증서가 보장하는 수익의 크기와 확실성에 비례하여 변동한다. 액면가 100인 주식의 배당률이 5%에서 10%로 상승할 경우,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시장 가치는 상승한다. 10의 배당을 시장 이자율 5%로 자본화하면 해당 주식은 200의 의제 자본을 표상하게 되며, 이를 200에 매수한 투자자는 투하 자본 대비 5%의 수입을 얻기 때문이다. 반대로, 배당 수익이 감소하면 가치는 하락한다. 이처럼 증권의 시장 가치는 실질 수익뿐 아니라 기대 수익에 따라서도 결정되므로, 부분적으로 투기적 성격을 띤다.

 

다른 한편으로 실물 자본의 가치 증식이 일정하거나 국채처럼 실물 자본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연간 수입이 법적으로 확정되어 있다면 증권 가격은 이자율과 반비례하여 등락한다. 이자율이 5%에서 10%로 상승하면 5의 수입을 보장하는 증권의 자본 가치는 50으로 축소되나, 이자율이 2.5%로 하락하면 동일한 증권의 가치는 200으로 증대된다. 결국 증권 가격은 기대 수입을 현재 이자율로 나눈 가공의 자본화 금액에 불과하다.

 

따라서 화폐 시장이 압박되는 시기에는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증권 가격이 급락한다.

 

첫째, 이자율의 상승이다.

 

둘째, 유동성 확보를 위한 증권의 대량 매도세이다.

 

이러한 가격 하락은 수입이 고정된 국채뿐만 아니라, 재생산 과정의 마비로 가치 증식이 타격을 받는 기업 주식에서도 공통적으로 발생한다. 주식의 경우 이자율 상승에 따른 가치 감소에 실물 경제의 위축이라는 추가적인 하락 요인이 결합될 뿐이다. 경제적 혼란이 수습되면 파산이나 사기에 연류되지 않은 증권들은 본래의 가격 수준을 회귀하며, 공황기에 발생하는 이러한 자산 가치의 하락은 화폐 재산을 소수에게 집중시키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한다.

 

증권 가격의 등락이 실물 자본의 가치 운동과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면, 가격 변동 전후 한 국가의 실질적인 부의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

 

‘18471023일까지 은행 총재 모리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공채와 운하 및 철도 주식의 가치는 이미 총액 11,4752,225 파운드만큼 감가되었다.’ (상업 불황, 1847-1848)

 

그러나 이러한 가치 감소가 생산의 중단, 철도·운하 등 교통의 중단, 또는 자본의 실질적 낭비를 의미하지 않는 한, 명목적 화폐 자본이라는 거품의 붕괴가 인민을 실제로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들 증권은 본질적으로 장래 생산물에 대한 축적된 청구권이자 법률적 권리를 표상할 뿐이다. 그 화폐 가치나 자본 가치는 국채의 경우처럼 실재하는 자본을 전혀 체현하지 않거나, 또는 그것이 표상하는 현실적 자본의 가치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국가에서 막대한 규모의 이자 낳는 자본 (화폐적 자본)은 대개 이러한 형태로 존재하며, 따라서 화폐 자본의 축적은 상당 부분 생산에 대한 청구권의 축적과 그 시장 가격, 곧 가상적인 자본 가치의 축적을 의미할 뿐이다.

 

은행 자본의 일부는 이러한 이자 낳는 증권에 투하되어 준비 자본의 역할을 수행하나, 이들은 실제 은행 업무 과정에서 직접 기능하지는 않는다. 은행 자본의 가장 핵심적인 구성 요소는 산업 자본가나 상인이 발행한 지불 약속인 환어음이다. 화폐 대부자의 입장에서 환어음은 만기 시점까지의 이자를 미리 공제하고 구매한다는 점에서 이자 낳는 증권의 성격을 지닌다. 이를 할인이라 하며, 액면 금액에서 공제되는 할인료의 규모는 당대의 이자율에 따라 결정된다.

 

은행 자본의 종국적인 부분은 금이나 은행권 형태의 화폐 준비금으로 구성된다. 예금은 계약에 따라 비교적 장기간 구속되지 않는 한 예금자의 요구에 따라 언제든 인출될 수 있으나, 유출과 유입은 부단히 반복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보충이 이루어지므로, 통상적인 경제 상황 하에서는 그 평균액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자본주의 생산이 고도화된 국가에서 은행 준비금은 평균적인 퇴장 화폐량을 표상하며, 이 중 일부는 금에 대한 단순 청구권일 뿐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는 증권의 형태를 취한다. 결과적으로 은행 자본의 상당 부분은 순전한 의제적 성격을 띠며, 구체적으로는 환어음과 같은 채권, 이미 지출되어 소멸한 자본을 대표하는 국채, 그리고 장래 수입에 대한 청구권인 주식 등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은행 금고에 보관된 증권들이 표상하는 화폐 가치가 본질적으로 가공적이라는 사실이다. 설령 그 증권이 확실한 수입에 대한 청구권이거나 현실적 자본에 대한 소유권이라 할지라도, 그 화폐 가치는 그것이 대표하는 실재 자본의 가치와는 독립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을 전혀 대표하지 못한 채 수입 청구권만을 대변하는 경우에도, 그 가치는 부단히 변동하는 가공적 화폐 자본의 형태로 표현된다. 더욱이 이러한 가공적 은행 자본의 대부분은 은행업자 자신의 자본이 아니라, 인민이 예탁한 타인의 자본이라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본질적 특성이다.

 

예금은 언제나 화폐 (금이나 은행권) 또는 화폐 청구권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예금은 현실의 유통 필요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금을 제외하면, 산업 자본가나 상인의 환어음 할인 및 대출에 투입되어 사실상 그들의 수중에 있거나 유가 증권 중개인, 증권 판매인, 그리고 정부의 수중 (재무성 증권과 신규 국채 등)에 존재하게 된다.

 

예금은 이 과정에서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우선 예금은 이자 낳는 자본으로 대출되면서 은행 금고에 실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 장부상 예금자 계좌의 대변에 기재된 수치로만 남게 된다. 동시에 예금은 예금자들 사이의 상호 신용이 수표로 결제되고 상쇄되는 과정에서 장부상의 기입 항목으로 기능한다. 이때 예금이 동일한 은행을 이용하여 은행 내부에서 계좌가 상쇄되는지, 또는 서로 다른 은행들을 거쳐 수표를 교환하고 그 차액을 정산하는지의 여부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이자 낳는 자본과 신용 제도의 비약적 발달에 따라, 동일한 자본 또는 청구권이 각종 형태로 다수의 수중에 중복되어 나타나면서 모든 자본은 외견상 두 배 또는 세 배로 증폭된 것처럼 현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화폐 자본의 상당 부분은 순전한 의제적 가공물에 불과하다.

 

예금은 지급 준비금을 제외하면 본질적으로 은행업자의 채무일 뿐, 은행 금고 내에 실물 현금으로 잔존하는 것이 아니다. 예금이 어음 교환소의 결제 과정에 투입되는 한, 이는 은행업자가 이미 대출한 이후임에도 여전히 그를 위한 자본으로 기능하게 된다. , 은행업자들은 상호 간의 지불 차액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예금에 대한 청구권 형식으로 정산하는 셈이다.

 

애덤 스미스는 화폐 대부 과정에서 자본이 수행하는 역할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화폐 소유를 매개로 얻는 이익의 관점에서 볼 때, 화폐는 자본 소유자가 직접 운용하지 않으려는 자본을 타인의 수중으로 이전시키는 양도 증서에 불과하다. 이때 이전되는 자본의 총량은 매개 도구인 화폐량에 비해 훨씬 클 수 있다. 동일한 화폐 개체가 다수의 상이한 구매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듯, 다수의 대부 과정에도 계속해서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W에게 1,000파운드를 대부하고, WB로부터 1,000파운드 상당의 재화를 구매한다고 전제하자. 현금을 보유할 필요가 없는 B는 해당 화폐를 다시 X에게 대부하며, X는 이를 사용하여 C로부터 다른 재화를 구입한다. C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해당 화폐를 Y에게 대부하고, YD의 재화를 구입한다. 이처럼 동일한 화폐 개체는 단 며칠 사이에 각기 다른 세 건의 대부와 구매를 매개하며, 각각의 거래 가치는 화폐의 액면가와 동일하다.

 

결국 대부자 A, B, C가 차입자 W, X, Y에게 실질적으로 양도하는 것은 재화를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며, 대부의 진정한 가치와 용도는 바로 이 구매력에 존재한다. 세 명의 화폐 소유자가 대부한 자본의 총액은 구매된 재화의 가치 합계와 같으므로, 투입된 화폐 가치의 세 배에 달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대부 체계는 어김없는 상환을 보장받는다. 각 채무자가 구매한 재화는 적절한 시기에 이윤과 함께 동일한 가치로 회수되도록 운용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동일한 화폐 개체는 자기 가치의 세 배 또는 서른 배에 달하는 대부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상환 수단으로도 순차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국부론2편 제4: 431-432).

 

동일한 화폐 개체가 유통 속도에 따라 다수의 구매를 매개할 수 있듯, 이는 각종 대부 과정에도 반복적으로 투입될 수 있다. 구매가 화폐를 일방에서 타방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라면, 대부는 구매라는 매개 없이 화폐 실체의 점유를 이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경제 체제에서 모든 상품이 자본 가치로 치환됨에 따라, 화폐가 순차적으로 다른 대부에서 각기 다른 자본을 대표한다는 것은 결국 화폐가 연속적으로 상이한 상품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명제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화폐는 유통 수단으로 소재적 자본을 이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대부 행위 자체에서 화폐가 이전될 때, 그것이 단순한 유통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화폐가 대부자의 수중에 머무는 동안 그것은 유통 수단이 아닌 자본의 가치적 현존이며, 대부자는 바로 이 가치 형태를 타인에게 이전하는 것이다. AB에게, 다시 BC에게 어떠한 상품 구매의 매개 없이 화폐를 대부한다면, 이 동일한 화폐는 세 개의 독립된 자본이 아니라 단 하나의 자본 가치를 대표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동일한 화폐 개체가 실질적으로 몇 개의 자본을 대표하는가는, 해당 화폐가 서로 다른 상품 자본의 가치 형태로 얼마나 빈번히 기능하는가에 따라 규정된다.

 

애덤 스미스가 대부 일반에 대해 서술한 원리는 예금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금이란 본질적으로 인민이 은행업자에게 제공한 대부의 특수한 명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한 화폐 개체는 반복적인 이전을 거쳐 다수의 예금을 형성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어떤 이가 오늘 A 은행에 예금한 1,000의 화폐가 내일 다시 시중에 방출되어 B의 예금을 형성하고, 모레는 다시 C의 예금을 형성하는 과정은 무수히 반복될 수 있다. 이처럼 동일한 화폐 1,000은 계속되는 이전을 거쳐 그 총량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예금액으로 증폭된다.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 예금의 9/10는 은행업자의 장부상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일례로 스코틀랜드의 경우, 실제 통화량이 300만 파운드를 초과하지 않았음에도 은행 예금은 2,700만 파운드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은행에 대한 인출 폭주가 발생하지 않는 한, 동일한 1,000의 화폐는 위와 반대 경로를 거쳐 막대한 금액의 채무를 손쉽게 결제할 수 있다. 개인이 소매상에 지불한 1,000이 이튿날 도매상에 대한 소매상의 채무 변제에 쓰이고, 그다음 날 다시 은행에 대한 도매상의 채무 결제에 사용되는 식의 연쇄적 진행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통화 이론 검토: 62-63).

 

이러한 신용 제도 하에서는 모든 가치가 결합되어 나타나면서 실재가 단순한 가공의 산물로 치환된다. 이는 사람들이 경제의 가장 견고한 보루로 신뢰하는 은행의 준비금영역에서도 예외 없이 발생한다.

 

잉글랜드 은행 총재 모리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개별 은행의 준비금은 잉글랜드 은행에 대한 예금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금의 수출은 우선적으로 잉글랜드 은행의 준비금에 타격을 주지만, 개별 은행들이 잉글랜드 은행에 예치한 준비금을 인출하는 과정을 거치며 결국 전국 모든 은행의 준비금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상업 불황, 1847-1848, 3639, 3642)

 

이처럼 모든 준비금은 최종적으로 잉글랜드 은행으로 수렴되나, 잉글랜드 은행의 준비금은 이중적 구조를 지닌다. 은행부의 준비금은 법정 발행 한도액에서 실제 유통액을 차감한 잔액이다. 발행 한도는 귀금속 담보가 필요 없는 1,400만 파운드 (정부 채무액)와 실제 귀금속 보유액의 합계로 결정된다. 예컨대 귀금속 보유액이 1,400만 파운드일 때 총 2,800만 파운드의 은행권 발행이 허용되며, 이 중 2,000만 파운드가 유통 중이라면 나머지 800만 파운드가 은행부의 준비금이 된다. 800만 파운드는 잉글랜드 은행의 법률상 영업 자본인 동시에 예금에 대한 준비금으로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금 유출로 귀금속 준비가 600만 파운드 감소하면, 동일 액수의 은행권을 폐기해야 하므로, 은행부의 준비금은 800만 파운드에서 200만 파운드로 급감한다. 이 경우 잉글랜드 은행은 이자율을 대폭 인상하게 되며, 예금주들은 지급 준비금의 급격한 위축을 직시하게 된다.

 

실제로 1857년 런던의 4대 주식 은행은 1844년 은행법을 정지시키는 정부의 특단 조치가 없을 경우 예금을 전액 인출하여 은행부를 파산시키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발권부에 유통 은행권의 태환 보증을 위한 수백만 파운드가 잔존함에도, 은행부는 1847년의 (800만 파운드)의 사례처럼 파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신용 체제 아래에서의 태환 보증 자체가 하나의 허울에 불과함을 실증한다.


은행업자가 수취한 예수금 (예치금) 중 유휴 자금의 대부분은 어음 중개인에게 유입되며, 어음 중개인은 그 담보로 런던이나 지방의 거래처로부터 이미 할인한 상업 어음을 은행업자에게 선대에 대한 담보로 제공한다. 어음 중개인은 은행업자의 요구 시 즉각 상환해야 하는 이른바 수시 상환 자금 (콜자금)의 상환 의무를 지게 된다. 이러한 거래의 규모는 잉글랜드 은행 총재 니브의 증언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당시 한 어음 중개인이 보유한 예금액은 500만 파운드에 달했으며, 여타 중개인들 또한 적게는 350만 파운드에서 많게는 1,000만 파운드 이상의 예금을 수중에 두기도 하였다. 이는 신용 체계 내에서 어음 중개인의 수중으로 집중된 예치 자산의 막대한 규모를 실증한다.’ (은행법 1857-1858: 5, 8)

 

런던의 어음 중개인들은 사실상 현금 준비금 없이 막대한 규모의 거래를 수행해 왔으며, 만기 어음의 회수금이나 긴급 시 잉글랜드 은행으로부터 받는 어음 담보 선대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1847년 지불을 정지했다가 재개한 런던의 두 어음 중개 상사는 1857년 다시 지불 정지에 이르렀다. 그중 한 상사는 1847년 당시 18만 파운드의 자본으로 2683천 파운드의 부채를 안고 있었으며, 1857년에는 자본이 1847년의 1/4로 축소되었음에도 부채는 530만 파운드까지 급증하였다. 다른 상사 역시 두 차례의 지불 정지 시기마다 자본금은 45천 파운드에 불과했으나 부채 규모는 300만에서 400만 파운드에 달했다.’ (은행법 1857-1858: xxi,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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