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노동 법안은 체결되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란 열심히 '근로'함에도 부족한 보상을 채울 수 없는 이유가, 단순히 임금 조정의 여파나 여하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동의 제한적인 여가 역시 취약한 채 이중 노동의 부과에 현대 노동자들이 종속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노동 시간의 쟁취에 머물러 있는 노동법과 협상, 또는 극적인 타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대기업들의 야간 노동의 강제에도 있는 것이다. 


자본의 이윤 추구는 이러한 자본주의 내적 모순이 강화됨에도, 끝까지 기생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면서 야간 노동을 요구하는 직종의 경우에도 노동자의 밤은 노동이 아니라 여가의 보장에 중점을 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야간 노동의 사고율은 오전 시간대 노동보다 훨씬 심대한 압박을 가할 수 있으며, 수면과의 관계와 불규칙적인 생활 습관 등으로 인한 건강 악화는, 마르크스, 『자본』만이 아니라 엥겔스, 『영국 노동계급사』에서도 체계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그것은 현대에도 유효한 전근대적 8시간 노동법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일괄적으로, 또는 '자유롭게' 자본의 임금 노동과 잉여 가치 창출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계형 압박이 고도화되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특히 한국의 8시간 노동법은 타국의 노동법에 비해서도 노동자의 결속을 제한적이고, 훨씬 더 탄압적인 '야간 노동'으로 작동할 뿐이다. 이 점에서 최근 발휘된 '노란봉투법'의 여파 역시 순진한 법조계의 임시방편형 구시대적 정책일 뿐임이 증명된다. 야간 노동과 8시간 법안은, 줄여도 모자란 여가의 보장 없는, 사무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각 계급 및 세부적인 층위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대사의 현실인 것이다.


야간 노동의 폐지는, 첫째로, 자본주의 노동의 현실을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수익을 따라잡을 수 없는 막대한 수익 창출의 복합적인 현대 구조를 해체하고, 그 실상이 전근대적인 노동법에서 비롯되었음을 법의 지배하에서 보호받지 못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생산에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에도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순환제 근무 노동자들에게도 장기적으로 건강 악화를 초래할 뿐이며, 이러한 불상사에 대한 대처가 미흡함이 드러나고 있다. 체제적 모순은 야간 노동을 비롯한 전 인민의 '무상한 세월'을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것이어서 그들은 단순히 '근로'함이 국가를 위해 성실하게 힘을 쓰고, 기업을 위해 복무할 수 있다고 간주해 온 오래된 까닭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노동법에 대한 요구들이 선진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 관습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계기가 된다. 잠들 수 없는 고도의 압박이 초래한 결과가 불의의 사고로 이어질 때, 그것은 단순히 노동자 한 개인의 희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악순환의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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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대 정부는 기득권 유지를 위한 명분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암암리에 정당화했다. 그들은 순방과 협약이라는 단기적인 정책적 제도의 부실한 법적 결함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집권을 창출한 수단들을 비공개적으로, 때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특히 민주 공화국의 불완전한 체제적 이행기에도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러한 물결에 휩싸이고 만 한국의 역대 정부의 역사는 '부르주아지' 정부라는 대통령제와 지역 발전이라는 허황된 단일한 대표 선거로 점칠되었다. 언론은 기자들을 정부의 하수인으로 쉽게 부역하게 하였으며, '국가'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가짜' 정부가 언뜻 노골적으로 사법부의 해체에도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유포는 특히 '정상 회담'의 성과나 무의미한 회담의 결과로 지금까지 이러한 모함들을 우리에 대한 비난을 포함하여 색안경을 쓴 채 정부의 공격으로 가시화되었다는 점이다. 노동 인민에 대한 이러한 가시화된 반동 정부의 성격이 짙어짐에 따라, 물가 전반을 비롯한, 여전히 정책마저 내세울 것이 없는 정부가 어떠한 뚜렷한 성과를 내지도 못하고 '개혁주의'나 정부의 본질적 실체를 고발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기득권 유지를 위한 명분을 지금까지 충분히 맛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초기에는 사회주의를 약속하는 듯 보였으나, 이러한 외양은 실질적으로, 기존 사법적 유지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도 않는 기존의 주장을 변주하여 되풀이한 낡은 유산임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조희대 장관이 보여준 사법적·기득권의 옹호 역시 자본주의 국가의 질서에 종속된 국민들에게 어떠한 상실을 안겼는지도 뚜렷해졌다. 당 대 당, 그것은 소수의 독점에 맞서 대다수의 공동 투쟁에 임한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러한 '가짜' 정부의 실체에,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탈을 쉽게 쓴 가면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들의 기만성과, 노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 갇혀있는 계급 투쟁의 씨앗이 무르익고 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당의 노선에 있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보다 참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가짜 정부의 모함에 갇힌 '의회주의'라는 형식적 제도의 강제된 선택에 부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여 억압받는 인민이 원하는 진정한 요구를 표출하는 것이다.  


우리가 더 이상 지도자를 추대하기 이전에도,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을 위해 부역하기 위함이 아니라, 전 인민의 단결과 '민주주의'를 가장한 가짜 정부가 지금까지 헌정의 질서를 위탁받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란, 바로 체제 간 전쟁과 안보를 벗삼아 제국주의 질서에 쉽게 편승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이다. 희화화된 공산당의 주역들이 공화국의 노골적인 비난의 대상이 될지라도, 이에 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모두 사실상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여의도'라는 도시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 국회 장본인들과, 그것에 부역했던 관련 종사자들이 이제는 역사의 '배신자'가 되는 것은 이처럼 한 순간이다. 그들은 '찬란했던 진보'를 말하며 더욱 보수화된 입지를 유지하기 급급해졌고, 가난한 민중을 거주지로 쫓아내는 데 동의하면서, 노동자들을 경제적으로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에 부역한 '적들의 유산'은 국내에 있다. 인터내셔널의 유산을 위협하고, 자신들의 상속을 내세우고 있는 '권리'에 불과한 종이에 기대고 있다. 대형 은행의 '대출' 장려와 자본 기업의 이윤 추구가 자본의 순환에 쉽게 결탁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인민 전반의 '생계'를 더욱 압박시키는 데 일조했을 뿐이다.


구식의 정치적 언어와, 이를 부추기는 정부의 모함이야말로 가장 큰 위선이자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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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과 비공식 활동의 증진을 중심으로


인터내셔널 설립 이래 각국 공산당 간의 긴밀한 연락과 동맹은 항상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어 왔다. 매체의 발달로 기존 정보의 한계를 돌파하고 이러한 국제적 연락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현대 공산주의 운동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특히 ‘프락치’라는 용어가 러시아 혁명 당시 비밀리에 혁명가들을 모함하던 반혁명 집단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연락 체계를 단순한 ‘간첩 활동’ 정도로 치부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코뮌테른 이후로도 국제 공산당 간의 연락 체계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녀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중국 공산당 시진핑 주석의 방한 당시 이루어진 교류는 당 대 당의 혁명적 연락이 아니라 국가 간의 정례적·단체적 협약에 불과했다. 공산당의 수장이 혁명적 공조가 아닌 부르주아적 대통령제 정부 당국과 손을 잡는 모습은 대단히 모순적이다. 언론은 단순히 그의 방한 자체에 집중했지만, 본래 공산주의 정당이라면 훨씬 정파적이고 계급적인 연락을 추구해야 한다. 국제주의적 당의 노력에 견주어 보면, 현재 당의 노력에 비하면 ‘수정주의’에 불과한 시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순과 한계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 내 연락 체계의 단절이 초래한 현실이기도 하다.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한국을 찾았을 때, 시진핑 주석은 임진왜란과 『난중일기』 등 한국의 역사 자료를 언급한 바 있다. 그가 현대 저작 대신 고전을 주로 소개하는 이유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미 자국 인민들에게 『공산당 선언』의 숙독과 교육을 강조한 바 있으며, “중국은 전쟁이 아니라 문화로 성장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구도에서 괴테, 『파우스트』나 일부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같은 고전은 공산주의자 간의 교류를 촉진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한국의 현실과 달리,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인민의 계급적·지적 수준을 파악하고 끌어올리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각국 공산당을 연결하는 연락 체계는 ‘독서력과 지적 교류’도 있다. 인민이 수용하고 권장할 수 있는 혁명적·이론적 저작에 대한 관심이 깊어질수록, 혁명의 과정 또한 단순한 권력 유지의 명분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형성되는 고유한 토대이며, 부르주아 정부의 기대에 단순히 응해주는 외교적 이해관계와는 판도가 완전히 다르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생명의 나무만이 푸르다”는 『파우스트』의 어구처럼, 인간과 사회를 겉핥기식 회색빛으로만 그려내는 현대의 숱한 이론적 오류들은 결코 고전의 깊이에 미치지 못한다.

 

과거에는 서면이나 지면 중심의 방식으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했지만, 오늘날은 기술의 발전 덕분에 훨씬 유능하고 정확한 정보를 신속히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을 활용하여 국제 공산당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평의회(소비에트)적 의의를 확장하기 위해, 현대 공산주의자들의 다각적인 비공식 활동을 지지하고 증진해야 한다. 이는 향후 혁명적 공산당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이어지는 매우 유익하고 필수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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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당의 전진과 노선적 차이에 대하여



전근대를 강타한 제국주의에 대해 숙고하는 동안 러시아 혁명에 대해 생각한다. 영국 공산당원이었던 에릭 홉스봄은 『제국의 시대』에서 역사적 고찰을 수행했으나, 당시 한국의 분단 체제가 안고 있던 깊은 균열 구조까지는 포착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반면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두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자 ‘필연적 귀결’이라 평한 바 있다. 봉건제에 매여 있던 인민이 체제 내 모순을 자각하기까지 각국 혁명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그러한 높은 경지의 역사적 도약은 결코 달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선을 현대로 불리는 오늘날로 돌려보자. 우리가 ‘신냉전’이나 ‘신제국주의’의 여파를 반복해서 거론할 때, 그것이 과거 부르주아지가 규정한 ‘공산주의자’ 혹은 ‘빨갱이’라는 낙인만큼이나 부르주아적 전쟁의 일부를 구성할 수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이는 오늘날 각국이 충돌하는 복합적인 경제 문제에서도 선명히 확인된다.

 

오늘날 금융 자본은 전 인민의 노동을 자본에 귀속시겨 체제의 지속성을 포장하고, 인민을 회유하며, 공포를 조장한다. 이는 아시아 내에서도 제국주의의 기생적 횡포가 극에 달한 채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한다. 혹자는 후기 소비에트를 두고 ‘국가자본주의’라 비판하지만, 이는 건재한 제국주의의 부상과 사회주의 공화국의 역사적 시도를 좌절시키려는 반동적 획책이었음을 간과한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사회주의노동당이 보여준 불충분한 강령적 토대야말로 우리 공산당과 갈라서는 지점이다. 그들의 행태야말로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나폴레옹 3세를 비판하며 언급한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구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우스운 책동일 것이다.

 

혁명이란 일련의 투쟁들이 모여서 나타난 결실이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는 깊이 있는 심층적 학습과 자국 인민들이 도달한 계급적 수준의 정당한 표출이어야 한다. 이에 비하면 오늘날의 현실은 얼마나 후퇴해 있는가! 부상하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진행성에 대해 직시하지 못하는 부르주아 어용학자들이야말로 노동 인민의 가장 큰 적이다.

 

소비에트의 전신이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 있음을 망각한 채, 곧바로 국제 무대에 진입하여 혁명만을 열망하는 사상적 주입은 과거 비판적으로 학습되지 못했던 사회혁명당(SR)의 오류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외주의자들은 당의 건설을 위한 합류 대신 국제적 단결의 범주에서 탈선하여 운동의 소국적인 태도를 정당화할 뿐이다.

 

러시아 혁명 당시 사회혁명당이 사회민주노동당과 척을 지며 보였던 반동적 경향과 마찬가지로, 운동의 단편적인 순간만을 수집해 이를 대의로 포장하는 국제사회주의노동당이야말로 당의 전진을 막아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러한 사상적 동요와 타협이 모여 제국주의가 공산주의자를 탄압할 빌미를 제공해 왔다, 그리고 이것이 체제 내 인민들이 스스로 자본의 굴레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저 정권 교체만을 바라는 통령 정부 내 ‘노동자’로 복무하는 데 만족하고, 해방을 위한 투쟁을 감행하지 못한 채 지연되고 있는 근본적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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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가면과 계급의 저울: 부르주아 법 체계와 국가의 본질

 

현사회에서 법판결의 결과를 두고 일희일비하는 현상 그 자체가 부르주아적 법 체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늘날 사법 체계는 단순히 국내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지배 계급과 정치가들이 자본의 기구를 옹호하기 위해 마련한 질서의 방편으로 작동한다. 그것이 단순히 시민 사회의 제도여서가 아니라, 그 제도적 한계의 본질이 ‘부르주아적’임을 증명하는 공표인 것이다. 사실상 오늘날 법 체계 전반이 자본주의적 정치 질서의 원천이 되었음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재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는 혁명적 투쟁의 경우에도, 그 성격이 단순한 시가지의 거리 시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민 간의 동의에 따른 심층적인 조직적·사회적 투쟁으로 확장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 법철학이 마주한 근본적인 한계는 자본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현대 법 체계(민법, 헌법, 상법 등)가 여전히 소유재산을 옹호하는 ‘부르주아적 특징’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형식적 권리상의 동등함 뒤에는 ‘실질적 계급적 격차’의 은폐가 숨겨져 있다. 현대 헌법과 민법은 “만인은 법 앞에 동등하다”며 모든 시민에게 동일한 법적 자격과 권리를 부여하지만, 이는 부르주아적 본질에서 하나의 함정에 불과하다. 마르크스가 《고타 강령 비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서로 가진 자산과 경제적 조건이 전혀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형식적 법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실질적인 구조적 종속을 고착화한다. 재벌 대기업과 일용직 노동자가 동일한 법적 기준으로 계약을 맺거나 소송을 벌일 때조차, 법은 형식상 ‘공정성’을 가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금력과 법률적 대응력이 압도적인 자본가 계급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각 역사적 시기마다 소유는 각각 다르게 발전해왔고 일련의 전적으로 다른 사회적 관계하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적 소유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부르주아적 생산의 모든 사회 관계를 설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소유를 독립된 관계, 고립된 범주, 영속적인 관념으로 정의하는 것은 단지 형이상학이나 법률학의 환상일 뿐이다.”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정치경제학의 형이상학」, 〈토지 소유 또는 지대〉

 

이처럼 소유 재산을 둘러싼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는 노동자가 예속화된 생산관계를 스스로의 역량으로 타파하는 것을 제한하며, 오히려 법률적 형식이라는 허구적 틀에 종속시킨다.

 

“형법의 조문은 기껏해야 근대 공업과 경쟁이 국민의회와 제국시대에는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음을 증명할 뿐이다.”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정치경제학의 형이상학」, 〈파업과 노동자 조합〉

 

사유재산권 (특히 생산 수단)의 절대적 보호는 현대 법 체계가 지닌 가장 큰 모순이다. 민법과 헌법은 사유재산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자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규정하여, 타인의 노동으로 창출된 잉여가치를 소유하고 축적하는 ‘생산 수단(공장, 토지, 자본 등)의 사유화’를 정당화하고 철저히 보호한다. 반면, 아무런 생산수단도 가지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노동력만을 팔아야 하는 대다수 무산 대중의 생존권과 주거권 등은 낙후된 사유재산권의 장벽 앞에서 빈번이 제약당한다.

 

‘계약의 자유’가 가진 함정 역시 이러한 노동의 상품화와 착취를 합법화하는 데 있다. 국가가 개인 간의 거래나 고용 계약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법의 대원칙 속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맺는 근로계약은 겉보기에는 강제성이 없는 ‘자발적 합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력을 팔아야만 하는 무산자의 구조적 궁핍함을 이용한 ‘강제된 계약’에 불과하다. 현대 법은 이러한 지배와 종속의 힘의 관계를 ‘개인 간의 자유로운 합의’로 포장하여 합법적인 착취 구조를 정당화한다

 

나아가 현대 법은 사회 구성원을 구체적인 계급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지 않고, 고립된 개인, 즉 자유롭고 합리적인 ‘추상적 법적 주체’로 상정한다. 인간을 계급적 조건(노동자, 자본가, 빈곤층 등)에서 떼어내어 단순히 권리를 가진 ‘개인’으로 규정하여,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구조적 불균등과 계급 격차를 개인의 능력이나 선택 문제로 전가해 버린다. 또한 공·사법의 이원화로 경제적 지배를 은폐한다. 헌법·형법 등의 ‘공법’ 영역과 민법 등의 ‘사법’ 영역을 엄격히 분리하여, 자본가들이 공장이나 기업 안에서 노동자를 지휘·감독하고 통제하는 경제적 권력 행사를 ‘사적 자치’라는 명목으로 국가의 규제와 민주적 통제로부터 보호한다. 즉, 자본주의 경제 내부에서 벌어지는 실질적인 독점과 지배를 ‘정치와 무관한 사적 영역’으로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에브게니 파슈카니스가 『법의 일반 이론과 마르크스주의』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법의 본질은 상품 교환”이다. 현대 법 체계 역시 시장에서 상품을 사고파는 자본주의적 교환 관계를 전제로 성립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보편적 정의와 인권’을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재생산하고 자본의 지배를 안정화하는 가장 정교한 이념적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에 맞서 소비에트 초기에는 노동 현장의 분쟁을 심리하는 ‘공장 재판소’의 개념이 실천적 구상으로 제시되었다. 고용주와 노동자가 직접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된 공장 재판소는 형식주의에 치우쳐 장기 소송이 만연한 일반 법원과 달리, 노동 현장의 실정과 고용주의 기만 수법(임금 체불, 부당 전근 등)을 정확히 이해하여 노동자에게 훨씬 공정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직접 법을 적용하고 집행 과정에 참여하여 국가 운영과 공공 문제에 독립적으로 주도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공장 재판수가 노동자들의 계급 의식을 고양시키고 정부 관료의 독점적 권위를 약화시킬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서류함에 처박아 두고 시행하지 않았다. 결국 공장 재판소와 같은 제도는 노동자에게 절설히 필요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체제 아래에서는 온전히 실현될 수 없으며, 언론과 집회의 자유, 그리고 노동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총체적 정치 투쟁의 일부로서만 쟁취될 수 있다.

 

지배 계급의 이익과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 문제를 왜곡해 온 부르주아 사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발전 단계를 되짚어봐야 한다. 레닌의 《국가에 대한 강연》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국가가 영원히 존재해 온 것은 아니다.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는 관습과 도덕적 권위가 사회를 유지했을 뿐, 타인을 영구적으로 지배하는 강제력인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계급으로 분화되면서 노예 소유 사회에서는 노예 소유주가 노예를 억압하는 기계로, 봉건 사회에서는 영주가 농노를 예속하는 기계로 국가가 진화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역시 봉건제를 무너뜨린 자본가 계급이 ‘자유’와 ‘법 앞의 동등’을 표방하며 세운 국가이나, 그 실상은 사유재산과 임금노동 제도를 유지한 채 다수의 무산 대중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

 

이러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보통 선거와 의회주의를 수단 삼아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처럼 선전하지만, 자본의 힘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이는 허구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의 지배는 더욱 노골화되며, 국가는 계급 억압의 도구로 작동한다. 따라서 노동 계급은 부르주아 국가의 보편적 평등이라는 허항된 거짓말에 현혹되지 않고, 국가라는 강제력 기구를 장악하여 부르주아 권력을 전복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착취 구조를 완전히 철폐하고 계급이 사라진 사회가 도래할 때, 비로소 인간을 억압할 필요성이 소멸하여 국가라는 기구는 역사 속에서 고철 더미로 폐기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점 속에서 공표된 소비에트의 《법원에 관한 제1호 칙령》은 제정러시아 및 부르주아 임시정부의 사법 체계를 전면 해체하고 최초의 사회주의적 사법 기관을 구축하는 역사적 결단이었다. 제1조, 제3조로 기존 일반 법률 기관(지방법원, 항소법원, 상원 등)과 사법 관료주의 체계(수사관, 검사, 변호사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이어 제2조와 제4조에 따라 노동자·병사·농민 소비에트의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판사와 배심원으로 구성된 ‘인민 법원’을 설치하고, 검사와 변호인의 역할을 도덕적으로 청렴한 모든 인민이 수행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또한 기존 법률은 ‘혁명적 양심’ 및 ‘혁명적 권리관’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한시적으로 준수하게 했으며, 소비에트의 법령이나 당의 강령에 위배되는 구법은 철저히 무효화했다. 특히 제8조에 의거해 반혁명 행위, 폭리, 투기, 사보타주 등을 전담 재판할 ‘혁명재판소’를 설치하여 신생 소비에트 정권을 방어하고자 했다.

 

이 칙령은 부르주아 사법 기구를 단순히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부숴버리고, 인민의 사회적 참여와 ‘혁명적 양심’에 기반한 새로운 사법 체계를 세우겠다는 선언이었다. 현대의 법 체계가 사유재산 제도의 근본적 모순은 배제한 채 오직 돈이 오간 지엽적인 현상만을 문제 삼기에, 이에 맞서는 혁명적 투쟁의 필연성은 조르주 상드의 문구로 요약된다.

 

“전투냐, 죽음이냐; 피로 얼룩진 투쟁이냐 사멸이냐, 이것이야말로 냉혹하게 던져진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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