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회주의 문헌 자료의 부재성


북한을 사회주의 공화국이라 비판할 때 간과하기 쉬운 지점은, 이들 국가 내부에 작동하는 강력한 인민 통제 기반을 지적하는 것보다 사회·과학적 분석 자료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스탈린주의 자료를 포함한 전집 발간의 의의가 수령제의 한계 속에서 평가되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여기서 그러한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경솔한 일일 수 있다. 북한이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숱한 당내 투쟁을 거쳐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의 과학성에 대한 사회주의적 고찰을 담은 서적을 북한 도서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남한 구조에서는 이러한 자료가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출판물의 형태로만 허용된다. 물론 북한 내 자료 열람 방식 역시 언제나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정부 관할하에 통제되어 왔으므로, 이러한 개방성이 온라인으로 확장되었을지라도 그 한계는 명확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에 남북한의 한국 마르크스주의 전통성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성으로 발전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사회·과학적 분석은 기존의 인문주의적 혹은 관념적 철학 사고에 그치지 않고 유물론적 분석에 기반한 사회·정치 분석에서 출발했으며, 이는 곧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지지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제대로 허용될 수 없음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직접 서점을 방문하더라도 출판물의 비중이 온통 자본 경제학 관련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는 현실은 매우 모순적이다.

 

반면 북한학 전공자들에게는 남한 서적 및 자료의 한계가 자본성과 미진한 상업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명백히 보일 것이다. 남한 학계의 분석이 비체계적이고 비과학적이며 인민의 성격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로동신문만 조금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이전에도 북한 인민들은 비록 수령제하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대목에 미세한 차이를 보였으나, 그보다는 인민들이 주체적으로 남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분석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남한의 자본주의 교육은 갈수록 계급적 의식 수준이 미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레닌 역시 소비에트 교육부 서한에서 문맹을 탈피하는 계몽적 의식 수준보다 중요한 것은 계급적 의식을 갖춘 인민들의 무장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지적이 타당하다면 남한의 교육 수준은 양적으로는 방대할지 몰라도 질적으로는 미달한 상태다. 북한 내부의 인민대학당만 보더라도 약 2,600만 부에 달하는 사회·과학 및 마르크스주의 관련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이에 비하면 실패한 자본주의 분석을 여실히 보여주는 남한 사회의 역사적 발전성은 오히려 낙후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경제적 수준 자체는 천차만별이지만 말이다.

 

학습 공간인 도서관이 점차 아동의 수준에 머무르는 민주주의적 교육관에 기대는 한, 마르크스주의 및 사회·과학 분석과 자본주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남한에서 재출간되는 사회·과학의 비중이 경영학에 편중되는 현상은 막대한 자본을 불필요한 곳에 투여한 결과다. 이는 최근 재출간된 공산당 선언의 미약한 번역 수준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지점에서 남한 자본주의가 양적으로는 비대할지 몰라도 질적으로는 낙후되었다는 지적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이는 계급적 고찰의 시각이 부재한 남한 학계 전반의 오류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체제 내부의 대중이 이러한 한계를 스스로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는 전적으로 한국 정부, 즉 남한 사회 체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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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청년 투쟁의 중요성


역대 사회주의 투쟁의 역사에서 청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역사적 국면에서 청년은 자본주의가 생산한 가혹한 희생물이 아니라 생생하게 움직이는 혁명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문화가 오염시킨 청년 담론과 달리, 청년 주체를 역사적 무대로 소환하는 것은 이들에게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정당한 반론을 제기할 특수한 임무와 기회를 부여하는 일이다.

 

물론 기성 세대가 구축한 질서와 현 청년 세대가 지향하는 방향 사이에 깊은 격차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소비되는 세대론은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제국주의 국가의 특성상 기성 질서에 포섭된 청년들의 모습만을 보여준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혁명이 도래하는 시기에는 청년의 역사적 지향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청년은 전방위적으로 누적된 체제 모순의 한계를 딛고, 자본주의 정치가 야기한 기득권 구조를 포함해 사회 전반에 대한 생생한 변혁의 요구를 담아내게 된다. 청년이 직면한 그늘은 단순히 체제 내적인 만족에 국한되지 않으며, 불안정한 삶의 실상에서 촉발된 체제 불만은 자본주의 내부에서도 충분히 폭발적 힘으로 표출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교육관이 부재한 현실 속에서도,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에 대한 객관적 고찰과 청년 주체가 던지는 날카로운 반론들은 기성 시대가 안주해 온 기존 질서의 오류를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등 언론이 청년층의 극우화를 부추기는 기사를 생산할 때조차, 그러한 언론 기저에 깔린 시각은 한국 부르주아지가 초래한 결과물이자 민족성에 기대어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전근대적 태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구태의연한 정치적 시각은 이미 역사적 수명을 다했다. 이탈리아의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옥중수고에서 청년이 부재한 정치는 정치적 무관심을 초래하며 그 결과는 자명하다고 지적했듯, 청년들의 반론을 단순한 세대 갈등이나 극우화 현상이라는 틀에 가두어 단정해서는 안 된다.

 

청년들이 투쟁할 가치는 앞으로도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청년 세대가 찬란한 세계를 건설하고, 사회주의 공화국 실현 이후 주체적인 노동 해방과 혁명 투쟁에 대한 헌신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적 역할이 요구된다. 청년들의 자립성에 대한 요구는 자본이 행사하는 소비의 위력을 압도할 수 있다.

 

줄어드는 인구 구조를 들어 회의론을 제기하는 시각과 달리, 소수화된 청년 노동자들의 단결과 밑바닥에서의 조직적 노력은 마르크스주의적 실천과 충분히 부합할 수 있다. 청년들을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재교육하고 이들의 사회주의적 투쟁을 적극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는 다가오는 전 세계의 부르주아지 단죄와도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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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 첫날,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을 관람하고 왔다. 최근 관람했던 옵세션에 이어, 이번 작품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밀라요보 비치 주연의 좀비 대서사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브라이언은 타인의 장기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특수 직종의 의료 택배 기사다. 종합병원에 장기를 전달하던 그는 전담 간호사로부터 라쿤 시티 병원까지 치료제를 운반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추가 급여에 혹해 라쿤 시티로 차를 몰던 중, 도로에 서 있던 한 여성을 차로 치는 사고를 낸다. 그 여성은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좀비에게 물린 감염체였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감염된 여성을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경찰차가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브라이언은 이를 눈앞에서 목격한다. 숨진 경찰의 무전기를 가까스로 작동시켜 보지만 거센 눈보라 탓에 연락이 끊기고, 감염체 여성은 브라이언을 쫓기 시작한다. 차 엔진마저 고장 나자 근처 저택으로 대피한 그는 그곳에서 샷건과 총알을 발견하고, 좀비를 피하며 라쿤 병원으로 향하게 된다.

 

영화는 라쿤 병원 실험실 사고로 감염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상황과, 이를 연구하던 엄브렐라 코퍼레이션과의 접촉 등으로 인해 브라이언이 라쿤 병원으로 향하는 일대기를 조명한다. 주인공 브라이언은 매우 연약하고 착하지만 다소 어리숙하다. 군 출신이 아니기에 총구를 사람에게 겨누거나 제때 총을 작동시키지 못하고, 자물쇠 하나를 여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등 극한의 공포 속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관객들은 답답할 수 있지만, ‘라쿤 시티라는 영화적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현실적인 설정이다.

 

이 영화는 레지던트 이블의 홍보성 성격이 짙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무관심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브라이언이 장기와 치료제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의사, 간호사, 연구원 등 주변 인물들은 그의 존재나 안위에는 무관심한 채 오직 자신들의 업무와 목적 (장기, 치료제)에만 몰두한다. 이러한 냉담한 시선 속에서 브라이언은 임무에 대한 책임감과 임신을 원하는 여자친구 케이티라는 개인적 동기를 안고 라쿤 시티에서의 사투를 이어간다.

 

평점은 5점 만점에 3~3.5점을 주고 싶다. 상업적 대작을 노린 영화는 아니지만, 레지던트 이블의 서사와 주인공 간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된다. 원작 게임인 바이오하자드팬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다. 게임 내 저장 체계인타자기등 원작의 배경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FPS 장르 특유의 1인칭 카메라 시점을 구현한 연출도 돋보인다. 절대적인 능력자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브라이언이 좀비에 맞서 라쿤 병원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인간의 무관심이 초래한 결과를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원작을 이해하고 있는 관객은 물론,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가볍게 즐기기에도 좋은 작품이다. 다만 곳곳에 또는 점프 스퀘어 (갑툭튀) 요소가 많으니 심약자는 관람 시 주의가 필요하다.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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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문득, 혹은 자주 글을 남깁니다. 마치 생전에 제대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처럼 무심결에, 어쩌면 어렴풋이 어울리는 만남이겠지요. 인생사가 유독 불우한 이들에게는 밤이 더 자주 깊어지나 봅니다

 

저는 이제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에서 생계 노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업을 정리하면서 사진과 연락처도 정리했습니다. 답장 없는 편지를 쓰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생소한 이름처럼 부득이하게 본명을 남깁니다. 제가 기억하는 순간은 아주 짧은 한때였고, 지금쯤 당신은 대학을 졸업해 어엿한 성인으로 살아가고 있겠지요. 각자가 1인분을 해내기 위해,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실 속에서 당신과의 인연 역시 좋은 기억으로 남음과 동시에 조금씩 멀어지고 있습니다.

 

제 과거를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당신이라는 이름은 늘 마음 한 켠에 남아있지만, 저라는 존재는 가장 가까이 있던 지영 씨가 더 잘 알고 계시겠지요. 유쾌한 사람이면 좋았을 텐데, 제 열정이 너무 과해 오히려 지영 씨에게 부담만 준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제 아버지를 기억해 주시는 당신이지만,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조용한 곳에서 따로 만났어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때의 저는 너무 어렸고, 이미 지나간 일들을 돌아보거나 숨을 고를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젠 동료들과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중입니다. 서슬 퍼런 살기도 꺾이는 순간이 오더군요. 예전처럼 몸이 제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예비군도 끝나고 지긋지긋한 빚도 탕감하여 조금씩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주변 지인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정신을 다잡으며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중입니다

 

지영 씨도 새로운 인연을 이어가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소식을 조금 보텁니다. 여름의 온기 탓인지 피부가 진물러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최근 한강 공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 손을 잡고 재미나게 담소를 나누는 연인들이 보이더군요. 저 사람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저렇게 희희덕거릴까 싶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자가용이 있던 시절, 누군가를 바래다주던 길에서 소소한 즐거움이 떠오릅니다. 조금 더 잘 알려지지 않는 장소를 찾아가거나, 여유가 조금만 더 있었다면 지영 씨 얼굴이 발개지도록 술을 마시는 모습도 볼 수 있었겠지요.

 

이제는 제법 상관없는 일입니다. 계절의 봄은 매번 찾아오지만, 마음에도 봄이 올까 싶을 때가 많습니다. 외출할 일도 별로 없는 저는 그저 일에 묻혀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요. 겨울이 오더라도 환절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전공과 관련해, 가방 속에 손목이 편한 마우스를 볼 때면 아직도 넌지시 웃음이 나오곤 합니다.

 


2026. 0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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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 공산당』에 나타난 시이 가즈오 연설문의 사상적 특징

 


· 의회주의적 사회 변혁론과 민주주의 혁명 지향

 

시이 가즈오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단번에 이루어지는 혁명적 변혁이 아니라, 다수의 합의에 기반하여 계단을 오르는 단계적 과정으로 규정한다. 현시점 일본 사회에 필요한 변혁은 즉각적인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대미 종속과 대기업 중심주의를 타파하는 민주주의 혁명 (자본주의 틀 내의 민주적 개혁임을 명확히 한다. 또한 과거 소련 방식의 억압적 체제를 배격하고 의회 선거와 다수파 획득에 따른 평화적·민주적 변혁을 지향한다.

 

· 자주 독립 노선과 패권주의 및 교조주의 비판

 

당의 운동 노선을 결정함에 있어 외부 강대국의 지시나 간섭을 배제하는 자주 독립 태도를 견지한다. 과거 소련 및 중국의 간섭을 배격하고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및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폭거로 비판했으며, 소련 공산당 붕괴 당시에도 패권주의의 해악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이를 환영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는 기존 국제 공산주의 운동 내 교조주의 및 패권주의와 선을 긋는 대목이다.

 

· 반제국주의·반전 평화주의 및 역사 의식

 

태평양 전쟁 이전 전전 (前戰) 시기부터 천황제 전제 정치 아래서 일관되게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반대해 온 역사를 강조한다. 헌법 9조 개악 저지와 평화 수호를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일본군 위안부문제 등 과거사 범죄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 근본적 청산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동아시아 평화와 한일 우호가 성립한다는 확고한 반제국주의 및 반전 평화주의 입장을 보인다.

 

· 대중적 기반에 입각한 풀뿌리 민주주의

 

정당의 정통성과 동력의 원천을 의회 내 의석수뿐만 아니라 당원, 지역·직장 지부,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 독자층, 기업 및 국가 보조금을 받지 않는 재정적 독립성 등 민중 삶 속의 풀뿌리 조직력에서 찾는다.

 

· 역사적 연속성과 과학적 성찰에 따른 당위성 확보

 

창당 이후 당명을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정당성을 침략 전쟁 반대라는 일관된 투쟁 역사에서 찾는다. 동시에 당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완고함을 배격하고, 과거의 오류나 역사적 제약을 공식 문서 일본 공산당 80에서 인정하고 반성하는 과학적·성찰적 태도를 취한다.


· 한일 관계 및 식민지 지배 책임에 대한 구조적·역사적 시각

 

시이 가즈오는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의 부실성을 지적하며 1910·일 병합이 무력을 동원한 위협과 부력 행시로 이루어진 불법·부당한 것이었음을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한반도 분단과 한국 내 군사 독재 정권의 장기화 문제까지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연관하여 파악한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근대 사회로 진입한 한반도 주민들로부터 민주주의적 정치 경험과 훈련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분단의 소지와 독재의 역사적 원인을 제공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민주적 발전을 위한 국제적 환경 조성에 일본이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

 


시이 가즈오와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 (풀뿌리 운동)과 의회 정치의 결합에 따라 정치 변혁과 대중적 요구의 실현은 의회 내부의 활동만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현장에서 나오는 고발 및 시민 운동과 의회 질의가 결합할 때 이루어진다고 본다. 기업의 불법 초과 근무 (서비스 잔업) 추궁, 대부업체 고금리 (그레이 존 금리) 철폐, 중고 가전 PSE 마크 강제 규제 철회, ‘애국심 통지표문제 시정 등의 사례를 들어, 현장의 구체적 고발과 대중 운동을 바탕으로 의회에서 총리나 정부 부처를 추궁해 현실을 바꾸는 방식을 핵심적인 정당 활동 모델로 제시한다.

 

기념비적이고 거대한 정강 정책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중 채무·파산 등 시민의 삶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문제 해결을 정당의 본분으로 삼는다. 그는 20년 이상 쌓아온 생활 상담 활동과 지역 지부의 밀착 대응을 공산당 특유의 강점으로 내세우며, 민중의 실제적 이익을 수호하는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본 내 자민당, 공명당, 민주당 등이 기득권 세력이나 대부업체 등 이익 단체의 후원금 및 헌금에 얽매여 대기업과 금융업계의 불법·폭리를 묵인할 때, 공산당은 기업 기부금이나 국가 정당 보조금을 받지 않기에 타협 없이 강력한 추궁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당시 전국 24,000여 개 지부, 3,385명의 지방 의원, 130만 명의 신문 아카히타독자 등 풀뿌리 네트워크를 당의 최대 자산으로 여긴다. 나가사키, 미야자키, 훗카이도 등 농촌 지역에서 지방 의원 수와 점유율을 늘려가는 성과를 제시하며, 지역 주민과 밀착하여 성실히 일하는 의정 활동이 정당 신뢰의 근간이라고 판단한다.


 

시이 가즈오의 연설문에 나타난 일본 공산당의 특징


 

일본 공산당은 주민 이익에 밀착한 실천적 지방 의정 활동을 중요시한다. 의원의 자격은 당파가 아니라 주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발언하고 행동하는가에 달렸다고 본다. 나가사키현 코야기초나 이바라키현 쿠즈우마치 사례처럼, 지방 합병으로 소외된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현장에서 솔선수범하는 의정 활동이야말로 보수 성향 주민들의 지지까지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라 평가한다.

 

시이 가즈오가 내린 일본 공산당의 가장 큰 자산은 현장 지강과 지역에 뿌리내린 풀뿌리 조직이다. 과거부터 이어진 부당한 차별과 반공 공격 속에서도 노동자와 시민의 이익을 지켜온 단련된 조직력을 당의 힘으로 본다. 서유럽과 달리 일본 내에 잔존하는 공산당에 대한 편견과 공격에 굴하지 않고,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조직을 계속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공산당이 84년간 당명을 바꾸지 않고 유지해 온 근거는 과거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목숨을 걸고 반대해 온 일관된 역사에 있다. 전쟁 직전 당을 해산하거나 재편하여 전후 이름을 바꾼 타 정당들과 달리, 침략에 맞선 도덕적 자부심이 있기에 당명을 고수할 수 있으며, 이 역사가 동아시아 국가들과 신뢰를 형성하는 핵심 기초가 된다고 판단한다.

 

자민당과 민주당 내 우익 세력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이 추진하는 교육기본법 개악교육칙어 찬양,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정례화 등을 강력히 비판한다.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고 전전(前戰)의 제국 의회 시절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해외에서 전쟁을 수항하는 나라를 만들고 평화헌법 9조를 파괴하는 행위이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에 따라 우익 개헌파의 역사 왜곡과 군국주의 회귀를 비판한다.

 

시이 가즈오는 민주당을 비롯한 여타 야당들은 자민당 출신 인사들이나 과거 연립 정부에 참여했던 세력들이 합류하여 만든 집단에 불과하여 자민당 정치의 가담자이자 패배의 역사를 공유한다고 본다. 전후 정치사에서 자민당 정치에 맞서 일관되게 대립각을 세우고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온 정당은 일본 공산당뿐이라고 강조한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및 혁명적 정당론의 비판

 

 

시이 가즈오의 주된 논지는 계급 투쟁이나 자본주의 생산 양식 자체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아닌, ‘주민의 이익 대변’, ‘의회에서의 적극적인 발언’, ‘역사 인식 (식민지 지배 및 침략 전쟁 반대)’ 수준에 그친다.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강조하는 생산 수단의 사회화, 프롤레타리아 독재, 자본주의 체제 폐지와 같은 변혁적 사상 체계가 철저히 배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글의 전반도 자본주의 내 개량 및 민주주의적 가치로 수렴되며, 핵심 가치는 평화헌법 수호’, ‘교육기본법 개악 저지’, ‘의회 민주주의 내 정당한 의정 활동등 거대 정당들에 맞선 자유민주주의적·헌법적 가치의 원상 복원에 가까운 개념들이다. 사상적 기반이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이나 경제학 비판에 기초하기보다,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 및 개혁적 민주주의 범주 내에 머물러 있다.

 

 

실천적 행보에서 배제되어 있는 지향점

 

 

시즈 가즈오가 강조하는 현장과 풀뿌리 조직의 역량은 결국 의회에서의 추궁과 발언’, ‘선거에서의 승리’, ‘지방 의석 확보라는 의회 정치적 결과물로 수렴된다. 이는 노동자 계급의 총파업이나 체제 변혁을 목표로 하는 노동 운동 등 의회 제도의 틀에 국한된 것이 아닌 실천적 총파업·대중 투쟁 노선이 실질적으로 배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 공산당 내에서도 자민당·민주당 등 기존 정치 세력의 도덕적 타락과 우경화, 개헌 시도에 대해서는 강력히 비판하지만, 국가 기구 체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배제되어 있어 현대 자본주의 국가 기구 (의회, 법원, 행정 조직) 자체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의회라는 기존의 제도적 틀 내부에서 더 정직하고 깨끗하며 주민을 위해 일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회주의적 개량주의에 실천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국제주의적 단결 및 생산 현장 중심 투쟁의 한계도 보인다.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 기준 역시 과거 침략 전쟁에 반대했던 역사적 도덕성신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단결이나, 생산 현장에서의 노동자 자치·통제와 같은 노동 중심적 실천 지향은 담론에서 제외되어 있다.

 

 

시이 가즈오와 일본공산당의 소련 비판 및 그 역사적 한계

 


시이 가즈오와 일본공산당이 보인 소련 비판은 전후 일본이라는 정치·지형학적 조건 속에서 자당의 생존과 대중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내린 전략적 선택의 성격이 짙다. 이러한 방식의 소련 비판과 정세 대응이 지닌 역사적 한계는 분명하다.

 

일본공산당의 소련 비판은 관료주의화된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서 발생시킨 생산관계의 왜곡이나 계급적 한계를 구조적으로 규명하는 데로 깊이 나아가지 못했다. 대신 소련의 일국패권주의, 인권 억압, 독재적 통치 스타일 등을 비판하며 우리는 저들과 다른 성숙한 민주주의 정당임을 증명하는 데 집중했다. 이는 자본주의 세력의 반공 공세를 방어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을지 몰라도, 마르크스주의 정당으로서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 원인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사회적 생산 양식과 사회 모델을 제시하는 사상적 심화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시이 가즈오는 과학적·체제론적 비판이 아닌 도덕적·자유주의적선 긋기의 한계를 보인다.

 

소련 및 서기장파와의 대립 (1960년대 50년 문제 및 중·소 분쟁 등) 과정에서 형성된 일본공산당의 자주 독립 노선, 의회주의적 자당 방어를 위한 정략적·사후적 정당화의 한계를 보이며 냉전기 일본 내에서 스탈린주의의 하수인이라는 공격을 피하고 의회 내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선거 공학적 목적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정치적·지형학적 압박에 대응해 사후적으로 소련을 사회주의가 아닌 패권주의로 규정하여 단절을 선언하는 방식은, 마르크스주의적 원칙에 입각한 일관된 정세 분석이라기보다 의회 내 입지 강화를 위한 정세 추종적 탈색에 가깝다는 한계를 지닌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원리 중 하나는 전 세계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 단결이다. 그러나 소련과 동구권 체제를 단순히 거부하고 단절해야 할 대상을 넘어선 타자로 규정하고 자국 내 선거와 평화헌법 수호라는 일국적 과제에 집중하면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 및 세계 수준의 반자본주의 연대 전선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냉전 이후에도 세계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는 국제적 노동자 투쟁의 축을 구축하지 못하고, 일본 내부의 서구식 사회민주주의적 개량 정당과 유사한 지위에 머물게 된 원인이 되었다.

 

소련의 실패와 거리를 두기 위해 자유’, ‘민주주의’, ‘의회 절차’, ‘헌법 수호를 과도하게 강조한 결과, 일본 공산당의 노선은 체제 내화에 따른 변혁적 동력을 상실하고, 자본주의 국가 기구와 법질서 자체를 승인하는 틀 안에 갇히게 되었다. 소련식 독재를 경계하는 과정에서 체제 자체를 흔드는 혁명적·변혁적 실천 지향까지 함께 탈색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자민당 정권이 구축한 전후 체제 내부에서 가장 깨끗하고 성실한 야당이라는 제약된 역할에 스스로를 가두는 역사적 한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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