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체제와 반동적 범죄의 구조적 실태


자본주의 체제와 고도의 범죄율 사이에는 매우 높은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이는 과거 여러 혁명 이론적 저술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 이르러 발생하는 ‘묻지마 범죄 (이상동기 범죄)’는 세대를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출현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반동적 범죄의 실상은 가해자 개인의 비도덕적 일탈이나 심리적 이상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으며, 정치경제학적 구조 요인으로 접근할 때 비로소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정치적·경제적 변동이 극심해질수록 범죄 양상이 급격히 증폭하는 까닭은, 시장 경쟁 구도에서 밀려난 취약 고령층의 계급적 몰락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40% 내외에 달하며, 2024년 경찰청 범죄 통계에서는 60세 이상 고령층 피의자 비중이 18.8%를 기록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20대 피의자 비중을 추월했다. 특히 최근 5년간 71세 이상 고령층의 절도 범죄가 약 68% 폭증한 지표는, 사회적 생산 기구에서 배제된 고령층이 생존을 위협받는 현실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자본주의 체제 내 계급 간 경쟁이 심화할수록 구조적 가장자리에 몰린 이들일수록 범죄 조건에 취약해진다는 점은 명백하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순적으로 감옥을 선택하는 생계형 범죄나,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를 낳는 ‘묻지마 범죄’는 모두 이들의 경제적 취약성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나아가 정치적 변동 속에서 이들이 구조적 격차를 체제적 층위에서 자각하고 혁명적 동력으로 전환할 계급 의식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실업 상태에 처했거나 정년퇴직자, 혹은 장기간 노동 시장에서 이탈해 있는 ‘룸펜’ 상태의 집단에서 나타나는 범죄율 상승은 단순히 가해자가 일으킨 법적 불안정 상태로만 볼 수 없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내 정치적 지형 및 기존 법적 조치의 한계를 드러내며, 부르주아적 국가 기구가 방관해 온 공권력과 경찰력 통제의 근본적 한계를 명확히 수렴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정년퇴직이나 신체적 노화로 노동 생산성을 상실한 고령층은 ‘상대적 잉여 인구’로 전락한다. 부르주아 국가 기구의 부실한 제도적 안전 기구만을 제공함에 따라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의도적으로 법적 불안정 상태를 야기하기도 한다. 법무부 수용자 통계에 따르면 교도소 재소자 중 저소득층 및 무직자의 비율이 70% 이상을 차지하며, 65세 이상 수용자 수 역시 최근 10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형벌 기구여야 할 교도소가 모순적으로 최소한의 의식주와 의료 보장을 제공받는 ‘대체 기구’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빈곤의 사법화’ 현상이다.

 

한편, 장기 구직자나 실업자로 구성된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증가는 무동기 범죄의 직접적인 동인으로 작용한다. 자본주의 노동 시장에서 배제되어 파편화된 개인들은 공동체적 연대나 조직화의 기회를 잃고, 체제 모순을 자각하여 혁명적 동력으로 전환할 계급 의식을 상실하게 된다. 대검찰청과 경찰청의 이상동기 범죄 피의자 분석에서도 가해자의 70% 이상이 장기 무직이나 일용직 상태였으며, 극심한 사회적 고립에 처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매체로 인해 가중되는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적 배제 속에서, 체제 모순의 원인을 정확히 타격하지 못하는 이들의 분노는 불특정 다수나 무고한 대상을 향한 무차별적이고 반동적인 폭력의 형태로 일그러져 분출된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범죄 원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포착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전체 형법범 중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상회하며, 출소 후 생계 수단이 없는 고령층이 식료품을 훔쳐 교도소로 재입소하는 생계형 절도 (만비키) 현상이 고착화되었다. 동시에 사회적 노동 시장에서 완전히 탈락한 장기 은둔·무직 계급이 자행하는 길거리 무차별 난동인 ‘토오리마’ 범죄가 지속적인 사회적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 역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적 계급 분화와 취약한 의료 보장 체계로 인해 노년층의 의료비 파산 및 생계형 범죄가 급증하고 있으며, 사회적 소외와 총기 유통이 결합하여 연간 수백 건의 무차별 대량 총기 난사라는 치명적인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분출하는 노인 범죄와 묻지마 범죄는 자본주의 체제 내의 정치적 지형과 국가 사법 기구가 지닌 근본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국가 기구가 계급적 분화의 구조적 원인을 도외시한 채 경찰력 강화나 형벌 수위 상향과 같은 응징적 통제 조치에만 의존하는 것은 부르주아 기구의 방관이자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사회적 생산 기구에서 밀려난 잉여 인구와 룸펜 계급의 범죄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법적 통제에 머무르는 대신, 세대를 아울러 정치경제학적 비판적 층위에서 사회적 생존 보장 체계를 재건하고 계급적 배제와 분화를 해소하는 혁명적 변혁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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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를 둘러싼 도덕적·윤리적 논란은 혁명의 본질을 가리는 구실에 불과하다. 우리는 혁명적 형벌로서 사형제 도입의 당위성을 적극 주장한다. 부르주아 법체계는 무고한 민중을 억압해 온 반면, 정작 처발받아야 할 자들에게는 심판을 유예하며 민중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혁명기의 사형제는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트의 억압 기구가 아니다. 그것은 부르주아지를 단죄하는 민중의 혁명적 재판이어야 한다. 한국의 신흥 부르주아지가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 사유 재산을 사수하려 할 때, 생산 수단을 전유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전 세계 부르주아지를 청산하기 위해 혁명적 사형제를 단호히 결정하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다. 

 

제국주의와 대자본이 야기한 사회·경제적 해악은 명백하다. 단순히 감옥에 가두어 방치하는 온건한 처벌 방식으로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진정한 단죄가 될 수 없다. 자본의 결탁과 인적·물적 영향력을 보존한 채 감금되는 것은 반혁명적 복권의 여지를 남겨둘 뿐이며, 이는 민중의 피해와 계급적 수탈을 근본적으로 청산하지 못한다. 혁명적 사형제는 과거의 무차별적 숙청이 아니며, 단순한 경제 성장 가속화 수단도 아니다. 이는 지배 계급의 반혁명적 유산을 청산하고 역사를 진전시키기 위한 단계적이고 결정적인 단죄이다. 평화적 해법이라는 소시민적 착각은 대자본의 생산 수단 독점을 눈감아주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법적 기준은 주로 하층민이 저지르는 ‘거리 범죄’를 집중 처벌하지만, 실제 사회적·경제저 피해 규모는 부르주아지 (기업 및 대자본가)가 저지르는 범죄가 월등히 크다.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임금 체불 역시 중대한 범죄 행위임에도, 형사 처벌보다는 민사상 합의나 과태료 처분 정도로 유야무야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사법 체계가 계급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는 사실은 통계적으로도 증명된다. 소액 절도나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하층민의 구속 및 실형 선고율은 매우 높은 반면, 수천억 원대 배임·횡령을 자행한 대기업 총수나 자본가에게는 집행유예, 보석, 사면이라는 특혜가 압도적인 비율로 부여된다. 전 세계 교도소 수감자의 80~90% 이상이 하층 계급 및 소외 계급 출신이라는 구조적 통계는 자본주의 형법 기구의 본질을 폭로한다. 결국 현행 법 체계는 자본가의 범죄를 ‘경영상 실수’나 ‘비폭력 범죄’로 포장하여 보장하는 반면, 소외 계급의 범죄만을 선별적으로 단속하고 진압하는 계급적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부르주아 정부의 법집행이 무능과 범죄에 불과함을 입증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직접 집행하는 혁명 재판만이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켜 온 부르주아 '평화 정치'의 허구를 폭로하고,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임을 선언한다. 부르주아지의 위선은 분야를 막론하고 점차 노골적이고 해악적인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맞서는 우리의 과제는 더 이상 일방적 순종이 아니라, 자본의 계급적 수탈 방식에 대한 역사적 소명을 다하는 단호한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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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OTT나 AI 등 기술 매체가 기획·개발 단계부터 ‘유료화’를 전제로 삼는 현상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기술 발전이 어떻게 공공재를 사적 소유물로 취급하는지를 보여준다. 본래 이러한 매체와 기술은 사회적 생산 수단이자 공공재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특히 AI·AGI (인공일반지능) 등의 유료화는 거대 자본의 사적 이윤 창출과 독점을 위한 민영화 기제 및 투자 수단으로 손쉽게 변질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기술 매체의 사용 자체를 단순히 거부하는 방식만으로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기술주의자들이 제기하는 거부론이나 비판은 때로 공허한 ‘종말론’을 부추기는 데 그치거나, 모순적으로 자본이 형성한 상품성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기술 사용을 거부하는 소극적 태도는 공공재를 부분적으로 유료화하며 사적 이윤을 정당화하려는 자본의 점유 시도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다는 점에서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오늘날 대기업이 주도하는 AI 기술 등은 정치적·법적 권리를 바탕으로 자본가가 그 소유권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노동자나 대중의 통제권이 부재한 상황에서, 자본 기업은 공공적 가치를 지닌 기술마저도 부분적 유료화로 이윤 창출의 도구로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내부의 개별 노동자나 대중이 이러한 유료화 공세에 맞서 반대 목소리를 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기업 경영진이 지닌 법적 권한과 거대한 법률 조직, 그리고 투자 유치를 명분으로 기술 발전과 공공재의 상품화를 정당화해 왔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술의 유료화는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급만이 첨단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독점하는 ‘기술적 소외’를 정착시킨다. 이는 지식과 생산 수단에 대한 접근 권한을 자산 규모에 따라 제한하여 사회적 격차를 구조적으로 고착화한다. 자본 기업이 아무리 ‘할인율 적용’이나 ‘구독 방식의 정당성’을 포장하더라도, 유료화 전략의 본질은 개인적 자본 수탈에서 사적 이윤 추구를 정당화하는 기제에 불과하다. 

 

따라서 개별적 수준에서 유료화 제약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공공재의 사적 점유에 동의해서는 안 되며 기술 발전에 따른 결실이 사회 전체에 분배될 수 있도록 구조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의 이점은 개인이 비싼 비용을 치르고 사서 쓰는 상품이 아니라, 만인이 누릴 수 있는 공공의 자유여야 한다. 이는 현대 예술계에서도 저작권을 둘러사고 벌어지는 법적·정치적 분쟁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기술 발전이 가속화될수록 사용자에 대한 기술적 제약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이를 독점하려는 자본에 맞서 공공재로부터 사적 이윤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사회적 통제와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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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증시의 하락세와 세계 자본 경제의 수축


최근 미국 뉴욕 증시의 하락세와 세계 자본 경제의 수축 현상은 단순한 금융 변동이나 계절적 악재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지닌 구조적 모순이 표출된 결과이다. 미 연준의 매파적 긴축과 국채 금리 급등, 고용 및 소비 지표의 둔화는 실물 생산 부문에서 이윤율이 하락한 상황을 드러낸다. 기술 혁신과 자동화 (IT·AI) 설비 투자로 인해 불변 자본 (c)의 비중이 가변 자본 (v)에 비해 크게 늘어나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상승이 진행되었으며, 잉여 가치의 유일한 원천인 노동의 비중을 축소시켜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을 촉진했다. 이러한 실물 이윤율의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형성되었던 가공 자본 (주식·부동산)의 거품은 고금리와 실질 구매력 약화라는 벽에 부딪히며 본격적인 평가절하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체제적 모순은 지정학적 충돌과 제국주의적 대립을 매개로 더욱 계급적 폭력으로 분출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과 이란 지정학적 위기는 석유 및 물류 등 필수 불변 자본 (c) 비용을 폭증시켜 기업의 이윤율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 레닌이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핵심 자원 수송로와 시장 독점을 둘러싼 국가 대립은 자본의 세계적 순환을 가로막는 병목을 형성하며,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중앙은행의 고금리 유지를 강제한다. 이는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침식하여 유효 수요 부족과 과잉 생산 위기를 심화시키는 한편, 증시 시장에서 가공 자본의 이탈을 가속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러한 뉴욕 증시의 하락은 ‘팍스 아메리카나 (Pax Americana)’로 대표되던 미국 지배권의 구조적 쇠퇴와 맞물려 진행된다. 제조업 기반을 해외로 이전하고 금융화 및 달러 지배력으로 유지해 온 미국 경제는, 실물 가치 창출의 한계 속에서 가공 자본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 이러한 우위성의 균열은 증시 상장사들의 통계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천문학적인 설비 투자 (c)를 집행했으나 단기적 잉여 가치 실현에 난관을 겪는 독점 기술 자본 (빅테크) 및 반도체 기업들이 급격한 평가절하을 겪고 있으며, 고금리로 신용 압박을 받는 소형주 지수 (러셀 2000)와 가계 부실 위험에 직면한 금융·소비재 업종이 큰 낙폭을 기록하는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를 보여주는 통계적 증거이다.

 

지표명

통계적 사실

노동 생산성과 임금의 격차

미국 정책연구소(EPI) 분석에 따르면, 1979년부터 최근까지 미국 노동자의 실질 생산성은 약 60% 이상 증가한 반면, 실질 시간당 임금은 약 15~18%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는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의 대부분을 자본가가 잉여 가치 (m)로 흡수했음을 증명한다.

총생산물 가치 내 노동 소득 분배율 하락

미국 노동통계청(BLS) 통계에 따르면, 미국 국민 소득 중 노동소득 점유율은 1970년대 약 64%에서 최근 56~57% 수준으로 구조적 하락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 부의 창출에서 가변 자본 (v)으로 돌아가는 몫이 크게 축소되었음을 의미한다.

착취율 (m/v)의 극대화

미국 제조업 및 비금융 기업 부문 전체의 임금 총액 대비 기업 이윤 및 자본소득의 비율인 착취율 (m/v)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노동자가 자기 생존에 필요한 시간 (필요 노동 시간)보다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시간 (잉여 노동 시간)의 비중이 역사상 최고 수준에 달해 있다.

   

증시 하락으로 대표되는 가공 자본의 파열은 실물 경제의 이윤율 하락을 증명함과 동시에, 자본가 계급이 이윤율 방어를 위해 노동자 계급에 가하는 수탈을 극대화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미국 경제분석국 (BEA)과 노동통계청 (BLS) 등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비금융 기업의 이윤율은 장기적인 하락 추세를 그리는 반면, 노동자의 실질 생산성 증가율에 비해 실질 임금 상승률은 턱없이 미달하여 노동 소득 점유율이 구조적으로 하락해 왔다. 이는 자본이 착취율 (m/v)을 극대화하여 이윤율 감소를 저지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 소득 감소와 신용 카드 및 자동차 대출 연체율의 급증은, 노동자 가계가 고금리 조건 속에서 신용 수탈과 파산 위기로 몰리고 있음을 입증한다.

 

미 연준 (Fed)의 고금리 및 긴축 정책은 부르주아 경제학이 주장하는 편파적인 ‘물가 안정 수단’이 아니라,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를 억압하고 자본의 이윤을 수호하기 위한 계급 투쟁의 도구이다. 연준이 목표로 하는 ‘노동 시장 과열 수습’의 본질은 마르크스가 명시한 ‘산업예비군’을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고금리를 동원하여 경기 후퇴를 유도하고 실업의 공포를 유포하여 노동자 계급의 저항력을 무력화하고 임금 상승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1980년대 초 폴 볼커 연준 의장이 20%에 다하는 극단적인 고금리로 10.8%의 실업률을 유발하며 노동조합을 해체하고 신자유주의 착취 체제의 문을 열었던 ‘볼커 쇼크’와 마찬가지로, 현재 제롬 파월 체제의 긴축 역시 이윤율 위기를 노동자의 희생으로 돌리려는 동일한 계급적 공격이다. 다만 오늘날의 노동자 계급은 노조 조직률의 추락과 높은 가계 부채로 인해 볼커 시대보다 훨씬 취약한 생존 조건에 놓여 있다.

 

나아가 최근 자동화 및 AI 기술에 대한 폭발적인 투자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c/v) 상승을 정례 없는 속도로 가속화하며 산업 예비군의 양상을 재편하고 있다. 독점 기술 자본 (빅테크) 자본이 자동화 생산 수단 등 불변 자본 (c) 투입을 급증시키는 반면 지식·사무 노동력 (v)을 축소함에 따라, 과거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전문 노동자들마저 유동적·잠재적·정체적 산업예비군으로 전락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대규모 예비군화는 재직 노동자에 대한 임금 억제와 노동 통제의 무기로 활용된다. 그러나 모든 자본가가 가변 자본을 줄이고 불변 자본 (AI)에 집중할수록, 노동자의 구매력 저하로 인한 과잉 생산 위기가 깊어지고 가치 창출의 원천이 축소되어 체제 전체의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은 더욱 심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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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 내 가부장적 구조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일부 부르주아 여성주의는 개혁적 의식 제고나 제도 개선 수준의 한계에 봉착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실존적·관념적 고찰의 한계와도 맞물려 있다. 특히 일부 여성 철학자나 성학자들의 추상적 인식 체계는 여성 대중의 동요를 혁명적 실천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오히려 체제 내적 미봉책에 의존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해석에 반대하여』류의 저작들이 추구하는 ‘전근대적’ 단상이나 모호한 어휘는, 세대 갈등을 전 사회적으로 확장하며 민주화 열망을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질서로 편입시키기려는 시도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정희진를 비롯한 일부 여성학자들의 담론 역시 실질적인 여성 해방과는 거리가 먼 비생산적 논의를 반복하며, 부르주아 계급 질서를 옹호하는 성격을 명확하게 띤다. 자본주의 체제 내 여성은 이미 심각하게 계급적으로 분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들 담론은 여성을 단순한 ‘소비의 주체’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며, 대다수 민중 여성의 지지를 받기보다는 소부르주아 중간 계급에 호소하는 신여성적 한계를 답습한다. 이는 남한 정부가 추진하는 성평등 정책의 ‘체제 내적 흡수’ 기조와도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은 이러한 비논리적 체계성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성’의 수용이나 부르주아 질서를 위한 ‘공권력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여성의 신변을 위협하고 불안을 자극하는 구조적 폭력을 방치·조장한다. 이에 가담하는 언론 역시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 ‘여성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거나 관념적·종교적 환각에 기댄 여성주의자들의 책략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대변하지 못하며, 이들을 자본주의 체제 내로 강제 편입시킬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여성이 겪는 추가적 지출 부담은 크게 (1) 필수 생필품 및 위생용품 비용, (2) 노동 시장 편입 및 고용 유지를 위해 강제되는 노동력 유지 비용, (3) 신변 안전 확보를 위한 주거 및 추가 비용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비용은 여성이 노동 시장에서 노동력을 판매하거나 생존·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구조적 지출이다. 결국 저임금·비정규직에 집중된 여성 노동자는 월 수입 대비 과도한 지출을 강요받으며, 이는 체제 내 계급 분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특히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취약한 지위에 내몰리는 이유는 단순한 소비 행위 때문이 아니라, 체제가 강제하는 ‘소비 형태와 구조’에 있다. 이는 단지 계급 격차라는 눈앞의 현상에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가 자연적 생산 및 가부장적 구조와 결합하여 여성의 생산 동력을 자본 축적에 지속적으로 동원하는 방식과 직결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구조적 폭력을 명확히 지적하는 한편,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생산하는 담론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사회주의적 노선의 우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여성의 계급적 단결은 필수적이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계급적 분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여성의 생산성을 독려하는 방식은 자본주의 생산 동력의 확장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이러한 부르주아적 공권력과 국가 기관에 대한 비판적 토론의 부재는 상류층 여성만을 위한 형식적 교육과 기회의 평등으로 귀결되며, 이는 계급적 차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폭력을 가중시킬 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내 여성 해방의 의의는 여성주의 담론이 양산하는 ‘타자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적 혁명 실천 속에서 노동자 여성이 주체성을 획득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이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부여된 가장 핵심적인 과제이다.

 

당의 실천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전면적 단결이자, 프롤레타리아 여성 해방을 향한 전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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