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상인 자본의 역사적 고찰
상업 자본과 화폐 거래 자본에 따라 화폐가 축적되는 특수한 형태는 차후 별도로 고찰될 것이다.
이미 전개된 논의로부터 명백해진 사실은, 상품 거래 자본이나 화폐 거래 자본의 형태를 띠는 상인 자본을 광업, 농업, 축산업, 제조업, 운수업 등과 같은 산업 자본의 한 종류로 간주하는 것만큼 부당한 것은 없다는 점이다. 언급된 분야들은 사회적 분업의 산물로 산업 자본이 투하되는 특수한 영역들이며, 그 자체로 산업 자본의 분과를 형성한다.
반면, 상인 자본은 생산 과정 외부에서 유통 영역의 특수한 기능을 담당하며 독립화된 자본 형태이다. 따라서 이를 산업 자본의 병렬적 구성 요소로 파악하는 것은 자본의 순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각 형태의 기능적 차이와 역사적 특수성을 간과하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산업 자본이 재생산 과정의 유통 국면에서 상품 자본 및 화폐 자본으로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상인 자본을 산업 자본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조잡한 견해는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오히려 상품 거래 자본과 화폐 거래 자본의 실체는 산업 자본의 생산적 형태와 유통적 형태 사이의 구별이 자립성을 회득한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곧, 산업 자본이 유통 영역에서 일시적으로 취하는 특수한 형태와 기능이 본체로부터 분리되어 유통 영역에 고착되면서, 자본의 특정 부분에 귀속된 독립적인 형태와 기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 자본의 유통적 전환 형태인 상인 자본과, 생산 분야의 소재적 성격에 따른 산업 자본 내의 부문별 구별 (광업, 농업, 제조업 등)은 근본적으로 층위를 달리하는 별개의 범주이다.
경제학자들이 통상적으로 형태의 구별을 경시하며 실천적 측면에만 천착한다는 점 외에도, 속류 경제학자들이 범하는 혼동에는 두 가지 결정적인 사유가 존재한다.
첫째, 그들은 상업 이윤의 본질과 그 특수성을 체계적으로 해명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토대 위에서 발생하는 상품 자본 및 화폐 자본, 그리고 나아가 상품 거래 자본과 화폐 거래 자본이라는 형태를 보편적인 생산 과정 자체에서 도출하려는 변호론적 의도 때문이다.
상업 자본 및 화폐 거래 자본과 곡물 재배업 사이의 구별이 곡물 재배와 축산업, 제조업 사이의 소재적 구별과 하등 다를 바 없다면, 생산 일반과 자본주의적 생산은 완전히 동일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축산업이 쇠고기 소비를, 제조업이 의류 소비를 매개하는 것이 항구적인 필연성을 갖듯,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 또한 상인과 은행가의 주도하에 영구히 매개되어야 한다는 논리적 귀결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혼동은 자본주의적 형태의 특수성을 영원불변한 자연적 현상으로 고착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스미스와 리카도 같은 고전파 경제학자들 또한 산업 자본을 자본의 기본 형태로 규정하고, 유통 자본 (화폐 자본과 상품 자본)을 자본 재생산 과정의 일시적 국면으로만 파악했기에 상인 자본의 독자적 성격에 대해서는 혼란을 겪었다. 산업 자본 분석을 토대로 도출된 가치 형성 및 이윤에 관한 명제들은 상인 자본에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상인 자본을 별도의 범주로 다루기보다 산업 자본의 특수한 일종으로만 간주하며 그 본질을 간과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리카도가 대외 무역론에서 시도했듯이 (CW 32: 70-72), 그들은 상인 자본을 구체적으로 다룰 때조차 그것이 어떠한 가치나 잉여 가치도 창출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대외 무역에 적용되는 이러한 논리는 국내 상업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타당하다.
지금까지 상인 자본에 대한 고찰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라는 구체적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상업과 상인 자본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보다 선행하며, 사실상 자본이 독립적 실체로 존재하게 된 가장 오래된 역사적 형태를 취한다.
화폐 거래업 및 이에 투하된 자본의 발달은 대규모 상업과 상품 거래 자본의 존재를 전제로 하므로, 본 논의에서는 상품 거래 자본에 집중하기로 한다.
상업 자본은 전적으로 유통 영역 내에 존재하며 그 기능 또한 상품 교환의 매개에 국한된다. 따라서 상업 자본은 원시적 물물 교환을 제외하면 상품 및 화폐의 단순 유통이라는 조건만으로도 성립한다. 곧, 단순 유통 그 자체가 상업 자본의 존립 기반이 된다. 유통되는 생산물이 어떠한 생산 양식 (원시 공동체, 노예제, 소농민 및 소부르주아적 생산, 자본주의적 생산)에 기반하든, 그 생산물의 상품적 성격은 변하지 않으며 유통 과정 및 그에 따른 형태 변화를 필연적으로 거치게 된다.
상업 자본을 매개로 하는 양단 (상품들)은 화폐 운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업 자본에 기여된 전제로 작용한다. 필수적인 조건은 이 양단이 상품으로 실재해야 한다는 점이며, 생산 체계가 전면적인 상품 생산인지 또는 자급자족 후의 잉여분 출하인지의 여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상업 자본은 단지 기여된 전제 조건으로의 상품 운동을 매개할 뿐이다.
생산물이 상업적 체계에 포섭되어 상인의 수중에 머무는 범위는 생산 양식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며, 그 범위는 생산물이 직접적 생활 수단이 아닌 오로지 상품으로만 생산되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하에서 최대치에 도달한다.
반면, 모든 생산 양식에서 상업은 교환에 투입될 잉여 생산물의 생산을 촉진하는데, 이는 생산물 소유자의 향락을 증대시키거나 화폐 축적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업은 생산활동에 점진적으로 교환 가치를 지향하는 생산이라는 성격을 부여한다. (CW 29: 233-234, 480-481)
상품의 형태 변화와 그 운동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
첫째, 소재적 측면에서 상품은 다른 상품들과 상호 교환된다.
둘째, 형태적 측면에서 상품은 화폐로 전환 (판매)되고, 다시 화폐는 상품으로 전환 (구매)된다.
상업 자본의 본질적 기능은 바로 이러한 판매와 구매를 수단으로 한 상품 교환의 매개로 수렴된다. 이때의 교환은 단순히 직접 생산자들 사이의 거래에 국한되지 않는다. 노예제, 농노제, 또는 아시아적 생산 양식 (아시아적 공동체)의 공납 관계에서 생산물의 소유자이자 판매자는 노예주, 봉건 영주, 또는 국가 (417쪽, ‘동양의 전제 군주’ 등)가 된다.
상인은 유통을 매개하는 주체로 상품 소유자들을 대리하여 대규모 매매를 수행하며, 이로부터 판매와 구매는 상인의 수중에 집중된다. 결과적으로 매매 행위는 구매자로 상인이 갖는 직접적인 필요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독립적인 유통 기능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상인이 매개하는 상품 교환의 사회적 조직 형태와 무관하게, 상인의 자산은 항시 화폐 자산의 형태로 존재하며 그 화폐는 자본으로 기능한다.
이 자본의 취하는 운동 형식은 언제나 M-C-M´이며, 교환 가치의 자립적 형태인 화폐가 출발점이자 증식 그 자체가 독자적 목적이 된다. 생산 과정에서 분리되어 비생산자를 거쳐 수행되는 상품 교환 및 그 매개 활동은 부의 일반적 사회적 형태인 교환 가치를 증대시키는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여기서 추진 동기와 규정적 목적은 화폐 M을 M+ΔM으로 전환하는 데 있으며, 이를 매개하는 M-C (구매)와 C-M´ (판매)은 M을 M´으로 변환시키기 위한 과도적 계기로만 나타난다. 따라서 상업 자본의 특징적 운동인 M-C-M´은 사용 가치의 교환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생산자 간의 상품 거래 형식인 C-M-C와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생산력이 저발달 상태에 머물수록 화폐 재산은 상인의 수중에 더욱 집중되며, 이는 상인 재산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형태로 드러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하에서 자본이 생산 과정 자체를 지배하고 생산에 전면적으로 변형된 특수한 형태를 부여하게 되면, 상업 자본은 단지 체계 내에서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분화된 자본으로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이전의 모든 생산 양식에서는 상업 자본이 자본의 기능을 가장 전형적으로 대표한다. 이러한 경향은 생산이 직접적인 생산자의 생활 수단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자급자족적 성격을 띨수록 더욱 뚜렷하게 발현된다.
따라서 자본이 생산 과정을 실질적으로 포섭하기 이전, 상업 자본이 자본의 선구적 역사 형태로 등장하는 현상은 필연적이다. 상업 자본의 존립과 일정 수준의 발달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성립을 위한 역사적 전제 조건으로 작용한다.
첫째, 상업 자본은 화폐 재산의 집적을 이루는 토대이다.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은 개별 수요자가 아닌 불특성 다수를 위한 대량 판매를 전제하며, 이에 따라 개인적 필요가 아닌 사회적 수요를 자신의 구매 행위로 집중시키는 상인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나아가 상업 자본의 팽창은 생산 활동에 교환 가치 창출이라는 성격을 점진적으로 부여하며, 생산물을 상품으로 전환시킨다. 다만 상업 자본의 발달 그 자체만으로는 특정 생산 양식에서 다른 생산 양식으로의 이행을 완결적으로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며, 이에 관한 구체적인 분석은 후술될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체계 내부에서 상업 자본은 이전의 독립적 지위에서 격하되어 자본 투하 일반의 특수한 계기로 포섭되며, 이윤율의 균등화 과정에서 그 이윤율 또한 일반적 평균 수준으로 수렴한다. 이 단계에서 상업 자본은 생산 자본인 산업 자본의 보조적 대리인으로 기능하는 데 머문다.
따라서 상업 자본의 발달과 함께 형성되었던 특수한 사회적 지배력은 더 이상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며, 오히려 상업 자본이 여전히 우세를 점하는 지역은 전근대적이고 낙후된 사회 상태가 지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일국 내에서도 명확히 드러나는데, 예컨대 순수 상업 도시는 공업 도시에 비해 이전의 경제적 구조와 훨씬 더 비슷하다.
자본이 상업 자본의 형태로 독립적·우세하게 발달한다는 것은 생산 과정이 아직 자본에 포섭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이는 자본과 무관한 사회적 생산 형태 위에서 자본이 발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상업 자본의 독립적 발달 정도는 사회의 일반적인 경제적 발전 수준과 반비례 관계를 형성한다.
독립적인 상업적 부가 자본의 지배적 형태로 군림할 때, 유통 과정은 교환의 주체인 생산자들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독립성을 획득한다. 이때 생산물은 상업이라는 매개를 거치면서 비로소 상품으로 전환되며, 상품의 운동이 상업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업이 생산물을 상품으로 규정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자본은 유통 과정 내에서 비로소 자본으로 등장하며, 화폐가 자본으로 발전하고 생산물이 교환 가치와 상품, 화폐로 전회하는 공간 역시 유통 영역에 국한된다. 자본은 유통을 매개로 다양한 생산 분야를 직접 지배하기 이전에, 유통 과정 내에서 먼저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화폐 및 상품 유통은 여전히 사용 가치 생산에 치중하는 다양한 조직의 생산 영역들을 매개할 수 있다. 이처럼 유통 과정이 독립성을 유지하며 제3자를 매개로 생산 영역들이 연결되는 현상은 두 가지 사실을 증명한다.
첫째, 유통이 생산을 지배하지 못한 채 생산을 기여된 전제로만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생산 과정이 아직 유통을 자신의 유기적 요소로 흡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하에서는 양태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생산 과정은 전적으로 유통에 기반하며, 유통은 생산의 단순한 계기이자 통과 국면으로 전락한다. 곧, 유통은 상품으로 생산된 생산물의 가치 실현과, 마찬가지로 상품으로 확보되는 생산 요소들의 보충 과정에 불과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유통에서 직접 발생했던 자본 형태인 상업 자본은 이제 전체 재생산 운동 과정 속에서 순환하는 자본의 특수한 형태 중 하나로 포섭된다. (CW 33: 14-15)
상업 자본의 독립적 발달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 수준과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법칙은 베네치아, 제노바, 네덜란드 등이 수행한 중개 무역의 역사에서 극명하게 입증된다. 이들 국가가 점유한 거대한 이윤은 자국 생산물의 수출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미발달한 공동체들 사이의 생산물 교환을 매개하며 양측 생산국을 동시에 수탈하면서 획득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업 자본이 매개 대상인 양단의 생산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외재하는, 상업 자본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목격하게 된다.
중개 무역은 상업 자본 형성의 중추적 원천 중 하나이나, 이러한 독점적 지배력은 수탈 대상이었던 국민들의 경제적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쇠퇴한다. 중개 무역의 기반인 타국의 미발달 상태가 해소됨에 따라, 중개 무역의 쇠퇴는 단순히 특정 상업 분야의 위축만이 아니라, 순수 상업 국민의 지배력 상실과 그들의 상업적 부 일반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점진적 발전에 따라 상업 자본이 산업 자본에 종속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특수한 형태에 불과하다. 한편, 상업 자본이 생산을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국면에서 나타나는 활동 양식과 형태에 관해서는 식민지 무역 일반 (이른바 식민 제도), 특히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운영 방식이 전형적인 실례를 제공한다.
상업 자본의 운동 형식은 M-C-M´이므로, 상인의 이윤은 우선적으로 유통 과정 내부의 행위인 구매와 판매를 거쳐 획득되며, 최종 행위인 판매 단계에서 실현된다. 따라서 상인의 이윤은 전형적인 ‘양도 이윤’의 성격을 띤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생산물이 그 가치대로 판매되는 등가 교환의 원칙이 지켜지는 한, 순수하고 독립적인 상업 이윤의 존립은 언뜻 성립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상업의 원칙은 근본적으로 등가물 간의 교환을 부정한다. 이 과정에서 가치 개념이 개입되는 지점은 오직 모든 상품이 가치이자 화폐로, 질적으로 사회적 노동을 체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국한된다. 그러나 개별 상품의 가치량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물 간의 양적 교환 비율은 초기에는 전적으로 우연적이다. 생산물이 상품의 형태를 획득하는 근거는 그것이 교환된다는 점, 곧 공통된 제3의 요소인 가치를 표현한다는 점에 있다. 지속적인 교환과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규칙적인 재생산은 이러한 초기 우연성을 점차 제거해 나간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소거되는 이득은 우선적으로 생산자나 소비자가 아닌 매개자인 상인에게 귀속된다. 상인은 화폐 가격을 비교하고 그 차액을 취득하는 독자적인 운동을 거쳐, 파편화된 교환들 사이에서 실질적인 등가 관계를 확립하는 주체로 기능한다.
초기 단계의 상업 자본은 자신이 직접 지배하지 않는 양 끝단 사이에서, 그리고 자신이 창출하지 않은 전제 조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매개 운동에 불과하다.
단순 상품 유통 형태인 C-M-C에서 화폐가 가치 척도와 유통 수단만이 아니라 상품 및 부의 절대적 형태인 퇴장 화폐로 고착되고, 그 결과 화폐의 유지와 증식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업 자본의 유통 형태인 M-C-M´에서 화폐와 퇴장 화폐는 단순한 양도 행위로부터 유지되고 증식되는 자본으로 발달한다. 곧, 생산 과정과 무관하게 유통 영역 내에서의 가치 증식이 상업 자본의 본질적 운동 법칙으로 확립되는 것이다. (CW 33: 9-10)
고대의 상업 민족들은 세계들 사이의 틈새에 존재하는 에피쿠로스의 신들처럼, 또는 폴란드 사회의 균열 지점에 거주하던 유태인들처럼 외부적 존재로 존립하였다. 초기 독립을 구가하며 고도의 번영을 누린 상업 도시와 상업 민족들의 교환 활동은 순수한 중개 무역의 형태를 띠었으며, 이는 그들이 매개한 생산 민족들의 경제적 미발달 상태를 물적 토대로 삼고 있다.
자본주의 이전의 역사적 단계들에서는 상업이 산업을 압도하며 지배력을 행사하였으나, 근대 사회에 이르러서는 그 주도권이 역전된다. 공동체 간의 상업 활동은 필연적으로 해당 공동체 내부 구조에 일정 수준 이상의 반작용을 미친다. 상업은 향락과 생활 유지의 수단이 생산물의 직접적인 소비보다 판매 행위에 의존하게 하면서, 생산 과정을 교환 가치 창출에 점진적으로 종속시킨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업은 기존의 낡은 사회적 관계를 해체하고 화폐 유통을 촉진한다. 이제 상업은 단순히 생산의 잉여분만을 장악하는 데 머물지 않고, 생산 과정 자체에 침투하여 생산 분야 전반을 상업 자본에 의존적인 상태로 재편한다. 다만, 이러한 상업의 분해 작용이 초래하는 구체적인 결과는 생산을 수행하는 공동체 고유의 성격과 그 내부 조직의 견고함에 따라 결정된다. (CW 33: 20)
상업 자본이 저개발 공동체 간의 생산물 교환을 매개하는 국면에서, 상업 이윤은 기만과 사취의 형태를 띨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그로부터 발생한다. 상업 자본은 각국의 생산 가격 차액을 취득하면서 상품 가치의 균등화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미발달한 생산 양식하에서는 잉여 생산물의 대부분을 독점적으로 취득한다. 이는,
첫째, 해당 공동체의 생산이 여전히 사용 가치 창출에 집중되어 있어 생산물의 가치에 입각한 판매가 부차적 사안에 머무는 상황에서 상업 자본이 유통 독점권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둘째, 상인이 주요 거래 대상인 노예주, 봉건 영주, 전제 국가 (예: 동양의 전제 군주)와 같은 향락적 부의 소유자들을 기망하여 그들의 자산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업 자본은 지배적 위치를 점하는 곳마다 약탈 제도를 대변하게 된다. 실제로 상업 자본의 발달사는 고대와 근대를 막론하고 폭력적 약탈, 해적 행위, 노예 납치 및 인신 매매, 식민 정복 등과 결부되어 있다. 예컨대 카르타고와 로마를 비롯하여 베네치아,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역사적 사례는 이러한 상업 자본의 약탈적 본질을 명확히 입증한다.
상업 및 상업 자본의 발달은 예외 없이 교환 가치 지향적 생산을 촉진하며, 그 범위를 확장·다양화하면서 생산에 세계적 성격을 부여하고 화폐를 세계 화폐로 진화시킨다. 이에 따라 상업은 사용 가치 생산에 치중하던 기존의 다양한 생산 조직을 해체하는 작용을 수행한다. 그러나 상업이 기존의 생산 양식을 해체하는 심도와 범위는 우선적으로 해당 생산 양식 고유의 견고성과 내부 구조에 규정된다. 또한, 해체 과정의 결과물로 어떠한 새로운 생산 양식이 등장하는가 하는 문제 역시 상업 자본의 역랑이 아니라, 해체되는 기존 생산 양식의 역사적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일례로 고대 세계에서 상업의 팽창과 상업 자본의 발달은 항시 노예 경제를 귀결시켰으며, 때로는 가부장적 노예제를 잉여 가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노예제로 변모시키기도 하였다. 반면, 근대 세계에서 상업 자본의 발달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역사적 결과는 상업 자본의 발달 정도와는 구별되는 별개의 사회 경제적 조건들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다.
공업이 농업으로부터 분리되어 진정한 도시적 생산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 그 생산물은 태생적으로 상품의 성격을 띠며 따라서 그 유통과 판매는 필연적으로 상업의 매개를 요구한다. 상업이 도시의 발달에 기반하고, 도시의 존립 또한 상업의 기능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산업적 발전이 상업적 팽창과 반드시 병행되는가 하는 문제는 역사적 조건에 따라 양상을 달리한다.
가령 고대 로마 공화정 후기에는 상업 자본이 유례없이 고도로 발달했음에도 수공업적 토대는 정체되어 있었던 반면, 코린트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들에서는 상업의 진흥이 숙련된 수공업의 발달을 직접적으로 견인하였다. 또한 상업 정신과 상업 자본의 발흥은 반드시 도시화의 산물이거나 그 전제 조건인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정착 생활을 하지 않는 유목 민족의 경제 구조 내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하는 특수한 사례도 빈번히 확인된다.
16세기와 17세기 지리상의 팽창 (신항로 개척 등) 병행하여 발생한 상업의 대혁명이 상업 자본의 비약적 발전을 추동하고, 봉건적 생산 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으로의 이행을 가속화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자본주의 성립에 관한 일정한 오류와 왜곡된 견해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세계 시장의 급격한 팽창, 유통 상품량의 비약적 증대, 아시아의 산물과 아메리카의 귀금속을 선점하려는 유럽 열강 간의 각축, 그리고 식민 제도 등은 기존 생산 체계를 구속하던 봉건적 굴레를 타파하는 데 근본적으로 기여하였다.
근대적 생산 양식의 초기 단계인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은 그 성립을 위한 제반 조건이 이미 중세에 형성된 지역에서만 발달하였다. 이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의 역사적 대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단행된 상업의 급격한 팽창과 세계 시장의 창출이 낡은 생산 양식의 몰락과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상업적 성취는 기만적으로 이미 존재하던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토대 위에서 달성된 것이다.
(물론) 세계 시장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존립 기초를 형성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산 규모를 부단히 확장하려는 이 생산 양식의 내재적 필연성은 세계 시장의 지속적인 확대를 강요한다. 결과적으로 상업이 산업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이 상업을 끊임없이 재편하고 변혁하게 된다. 나아가 상업적 패권 또한 이제는 대공업을 수행할 수 있는 물적 조건의 우열에 따라 결정되기에 이른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사례 비교는 상업 자본이 산업 자본에 종속되어 가는 과정을 극명히 보여준다. 지배적 상업국이었던 네덜란드의 몰락사는 곧 상업 자본의 위상이 산업 자본에 밀려나는 역사와 일치한다. 한편, 전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닌 내부적 견고함과 조직력이 상업의 분해 작용에 대항하여 구축한 장벽은 인도와 중국에 대한 영국의 무역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 구조는 소규모 농업과 가내 공업의 결합이라는 폭넓은 기초 위에 형성되어 있으며, 인도에서는 토지의 공동 소유에 기반한 촌락 공동체 형식이 그 견고함을 더했다. 영국은 지배자이자 지대 취득자로 직접적인 정치·경제적 권력을 동원하여 이러한 소규모 경제 공동체를 분쇄하고자 기도하였다.
영국의 상업이 인도의 생산 양식에 혁명적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저렴한 영국산 면제품을 앞세워 농공 결합의 핵심축이었던 전통 방적업과 직포업을 파멸시키면서 공동체의 물적 토대를 해체시킨 지점에 국한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공동체의 해체 과정은 지극히 점진적으로만 진행되었다.
그런데 직접적 정치 권력의 뒷받침이 부재했던 중국에서는 상업에 따른 분해 작용이 더욱 미미하게 나타났다. 농업과 가공업의 직접적 결합에서 달성된 시간의 효율적 운용과 비용 절약은 대공업 생산물에 대해 매우 완강한 저항력을 발휘하였다. 대공업 제품의 가격에는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부대 비용이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의 상업 활동과 대조적으로 러시아의 상업은 아시아적 생산 양식의 경제적 기초에 하등의 변화도 주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봉건적 생산 양식으로부터의 이행은 서로 다른 두 가지 경로를 따라 전개된다.
첫 번째 경로는 생산자가 직접 상인 겸 자본가로 변모하여 농촌의 자연 경제 및 중세 도시의 길드 체제에 예속된 수공업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존의 생산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참으로 혁명적인 길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경로는 상인이 유통 영역만이 아니라, 생산 과정 자체를 직접 장악하는 방식이다. 이 경로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디딤돌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으나 (예컨대 17세기 영국 직물 상인이 독립적이었던 직포공들을 포섭하여 원료를 공급하고 제품을 독점 구매한 사례), 그 자체만으로는 낡은 생산 양식을 전면적으로 타도하지 못한다. 오히려 낡은 생산 양식을 자신의 존립 전제로 삼아 보존하고 유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례로 19세기 중엽까지 프랑스의 비단 공업이나 영국의 양말·레이스 공업 제조업자들은 명목상 제조자에 불과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상인의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들은 직포공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분산 작업 방식을 지속하게 하면서, 오직 상업적 매개로만 생산자들을 통제하고 수탈하는 데 그쳤다.
직포공들은 실질적으로 상인을 위해 노동하는 종속적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이행 방식은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으로의 발전을 저해하며, 결과적으로 자본주의가 고도화됨에 따라 점차 소멸한다. 이 방식은 생산 양식의 근본적인 변혁을 수반하지 않은 채 직접적 생산자들의 처지만을 악화시킬 뿐이다.
이들은 자본에 직접 포섭된 노동자들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 속에서 단순 임금 노동자이자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며, 그들의 잉여 노동은 낡은 생산 양식의 토대 위에서 고스란히 상인에게 수탈당한다. 형태는 다소 변형되었으나, 부분적으로 수공업 방식이 잔존하는 런던의 가구 제조업에서도 이와 동일한 착취 관계가 확인된다.
이러한 현상은 런던 동부의 타워 함레츠 지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가구 생산 공정 전반이 매우 세분화되어 있어, 특정 기업은 의자만을, 다른 기업은 식탁이나 옷장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식이다. 이들 기업은 대개 한 명의 장인과 소수의 직인으로 구성되어 수공업적으로 운영되나, 그 생산 규모는 개별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기에는 너무 비대하다.
실질적인 구매자는 가구점의 소유주들이다. 장인은 매주 토요일 가구점들을 돌며 자신의 생산물을 판매하는데, 이때의 가격 협상은 전당포에서 물품을 담보로 대출금을 흥정하는 것과 흡사한 양상을 띤다. 장인들은 다음 주의 원료 구입과 임금 지불을 위해 당장 화폐를 확보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러한 판매의 강제성은 상인의 수탈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러한 구조하에서 장인은 실질적으로 상인과 노동자 사이를 매개하는 중간자에 불과하며, 잉여 가치의 대부분을 독점하는 상인이 진정한 의미의 자본가로 군림한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이전에 수공업이나 농촌의 부업 형태로 영위되던 분야들이 공장제 수공업 (매뉴책처)로 이행하는 과정 전반에서 나타난다.
대공업으로의 이행은 소규모 소유자 경영 업체의 기술적 발전 수준에 규정되는데, 특히 수공업적 공정에 기계를 도입하기 시작한 지점에서 가속화된다. 최근 영국의 양말 제조업 사례에서 보이듯, 기계의 동력이 인력에서 증기로 전환되는 과정은 이러한 기술적 변혁의 핵심을 이룬다.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크게 세 가지 경로를 취한다.
첫째, 상인이 직접 산업가로 변모하는 형태다. 이는 상업적 기반 위에 공업이 성립하는 경우로, 특히 상인이 원료와 노동력 모두를 외부에서 확보하는 사치품 공업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15세기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에서 이탈리아로 도입된 사치품 공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 상인이 소규모 수공업자 (장인)를 중개자로 삼거나 독립적 생산자로부터 직접 상품을 매입하는 형태다. 이 과정에서 상인은 생산자의 명목상 독립성을 보장하고 기존의 생산 방식을 보존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유통 영역에서 그들을 예속시킨다.
셋째, 산업가가 스스로 상인의 기능을 겸하며 시장을 겨냥해 직접 대규모 생산을 전개하는 형태다.
중세의 상인은 폽페 (1807: 70)가 지적한 바와 같이, 길드나 농민이 생산한 상품을 단순히 운송하고 ‘매개하는’ 주체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행기를 거치며 상인은 직접 산업가로 변모하거나, 최소한 수공업자와 농촌 소생산자들을 자신의 장악하에 두어 노동하게 하는 지배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자 자체가 상인으로 진화한다. 이전에 직포 장인이 상인으로부터 소량의 양모를 공급받아 단순 가공을 수행하던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 원료인 양모나 면사를 구매하고 완성된 직물을 상업 영역에 유통시킨다. 이 단계에서 생산 요소들은 생산자가 직접 구매한 상품으로 생산 과정에 투입된다.
결과적으로 직포 장인은 더 이상 특정 개인이나 한정된 고객을 위해 생산하지 않고, 상업 세계 전체를 교환 대상으로 삼아 생산을 전개한다. 생산자 자신이 상인의 기능을 체화함에 따라, 독립적이었던 상업 자본은 이제 생산 과정에 부속된 유통 영역만을 담당할 뿐이다.
초기 단계에서 상업은 길드 공업, 농촌 가내 공업, 봉건적 농업을 자본주의적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상업은 생산물을 위한 시장을 창출하고 새로운 상품 등가물을 도입하며,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와 보조 재료를 공급하면서 생산물을 상품의 단계로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국내외 시장을 겨냥할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의 자원에 기반을 둔 새로운 생산 분야들이 개척되었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이 일정 수준 강화되고 대공업 단계에 이르면, 제조업은 스스로 생산한 상품으로 시장을 정복하며 자생적인 시장을 창출하기에 이른다. 이 시점부터 상업은 산업 생산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며, 시장의 지속적인 확장은 산업 생산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는 대량 생산은 기존 시장의 수용력을 초과하며 끊임없이 그 장벽을 돌파하고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이때 대량 생산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은 현재의 수요만을 대변하는 상업이 아니라, 가동되는 자본의 규모와 노동 생산력의 발전 정도다.
산업 자본가는 상시로 세계 시장과 대면하며, 자신의 생산 비용을 국내 시장 가격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시장 가격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된다. 이전에 이러한 비교 분석이 전적으로 상인의 고유 업무였기에 상업 자본이 산업 자본에 대해 우월적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나, 대공업의 발달은 이러한 역학 관계를 근본적으로 역전시킨다. (CW 32: 465-466)
근대적 생산 양식에 관한 최초의 이론적 연구인 중상주의는 필연적으로 상업 자본의 운동 내에서 자립화된 유통 과정의 피상적 현상들에 매몰되었으며, 그 결과 현상의 외면만을 파악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한계는 선차적으로 상업 자본이 자본 일반의 역사적 형태 중 최초로 독립성을 확보한 존재였다는 점, 후차적으로는 봉건적 생산의 변혁기와 근대적 생산의 태동기에 상업 자본이 행사한 압도적인 영향력에서 기인한다.
근대 경제학이 진정한 과학적 토대를 구축하기 시작한 시점은 이론적 고찰의 중심축이 유통 과정에서 생산 과정으로 이전될 때 비로소 도래한다. 한편, 이자 낳는 자본 역시 상업 자본만큼이나 오래된 자본의 형태임에도, 중상주의가 왜 이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공격적인 태도를 견지했는가에 대해서는 후술될 논의에서 명확히 밝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