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를 빌려 덧붙이고 싶은 말이 생겼다. MBC와 더 이상 시청 거래를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이다. 사내 폭력로 인해 고인이 된 오요안나님의 사건을 충분히 공론화하지 않았다. 


여타 방송국의 대부분도 그 당시에 정말로 소극적으로 일관했다.   


청년 노동자들도 극단적인 사내 폭력이나 산재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당시 여론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단호하게 요구했었다.


이로 인해 가끔 디지털 대신 신문을 다시 읽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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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밀실

 

화물 안에 놓인 칸막이 속에 여기 사람 하나 누워 있다.

말을 잃은 사람들의 찰나에도 혈관이라는 줄기가 펴고 있다.

땀이 모여 빛의 장관을 이루지만밀실의 세상에는,

한 어머니는 택배원 아들을 잃었다.

 

굳건하게 자라날 이들은 가벼운 수풀 사이처럼 스치고,

뜬 눈으로 눈을 감는다.

 

남을 대신할 사람을 찾으며 숫자에 눈이 먼 광인들은

선봉을 잃으며 애틋하게 빈 자리를 채운다.

우리는 죽은 노동자산 자들의 세상에는 우리가 없다.

우리는 배운 것이 없는 사람똑똑한 자들에게도 우리가 없다.

 

두 눈에 철심이 박힌 노동자가 까막눈이 될 때조차,

상식은 노동자를 버렸다저기, 제 앞가림만 밝히는 양복쟁이들은,

비천한 것을 잃으며, 자신의 상식을 떠든다. 

 

굳건해야만 하는 것이다.

힘든 시련을, 모진 인내를, 그리고 고된 땀을 붉은 피로 채우려면,

더욱 강인해져야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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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노동'


부유한 여성이 젠더를 운운할 때면가난한 여성은 자신의 섹스에 대해 고민한다. '좋았어'라는 말만큼 가장 곤란한 말도 없다이들이 자신에 대해 당당하게 노동자로 밝히는 일은 드물다아마도 성과 노동은 젠더로 매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그리고 남성과는 달리 가난한 여성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글을 쓰는 일 또한 극히 드물다부유한 여성들은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여성들을 포용하며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지만가난한 여성들은 그러할 힘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는 부실한 생계를 겨우 유지하며 제 자리를 지켜낼 뿐이다.

 

동성애자들이 무지개를 밝히며 다양성의 권리를 말할 때에도가난한 여성은 평생을 고민해 온 자신의 신체 그 자체를 부정하며 외형을 고쳐야 한다는 강박에 다시금 사로잡힌다여성들은 서로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노동자 여성에게 ‘자신을 꾸미는 일조차 여전히 억압이다이들에게 가해지는 피상적인 위로가 오히려 이들을 더욱 소외시킨다자신에 대해그리고 하물며 노동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여성은 전체 중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부르주아 여성의 서사를 성실히 뒤따르며 자리매김하는 동안에도일터의 여성들은 일부 남성들의 부당한 대우와 언행을 견디며 사회적 모욕을 감수하거나같은 여성 사이의 계급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암묵적으로 겪게 된다그러나 일터의 여성들은 자신의 부당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그것은 부유한 여성처럼 이 세계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어서가 아니라그러한 오만 자체에 대응할 여력조차 없기 때문이다여성들은 누구보다 가장 성실하게 일하며 또한 자본 노동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을 수 있지만그러나 그 대가로 자신을 돌볼 시간마저 빼앗긴다부유한 여성들에 비하면 가난한 여성들은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지 못한 채 침묵하는 것이것이 여성의 주관성에 부여된 가장 악명 높은 굴레가 된다온갖 이론으로 무장한 성적 담론들이 일터에서조차 소외된 그녀들에 대해 오히려 옥죄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은 동등한 성적 권리를 말하면서도 그 대우가 노동자에게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당신들은 가장 우월한 위치에 도취해 상대를 비하할 자격을 갖지만그 누구도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려난다그저 자신의 경제적 위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방식만으로 스스로를 드높이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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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여전히 소외된 노동의 현주소


올해는 조금 특별한 날이다. 국가가 51일을 근로자의 날대신 노동절로 공식 명칭을 공표하였기 때문이다. 그간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체적 존재가 아닌, 단순히 성실히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근로자라는 명칭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가두어 왔다. 이번 명칭의 개정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비로소 자신을 노동자부를 수 있는 정당한 명분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이처럼 자신의 정체성조차 국가와 법의 허락을 얻어야만 겨우 인정받을 수 있는 현실은, 노동자의 처우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자라는 본성을 지니는 순간, 가족의 안위는 물론 자신의 생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민주노총에서 활약했던 철도 노조원 출신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음에도, 노동절을 하루 앞두고 현장 노동자들에게 책임 의식만을 강조하고 나섰다. 화물 연대를 비롯한 전국 단위 노조들이 노동권 증진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를 귀족 노조좌파적 요구라는 형식에 가두며 이제는 정부가 노동자를 책망하고 있다.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정부가 노동절 전날 공공연하게 노조를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교섭 과정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매일 노동 신문등의 보도에 따르면 사측 기업 대부분이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고 있음에도, 노동자 연대는 이러한 본질적 문제 전반을 강력히 제기하지 못한 채 정부의 입장에 끌려다니며 간접적으로 대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더욱이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자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거듭 강조하지만, 이는 이미 부유한 정부의 입장에 순응하라는 통합형 요구이자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한하려는 굴레에 불과하다. 그사이 언론의 외면 속에서 화물 노동자들은 불의의 사고로 산재를 당했다. 정부와 노동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며 침묵을 지켰다.

 

국민들의 개혁 기대감은 높지만, 그 자신의 실적과 지지율의 성과를 의식하며 내뱉는 정부의 친절한발언들은 노동자를 하대하는 태도와 맞물려 모순을 빚고 있다. 이는 투쟁하는 노동자를 회유하기 위해 벌이는 기업의 인질극과 닮아 있다. 성과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할 때에도 논쟁에서 중요한 점은 노동자가 정당한 몫의 임금을 요구하는 것임에도, 정부는 노동자의 처절한 현실 대신 겉으로 보이는 ‘그 사회의 정상성에만 표면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생존에 위협받는 이들을 더 위험한 노동으로 내몰면서, 정작 복지를 수혜받는 사람들의 투정으로 치부한다. 사법 시험 합격과 출세주의를 훈장처럼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노동자의 정치적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만의 우월한 오만에 대한 발로일 뿐이다. 그리고 그 자신들도 근로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번 정부의 발언은 여전히 노동자와 선을 긋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비약적인 자본의 축적과 주식 시장의 활황 속에서도 산재 노동자와 현장 노동자들은 스스로 정당한 몫을 요구하지 못한 채, ‘좌파적 요구라는 제약 속에 갇혀 있다. 오늘 전태일 열사 동상을 자발적으로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반인들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전태일의 헌신을 잊지 않겠다던 그 청렴한정부가 이제는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는 불손한정부라는 실체를 숨기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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