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유통 수단과 자본. 투크와 풀라턴의 견해
투크와 윌슨 등이 제시하는 통화와 자본의 구별은 화폐적 유통 수단, 일반적 화폐 자본, 그리고 이자 낳는 자본의 유통 수단 사이의 기능을 혼동한 결과이며, 이는 결국 다음과 같은 논리로 귀착된다.
한편으로 유통 수단은 수입의 지출, 곧 개별 소비자와 소매상 사이의 거래을 매개하는 한 주화 (화폐)로 유통된다. 이 소매상 범주에는 생산적 소비자나 생산자와 구별되는 개인적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모든 상인이 포함된다. 여기서 화폐는 끊임없이 자본을 보전하는 역할을 수행함에도 주화의 기능으로 유통되며, 일국의 화폐량 중 일정 부분은 비록 개별 통화들은 교체될지언정 항상 이 기능에 점유된다.
다른 한편으로 화폐가 구매 수단 또는 지불 수단으로 자본의 이전을 매개하는 한, 이 화폐는 자본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화폐를 주화와 구별 짓는 결정적 요인은 구매 수단이나 지불 수단이라는 기능적 측면이 아니다. 상인 간의 현금 거래에서도 화폐는 구매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상인과 소비자 사이의 신용 거래에서도 수입의 선소비 후지불이 이루어지는 한 화폐는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본질적인 차이는 자본 이전의 국면에서 이 화폐가 판매자에게는 자본을 보전해 줄 뿐만 아니라, 구매자 측면에서도 자본으로 지출 및 투하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구별은 통화와 자본 사이의 구별이 아니라, ‘수입의 화폐 형태’와 ‘자본의 화폐 형태’ 사이의 구별이다. 일정량의 화폐는 상인과 소비자 간 거래와 상인 상호 간 거래 모두에서 유통되므로, 두 영역 모두에서 동일하게 통화로의 성격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크의 견해는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 혼란을 야기한다.
첫째, 화폐의 기능적 특성을 혼동한다.
둘째, 두 가지 상이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며 유통되는 화폐 총량의 문제를 부적절하게 도입한다.
셋째, 재생산 과정의 각 국면에서 상이한 기능을 수행하며 유통되는 유통 수단량의 상대적 비율 문제를 설정하면서 논리적 왜곡을 초래한다.
(1) 화폐를 한 국면에서는 통화 (유통 수단)로, 다른 국면에서는 자본으로 규정하는 견해는 화폐의 기능적 특성을 오인한 결과이다. 화폐가 수입의 실현을 위해 사용되든 자본의 이전을 위해 사용되든, 매매나 지불의 과정에서 구매 수단 또는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는 한 넓은 의미에서 유통 수단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지출자나 수취인의 계정에서 해당 화폐가 자본을 표상하는지 또는 수입을 표상하는지 여부와 같은 구체적 성격은 이러한 기능적 규정성을 변경시키지 못하며, 이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증명된다.
수입 지출 영역과 자본 이전 영역에서 유통되는 화폐의 종류가 외견상 다를지라도, 동일한 화폐 단위는 영역 간을 이동하며 두 기능을 차례로 수행한다. 소매상은 구매자로부터 수취하는 주화의 형태로만 자신의 자본에 화폐 형태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매업 전반에 걸쳐 보조 주화의 유통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나, 소매상은 가치 척도인 금화나 소액 은행권 또한 수취한다. 이들은 매일 또는 매주 단위로 은행에 예금되어 소매상의 구매 결제를 위한 수표의 근거가 된다. 동시에 이 동일한 화폐들은 일반 대중의 수입 화폐 형태로 은행에서 인출되어 다시 소매상에게 환류하며, 그 과정에서 소매상의 자본 가치와 잉여 가치를 동시에 실현한다.
여기서 투크가 간과한 결정적 사실은 상품이 자본 가치뿐만 아니라 잉여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생산 과정의 시점 (제Ⅱ권 제1편)에서 투하되는 화폐 자본만이 순수한 자본 가치로 존재할 뿐, 생산된 상품은 이미 가치 증식된 자본이자 수입 원천이 결합된 상태이다. 따라서 소매상이 환류하는 화폐와 교환하여 내놓는 상품은 그에게 있어 ‘자본+이윤’이자 ‘자본+수입’의 결합체이다. 결국 유통하는 화폐는 소매상에게 환류하면서 그의 자본이 가졌던 화폐 형태를 회수시켜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수입의 실현을 위한 유통과 자본의 이전을 위한 유통 사이의 차이를 ‘통화 (유통 수단)’와 자본 자체의 구별로 치환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투크가 이러한 왜곡된 표현 방식을 취하게 된 배경에는 은행권 발행 주체인 은행업자의 관점이 내재되어 있다.
인민들 사이에서 유통 수단으로 기능하며 항상 수중에 머무는 은행권 총량은, 비록 개별 은행권의 실체는 끊임없이 교체될지라도 은행업자에게는 종이와 인쇄 비용 외에 어떠한 실질적 비용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은행권은 본질적으로 은행업자 자신을 수취인으로 하여 발행된 유통성 채무 증서 (환어음)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그에게 화폐를 유입시켜 자본을 증식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결국 은행업자의 관점에서는 통화와 자본을 구분할 실무적 필요성이 제기되나, 이러한 구별은 화폐나 자본의 본질적 개념 규정과는 무관하며 투크가 내세우는 이론적 범주와도 논리적 정합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 구별은 오직 은행 경영상의 관점에서 파생된 특수한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화폐가 수입의 화폐 형태로 기능하는지 또는 자본의 화폐 형태로 기능하는지의 여부는 유통 수단으로 화폐가 갖는 본질적 성격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화폐는 어느 국면에서나 유통 수단으로의 속성을 견지한다. 다만 수입의 화폐 형태로 기능할 때는 판매와 구매의 분리가 빈번하고, 수입 지출자의 대다수인 노동자가 신용 거래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는 특성상 진정한 의미의 유통 수단 (주화 및 구매 수단)으로 작용하는 비중이 높을 뿐이다.
반면, 자본의 화폐 형태가 주를 이루는 사업적 거래에서는 거래의 집중과 신용 제도의 발달로 인해 화폐는 주로 지불 수단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지불 수단과 구매 수단 (유통 수단) 사이의 차이는 화폐 자체의 기능적 분화일 뿐, 화폐와 자본 사이의 본질적 구별은 아니다. 이는 소매업에서 동전과 은화가, 도매업에서 금화가 주로 유통된다고 하여 금속 종류에 따른 구분을 통화와 자본의 구별로 치환할 수 없는 것과 같다.
(2) 화폐가 구매 수단 또는 지불 수단 중 어떠한 형태로 유통되든, 또한 그 기능이 수입을 실현하는지 자본을 실현하는지에 관계없이 유통 화폐량에 관한 법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는 단순 상품 유통의 분석에서 도출된 원리 (제Ⅰ권 제3장 제2절 b)와 부합한다.
구체적으로 유통 화폐량 (통화량)을 결정하는 요인은 유통 속도 (일정 기간 동일한 화폐 개체가 수행하는 구매 및 지불 기능의 반복 횟수),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매매 및 지불의 규모, 유통 상품의 가격 총액, 그리고 동일 시점에 결제되어야 할 지불액 간의 차액 등이다. 이러한 객관적 요인들이 수입의 유통과 자본의 유통 전반에 걸쳐 통화량을 결정할 뿐이다.
따라서 기능하는 화폐가 지불자나 수취자에게 자본을 표상하는지 또는 수입을 표상하는지 여부는 유통 화폐량의 결정 원리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유통 화폐량은 오직 구매 수단과 지불 수단이라는 화폐 고유의 기능적 필요에 따라 규정된다.
(3) 두 기능을 수행하며 각 영역에서 유통되는 유통 수단량의 상대적 비율 문제에 관하여. 수입 지출과 자본 이전이라는 두 유통 영역은 내적으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지출되는 수입액은 사회적 소비 규모를 표현하며,
생산 및 상업 분야에서 유통되는 자본액은 재생산 과정의 규모와 속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일한 경제적 요인이 각 영역의 유통 화폐량 (통화량)에 미치는 영향은 상이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투크가 통화 (유통 수단)와 자본을 부적절하게 구분한 배경에는 이러한 현상적 차이에 대한 오해가 자리 잡고 있다. 통화주의자들이 서로 다른 성격의 사물들을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사물들을 본질적인 개념적 구별로 제시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영역별 유통량의 상대적 비율 차이는 화폐와 자본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정당한 논거가 되지 못한다.
재생산 과정이 활성화되는 번영기 또는 대 팽창기에는 완전 고용이 실현된다. 대다수 국면에서 임금 인상이 동반되며, 이는 산업 순환의 타 시기에 발생한 평균 이하의 임금 하락을 보전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자본가의 수입 또한 대폭 증대되어 전반적인 소비 수준이 상승한다. 특히 주요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상품 가격의 상승이 수반되며, 유통 속도의 가속화가 화폐량의 무제한 팽창을 제한함에도 결과적으로 유통 화폐량은 일정 범위 내에서 증가하게 된다.
사회적 수입 중 임금 부분은 본래 산업 자본가로부터 가변 자본의 형태, 곧 화폐 형태로 투하되기에 번영기에는 그 유통을 위해 더 많은 화폐량을 요구한다. 다만 이를 가변 자본 유통을 위한 화폐와 노동자 수입 유통을 위한 화폐로 중복 계상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에게 지급된 화폐는 소매업에서 지출된 후 각종 중간 거래를 거쳐 매주 규칙적으로 소매상의 예금을 거쳐 은행으로 환류하기 떄문이다. 번영기에는 이러한 화폐 환류가 산업 자본가에게 매우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임금 지급액의 증가나 가변 자본 유통을 위한 화폐 수요의 증대가 산업 자본가들의 화폐 융통에 대한 추가적인 요구로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다.
총괄적인 결과로, 번영기에는 수입의 지출에 충당되는 유통 수단의 양이 결정적으로 증대한다.
자본가 상호 간의 거래 및 자본 이전에 필요한 유통 수단의 측면에서 볼 때, 호황기는 신용의 탄력성이 극대화되어 자금 확보가 가장 용이한 시기이다. 자본 간 유통 속도는 신용에 직접적으로 규정되므로, 지불 결제와 현금 구매에 요구되는 유통 수단량은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그 절대량은 증가할 수 있으나, 재생산 과정의 확장 규모와 비교하면 비중은 언제나 축소된다. 이는 한편으로 대규모 지불들이 화폐의 직접적 개입 없이 결제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재생산 과정의 활성화로 인해 동일한 화폐량이 구매 및 지불 수단으로 더욱 신속하게 회전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화폐량이 더 많은 개별 자본의 환류를 매개하게 된다.
종합적으로 볼 때, 번영기에는 자본 이전 영역 (제Ⅱ분야)의 화폐 유통이 상대적으로 수축하고 수입 지출 영역 (제Ⅰ분야)의 유통이 절대적으로 팽창함에도, 전체적인 화폐 유통은 매우 원활하고 ‘풍부한’ 양상을 띤다.
환류는 상품 자본이 화폐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과정 (M-C-M´)을 의미하며, 이는 제Ⅱ권 제1편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재생산 과정의 본질적 국면이다. 그러나 신용 제도의 개입으로 인해 산업 자본가와 상인이 체감하는 화폐적 환류 시점은 실질적 환류 시점과 분리된다. 자본가는 신용으로 상품을 판매하면서 실질적인 화폐 유입 이전에 상품을 인도하며, 동시에 신용 구매를 거쳐 상품 대금의 만기 지불 이전에 이미 그 가치를 생산 자본이나 상품 자본으로 재전환시킨다.
이러한 번영기에는 소매상에서 도매상으로, 다시 제조업자와 원료 수입상으로 이어지는 지불 연쇄가 확실하게 유지되므로, 환류는 표면상 매우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전개된다. 급속하고 확실한 환류라는 이러한 외관은 실제 환류가 종료된 이후에도 기존에 제공된 신용을 매개로 일정 기간 지속되는데, 이는 신용의 환류가 실질적 환류를 대체하기 때문이다. 은행은 고객의 예금 구성에서 현금 비중이 낮아지고 환어음 비중이 높아지는 시점부터 잠재적 위기를 감지하기 시작한다 (제25장에서 인용한 유니언 뱅크 오브 리버풀 이사 리스터의 증언 참조).
이전에 지적한 바와 같이, ‘신용 팽창기에는 통화의 유통 속도가 상품 가격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신용 수축기에는 유통 속도가 가격보다 급격히 감소한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CW 29: 340]
공황기에는 이러한 양상이 정반대로 나타난다. 수입의 지출이 이루어지는 제Ⅰ분야에서는 화폐 유통이 축소되고 가격과 임금이 하락하며, 취업 노동자 수와 거래량 또한 감소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본의 이전이 발생하는 제Ⅱ분야에서는 신용 수축에 따른 화폐 융통 수요가 증대한다.
재생산 과정의 정체와 신용 감퇴가 동시에 진행됨에 따라 제Ⅰ분야의 필요 통화량은 감소하나, 제Ⅱ분야의 필요 통화량은 증가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다만 이러한 사실이 ‘대부 자본에 대한 수요와 추가 유통 수단에 대한 수요는 완전히 별개이며 결합되는 경우도 드물다.’ (풀라턴, 『통화 운용론』: 82, 제5장의 제목)는 풀라턴 등의 주장과 어떻게 부합하는지는 면밀한 검토를 요한다.
우선 번영기의 경우, 유통 수단의 절대량이 증대함에 따라 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러나 제조업자가 가변 자본 지출을 위해 은행에서 금이나 은행권을 인출할 때, 이는 자본 자체에 대한 수요 증대가 아니라 자본을 지출하기 위한 이 ‘특수한 화폐적 형태’에 대한 수요 증대일 뿐이다.
이러한 수요는 자본을 유통에 투입하는 기술적 방식과 연관될 뿐이며, 이는 신용 제도의 발달 수준에 따라 동일한 가변 자본이라도 국가마다 필요로 하는 유통 수단량이 상이한 것과 같은 이치다. 농업 분야에서도 재생산 과정에 투입된 동일 규모의 자본이 계절적 요인에 따라 서로 다른 화폐량을 요구하는 것 역시 이와 동일한 원리에 기초한다.
그러나 풀라턴이 제시한 대비는 타당하지 않다. 번영기와 경기 후퇴기를 구분 짓는 본질적 요소는 그가 주장하는 대부 수요의 강도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수요의 충족이 번영기에는 용이하고 후퇴기에는 극히 어렵다는 사실에 있다. 사실상 번영기에는 신용 제도가 비약적으로 팽창함에 따라 대부 자본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며, 이러한 수요가 공급을 매개로 원활히 충족되는 과정이 오히려 후행하는 경기 후퇴기의 신용 핍박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따라 두 경제적 국면을 구분하는 결정적 기준은 대부 수요의 양적 크기가 아니라, 신용 체계 내에서의 수급 구조와 그 충족 여부에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번영기와 경기 후퇴기를 구분하는 핵심은 유통 수단에 대한 수요의 주체와 성격이 변화한다는 사실에 있다. 번영기에는 소비자와 상인 간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유통 수단 수요가 우세한 반면, 경기 후퇴기에는 소비자 측의 수요는 감소하고 자본가들 사이의 유통 수단 수요가 압도적으로 증가한다.
풀라턴을 비롯한 이론가들이 결정적으로 주목한 현상은 잉글랜드 은행의 유가 증권 보유액과 은행권 유통액이 역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유가 증권 보유액은 화폐 융통의 규모, 곧 할인된 환어음이나 담보 대부의 크기를 나타낸다.
풀라턴은 이를 근거로 (앞의 주 90 참조) 잉글랜드 은행의 유가 증권 보유액이 은행권 유통액과 반대로 변동하는 현상이 개별 은행의 내재적 원칙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곧, 어떠한 은행도 고객의 수요에 부응하여 결정되는 일정 수준을 초과하여 은행권을 발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은행이 이 한도를 초과해 대부를 확대하고자 한다면, 유가 증권을 매각하거나 기존 예금을 활용하는 등 자신의 실질 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여기서 풀라턴이 규정하는 자본의 실질적 의미가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잉글랜드 은행이 비용 발생이 없는 자기 앞 지불 약속인 은행권으로 더 이상 대부할 수 없게 되는 지점부터 자본이 개입한다. 이 경우 은행은 국채, 주식 등 보유 중인 ‘이자 낳는 증서 (유가 증권)’의 매각 대금을 확보하여 대부를 실행한다. 은행은 유가 증권을 판매하면서 금이나 법화인 은행권을 획득하며, 결과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은행이 대부하는 실체는 화폐가 된다.
이 시점의 화폐는 잉글랜드 은행 자본의 일부를 구성한다. 금을 대부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은행권을 대부하는 경우에도 해당 은행권은 자본을 표상한다. 은행이 그 은행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자 낳는 유가 증권이라는 현실적 가치를 양도했기 때문이다. 개인 은행의 경우 유가 증권 매각으로 회수하는 화폐는 대개 잉글랜드 은행권이거나 자기 자신의 은행권이다. 특히 잉글랜드 은행의 경우, 회수된 자기 앞 은행권은 결과적으로 이자 낳는 증권이라는 비용을 대가로 치른 셈이 된다.
따라서 잉글랜드 은행이 회수된 은행권을 재발행하거나 동일 금액의 새로운 은행권으로 발행한다면, 그 은행권은 자본을 대표하게 된다. 이는 자본가에 대한 대부 방식이든, 화폐 융통 수요 감퇴에 따른 유가 증권 재투자 방식이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결국 이러한 이론적 범주에서의 ‘자본’은 은행업자적 관점의 용어일 뿐이며, 이는 은행이 자신의 신용 (은행권 발행)을 초과하여 대부해야만 하는 강제적 상황을 의미한다.
잉글랜드 은행이 자기 앞 은행권으로 대부를 실행함에도, 할인 어음과 담보 등의 대부액 증가에 반해 은행권 유통액이 감소한다면, 투입된 은행권의 환류 경로는 다음과 같다.
국제 수지 적자로 인한 금 유출이 화폐 융통 수요를 촉발하는 경우 사태는 명확해진다. 어음 할인으로 발행된 은행권이 은행의 발권부에서 금과 교환되어 국외로 수출되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은행이 은행권의 매개 없이 금을 직접 지불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수요 증대는 국내 유통에 단 한 장의 은행권도 추가하지 않는다. 이 국면에서 잉글랜드 은행이 ‘통화’가 아닌 ‘자본’을 대부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 은행이 단순한 신용이 아닌 현실적 가치, 곧 자기 자본이나 예금 자본의 일부를 대부한다는 점이다.
둘째, 대부되는 화폐가 국내 유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세계 유통 수단인 ‘세계 화폐’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화폐는 반드시 퇴장 화폐의 형태인 금속 상태로 존재해야 하며, 이 형태에서 화폐의 가치는 금속 자체의 가치와 일치한다. 이때 금은 은행이나 수출상에게 자본을 표상할지라도, 그 수요의 본질은 자본 일반이 아닌 화폐 자본의 절대적 형태로의 금에 집중된다. 해외 시장이 실현될 수 없는 상품 자본으로 정체된 시점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수요는, 자본 그 자체가 아니라 세계 시장의 일반적 상품이자 화폐의 시초 형태인 ‘화폐로의 자본’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금 유출은 풀라턴이나 투크의 주장처럼 단순히 ‘자본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으며, 특수 기능을 수행하는 ‘화폐의 문제’로 파악되어야 한다. 금 유출이 통화주의자들의 견해처럼 국내 유통 수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곧바로 그것이 단순히 자본의 문제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화폐가 ‘세계적 지불 수단’의 형태를 취하면서 발생하는 엄연한 화폐적 현상이다. 흉작 시 곡물 수입 대금을 상품으로 지불하든 금으로 지불하든 거래의 성격에 영향이 없다는 풀라턴의 주장은 이러한 화폐의 특수 기능을 간과한 오류이다. (풀라턴, 1845: 131)
금 유출 여부는 경제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곡물 구매 대금과 같은 자본을 귀금속 형태로 지출하는 이유는, 상품 형태로는 수출이 여의치 않거나 막대한 손실 없이는 송금이 어렵기 때문이다. 근대 은행 제도가 금 유출에 대해 갖는 공포는 중금주의자들이 가졌던 착각을 능가한다. 1847-1848년 공황 당시 잉글랜드 은행 총재 모리스의 의회 증언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상업 불황』, 1847-1848)
‘질문자: 본인이 주식과 고정 자본의 가치 하락에 언급했을 때, 주식과 생산물에 투하된 모든 자본이 동일하게 감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원면, 생사, 원모가 헐값에 대륙으로 수출되고 설탕, 커피, 차가 투매로 처분되지 않았나. 식량의 대량 수입으로 인한 금 유출에 대처하기 위해 인민이 이와 같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는 것이 과연 불가피했는가.
모리스: 그렇다. (그와 같은 희생은 불가피했다.) (제3846호).’
‘질문자: 그렇다면 그러한 막대한 희생을 강요하며 금을 회수하려 노력하기보다, 잉글랜드 은행 금고에 잠자고 있는 800만 파운드의 금 준비금에 손을 대는 (사용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았겠는가.
모리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3848호).’
모리스는 식량 수입으로 인한 금 유출에 대응하기 위해 인민적 희생이 불가피했음을 시인한다. 당시 주식과 고정 자본은 물론 원면, 생사, 원모 등 원자재가 헐값에 유럽으로 유출되었고 설탕, 커피, 차와 같은 식료품조차 투매로 처분되며 자산 가치가 급락했다. 이러한 가혹한 희생을 치르기보다 은행 금고의 예비금에 손을 대는 것이 낫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결코 그렇지 않다며 단호히 거부한다. 이는 현대 금융 제도 하에서도 금이 여전히 ‘유일한 진정한 부’이자 최후의 결제 수단으로 물신화되고 있음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풀라턴이 인용한 투크의 견해는 지난 반세기 동안 금 유출을 동바한 현저한 환율 하락이 오히려 유통 수단이 상대적으로 희소한 상태와 일치했음을 보여준다. (풀라턴, 1845: 121) 이는 금 유출이 대개 호황과 투기 국면 이후에 발생하며, 시장의 공급 과잉, 해외 수요의 중단, 환류의 지연, 그리고 그 필연적 결과인 상업적 불신과 산업 침체를 알리는 붕괴의 지표임을 입증한다. (129)
이러한 사실은 ‘유통 수단의 과잉이 금을 밀어내고, 부족이 금을 끌어들인다.’는 통화주의자들의 기계적인 도식에 대한 강력한 반증이 된다. 통화주의자들의 가설과 정반대로, 잉글랜드 은행은 번영기에 거대한 금준비를 보유하며, 이러한 준비금은 항상 격동기 이후의 불황기에 형성되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금 유출에 관한 논의의 핵심은 세계적 유통·지불 수단에 대한 수요가 국내적 수요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풀라턴이 지적하듯 ‘금유출의 존재가 반드시 국내 유통 수단 수요의 감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귀금속의 국외 수출은 은행권이나 주화를 국내에 유통하는 행위와 동일시될 수 없다. 세계 지불을 위한 준비금으로의 퇴장 화폐 운동은 유통 수단으로의 화폐 운동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장 화폐의 여러 기능, 곧 국내 지불 준비금, 유통 수단 준비금, 그리고 세계 화폐로의 준비금 기능이 단일한 예비금에 집중되면서 문제는 심화된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CW 29: 382-384) 상황에 따라 국내로의 금 유출이 해외 유출과 결부될 수 있으며,
특히 신용 제도 하에서 이 퇴장 화폐에 ‘은행권 태환 보증’이라는 추가적 기능이 부여되면서 모순은 가중된다. 여기에 (1) 전국의 준비금이 중앙은행으로 집중되고 (2) 이를 최저 한도로 축소 운용하는 방식이 더해진다. 이 때문에 풀라턴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영국에서는 금준비 고갈 시마다 극심한 불안과 경악이 수반된다. 이는 환율 변동이 평온하게 유지되는 대륙의 금속 통화 체제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143)
이제 금 유출 요인을 배제한다면, 잉글랜드 은행과 같은 발권 은행이 은행권 발행액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대부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인지 검토해야 한다.
잉글랜드 은행의 관점에서 자사 보유고를 벗어난 모든 은행권은 실쩨 유통 여부와 관계없이 유통 상태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은행이 할인 업무나 유가 증권 담보 대부를 확대함에도 은행권 유통액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발행된 은행권은 반드시 은행으로 환류해야 하며 그 경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으로 요약된다.
첫째, 잉글랜드 은행이 유가 증권을 대가로 A에게 은행권을 지급하고, A가 B에 대한 만기 어음을 이 은행권으로 결제하면, B가 이를 다시 잉글랜드 은행에 예금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해당 은행권의 유통은 종결되나 대부 관계는 소멸하지 않고 유지된다. 곧, ‘대부 총액은 변함없으나 불필요해진 통화만이 발행자인 은행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풀라턴: 97)
이때 은행은 A에 대해서는 채권자 지위를 유지하는 한편, B에 대해서는 예입된 은행권 가치만큼의 채무자 지위를 갖게 되며, 결과적으로 B는 은행 자본 중 해당 가치분에 대한 처분권을 획득한다.
둘째, A가 B에게 지불하고, B 또는 그다음 수취인인 C가 만기 어음을 결제하기 위해 해당 은행권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은행에 납입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자신의 채권을 자기 앞 은행권으로 회수하게 되며, A의 최종 상환 절차를 제외한 개별 거래는 완결된다.
이러한 환류 원리를 바탕으로, 은행이 A에게 실행한 대부를 어느 지점까지 ‘자본의 대부’로 규정하고 어느 지점까지 ‘지불 수단의 대부’로 파악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검토가 요구된다.
(엥겔스: 대부의 성격에 따라 다음의 세 가지 사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A가 담보 없이 개인 신용에 의거해 대부를 받는 경우이다. 이때 A는 지불 수단을 획득함과 동시에 명백히 새로운 자본을 대부받는 셈이 된다. 그는 상환 시점까지 이 자본을 자신의 사업 내에서 추가 자본으로 운용하며 가치를 증식시킬 수 있다.
둘째, A가 국채나 주식 등 유가 증권을 담보로 제공하고 시가의 일정 비율 (예: 2/3)을 현금으로 대부받는 경우이다. 이 과정에서 A는 필요한 지불 수단을 확보하지만, 추가 자본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은행에 제공한 담보 가치가 수령한 현금보다 크기 때문이다. 다만 A는 이자를 낳는 유가 증권 형태의 자본을 지불 수단으로 즉각 전환하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해당 유가 증권을 준비 자본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다. 결과적으로 A와 은행 사이에는 자본의 일시적 상호 이전이 발생한다. A는 추가 자본 없이 지불 수단을 확보하고, (실상 A가 수령한 현금보다 더 큰 자본 가치를 은행에 제공한다!) 은행은 화폐 자본을 대부의 형태로 묶어두며 그 형태를 전환시키는데, 이는 은행업의 본질적 기능에 해당한다.
셋째, A가 어음을 할인하여 현금을 수취하는 경우이다. 이는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비유동적 화폐 자본인 어음을 은행에 매각하고, 유동적 형태인 현금을 확보하는 행위이다. 어음의 소유권은 은행으로 이전되나, 부도 시 최종 이서인인 A가 상환 책임을 진다는 점은 변함없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거래는 대부가 아닌 통상의 매매에 가깝다.
A는 은행에 상환 의무가 없으며, 은행은 만기일에 어음 발행인으로부터 대금을 회수한다. 이 역시 다른 상품의 매매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상호 이전일 뿐, A에게 추가 자본이 유입되는 것은 아니다. A는 지불 수단 확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은행은 화폐 자본의 형태를 어음에서 화폐로 전환해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자본 대부가 성립하는 것은 오직 첫째 경우뿐이다. 둘째와 셋째 사례의 경우, 모든 자본 투하가 넓은 의미에서 ‘대부’ 성격을 내포한다는 수준에서만 자본 대부라 칭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은행이 A에게 화폐 자본을 대부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A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신의 자본 일반 중 일부인 화폐 형태일 뿐이다.
더욱이 A는 이를 자본으로 투하하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불 수단으로 요구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자본 대부로 간주한다면, 지불 수단 마련을 목적으로 행해지는 모든 일반 상품의 판매 행위 또한 자본 대부를 받는 것으로 규정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은행권을 발행하는 개인 은행의 경우 다음과 같은 기능적 차이가 발생한다. 발행된 은행권이 지방 유통 영역에 머물지 않고 예금이나 만기 어음 결제의 형태로 해당 은행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그 은행권은 결과적으로 발행 은행이 금이나 잉글랜드 은행권을 지불해야만 하는 채권자들의 수중에 놓이게 된다. 이 국면에서 은행권의 대부는 실질적으로 잉글랜드 은행권이나 금의 대부, 곧 은행 자본의 직접적인 이전을 의미한다.
이는 은행권 발행에 법정 최고 한도가 설정된 잉글랜드 은행이나 기타 발권 은행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은행이 유가 증권을 매각하면서 이미 유통 중인 자기 앞 은행권을 회수하고 이를 다시 대부로 발행해야만 한다면, 이때의 은행권은 은행이 동원할 수 있는 실질 자본의 일부를 대표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조건 하에서 은행권은 단순한 신용의 팽창이 아니라, 구체적인 가치를 지닌 은행 자본의 화폐적 표상으로 기능한다.
통화 제도가 순수한 금속 통화 제도라 전제하더라도, 다음의 두 현상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첫째, 잉글랜드 은행의 금고를 고갈시키는 수준의 금 유출이 일어나는 경우이다 (엥겔스: 이는 국내에 비축된 금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유출됨을 의미한다).
둘째, 은행의 주된 금 수요가 이전 거래의 결제를 위한 지불 용도에 집중됨에 따라, 은행의 담보 대부는 대폭 증가하는 반면, 발행된 은행권은 예금이나 만기 어음 상환의 형태로 다시 은행에 복귀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잉글랜드 은행의 유가 증권 보유액은 대부 확대로 인해 증가하지만, 발행 준비금은 금 유출로 인해 감소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은행은 종전 자사 소유로 보유했던 동일한 금액을 이제는 예금자에 대한 채무 형태로 보유하게 되며, 사회 전체의 통화 총량은 수축 국면에 진입한다.
지금까지는 대부가 은행권 발행을 매개로 이루어지며, 그에 따라 일시적인 통화량 증가가 수반된다고 전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잉글랜드 은행은 실물 은행권을 발행하는 대신 A에게 신용 계좌를 개설해 줄 수 있으며, 따라서 채무자인 A는 장부상 예금자로의 지위를 얻는다.
A는 자신의 채권자에게 잉글랜드 은행 앞 수표로 대금을 지불하면, 수취인은 해당 수표를 자신의 거래 은행에 입금하고, 각 은행은 어음 교환소를 경유하여 수표를 상호 결제한다. 이 과정에서 현실적인 은행권의 개입은 배제된다.
거래의 실체는 은행이 A에 대한 채권을 확보하면서 자산을 구성하는 동시에, 자기 앞으로 발행된 수표를 매개로 자신의 채무를 결제하는 방식으로 국한된다. 결과적으로 은행은 자기 채권의 일부라는 형태로 은행 자본의 일부분을 A에게 대부한 셈이 된다.
화폐 융통에 대한 수요가 자본에 대한 수요로 기능하는 한, 이는 오직 은행업자의 관점에서의 자본, 곧 화폐 자본에 대한 수요에 국한된다. 이는 국외 유출을 위한 금이나, 개인 은행이 등가물을 지불하고 확보해야 하는 중앙 은행권에 대한 수요를 의미한다. 또한 금이나 은행권을 획득하기 위해 매각하는 국채·주식 등 이자 낳는 유가 증권 역시 은행업자의 입장에서는 자본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러한 유가 증권은 그것을 구매하여 자본을 투하한 소유자에게만 자본을 대표할 뿐, 그 자체로는 자본이 아닌 단순한 채권에 불과하다. 지대 청구권인 토지 저당 증서나 잉여 가치 분배권인 주식은 실물 자본의 구성 부분도,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가치도 아니다. 이와 비슷한 신용 거래를 매개로 하여 은행 내 화폐가 예금으로 전환되어 은행의 지위가 소유자에서 채무자로 변동될 수 있으나, 이러한 회계적 변화가 국내에 현존하는 실물 자본이나 화폐 자본의 총량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여기서 자본은 오직 화폐 자본으로만 나타나며, 현실적인 화폐 형태를 취하지 않을 때는 단순한 자본 소유권으로 기능할 뿐이다. 이러한 구별은 매우 중요하다. 은행 자본의 결핍이나 이에 대한 절박한 수요가 실물 자본의 감소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로, 실물 자본은 생산 수단과 생산물의 형태로 과잉 상태가 되어 시장을 범람시키는 국면에서 이러한 화폐 자본의 핍박이 발생한다.
유통 수단 총량이 불변하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상황에서 잉글랜드 은행이 담보 유가 증권 보유액을 늘리며 화폐 융통 수요를 충족시키는 원리는 명확하다. 화폐 핍박의 시기에 유통 수단 총량은 (1) 금유출과 (2) 단순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수요로 인해 제약된다. (2)의 경우 이때 발행된 은행권은 즉각 환류하거나, 실물 화폐의 매개 없이 장부상 신용 계정으로 처리된다. 이 경우 모든 결제는 신용 거래만으로 수행되며, 화폐는 단순히 이전 거래를 청산하기 위한 지불의 완결자로 기능할 뿐이다.
공황기에 대부를 받는 목적은 새로운 구매가 아니라 이전 거래의 청산에 있다. 화폐가 지불의 결제를 위해 기능할 때, 비록 신용 상쇄만으로 완결되지 않아 화폐가 개입하더라도 그 현실적 유통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화폐 융통에 대한 수요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유통 수단 총량의 팽창 없이 거액의 결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은 화폐 고유의 특성이다.
잉글랜드 은행이 대규모 화폐 융통을 실시함에도 은행권 유통액이 안정되거나 감소한다는 사실이,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의 유통액 자체가 미미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풀라턴이나 투크 등은 화폐 융통을 대부 자본의 차입이나 추가 자본의 확보와 동일시하면서 이러한 본질을 오독하였다.
사업 침체기에는 구매 수단으로의 은행권 유통액이 급감하기 때문에, 지불 수단으로의 유통액이 증가하더라도 그 합계인 유통 수단 총액은 변하지 않거나 줄어들 수 있다. 지불 수단으로 투입된 은행권은 발행 은행으로 신속히 환류하므로, 이를 포착하지 못한 경제학자들의 안목에는 그것이 유통액으로 간주되지 않았을 뿐이다.
지불 수단으로의 유통액 증가분이 구매 수단으로의 유통액 감소분보다 크다면, 구매 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량이 뚜렷하게 수축하더라도 총 유통액은 오히려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공황의 특정 국면, 곧 신용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어 상품과 유가 증권의 매각이 중단되고 어음 할인마저 정지되면서 오직 현금 지불만이 유일한 결제 수단으로 통용되는 시점에서 실제로 발생한다.
풀라턴 등은 이처럼 화폐 부족 시기에 나타나는 지불 수단으로의 은행권 유통이 지닌 구조적 특징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이러한 필연적 현상을 단지 우연한 사태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공황기의 특징인 은행권 확보를 위한 격렬한 경쟁은, 1825년 말의 사례처럼 금 유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은행권 발행액의 일시적이고 급격한 증대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낮은 환율에 수반되는 필연적 결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이 시기의 수요는 유통 수단 (정확히는 구매 수단으로의 유통 수단)에 대한 수요가 아니라, 화폐 퇴장을 위한 수요이기 때문이다. 곧, 이는 금 유출이 장기화된 공황의 종결부에서 신용적 타격을 입은 은행업자와 자본가들이 지불 수단의 예비금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발생하는 수요이며, 동시에 금 유출이 멈추리라는 전조이기도 하다.’ (풀라턴: 130)
지불 연쇄가 급격히 중단될 때, 화폐가 순전히 관념적인 계산 화폐의 형태를 벗어나 상품들에 대립하는 가치의 물질적이고 절대적인 형태로 전환되는 과정은 이미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를 고찰하며 (제Ⅰ권 제3장 3절 b; 실례는 주 51과 52 참조) 논의한 바 있다. 이러한 지불 연쇄의 중단 및 파괴는 신용의 동요와 그에 수반되는 시장의 포화, 상품의 감가, 생산 중단 등의 결과인 동시에, 다시 그 현상들을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풀라턴은 구매 수단으로의 화폐와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사이의 기능적 구별을 통화와 자본 사이의 본질적 구별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의 기저에는 유통 현상에 매몰된 은행업자 특유의 편협한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화폐 핍박 시기에 공급이 부족하여 위기를 초래하는 실체는 자본 그 자체인가, 아니면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인가. 이는 정치경제학의 역사에서 지속되어 온 핵심적인 논쟁점이다.
경제적 핍박이 금 유출의 형태로 표면화되는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실체는 세계적 지불 수단임이 명백하다. 세계적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는 금속 상태의 금이며, 이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실체이자 체현된 가치물이다. 이 화폐는 곧 자본을 의미하나, 상품 자본이 아닌 화폐 자본으로의 자본이며, 일반적인 세계 시장 상품인 화폐의 형태를 취한 자본이다.
따라서 이 국면에서는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수요와 자본 수요 사이의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립의 본질은 오히려 상품 형태의 자본과 화폐 형태의 자본 사이에 놓여 있다. 자본이 요구되는 유일한 형태이자 실제 기능할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이 오직 자본의 화폐 형태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금·은에 대한 수요를 제외한다면, 공황기에 일반적인 의미의 자본이 부족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흉작으로 인한 곡물 가격의 등귀나 면화 기근 등과 특수한 생산 조건의 악화가 발생할 경우 자본의 실질적 부족이 나타날 수 있으나, 이는 공황기에 필연적 또는 규칙적으로 수반되는 고유한 현상은 아니다. 따라서 화폐 융통에 대한 수요가 격증한다는 사실로부터 자본 자체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직접 도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태의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깝다. 시장은 이미 공급 과잉 상태에 놓여 있으며, 처분되지 못한 상품 자본으로 범람하고 있다. 곧, 위기를 심화시키는 결정적 원인은 결코 상품 자본의 물리적 결핍에 있지 않다. 이 논점에 대해서는 차후에 보다 상세히 상술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