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화폐적 자본과 현실적 자본 (Ⅰ)
신용 제도와 관련하여 고찰해야 할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화폐 자본 그 자체의 축적이 실물 자본의 축적, 곧 확대 재생산의 지표로 기능하는 범위에 관한 문제이다. 이자 낳는 자본 (화폐 자본)에 국한되어 사용되는 ‘자본의 과다’라는 표현이 단순히 산업적 과잉 생산의 특수한 발현 형태인지, 또는 그와는 독립된 별개의 현상인지 규명해야 한다. 아울러 화폐 자본의 과잉 공급이 대량의 현실적 화폐 (금, 금주화, 은행권) 축적과 반드시 일치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현실적 화폐의 과잉이 곧 대부 자본의 과다라는 현상의 발현이자 형태인지 분석하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화폐의 핍박과 대부 자본의 부족이 현실적 자본 (상품 자본과 생산 자본)의 결핍을 어느 정도까지 대변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화폐의 핍박이 실물 자본의 문제와 무관하게 화폐 그 자체의 절대적 부족이나 유통 수단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현상인지에 대한 논리적 검토가 요구된다.
지금까지 고찰한 화폐 자본 (화폐 재산 일반) 축적의 특수 형태는 결국 노동에 대한 청구권의 축적에 귀결된다. 국채 형태의 자본 축적은 이미 규명한 바와 같이, 조세 총액 중 일정액을 수취할 권리를 지닌 채권자 계급의 형성을 의미할 뿐이다. 특히 채무의 축적조차 자본의 축적으로 현상한다는 사실, 예컨대 예금의 증가가 은행 자본의 축적으로 간주되는 현상은 신용 제도로 인해 왜곡이 극단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차입을 매개로 이미 오래전에 소비된 자본에 대하여 발행된 이 채무 증서인 국채는 비록 실체적 자본이 소멸한 종이 사본에 불과할지라도, 시장에서 매각이 용이하여 자본으로 재전환될 수 있는 한 소유자에게는 여전히 자본으로 기능한다.
주식회사, 철도, 광산 등의 소유권 증서인 주식은 실질적으로 현실적 자본에 대한 권리 증서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 증서는 현실적 자본에 대한 직접적인 처분권이나 자본 회수권을 부여하지 않으며, 단지 해당 자본이 창출하는 잉여 가치의 일부를 수취할 법적 청구권만을 제공할 뿐이다. 선하 증권이 화물과 별개로 가치를 획득하듯, 소유권 증서는 현실적 자본의 ‘종이 사본’이 되어 실재하지 않는 자본을 명목상으로 대표하게 된다. 현실적 자본은 법인인 주식회사 내에 별도로 존재하므로, 이 사본의 매매가 자본 자체의 소유 구조를 변경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소유권 증서는 일정 수입을 보장하고 증서 매각을 매개로 투하 자본을 회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자 낳는 자본의 형태를 취한다. 주식의 축적이 철도, 광산, 해운 등의 실물 축적을 대변하는 한, 이는 현실적 재생산 과정의 확대를 의미하며, 이는 동산 과세액의 증가가 동산 자체의 확대를 시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주식이 독립된 상품으로 자본 가치로 유통되는 사본인 이상, 그 가치는 가공적 성격을 띠며 현실적 자본의 가치 변동과는 무관하게 운동할 수 있다. 특히 주가는 이윤율 저하 경향에 따른 이자율 하락에 대응하여 필연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자본주의 생산이 발달할수록 명목 가치에 기반한 이 가공적인 부는 더욱 증대된다. 이러한 소유권 증서의 가격 변동에 따른 손익과 자본가 수중으로의 주식 집중은 점차 투기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로부터 투기는 노동이나 직접적 폭력을 대신하여 자본을 획득하는 독자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 이와 같은 가상적 화폐 재산은 오늘날 개인의 자산뿐만 아니라 은행 자본에서도 매우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화폐 자본의 축적은 직업적 화폐 대부자인 은행업자, 곧 사적 화폐 자본가와 국가·지방 정부 및 재생산 과정에 종사하는 차입자 사이를 매개하는 자들의 수중에 부가 집중됨을 의미할 수 있다. 이는 신용 제도의 비약적 팽창에 힘입어 사회 전체의 신용이 은행업자의 사적 자본으로 전용되기 때문이다. 은행업자는 자본과 수입을 상시로 화폐 형태나 화폐에 대한 직접적 청구권의 형태로 보유한다. 이들 계급이 주도하는 부의 축적 방식은 현실적 축적 과정과는 상이하게 전개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현실적 축적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게 된다.
분석의 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한정하면 다음과 같다. 국채, 주식 및 모든 종류의 유가 증권은 이자 낳는 자본으로 대부 자본의 투자 대상이자 대부의 한 형태일 뿐, 그 자체가 대부 자본 (그것에 투하되는 자본)인 것은 아니다. 재생산 과정에서 신용이 직접적인 기능을 수행할 때, 산업가나 상인이 어음을 할인받거나 대부를 받고자 할 때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유가 증권 (주식이나 국채)이 아닌 화폐이다. 따라서 화폐 확보가 어려워진 상황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이러한 유가 증권의 매각이나 담보 제공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핵심은 대부 자본의 축적, 특히 대부 가용한 화폐 자본의 축적이다. 이는 가옥, 기계 등 고정 자본의 대부를 의미하지 않으며, 산업가와 상인들이 재생산 과정의 순환 속에서 상호 간에 상품 형태로 제공하는 대부와도 구별된다. 본 고찰은 오직 중개자인 은행업자가 산업가와 상인에게 집행하는 화폐 대부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재생산 과정에 종사하는 자본가들이 상호 간에 제공하는 신용인 상업 신용의 분석에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상업 신용은 신용 제도 전반의 토대를 형성하며, 이를 대표하는 수단은 확정된 지불 기일을 명시한 채무 증서 (‘후불 증서’)인 환어음이다. 이 과정에서 각 경제 주체는 신용의 제공자인 동시에 수취인이 된다. 본 고찰에서는 우선 은행업자의 신용을 상업 신용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판이한 요소로 간주하여 논외로 한다.
환어음이 상인 간의 이서를 거쳐 별도의 할인 없이 지불 수단으로 유통될 경우, 이는 채권이 A에서 B로 이전되는 것에 불과하며 사태의 본질적 구조에는 변화가 없다. 단지 채권자의 지위가 승계될 뿐이며, 결제 과정에서 화폐의 개입은 생략될 수 있다. 예컨대 방적업자 A가 면화 중개인 B에게, B가 수입업자 C에게 지불 의무가 있다고 전제하자. C가 면사 수출을 겸하고 있다면, C는 A로부터 면사를 구매하면서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이 경우 A는 C로부터 받은 B의 어음을 활용해 B에 대한 자신의 채무를 결제할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극히 일부의 차액만이 화폐로 정산된다. 결과적으로 이 거래 전체는 면화와 면사 간의 실물 교환을 매개할 뿐이며, 각 중개인은 원료 재배자와 생산자를 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순수한 상업 신용의 순환과 관련하여 다음 두 가지 사항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상호 채권의 결제는 자본의 환류, 곧 연기된 상품 판매 (C-M)의 실현 여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방적업자가 수취한 환어음의 대금 지불은 면제품 제조업자가 시장에 내놓은 제품을 만기 전까지 판매하여 대금을 회수할 때 비로소 담보된다. 따라서 이러한 상환 구조는 재생산 및 생산·소비 과정의 원활성에 기반하며, 각 경제 주체의 지불 능력은 타인의 지불 능력과 연동된다. 어음 발행 시 자신의 사업이나 제3자의 사업에서 발생할 자본 환류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예상된 환류가 지체될 경우, 지불은 오직 어음 발행인이 보유한 준비 자본에 의존하여 이행될 수 있다.
둘째, 상업 신용 제도가 현금 지불의 필요성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임금이나 조세와 같은 주요 비용은 상시 현금으로 결제되어야 하며, 어음을 수취한 경제 주체가 자신의 채무 만기에 직면했을 때 수취 어음의 만기가 도래하지 않았다면 별도의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재생산의 원활한 순환에 기반한 (제Ⅱ권 제3편 제20장 6절) 채권·채무의 상쇄는 불변 자본 생산자 간의 교환이나 생산의 상향 연쇄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발생할 뿐이며, 모든 거래 체계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생산 부문 간 생산물의 성격이 상이하여 재생산 과정의 요소로 환류되지 않는 경우, 해당 채권은 반드시 화폐로 결제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상업 신용의 한계는 (1) 산업가와 상인의 준비 자본 규모 및 자본 환류의 안정성에 규제된다. (2) 환류는 시간적 지체, 가격 하락, 공급 과잉 등 각종 변수에 따라 불확실해지며, 어음 기간이 장기화될수록 이러한 위험성과 준비 자본의 필요량은 증대된다. 특히 노동 생산성의 향상과 생산 규모의 확대로 인해 (1) 시장이 원격화됨에 따라 (2) 신용의 장기화와 (3) 투기적 요소의 개입은 불가피해진다. 대규모 생산물 전체를 상업 자본만으로 수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신용은 필수적이며, 생산 가치의 증대와 시장의 확장은 신용의 규모와 기간을 동반 확장시킨다. 이 과정에서 생산 과정의 발달이 신용을 확대하고, 다시 신용이 산업 및 상업 활동을 촉진하는 상호 작용이 발생한다.
상업 신용을 은행 신용과 분리하여 고찰할 때, 상업 신용의 규모가 산업 자본의 확장과 비례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단계에서 대부 자본과 산업 자본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범주를 형성한다. 대부되는 자본은 곧 상품 자본으로, 이는 개인적 소비로 이어지거나 생산 자본의 불변적 요소를 보전하는 데 투입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부 자본으로 현상하는 것은 재생산 과정의 특정 단계에 놓인 자본이며, 매매를 거쳐 소유권이 이전된 후 약정된 기일에 그 등가가 지불되는 구조를 취한다.
예컨대 면화가 어음과 교환되어 방적업자에게 인도되고, 생산된 면사가 다시 어음과 교환되어 직포업자에게, 직포는 상인과 수출업자를 거쳐 최종적으로 해외 시장의 구매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상정할 수 있다. 이 연쇄적인 이전 과정 동안 면화는 완제품으로 변모하고, 최종 판매를 거쳐 획득한 등가는 다시 새로운 원료를 구매하는 자본을 환류되어 재생산 과정에 재투입된다. 이처럼 재생산의 각 단계는 신용을 매개로 하며, 방적업자나 직포업자 및 상인은 해당 물품에 대한 즉각적인 현금 지불 없이 생산과 유통을 지속한다.
이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된다. 첫째는 신용이 상품 생산의 실질적이고 순차적인 단계들을 매개하는 국면이며, 둘째는 완성된 상품이 상인 간의 수송과 이전 (C-M)을 거치며 유통되는 국면이다. 비록 후자가 단순히 소유권의 이전을 매개할 뿐이라 할지라도, 상품은 그 과정 전반에서 끊임없이 유통 행위 속에 머물며 재생산 과정의 필수적 일환을 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 대부되는 대상은 결코 유휴 자본이 아니라, 소유자의 수중에서 필연적으로 형태를 변경해야 하는 자본이다. 곧, 소유자에게는 단순히 상품 자본의 형태로 존재할 뿐이어서 재생산을 위해 최소한 화폐 형태로 재전환되어야만 하는 자본을 의미한다. 이 국면에서 신용이 매개하는 것은 상품의 상품 형태 (C-M 및 M-C)과 현실의 생산 과정 그 자체다. 재생산 순환 과정에서 은행 신용을 제외한 상업 신용의 규모가 방대하다는 사실은, 대부를 위해 유리한 투자처를 모색 중인 유휴 자본이 많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재생산 과정 내에서 자본이 고도로 가동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여기서 신용이 수행하는 매개적 기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산업 자본가의 관점에서는 산업 자본을 한 공정에서 다음 공정으로 이전시키고,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된 생산의 제반 영역들을 연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둘째, 상인의 관점에서는 상품을 한 상인으로부터 다른 상인에게 수송 및 이전시키면서, 화폐와의 교환을 매개로 한 최종적 판매를 실현하거나 다른 상품과의 교환을 완결 짓는다.
이 국면에서 신용의 최대 한도는 산업 자본의 가장 완전한 운용, 곧 소비의 제약을 도외시한 채 산업 자본의 재생산력을 극한으로 발휘하는 상태와 일치한다. 이러한 재생산 과정의 극대화는 소비의 한계를 스스로 확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본의 생산력 발휘가 한편으로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수입을 늘려 개인적 소비를 증대시키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과정 자체가 생산적 소비의 질적·양적 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재생산 과정의 원활한 순환에 따라 환류가 담보되는 한 상업 신용은 지속적으로 확장되며, 이러한 신용의 증대는 재생산 과정 자체의 외연적 확대에 그 근거를 둔다. 그러나 환류가 지체되거나 시장 포화 및 가격 하락으로 인해 정체가 발생하면, 산업 자본의 과잉 상태가 가시화된다. 이때의 과잉은 자본이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형태의 과잉을 의미한다. 곧, 방대한 상품 자본이 존재하나 매각되지 않으며, 대규모 고정 자본 또한 재생산의 정체로 인해 가동이 중단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러한 국면에서 상업 신용은 급격히 수축된다. 그 원인은,
첫째, 산업 자본이 형태 변화를 완결하지 못한 채 재생산의 특정 단계에 정체되면서 유휴화되기 때문이다.
둘째, 재생산 과정의 연속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붕괴하기 때문이다.
셋째, 상업 신용 자체에 대한 수요가 감퇴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방적업자는 생산을 축소하고 미판매된 면사 재고를 대량으로 보유하게 되므로, 신용에 기반한 면화 구입의 유인이 사라지며, 상인 또한 과잉 재고로 인해 신용에 기반한 추가 상품 매입을 중단하게 된다.
재생산 과정의 확대나 원활한 가동에 교란이 발생하면 신용의 결핍이 나타나며, 신용을 매개로 한 상품 매입은 극도로 어려워진다. 특히 신용 판매를 기피하고 현금 결제를 고집하는 현상은 산업 순환 중 파국을 통과한 직후 국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파국 직전의 공황 단계에서는 모든 주체가 판매할 상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처분이 저지되며, 특히 누적된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매각이 절박해진다. 이로 인해 재생산 과정에 묶여 있는 자본량은 신용 부족이 정점에 달하고 은행 할인율이 최고조에 이르는 바로 그 시기에 최대 규모에 도달한다. 이미 투하된 자본은 재생산의 정체로 인해 사실상 유휴 상태에 빠지며, 공장은 가동을 멈추고 원료와 완제품은 시장에 과잉 축적된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 상황을 생산 자본의 절대적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오히려 이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축소된 재생산의 적정 규모에 비해서나, 위축된 사회적 소비 수준에 비해서나 생산 자본이 극심한 과잉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오직 산업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전제하자. 아울러 총자본의 원활한 보충을 저해하는 가격 변동이나 신용 제도에서 기인하는 투기적 거래 및 사기적 사업 등 부수적 요인을 배제한다면, 공황은 생산 부문 간의 불비례나 자본가의 소비와 축적 사이의 불일치만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생산에 투하된 자본의 회수는 금리 생활자와 같은 비생산 계급의 소비 능력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반면, 노동자의 소비 능력은 임금 규제 법칙과 더불어, 오직 자본가 계급의 이윤 창출에 기여할 때만 고용될 수 있다는 구조적 한계에 종속된다. 결국 모든 실질적 공황의 궁극적 원인은 사회의 절대적 소비 능력만이 생산의 한계인 양 생산력을 맹목적으로 확장하려는 자본주의적 맹동과, 그에 대비되는 인민의 빈곤 및 제한된 소비 능력 사이의 모순에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에서 생산 자본의 실질적 부족이 발생하는 유일한 경우는 흉작으로 인해 식량이나 주요 공업 원료가 절대적으로 결핍되는 상황뿐이다.
이러한 상업 신용의 토대 위에는 실질적인 화폐 신용이 결부되어 있다. 산업가와 상인 간의 대부는 은행업자 및 화폐 대부자의 화폐 대부와 밀접하게 결합한다. 어음 할인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부는 명목적으로는 어음의 매매이나, 실질적으로는 어음 중개인이 은행의 신용을 빌려 주는 것이며, 은행은 다시 산업가, 상인, 노동자 (저축 은행), 지주 등 비생산 계급의 예금을 재원으로 대부를 실행하는 구조다. 이로부터 개별 자본가는 막대한 준비 자본을 보유하거나 현실적 환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융통 어음의 남발이나 어음 발행만을 목적으로 한 허위 상품 거래는 순환의 전 과정을 극도로 왜곡한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환류가 중단되어 화폐 대부자와 생산자가 잠재적 손실을 입고 있음에도, 사업은 겉보기에 원활하고 건전한 것처럼 위장된다.
따라서 공황 직전의 사업 상태는 언제나 기만적일 만큼 건전해 보이기 마련이다. 1857년 8월 공황이 폭발하기 불과 한 달 전까지,『은행법 (1857, 1858)』 조사에 소환된 오브스톤을 비롯한 은행 이사들과 상인들이 경제적 번영을 예찬했던 기록은 이를 뒷받침하는 명백한 증거다. 공황의 역사가인 투크조차 『물가와 통화 상태의 역사』 (1848: 329-348; 뉴마치와 공저. 1857: 218-229)에서 이러한 착시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은 이례적이나, 자본주의 경제에서 사업은 갑작스러운 붕괴의 순간까지 항상 극도의 번영을 유지하는 속성이 있다.
화폐 자본의 축적 문제로 다시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대부 가용한 화폐 자본의 증가가 반드시 실질적인 자본 축적이나 재생산 과정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공황 이후 대부 자본이 대규모로 유휴화되는 산업 순환 국면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실제로 1847년 공황 이후 영국 공업 지대의 생산이 1/3만큼 줄었듯이, 생산 과정이 축소되고 상품 가격이 최저치로 하락하며 기업가 정신이 침체되는 시기에는 이자율이 저하하는데, 이는 산업 자본의 위축과 정체로 인해 대부 가용 자본이 상대적으로 과잉된 결과일 뿐이다.
상품 가격 하락과 거래 감소, 임금 자본의 수축으로 유통 수단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고, 금 유출이나 파산 등에 따른 대외 부채 청산 이후 세계 화폐 수요가 소멸하며, 할인 대상 어음이 급감함에 따라 할인 업무 규모 또한 축소된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투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수요가 감퇴함에 따라 대부 가용 화폐 자본은 상대적 과잉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부 가용 화폐 자본의 공급 자체가 적극적으로 증가하는 현상도 수반된다.
일례로 1847년 공황 이후 발생한 ‘거래의 격감과 화폐의 거대한 과잉’ 국면에서는 ‘상업의 파괴로 인해 화폐의 사용처가 부재했으며, 이자율은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상업 불황, 1847-1848』: 증언 제1664호 및 45, 로얄 뱅크 오브 리버풀 이사 호지슨의 증언). 당시 이러한 현상을 해명하기 위해 제시된 다음의 주장은 신용 제도의 본질을 오도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며, 호지슨의 견해가 그 대표적인 논리이다.
‘1847년의 화폐 핍박은 수입 대금의 금 결제와 유동 자본의 고정 자본화로 인한 국내 대부 자본의 실질적 감소에서 기인했다.’는 식의 논리는 현상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유동 자본이 고정 자본으로 흡수되면서 일국의 화폐 자본이 감소한다는 주장은 그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다. 당시 주요 투자처였던 철도 건설의 사례를 보면, 교량이나 선로 구축에 금이나 은행권이 직접 소모되는 것은 아니다. 철도 주식에 투하된 화폐는 납입 자본금으로 예탁되는 동안 은행 내의 다른 예금과 동일하게 기능하며, 오히려 대부 가용 화폐 자본을 일시적으로 증대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또한 해당 자본이 실제 건설 비용으로 집행될 때에도 이는 국내에서 구매 및 지불 수단으로 유통될 뿐이다. 고정 자본의 형성이 화폐 자본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려면, 수출에 기여할 수 없는 자본의 축적으로 인해 해외로부터 유입되어야 할 현금이나 금의 유입이 차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영국의 상황은 수출품이 해외 시장에서 매각되지 못해 대규모 재고로 체화되어 있었을 뿐이다.
맨체스터 등의 상인이나 제조업자들이 영업 자본의 일부를 철도 주식에 고정하고 본업 운영을 차입 자본에 의존했다면, 이는 개별 주체의 유동 자본의 고착된 문제이지 화폐 자본 전체의 소멸로 볼 수 없다. 그들이 본업 자본을 인출하여 철도 대신 유동 자본의 범주에 속하는 광산이나 그 생산물인 철, 석탄, 구리 등에 투자했더라도 결과는 동일했다. 흉작으로 인한 곡물 수입과 그에 따른 금 유출이야말로 화폐 자본의 현실적 감소를 초래한 원인이며, 이는 철도 투기와는 무관한 독립적 사건이다.
그럼에도 당시의 증언들은 ‘거의 모든 상사가 상업 자본의 일부를 철도에 투하하며 본업을 위축시켰고, 무리한 투자의 결과, 상업 활동 유지를 위해 은행 어음 할인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었다.’ (『상업 불황, 1847-1848』: 67, 호지슨의 증언)거나 ‘맨체스터에서는 철도 투기로 인해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 (『상업 불황, 1847-1848』: 가드너의 증언, 제4884호)는 점을 지적하며 개별 자본의 유동성 위기를 화폐 자본 일반의 결핍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1847년 공황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동인도 시장에서의 막대한 공급 과잉과 동인도 무역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사기 사건이었다. 이와 더불어 여러 부수적 요인들이 동인도 무역을 주도하던 부유한 상인들의 연쇄적 몰락을 가속화했다.
‘이들 상인은 표면적으로는 막대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를 즉각 화폐로 전환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자본 전액이 모리셔스의 농장이나 염료 및 설탕 공장 등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50만 내지 60만 파운드에 달하는 부채 상환 기일이 도래했을 때, 이들에게는 어음을 결제할 가용 자산이 전무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결과적으로 이들의 사업 전체가 실체 없는 신용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음이 판명되었다.’ (『상업 불황, 1847-1848』: 리버풀의 대규모 동인도 상인 터너의 증언, 제730호)
‘1842년 8월 난징 조약 체결 직후 중국 시장의 확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확산되면서 대규모 면직물 공장들이 증설되었다.’ (『상업 불황, 1847-1848』, 가드너의 증언, 제4872호).
‘실제 거래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1844년과 1845년 중국으로 선적된 총액 중 2/3 이상이 회수되지 못했는데, 이는 주요 대금 상환 품목인 차 (茶)의 관세가 인하될 것이라는 제조업자들의 오판에서 기인했다 (제4874호).’
이 과정에서 영국 제조업자들의 특유한 신념이 드러난다.
‘해외 시장과의 무역은 상대국의 구매 능력이 아니라 수출품의 대가로 받는 물품에 대한 영국의 소비 능력에 제약된다.’
이는 빈곤한 교역 상대국이 영국 제품을 무진장하게 소비할 수 있음에도, 부유한 영국이 그 대가로 받은 생산물을 흡수하지 못해 무역이 정체된다는 아전인수 격 해석이다.
‘상품 수출에서 약 15%의 손실을 보더라도 수입한 차에 기대어 이를 상쇄하고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도리어 25-50%의 추가 손실을 보았다 (제4876호).’
‘초기에는 제조업자들이 직접 자기 계산으로 수출을 주도했으나, 위험 부담을 간파한 상인들이 제조업자들에게 직접 수출 대신 위탁 판매를 권장하며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 (제4877호).’
그러나 1857년의 공황기에는 제조업자들이 상인들로 하여금 ‘상인 자신의 계산으로’ 해외 시장에 상품을 투하하도록 유도하면서, 거액의 손실과 파산의 부담은 주로 상인 계급에 귀착되었다.
은행 제도의 보급으로 인해 종전 개인의 퇴장 화폐나 주화 예비금이었던 자산이 일정 기간 대부 자본으로 상시 전환됨에 따라 증가한 화폐 자본은 결코 생산적 자본의 증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1857년 직전 입스위치 은행에서 차지 농업가의 예금이 4배 이상 증가한 사례나, 런던 주식 은행들이 예금 이자를 지급하기 시작하며 예금액이 급증한 현상 역시 생산적 자본의 실질적 확대와는 무관하다. 생산 규모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화폐 자본의 확충은 실물 생산 자본에 비해 대부 가용 화폐 자본만을 상대적으로 과잉하게 할 뿐이며, 결과적으로 이자율 하락을 유도하는 요인이 될 뿐이다.
재생산 과정의 과도한 확장 이전인 번영기에는 상업 신용이 비약적으로 팽창하며, 이는 원활한 환류와 생산 확대를 뒷받침하는 실질적이고 ‘건전한’ 토대를 형성한다. 이 시기의 이자율은 최저 수준을 상회하나 여전히 낮은 상태를 유지한다. 사실상 낮은 이자율, 곧 대부 자본의 상대적 과잉이 산업 자본의 현실적 확대와 보조를 맞추는 유일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환류의 용이성과 규칙성이 상업 신용의 확대와 결합함에 따라, 수요의 증대에도 대부 자본의 공급이 원활히 보장되어 이자율의 급격한 상승을 저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는 자기 자본이나 준비 자본 없이 오직 화폐 신용에만 의존하여 사업을 영위하는 모험적 투기꾼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여기에 모든 형태의 고정 자본이 대대적으로 확장되고 새로운 대규모 사업체들이 우후죽순 설립되면서, 이자율은 비로소 평균 수준까지 상승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공황의 전조가 나타나는 즉시 이자율은 다시 최고점에 도달한다. 신용은 급격히 결핍되고 지불 체계가 정체되며 재생산 과정 전반이 마비되는 가운데, 유휴 산업 자본의 과잉 현상과 대부 자본의 절대적 부족 현상이 동시에 가시화된다.
그러므로 이자율에 집약된 대부 자본의 운동은 대체로 산업 자본의 운동 방향과 역행하는 궤적을 그린다. 공황 이후 경기가 ‘호전’되고 신뢰가 복원되면서 이자율이 최저 수준을 상회하되 여전히 낮은 상태를 유지하는 국면, 그리고 이자율이 최저와 최고 사이의 평균적 수준에 도달하는 국면만이 대부 자본의 과잉과 산업 자본의 강력한 팽창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반면, 산업 순환의 초기 국면에서는 낮은 이자율과 산업 자본의 수축이 병행되며, 순환의 종말 국면에서는 높은 이자율과 산업 자본의 과잉 현상이 동시에 나타난다. 경기 ‘호전기’에 확인되는 낮은 이자율은 상업 신용이 여전히 자생적 결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은행 신용에 대한 의존도가 극히 낮은 상태임을 실증한다.
산업 순환은 일단 최초의 동력이 가해지면 동일한 주기를 반복하는 구조를 지닌다. 불황 국면에서 생산은 직전 주기에 도달했던 지점은 물론, 현존하는 기술적 토대가 달성할 수 있는 수준 이하로 급격히 위축된다. 이후 전개되는 번영 국면 및 중간 단계에 이르러 생산은 해당 기술적 토대 위에서 더욱 고도화된 발전을 이룩한다. 최종적으로 과잉 생산과 투기의 국면에서는 생산력이 극한으로 발휘되며, 마침내 생산 과정이 지닌 자본주의적 한계선을 돌파하기에 이른다.
공황기에는 지불 수단의 결핍 현상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이는 상품 자체의 가치 실현 (형태 변화)보다 어음의 현금화 여부가 생존의 결정적 요인이 되기 때문이며, 특히 이 시기에는 실체 없이 전적으로 신용에만 의존해 온 기업들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1844-1845년의 은행법과 같이 경제적 실상에 무지한 불합리한 입법은 이러한 화폐 공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 다만, 어떠한 형태의 은행 입법이라 할지라도 자본주의적 생산 체계가 내포한 공황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소멸시킬 수는 없다.
재생산 과정의 전반적인 상호 유기적 연관이 신용에 기초한 생산 체제에서는, 신용이 갑자기 중지되고 현금 결제만이 강제될 때 지불 수단을 확보하려는 격렬한 쇄도와 함께 공황이 발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공황은 표면적으로는 어음을 화폐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순한 신용 · 화폐 공황의 양상을 띤다. 그러나 이러한 어음들의 대다수가 실제 매매를 체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공황의 근저에는 사회적 필요를 초과하여 비대해진 매매의 팽창이 자리 잡고 있다. 나아가 상당수의 어음은 붕괴 직전의 사기적 거래나 차입 자본에 기반한 투기 실패, 가치가 감가되어 매각이 봉쇄된 상품 자본, 또는 회수 불능 상태에 빠진 자본의 환류를 대변할 뿐이다.
여기서 명백한 사실은, 잉글랜드 은행과 같은 발권 은행이 투기꾼들의 부족한 자본을 무제한 공급하거나 감가된 상품을 명목 가치로 매입해 준다고 해서, 재생산의 확장을 강요해 온 인위적 제도 전체가 구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른바 ‘종이 세계’에서는 실질 가격과 그 구성 요소들이 은폐된 채 지금, 주화, 어음, 은행권, 유가 증권만이 가시화되기에 모든 경제적 현상이 왜곡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왜곡은 국가의 화폐 거래가 집중되는 런던과 같은 중심지에서 특히 심화되며, 이로 인해 공황의 본질적 전개 과정은 생산 중심지에서보다 훨씬 파악하기 어려운 형태로 고착된다.
공황기 산업 자본의 과잉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점은, 상품 자본이 그 내재적 속성상 이미 화폐 자본 (상품 가격으로 환산된 일정 가치액)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용 가치의 측면에서 상품 자본은 특정한 유용물들의 집합이며, 공황기에는 이러한 유용물의 절대적 과잉이 발생한다. 그러나 잠재적 화폐 자본으로의 상품 자본은 가치의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특히 공황 직전과 공황기에는 잠재적 화폐 자본으로 상품 자본의 지위가 위축된다. 상품 자본은 소유주나 채권자에게, 또는 어음 할인 및 대부의 담보로, 최초 매입 시점이나 담보 설정 당시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의 화폐 가치만을 대변하게 된다. 화폐 핍박기에 일국의 화폐 자본이 감소한다는 주장이 이러한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이는 결국 상품 가격의 일반적 하락을 의미할 뿐이다. 또한 이러한 가격 하락은 실상 이전의 이례적인 가격 등귀를 상쇄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비생산적 계급 및 고정 수입에 의존하는 계급의 소득은 과잉 생산과 과잉 투기가 수반되는 가격 등귀의 시기에도 대개 변동 없이 유지된다. 따라서 물가 상승에 따라 이들의 실질적 소비 능력은 상대적으로 감퇴하며, 총 재생산물 중 이들의 소비로 보충되던 부분의 회수 능력 또한 저하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수요는 명목상 동일한 수준을 유지할지라도 실질적으로는 감소하게 된다.
수출입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모든 국가가 순차적으로 공황에 휩쓸린다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과잉 수출과 과잉 수입이 동시에 발생하며, 이에 따라 개별 국가의 지불 차액은 예외 없이 적자로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공황의 본질적 원인이 단순한 지불 차액의 불일치에 있지 않음이 분명해진다.
영국이 금 유출로 타격을 입는 상황을 예로 들면, 표면적으로는 영국의 과잉 수입이 원인인 듯 보이나 실제로는 타국 시장 역시 영국산 상품으로 포화 상태에 있다. 곧, 타국들 또한 과잉 수입을 했거나 이를 강요받는다. 여기서 신용을 주로 제공하는 국가 (영국)와 신용에 의존해 수입하는 국가 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단, 후자는 신용으로 수입하는데, 상품이 위탁 판매로 후자에게 수출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영국의 무역 차액이 흑자임에도 즉시 결제해야 할 만기 지불들의 차액이 적자를 기록하여 공황이 영국에서 선제적으로 폭발할 수 있는데, 이는 영국이 제공한 막대한 대외 신용과 해외 투기 자본의 환류 지체에서 기인한다. 때로는 영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신용을 제공받은 미국 등지에서 공황이 촉발되기도 한다.
금 유출로 촉발된 영국의 공황은 수입업자의 파산, 해외 시장에서의 상품 투매, 외국 유가 증권의 매각 등으로 지불 차액을 강제로 청산한다. 이 과정이 완료되면 공황의 여파는 타국으로 이전된다. 일시적으로 흑자였던 타국의 지불 차액은 공황의 확산과 함께 무역 차액과의 간극이 상쇄되며, 모든 지불들의 즉각적인 결제가 요구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결국 영국에서는 금이 유입되고 타국에서는 금이 유출되는 동일한 현상이 반복된다.
결론적으로 일반적 공황 국면에서 나타나는 각국의 과잉 수입과 과잉 수출은 신용 팽창과 그에 따른 일반적 가격 등귀가 추동한 과잉 생산의 결과물이다. 한 나라의 과잉 수입이 다른 나라의 과잉 수출로 현상할 뿐, 그 실체는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적 과잉 생산에 있다.
1857년 미국에서 발발한 공황은 영국으로부터의 금 유출을 촉발했다. 그러나 미국의 거품이 붕괴함과 동시에 광황의 여파가 영국에 상륙하자, 금의 순환은 다시 미국에서 영국으로 역전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과 유럽 대륙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일반적 공황기에 상업이 발달한 모든 국가는 지불 차액의 적자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는 각국의 결제 시점이 도래함에 따라 연쇄적인 폭발 양상으로 나타난다. 영국과 같은 중심지에서 공황이 시작되면 각국의 지불 기일은 극히 짧은 기간 내로 압축되며, 이로부터 모든 국가가 동시적으로 과잉 생산 (과잉 수출)과 과잉 무역 (과잉 수입)을 자행했음이 드러난다. 모든 국가에서 발생한 가격 등귀와 신용의 과도한 팽창은 결국 동일한 붕괴가 야기한다.
이러한 각국을 순차적으로 엄습하는 금 유출 현상은 다음의 사실을 명증한다.
첫째, 금 유출은 공황의 본질적 원인이 아닌 공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단순한 현상에 불과하다.
둘째, 금 유출이 국가별로 이전되는 순서는 단지 개별 국가의 총결산 시점이 언제 도래하는지, 그리고 각국에 내재한 공황의 잠재적 요소들이 어느 시점에 분출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다.
1830년 이후 통화, 신용, 공황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아온 영국의 경제학 저술가들은 공황기의 귀금속 수출 현상을 환율의 변동이 일어남에도 순수하게 자국 내의 국지적 현상으로만 한정하는 한계를 보인다. 이들은 잉글랜드 은행의 이자율 인상이 여타 유럽 은행들의 연쇄적인 금리 인상을 촉발한다는 사실과, 영국에서 발령된 금 유출 비상 경보가 시차를 두고 미국, 독일, 프랑스로 확산되는 세계적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철저히 방관하고 있다.
‘1847년 영국의 막대한 곡물 ‘수입 채무’는 상당 부분 파산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매개로 청산되었다. 곧, 부유한 영국이 대륙과 미국에 대한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위기를 모면한 셈이다. 파산으로 처리되지 않은 잔여 채무만이 지금 수출을 거쳐 해결되었을 뿐이다.’ (『은행법, 1857』)
이러한 관점에서 영국의 은행법은 공황을 격화시키는 요인일 뿐만 아니라, 기근 시기에 곡물 수출국으로부터 곡물을 우선 사취한 뒤 그 대금 지급을 회피하는 약탈적 수단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영국발 파산에 따른 ‘채무 청산 전략’에 대응하여, 곡물 수출국들이 자국 내 물가 등귀를 방어하기 위해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는 지극히 합리적인 자구책이다. 수출국의 생산자와 투기꾼의 입장에서도 영국의 자본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해 자신의 자본을 희생하는 것보다, 자국 내 이윤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 훨씬 전략적으로 우월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상품 자본은 공황기나 일반적 불황기에 잠재적 화폐 자본으로의 가치 실현 능력을 크게 상실한다. 이러한 현상은 증권 거래소에서 화폐 자본으로 유통되는 가공 자본, 곧 이자 낳는 증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자율이 상승하면 이자 낳는 증권의 가격은 하락하며, 신용 부족에 직면한 증권 소유자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증권을 대량 매도 (방출)할 경우 그 하락 폭은 더욱 확대된다.
주식의 경우, 기업 수익의 감소나 사업 자체의 사기적 성격이 폭로됨에 따라 추가적인 가격 하락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가공적 화폐 자본의 가치 급락은 공황 중 해당 자산의 담보 능력을 현저히 약화시키며, 결과적으로 시장에서의 화폐 차입력을 극도로 위축시킨다. 증권 시세표상의 명목 가치 하락은 그것이 대표하는 현실 자본의 실체와는 직접적으로 무관할 수 있으나, 증권 소유자들의 실질적인 지불 능력에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