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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집필 배경

 


1947년, 스타인벡은 로버트 카파와 함께 소련을 직접 방문했다. 당시 미국은 반공주의가 점차 거세지던 시기였음에도, 그는 국가의 이념이 아닌 ‘소련 인민들의 삶’을 포착했다. 이 여정을 바탕으로 《러시아 일기 (1948)》를 출간하여 이념적 편견을 거두고, 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터전(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을 재건하며 살아가는 소련 대중을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그는 대공황기 미국의 자본주의가 소작농과 노동자들을 철저히 착취하고 파멸시키는 과정을 목격했다. 따라서 집단 농장이나 노동자 자치 형태를 시도하던 소련의 체계에서 자본주의 비인간성에 맞설 투쟁점을 찾고자 했다.

 

《분노의 포도》가 출간되었을 때, 미국 자본가들과 정치권은 스타인벡을 “공산주의 선전 작가”, “빨갱이”라며 거세게 비난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주와 오클라호마주의 일부 지자치에서는 “더럽고 욕설이 난무하며, 캘리포니아 농장주들을 모욕한다”는 이유로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대출 금지 처분했다.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도서관에서 불태우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반면 소련을 비롯한 진영에서는 그를 ‘미국 민중의 고통을 대변하는 양심적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가’로 높이 평가했다.

 

스타인벡은 냉전이 한창이던 1963년에도 소련과 동유럽을 다시 방문했다. 한편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를 쓰기 전,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이어지는 이주민들의 66번 국도를 직접 차를 타고 따라가며 그들의 비참한 삶을 몇 달 동안 취재했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과 대규모 모래바람 여파로 터전을 잃은 농민들의 투쟁을 그린 소설이다. 미국 대공황기 가뭄과 트랙터 중심의 대규모 기업농으로 인해 수많은 소작농이 토지에서 쫓겨났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정당방위 살인으로 복역 후 가석방되어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 톰 조드가 있으며, 그의 어머니 마 조드는 가족의 단합과 생존을 이끈다. 짐 케이시는 전직 목사 출신으로 이주민 노동자들의 현실을 깨닫고 노동 운동가로 변모한다. 샤론의 장미는 톰의 동생으로 임신 중인 젊은 여성이다.

 

가석방된 톰 조드는 술집 싸움에서 정당방위로 상대를 죽여 4년간 복역한 뒤 고향 오클라호마주 살리소로 돌아온다. 고향에 돌아오지만 가뭄과 은행의 토지 압류로 집이 황폐해진 것을 확인한다. 길에서 옛 마을의 전직 목사였던 짐 케이시와 재회하는데, 케이시는 목사직을 그만둔 상태였다. 고향 집은 이미 가뭄과 은행·대기업의 농지 압류로 파괴되어 있었다. 가족들은 이웃에 피신해 있었으며, ‘캘리포니아에 가면 일자리와 과수원이 풍부하다’는 전단지를 보고 낡은 허드슨 트럭을 개조해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나려던 차에 톰도 합류한다. 조드 일가는 낡은 트럭 한 대에 온 가족과 전 재산을 싣고 ‘젖과 굴이 흐르는 땅’이라 불리는 캘리포니아를 향해 66번 국도를 따라 고난의 여정을 떠난다.

 

조드 일가는 12명의 가족과 짐 케이시까지 총 13명이 트럭 한 대에 타고 서부로 이동한다. 고향을 떠나자마자 고된 여정 속에서 조부모가 고령과 가혹한 압박으로 길 위에서 세상을 떠나고, 톰의 형 노아는 강가에 남아 가족을 떠나며, 톰의 동생 샤론의 장미의 남편 코니마저 가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등 일부 가족도 이탈한다. 그러나 어렵게 도착한 캘리포니아는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농장주들은 전국에서 몰려든 30만 명이 넘는 이주 노동자(일명 ‘오키(Okies)’)들을 이용해 인건비를 깎고자 과잉 공급 사태를 악용했다. 그들은 임금을 형편없이 후려치고 악랄하게 착취했다. 가난한 이주민들은 밤마다 66번 국도변 임시 숙소에서 만나 음식을 나누고, 정부가 관리하는 수용소(위드패치 캠프)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치회를 구성해 경찰의 폭력 없이 위생적이고 인간적인 생활을 누리며 잠시 기대를 품기도 하지만, 일자리가 부족해 다시 민간 과수원 농장(후버빌)로 이동하게 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다시 유랑 노동길에 나선다.

 

복숭아 농장에서 일하던 중, 임금 인하에 반대하며 파업을 주도하던 짐 케이시를 만난다. 그러나 임금 인하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서 짐 케이시는 자경단원의 몽둥이에 맞아 숨을 거둔다. 케이시의 죽음에 분노한 톰은 자경단원을 살해하고 수배자가 된다. 톰은 숨어 지내다 어머니와 작별을 고한다. 톰은 케이시가 남긴 생각, “인간은 저마다의 영혼을 가진 것이 아니라, 커다란 하나의 영혼에 속해 있음”을 깨닫고 노동 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떠난다. 케이시의 뜻을 이어받아 굶주리고 억압받는 민중 편에 서서 싸우겠다고 약속하고 길을 나선다.

 

수확철이 끝나도 일거리가 없는데 비마저 쏟아져 폭우와 홍수로 수해를 입고, 거처가 물에 잠기게 된다. 영양실조로 사산한 아이를 출산한 샤론의 장미와 가족들은 피신한 헛간에서 굶어 죽어가던 한 노인과 마주한다. 샤론의 장미는 아이를 잃은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모유를 아무것도 먹지 못한 노인에게 물려 그의 목숨을 건진다.

 

소설은 톰 조드의 서사와 1930년대 미국 노동자 대중의 현실을 교차하는 구성으로 전개된다. 《분노의 포도》는 단순한 개별 가족의 수난사가 아닌, 자본주의 구조가 초래한 비극과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 계급의 의식 성장을 담아낸다. 스타인벡은 개별 농장주의 악함보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비인간성을 포착한다. 소설 초반에 은행은 “피를 마시고 돈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괴물”로 묘사된다. 소살 내 가장 유명한 묘사 중 하나는 과잉 생산으로 인한 식량 폐기 장면이다.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오렌지에는 석유가 뿌려진다. 굶주린 이들의 눈 속에 분노가 쌓여가고, 그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수확기를 향해 익어간다.”

 

이러한 자본의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앞에서 음식을 불태우는 대공황기 자본주의의 모순이 드러난다. 마 조드는 처음에는 “우리 가족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남의 아이들에게도 찌개를 나눠주고 길거리의 이웃을 품는다. 톰은 개인적인 복수나 생존을 도모하던 개인에서 전 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운동가로 거듭난다. 짐 케이시는 종교적 관념론에서 벗어나 현장 중심의 계급 의식으로 전환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위드패치 수용소에서는 경찰이나 자본가의 압제 없이 노동자들이 스스로 규율을 만들고 자치 위원회를 운영한다. 샤론의 장미는 결말에서 자신의 아이가 비록 죽었음에도 타인을 살려낸다. 이러한 장면들은 소설 전반에서 가장 강렬한 사회적 고발이 담긴 대목이자, 자본주의의 비인간성과 과잉 생산의 모순을 드러낸다.

 

짐 케이시는 자경당원에게 최후의 말을 남긴다.

 

“너희는 너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라. 너희는 사내아이 하나를 배고프게 만들고 있어. 너희는 너희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단 말이다.”

 

케이시는 자신을 공격하는 자경단원 개개인을 악마화하지 않고, 그들 역시 노동자를 억압하는 거대한 악순환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죽음은 방관자였던 톰 조드를 각성시켜, 개인의 생존에서 민중 전체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투사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도망자가 된 톰이 동굴 속에서 어머니 마 조드에게 마지막으로 작별하며 말을 남긴다.

 

“어디든 사람들이 굶주린 이들을 위해 싸우는 곳이 있다면, 나도 거기에 있을 거예요. …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음식을 먹고, 우리가 지은 집에서 살 때 … 나 역시 거기에 있을 거예요.”

 

이는 눈에 보이는 한 인간으로서의 톰 조드는 비록 사라지더라도, 압제받는 민중이 있는 모든 현장에 존재하겠다는 선언이다. 개인에서 민중 전체로 이어지는 순간이며, 톰 조드는 이러한 굵직한 인물들과의 생사를 겪으며 운동가로 성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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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가 올 때면 시동을 멈추곤 했다. 운전대를 잡기 전에 그녀의 생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소한 것까지 알고 있었기에, 찬 공기의 온도가 식고 있었다. 그녀에게 유창하게 말할 줄 몰라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말의 심연이 가라앉는다. 무작정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가끔 숨바꼭질의 술래 없는 당사자가 된다. 모두가 숨진 곳에서 바람이 조용히 떠나간다. 조금씩 힘을 잃어가는 당나귀가 가까운 마을에 목을 축이기까지, 숲속에서 피운 모닥불에는 나른한 그녀의 흐릿한 모습이 빠져나간다. 유골에 떨어진 먼지가 옷깃 사이로 떨어졌다.

 

학이 날자 모든 것이 고요했다. 한 아이가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방에 앉아 지구의 화면을 본다. 폐허가 된 병원에 있을 때도, 인적이 없어 축축한 서커스 공연장의 관객석에 홀로 앉아 있을 때도, 무작정 마을 버스를 아무거나 탈 때도, 예정되지 않은 곳으로 훌쩍 떠났다. 이 썩은 세상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면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밀려오는 폭풍의 충동을 밀어내고,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가방에 이틀치 속옷만을 챙겨 운전대를 잡았다. 비는 도로를 축축하게 젖을만큼 개운하게 훑고 지나갔다. 폐차가 예정된 구식을 끌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바람의 언덕으로 향했다.


식장에 초대받지 못한 이가 등장할 때만큼 당혹스러운 일이 있을까. 떨리고 있었다. 긴 추위는 백지로 채운 폭설이 세차게 쏟아졌다. 하얗게 번진 얼룩처럼 형체를 잃은 그림자가 떠돌고 있다. 언젠가 화실에서 채색을 하던 중 무취의 향을 맡은 적이 있다. 독특했다. 눈 덮인 고속도로 위에는 폐차가 쌓였다.


그녀의 자서전에는 정작 그의 이름이 쓰여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글로는 차마 담을 수 없는 상심의 세월이 그림자처럼 번졌다. 마치 꺼져가는 불꽃을 억지로 되살려보려는 안간힘처럼, 그의 행방은 부재중 표시를 남겼다. 오늘 아침에는 아무도 깨워주지 않은 깊은 잠이 들었다. 웃고는 있지만 속이 타는 영정의 분신처럼 그는 사라졌다. 다시 시동이 걸렸다. 내내 고속도로를 달리고는 있지만, 딱히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 계속 바퀴만 굴리고 있다. 바퀴의 도르래가 심장 주위로 낙하할 때면 낭떠러지로 추락을 준비하는 중이다. 무신경함의 극치가 속도를 추월했다.


떨어진 차량은 절벽의 험준한 낭떠러지로 굴러갔다. 나뭇가지들이 날카롭게 송곳처럼 온몸을 찔렀다. 창백한 상태로 눈을 떴다. 마비가 되었지만 의식은 눈처럼 하얗게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폭설로 폐차가 쌓인 도로에는 창백한 사람들이 일제히 누워 있다. 그중에 하나였지만, 비바람처럼 세차게 몰아치는 폭설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근처에 천막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차량 안은 무척 적막했다. 창문 틈 사이로 거센 바람이 스며들었다. 뒤집힌 차량에 바람이 샜지만 막을 도리조차 없었다. 깜빡이만 똑딱거렸다. 멀리서 외투를 입은 한 아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는 뒤집힌 차량 위로 올라가 등유를 부었다. 차량에 불이 붙었다. 거센 불길이 폭설을 뚫고 있었다. 차량은 금세 불이 붙었다. 사방에서 경고등이 울렸다. 눈 덮인 폐차들 속에서 전조등이 깜빡거렸다.   


눈앞이 아득했다. 험준한 등고선을 따라 높은 시내가 보이는 곳까지 올라갔다. 물론 그녀는 이제 없었다. 잠잠해진 심연의 눈을 따라갔다. 그 언덕의 폭풍에 휩싸여 순식간에 행방불명이 된다면 그대로 바다가 인도해줄 것이라 여겼다. 차라리 그렇게 안도했다. 이제는 안중에도 없던 지하실의 계단으로 차츰 내려갔다. 구세계가 끝나듯, 여정에 지친 당나귀가 막사에서 잠을 청하고, 그는 바람의 언덕에서 숨을 거두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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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왓킨스, 《코뮌(파리, 1871), 2000년 작》은 1871년 세계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자치 정부였던 ‘파리 코뮌’의 탄생과 몰락을 다룬 작품이다. 약 5시간 45분 (345분)에 달하는 긴 상영 시간 동안 영화는 단순한 역사극에 그치지 않고, 파리 코뮌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현대 매체 간의 관계를 파격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영화는 보불전쟁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패배 직후, 피폐해진 프랑스 민중의 삶에서 출발한다. 1871년 3월 18일, 티에르가 이끄는 프랑스 임시정부(베르사유)는 파리 인민들로 구성된 국민방위대의 대포를 압수하려 한다. 그러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여성들과 민중이 이를 저지하고, 군대가 발포를 거부하면서 봉기가 시작된다. 위협을 감지한 임시정부가 베르사유로 도피하자 파리 인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거를 거쳐 자치 정부인 ‘파리 코뮌’을 선포한다.

 

코뮌 정부는 집세 면제, 제빵 노동자의 야간 작업 금지, 무상 및 종교 분리 교육, 여성 권리 향상, 공장 노동자 공동 운영 등 사회 혁명 정책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동시에 전시 상황에서의 행정적 미숙함, 지도부 내 이념적 분열, 여성 참여에 대한 일부 보수적 한계 등 내부적인 균열도 함께 드러낸다.

 

이후 프로이센과의 협력으로 전열을 정비한 베르사유 정부군이 파리로 진격해 들어온다. 5월 21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 ‘피의 일주일’ 동안 코뮌 인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격렬히 저항하지만, 압도적인 무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결국 약 3만 명에 달하는 파리 인민과 노동자들이 무차별 학살당하면서, 파리 코뮌은 72일간의 역사를 뒤로한 채 비극적으로 막을 내린다.

 

이 영화의 특징은 1871년이라는 역사적 현장에 ‘현대 방송 매체’의 존재를 개입시킨 시대착오적 연출이다. 극 중에는 두 개의 방송 취재진이 등장한다.

 

코뮌 TV (민중 방송): 마이크를 들고 바리케이드 위를 직접 누비며 여성, 어린이, 가난한 노동자, 군인들의 목소리와 열망을 대담 형식으로 담아낸다.

 

베르사유 TV (기득권 방송): 정제된 방송실에서 고급 정장을 입은 보도 진행자와 취재원이 코뮌을 폭도와 무정부주의자로 몰아가며 선전 선동과 가짜 뉴스를 보도한다.

 

19세기 역사극에 현대의 촬영 장비와 뉴스 진행자가 등장하는 이 구조는 대중 매체가 역사를 다루고 편견의 틀을 씌우는 방식을 풍자했다.

 

또한 영화는 장시간 연속 촬영 방식을 활용해 카메라로 파리의 골목과 바리케이드 사이를 천천히 훑고 다닌다. 345분이라는 방대한 상영 시간 덕분에 주인공 몇 명에게만 조명이 집중되지 않고, 거리의 아이들, 방직 공장 여성, 정부군 병사 등 모든 출연진에게 고루 발언권이 주어진다. 관객은 6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72일간의 역사를 마치 ‘실시간 생중계’로 목격하는 듯한 깊은 생동감에 빠져든다.

 

무엇보다 서늘한 충격을 주는 대목은 화면 속 열기 외적으로 등장하는 검은 자막이다. 코뮌 인민들이 화면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을 때,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떠오른다.

 

“이 증언에 나오는 21세 여성 노동자는 5월 24일 베르사유 정부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이 병사는 진압 후 신원 미상 상태로 대량 매장지에 묻힌다.”

 

민중의 모습과 그들의 비극적 최후를 미리 알리는 자막의 대비는 관객에게 깊은 충격을 선사한다.

 

감독은 전문 배우 대신 약 300명의 비전문 일반인을 기용했다. 이들은 단순한 보조 출연자가 아닌 영화의 공동 창작자였다. 신문 광고, 전단지, 사회 단체 등을 거쳐 모집된 출연진은 실제 선반공, 교사, 우체부, 간호사, 노조 활동가, 알제리·아프리카계 이민자, 실업자, 학생 등 현실에서 약자나 노동자 계급으로 살아가는 프랑스 인민들이었다. 특이한 점은 베르사유 정부군이나 기득권층 역할을 맡은 사람들 역시 실제 보수적 정치 성향을 가진 일반인이나 언론인들을 모집했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촬영 전 수개월 동안 역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파리 코뮌 학습 토론회에 참여했다. 각자 맡은 인물의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연구한 이들은 정해진 대본을 외우는 대신, 감독이 던져주는 특정한 상황 (“빵 값이 올랐다”, “정부군이 진격해 온다”) 속에서 자신이 연구한 인물로서 자발적인 즉흥 연기를 펼쳤다. 영화 촬영장은 제작진이 완벽히 통제하는 연기 공간에 머물지 않고, 출연진들이 실제로 화를 내고 상대의 말을 끊으며 논쟁하는 하나의 ‘정치적 공론장’으로 기능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배우들은 ‘4차원의 벽’을 깨고 1871년의 역할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그리고 촬영기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진짜 모습 (현대 프랑스의 노동자, 이민자, 학생 등)으로 돌아와 오늘날 사회 문제 (세계화, 대중 매체 독점 및 왜곡, 인종차별, 신자유주의 노동 조건, 교육 문제, 실업난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저는 사실 알제리 출신의 이민자 노동자입니다. 제가 맡은 1871년 노동자의 빈곤은, 2000년대 프랑스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저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현대 출연진의 실제 삶이 한 화면에서 교차하는 순간, 영화는 단순한 연극에 머물지 않고 시대를 가로지르는 기록극으로 전환된다.

 

이들의 동지애는 촬영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완성도 높은 민중극을 만들어낸 출연자들은 영화 완성 후 대형 매체나 배급사가 영화를 외면하려 하자, 직접 영화 수입/배급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자체 상영회를 열고 언론 매체 비판 운동을 이어갔다.

 

《코뮌》은 단순히 지나간 옛 역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역사적 사건과 현대적 매체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불꽃으로 대중 매체의 독점적 편견의 틀을 고발하며, “150년 전 민중들이 피 흘려 싸웠던 가치들이 과연 지금은 이루어졌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345분 동안 관객을 투쟁의 장벽 한가운데로 불러앉히는 이 혁명적인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민중의 열망은 왜 역사 속에서 지워졌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스스로 되묻게 만든다.



<《코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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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흔적을 찾아서


문득 전라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경상도 일대는 자주 방문했지만, 전라도 광주와 해남 땅긑마을로 향하는 길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일주일 남짓의 여정을 계획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김남주 시인의 생가와 묘역을 직접 둘러보고 싶어서였다.

 

여정의 시작은 시인의 생가가 있는 해남이었다. 작은 고속버스가 드물게 다니는 해남의 한 시골 마을. 배차 간격이 긴 버스를 기다리기보다 택시에 올라타 기사님께 김남주 시인의 생가로 가달라고 부탁드렸다. 기사님은 “요즘 같은 세상에 젊은이가 김남주 시인을 찾아가다니 대단하다”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차를 몰았다.

 

도착한 곳은 정말 논밭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그 한가운데 작은 초가집 한 채가 덜렁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 앞에 서 있는 시인의 동상은 무엇보다 우직하고 당당했다. 생가 옆에 무성하게 자란 대나무 숲, 그리고 그가 겪었던 오랜 옥고의 세월을 증언하듯 보존되어 있던 감옥의 흔적을 마주하니 묵직한 여운이 밀려왔다. 치열했던 그의 땀이 생생했다.

 

광주로 이동하여 찾아간 곳은 5·18민주묘지였다. 여러 민주화 주역들이 안장된 그곳에서 안내원분의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군부 독재 시절의 잔혹한 진압과 희생자들, 그리고 아직도 신원을 찾지 못한 채 남아있는 수많은 비극의 참상을 접했다. 예전에 서울에서 방문했던 ‘서대문 형무소’나 ‘대공분실’과는 또 다른 무게감이었다. 화면으로 접할 때는 재를 뿌리는 추모 공간 정도로만 생각했으나, 직접 눈으로 확인한 그 넓은 땅 전체가 묘역이라는 점이었다. 세대 간의 시간 차이로 그 시절을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역사의 숨결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이어 김남주 시인의 기념관이 있다는 모 대학교 인문 강당을 찾았다. 교무실에 사정을 전하여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생전에 출판된 그의 시집들과 보존된 기록물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고, 시인의 발자취를 다시 한번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해남으로 다시 내려가 둘러본 땅끝 마을의 바다는 아득할 만큼 넓었다. 케이블카 대신 경사를 따라 직접 걸어 오르며 마주한 바다, 그리고 유리가 깔린 전망대 바닥 너머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행군 군인들을 촬영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스산하리만치 긴 버스 대기 시간과 드문 배차 간격을 겪으며, 이곳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들과 학생들의 정주 여건이 쉽지만은 않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시 광주 시내로 돌아와 5·18 유적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당시 헬기 사격의 총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을 올려다보았을 때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번 여정은 겉으로 보기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유적지를 둘러본 역사 탐방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여행은 오롯이 김남주 시인을 기리고 그의 발자취를 추적한 여정이었다.

 

광주와 해남은 여전히 깊은 여운을 준다. 그 여운이란 단순히 ‘민주화’라는 거창한 정치적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우직한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혁명의 숨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김남주 시인 동상>



<광주 내 5·18 추념탑>



<광주 5·18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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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니셰프스키의 생애

 

체르니셰프스키는 사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신학 대신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해 유물론 철학과 공상적 사회주의를 흡수했다. 이후 당대 최고의 진보 잡지인 『현대인』의 편집을 맡아 사회 비판적 논설과 비평을 쏟아내며 청년들의 사상적 지주로 떠올랐다. 1861년 러시아 농농해방령이 농민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자, 혁명적 농민 운동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1862년 제정 러시아 당국에 체포되었다.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 『무엇을 할 것인가?』 (1863)를 집필했다. 1864년 ‘시빌 공판 (가짜 사형 집행 의식)’을 거쳐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베리아에서 고된 유배 및 강제 노동 생활을 했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후 1883년에야 고향 사라토프 부근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소설은 감옥에 갇혀 있던 체르니셰프스키가 집필한 작품으로, ‘새로운 사람들(신인류)’이라 불리는 급진적 진보 지식인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노동 조합 공동체를 다룬다. 주인공 베라 파블로브나는 속물적이고 가부장적인 부모의 압박과 원치 않는 정략결혼 위기에 처해 있다. 이때 그녀의 남동생 가정교사이자 의학도인 드미트리 로푸호프가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선다. 로푸호프는 베라에게 법적·사회적 독립을 제공하기 위해 위장 결혼을 제안하고, 두 사람은 형식적인 부부가 되어 부모의 집을 떠난다.

 

독립한 베라는 경제적 자립을 위해 여성 노동자들을 모아 봉제 작업장 (협동조합)을 설립한다. 이 작업장은 기존 자본주의 공장과 달리, 모든 노동자가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고 경영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구조이다. 베라는 단순한 경제적 자립에서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자존감을 되찾는 공동체 공간으로 발전시킨다.

 

소설에는 베라가 꾸는 네 가지 주요 꿈이 등장한다. 

 

첫 번째 꿈에서 베라는 어둡고 습기 찬 지하실에 갇혀 다리가 마비된 상태로 누워 있다. 이때 신비의 여신 (‘민중에 대한 사랑’ 혹은 ‘해방’)이 나타나 그녀의 손을 잡자, 베라의 마비가 풀리고 지하실 밖으로 나와 들판을 달리게 된다. 여신은 베라에게 “사람들을 감옥에서 풀어주라”고 당부한다. 이 꿈에서 베라는 억압에서의 해방과 자립을 깨닫는다.

 

두 번째 꿈에서 로푸호프와 베라가 들판을 거닐고 있다. 들판에는 이삭이 자라고 있지만, 관리되지 않아 황폐해진 땅과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이 대비되어 나타난다. 꿈속에서 이성적 판단과 자연적 순리가 대화를 나누며, 어째서 어떤 땅은 황폐하고 어떤 땅은 결실을 맺는지를 설명한다. 이 꿈에서 자연과 이성의 조화를 이해한다.

 

세 번째 꿈에서 베라는 자신의 비밀 일기장을 읽어주는 여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일기장에는 베라가 자신도 모르게 숨겨왔던 진심이 적혀 있다. 베라는 자신을 구출해 준 첫 남편 로푸호프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은 사상적 동반자로서의 감정이자 부채의식일 뿐 성적·감정적 울림을 주는 ‘진정한 연애 감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꿈에서 베라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네 번째 꿈에서 베라는 여신의 안내를 받아 인류 역사 속 여성의 지위 변화를 살펴본 뒤, 미래의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목격한다.

 

베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로푸호프의 친구이자 의사인 알렉산드르 키르사노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보통의 통속 소설이라면 질투와 갈등이 일어났겠지만, 로푸호프는 ‘합리적 이기주의’ 철학에 따라 행동한다. 소유욕이나 질투로 베라를 구속하는 것은 모두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로푸호프는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자살한 것처럼 위장한 뒤 미국으로 떠난다. 이후 베라와 키르사노프는 정식으로 연인이 되어 서로를 존중하는 사상적 동반자이자 연인으로 살아간다.

 

소설 중반에 등장하는 라흐메토프는 일반적인 ‘새로운 사람’에서 ‘헌신적인 혁명가’의 전형이다. 그는 오직 민중의 해방과 혁명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사사로운 욕망, 편암함, 사랑까지 포기한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 뾰족한 못이 박힌 침대에서 자는 등 극단적인 금욕주의와 훈련을 거친다. 작품 전체에서 비중은 크지 않지만, 당대 러시아 청년들에게 가장 강력한 혁명적 모범을 제시한 인물이다.

 

훗날 미국에서 돌아온 로푸호프는 다른 여성과 결혼하여 베라·키르사노프 부부 근처로 이사한다. 두 부부는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며, 이상적인 공동체와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 (1863)는 단순히 한 편의 문학 작품에서 19세기 러시아 사회를 흔들고 러시아 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가장 강력한 정치·사회적 선언문으로 평가받는다.

 

새로운 사람들 (신인류)라는 행동하는 지식인상을 제시하여 소설은 관념적 논쟁에만 머물던 기존 1840년대 세대 (‘잉여인간’)와 달리, 이성과 행동으로 삶을 주도하는 1860년대 진보 청년층 (‘신인류’)의 모델을 제시했다. 베라, 로푸호프, 키르사노프 같은 인물들에서 이기주의와 타인에 대한 봉사가 대립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합리적 이기주의’를 보여주었다. 금욕과 철저한 자율 훈련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라흐메토프는 당대 청년들에게 ‘민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전천후 혁명가’의 완벽한 표상이 되었다.

 

가부장적 억압이 극심했던 당대 러시아 사회에서 이 소설은 여성의 인권과 경제적 자립을 최초로 정면 다룬 작품 중 하나이다. 부모의 압제나 정략결혼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방 수단으로 ‘위장 결혼’을 제시했다. 베라가 만든 봉제 작업장은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착취 없이 이익을 나누는 생산자 협동조합이자 여성이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공간이었다. 이는 러시아 여성 운동과 초기 사회주의 운동의 시험대가 되었다.

 

이 소설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러시아 혁명가들의 ‘지침서’ 역할을 했다. 1870년대 “민중 속으로 (브나로드)”를 외치며 농촌으로 내려간 수많은 청년들이 이 책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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