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연구 대상에 대한 이전의 서술

 

. 중농학파

 

케네의경제표는 국민적 생산의 연간 성과(특정 가치를 대표)가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는 전제하에서 단순 재생산(종전 규모 재생산)이 진행되도록 유통에서 어떻게 분배되는지를 핵심적으로 드러낸다. 생산 기간의 출발점은 전년도 수확이 적절하다. 무수한 개별 유통 행위는 그 특징에 따라 사회적 총량 운동, 곧 기능상 규정된 주요 경제 계급 간 유통으로 총괄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총생산물의 일부(다른 모든 부분과 마찬가지로 사용 대상이며 지난해 노동의 새로운 성과)가 동일한 현물 형태로 다시 나타나는 옛 자본 가치의 보유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유통되지 않고 생산자인 차지 농업가 계급의 수중에 남아 자본으로의 임무를 재개한다. 케네는 연간 생산물의 이 불변 자본 부분에 부당한 요소들을 포함시키지만, 인간 노동 투하 분야 중 농업만이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는 그의 좁은 지적 시야(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농업만이 진실로 생산적인 투자 분야) 덕분에 오히려 요점을 정확히 포착한다. 경제적 재생산 과정은 특수한 사회적 성격과 관계없이 이 영역(농업)에서 언제나 자연적 재생산 과정과 얽혀 있다. 자연적 재생산 과정의 명료한 조건들은 경제적 재생산 과정의 조건들을 명확히 밝히며, 유통에서 비롯되는 환상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의 혼란을 제거한다.

 

학설 체계의 상표(명칭)가 여타 물품의 상표와 구별되는 점은, 구매자뿐 아니라 때때로 판매자까지도 기만한다는 것이다. 케네 자신과 그의 직접적인 제자들은 봉건적 간판(중농주의)을 그대로 신봉하였으며, 오늘날 교수들까지도 그러하다. 그러나 중농주의는 사실상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파악이다. 산업 자본의 대표자인 차지 농업가 계급이 전체 경제 운동을 주도한다. 농업은 자본주의적으로, 곧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의 대규모 기업 형태로 운영되며, 토지의 직접적 경작자는 임금 노동자이다. 생산은 사용 대상뿐 아니라 가치도 창출하며, 생산의 추진 동기는 잉여 가치의 획득이다. 잉여 가치는 생산 분야에서 발생하지 유통 분야가 아니다. 유통을 매개로 하는 사회적 재생산 과정의 담당자로 나타나는 세 계급 중, ‘생산적노동의 직접적 착취자이자 잉여 가치의 생산자인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는 잉여 가치의 단순한 취득자(지주)와 구별된다.

 

중농주의의 자본주의적 성격은 이미 그 전성기에 랭게와 마블리의 반대뿐 아니라, 자유로운 소토지 소유 옹호자들의 반대까지 초래하였다.

 

 

재생산 과정 분석에서 애덤 스미스의 퇴보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는 케네의 정당한 분석을 헛되이 가공하여, 예를 들어, 케네의 최초의 투자해마다의 투자고정자본과 유동자본으로 일반화했을 뿐 아니라, 곳곳에서 완전히 중농학파적 오류에 다시 빠진다. 가령, 차지 농업가가 다른 종류의 자본가보다 더 큰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같은 양의 자본으로 차지 농업가의 자본보다 더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운동시키는 것은 없다. 그의 일꾼뿐 아니라 역축도 생산적 노동자이다. (노동자에 대한 기분 좋은 인사!). 농업에서 자연은 인간과 더불어 노동한다. 자연의 노동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으나, 그 생산물은 가장 비싼 일꾼의 생산물처럼 가치를 갖는다. 농업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연의 비옥도를 증가시키는 것(그런 일도 하긴 하지만)이 아니라, 자연을 인간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작물 생산에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찔레와 가시덤불로 뒤덮인 들판도 훌륭하게 경작된 포도밭이나 곡물 생산지와 같은 양의 야채를 생산할 때가 종종 있다. 재배와 경작은 자연의 활발한 생산력을 촉진하기보다 종종 규제한다. 인간 노동이 다 끝난 뒤에도 많은 일은 자연의 노동으로 남는다. 따라서 농업에 사용되는 노동자 · 역축 (!)은 제조업에 고용된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그들 자신의 소비나 그들을 고용하는 자본에 해당하는 가치를 소유자의 이윤과 함께 재생산하며, 그보다 훨씬 큰 가치를 재생산한다. 이는 그들이 차지 농업가의 자본과 이윤 외에 지주의 지대를 규칙적으로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이 지대는 지주가 차지 농업가에게 빌려준 자연력의 생산물로 간주할 수 있다. 지대는 토지의 힘, 곧 토지의 자연적 또는 인공적 비옥도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진다. 지대는 인간의 노동으로 여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제외하거나 보상한 뒤 남는 자연의 노동이다. 그것은 총생산물의 1/4보다 작은 경우가 거의 없고, 종종 1/3도 넘는다. 제조업에 고용된 동일한 양의 생산적 노동은 결코 그렇게 많이 재생산할 수 없다. 제조업에서는 자연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인간이 모든 것을 수행한다. 따라서 재생산은 언제나 그것을 행하는 인간들의 힘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농업에 사용된 자본은 제조업에 사용된 동일 규모의 자본보다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가동시킬 뿐 아니라, 그것이 고용하는 생산적 노동량에 비해 훨씬 큰 가치를 그 나라의 토지·노동의 연간 생산물, 곧 주민의 진정한 부와 수입에 부가한다.’

 

[국부론(): 445-446]. (강조는 마르크스)

 

스미스는 제2편 제1장에서 씨앗의 가치 전체도 적절하게 고정 자본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 자본 = 자본 가치이며, 자본 가치는 고정적형태로 존재한다. ‘씨앗은 토지와 창고 사이를 왕복하지만 결코 소유주를 바꾸지 않으며, 따라서 유통한다고 말할 수 없다. 차지 농업가는 씨앗의 판매로부터가 아니라 증식으로부터 이윤을 획득한다.’ (306). 이 관점의 편협성은, 스미스가 케네와 달리 불변 자본의 가치가 갱신된 형태로 재현하는 것을 간과하여 재생산 과정의 중요한 측면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또한, 여기에서 유동 자본과 고정 자본에 대한 그의 또 하나의 (그릇된) 구별을 예증할 뿐이다. 스미스가 최초의 투자해마다의 투자고정 자본유동 자본으로 번역한 것 중 진보적인 측면은 자본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중농주의자들이 농업분야에 특별히 적용한 것에서 해방시켜 일반화했다는 점이다. 반면, 퇴보적인 측면은 고정유동을 결정적인 구별이라고 이해하며 고집했다는 데 있다.

 

. 애덤 스미스

 

1. 스미스의 일반적 관점

 

스미스는 제1편 제664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회에서 모든 상품의 가격은 결국 이 세 부분(임금 · 이윤 · 지대) 중 어느 한 부분 또는 전부로 분해되며, 모든 발전된 사회에서는 이 세 부분 모두가 또는 많게 또는 적게 압도적 다수의 상품들의 가격에 구성 부분으로 들어간다.’

 

67쪽에서는 이어서,

 

임금 · 이윤 · 지대 세 가지는 모든 수입과 모든 교환 가치의 최초의 원천들이다.’

 

우리는 뒤에서 상품들의 가격또는 모든 교환 가치의 구성 부분에 관한 스미스의 학설을 상세하게 연구한다. 스미스는 또다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모든 특수한 상품 각각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므로, 한 나라의 토지 · 노동의 연간 생산물 전체를 구성하는 모든 상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연간 생산물의 가격 또는 교환 가치 전체는 세 부분으로 분해되어 그 나라의 각 주민들 사이에 노동 임금 · 자본 이윤 · 토지 지대로 분배된다’ (348).

 

스미스는 이처럼 개별 상품의 가격과 한 나라의 토지 · 노동의 연간 생산물의 가격 또는 교환 가치 전체를 임금 노동자, 자본가 및 토지 소유자를 위한 수입의 세 원천인 임금 · 이윤 · 지대로 분해한 뒤, 하나의 우회로를 거쳐 제4의 요소, 곧 자본이라는 요소를 남몰래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총수입과 순수입을 구별하면서 수행된다.

 

한 나라의 모든 주민의 총수입은 그들의 토지 · 노동의 연간 생산물 전체를 포함한다. 순수입은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유지비를 뺀 다음 그들에게 남는 부분이다. 곧 자본을 잠식하지 않고 그들이 직접적 소비를 위한 재고로 넣을 수 있는 부분이며, 생활 수단 · 편의품 · 향락품 등에 지출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진정한 부 역시 총수입이 아닌 순수입에 비례한다’ (349).

 

이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첫째, 스미스는 여기에서 명백히 단순 재생산만을 다루고 있으며, 확대 재생산 또는 축적은 다루지 않는다. 그는 기능 자본의 유지를 위한 지출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수입은 연간 생산물(사회의 연간 생산물이든 개별 자본가의 연간 생산물이든) 중에서 소비 재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부분과 동등하다. , 이 재원의 규모는 기능 자본을 잠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개별적 생산물과 사회적 생산물의 가치 일부는 임금 · 이윤 · 지대로 분해되지 않고, 자본으로 분해된다.

 

둘째, 스미스는 총수입순수입의 구별이라는 언어유희로부터 자기 자신의 이론에서 벗어나고 있다. 개별 자본가든 자본가 계급 전체든 또는 이른바 국민이든, 생산에서 소비된 자본 대신에 상품 생산물을 얻는다. 이 상품 생산물의 가치(생산물 자체의 해당 부분들로 표시될 수 있다)는 한편으로 소비된 자본 가치를 보충하며, 따라서 소득, 또는 글자 그대로 수입(revenue)을 형성한다. 그러나 (주의하라) 이는 자본 수입 또는 자본 소득을 형성할 뿐이다.

 

다른 한편에서 상품 생산물의 가치는 그 나라의 각 주민들 사이에 노동 임금 · 자본 이윤 · 토지 지대로 분배되는가치 구성 부분들, 곧 일상생활에서 소득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룬다. 따라서 전체 생산물의 가치(개별 자본가의 것이든 나라 전체의 것이든)는 누구를 위한 소득을 형성하지만, 한편에서는 자본 소득을, 다른 한편에서는 이와는 다른 수입을 형성한다. 이처럼 상품 가치를 그 구성 부분으로 분석할 때 제거되었던 것(자본)이 뒷문으로부터(수입이라는 말의 두 가지 의미로부터) 다시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취득될 수 있는 것은 다만 생산물 중에 이미 있는 가치 구성 부분들뿐이다. 자본이 수입으로 취득된다면, 자본은 미리 지출되었음에 틀림없다.

 

스미스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적인 이윤율의 최저 한도는 자본의 사용이 피하기 어려운 우연한 손실을 보상하는 데 충분한 것보다 항상 커야만 한다. 오직 이 초과분만이 순이윤 또는 명백한 이윤이다.’ (어떤 자본가가 이윤을 자본의 필요한 지출이라고 이해하겠는가.) ‘이른바 총이윤은 이 초과분뿐 아니라 위와 같은 특별한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유보된 이윤을 포함하고 있다’ (125).

 

그러나 이는 잉여 가치 일부(총이윤의 일부로 간주)가 생산을 위한 보험 재원을 구성함을 의미할 뿐이다. 잉여 노동의 일부가 이 보험 재원을 창출하며, 그 범위 내에서 잉여 노동은 직접적으로 자본(재생산을 위해 예정된 재원)을 생산한다. 고정 자본 등의 유지비에 관하여 말하자면, 소비된 고정 자본을 새로운 고정 자본으로 보충하는 행위는 새로운 자본 투하가 아닌 옛 자본 가치를 새로운 형태로 갱신하는 것에 불과하다. 스미스가 유지비에 포함시킨 고정 자본의 수리비는 투하 자본 가격의 일부를 이룬다. 자본가는 이를 한꺼번에 투하할 필요 없이, 자본 기능 기간 동안 다만 점차적이고 필요에 따라, 이미 획득한 이윤 중에서 투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이 이윤의 원천을 전혀 변경시키지 못한다. 이 이윤에 해당하는 가치 구성 부분은 노동자가 보험 재원뿐 아니라 수리 재원을 위해서도 잉여 노동을 제공함을 시사할 따름이다.

 

스미스가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순수입(곧 특수한 의미의 수입)에서는 고정 자본 전체가 제외되어야 하며, 또한 유동 자본 중 고정 자본의 유지 · 수리 · 갱신에 필요한 부분도 전부 제외되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소비 재원으로 예정된 현물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자본이 순수입으로부터 제외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고정 자본의 총 유지비는 사회의 순수입에서 분명히 제외되어야 한다. 유용한 기계 · 생산 도구 · 수익성 있는 건물 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원료나, 이러한 원료를 적절한 형태로 가공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생산물 역시 순수입의 일부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노동의 가격은 순수입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 고용된 노동자는 그 임금의 모든 가치를 직접적 소비를 위한 재고에 지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노동에서는 노동 가격(곧 이 노동에 지불되는 임금)과 노동 생산물(곧 이 노동이 체화된 것) 모두가 직접적 소비를 위한 재고로 들어간다. 노동 가격은 노동자의 직접적 소비를 위한 재고로 되고, 노동 생산물은 다른 사람들의 직접적 소비를 위한 재고로 된다. 다른 사람들의 생활 수단 · 편의품 · 향락품은 이들 노동자들의 노동으로부터 증가한다’ (349-350).

 

스미스는 여기에서 생산 수단의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소비 수단의 직접적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 사이에 매우 중요한 구별에 직면한다. 전자의 상품 생산물 가치는 임금 총액(곧 노동력 구입에 투하된 자본 부분)에 해당하는 가치 구성 부분을 포함하며, 이 가치 부분은 현물로는 이 노동자들로부터 생산된 생산 수단의 일정한 부분으로 존재한다.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받은 화폐는 그들에게 수입을 이루지만, 그들의 노동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나 소비될 수 있는 생산물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생산물 자체는 연간 생산물 중 사회적 소비 재원(오직 이것으로부터 순수입이 실현될 수 있다)을 제공하는 부분의 어떤 요소도 이루지 않는다. 스미스가 여기에서 덧붙이지 못한 것은, 임금에 대하여 타당한 것이 생산 수단의 가치 중 (제일 먼저) 산업 자본가의 수입을 이루는 구성 부분(잉여 가치로 이윤과 지대라는 범주에서)에 대해서도 타당하다는 점이다. 이 가치 구성 부분들도 생산 수단으로, 곧 소비될 수 없는 것으로 존재한다. 이것들은 화폐화된 뒤에야 비로소 제2종류의 노동자들로부터 생산된 소비 수단 중에서 그것들의 가격에 상당하는 분량을 끌어낼 수 있으며, 그것을 그 소유자들의 개인적 소비 재원으로 이전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스미스는 더욱이 다음의 것을 인정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 해마다 생산되는 생산 수단의 가치 중, 이 생산 분야 안에서 기능하는 생산 수단(생산 수단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생산 수단)의 가치에 해당하는 부분, 따라서 여기에서 사용되는 불변 자본의 가치에 해당하는 가치 부분은, 그것이 있는 현물 형태로부터뿐 아니라 그것의 자본으로의 기능으로부터도, 수입을 이루는 어떤 가치 구성 부분에서도 절대적으로 제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2종류의 노동자(곧 직접적으로 소비 수단을 생산하는 노동자)에 관한 스미스의 규정은 완전히 정확하지 않다. 그는 이 노동에서는 노동의 가격과 생산물 모두가 다 같이 직접적 소비 재원으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노동 가격’(곧 임금으로 받는 화폐)노동자의 직접적 소비를 위한 재고로 되고, 노동 생산물은 다른 사람들의 직접적 소비를 위한 재고로 된다. 다른 사람들의 생활 수단 · 편의품 · 향락품은 이들 노동자들의 노동으로부터 증가한다.’ 그러나 노동자는 그의 노동의 가격’, 곧 그의 임금으로 지불되는 화폐를 먹고 살 수는 없다. 그는 이 화폐로 소비 수단을 구매하면서 그 화폐를 실현한다. 이 소비 수단의 일부는 그 자신이 생산한 상품 종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의 생산물이 노동 착취자의 소비로만 들어가는 그러한 상품 종류일 수도 있다.

 

스미스는 이처럼 고정 자본을 한 나라의 순수입에서 완전히 제외한 뒤,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정 자본의 총 유지비가 사회의 순수입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유동 자본의 유지비는 그렇지 않다. 유동 자본을 구성하는 네 가지 부분들, 곧 화폐 · 식료품 · 원료 · 완제품 중 뒤의 세 가지는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규칙적으로 유동 자본에서 빠져나와 사회의 고정 자본에 편입되거나 직접적 소비를 위한 재고로 들어간다. 이러한 소비할 수 있는 재화 중 고정 자본의 유지에 사용되지 않는 부분은 전부 소비용 재고로 되어 사회의 순수입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유동 자본의 세 구성 부분을 유지하는 데는 고정 자본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사회의 순수입으로부터 연간 생산물의 어떤 부분도 빼내지 않는다’ (351-352).

 

유동 자본 중에서 생산 수단의 생산을 위해 기여하지 않는 부분이 소비 수단의 생산으로(연간 생산물 중 사회의 소비 재원을 이룰 부분으로)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은 동어 반복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다음에 바로 이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의 유동 자본은 이 점에서 개인의 유동 자본과 다르다. 개인의 유동 자본은 전혀 그의 순수입을 이루지 않으며, 그의 순수입은 오직 이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개인의 유동 자본은 그가 속하는 사회의 유동 자본의 일부이지만, 그것은 자기의 순수입의 일부를 결코 구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상인의 상점에 있는 모든 재화는 결코 자기 자신의 직접적 소비를 위한 재고로는 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의 직접적 소비를 위한 재고로 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원천에서 얻은 수입으로부터, 상인의 자본이나 그들 자신의 자본을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고, 그 재화들의 가치를 이윤과 함께 상인에게 규칙적으로 보상해 준다’ (352).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알게 된다.

 

첫째, 고정 자본과 그것의 재생산 · 유지(스미스는 기능을 추가하지 않았음)에 필요한 유동 자본뿐 아니라, 소비 수단 생산에서 기능하는 유동 자본 모두 각 개별 자본가의 순수입에서 제외되며, 그의 순수입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이윤뿐이다. 따라서 그의 상품 생산물 중 자본을 보충하는 부분은 그의 수입을 이루는 가치 구성 부분으로 분해될 수 없다.

 

둘째, 각 개별 자본가의 유동 자본은 사회의 유동 자본의 일부를 형성한다. 이는 각 개별 고정 자본이 사회의 고정 자본의 일부를 형성하는 것과 같다.

 

셋째, 사회의 유동 자본은 개별 유동 자본의 총액에 불과하지만, 개별 자본가의 유동 자본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개별 자본가의 유동 자본은 결코 그의 수입 일부를 구성할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의 유동 자본 일부(곧 소비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부분)는 동시에 사회의 수입 일부를 이룰 수 있다. 또는 스미스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연간 생산물의 그 부분만큼 사회의 순수입을 반드시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스미스가 여기서 유동 자본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상 소비 수단을 생산하는 자본가들로부터 매년 유통에 투입되는, 연간에 생산되는 상품 자본이다. 이 연간 상품 생산물 전체는 소비될 수 있는 물품들로 이루어지므로, 사회의 순수입(임금을 포함)이 실현 또는 지출되는 재원을 이룬다. 스미스는 소매상의 상점에 있는 상품을 예로 선택할 것이 아니라 산업 자본가들의 창고에 쌓여 있는 대량의 재고를 예로 선택했어야 한다.

 

스미스가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재생산을 고찰하며, 그의 단편적인 사고를 총괄했다면,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 사회의 연간 생산물은 두 부문으로 구성한다. 부문은 생산 수단을, 부문은 소비 수단을 포괄하며, 양자는 분리하여 취급해야 한다.

 

. 연간 생산물 중 생산 수단을 구성하는 부분의 총가치는 다음과 같이 분할된다. 1부분은 해당 생산 수단 생산에 소비된 생산 수단의 가치, 곧 갱신된 형태로 재현되는 자본 가치에 불과하다. 2부분은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가치, 곧 해당 생산 분야 자본가들이 지불한 임금 총액과 동등하다. 끝으로, 3부분은 이 분야 산업 자본가들의 이윤(지대 포함) 원천을 이룬다.

 

1부분(곧 스미스에 따르면 제부문의 개별 자본 전체의 고정 자본 부분이 재생산된 것)순수입(개별 자본의 것이든 사회의 것이든)에서 명백히 제외되어 있으며, 결코 그것의 일부를 이룰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자본으로 기능하며 결코 수입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는 각 개별 자본가의 고정 자본은 사회의 고정 자본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러나 사회의 연간 생산 수단 생산량의 기타 가치 부분들(2부분과 제3부분) (따라서 또한 이 생산 수단 총량의 일정한 부분들로 있는 가치 부분들)은 물론 이 생산에 참가한 모든 당사자들을 위한 수입(곧 노동자들을 위한 임금, 자본가들을 위한 이윤과 지대)을 이룬다. 하지만 이 가치 부분들은 사회에 대해서는 수입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이룬다. 비록, 사회의 연간 생산물은 이 사회에 속하는 개별 자본가들의 생산물의 총계로 이루어질 뿐이지만, 이 가치 부분들은 대체로 이미 그것들의 성질로 보아 생산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따름이며, 그것들 중에서 필요에 따라 소비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까지도 새로운 생산을 위한 원료 또는 보조 재료로 기능하게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그것들(2부분과 제3부분)이 생산 수단으로, 곧 자본으로 기능하는 것은 그것들의 생산자들(부문의 자본가들)의 수중에서가 아니라 그것들의 사용자들의 수중에서다. 다시 말하자면,

 

. 소비 수단의 직접 생산자인 제부문 자본가들의 수중에 그것이 있다. 부문 생산량 중 수입 형성 부분들(2, 3부분)은 제부문 자본가들이 소비 수단 생산에서 소비한 자본(노동력으로 전환되어 제부문 노동자들을 위한 임금 총액을 대표하는 자본은 제외)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한편, 이 소비된 자본(현재는 그 소비 수단 생산 자본가들의 수중에 소비 수단 형태로 존재)은 사회적 관점에서 제부문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그들의 수입을 실현하는 소비 재원을 이룬다.

 

스미스가 자신의 분석을 여기까지 밀고 나갔다면, 그는 문제 전체를 거의 완전히 해결했을 것이다. 사실 그는 그 해결의 일보 직전에 있었다. 그는 이미 사회 연간 총생산물을 이루는 두 종류의 상품 자본 중 한 종류(생산 수단)의 일정 가치 부분이, 그 생산에 종사한 개별 노동자와 자본가들에게는 수입을 이루지만, 사회 수입의 어떤 구성 부분도 이루지 못함을 지적했다. 반면, 다른 종류(소비 수단) 가치의 일부는 그 개별 소유자들(해당 투자 분야 자본가들)에게는 자본 가치를 이루지만, 그럼에도 사회적 수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

 

위의 조사로부터 다음의 것만은 분명하다.

 

첫째로, 비록 사회적 자본은 개별 자본들의 총계와 같은 뿐이고, 따라서 사회의 연간 상품 생산물(또는 상품 자본)은 이 개별 자본들의 상품 생산물의 총계와 같다 하더라도, 또한 비록 이렇기 때문에 각 개별 상품 자본에 타당한, 상품 가치의 그 구성 부분들로의 분해는 전체 사회의 상품 자본에도 타당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리고 결국에는 실제로 타당한 것으로 증명된다고 하더라도, 이 구성 부분들이 개별 자본의 관점에서 취하는 현상 형태는 그것들이 사회적 재생산의 총 과정에서 취하는 현상 형태와는 다르다. (203절을 보라)

 

둘째로, 단순 재생산의 토대 위에서까지도 임금(가변 자본)과 잉여 가치의 생산뿐 아니라 새로운 불변 가치의 직접적 생산도 행해진다. 비록 노동일은 두 부분으로, 곧 노동자가 가변 자본을 보충하는 부분(사실상 그의 노동력 구입을 위한 등가를 생산하는 부분)과 잉여 가치(이윤 · 지대 등)를 생산하는 부분으로만 이루어지고 있지만. 생산 수단의 재생산에 지출되는 매일의 노동, 이것의 가치는 임금과 잉여 가치로 분할되는데, 이는 소비 수단의 생산에 지출된 불변 자본 부분을 대체하는 새로운 생산 수단으로 자신을 실현한다. (203절을 보라)

 

주요한 난점들은 이미 앞에서 논의된 부분에서 대부분 해결되었다. 그것들은 축적을 고찰하는 단계에서가 아니라, 단순 재생산 고찰에서 이미 제기되는 문제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스미스국부론2편이나 그 이전에는 케네경제표가 사회의 연간 생산물 운동과, 유통을 매개로 하는 그것의 재생산을 다룰 때마다, 단순 재생산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2. 스미스는 교환 가치를 가변 자본(v) + 잉여 가치(s)로 분해

 

스미스의 이론에 따르면, 각 개별 상품, 따라서 사회의 연간 생산물을 이루는 모든 상품의 합계(그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모든 곳에 있다고 정당하게 가정한다)의 가격 또는 교환 가치는 임금 · 이윤 · 지대라는 세 개의 구성 부분들로 이루어지거나, 또는 분해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결국 상품 가치 = 가변 자본(v) + 잉여 가치(s), 곧 상품 가치는 투하된 가변 자본의 가치에 잉여 가치를 더한 값과 같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이윤과 지대를 우리가 s라고 부르는 하나의 공통된 단위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것은 다음 인용문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스미스가 명백히 인정하는 바이다. 우리는 당분간 모든 부차적인 사항들을 무시하며, 따라서 특히 상품 가치가 오직 우리가 v+s로 표시하는 요소들로만 이루어진다는 그 이론에 대한 일체의 외관적인 또는 현실적인 괴리들을 문제 삼지 않는다.

 

제조업에서는,

 

노동자가 원료에 추가하는 가치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한 부분은 자기의 임금을 지불하고, 다른 부분은 자기의 고용주가 원료와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투하한 자본 전체에 대한 이윤을 지불한다’ (61).

 

비록 제조공의 임금은 고용주가 투하하지만, 임금의 가치는 일반적으로 그의 노동이 가해진 대상의 증가한 가치의 형태로 이윤과 함께 회수되기 때문에, 사실 고용주는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는다’ (404).

 

자본 중에서

 

생산적 노동자를 유지하는 데 (투하되는 부분은) (고용주)에게 자본으로 기능을 수행한 뒤에 생산적 노동자들의 수입을 이룬다’ (407).

 

스미스는 바로 위에 인용한 장에서 명백히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 나라의 토지 · 노동의 연간 총생산물은 자연스럽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흔히 가장 큰 부분은 먼저 자본을 보충하기 위한, 곧 자본에서 빼낸 식료품 · 원료 · 완제품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한 부분은 자본의 소유자에 대한 수입, 곧 그의 자본에 대한 이윤과, 또는 다른 사람의 수입, 곧 그의 토지에 대한 지대를 구성한다’ (406). (강조는 마르크스)

 

스미스가 말한 바와 같이, 자본의 일부, 곧 생산적 노동 구입에 투하된 부분만이 어떤 사람을 위한 수입을 형성한다. 이 부분, 가변 자본은 먼저 고용주의 수중에서 또 고용주를 위해 자본의 기능을 수행하고, 그다음에는 생산적 노동자 자신을 위한 수입을 이룬다.’ 자본가는 자기의 자본 가치 일부를 노동력으로 전환시키며, 바로 그렇게 하면서 가변 자본으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전환으로만 자본의 이 부분뿐 아니라 그의 총자본이 산업 자본으로 기능하게 된다. 노동자, 곧 노동력의 판매자는 임금의 형태로 노동력의 가치를 받는다. 그의 수중에서 노동력은 다만 판매할 수 있는 상품, 그것의 판매로부터 그가 살아가는 상품, 따라서 그의 수입의 유일한 원천을 이루는 상품이다. 노동력은 그것의 구매자인 자본가의 수중에서만 가변 자본으로 기능하며, 그 구매 가격을 자본가는 오직 외관상으로만 투하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의 가치는 이미 먼저 노동자로부터 자본가에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노동한 뒤에 임금을 받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제조업에서 생산물의 가치 = v+s(여기에서 s=자본가의 이윤)라는 것을 보여준 뒤, 농업에서는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의 소비, 또는 그들을 고용하는 (가변) 자본에 해당하는 가치를 소유자의 이윤과 함께 재생산할 뿐 아니라, (다시 말해) 차지 농업가의 자본과 이윤 이외에 지주의 지대를 규칙적으로 재생산한다’ (446).

 

지대가 지주의 손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은 우리가 검토하는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대는 지주의 손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차지 농업가, 곧 산업 자본가의 수중에 있어야 한다. 지대는 누구의 수입이 되기 전에 먼저 생산물의 가치 구성 부분을 이루어야만 한다. 따라서 스미스 자신에게 지대와 이윤은 모두 생산적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임금, 곧 가변 자본의 가치와 함께 끊임없이 동시에 재생산하는 잉여 가치의 구성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지대와 이윤은 잉여 가치 s의 부분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스미스는 모든 상품의 가격을 v+s로 분해한다. 모든 상품(따라서 연간의 상품 생산물)의 가격이 임금 + 이윤 + 지대로 분해된다는 이론은 스미스 저작의 곳곳에서 심오한 부분에서조차 다음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곧 개별 상품의 가치, 따라서 사회의 연간 상품 생산물의 가치도 v+s, 다시 말해, 노동력에 지출되고 노동자가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자본 가치 + 노동자들이 노동으로부터 첨가하는 잉여 가치와 같다는 것이다.

 

스미스의 이 마지막 결론은 동시에 상품 가치가 분할될 수 있는 구성 부분들에 대한 그의 일면적 분석의 근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자세한 것은 아래를 보라). 그런데 이 가치 구성 부분들이 또한 생산에서 기능하는 여러 계급들의 각종 수입 원천을 이룬다는 사실은 이 구성 부분들의 각각의 양적 결정과 그것들의 가치 총액의 한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스미스가

 

임금 · 이윤 · 지대 세 가지는 모든 수입과 모든 교환 가치의 최초의 원천들이다. 기타 모든 수입들은 궁극적으로, 이 세 개의 어느 하나에서 파생하는 것이다’ (67).

 

라고 말할 때, 여기에는 여러 가지 혼동이 모두 겹쳐 있다.

 

첫째,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직접 재생산에 참가하지 않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연간 상품 생산물에 대한 자기들의 몫(곧 자기들의 소비 수단), 생산물을 맨 먼저 손에 넣는 계급들, 곧 생산적 노동자들, 산업 자본가들, 그리고 지주들의 손으로부터만 끌어낼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한도까지 그들의 수입은 실질적으로 임금(생산적 노동자의 임금), 이윤, 지대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본원적 수입에 대한 파생적 수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뜻에서 파생적 수입을 얻는 사람들은 왕 · 목사 · 교수 · 매춘부 · 병사 등이며,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기능으로부터 이 수입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기능을 자신들의 수입의 원천이라고 보게 된다.

 

둘째, 여기에서 스미스의 터무니없는 잘못이 절정에 이른다. 그는 상품의 가치 구성 부분들과 그것들에 체현되어 있는 가치 생산물의 총액을 올바르게 규정하는 뒤, 각각의 구성 부분이 어떻게 그와 같은 수의 상이한 수입 원천을 이루는가를 논증하는 것으로부터, 곧 가치에서 수입을 끌어낸 다음, 이번에는 역방향을 택하였다. 그는 수입을 모든 교환 가치의 구성 부분들이 아니라 모든 교환 가치의 최초의 원천이라고 하였는데, 이 후자가 그의 지배적인 견해였다. 따라서 그는 속류 경제학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우리의 로셔를 보라).

 

3. 불변 자본 부분

 

이제 스미스가 어떤 요술을 부려 자본의 불변 가치 부분을 상품 가치에서 제거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예컨대 곡물 가격에서, 한 부분은 토지 소유자의 지대를 지불하고’ (64).

 

이 가치 구성 부분의 원천은, 이 부분이 지주에게 지불되고, 지대의 형태로 그의 수입을 이룬다는 사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는 다른 가치 구성 부분들의 원천이, 그 부분들이 이윤과 임금으로 역시 수입의 원천을 이룬다는 사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른 한 부분은 곡물 생산에 사용되는 노동자의 임금 또는 역축의 유지비를 지불하며, 3의 부분은 차지 농업가의 이윤으로 지불된다. 이 세 부분은 직접적으로 또는 궁극적으로 곡물 가격 전체를 구성하는 것 같다’ (64). (강조는 마르크스)

 

이 전체 가격, 곧 가격의 양적 결정은 세 부류의 사람들 사이의 가격 분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어떻게 보면, 차지 농업가의 자본을 보충하거나 역축과 기타 농기구의 마멸을 보상하기 위해서 제4의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농기구의 가격, 예를 들면, 역축의 가격 그 자체가 위와 같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곧 그것을 사육하는 데 사용되는 토지의 지대, 그것을 사육하는 노동의 임금, 그리고 이 토지 지대 · 노동 임금을 투하하는 차지 농업가의 이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곡물 가격이 역축의 유지비뿐 아니라 역축의 가격까지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곡물의 가격 전체는 여전히 직접적으로 또는 궁극적으로 지대 · 노동 (임금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윤이라는 세 부분으로 분해된다’ (64-65).

 

바로 이것이 스미스가 자신의 놀라운 학설을 논증하기 위해 내놓고 있는 것의 문자 그대로 전부다. 그의 논증은 똑같은 주장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예컨대 밀의 가격이 v+s뿐 아니라 또한 밀 생산에 소비된 생산 수단의 가격(따라서 차지 농업가가 노동력에 투하한 것이 아닌 자본 가치)으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생산 수단 자체의 가격도 밀 가격과 마찬가지로, v+s로 분해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스미스는, v+s뿐 아니라 이 생산 수단 자체의 생산에 소비된 생산 수단의 가격으로도 분해된다고 추가하는 것을 잊은 것이다. 그는 한 생산 부문에서 다른 생산 부문으로, 이 다른 생산 부문에서 또다시 세 번째 생산 부문으로 언급을 옮겨가고 있다. 상품의 전체 가격이 직접또는 결국에는’ v+s로 분해된다는 주장은 오직 다음과 같은 것이 논증되는 경우에만 빈말이 아닐 것이다. 곧 가격이 직접적으로 c(소비된 생산 수단의 가격)+v+s로 분해되는 상품 생산물도, 결국에는 이 소비된 생산 수단이 제2의 상품 생산물로부터 완전히 보충되어야 하는데, 이 제2의 상품 생산물은 가변 자본(곧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의 지출로만 생산된다는 것이다. 그 경우에는 제2의 상품 생산물의 가격은 직접적으로 v+s이다. 그러므로 전자의 상품 생산물의 가격 c+v+s(c는 불변 자본 부분이다)도 마침내는 v+s로 분해된다. 스미스 자신도 자기가 든 스코틀랜드의 자갈 채집자의 예로 이러한 논증을 제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미스의 주장에 따르면, 그 채집자들은 (1) 어떤 종류의 잉여 가치도 제공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임금만을 생산하며, (2) 아무런 생산 수단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역시 자갈을 나르는 데 광주리 · 자루 · 그 밖의 용기 형태의 생산 수단을 쓰고 있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스미스는 뒤에 자기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뒤집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이 모순을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그 모순의 근원은 바로 그의 과학적 전제에서 찾아야 한다. 노동으로 전환된 자본은 그 자체의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생산한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스미스는 말하기를, 노동자들은 생산 과정에서 자기들이 가공하는 물건에다 가치를 부가하는데, 이 가치는 그들 자신의 구매 가격(임금)의 등가 외에 그들의 고용자의 것으로 되는 잉여 가치(이윤과 지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실제로 하는,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하루 동안의 산업 노동에 들어맞는 것은 전체 자본가 계급이 한 해 동안에 운동시키는 노동에도 들어맞는다. 그러므로 사회의 연간 가치 생산물의 총량은 오직 v+s, 곧 노동자들이 그들 자신의 구매 가격에 지출된 자본 가치를 보충하는 등가와, 그들이 그 이상으로 그들의 고용주에게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추가적 가치로 갈라질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상품 가치의 이 두 요소들은 또한 재생산에 참가하는 여러 계급의 수입 원천을 이룬다. , 첫째 요소는 노동자의 수입인 임금을 이루며, 둘째 요소는 잉여 가치를 이루는데, 이 잉여 가치의 한 부분은 산업 자본가가 이윤의 형태로 자신이 가지며, 다른 한 부분은 지주의 수입인 지대로 떼어 준다. 연간 가치 생산물이 v+s 이외에는 다른 어떤 요소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면, 또 하나의 가치 구성 부분은 어디에서 나온다는 말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단순 재생산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 해의 총 노동량이 노동력에 지출된 자본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과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노동으로 분해된다면, 노동력에 지출되지 않은 자본 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노동은 도대체 또 어디에서 나온다는 말인가.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스미스는 상품 가치를 임금 노동자가 노동 대상에 부가하는노동량으로부터 규정한다. 그는 노동 대상을 재료라고 언급하지만(제조업을 문제 삼기 때문), 이로 인해 사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가 어떤 물건에 부가하는’(스미스의 표현) 가치는 그 대상 자체가 부가 이전에 이미 가치를 가졌는지 여부와 전혀 관계없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는 상품 형태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스미스에 따르면, 새로 창출된 가치의 한 부분은 노동자 임금의 등가, 곧 그의 임금 가치량으로부터 결정된다. 노동자가 자기 임금과 같은 가치를 생산 또는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임금 크기에 비례하여 노동량을 부가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는 이 한계를 넘어 그 이상의 노동을 부가하며, 그 노동은 고용 자본가를 위한 잉여 가치를 이룬다. 이 잉여 가치가 전적으로 자본가의 몫으로 남을지, 일부가 제3자에게 분배될지 여부는 임금 노동자가 부가하는 잉여 가치의 질적(잉여 가치라는 사실) 또는 양적(크기) 규정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는다. 그것(잉여 가치)은 가치라는 점에서 생산물의 다른 모든 가치 부분과 같지만, 다른 가치 부분과 구별되는 점은 노동자가 그것에 대해 아무런 등가도 받지 않았고, 앞으로도 받지 않으며, 오히려 자본가가 이 가치 부분을 등가를 내주지 않고 차지한다는 점이다. 상품의 총가치는 그 상품 생산에 노동자가 지출한 노동량으로 결정된다. 이 총가치의 한 부분은 임금 가치와 동등한 것, 곧 임금의 등가로 규정되기 때문에, 다른 부분(잉여 가치)은 불가피하게 생산물의 총가치에서 임금의 등가인 가치 부분을 뺀 것과 같아진다. , 상품 생산에서 창출된 가치 생산물 중 임금 등가인 가치 부분을 넘는 초과분과 같아진다.

 

둘째, 개별적 산업 기업에서 개별 노동자가 생산하는 상품에 들어맞는 것은 모든 생산 부문들의 연간 생산물 전체에도 들어맞는다. 개별적인 생산적 노동자의 하루 노동에 들어맞는 것은 생산적 노동자 계급 전체가 수행하는 연간의 총 노동에도 들어맞는다. 이 노동자 계급은 연간 지출된 노동량으로부터 결정되는 총가치를 연간 생산물에 고정시킨다’ (스미스의 표현). 그리고 이 총가치는 두 부분으로 갈라지는데, 그 한 부분은 연간 노동 중 노동자 계급이 그들의 연간 임금의 등가(사실상은 이 임금 자체)를 창출하는 부분으로부터 결정되며, 다른 한 부분은 노동자가 자본가 계급을 위한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추가적인 연간 노동으로부터 결정된다. 따라서 연간 생산물에 들어 있는 연간의 가치 생산물은 두 요소, 곧 노동자 계급이 받는 연간 임금의 등가와 일년 동안 자본가 계급을 위해 제공되는 잉여 가치로만 이루어진다. 그런데 한 해의 임금은 노동자 계급의 수입을 이루며, 한 해의 잉여 가치 총액은 자본가 계급의 수입을 이룬다. 따라서 이 두 가치 부분은 연간 소비 재원의 상대적 몫을 표시하며, 또 소비 재원으로 실현된다(이 관점은 단순 재생산의 설명에서는 옳다). 그래서 불변 자본 가치를 위한(곧 생산 수단의 형태로 기능하는 자본의 재생산을 위한) 여유는 전혀 남지 않는다. 그런데 상품 가치 중 수입으로 기능하는 모든 부분들은 사회적 소비 재원으로 향하게 되어 있는 연간 노동 생산물과 일치한다고,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머리말에서 명확히 말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의 수입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는, 그들의 연간 소비를 공급하는 재원의 성질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이 제4편까지의 목적이다’ (4).

 

그리고 그 머리말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한 나라의 국민의 연간 노동은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 전부를 공급하는 원천이며, 이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은 언제나 이 연간 노동의 직접 생산물로 구성되고 있거나 이 생산물과의 교환으로 다른 나라에서 구입해 온 생산물로 구성되고 있다’ (1).

 

스미스의 첫째 잘못은 연간 생산물의 가치와 연간의 가치 생산물을 동일하게 본다는 점이다. 후자는 오직 그해 노동의 생산물에 불과하지만, 전자는 그 연간 생산물을 만드는 데 소비되었으나 과거에 생산된 가치 요소, 곧 다시 나타날 뿐 그해 지출된 노동으로부터 생산되거나 재생산되지 않은 생산 수단의 가치를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혼동으로 인해 스미스는 연간 생산물의 불변 자본 가치 부분을 완전히 배제했다. 이 혼동 자체는 그의 기본적 견해에 있는 다른 오류에 의거한다. 스미스는 노동 자체의 이중적 성격, 곧 노동력을 지출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과, 구체적 유용 노동으로 사용 대상(사용 가치)을 창출하는 노동을 구별하지 않는다. 한 해에 생산된 상품의 총액, 곧 한 해의 총생산물은 그해에 작용한 유용 노동의 생산물이다. 각종 유용 노동의 복잡한 체계에서 노동이 사회적으로 지출되었기 때문에 이 모든 상품들이 존재하게 되며, 오직 이러한 과정으로만 (그 상품들을 생산하는 데 소비되고 새로운 현물 형태로 다시 나타나는) 생산 수단의 가치가 그 상품들의 총가치 속에 유지된다. 따라서 연간 생산물 전체는 그해에 지출된 유용 노동의 결과이지만, 이 생산물의 가치 중 일부만이 그해에 새로 창출된 것이다. 이 부분이 연간 가치 생산물이며, 이는 그해에 실제로 수행된 노동의 총량을 나타낸다.

 

스미스가 방금 위에서 인용한 구절,

 

한 나라 국민의 연간 노동은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 전부를 공급하는 원천이며,’

 

에서, 그는 유용 노동만을 일면적으로 염두에 둔다. 물론 유용 노동이 모든 생활 수단을 소비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 것은 사실이나, 그는 지난 해들로부터 물려받은 노동 수단과 노동 대상의 도움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점을 간과한다. 따라서 연간 노동은 가치를 형성하는 한, 완성된 생산물의 가치 전체를 결코 창출하지 않았으며, 곧 새로 생산된 가치는 생산물의 총가치보다 작다.

 

스미스가 이 분석에서 그의 모든 후계자들보다 더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싹은 이미 중농주의자들에게 있었음에도)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점점 더 혼동 속에서 헤매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주로 상품 가치 일반에 대한 그의 심오한파악이 그의 피상적인 파악(이것이 그의 저술에서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함)으로부터 끊임없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과학적 본능 때문에 심오한 관점이 때때로 다시 나타나곤 했다.

 

4. 애덤 스미스가 본 자본과 수입

 

개별 상품(따라서 또 연간 생산물)의 가치 중 임금의 등가를 이룰 뿐인 부분은 자본가가 임금으로 투하한 자본과 같다. 곧 그가 투하한 총자본의 가변적 구성 부분과 같다. 자본가는 투하한 자본 가치의 이 구성 부분을, 임금 노동자가 제공하는 상품의 새로 생산된 가치 구성 부분으로부터 회수한다. 아직 팔 수 있을 만큼 완성되지 않았거나 완성되었지만 아직 자본가가 팔지 않은 생산물 중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자본가가 화폐로 지불한다는 의미에서 가변 자본이 선대되건, 또는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의 판매로부터 이미 얻은 화폐로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불하건, 또는 자본가가 신용으로부터 이 화폐를 앞당겨 얻었건, 이 모든 경우에 자본가는 가변 자본(이것이 화폐로 노동자들에게 유입된다)을 지출하며, 그리고 그 대신 자본가는 이 자본 가치의 등가를 상품 가치의 일부(이것은 노동자가 상품의 총가치 중 그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으로 새로 생산한 것이며,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임금의 가치로 생산한 것이다)로 가지게 된다. 자본가는 이 가치 부분을 노동자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의 현물 형태로 노동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화폐로 지불한다. 따라서 자본가에게 자기의 투하 자본 가치의 가변적 구성 부분은 이제 상품 형태로 있는데, 노동자는 자기가 판 노동력의 등가를 화폐 형태로 받은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가 투하한 자본 중 노동력을 구매하면서 가변 자본으로 전환된 부분은 생산 과정 자체 안에서는 활동하는 노동력으로 기능하며, 그리고 이 자본 부분은 이 노동력의 지출로부터 상품 형태의 새로운 가치로 새로 생산되는데, 곧 재생산되는데, 이것은 최초로 투하된 자본 가치의 새로운 생산, 곧 재생산이다. 다른 한편, 노동자는 자기가 판 노동력의 가치 또는 가격을 생활 수단에, 자기 노동력의 재생산 수단에 지출한다. 가변 자본과 같은 화폐액은 노동자의 수입을 이루는데,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 수 있는 동안만 이 수입을 얻게 된다. 임금 노동자의 상품(그의 노동력)이 상품으로 기능하는 것은, 그것이 자본가의 자본에 합쳐지고 자본으로 기능하는 동안뿐이다. 다른 한편, 노동력의 구입을 위해 화폐 자본으로 지출된 자본가의 자본은, 노동력의 판매자(임금 노동자)의 손에서는 수입으로 기능한다.

 

여기에서는 여러 가지 유통 과정과 생산 과정이 서로 엉켜 있는데, 애덤 스미스는 이것들을 구별하지 않는다.

 

첫째, 유통 과정에 속하는 행위들이다. 노동자는 자기의 상품인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다. 자본가가 노동력을 사는 데 쓰는 화폐는 그에게는 가치 증식을 위해 투하하는 화폐, 곧 화폐 자본이다. 그 화폐는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투하될 따름이다. (이것이 투하’, 중농주의자들의 선대의 진정한 의미인데, 그 화폐를 자본가가 어디에서 얻느냐 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자본가가 생산 과정의 목적을 위해 지불하는 모든 가치는 자본가에게는 투하되는 것이며, 그 지불이 사전에 행해지든 사후에 행해지든 변함이 없다. 그 가치는 생산 과정 자체에 투하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어떤 상품 판매의 경우에도 일어나는 것이 일어날 따름이다. 곧 판매자는 사용 가치(여기에서는 노동력)을 내주고 그 가치를 화폐로 받으며(그 가격을 실현하며), 구매자는 자기의 화폐를 내주고 그 대신 상품 그 자체(여기에서는 노동력)을 얻는다.

 

둘째, 생산 과정에서는 사들인 노동력은 이제 기능 자본의 한 부분을 이루며, 노동자 자신은 다만 이 자본 중 생산 수단의 현물 형태로 있는 요소들과 구별되는 특수한 하나의 현물 형태로 기능한다. 생산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지출하면서 그가 생산물로 전환시키는 생산 수단에다 자기 노동력의 가치와 같은 가치를 부가한다(잉여 가치를 제외하면). 따라서 노동자는 자본가가 자기에게 임금으로 투하한 또는 투하하여야 할 자본 부분을 자본가를 위해 상품 형태로 재생산한다. 노동자는 이 자본의 등가를 자본가에게 생산하여 준다. 곧 노동자는 자본가가 노동력의 구입에 새로 투하할 수 있는 자본을 자본가에게 생산하여 준다.

 

셋째, 따라서 상품이 팔리면 그 판매 가격의 한 부분은 자본가가 투하한 가변 자본을 자본가에게 보충하여 준다. 그래서 자본가는 새로 노동력을 살 수 있게 되고, 노동자는 노동력을 새로 팔 수 있게 된다.

 

모든 상품 매매에서, 이 거래들 자체만을 살펴보는 한에서는, 판매자가 자기의 상품으로 얻은 화폐로 무엇을 하든, 또 구매자가 자기가 산 물품으로 무엇을 하든 그것은 무관하다. 따라서 유통 과정만이 고찰되는 한에서는, 자본가가 구매한 노동력이 그를 위해 자본 가치를 재생산하고, 다른 한편, 노동력을 팔아 얻은 화폐가 노동자의 수입을 이룬다는 사정도 역시 무관하다. 노동자가 파는 상품(그의 노동력)의 가치는, 그것이 그의 수입을 이룬다는 사실로부터도, 또는 그 상품의 구매자가 그것을 사용하여 자기의 자본 가치를 재생산한다는 사실로부터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노동력의 가치(곧 이 상품의 적절한 판매 가격)는 그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으로부터 결정되며, 이 노동량 자체는 노동자의 필요 생활 수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따라서 노동자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으로부터 결정되기 때문에, 임금은 노동자가 그것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수입이다.

 

애덤 스미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생산적 노동자를 유지하는 데 (투하되는 자본 부분은) 그에게 (자본가에게) 자본으로 기능한 뒤에 생산적 노동자들의 수입을 이룬다’ (407).

 

자본가가 노동력의 대가로 지불하는 화폐는, 자본가가 그 노동력을 자본의 물적 구성 부분들에 합치고 이렇게 하면서 비로소 자본을 생산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하는 한에서, ‘그에게 자본으로 기능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구별해야 한다. 노동력은 노동자의 손에서는 자본이 아니라 상품이며, 그리고 노동자가 그것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팔 수 있는 한 그에게 수입을 가져다준다. 노동력은 팔린 다음에 자본가의 손에서 생산 과정 그 자체가 진행되는 동안에 자본으로 기능한다. 여기에서 노동력은 두 가지 목적에 기여한다. 곧 노동력은 노동자의 손에서는 그 가치대로 팔리는 상품이며, 노동력을 구매한 자본가의 손에서는 가치와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힘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자본가로부터 화폐를 받게 되는 것은 그가 자본가에게 자기의 노동력의 사용을 맡겨 버린 다음, 곧 그의 노동력이 이미 노동 생산물의 가치 중에 실현된 다음의 일이다. 자본가는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 전에 이 가치를 자기의 손에 가지고 있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일을 시킨 뒤에 임금을 지불한다). 따라서 두 번 기능하는 것은 화폐(곧 처음에는 가변 자본의 화폐 형태로, 그다음에는 임금으로)가 아니라 노동력이다. 곧 첫째, 노동력은 팔릴 때 상품으로 기능하며(지불해야 할 임금을 정할 때 화폐는 다만 관념적인 가치 척도로 작용하며 아직 자본가의 손에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 둘째, 노동력은 생산 과정에서 자본(곧 자본가의 손에서 사용 가치와 가치를 창출하는 요소)으로 기능한다. 노동력은 노동자에게 지불되어야 할 등가를, 자본가가 화폐 형태로 노동자에게 지불하기 전에, 이미 상품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기에게 자본가가 지불하는 데 쓸 지불 재원을 스스로 창출한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노동자는 자신이 받는 화폐를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출한다. 따라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전체를 놓고 볼 때, 노동자는 자본가가 자본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도구(노동력)를 자본가를 위해 유지해 주는 것이다.

 

노동력의 끊임없는 매매는 한편으로 노동력을 자본의 요소로 영원히 얽매어 놓으며, 따라서 자본은 가치를 가지는 물품인 상품의 주체로 나타난다. 또한 노동력을 구매하는 자본 부분은 노동력의 생산물로부터 끊임없이 갱신되므로, 노동자 자신은 자기에게 지불되는 자본 재원을 끊임없이 창출한다. 다른 한편, 노동력의 끊임없는 판매는 노동자의 생활을 유지하는 원천이 되며, 따라서 그의 노동력은 그가 살아가기 위한 수입을 끌어내는 수단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노동자의) 수입이란 한 상품(노동력)을 끊임없이 되풀이해 팔아 가치를 취득한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며, 이 가치 그 자체는 노동자가 팔지 않을 수 없는 상품(노동력)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데만 쓰인다. 이러한 정도까지, 노동자 자신이 창출하는 생산물 중 자본가가 그에게 임금의 형태로 등가를 지불하는 가치 부분은 노동자의 수입 원천으로 된다고 스미스가 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상품의 이 가치 부분의 성질이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닌데, 이는 생산 수단이 자본 가치로 기능한다고 해서 생산 수단의 가치가 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또한 직선이 삼각형의 밑변을 이루거나 타원형의 직경이 된다고 해서 직선의 성질과 길이가 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노동력의 가치는 생산 수단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독립적으로 결정된다. 상품의 이 가치 부분은 노동자의 수입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다시 말해, 노동자의 수입은 이 가치 부분을 구성하는 자립적 요인의 하나가 아니며), 노동자의 수입으로 분해되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가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이 새로운 가치는 그에게 수입의 원천을 이루지만, 이 때문에 반대로, 그의 수입이 그가 생산한 새로운 가치의 구성 부분을 이룬다고는 말할 수 없다. 노동자가 창출한 새로운 가치 중 그에게 지불되는 몫의 크기가 그의 수입의 가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새로운 가치의 이 부분이 그에게 수입을 이룬다는 것은, 다만 이 부분이 무엇으로 전환되는가 하는 것, 곧 이 부분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보여줄 따름이고, 이 가치 부분의 형성이나 다른 어떤 가치의 형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어떤 수입이 매주 10원인 경우, 그 수입을 매주 얻는다는 사정 때문에 10원의 가치 성질이나 그 가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가치도 그것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으로부터 결정된다. 이 노동량이 노동자의 필요 생활 수단의 가치로부터 결정되며, 따라서 노동자의 생활 조건들 자체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과 같다는 것은 이 상품(노동력)에 특유한 것이지만, 이것은 역축의 가치가 그것의 유지에 필요한 생존 수단의 가치로부터 결정되며, 따라서 이 생존 수단을 생산하는 데 드는 인간 노동의 양으로부터 결정된다는 것 이상으로 특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스미스가 부닥친 모든 혼동의 원인은 수입이라는 범주 때문이다. 그에게는 여러 종류의 수입이 (한 해에 생산되어 새로 만들어지는) 상품 가치의 구성 부분을 이루지만, 사실은 이와 반대로, 수입의 원천을 이루는 것은 이 상품 가치가 자본가를 위해 분할되는 두 부분이다. 그 두 부분은 자본가가 노동력을 사면서 화폐 형태로 투하하는 가변 자본의 등가와, 자본가가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지만 역시 그에게 속하는 또 하나의 가치 부분, 곧 잉여 가치인 것이다. 가변 자본의 등가는 다시 노동력에 투하되며 노동자의 임금 형태로 노동자의 수입을 이룬다. 또 하나의 부분인 잉여 가치는 자본가의 어떤 투하 자본 부분을 보충할 필요가 없으므로, 자본가는 이것을 어떤 종류의 자본 가치를 형성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소비 수단(필수품과 사치품)에 지출할 수 있고, 수입으로 소비할 수 있다. 이 수입의 전제는 상품 가치 그 자체며, 이 상품 가치의 구성 부분들이 자본가에게 구별되는 것은 그것들이 자본가가 투하한 가변 자본 가치와 맞먹는 등가를 이루는지 아니면 그 가변 자본 가치를 넘는 초과분을 이루는지이다. 두 부분은 모두 상품을 생산하는 동안에 지출된 그리고 노동으로 전환된 노동력으로 구성되고 있을 뿐이다. 두 부분은 수입이 아니라 지출(노동력의 지출)로 구성되어 있다.

 

상품 가치가 수입의 원천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수입이 상품 가치의 원천으로 되는 이러한 전도에 따라, 이제는 상품 가치가 여러 종류의 수입으로 구성된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이 수입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결정되며, 이 수입들의 가치를 합한 것으로부터 상품의 총가치가 결정된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상품 가치가 도출된다는 이 개개의 수입의 가치를 어떻게 결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임금의 경우에는 그것을 결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임금은 노동력 상품의 가치며, 이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 상품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으로부터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잉여 가치, 또는 스미스의 경우에는 그 두 형태인 이윤과 지대는 어떻게 결정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관해 스미스는 내용 없는 객담만 남기고 있다. 그는 때로는 임금과 잉여 가치, 또는 임금과 이윤을 상품의 가치 또는 가격을 구성하는 두 구성 부분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때로는 그것도 흔히 거의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상품의 가치가 분해되는부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후자(전자와 반대되는 것인데)는 상품 가치가 먼저 주어져 있고, 이 주어진 가치의 여러 부분이 생산 과정에 참가한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수입의 형태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상품의 가치가 이 세 구성 부분들로 이루어진다는 것과는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예컨대, 각각 다른 세 개의 직선의 길이를 따로 정하고, 이 세 직선들을 구성 부분들로 하여 그 합과 길이가 동일한 넷째 직선을 만드는 경우와, 이와 반대로 하나의 주어진 직선을 이러저러한 목적으로 각각 다른 세 부분으로 나누는, 분해하는절차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첫째 경우에는, 넷째 직선의 길이는 (합해져서 그 직선을 이루고 있는) 세 개 직선들의 길이가 달라짐에 따라 변동한다. 그러나 둘째 경우에는, 직선의 세 부분들의 길이는, 그 각각이 하나의 주어진 길이의 직선의 부분들을 이루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스미스 주장의 정당한 부분, 곧 사회의 연간 상품 생산물(개별 상품이나 하루 생산물, 또는 한 주 생산물 등도 마찬가지다)에 들어 있는 (연간 노동으로부터) 새로 창출된 가치는 투하된 가변 자본의 가치(곧 노동력을 다시 사들이는 데 쓰게 될 가치 부분) 더하기 자본가가 (단순 재생산의 경우 그리고 그 밖의 조건들이 동일한 경우) 그의 개인적 소비의 수단들로 실현할 수 있는 잉여 가치와 같다는 점을 견지한다면, 그리고 또 스미스가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곧 노동력의 지출인 노동)과 사용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곧 유용하고 합목적적인 형태로 지출되는 노동)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사실상 스미스의 전체 견해는 결국 다음과 같은 것으로 된다. 모든 상품의 가치는 노동의 생산물이며, 따라서 연간 노동의 생산물의 가치나 사회의 연간 상품 생산물의 가치도 그렇다. 그런데 모든 노동은 (1) 노동력의 구매에 투하된 자본의 등가를 노동자가 재생산할 뿐인 필요 노동과, (2) 자본가가 아무런 등가도 지불하지 않는 가치(곧 잉여 가치)를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제공하는 잉여 노동으로 분해될 수 있으므로, 모든 상품 가치는 단순히 이 두 상이한 구성 부분들로 분해될 수 있으며, 따라서 결국 임금의 형태로 노동자 계급의 수입을, 그리고 잉여 가치의 형태로 자본가 계급의 수입을 이룬다는 점이다. 그러나 불변 자본 가치(곧 연간 생산물을 생산하는 데 소비된 생산 수단의 가치)에 관하여 말하면, 이 가치가 어떻게 새로운 생산물의 가치 속에 들어오는가 하는 것은 물론 말할 수 없지만(자본가가 자기의 상품을 팔 때 그것을 구매자에게 부담시킨다는 말밖에는), 생산 수단 그 자체가 노동의 생산물이기 때문에, 새로운 생산물의 이 가치 부분도 결국역시 가변 자본의 등가와 잉여 가치로 (곧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의 생산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생산 수단의 가치가 그것의 사용자의 손에서 자본 가치로 기능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 가치가 맨 처음에’ (그 근원을 소급해 간다면) 다른 사람의 손에서, 이전의 어떤 시점이긴 하지만, 마찬가지의 두 가치 부분으로, 따라서 두 개의 상이한 수입 원천으로 나누어질 수 있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법은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옳은 점은, 사회적 자본(곧 개별 자본들의 총체)의 운동에서는 사태가 각 개별 자본을 개별적으로 볼 때(따라서 각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각 개별 자본가의 경우에는 상품 가치가 (1) 불변적 요소(스미스가 말하는 넷째 요소’)(2) 임금과 잉여 가치의 합계(따라서 임금 · 이윤 · 지대의 합계)로 분해된다. 그러나 사회적 관점에서는 스미스의 넷째 요소, 곧 불변 자본 가치는 단순히 사라져 버린다. (203절과 7절을 보라.)

 

5. 요약

 

임금 · 이윤 · 지대라는 세 수입이 상품 가치의 세 구성 부분을 이룬다는 엉터리 공식은 스미스에게는 상품 가치가 이 세 구성 부분으로 분해된다는 어느 정도 그럴듯한 공식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후자 역시 그릇된 것이며, 상품 가치가 소비된 노동력의 등가와 노동력이 창출한 잉여 가치로 나누어질 수 있을 뿐이라고 전제하더라도 그릇된 것이다. 그러나 스미스의 이 오류는 더 깊은 진짜 토대(곧 상품 생산 일반과 자본주의적 생산을 동일시한 것)에 뿌리박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생산적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자본가에게 팔고, 그 노동력은 그 다음에 자본가의 손에서 자본가의 생산 자본의 한 요소로만 기능할 뿐이라는 사실에 의거한다. 유통 분야에 속하는 이 거래(곧 노동력의 매매)는 생산 과정의 준비로 될 뿐 아니라 암암리에 생산 과정의 특수한 성격을 규정한다. 사용 가치의 생산과 상품의 생산(이것들은 독립적인 생산적 노동자로부터도 진행될 수 있다)까지도 여기에서는 자본가를 위한 절대적 · 상대적 잉여 가치의 생산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산 과정의 분석에서 절대적 · 상대적 잉여 가치의 생산이 어떻게 (1) 하루의 노동 과정의 길이를 규정하며, (2)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의 사회적 · 기술적 형태 전체를 규정하는가를 보았다. 가치(불변 자본 가치)의 단순한 유지, 투하된 가치(노동력의 등가)의 현실적 재생산, 잉여 가치(곧 자본가가 아무런 등가도 미리 투하하지 않았고 또 뒤에도 투하하지 않는 가치)의 생산 사이의 구별이 나타나는 것은 생산 과정의 내부에서다.

 

잉여 가치(곧 자본가가 투하한 가치의 등가를 넘는 초과분인 가치)의 취득은 노동력의 매매로부터 준비되는 것이지만 생산 과정 그 자체의 내부에서 행해지는 행위며, 생산 과정의 본질적 요소의 하나를 이룬다. 준비하는 유통 행위, 곧 노동력의 매매는 그 자체가 또한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에 앞서며 또 그 전제로 되는) 생산 요소들의 분배, 곧 노동자의 상품인 노동력과 비노동자의 소유물인 생산 수단 사이의 분리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잉여 가치의 취득이나, 또는 가치의 생산이 투하된 가치의 재생산과, 아무런 등가도 대체하지 않는 새로운 가치(잉여 가치)의 생산으로 분리된다는 사실로 인하여, 가치 그 자체의 실체나 가치 생산의 성질이 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치의 실체는 지출된 노동력 (노동의 특수하고 유용한 성격과는 관계가 없는 노동)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그리고 가치의 생산은 노동력의 이러한 지출 과정일 따름이다. 예컨대, 농노가 6일 동안 자신의 노동력을 지출한다면, 6일 동안 노동한다면, 그가 이 6일 중 3일은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의 밭에서 일하고, 나머지 3일은 영주를 위해 그의 밭에서 일한다고 해서 노동력의 지출이라는 사실 자체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농노가 자기를 위해 하는 자발적 노동이나 영주를 위해 하는 강제 노동이나 똑같이 노동이다. 그의 노동을 그 노동으로부터 창출되는 가치나 물품과 관련시켜 보는 한, 그의 6일 동안의 노동 사이에는 아무런 구별도 생기지 않는다. 구별되는 것은 다만 6일이라는 노동 기간의 두 절반 동안에 그로 하여금 노동력을 지출하게 만들었던 사정의 차이와 관련될 따름이다. 임금 노동자의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도 이와 마찬가지다.

 

생산 과정은 상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상품을 만드는 데 노동력이 지출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상품이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가치의 크기는 지출된 노동량으로부터 측정된다. 상품 가치는 그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분해되지 않으며 또 그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구성되지 않는다. 일정한 길이의 직선을 하나 그었다면, 먼저 자신과는 독립적인 어떤 규칙(법칙)에 따르는 제도법으로부터 하나의 직선을 생산(하긴 전부터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관념적인 의미로만 생산이다) 셈이다. 이 선을 세 토막(이것들은 또한 일정한 문제에 대응한다고 하자)으로 나눈다면, 이 세 부분은 각각 이전과 다름없이 직선이며, 또 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전체 직선은 이러한 분할로부터 직선과는 다른 어떤 것, 예컨대, 그 어떤 종류의 곡선으로 분해되지는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길이의 직선을 나누어, 이 나누어진 부분들의 합계가 나누어지지 않은 원래의 직선 자체보다 더 길게 할 수는 없다. 곧 나누어지기 전의 직선의 길이는 임의로 정한 부분선들의 길이로부터 결정되지도 않는다. 반대로, 그 부분선들의 상대적 길이는 그 부분들로 이루어지는 직선 전체의 크기로부터 처음부터 제한되어 있다.

 

이 점에서는 자본가가 만든 상품은 독립적 노동자나 노동자 공동체나 노예가 만든 상품과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노동 생산물 전체와 그것의 가치 전체가 자본가의 것이다. 다른 모든 생산자와 마찬가지로 자본가도 먼저 상품을 팔아 화폐로 전환시켜야만 더욱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그는 상품을 일반적 등가의 형태로 전환시켜야만 한다.

 

화폐로 전환되기 전의 상품 생산물을 살펴보자. 그것은 완전히 자본가의 것이다. 그것은 유용 노동의 생산물로는, 사용 가치로는, 전적으로 방금 마친 노동 과정의 생산물이지만, 그것의 가치는 그렇지 않다. 이 가치의 한 부분은 상품 생산에 사용된 생산 수단의 가치가 새로운 형태로 다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가치 부분은 이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생산 수단은 이 생산 과정에 앞서서, 이 생산 과정과는 관계없이 자기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 수단은 이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이 과정에 들어왔다. 새로워지고 달라진 것은 이 가치의 현상 형태뿐이다. 자본가에게 상품 가치의 이 부분은 그가 투하한 불변 자본 가치 중 상품이 생산되는 동안에 소비된 부분에 대한 등가를 이룬다. 이 부분은 전에는 생산 수단의 형태로 있었지만 지금은 새로 생산된 상품의 가치 구성 부분으로 있다. 새로 생산된 상품이 화폐로 전환되면, (이제는 화폐로 있는) 이 가치는 다시 생산 수단으로 (곧 생산 과정과 거기에서 자기의 기능으로부터 규정되는 그 본래의 형태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상품의 가치 성격은 이 가치가 자본으로 기능하는 것으로부터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상품의 둘째 가치 부분은 임금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파는 노동력의 가치다. 이 가치는 생산 수단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노동력이 들어가게 될 생산 과정과는 관계없이 결정되며, 노동력이 생산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벌써 노동력의 매매라는 유통 행위에서 확정된다. 임금 노동자는 그의 기능으로부터, 곧 자신의 노동력을 지출하면서, 자본가가 자신의 노동력의 사용 대가로 자신에게 지불하여야 할 가치와 같은 상품 가치를 생산한다. 그는 자본가에게 이 가치를 상품으로 주며, 자본가는 그에게 이 가치를 화폐로 지불한다. 상품 가치의 이 부분이 자본가에게는 그가 임금에 투하해야 할 가변 자본의 등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 가치 부분은 생산 과정에서 새로 창출된 상품 가치며, 이 가치 부분은 잉여 가치와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방금 지나간 지출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변경시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이것은, 자본가가 임금의 형태로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노동력의 가치가 노동자에게는 수입의 형태를 띤다는 사실, 그리고 따라서 노동력이 끊임없이 재생산될 뿐 아니라 임금 노동자 계급 자체도,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 전체의 기초도 재생산된다고 하는 사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두 가치 부분(불변 자본 가치와 가변 자본 가치)을 합한 것이 상품 가치의 전체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두 부분을 합한 것을 넘는 초과분, 곧 잉여 가치가 남는다. 잉여 가치는 (임금에 투하된 가변 자본을 보충하는 가치 부분과 마찬가지로)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가 새로 창출한 가치, 곧 응고된 노동이다. 잉여 가치는 생산물 전체의 소유자인 자본가에게 아무런 비용도 들게 하지 않는다. 사실 이 사정 때문에 자본가는 잉여 가치를 전부 수입으로 소비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그가 잉여 가치의 한 부분을 다른 참가자들에게, 예컨대, 지대를 지주에게 떼어주지 않아야 하지만, 떼어주는 경우에는 이 부분들은 제3자들의 수입을 이룬다. 바로 이 사정은 우리의 자본가가 무릇 상품 생산을 하게 된 추진적 동기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잉여 가치를 얻으려는 자본가의 원래의 선량한의도로, 그리고 이 잉여 가치를 그와 그 밖의 사람들이 나중에 수입으로 지출하는 것도, 잉여 가치 그 자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사정은 잉여 가치가 응고된 지불받지 못한 노동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으며 또한 잉여 가치의 크기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잉여 가치의 크기는 전혀 다른 요인들로부터 결정된다.

 

스미스는 이미 상품 가치의 분석에서 상품 가치의 여러 부분들이 총재생산 과정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를 해명하려고 하였으므로, 어떤 가치 부분들이 수입으로 기능한다면 다른 부분들은 끊임없이 자본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은 그에게 명백하였으며, 따라서 그의 논리대로라면, 이 후자의 부분들도 상품 가치의 구성 부분들로, 또는 상품 가치가 분해되는 부분들로 표시해야 했다.

 

스미스는 상품 생산 일반과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에게는 생산 수단은 처음부터 자본이고, 노동은 처음부터 임금 노동이며, 그러므로

 

유용하고 생산적인 노동자들의 수는, 그들에게 일을 시키는 데 사용되는 자본의 양과 그 자본의 양을 사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비례한다’ (3).

 

한마디로 말하여, 노동 과정의 여러 요인들(객체적 요인과 인적 요인)이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생산의 시기를 특정짓는 탈을 쓰고 나타난다. 그러므로 스미스에게는 상품 가치의 분석이, 이 가치가 어느 정도로 투하 자본의 단순한 등가를 이루며, 또 어느 정도로 어떤 투하 자본 가치도 대체하지 않는 자유로운가치(곧 잉여 가치)를 이루는지를 해명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에서 비교 고찰된 상품 가치의 부분들이 슬그머니 상품 가치의 자립적인 구성 부분으로, 마침내는 모든 가치의 원천으로 전환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상품 가치가 각종 수입으로 구성되든가 또는 이러한 수입으로 분해되며, 그래서 수입이 상품 가치로 이루어지지 않고, 상품 가치가 수입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상품 가치나 화폐가 자본 가치로 기능한다고 해서 상품 가치 자체나 화폐 자체의 성질이 달라지지 않듯이, 상품 가치가 나중에 그 누구의 수입으로 기능한다고 해서 상품 가치의 성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스미스가 문제로 삼고 있는 상품은 처음부터 상품 자본(상품을 생산하는 데 소비된 자본 가치 외에도 잉여 가치가 또한 들어 있다)이고, 따라서 처음부터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된 상품이며,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의 결과다. 그러므로 먼저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을 이 과정이 포함하고 있는 가치 증식 과정 · 가치 형성 과정과 함께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의 전제는 상품 유통이므로,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을 서술하려면 또한 이와는 독립적으로 또 그에 앞서 상품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스미스가 심오한분석에서 때때로 옳은 것을 지적하는 경우에도, 그는 언제나 가치 형성을 상품의 분석, 곧 상품 자본의 분석에 부수적인 것으로 고려하고 있을 따름이다.

 

. 그 뒤의 경제학자들

 

리카도는 스미스의 이론을 거의 글자 그대로 재생산하고 있다.

 

한 나라의 모든 생산물이 소비된다는 것은 누구라도 이해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다른 어떤 가치를 재생산하는 사람들로부터 소비되는가 아니면 그런 것을 전혀 재생산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소비되는가 하는 것은 가정할 수 있는 최대의 차이를 가져온다. 수입이 저축되어 자본에 추가된다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수입 가운데 자본에 추가되었다고 설명되는 부분은 비생산적 노동자들이 아닌 생산적 노동자들로부터 소비된다고 하는 것이다.’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 223].

 

사실 리카도는 상품 가격이 임금과 잉여 가치, 또는 가변 자본과 잉여 가치로 분해된다는 스미스의 이론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리카도가 스미스에 반대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1) 잉여 가치의 구성 부분: 리카도는 지대를 잉여 가치의 필연적 요소로 인정하지 않는다.

 

(2) 상품 가격의 분할: 리카도는 상품 가격을 이 구성 부분들로 분할한다.

 

따라서 가치의 크기가 앞서고 있다. 리카도에게는 상품 가격의 구성 부분들의 합계가 주어진 크기로 전제되어 있으며, 그 크기가 출발점으로 되고 있다. 반면, 스미스는 자주 그리고 자기 자신의 심오한 견해와도 어긋나게 상품 가치의 크기를 구성 부분들의 합산으로부터 나중에 도출하고 있다.

 

람지는 리카도에 반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리카도는 항상 전체 생산물이 임금과 이윤으로 나누어질 뿐일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는 고정 자본을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잊고 있다.’

 

[부의 분배에 관한 평론: 174].

 

람지가 말하는 고정 자본이란, 필자가 말하는 불변 자본과 같은 것이다.

 

고정 자본은 가공되는 상품의 생산에는 이바지하지만, 노동자의 생계에는 이바지하지 않는 형태로 존재한다.’

 

[부의 분배에 관한 평론: 59].

 

스미스는 상품 가치, 또 사회의 연간 생산물의 가치가 임금과 잉여 가치로, 따라서 단순히 수입들로 분해된다는 자기 주장에서 나오는 필연적 결론, 곧 연간 생산물은 모두 소비될 수 있다는 점을 거부하였다. 독창적 사상가들은 결코 이러한 황당무계한 결론을 끌어내지 않으며, 그들은 이러한 일을 세와 매컬록과 같은 사람들에게 맡긴다.

 

세는 사실 이 문제를 아주 경솔하게 다루고 있다. 한 사람에게는 자본의 투하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수입과 순생산물이거나, 또는 적어도 그랬다. 총생산물과 순생산물의 차이는 순전히 주관적이며,

 

그래서 사회의 총생산물의 총가치는 수입으로 분배되었다.’

 

[,정치경제학 개론, 1817, 2: 64].

 

생산물의 총가치는 그 생산물의 생산에 공헌한 지주 · 자본가 · 근로자의 이윤으로 이루어진다. (임금이 여기에서는 근로자의 이윤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수입은 생산된 총가치와 같으며, 한 경제학파 (중농주의자들)가 생각한 것처럼 오직 토지의 순생산물과 같은 것은 아니다.’ (63).

 

세의 이 정리를 특히 프루동도 받아들였다.

 

슈토르히는 스미스의 학설을 원리에서는 역시 받아들이고 있지만, 세로부터 이 학설의 응용은 지지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국민의 수입이 어떤 자본도 (어떤 불변 자본도라고 해야 한다) 제외하지 않은 총생산물과 같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 국민은 자기들의 앞날의 수입에 조금도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기들의 연간 생산물의 총가치를 비생산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것도 또한 인정해야 한다. 한 국민의 자본 (불변 자본)을 이루는 생산물은 소비할 수 없는 것들이다.’

 

[슈토르히,국민 소득의 성질에 관한 고찰, 파리, 1824: 147, 150].

 

그러나 슈토르히는 이 불변 자본 부분의 존재가 자기가 받아들인 스미스의 가격 분석(곧 상품 가치에는 임금과 잉여 가치만 들어 있고, 어떤 불변 자본 부분도 들어 있지 않다)과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말하는 것을 잊었다. 슈토르히는 그 가격 분석이 황당무계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세로부터 알게 되었을 뿐이며,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그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다.

 

필요 가격을 그것의 가장 단순한 요소들로 분해할 수는 없다.’

 

[정치경제학 강의: 141].

 

시스몽디는 특별히 자본과 수입 사이의 관계를 취급하고, 사실 이 관계의 특별한 해명을 자기의신정치경제학 원리의 특징으로 삼고 있지만, 과학적인 말이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이 문제의 해명에 공헌한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바턴, 람지, 셰르뷜리에는 스미스의 견해를 넘어서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실패하고 있는 점은,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차이를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차이와 명백히 분리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처음부터 일면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도 여전히 오만하면서, 스미스로부터 그 후계자들이 물려받은 학설을 재생산하고 있다. 그 결과, 스미스의 사상적 혼란은 오늘까지도 존속하며, 그의 이론은 정치경제학에서 지배적인 학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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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

 

51. 서론

 

. 연구 대상

 

자본의 직접적 생산 과정은 노동 과정과 가치 증식 과정으로 구성되며, 그 결과는 상품 생산물이다. 이 과정을 추진하는 동기는 잉여 가치 생산이다.

 

자본의 재생산 과정은 이 직접적 생산 과정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유통 과정의 두 국면을 포괄한다. 이는 일정한 기간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기적 과정이며, 자본의 회전을 이루는 총 순환이다.

 

자본의 순환을 M의 화폐 순환 형태 또는 PP의 생산 순환 형태로 고찰하더라도, 직접적 생산 과정 P은 언제나 이 총 순환의 하나의 고리일 뿐이다.

 

M의 형태에서 직접적 생산 과정은 유통 과정 (M-CC´-M´)을 매개한다. 이와 달리, PP의 형태에서는 상품 유통 과정(C´-M´-C)이 직접적 생산 과정을 매개한다.

 

직접적 생산 과정의 끊임없는 갱신 (자본이 생산 자본으로 반복하여 나타나는 현상)은 두 경우 모두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본의 전환들을 전제한다. 다른 한편,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생산 과정은 자본이 유통 분야에서 새로이 겪는 전환, 곧 자본이 화폐 자본과 상품 자본으로 교대 출현하는 조건이 된다.

 

각 개별 자본은 사회적 총자본의 자립적인 (개별적 실체를 지닌) 한 부분에 불과하며, 이는 각 개별 자본가가 자본가 계급의 한 요소에 불과한 것과 동일하다. 사회적 총자본의 운동은 이 자본의 자립적 부분들, 곧 개별 자본들의 회전 운동들의 총체로 이루어진다. 개개의 상품 전환이 상품 세계 전체의 일련의 전환 (상품 유통)의 하나의 고리를 형성하듯이, 개별 자본의 전환 (그것의 회전)은 사회적 자본의 순환에서 하나의 고리이다.

 

이 총 과정은 생산적 소비 (직접적 생산 과정)와 이를 매개하는 형태 전환들 (실질적인 교환)을 포괄하며, 나아가, 개인적 소비와 이를 매개하는 교환들까지 포함한다.

 

총 과정은 한편으로 가변 자본이 노동력으로 전환되어 노동력이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 결합되는 것을 수반한다. 여기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상품인 노동력의 판매자로, 자본가는 구매자로 등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상품의 판매 속에는 노동자 계급의 상품 구매, 곧 그들의 개인적 소비가 포함된다. 이 국면에서는 노동자 계급이 구매자로, 자본가는 노동자에 대한 상품 판매자로 나타난다.

 

상품 자본의 유통은 잉여 가치의 유통 역시 포함하며, 이는 자본가들의 개인적 소비 (잉여 가치의 소비)를 매개하는 매매 행위를 수반한다. 따라서 사회적 총자본으로 총괄된 (총체적으로 파악된) 개별 자본들의 순환은 자본의 유통뿐 아니라 일반적 상품 유통까지 포괄한다.

 

이 일반적 상품 유통은 크게 두 구성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진정한 의미의 자본 순환

 

둘째, 개인적 소비에 들어가는 상품들의 순환: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을 지출하고, 자본가가 잉여 가치 또는 그 일부를 지출하는 상품들의 순환

 

물론 자본 순환은 잉여 가치의 유통 (잉여 가치는 상품 자본의 일부를 형성)과 가변 자본이 노동력으로 전환 (임금 지불)되는 과정까지 포괄한다. 그러나 이 잉여 가치와 임금이 상품 구매에 지출되는 행위 자체는 자본 유통의 어떤 고리도 구성하지 않는다. 비록 노동자가 생필품을 구입하여 생존해야 하므로, 임금의 지출은 적어도 자본 유통에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기는 하다.

 

1권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이 고립된 과정, 나아가, 재생산의 한 과정으로 분석되었다. 여기서 잉여 가치의 생산과 자본 자체의 생산이 고찰되었다.

 

자본이 유통 분야에서 겪는 형태 변화와 소재 변화는 당시 자세히 설명되지 않고 가정되었으며, 자본가는 생산물을 가치대로 판매하고, 과정의 재시작 또는 연속에 필요한 물적 생산 수단을 유통 분야에서 확보한다고 전제되었다. 1권에서 자세히 언급될 수밖에 없었던 유통 분야의 유일한 행위는 노동력의 매매였는데,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 조건이다.

 

이 제2권 제1편에서는 자본이 자신의 순환에서 취하는 각종 형태들과 이 순환 자체의 각종 형태들이 고찰되었다. 또한, 1권에서 다루었던 노동 기간에 추가하여 유통 시간이 고찰되었다.

 

2편에서는 순환이 주기적인 것, 곧 회전으로 고찰되었다.

 

우리는 한편으로, 자본의 상이한 구성 부분들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이 상이한 시간과 방식으로 각각의 순환을 어떻게 수행하는가를 규명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노동 기간과 유통 시간의 길이 차이를 일으키는 제반 사정들을 연구하였다. 또한 회전 시간과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상이한 비율이 생산 과정 자체의 규모와 연간 잉여 가치율에 미치는 영향을 밝혔다.

 

1편이 주로 자본이 순환 중 끊임없이 취하고, 폐기하는 형태들, 곧 계속 전환되는 형태들을 고찰하였다면, 2편에서는 일정한 크기의 자본이 잇따른 전환 과정에서 생산 자본, 화폐 자본, 상품 자본의 각종 형태로 (비록 비율은 변화할지라도) 어떻게 분할되는가를 고찰하였다. 이로부터, 그 형태들이 단순히 서로 교체될 뿐 아니라, 총자본 가치의 각 부분들이 특정 시점에서 이 상이한 상태들로 병존하며 기능하는 방식이 밝혀졌다.

 

특히 화폐 자본은 제1권에서 지적되지 않은 특성을 지닌 것으로 서술되었다. , 일정한 크기의 생산 자본을 끊임없이 기능하게 하려면, 자본 중 상당한 부분 (그 크기는 회전 조건에 따라 다르다)이 지속적으로 화폐 자본의 형태로 투하되고 갱신되지 않을 수 없다는 일정한 법칙들이 규명되었다.

 

1편과 제2편의 고찰은 언제나 다만 하나의 개별 자본, 곧 사회적 자본의 자립적 부분 운동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개별 자본의 순환들은 서로 엉키고 상호 전제하며 조건이 되면서, 바로 이 엉킴으로부터 사회적 총자본의 운동을 구성한다. 단순 상품 유통에서 한 상품의 전환이 상품 세계 전체 일련의 전환들 중 한 고리였듯이, 이제 개별 자본의 전환은 사회적 자본의 일련 전환들의 한 고리로 나타난다.

 

단순 상품 유통은 자본 유통과 필수적으로 결부되지 않는다. 이는 비자본주의적 생산 기반 위에서도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총자본의 순환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개별 자본의 순환에 속하지 않는 상품 유통 (자본을 형성하지 않는 상품들의 유통)까지 포괄한다.

 

이제 우리는 사회적 총자본의 구성 부분으로 개별 자본들의 유통 과정, 곧 사회적 총자본의 유통 과정을 고찰해야 한다. 이 유통 과정은 총체로 보면 재생산 과정의 한 형태이다.

 

. 화폐 자본의 기능

 

(다음 주제, 곧 화폐 자본을 사회적 총자본의 구성 부분으로 고찰하는 것은 실제로는 이 편의 나중 부분에 속하지만, 여기서는 먼저 연구하고자 한다.)

 

개별 자본의 회전 고찰에서 화폐 자본은 두 가지 측면을 드러냈다.

 

첫째로, 화폐 자본은 각 개별 자본이 무대에 등장하여 자본으로 자체의 과정을 개시하는 형태이다. 따라서 이는 전체 과정에 최초의 충격을 가하는 원동력으로 간주된다.

 

 

둘째로, 회전 시간의 길이와 그것의 구성 부분인 노동 기간 및 유통 시간의 비율에 따라, 투하 자본 가치 중 특정 시점에서 화폐 형태로 투하되고 갱신되어야 하는 구성 부분과 그것으로 인해 운동하는 생산 자본 (연속적인 생산 규모)은 상이한 비율을 갖는다.

 

그러나 이 비율이 어떻든, 과정 중에 있는 자본 가치 중 특정 시점에서 생산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는 부분은, 투하 자본 가치 중 생산 자본과 나란히 끊임없이 화폐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 부분으로 제한된다.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다만 표준적인 회전, 곧 관념적 평균이다. 우리는 유통의 지연을 극복하기 위한 추가적 화폐 자본은 배제한다.

 

첫째 점에 대하여: 상품 생산은 상품 유통을 전제하며, 상품 유통은 상품이 화폐로 표현되는 것, 곧 화폐 유통을 전제한다. 상품과 화폐로 상품이 나뉘는 것은 생산물이 상품으로 출현하는 하나의 법칙이다. (1권 제2, 3장 참조)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은 사회적으로나 개별적으로 보나 새로 개시되는 각 사업에 대한 원동력으로, 또 끊임없는 동력으로, 화폐 형태로 존재하는 자본 (곧 화폐 자본)을 전제한다. 특히 유동 자본은 화폐 자본이 짧은 시간 내에 끊임없이 반복하여 동력으로 등장하는 것을 전제한다. 투하된 자본 가치의 전체 (곧 상품들로 구성되는 자본 부분들, 노동력, 노동 수단, 생산 재료)는 지속적으로 화폐로 구매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개별 자본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다수의 개별 자본 형태로만 기능하는 사회적 자본에도 마찬가지로 타당하다. 그러나 제1권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그렇다고 해서 자본의 활동 범위 (곧 생산 규모)의 절대적 한계가 자본주의적 기초 위에서조차 기능 화폐 자본량으로 결정된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자본에 합쳐 있는 생산 요소들의 신축성은 일정한 한계 안에서 투하된 화폐 자본의 크기에 달려 있지 않는다. 노동력은 그것에 대한 지불이 동일할지라도, 외연적으로나 내포적으로 더욱 강하게 착취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착취가 더욱 강화됨에 따라 화폐 자본이 증가한다고 (곧 임금이 인상된다고) 하더라도, 임금이 착취의 강화에 비례해서, 따라서 착취되는 정도만큼 인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생산적으로 이용되는 자연물 (토지, 해양, 광석, 삼림 등. 자본의 가치 요소를 이루지 않음)은 화페 자본의 투자 증가 없이도 동일한 수의 노동력을 더욱 긴장시키면서 외연적, 내포적으로 더욱 집약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생산 자본의 실물적 요소들은 화폐 자본의 추가 없이도 증가된다. 비록 추가적 보조 재료를 위해 화폐 자본의 추가가 필요할지라도, 투하되는 화폐 자본은 생산 자본 효과의 확대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그만큼 증가하지는 않는다. 동일한 노동 수단, 곧 동일한 고정 자본은 추가적 화폐 지출 없이도 날마다의 사용 시간 연장이나 사용 강화로부터 더욱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이 경우, 고정 자본의 회전은 더 빨라지지만, 그것의 재생산 요소들 또한 더욱 빨리 공급된다. 자연물 외에도, 아무 비용도 들지 않는 자연력이 더 효과적으로 생산 과정에 결합될 수 있다. 그 효과의 정도는 자본가에게 아무 비용도 요구하지 않는 방법들과 과학적 발전들에 달려 있다.

 

생산 과정에서 노동력의 사회적 결합과 개별 노동자의 축적된 기능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 할 수 있다.

 

캐리에 따르면, 토지 소유자는 정당한 지대를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토지에 현재의 생산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 역사 이래 투입된 모든 자본 또는 노동에 대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토지로부터 빼앗은 생산 능력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러한 관념에 따르면, 개별 노동자는 그를 전근대인에서 근대적 기계공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인류 전체가 그에게 들인 노력에 대해 지불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이와 정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 토지에 투하된 모든 지불받지 못한 노동 (이것을 토지 소유자와 자본가가 화폐로 전환시켰음)을 계산해 본다면, 토지에 투입된 자본 전체는 이미 몇 차례나 이자를 붙여 상환되었으며, 따라서 사회는 토지 소유권을 훨씬 오래전에 벌써 몇 차례나 되돌려 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노동 생산력의 향상은, 자본 가치의 추가적 투하를 요구하지 않는 한, 먼저 생산물의 양만을 증가시키고, 그것의 가치를 증가시키지는 않는다. 물론 노동 생산력의 향상이 동일한 노동으로 더 많은 불변 자본을 재생산할 수 있게 하며, 따라서 더 많은 불변 자본의 가치를 보존할 수 있게 하는 범위까지는 생산물의 가치가 증가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추가적인 자본 소재를 형성하며, 따라서 자본의 축적 증대의 기초를 형성한다.

 

사회적 노동 그 자체의 조직화와 이에 따른 사회적 노동 생산력의 향상이 대규모 생산을, 결과적으로, 개별 자본가들로부터 대량의 화폐 자본 투하를 요구하는 한, 이러한 현상은 이미 제1권에서 밝힌 바와 같이, 부분적으로 소수의 수중으로의 자본 집중으로부터 수행된다. 따라서 기능하는 자본 가치의 규모 및 (그 기능하는 자본 가치가 투하되는 형태인) 화폐 자본의 규모가 절대적으로 증가할 필요는 없다. (1권 제25장 제2절과 제32장 참조) 이는 개별 자본들의 크기가 사회적 총액의 증가 없이도 소수의 수중으로의 집중으로부터 증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별 자본들의 재분배에 불과하다.

 

회전 시간의 단축으로부터 더 적은 화폐 자본으로 동일한 생산 자본이 운동하거나, 동일한 화폐 자본으로 더 많은 생산 자본이 운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의 모든 것은 명백히 화폐 자본 본래의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위에서 알 수 있는 바는, 투하 자본은 일정한 가치액으로, 자유로운 형태 (가치 형태)에서는 일정한 화폐액으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이 자본은 생산 자본으로 전환된 후 생산 능력을 내포하게 되는데, 이 능력은 투하 자본의 가치 크기로 인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작용 범위 내에서 외연적 또는 내포적으로 상이하게 작용할 수 있다.

 

생산 요소들 (생산 수단과 노동력)의 가격이 주어진다면, 상품으로 현존하는 이 생산 요소들의 일정한 분량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화폐 자본의 크기 또한 결정된다. , 투하되어야 할 자본 가치의 크기는 결정된다. 하지만 이 자본이 가치와 생산물의 형성자로 작용하는 범위는 탄력적이며 가변적이다.

 

둘째 점에 대하여: 사회적 노동과 생산 수단 중 마멸된 주화를 보충하기 위해 매년 화폐의 생산 또는 구입에 지출되어야 하는 부분은 그만큼 사회적 생산의 규모를 축소시킨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일부는 유통 수단으로, 일부는 퇴장 화폐로 이미 기능하고 있는 화폐 가치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획득된 것이며 노동력, 생산된 생산 수단 및 부의 자연적 원천들과 나란히 존재한다. 따라서 그 화폐 가치가 이 요소들을 제한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화폐 가치가 생산 요소들로 전환되거나 다른 나라들과 교환하는 데 사용된다면, 생산 규모는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화폐가 종전과 다름없이 세계 화폐로 기능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회전 시간의 길이에 따라 생산 자본을 운동시키는 데 필요한 화폐 자본의 양은 증감한다. 또한 이미 본 바와 같이, 노동 기간과 유통 시간으로 회전 시간이 분할되는 것은 화폐 형태로 잠재되어 있거나 유휴하고 있는 자본의 증가를 일으킬 수 있다. 회전 시간이 노동 기간의 길이로부터 규정되는 한, 이는 기타 조건이 불변이라면 생산 과정의 물질적 성격으로부터 규정되는 것이지, 생산 과정의 특수한 사회적 성격으로부터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초 위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확대된 규모의 사업으로 인해 더욱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화폐 자본의 투하가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분야의 생산은 개별 자본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화폐 자본의 한도에 달려 있다. 이 제한은 신용 제도와 이와 관련된 연합체 (: 주식 회사)로부터 극복된다. 이 이유로, 화폐 시장의 교란은 이 거대한 사업들의 활동을 정지시키며, 반대로, 이 사업들 또한 화폐 시장의 교란을 일으킨다.

 

이 사업들은 장기간에 걸쳐 노동력과 생산 수단을 투입하면서도 그 기간 동안 유용 효과를 가진 생산물을 공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적 (공산주의적) 생산의 기초 위에서는 이 사업들이 연간 끊임없이 또는 여러 차례 노동력과 생산 수단을 투입할 뿐 아니라 생활 수단과 생산 수단을 공급하기도 하는 생산 부문들을 해치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 수행될 수 있는가를 미리 결정해야 한다. (2권 제16장 제3절 참조)

 

사회적 생산에서나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나 마찬가지로, 노동 기간이 비교적 짧은 생산 부문의 노동자들이 새로운 생산물을 공급하지 않고 생산물을 흡수하는 시간은 짧다. 그러나 노동 기간이 긴 생산 부문은 생산물을 공급하기 전에 장기간 계속하여 생산물을 흡수한다. 따라서 이 사정은 해당 노동 과정의 물적 조건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그것의 사회적 형태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화폐 자본은 사회적 생산에서는 없어진다. 사회는 노동력과 생산 수단을 상이한 생산 부문들에 분배한다. 생산자들은 예컨대 종이표를 받고 이것으로 사회 소비용 재고 중에서 그들의 노동 시간에 해당하는 분량을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종이표는 화폐가 아니다. 그것은 유통되지 않는다.

 

요컨대, 화폐 자본에 대한 필요가 노동 기간의 길이에서 비롯되는 한, 이는 다음 두 가지 사정 때문이다.

 

첫째로, 화폐는 각 개별 자본이 (신용을 배제할 때) 생산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해 먼저 취해야 하는 일반적 형태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사정은 자본주의적 생산, 나아가, 상품 생산 일반의 본질로부터 유래한다.

 

둘째로, 필요한 화폐 투하액이 크다는 사정은, 노동력과 생산 수단을 비교적 긴 기간에 걸쳐 끊임없이 사회로부터 흡수하면서도 이 기간 동안 화폐로 재전환될 수 있는 생산물을 공급하지 못한다는 사정 때문에 발생한다.

 

첫째 사정, 곧 투하되어야 할 자본이 화폐 형태로 투하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 화폐 자체의 형태가 어떻든(금속 화폐, 신용 화폐, 가치 표상 등) 제거되지 않는다.

 

둘째 사정, 곧 어떤 등가물도 유통에 투입하지 않고, 노동, 생활 수단, 생산 수단을 흡수하는 일 때문에 생기므로, 어떤 화폐적 유통 수단이나 어떤 생산 형태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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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잉여 가치의 유통

 

이미 본 바와 같이, 1년간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이 불변일지라도, 회전 시간의 차이는 연간 잉여 가치율의 차이를 초래한다. 나아가, 잉여 가치의 자본화, 곧 축적 과정에서도 필연적 차이가 발생하며, 이는 잉여 가치율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1년간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에 차이가 일으킨다.

 

앞 장 예에서, 자본가 A는 연속적인 주기적 수입을 확보하므로, 사업 개시 최초의 회전 시간을 제외하면 연중에 생산된 잉여 가치에서 자기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자체 재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본가 B의 경우, 자기 재원에서 지출이 이루어져야 한다. BA와 동일 기간에 같은 양의 잉여 가치를 생산하지만, 이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으므로, 개인적 또는 생산적으로 소비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적 소비를 위해서는 B가 잉여 가치를 예상하고 미리 소비할 수는 있으나, 그 지출은 먼저 개인적 소비를 위한 재원에서 충당되어야 한다.

 

생산 자본 중 분류하기 어려운 부분(곧 고정 자본의 수리 및 유지에 필요한 추가 자본)이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된다. A의 경우, 이 자본 부분은 생산 개시 시점에 전부 또는 대부분이 투하되지 않으며, 미리 준비하거나 보유할 필요도 없다. 이는 잉여 가치를 직접 자본으로 전환하며, 곧 잉여 가치를 직접 사용하면서 사업 자체로부터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1년 안에 주기적으로 생산될 뿐 아니라 실현되는 잉여 가치의 일부가 수리 등에 필요한 지출에 충당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초 규모로 사업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자본의 일부는 잉여 가치의 자본화로부터 사업 진행 중에 사업 자체로부터 조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B에게는 성립할 수 없다. B의 경우, 이 자본 부분(고정 자본 수리 및 유지에 필요한 추가 자본)은 최초에 투하되는 자본의 일부를 구성해야 한다. 두 경우 모두 이 자본 부분은 장부상 투하 자본으로 나타나며, 실제로도 투하 자본이다. 왜냐하면, 이는 가정된 규모로 사업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생산 자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재원에서 투하되는가 하는 점에는 큰 차이가 있다. B의 경우, 그것은 현실적으로 최초에 투하되거나 가용하도록 보유되어야 할 자본의 일부이다. 반면, A의 경우, 그것은 잉여 가치 중에서 자본으로 사용되는 일부에 해당한다. 결국, A에게는 축적된 자본뿐 아니라 최초에 투하된 자본의 일부까지도 자본화된 잉여 가치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신용의 발전이 개입하면 최초 투하 자본과 자본화된 잉여 가치 사이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가령, A가 사업 수행에 충분한 자기 자본을 처음부터 갖추지 못해 사업 개시 또는 1년간의 지속을 위한 생산 자본의 일부를 은행가 C로부터 차입한다고 가정하자. 은행가 C는 산업가 D, E, F 등이 예탁한 잉여 가치로 이루어진 금액을 A에게 대부한다. A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아직 축적된 자본은 아니지만, 사실상 AD, E, F 등이 취득한 잉여 가치를 자본화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

 

1권 제24장에서 본 바와 같이, 축적, 곧 잉여 가치가 자본으로 전환되는 것은 그 현실적 내용으로 볼 때 확대된 규모의 재생산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확대는 외연적으로, 새로운 공장의 추가로부터 나타나거나, 또는 종래 생산 규모의 내포적 확대로 나타날 수 있다.

 

생산 규모의 확대는 잉여 가치의 일부가 개량(고용 노동의 생산력을 향상시키거나 노동을 동시에 더 집약적으로 착취할 수 있게 하는 개량)에 사용되면서 점진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또는 노동일이 법적으로 제한되지 않는 영역에서는, 고정 자본의 확대 없이 유동 자본(생산 재료와 임금)의 추가 지출만으로도 생산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 이 경우, 고정 자본의 매일 사용 시간이 단순히 연장되며, 이에 따라 그것의 회전 시간은 단축된다. 또는 자본화된 잉여 가치는 시장 상황이 유리할 경우 원료에 대한 투기라든가, 최초 투하 자본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을 기타 활동들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회전 기간의 수(회전수)가 증가하여 1년 동안 잉여 가치의 실현이 더 빈번해지는 경우, 노동일을 연장하거나 개별적 개량을 실시할 수 없는 기간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른 한편, 사업 전체의 균형적인 확대 (부분적으로는 기업 시설, 예컨대 건물의 확장으로부터, 부분적으로는 농업에서와 같이 경지 면적의 확대로부터)는 대체로 좁고, 일정한 한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확대는 몇 년 동안 잉여 가치를 축적해야만 제공될 수 있는 상당히 큰 추가 자본을 요구할 수 있다. 이로부터 현실적 축적, 곧 잉여 가치의 생산 자본 전환(이에 상응하는 확대 재생산)이 진행되는 것과 병행하여 화폐의 축적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은 잉여 가치의 일부를 잠재적 화폐 자본으로 비축하는 것이며, 이 자본은 일정한 크기에 달한 이후에야 비로소 추가적인 능동적 자본으로 기능하게 된다.

 

개별 자본가의 입장에서 사태는 위와 같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동시에 신용 제도 역시 발전한다. 한 자본가가 아직 자기 사업에 사용할 수 없는 화폐 자본이 다른 자본가에게 사용되며, 전자는 후자로부터 이자를 받는다. 이 자본은 전자에게는 특수한 의미의 화폐 자본(생산 자본과 구별되는 특수한 종류의 자본)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이는 다른 자본가의 수중에서 실제로 자본으로 기능한다.

 

잉여 가치가 더 빈번히 실현되고, 그것이 생산되는 규모가 증대함에 따라, 새로운 화폐 자본 또는 자본으로의 화폐가 화폐 시장에 유입되는 규모가 증대하는 것이 명백하며, 적어도, 이 화폐의 대부분은 생산의 확대를 위해 화폐 시장에서 다시 흡수된다. 이 추가적인 잠재적 화폐 자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형태는 퇴장 화폐이다. 이 퇴장 화폐는 귀금속 생산국과의 교환(무역)으로, 직간접적으로 획득된 추가적인 금 또는 은일 수 있으며, 국내 퇴장 화폐의 절대적 증대는 이러한 방식으로만 이루어진다.

 

다른 한편,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 퇴장 화폐는 국내 유통에서 이탈하여 개별 자본가에게 퇴장 화폐의 형태로 보유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또한, 이 잠재적 화폐 자본은 단순히 가치 표상으로 구성되거나 (여기서는 신용 화폐는 논외로 한다), 또는 제3자에 대한 자본가의 단순한 청구권(법적으로 확인된 권리 증서)으로 구성될 수 있다.

 

그 어느 경우에도, 이 추가적 화폐 자본은, 그 존재 형태와 무관하게 장래의 자본인 한, 그 사회의 장래 추가적 연간 생산물에 대한 자본가의 (예비로 보유된) 추가적인 청구권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축적된 부의 양은 해당 사회(이 사회가 어떤 문명 단계에 처해 있든)의 생산력이나 불과 몇 년간의 현실적 소비량과 비교할 때 극히 미미하다. 그러므로 입법가들과 경제학자들은 시선을 현혹하는 축적된 부가 아니라, 주로 생산력과 그것의 장래 자유로운 발전에 집중해야 한다. 이른바 축적된 부의 거의 대부분은 다만 명목적인 것이며, 선박, 가옥, 면제품, 토지 개량과 같은 현실적 물건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장래 연간 생산력에 대한 단순한 청구권 (불확실성에 대비한 수단·제도들로부터 발생하여 영구화된 청구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물건들(물리적 사물이나 현실적 부의 축적물)을 그것의 소유자들이 사회의 장래 생산력으로부터 창출될 부를 취득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폭력의 사용 없이도 분배의 자연 법칙들로부터 점차적으로 박탈되는 중이다. 협동적 노동의 도움을 얻는다면, 이러한 사용은 몇 해 안에 그들로부터 박탈될 것이다.’

 

[W. 톰슨,인간의 행복을 가장 잘 증진시키는 부의 분배 원리에 관한 연구, 2, 런던 1850: 453, 1판은 1824년 출판].

 

사회의 현실적 축적이 그 크기나 영향력 면에서 인간의 생산력 또는 심지어 한 세대 사람들의 불과 몇 년간의 통상적인 소비와 비교할 때, 매우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거나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명백하나, 그 영향은 대단히 해롭다. 매년 소비되는 부는 소비와 함께 소멸하므로, 우리가 보는 것은 일순간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인상을 받는 것은 그것을 향락하고 사용하는 동안뿐이다. 그러나 부 중에서 천천히 소비되는 부분인 가구, 기계, 건물은 우리의 유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눈앞에 있으며, 인간 노력의 내구적인 기념물이다. 국부 중에서 이러한 고정적이며, 오래 견디는 또는 천천히 소비되는 부분인 토지와 가공되는 원료, 가공하는 도구, 작업 중에 비바람을 피하게 하는 건물을 소유하면서, 이 물건들의 소유자들은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진실로 생산적인 노동자들의 해마다의 생산력을 지배하고 있다. 자기들이 소유한 물건들은 이 노동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산물들에 비하면 매우 보잘것없음에도 말이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인구는 2,000만 명이며, 남자, 여자, 아동의 1인당 평균 소비를 1년간 약 20파운드로 볼 때, 총 약 4억 파운드의 부가 매년 소비되는 노동 생산물이다. 이 나라들의 축적된 자본 총액은 12억 파운드, 곧 연간 노동 생산물의 3배를 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며, 1인당 평균 자본은 60파운드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평가액의 절대액 정확성이 아니라 그 비율이다. 이 총자본의 이자 (연간 이자율 5.55%일 때)는 총인구를 현재 생활 수준에서 1년 중 약 2개월 동안 유지할 것이며, 축적된 총자본은 (구매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노동 없이 총인구를 3년 동안 유지할 것이다! 3년 후에는 그들은 가옥, 의복, 먹을 것 없이 굶어 죽거나, 또는 3년 동안 그들을 유지해 온 사람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년이 건강한 한 세대의 생존 기간(가령 40)에 대하여 가지는 비율은,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현실적 부(축적된 자본)의 크기와 의의가 단 한 세대 사람들의 생산력들에 대하여 가지는 비율과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산력은, 한 세대 사람들이 균등하게 안정을 보장하는 현명한 제도에서, 특히 협동적 노동의 도움을 받아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결함투성이이며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제도에서 그들이 절대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외관상으로, 막대한 양의 현존 자본 (또는 오히려 이 자본량으로부터 획득하는 연간 노동 생산물에 대한 지배력)이 현재의 강요된 분리 상태 (대다수 국민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지 않음)에서 유지되기 위해서는 가증스러운 전체 기구 (곧 불안정에서 생기는 죄악, 범죄, 고통)가 영구화되어야 한다. 먼저 생필품 공급 없이 아무것도 축적될 수 없으며, 인간 성향의 큰 흐름이 향락을 추구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서든 사회의 현실적 부의 양은 상대적으로 보잘것없다. 오히려 생산과 소비는 영구히 순환한다. 이 막대한 양의 연간 생산과 소비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한 현실적 축적은 없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주로 이 막대한 생산력이 아니라 한 줌에 불과한 축적에 주목해 왔다. 그런데 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장악된 한 줌에 불과한 축적은 대다수 사람들의 노동으로부터 매년 끊임없이 반복 생산되는 생산물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도구로 전환되었다. 그러므로 이 소수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도구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현재, 국민 노동의 연간 생산물 중 약 1/3이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생산자들로부터 탈취되며, 이에 대해 아무런 등가(곧 생산자에게 만족할 만한 그 무엇)도 제공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비생산적으로 소비된다. 세속적인 인간들은 대규모의 축적(특히 그것이 소수에게 집중된 경우)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매년 생산되는 막대한 생산물은 큰 강의 영구한 물결처럼 흘러가 소비라는 망각의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이 끊임없는 소비에 인류 전체의 모든 만족뿐 아니라 심지어 생존까지 달려있다. 따라서 이 연간 생산물의 양과 분배가 무엇보다도 연구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실적 축적은 부차적인 의의만을 지니며, 그 의의조차도 전적으로 연간 생산물의 분배에 미치는 영향에서 비롯된다.

 

(톰슨의 저작에서는) 현실적 축적과 분배가 언제나 생산력과 연관시켜, 그리고 그것에 종속시켜 고찰된다. 반면, 거의 모든 다른 학설은 생산력을 현실적 축적 및 현행 분배 방식의 영구화와 관련시키고, 종속시켜 고찰하였다. 나아가, 그들은 현행 분배 방식의 유지에 비하면 인류 전체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불행 또는 행복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겼다. 폭력, 기만, 우연의 결과를 영구화하는 것, 곧 그들이 안전이라 부르는 이 가짜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인류의 모든 생산력이 무참하게 희생되었다.’

 

[W. 톰슨,인간의 행복을 가장 잘 증진시키는 부의 분배 원리에 관한 연구: 440-443].

 

주어진 규모의 재생산을 방해하는 교란 요인들을 제외한다면, 재생산에는 오직 두 가지 전형적인 경우만이 있을 수 있다. 단순한 규모에서 재생산이 진행되는 경우와, 잉여 가치의 자본화, 곧 축적이 실행되는 경우이다.

 

. 단순 재생산

 

단순 재생산 과정에서, 매년 또는 연중 주기적 회전으로 생산 및 실현된 잉여 가치는 그 소유자인 자본가로부터 개인적, 곧 비생산적 소비로 전용된다.

 

생산물 가치 일부가 잉여 가치로 구성되고, 그 나머지 부분이 생산물에 재생산된 가변 자본과 소비된 불변 자본에서 형성된 가치분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정은, 상품 자본으로 유통에 끊임없이 진입하며, 생산 수단 또는 소비 수단으로 유통에서 지속적으로 유출되는 총생산물의 양이나 가치에 어떠한 변화도 초래하지 않는다. 불변 자본을 제외한다면, 이 사정은 연간 생산물의 노동자와 자본가 간 분배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다.

 

단순 재생산 과정에서조차 잉여 가치의 일부는 생산물 형태가 아닌 반드시 화폐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잉여 가치가 소비를 위한 생산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화폐를 매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잉여 가치가 최초의 상품 형태에서 화폐로 전환되는 과정을 상세히 분석한다. 사태를 단순화하기 위해 논의를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한정하며, 유통은 오직 금속 화폐(진정한 등가물)로만 이루어진다고 가정한다.

 

단순 상품 유통(1권 제3) 법칙에 따라, 국내에 존재하는 금속 화폐의 양은 상품 유통을 원활하게 할 만큼 충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 화폐량은 유통 속도, 상품 가격, 그리고 화폐가 지불 수단 또는 진정한 유통 수단으로 기능하는 비율의 차이와 변동에서 기인하는 화폐 유통의 변동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충분해야 한다.

 

현존하는 화폐량이 퇴장 화폐와 유통하는 화폐로 분할되는 비율은 끊임없이 변동하지만, 총 화폐량은 언제나 이 두 형태의 합계와 동일하다. 이 화폐량(귀금속의 양)은 사회가 점진적으로 축적한 퇴장 화폐이다. 이 퇴장 화폐의 일부가 마멸 등으로 소실될 경우, 그 부분은 다른 모든 생산물과 마찬가지로 매년 새롭게 보충되어야 한다. 이러한 보충은 실제로 한 나라의 연간 생산물 일부가 금·은 생산국의 생산물과 직간접적으로 교환되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거래의 세계적 성격은 과정의 단순함을 은폐하므로, 문제를 가장 단순하고, 명료하게 제시하기 위해서는 금·은의 생산이 자국 내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금·은 생산이 국내의 사회적 총생산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전제해야 한다.

 

사치품을 위해 생산되는 금·은을 제외한다면, 이 귀금속들의 연간 생산량 최소치는 매년 화폐 유통으로 인해 생기는 화폐 금속의 마멸분과 같아야 한다. 또한, 매년 생산 및 유통되는 상품량의 가치액이 증가할 경우, ·은의 연간 생산 역시 증가해야 한다. 이는 화폐의 유통 속도 증대와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기능 확대(, 진정한 화폐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매매의 상호 결제 증가)로부터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의 증가분과 그에 상응하는 화폐 퇴장에 필요한 양이 상쇄되지 않는 한에서 그러하다.

 

그러므로 사회적 노동력과 사회적 생산 수단의 일부는 매년 금·은 생산에 투입되어야 한다 (이로부터 화폐는 순수 유통 비용의 성격을 갖는다). 단순 재생산을 전제할 때, ·은 생산에 종사하는 자본가들은 금·은의 연평균 마멸 및 그로 인한 연평균 소비 한계 내에서만 생산을 수행한다. 이 자본가들은 그들의 잉여 가치(가정상 전혀 자본화되지 않고, 매년 소비되는 부분)를 화폐 형태로 직접 유통에 투입한다. 이 화폐 형태는 다른 생산 부문에서 생산물이 전환된 형태인 것과 달리, 이들에게는 생산물의 현물 형태 자체이다. 더 나아가, 임금, 곧 가변 자본이 투하되는 화폐 형태 역시 생산물의 판매나 화폐로의 전환으로 보충되는 것이 아니라, 그 현물 형태가 애초부터 화폐 형태인 생산물로부터 직접 보충된다.

 

마찬가지로, 귀금속 총생산물 중 주기적으로 소비되는 불변 자본, 곧 연간 소비되는 불변적 유동 자본과 불변적 고정 자본의 가치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동일한 사태가 적용된다.

 

귀금속 생산에 투하된 화폐 자본 제1 순환 (M-CPM´) 형태로 고찰할 경우, 구매(M-C)에서 상품(C)은 노동력과 생산 수단뿐 아니라 고정 자본(그 가치 일부만이 P에서 소비됨)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생산물(M´)은 임금에 투하된 가변 자본 + 생산 수단에 투하된 유동적 불변 자본 + 마멸된 고정 자본의 가치 부분 + 잉여 가치를 더한 화폐액과 동일하다는 점이 명백하다.

 

금의 일반적 가치가 불변일 때, M´이 이 화폐액보다 적다면, 해당 광산업은 수익성이 없거나, 또는 이러한 현상이 일반화될 경우, 장래에 금의 가치는 가치가 변하지 않는 상품 대비 상승한다. , 상품들의 가격이 하락하여 장래에는 M-C에 투하되는 화폐액이 감소한다.

 

M-CP의 출발점인 화폐 자본 M으로 투하되는 자본의 유동 부분만을 고찰할 경우, 일정한 화폐액이 노동력 지불과 생산 재료 구매에 투하되어 유통에 진입한다. 그러나 이 화폐액은 해당 자본의 순환으로 유통에서 다시 회수되어 재투입되지 않는다.

 

생산물은 이미 현물 형태 자체가 화폐이므로, 교환이나 유통 과정을 거쳐 비로소 화폐로 전환될 필요가 없다. 이 생산물은 화폐 자본으로 재전환되어야 할 상품 자본의 형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새로 노동력과 생산 재료를 구매해야 할 생산 자본으로 재전환되어야 할 화폐 자본으로 생산 과정으로부터 유통 영역으로 진입한다. 노동력과 생산 수단에 지출된 유동 자본의 화폐 형태는 생산물의 판매로부터 보충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물 자체의 현물 형태로부터 보충된다. 따라서 그것의 가치를 화폐 형태로 유통에서 다시 끌어내면서 보충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생산된 추가적 화폐로부터 보충된다.

 

유동 자본 500, 회전 시간 5, 노동 기간 4, 유통 시간 1주라고 가정하자.

 

초기부터 5주분의 화폐는 일부가 생산용 재고에 투하되고, 일부는 점차 임금으로 지불되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6주 초가 되면 400원이 환류하며, 100원이 풀려난 상태로 남는다. 이 순환은 계속 반복된다. 이 경우에도, 종전과 같이 회전의 특정 기간에 100원이 항상 풀려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이 금액은 나머지 400원과 마찬가지로 새로 생산된 추가적 화폐로 구성된다. 이 순환에서 연간 회전수는 10회이며, 생산되는 연간 생산물은 5,000원 상당의 금이다. (여기서 유통 시간은 상품이 화폐로 전환되는 시간이 아닌, 화폐가 생산 요소들로 전환되는 데 소요되는 시간으로 정의한다.)

 

동일한 조건에서 회전하는, (·은 생산을 제외한) 다른 자본 500원의 경우, 끊임없이 갱신되는 화폐 형태는 생산된 상품 자본이 전환된 형태이다. 이 상품 자본은 4주마다 유통에 투입되며, 그것의 판매로부터 맨 처음 과정에 투입된 것과 동일한 양의 화폐를 주기적으로 회수하면서 화폐 형태를 끊임없이 새롭게 취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은 생산 자본의 경우에는 매 회전 기간마다 새로운 추가 화폐 500원이 생산 과정 자체로부터 유통에 투입되고, 이 화폐는 유통에서 생산 재료와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끌어낸다. 유통에 투입되는 이 화폐는 해당 자본의 순환으로부터 유통에서 회수되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새로 생산되는 금량으로부터 증대된 것이다.

 

가변 부분이 위와 같이 100원이라고 가정할 때, 일반적인 상품의 생산에서는 이 100원은 1년에 10회전하며 노동력에 대한 지속적인 지불에 충분하다. 금 생산의 경우에도 동일한 금액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5주마다 노동력에 대해 지불되는 100원의 환류는 이 노동력의 생산물이 전환된 형태가 아니라, 그 새로운 생산물 자체의 일부이다. 금 생산업자는 자기 노동자들에게 그들 자신이 생산한 금의 일부를 직접 지불한다. 따라서 이처럼, 매년 노동력에 투하되며 노동자들로부터 유통에 투입되는 총 1,000원은 유통으로부터 자체의 출발점으로 복귀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고정 자본에 대해 말하자면, 사업 초기 창립 시점에 비교적 큰 금액의 화폐 자본이 지출되어 유통에 투입된다. 모든 고정 자본과 마찬가지로 그 가치의 일부만이 몇 년에 걸쳐 환류한다. 그러나 이 환류는 생산물, 곧 금의 직접적인 일부로 이루어지며, 생산물의 판매 및 이에 따른 화폐화로부터 환류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화폐가 유통에서 회수되는 방식이 아니라, 생산물 중 해당되는 부분의 적립으로부터 점진적으로 화폐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회수된 화폐 자본은, 최초에 고정 자본을 위해 유통에 투입되었던 화폐액을 보충하기 위해 유통에서 점차 끌어내진 화폐액이 아니다. 그것은 추가적인 화폐량이다.

 

마지막으로, 잉여 가치에 관해 말하자면, 이것 또한 새로운 생산물인 금의 일부이다. 이 부분은 새로운 회전 기간마다 유통에 투입되며, 우리의 가정에 따라 비생산적으로 지출되어 생활 수단과 사치품에 대한 지불로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의 전제에 따르면, 시장에서 노동력과 생산 재료를 끊임없이 끌어내지만 어떤 화폐도 다시 회수하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추가 화폐를 공급하는 이 연간 금 생산 전체는 일 년간 마멸된 화폐를 보충하는 역할에 그칠 뿐이다. 따라서 이는 (비록 비율상 변동이 있을지라도) 퇴장 화폐와 유통 화폐라는 두 형태로 존재하는 사회의 총 화폐량이 부족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역할만을 수행한다.

 

상품 유통의 법칙에 따르면, 총 화폐량은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 + 퇴장 화폐 형태로 존재하는 화폐량의 합과 같아야 하며, 후자는 유통의 수축과 팽창에 따라 증감하고, 특히 필요한 지불 수단의 준비금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지불이 상호 상쇄되지 않는 한, 상품의 가치는 화폐로 지불되어야 하며, 이 가치의 일부가 잉여 가치로 구성된다는 사실, 곧 그 상품의 판매자에게는 아무런 비용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사태를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생산자들이 모두 생산 수단의 독립적인 소유자이며, 유통이 직접 생산자 자신들 사이에서 진행된다고 가정하자. 그들의 자본 중 불변 부분을 제외하면, 그들의 연간 잉여 생산물은 자본주의 사회의 사태와 비슷하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그들의 생필품을 보충할 부분 a, 그들이 일부는 사치품에 소비하고, 일부는 생산 확대에 사용하는 부분 b로 구분된다. 이 경우, a는 가변 자본을, b는 잉여 가치를 대표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그들의 총생산물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의 크기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기타 조건이 동일하다면, 전체 유통 상품량의 가치는 동일할 것이며, 따라서 이에 필요한 화폐량 또한 동일할 것이다.

 

화폐 시간의 분할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종전처럼 동일한 화폐 준비, 곧 그들의 자본 중 동일한 부분을 항상 화폐 형태로 보유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의 생산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상품 생산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 가치의 일부가 잉여 가치로 이루어진다는 사정은 사업 경영에 필요한 화폐량을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투크의 반대자 중 화폐 순환 형태(M-C-M´) 형태에 집착하는 이는 자본가가 유통에 투입한 것보다 어떻게 더 많은 화폐를 지속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가질문한다. 명확히 하자면, 여기서 논점은 잉여 가치의 형성 자체가 아니다. 이는 유일하고 진정한 비밀이지만, 자본가들게는 이미 당연한 전제이다. 투하된 가치액이 잉여 가치로부터 증식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본일 수 없다. 따라서 잉여 가치는 시초부터 전제되며, 그 존재는 당연시된다.

 

따라서 문제는 잉여 가치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잉여 가치를 화폐화하기 위한 화폐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에서 잉여 가치의 존재는 자명한 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잉여 가치의 존재가 가정될 뿐 아니라, 이와 함께 다음과 같은 사실이 가정된다. , 유통에 투입된 상품량의 일부는 잉여 생산물이며, 이는 자본가가 자기 자본과 함께 유통에 투입한 것이 아닌 어떤 가치를 표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가는 자기의 생산물과 더불어 자기 자본 이상의 초과분을 유통에 투입하고, 그 초과분을 유통에서 다시 회수한다고 가정된다.

 

자본가가 유통에 투입하는 상품 자본은 그가 노동력과 생산 수단의 형태로 유통에서 끌어낸 생산 자본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 (부르주아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그 이유가 설명되거나 이해되지 않지만, 이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이러한 전제하에서는, 자본가 A뿐 아니라 B, C, D 등 모든 자본가가 자기 상품의 교환으로 자신들의 최초 자본 가치(이는 끊임없이 새로 투하됨)보다 더 큰 가치를 유통에서 항상 회수할 수 있는 이유가 명백해진다.

 

A, B, C, D 등은 생산 자본의 형태로 유통에서 끌어내는 것보다 더 큰 상품 가치를 상품 자본의 형태로 유통에 지속적으로 투입한다. 이 활동은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자본들로 인해 그만큼 다양하게 전개된다. 따라서 그들은 각자가 투하한 생산 자본의 가치에 해당하는 화폐 총액으로부터, 단순히 생산 자본의 화폐액뿐 아니라, 상품 가치 중 생산 요소들의 가치 이상의 초과분(잉여 가치)을 화폐로 회수할 수 있게 된다.

 

상품 자본이 생산 자본으로 재전환되고, 그 내포된 잉여 가치가 지출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폐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때, 이 화폐화를 위한 자금이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 난해한 문제이며, 투크를 비롯한 그 누구도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가령, 화폐 자본 형태로 투하된 500원의 유동 자본이 회전 시간과 무관하게 자본가 계급의 총 유동 자본이며, 잉여 가치가 100원이라고 전제하자. 전체 자본가 계급이 항상 500원만을 유통 과정에 투입함에도, 어떻게 지속적으로 600원을 회수할 수 있는가.

 

500원의 화폐 자본이 생산 자본으로 전환된 뒤, 생산 과정을 거쳐 600원의 상품 가치로 변모한다. 결과적으로, 유통에는 최초 투하된 화폐 자본에 상응하는 500원의 상품 가치 외에 새로 생산된 100원의 잉여 가치도 존재하게 된다. 이 추가적 잉여 가치 100원은 상품 형태로 유통에 투입된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이 추가적 상품 가치의 유통을 위한 추가적 화폐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이 난점을 그럴듯한 궤변으로 회피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기만적 설명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유동적 불변 자본의 경우, 모든 자본가가 그것을 동시에 투하하지는 않는다. 자본가 A가 자기의 상품을 매각하여 그의 투하 자본이 화폐 형태를 취할 때, 화폐 형태에 있던 구매자 B의 자본은 (A가 생산하는) 생산 수단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동일한 화폐액은 모든 단순 판매(C-M)에서와 마찬가지로 양면으로 기능한다. 다른 한편, A가 화폐를 생산 수단으로 재전환하기 위해 C에게서 구매하면, C는 동일한 화폐로 B에게 지불하는 등의 순환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식으로 해서, 잉여 가치를 유통시키는 추가적 화폐 문제가 해명되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상품 유통에 필요한 유통 화폐량에 관한 모든 법칙(1권 제3)은 생산 과정의 자본주의적 성격에도 전혀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화폐 형태로 투하되는 사회 총유동 자본을 500원으로 가정하는 경우, 이는 일시에 동시 투하된 금액임과 동시에, 이 금액이 상이한 생산업자들의 화폐 재원으로 번갈아 기능하며 500원보다 큰 생산 자본을 운동시킨다는 점을 이미 내포한다. 결과적으로, 앞선 설명 방식은, 그 존재를 해명해야 할 화폐를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선제하고 있는 순환 논리의 오류를 범한다.

 

또 다른 기만적 설명은 다음과 같다. 자본가 A는 자본가 B가 개인적, 비생산적으로 소비하는 물품을 생산하며, 따라서 B의 화폐가 A의 상품 자본을 화폐화하고, 이 동일한 화폐액이 B의 잉여 가치와 A의 유동적 불변 자본의 화폐화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해결해야 할 문제의 답을 더욱 직접적으로 가정하고 만다. , B는 자기 수입을 위한 이 화폐를 어디에서 획득하며, 그 자신은 자기 생산물 중 이 잉여 가치 부분을 어떻게 화폐화했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다음과 같은 기만적 설명도 있다. 유동적 가변 자본 중 A가 특정 시점에 자기 노동자들에게 투하하는 부분은 유통에서 끊임없이 A 자신에게로 환류하므로, 유동적 가변 자본 중 일부만이 특정 시점의 임금 지불을 위해 항상 보유된다. 따라서 지출과 환류 사이에 존재하는 일정 시간적 간격 동안, 임금으로 지불된 화폐가 잉여 가치의 화폐화를 위해서도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첫째, 이 간격이 길어길수록 자본가 A가 항상 보유해야 하는 화폐 준비량이 더 커져야 함을 알고 있다. 둘째, 노동자는 화폐를 지출하여 상품을 구매하고, 그렇게 하면서 그 상품에 포함된 잉여 가치를 화폐화한다. 따라서 가변 자본 형태로 투하되는 동일한 화폐는 이 한도까지 잉여 가치의 화폐화에도 기여한다.

 

여기서는 이 문제에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다음 사항을 지적한다. 전체 자본가 계급과 이 계급에 의존하는 비생산적 인물들의 소비는 노동자 계급의 소비와 병행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노동자들로부터 유통에 투입되는 화폐와 동시에, 자본가들로부터도 그들의 잉여 가치를 수입으로 지출하기 위한 화폐가 유통에 투입되어야 한다. 이로 인해 잉여 가치분만큼의 화폐를 유통에서 회수해야 한다. 위의 설명은 이처럼, 필수적인 화폐량 자체를 감소시킬 뿐, 그 화폐의 필요성 자체를 제거하지는 못한다.

 

마지막으로 제시될 수 있는 기만적 논리는 다음과 같다. 고정 자본에 대한 최초 투하 시 항상 대량의 화폐가 유통에 투입되며, 이 화폐는 투하자로부터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만 유통에서 회수된다. 이 금액이 잉여 가치를 화폐화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명확하다. , 500원으로 설정된 금액(필요한 준비금을 위한 화폐 퇴장을 포함)에는 이미 (최초 투하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주체로부터) 고정 자본 투하 여부가 이미 포함된다. 더 나아가, 고정 자본 역할을 하는 생산물 구매에 지출되는 금액은 이미 해당 상품에 내재된 잉여 가치에 대한 지불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핵심 문제는 결국, 이 화폐 자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인 대답은 이미 제시되었다. 1,000x원의 상품량이 유통되어야 할 경우, 이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은 이 상품량의 가치 속에 잉여 가치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 또는 이 상품량이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되었는지 여부와는 전혀 무관하게 결정된다. 따라서 잉여 가치를 유통시키는 추가적 화폐에 관한 문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화폐의 유통 속도 등 기타 조건들이 일정하다면, 1,000x원의 상품 가치를 유통시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화폐액이 요구된다. 이 금액은 이 상품들의 직접 생산자에게 이 가치 중 얼마만큼의 부분이 돌아가는지 하는 사정에는 전혀 의존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일반적인 문제, 곧 한 국가 안의 상품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는 문제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관점에서 보면, 화폐가 유통에 투입되는 출발점으로 자본가가 나타나기 때문에 여기에 확실히 특수한 문제가 포함되어 있는 듯한 외관이 생긴다. 노동자가 자기 생활 수단을 지불하기 위해 지출하는 화폐는 이전에는 가변 자본의 화폐 형태였으며, 최초에는 노동력 구매 수단으로 또는 지불 수단으로 자본가로부터 유통에 투입되었다. 따라서 노동자는 이 화폐의 제2차적 출발점에 불과하며, 그 제1차적 출발점은 자본가이다. 가변 자본으로 최초 투하된 화폐는 노동자가 그것을 생활 수단에 지출할 때, 이미 두 번째 유통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 밖에 자본가가 유통에 투입하는 화폐는 최초 그의 불변적 고정 자본 및 유동 자본의 화폐 형태였으며, 이는 노동 수단과 생산 재료에 대한 구매 또는 지불 수단으로 지출된다. 그러나 이 이상으로는 자본가가 유통에 있는 화폐량의 출발점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출발점은 오직 자본가와 노동자뿐이다. 온갖 종류의 제3자들은 특정 용역(서비스)의 대가로 이 두 계급으로부터 화폐를 얻거나, 용역 제공 없이 화폐를 받는 경우 (지대, 이자 등의 형태로) 잉여 가치의 공동 소유자이다. 잉여 가치가 전부 산업 자본가의 수중에 남지 않고, 그가 그것을 다른 이들과 분배해야 하는 사정은 당면한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문제는 산업 자본가가 자기의 잉여 가치를 어떻게 화폐화하는가이지, 그렇게 얻은 화폐가 이후 어떻게 분배되는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자본가를 잉여 가치의 유일한 소유자로 간주해야 한다.

 

결국, 자본가 계급은 화폐 유통의 유일한 출발점이다. 그가 생산 수단에 400, 노동력에 100원을 지불해야 한다면, 500원을 유통에 투입한다. 잉여 가치율이 100%일 때, 생산물에 내포된 잉여 가치는 100원의 가치와 동일하다. 자본가 계급은 항상 500원만을 유통에 투입하면서도, 어떻게 지속적으로 600원을 유통에서 회수할 수 있는가. ()로부터는 아무것도 창출되지 않는다. 자본가 계급 전체는 이미 유통에 투입하지 않은 어떤 것도 유통으로부터 회수할 수 없다.

 

우리는 400원의 화폐액이 10회전하여 4,000원의 생산 수단과 1,000원의 노동력을 유통시키기에 충분하며, 나머지 100원이 1,000원의 잉여 가치 유통에도 역시 충분하리라는 사정을 무시한다. 화폐액과 그것으로 유통되는 상품 가치 사이의 비율은 해당 문제와 전혀 무관하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동일한 개별 화폐들이 여러 번 유통되지 않는다면, 자본으로 5,000원이 유통에 투입되어야 하며, 잉여 가치를 화폐화하기 위해 1,000원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다. 이 후자의 화폐(1,000원이든 100원이든)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것은 어떠한 경우든 유통에 투입된 화폐 자본을 넘어서는 초과분이다.

 

사실상, 아무리 모순적으로 보이더라도, 자본가 계급 자체가 상품에 내재된 잉여 가치의 실현에 기여하는 화폐를 유통에 투입한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자본가 계급이 그 화폐를 투하하는 화폐, 곧 자본으로 유통에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본가 계급은 그것을 그들의 개인적 소비를 위한 구매 수단으로 지출한다. 따라서 자본가 계급은 이 화폐 유통의 출발점이기는 하나, 이 화폐를 투하(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수입으로 지출하는 것이다.

 

자기 사업을 개시하는 개별 자본가, 예컨대, 차지 농업가를 상정한다. 1년도에 그는 5,000원의 화폐 자본을 생산 수단(4,000)과 노동력(1,000)에 투하한다. 잉여 가치율 100%를 가정하면, 그가 취득하는 잉여 가치는 1,000원이다.

 

5,000원이 그가 자본으로 투하하는 총 화폐액이다. 그러나 자본가 역시 생존해야 하므로, 그의 개인적 소비를 잉여 가치와 동일한 1,000원으로 가정한다. 그는 연도 말까지 어떤 화폐도 얻지 못하기에, 1,000원을 제1년도에 자신의 주머니에서 지출해야 한다. 이 지출은 자본으로의 투하가 아니며, 단순히 소비를 위해 화폐를 유통에 투입하는 행위다. 그는 이 화폐로 소비재를 구입하며, 이 가치는 화폐로 유통에 투입되고, 그곳으로부터 상품 가치로 회수되어 소비된다. 그가 이 가치에 대하여 지불한 화폐는 유통 화폐량의 한 구성 부분으로 존재하지만, 그가 유통에서 회수한 가치(생산물)와 그 가치는 소멸된다.

 

연도 말, 그는 6,000원의 상품 가치를 유통에 투입하고 판매한다. 이에 따라 (1) 그의 투하 화폐 자본 5,000원과 (2) 화폐화된 잉여 가치 1,000원이 그에게 환류한다. 그는 자본으로 5,000원을 투입했으나, 유통에서 6,000(자본 5,000원과 잉여 가치 1,000)을 회수한 것이다. 이 후자 1,000원은 그 자신이 자본가로가 아닌 소비자로 유통에 투입했던, 곧 투하가 아닌 소비해 버린 화폐로부터 화폐화되었다. 이제 그 화폐는 자신이 생산한 잉여 가치의 화폐 형태로 그에게 복귀한다.

 

2년도부터 그가 지출하는 1,000원은 언제나 그가 생산한 잉여 가치의 전환이자 화폐 형태이다. 자본가는 이를 매년 지출하며, 그것은 또한 매년 그에게 환류한다.

 

그의 자본이 1년 동안 여러 차례 회전하더라도, 사태는 전혀 변동하지 않는다. 다만, 자본가 자신의 투하 화폐 자본과 별개로 개인적 소비를 위해 유통에 투입해야 할 시간의 길이와 그 금액의 규모에 변동이 발생할 뿐이다. 이 화폐는 자본가로부터 자본으로 유통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잉여 가치가 환류할 때까지 자신이 소유한 재산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은 자본가의 자격 요건에 속한다.

 

우리는 자본의 첫 번째 환류 시점까지 개별 자본가가 개인적 소비를 위해 유통에 투입하는 화폐액이 생산되어 화폐화되어야 할 잉여 가치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전제하였다. 이는 개별 자본가 수준에서는 자의적 가정이나, 단순 재생산 과정에 있는 자본가 계급 전체에게는 필연적으로 정당하다. 이 전제는 잉여 가치 전부가 비생산적으로 소비되며(최초 자본은 어떤 부분도 비생산적으로 소비되지 않음)는 단순 재생산의 본질을 표현하는 데에 불과하다.

 

위에서 가정한 바에 따르면, 귀금속의 총생산(=500)은 화폐의 마멸분을 보충하는 역할에 그친다.

 

금 생산 자본가들은 그들의 모든 생산물(불변 자본 및 가변 자본의 보충 부분, 그리고 잉여 가치로 이루어진 부분 모두)을 금으로 보유한다. 따라서 사회적 잉여 가치의 일부는 유통 과정에서 비로소 금(화폐)으로 전환되는 생산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금으로 구성된다. 그것은 유통에 투입되어 그곳으로부터 생산물을 끌어낸다. 동일한 논리가 임금(가변 자본)과 투하된 불변 자본의 보충에도 적용된다.

 

결론적으로, 자본가 계급의 일부(비금 생산자)가 투하한 화폐 자본보다 더 큰(잉여 가치만큼) 상품 가치를 유통에 투입한다면, 자본가들의 다른 부분(금 생산자)은 금 생산을 위해 유통에서 끊임없이 끌어내는 상품 가치보다 더 큰(잉여 가치만큼) 화페 가치를 유통에 투입한다. 일부 자본가들이 유통에 집어넣는 것보다 더 많은 화폐를 유통에서 지속적으로 회수한다면, 금을 생산하는 집단은 생산 수단의 형태로 유통에서 끌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화폐를 지속적으로 유통에 투입한다. 귀금속 총생산(500)은 화폐의 마멸분을 보충하는 역할에 그친다. 금 생산 자본가들은 그들의 모든 생산물(불변 자본 및 가변 자본 보충분과 잉여 가치로 이루어진 부분 모두)을 금으로 보유한다. 따라서 사회적 잉여 가치의 일부는 유통 과정에서 금(화폐)으로 전환될 필요 없이 직접 금으로 존재하며, 유통에 투입되어 생산물을 회수한다. 이는 임금(가변 자본)과 투하된 불변 자본의 보충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자본가 계급의 일부가 투하 화폐 자본보다 더 큰(잉여 가치만큼) 상품 가치를 유통에 투입할 경우, 다른 부분인 금 생산자들은 생산 수단의 형태로 유통에서 끌어내는 상품 가치보다 더 많은(잉여 가치만큼) 화폐 가치를 유통에 투입한다. , 일부 자본가가 유통에서 더 많은 화폐를 지속적으로 회수한다면, 금 생산 집단은 유통에 더 많은 화폐를 끊임없이 투입한다. 500원의 금 생산물 일부가 금 생산자들의 잉여 가치라 할지라도, 그 전액은 오직 상품 유통에 필요한 화폐를 보충하기 위함이다. 이 중 얼마가 상품에 포함된 잉여 가치를 화폐화하고, 얼마가 다른 가치 구성 부분들을 화폐화하는지는 이 경우 중요하지 않다.

 

금 생산을 다른 나라로 이전(: 아마포 수출 후 그 수입)시켜도 사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A국의 사회적 노동력과 생산 수단의 일부는 금 생산에 직접 적용될 때와 마찬가지로 A국 시장에 화폐 외의 상품을 제공하지 않으며, 500원의 금 형태로만 A국 유통에 진입한다. 사회적 잉여 가치 중 이 생산물에 포함된 부분은 직접 화폐로 존재하며, A국에서는 화폐 형태 외 형태로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금 생산물 중 가변 자본을 보충하거나 잉여 가치를 대표하는 부분의 비율은 오로지 유통 상품 가치 대비 임금 및 잉여 가치의 비율에 달려 있다.

 

잉여 가치를 구성하는 부분은 자본가 계급의 다양한 구성원들 사이에 분배되며, 이 부분은 개인적 소비를 위해 지속적으로 지출되고, 새로운 생산물 판매로부터 다시 획득된다(바로 이 구매와 판매가 일반적으로 잉여 가치의 화폐화를 위해 필요한 화폐를 자본가들 사이에 유통시킨다). 사회적 잉여 가치의 일부는, 비율의 변동이 있을지라도, 임금의 일부가 노동자 주머니에 화폐 형태로 머무는 것처럼, 화폐 형태로 자본가의 주머니 속에 남아 있다. 이 부분(잉여 가치의 화폐 형태로 남는 부분)은 금 생산물 중 금 생산 자본가들의 잉여 가치를 이루는 부분으로부터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500원의 생산물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분배되는 일반적 비율과, 유통되어야 할 상품 가치가 잉여 가치 및 기타의 가치 구성 부분들로 이루어지는 비율로부터 규정된다. 그러나 잉여 가치 중 다른 상품의 형태가 아닌 화폐로 존재하는 부분은, 잉여 가치 실현을 위해 유통되는 한에서 연간 금 생산물의 일부로 구성된다. 하지만 자본가 계급이 잉여 가치의 화폐 형태로 (비율은 변동될지라도) 끊임없이 보유하는 기타 화폐 부분은 매년 생산되는 금의 일부가 아니라, 이전부터 국내에 누적된 화폐량의 일부이다.

 

가정에 따르면, 연간 금 생산물 500원은 매년 마멸되는 화폐를 보충하는 데 충분하다. 따라서 우리가 이 500원만을 고려하고, 매년 생산되는 상품 중 이전부터 누적된 화폐로부터 유통되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상품 형태로 생산된 잉여 가치는 이미 자기 화폐화를 위한 화폐를 유통에서 확보하게 된다. 이는 다른 한편에서 잉여 가치가 매년 금의 형태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500원의 금 생산물 중 투하된 화폐 자본을 보충하는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두 가지 지적 사항이 있다.

 

첫째: 화폐 및 자본 투하의 근원

 

자본가들이 화폐로 지출하는 잉여 가치, 그리고 그들이 화폐로 투하하는 가변 자본 및 기타 생산 자본은 사실상 노동자들, 특히 금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생산물이다. 노동자들은 금 생산물 중 임금으로 투하되는부분은 물론, 자본주의적 금 생산자들의 잉여 가치를 직접 대표하는 부분도 새로 생산한다. 마지막으로, 금 생산물 중 투하된 불변 자본 가치를 보충하는 부분에 대해 언급하자면, 그것은 노동자의 매년 노동으로만 금 형태로 (일반적인 생산물 중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 부분은 사업 개시 시 최초에는 자본가로부터 화폐(새로 생산된 것이 아닌, 사회의 기존 유통 화폐량의 일부)로 투자되었으나, 새로운 생산물(추가 금)로부터 보충되는 한, 이는 노동의 연간 생산물이다. 자본가 측의 자본 투하라는 것은 노동자가 자기 생산 수단의 소유자도 아니고, 생산 진행 중에 다른 노동자들이 생산한 생활 수단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생긴 형태일 따름이다.

 

둘째: 누적 화폐량의 기원

 

연간 화폐 보충분 500원과는 별개로 존재하며, 일부는 퇴장 화폐 형태로, 일부는 유통 화폐 형태로 있는 기존 화폐량에 대해 언급하자면, 연간 500원에 대해 앞서 언급된 사정이 이 기존 화폐량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화폐량 역시 최초에는 동일한 사정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본 절의 마지막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며, 그에 앞서 다른 몇 가지 점들을 먼저 지적한다.

 

회전에 대한 고찰에서 이미 본 바와 같이, 다른 조건들이 불변하다면, 회전 시간의 길이가 변동함에 따라 동일한 규모의 생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화폐 자본량 또한 변동한다. 따라서 화폐 유통은 회전 시간의 연장이나 단축과 같은 이러한 변동에 충분히 신축적으로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다른 조건들(노동일의 길이, 강도, 생산성)은 불변이지만, 가치 생산물이 임금과 잉여 가치로 분할되는 비율이 변동하여 전자가 증가하고 후자가 감소하거나 또는 그 반대가 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유통 화폐량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 비율의 변동은 유통 화폐량의 팽창이나 수축 없이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임금이 전반적으로 상승하여 (전제된 조건에서는) 잉여 가치율이 전반적으로 저하하며, 유통하는 상품량의 가치에는 가정된 바와 같이 아무런 변동도 생기지 않는 경우를 고찰해 본다.

 

이 경우, 가변 자본으로 투하되어야 하는 화폐 자본은 증가하므로, 이 기능에 사용되는 화폐량 또한 증가한다. 그러나 가변 자본 기능을 위해 필요한 화폐량이 증가하는 바로 그만큼 잉여 가치는 감소하며, 따라서 그것의 실현에 필요한 화폐량도 감소한다. 결과적으로, 상품 가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화폐량의 총액은, 이 상품 가치 자체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개별 자본가에게는 상품의 비용 가격(불변 자본 + 가변 자본)이 증가하지만, 상품의 사회적 생산 가격(비용 가격 + 잉여 가치)은 여전히 불변이다. 변동하는 것은 불변 가치 부분을 제외할 경우, 상품의 생산 가격이 임금과 이윤으로 분할되는 비율뿐이다. 가변적 화폐 자본 지출 증가는 (화폐 가치 불변을 전제할 경우) 노동자 수중의 화폐 자금량 증가를 의미하며, 이는 상품에 대한 수요 증가와 그에 따른 가격 상승을 초래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또는, 임금 상승 시 자본가들이 상품 가격을 인상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 두 경우 모두 임금의 일반적 상승이 상품 가격 등귀의 원인으로 작용하며, 그 결과, 상품 유통을 위해 더욱 많은 양의 화폐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첫 번째 의견에 대한 반박: 임금 상승의 결과로 특히 생필품에 대한 노동자들의 수요가 증가하고, 그보다 낮은 정도이긴 하지만 사치품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거나 이전에 소비하지 않던 물품에 대한 수요도 발생한다. 생필품에 대한 수요가 갑작스럽고, 대규모로 증가하면, 그것들의 가격은 확실히 일시적으로 등귀한다. 그 결과로, 사회적 자본 중 더 큰 부분이 생필품 생산에 사용되며, 잉여 가치가 감소하고, 자본가들의 사치품 수요가 줄어들어 사치품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에, 사치품 생산에는 더 적은 부분이 사용된다. 노동자들이 사치품을 구매하는 한, 그들의 임금 상승은 생필품 가격 등귀에 영향을 주지 않고, 다만 사치품의 구매자만 바꿀 뿐이다. 종전보다 많은 사치품이 노동자들의 소비로, 비교적 적은 사치품이 자본가들의 소비로 유입된다. 그뿐이다. 약간의 동요가 있은 후에는 이전과 동일한 가치를 가진 상품량이 유통된다. 일시적인 동요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종래에 증권 거래소 투기나 해외 투자에서 출구를 찾고 있던 유휴 화폐 자본을 국내 유통에 투입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따름이다.

 

두 번째 의견에 대한 반박: 자본주의적 생산자들이 마음대로 자기 상품의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면, 그들은 임금 상승이 없어도 그렇게 하며, 임금은 상품 가격이 하락하고 있을 때는 결코 인상되지 않는다. 또한, 자본가 계급이 현재 특수한(말하자면 국지적인)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것, 곧 임금 상승을 구실로 상품 가격을 훨씬 더 크게 인상하여 더 많은 이윤을 착취하는 행위를 항상,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실행할 수 있다면, 그들은 노동 조합을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구매 수단이 줄어든 자본가들의 수요 감소의 결과), 자본가들이 사치품의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는 주장은 수요·공급의 법칙의 매우 기발한 적용일 것이다.

 

사치품 구매자가 단순히 노동자로 바뀌어 자본가 대신 등장하지 않는 한(증가한 임금액 중 노동자가 사치품에 지출하는 부분은 생필품 지출을 배제하므로, 이 경우, 노동자들의 수요는 생필품 가격 등귀에 영향을 주지 않음), 사치품의 가격은 수요 감소의 결과로 하락한다. 그 결과, 자본은 사치품 생산에서 철수하며, 이 철수는 사치품의 공급이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의 기능 변화에 상응하는 정도로 축소될 때까지 계속된다. 이러한 생산 감소, 곧 조정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사치품은 그 가치가 변동하지 않는다면 본래적 가격으로 다시 등귀한다. 이 조정 과정 동안 사치품 생산 부문에서 철수한 만큼의 추가 자본이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생필품 생산에 공급되며, 이 공급은 수요가 충족될 때까지 지속된다. 결국, 균형이 다시 잡히며, 이 전체 과정의 결과로 사회적 자본과 그에 따른 화폐 자본이 생필품 생산과 사치품 생산 사이에 분배되는 비율이 변동한다.

 

위에서 살펴본 잘못된 관점들은 자본가들과 그들의 아첨꾼 경제학자들의 궤변이다.

 

이러한 궤변에 근거를 제공하는 사실은 다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화폐 유통의 일반적 법칙에 따르면, 유통 상품들의 가격 총액이 증가할 경우(이 증가가 동일한 상품량 때문이든 증가된 상품량 때문이든), 기타 조건이 불변이라면 유통 화폐량은 증가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결과가 원인과 혼동되는 지점이 발생한다. 임금은 생필품 가격 등귀에 따라 상승하며(임금 상승은 희소하고, 비례적 상승은 예외적일 뿐이다), 임금 상승은 상품 가격 등귀의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둘째, 임금이 부분적으로 또는 국지적으로 상승하는 경우, 곧 몇몇 생산 부문에서만 상승하는 경우, 이 부문들의 생산물 가격이 국지적으로 등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많은 사정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임금이 이 부문들에서 과도하게 억제되어 이윤율이 비상히 높지 않았을 것, 이 상품들의 시장이 가격 등귀로 인해 축소되지 않을 것 (따라서 가격 인상을 위해 미리 공급을 축소시킬 필요가 없을 것) 등과 같은 조건들이다.

 

셋째, 임금이 일반적으로 상승할 경우, 생산된 상품 가격은 가변 자본 비중이 큰 산업 부문에서는 상승하며, 이와 반대로, 불변 자본 또는 고정 자본 비중이 큰 부문에서는 하락한다.

 

(3권 제11임금의 일반적 변동이 생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참고)

 

단순 상품 유통(1권 제32)에서 해명된 바와 같이, 일정한 상품량의 유통에서 화폐 형태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더라도, 상품의 전환 과정에서 한 사람의 수중에 일시적으로 머무는 화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수중으로 이전된다. 따라서 상품들은 전면적으로 교환 또는 대체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대체는 화폐가 전면적으로 가라앉는 것으로부터 매개되며 또한 이를 수반한다.

 

한 상품이 다른 상품을 대체하면 화폐 상품은 제3자의 손에 붙게 된다. 유통은 끊임없이 화폐라는 땀을 쏟아낸다.’

 

[칼 마르크스,자본1: 147].

 

이 동일한 사실은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의 기초 위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 자본의 일부가 끊임없이 화폐 자본의 형태로 존재하며, 잉여 가치의 일부 역시 화폐 형태로 항상 그 소유자 수중에 있다는 점이다.

 

이와는 별도로, 자본 순환의 한 국면인 화폐의 순환(, 화폐가 출발점으로 환류)은 화폐의 유통(일련의 사람들의 손으로부터 화폐가 출발점에서 끊임없이 멀어짐을 표현함)과는 전혀 다르며, 심지어는 대립되는 현상이다. (1: 151) 그렇지만 회전의 신속화는 그 자체로 유통의 신속화를 포함한다.

 

가변 자본에 대해 먼저 논하면, 예컨대, 500원의 화폐 자본이 연간 10회 회전할 경우, 이 유통 화폐량은 자신의 10배의 가치량 = 5,000원을 유통시키는 것이 명백하다. 이 화폐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를 연간 10회 왕래하며, 노동자는 이 동일한 화폐 부분으로부터 연간 10회 지불받고 또 지출한다. 동일한 생산 규모에서 이 가변 자본이 연간 1회만 회전한다면, 5,000원의 가치량은 단 1회만 유통하게 될 뿐이다.

 

다음으로, 유동 자본의 불변 부분을 1,000원으로 가정한다. 이 자본이 연간 10회 회전할 경우,

 

첫째, 자본가는 자기 상품, 곧 그 상품 가치 중 불변적 유동 부분을 연간 10회 판매한다. 이 유통 화폐량 동일 부분(=1,000)은 소유자 수중에서 자본가 수중으로 10회 이전되며, 이는 화폐가 10회 위치를 바꾼 것이다.

 

둘째, 자본가는 생산 수단을 연간 10회 구매한다. 이 또한 화폐가 한 사람의 수중에서 다른 사람의 수중으로 10회 유통하는 과정이다. 1,000원의 화폐액으로 10,000원어치의 상품이 산업 자본가로부터 판매되고, 다시 10,000원어치의 상품이 구입된다. 결과적으로, 1,000원의 화폐가 20회 유통하며 총 20,000원어치의 상품량을 유통시킨 셈이다.

 

마지막으로, 회전이 신속해지면 잉여 가치를 실현하는 화폐 부분 역시 더 빠르게 유통한다.

 

반대로, 더 빠른 화폐 유통이 더 빠른 자본 회전을, 따라서 더 빠른 화폐 회전이나 재생산 과정의 단축 및 더 빠른 갱신을 반드시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더 빠른 화폐 유통은 동일한 화폐량으로 더 큰 거래양이 실현될 때마다 일어난다. 이는 자본의 재생산 기간이 동등한 경우에도 화폐 유통을 위한 기술적 장치들(: 은행 지점망 확충)이 변화한 결과로 일어날 수 있다. 나아가, 화폐가 유통시키는 거래량은 현실의 상품 거래를 표현하지 않고도 증가할 수 있다 (증권 거래소의 차액 거래, : 선물 투기 등).

 

다른 한편으로, 화폐 유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농민 자신이 토지 소유자인 경우에는 차지 농업가와 토지 소유자 사이에 화폐 유통이 일어나지 않으며, 산업 자본가 자신이 자본의 소유자인 경우에는 그와 신용 공급자 사이에 유통이 발생하지 않는다.

 

한 나라에서 퇴장 화폐의 최초 형성과 소수자로부터 그것의 사유에 관해서는 여기에서 더 깊이 다룰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은 그 기초가 임금 노동이며, 이에 따라 노동자에 대한 화폐 지불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생산 양식은 유통과 그를 위해 필요한 화폐 퇴장(준비금 등)에 충분한 화폐량이 국내에 존재하는 곳에서 비로소 더 넓은 범위로 뿌리 깊게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적 전제다. 그러나 충분한 퇴장 화폐량이 먼저 형성된 뒤에 자본주의적 생산이 시작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본주의적 생산은 그 조건들, 곧 귀금속의 충분한 공급 등과 동시에 발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16세기 이래 귀금속 공급 증가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적 발전에서 결정적인 계기(: 가격 혁명)를 이루었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기초 위에서 필요한 화폐 재료의 추가적인 공급을 문제 삼을 경우,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생산물 형태의 잉여 가치는 화폐화에 필요한 화폐 없이 유통에 투입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금 형태의 잉여 가치는 생산물이 먼저 화폐로 전환되는 일 없이 유통에 투입된다.

 

, 화폐로 전환되어야 할 추가적인 상품은, 상품으로 전환되어야 할 추가적인 금·은이 교환으로부터가 아니라 생산 자체로부터 유통에 투입되기 때문에, 필요한 금액의 화폐를 확보하게 된다.

 

. 축적과 확대 재생산

 

축적은 확대 재생산 형태를 취하므로, 이는 화폐 유통과 관련하여 명백히 어떠한 새로운 문제도 제기하지 않는다.

 

증가된 생산 자본의 기능에 요구되는 추가적 화폐 자본은, 실현된 잉여 가치 중 자본가가 수입의 화폐 형태가 아닌 화폐 자본으로 유통에 투입하는 부분으로부터 충당된다. , 화폐는 이미 자본가의 수중에 존재한다. 다만 그 사용 방식만 전환될 뿐이다.

 

생산 자본이 추가됨에 따라, 그 산물인 추가적 상품량이 유통에 투입된다. 이 추가적 상품량과 동시에, 그 실현에 필요한 추가적 화폐 중 일부(상품 가치 중 소비된 생산 자본에 해당하는 부분)가 유통에 투입된다. 이 화폐량은 추가적 화폐 자본으로 투하되어 자본가의 자본 회전으로 그에게 환류한다.

 

그러나 이전과 동일한 문제가 재차 발생한다. 상품 형태로 존재하는 추가적 잉여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추가적 화폐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유통 상품량의 가격 총액 증가는 주어진 상품 가격의 상승이 아닌 유통 상품량의 증가에 기인하며, 이 증가분은 가격 하락으로 상쇄되지 않았다. 더 큰 가치와 물량의 유통에 필요한 추가적 화폐는 유통 화폐량의 더욱 경제적인 이용, 곧 지불 상쇄나 화폐 유통의 신속화로부터의 절약이나,

 

또는 화폐가 퇴장 화폐 형태에서 유통 형태로 전환되는 것으로부터 조달된다. 이 후자는, 유휴 화폐 자본이 구매 및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거나, 준비금이 소유자에게는 준비금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는 능동적으로 유통하는 이중적 기능(: 은행 예금 대출)을 수행하는 것, 나아가, 비활동적인 주화 준비금이 절약되는 것을 포괄한다.

 

화폐가 주화로 끊임없이 유통하기 위해서는, 주화는 끊임없이 화폐를 응고해야 한다. 주화의 끊임없는 유통은, 그 크고 작은 부분이 주화의 준비금으로 끊임없이 가라앉는 것을 내포한다. 이 준비금은 유통 내부에서 전면적으로 발생하며 또한 유통 조건이기도 하다. 이 주화 준비금의 형성, 분배, 해소, 재형성은 끊임없이 변동하며, 주화 준비금은 계속 소멸하면서도 또한 끊임없이 존재한다.

 

A. 스미스는 주화가 화폐로, 다시 화폐가 주화로 끊임없이 전환하는 현상을, 상품 소유자가 판매하는 특수한 상품 외에 구매에 사용할 일정한 금액의 일반적 상품(화폐)을 언제나 보유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유통 과정 C-M-C에서 둘째 고리 구매 M-C는 한 번에 수행되지 않고, 시간적 차례를 두고 수행되는 일련의 구매들로 분열된다. 이로 인해, 화폐 M의 일부는 주화로 유통되는 동안 다른 부분은 화폐로 휴식한다. 이 경우, 화폐는 사실상 일시 정지된 주화에 불과하며, 유통하는 주화량의 각종 구성 부분들은 항상 번갈아 가며 이 형태 또는 저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유통 수단이 화폐로 전환되는 것은 화폐 유통의 다만 기술적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CW 29: 360].

 

(화폐와 대립되는 주화라는 용어는 화폐의 다른 기능과 대립되는 단순 유통 수단의 기능을 수행하는 화폐를 표시한다.)

 

이러한 모든 조달 수단으로도 유통 화폐가 부족할 경우, 추가적인 금이 반드시 생산되어야 한다. 이는 결국, 추가적인 생산물의 일부를 귀금속 생산국의 산물인 금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교환해야 한다는 의미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 은을 유통 도구로 매년 생산하는 데 투입되는 노동력과 사회적 생산 수단의 총액은, 자본주의적 또는 일반적인 상품 생산 양식의 공비 (비생산적 비용) 중 중요한 항목을 이룬다. 이러한 비용 때문에 그에 상당하는 금액의 추가적 생산 수단과 소비 대상, , 현실적 부가 사회적 이용으로부터 전용된다.

 

생산 규모가 불변이거나 생산의 확대 정도가 주어진 경우, 이 값비싼 유통 도구의 비용이 감소될 때,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은 그만큼 증대된다. 따라서 신용 제도와 함께 발전하는 보조 수단들(사회적 노동 및 생산 과정의 상당 부분이 진정한 화폐의 개입 없이 수행되거나, 또는 현실적으로 기능하는 화폐량의 기능 수행 능력이 상승하는 효과를 가질 때)은 자본주의적 부를 직접적으로 증대시킨다.

 

현재 규모의 자본주의적 생산이 신용 제도 없이 금속 유통만으로 성립하냐는 어리석은 질문(오직 신용 관점에서만 고찰된 것)은 이제 해소된다. 이는 명백히 성립할 수 없다. 신용 제도가 없다면 자본주의적 생산은 귀금속 생산의 범위로 인해 제한된다. 그러나 신용 제도가 화폐 자본을 제공하거나 유통시킨다는 이유만으로, 그 생산력에 대해 어떠한 환상적인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하다.

 

이제 현실적 축적(생산 규모의 직접적인 확대)은 일어나지 않고, 실현된 잉여 가치의 일부가 훗날 생산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해 길거나 짧은 기간 동안 화폐 준비금으로 적립되는 경우를 고찰해야 한다.

 

추가적인 화폐가 적립되는 경우, 사태는 자명하다. 이 화폐는 금 생산국으로부터 공급되는 추가적인 금일 수밖에 없다. 이때 주의할 점은, 수입되는 이 금과 교환된 국민적 생산물은 더 이상 국내에 존재하지 않고, 금과 교환되어 외국으로 인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달리, 국내에 이전과 동일한 양의 화폐만 있다고 가정하면, 적립되거나 또는 적립 중인 화폐는 유통에서 유출된 것이며, 다만 그 기능이 전환된 것이다. , 그것은 유통 화폐로부터 (점차 형성되는) 잠재적인 화폐 자본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경우, 적립되는 화폐는 판매된 상품의 화폐 형태이며, 더 나아가, 그 상품 가치 중 잉여 가치에 해당하는 부분의 화폐 형태이다(여기서는 신용 제도의 부재를 전제한다). 화폐를 적립하는 자본가(소유자)는 그만큼 구매하지 않고 판매한 것이다.

 

이 과정을 개별적인 현상으로만 본다면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다.

 

일부 자본가들은 생산물 판매로 얻는 화폐의 일부를 (생산물을 시장에서 회수하지 않고) 보유한다. 이와 반대로, 다른 자본가들은 기업 경영에 필요한 화폐 자본(끊임없이 환류 중)을 제외한 자신들의 화폐 전부를 생산물로 전환시킨다.

 

잉여 가치를 지니고 시장에 투입된 생산물의 일부는 생산 수단이나 가변 자본의 현실적 요소인 생필품으로 이루어져, 곧바로 생산 확대에 즉시 기여할 수 있다. 이는 일부 자본가들은 화폐 자본을 적립하는데 다른 자본가들은 자기 잉여 가치를 전부 소비한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자본가들은 화폐 형태로 축적하여 잠재적 화폐 자본을 형성하는 동시에, 다른 자본가들은 현실적으로 축적(생산 규모 확대, 생산 자본 현실적 확대)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이 번갈아 가며 화폐를 적립하고, 생산 규모를 확대하더라도, 또한 반대인 경우에도, 현존하는 화폐량은 유통의 필요에 여전히 충분하다. 나아가, 한편의 화폐 적립은 현금 없이 다만 채권의 적립만으로도 진행될 수 있다.

 

자본가 계급 전체에 걸쳐 화폐 자본이 부분적으로 적립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적립된다고 가정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전반적이고, 배타적으로 지배한다는 가정하에, 자본가 계급 외에는 오직노동자 계급만이 존재한다. 노동자 계급이 구매하는 모든 것은 그들의 임금 총액과 같으며, 이는 자본가 계급 전체가 투하한 가변 자본 총액과 일치한다. 이 화폐는 자본가 계급의 생산물이 노동자 계급에게 판매되면서 자본가 계급에게 환류되어 그들의 가변 자본이 다시 화폐 형태를 취한다.

 

가변 자본의 총액을 100x원이라고 가정하자 (이는 연간 투하 총액이 아닌 사용 총액이며, 화폐 투하액이나 회전 속도는 문제의 본질을 바꾸지 않는다). 100x원으로 자본가 계급은 노동력을 구매하며(첫째 거래: 임금 지불), 노동자들은 동일한 화폐액으로 자본가들로부터 상품을 구매하여 100x원이 자본가 수중으로 환류한다(둘째 거래). 이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따라서 100x원이라는 화폐액은 노동 계급이 사회적 생산물의 가치 중 투하된 가변 자본의 가치를 표시하는 부분만을 구매할 수 있게 할 뿐, 불변 자본을 표시하는 부분은 물론 자본가 계급의 잉여 가치를 표시하는 부분은 결코 구매할 수 없게 한다.

 

전면적인 화폐 적립이 수입된 추가적 귀금속을 상이한 개별 자본가들 사이에 어떤 비율로든분배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면, 자본가 계급 전체가 어떻게 화폐를 적립할 수 있는가.

 

그들은 모두 그들의 생산물의 일부를 판매하고, 그 후에 다시 구매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그들 모두가 일정한 화폐 재원을 보유하며, 그것을 소비를 위한 유통 수단으로 유통에 투입하고, 그중 일부가 각자에게 환류하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화폐 재원은 바로 (잉여 가치의 화폐화에서 얻어진) 유통 자금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잠재적 화폐 자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잠재적 화폐 자본이 현실에서 발생하는 그대로, 나중에 사용을 위해 적립되는 형태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첫째, 은행 예금: 그러나 은행이 현실적으로 보유하는 것은 비교적 적은 화폐액이다. 여기에서 화폐 자본은 명목상으로만 적립된다. 현실적으로 적립되는 것은 화폐 청구권이며, 이것이 화폐화될 수 있는 것은 (언제든 화폐화되는 한) 인출되는 화폐와 예금되는 화폐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폐로 은행 수중에 존재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소액에 불과하다.

 

둘째, 정부 증권: 이것은 결코 자본이 아니며 국민의 연간 생산물에 대한 단순한 청구권이다.

 

셋째, 주식: 이것이 사기적인 것이 아닌 한, 한 회사에 속하는 현실적인 자본에 대한 소유 증서이며, 이 자본으로부터 매년 유출되는 잉여 가치에 대한 청구권이다.

 

이 모든 경우, 어떠한 화폐 적립도 없다. 한편에서 화폐 자본의 적립으로 나타나는 것이, 다른 한편에서는 화폐의 계속적인 현실적 지출로 나타난다. 화폐가 그 소유권자로부터 지출되는, 아니면 그의 채무자인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출되든, 사태는 전혀 변경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초 위에서 화폐 퇴장 그 자체는 결코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화폐 퇴장은 유통의 정체에서 비롯되거나,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많은 양의 화폐가 퇴장 화폐의 형태를 취하거나 회전 때문에 필요하게 된 적립의 결과이다. 또는 퇴장 화폐는 생산 자본으로 기능해야 할 화폐 자본의 형성(당분간 잠재적 화폐 자본의 형태로 있을 뿐)에 불과하다.

 

한편, 화폐로 실현된 잉여 가치의 일부가 유통에서 유출되어 퇴장 화폐로 적립되는 동시에, 잉여 가치의 다른 부분은 끊임없이 생산 자본으로 전환된다. 추가적 귀금속을 자본가 계급 사이에 분배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화폐 형태의 적립은 모든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다.

 

연간 생산물 중 상품 형태로 잉여 가치를 표시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연간 생산물 중 다른 부분에 대하여 타당한 모든 것이 동일하게 타당하다. 그것의 유통을 위해서는 일정한 화폐액이 필수적이다. 이 화폐액은 잉여 가치를 표시하는 상품의 연간 생산량이 그런하듯이, 자본가 계급의 소유이다. 이 화폐액은 자본가 계급 자신으로부터 최초로 유통에 투입되며, 이후 유통 자체로부터 자본가들 사이에 끊임없이 재분배된다.

 

주화 유통 일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화폐액의 일부는 끊임없이 장소를 바꾸어 가라앉지만(침전), 다른 부분은 끊임없이 유통한다. 이 적립(침전)의 일부가 화폐 자본을 형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닌지는 사태를 전혀 변경시키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유통상의 모험들, 곧 한 자본가가 다른 자본가의 잉여 가치, 심지어는 자본의 일부까지도 빼앗아 화폐 자본과 생산 자본의 일방적인 축적 및 집중을 일으키는 상황은 무시된다.

 

예를 들어, 자본가 A가 화폐 자본으로 적립하는 잉여 가치 일부는, 자본가 B의 잉여 가치 중 B에게 환류하지 않는 부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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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가변 자본의 회전

 

. 연간 잉여 가치율

 

총 유동 자본 2,500원을 전제하며, 이는 불변 자본 (생산 재료) 2,000(4/5)과 임금으로 지출되는 가변 자본 500(1/5)으로 가정한다.

 

회전 시간은 5주로 설정되는데, 이 중 노동 기간은 4, 유통 시간은 1주이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자본 2,000원으로 불변 자본 1,600원과 가변 자본 400원으로 조성되며, 자본 500원으로 불변 자본 400원과 가변 자본 100원으로 구분된다.

 

각 노동주에는 500원의 자본이 투하되어, 50주로 구성된 1년 동안 500× 50= 25,000원의 연간 생산물이 산출된다. 따라서 끊임없이 사용되는 자본 (2,000)은 연간 25,000÷ 2,000= 12.5회 회전한다. 2,000× 12.5= 25,000원이다. 25,000원 중 4/520,000원은 생산 수단에 지출된 불변 자본이며, 1/55,000원은 임금에 지출된 가변 자본이다. 다른 한편으로, 총자본 2,500원의 연간 회전율은 25,000÷ 2,500= 10회로 계산된다.

 

생산 과정에 투하된 가변적 유동 자본은, 그 가치가 재생산된 생산물이 판매(상품 자본에서 화폐 자본으로 전환)되고 다시 노동력 지불에 투하될 때 새로운 유통 과정에 기능한다. 생산에 투하된 불변적 유동 자본 (생산 재료) 역시 그 가치가 생산물 가치의 일부로 재현되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 두 부분(유동 자본의 가변 및 불변 부분)이 고정 자본과 구별되는 공통점은, 생산물에 이전된 가치가 상품 자본으로 유통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생산물 가치의 일부는 고정 자본의 마멸분(생산 기간 중 생산물로 이전된 고정 자본 가치 부분)으로 항상 구성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고정 자본은 유동 자본(= 불변적 유동 자본 + 가변적 유동 자본)의 회전 순환 기간 동안 본래의 유용한 형태 그대로 생산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기능하는 반면, 생산 분야에서 상품 자본의 모습으로 유통 분야로 진입한 유동 자본은 매 순환마다 그 전부가 보충되어야 한다.

 

유통의 제1국면 판매(C´-M´)는 불변적 유동 자본과 가변적 유동 자본에 공통적이다. 2국면 구매(M-C)에서는 이들이 분리된다. 상품이 전환된 화폐의 일부는 불변적 유동 자본으로 전환될 생산용 재고 구매에 쓰인다. 구매 시기 차이로 인해 화폐의 일부는 빠르고, 다른 일부는 늦게 생산 재료로 변하지만, 결국 전부 생산 재료로 전환된다. 상품 판매로 얻은 화폐의 다른 부분은 가변적 유동 자본을 형성하며, 화폐 준비금으로 남아 생산 과정에 결합되는 노동력 지불에 조금씩 지출된다. 어느 부분이든, 그것의 완전한 보충은 항상 자본의 회전(자본 생산물 상품 화폐로의 전환)으로부터 발생한다. 바로 이 이유로 이전 장에서는 고정 자본을 고려하지 않고,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회전을 함께 다루었다.

 

우리가 이제 다루어야 할 문제와 관련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동 자본의 가변 부분을 유동 자본 전부로 간주하여 취급해야 한다. , 우리는 가변 부분과 함께 회전하는 불변적 유동 자본은 제외한다.

 

유동 자본 2,500원을 투하했고, 연간 생산물 가치는 25,000원이다. 유동 자본의 가변 부분은 500원이며, 따라서 연간 생산물 25,000원에 포함된 가변 자본은 25,000 / 5 = 5,000원이다. 5,000원을 투하된 가변 자본 500원으로 나누면 5,000 / 500 = 10이라는 회전수가 산출되는데, 이는 총자본 2,500원의 회전수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이 평균 계산에서는 연간 생산물의 가치를 투하 자본 중 하나의 노동 기간에 끊임없이 사용되는 부분의 가치가 아닌, 투하 자본 전체의 가치로 나눈다 (, 400원이 아니라 500원으로, 자본 이 아닌 자본 + 자본 로 계산).

 

잉여 가치의 생산만을 논하는 경우에서는 이 평균 계산이 절대적으로 정확하다. 그러나 나중에 보겠지만, 이 평균 계산은 다른 관점에서 볼 때 전적으로 정확하지 않거나, 일반적으로도 완전하게 정확하지 않다. 이는 자본가의 실무적 목적에는 충분하지만, 회전의 모든 현실적 사정을 정확히 또는 적절히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상품 자본 가치의 일부, 곧 생산 과정 중에 생산되어 상품 자본에 합쳐진 잉여 가치를 완전히 제외했다. 이제는 바로 이 잉여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매주 투하되는 가변 자본 100원이 100%에 해당하는 100원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고 가정할 경우, 5주의 회전 시간에 투하되는 가변 자본 500원은 총 500원의 잉여 가치를 산출한다. 이는 곧 노동일의 절반이 잉여 노동으로 구성됨을 의미한다. 가변 자본 500원이 500원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면, 1년간 5,000원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 (500 × 10 = 5,000). 그러나 투하된 가변 자본은 500원이다.

 

연간 잉여 가치율은 1년간 생산된 잉여 가치 총액을 투하된 가변 자본 가치액으로 나눈 비율이며, 이 경우에는 5,000/ 500= 1,000%이다. 이 연간 잉여 가치율을 분석하면, 투하된 가변 자본이 1회전 시간 중에 달성하는 잉여 가치율에 가변 자본의 회전수 (이는 총 유동 자본의 회전수와 일치)를 곱한 값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1회전 시간 중에 투하된 가변 자본은 500원이며, 이 기간 생산된 잉여 가치 역시 500원이다. 따라서 1회전 시간의 잉여 가치율은 500 잉여 가치(s) / 500 가변 자본(v) = 100%이다. 100%에 연간 회전수 10을 곱하면 5,000s / 500v = 1,000%가 된다. 이는 연간 잉여 가치율에 관한 것이다.

 

1회전 시간 중 획득되는 잉여 가치량은 이 기간 투하된 가변 자본의 가치에 잉여 가치율을 곱한 값과 같다. 곧 이 경우, 잉여 가치량은 500× (100/100) = 500× 1 = 500원이다. 예를 들어, 투하 자본이 1,500원이고, 잉여 가치율이 100%라면, 잉여 가치의 양은 1,500× (100 / 100) = 1,500원이다.

 

1년에 10회 회전하여 5,000원의 잉여 가치를 생산하며, 그 연간 잉여 가치율이 1,000%인 가변 자본 500원을 자본 A라고 명명한다.

 

다른 가변 자본 B 5,000원이 1(50)에 걸쳐 투하되며, 연간 1회만 회전한다고 가정한다. 아울러 연말에 생산물이 완성 및 지불되면서 화폐 자본이 같은 날 환류한다고 전제하며, 이에 따라 유통 시간은 0, 회전 시간은 노동 기간과 동일한 1년이다.

 

앞선 사례와 같이, 노동 과정에는 매주 가변 자본 100원이 투입되어 50주간 총 5,000원이 투입된다. 잉여 가치율은 100%, 노동일의 절반이 잉여 노동으로 구성된다고 상정한다. 5주를 기준으로 볼 때, 투하된 가변 자본은 500원이며, 잉여 가치율은 100%, 따라서 5주간 생산된 잉여 가치량은 500원이다. 이 전제들하에서, 착취되는 노동력의 양과 착취도는 자본 A의 경우와 동일하다.

 

매주 투하된 가변 자본 100원은 매주 100원의 잉여 가치를 생산하며, 이에 따라 50주 동안 투하된 5,000(100 × 50 = 5,000)의 자본이 5,000원의 잉여 가치를 산출한다.

 

1년간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은 5,000원으로 앞선 경우(자본 A)와 동일하다. 그러나 연간 잉여 가치율은 완전히 다르다. 연간 잉여 가치율은 1년간 생산된 잉여 가치를 투하된 가변 자본으로 나눈 값과 같으므로, 자본 A1,000%와 달리 이 경우 (자본 B)5,000s / 5,000v = 100%이다.

 

자본 A와 자본 B 모두 매주 가변 자본 100원을 지출하며, 가치 증식의 정도 (곧 잉여 가치율)는 동일하게 100%이다. 투하된 가변 자본의 크기 또한 100원으로 같다.

 

착취당하는 노동력의 양은 동일하고, 착취의 크기 및 정도가 모두 동일하며, 노동일의 길이가 같고,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 사이의 분할도 같다. 1년 동안 사용된 가변 자본 총액도 5,000원으로 동등한 크기이며, 동일한 양의 노동을 운동시켜 5,000원이라는 동일한 양의 잉여 가치를 노동력으로부터 착취한다. 그럼에도, 자본 A와 자본 B의 연간 잉여 가치율 사이에는 900%라는 차이가 있다.

 

이 현상은, 잉여 가치율이 오직 가변 자본으로 가동되는 노동력의 양과 착취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요인들에도 달려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실제로 이 현상은 그렇게 해석되었으며, 이와 같은 순수한 형태가 아닌 보다 복잡하고 은폐된 형태(연간 이윤율의 형태)로 나타나면서, 1820년대 초 이래 리카도 학파를 완전히 붕괴시킨 원인이 되었다.

 

[CW 31: 36-77: CW 32: 258-373].

 

그러나 이 현상이 이상하다는 점은, 자본 A와 자본 B를 전적으로 동일한 조건에 두면 외견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즉시 소멸한다. 이 동일한 조건은 가변 자본 B 전액이 자본 A와 동일한 기간(5)에 노동력에 지출될 경우에만 성립한다.

 

이제 5,000원의 자본 B5주간에 투하되며, 매주 1,000원씩 지출되면 1년간 총 50,000원이 지출된다. 우리의 전제에 따라 잉여 가치 역시 50,000원이다.

 

회전한 자본 = 50,000원을 투하 자본 = 5,000원으로 나누면 회전수 = 10이 산출된다. 잉여 가치율 = 5,000s / 5,000v = 100%에 회전수 = 10을 곱하면 연간 잉여 가치율 = 50,000s / 5,000v = 10/1 = 1,000%가 된다.

 

따라서 이제는 자본 A와 자본 B 모두 연간 잉여 가치율이 1,000%로 동일하다. 그러나 잉여 가치량은 B의 경우 50,000원이고, A의 경우는 5,000원이다.

 

생산된 잉여 가치량 사이의 비율은 투하 자본 가치 BA 사이의 비율(5,000 : 500 = 10 : 1)과 일치한다. 다시 말해, 자본 B는 동일한 기간 중에 자본 A에 비해 10배 더 많은 노동력을 운동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오직 노동 과정에 현실적으로 운동하고 있는 자본뿐이다. 잉여 가치에 관한 모든 법칙(예컨대, 잉여 가치율이 주어진 경우, 잉여 가치량은 가변 자본의 상대적 크기로부터 결정된다는 법칙)이 적용되는 대상도 바로 이 자본에 국한된다

 

(1권 제11장 참조).

 

노동 과정 자체는 시간으로 측정된다. 노동일의 길이가 주어졌을 때 (연간 잉여 가치율의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자본 AB의 모든 조건을 동등하게 설정하고 있는 지금의 경우), 노동주는 일정한 수의 노동일로 구성된다. 또는 임의의 노동 기간을 하나의 노동일로 간주할 수도 있다.

 

예컨대, 5주의 노동 기간을, 노동일이 10시간이고 1주가 6노동일이라고 하면, 300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노동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 시간에 매일 동일한 노동 과정에 함께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 수를 곱해야 한다. 그 수가 10명이라고 가정하면, () 노동일은 60 × 10 = 600시간이며, 5주의 노동 기간은 600 × 5 = 3,000시간이다.

 

따라서 동등한 크기의 잉여 가치율과 동등한 길이의 노동일이라는 조건 하에서, 동등한 크기의 노동력 (동일한 가격의 1노동력에 노동자의 수를 곱한 것)이 동일한 기간에 운동되는 경우, 동등한 크기의 가변 자본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최초의 예로 돌아간다. 자본 AB 모두 1년간 매주 100원이라는 동등한 크기의 가변 자본이 사용된다. 따라서 노동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사용되고 기능하는 가변 자본은 동등하다. 그러나 투하된 가변 자본은 전혀 동등하지 않다.

 

자본 A의 경우 5주마다 500원의 자본이 투하되고 그중 100원이 매주 사용된다. 자본 B의 경우 최초 5주간 5,000원이 투하되어야 하지만, 그중 매주 사용되는 것은 100원에 불과하여 5주간 사용된 금액은 500, 곧 투하 자본의 1/10에 불과하다. 25주간에도 4,500원이 투하되어 있지만 그중 사용되는 것은 500원에 불과한 식이다.

 

일정한 기간 투하된 가변 자본은 해당 기간 중 노동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기능하는 정도에 따라서만 사용된 가변 자본 (곧 현실적으로 기능하며 작용하는 가변 자본)으로 전환된다. 가변 자본의 일부가 그 뒤의 어떤 기간에 비로소 사용되기 위해 투하되어 있는 중간 기간에는, 그 가변 자본은 노동 과정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따라서 가치의 창출이나 잉여 가치의 창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예컨대 500원의 자본 A를 보면, 이는 5주간을 위해 투하되었으나, 매주 순차적으로 노동 과정에 투입되는 것은 100원에 불과하다. 처음 1주간에는 1/5이 사용되며, 나머지 4/5는 다음 4주간의 노동 과정을 위해 예비되어 투하될 필요가 있음에도, 투하된 채 사용되지 않는 상태로 남는다.

 

투하된 가변 자본과 사용된 가변 자본 사이의 비율에 차이를 낳는 사정은, 특정 기간(예컨대 1, 5주 등)에 현실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가변 자본의 양에 차이를 낳는 한, 잉여 가치율이 주어져 있는 경우, 잉여 가치의 생산에 영향을 미친다. 투하된 가변 자본은 현실적으로 사용되는 크기까지, 그리고 그 시간 동안에만 가변 자본으로 기능한다. 사용되지 않고 예비적으로 투하되어 있는 시간 중에는 가변 자본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러나 투하된 가변 자본과 사용된 가변 자본 사이의 비율 차이를 일으키는 모든 사정은 회전 시간의 차이 (노동 기간이나 유통 시간의 차이, 또는 이 두 요소 모두의 차이)로 요약된다.

 

잉여 가치 생산의 법칙은, 잉여 가치율이 동등한 경우에는 기능하는 동등한 양의 가변 자본이 동등한 양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잉여 가치율이 같은 조건에서 자본 AB가 동등한 기간에 동등한 양의 가변 자본을 사용한다면, 이들 가변 자본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양의 잉여 가치를 생산해야 한다. 이는 특정 시간 중에 사용된 가변 자본과 그 시간 중에 투하된 가변 자본 사이의 비율이 아무리 상이하더라도, 따라서 또 생산된 잉여 가치량과 (사용된 가변 자본이 아닌) 투하된 총 가변 자본 사이의 비율이 아무리 상이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 비율(생산된 잉여 가치량 : 투하된 총 가변 자본)의 상이함은, 잉여 가치 생산에 관하여 전개된 법칙들에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법칙들을 확증하는, 불가피한 하나의 귀결이다.

 

자본 B의 최초 5주간 생산 시간을 고찰하면, 5주 말까지 500원이 사용되고 소비되었다. 새로 창출된 가치 (곧 가치 생산물)1,000원이며, 잉여 가치율은 500s / 500v = 100%이다. 이는 자본 A와 마찬가지이다. 여기서는 오직 잉여 가치의 생산과, 그 생산 중에 투하된 가변 자본에 대한 잉여 가치의 비율만이 문제되므로, 자본 A의 경우와 달리 자본 B의 경우 잉여 가치가 투하 자본과 함께 실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직 중요하지 않다.

 

다른 한편, 자본 B의 잉여 가치를 5,000원의 투하 자본 중 잉여 가치 생산에 사용 및 소비된 부분에 대해서가 아닌, 총 투하 자본에 대하여 계산하면, 500s / 5,000v = 1/10 = 10%가 된다. 따라서 자본 A100%에 비해 자본 B10%10배의 차이를 보인다.

 

동일한 양의 노동(동일한 비율로 지불받는 노동과 지불받지 못하는 노동으로 분할되는 노동)을 운동시킨 동등한 크기의 자본들이 이와 같은 잉여 가치율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잉여 가치 생산에 관한 법칙들에 모순된다고 주장한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며, 다음과 같은 사실 관계들을 한 번만 보아도 이해할 수 있다.

 

자본 A의 경우에는 현실적인 잉여 가치율 (실질 잉여 가치율), 500원의 가변 자본으로 5주간 생산된 잉여 가치와 이 500원 가변 자본 사이의 비율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 B의 경우에는 잉여 가치 생산이나 이에 상응하는 잉여 가치율의 결정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계산 방식이 나타나 있다. , 500원의 가변 자본으로부터 생산된 500원의 잉여 가치가 그 생산 중에 투하된 가변 자본 500원에 대하여 계산되지 않고, 총 투하 자본 5,000원에 대하여 계산되고 있다.

 

이 자본 5,000원의 9/10에 해당하는 4,500원은 잉여 가치 500원의 생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다음 45주의 경과 중에 비로소 점차적으로 기능하도록 예정되어 있으므로, 여기서 문제로 삼는 최초 5주간의 생산에 대해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위에서 본 자본 AB의 잉여 가치율 차이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

 

이제 자본 A와 자본 B의 연간 잉여 가치율을 비교한다. 자본 B의 연간 잉여 가치율은 5,000s / 5,000v = 100%이며, 자본 A의 연간 잉여 가치율은 5,000s / 500v = 1,000%이다.

 

두 자본의 실질 잉여 가치율은 5주 기간을 기준으로 할 때, 500s / 500v = 100%로 동일하다.

 

자본 B의 실질 잉여 가치율 (5) / 자본 A의 실질 잉여 가치율 (5) = 100% / 100%

 

두 자본의 연간 잉여 가치율 비율은 다음과 같다.

 

자본 B의 연간 잉여 가치율 / 자본 A의 연간 잉여 가치율 = 100% / 1000%

 

이 두 연간 잉여 가치율 사이의 비율(1 : 10)은 두 자본의 투하 가변 자본 비율(5,000v : 500v = 10 : 1)의 역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실질 잉여 가치율이 동일함에도, 연간 회전수(n)의 차이(1 : 10)가 연간 잉여 가치율의 차이를 낳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전환된다. 자본 B의 연간 잉여 가치율 (5,000s / 5,000v = 100%)은 잉여 가치 생산 및 상응하는 잉여 가치율에 관한 우리가 아는 법칙들로부터 어떠한 오차나 오차의 외관조차도 드러내지 않는다.

 

1년 동안에 5,000v가 투하되어 생산적으로 소비되었고, 이는 5,000s를 생산했다. 따라서 잉여 가치율은 분수 5,000s / 5,000v = 100%이다. 연간 잉여 가치율이 실질 잉여 가치율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설명을 필요로 하는 변칙을 나타내는 것은 자본 B가 아니라 자본 A이다.

 

자본 A의 경우, 잉여 가치율은 5,000s / 500v = 1,000%이다.

 

앞선 자본 B의 첫 번째 경우(5주간)에는 5주간의 생산물인 500s5,000원의 투하 자본 ( 그중 9/10는 잉여 가치 생산에 사용되지 않음)에 대해 계산되었다. 이제는 5,000s500v (, 5,000s의 생산에 현실적으로 사용된 가변 자본의 오직 1/10)에 대해 계산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5,000s50주 동안 생산적으로 소비된 가변 자본 5,000원의 산물이지, 결코 5주간이라는 단 하나의 기간 중에 소비된 가변 자본 500원의 산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위의 첫 번째 경우 (자본 B)에는 5주간에 생산된 잉여 가치가 50주분으로 투하되어 있는 자본 (따라서 5주간에 소비된 자본의 10배에 해당하는 자본)에 대하여 계산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50주에 생산된 잉여 가치가 5주분으로 투하된 자본 (따라서 50주 동안 소비된 자본의 1/10에 해당하는 자본)에 대하여 계산되고 있다.

 

500원의 자본 A5주보다 길게 투하되지 않는다. 이는 5주 말에 환류하며, 1년간 10회 회전하여 동일 과정을 10회 갱신할 수 있다. 이로부터 다음 두 가지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투하 자본 A1주간의 생산 과정에 사용되는 자본 부분의 5배에 불과하다. 그런데 50주에 1회 회전하며 50주 동안 투하되어야 하는 자본 B1주간 사용되는 투하 자본 부분의 50배에 달한다. 이처럼, 회전 시간은 1년 동안 생산 과정을 위해 투하되는 자본과 일정 생산 시간 (1)에 끊임없이 사용될 수 있는 자본 사이의 비율을 변화시킨다. 이 때문에 앞서 첫 번째 경우 (자본 B)에서 5주간의 잉여 가치가 이 5주 동안 실제로 사용된 자본에 대해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50주 동안 사용될 (10배에 달하는) 자본에 대해 계산되고 있다.

 

둘째, 자본 A5주 회전 시간은 1년의 1/10에 불과하다. 따라서 1년 중에는 500원의 자본 A가 반복해서 재투자되는 회전 기간 10개가 포함된다. 이로 인해 사용되는 자본은 5주간 투하된 자본에 연간 회전 기간 수를 곱한 값과 같다. 연간 사용되는 자본은 500× 10= 5,000원이며, 연간 투하되는 자본은 5,000/ 10= 500원이다. 실제로 500원이 항상 새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어느 5주간에도 이 500원 이상은 사용되지 않는다. 자본 B의 경우에도 5주간 사용되고, 5주간분으로 투하되는 것은 500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회전 시간이 50주이므로, 1년 동안 사용되는 자본은 매 5주간분이 아닌 50주간분으로 투하되는 자본과 같다.

 

잉여 가치율이 주어진 경우, 1년간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은 1년간 사용되는 자본에 따라 결정되며, 1년간 투하되는 자본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연간 잉여 가치량은 연 1회 회전하는 자본 B 5,000원의 경우나, 10회 회전하는 자본 A 500원의 경우나 동일한 크기이다. 투하 자본이 그렇게 큰 것은 연 1회 회전하는 자본 자체가 연 10회 회전하는 자본의 10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1년간 회전한 가변 자본, 곧 연간 생산물 또는 연간 지출 중 이 부분과 동등한 부분은 1년간 실제로 사용되고 생산적으로 소비된 가변 자본이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년간 회전한 가변 자본 A1년간 회전한 가변 자본 B의 크기가 동등하고, 또 그것들이 동등한 가치 증식의 조건에서 사용된다면 (, 잉여 가치율이 동일하다면), 1년간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도 두 자본 모두 동일해야 한다. 따라서 사용된 자본량들이 동일하기 때문에, 1년을 단위로 계산되는 잉여 가치율 또한 ‘1년간에 생산된 잉여 가치량 / 1년간에 회전한 가변 자본으로 표현되는 한, 동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표현하면, 회전한 가변 자본들의 상대적 크기가 어떻든, 그 자본들이 1년간 달성하는 잉여 가치율은 각각의 자본이 평균 기간 (예컨대 주 평균 또는 하루 평균)에 달성해온 잉여 가치율로부터 결정된다.

 

이것은 잉여 가치의 생산과 잉여 가치율의 결정에 관한 법칙에서 나오는 유일한 결론이다.

 

다음에 또,

 

1년 간에 회전한 자본 / 투하한 자본

 

이라는 비율 (여기서는 가변 자본만을 염두에 둠)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살펴본다. 이 비율의 값은 투하 자본의 연간 회전수를 알려 준다.

 

자본 A의 경우:

 

1년간에 회전한 자본 5,000/ 투하한 자본 500= 10(연간 회전수)

 

자본 B의 경우:

 

1년간에 회전한 자본 5,000/ 투하한 자본 5,000= 1(연간 회전수)

 

두 비율에서 분자는 투하된 자본에 회전수를 곱한 값, 곧 자본 A의 경우 500 × 10, 자본 B의 경우 5,000 × 1을 나타낸다.

 

 

 

또는, 투하 자본에 1년을 단위로 계산된 회전 시간의 역수를 곱한 값을 표현한다.

 

자본 A: 회전 시간(5)1/10년이며, 그 역수는 10/1이다. 따라서 500× (10/1) = 5,000원이다.

 

자본 B: 회전 시간은 1년이며, 5,000× (1/1) = 5,000원이다.

 

그리고 분모는 회전한 자본에 회전수의 역수를 곱한 값, 곧 자본 A의 경우 5,000× 1/10, 자본 B의 경우 5,000 × 1/1을 표현한다.

 

1년간 회전한 두 가변 자본이 운동시키는 각각의 노동량 (지불받는 노동과 지불받지 못하는 노동의 총량)은 이 경우 동일하다. 이는 회전한 자본들 자체가 같고, 그것들의 가치 증식률 또한 같기 때문이다.

 

투하한 가변 자본과 1년간 회전한 가변 자본 사이의 비율은 다음 두 가지를 나타낸다.

 

첫째, 투하해야 할 가변 자본과 일정한 노동 기간에 사용되는 가변 자본 사이의 비율이다.

 

자본 A의 경우, 회전수는 10, 1년은 50주이므로, 회전 시간은 5주간이다. 가변 자본은 이 5주간에 대하여 투하해야 하며, 5주간에 투하하는 자본은 1주간에 사용되는 가변 자본의 5배가 되어야 한다. , 1주 동안에는 투하 자본(이 경우 500)1/5만이 사용될 수 있다.

 

회전수가 1회인 자본 B의 경우, 회전 시간 = 1= 50주간이다. 따라서 투하한 자본(5,000)과 매주 사용되는 자본(100)의 비율은 50:1이다. 자본 B의 연간 회전수가 자본 A와 같이 10회라면, B가 최초 투하해야 하는 자본은 100원이 아닌 500원이다. 왜냐하면, 총 사용 가변 자본(5,000)은 회전수(10)로부터 분할되어 투하되기 때문이다. (5,000/ 10= 500), 이 경우, 투하한 자본과 매주 사용되는 자본의 비율은 500 : 100, 5 : 1로 감소한다.

 

둘째, 자본 B1년 동안 동일한 양의 가변 자본을 운동시키고, 잉여 가치율이 주어져 있다면 동일한 양의 노동(지불받는 노동과 지불받지 못하는 노동)을 운동시키기 위해, 따라서 또 1년 동안 동일한 양의 잉여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자본 A10배에 해당하는 자본(5,000)을 투하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실질 잉여 가치율이 표현하는 것은 일정한 기간에 생산된 잉여 가치와, 같은 기간에 사용된 가변 자본 사이의 비율, 또는 이 기간에 사용된 가변 자본이 운동시킨 지불받지 못한 노동량에 불과하다. 실질 잉여 가치율은 가변 자본 중 사용되지 않는 기간에 투하되어 있는 부분과는 절대로 아무 관계도 없으며, 따라서 일정한 기간에 투하된 자본 부분과 이 기간에 사용된 자본 부분 사이의 비율 (회전 시간으로 인해 변경되고 차이가 생기는 비율)과도 역시 아무 관계가 없다.

 

이미 전개된 바, 연간 잉여 가치율이 노동의 착취도를 표현하는 실질 잉여 가치율과 일치하는 것은 오직 한 경우뿐이다. 이는 투하 자본이 연 1회만 회전하여, 투하 자본이 1년간 회전한 자본과 같아진다. 이때 1년간 생산된 잉여 가치량과, 그 생산에 사용된 자본 사이의 비율은, 1년간 생산된 잉여 가치량과 1년간 투하된 자본 사이의 비율과 일치하며 동일하다.

 

A) 연간 잉여 가치율은 다음과 같다.

 

1년간에 생산된 잉여 가치량 / 투하한 가변 자본

 

그런데 1년간에 생산된 잉여 가치량은 실질 잉여 가치율에 잉여 가치 생산에 사용된 가변 자본을 곱한 것과 동일하다. 또한, 연간 잉여 가치량의 생산에 사용된 자본은 투하된 자본에 그 회전수(n)를 곱한 값과 같다. 그러므로 공식 A)는 다음 형태로 전환된다.

 

연간 잉여 가치율 = 실질 잉여 가치율 × (투하된 가변 자본 × n) / 투하한 가변 자본

 

연간 잉여 가치율 = 실질 잉여 가치율 × n

 

 

B) 연간 잉여 가치율은 다음과 같다.

 

실질 잉여 가치율 × 투하한 가변 자본 × n / 투하한 가변 자본

 

예컨대, 자본 B의 경우, 100% × 5,000× 1 / 5,000원이므로, 100%이다.

 

n=1인 경우에만, 곧 투하한 가변 자본이 연 1회만 회전하여 1년간 사용된 (또는 회전한) 자본과 같은 경우에만 연간 잉여 가치율은 실질 잉여 가치율과 같다.

 

연간 잉여 가치율을 S´, 실질 잉여 가치율을 s´, 투하된 가변 자본을 v, 회전수를 n이라고 할 때, 수식은 다음과 같다.

 

S´ = s´vn / v이며, 따라서 S´ = s´n이다. 오직 n=1인 경우, S´ = s´ × 1 = s´인 경우에만, S´ = s´이다.

 

이로부터 또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연간 잉여 가치율은 언제나 S´n과 같다. 이는 1회전 시간에 소비된 가변 자본이 그 시간 중에 달성한 실질 잉여 가치율(s´)에 이 가변 자본의 1년간 회전수(n)를 곱한 값과 동일하다. 다시 말해, 1년을 단위로 하여 계산한 이 가변 자본의 회전 시간의 역수를 곱한 값과 같다. (가변 자본이 연 10회 회전한다면, 그 회전 시간은 1/10년이며, 따라서 이 회전 시간의 역수는 10/1 = 10회이다.)

 

다음으로, n=1일 경우, S´ = s´이다.

 

또한, n1보다 크다면 (곧 투하 자본이 연 1회 이상 회전하거나, 회전한 자본이 투하 자본보다 크다면), S´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n1보다 작다면 (1년 동안 회전한 자본이 투하 자본의 일부에 불과하며 회전 시간이 1년 이상에 걸친다면), S´보다 작다.

 

이 마지막 경우를 고찰한다.

 

앞선 예의 모든 전제(v= 100, s´ = 100%)를 유지한 채, 회전 시간이 55주로 연장되었다고 가정한다. 노동 과정은 이 기간 동안 5,500원의 가변 자본을 필요로 하며 5,500s를 생산한다. 회전 시간 55주는 1 + 1/10(1= 50)이므로, 회전수 n50/55 = 10/11이다.

 

연간 잉여 가치율 S´ = s´n에 따라, 100% × 10/11 = 1,000 / 11 = 9010/11%로 산출되며, 90.909%이므로, 이는 100%보다 작다.

 

사실상, 5,500v5,500s를 생산하는 데 11/10년이 소요되므로, 1년 동안에는 5,000s만을 생산한다. 따라서 연간 잉여 가치율은 5,000s / 5,500v = 10/11 = 9010/11%이다.

 

그러므로 연간 잉여 가치율과 실질 잉여 가치율 사이의 비교는 단순히 주관적인 것이 아니며, 자본의 현실적 운동 자체가 이러한 대비를 일으킨다.

 

자본 A의 소유자에게는 연말에 5,000원의 잉여 가치와 함께 그가 투하한 500원의 가변 자본이 환류한다. 그의 투하 자본의 크기를 표현하는 것은 1년간 그가 사용한 자본량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그의 수중으로 환류하는 자본량이다. 연도 말에 자본의 일부가 생산용 재고, 또는 상품 자본이나 화폐 자본으로 존재한다든가, 또 이 자본이 상이한 부분들로 어떻게 분할되어 있는지는 현 문제와 무관하다.

 

자본 B의 소유자에게는 5,000원의 잉여 가치와 함께 그의 투하 자본 5,000원이 환류한다. 반면, 자본 C (마지막에 고찰한 5,500원 투하)의 소유자는 1년간 5,000원의 잉여 가치를 생산하였으나 (투하 자본 5,500, s´ = 100% 가정), 그의 투하 자본은 아직 환류하고 있지 않으며, 생산된 잉여 가치 또한 마찬가지로 환류하고 있지 않다.

 

S´ = s´n이 표현하는 바는, 연간 잉여 가치율(S´)1회전 시간 중에 사용된 가변 자본에 해당하는 실질 잉여 가치율(s´), 투하된 가변 자본의 회전 기간 수(n), 곧 연간 회전수를 곱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전 기간의 수는 1년 중에 몇 개의 회전 기간이 포함될 수 있는지를 의미하므로, 회전수와 동일하다.)

 

S´ = s´n

 

여기서 는 다음 비율을 의미한다.

 

1회전 시간 중에 생산된 잉여 가치 / 1회전 시간 중에 사용된 가변 자본

 

이 회전 기간의 수(n)는 투하된 가변 자본의 재생산 및 순환 갱신 기간이 1년 안에 몇 번 포함될 수 있는지를 의미하며, 회전수와 동일하다.

 

자본 가치는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1권 제2) 및 단순 재생산(1권 제23)에서 본 바와 같이, 항상 투하될 뿐 소비되어 버리지는 않는다. 이 가치는 자기 순환의 여러 단계들을 거친 후, 잉여 가치만큼 증식되어 다시 출발점으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투하된 자본 가치를 특징짓는 요소이다. 자본 가치의 출발점에서 복귀점에 이르는 시간은 곧 자본 가치가 투하되어 있는 시간이다. 자본 가치가 통과하는 전체 순환은 투하로부터 환류에 이르는 시간으로 측정되며, 이를 자본 가치의 회전을 규정하고, 이 회전의 지속 시간이 1회전 시간이 된다. 이 시간이 지나 순환이 종결되면, 동일한 자본 가치는 새로운 순환을 개시하여 자신을 새로 증식시키고 잉여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가변 자본 A와 같이 1년에 10회 회전한다면, 1년간 생산되는 잉여 가치량은 1회전 시간에 해당하는 잉여 가치량의 10배가 된다.

 

투하의 성질을 자본주의 사회의 관점에서 해명한다.

 

1년간 10회 회전하는 가변 자본 A는 새로운 회전 시간마다 새로 투하된다. 따라서 1년 동안 10회 투하된다. 그러나 자본 A의 소유자가 1년 동안 투하하는 자본 가치는 동일한 500원 이상이 될 수 없으며, 사실상 그는 고찰 대상이 되는 생산 과정을 위해 500원만을 소유한다. 500원이 하나의 순환을 완료하는 즉시, 그는 이 자본이 동일한 순환을 재차 개시하도록 한다. 자본은 그 성질상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산 과정에서 기능하면서만 자본의 성격을 유지한다. 이 자본(500)5주 이상 투하되지 않는다. 회전 시간이 이보다 길어지면 자본은 부족해지고, 회전 시간이 단축되면 자본의 일부는 과잉이 된다.

 

500원짜리 자본 10개가 투하되는 것이 아니라, 500원의 자본 1개가 순차적인 기간들에 걸쳐 10회 투하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간 잉여 가치율은 10회 투하되어 총 5,000원의 기능적 가치를 창출하는 자본에 대해서가 아닌, 1회 투하되는 500원의 자본에 대하여 계산된다. 이는 1원이 10회 유통할 때 10원의 기능을 수행함에도, 유통 중인 것은 언제나 1원에 불과한 것과 같은 원리이다. 소유자가 아무리 바뀌더라도, 1원은 누구의 수중에서도 여전히 1원이라는 동일한 가치에 머무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 A, 환류할 때마다, 그리고 연말에 환류할 때에도, 그 소유자가 언제나 500원이라는 동일한 자본 가치를 가지고 활동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의 수중으로 매번 환류하는 것도 500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의 투하 자본은 결코 500원 이상이 아니다. 이 투하 자본 500원은 연간 잉여 가치율을 표현하는 분수의 분모를 이룬다.

 

이를 표시하는 공식은 S´ = s´vn / v = s´n이었다. 실질 잉여 가치율 s/v, 곧 잉여 가치량을 이것을 생산한 가변 자본으로 나눈 것과 같기 때문에, 우리는 대신 s/v를 놓아 다른 공식 S´ = sn / v을 얻는다.

 

500원의 자본은 10회 회전하며, 그에 따라 투하가 10회 갱신된다. 이는 10배 더 큰 자본인 5,000원의 자본 기능을 수행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원리는 연간 10회 유통되는 500개의 1원짜리 동전이 연간 1회만 회전하는 5,000개의 1원짜리 동전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개별 가변 자본의 회전

 

생산 과정은 그 사회적 형태와 무관하게 연속성을 지니며, 주기적으로 동일한 국면들을 끊임없이 통과한다. 따라서 모든 사회적 생산 과정은 연속된 총체, 곧 끊임없이 갱신되는 하나의 흐름으로 고찰될 때, 필연적으로 재생산 과정이 된다. 자본 가치의 주기적 증가분(, 과정 진행 중인 자본의 주기적 산물)인 잉여 가치는 자본에서 생기는 수입의 형태로 나타난다.’

 

[1권 제23: 772, 773].

 

자본 A의 경우, 5주 회전 시간을 갖는 주기가 10회 존재한다. 1회전 기간에 500원의 가변 자본이 투하되는데, 이는 매주 100원이 노동력으로 전환되어 해당 기간 말에 총 500원이 노동력에 지출되었음을 의미한다. 500원은 원래 총 투하 자본의 일부였으나, 이제 임금으로 지불되어 자본으로의 성격을 상실한다. 노동자는 이 500원을 생활 수단 구입에 사용하여, 500원 가치에 상응하는 생활 수단을 소비한다. 결과적으로, 이 가치액만큼의 상품량이 소멸되며(노동자의 저축분 역시 자본이 아님), 이 상품량은 노동자와의 관계에서 비생산적으로(잉여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의미) 소비된다. 물론 이 소비로부터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활동 상태로 유지하지만, 이는 자본가에게 필수 불가결한 생존 요소다.

 

그러나 둘째로, 500원은 자본가에게 동일한 가치(또는 가격)를 지닌 노동력으로 전환된다. 이 노동력은 자본가가 노동 과정에서 생산적으로 소비한다. 따라서 제5주 말에는 1,000원의 가치 생산물(새로 창출된 가치)이 산출된다. 이 생산물의 절반인 500원은 노동력 대가로 지출된 가변 자본의 가치가 재생산된 부분이며, 나머지 절반인 500원은 새로 생산된 잉여 가치다.

 

하지만 5주 동안의 노동력(이것으로 전환되면서 자본의 일부가 가변 자본으로 기능함) 역시생산적이기는 하나 지출되어 소비된다. 어제 행한 노동과 오늘 행한 노동은 동일하지 않다. 어제 소비된 노동력의 가치는 그 노동으로부터 창출된 잉여 가치와 함께, 이제 노동력 자체와는 구별되는 생산물의 가치로 존재한다.

 

생산물이 화폐 형태로 전환될 때, 그 가치 중 투하된 가변 자본의 가치와 동등한 부분은 다시 노동력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가변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때 재생산 및 화폐 형태로 재전환된 가치로부터 동일한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본가는 제2회전 기간에 기존 노동자들 대신 새로운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500원의 자본이 아니라 5,000원의 자본이 5주 회전 시간 10회에 걸쳐 순차적으로 임금에 지출되며, 이 임금은 노동자들이 생활 수단에 지출한다. 이와 같이 사용된 자본 5,000원은 소비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500원이 아닌 5,000원 가치에 해당하는 노동력이 순차적으로 생산 과정에 합쳐져, 자기 자신의 가치 5,000원을 재생산할 뿐 아니라, 추가로 5,000원의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 2회전 기간에 투하되는 가변 자본 500원은 제1회전 기간에 투하되어 임금으로 지출되고 소비되어 버린 자본 500원과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후자는 제1회전 기간에 상품 형태로 생산되고, 화폐 형태로 재전환된 새로운 가변 자본 500원으로 보충된다.

 

결국, 이 새로운 화폐 자본 500원은 제1회전 기간에 새로 생산된 상품량의 화폐 형태이다. 자본가의 수중에 동일한 화폐액 500(잉여 가치를 제외하면 그가 최초에 투하했던 동일한 화폐 자본)이 다시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 새로 생산된 자본이라는 사실이 가려진다. (상품 자본의 가치 중 불변 자본 부분들을 보충하는 구성 부분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들의 가치는 새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며, 다만 그 가치의 존재 형태만 변화할 따름이다.)

 

3회전 기간을 고찰할 경우, 세 번째로 투하되는 자본 500원은 기존 자본이 아닌 새로 생산된 자본이라는 점이 명확하다. 이는 이 자본이 제1회전 기간이 아닌 제2회전 기간에 생산된 상품량의 화폐 형태(, 이 상품량 중 투하된 가변 자본의 가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부분의 화폐 형태)이기 때문이다. 1회전 기간에 생산된 상품량은 이미 판매되었다. 이 상품량의 가치 중 투하 자본 가치의 가변 부분과 동등한 부분은 제2회전 기간의 새로운 노동력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상품량을 생산하였다. 이 새로운 상품량이 다시 판매되었고, 이것의 가치 일부가 제3회전 기간에 투하되는 자본 500원을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10회의 회전 기간 동안 계속 진행된다. , 이 기간 중 5주마다 새로 생산된 상품량(이것의 가치가, 가변 자본을 보충하는 한, 새로 생산되는 것이며, 불변적 유동 자본 부분처럼 단순 재현되는 것은 아님)이 시장에 유입되어 새로운 노동력을 생산 과정에 지속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투하된 가변 자본 500원의 10회 회전이 달성하는 것은, 이 자본 500원이 10회에 걸쳐 생산적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며, 5주분의 가변 자본이 50주에 걸쳐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실상은 가변 자본 500원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 50주간 사용되며, 원금 500원의 자본은 언제나 5주분에 불과하고, 5주가 경과한 뒤에는 새로 생산된 500원의 자본으로부터 보충되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 A의 경우와 자본 B의 경우 모두 동일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이제부터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5주로 이루어진 제1기간 말에, 자본 BA 경우 모두 가변 자본 500원이 투하되었고 지출되었다. AB 양자 모두 가변 자본의 가치를 노동력으로 전환하였으며, 이 노동력이 새로 생산한 생산물의 가치 중 투하된 가변 자본 500원의 가치와 동등한 부분으로부터 노동력의 가치를 보충했다. BA의 경우, 노동력은 지출된 가변 자본의 가치 500원을 동일 금액의 새로운 가치로 보충했을 뿐 아니라, 전제에 따라 지출된 가변 자본과 동일한 크기의 잉여 가치를 추가했다.

 

자본 B의 경우, (투하된 가변 자본을 보충하고, 잉여 가치를 부가하는) 가치 생산물은 생산 자본, 특히 가변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이는 자본 A가 바로 그러한 형태를 취하는 것과 대비된다.) B가 최초 5주 및 이후 주기마다 지출한 가변 자본은 (새로 생산된 가치와 잉여 가치로 보충되기는 하나) 연도 말까지는 생산 자본 또는 가변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지 못한다. 그것의 가치는 새로운 가치로 보충되어 갱신되지만, 그 가치 형태(이 경우에는 절대적인 가치 형태, 곧 화폐 형태)는 갱신되지 못한다.

 

따라서 제2기간의 5주간(그리고 순차적으로 1년 동안의 매 5주간)에도 제1기간에서와 마찬가지로 500원이 추가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 신용 관계를 무시한다면, 연초에 5,000원이 잠재적 투하 화폐 자본으로 준비되어 존재해야 한다. 비록 이 5,000원은 1년 동안 조금씩 현실적으로 지출되어 노동력으로 전환되지만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자본 A의 경우에는 최초 5주간이 경과한 뒤 투하 자본의 순환 또는 회전이 종료된다. 따라서 가치 보충분은 이미 5주분의 새로운 노동력을 가동시킬 수 있는 형태(곧 그것의 최초 화폐 형태)로 존재한다.

 

AB의 경우 모두 제2기간의 5주간에는 새로운 노동력이 소비되며, 이 노동력에 대한 지불을 위해 500원의 새로운 자본이 지출된다. 최초의 500원으로 지불된 노동자의 생활 수단은 이미 소멸되었고, 그만큼의 가치는 자본가의 수중에서 사라졌다. 2500원으로 새로운 노동력이 구매되며 새로운 생활 수단이 시장에서 유출된다. , 기존 자본이 아닌 새로운 자본 500원이 지출된다.

 

그러나 A의 경우, 이 새로운 자본 500원은 이전에 지출된 500원을 보충하는 새로 생산된 가치의 화폐 형태이다. 반면, B의 경우 이 가치 보충분은 가변 자본으로 기능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한다. 그것은 존재하지만, 가변 자본의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B는 그다음 5주간에 생산 과정을 지속하기 위해 500원의 추가 자본이 화폐 형태로 준비되어 투하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50주 동안 AB 모두 동일한 금액의 가변 자본이 지출되며, 동등한 양의 노동력이 지불되고 소비된다.

 

그러나 B의 경우, 이 노동력은 그것의 총가치 = 5,000원과 동등한 투하 자본으로 지불되어야 하는 반면, A의 경우 5주마다 투하되는 자본 500원을 보충하는 가치가 5주마다 생산되어 끊임없이 화폐 형태로 갱신되므로, 노동력의 대가는 순차로 지불된다. 결론적으로, A의 경우에는 5주분 이상의, 곧 최초 5주간에 투하된 500원 이상의 화폐 자본이 투하되는 일은 결코 없다. 500원으로 1년 전체를 충분히 감당한다.

 

그러므로 노동의 착취도, 곧 실질 잉여 가치율(s/v)이 동등한 경우, AB의 연간 잉여 가치율(S/V)1년간 동일한 양의 노동력을 가동시키기 위해 투하되어야 하는 가변적 화폐 자본의 크기에 반비례한다는 점이 명백하다.

 

A의 경우: 5,000s / 500v = 1,000%

B의 경우: 5,000s / 5,000v = 100%

 

여기서 500v : 5,000v = 1:10 = 100% : 1,000%

 

이 차이는 회전 시간(, 일정한 기간에 사용된 가변 자본을 보충하는 가치가 새롭게, 곧 새로운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되는 시간)의 다름에서 나온다. B에서나 A에서나 동일한 기간 중에 사용된 가변 자본에 대해 동일한 가치 보충이 이루어진다. 또한 동일한 기간 중에 잉여 가치의 동일한 증식도 일어난다.

 

그러나 B의 경우, 5주간마다 500원의 가치 보충분과 500원의 잉여 가치가 발생하지만, 이 가치 보충분은 화폐 형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새로운 자본을 이루지 못한다.

 

반면, A의 경우, 옛 자본 가치가 새로운 자본 가치로부터 보충될 뿐 아니라, 화폐 형태로 재생되고 있으며, 따라서 기능할 수 있는 새로운 자본으로 보충되고 있다.

 

보충 가치가 화폐(, 가변 자본이 투하되는 형태)로 전환되는 시점이 이르거나 늦는 것은 잉여 가치 생산 자체에 대해서는 무관한 일이다. 잉여 가치 생산은 사용되는 가변 자본의 크기와 노동의 착취 정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사정은 1년간 일정한 양의 노동력을 가동시키기 위해 투하되어야 하는 화폐 자본의 크기를 변경시키며, 결과적으로, 연간 잉여 가치율에 영향을 미친다.

 

. 사회적으로 고찰한 가변 자본의 회전

 

이제 위 문제를 전체 사회적 관점에서 잠시 고찰한다. 1명의 노동자에게 주당 1, 노동 시간은 10시간으로 가정한다.

 

자본 AB의 경우 모두, 연간 100명의 노동자가 고용된다(주당 100, 5주당 500, 50주당 5,000원 지출). 이들은 매주 6, 각각 60시간씩 노동한다. 따라서 100명의 노동자는 매주 6,000시간, 50주에는 총 300,000시간 노동한다. 이만큼의 노동력은 AB가 전유하며, 사회는 이것을 다른 목적에 지출할 수 없다. 이 점에서 AB는 사회적으로 동일하다. 또한, AB의 경우 각각 100명의 노동자는 매년 5,000원의 임금을 받으며(200명의 노동자는 10,000), 이 금액만큼 생활 수단을 사회로부터 유출한다. 이 점에서도 AB는 사회적으로 동일하다. 어느 경우에나 노동자는 매주 임금을 받으므로, 그들은 매주 사회로부터 생활 수단을 유출하며, 그 대가로 화폐 등가를 유통에 투입한다. 그러나 지금부터 두 경우의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첫째로, A의 노동자가 유통에 투입하는 화폐는, B의 노동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만 자기 노동력 가치의 화폐 형태(, 이미 수행한 노동에 대한 지불 수단)일 뿐만은 아니다. 자본 A의 경우, 사업 개시 후 제2회전 기간부터는 벌써 제1회전 기간의 그들 자신의 가치 생산물(=노동력의 가격 + 잉여 가치)의 화폐 형태이며, 이것이 제2회전 기간 동안 그들의 노동을 지불한다.

 

그러나 자본 B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경우 화폐는 물론 노동자가 이미 수행한 노동에 대한 지불 수단이지만, 그들 자신의 가치 생산물이 화폐로 전환되어 이 노동을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기 시작한 것은 제2연도부터이며, 그때 비로소 B의 노동자들은 지난해에 자기들로부터 생산되어, 화폐로 전환된 가치로부터 지불받게 된다.

 

자본의 회전 시간이 짧을수록(, 1년 안에 자본의 재생산 기간이 갱신되는 시간이 짧을수록), 최초에 자본가가 화폐 형태로 투하한 가변 자본 부분은 노동자가 가변 자본의 보충분으로 창출한 가치 생산물(여기에는 잉여 가치가 포함됨)이 화폐 형태로 더욱 신속히 전환된다. 그 결과, 자본가가 자기 자신의 재원 중에서 화폐를 투하해야 하는 시간은 더욱 단축되며, 일정한 생산 규모 대비 그가 투하하는 자본은 대체로 더욱 적어진다. 이는 자본가가 노동자 자신의 가치 생산물의 화폐 형태로부터 그만큼 더욱 빈번히 노동자를 새로 고용하여 그의 노동을 가동시킬 수 있기 때문인데, 결국, 잉여 가치율(s/v)이 주어진 경우, 자본가가 1년간에 착취하는 잉여 가치량은 투하 자본의 규모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더욱 커진다.

 

생산 규모가 일정한 경우, 회전 시간의 단축에 비례하여 가변적 화폐 자본 (그리고 유동 자본 일반) 투자액의 절대적 크기는 감소하며, 연간 잉여 가치율은 증대한다.

 

투하 자본의 크기가 일정한 경우, 회전 시간의 단축에 비례하여 생산 규모가 확대되고, 따라서 잉여 가치율이 주어진 경우에는 1회전 시간 안에 생산되는 잉여 가치의 절대량이 증대하며, 동시에 연간 잉여 가치율이 증대한다.

 

이상의 연구로부터, 노동의 착취 정도가 동일한 경우, 동일한 양의 생산적 유동 자본과 동일한 양의 노동을 가동시키기 위해 투하되어야 하는 화폐 자본의 크기는 회전 시간의 길이가 다름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이는 첫 번째 차이와 연관된다. BA의 노동자 모두 그가 구매하는 생활 수단의 대가는 (그의 수중에서 유통 수단으로 전환된) 가변 자본으로 지불된다. 노동자는 시장에서 예컨대 곡물을 끌어낼 뿐 아니라 화폐 등가를 지불한다. 그러나 B 노동자가 생활 수단에 지불하는 화폐는, A 노동자와 달리, 그 해 안에 그가 시장에 투입한 가치 생산물의 화폐 형태가 아니다. 따라서 B 노동자는 판매자에게 화폐는 제공하지만, 그 판매자가 그 화폐로 구매할 수 있는 어떤 상품(생산 수단이든 생활 수단이든)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A 노동자의 경우와 다르다. 결국, 시장에서는 노동력, 이를 위한 생활 수단, 그리고 B가 사용하는 고정 자본이나 생산 재료가 유출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화폐 등가가 투입된다. 그러나 시장으로부터 유출된 생산 자본의 소재적 요소들을 보충하기 위한 어떤 생산물도 그 해 안에 시장에 투입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공산주의 사회를 가정한다면, 화폐 자본과 그 거래상의 가면들이 사라지므로, 문제는 단순해진다. 곧 예컨대, 철도 건설과 같이 1년 이상 장기간 생산 수단, 생활 수단, 유용 효과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연간 총생산물에서 노동, 생산 수단, 생활 수단을 유출하는 사업 부문에 대해, 사회가 아무런 혼란 없이 얼마만큼의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지를 미리 계산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적 이성이 언제나 사후에 관철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끊임없는 대혼란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장기 투자와 사용 가치 생산 사이의 기간이 긴 사업들(철도 등)은 한편으로 화폐 시장을 압박하며, 오히려 화폐 시장의 완화는 이러한 사업들을 대규모로 일으키며 결국 뒤에 가서 화폐 시장을 경색시킬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화폐 시장을 압박하는 근본 원인은, 이러한 사업들에서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화폐 자본 투하가 항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업 자본가와 상인이 자신의 기업 경영에 필요한 화폐 자본을 철도 투기 등에 투입하고, 그 부족분을 화폐 시장에서 차입하여 메운다는 사실은 이와는 별개 문제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의 가용 생산 자본을 압박하게 된다. 생산 자본의 요소들은 계속 시장에서 유출되지만, 그 대신 화폐 등가만이 시장에 투입되므로, 그 자체로부터는 어떤 공급 요소도 제공함이 없이 유효 수요가 증가한다. 이 때문에 생활 수단과 생산 재료의 가격이 등귀한다. 또한 이런 시기에는 항상 투기가 성행하며 자본의 대이동이 발생한다. 투기꾼, 청부업자, 기술자, 변호사 등 특정 집단이 치부하며, 그들은 시장에서 강렬한 소비 수요를 일으킨다. 동시에 임금 역시 등귀한다.

 

식료품의 경우, 이 과정에서 농업도 강한 자극을 받는다. 그러나 식료품은 1년 안에 갑자기 증가할 수 없으므로, 그것의 수입이 증가하며, 기호품 일반(커피, 사탕, 포도주 등)과 사치품의 수입도 증가한다. 그 결과, 수입업 부문에서 과잉 수입과 투기가 생긴다.

 

이와는 반대로, 생산을 급속히 증가시킬 수 있는 산업 부문들(진정한 제조업, 광업 등)에서는 가격 등귀로 인해 돌연한 생산 확대가 일어나며, 이에 뒤이어 곧 붕괴가 닥친다.

 

노동 시장에서도 동일한 효과가 발생하여, 대량의 잠재적인 상대적 과잉 인구와 심지어 취업 노동자들까지도 새로운 사업 부문에 흡수된다.

 

일반적으로, 철도와 같은 대규모 사업은 노동 시장에서 일정한 수의 노동력을 유출시키는데, 이 노동력은 힘센 젊은이들만을 요구하는 농업과 같은 특정 부문에서만 나올 수 있는 그러한 노동력이다. 이러한 현상은 새로운 사업들이 이미 확립된 뒤, 곧 이 사업들에 필요한 이주 노동자층이 이미 형성된 뒤에도 일어난다. 이는 예컨대, 철도 건설이 일시적으로 평균 수준 이상의 대규모로 진행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노동자 예비군(이것의 압력이 임금을 저하시켜 왔음)의 일부가 흡수된다. 임금이 일반적으로 등귀하며, 이제까지 취업 조건이 양호했던 노동 시장 부분에서까지도 그러하다. 이러한 현상은 불가피한 공황으로 인해 노동자 예비군이 다시 형성되고, 임금이 다시 최저 한도로, 또는 그 이하로 인하될 때까지 지속된다.

 

회전 시간의 길고 짧음이 진정한 노동 기간(, 시장에 투입할 생산물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기간)에 의존하는 한, 그 길고 짦음은 각종 투자의 주어진 물적 생산 조건에 달려 있다. 이 생산 조건은 농업에서는 자연적 생산 조건의 성격을 강하게 띠며, 제조업과 대부분의 광산업에서는 생산 과정 자체의 사회적 발전에 따라 변화한다.

 

노동 기간의 길이가 출하량의 크기(일반적으로, 생산물이 상품으로 시장에 투입되는 양적 크기)에 달려있는 한, 이것은 관습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 관습 자체는 생산 규모를 그 물질적 기초로 하고 있으므로, 노동 기간의 길이가 그 자체로 고찰되는 경우에만 우연적이다.

 

마지막으로, 회전 시간의 길이가 유통 시간의 길이에 달려있는 한, 이는 부분적으로 시장 상황의 끊임없는 변동, 판매의 용이성 또는 난이도,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산물을 더 가까운 시장 또는 더 먼 시장에 방출할 필요에 달려있다.

 

수요 일반의 규모를 제외하면, 이 경우, 가격 운동이 가장 주된 기능을 수행한다. 가격이 하락할 경우 생산은 진행되더라도 판매는 고의로 제한되며, 반대로, 가격이 등귀할 경우 생산과 판매는 보조를 맞추거나 또는 판매가 생산보다 앞설 수도 있다. 그러나 유통 시간의 진정한 물질적 기초로 간주해야 할 것은 생산지와 판매 시장 사이의 현실적 거리다.

 

예컨대, 영국의 면직물 또는 면사가 인도로 판매되고, 수출 상인이 스스로 영국의 면업 공장주에게 지불한다고 가정한다. (수출 상인은 화폐 시장 상태가 양호한 경우에만 기꺼이 지불한다. 그러나 공장주 자신이 신용 거래로 화폐 자본을 보충할 때는 이미 상황은 악화된 시점이다.) 이후 수출 상인은 면제품을 인도 시장에 판매하고, 투하 자본을 송금받는다. 이 송금이 완료될 때까지, 이는 노동 기간의 연장으로 인해 주어진 생산 규모 유지를 위해 새로운 화폐 자본 투하가 필요했던 경우와 비슷하다.

 

공장주가 노동자들에게 지불하고, 유동 자본의 기타 요소를 갱신하는 데 사용하는 화폐 자본은 노동자들이 생산한 면사의 화폐 형태가 아니다. 면사의 가치가 화폐 또는 생산물 형태로 영국에 환류된 뒤에야 비로소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화폐 자본은 앞선 경우와 마찬가지로 추가적 화폐 자본이다.

 

다만 다른 점은, 공장주가 아닌 상인이 이 추가적 화폐 자본을 투하하며, 아마 이 상인 자신도 신용 거래로 이 화폐 자본을 얻었을 것이다. 또한 이 화폐가 시장에 투입되기 전 또는 이와 때를 같이 해서 추가적 생산물(이 화폐로 구매되어 생산적 또는 개인적 소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영국 시장에 투입된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상태가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발생한다면, 노동 기간의 장기화가 앞선 경우에 일으킨 것과 같은 결과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그런데 인도 자체에서 면사가 신용(외상)으로 판매될 수도 있다. 이 신용으로 인도에서 생산물이 구매되어 영국에 보내지거나, 또는 그 금액만큼의 수표가 영국에 송부된다. 이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인도의 화폐 시장이 압박을 받고, 이것이 영국에 반작용하여 영국에서 공황을 낳을 수 있다. 이 공황은 인도로 귀금속이 수출되는 것과 결부되어 있는 경우에도 인도에서 새로운 공황을 일으킨다. 이는 인도의 은행들로부터 신용을 받은 영국의 상사들과 그들의 인도 지점들의 파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무역 수지가 적자(-)인 시장과 흑자(+)인 시장에서 동시에 공황이 일어난다. 이 현상은 더 한층 복잡해질 수도 있다. 예컨대, 영국이 은덩이를 인도에 보냈다고 하더라도, 인도에 대한 영국 채권자들이 자기들의 채권을 독촉하면, 인도는 얼마 안 가서 그 은덩이를 영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인도로부터의 수입 무역은 (면화 가격 등귀 등과 같은 특수 사정을 제외하면) 인도에 대한 수출 무역으로 규정되고 촉진되지만, 후자와 전자는 거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영국과 인도 사이의 무역 수지는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거나 어느 한쪽으로 조금 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공황이 발발하는 즉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드러난다. 인도의 창고에는 팔리지 않은 (영국) 면제품이 쌓여 있다. (따라서 면제품들이 상품 자본에서 화폐 자본으로 전환되지 않았음은 과잉 생산을 가리킨다.) 영국에서는 인도 생산물이 팔리지 않고 재고로 쌓여 있을 뿐 아니라, 판매되어 소비된 인도 생산물의 대부분도 아직 전혀 지불되지 않은 채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폐 시장에서 공황으로 나타나는 사태는 사실상 생산 과정과 재생산 과정 자체의 파행적인 상황을 표현한다.

 

셋째로, 사용된 유동 자본(가변적 · 불변적)에 관하여 말한다면, 회전 시간의 길이가 노동 기간의 길이에 달려있는 한, 다음과 같은 차이를 낳는다. , 1년 안에 몇 회나 회전하는 경우에는 가변적 또는 불변적 유동 자본의 어떤 요소가 석탄 생산업이나 기성복 제조업 등에서와 같이, 이 자본 자체의 생산물로부터 제공될 수 있다. 그러나 기타의 경우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으며, 적어도 동일한 연도 안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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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위의 연구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A. 일부 자본이 유통 기간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나머지 자본이 노동 기간에 연속적으로 투입되도록 하기 위해, 자본은 여러 부분으로 분할되어야 한다. 이 분할된 부분들은 다음 두 조건에서 서로 상이하고 독립된 개별 자본처럼 교대한다.

 

첫째, 노동 기간과 유통 기간이 같아 회전 시간이 두 개의 동등한 부분으로 나누어질 때.

 

둘째, 유통 기간이 노동 기간보다 길지만, 노동 기간의 단순 정수 배일 때 (1 유통 기간 = n 노동 기간; n은 정수).

 

이 두 경우 모두, 순차적으로 투하된 자본의 어떤 부분도 유휴 상태로 풀려나지 않는다.

 

B. 그러나 다음 두 조건에서는 매 노동 기간 말에 총 유동 자본의 일부가 끊임없이 주기적으로 풀려난다.

 

첫째, 유통 기간이 노동 기간보다 길지만, 그 단순 정수 배가 아닐 때.

 

둘째, 노동 기간이 유통 기간보다 길 때.

 

이처럼, 풀려나는 자본 규모는 각 조건에 따라 규정된다.

 

노동 기간이 유통 기간보다 긴 경우, 이는 총자본 중 유통 기간에 투하되는 부분과 동일한 크기이다. 반면, 유통 기간이 노동 기간보다 긴 경우, 이는 1 노동 기간(또는 노동 기간의 정수 배)을 넘어서는 유통 기간의 초과분을 충족시켜야 할 자본 부분과 크기가 일치한다.

 

C. 이러한 논의로부터, 사회적 총자본의 유동적 부분에 대하여, 자본의 풀려남이 일반적이며, 생산 과정에서 차례로 기능하는 자본 부분들의 단순한 교대는 예외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노동 기간과 유통 기간이 같거나, 유통 기간이 노동 기간의 단순 정수 배가 되는 경우, 곧 회전 시간의 두 구성 부분이 이러한 규칙적인 비례성을 갖는 것이 회전 시간의 본질적 성질과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례 관계는 일반적이지 않고 대체로 예외적으로만 발생한다. 따라서 1년 동안 몇 번이나 회전하는 사회적 유동 자본의 매우 큰 부분은 주기적으로 연간회전 순환 과정에서 풀려난 자본의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기타 모든 조건이 불변일 때, 이 풀려나는 자본의 크기가 노동 과정 및 생산 규모와 함께, 곧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과 함께 증대함은 명백하다.

 

풀려나는 자본 증대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발생한다.

 

앞서 제시된 B(2)의 경우(노동 기간이 유통 기간보다 긴 경우): 총 투하 자본이 증대하기 때문이다.

 

앞서 제시된 B(1)의 경우(유통 기간이 노동 기간보다 길지만 단순 정수 배가 아닌 경우):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과 함께 유통 기간의 길이가 증가하고, 유통 기간이 노동 기간의 단순한 정수 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시: 매주 100원의 투하가 필요한 경우를 상정해 본다. 6주간의 노동 기간에는 600, 3주간의 유통 기간에는 300원이 소요되어, 총 투하 자본은 900원이 된다. 이 경우, 300원이 항상 풀려난다. 매주 투하되는 금액이 300원으로 증가한다면, 노동 기간에는 1,800, 유통 기간에는 900원이 투하된다. 결과적으로, 주기적으로 풀려나는 자본은 300원이 아닌 900원으로 증대한다.

 

D. 총자본 900원은 두 부분으로 분할되어야 한다. 위의 예에서는 노동 기간을 위한 600원과 유통 기간을 위한 300원이다. 이러한 분할로 인해, 실제로 노동 과정에 투하되는 부분은 900원에서 600원으로 1/3만큼 감소하며, 결과적으로, 생산의 규모도 1/3만큼 축소된다. 반면에, 300원은 오직 노동 기간을 연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기능한다. 이로부터 연중 매주 100원이 끊임없이 노동 과정에 투하될 수 있게 된다.

 

추상적으로 보면, 600원이 6× 8= 48주간 작용하여 4,800원의 생산물을 만들든, 또는 총자본 900원이 6주간 노동 과정에 투하된 뒤 다음 3주간의 유통 기간 동안 유휴 상태에 있든, 그 결과는 동일하다.

 

후자의 경우, 자본은 48주 중 6× 51/3= 32주간 작용하며(생산물은 900× 51/3= 4,800), 나머지 16주간은 유휴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16주간의 유휴가 초래하는 고정 자본의 비교적 큰 손상이나 노동 비용의 증가(노동은 1년 중 일부만 작업하더라도 1년 전체에 걸쳐 지불될 수 있음)을 무시하더라도, 생산 과정이 이처럼 규칙적으로 중단되는 것은 근대적 대공업의 운영과 전혀 맞지 않다. 연속성 그 자체가 하나의 노동 생산력이기 때문이다.

 

이제 풀려난 자본 (실질적으로는 활동이 중단된 자본)을 좀 더 자세히 고찰하면, 그것의 상당 부분이 항상 화폐 자본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위의 예에 따라, 노동 기간 6, 유통 기간 3, 매주 투자액 100원으로 가정한다. 2노동 기간의 중간, 곧 제9주 말에는 600원이 환류하는데, 그중 노동 기간의 나머지 기간에 투하되어야 할 것은 300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제2노동 기간 말에는 그중 300원이 풀려난다.

 

300원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

 

임금에 1/3, 원료·보조 재료에 2/3가 지출된다고 가정한다면, 환류한 600원 중 200원은 임금을 위한 화폐 형태로 존재하고, 400원은 생산용 재고 형태(곧 불변적·유동적 생산 자본의 요소)로 존재한다. 그러나 제2노동 기간의 후반을 위해 필요한 생산용 재고는 이 중 절반에 불과하므로, 나머지 절반인 200원은 3주일 동안 과잉인 생산용 재고(곧 하나의 노동 기간에 대해서는 과잉인 재고) 형태로 남는다. 하지만 자본가는 환류하는 자본의 이 부분(400) 중 당면한 노동 기간에 필요한 것은 그 절반인 200원뿐임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가 나머지 200원의 전부 또는 일부를 즉시 과잉 생산용 재고로 전환시킬지, 아니면 더 유리한 시장 상황을 기대하여 그것의 전부 또는 일부를 화폐 자본으로 보유할지는 시장 상황 여하에 달려있다.

 

다른 한편, 임금으로 투하되어야 할 부분인 200원이 화폐 형태로 보유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구매한 다음 그것을 원료처럼 창고에 보관해 둘 수 없다. 그는 이 노동력을 생산 과정에 결합시켜야 하며, 주말에 이에 대해 지불한다. 따라서 풀려난 자본 300원 중 100(임금 지출 부분)은 어떤 경우에도 풀려난 화페 자본 (곧 해당 노동 기간에는 필요하지 않은 화폐 자본)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풀려나는 자본 중 화폐 자본의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 부분은 적어도 임금으로 투하되는 가변 자본의 크기와 같아야 하며, 최대의 경우에는 풀려나는 자본 전부를 차지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부분은 이 최소한과 최대한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동한다.

 

이처럼, 단순한 회전 운동의 원리(메커니즘)로부터 풀려나는 화폐 자본은 (고정 자본의 순차적 환류로부터 형성되는 화폐 자본, 그리고 매회의 노동 과정에서 가변 자본을 위해 필요한 화폐 자본과 함께) 신용 제도가 발전할 때 현저한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에 신용 제도의 기초 중 하나로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예에서 유통 기간이 3주에서 2주로 단축된다고 가정한다. 이는 표준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경기의 호전이나 지불 기한의 단축 등의 결과이다. 노동 기간에 투하된 자본 600원은 이전보다 1주간 더 일찍 (9주 말이 아닌 제8주 말에) 환류하며, 결과적으로, 1주 동안 풀려난다. 또한, 종전과 마찬가지로 노동 기간의 중간에 풀려나는 300(600원의 일부)3주간이 아닌 4주간 동안 풀려난다. 따라서 화폐 시장에는 600원이 1주간 더, 300원이 3주가 아닌 4주간 더 있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한 자본가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다수의 자본가에게, 그리고 상이한 시기에, 상이한 생산 부문에서 발생한다면, 시장에는 더 많은 이용할 수 있는 화폐 자본이 출현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비교적 장기간 지속될 경우, 생산은 사정이 허락하는 곳에서 확대된다. 또한 차입 자본을 가지고 사업하는 자본가들은 화폐 시장에서의 자금 수요를 축소시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화폐 시장의 사정은 화폐 공급이 증대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완화된다. 회전의 원리(메커니즘)에 비교해 과잉이 된 화폐액은 결국 화폐 시장에 방출된다.

 

유통 기간이 3주에서 2주로, 그 결과 회전 시간이 9주에서 8주로 단축됨에 따라, 총 투하 자본의 1/9이 과잉으로 전환된다. 종전에 900원을 가지고 중단 없이 진행되던 6주간의 노동 기간은 이제 800원만으로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중단 없이 진행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상품 자본 가치의 일부인 100원은 일단 화폐로 전환되면, 그 상태 그대로 화폐 자본의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더 이상 생산 과정을 위해 투하되는 자본의 일부로 기능하지 않는다. 생산이 종전의 규모로 계속되고 기타 조건들(물가 등)이 불변이라면, 투하 자본의 가치 총액은 900원에서 800원으로 감소한다. 최초에 투하된 가치의 잔액인 100원은 화폐 자본의 형태로 가라앉는다. 이는 화폐 자본으로 화폐 시장에 유입되어, 그곳에서 기능하는 자본의 추가분을 형성하게 된다.

 

이로부터 화폐 자본의 과다 현상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화폐 자본의 과다란 화폐 자본의 공급이 수요보다 크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러한 의미의 과다(예컨대 공황이 끝난 뒤 새로운 순환을 개시하는 불황기에 생기는 과다)는 언제나 상대적인 과다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고 여기서 말하는 화폐 자본의 과다란 사회적 총 재생산 과정(유통 과정 포함)의 진행과 비교하여 투하 자본 가치의 일정한 부분이 불필요하게 되며, 따라서 화폐 자본의 형태로 풀려난다는 의미에서의 과다이다. 이러한 과다는 생산 규모와 물가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회전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유통하는 화폐량이 많고 적음은 이 과다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대로, 유통 기간이 연장되어 예컨대 3주에서 5주로 된다고 가정한다. 이 경우, 다음 회전에서 투하 자본의 환류가 2주만큼 지연된다. 2노동 기간의 생산 과정 마지막 부분(10-11)은 최초 투하 자본의 회전 원리(메커니즘)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이러한 상태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생산 과정의 축소(곧 생산 규모의 축소)가 일어난다. 이는 앞선 경우 생산 규모 확대가 있었던 것과 동일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 과정을 동일한 규모로 계속하기 위해서는 투하 자본이 유통 기간의 이 연장 부분 전체를 위해 2/9(=200)만큼 증가해야 한다. 이 추가 자본은 화폐 시장에서만 확보할 수 있다.

 

유통 기간의 연장이 하나 또는 몇 개의 주요 산업 부문에서 발생한다면, 이 연장은 화폐 시장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이 연장이 다른 산업 부문의 유통 기간 단축으로 상쇄되지 않는다면). 이 경우에도 역시 그 압박은, 위에서 언급한 과다 현상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상품 가격의 변동이나 현존하는 유통 수단 양의 변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엥겔스): 이 장의 인쇄 준비에 적지 않은 곤란이 따랐다. 마르크스는 대수학에는 능숙했지만, 숫자 계산, 특히 상업상의 계산에는 서툴렀다. 그가 손수 수많은 실례를 바탕으로 상업상 계산 방식을 시도했던 두꺼운 잡기장이 있다. 그러나 개별 계산 방식을 안다는 것과 상인의 실무적인 실제 계산에 숙련되는 것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마르크스는 회전 계산에서 혼란을 일으켜 미완성 계산, 다수의 부정확한 내용, 그리고 모순을 남겼다. 따라서 필자는 위 인쇄된 표들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수학상 정확한 것만을 보존했다. 그이유 주로 다음과 같다.

 

이 수고스러운 계산의 불확실한 결과 때문에, 마르크스는 필자가 보기에 사실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항, 곧 화폐 자본의 풀려남에 부당하게 큰 의의를 부여했다. 위에서 가정한 전제 하에, 현실적인 사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노동 기간과 유통 시간의 양적 비율, 그리고 이에 따른 자본 과 자본 의 양적 비율이 어떠하든, 1 회전이 끝난 뒤에는 노동 기간과 동일한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1 노동 기간에 필요한 자본, 곧 자본 과 동등한 금액이 화폐 형태로 자본가에게 되돌아온다.

 

· 노동 기간 = 5, 유통 시간 = 4, 자본 = 500원인 경우: 9, 14, 19, 24, 29주 등의 말마다 500원씩 화폐액이 환류한다.

 

· 노동 기간 = 6, 유통 시간 = 3, 자본 = 600원인 경우: 9, 15, 21, 27, 33주 등의 말마다 600원씩 환류한다.

 

· 노동 기간 = 4, 유통 시간 = 5, 자본 = 400원인 경우: 9, 13, 17, 21, 25주 등의 말마다 400원씩 환류한다.

 

환류된 화폐가 당면한 노동 기간에 비해 과잉이어서 풀려나는지 또는 그 환류된 화폐 중 얼마가 그렇게 되는지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생산은 중단 없이 동일한 규모로 진행된다고 전제되어 있는데, 그렇게 되려면 화폐가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 화폐가 풀려나든않든 환류해야만 한다. 생산이 중단된다면 이러한 풀려남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화폐의 풀려남, 곧 화폐 형태로의 잠재적 자본 형성은 어떤 사정에서든 발생하는 현상이며, 본문에서 상세히 논술한 특수한 조건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본문에서 가정한 것보다 더 큰 규모로 생긴다.

 

유동 자본 에 대해서는, 산업 자본가는 매 회전이 끝날 때마다 기업을 개시할 당시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 , 그는 이 자본 전체를 한꺼번에 수중에 넣게 된다. 다만, 그는 점차적으로 이 자본을 다시 생산 자본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뿐이다.

 

본문의 요점은, 한편으로는 산업 자본의 현저한 부분이 끊임없이 화폐 형태로 존재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보다 더 큰 부분이 때때로 화폐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논증한다. 필자가 추가한 내용은 오직 이 논증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 가격 변동의 영향

 

기존 가정은 가격과 생산 규모가 불변이고, 유통 시간만 증감한다는 점이었다. 이제 회전 시간과 생산 규모는 불변으로 유지하고, 가격(원료, 보조 재료, 노동력의 가격, 또는 원료와 보조 재료만의 가격)이 등락하는 경우를 상정한다.

 

임금과 원료 및 보조 재료 가격이 1/2 하락한다고 가정하면, 예시에서 매주 필요한 투자 자본은 100원에서 50원으로, 9주 회전 시간 동안 900원에서 450원으로 감소한다. 가격 하락으로 투하 자본 가치 중 450원이 화폐 자본으로 불필요하게 되나, 생산 과정은 종전과 동일한 규모, 동일한 회전 시간, 동일한 분할로 지속된다. 연간 생산물량은 변동 없으나, 그 가치는 1/2 감소한다.

 

이 변동은 화폐 자본의 수요·공급 변동을 초래하나, 유통 화폐의 유통 속도 증가나 유통 화폐량 변동에 기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생산 자본 요소들의 가치 또는 가격이 1/2 하락할 경우, 종전과 동일 규모로 유지되는 사업 X에 투하되는 자본 가치는 1/2 감소한다. 이에 따라 사업 X가 시장에 투입하는 화폐 역시 종전의 1/2에 불과하게 된다. 생산 요소 가격 하락으로 유통에 투입되는 화폐량이 감소하며, 이것이 첫 번째 결과다.

 

둘째로, 최초 투하 자본 가치 900원의 1/2450원은 기존에 a) 화폐 자본 생산 자본 상품 자본의 형태를 순차적으로 통과하였고, b) 끊임없이 일부는 이 세 가지 형태 중 하나로 동시에 존재했다. 450원은 이제 사업 X의 순환에서 풀려나서, 추가적 화폐 자본으로 화폐 시장에 유입되고, 추가 구성 부분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 풀려난 화폐 450원을 화폐 자본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사업 X 운영상 과잉이 된 화폐가 아니라, 최초 자본 가치의 구성 부분으로, 자본으로 계속 작용하려 하며 단순한 유통 수단으로 지출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풀려난 화폐를 자본으로 기능하게 하는 가장 손쉬운 형식은 그것을 화폐 자본으로 화폐 시장에 방출하는 것이다. 또는 (고정 자본을 제외하고) 생산 규모를 2배로 증대시키는 방안도 있다. , 동일한 투하 자본 900원을 가지고 생산 과정을 2배 규모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생산 자본의 유동적 요소들 가격이 1/2만큼 등귀한다면, 매주 100원이 아닌 150, 따라서 900원이 아닌 1,350원의 투하 자본이 필요하다. 종전과 동일한 규모로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450원의 추가 자본이 요구되며, 이는 화폐 시장의 상황 여하에 따라 추가 자본에 정비례하는 압박을 화폐 시장에 가하게 된다. 화폐 시장이 일체의 가용 자본을 이미 대부하였다면, 가용 자본에 대한 격렬한 경쟁이 일어난다. 이 자본의 일부가 유휴 상태에 있다면, 그 부분은 활용된다.

 

셋째로, 생산 규모와 회전 속도가 불변이고, 유동적 생산 자본 요소들의 가격 역시 불변이지만, 사업 X의 생산물 가격이 등락하는 경우를 고려한다. 사업 X가 공급하는 상품의 가격이 하락한다면, 이 사업이 지속적으로 유통에 투입하는 600원의 상품 자본 가격은 예를 들어 500원으로 하락한다. 이에 따라 투하 자본 가치의 1/6은 유통 과정에서 환류하지 못하고 상실된다 (상품 자본에 포함된 잉여 가치는 여기에서 제외). 그러나 생산 요소들의 가치 또는 가격은 불변이므로, 500원의 환류액은 생산 과정에서 계속 사용되던 600원의 자본 중 5/6만을 보충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생산을 동일한 규모로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100원의 추가적 화폐 자본이 지출되어야 한다.

 

반대로, 사업 X의 생산물 가격이 등귀한다면, 상품 자본의 가격은 600원에서 예를 들어 700원으로 상승한다. 이 가격 중 1/7, 100원은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생산 과정에 투하된 것도 아니며, 유통 과정에서 유입되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 요소들을 보충하는 데에는 600원만 필요하며, 따라서 100원이 풀려나게 된다.

 

상기한 첫째 경우에서 회전 시간이 단축 또는 연장되는 원인, 둘째 경우에서 원료와 노동력의 가격이 등락하는 원인, 셋째 경우에서 공급된 생산물의 가격이 등락하는 원인에 대한 연구는 현재 우리의 연구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는 연구되어야 한다.

 

1. 생산 규모가 불변이고, 생산 요소들과 생산물의 가격도 불변인데, 유통 시간 따라서 또 회전 시간이 변동한 경우

 

우리가 든 예의 전제에 따르면, 유통 시간이 단축된 결과 총 투하 자본은 1/9만큼 적게 필요하게 되고, 이에 따라 총 투하 자본은 900원에서 800원으로 축소되며 100원의 화폐 자본이 빠져나간다.

 

사업 X는 여전히 600원이라는 동일한 가치를 지닌 6주간의 동일한 생산물을 공급한다. 작업은 연중 중단 없이 진행되므로, 이 기업은 51주간 5,100원의 가치를 가진 동일한 양의 생산물을 공급한다. 따라서 이 기업이 유통에 투입하는 생산물의 양과 가격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생산물을 시장에 방출하는 조건들에도 변동이 없다. 그럼에도, 100원이 풀려나는 것은, 유통 시간 단축의 결과 종전에 900원의 투하 자본으로 완성되었던 생산 과정이 이제는 다만 800원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 풀려나는 100원의 자본은 화폐 자본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투하 자본 중 항상 화폐 자본의 형태로 기능해야 하는 부분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투하 유동 자본 (600) 4/5(480)는 항상 생산 재료에 지출되고, 1/5(120)는 임금으로 투하된다고 가정한다. 그러면 매주 80원은 생산 재료에, 20원은 임금에 투하된다. 따라서 자본 (300)도 마찬가지로 생산 재료를 위한 4/5(240)와 임금을 위한 1/5(60)으로 분할되어야 한다.

 

임금에 투하되는 자본은 항상 화폐 형태로 투하되어야 한다. 600원의 가치액을 가진 상품 생산물이 판매되어 화폐 형태로 재전환되자마자, 그 중 480원은 생산 재료(생산용 재고)로 전환될 수 있지만, 120원은 6주분의 임금 지불에 충당하기 위해 화폐 형태를 유지한다. 120원은 600원의 환류 자본 중 항상 화폐 자본의 형태로 갱신되고 보충되어야 하는, 곧 투하 자본 중 화폐 형태로 기능하는 부분으로 항상 최소한으로 존재해야 한다.

 

이제 주기적으로 3주간 풀려나는 300(생산용 재고를 위한 240원과 임금을 위한 60원으로 분할됨) 중에서 회전 시간 단축으로 인해 100원이 화폐 자본의 형태로 회전 원리(메커니즘)에서 완전히 끌려나간다고 가정한다면, 100원의 화폐 자본은 어디에서 유래한 화폐인가.

 

이 중 1/5(임금 지불을 위한 20)만이 회전 내부에서 주기적으로 풀려나는 화폐 자본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나머지 4/5(80)는 이미 동일한 가치의 추가적인 생산용 재고로 전환되어버린 상태이다. 이 추가적인 생산용 재고는 어떤 방식으로 화폐로 전환되며, 이 전환을 위한 화폐는 어디에서 마련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유통 시간이 단축되면, 앞서 언급된 600(환류된 자본) 중 생산용 재고로 재전환되는 금액은 480원이 아닌 400원이 된다 (이는 300원 중 100원이 남아돌고, 100원의 4/580원이 이미 생산용 재고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80원은 화폐 형태로 유지되어, 임금 지불을 위한 20원과 합쳐져 빠져나가는 자본 100원을 형성한다. 100원은 600원의 상품 자본 판매로부터 유통에서 유입된 것이며, 임금과 생산 요소들로 재투하되지 않기 때문에 이제 유통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화폐 형태로 존재하는 이 100원은 그것이 최초 유통에 투입되었을 때와 동일한 형태로 다시 존재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900원의 화폐가 생산용 재고와 임금에 투하되었다. 동일한 생산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이제는 800원만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화폐 형태로 풀려난 100원은 이제 투자처를 구하는 새로운 화폐 자본을, 곧 화폐 시장의 새로운 구성 부분을 이룬다.

 

물론 종전에도 이 100원은 주기적으로 풀려난 화폐 자본의 형태, 곧 추가적 생산 자본의 형태로 있었으나, 그때에는 이 잠재적 상태 그 자체는 생산 과정의 수행을 위한 조건이자 생산 과정 연속을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이제는 이 100원은 생산 과정의 수행을 위해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새로운 화폐 자본으로 화폐 시장의 한 구성 부분을 형성한다. 비록 그것이 현재 존재하는 사회적 화폐량의 추가적 요소를 이루지도 않으며 (사업 개시 당시에 이미 있었고, 사업으로부터 유통에 투입된 것이기 때문), 새로이 축적된 퇴장 화폐를 이루지도 않지만.

 

100원은 투하 화폐 자본 중 동일한 사업에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부분이므로, 사실상 유통에서 빠져나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는 오직 상품 자본이 화폐 전환 그리고 이 화폐가 생산 자본으로 전환, 곧 단순 상품 유통(C´ - M C) 과정이 1주만큼 빨라지고, 그 과정에서 활동하는 화폐의 유통 속도가 그만큼 증가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데에 지나지 않는다. 100원이 유통에서 빠져나온 것은, 그것이 자본 X의 회전을 위해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하 자본이 사용자의 소유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 자본이 차입된 것이라 하더라도 사태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유통 시간 단축에 따라 그는 900원이 아닌 800원의 차입 자본만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100원이 대부자에게 반환되면, 이는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00원의 새로운 화폐 자본을 형성하게 되나, 다만 X의 수중에서가 아니라 Y의 수중에서 기능하게 된다. 더욱이, 자본가 X480원의 가치를 가진 생산 재료를 외상으로 얻고, 그 자신이 화폐로 투하해야 할 것은 임금을 위한 120원뿐이었다고 가정한다면, 이제 그는 외상으로 구입해야 할 생산 재료를 80원만큼 줄이고 (따라서 이 80원만큼의 생산 재료는 외상을 주는 자본가에게 추가적 상품 자본을 이루게 된다), 임금으로 지불할 화폐를 20원만큼 화폐로 빠져나가게 할 수 있다.

 

이제 추가적인 생산용 재고는 1/3만큼 감소되었다. 종전에는 추가 자본 (300)4/5, 240원이었으나, 지금은 160(200원의 4/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3주간분이 아닌 2주간분의 추가적 재고에 해당한다. 그 재고는 이제 3주마다가 아닌 2주마다 갱신되며, 갱신되는 물량도 3주분이 아닌 다만 2주분이다. 따라서 예를 들어, 면화 시장에서 구입이 더 자주, 더 소량으로 반복된다. 생산물(면사)의 양은 종전과 같으므로, 동일한 양의 면화가 시장에서 조달되지만, 조달되는 시기의 배분이 달라지고 더 자주 끌려나오게 된다.

 

에컨대, 처음에 매 3개월마다 이루어지던 생산용 재고의 갱신 기간이 그 뒤 2개월로 단축되었다고 가정하고, 연간 면화 소비가 1,200상자라고 가정한다. 이 경우, 면화 상인의 판매량과 재고량은 다음과 같다.

 

3개월 주기(종전)의 경우:

 

· 11일 판매량 300상자, 잔여 재고량 900상자

· 41일 판매량 300상자, 잔여 재고량 600상자

· 71일 판매량 300상자, 잔여 재고량 300상자

· 101일 판매량 300상자, 잔여 재고량 0상자

 

그런데 2개월 주기(단축 후)의 경우:

 

· 11일 판매량 200상자, 잔여 재고량 1,000상자

· 31일 판매량 200상자, 잔여 재고량 800상자

· 51일 판매량 200상자, 잔여 재고량 600상자

· 71일 판매량 200상자, 잔여 재고량 400상자

· 91일 판매량 200상자, 잔여 재고량 200상자

· 111일 판매량 200상자, 잔여 재고량 0상자

 

따라서 (면화 상인이) 면화에 투하한 화폐는 1개월 늦게, 10월이 아닌 11월에야 비로소 완전히 환류된다. 유통 시간 단축과 그에 따른 회전 시간 단축의 결과, 투하 자본의 1/9, 100원이 화폐 자본의 형태로 빠져나간다고 하면, 100원이 주 임금 지불을 위한 화폐 자본 20원과 1주분의 생산용 재고로 있었던 80원으로 구성될 경우, 공장주 측에서는 과잉 생산용 재고가 80원만큼 감소하고, 이에 대응하여 면화 상인 측에서는 상품 재고가 80원만큼 증가한다. 동일한 면화가 생산용 재고로 공장주의 창고에 놓여 있는 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그것이 상품으로 면화 상인의 창고에 놓여 있는 시간은 연장된다.

 

앞서 사업 X에서 유통 시간 단축은 X가 상품을 더 빨리 판매하거나 외상 판매 시 지불 기한 단축이 발생한다고 가정하였다. 따라서 이 단축은 상품 판매 시간 단축, 곧 상품 자본이 화폐 자본으로 전환되는 유통 과정의 제1단계 판매 (C´-M) 단축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 단축은 유통 과정의 제2단계 구매(M-C) 단축, 곧 자본가 X에게 유동 자본의 생산 요소들을 공급하는 Y, Z 등의 자본의 노동 기간이나 유통 시간 단축에서도 발생한다.

 

예컨대, 면화나 석탄 등이 생산지 또는 집산지로부터 자본가 X의 공장까지 종래의 수송 수단으로 3주가 걸린다고 하면, 새로운 생산용 재고가 도착할 때까지 X가 보유해야 할 생산용 재고는 최소한 3주분이어야 한다. 면화·석탄은 운송 중에는 생산 수단으로 기능할 수 없다. 그 기간 동안 그것들은 운수업과 그에 투하된 자본의 노동 대상이며, 석탄 생산자·면화 상인에게는 유통 중인 상품 자본이다.

 

이제 개량된 수송 수단으로 운송 기간이 2주로 단축된다고 가정한다. 그러면 생산용 재고는 3주분에서 2주분으로 감소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재고를 위해 투하되었던 80원의 추가 자본이 풀려나며, 임금을 위한 20원의 추가 자본도 풀려난다. 이는 600원의 자본이 1주 더 일찍 회전을 끝내고 환류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예를 들어 원료를 제공하는 자본의 노동 기간이 단축된다면 (이에 대한 예는 앞 장들에서 다루었다), 그 결과 원료를 더 빨리 갱신할 여지가 생긴다. 이러한 경우에도 생산용 재고는 감소될 수 있으며, 한 갱신기에서 다음 갱신기까지의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반대로, 유통 시간과 그에 따른 회전 시간이 연장된다면, 추가 자본의 투하가 요구된다. 자본가가 추가 자본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 추가 자본은 어떤 형태로든 화폐 시장 자본의 일부로 투하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를 이용하려면 종래의 형태에서 풀려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식을 판매하거나 예금을 인출해야 하며, 이 경우, 화폐 시장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본가는 추가 자본을 차입해야 한다. 추가 자본 중 임금에 필요한 부분은 표준적인 조건에서 항상 화폐 자본으로 투하되어야 하므로, 자본가 X는 그 부분만큼화폐 시장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게 된다. 생산 재료에 투하되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그가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경우에만 화폐 시장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게 된다.

 

그가 생산 재료를 외상으로 조달한다면, 화폐 시장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추가 자본이 화폐 자본으로 먼저 투하되지 않고 직접 생산용 재고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채권자가 X로부터 받은 어음을 화폐 시장에 직접 투입하여 할인한다면, 화폐 시장은 간접적으로, 곧 두 번째 주체로부터 영향을 받게 받게 된다. 그러나 채권자가 이 어음을 나중에 상환해야 하는 자신의 채무를 상환하는 데 사용한다면, 화폐 시장은 이 추가 투하 자본으로부터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2. 생산 재료의 가격이 변동하고 기타의 모든 조건이 불변인 경우

 

우리는 위에서 총자본 900원 중 4/5(720)는 생산 재료에, 1/5(180)는 임금에 투하한다고 가정하였다.

 

생산 재료의 가격이 1/2만큼 하락한다면, 6주간의 노동 기간을 위한 생산 재료에는 480원이 아닌 다만 240원이 필요하며, 추가 자본 에서는 240원이 아닌 다만 120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자본 600원에서 240(생산 재료) + 120(임금분) = 360원으로 축소되고, 자본 300원에서 120(생산 재료) + 60(임금분) = 180원으로 축소된다. 총자본은 900원으로부터 360+ 180= 540원으로 축소된다. 결과적으로, 360원이 빠져나간다.

 

이 빠져나간 화폐 자본(현재 활용되지 않아 화페 시장에서 투자처를 구하고 있는 화폐 자본)은 최초 투하된 화폐 자본 900원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부분은 그것이 주기적으로 재전환되는 생산 요소들의 가격 하락으로 말미암아 (기업이 종래의 규모로 계속되는 한) 과잉이 된 것이다.

 

이 가격 하락이 우연한 사정들(대풍작, 과잉 공급 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원료를 제공하는 부문의 생산력 상승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이 화폐 자본은 화폐 시장에 대한 절대적 추가분이 된다. 곧 일반적으로 화폐 자본의 형태로 가용 자본에 대한 절대적 추가분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화폐 자본은 더 이상 이미 사용되고 있는 자본의 필요한 구성 부분을 이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생산물 자체의 시장 가격이 변동하는 경우

 

생산물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자본의 일부가 상실되며, 따라서 새로운 화폐 자본의 투하로부터 보충되어야 한다. 판매자(자본가 X)의 이 손실은 구매자의 이득으로 상쇄될 수 있다. 직접적으로 상쇄되는 것은 생산물의 시장 가격이 오직 우연한 경기 변동으로 하락했다가 다시 표준적인 가격으로 상승하는 경우이다. 간접적으로 상쇄되는 것은 가치의 변동이 종전의 생산물에 반작용하여 가격을 하락시키고, 이 생산물이 생산 요소로 다시 다른 생산 분야에 투입되어 거기에서 그만큼 자본을 풀려나게 하는 경우이다. 두 경우 모두 X가 상실하고, 그 보충을 위해 화폐 시장을 압박하는 자본은 그의 동료 기업가들로부터 새로운 추가 자본으로 (화폐 시장에) 공급될 수 있다. 여기서는 다만 이전만이 일어날 뿐이다.

 

반대로, 생산물의 가격이 등귀하면, 투하되지 않았던 자본의 일부를 유통에서 얻는다. 이 자본 부분은 생산 과정에 투하된 자본의 유기적 구성 부분이 아니므로, 생산이 확대되지 않는다면 빠져나가는 화폐 자본이다.

 

여기서는 생산 요소들의 가격이 생산물이 상품 자본으로 시장에 등장하기 전에 이미 주어져 있다고 가정하였으나, 현실적인 가치 변동이 가격을 등귀시켰을 수도 있다. 가치 변동은 소급해서 작용하여 예를 들어, 원료의 가격을 그 뒤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료의 가치가 지금 상승하더라도 이 가치 상승은 이미 생산물에 들어가 있는 원료의 가치도 상승시켜, 기존 생산물의 가치도 상승시킨다.)

 

이 경우, 자본가 X는 상품 자본으로 유통하는 자신의 생산물과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생산용 재고로부터 이득을 얻게 된다. 이 이득은 생산 요소들의 가격 등귀로 말미암아 필요하게 된 추가 자본(사업을 이전과 동일하게 운영하는 경우 필요함)을 그에게 제공할 수 있다.

 

또는 가격 등귀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 자본가 측의 추가 자본 필요액은 다른 자본가 측의 풀려난 자본일 수 있다 (후자의 생산물이 전자의 생산 요소를 구성하는 정도에 따라). , 전자의 손실이 후자의 이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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