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개발이 가린 자본

 

강남 부근 계룡 마을 일대가 화염에 휩싸였다. 화재 직후 주민들 사이에서는 도시 재개발을 겨냥한 의도적 사고가 아니냐는 무성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진위여부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나, 분명한 사실은 이번 참사가 주거지를 잃은 가난한 주민들에게 가혹한 생존의 압박을 안겼으며, 부실한 정부의 지원 속에서 이들이 삶의 터전을 복구하기란 요원하다는 점이다. 그것이 자연 발화이든 의도적 방하이든, 화재가 남긴 잔해 위로 인근 토지 점유권을 둘러싼 투기적 경쟁이 불씨처럼 번져나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참사를 단순한 우연적 재난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자본과 공공 권력이 주도하는 도시 재개발의 진행을 가속화하는 ‘입지 마련의 방편’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도시 재개발은 자본주의적 ‘강탈에 기반을 둔 축적’의 현대판 판본이다. 주민들에게 집과 땅은 생존을 지탱하는 ‘사용 가치’이지만, 국가와 자본가에게는 오직 시세 차익을 안겨줄 ‘교환 가치’의 상품일 뿐이다. 화재는 주민들의 삶이라는 사용 가치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소멸시켜, 자본이 토지를 완전한 교환 가치의 공간으로 전환하도록 돕는 가장 야만적인 촉매제로 작동한다.

 

발화의 원인이 자연 발화이든 투기 세력의 횡포이든, 그 결과는 언제나 토지주택공사(LH·SH)의 방관 속에 자본의 이익으로 귀속된다. 화재가 노후된 시설로 인한 자연 발화였다 하더라도, 공공 기관은 소방 기반 시설이 취약한 이 지역을 “어차피 철거할 땅”이라며 방치해 왔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나아가 화재로 주거지가 전소되면 공공 기관은 복구를 지연하고 ‘안전’을 명목으로 철거 속도를 오히려 가속화한다. 반대로 화재가 투기 세력의 소행이라면, 이는 저항력을 지닌 세입자들의 물리적 조직력과 점유의 증거를 하룻밤 사이에 지워버리고 명도 소송과 철거 비용을 극단적으로 단축하는 잔혹한 수단이 된다.


실제로 토지주택공사(LH·SH)는 공공의 가면을 쓰고 있으나, 실상은 자본을 위해 토지를 정비하고 지대를 창출하는 ‘공공 개발자’로 기능한다. 법적 수용권을 동원해 원주민의 땅을 강제 매수하고, 용도지역 변경 (종 상향)과 인허가로 막대한 개발 지대를 창출하지만 그 이익은 공공으로 환수되지 않는다. 대기업 건설사는 ‘책임준공’과 고액의 공사비를 독식하며 ‘상표 가치 이익’을 챙기고, 지주와 투기 세력은 지분 다툼을 벌인다. 따라서 수년간의 갈등과 화재를 거쳐 완성된 신축 대단지에 다시 돌아와 살 수 있는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고작 10%~20%에 불과하며, 대다수의 빈민은 도시 외곽으로 축출된다.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의 화재는 단순한 ‘사고’의 범주를 넘어선다. 위험과 주거 상실이라는 사회적 비용은 전적으로 가난한 세입자와 원주민에게 전가되는 반면, 그들이 밀려난 자리의 막대한 지대 상승분과 분양 이익은 정부의 행정적 묵인 속에서 대기업 자본과 투기 세력이 독점한다. 따라서 계룡 마을의 화재 참사는 자본주의 도시가 공간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주거 빈곤층을 지워버리는 구조적 폭력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민중’이 중심이 아닌 ‘자본의 지대’가 지배하는 도시 계획이 근본적으로 철회되지 않는 한, 개발의 그늘 속에서 터전을 잃는 비극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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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당의 전진과 노선적 차이에 대하여



전근대를 강타한 제국주의에 대해 숙고하는 동안 러시아 혁명에 대해 생각한다. 영국 공산당원이었던 에릭 홉스봄은 『제국의 시대』에서 역사적 고찰을 수행했으나, 당시 한국의 분단 체제가 안고 있던 깊은 균열 구조까지는 포착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반면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두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자 ‘필연적 귀결’이라 평한 바 있다. 봉건제에 매여 있던 인민이 체제 내 모순을 자각하기까지 각국 혁명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그러한 높은 경지의 역사적 도약은 결코 달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선을 현대로 불리는 오늘날로 돌려보자. 우리가 ‘신냉전’이나 ‘신제국주의’의 여파를 반복해서 거론할 때, 그것이 과거 부르주아지가 규정한 ‘공산주의자’ 혹은 ‘빨갱이’라는 낙인만큼이나 부르주아적 전쟁의 일부를 구성할 수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이는 오늘날 각국이 충돌하는 복합적인 경제 문제에서도 선명히 확인된다.

 

오늘날 금융 자본은 전 인민의 노동을 자본에 귀속시겨 체제의 지속성을 포장하고, 인민을 회유하며, 공포를 조장한다. 이는 아시아 내에서도 제국주의의 기생적 횡포가 극에 달한 채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한다. 혹자는 후기 소비에트를 두고 ‘국가자본주의’라 비판하지만, 이는 건재한 제국주의의 부상과 사회주의 공화국의 역사적 시도를 좌절시키려는 반동적 획책이었음을 간과한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사회주의노동당이 보여준 불충분한 강령적 토대야말로 우리 공산당과 갈라서는 지점이다. 그들의 행태야말로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나폴레옹 3세를 비판하며 언급한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구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우스운 책동일 것이다.

 

혁명이란 일련의 투쟁들이 모여서 나타난 결실이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는 깊이 있는 심층적 학습과 자국 인민들이 도달한 계급적 수준의 정당한 표출이어야 한다. 이에 비하면 오늘날의 현실은 얼마나 후퇴해 있는가! 부상하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진행성에 대해 직시하지 못하는 부르주아 어용학자들이야말로 노동 인민의 가장 큰 적이다.

 

소비에트의 전신이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 있음을 망각한 채, 곧바로 국제 무대에 진입하여 혁명만을 열망하는 사상적 주입은 과거 비판적으로 학습되지 못했던 사회혁명당(SR)의 오류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외주의자들은 당의 건설을 위한 합류 대신 국제적 단결의 범주에서 탈선하여 운동의 소국적인 태도를 정당화할 뿐이다.

 

러시아 혁명 당시 사회혁명당이 사회민주노동당과 척을 지며 보였던 반동적 경향과 마찬가지로, 운동의 단편적인 순간만을 수집해 이를 대의로 포장하는 국제사회주의노동당이야말로 당의 전진을 막아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러한 사상적 동요와 타협이 모여 제국주의가 공산주의자를 탄압할 빌미를 제공해 왔다, 그리고 이것이 체제 내 인민들이 스스로 자본의 굴레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저 정권 교체만을 바라는 통령 정부 내 ‘노동자’로 복무하는 데 만족하고, 해방을 위한 투쟁을 감행하지 못한 채 지연되고 있는 근본적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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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집필 배경

 


1947년, 스타인벡은 로버트 카파와 함께 소련을 직접 방문했다. 당시 미국은 반공주의가 점차 거세지던 시기였음에도, 그는 국가의 이념이 아닌 ‘소련 인민들의 삶’을 포착했다. 이 여정을 바탕으로 《러시아 일기 (1948)》를 출간하여 이념적 편견을 거두고, 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터전(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을 재건하며 살아가는 소련 대중을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그는 대공황기 미국의 자본주의가 소작농과 노동자들을 철저히 착취하고 파멸시키는 과정을 목격했다. 따라서 집단 농장이나 노동자 자치 형태를 시도하던 소련의 체계에서 자본주의 비인간성에 맞설 투쟁점을 찾고자 했다.

 

《분노의 포도》가 출간되었을 때, 미국 자본가들과 정치권은 스타인벡을 “공산주의 선전 작가”, “빨갱이”라며 거세게 비난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주와 오클라호마주의 일부 지자치에서는 “더럽고 욕설이 난무하며, 캘리포니아 농장주들을 모욕한다”는 이유로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대출 금지 처분했다.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도서관에서 불태우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반면 소련을 비롯한 진영에서는 그를 ‘미국 민중의 고통을 대변하는 양심적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가’로 높이 평가했다.

 

스타인벡은 냉전이 한창이던 1963년에도 소련과 동유럽을 다시 방문했다. 한편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를 쓰기 전,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이어지는 이주민들의 66번 국도를 직접 차를 타고 따라가며 그들의 비참한 삶을 몇 달 동안 취재했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과 대규모 모래바람 여파로 터전을 잃은 농민들의 투쟁을 그린 소설이다. 미국 대공황기 가뭄과 트랙터 중심의 대규모 기업농으로 인해 수많은 소작농이 토지에서 쫓겨났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정당방위 살인으로 복역 후 가석방되어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 톰 조드가 있으며, 그의 어머니 마 조드는 가족의 단합과 생존을 이끈다. 짐 케이시는 전직 목사 출신으로 이주민 노동자들의 현실을 깨닫고 노동 운동가로 변모한다. 샤론의 장미는 톰의 동생으로 임신 중인 젊은 여성이다.

 

가석방된 톰 조드는 술집 싸움에서 정당방위로 상대를 죽여 4년간 복역한 뒤 고향 오클라호마주 살리소로 돌아온다. 고향에 돌아오지만 가뭄과 은행의 토지 압류로 집이 황폐해진 것을 확인한다. 길에서 옛 마을의 전직 목사였던 짐 케이시와 재회하는데, 케이시는 목사직을 그만둔 상태였다. 고향 집은 이미 가뭄과 은행·대기업의 농지 압류로 파괴되어 있었다. 가족들은 이웃에 피신해 있었으며, ‘캘리포니아에 가면 일자리와 과수원이 풍부하다’는 전단지를 보고 낡은 허드슨 트럭을 개조해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나려던 차에 톰도 합류한다. 조드 일가는 낡은 트럭 한 대에 온 가족과 전 재산을 싣고 ‘젖과 굴이 흐르는 땅’이라 불리는 캘리포니아를 향해 66번 국도를 따라 고난의 여정을 떠난다.

 

조드 일가는 12명의 가족과 짐 케이시까지 총 13명이 트럭 한 대에 타고 서부로 이동한다. 고향을 떠나자마자 고된 여정 속에서 조부모가 고령과 가혹한 압박으로 길 위에서 세상을 떠나고, 톰의 형 노아는 강가에 남아 가족을 떠나며, 톰의 동생 샤론의 장미의 남편 코니마저 가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등 일부 가족도 이탈한다. 그러나 어렵게 도착한 캘리포니아는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농장주들은 전국에서 몰려든 30만 명이 넘는 이주 노동자(일명 ‘오키(Okies)’)들을 이용해 인건비를 깎고자 과잉 공급 사태를 악용했다. 그들은 임금을 형편없이 후려치고 악랄하게 착취했다. 가난한 이주민들은 밤마다 66번 국도변 임시 숙소에서 만나 음식을 나누고, 정부가 관리하는 수용소(위드패치 캠프)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치회를 구성해 경찰의 폭력 없이 위생적이고 인간적인 생활을 누리며 잠시 기대를 품기도 하지만, 일자리가 부족해 다시 민간 과수원 농장(후버빌)로 이동하게 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다시 유랑 노동길에 나선다.

 

복숭아 농장에서 일하던 중, 임금 인하에 반대하며 파업을 주도하던 짐 케이시를 만난다. 그러나 임금 인하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서 짐 케이시는 자경단원의 몽둥이에 맞아 숨을 거둔다. 케이시의 죽음에 분노한 톰은 자경단원을 살해하고 수배자가 된다. 톰은 숨어 지내다 어머니와 작별을 고한다. 톰은 케이시가 남긴 생각, “인간은 저마다의 영혼을 가진 것이 아니라, 커다란 하나의 영혼에 속해 있음”을 깨닫고 노동 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떠난다. 케이시의 뜻을 이어받아 굶주리고 억압받는 민중 편에 서서 싸우겠다고 약속하고 길을 나선다.

 

수확철이 끝나도 일거리가 없는데 비마저 쏟아져 폭우와 홍수로 수해를 입고, 거처가 물에 잠기게 된다. 영양실조로 사산한 아이를 출산한 샤론의 장미와 가족들은 피신한 헛간에서 굶어 죽어가던 한 노인과 마주한다. 샤론의 장미는 아이를 잃은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모유를 아무것도 먹지 못한 노인에게 물려 그의 목숨을 건진다.

 

소설은 톰 조드의 서사와 1930년대 미국 노동자 대중의 현실을 교차하는 구성으로 전개된다. 《분노의 포도》는 단순한 개별 가족의 수난사가 아닌, 자본주의 구조가 초래한 비극과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 계급의 의식 성장을 담아낸다. 스타인벡은 개별 농장주의 악함보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비인간성을 포착한다. 소설 초반에 은행은 “피를 마시고 돈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괴물”로 묘사된다. 소살 내 가장 유명한 묘사 중 하나는 과잉 생산으로 인한 식량 폐기 장면이다.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오렌지에는 석유가 뿌려진다. 굶주린 이들의 눈 속에 분노가 쌓여가고, 그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수확기를 향해 익어간다.”

 

이러한 자본의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앞에서 음식을 불태우는 대공황기 자본주의의 모순이 드러난다. 마 조드는 처음에는 “우리 가족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남의 아이들에게도 찌개를 나눠주고 길거리의 이웃을 품는다. 톰은 개인적인 복수나 생존을 도모하던 개인에서 전 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운동가로 거듭난다. 짐 케이시는 종교적 관념론에서 벗어나 현장 중심의 계급 의식으로 전환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위드패치 수용소에서는 경찰이나 자본가의 압제 없이 노동자들이 스스로 규율을 만들고 자치 위원회를 운영한다. 샤론의 장미는 결말에서 자신의 아이가 비록 죽었음에도 타인을 살려낸다. 이러한 장면들은 소설 전반에서 가장 강렬한 사회적 고발이 담긴 대목이자, 자본주의의 비인간성과 과잉 생산의 모순을 드러낸다.

 

짐 케이시는 자경당원에게 최후의 말을 남긴다.

 

“너희는 너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라. 너희는 사내아이 하나를 배고프게 만들고 있어. 너희는 너희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단 말이다.”

 

케이시는 자신을 공격하는 자경단원 개개인을 악마화하지 않고, 그들 역시 노동자를 억압하는 거대한 악순환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죽음은 방관자였던 톰 조드를 각성시켜, 개인의 생존에서 민중 전체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투사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도망자가 된 톰이 동굴 속에서 어머니 마 조드에게 마지막으로 작별하며 말을 남긴다.

 

“어디든 사람들이 굶주린 이들을 위해 싸우는 곳이 있다면, 나도 거기에 있을 거예요. …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음식을 먹고, 우리가 지은 집에서 살 때 … 나 역시 거기에 있을 거예요.”

 

이는 눈에 보이는 한 인간으로서의 톰 조드는 비록 사라지더라도, 압제받는 민중이 있는 모든 현장에 존재하겠다는 선언이다. 개인에서 민중 전체로 이어지는 순간이며, 톰 조드는 이러한 굵직한 인물들과의 생사를 겪으며 운동가로 성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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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가 올 때면 시동을 멈추곤 했다. 운전대를 잡기 전에 그녀의 생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소한 것까지 알고 있었기에, 찬 공기의 온도가 식고 있었다. 그녀에게 유창하게 말할 줄 몰라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말의 심연이 가라앉는다. 무작정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가끔 숨바꼭질의 술래 없는 당사자가 된다. 모두가 숨진 곳에서 바람이 조용히 떠나간다. 조금씩 힘을 잃어가는 당나귀가 가까운 마을에 목을 축이기까지, 숲속에서 피운 모닥불에는 나른한 그녀의 흐릿한 모습이 빠져나간다. 유골에 떨어진 먼지가 옷깃 사이로 떨어졌다.

 

학이 날자 모든 것이 고요했다. 폐허가 된 병원에 있을 때도, 인적이 없어 축축한 서커스 공연장의 관객석에 홀로 앉아 있을 때도, 무작정 마을 버스를 아무거나 탈 때도, 예정되지 않은 곳으로 훌쩍 떠났다. 이 썩은 세상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면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밀려오는 폭풍의 충동을 밀어내고,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가방에 이틀치 속옷만을 챙겨 운전대를 잡았다. 비는 도로를 축축하게 젖을만큼 개운하게 훑고 지나갔다. 폐차가 예정된 구식을 끌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바람의 언덕으로 향했다.


식장에 초대받지 못한 이가 등장할 때만큼 당혹스러운 일이 있을까. 떨리고 있었다. 긴 추위는 백지로 채운 폭설이 세차게 쏟아졌다. 하얗게 번진 얼룩처럼 형체를 잃은 그림자가 떠돌고 있다. 언젠가 화실에서 채색을 하던 중 무취의 향을 맡은 적이 있다. 독특했다. 눈 덮인 고속도로 위에는 폐차가 쌓였다.


그녀의 자서전에는 정작 그의 이름이 쓰여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글로는 차마 담을 수 없는 상심의 세월이 그림자처럼 번졌다. 마치 꺼져가는 불꽃을 억지로 되살려보려는 안간힘처럼, 그의 행방은 부재중 표시를 남겼다. 오늘 아침에는 아무도 깨워주지 않은 깊은 잠이 들었다. 웃고는 있지만 속이 타는 영정의 분신처럼 그는 사라졌다. 다시 시동이 걸렸다. 내내 고속도로를 달리고는 있지만, 딱히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 계속 바퀴만 굴리고 있다. 바퀴의 도르래가 심장 주위로 낙하할 때면 낭떠러지로 추락을 준비하는 중이다. 무신경함의 극치가 속도를 추월했다.


떨어진 차량은 절벽의 험준한 낭떠러지로 굴러갔다. 나뭇가지들이 날카롭게 송곳처럼 온몸을 찔렀다. 창백한 상태로 눈을 떴다. 마비가 되었지만 의식은 눈처럼 하얗게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폭설로 폐차가 쌓인 도로에는 창백한 사람들이 일제히 누워 있다. 그중에 하나였지만, 비바람처럼 세차게 몰아치는 폭설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근처에 천막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차량 안은 무척 적막했다. 창문 틈 사이로 거센 바람이 스며들었다. 뒤집힌 차량에 바람이 샜지만 막을 도리조차 없었다. 깜빡이만 똑딱거렸다. 멀리서 외투를 입은 한 아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는 뒤집힌 차량 위로 올라가 등유를 부었다. 차량에 불이 붙었다. 거센 불길이 폭설을 뚫고 있었다. 차량은 금세 불이 붙었다. 사방에서 경고등이 울렸다. 눈 덮인 폐차들 속에서 전조등이 깜빡거렸다.   


눈앞이 아득했다. 험준한 등고선을 따라 높은 시내가 보이는 곳까지 올라갔다. 물론 그녀는 이제 없었다. 잠잠해진 심연의 눈을 따라갔다. 그 언덕의 폭풍에 휩싸여 순식간에 행방불명이 된다면 그대로 바다가 인도해줄 것이라 여겼다. 차라리 그렇게 안도했다. 이제는 안중에도 없던 지하실의 계단으로 차츰 내려갔다. 구세계가 끝나듯, 여정에 지친 당나귀가 막사에서 잠을 청하고, 그는 바람의 언덕에서 숨을 거두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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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가면과 계급의 저울: 부르주아 법 체계와 국가의 본질

 

현사회에서 법판결의 결과를 두고 일희일비하는 현상 그 자체가 부르주아적 법 체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늘날 사법 체계는 단순히 국내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지배 계급과 정치가들이 자본의 기구를 옹호하기 위해 마련한 질서의 방편으로 작동한다. 그것이 단순히 시민 사회의 제도여서가 아니라, 그 제도적 한계의 본질이 ‘부르주아적’임을 증명하는 공표인 것이다. 사실상 오늘날 법 체계 전반이 자본주의적 정치 질서의 원천이 되었음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재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는 혁명적 투쟁의 경우에도, 그 성격이 단순한 시가지의 거리 시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민 간의 동의에 따른 심층적인 조직적·사회적 투쟁으로 확장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 법철학이 마주한 근본적인 한계는 자본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현대 법 체계(민법, 헌법, 상법 등)가 여전히 소유재산을 옹호하는 ‘부르주아적 특징’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형식적 권리상의 동등함 뒤에는 ‘실질적 계급적 격차’의 은폐가 숨겨져 있다. 현대 헌법과 민법은 “만인은 법 앞에 동등하다”며 모든 시민에게 동일한 법적 자격과 권리를 부여하지만, 이는 부르주아적 본질에서 하나의 함정에 불과하다. 마르크스가 《고타 강령 비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서로 가진 자산과 경제적 조건이 전혀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형식적 법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실질적인 구조적 종속을 고착화한다. 재벌 대기업과 일용직 노동자가 동일한 법적 기준으로 계약을 맺거나 소송을 벌일 때조차, 법은 형식상 ‘공정성’을 가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금력과 법률적 대응력이 압도적인 자본가 계급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각 역사적 시기마다 소유는 각각 다르게 발전해왔고 일련의 전적으로 다른 사회적 관계하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적 소유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부르주아적 생산의 모든 사회 관계를 설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소유를 독립된 관계, 고립된 범주, 영속적인 관념으로 정의하는 것은 단지 형이상학이나 법률학의 환상일 뿐이다.”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정치경제학의 형이상학」, 〈토지 소유 또는 지대〉

 

이처럼 소유 재산을 둘러싼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는 노동자가 예속화된 생산관계를 스스로의 역량으로 타파하는 것을 제한하며, 오히려 법률적 형식이라는 허구적 틀에 종속시킨다.

 

“형법의 조문은 기껏해야 근대 공업과 경쟁이 국민의회와 제국시대에는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음을 증명할 뿐이다.”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정치경제학의 형이상학」, 〈파업과 노동자 조합〉

 

사유재산권 (특히 생산 수단)의 절대적 보호는 현대 법 체계가 지닌 가장 큰 모순이다. 민법과 헌법은 사유재산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자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규정하여, 타인의 노동으로 창출된 잉여가치를 소유하고 축적하는 ‘생산 수단(공장, 토지, 자본 등)의 사유화’를 정당화하고 철저히 보호한다. 반면, 아무런 생산수단도 가지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노동력만을 팔아야 하는 대다수 무산 대중의 생존권과 주거권 등은 낙후된 사유재산권의 장벽 앞에서 빈번이 제약당한다.

 

‘계약의 자유’가 가진 함정 역시 이러한 노동의 상품화와 착취를 합법화하는 데 있다. 국가가 개인 간의 거래나 고용 계약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법의 대원칙 속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맺는 근로계약은 겉보기에는 강제성이 없는 ‘자발적 합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력을 팔아야만 하는 무산자의 구조적 궁핍함을 이용한 ‘강제된 계약’에 불과하다. 현대 법은 이러한 지배와 종속의 힘의 관계를 ‘개인 간의 자유로운 합의’로 포장하여 합법적인 착취 구조를 정당화한다

 

나아가 현대 법은 사회 구성원을 구체적인 계급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지 않고, 고립된 개인, 즉 자유롭고 합리적인 ‘추상적 법적 주체’로 상정한다. 인간을 계급적 조건(노동자, 자본가, 빈곤층 등)에서 떼어내어 단순히 권리를 가진 ‘개인’으로 규정하여,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구조적 불균등과 계급 격차를 개인의 능력이나 선택 문제로 전가해 버린다. 또한 공·사법의 이원화로 경제적 지배를 은폐한다. 헌법·형법 등의 ‘공법’ 영역과 민법 등의 ‘사법’ 영역을 엄격히 분리하여, 자본가들이 공장이나 기업 안에서 노동자를 지휘·감독하고 통제하는 경제적 권력 행사를 ‘사적 자치’라는 명목으로 국가의 규제와 민주적 통제로부터 보호한다. 즉, 자본주의 경제 내부에서 벌어지는 실질적인 독점과 지배를 ‘정치와 무관한 사적 영역’으로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에브게니 파슈카니스가 『법의 일반 이론과 마르크스주의』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법의 본질은 상품 교환”이다. 현대 법 체계 역시 시장에서 상품을 사고파는 자본주의적 교환 관계를 전제로 성립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보편적 정의와 인권’을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재생산하고 자본의 지배를 안정화하는 가장 정교한 이념적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에 맞서 소비에트 초기에는 노동 현장의 분쟁을 심리하는 ‘공장 재판소’의 개념이 실천적 구상으로 제시되었다. 고용주와 노동자가 직접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된 공장 재판소는 형식주의에 치우쳐 장기 소송이 만연한 일반 법원과 달리, 노동 현장의 실정과 고용주의 기만 수법(임금 체불, 부당 전근 등)을 정확히 이해하여 노동자에게 훨씬 공정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직접 법을 적용하고 집행 과정에 참여하여 국가 운영과 공공 문제에 독립적으로 주도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공장 재판수가 노동자들의 계급 의식을 고양시키고 정부 관료의 독점적 권위를 약화시킬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서류함에 처박아 두고 시행하지 않았다. 결국 공장 재판소와 같은 제도는 노동자에게 절설히 필요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체제 아래에서는 온전히 실현될 수 없으며, 언론과 집회의 자유, 그리고 노동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총체적 정치 투쟁의 일부로서만 쟁취될 수 있다.

 

지배 계급의 이익과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 문제를 왜곡해 온 부르주아 사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발전 단계를 되짚어봐야 한다. 레닌의 《국가에 대한 강연》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국가가 영원히 존재해 온 것은 아니다.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는 관습과 도덕적 권위가 사회를 유지했을 뿐, 타인을 영구적으로 지배하는 강제력인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계급으로 분화되면서 노예 소유 사회에서는 노예 소유주가 노예를 억압하는 기계로, 봉건 사회에서는 영주가 농노를 예속하는 기계로 국가가 진화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역시 봉건제를 무너뜨린 자본가 계급이 ‘자유’와 ‘법 앞의 동등’을 표방하며 세운 국가이나, 그 실상은 사유재산과 임금노동 제도를 유지한 채 다수의 무산 대중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

 

이러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보통 선거와 의회주의를 수단 삼아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처럼 선전하지만, 자본의 힘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이는 허구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의 지배는 더욱 노골화되며, 국가는 계급 억압의 도구로 작동한다. 따라서 노동 계급은 부르주아 국가의 보편적 평등이라는 허항된 거짓말에 현혹되지 않고, 국가라는 강제력 기구를 장악하여 부르주아 권력을 전복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착취 구조를 완전히 철폐하고 계급이 사라진 사회가 도래할 때, 비로소 인간을 억압할 필요성이 소멸하여 국가라는 기구는 역사 속에서 고철 더미로 폐기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점 속에서 공표된 소비에트의 《법원에 관한 제1호 칙령》은 제정러시아 및 부르주아 임시정부의 사법 체계를 전면 해체하고 최초의 사회주의적 사법 기관을 구축하는 역사적 결단이었다. 제1조, 제3조로 기존 일반 법률 기관(지방법원, 항소법원, 상원 등)과 사법 관료주의 체계(수사관, 검사, 변호사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이어 제2조와 제4조에 따라 노동자·병사·농민 소비에트의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판사와 배심원으로 구성된 ‘인민 법원’을 설치하고, 검사와 변호인의 역할을 도덕적으로 청렴한 모든 인민이 수행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또한 기존 법률은 ‘혁명적 양심’ 및 ‘혁명적 권리관’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한시적으로 준수하게 했으며, 소비에트의 법령이나 당의 강령에 위배되는 구법은 철저히 무효화했다. 특히 제8조에 의거해 반혁명 행위, 폭리, 투기, 사보타주 등을 전담 재판할 ‘혁명재판소’를 설치하여 신생 소비에트 정권을 방어하고자 했다.

 

이 칙령은 부르주아 사법 기구를 단순히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부숴버리고, 인민의 사회적 참여와 ‘혁명적 양심’에 기반한 새로운 사법 체계를 세우겠다는 선언이었다. 현대의 법 체계가 사유재산 제도의 근본적 모순은 배제한 채 오직 돈이 오간 지엽적인 현상만을 문제 삼기에, 이에 맞서는 혁명적 투쟁의 필연성은 조르주 상드의 문구로 요약된다.

 

“전투냐, 죽음이냐; 피로 얼룩진 투쟁이냐 사멸이냐, 이것이야말로 냉혹하게 던져진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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