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가 올 때면 시동을 멈추곤 했다. 운전대를 잡기 전에 그녀의 생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소한 것까지 알고 있었기에, 잠깐 공기의 온도가 식었다. 유창하게 말할 줄 몰라 연신 고개만 끄덕이니 말의 심연이 가라앉고 있었다. 무작정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것이 숨바꼭질의 술래 없는 당사자가 된 까닭이다. 모두가 숨진 곳에서 바람이 떠나간다. 조금씩 힘을 잃어가는 당나귀가 가까운 마을에 목을 축이기까지, 숲속에서 피운 모닥불에 나른한 그녀의 흐릿한 모습이 빠져나간다. 유골에 떨어진 먼지가 옷깃 사이에 떨어졌다.
학이 날자 모든 것이 고요했다. 폐허가 된 병원에 있을 때도, 인적이 없어 축축한 서커스 공연장의 관객석에 앉아 있을 때도, 무작정 마을 버스를 아무거나 탈 때도, 예정되지 않은 곳으로 훌쩍 떠났다. 이 썩은 세상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면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밀려오는 폭풍의 충동을 밀어내고,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가방을 챙기고 이틀치 속옷만을 챙겨 운전대를 잡았다. 비는 바닥을 축축하게 젖을만큼 개운하게 훑고 지나갔다. 폐차가 예정된 구식을 끌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바람의 언덕으로 향했다.
식장에 초대받지 못한 이가 등장할 때만큼 당혹스러운 일이 있을까. 떨리고 있었다. 긴 추위에 백지로 채운 폭설이 세차게 쏟아졌다. 하얗게 번진 얼룩처럼 형체를 잃은 그림자가 떠돌고 있었다. 화실에서 채색을 하던 중 무취의 향을 맡은 적이 있다. 독특했다. 눈 덮인 고속도로 위에 폐차가 쌓였다.
그녀의 자서전에는 정작 그의 이름이 쓰여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글로는 차마 담을 수 없는 상심의 세월이 그림자처럼 번졌다. 마치 꺼져가는 불꽃을 억지로 되살려보려는 안간힘처럼, 그의 행방은 부재중 표시만 남겼다. 오늘 아침에는 아무도 깨워주지 않은 깊은 잠이 들었다. 웃고는 있지만 속이 타는 영정의 분신처럼 사라졌다. 다시 시동이 걸렸다. 내내 고속도로를 달리고는 있지만, 딱히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 계속 바퀴만 굴리고 있다. 바퀴의 도르래가 심장 주위로 낙하할 때면 낭떠러지로 추락을 준비하는 중이다.
눈앞이 아득했다. 험준한 등고선을 따라 높은 시내가 보이는 곳까지 올라갔다. 물론 그녀는 없었다. 잠잠해진 심연의 눈을 따라갔다. 그 언덕의 폭풍에 휩싸여 순식간에 행방불명이 된다면 그대로 바다가 인도해줄 것이라 여겼다. 차라리 그렇게 안도했다. 이제는 안중에도 없던 지하실의 계단으로 차츰 내려갔다. 구세계가 끝나고 있듯이, 여정에 지친 당나귀는 막사에서 잠을 청하고, 그는 바람의 언덕에서 숨을 거두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