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집필 배경

 


1947년, 스타인벡은 로버트 카파와 함께 소련을 직접 방문했다. 당시 미국은 반공주의가 점차 거세지던 시기였음에도, 그는 국가의 이념이 아닌 ‘소련 인민들의 삶’을 포착했다. 이 여정을 바탕으로 《러시아 일기 (1948)》를 출간하여 이념적 편견을 거두고, 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터전(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을 재건하며 살아가는 소련 대중을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그는 대공황기 미국의 자본주의가 소작농과 노동자들을 철저히 착취하고 파멸시키는 과정을 목격했다. 따라서 집단 농장이나 노동자 자치 형태를 시도하던 소련의 체계에서 자본주의 비인간성에 맞설 투쟁점을 찾고자 했다.

 

《분노의 포도》가 출간되었을 때, 미국 자본가들과 정치권은 스타인벡을 “공산주의 선전 작가”, “빨갱이”라며 거세게 비난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주와 오클라호마주의 일부 지자치에서는 “더럽고 욕설이 난무하며, 캘리포니아 농장주들을 모욕한다”는 이유로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대출 금지 처분했다.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도서관에서 불태우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반면 소련을 비롯한 진영에서는 그를 ‘미국 민중의 고통을 대변하는 양심적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가’로 높이 평가했다.

 

스타인벡은 냉전이 한창이던 1963년에도 소련과 동유럽을 다시 방문했다. 한편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를 쓰기 전,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이어지는 이주민들의 66번 국도를 직접 차를 타고 따라가며 그들의 비참한 삶을 몇 달 동안 취재했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과 대규모 모래바람 여파로 터전을 잃은 농민들의 투쟁을 그린 소설이다. 미국 대공황기 가뭄과 트랙터 중심의 대규모 기업농으로 인해 수많은 소작농이 토지에서 쫓겨났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정당방위 살인으로 복역 후 가석방되어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 톰 조드가 있으며, 그의 어머니 마 조드는 가족의 단합과 생존을 이끈다. 짐 케이시는 전직 목사 출신으로 이주민 노동자들의 현실을 깨닫고 노동 운동가로 변모한다. 샤론의 장미는 톰의 동생으로 임신 중인 젊은 여성이다.

 

가석방된 톰 조드는 술집 싸움에서 정당방위로 상대를 죽여 4년간 복역한 뒤 고향 오클라호마주 살리소로 돌아온다. 고향에 돌아오지만 가뭄과 은행의 토지 압류로 집이 황폐해진 것을 확인한다. 길에서 옛 마을의 전직 목사였던 짐 케이시와 재회하는데, 케이시는 목사직을 그만둔 상태였다. 고향 집은 이미 가뭄과 은행·대기업의 농지 압류로 파괴되어 있었다. 가족들은 이웃에 피신해 있었으며, ‘캘리포니아에 가면 일자리와 과수원이 풍부하다’는 전단지를 보고 낡은 허드슨 트럭을 개조해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나려던 차에 톰도 합류한다. 조드 일가는 낡은 트럭 한 대에 온 가족과 전 재산을 싣고 ‘젖과 굴이 흐르는 땅’이라 불리는 캘리포니아를 향해 66번 국도를 따라 고난의 여정을 떠난다.

 

조드 일가는 12명의 가족과 짐 케이시까지 총 13명이 트럭 한 대에 타고 서부로 이동한다. 고향을 떠나자마자 고된 여정 속에서 조부모가 고령과 가혹한 압박으로 길 위에서 세상을 떠나고, 톰의 형 노아는 강가에 남아 가족을 떠나며, 톰의 동생 샤론의 장미의 남편 코니마저 가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등 일부 가족도 이탈한다. 그러나 어렵게 도착한 캘리포니아는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농장주들은 전국에서 몰려든 30만 명이 넘는 이주 노동자(일명 ‘오키(Okies)’)들을 이용해 인건비를 깎고자 과잉 공급 사태를 악용했다. 그들은 임금을 형편없이 후려치고 악랄하게 착취했다. 가난한 이주민들은 밤마다 66번 국도변 임시 숙소에서 만나 음식을 나누고, 정부가 관리하는 수용소(위드패치 캠프)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치회를 구성해 경찰의 폭력 없이 위생적이고 인간적인 생활을 누리며 잠시 기대를 품기도 하지만, 일자리가 부족해 다시 민간 과수원 농장(후버빌)로 이동하게 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다시 유랑 노동길에 나선다.

 

복숭아 농장에서 일하던 중, 임금 인하에 반대하며 파업을 주도하던 짐 케이시를 만난다. 그러나 임금 인하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서 짐 케이시는 자경단원의 몽둥이에 맞아 숨을 거둔다. 케이시의 죽음에 분노한 톰은 자경단원을 살해하고 수배자가 된다. 톰은 숨어 지내다 어머니와 작별을 고한다. 톰은 케이시가 남긴 생각, “인간은 저마다의 영혼을 가진 것이 아니라, 커다란 하나의 영혼에 속해 있음”을 깨닫고 노동 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떠난다. 케이시의 뜻을 이어받아 굶주리고 억압받는 민중 편에 서서 싸우겠다고 약속하고 길을 나선다.

 

수확철이 끝나도 일거리가 없는데 비마저 쏟아져 폭우와 홍수로 수해를 입고, 거처가 물에 잠기게 된다. 영양실조로 사산한 아이를 출산한 샤론의 장미와 가족들은 피신한 헛간에서 굶어 죽어가던 한 노인과 마주한다. 샤론의 장미는 아이를 잃은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모유를 아무것도 먹지 못한 노인에게 물려 그의 목숨을 건진다.

 

소설은 톰 조드의 서사와 1930년대 미국 노동자 대중의 현실을 교차하는 구성으로 전개된다. 《분노의 포도》는 단순한 개별 가족의 수난사가 아닌, 자본주의 구조가 초래한 비극과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 계급의 의식 성장을 담아낸다. 스타인벡은 개별 농장주의 악함보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비인간성을 포착한다. 소설 초반에 은행은 “피를 마시고 돈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괴물”로 묘사된다. 소살 내 가장 유명한 묘사 중 하나는 과잉 생산으로 인한 식량 폐기 장면이다.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오렌지에는 석유가 뿌려진다. 굶주린 이들의 눈 속에 분노가 쌓여가고, 그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수확기를 향해 익어간다.”

 

이러한 자본의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앞에서 음식을 불태우는 대공황기 자본주의의 모순이 드러난다. 마 조드는 처음에는 “우리 가족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남의 아이들에게도 찌개를 나눠주고 길거리의 이웃을 품는다. 톰은 개인적인 복수나 생존을 도모하던 개인에서 전 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운동가로 거듭난다. 짐 케이시는 종교적 관념론에서 벗어나 현장 중심의 계급 의식으로 전환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위드패치 수용소에서는 경찰이나 자본가의 압제 없이 노동자들이 스스로 규율을 만들고 자치 위원회를 운영한다. 샤론의 장미는 결말에서 자신의 아이가 비록 죽었음에도 타인을 살려낸다. 이러한 장면들은 소설 전반에서 가장 강렬한 사회적 고발이 담긴 대목이자, 자본주의의 비인간성과 과잉 생산의 모순을 드러낸다.

 

짐 케이시는 자경당원에게 최후의 말을 남긴다.

 

“너희는 너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라. 너희는 사내아이 하나를 배고프게 만들고 있어. 너희는 너희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단 말이다.”

 

케이시는 자신을 공격하는 자경단원 개개인을 악마화하지 않고, 그들 역시 노동자를 억압하는 거대한 악순환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죽음은 방관자였던 톰 조드를 각성시켜, 개인의 생존에서 민중 전체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투사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도망자가 된 톰이 동굴 속에서 어머니 마 조드에게 마지막으로 작별하며 말을 남긴다.

 

“어디든 사람들이 굶주린 이들을 위해 싸우는 곳이 있다면, 나도 거기에 있을 거예요. …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음식을 먹고, 우리가 지은 집에서 살 때 … 나 역시 거기에 있을 거예요.”

 

이는 눈에 보이는 한 인간으로서의 톰 조드는 비록 사라지더라도, 압제받는 민중이 있는 모든 현장에 존재하겠다는 선언이다. 개인에서 민중 전체로 이어지는 순간이며, 톰 조드는 이러한 굵직한 인물들과의 생사를 겪으며 운동가로 성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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