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가면과 계급의 저울: 부르주아 법 체계와 국가의 본질

 

현사회에서 법판결의 결과를 두고 일희일비하는 현상 그 자체가 부르주아적 법 체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늘날 사법 체계는 단순히 국내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지배 계급과 정치가들이 자본의 기구를 옹호하기 위해 마련한 질서의 방편으로 작동한다. 그것이 단순히 시민 사회의 제도여서가 아니라, 그 제도적 한계의 본질이 ‘부르주아적’임을 증명하는 공표인 것이다. 사실상 오늘날 법 체계 전반이 자본주의적 정치 질서의 원천이 되었음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재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는 혁명적 투쟁의 경우에도, 그 성격이 단순한 시가지의 거리 시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민 간의 동의에 따른 심층적인 조직적·사회적 투쟁으로 확장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 법철학이 마주한 근본적인 한계는 자본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현대 법 체계(민법, 헌법, 상법 등)가 여전히 소유재산을 옹호하는 ‘부르주아적 특징’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형식적 권리상의 동등함 뒤에는 ‘실질적 계급적 격차’의 은폐가 숨겨져 있다. 현대 헌법과 민법은 “만인은 법 앞에 동등하다”며 모든 시민에게 동일한 법적 자격과 권리를 부여하지만, 이는 부르주아적 본질에서 하나의 함정에 불과하다. 마르크스가 《고타 강령 비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서로 가진 자산과 경제적 조건이 전혀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형식적 법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실질적인 구조적 종속을 고착화한다. 재벌 대기업과 일용직 노동자가 동일한 법적 기준으로 계약을 맺거나 소송을 벌일 때조차, 법은 형식상 ‘공정성’을 가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금력과 법률적 대응력이 압도적인 자본가 계급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각 역사적 시기마다 소유는 각각 다르게 발전해왔고 일련의 전적으로 다른 사회적 관계하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적 소유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부르주아적 생산의 모든 사회 관계를 설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소유를 독립된 관계, 고립된 범주, 영속적인 관념으로 정의하는 것은 단지 형이상학이나 법률학의 환상일 뿐이다.”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정치경제학의 형이상학」, 〈토지 소유 또는 지대〉

 

이처럼 소유 재산을 둘러싼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는 노동자가 예속화된 생산관계를 스스로의 역량으로 타파하는 것을 제한하며, 오히려 법률적 형식이라는 허구적 틀에 종속시킨다.

 

“형법의 조문은 기껏해야 근대 공업과 경쟁이 국민의회와 제국시대에는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음을 증명할 뿐이다.”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정치경제학의 형이상학」, 〈파업과 노동자 조합〉

 

사유재산권 (특히 생산 수단)의 절대적 보호는 현대 법 체계가 지닌 가장 큰 모순이다. 민법과 헌법은 사유재산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자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규정하여, 타인의 노동으로 창출된 잉여가치를 소유하고 축적하는 ‘생산 수단(공장, 토지, 자본 등)의 사유화’를 정당화하고 철저히 보호한다. 반면, 아무런 생산수단도 가지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노동력만을 팔아야 하는 대다수 무산 대중의 생존권과 주거권 등은 낙후된 사유재산권의 장벽 앞에서 빈번이 제약당한다.

 

‘계약의 자유’가 가진 함정 역시 이러한 노동의 상품화와 착취를 합법화하는 데 있다. 국가가 개인 간의 거래나 고용 계약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법의 대원칙 속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맺는 근로계약은 겉보기에는 강제성이 없는 ‘자발적 합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력을 팔아야만 하는 무산자의 구조적 궁핍함을 이용한 ‘강제된 계약’에 불과하다. 현대 법은 이러한 지배와 종속의 힘의 관계를 ‘개인 간의 자유로운 합의’로 포장하여 합법적인 착취 구조를 정당화한다

 

나아가 현대 법은 사회 구성원을 구체적인 계급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지 않고, 고립된 개인, 즉 자유롭고 합리적인 ‘추상적 법적 주체’로 상정한다. 인간을 계급적 조건(노동자, 자본가, 빈곤층 등)에서 떼어내어 단순히 권리를 가진 ‘개인’으로 규정하여,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구조적 불균등과 계급 격차를 개인의 능력이나 선택 문제로 전가해 버린다. 또한 공·사법의 이원화로 경제적 지배를 은폐한다. 헌법·형법 등의 ‘공법’ 영역과 민법 등의 ‘사법’ 영역을 엄격히 분리하여, 자본가들이 공장이나 기업 안에서 노동자를 지휘·감독하고 통제하는 경제적 권력 행사를 ‘사적 자치’라는 명목으로 국가의 규제와 민주적 통제로부터 보호한다. 즉, 자본주의 경제 내부에서 벌어지는 실질적인 독점과 지배를 ‘정치와 무관한 사적 영역’으로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에브게니 파슈카니스가 『법의 일반 이론과 마르크스주의』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법의 본질은 상품 교환”이다. 현대 법 체계 역시 시장에서 상품을 사고파는 자본주의적 교환 관계를 전제로 성립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보편적 정의와 인권’을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재생산하고 자본의 지배를 안정화하는 가장 정교한 이념적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에 맞서 소비에트 초기에는 노동 현장의 분쟁을 심리하는 ‘공장 재판소’의 개념이 실천적 구상으로 제시되었다. 고용주와 노동자가 직접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된 공장 재판소는 형식주의에 치우쳐 장기 소송이 만연한 일반 법원과 달리, 노동 현장의 실정과 고용주의 기만 수법(임금 체불, 부당 전근 등)을 정확히 이해하여 노동자에게 훨씬 공정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직접 법을 적용하고 집행 과정에 참여하여 국가 운영과 공공 문제에 독립적으로 주도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공장 재판수가 노동자들의 계급 의식을 고양시키고 정부 관료의 독점적 권위를 약화시킬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서류함에 처박아 두고 시행하지 않았다. 결국 공장 재판소와 같은 제도는 노동자에게 절설히 필요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체제 아래에서는 온전히 실현될 수 없으며, 언론과 집회의 자유, 그리고 노동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총체적 정치 투쟁의 일부로서만 쟁취될 수 있다.

 

지배 계급의 이익과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 문제를 왜곡해 온 부르주아 사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발전 단계를 되짚어봐야 한다. 레닌의 《국가에 대한 강연》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국가가 영원히 존재해 온 것은 아니다.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는 관습과 도덕적 권위가 사회를 유지했을 뿐, 타인을 영구적으로 지배하는 강제력인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계급으로 분화되면서 노예 소유 사회에서는 노예 소유주가 노예를 억압하는 기계로, 봉건 사회에서는 영주가 농노를 예속하는 기계로 국가가 진화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역시 봉건제를 무너뜨린 자본가 계급이 ‘자유’와 ‘법 앞의 동등’을 표방하며 세운 국가이나, 그 실상은 사유재산과 임금노동 제도를 유지한 채 다수의 무산 대중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

 

이러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보통 선거와 의회주의를 수단 삼아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처럼 선전하지만, 자본의 힘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이는 허구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의 지배는 더욱 노골화되며, 국가는 계급 억압의 도구로 작동한다. 따라서 노동 계급은 부르주아 국가의 보편적 평등이라는 허항된 거짓말에 현혹되지 않고, 국가라는 강제력 기구를 장악하여 부르주아 권력을 전복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착취 구조를 완전히 철폐하고 계급이 사라진 사회가 도래할 때, 비로소 인간을 억압할 필요성이 소멸하여 국가라는 기구는 역사 속에서 고철 더미로 폐기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점 속에서 공표된 소비에트의 《법원에 관한 제1호 칙령》은 제정러시아 및 부르주아 임시정부의 사법 체계를 전면 해체하고 최초의 사회주의적 사법 기관을 구축하는 역사적 결단이었다. 제1조, 제3조로 기존 일반 법률 기관(지방법원, 항소법원, 상원 등)과 사법 관료주의 체계(수사관, 검사, 변호사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이어 제2조와 제4조에 따라 노동자·병사·농민 소비에트의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판사와 배심원으로 구성된 ‘인민 법원’을 설치하고, 검사와 변호인의 역할을 도덕적으로 청렴한 모든 인민이 수행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또한 기존 법률은 ‘혁명적 양심’ 및 ‘혁명적 권리관’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한시적으로 준수하게 했으며, 소비에트의 법령이나 당의 강령에 위배되는 구법은 철저히 무효화했다. 특히 제8조에 의거해 반혁명 행위, 폭리, 투기, 사보타주 등을 전담 재판할 ‘혁명재판소’를 설치하여 신생 소비에트 정권을 방어하고자 했다.

 

이 칙령은 부르주아 사법 기구를 단순히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부숴버리고, 인민의 사회적 참여와 ‘혁명적 양심’에 기반한 새로운 사법 체계를 세우겠다는 선언이었다. 현대의 법 체계가 사유재산 제도의 근본적 모순은 배제한 채 오직 돈이 오간 지엽적인 현상만을 문제 삼기에, 이에 맞서는 혁명적 투쟁의 필연성은 조르주 상드의 문구로 요약된다.

 

“전투냐, 죽음이냐; 피로 얼룩진 투쟁이냐 사멸이냐, 이것이야말로 냉혹하게 던져진 문제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