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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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내가 생각하기에 추상적 개념과 도형, 그리고 공식에 너무 지나치게 비중이 실려 있는 논란의 쟁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견해들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이자 두드러진 대표적 견해 중 하나를 검토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바로 니콜라이-온의 견해 말이다.

 

그는 러시아 자본주의의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 국내 시장의 축소와 농민들의 구매력 감소라 여기고 있다. 그는 수공업의 자본주의화가 가정에서의 제품 생산을 몰아내 농민들이 자신의 의복을 사 입어야 하게 됐다고 말한다. 의복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농민은 자신의 경작 면적 확대에 나서고, 분여지로는 충분치 않게 되자 합리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농사를 확대하게 되었다. 그는 토지를 빌린 대가로 말도 안 되는 돈을 지불하게 되었고 결국 몰락해갔다.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판 자본주의는 인민경제1891년의 끔찍한 위기로 이끌었고 …… 더 이상 발 디털 토대가 사라지고 똑같은 경로를 따라 계속 걸어갈 수없게 되자 그대로 멈춰 서버렸다. “우리가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인민들의 시스템에서 멀어 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러시아는 이제 …… 당국이 마을 공동체에 대규모 생산을 주입시키라는 명령을 내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러시아 인민주의자들이 보기에) “새롭기 그지없는이론은 어디에 그 모순이 있는 걸까?

 

니콜라이-온은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의 생산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는 그 법칙을 아주 잘 알고 있고, 심지어는 그 법칙이 이 나라에서도 작동되고 있다고 언급하기까지 했다.(186, 203~4) 그래서 스스로의 모순에 대해 자신을 꾸짖을 줄 아는 그의 능력에 비춰 볼 때 그가 그 법칙을 깜빡한 탓이 크겠지만(123쪽 참조), 설령 그가 모순을 바로잡는다 하더라도 (위에서 인용한)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전혀 바뀌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그의 이론의 불합리성은 이 나라·자본주의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의 부족과 순전히 허구에 기초해 주장을 펴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니콜라이-온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집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을 몰아낸으로써 몰락하게 된 농민층, 내부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마치 한 사람처럼 반응하는 동질적인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생산 단위들(농가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러시아에서는 상품 생산이 생겨날 수 없었을 테고, 실제로 각각의 농민들이 이웃들과 별개로 독자적인 농업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는 그 자신만이 끊어질 위험을 무릅쓴 채 생산물의 생산을 담당하고, 그것을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만든 다. 그는 자기 책임 아래 시장과의 관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농민층사이에 어떠한 문제들이 놓여 있는 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니콜라이-온은 돈이 절실해진 농민은 자신의 경작 면적을 과도하게 늘림으로써 몰락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경작 면적을 늘릴 수 있는 건 오로지 잘사는 농민들뿐이다. 뿌릴 종자와 충분한 가축과 농기구를 가진 이들 말이다. 그런 농민들(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그들은 소수다)은 실제로 자신의 경작 면적을 늘리고, 고용된 노동자들의 도움 없이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농사를 확대한다. 하지만 다수의 농민들은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의 농사를 확대할 수가 없다. 가축도, 충분한 생산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런 농민들은 외부 고용”, 즉 생산물이 아닌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으로 가져간다. 당연히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하다 보니 농사는 더욱더 쇠락하고, 결국 그는 자신의 분여지를 지역 사회의 부유한 이웃 농민에게 임대해주게 된다. 물론 그 이웃 농민은 자신이 빌린 분여지의 생산물을 직접 소비하지 않고 시장에 내다판다. 이렇게 우리는 인민의 빈곤화와 자본주의의 성장, 그리고 시장의 확대를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늘어난 농사에 눈코 틀 새 없이 바빠진 부유한 농민은 더 이상 종전과 같이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 생산에 임하지 않는다. 신발을 예로 들어보자. 이제 그는 신발을 구입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 가난해진 농민 역시도 신발을 사 신여야 하긴 마찬가지다. 그 농민은 신발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자신의 농장에서 그 신발을 생산할 수는 없다. 그렇게 신발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고, 혁신적인 경향의 농업을 통해 V. V. 선생의 영혼에 감동을 안겨주었던 그 진취적인 농민이 다량으로 생산한 곡물도 (시장에) 공급된다. 인근의 수제 신발 제조업자들은 방금 서술한 농업 종사자들과 똑같은 입장, 즉 쇠락해가는 농장에서 생산되는 곡물이 너무 적어 그걸 구입하려면 생산을 확대해야만 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물론 여기서도 저축을 보유한 수공업자, 즉 소수를 대표하는 사람들만 생산을 확대할 수 있다. 그는 노동자들을 고용하거나, 집안일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맡길 수가 있다. 하지만 다수의 수공업자들은 자신의 작업장을 늘릴 생각조차 품을 수가 없다. 그들은 돈을 가진 원청업자로부터 일감을 얻을 수있다는 사실, 즉 자신이 가진 유일한 상품인 노동력을 구매할 사람을 찾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다시 우리는 인민의 빈곤화와 자본주의의 성장, 시장의 확대를 목격하게 되고, 사회적 분업은 새롭게 탄력을 받아 한층 더 발전하고 강화된다. 이런 움직임의 끝은 어디일까? 누구도 거기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에 대해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결국 그건 중요치가 않다. 중요한 건 상품경제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성장이라는, 단일하고 살아있는 유기적 과정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시골 지역의 탈농민화는 이런 과정의 시작과 기원, 그 초기 단계들을 보여준다. 도시의 대규모 자본주의는 그 과정의 끝과 경향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그것들을 따로따로 서로 독립적으로 검토하려고 시도해보라. 당신의 주장은 전혀 들어맞지 않게 될 것이고, 인민의 빈곤화는 자본주의의 성장이든 둘 중 어떤 현상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 밑도 끝도 없는 주장들을 내놓으면서 그 과정을 설명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래서 물론 비판적 사고를 가진 개인의 발달된 도덕적 감각과 모순되는) 현상들에 대해 말도 안 된다거나 우연이다”, 또는 미해결 상태에 있다는 말만 남긴 채 갑자기 연구를 멈춰버린다.

 

따라서 실제로 미해결 상태에 있는것은 그들 자신의 주장들이 뿐인 것이다.

 

| 1893년 봄에 집필

1937년에 처음으로 불세비키21호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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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실제로 "시장 문제"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형(A 영역의 자본가들과 W 영역의 직접 생산자들 사이의 교환을 보여주는)과 표(6명의 생산자들의 자연경제가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에서 실증한 과정에 대한 인민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의 개념들을 비교해보는 게 최선이다. 만약 우리가 도형을 선택한다면, 아무런 해명도 얻을 수 없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일종의 "우연"에 해당되고, 자본주의의 출현은 "우리가 잘못된 경로를 선택"하거나 당국에 의해 "이식된" 때문인 것으로 되어버린다. 무슨 이유로 "대중은 빈곤해지는가"? 이 질문 역시 도형에 의해서는 답을 얻을 수 없으며, 인민주의자들은 대답 대신에 그 문제를 "신성한 체제"나 제대로 된 경로로부터의 이탈 같은 감상적인 문구로 처리해버리거나,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같이 지어내기 딱 좋은 헛소리를 잃어버린다. 자본주의를 해명할 능력의 부족과, 현실을 연구하고 해명하기보다는 유토피아를 선호하는 자세는 자본주의의 의의와 힘을 부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것은 마치 성장을 위한 기운을 끌어올 바탕이 없는 구제불능의 병약자와 같다. 그리고 만약 그가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을 생산함으로써17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의 상태가 무의미하고 거의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만큼만 개선될 수 있을 거라는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본주의의 기술적 발전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에게 부족한 건 바로 그러한 발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한다." 그 자본주의는 나라 전체를 포괄해야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의 보편적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표를 선택한다면, 자본주의의 발전이나 인민들의 빈곤화가 우연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사회적 분업에 기초한 상품 생산의 성장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현상들이다. 시장의 문제는 완전히 해소되는데, 시장이 다름아닌 분업과 상품 생산의 발현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 발전은 가능성(문건의 저자가 기꺼 입증한 게 이 정도다)으로서 뿐만 아니라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되는데, 사회적 경제가 분업과 상품 형태의 생산에 기초하는 순간 기술적 진보는 필시 자본주의의 강화와 심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겨난다. '우리는 왜 두 번째 견해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무슨 기준으로 그것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들 말이다. 그리고 그 답을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바로 동시대 러시아의 경제 현실에서 나타난 사실들에 의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표의 중심점은 상품에서 자본주의 경제로의 이행, 상품 생산자들이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로 분화되는 데 있다. 그리고 우리가 동시대 러시아의 사회·경제 현상들에 눈을 돌려본다면, 그 중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소생산자들의 분화다. 농민들을 예로 들어본다면, 한편에는 토지를 포기하고 경제적 자립을 상실한 채 포를레타리아로 변해가는 다수의 농민들이 있는 반면, 또 한편에서는 지속적으로 작물 면적을 확대하고 개량된 농업 방식을 받아들이는 농민들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농민들은 한편으로는 농장 재산(가축과 농기구)을 잃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개량된 농기구를 확보하고 기계 등을 조달하기 시작하고 있다(V. V.농민 농업에서의 진보적 경향들을 참조할 것).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분여지를 매각하거나 임대해주면서 토지를 포기해가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분여지를 임차하고 개인 소유 토지를 탐욕스럽게 사들이고 있다. 이 모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들이자 아주 오래 전에 기정사실화된 부분이며, 그에 대한 설명은 우리의 "공동체" 농민들 역시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나누고 있는 상품경제의 법칙으로만 가능하다. 만약 마을의 수공업자들 을 예로 든다면, 개혁 이후의 시기에 새로운 산업들이 생겨나고 예전 산업들은 더욱 급속히 발전했을(방금 언급한 농민층의 분화와 사회적 분업이 진전된 결과로)20 뿐만 아니라, 그에 더해 다수의 수 공업자들은 점점 더 가난해져 경제적 독립을 상실한 채 극심 한 빈곤으로 침몰한 반면 얼마 안 되는 소수는 다수의 희생을 토대로 부를 쌓아 막대한 양의 자본을 축적하고 원청업자로 변신하는 동시에 시장을 독점하게 됐으며, 그로 인해 결국엔 압도적 다수의 수공업 분야에서 자본주의적 대규모 가내 생산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됐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나라 소생산자들 사이의 이러한 양극화 경향의 존재는 자본주의와 대규모 빈곤화가 서로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실 제로는 서로가 서로를 조건 짓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 며, 자본주의가 이미 러시아 경제 생활의 주된 배경이 되고 있 다는 사실을 반박의 여지 없이 입증해준다.

 

농민층의 해체라는 사실이 "시장의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 해준다고 말해도 전혀 모순되지 않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또한 악명 높은 "시장 문제"에 관한 바로 그 (현재의) 설명방식은 수많은 불합리한 구석들을 감추고 있다는 점 역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거론되는 공식은 가장 믿을 수 없는 가정들, 즉 사회의 경제 시스템은 일부 집단——"지식인들"이나 "정부"——의 의지에 따라 구축되기도 하고 파괴될 수도 있다거나(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있을까", 러시아는 자본주의를 거쳐"아만 하는가", 마을 공동체는 유지"되어야만 하는가" 같은 그 밖의 질문들은 제기될 수 없다), 자본주의가 인민들의 빈곤화를 막아준다든지, 시장이 자본주의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이자 그 발전을 위한 특수한 조건이라는 가정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합리한 구석들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릴 수가 없게 된다.

 

정말 "인민 대중이 가난에 처해 있고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러시아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누군가가 "물론 그럴 수 있지. 자본주의는 소비품 때문에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 때문에 발전하는 거니까"라 말한다고 상상해보자. 분명 그런 대답은 자본주의 국가의 총생산성이 주로 생산수단 때문에(즉 소비품 보다는 생산수단 때문에) 증가한다는 아주 올바른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대답은 앞서의 질문에 대한 일탈의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아주 명백하다. 삼단논법에서 소전제가 옳아도 대전제가 터무니없다면 정확한 결론을 이른바 시장 문제에 관하여 이끌어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대답은(반복해서 말하건대) 자본주의가 발전해 나라 전체를 아우른 상태에서 보다 높은 기술적 단계(대규모 기계 공업)로 넘어가고 있다는 걸 이미 전제로 두고 있는 반면, 질문 자체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소규모 생산이 대규모 생산으로 대체될 가능성에 대한 부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 문제""가능성""필요성"에 대한 알맹이 없는 추측의 영역에서 굳건한 현실의 기반, 즉 러시아의 경제 질서가 어떠한 형태를 취하고 있고 다름 아닌 그러한 형태를

띠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해명하는 영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나는 이러한 명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데이터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내가 갖고 있는 자료로부터 몇 가지 예들을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소생산자들의 분화와 그들 사이에 빈곤화 및 (상대적으로) 대규모 부르주아 경제가 생겨나는 과정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하기 위해 유럽 러시아의 여러 주들에서 순전히 농업에만 의지하는 세 개 군들의 데이터를 인용해보겠다. 타우리다 주의 드네프르 군과 사마라 주의 노보젠스크 군, 그리고 사라토프 주의 카미신 군이 그 대상이며, 데이터는 젬스트보 통계 초록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선택된 군들이 전형적이지 않다는(농노제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고 개혁 이후에야 주로 정주가 이뤄진 외판 지역에서는 중심부에서보다 분화가 더 빨리 진행됐다), 혹시나 제기될지 모를 주장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다음을 미리 일러둔다.

 

(1) 전적으로 러시아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이주민 농장은 0.6 퍼센트) 공동체 농민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타우리 다 주의 주요 3개 군들 중에서 드네프르 군을 선택하였다.

 

(2) 노보젠스크 군의 경우, 데이터가 오로지 러시아 (공동체) 인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노보젠스크 군 통계 보고서, 432~9 , 세로줄a를 참조할 것), 이른바 농장 농민들, 즉 공동체를 떠나 구입 또는 임차 토지에 별도로 정착한 농민들은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농업[21]의 직접적 대표 격인 그들을 포함 시켰더라면 분화를 훨씬 더 잘 드러내 보여주었을 것이다.

 

(3) 카미신 군의 경우 데이터는 오로지 대러시아 (공동체) 인 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초록에 등장하는 분류는——드네프르 군의 경우——가구 당 작물 면적에 따른 것이며, 다른 군들의 경우에는 농사용 가 축의 수에 따른 것이다.

 

<표 참조>

 

가난한 집단은 토지를 경작하지 않거나 가구당 10데샤티나 미만의 작물 면적을 가진——드네프르 군의——가구들이 포함되며, 노보젠스크와 카미신 군에서는 가축이 없거나 한마리뿐인 가구들이다. 드네프르 군에서 중간 집단은 10~25데샤티나의 작물 면적을 가진 가구들이 포함되며, 노보젠스크 군에서는 2~4마리의 농사용 가축을 보유한 가구, 카미신 군에서는 2~3마리의 농사용 가축을 보유한 가구들이 거기에 속한다. 부유한 집단은 25대사대나 이상(드네프르 군)의 작물 면적을 보유한 가구들이 나 대 마리(노보젠스크 군) 또는 세 마리(카미신 군) 이상의 농사용 가축을 보유한 가구를 말한다.

 

이런 데이터들로부터 아주 명백한 사실은 이 나라 농업과 공동체 농민들 사이에 진행되는 과정이 전반적인 빈곤화와 몰락이 아니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상당수 농민들(가난한 집단)——평균적으로 약 절반 가량——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지역 농민 전체의 농업 중에서 극히 미미한 일부——작물 면적의 (평균) 13퍼센트——만을 차지하고 있으며, 가구당 경작 면적은 3~4데샤티나에 불과하다. 그 정도의 면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타우리다 주에서 이른바 "외부 고용"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농사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려면 한 농가가 17~18데샤티나의 경작 면적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였다. 확실히 하위 집단의 구성원들은 이미 농사보다는 외부 고용을 통해, 즉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측면이 훨씬 더 강하다. 그리고 이 집단의 농민들이 처한 상황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좀 더 구체적인 통계에 눈을 돌려보면, 정확히 해당 집단이 농업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분여지를 임대해주며 작업에 쓸 농기구를 보유하고 있지 못해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최대의 임시 고용층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집단의 농민들이 바로 농촌의 포를레타리아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들 공동체 농민들 사이에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또 다른 집단이 생겨나고 있다. 상위 집단 농민들은 하위 집단 농민들보다 7~10배나 더 큰 면적을 경작하고 있다. 한 가족이 농사만으로 별 탈 없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정상적인" 경작 면적과 비교해보면, 그들이 경작하는 면적이(가구당 23~40대사대나) 두 배에서 세 배 더 넓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농민들은 이미 곡물을 거래해 소득을 얻기 위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상당한 저축을 해두고 그 돈을 농장과 농업 방식을 개선하는 데, 예를 들어 농기계와 개량된 농기구를 사들이는 데 사용한다. 일례로 노보젠스크 군 전체에서 가구의 14퍼센트가 농기구를 개량했는데, 상위 집단 농가에서는 42퍼센트가 농기구를 개량했으며(따라서 상위 집단 농민들은 개량된 농기구를 소유한 군내 전체 가구들 중 75퍼센트를 차지한다) "농민층"이 소유한 전체 개량 농기구 가운데 82퍼센트가 그들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었다.23 상위 집단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노동력만으로는 더 이상 경작을 할 수 없어 고용된 노동력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노보센스크 군에서 상위 농가의 35퍼센트는 고정적으로 임금노동자들을(수확철 같은 매만 고용되는 노동자들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고용한다. 이는 드네프르 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히 말해, 상위 집단의 농민들은 의심할 여지 없는 부르주아 계층이었다. 오늘날 그들의 영향력은 (고리데금업자들과 '클락'들처럼) 다른 생산자들에 대한 약탈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 독립적인 생산 체계24에 기초하고 있다. 농민층의 5분의 1밖에 차지하지 않는 이들 농민들의 수중에는 전체 경작 면적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세 개 군 모두의 전체적인 평균 면적을 따졌을 때 말이다). 만약 우리가 이들 농민의 노동(즉 수확)생산성이 땅을 파서 근근이 먹고 사는 하위 집단 프롤레타리아들의 생산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사실을 명심한다면, 곡물 생산의 주된 원동력은 농촌 부르주아지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진 농민층의 이러한 분화가(인민주의자들은 이 과정에서 "대중의 빈곤화"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시장"의 규모, 즉 상품으로 전환된 곡물의 비율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까? 분명 그 비율은 상당한 폭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상위 집단 농민들이 소유한 곡식 중 상당한 양이 그들 자신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훨씬 뛰어넘어 시장으로 흘러들어간 반면, 하위 집단의 구성원들은 외부에서 일해 벌어들인 돈으로 부족한 곡물을 구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한 정확한 통계를 인용하기 위해서는 이제 젬스트보 통계 초록이 아닌 V.Y. 포스트니코프의 책남부 러시아의 농민 농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는 젬스트보 통계 데이터를 활용해 타우리다 주의 주요 세 개 군(베르단스크, 메리토폴, 드네프르)에서의 농민 농업을 설명하고, 서로 다른 집단별로(작물 면적에 따라 (1) 땅을 전혀 경작하지 않는 가구, (2) 5데사티나 미만을 경작하는 가구, (3) 5~10데사티나를 경작하는 가구, (4) 10~25데사티나를 경작하는 가구, (5) 25~50데사티나를 경작하는 가구, (6) 50데사티나 이상을 경작하는 가구, 이렇게 6개의 범주로 나뉜다) 그들의 농업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집단별로 시장과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각 농장의 경작 면적을 다음의 4개 구역으로 나누고 있는데,


(1) 파종을 위해 필요한 종자를 제공하는 농장 서비스 구역

(2) 가족과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한 곡물을 제공하는 식량 구역,

(3) 농사용 가축을 위한 사료를 제공하는 사료 구역,

(4) 마지막으로 상품으로 전환돼 시장에서 처분되는 생산물을 제공하는 상업 또는 시장 구역이 그것들이다. 오직 마지막 구역만이 현금 수입을 제공하는 반면, 다른 부문들은 현물, 즉 농가에서 소비되는 생산품만을 산출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서로 다른 경작 면적을 보유한 농민 집단들의 각각의 땅 크기를 계산하면서 포스트니코프는 다음의 표를 제시하고 있다.


| 경작 면적 100대시티나 중 | 현금 소득 | 타우리다 주 3개 군 내 | 토지 (미지역) |

| 토지 (미지역) | 토지 (미지역) | 토지 (미지역) | 토지 (지역) | 토지 (지역) | 토지 (지역) | 토지를 제공하는 (미지역) | 토지를 제공하는 (미지역) | 토지를 제공하는 (지역) | 토지를 제공하는 (지역) | 토지를 제공하는 (지지) | 토지를 제공하는 (지지) | 토지를 제공하는 (지지) |

| 5대시티나 미만 경작 | 6 | 90.7 | 42.3 | -39 | - | - | 34,070 | - | 3.5 |

| 5~10대시티나 | 6 | 44.7 | 37.5 | +11.8 | 3.77 | 30 | 140,426 | 16,815 | 8 |

| 10~25대시티나 | 6 | 27.5 | 30 | 36.5 | 11.68 | 191 | 540,093 | 194,433 | 16.4 |

| 25~50대시티나 | 6 | 17.0 | 25 | 52 | 16.64 | 574 | 494,095 | 256,929 | 34.5 |

| 50대시티나 이상 | 6 | 12.0 | 21 | 61 | 19.52 | 1,500 | 230,583 | 140,656 | 75 |


그리고 표에 덧붙이는 주석은 다음과 같다.

 

(1) 끝에서 두 번째 세로줄은 포스트니코포가 제시한 게 아니라 내가 직접 편집한 것이다.

 

(2) 포스트니코포는 상업 부문 전체에 밑을 심고 평균적인 산출량을 거둬들이며 평균기에 곡물을 내다 판다는 가정을 토대로 현금 수입을 계산하고 있다.

 

우리는 이 데이터를 통해 농장이 클수록 상품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띠고 판매를 위해 재배하는 곡물의 비율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요한 곡물 재배자라 할 수 있는 상위 두 집단의 농민들은(그들은 전체 작물 면적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자신들의 전체 농업 생산물의 절반 이상을(52퍼센트와 61퍼센트) 내다 판다.

 

만약 농민층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지지 않았다면, 달리 말해 경작 면적이 모든 "농민들" 사이에 "균등하게" 분할됐다면, 그들 모두는 중간 집단(25데사타나 미만을 경작하는 가구들)에 속했을 것이고, 전체 곡물의 36퍼센트에 불과한 518,136데사타나의 면적에서 생산되는 생산품만(1,439,26736퍼센트는 518,136) 시장에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표에서 보듯이 오늘날엔 전체 곡물의 42퍼센트인 608,869데사티나의 면적에서 생산되는 생산품들이 시장으로 쏟아져나오고 있다. 따라서

 

"대중의 빈곤화", 40퍼센트에 달하는 농가들(10대사다니 미만을 경작하는 가난한 집단)의 완전한 퇴조, 농촌 프롤레타리아의 형성은 90,000대사다니[25]의 토지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추가로 시장에 쏟아져나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나는 농민층 분화의 결과물로서의 "시장"의 성장이 여기에만 국한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멀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농민들이 개량된 농기구를 확보하는 현상, 즉 자신의 저축을 "생산수단의 생산"으로 돌리는 현상을 지켜봤었다. 그리고 곡물뿐만 아니라 또 다른 상품인 인간의 노동력도 시장으로 쏟아져나오는 것도 목격했다. 내가 그런 것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오직 협소하고 특정한 목적, 즉 이곳 러시아에서 대중의 빈곤화는 실제로 상품과 시장경제의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상품 유통으로 맨마지막에 가장 천천히 끌려나오는 것이 곡물 같은 생산품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오로지 농촌 지역만을 예로 듣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럼 이제부터는 순수하게 공업 지역인 모스크바 주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수공업에 관한 수량은 결작 논문들이 담겨 있는 모스크바 주 통계 보고서6, 7권에서는 케스트보 통계학자들이 서술한 농민 농업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 나는 "레이스 산업"에 관한 논문에서 한 단락26을 인용하는 것에만 그칠 텐데, 거기에는 개혁 이후 시대에 농민 수공업이 특히나 급속하게 발전한 과정과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레이스 산업은 1820년대에 포돌스크 군 보로노보 음의 인접한 두 마을에서 생겨났다. "1840년대에 그것은 인근 마을들로 천천히 확산되기 시작했으나, 그다지 넓은 지역까지 퍼져나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60년대에 접어들면서, 특히 마지막 3, 4년 동안 인근 시골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현재 이 산업이 시행되고 있는 32개 마을들 중에서 1820년에 2개 마을, 1840년에 4, 1860년대에 5, 1870~18757, 1876~187914개 마을이 레이스 산업을 시작했다.

 

해당 논문의 저자는 "이런 현상의 원인들, 즉 정확히 최근 몇 년 사이에 해당 산업이 그토록 급속히 확산된 원인들을 조사해보면, 한편으로는 그 시기 농민들의 생활 조건이 지독하게 악화된 반면, 다른 한편으로 주민들——그 중 일부는 전보다 더 나은 상황에 있다——의 요구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확증하기 위해 저자는 내가 표의 형태로 제시한 아래의 데이터를 모스크바 케스트로 통계로부터 빌려오고 있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말을 이어진다. "이 수치들은 해당 읍의 말, , 작은 가축의 전체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런 부의 증가가 특정 개인들, 다시 말해 두세 마리 이상의 말들을 소유한 가구들의 묽으로 돌아갔다는 명백한 증거다."

 

"결과적으로 소나 말 중 어느 것도 보유하고 있지 못한 농민들 수의 증가와 더불어 자신의 토지를 더 이상 경작하지 않는 농민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가축도 없고, 따라서 동물의 배설물로 만든 거름도 충분치가 없다. 땅은 이미 지력을 다했고, 경작할 가치가 없다. 굶주림을 피해 자신과 가족들이 먹을 식량을 얻기 위해서는 남성들이 일부 공업에 종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전에는 농장일이 한가할 때 남성들이 그런 일을 하곤 했으나, 이제는 가족 중 다른 구성원들도 외부에서 일자리를 찾아야만 한다."

 

<표 참조>

 

우리가 표에서 제시한 수치들은 무언가 다른 사실을 보여 주었다. 해당 마을들에서는 두세 마리의 말이나 소를 보유한 사람들의 숫자도 증가했다. 그 결과 그 농민들의 부도 증가했으나, 동시에 이러이러한 마을에서 모든 여성과 아이들이 공업에 종사한다고도 우리는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런 마을들에서 어떤 식의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가정 형편을 보다 자세하게 알아낸 다음, 아마도 시장에 내다 팔 상품들을 생산하게 만드는 이러한 강력한 욕구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확인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어떤 운 좋은 상황에서 농민 인구 가운데 보다 강력한 개인과 가족들이 점차적으로 생겨났는지, 어떠한 환경이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었으며, 어떠한 사회적 조건들이 그들의 부를 급속히 늘리고 마을의 특정 부류로 하여금 다른 부류들과 뚜렷이 구분될 정도로 성장하게 만들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조사하는 작업을 여기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이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농촌 마을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 하나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마을에서 어떤 농민이 동료 주민들 사이에서 건강하고 힘채고 성실한 일꾼으로 평판이 자자하다고 치자. 그는 대부분 아들들로 구성된 대가족을 이끌고 있을 것이고, 자식들도 힘채고 건실한 걸로 정평이 나 있다. 그들 모두는 따로 분가하지 않고 다같이 모여산다. 그들은 네댓 명당 하나의 분여지를 부여받는다. 물론 그걸 경작하기위해 가족 구성원 모두의 노동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래서 아들 중 두셋은 정기적으로 외부나 지역의 공장에서 일하다가 건조를 만드는 철에만 잠시 공장 일을 접고 밭에서 가족을 돕는다. 가족의 개별 구성원들은 자신의 소득을 따로 챙기지 않고 공동으로 모은다. 다른 상황이 뒷받침해주는 경우, 하나로 합친 수입이 가족이 필요로 하는 지출을 훨씬 초과한다. 그 결과 돈이 모이고, 가족은 더 나은 조건에서 공업에 종사 할 수 있게 된다. 즉 원자재를 직접 현금으로 구매하고, 생산한 제품들을 값나갈 때 판매하며, 남녀 중개인들같이 노동이외에 고용해야하는 사람들의 도움도 일체 건너뛸 수 있게 된다.”

 

“(그들은) 한두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독자적으로 어떤 일을 할 가능성을 상실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집안일을 맡기는게 가능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이와 유사한 상황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그 능력있는 가족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통해서 말고도 또 다른 이윤을 얻을수 있게 된다. 물론 부농(클락)이나 고리대금업자라 알려진 개인들이 그런 가족들 중에서 생겨나는 경우에 대해서는 여기서 따로 이야기하지않겠다. 우리는 농촌 인구들 사이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초록의 2권과 61부에서 제시된 표들은 대부분의 경우 농민 중에서 어떤 한 부류의 상황들 이 악화됨에 따라 다른 소수 부류나 개인들의 부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공장 일자리가 확산되고, 외부 세계와 도시, 이 경우에는 모스크바와의 교류가 점점 더 잣아질수록, 모스크바의 풍습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마을에 침투해 점점 더 부유해진 이들 가족과 맨 먼저 맞닥뜨리게 된다. 그들은 사모바르28와 식탁 그릇, 컵을 사들이고, ‘좀 더 말쑥한옷을 입는다. 남자들이 천 으로 된 신발 대신에 부츠를 신기 시작하고 여성들이 가죽 신 발과 부츠를 신는 걸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기면서 이른바 말 쑥한 옷차림이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밝고 여러 가지가 섞인 면직물과 스카프, 무늬가 많이 들어간 모직 촐과 장신구들을 선호한다.”

 

농가에서 아내가 남편과 자신, 그리고 아이들이 입을 옷 을 만드는 건 아주 오래된풍습이었다. …… 그들이 직접 아 마를 키우는 한,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천과 기타 재료를 구 입하는 데 돈이 덜 들어가고, 그 돈은 닭과 달걀, 버섯, 산딸기, 남는 실타레나 천 조각을 팔아서 마련된다. 나머지는 모두 집 에서 만드는 것이다. 그 모든 품목들을 집에서 농가 여성들이 모두 만드는 상황과 그들이 발일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모두 그 런 일에 쏟아붓는다는 사실은 현재 보로노보 읍내 마을들에서 레이스 산업이 왜 그렇게 천천히 발전하는지를 설명해준다. 레이스는 집안의 모든 여성들이 아마포를 갖거나 천을 쌓 필요가 없는 대가족이나 보다 잘사는 집안의 젊은 여성들이 주로 만든다. 그러나 값싼 옥양목이 점차 아마 섬유 제품을 물아내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상황이 조성됐다. 아마 작황이 떨어지거나 아내가 남편과 자신을 위해 붉은 옥양목 셔츠와 좀 더 맵시 좋은 드레스를 만들고 싶어하게 되면서, 집에서 농민들의 의복으로 쓸 다양한 종류의 리넨 천과 스카프를 싸던 풍습이 점차 사라지거나 아주 제한적으로만 이뤄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의복 자체도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거기엔 공장에서 만든 옷이 집에서 찬 옷을 대신하게 된 것도 부분적으로 한 몫을 차

지했다.”

 

인구의 다수가 판매용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갖는 노력을 다 쏟고 심지어 아이들에게조차 그런 일을 시키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서 설명된다.”

 

주의 깊은 관찰자의 이와 같은 소박한 설명은 사회적 분업이란 과정이 농민 대중 사이에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토지의 상품 생산 강화 및 결과적인 시장의 강화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생산자를 시장으로 이끌어내는 바로 그 관계 덕분에 상품 생산 자체가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로 귀결돼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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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앞의 표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보도록 하자.

 

첫 번째 결론은 '시장'이라는 개념이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상품 생산의 보편적 기초"인 사회적 분업이라는 개념과 절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은 사회적 분업과 상품 생산이 등장하는 곳에서, 그리고 그 결과로 생겨난다. 시장의 규모는 사회적 노동의 전문화 정도와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상품)은 화폐로 전환되지 않고서는 사회적으로 인정 되는 보편적인 등가물의 속성을 획득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화 폐는 누군가의 주머니에 있다. 화폐를 그 주머니 밖으로 유인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우리 친구의 상품은 화폐 소유자에게 사용가치여야만 한다. 그러려면 상품에 쏟아부는 노동력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종류의 것이어야 하고, 사회적 분업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분업은 자연발생적으로 자라난 생산 시스템이고, 생산자들의 등 뒤에서 성장을 계속 하고 있다. 교환되는 상품은 아마도 새로이 생겨난 요구 조건들을 충족시키거나 심지어 새로운 요구 조건들을 스스로 발생시키는 척하는 어떤 새로운 부류의 노동의 산물일지 모른다. 하나의 특정한 활동은, 비록 어제는 어떤 특정한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 사람의 생산자가 행한 수많은 활동 중 하나였을지 물라도, 오늘은 그런 관계로부터 스스로 분리돼 독립적인 노동의 한 부문으로 자리 잡은 채 자신의 불완전한 생산물을 하나의 독립적인 상품으로서 시장에 내보내게 될 수도 있다."¹(강조는 저자)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 발전의 한계는 사회적 노동의 전문화 한계에 따라 정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화는 바로 그 본질상 기술 발전만큼이나 그 한계가 무한하다. 한 예로 전체 생산물의 일정 부품을 제조하는 데 있어 인간 노동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 부품의 생산이 전문화되어야 하고, 대량 생산이 개입돼 기계의 활용 등이 허용(그리고 발생)되는 특별한 제품이어야 한다. 그것이 한 측면이라면, 다른 한 측면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의 진보는 노동의 사회화로 이루어지고 이런 사회화는 반드시 생산 과정의 다양한 기능들에서의 전문화, 즉 이런 생산에 관련된 모든 시설에서 따로라 로 반복되는 분산적이고 고립적인 기능들로부터 사회 전체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계산된 하나의 새로운 시설에 사회적 기능들이 집중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하나의 사례를 인용해보겠다.

 

"최근 미국에서는 목공 공장들이 점점 더 전문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도끼 자루, 빗자루, 펼침탁자 등만을 제조하는 신규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 기계 제작은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새로운 기계들이 계속 고안돼 생산의 일부를 단순화하고 비용을 낮추고 있다. …… 한 예로, 가구 제작의 전 분야는 특수 기계와 전문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 되었다. …… 마차를 제작할 때 바퀴 테두리는 특수 공장들(미주리, 아컨소, 테네시)에서 만들어지고, 바퀴살은 인디애나와 오하이오에서 제작되며, 중심축은 컨터키와 일리노이에 있는 특수 공장들에서 만들어진다. 이런 각각의 모든 부품들은 바퀴 전체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공장들이 사들인다. 따라서 싸구려 탈것을 만드는 데 수십 개의 공장들이 참여하는 셈이다."(트베르스코이, 미국의 10, 베스트니크 예브로피, 1893, 니콜라이-[Nikolai-on]¹¹의 책 91쪽 각주 1에서 인용)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노동의 전문화가 불러온 시장의 성장은 모든 자연 생산자들이 상품 생산자가 되는 순간 멈출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준다. 러시아의 마차 제작이 상품 생산이 된 건 오래전 일이지만, 바퀴 테두리는 여전히 각각의 마차 제조업자의(또는 수레바퀴 제조 목수의) 작업장에서 만들어진다. 기술 수준은 낮고, 산은 수많은 생산자들 사이에 분산돼 있는 것이다. 기술적 진보는 다른 생산 부품들의 전문화와 사회화, 그리고 결과적으로 시장의 확대를 수반해야만 한다.

 

이 대목에서 바로 다음과 같은 의구심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방금 말한 모든 것들은 자본주의 국가가 해외 시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명제를 부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자본주의 생산에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은 오로지 일련의 파동에 의해서만 달성된다. 생산 규모가 더 크고 그것이 기여하는 소비자 폭이 더 넓을수록, 파동은 더 격렬해진다. 그러므로 부르주아 생산이 높은 수준의 발전에 도달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민족국가의 경계 안에 머무를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은 이해가 될 것이다. 경쟁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생산을 확대하고 대량으로 생산품을 내다 팔 해외 시장을 찾아 나서도록 충동질한다. 자본주의 국가가 해외 시장을 보유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상품경제하에서 시장은 사회적 분업의 단순한 표현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분업만큼이나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법칙에 거의 위배되지 않는다. 위기가 가치 법칙에 거의 위배되지 않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 나라 자본주의 생산의 특정 부문들(예를 들어 면직업)이 완전한 발전에 도달하고 전체 국내 시장을 거의 포괄하며 몇몇 거대 기업에만 집중될 때, 그제야 비로소 러시아의 문헌들에서는 시장에 대한 비탄의 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장에 관한 부질없는 이야기와 '물음들'의 물질적 토대가 이 나라의 대규모 자본주의 산업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걸 가장 잘 증명해주는 건, 수공업 생산품들이 가치로 따지면 모두 합쳐 10억 루블이 넘고 바로 그 가난한 '인민들'에게 일용품을 제공해줌에도 불구하고 문헌에서 그 누구도 '시장'의 실종 때문에 이 나라 수공업이 몰락하게 될 거라는 예견을 내놓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시장이 부족해 이 나라 산업이 몰락했다며 통곡하는 건 자본가들의 속이 뻑히 들여다보이는 솔책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정책에 압력을 가하고, 자신들의 주머니 속 이익을 '국가'의 이익과 동일시하며(자신들의 '무능'에 대한 겸손한 고백이다), 정부로 하여금 식민지 정복에 나서게끔 만들고, 심지어 그런 '국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에 끼어들게 한다. 바닥이 어딘지 모를 인민주의자들의 공상적 이상주의와 단순함이란 구멍은 시장에 대한 이러한 통곡을——입지를 확고히 다진 채 이미 자만에 빠져든 부르주아들의 악어의 눈물이다——러시아 자본주의의 '무능'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데 요긴하다!

 

두 번째 결론은 (시장에 관한 모든 인민주의자들의 주장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인) '인민 대중의 빈곤화'는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정반대로 자본주의 발전의 표현이며 자본주의의 조건이자 그것을 강화해준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며, 빈곤화는 소생산자들이 임금노동자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의 빈곤화는 소수 착취자들의 부의 축적을 동반하며, 소규모 사업체들의 몰락과 쇠퇴는 대규모 사업체들의 강화와 발전을 동반한다. 그리고 두 과정 모두 시장의 성장을 촉진하며, 과거에는 스스로 농사를 지어 생활했던 농민이 '가난에 빠져' 이제는 '소득', 즉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활하는 걸 의미한다. 이제 그는 필수 소비품들을 (아무리 양이 적고 품질이 조약하다 할지라도) 직접 사서 써야만 한다. 반면 이 농민의 손을 떠난 생산수단은 소수의 손아픈에 집중돼 자본으로 전환되고, 생산품은 이제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개혁 이후 시대에 사는 이 나라 농민들이 겪은 대규모 재산 강탈이 러시아 총생산력의 감소가 아닌 증가와 국내 시장의 성장을 동반해왔다는 사실에 대한 유일한 해명이다. 큰 공장들의 생산량과 작업량이 엄청나게 증가해왔으며 수공업이 상당 부분 확대되고둘 다 주로 국내 시장을 대상으로 한다——국내 시장에서 유통되는 곡물의 양도 비슷하게 증가해왔다는(국내 곡물 거래의 발전)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생산수단의 생산의 중요성에 관한 세 번째 결론은 표에서 수정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해당 표는 자본주의 발전의 전 과정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자연경제가 상품경제로 대체되고 상품경제가 다시 자본주의 경제로 대체 되는 과정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결 목 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표에서 축적이 무시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는 축적 없이 는 존재할 수가 없다. 경쟁이 모든 자본가로 하여금 몰락을 각 오하고서라도 생산을 확대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 표는 그와 같은 생산 확대를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 번째 시 기와 네 번째 시기 사이의 막간에 생산자 Ic의 생산량을 2c 에서 6c로 세 배 더 늘렸다. 그는 예전에는 자신의 작업장에서 홀로 일했으나, 이제는 두 명의 임금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분명 그러한 생산의 확대는 축적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그는 여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특수한 작업장을 지어야 하고, 생산 도구들을 대규모로 확보해야 하며, 많은 양의 원자재를 구입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b의 생산을 확대한 생산자 IV에게도 똑같은 사실이 적용된다. 개별 사업체의 이러한 확장과 생산의 집중은 필연적으로 자본가들을 위한 기계, , 석탄 같은 생산수단의 생산을 필요로 한다(별 차이는 없지만, 증가시킨다고도 할 수 있겠다). 생산의 집중은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며, 인력을 기계로 대체하고 일정한 수의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가들에 의해 불변자본으로 전환돼 이제 가변자본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 기계와 여타 생산수단들의 생산에도 발전이 있었다. 한 예로 네 번째 시기와 여섯 번째 시기를 비교해보면, 생산수단의 생산이 50퍼센트 증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시기의 경우에는 불변자본의 증가를 필요로 하는 자본가 기업이 두 개였다면, 여섯 번째 시기에는 세 개였다). 이러한 증가를 소비품 생산의 증가와 비교해볼으로써 우리는 앞서 언급한 생산수단의 생산이 보다 더 급속히 증가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생산수단의 생산이 보다 더 급속히 증가한다는 이러한 법칙의 의미와 중요성은 인력을 기계 노동으로 대체하는 것이 생산수단 중에서도 진정한 생산수단이라 할 수 있는 석탄과 철 생산의 급격한 발전을 요구한다는 한 가지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가 이런 법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과정을 묘사해주는 공식들이 진정한 본질을 가리는 걸 허락했음은 다음의 진술에서 아주 분명해진다. "옆에서 볼 때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의 생산은 완전히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플류시킨이 돈 그 자체를 위해서 돈을 축적하는 행위도 아주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다. 돈은 모두 자신들이 무슨 것을 하는지 모른다." 인민주의자들이 러시아의 자본주의가 인민들을 몰락시키면서도 더 높은 생산 구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단언하며 그 부조리를 증명하려고 전력을 다 쏟고 있는 것도 정확히 그런 부분이다. 물론 그것은 동화 같은 이야기다. 기계 노동이 인력을 대체하는 것은 전혀 "터무니없"지 않다. 정반대로 인간 기술의 혁신적인 역할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할수록 인간의 육체노동은 점점 설 곳을 잃고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기계들에게 밀려나게 된다. 그 나라 총생산에서 기계와 그 제조를 위해 필요한 품목들이 훨씬 더 큰 위치를 점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결론들에는 두 개의 추가 설명이 덧붙어야 한다.

 

먼저, 앞서 말한 대목은 마르크스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의 모순"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상품의 구매자로서의 노동자들은 시장에서 중요한 존재다. 그러 나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이 지닌 상품——노동력——의 판매자로서의 그들을 최소 가격에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품을 생산하는 사회적 생산의 일부도 마찬가지로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은 앞서 드러난 바 있다. 생산수단의 생산의 발전은 앞에서 이야기한 모순을 단지 옆으로 밀어놓을 뿐, 없애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체를 제거함으로써만 일소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모순을 러시아에서 자본주의가 완전히 발전하는 데 있어서의 장애물로 여기는 것은(인민주의자들이 선호하듯이) 아주 어리석은 생각임이 분명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표에서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만 덧붙여두자.

 

둘째로, 자본주의의 성장과 "시장"의 성장 사이의 관계를 논할 때 우리는 자본주의 발전이 필연적으로 산업 프롤레타리아를 포함한 전체 인구의 요구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분명한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러한 요구 수준의 상승은 대체로 상품 교환이 점점 더 빈번해짐으로 인해서 생겨나며, 그것은 다시 지리적으로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도시와 시골 주민들 사이에 접촉이 보다 더 잦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그것은 산업 포를레타리아가 매 지어 모여드는 집중화 현상에 의해 초래되며, 이는 그들의 계급의식과 자존감을 강화해 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체제의 약탈적 경향에 맞서 성공적인 투쟁을 벌이는 걸 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요구 수준 상승의 범칙은 유럽 역사에서 전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 예로, 18세기 말과 19세기 말의 프랑스 포를레타리아나, 1840년 대16와 오늘날의 영국 노동자들을 비교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러한 법칙은 러시아에서도 똑같이 작동된다. 개혁 이후 시대의 상품경제와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달은 "농민층"의 요구 수준도 끌어올려, 그들은 "보다 깨끗한" (의복, 주택 등)을 살기 시작했다. 명백히 진보적인 이런 현상은 다름 아닌 러시아 자본주의에 그 공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은 공업 소재지의 농민들이 자본주의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시골에서 오로지 농업에만 종사하며 살아가는 농민들보다 훨씬 "더 깨끗한" 생활을 한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입증된다. 물론 그러한 현상은 순전히 표면적이며 과시적인 "문명화"의 측면을 받아들이는 데서 주로, 그리고 쉽사리 나타난다. 그러나 V. V. 선생 같은 극악한 반동들은 그것을 비통해하며 거기에서 "퇴조"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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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제시된 도형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다루는 개념들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상품 생산이란, 일정한 제품을 제조하는 데 있어 전문성을 지닌 각각의 독립적이고 분리된 생산자들에 의해 물건이 생산되고, 그래서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장에서 제품들을 사고파는 (따라서 상품이 되는) 과정이 필요한 사회적 경제가 형성되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란, 인간 노동의 산물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노동력 자체가 상품이 되는 상품 생산의 발전 단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에 있어서는 두 가지 특징이 중요하다. 첫째는 직접 생산자들의 자연경제가 상품경제로 변화하는 것이고, 둘째는 상품경제가 자본주의 경제로 변화하는 것이다. 첫 번째 변화는 사회적 분업——산업의 오직 한 분야에 종사하던 고립되고 분리된 생산자들의 전문화(주의: 이는 상품경제의 본질적 조건이다)——의 등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두 번째 변화는 시장을 위해 각자 스스로 상품을 생산하는 독립된 생산자들이 서로와의 경쟁에 진입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각자가 가장 높은 가격에 물건을 팔고 가장 낮은 가격에 물건을 구입하려 애쓰게 되면,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파산하며 소수는 부유해지는 반면 다수는 물락하는 것이 필연적인 결과다. 이는 독립적인 생산자들이 임금노동자로 전환하게 되고, 다수의 소기업들이 소수의 대기업들로 전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따라서 도형은 자본주의 발전의 이러한 특징을 과 그 발전이 시장의 차원, 즉 상품으로 전환되는 생산품의 양에서 발생시키는 변화들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그려져야 한다.

 

다음에 등장할 표8는 이러한 방침에 따라 그려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자본주의 발전의 그러한 유일한 특징들이 시장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외부적으로 발생한 상황들은 모두 상수로 간주해(예를 들어 인구의 규모, 노동생산성과 기타 많은 것들) 결리빗을 일리둔다.

 

이제 6명의 생산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의 경제 시스템에서 의 연속적인 변화들을 보여주는 표를 분석해보도록 하자. 표는 자연경제가 자본주의 경제로 변화하는 6가지 시기별 단계들을 나타내준다.

 

첫 번째 시기. 6명의 생산자들이 있고, 각자는 모두 3개의 산업 분야(a, b, c)에서 자신의 노동을 쏟아본다. 그렇게 얻은 생산품은(각 생산자당 9: a+b+c=9) 생산자마다 각자의 가족을 위해 소비된다. 따라서 이는 생산품이 시장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순수한 형태의 자연경제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시기. 생산자 I은 자신의 노동생산성을 변화시킨다. 그는 b 산업을 떠나 예전에 거기서 쏟던 시간을 e 산업에 할애한다. 한 생산자에 의한 이런 전문화의 결과로, 다른 생산자들은 e의 생산을 줄인다. 생산자 I이 자신이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생산자 I이 쓸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b의 생산을 늘린다. 이렇게 등장한 분업은 필연적으로 상품 생산으로 귀결된다. 즉 생산자 IIc를 팔고 Ib를 사며, 다른 생산자들은 Ib를 팔고 Ic를 사들인다(다섯 명이 각자 5분의 1b씩 팔고 5분의 1c씩 사들인다). 생산품의 양은 6의 가치로 시장에 나온다. 시장의 크기는 사회적 노동의 전문화 정도에 정확히 일치한다. 즉 전체 사회적 생산의 9분의 1(18c(=a=b) 하나의 c(1c=3)와 하나의 b(1b=3)의 생산에서 전문화가 일어났고, 전체 사회적 생산물의 9분의 1이 시장에 나온 것이다.

 

세 번째 시기. 분업이 더욱더 진행되면서 b 산업과 c 산업 분야를 완전히 포괄하게 된다. 세 명의 생산자들은 전적으로 b 산업에만 종사하고, 다른 세 명의 생산자들은 e 산업에만 종사한다. 각각은 Ic(또는 Ib), 3개의 가치를 판매하고 3개의 Ib(또는 Ic)를 구매한다. 이러한 분업의 증가는 시장의 확대로 이어져, 이제 18개의 가치가 시장에 등장하게 된다. 다시, 시장의 크기는 사회적 노동의 전문화(=분업) 정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사회적 생산의 3분의 13b3c의 생산에서 전문화가 일어났고, 사회적 생산품의 3분의 1이 시장에 나온다.

 

네 번째 시기는 이미 자본주의 생산을 나타낸다. 상품이 자본주의 생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표에 나와 있지 않고, 따라서 별도로 서술해야 할 것이다.

 

전 시기에 각각의 생산자는 이미 상품 생산자다(우리가 논의 중인 유일한 산업들인 bc 영역에서). 각각의 생산자는 다른 생산자들과는 별개로 스스로 독립적으로 시장을 위한 제품을 생산하며, 서로는 당연히 상대방의 생산 규모를 알지 못한다. 공동의 시장을 위해 일하는 고립된 생산자들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경쟁이라 불린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오직 일련의 파동에 의해서만 생산과 소비(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이뤄진다는 건 새 삼 말할 필요가 없다. 보다 숙련되고 진취적이며 강력한 생산자는 이런 파동의 결과로 훨씬 더 강해질 것이며, 약하고 숙련되지 못한 생산자는 그들에 의해 분쇄될 것이다. 소수의 개인들이 부유해지고 다수가 가난해지는 것은 경쟁 법칙의 필연적인 결과다. 이는 결국 몰락한 생산자들이 경제적 독립을 상실하고 규모가 커진 운 좋은 경쟁자들의 사업체의 임금노동자가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것이 바로 표에서 묘사된 상황인 것이다. 과거에 모두 6명의 생산자들 사이에 나뉘어 있던 bc 산업 분야는 이제 2명의 생산자들 손아귀에 집중되게 된다.

 

<표 해설 참조>

 

나머지 생산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 전체를 받지 못하고, 고용주가 무단으로 가져가버린 잉여가치를 뺀 나머지를 받는 임금노동자들이다(추정하건대, 잉여가치는 생산물의 3분의 1에 해당하고, 따라서 2b(=6)의 생산자는 고용주로부터 3분의 2, 4를 받게 된다. 그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 결과, "분업이 증가하고, 다수"가 빈곤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성장을 거듭해 이제 22만큼이 시장에 나오게 된다. (부분적으로) 임금노동자가 된 생산자들은 더 이상 9개의 결과물 전체를 받지 못하고, 독자적인 활동(농업-a 산업)으로 얻은 3과 임금노동으로(2b 또는 2c의 생산으로) 얻은 4를 합쳐 7만큼만 받게 된다. 이제 독립적인 주인에서 더욱더 떨어져 임금노동자에 더 가까워진 이들 생산자들은 자신의 노동으로 생산한 결과물을 시장에 내다놓을 기회를 상실해버렸다. 물략으로 인해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생산수단을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외부 고용"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즉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고, 이 새로운 상품의 판매로 얻은 돈을 가지고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사야 하는 것이다.

 

표에서는 생산자 , , , 가 각각 4의 가치에 해당하는 노동력을 팔아 같은 양의 소비품을 구매한다는 결 보여준다. 자본주의 생산자들인 와 관련해서는, 그들 각각은

21의 가치에 해당하는 제품을 생산해 그 중 10을 직접 소비하고 (3(=a)+3(=c 또는 b)+4(2c 또는 2b로부터 얻은 잉여가치)) 11을 판매하며, 3(c 또는 b)+8(노동력)만큼의 상품을 사들인다.

 

이 경우 우리는 사회적 노동의 전문화 정도(합계 30에 달하는 5b5c의 생산이 전문화되었다)와 시장 규모 사이에 완전한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표에 나타난 이러한 잘못은 우리가 축적이 이뤄지지 않는 단순재생산을 가정했기 때문이다.9 노동자들로부터 가져간 잉여가치가 (자본가 한 명당 4) 모두 현물로 소비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축적이 없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후 적절한 수정이 이뤄지게 될 것이다.

 

다섯 번째 시기. 상품 생산자들의 분화가 농업(a)으로까지 확산된다. 임금노동자들은 타인의 사업체에서 주로 일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농사를 계속 유지할 수 없고, 그래서 몰락해간다. 그들은 자신의 농사 중 그나마 남아 있는 약 절반 정도에 불과한 부분만을 유지하게 되는데(그것으로 가족들의 필요를 충당하기에 딱 적당하다고 가정하자), 이는 막대한 수의 이 나라 "농업 종사자들"이 현재 경작하고 있는 토지가 독립적인 농업의 아주 보잘것없는 일부밖에 안 된다는 사실과 정확히 일치한다. a 산업이 극소수의 대규모 사업체들로 집중되는 현상은 위와 정확히 유사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이제 임금노동자들이 재배하는 곡식이 그들이 필요로 하는 양을 충족시키기에도 부족하기 때문에, 그 동안 그들이 독자적으로 농사를 지어온 덕분에 낮게 유지되던 임금은 올라가고 노동자들에게는 (비록 그들이 주인 일 때 소비하던 것보다는 적은 양이긴 하지만) 곡식을 살 돈이 주어진다. 이제 노동자는 12분의 1(=1/2a)을 생산하고 1을 구매해, 예전의 3(=a)이 아닌 22분의 1을 가져간다. 기존의 사업체에다 확대된 농업까지 보태게 된 자본가 주인들은 이제 각자 2a(=6)를 생산해, 그 중 2를 임금의 형태로 노동자들에게 주고, 1(1/3a)을 잉여가치로 가져간다. 이 표에서 묘사된 자본주의 발전은 '인민들''빈곤화'와 이제 26만큼이 쏟아져나오게 된 시장의 성장을 동반한다. 다수의 생산자들의 경우 '농업의 퇴조'는 농산물 시장의 수축이 아니라 확대를 불러오게 되었다.

 

여섯 번째 시기. 직업의 전문화. 즉 사회적 분업이 완성된다. 산업의 모든 분야가 분리되고, 개별 생산자들의 전문화가 이뤄졌다. 임금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독자적인 농장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전적으로 임금노동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똑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자본주의의 발전(혼자 힘으로 짓던 독립적 농업은 완전히 제거되었다), "다수의 빈곤화"(노동자들의 임금은 올라갔지만 그들의 소비는 6A에서 6으로 감소했다. 그들은 각자 9(3a, 3b, 3c)를 생산하고 주인들에게 잉여가치로 3분의 1을 넘겨준다), 그리고 이제 사회적 생산물의 3분의 2가 쏟아져나오게 된 시장이 한층 성장하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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