Ⅷ. (러시아 자본주의 논쟁과 니콜라이 온의 이론적 한계)

 

 

결론적으로, 추상적 개념과 도형, 그리고 공식에 과도하게 치중된 논쟁의 쟁점을 명료화하기 위해서는, “현재 제시된 견해”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이자 대표성을 지닌 주장 중 하나를 다각도로 검토하는 정밀한 분석 작업이 요구된다.

 

니콜라이 온의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 요인”으로 국내 시장의 “축소”와 농민 구매력의 “감소”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수공업의 자본주의화로 인해 가내 생산 제품이 도태되면서 농민들은 의복을 시장에서 직접 구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의류 구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농민들은 경작지 확장에 나섰으나, 기존의 분여지만으로는 이를 충당할 수 없어 적정 범위를 초과하여 농업 경영을 무리하게 확장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과도한 지대를 부담하며 토지를 임차하였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처럼 스스로 자멸의 기반을 구축한 자본주의는 “인민 경제”를 1891년의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내몰았으며, 더 이상 “지속적 발전 토대를 확보”하지 못한 채 정체 상태에 봉착하였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인민 경제 체제에서 이탈했음을 자각한 러시아는, 이제 당국이 마을 공동체에 대규모 생산 체계를 직접 주입해 주기를 기다리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러시아 인민주의자들의 관점에서) “참신하게” 다가오는 이 이론의 모순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

 

니콜라이 온이 “생산 수단 생산”이 지니는 본질적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는 해당 법칙의 존재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작용이 동시대 러시아에서도 관철되고 있음을 직접 언급하기도 하였다. (186쪽, 203~204쪽). 비록 스스로 제시한 모순을 포착하고 규명하는 그의 작업 방식에 고찰할 때, 이 법칙의 망각에서 기인한 오류의 비중이 큼은 부정하기 어려우나 (123쪽 참조), 설령 그가 이러한 모순을 바로잡는다 할지라도 핵심 주장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명백하다.

 

그의 이론이 가지는 근본적 불합리성은 자본주의의 내적 동학을 규명할 이론적 역량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과, 실증적 분석이 아닌 가공의 허구에 의존하여 주장을 전개한다는 사실에 존재한다.

 

니콜라이 온은 공장제 대생산의 확산으로 가내 수공업 기반을 상실하고 몰락하는 “농민층”을, 내부적으로 긴밀히 결합하여 외부적 충격에 단일하게 반응하는 동질적 집단으로 오인한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 구조에서 이러한 전제는 성립할 수 없다. 개별적 생산 단위로서 농가가 분리·존재하지 않았다면 농촌 내 상품 생산의 출현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며, 각 농민이 상호 독립된 상태에서 독자적인 농업 경영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즉, 농민 개별 주체는 생산물의 손실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면서 생산을 전개하고, 그 결과물을 사적 소유로 귀속시킨다. 결국 농민은 각자의 책임하에 개별적으로 “시장”과의 교환 관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농민층” 내부에서 전개되는 구조적 문제들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니콜라이 온은 “화폐 수입의 필요성이 가중된 농민이 과도하게 경작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고 주장한다.

 

(농민은 화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가내 수공업을 포기하고 자경지 경작에 전념하며, 부족한 분여지를 충당하고자 과도한 임차료를 무릅쓴 채 토지 임대를 강행한다. 그 결과, 지대 부담의 가중과 농가 경제의 자립 기반 상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단일한 “농민층 전체”의 일률적인 몰락으로 파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화폐 수요의 증대는 농민층 내부의 상품 경제 유입을 촉진하며, 이는 모순적으로 생산 수단을 소유한 상위 농가의 자본 축적과 생산 수단을 상실한 하위 농가의 임노동자화, 즉 소생산자층의 계급적 분화를 가속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작 면적을 확장할 수 있는 주체는 종자와 충분한 농용 가축, 농기구를 보유한 일부 부유한 농민층에 국한된다. 소수에 불과한 이들 부유층 농민은 실제로 경작지를 대폭 늘리며, 고용 노동 없이는 농업 경영이 유지되기 어려운 수준까지 생산 규모를 확장한다. 반면 절대다수의 농민은 가축과 생산 수단의 부재로 인해 필요한 화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경작지 확장의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다. 화폐를 마련하기 위해 이들은 생산물이 아닌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판매하는 임노동, 즉 “외부 고용”에 종사하게 된다. 이처럼 가계 외부에서 임노동을 종사함에 따라 독자적인 농업 경영은 급속히 해체되며, 결국 이들은 자신의 분여지를 인근의 부유한 농민에게 임대하기에 이른다. 부유한 농민은 이 임차지에서 생산된 생산물을 자가 소비가 아닌 유통용 상품으로 전환한다. 이 과정에서 “인민의 빈곤화”와 자본주의의 발전, 그리고 시장의 확대가 동시적으로 전개된다.

 

생산 규모의 확대로 농업 경영이 고도화된 부유한 농민은 더 이상 종전과 같이 자급자족적 생산에 의존하지 않으며, 신발과 같은 생필품을 시장에서 직접 구매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가난해진 농민 역시 생산 수단의 부재로 인해 생필품을 시장에서 구매할 수밖에 없으므로 시장 내 상품 수요가 창출된다. 이때 기술 혁신을 이룩하여 V. V. 선생의 경탄을 자아냈던 그 진취적인 농민이 생산한 대량의 곡물이 시장에 공급된다. 한편, 인근의 수공업자들 역시 농업 쇠락에 따라 곡물 자급이 차단되면서, 곡물 구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수공업 생산을 확대해야 하는 동일한 구조적 조건에 직면한다. 그러나 수공업 부문에서도 축적된 자본을 보유한 소수의 상위 가구만이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부대 노동을 가난한 농민에게 위탁하는 방식으로 생산을 확장한다. 반면 대다수 소규모 수공업자는 생산 확장 (확대)가 한계에 봉착하므로 자본을 가진 원청업자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임노동자”로 전락한다. 이러한 동학 속에서 인민의 빈곤화, 자본주의의 발전, 시장의 확대가 재차 촉진되며, 사회적 분업은 한층 더 고도화된다.

 

이러한 역사적 이행의 시작과 끝을 단편적으로 규분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나, 본질적인 핵심은 상품 경제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성장이라는 단일하고 유기적인 발전 동력이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다. 농촌 지역에서 나타나는 “농민층 분화”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이행의 초기 단계를 보여주며, 도시의 대규모 자본주의는 그 최종적 경향성을 입증한다. 따라서 이 두 현상을 분리하여 개별적으로만 접근한다면 인민의 빈곤화와 자본주의의 발전을 포함한 어떠한 구조적 현실도 타당하게 규명할 수 없다.

 

근거 없는 주장을 남발하면서 해당 과정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지적 역량을 상회하는 (그로 인해 “비판적 사고를 지닌 개인의 발달된 도덕적 소양”과 충돌하는) 현상에 대해 “논리적 불능”, “우연적 결과”, 또는 “미해결 과제”라는 단정만을 남겨 둔 채 연구를 중단하곤 한다.

 

따라서 실제로 “미해결 상태에 놓인” 것은 그들이 제기한 주장 그 자체일 뿐이다.



| 1893년 봄에 집필

1937년에 처음으로 《볼셰비키》 제21호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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