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

 

실제로 "시장 문제"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형(A 영역의 자본가들과 W 영역의 직접 생산자들 사이의 교환을 보여주는)과 표(6명의 생산자들의 자연경제가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에서 실증한 과정에 대한 인민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의 개념들을 비교해보는 게 최선이다. 만약 우리가 도형을 선택한다면, 아무런 해명도 얻을 수 없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일종의 "우연"에 해당되고, 자본주의의 출현은 "우리가 잘못된 경로를 선택"하거나 당국에 의해 "이식된" 때문인 것으로 되어버린다. 무슨 이유로 "대중은 빈곤해지는가"? 이 질문 역시 도형에 의해서는 답을 얻을 수 없으며, 인민주의자들은 대답 대신에 그 문제를 "신성한 체제"나 제대로 된 경로로부터의 이탈 같은 감상적인 문구로 처리해버리거나,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같이 지어내기 딱 좋은 헛소리를 잃어버린다. 자본주의를 해명할 능력의 부족과, 현실을 연구하고 해명하기보다는 유토피아를 선호하는 자세는 자본주의의 의의와 힘을 부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것은 마치 성장을 위한 기운을 끌어올 바탕이 없는 구제불능의 병약자와 같다. 그리고 만약 그가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을 생산함으로써17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의 상태가 무의미하고 거의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만큼만 개선될 수 있을 거라는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본주의의 기술적 발전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에게 부족한 건 바로 그러한 발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한다." 그 자본주의는 나라 전체를 포괄해야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의 보편적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표를 선택한다면, 자본주의의 발전이나 인민들의 빈곤화가 우연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사회적 분업에 기초한 상품 생산의 성장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현상들이다. 시장의 문제는 완전히 해소되는데, 시장이 다름아닌 분업과 상품 생산의 발현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 발전은 가능성(문건의 저자가 기꺼 입증한 게 이 정도다)으로서 뿐만 아니라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되는데, 사회적 경제가 분업과 상품 형태의 생산에 기초하는 순간 기술적 진보는 필시 자본주의의 강화와 심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겨난다. '우리는 왜 두 번째 견해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무슨 기준으로 그것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들 말이다. 그리고 그 답을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바로 동시대 러시아의 경제 현실에서 나타난 사실들에 의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표의 중심점은 상품에서 자본주의 경제로의 이행, 상품 생산자들이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로 분화되는 데 있다. 그리고 우리가 동시대 러시아의 사회·경제 현상들에 눈을 돌려본다면, 그 중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소생산자들의 분화다. 농민들을 예로 들어본다면, 한편에는 토지를 포기하고 경제적 자립을 상실한 채 포를레타리아로 변해가는 다수의 농민들이 있는 반면, 또 한편에서는 지속적으로 작물 면적을 확대하고 개량된 농업 방식을 받아들이는 농민들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농민들은 한편으로는 농장 재산(가축과 농기구)을 잃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개량된 농기구를 확보하고 기계 등을 조달하기 시작하고 있다(V. V.농민 농업에서의 진보적 경향들을 참조할 것).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분여지를 매각하거나 임대해주면서 토지를 포기해가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분여지를 임차하고 개인 소유 토지를 탐욕스럽게 사들이고 있다. 이 모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들이자 아주 오래 전에 기정사실화된 부분이며, 그에 대한 설명은 우리의 "공동체" 농민들 역시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나누고 있는 상품경제의 법칙으로만 가능하다. 만약 마을의 수공업자들 을 예로 든다면, 개혁 이후의 시기에 새로운 산업들이 생겨나고 예전 산업들은 더욱 급속히 발전했을(방금 언급한 농민층의 분화와 사회적 분업이 진전된 결과로)20 뿐만 아니라, 그에 더해 다수의 수 공업자들은 점점 더 가난해져 경제적 독립을 상실한 채 극심 한 빈곤으로 침몰한 반면 얼마 안 되는 소수는 다수의 희생을 토대로 부를 쌓아 막대한 양의 자본을 축적하고 원청업자로 변신하는 동시에 시장을 독점하게 됐으며, 그로 인해 결국엔 압도적 다수의 수공업 분야에서 자본주의적 대규모 가내 생산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됐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나라 소생산자들 사이의 이러한 양극화 경향의 존재는 자본주의와 대규모 빈곤화가 서로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실 제로는 서로가 서로를 조건 짓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 며, 자본주의가 이미 러시아 경제 생활의 주된 배경이 되고 있 다는 사실을 반박의 여지 없이 입증해준다.

 

농민층의 해체라는 사실이 "시장의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 해준다고 말해도 전혀 모순되지 않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또한 악명 높은 "시장 문제"에 관한 바로 그 (현재의) 설명방식은 수많은 불합리한 구석들을 감추고 있다는 점 역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거론되는 공식은 가장 믿을 수 없는 가정들, 즉 사회의 경제 시스템은 일부 집단——"지식인들"이나 "정부"——의 의지에 따라 구축되기도 하고 파괴될 수도 있다거나(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있을까", 러시아는 자본주의를 거쳐"아만 하는가", 마을 공동체는 유지"되어야만 하는가" 같은 그 밖의 질문들은 제기될 수 없다), 자본주의가 인민들의 빈곤화를 막아준다든지, 시장이 자본주의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이자 그 발전을 위한 특수한 조건이라는 가정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합리한 구석들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릴 수가 없게 된다.

 

정말 "인민 대중이 가난에 처해 있고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러시아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누군가가 "물론 그럴 수 있지. 자본주의는 소비품 때문에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 때문에 발전하는 거니까"라 말한다고 상상해보자. 분명 그런 대답은 자본주의 국가의 총생산성이 주로 생산수단 때문에(즉 소비품 보다는 생산수단 때문에) 증가한다는 아주 올바른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대답은 앞서의 질문에 대한 일탈의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아주 명백하다. 삼단논법에서 소전제가 옳아도 대전제가 터무니없다면 정확한 결론을 이른바 시장 문제에 관하여 이끌어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대답은(반복해서 말하건대) 자본주의가 발전해 나라 전체를 아우른 상태에서 보다 높은 기술적 단계(대규모 기계 공업)로 넘어가고 있다는 걸 이미 전제로 두고 있는 반면, 질문 자체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소규모 생산이 대규모 생산으로 대체될 가능성에 대한 부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 문제""가능성""필요성"에 대한 알맹이 없는 추측의 영역에서 굳건한 현실의 기반, 즉 러시아의 경제 질서가 어떠한 형태를 취하고 있고 다름 아닌 그러한 형태를

띠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해명하는 영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나는 이러한 명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데이터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내가 갖고 있는 자료로부터 몇 가지 예들을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소생산자들의 분화와 그들 사이에 빈곤화 및 (상대적으로) 대규모 부르주아 경제가 생겨나는 과정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하기 위해 유럽 러시아의 여러 주들에서 순전히 농업에만 의지하는 세 개 군들의 데이터를 인용해보겠다. 타우리다 주의 드네프르 군과 사마라 주의 노보젠스크 군, 그리고 사라토프 주의 카미신 군이 그 대상이며, 데이터는 젬스트보 통계 초록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선택된 군들이 전형적이지 않다는(농노제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고 개혁 이후에야 주로 정주가 이뤄진 외판 지역에서는 중심부에서보다 분화가 더 빨리 진행됐다), 혹시나 제기될지 모를 주장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다음을 미리 일러둔다.

 

(1) 전적으로 러시아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이주민 농장은 0.6 퍼센트) 공동체 농민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타우리 다 주의 주요 3개 군들 중에서 드네프르 군을 선택하였다.

 

(2) 노보젠스크 군의 경우, 데이터가 오로지 러시아 (공동체) 인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노보젠스크 군 통계 보고서, 432~9 , 세로줄a를 참조할 것), 이른바 농장 농민들, 즉 공동체를 떠나 구입 또는 임차 토지에 별도로 정착한 농민들은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농업[21]의 직접적 대표 격인 그들을 포함 시켰더라면 분화를 훨씬 더 잘 드러내 보여주었을 것이다.

 

(3) 카미신 군의 경우 데이터는 오로지 대러시아 (공동체) 인 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초록에 등장하는 분류는——드네프르 군의 경우——가구 당 작물 면적에 따른 것이며, 다른 군들의 경우에는 농사용 가 축의 수에 따른 것이다.

 

<표 참조>

 

가난한 집단은 토지를 경작하지 않거나 가구당 10데샤티나 미만의 작물 면적을 가진——드네프르 군의——가구들이 포함되며, 노보젠스크와 카미신 군에서는 가축이 없거나 한마리뿐인 가구들이다. 드네프르 군에서 중간 집단은 10~25데샤티나의 작물 면적을 가진 가구들이 포함되며, 노보젠스크 군에서는 2~4마리의 농사용 가축을 보유한 가구, 카미신 군에서는 2~3마리의 농사용 가축을 보유한 가구들이 거기에 속한다. 부유한 집단은 25대사대나 이상(드네프르 군)의 작물 면적을 보유한 가구들이 나 대 마리(노보젠스크 군) 또는 세 마리(카미신 군) 이상의 농사용 가축을 보유한 가구를 말한다.

 

이런 데이터들로부터 아주 명백한 사실은 이 나라 농업과 공동체 농민들 사이에 진행되는 과정이 전반적인 빈곤화와 몰락이 아니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상당수 농민들(가난한 집단)——평균적으로 약 절반 가량——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지역 농민 전체의 농업 중에서 극히 미미한 일부——작물 면적의 (평균) 13퍼센트——만을 차지하고 있으며, 가구당 경작 면적은 3~4데샤티나에 불과하다. 그 정도의 면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타우리다 주에서 이른바 "외부 고용"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농사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려면 한 농가가 17~18데샤티나의 경작 면적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였다. 확실히 하위 집단의 구성원들은 이미 농사보다는 외부 고용을 통해, 즉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측면이 훨씬 더 강하다. 그리고 이 집단의 농민들이 처한 상황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좀 더 구체적인 통계에 눈을 돌려보면, 정확히 해당 집단이 농업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분여지를 임대해주며 작업에 쓸 농기구를 보유하고 있지 못해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최대의 임시 고용층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집단의 농민들이 바로 농촌의 포를레타리아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들 공동체 농민들 사이에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또 다른 집단이 생겨나고 있다. 상위 집단 농민들은 하위 집단 농민들보다 7~10배나 더 큰 면적을 경작하고 있다. 한 가족이 농사만으로 별 탈 없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정상적인" 경작 면적과 비교해보면, 그들이 경작하는 면적이(가구당 23~40대사대나) 두 배에서 세 배 더 넓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농민들은 이미 곡물을 거래해 소득을 얻기 위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상당한 저축을 해두고 그 돈을 농장과 농업 방식을 개선하는 데, 예를 들어 농기계와 개량된 농기구를 사들이는 데 사용한다. 일례로 노보젠스크 군 전체에서 가구의 14퍼센트가 농기구를 개량했는데, 상위 집단 농가에서는 42퍼센트가 농기구를 개량했으며(따라서 상위 집단 농민들은 개량된 농기구를 소유한 군내 전체 가구들 중 75퍼센트를 차지한다) "농민층"이 소유한 전체 개량 농기구 가운데 82퍼센트가 그들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었다.23 상위 집단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노동력만으로는 더 이상 경작을 할 수 없어 고용된 노동력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노보센스크 군에서 상위 농가의 35퍼센트는 고정적으로 임금노동자들을(수확철 같은 매만 고용되는 노동자들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고용한다. 이는 드네프르 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히 말해, 상위 집단의 농민들은 의심할 여지 없는 부르주아 계층이었다. 오늘날 그들의 영향력은 (고리데금업자들과 '클락'들처럼) 다른 생산자들에 대한 약탈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 독립적인 생산 체계24에 기초하고 있다. 농민층의 5분의 1밖에 차지하지 않는 이들 농민들의 수중에는 전체 경작 면적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세 개 군 모두의 전체적인 평균 면적을 따졌을 때 말이다). 만약 우리가 이들 농민의 노동(즉 수확)생산성이 땅을 파서 근근이 먹고 사는 하위 집단 프롤레타리아들의 생산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사실을 명심한다면, 곡물 생산의 주된 원동력은 농촌 부르주아지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진 농민층의 이러한 분화가(인민주의자들은 이 과정에서 "대중의 빈곤화"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시장"의 규모, 즉 상품으로 전환된 곡물의 비율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까? 분명 그 비율은 상당한 폭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상위 집단 농민들이 소유한 곡식 중 상당한 양이 그들 자신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훨씬 뛰어넘어 시장으로 흘러들어간 반면, 하위 집단의 구성원들은 외부에서 일해 벌어들인 돈으로 부족한 곡물을 구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한 정확한 통계를 인용하기 위해서는 이제 젬스트보 통계 초록이 아닌 V.Y. 포스트니코프의 책남부 러시아의 농민 농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는 젬스트보 통계 데이터를 활용해 타우리다 주의 주요 세 개 군(베르단스크, 메리토폴, 드네프르)에서의 농민 농업을 설명하고, 서로 다른 집단별로(작물 면적에 따라 (1) 땅을 전혀 경작하지 않는 가구, (2) 5데사티나 미만을 경작하는 가구, (3) 5~10데사티나를 경작하는 가구, (4) 10~25데사티나를 경작하는 가구, (5) 25~50데사티나를 경작하는 가구, (6) 50데사티나 이상을 경작하는 가구, 이렇게 6개의 범주로 나뉜다) 그들의 농업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집단별로 시장과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각 농장의 경작 면적을 다음의 4개 구역으로 나누고 있는데,


(1) 파종을 위해 필요한 종자를 제공하는 농장 서비스 구역

(2) 가족과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한 곡물을 제공하는 식량 구역,

(3) 농사용 가축을 위한 사료를 제공하는 사료 구역,

(4) 마지막으로 상품으로 전환돼 시장에서 처분되는 생산물을 제공하는 상업 또는 시장 구역이 그것들이다. 오직 마지막 구역만이 현금 수입을 제공하는 반면, 다른 부문들은 현물, 즉 농가에서 소비되는 생산품만을 산출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서로 다른 경작 면적을 보유한 농민 집단들의 각각의 땅 크기를 계산하면서 포스트니코프는 다음의 표를 제시하고 있다.


| 경작 면적 100대시티나 중 | 현금 소득 | 타우리다 주 3개 군 내 | 토지 (미지역) |

| 토지 (미지역) | 토지 (미지역) | 토지 (미지역) | 토지 (지역) | 토지 (지역) | 토지 (지역) | 토지를 제공하는 (미지역) | 토지를 제공하는 (미지역) | 토지를 제공하는 (지역) | 토지를 제공하는 (지역) | 토지를 제공하는 (지지) | 토지를 제공하는 (지지) | 토지를 제공하는 (지지) |

| 5대시티나 미만 경작 | 6 | 90.7 | 42.3 | -39 | - | - | 34,070 | - | 3.5 |

| 5~10대시티나 | 6 | 44.7 | 37.5 | +11.8 | 3.77 | 30 | 140,426 | 16,815 | 8 |

| 10~25대시티나 | 6 | 27.5 | 30 | 36.5 | 11.68 | 191 | 540,093 | 194,433 | 16.4 |

| 25~50대시티나 | 6 | 17.0 | 25 | 52 | 16.64 | 574 | 494,095 | 256,929 | 34.5 |

| 50대시티나 이상 | 6 | 12.0 | 21 | 61 | 19.52 | 1,500 | 230,583 | 140,656 | 75 |


그리고 표에 덧붙이는 주석은 다음과 같다.

 

(1) 끝에서 두 번째 세로줄은 포스트니코포가 제시한 게 아니라 내가 직접 편집한 것이다.

 

(2) 포스트니코포는 상업 부문 전체에 밑을 심고 평균적인 산출량을 거둬들이며 평균기에 곡물을 내다 판다는 가정을 토대로 현금 수입을 계산하고 있다.

 

우리는 이 데이터를 통해 농장이 클수록 상품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띠고 판매를 위해 재배하는 곡물의 비율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요한 곡물 재배자라 할 수 있는 상위 두 집단의 농민들은(그들은 전체 작물 면적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자신들의 전체 농업 생산물의 절반 이상을(52퍼센트와 61퍼센트) 내다 판다.

 

만약 농민층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지지 않았다면, 달리 말해 경작 면적이 모든 "농민들" 사이에 "균등하게" 분할됐다면, 그들 모두는 중간 집단(25데사타나 미만을 경작하는 가구들)에 속했을 것이고, 전체 곡물의 36퍼센트에 불과한 518,136데사타나의 면적에서 생산되는 생산품만(1,439,26736퍼센트는 518,136) 시장에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표에서 보듯이 오늘날엔 전체 곡물의 42퍼센트인 608,869데사티나의 면적에서 생산되는 생산품들이 시장으로 쏟아져나오고 있다. 따라서

 

"대중의 빈곤화", 40퍼센트에 달하는 농가들(10대사다니 미만을 경작하는 가난한 집단)의 완전한 퇴조, 농촌 프롤레타리아의 형성은 90,000대사다니[25]의 토지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추가로 시장에 쏟아져나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나는 농민층 분화의 결과물로서의 "시장"의 성장이 여기에만 국한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멀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농민들이 개량된 농기구를 확보하는 현상, 즉 자신의 저축을 "생산수단의 생산"으로 돌리는 현상을 지켜봤었다. 그리고 곡물뿐만 아니라 또 다른 상품인 인간의 노동력도 시장으로 쏟아져나오는 것도 목격했다. 내가 그런 것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오직 협소하고 특정한 목적, 즉 이곳 러시아에서 대중의 빈곤화는 실제로 상품과 시장경제의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상품 유통으로 맨마지막에 가장 천천히 끌려나오는 것이 곡물 같은 생산품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오로지 농촌 지역만을 예로 듣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럼 이제부터는 순수하게 공업 지역인 모스크바 주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수공업에 관한 수량은 결작 논문들이 담겨 있는 모스크바 주 통계 보고서6, 7권에서는 케스트보 통계학자들이 서술한 농민 농업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 나는 "레이스 산업"에 관한 논문에서 한 단락26을 인용하는 것에만 그칠 텐데, 거기에는 개혁 이후 시대에 농민 수공업이 특히나 급속하게 발전한 과정과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레이스 산업은 1820년대에 포돌스크 군 보로노보 음의 인접한 두 마을에서 생겨났다. "1840년대에 그것은 인근 마을들로 천천히 확산되기 시작했으나, 그다지 넓은 지역까지 퍼져나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60년대에 접어들면서, 특히 마지막 3, 4년 동안 인근 시골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현재 이 산업이 시행되고 있는 32개 마을들 중에서 1820년에 2개 마을, 1840년에 4, 1860년대에 5, 1870~18757, 1876~187914개 마을이 레이스 산업을 시작했다.

 

해당 논문의 저자는 "이런 현상의 원인들, 즉 정확히 최근 몇 년 사이에 해당 산업이 그토록 급속히 확산된 원인들을 조사해보면, 한편으로는 그 시기 농민들의 생활 조건이 지독하게 악화된 반면, 다른 한편으로 주민들——그 중 일부는 전보다 더 나은 상황에 있다——의 요구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확증하기 위해 저자는 내가 표의 형태로 제시한 아래의 데이터를 모스크바 케스트로 통계로부터 빌려오고 있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말을 이어진다. "이 수치들은 해당 읍의 말, , 작은 가축의 전체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런 부의 증가가 특정 개인들, 다시 말해 두세 마리 이상의 말들을 소유한 가구들의 묽으로 돌아갔다는 명백한 증거다."

 

"결과적으로 소나 말 중 어느 것도 보유하고 있지 못한 농민들 수의 증가와 더불어 자신의 토지를 더 이상 경작하지 않는 농민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가축도 없고, 따라서 동물의 배설물로 만든 거름도 충분치가 없다. 땅은 이미 지력을 다했고, 경작할 가치가 없다. 굶주림을 피해 자신과 가족들이 먹을 식량을 얻기 위해서는 남성들이 일부 공업에 종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전에는 농장일이 한가할 때 남성들이 그런 일을 하곤 했으나, 이제는 가족 중 다른 구성원들도 외부에서 일자리를 찾아야만 한다."

 

<표 참조>

 

우리가 표에서 제시한 수치들은 무언가 다른 사실을 보여 주었다. 해당 마을들에서는 두세 마리의 말이나 소를 보유한 사람들의 숫자도 증가했다. 그 결과 그 농민들의 부도 증가했으나, 동시에 이러이러한 마을에서 모든 여성과 아이들이 공업에 종사한다고도 우리는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런 마을들에서 어떤 식의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가정 형편을 보다 자세하게 알아낸 다음, 아마도 시장에 내다 팔 상품들을 생산하게 만드는 이러한 강력한 욕구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확인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어떤 운 좋은 상황에서 농민 인구 가운데 보다 강력한 개인과 가족들이 점차적으로 생겨났는지, 어떠한 환경이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었으며, 어떠한 사회적 조건들이 그들의 부를 급속히 늘리고 마을의 특정 부류로 하여금 다른 부류들과 뚜렷이 구분될 정도로 성장하게 만들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조사하는 작업을 여기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이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농촌 마을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 하나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마을에서 어떤 농민이 동료 주민들 사이에서 건강하고 힘채고 성실한 일꾼으로 평판이 자자하다고 치자. 그는 대부분 아들들로 구성된 대가족을 이끌고 있을 것이고, 자식들도 힘채고 건실한 걸로 정평이 나 있다. 그들 모두는 따로 분가하지 않고 다같이 모여산다. 그들은 네댓 명당 하나의 분여지를 부여받는다. 물론 그걸 경작하기위해 가족 구성원 모두의 노동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래서 아들 중 두셋은 정기적으로 외부나 지역의 공장에서 일하다가 건조를 만드는 철에만 잠시 공장 일을 접고 밭에서 가족을 돕는다. 가족의 개별 구성원들은 자신의 소득을 따로 챙기지 않고 공동으로 모은다. 다른 상황이 뒷받침해주는 경우, 하나로 합친 수입이 가족이 필요로 하는 지출을 훨씬 초과한다. 그 결과 돈이 모이고, 가족은 더 나은 조건에서 공업에 종사 할 수 있게 된다. 즉 원자재를 직접 현금으로 구매하고, 생산한 제품들을 값나갈 때 판매하며, 남녀 중개인들같이 노동이외에 고용해야하는 사람들의 도움도 일체 건너뛸 수 있게 된다.”

 

“(그들은) 한두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독자적으로 어떤 일을 할 가능성을 상실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집안일을 맡기는게 가능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이와 유사한 상황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그 능력있는 가족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통해서 말고도 또 다른 이윤을 얻을수 있게 된다. 물론 부농(클락)이나 고리대금업자라 알려진 개인들이 그런 가족들 중에서 생겨나는 경우에 대해서는 여기서 따로 이야기하지않겠다. 우리는 농촌 인구들 사이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초록의 2권과 61부에서 제시된 표들은 대부분의 경우 농민 중에서 어떤 한 부류의 상황들 이 악화됨에 따라 다른 소수 부류나 개인들의 부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공장 일자리가 확산되고, 외부 세계와 도시, 이 경우에는 모스크바와의 교류가 점점 더 잣아질수록, 모스크바의 풍습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마을에 침투해 점점 더 부유해진 이들 가족과 맨 먼저 맞닥뜨리게 된다. 그들은 사모바르28와 식탁 그릇, 컵을 사들이고, ‘좀 더 말쑥한옷을 입는다. 남자들이 천 으로 된 신발 대신에 부츠를 신기 시작하고 여성들이 가죽 신 발과 부츠를 신는 걸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기면서 이른바 말 쑥한 옷차림이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밝고 여러 가지가 섞인 면직물과 스카프, 무늬가 많이 들어간 모직 촐과 장신구들을 선호한다.”

 

농가에서 아내가 남편과 자신, 그리고 아이들이 입을 옷 을 만드는 건 아주 오래된풍습이었다. …… 그들이 직접 아 마를 키우는 한,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천과 기타 재료를 구 입하는 데 돈이 덜 들어가고, 그 돈은 닭과 달걀, 버섯, 산딸기, 남는 실타레나 천 조각을 팔아서 마련된다. 나머지는 모두 집 에서 만드는 것이다. 그 모든 품목들을 집에서 농가 여성들이 모두 만드는 상황과 그들이 발일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모두 그 런 일에 쏟아붓는다는 사실은 현재 보로노보 읍내 마을들에서 레이스 산업이 왜 그렇게 천천히 발전하는지를 설명해준다. 레이스는 집안의 모든 여성들이 아마포를 갖거나 천을 쌓 필요가 없는 대가족이나 보다 잘사는 집안의 젊은 여성들이 주로 만든다. 그러나 값싼 옥양목이 점차 아마 섬유 제품을 물아내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상황이 조성됐다. 아마 작황이 떨어지거나 아내가 남편과 자신을 위해 붉은 옥양목 셔츠와 좀 더 맵시 좋은 드레스를 만들고 싶어하게 되면서, 집에서 농민들의 의복으로 쓸 다양한 종류의 리넨 천과 스카프를 싸던 풍습이 점차 사라지거나 아주 제한적으로만 이뤄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의복 자체도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거기엔 공장에서 만든 옷이 집에서 찬 옷을 대신하게 된 것도 부분적으로 한 몫을 차

지했다.”

 

인구의 다수가 판매용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갖는 노력을 다 쏟고 심지어 아이들에게조차 그런 일을 시키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서 설명된다.”

 

주의 깊은 관찰자의 이와 같은 소박한 설명은 사회적 분업이란 과정이 농민 대중 사이에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토지의 상품 생산 강화 및 결과적인 시장의 강화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생산자를 시장으로 이끌어내는 바로 그 관계 덕분에 상품 생산 자체가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로 귀결돼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