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의 사회

 

지금 다루는 저작들은 종종 실패의 역사로 보기도 한다. 사실상 소외된 자들을 대변할 정치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이 실종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은 재활용되지도 못하는 쓰레기처럼 구겨지거나 처분될 위기에 놓였으며, 심지어 녹슨 건전지와 같이 활용되지도 못한 채 해고되거나, 부득이하게 사업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지금도 반복된다. 우리에게 어두운 시절’은 수많은 탈락을 겪거나,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일들이 발생한다. 성공의 관점에서 볼 때 실패로 규정된 탈락의 연속이 거대한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잊기가 대단히 쉽다. 성공한 이들은 범접할 수 없는 하나의 신화처럼 다뤄지기도 하고, 당사자들은 장담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쉽게 놓치 못한다.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정치는 이제 고였다. 경력을 답습한 고인물들이 모여 정치를 논하고, 샛별을 외면하여 경제로 학살하는 일들을 자행하면서도, 그들 모두는 존경과 찬사를 받는다. 이미 의회 정치의 기능은 실종된 지가 오래됐다. 정부 여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이러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펴는 정책마저 소수의 막대한 임금과 자금으로 유지되고 거대한 굴레에 속박되어 너도나도 이 경쟁의 정치판에 뛰어들고 만다. 정치가 고통을 겪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보다 어느 순간부터 성공한 자들을 위해 자리매김한 것은 이러한 고인 정치가 보여주는 하나의 단편적인 현상이다. 모두 초심을 잃었다.   

 

기술 분야에서 기계도 오류를 저지른다. ‘디버그란 용어는 이러한 오류를 발견하는 일이다. 이물질이 쌓인 기계처럼, 기술적 실수는 현상에 대한 오류를 파악할 수 있다. 고도의 문명과 기술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이보다 못한 인간들은 더 많은 경쟁으로 편을 갈라 서로를 지배할 생각만 하고 있다. 성공에 대한 갈증은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고, 그 결과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윗물이 고였으니 아랫물은 오죽하겠는가. 이러한 호소로도 부족한 탈락의 세상으로 인해 지금의 소외된 이들은 고통에 침묵할 이유만 더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오늘도 새로운 면접을 앞두고 있다. 어쩌면 탈락이 예정된 면접을 겪고 있다. 처음에는 주어진 조건을 탓했으나, 지금은 이제 이 탈락도 계속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긴다. 모든 일도 처음부터 잘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실패라 불리던 탈락의 연속이 모여 지금의 자신을 이룬다. 단추와 신발끈 묶기부터,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기, 사람과 관계를 맺기 등, 이 모두가 적응과 탈락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성공의 안락이 주는 기대와 편의가 늘상 새로운 시각에 대한 불안으로 자리매김한 이상, 실패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은 주어진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전히 임하고 있다면, 이 사회가 그러한 실패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묻게 된다. 즉, 준비된 조건에도 이렇게 치열해야만 했던 이유가 실패가 주는 좌절에 안주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이 실패의 관점이 주는 교훈은 기나긴 역사에서 현재를 묻는다. 이처럼 더 많은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일은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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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이 추가 도표는 본문에서 언급한 24곳 농가의 예산에 관한 데이터를 담고 있다.

 

오스트로고즈스크 군의 전형적인 농가 24곳의 구성과 예산요약

 

표에 대한 설명

 

1. 첫 번째 21개의 세로줄은 통계 초록에서 통째로 가져왔다. 22번 세로줄은 호밀, , 귀리와 보리, 기장과 메밀, 기타 곡물, 감자, 채소, 건초(8개의 세로줄)에 관한 통계 초록의 세로줄들을 합한 것이다. 왕겨와 짚을 제외한 곡물(23번 세로줄)로 벌어들인 수입이 어떻게 산출됐는지는 본문에서 설명한 바 있다. 24번 세로줄은 말, , , 돼지, 가금류, 가죽과 양털, , 지방과 고기, 유제품, 버터(9개의 세로줄)에 관한 통계 초록의 세로줄들을 합한 것이다. 25~29번 세로줄은 통계 초록에서 통째로 가져왔다. 30~34번 세로줄은 호밀, , 기장과 메밀, 감자, 채소, 소금, 버터, 지방과 고기, 생선, 유제품, 보드카와 차(12개의 세로줄)에 지출된 비용에 관한 통계 초록의 세로줄들을 합한 것이다. 35번 세로줄은 비누, 등유, 양초, , 식기(4개의 세로줄)에 지출된 비용을 제시한 통계 초록의 세로줄들을 합한 것이다.

 

2. 8번 세로줄은 임차 토지와 분여지에서 경지의 규모(통계 초록에는 여기에 관한 세로줄이 따로 있다)를 데샤티나로 합산해 얻은 것이다.

 

3. '수입원''지출의 분포'에 관한 세로줄에서 맨 아래 줄들의 수치는 수입과 지출의 금전적인 부분을 가리킨다. 25번에서 28번 세로줄, 그리고 37번에서 42번 세로줄에서는 소득(혹은 지출)이 완전히 화폐로 환산돼 있다. 금전적인 부분은 총소득에서 가구별로 소비한 금액을 제하는 방식으로 산출되었다(필자는 그것을 별도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도표 참조>

 

부록 2

 

스트루베 선생은 '계급투쟁과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러시아의 정치경제학자들에게 완전히 낮선 것이다'라는 논지를 니콜라이-온에 대한 비판의 기초로 삼고 있는데, 이는 아주 올바른 것이었다. 나는 크리벤코 선생처럼 한 편의 글 (4단짜리)을 스트루베 선생의 사고 체계 판단의 토대로 삼을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가 내놓은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건 아니며 따라서 그의 글 전체가 아닌 일부의 진술들만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밝혀두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부분은 어쨌든 아주 정확한 판단이었다. 니콜라이-온 선생의 근본적인 오류는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한 계급투쟁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런 하나의 오류를 수정하는 건 그의 이론적 명제와 연구들로부터도 반드시 사회민주주의적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계급 투쟁을 간과한다는 건 실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엄청난 오해를 드러내는 것이며, 아주 열심히 마르크스주의의 엄격한 신봉자 행세를 해왔다는 점에서 니콜라이-온 선생은 더욱더 비난받아 마땅하다. 마르크스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는 사람이 어떻게 계급투쟁의 원칙이 그의 사고 체계 전체의 중심축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니콜라이-온 선생이 러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부분만을 예외로 한 채 마르크스의 이론을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엔 우선 마르크스의 이론이 이 나라의 체제를 설명해준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론을 수정해, 적대적 관계와 계급투쟁이 내재돼 있지 않은 별개의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생각해내야 했을 테니가 마르크스 이론과 자본주의는 입에 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마르크스주의의 A만 받아들이고 B는 거부하려면, 명확한 단서와 함께 그 이유를 설명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니콜라이-온은 그런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투쟁을 무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사실로 인해 이 사회의 사회적·정치적 삶의 모든 실제 내용들을 무시하는 것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 할 때 실현되기 힘든 소망들의 영역에서 불가피하게 맴도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스트루베 선생이 계급투쟁을 이해하지 못한 니콜라이-온 선생을 가리켜 공상주의자라고 결론내린 건 지극히 옳았다. 또한 '사회''국가', 즉 부르주아 관념론자들과 정치인들에게 호소한다는 건 사회주의자들에게 혼란만 안겨주어 그들로 하여금 프롤레타리아트의 최대 적들을 자신들의 동맹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해방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강화하고 명확히 하고 조직화하도록 돕기보다는 오로지 방해만 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계급투쟁을 이해하지 못했던 니콜라이-온 선생은 반동적이기도 했다.

 

스트루베의 글을 언급했으므로, 루스코에 보가츠트보6호에 실린 니콜라이-온 선생의 답변을 다루지 않을 수 없겠다.¹³

 

니콜라이-온은 공장 노동자가 인구보다 느리게 증가하고 있다는 자료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 그 '역사적 임무'의 달성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자본주의는 자신의 발전을 스스로 억제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이 바로 '서구 유럽이 따랐고 또 여전히 따르고 있는 것과는 구별되는 조국의 발전 경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천 배 더 올바른 이유다."(러시아가 바로 그러한 자본주의 경로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인물이 이런 글을 썼다니! 그리고 니콜라이-온 선생에 따르면, "역사적 임무"가 달성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마을공동체에 적대적인 경제 동향(즉 자본주의)이 그 통합의 의미가 아주 특징적인 서구 유럽이나 특별한 영향력을 지니며 나타나기 시작한 북아메리카와는 달리 조금도 드러나지 않은 채, 그 존재의 기반 자체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여기서의 그의 주장은 저 유명한 V. V. 선생이 고안해낸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반론의 아주 표준적인 형태다. 그것은 '인민의 삶에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문제를 국가적인 사안으로 인식했던 정부 관리의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즉 그 '임무'를 달성하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치'라는 것이다! 이런 영리한 주장이 지닌 다른 모든 미덕들은 제쳐놓고서라도, V. Y. 선생은 자본주의의 바로 그 '임무'를 어처구니 없고 말도 안 되는 거짓되고 편협한 방식으로 이해했고, 니콜라이-온 선생은 분명 지금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이들 신사양반들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자신들의 이해의 편협함을, 합법적인 언로가 봉쇄되어 있어 죽은 사람처럼 중상모략에 시달리고만 있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탓으로 돌리는 무례를 범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지켜본 바와 같이, 자본주의의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역할은 노동을 사회화하면서 동시에 바로 그 과정이라는 기제를 통해 "노동계급을 규율하고 단결시키고 조직화해냈다"는 사실에 있다. 즉 자본주의의 작동은 투쟁을 위해 그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의 "반란"을 조직화해냈으며, 그들을 단결시켜 "빼앗은 자들로부터 빼앗긴 것을 되찾아오고" 정치권력을 쟁취하며 "소수의 강탈자들"로부터 생산수단을 빼내와 사회에 되돌려주는 걸 가능케 했다.(자본, 650⁴⁰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공식화한 방식은 바로 이랬다.

 

물론 여기서 '공장 노동자들의 숫자'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만을 이야기했고, 그런 기준들은 '공장 노동자들의 숫자'와는 아무런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없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를 예외적으로 해석한 자들은 이를 잘못 해석해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의 사회화가 공장 노동자들이 한 지붕 아래 일하는 걸 가리키고, 따라서 자본주의의 진보적인 역할도 그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는…… 즉 공장 노동자들의 수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만약 공장 노동자들의 수가 증가한다면 자본주의는 자신의 진보적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고, 감소한다면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잘못 완수하고"(니콜라이-온의 글 가운데 103) 있는 것이며, 그래서 '지식인계급''조국을 위한 다른 발전 경로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지식인계급은 그렇게 '다른 경로'를 추구하는 작업에 나섰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그걸 찾아 헤매며, 자본주의는 실업과 위기로 이어질 뿐이기에 '잘못된' 발전 노선이라는 걸 입증하려¹¹ 전력을 다해왔다. 그들은 우리가 1880년에 위기를 맞이했고, 1893년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으며, 이제 우리에게 만사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이상 그 경로를 벗어날 시기가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부르주아 계급은 우화에 나오는 고양이처럼 "들은 체 만 체 계속 먹기만 한다."¹² 물론 만사가 '잘못' 돌아가면 더 이상 엄청난 이윤을 거둘 수가 없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의 노래를 똑같이 따라 부르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 자본에 힘입어 새로운 철도 건설에 정력적으로 매달린다. 반면 '우리'에게 만사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이유는, 예전의 위치에 있을 때 '우리'가 이미 인민들을 감쪽같이 골라넣고 이제 상인자본만큼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할 산업자본의 영역으로 진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백 퍼센트의 이윤을 생산해낼 '본원적 축적'이 여전히 가능하고 농민들 가운데 부르주아로의 분화가 여전히 완전히 진행되지 않은 유럽 러시아의 동부와 북부 국경 지대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지식인계급은 이 모두를 감지하고 '우리'가 다시 추락으로 향하고 있다며 끊임없이 협박한다. 그리고 새로운 추락이 실제로 우리를 덮친다. 무수히 많은 소자본가들이 대자본가들에 의해 짓밟히고, 무수히 많은 농민들이 점점 부르주아 계급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있는 농업 바깥으로 내몰리고 있다. 빈곤과 실업, 굶주림의 바다는 엄청나게 커져가고, 똑똑한 양심을 지닌 '지식인계급'은 자신들의 예언을 들먹이며 해외 시장의 부재를 우리의 자본주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로 들이대면서 끊임없이 잘못된 경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부르주아 계급은 "들은 체 만 체 계속 먹기만 한다." '지식인계급'이 새로운 경로를 찾아나서는 동안,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식민지로 이어지는 철도 건설을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들을 벌이고, 그곳에서 그들은 스스로 시장을 창출해 부르주아 체제의 매력을 신생국들에게 소개하는 한편 이례적인 속도로 산업과 농업 부르주아 계급을 형성해내며, 생산자 대중들을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리는 실업자 대열로 내동댕이친다.

 

정말로 사회주의자들은 잘못된 경로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고 공장 노동자들의 수가 느리게 증가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애쓰는 데 스스로를 계속 가둬놓을 것인가?

 

이런 유치한 생각¹³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나는 니콜라이-온 선생이 자신이 비판한 스트루베 선생의 글 가운데 일부 단락을 몹시 부정확하게 인용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글을 그대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필자(즉 니콜라이-온 선생)가 인구의 직업 구성에 있어서 러시아와 미국의 차이를 지적할 때——러시아의 경우 유급으로 고용된 인구 전체의 80퍼센트가 농업에 관계된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미국에서는 그 비율이 44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는 러시아의 자본주의 발전이 80퍼센트와 44퍼센트 사이의 차이를 제거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임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여기서 "임무"라는 단어는 아주 부적절하다. 그러나 스트루베 선생의 생각은 명확하다. 즉 러시아의 자본주의 발전(그 발전이 실제로 자본주의적이라는 점은 니콜라이-온 자신도 인정한다)이 농촌 인구를 감소시키겠지만 사실상 그것이 자본주의의 일반법칙이라는 사실을 니콜라이-온 선생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異論)에 반박하려면 니콜라이-온 선생은 (1)자신이 자본주의의 그런 경향을 간과하지 않았다거나, (2)자본주의가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대신에 니콜라이-온 선생은 이 나라 공장 노동자의 수(그의 추산에 따르면 인구의 1퍼센트)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런데 스트루베 선생이 언제 공장 노동자들 이야기를 했었나? 그럼 러시아 인구의 20퍼센트와 미국 인구의 56퍼센트가 공장 노동자들을 대표한단 말인가? '공장 노동자'란 단어와 '농업에 관계되지 않은 인구'란 단어가 동일한 의미인가? 농업과 관련된 인구 비율이 러시아에서도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내가 이를 지적하는 이유는 크리벤코 선생이 이미 해당 잡지에서 그 단락을 왜곡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걸 바로잡는 게 더더욱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우리의 자본주의가 그 임무를 잘못 완수하고 있다'는 니콜라이-온 선생의 생각 자체로 이야기를 옮겨가보도록 하자.

 

첫째, 개요¹⁴⁴의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공장 노동자들의 수를 자본주의 생산에 관계된 노동자들의 수와 동일시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는 대규모 기계 공업을 자본주의의 첫 출발로 삼은 러시아 소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잘못을 되풀이하는(그리고 심지어 심화시키는) 셈이다. 상인들로부터 통상적인 임금을 받으면서 그들의 재료를 가지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수백만 명의 러시아 수공업자들은 자본주의 생산에 관계된 사람들이 아니란 말인가? 고정적인 농장 노동자들과 농업 분야의 일용직 노동자들도 자신의 고용주로부터 임금을 받고 잉여가치를 그들에게 넘겨주고 있지 않은가? 건축 산업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착취의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그리고 기타 등등⁴⁵

 

둘째로, 공장 노동자들의 숫자(140만 명)를 전체 인구와 비교하고, 그 비율을 백분율로 표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건 신체 건강한 인구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거나, 물질적 가치의 생산에 관계된 사람들을 '자유로운 전문직' 종사자들과 비교하는 등과 같이 그저 비교할 수 없는 대상들을 비교하는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공장 노동자들은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일정 숫자의 가족 구성원들을 각각 부양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고용주들과 상인 무리들은 제외하더라도——수많은 군인과 공무원, 그리고 그와 유사한 상류층들을 부양하고 있음에도, 어떻게 당신들은 그 잡탕들을 공장 노동자와 대비시켜 농촌 인구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러시아에는 어업 같은 산업들이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산업들을 공장 산업과 대비시켜 농업과 결부시키는 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 만약 당신들이 러시아 인구의 직업 구성을 알고자 한다면, 맨 먼저 물질적 가치의 생산에 관계된 인구(결과적으로 비노동 인구와 군인, 공무원, 성직자 등을 제외한 인구)를 특수한 집단으로 분류해낸 다음, 그들을 국가 차원 노동의 다양한 분야별로 나누려는 시도를 했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것을 하기 위한 데이터를 손에 넣을 수 없다면, 인구의 1퍼센트(??!!)가 공장 산업에 관계돼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기보다는 그런 식의 계산¹⁴⁶ 자체를 자제했어야 한다.

 

셋째로——그리고 이것이 자본주의의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역할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가장 주되게, 그리고 터무니없이 왜곡한 대목이다——, 자본주의의 '통합의 의미'가 오직 공장 노동자들을 결속시켰다는 측면에서만 드러난다는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조국 연보에 실린 노동의 사회화에 관한 글들에서 그런 마르크스주의적 사고를 빌려온 건가?

 

당신들도 한 지붕 아래서 일하는 것과 그걸 동일시하는 건가?

 

그렇지 않다. 이 점에 대해 니콜라이-온 선생을 비난할 수는 없을 듯한데, 왜냐하면 그가 루스코에 보가츠트보6호에 기고한 자신의 글 2쪽에서 자본에 의한 노동의 사회화의 두 가지 특징, (1)사회 전체를 위해 일한다는 것과 (2)공동노동의 산물을 획득하기 위한 개별 노동자들의 결합이라는 측면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임무'를 공장 노동자의 수에 따라 판단하는 이유는 뭔가? 전체적으로 그 '임무'가 자본주의의 발전과 노동의 사회화, 프롤레타리아의 전반적인 형성과 그 중에서도 공장 노동자들의 선봉적인 역할에 의해 완수되는 시점에 이르러서 말이다. 물론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운동이 노동자들의 수와 그 집중, 발전 정도 등에 달려 있다는 건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자본주의의 '통합의 의미'를 공장 노동자들의 수와 동일시할 권리를 우리에게 부여하는 건 전혀 아니다. 그런 행동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좁히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그럼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주택 문제에 대하여Zur Wohnungsfrage란 소책자에서 독일의 산업을 언급하며, 땅조각이나 뒷발을 소유한 임금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이 존재하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그는 서구 유럽만을 거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뒷발이나 …… 농업과 함께 이루어지는 시골의 가내공업은 독일의 신흥 대규모 공업의 광범위한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내 공업은 독일 소농들의 고통이 가중됨에 따라 (러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점점 늘어나고 있으나, 공업과 농업의 '결합'은 가내생산자인 수공업자의 '안녕'이 아니라 정반대로 한층 더한 '억압'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묶여 있는 그들은 어떤 가격이라도 마지못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가내 대량 생산 체제가 폭넓게 발달한 러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잉여가치뿐만 아니라 임금의 상당 부분까지도 자본주의자들에게 고스란히 내주어야 한다. "그것은 문제의 한 측면인 동시에 반대의 측면도 지니고 있다. …… 가내공업이 확대됨에 따라 소농 지역은 오늘날의 산업 지형으로 차례차례 골라들어가고 있다. 독일의 산업혁명이 영국과 프랑스보다 훨씬 더 넓은 영토에 걸쳐 확산된 건 바로 가내공업에 의한 시골 지역의 이러한 변혁 때문이다. …… 이는 영국과 프랑스와는 대조적으로 독일에서 혁명적 노동계급 운동이 도시 중심지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지역에 걸쳐 엄청나게 확산된 이유와, 결과적으로 그 운동이 차분하면서도 조금씩 억누를 수 없는 전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독일의 수도와 다른 대도시들에서 봉기가 성공하려면 대다수 소도시들과 시골 지역 상당수에서 혁명적 변화의 기운이 무르익었을 때에만 가능할 거라는 점은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¹⁴⁷

 

보다시피, "자본주의의 통합의 의미"와 더불어 노동계급 운동의 성공 역시 공장 노동자들의 숫자뿐만 아니라…… 수공업자들의 숫자에도 의존하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러시아 수공업의 절대 다수가 순수하게 자본주의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우리 예외론자들은 일종의 "인민" 산업으로서의 그것을 자본주의와 대비시키고, 공장 노동자들의 숫자를 통해 '자본주의의 직접적인 처분에 맡겨진 인구의 비율'을 판단하고 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공장 노동자들에게 모든 관심을 기울이기를 원하나, 전체 1억 인민들 중 백만 명에 불과하고 사회의 작은 한 귀통이만 차지할 뿐인 그들에게 전념하는 것은 부동산이나 자선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국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던 크리벤코 선생의 주장(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2)을 떠올리게 한다. 공장과 제조소들이 부동산이나 자선기관처럼 사회의 작은 한 귀통이에 불과하다니, 당신은 정말 대단한 천재인 것 같소, 크리벤코 선생!! 정녕 부동산 기관들이 사회 전체를 위한 재화를 생산한다고? 그럼 부동산 기관들에서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틀림없이 노동인민의 착취와 강탈이 해명되겠군요. 노동계급 해방의 첫 발을 들어올릴 선진적인 프롤레타리아의 대표들도 분명 그곳에서 찾아야 할 테고 말이오.

 

이류 부르주아 철학자들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니콜라이-온 선생의 글에서 그런 식의 주장을 읽어야 한다는 건 유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393쪽에서 잉글랜드의 인구 구성에 대한 수치들을 인용하고 있다. 1861년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인구는 총 2천만 명이었는데, 이 중 1605,440명은 주요 공장 산업 부문에 종사하고 있었다⁴⁸ 뿐만 아니라 하인 계급 구성원들은 1208,648명으로, 2판 각주에서 마르크스는 이 계급의 아주 급속한 성장을 거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자본주의의 통합의 의미'를 판단하기 위해 160만 명을 2천만 명으로 나눈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영국에 존재한다고 상상해보라!! 결과는 12분의 1에 못 미치는 8퍼센트일 것이다!! 과연 인구의 12분의 1조차 통합시키지 못하고, 더군다나 '우리' 영국인들이 '잘못된 경로'를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가차원 노동'의 순손실을 상징하는 '가사 노예' 계급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본주의의 '임무'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말인가! 그럼 이 경우에도 우리가 '조국을 위한 다른' 비자본주의적 '발전 경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게 확실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니콜라이-온 선생의 주장에는 또 다른 핵심이 존재한다. 그가 이 나라의 자본주의는 '서구 유럽에서 아주 특징적이며, 북아메리카에서 특별한 영향력을 갖고 나타나기 시작한' 통합적 역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때는, 분명 노동 계급 운동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 나라에서는 자본주의가 노동계급 운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경로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주장은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기대하던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이미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작업을 진행했소,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이렇게 꾸짖었다. 어느 마르크스주의자가 미하일롭스키에게 그가 빈곤에서 오직 빈곤밖에는 보지 못한다고 비판했을 때, 그의 대답은 이랬다. "이 언급은 늘 그렇듯 마르크스의 말에서 통째로 가져온 것이오. 그러나 우리가 철학의 빈곤에 나오는 그 단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우리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고 우리가 겪는 빈곤은 말 그대로 빈곤에 불과하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오." 하지만 실제로 철학의 빈곤에서는 미하일롭스키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건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서 마르크스는 빈곤에서 과거 사회를 전복할 혁명적이고 파괴적인 측면은 보지 못한 채 그저 빈곤 자체만을 바라봤던 고루한 공산주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⁴⁹ 분명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그것이 우리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근거로서 노동계급 운동이 '발현할 징후'가 전혀 없다는 걸 들고 있다. 이런 주장과 관련해, 우선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이미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작업을 진행했다는 식의 사고는 현실을 아주 피상적으로만 들여다봤을 때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강령이 작성된 건 1848년 이전의 일이었다. 그럼 당시 독일에 노동계급 운동¹⁵⁰이 존재하고 있었던가? 그때는 정치적 자유조차 없었고,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은 비밀 서클에만 한정돼 있었다(오늘날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혁명적이고 통합적인 역할을 모두에게 아주 분명히 각인시켰던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이 시작되고,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이 명확한 모양새를 갖추고, 대규모 공업이 보다 널리 확산되는 한편, 노동계급 내에서 사회주의 이론을 전파할 재능 있고 원기왕성한 많은 이들이 등장한 건 그보다 20년 후의 일이었다. 역사적 사실들을 잘못 전달하고, 노동계급 운동에 의식과 조직화를 제공한 사회주의자들의 방대한 활동을 망각한 데 더해 우리의 철학자들은 가장 분별없는 숙명론적 관점을 마르크스에게 억지로 떠안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마르크스의 견해에서 볼 때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사회화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고, 따라서 만약 우리가 자본주의는 목격하면서도 노동계급 운동은 보지 못한다면 그건 자본주의가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노동자들 내에서 조직화와 선전을 여전히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우리에게 확인한다. 우리네 예외론적 철학자들의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술수는 반박할 가치조차 없고, 만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모든 활동과 마르크스주의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행하는 모든 공개 연설로 그 잘못이 입증된다. 사회민주주의는 ——카우츠키가 아주 타당하게 지적했듯이——노동계급 운동과 사회주의의 융합이다. 자본주의의 진보적 과업이 이 나라에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최대한 정력을 다해 활동에 나서야만 한다. 그들은 러시아의 역사와 현재 위치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을 보다 더 세밀하게 이해하고, 러시아에서 특히나 복잡하게 감춰진 모든 형태의 계급투쟁과 착취를 더욱 구체적으로 연구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그 이론을 대중화하고 노동자에게 알려나가야 할 것이며, 사회민주주의 사상을 전파하고 노동자들을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결합시키기 위해 그들이 그 이론을 흡수하고 우리 조건에 가장 적합한 조직화 형식을 강구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사상가로서의 이러한 역할을 이미 완수하고 이행했다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그 역할에는 끝이 없다), 자신들은 단지 막 시작한 것에 불과할 뿐 지속적인 무언가를 창조해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언제나 강조해왔다.

 

또한 마르크스 이론에 관한 불충분하고 터무니없이 편협한 개념 외에도 이 나라 자본주의에 진보적인 역할이 부족하다는 통상적인 반대 의견은 "인민의 시스템"이라는 가공의 어리석은 사고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악명 높은 '마을공동체''농민들'이 빈민과 부자, 프롤레타리아의 대표와 자본의 대표로 쪼개질 때, 그들은 그것이 초기 형태의 중세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시골의 정치-경제적 구조를 애써 외면했다. '조국을 위한 다른 경로'를 모색하면서 그들은 마치 농민의 순수한 부르주아적 분화가 '평등한 마을공동체' 내에서 한창 진행 중에 있지 않은 듯이 농민 토지소유권의 형식상 변화에 대해 떠들어대지만, 정작 그것을 경제 조직의 형태와 혼동하는 용납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이 자본주의가 발전해 좁은 형태의 중세 마을 자본주의를 탈피하고 토지의 봉건적 힘을 박살내는 동시에, 오랫동안 발가벗겨지고 굶주려왔던 농민으로 하여금 기세등등한 부농들이 공평하게 나눠 가질 수 있도록 토지를 공동체에 넘겨주고 고향을 떠나 한동안 일자리도 없이 러시아 전역을 떠돌아다니다 오늘은 지주, 내일은 철도업자, 또 그 다음 날은 도시의 인부나 부유한 농민의 농장 노동자로 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시기에 말이다. 오늘날 주인을 바꿔가며 러시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그 '농민'은 어디를 가든 자신이 가장 추잡스럽게 약탈당하고 있으며 다른 빈민들도 똑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자신을 강탈하는 게 반드시 '주인'만이 아니라 노동력을 돈주고 살 수 있는 '자신의 농민 형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정부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가장 초보적인 권리라도 지키려는 시도에서 벌인 그들의 폭동을 빈번이 진압하는 방식으로 언제나 그의 주인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며, 일은 갈수록 점점 힘들어지고 부와 사치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반면 러시아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은 꾸준히 악화되고 강탈은 더욱 심해지며 실업이 일상화되어가는 현실을 목격한다. 바로 이런 시기에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자들은 조국을 위한 다른 경로를 모색하고, 바로 이런 시기에 그들은 공장 노동자들의 수가 얼마나 천천히 증가하는가를 들여다보며 자본주의의 진보적인 역할을 인정할지 말아야 할지, 우리의 자본주의를 거부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것이 '역사적 임무를 아주아주 잘못 완수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경로를 견고 있다고 판단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와 같은 심오한 문제를 숙고하는 데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으나, 참으로 고귀하고도 자비로운 일 아닌가?

 

그리고 노동인민의 자본주의적 착취가 러시아 방방곡곡에 존재하는 시점에서 조국을 위한 다른 경로를 모색하는 것은 곧 현실에서 도피해 유토피아의 영역으로 접어드는 걸 의미한다고 말하는 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또 얼마나 편협하고 교조적이며 사악하단 말인가. 그들은 임무를 잘못 완수하고 있는 건 우리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차츰 희미해지는 러시아 사회의 적대적 계급들 간의 케케묵은 경제적 투쟁을 꿈꾸는 것이 곧 마닐로프주의¹¹로 타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그 투쟁에 조직화와 암묵적 합의를 보태기 위해서는 사회민주주의적 활동에 착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거부하는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이들이었다.

 

끝으로, 우리는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같은 호(6)에서 니콜라이-온 선생이 스트루베 선생에게 가한 또 다른 공격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는 "스트루베 선생의 논쟁 방식에서 드러나는 어떤 특이점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한 진지한 독일 잡지에 독일 대중들을 위한 글을 쓰고 있지만, 그가 동원한 방식들은 완전히 부적절해 보인다. 우리는 독일뿐 아니라 러시아 대중들 역시도 이미 '성숙기'에 도달해 그의 글에서 넘쳐나는 그 모든 '근심거리들'에 감탄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모든 칼럼에서 마주치게 되는 '유토피아''반동적 구상' 같은 '끔찍한 단어들은 오늘날, 아아, 스트루베 선생이 분명 확신하는 효과를 낳지 못하고 있다."(128)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니콜라이-온과 스트루베 선생 간의 이러한 논쟁에서 과연 "부적절한 방식들"이 동원되었는지, 그리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누구에 의해서였는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스트루베 선생은 한 진지한 글에서 "근심거리들""끔찍한 단어들"로 대중들의 감탄을 자아내려 했다는 이유로 "부적절한 방식들"을 동원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보통 "근심거리들""끔찍한 단어들"을 동원했다는 의미는, 상대방이 뚜렷하고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고 반드시 글쓴이의 견해와 일치한다고도 말할 수 없지만 단순히 누군가를 욕하고 나무라기 위한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심하게 반대하는 상황을 뜻한다.

 

물론 자신의 심한 반감을 "근심거리들"로 바꾸어 표현하는데는 그러한 특징이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슬로님스키(Slonimsky) 선생은 니콜라이-온 선생에게 심한 말을 퍼부었지만, 현 질서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한 평범한 자유주의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아주 뚜렷하고 명확하게 밝힌 바 있다. 그는 누구를 마음대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부적절한 방식들"로 인해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경험스러운 주장을 아주 명시적으로 내놓았던 인물이었다. 니콜라이-온 선생의 경우에도 슬로님스키 선생을 교화하고 가르치기 위한 차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옳다고 여겨져 온") 마르크스의 말들을 인용하며 그가 원하던 소규모 수공업과 소농민 토지소유권의 방어가 얼마나 반동적이고 공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에 관해 그에게 심한 말을 퍼냈고,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단순하다"는 따위의 비난을 가한 적이 있었다. 스트루베 선생의 글 못지않은 욕설들이(말줄로 강조돼 있다) "넘쳐나는" 니콜라이-온 선생의 글을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나 이 경우에 우리는 "부적절한 방식"을 거론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주장 하나하나가 다 이유를 가지고 있고, 설사 그것이 틀렸다 할지라도 글쓴이의 명확한 관점과 견해 체계에 따른 것이며, 만약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필시 상대방이 단순하고 편협하며 반동적인 이상주의자로 인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런 문제제기가 스트루베 선생의 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살펴보자. 니콜라이-온 선생을 필연적으로 반동적인 구상과 단순함으로 귀결되는 이상주의자라 비난하면서 그는 그 이유들을 아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로는 니콜라이-온 선생이 "생산의 사회화"를 염원하면서 "사회와 국가에 호소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는 "계급투쟁과 국가에 관한 마르크스의 교리가 러시아의 정치경제학자인 그에게는 완전히 생소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며, 국가는 "지배계급을 대표"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는 "만약 우리가 단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꼭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상의 경제 체제를 현실 자본주의와 대비시킨다면, 다시 말해 만약 우리가 자본주의 없는 생산의 사회화를 원한다면, 그것은 인식의 순진함을 보여주는 증거에 불과하고 역사와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자연경제의 제거, 그리고 농촌 인구의 감소와 더불어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러시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부장제 시대의 땅거미 사이로 현대 국가가 등장해 공개적인 계급투쟁의 밝은 빛으로 성큼 나아갈 것이고, 생산의 사회화를 위해서는 다른 힘과 요인들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글쎄, 이 정도면 뚜렷하고 정확한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니콜라이-온 선생의 사고에 관한 스트루베 선생의 구체적인 언급에 담긴 진실을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니콜라이-온 선생은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된 계급투쟁을 정말로 감안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사회와 국가를 이야기하고, 계급투쟁을 망각한 채 그걸 도외시하고 있다. 일례로 그는 국가가 마을공동체를 통해 노동을 사회화하는 대신에 자본주의를 지원했다고 말한다. 분명 그는 국가가 이래저래 행동할 수 있고 따라서 계급 위에 서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근심거리들"에 의지한다고 스트루베 선생을 비난하는 것은 그저 부당하다고 울부짖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명확하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계급국가라고 믿는 사람이 노동을 사회화하기 위해, 즉 지배계급들을 없애기 위해 국가에다 호소하는 사람을 순진하고 반동적인 이상주의자가 아니라고 간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란 게 확실하지 않은가? 더 나아가, 누군가 상대방을 "근심거리들"에 의존한다고 비난하면서도 그가 명확히 밝힌 견해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면, 더군다나 검열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의 견해가 실릴 수도 없는 잡지에다 대고 그 사람을 비난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가리켜 "완전히 부적절한 방식"이라고 평가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보자. 스트루베 선생의 두 번째 주장은 명확히 공식화되어 있는 대목이다. 자본주의와 동떨어진 마을공동체를 통한 노동의 사회화가 가상의 체제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니콜라이-온 선생 자신도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가 있었다. 1861년 이전에는 생산 단위가 "가족""마을공동체"로 구성돼 있었고(개요, 106~7), "작고 흩어진 자급자족형 생산은 상당한 수준으로까지는 발전할 수가 없어 아주 일상적인 그 본질과 낮은 생산성이 일반적이었으며", 뒤이은 변화는 "노동의 사회적 분업이 점점 더 깊어졌다"는 걸 의미했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자본주의가 예전의 좁은 생산 단위의 경계를 탈피해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을 사회화했다는 것을 뜻했다. 곧 니콜라이-온 선생 역시 자본주의에 의한 노동의 사회화를 인정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이미 노동을 사회화해온 자본주의가 아니라, 그 봉괴로 인해 최초로 사회 전반적인 노동의 사회화를 불러왔던 마을공동체에 노동의 사회화의 근거를 두고자 했던 그는 반동적인 몽상가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스트루베 선생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진실이나 거짓이냐의 문제로 인식할지 모르나, 니콜라이-온 선생에 관한 그의 신랄한 논평이 이런 견해로부터 출발해 논리적인 필연성을 따르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가리켜 "근심거리들"이라 말하는 것은 전혀 적절치 않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더구나 스트루베 선생이 자신은 노동의 사회화를 바라고, 그것이 자본주의를 통해 이루어지길 원하며, 따라서 "공개적인 계급투쟁의 밝은 빛"을 통해 가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세력들에 스스로 기반을 두기를 염원한다고 명확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농민들이 토지를 빼앗기기를 바란다고 탓하면서 논쟁을 마무리한 니콜라이-온 선생의 태도는 진실과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스트루베 선생이 검열 때문에 입에 재갈이 물린 상태라 공개적인 계급투쟁의 밝은 빛을 통해 앞으로 나선 세력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당 잡지에서 꺼낼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니콜라이-온 선생의 논쟁 방식이 전적으로 "부적절했다"는 사실은 거의 부정할 수 없다.

 

부록 3

 

내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거론한 건 마르크스주의자 자신들을 염두에 두고 한 이야기였다. 이와 관련해 이 나라 자유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이 합법적인 출판물에서 소상히 설명한 마르크스주의는 아주 터무니없이 편협하고 왜곡된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들의 설명은 참으로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 혁명적인 이론이 검열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¹²에 맞게 마구 훼손된 물이라니! 우리의 평론가들은 참으로 속 편하게도 그런 활동을 수행해나간다! 그들의 설명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소유주의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사유재산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지와 그것이 정반대로 변화해 사회화되는지에 대한 원리로 사실상 축소되어 있다. 그리고 그 평론가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사회학적 방법론의 모든 구체적인 특성들은 무시한 채 그 전체적인 알맹이가 계급투쟁의 원리와 연구의 직접적인 목적, 즉 모든 형태의 적대와 착취를 폭로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하여금 그것들을 폐지하도록 돕는 등의 '계획'에 있다고 사뭇 진지한 태도로 추정한다. 그에 따라 그 결과가 너무나 하찮고 제한적이라 우리의 급진주의자들이 가련한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애도하는 데까지 이른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아무럼 그래야지! 만약 러시아의 절대주의와 반동 체제가 마르크스주의에 관해 완전하고 정확하고도 완성된 설명을 제시하고 거리낌 없이 그 반론을 내놓는 게 가능했다면, 애초부터 절대주의와 반동이라고 할 수도 없었겠지! 그리고 이 나라 자유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알았더라면(독일의 문헌들을 통해서라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은 검열당한 언론에서 그것을 왜곡한 사실을 부끄러워했을 테고 말이다. 어떤 한 이론을 상세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조용히 입을 다물든지, 아니면 그걸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가장 본질적인 특성들을 빼먹고 넘어간 데 대해 마음의 거리낌이라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중 극히 일부만을 해명하고 난 뒤 그 원리가 편협하다고 아우성치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실로 마르크스주의자로 간주되는 사람들이 계급투쟁도, 자본주의 사회에 필연적으로 내재된 적대도, 그 적대의 성장도 모르는 오로지 러시아에서만 가능한 그런 불합리한 상황은 그렇게밖에는 설명될 수가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역할이라는 개념도 없고, 심지어 '화폐 경제'나 그 '필연성' 같은 표현들을 담고 있는 한 순전히 부르주아의 기획일 수밖에 없는 것들을 내놓는 그들이 확실히 마르크스주의자로 간주되려면 미하일롭스키 선생 같은 지적 심오함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반면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론이 지니는 총체적인 가치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비판적이고³ "혁명적⁵⁴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후자의 특질은 마르크스주의에 실로 완전하고도 절대적으로 내재된 것이었다. 그의 이론은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적대와 착취를 폭로하고 그 진화를 추적하며, 그 일시적인 성격과 다른 형태로의 변화의 불가피성을 실증하는 한편, 따라서 모든 착취를 가능한 빠르고 쉽게 종식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봉사한다는 임무를 스스로 직접적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을 끌어당기는 그의 이론의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은 엄밀하고도 비할 데 없이 과학적인 특성(사회과학에서는 결정적인 부분이다)을 혁명적인 특성과 결합시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결코 우연에 의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정확히 근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원리의 창시자가 개인적으로 과학자이자 혁명가로서의 자질을 겸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두 가지 특징이 본질적이고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이론의 역할이나 과학의 목적이란 게 현실에서의 경제투쟁에서 억압받는 계급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투쟁을 멈춰라, 당신들의 투쟁은 전부 무의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일은 진정한 투쟁의 구호를 세상에 제시하는 게 전부다⁵⁵

 

그러므로 마르크스에 따르면 과학의 직접적인 임무는 진정한 투쟁의 구호를 제시하는 것, 다시 말해 지금의 투쟁을 명확한 생산관계 시스템의 산물로서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 당면 투쟁의 불가피성과 그 내용, 발전 경로 및 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분리된 형태의 투쟁을 세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면, 매 단계의 투쟁이 하나의 형태에서 또 다른 형태로 이행되는 과정을 추적해 어떤 특정한 순간에라도 그 투쟁의 일반적인 속성과 모든 착취 및 억압의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철폐라는 총체적인 목표를 놓치지 않고 그 상황을 제대로 규정해내지 못한다면, '투쟁의 구호'를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저 유명한' 미하일롭스키가 자신의 '비판'에서 소상히 설명한 뒤 씨름했던 그 따분한 쓰레기 같은 이론과 마르크스의 '비판적이고 혁명적인' 이론을 한번 비교해보라. 분명 스스로를 '노동인민의 사상가들'이라 여기면서도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필수적인 부분들은 흔적을 지워 없애 버림으로써 그 이론을 '낡고 낡은 동전'으로 변형시키는 데 머무른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인민의 이념적 대변자가 되고자 소망에서 결국 비롯된, 전체적으로는 우리 경제 시스템과 구체적으로는 농민들의 현 상황과 역사에 주력한 인민주의 문헌을 마르크스 이론의 요구들과 한 번 비교해보라. 분명 고통을 연구하고 묘사하며 그것에 대해 설교를 늘어놓는 데 그친 이론에 만족할 수 있는 사회주의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거기서 농노제는 이러이러한 착취와 이러이러한 적대적 계급들과 특정한 정치적·법적 체계 따위를 낳은 명확한 형태의 경제구조가 아닌, 그저 지주들에 의한 학대와 농민들에 대한 불의로만 그려지고 있다. 농민 개혁 또한 뚜렷한 경제 형태들과 계급들 간의 충돌이 아닌, 최선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실수로 '잘못된 경로''선택한' 정부 당국이 취한 조치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개혁 이후의 러시아는 특정한 발전에 따른 명확한 적대적 생산관계 체계로서가 아닌, 노동인민의 고통을 동반한 진정한 경로로부터의 일탈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이론이 전혀 신빙성이 없음을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사회주의자들이 현재의 지식 수준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혁명 이론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빨리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들은 그 이론을 러시아에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더 빨리 쏟아붓게 될 것이다. 보다 더 확실하고 빠른 움직임이 혁명 과업의 성공을 보장할 거라는 의미인 것이다.

 

실질적이고 제대로 된 산업을 '창출'해내기 위해 '인민들'을 상대로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는 등과 같은 지식인계급에 대한 '인민의 벗들'의 요구가 오늘날의 '빈약한 러시아의 사상 풍토'를 얼마나 크게 변질시켰는지를 드러내줄 생생한 예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 다시 말해 나로도불치의 직계 자손이라 할 수 있는 '나로도프랍치(Narodopravtsi)'의 견해를 인용해볼 필요가 있겠다. 인민의권리당(Narodnoye Pravo party)¹⁵⁶1894년에 펴낸 시급한 쟁점이라는 소책자를 참조하기 바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심지어 폭넓은 자유를 누리는 조건하에서조차 러시아는 생산에서의 독립적인 지위를 노동인민에게 보장해주는(!) 경제구조와 작별을 고해서는 안 된다"거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치 개혁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경제 개혁"이라고 말하는 부류의 인민주의자들을 멋지게 반박한 뒤, 나로도프랍치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의 수호자가 아니요, 그들의 이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만약 지방감독관(Zemsky Nachalnik)들의 보호하에서 그들로 하여금 부르주아 계급의 침범으로부터 '계획적인 경제 개혁'을 열심히 지켜내게 하느냐, 아니면 정치 정당에 기초한 부르주아 계급 자체의 보호하에서, 다시 말해 인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조직적으로 방어하는 걸 보장하는 상황하에서의 경제 개혁이냐를 놓고 선택하라는 알맞은 운명이 인민들에게 주어진다면, 우리는 인민들이 분명 후자를 선택하는 게 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는 인민들에게서 사이비 독립 경제구조를 빼앗아 가겠다고 위협하는 '정치 개혁'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는 거라곤 누구든 어디서나 의숙하게 부르주아 정책이라 부르는 것만이 존재할 뿐이며, 그것은 인민의 노동에 대한 가장 철저한 착취로 표현된다. 우리에게는 폭넓은 자유는커녕 좁은 의미의 자유도 없으며, 입힌 국가들의 농경민과 자본가들은 더 이상 꿈도 꾸지 않는 계급(social-estate)¹⁵⁷ 이익의 보호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부르주아 의회제도'란 게 없으며, 행정 기구의 포탄 사정거리 안에서는 사회도 허락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는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하는 나이데노프(Naidenov)와 모로조프(Morozov), 카지(Kazi), 비엘로프(Byelov) 같은 신사양반들이 있으며, 그들 옆에는 1데샤티나당 거금 100루블씩을 자신들에게 무이자로 대출해줄 것을 요구하기에까지 이른 '충성스러운 귀족'의 대표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위원회의 일원으로 초대돼 공손히 경청되는 분위기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고, 이 나라 경제 생활에 영향을 끼칠 중차대한 사안들에서 결정적인 발언권을 갖는다. 그러나 인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내세운 사람들이 과연 누구였던가? 그들 지방감독관 아니었던가? 농업 근로대가 기획되고 있는 것도 인민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나? 비단 그뿐 아니라 인민들에게 분여지를 부여했던 유일한 이유는 블로그다 주지사가 자신의 회람문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로 하여금 세금을 납부하고 부역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거의 빈정거림에 가깝게 솔직히 막 공표되지 않았나? 그는 전제 군주국, 아니 보다 정확히는 관료주의적 절대주의 체제가 숙명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정책을 단지 공식화하고 소리 높여 표현했을 뿐이었다."

 

비록 자신들이 이익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대상인 '인민'과 노동의 이해관계를 보호해줄 믿을 만한 기관이라고 계속해서 여겨온 '사회'에 대한 나로도프랍치의 개념이 모호하다고는 하나, 인민의권리당의 창설이 '조국을 위한 다른 경로'에 관한 착각과 몽상을 완전히 버리고 진정한 경로를 두려움 없이 인정하며 혁명 투쟁을 위한 요소들의 기반을 모색하는 데 있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누군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민주적인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분투를 뚜렷이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분투'일 수밖에 없는 것은 불행하게도 나로도프랍치가 자신들의 기본적인 논지를 일관되게 실행에 옮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사회주의자들과의 융합과 동맹을 이야기하고, 노동자들을 한날 정치적 급진주의로 끌어들이는 것은 지식 노동자들을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을 의미할 뿐임을 깨닫길 거부하며, 노동계급 운동에게 무기력하다는 선고를 내린다. 노동계급 운동은 전적으로 노동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고 자본에 맞선 경제투쟁을 벌일 때만이 강해질 수 있으며, 그런 경제투쟁은 자본의 하수인들에 맞선 정치투쟁과 불가분하게 묶여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혁명 분파들의 '융합'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독립된 조직과 특정한 사례들에 있어서의 두 정당의 공동 행동에 의해 훨씬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를 거부한다⁵⁸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당을 '사회-혁명'당이라고 계속해서 부르고 있지만 (1894219일자 인민의권리당 선언문참조), 동시에 스스로를 정치 개혁에만 국한시키고 우리의 '지굿지굿한' 사회주의적 사안들은 아주 주도면밀하게 회피하고 있다. 실로 착각에 맞선 투쟁을 열렬히 촉구하는 정당이 타인에게 착각을 조장해서는 안 되는 법임에도 이들은 '선언문'의 맨 첫 부분에서부터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주의는 단지 입헌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반복하건대, 그들이 나로도불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나로도프랍치를 정확히 판단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들이 오로지 정치 강령에 근거한——사회주의와는 관계 없는——정치투쟁만을 염두에 둠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갔다¹⁵⁹는 사실은 인정해야만 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진정으로 나로도프랍치의 성공을 바라며, 그들의 정당이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그래서 현재의 경제 시스템¹⁶⁰을 편들고¹¹ 민주주의와 아주 밀접하게 일상의 이해관계가 묶여 있는 사회 분파들과 긴밀한 유대를 형성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관료 체제에 대한 신뢰를 표명하면서 정치투쟁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사회주의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을 뿐더러 노동인민이 억압받는 원인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계급투쟁의 성격을 전혀 짐작조차 못하는 '인민의 벗들'의 타협적이고 비겁하고 감상적이고 공상적인 인민주의는 정치적 급진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 양측으로부터 공격당할 경우 결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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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의미가 있을 결론

 

결론으로 들어가, 심층팔구 여러 명의 독자가 이미 품어보았음직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놓는 것도 어쩌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왜 저런 신사양반들과 이토록 긴 지면을 할애해 논쟁하였단 말인가? 그들이 기꺼이 반론이라 부르는 그 자유주의적인, 검열을 통과한 추잡한 주장들의 나열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 또는 '교양 있는'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이러한 맹공격으로부터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그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격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전체를 이뤄 하나로 녹아들어갔던 (예를 들어 체르니셉스키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 사회 발전의 시기가 아직은 되살아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지고 확실한 증거가 되고 있다. 러시아의 민주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 사이에는 사상적으로 심오한 질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오늘날 일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여전히 고수되면서 그들의 이론과 실천에 가장 해로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런 생각에는 전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사상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존재하며, 그래서 지금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그린 사실을 알아야 할 때, 민주주의자들의 사상과의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결별이 불가피하고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때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상이 태동했던 시절에 실제로 러시아 민주주의자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인민의 벗들'은 그런 비교를 위한 충분한 재료를 제공해준다.

 

이 점과 관련해 독일의 한 출판물(1893102중앙 사회 정책 신문 Sozialpolitisches Centralblatt¹²1편에 실린 러시아의 자본주의 발전에 관하여란 글)에서 니콜라이-온 선생의 공상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폈던 스트루베 선생을 크리벤코 선생이 공격하고 나선 사실은 아주 흥미롭다. 크리벤코 선생은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마을공동체와 분여지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국민적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그가 "전적으로 공상적인 본질"을 지닌다고 말하는)로 분류했다는 이유를 들어 스트루베 선생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와 연관 지은 그러한 끔찍한 비난에 얼마나 격분했던지, 우리의 훌륭한 필자는 다음과 같이 고함을 지르기에 이른다. "마을공동체와 분여지를 옹호한 이들이 과연 누구였던가? 농민들을 위해 규제를 만들고, 공동체와 농민의 경제적 독립을 개혁의 기초로 삼은 사람들 아니던가. 역사 연구자들과 동시대 삶을 연구하던 이들, 그리고 진지하고 존경받는 언론들 거의 대부분이 그런 원칙들을 지지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가 '()국민적 사회주의'라는 망상의 피해자들이란 말인가?"

 

존경하는 '인민의 벗'이여, 부디 진정하시게나! 그대는 사회주의와 연관 지은 지독한 비판에 겁먹은 나머지 스트루베 선생의 "하찮은 글"을 꼼꼼히 읽어보지도 않았나 보오. 실제로 "마을공동체와 분여지"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사회주의와 연관돼 있다고 비난하는 행위는 실로 부당한 일 아니겠소! 도대체 거기에 사회주의적인 측면이 뭐가 있다 말이오? 우리가 알다시피, 사회주의란 노동인민의 착취에 맞선 저항과 투쟁, 착취의 완전한 철폐를 위한 투쟁에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분여지를 옹호한다는 것"은 한때 농민들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던 모든 토지에 대해 그들이 이제 상환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토지대금 상환이 아니라 개혁 이전에 농민들이 보유했던 토지의 무상 보유를 지지한다 할지라도, 이곳 러시아에서처럼¹²¹ 서구 전역에서도 부르주아 사회의 토대가 됐던 게 다름 아닌 (봉건 시기에 차츰 진화했던) 농민의 토지소유권이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마을공동체를 옹호한다는 것", 즉 토지를 분배하는 관례적인 방식들에 경찰이 개입하는 행위를 반대하고 나선다는 것 역시도, 공동체 내에서 노동인민의 착취가 충분히 존재할 수 있고 또 발생하고 있다는 걸 누구나 아는 상황에서는 사회주의적이지 않다. 그것은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다른 의미로까지 확대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며, 만약 그게 옳다면 포베도노스체프(Pobedonostsev) 선생¹²² 또한 사회주의자로 분류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스트루베 선생은 그런 지독하고 부당한 처사에 잘못이 없다. 그는 인민주의자들의 "전국민적 사회주의라는 공상주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인민주의자들에 대한 반론으로서 플레하노프의 우리의 의견 차이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스트루베 선생이 인민주의자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플레하노프는 의심할 나위 없이 사회주의자들, 다시 말해 "진지하고 존경받는" 언론과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을 격렬히 비판했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크리벤코 선생은 인민주의자들을 겨냥한 비판을 마치 자신에게 가해진 비판인 것처럼 여길만한 이유가 없다. 하지만 만약 그가 자신이 신봉하고 있는 사조에 대한 스트루베 선생의 견해를 알고 싶어 안달이라면, 스트루베 선생의 글에 나온 아래의 단락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걸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에다 번역해 옮기지 않은 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해갈수록 방금 서술한 철학(인민주의 철학)은 그 토대를 상실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그 조짐이 목격돼온 타협¹²³이 가능하고 또 그것을 추구하는 무색무취의 개혁적 사조로 퇴조하든지, 실질적인 발전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그 뒤에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이론과 실질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든지, 달리 말해 더 이상 공상주의에 빠져 있지 않게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만약 크리벤코 선생이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타협이 가능한 사조의 시작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에게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이론적 견해들을 흘릴 듯하다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해당 잡지는 러시아의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인식을 인민주의 교리의 조각들로 짜맞추려는 한심한 시도를 대표하며, 그들의 정치 구상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기초해 소생산자들의 살림살이를 개선하고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있어 가장 특징적이고 의미심장한 현상들 가운데 하나는, 대략적으로 말해 인민주의가 소부르주아 기회주의로 타락해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루스코에 보가츠트보가 품은 구성의 실체——이민 규제, 토지 임차, 값싼 신용, 박물관, 창고, 기술 개선, 집단농장, 공동 토지 경작과 나머지 모든 것들——를 예로 들어보면, 봉건지주들의 기관지도 아니고 어음 신문¹²에 속하지도 않은 '진지하고 존경받는' 자유주의 언론 진영 전반에 그런 견해가 참으로 널리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런 모든 조치들이 필요하고 요긴하고 시급하며 '무해하다'는 생각은 지식인계급 전체에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고 또 아주 널리 퍼져 있다. 여러분은 모든 지방정부의 연구와 보고서들에 나온 서술과 신문 등에서 그런 견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것을 인민주의라고 간주한다면, 그 성공은 의심할 나위 없이 실로 엄청나고 명백하다.

 

물론 그것은 (과거 관례적인 의미에서의) 인민주의가 전혀 아니지만, 그 성공과 엄청난 파급 효과는 자유주의와 날카롭게 대립했던 사회혁명적 인민주의를 한낮 고양된 기회주의로 변형시키고 자유주의와 통합시켜 오로지 소부르주아의 이익만을 대변하도록 함으로써 인민주의의 품격을 떨어뜨린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 하겠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앞서 제시된 농민과 수공업자들의 분화라는 광경에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겠다. 이것은 결코 따로 떨어져 있거나 새로운 사실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단지 우리의 반대자들조차 그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던 농촌의 '착취자들''농장 노동자들''무리'를 정치경제학적 측면에서 표현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인민주의적' 조치들이 소부르주아를 강화시켜주는 데 기여할 뿐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또 그 외 다른 조치들(집단농장과 공동경작)도 그들 '무리' 자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보잘것없는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고, 자유주의 부르주아 계급이 유럽 전역에서 아주 친절하게 일궈놓았던 그런 유형의 비참한 실험으로 그치게 될 운명이다. 그러나 그와 똑같은 이유에서 예르몰로프(Yermolov)와 비테(Witte)¹²같은 자들조차 그런 유의 진보에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지를 보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인텔리겐처'가 혁명적 활동에서 손을 떼고 계급적대를 무마하기 위한 화해와 통합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만 한다면, 그러한 '실험들을 위한' 자금을 기꺼이 대출 것이다. 그러나 잘 부탁하오, 신사양반들!

 

그렇다면 인민주의를 이러한 타락으로 이끈 과정이 무엇이 있는지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인민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 이론은 아주 탄탄했다. 인민의 삶의 특수한 방식에 대한 관점에서 출발한 그것은 '공동체' 농민의 공산주의적 본능을 믿었고, 그 이유로 농민을 타고난 사회주의의 전사로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생활 현실에 대한 이론적 정교함과 확인 작업이 부족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의 특질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기초로 한 정치적 구상을 적용시킬 경험도 일천했다.

 

그래서 이 이론의 발전은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의 두 가지 길을 따라 나아가게 되었다. 이론적 작업은 주로 토지소유의 형태를 연구하는 작업으로 집중되었는데, 그들은 거기에서 공산주의의 기초적인 모습을 확인하길 원했다. 이 작업은 아주 다양한 종류의 방법으로 사실자료들을 생산해냈다. 그러나 주로 토지소유권의 형태와 관련이 된 그 자료들은 연구자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농촌의 경제 상황을 완전히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이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선 생산 관계들을 추려내고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데 필요한 믿을만한 사회과학상의 방법 이론이 부족했고, 다음으로는 수집된 사실 자료들이 농민 경제에 암울한 영향을 미치는 당면한 어려움들과 농민들의 당면 요구가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연구자들의 관심은 토지 빈곤, 높은 소작료, 권리의 부족, 억압받고 짓밟힌 농민들의 상황 같은 어려움들을 연구하는 데 집중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풍부한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고 연구되고 설명되어서, 만약 이 나라가 계급 국가가 아니라면, 정책이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요구'에 관한 공정한 토론에 의해 결정된다면 당연히 그런 어려움들을 제거할 필요성이 수천 번도 더 납득되었을 것이다. 사회와 국가를 '설득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었던 순진무구한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수집한 구체적인 사실들에 완전히 매몰된 나머지, 당면한 어려움들에 의해 사실상 궤멸 상태에 놓여 있던 경제의 주된 배경과 농촌의 정치경제적 구조는 망각하고 말았다. 자연히 그 결과는 자신들의 손에 경제를 틀어쥔 계급, 주어진 경제 시스템과 공동체 내 사회적·경제적 관계에서 유일하게 버틸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착취를 폐지하기 위한 토대와 버팀목이 돼줄 제도를 연구할 방향으로 시작됐던 이론 작업은 그러한 착취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는 바로 그 소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대변해줄 계획을 고안해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실천적인 혁명 활동 역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농민의 공산주의적 본능에 대한 믿음은 당연히 사회주의자들에게 정치를 외면하고 '인민 속으로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수많은 원기왕성하고 재능 있는 인물들이 이러한 과정을 이행하는 데 착수했지만, 현실은 그들로 하여금 농민의 본성이 공산주의적이리라는 발상이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는지만 깨닫게 했다. 결국 그들은 농민이 아니라 정부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결정하게 됐다. 그들의 모든 활동은 정부에 대항하는 투쟁에 집중되었으며, 그 투쟁은 지식인들에 의해서만 진행되었다. 간혹 거기에 노동자들이 가담할 뿐이었다. 처음에 이 투쟁은 사회주의의 이름 아래 전개되었으며, 인민은 사회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오로지 권력을 쟁취함으로써만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혁명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는 이론을 기초로 삼았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이 이론은 분명 완전히 신뢰를 잃어갔고, 정부에 맞선 나로도불치의 투쟁은 정치적 자유를 위한 급진주의자들의 투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활동 또한 출발점과는 정반대의 결과들로 이어졌다. 이 경우에 있어서도 급진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강령이 나타난 것이다. 엄밀히 말해 이 과정은 아직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미 명확한 한계가 정해져 있다. 인민주의가 이렇게 전개된 과정은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교리가 순전히 농민의 경제가 특수한 (공동체적) 시스템이라는 신화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실과 맞닥뜨리자 그 신화는 사라져버렸고, 농민사회주의는 소부르주아 농민의 급진적·민주적 표현으로 변해갔다.

 

여기서 민주주의자들의 진화 과정에 대한 몇 가지 예시들을 들어보겠다.

 

크리벤코 선생은 "어렴풋이 무르익어가는 순수 러시아산 해파리같이 훌륭한 정서들로만 가득 찬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희생이나 삶에서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행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간만이 생겨났다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훌륭한 뛰어난 것이었지만, 그것이 어디에 적용되는지를 잘 살펴보자. "후자의 경우, 나는 다음과 같이 짜증스러운 사례를 알고 있다. 러시아 남부에 형제에 대한 사랑과 선의로 돌돌 뭉친 몇몇 젊은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농민에게 지대한 관심과 존경을 보여주었으며, 농민들을 귀한 손님처럼 여겨 차와 비스킷을 가져다주고 그들과 똑같은 접시에 음식을 나눠 먹었다. 그들은 농민들에게 더 많은 대가를 지불했으며, 돈을 빌려주거나 사례금을 주거나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돈을 주기도 했다. 그들은 농민들에게 유럽의 제도와 노동자 연대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편 같은 지역에는 슈미트라는 젊은 독일인도 살고 있었는데, 토지관리인이라고는 하나 그냥 정원사에 더 가까웠던 그 남자는 어떤 휴머니즘적 사상도 지니고 있지 않은 전형적인 냉철한 독일인이었다." 3, 4년이 흐른 뒤, 그들은 갈라져 각자 다른 길을 갔다. 그리고 또 20년이 지난 뒤, 그 지역을 다시 찾은 필자는 "슈미트 씨가 농민들에게 포도 키우는 법을 가르쳐준 덕분에 이제 농민들은" 연간 75~100루블에 이르는 "어느 정도의 소득을 거두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정원사 슈미트를 슈미트 씨로 높여 부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농민들은 그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유지하게 됐고, 반면 "농민에게 친절한 감정만 갖고 있었을 뿐 실제로 아무것도 손에 쥐어주지 않았던 젊은이들은 기억에서조차 사라졌다."

 

계산해보면 앞에서 서술한 사례는 대략 1869~70, 즉 러시아 인민주의 성향의 사회주의자들이 "유럽의 제도를" 중에서도 가장 선진적이고 중요한 인터내셔널(the International)이라는 것을 러시아에 도입하려고 시도할 무렵에 벌어진 일들이었다.¹²

 

확실히 크리벤코 선생의 설명은 다소 너무 지나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그래서인지 그는 서둘러 다음과 같이 유보적인 단서를 달아놓기는 했다.

 

"물론 슈미트가 그 청년들보다 더 나았다고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그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역과 주민들에게 좀 더 오래도록 지속적인 인상을 남겨준 이유가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것이다."(이런 헛소리가 또 있을까?! "그가 중요한 무언가를 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반대로, 그의 행동은 아주 하찮고 아무런 대가도 치를 필요 없는 우연적인 행동에 불과했지만, 모두에게 확실히 필수적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다."

 

보다시피 이런 유보적인 설명은 아주 모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핵심은 그 모호함이 아니라, 필자가 그 두 활동 유형 사이에 근본적인 성향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의심해보지도 않은 채 한쪽의 성과 없는 활동을 다른 쪽의 성공과 대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동시대 민주주의자의 외관을 규정하는 데 있어 위의 사례가 아주 특징적인 것이 되게 해주는 중요한 핵심인 것이다.

 

농민들에게 "유럽의 제도와 노동자 연대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던 젊은이들은 분명 농민들에게 사회적인 삶의 틀을 바꾸고자 하는 염원을 불어넣기를 바랐을 것이다(내 결론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크리벤코 선생의 이야기를 통해 미뤄볼 때 이치에 맞는 결론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들은 농민들의 마음을 휘저어, 노동인민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낳는 동시대 사회에 맞서 농민들이 사회혁명의 대열에 동참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반면 "슈미트 씨"는 전문가로서 그저 타인의 일처리를 도와주고 싶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글쎄, 그런데도 목적이 정반대인 그 두 가지 활동 유형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마치 건물을 무너뜨리려다 실패한 사람을 그 건물을 보강하려 한 사람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제대로 이치에 맞는 비교를 하려면, 그는 인민 속으로 들어가 농민들에게 혁명의 기운을 북돋우려던 그 젊은 남녀들의 노력이 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는지를 들여다봤어야 한다. '농민층'이 정말로 노동인민과 착취받는 주민들을 대표한다고 믿었던 게 잘못이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농민층이 단일한 계급을 이루고(이는 농노제 몰락이라는 시대적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착각이다. 당시 농민층은 확실히 하나의 계급으로 등장했지만, 봉건사회의 계급일 뿐이었다) 있지 않고 그 내부에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형성되고 있어서였는지를 조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과거의 사회주의 이론들과 그 이론들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적 비판을 검토했었어야 한다. 그러나 크리벤코 선생은 그렇게 하는 대신에 "슈미트 씨"의 노력이 '확실히 필수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인민의 벗' 선생, 실례지만 우리가 열린 자세를 거듭 강조하는 이유가 뭐겠소? 누구든 의심을 품어보라는 것 아니오? 포도밭에 투자해 연간 75~100루블의 소득을 올리는 것보다 더 필수적인¹²게 뭐겠소?

 

크리벤코는 한 명의 농민이 포도밭에 투자한다면 그것은 고립된 활동에 불과하지만, 여러 명이 투자한다면 그것은 공동의 확산된 활동이고 작은 일거리를 실질적이고 적합한 노력으로 변화시키는 활동이라는 걸 계속해서 설명한다. 마치 A. N. 엥겔하트(Engelhardt)¹²가 자신의 사유지에 인산비료를 사용한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사용하게 만들었던 사례처럼 말이다.

 

, 이런 민주주의자, 정말 멋지지 않은가!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이번에는 농민 개혁에 대한 의견에서 가져온 사례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에 민주주의자의 한 사람이었던 체르니셉스키는 농민 개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침묵을 지켰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개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회적인 표현을 한 바 있다.

 

"내가 여러분의 저녁식사를 위한 식량을 보호하려는 조치들에 관심을 갖는다고 가정해보라. 만약 여러분을 향한 내 친절한 마음 덕분에 내가 그런 조치를 취하게 된다면, 그런 나의 열의는 그 식량이 여러분의 것이고 그렇게 준비된 저녁식사는 여러분에게 유익하고 이로울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한 것임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식량이 여러분들 소유가 아니고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식사비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이 글은 개혁 이전에 쓰인 것이다. 그러나 유자코프 선생을 비롯한 이들은 농민들에게 안위를 제공하는 것이 개혁의 근본원칙이라고 현재 주장한다) 엄청난 고초를 겪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 매겨져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됐을 때, 내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보라. 내가 그런 불편한 사실들을 알게 됐을 때,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 그 효용성을 보장해줄 조건들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에 골머리를 써인다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일부 사람들이 유리한 조건으로 소유권을 받게 되는 상황에 우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그들의 소유권 보유에 신경을 쓰겠는가? …… 그 식량이 내가 아끼는 친구에게 피해만 줄 거라면, 식량을 전부 잃어버리는 게 훨씬 더 낫다! 그것이 여러분을 몰락으로 이끌 뿐이라면, 그 일 전체를 그만두는 편이 훨씬 더 낫다!"

 

나는 체르니셉스키가 그 시대의 현실을 얼마나 깊이 있고 훌륭하게 이해했는지, 그가 농민들이 지불해야 할 상환금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러시아 사회계급들 간의 적대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단락들을 별도로 강조했다. 검열에 노출된 언론에서 그런 순수하게 혁명적인 생각들을 소상하게 설명할 줄 아는 그의 능력에 주목하는 것 역시도 중요하겠다. 그는 불법화된 저술들에서는 똑같은 내용의 글을 에두른 표현 없이 쓴 적이 있는데, 서문을 위한 서문에서 (체르니셉스키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설정한 인물인) 불긴(Volgin)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지주들의 정당의 손에 농민의 해방을 맡기시오. 그다지 별 차이도 없을 테니까."¹³그리고 지주들의 정당은 농민들에게 토지를 할당해주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차이가 엄청날 거라는 대화 상대방의 언급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답한다.

 

"아니, 차이는 별로 크지 않고 무의미할 정도일 거요. 만약 농민들이 상환금을 치르지 않고도 토지를 확보할 수 있다면, 그 차이는 엄청나겠지요.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서 물건을 가져가는 것과 그의 수중에 그대로 두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물건을 가져가면서 그에게 대금을 치른다면 완전히 똑같은 셈입니다. 지주 정당과 혁신주의자들의 구상 간의 유일한 차이는 전자가 더 단순하고 시간이 짧게 걸린다는 것뿐입니다. 차라리 그 편이 훨씬 더 나은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불필요한 요식 행위가 줄어든다면, 십중팔구 농민들의 부담도 덜할 겁니다. 돈을 가진 농민들은 땅을 살 것이고, 돈이 없는 농민들에게는 땅을 사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땅을 사라고 강요하는 건 그들을 몰락시킬 뿐입니다. 토지 상환금을 내리는 건 사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농민 개혁이 막 도입되고 있던 그 시대에(당시엔 서구 유럽에서조차 그것이 적절히 규명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부르주아적인 본질을 이렇게도 명확하게 꿰뚫어본다는 건 체르니셉스키 같은 사람의 비범한 재능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당시 이미 러시아 '사회''국가'가 노동인민과는 화해할 수 없을 만큼 적대적이었던 사회 계급들에 의해 지배되며 통치되고 있다는 사실과 농민층의 몰락과 강탈은 그들에 의해 명백히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체르니셉스키는 우리의 사회적 적대관계를 눈에 띄지 않게 가리는 정부의 존재가 노동인민의 조건을 훨씬 더 악화시키는 끔찍한 악마라는 사실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긴은 계속해서 "사실대로 말하자면, 농민들은 토지 없이 해방되는 편이 더 나을 것이오"라고 말한다(즉 이 나라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봉건지주들이 농노 소유주로서의 이해관계를 감춘 채 위선적인 절대주의 정부의 절충안 뒤에 숨는 대신 숨김없이 솔직하게 행동하고 마음속에 담은 생각들을 모두 털어놓는다면,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을 거라는 뜻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나는 자유주의자들이나 지주들이 농민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나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농민들이 해방되었는지 아닌지에 관해서도 신이 나서 흥분할 만한 이유를 전혀 찾을 수가 없구려. 내 생각엔 그건 별로 중요치가 않소. 차라리 지주들이 솔직해지면 더 좋겠단 말이오."

 

그리고 여기 '수신인 없는 편지들'에서 가져온 단락도 있다. "그들은 농민들을 해방시키라고 말한다. …… 그럴 만한 힘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 힘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만한 힘이 부족할 때 일에 달려드는 건 소용없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뻔히 보인다. 그들은 농민들을 해방시키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될까? 글쎄,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에 달려들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스스로 판단해보기 바란다.

 

그저 일을 그르치고, 결과는 끔찍할 것이다."¹³¹

 

체르니셉스키는 러시아의 봉건 관료제 국가가 농민들을 해방시킬 수 없다는 사실, 즉 봉건적인 농노 소유주들을 타도할 수 없다는 사실과 '끔찍한' 무언가, 다시 말해 자유주의자들과 지주들의 이해관계 사이에서 보잘것없는 타협(구입에 불과한 환수)만이 가능할 거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타협을 위해서는 안위와 자유라는 환상을 동원해 농민들을 기만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것은 실제로는 농민들을 몰락으로 이끌어 지주들에게 완전히 팔아먹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개혁에 저항하고 맹렬히 비난했으며, 그것이 실패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정부가 자유주의자들과 지주 사이의 졸타기에 꼼짝 묶여 추락함으로써 러시아가 공개적인 계급투쟁의 길에 올라서기를 원했다.

 

그러나 체르니셉스키의 훌륭한 예언이 현실화되고 지난 30년간의 역사가 그 모든 경제적·정치적 환상들을 가차 없이 드러내 보여준 오늘날,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자들'은 개혁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그것을 '인민의' 생산에 대한 허가로 여기며, 거기에서 노동인민에 적대적인 사회 계급들을 설득시킬 방안을 찾을 가능성의 증거를 끌어낼 궁리를 한다. 되풀이하건대, 농민 개혁을 향한 그들의 태도는 우리의 민주주의자들이 얼마나 뼛속 깊이 부르주아로 변신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증거다. 그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오히려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다.

 

이 대목에서 비교를 위해 1872년의 조국 연보를 한번 예로 들어볼까 한다. 나는 앞서 이미 "위대한 해방을 위한" 개혁이 있은 뒤 첫 10년간 러시아 사회가 이룩한 자유주의에 있어서의 (금권정치의 이해관계를 감춘)성공을 다룬 금권정치와 그 토대의 몇몇 구절들을 인용한 바 있다.

 

같은 글에서 바로 그 필자는 예전에는 개혁에 관해서 징징거리고 좋았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흐느끼는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사람들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고 쓴 적이 있다. "모두가 새로운 질서에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만족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어떻게 문학 "자체가 금권정치의 기관이 돼" "민주주의를 빙자하여" 금권정치의 이해관계와 열망을 옹호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주장을 조금 더 자세히 검토해보도록 하자. 필자는 개혁이 가져다준 새로운 질서에 "모두가" 기뻐한다는 사실과, 새로운 질서의 명백히 적대적인 부르주아 특성들에도 불구하고 "모두가"(물론 노동인민이 아닌 "사회""지식인계급"의 대표들이) 행복해하며 만족해한다는 사실에 불만이었다. 대중은 자유주의가 단지 노동인민 대중의 희생과 불리함을 당연히 그 대가로 한 "취득의 자유"를 가려줄 뿐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반대하고 나섰다. 그의 주장에서 가치가 있는 건 사회주의자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반대한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우리는 금권정치가 민주주의에 의해 가려진 데 대한 이러한 반대가 해당 잡지의 전반적인 논리와 모순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들은 농민 개혁 안에 부르주아적 특성들과 요소,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러시아의 지식인계급 및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러시아에 자본주의를 위한 토대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부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집단의 존재를 느끼고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러시아 사회 내의 적대를 감지한 조국 연보가 부르주아 자유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 그들은 선구적인 사회주의자들 모두가 공유했던 대의명분하에 투쟁을 벌인 셈이었다. 선구적 사회주의자들은 비록 적대성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적대성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만들어낸 사회구조 자체와 싸우기를 소망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국 연보는 진보적이었다(물론 프롤레타리아의 시각에서 볼 때 그랬다). 그런데 '인민의 벗들'은 이런 적대관계를 망각했고, 이 나라 신성 러시아의 순혈 부르주아들이 '민주주의의 외피 아래' 몸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모든 지각 능력을 잃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와의 관계에서) 반동적인 이유다. 그들은 적대관계에 대해 얼버무리고 넘어갈 뿐 아니라, 투쟁이 아닌 유화적인 '고양' 활동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신사양반들, 1860년대에 민주주의자로서 금권정치를 대표했던 말끔한 눈썹의 러시아 자유주의자가 1890년대에 접어들어 자신의 눈썹이 시민들의 근심으로 뒤덮였다는 이유만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이념가이기를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

 

현재의 사회적·경제적 관계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도 대규모 '획득의 자유', 즉 거대한 신용과 거대한 자본, 거대한 기술개선을 획득할 자유가 단지 소규모 신용과 소규모 자본, 소규모 기술 개선을 취득할 자유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유주의적, 다시 말해 부르주아적이기를 멈추었겠으?

 

거듭 말하건대, 그들은 이 나라 질서에서의 급진적인 변화나 급진적인 시각 변화의 영향에 따라 자신들의 견해를 바꾼게 아니다. 그들은 그저 망각했을 뿐이다.

 

한때 그들의 선배들을——이론의 불건전함과 순진무구함, 현실에 대한 공상적 견해에도 불구하고——진보적으로 만들었던 유일한 특성을 잃어버린 '인민의 벗들'은 그 모든 시간 동안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 러시아의 현실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분석은 차치하고서라도 지난 30년간의 러시아 정치 역사는 그들에게 많은 걸 가르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1860년대' 당시, 봉건 지주들의 권력은 차츰 무너지고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아주 결정적인 패배를 맛봤고, 그래서 슬그머니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고개를 쳐들었다. 진보, 과학, 우수성, 불의에 맞선 투쟁, 인민의 이익, 인민의 양심, 인민의 힘 등등에 관한 자유주의적 미사여구들이——오늘날 이 특별한 불황의 시기에 우리의 급진적 불평불만꾼들과 자유주의 입담꾼들이 살롱과 기념일 만찬과 잡지와 신문에서 토해내는 미사여구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여기저기 넘쳐났다. 자유주의자들은 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지만 타당한 기준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만큼 충분히 강력하다는 걸 입증했다. 당시에도 러시아에 '공개적인 계급투쟁의 밝은 빛'이 비친 건 아니었으나, 그 빛은 지금보다는 더 밝았고, 그래서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은 조금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독한 현실을 해명하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쪽을 택했던 노동인민의 관념론자들조차도 자유주의는 금권정치가 두른 외피일 뿐이며 새로운 질서는 곧 부르주아 질서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두가 가능했던 건 봉건 지주들이 무대에서 제거된 덕분이었다. 그들은 당시의 여전한 단순 폐해들로 관심을 분산시키지 않았고, (비교적) 순수한 형태의 새로운 질서가 목격되는 걸 막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대 우리 민주주의자들은 금권주의적 자유주의를 비난하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우리의 자본주의적 사회·경제구조 아래에서는 그것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고, 과거의 봉토제도와 비교해볼 때 새로운 삶의 체제가 갖는 진보적 성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 체제가 만들어낸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인 역할 역시 이해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 '자유''인간성'의 체제에 '코웃음을 치는 데' 그쳤을 뿐이고, 그 부르주아적 성격을 우연이라고 상상했으며, 다른 어떤 종류의 사회적 관계가 '인민의 시스템'에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거라 기대했다.

 

그후 역사는 그들에게 다른 사회적 관계들을 보여주었다. 개혁에 의해 터무니없이 이익이 손상되었을 뿐 완전히 궤멸되지는 않은 봉건 지주들은 (한동안) 되살아나 부르주아적 사회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생생히 보여주었고, 우리의 민주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순진무구한 (부르주아적인 감각할 수는 있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던) 민주주의를 사회민주주의로 진전시키고 변형시키는 대신 두려움에 사로잡혀 허우적대다가 자유주의자들로 퇴보한 다음 이제 자신들의 찰거머리가——즉 그들의 이론과 강령들이——'진지하고 존경받는 언론 전체'에 의해 공유된다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견잡을 수 없을 만큼 무분별하고 약탈한 반동의 형태로 보여주었다. 이는 사람들에게 아주 인상적인 교훈을 남겼을 것이고, 인민의 특별한 삶의 양식과 인민의 사회주의적 본능, 그리고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계급의 우연적 성격에 대한 옛 사회주의자들의 환상은 너무나 명백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눈 앞에서 펼쳐진 현실들을 똑바로 쳐다본 뒤, 러시아에는 부르주아와 소멸 직전의 봉건적 관계 말고는 다른 어떤 사회경제적 관계도 존재하지 않았고 또 존재하지 않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따라서 노동계급 운동을 거치는 것 말고는 사회주의로 향하는 길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민주주의자들은 거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으며, 소부르주아 사회주의라는 순진한 환상은 소부르주아 진보라는 실질적 온건함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오늘날 노동인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들로 자처하고 나선 이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이론은 분명 반동적이다. 그 이론들은 현재 러시아의 사회적·경제적 적대관계를 모호하게 하고, '향상', '개량' 등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 조치들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화해와 통합이 가능한 것처럼 주장한다. 그것들은 국가를 초계급적인 것, 착취받는 인민에게 진심 어린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그리기에 적합한 존재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반동적이다.

 

마지막으로 그 이론들은 단순히 투쟁의 필요성, 즉 해방을 위한 노동인민 스스로의 절박한 투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반동적이다. 예를 들어 '인민의 벗들'은 자기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노동자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저런,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사무실을 방문한 기술자 한 사람이 거기에서 '자본주의를 인민의 삶에 도입하기' 위한 '계획'을 거의 완벽하게 구성해냈나 보다.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소부르주아 사상 및 이론들과 단호하고 완전하게 결별해야 한다. 그것이 이 투쟁에서 얻을 수 있는 주요하고 쓸모 있는 교훈이다.

 

여기서 나는 소부르주아 사상과의 단절을 주장했지 '인민의 벗들'이나 그들의 사상과의 단절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그 이유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는 무언가와는 아예 단절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민의 벗들'은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사상들 가운데 하나의 경향을 대표할 뿐이다. 그리고 이 경우 내가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사상들, 남은 러시아 농민사회주의 사상들과 전체적으로 단절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남은 사상의 대리자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성장에 접목은커녕 오히려 반마르크스주의 운동이 그들로 하여금 소부르주아 사상들을 유달리 풍부하고 선명하게 표명하도록 유도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사상들을 동 시대 사회주의 및 러시아의 실상과 비교해보면, 그 사상들이 얼마나 시대에 뒤쳐져 있는지, 그리고 완전한 이론적 토대의 흔적을 모조리 상실한 채 한심한 절충주의와 가장 명백한 기회주의적 고양 프로그램의 단계로까지 전락했는지를 놀랄 만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물론 그게 남은 사회주의 사상 전반의 과실이 아니라 누구도 사회주의자로 분류해주지 않는 문제의 신사양반들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런 주장은 상당히 불합리하다. 나는 그런 남은 이론들은 퇴화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써왔다. 특히 그런 신사양반들에 대한 비판은 가급적 최대한으로 줄이고, 남은 러시아 사회주의의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신조들에 가능한 많은 비판의 공간을 할애하려고 이제껏 노력해왔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런 신조들을 부정확하거나 부적절하게 규정했다든지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이 있다는 걸 사회주의자들이 발견하게 된다면, 다음과 같이 아주 겸손한 요청으로 답변을 대신하고자 한다. "신사양반들, 부디 여러분이 직접 밝히고 제대로 충분히 설명해주시오!"

 

정말이지 사회주의자들과 논쟁할 기회를 갖는 것을 사회민주주의자들만큼 반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신사양반들이 직접적이고 끈질기며 단호한 도전을 해오지 않는데도 우리가 그들의 '논박'에 답하는 걸 기꺼이 할 리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우리가 이 신물 나는 진부한 자유주의적 미사여구와 속물적 훈계들을 읽고 또 읽어 억지로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게 불필요하다고 봐야 할까?

 

확실히 오늘날 그런 사상들이 옳다는 걸 입증하고 소상히 설명할 임무가 오로지 그 신사양반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나는 또한 내가 사회주의와 관련된 소부르주아 사상들과 단절할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데에도 여러분이 주목해주기를 부탁드린다. 우리가 검토한 소부르주아 이론들은 스스로 사회주의 이론이라고 주장하는 한 무조건 반동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속에는 사회주의적인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을, 즉 그 이론들은 모두 노동인민의 착취를 해명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고 따라서 그들의 해방을 위한 도구로 쓰일 수 없으며 사실상 소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그 이론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달라야 하고 그래서 우리는 '소부르주아 계급과 그들의 구성에 대한 노동계급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소부르주아 계급의 이중적 성격이 고려되지 않으면(러시아에서는 거대 부르주아 계급과 아직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소부르주아 계급 사이의 적대 때문에 이런 이중성이 특히 뚜렷하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보통의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내세우는 한, 다시 말해 중세시대와 농노제의 존속에 맞서 싸운다는 점에 있어서 진보적이다. 반면 또 그들은 소부르주아 계급으로서의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싸우고, 이 나라의 전반적인 발전을 부르주아 노선에 따라 지연시키고 되돌리려 애쓴다는 점에서는 반동적이다. 예를 들어 농민들을 감독하기 위한 여타 수많은 기획들뿐 아니라 악명 높은 분여지의 양도 불가 같은 식의 반동적 요구들은 노동인민을 보호한다는 그럴듯한 말로 대개 가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분명 그들의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며, 동시에 해방을 향한 노동인민의 투쟁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부르주아적 구상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들은 서로 엄격한 구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우리는 그 이론들이 어쨌든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부인하고 그 반동적인 측면과 맞서 싸워야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론들이 가지는 민주적인 측면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소부르주아 이론들을 절대적으로 거부하긴 하나 그것이 소부르주아들로 하여금 그들의 구상 속에 민주주의를 포함시키는 것까지 막아서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반대로 민주주의를 훨씬 더 강력하게 주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하나의 사례를 제시할까 한다. 앞서 우리는 소부르주아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이들의 이론적인 상투적 요소들을 언제나 형성해온 세 가지 주요 논지들, 곧 토지 빈곤, 높은 지불금, 당국의 폭정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악행들의 폐지 요구에는 사회주의적인 측면이 전혀 없다. 그것은 강탈과 착취를 조금도 해명해주지 못하며, 그런 악행들의 제거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억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억압을 더욱 가중시키는 중세의 찌꺼기를 없애줄 것이며, 자본을 상대로 한 노동자의 직접적인 투쟁을 촉진시켜줄 뿐 아니라, 그런 이유로 인해 민주적 요구로서 노동자들의 가장 활발한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지불금과 세금의 문제는 소부르주아만이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농민들이 내는 지불금은 많은 측면에서 볼 때 농노제의 유물일 뿐이다. 예를 들어 토지상환금은 즉시 무조건적으로 폐지되어야만 한다. 농민들과 소도시 사람들만이 지불하고 '상류층'에게는 면제되는 세금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경제적·정치적 침체를 야기하는 중세적 관계의 이 유물들을 폐지하려는 요구에 언제나 지지를 보낼 것이다. 토지 빈곤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적용될 수 있겠고 말이다. 이와 관련해 나는 그런 불평의 목소리가 가진 부르주아적 성격에 대해서도 이미 충분히 그 증거를 제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농민 개혁에 따른 토지 절취의 허용은 분명 지주들의 이익을 위해 농민들을 강탈함으로써 엄청난 반동 세력인 그들에게 직접적인(농민에게서 땅을 탈취해) 동시에 간접적으로(분여지를 구분하는 영리한 방식으로) 이바지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농민들에게서 빼앗아간 토지를 그들에게 즉각 되돌려줄 것과 봉건제도 및 전통의 보루인 토지소유권의 완전한 폐지를 아주 필사적으로 주장할 것이다. 토지의 국유화와 동시에 일어나는 후자의 경우에는 이미 이 나라에서 형성되고 있는 자본주의 농업 관계를 더욱 급속하고 풍부히 변창시킬 뿐일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사회주의적인 측면을 전혀 담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민주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토지귀족의 힘을 완전히 꺾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조치로서 아주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농민들이 수탈되고 착취받는 원인으로 농민들의 부족한 권리를 지목할 수 있는 건 유자코프와 V. V.를 따르는 자들만이 유일하다. 당국에 의한 농민 억압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며, 그것은 단순한 억압 그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농민들을, 토지귀족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한 '천한 무리'로 취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시민으로서의 일반적인 권리는 그들에게 특별한 호의로서만(예를 들어 이주¹³²) 베풀어질 뿐이며, 마치 농민들이 노역장 수용자들이라도 되는 양 하급관리조차 거드름을 피우며 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농민들의 시민적 권리의 완전한 회복과 모든 귀족 특권의 완전한 폐지, 농민에 대한 관리 감독의 철폐, 스스로의 일을 직접 알아서 할 수 있는 농민들의 권리를 조금도 거리낌 없이 지지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고수하는 러시아의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누구보다 자신들을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불리야 하며, 자신들의 활동에서 민주주의의 거대한 중요성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¹³³

 

러시아에서 중세적·()봉건제적 유물들은 (서구 유럽과 비교해볼 때)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그것들이 프롤레타리아트와 인민들을 억압하는 명백가 되어 모든 계급의 정치사상의 성장을 지연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봉건제도를 절대왕정, 사회적 신분제, 관료체제에 맞서는 투쟁이 노동자들에게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제도들이 얼마나 반동적인지, 자본에 의한 노동의 탄압을 어떻게 강화하는지, 노동인민들에게 어떤 모델적인 압력을 행사하는지, 어떻게 자본을 중세적 형태로 계속 머무르게 하는지, 노동의 착취에 관한 한 현대의 산업 형태에는 못 미치지만 해방을 위한 투쟁에 지독한 난관을 심어놓는지를 노동자들에게 최대한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이러한 반동의 기둥들¹³을 쓰러뜨리지 않고서는 부르주아 계급을 상대로 하여 성공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그것들이 존재하는 한, 러시아의 농촌 프롤레타리아는 언제까지나 짓밟히고 주눅 든 존재로서 영리하고 끈기 있는 저항 대신에 자포자기식의 불만소리밖에 할 줄 모르는 상태로 남아, 노동계급의 승리를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그들의 지지는 영원히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절대왕정과 반동적인 사회 신분 및 제도들에 맞서 급진적인 민주주의자들과 나란히 싸우는 것이 노동계급의 직접적인 의무인 이유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자들에게 그런 의무를 명심시켜줘야 할 것이며, 그런 제도들을 모두에 맞서 싸우는 것이 부르주아 계급을 상대로 한 투쟁을 촉진할 수단으로서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인식시키는 작업을 한시라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노동인민들의 주적, 즉 태생적으로는 순수하게 민주적이었으나 특히 이곳 러시아에서는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는 한편 노동자들을 억누르기 위해 반동들과 손잡고 노동계급 운동의 출현을 더 한층 방해하는 경향이 있는 자본을 상대로 한 승리의 길을 열어줄 전면적인 민주적 요구들의 성취가 노동자들에게 필요하다는 인식도 심어주어야 할 테고 말이다.

 

이제까지 이야기한 내용들로 절대왕정과 정치적 자유를 향한, 그리고 최근 들어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는 정치적 자유를 얻기 위한 모든 혁명 그룹들의 '연합''동맹'을 지향하는 경향¹³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태도를 정의 내리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경향은 다소 독특하고 특징적이다.

 

여기서 독특하다는 건, 이런저런 점에서 일치하는 명확한 계획을 지닌 명확한 하나의 그룹이나 여러 그룹들로부터 '동맹'을 위한 제안이 나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랬다면, 동맹의 문제가 각각의 따로 떨어진 경우에 맞게 연합한 그룹들의 대표들에 의해서 해결될 구체적인 문제가 되었을 것이고, 특별히 '연합'하려는 경향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향은 실제로 존재하고, 그야말로 과거로부터 표류해 아직 새로운 곳에 정박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절대주의 체제에 맞선 전사들이 여태껏 토대로 삼아왔던 이론은 명백히 무너져내리고 있고, 투쟁에 필수적인 연대와 조직을 위한 조건들을 파괴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이들 '연합 세력''동맹 지지자들'은 그런 이론을 창조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 그것을 절대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와 정치적 자유에 대한 요구로 축소시키는 동시에, 사회주의적인 문제와 비사회주의적인 문제를 포함한 다른 모든 문제들을 얼버무려 넘기는 거라 생각하는 듯하다. 통합을 향한 첫 번째 시도에서의 그런 순진한 오류는 필시 밑바닥부터 뒤집히게 되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특징적인 것은 이러한 '연합'의 경향이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인민주의가 정치적으로 봤을 때 급진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 내가 앞에서 개괄하려 했던 과정의 마지막 단계들 중 하나를 대표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된 기치 아래 모인 모든 비사회민주주의적 혁명 그룹들의 연합은 오직 러시아 예외주의라는 남은 편견을 끝장내기 위한 민주적 요구들을 담은 지속성 있는 강령이 마련됐을 때만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런 민주적 정당을 설립하는 것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유용한 발걸음이 될 거라는 걸 믿는다. 그리고 그들의 반인민주의 활동은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모든 편견과 신화를 뿌리째 뽑고 사회주의자들을 마르크스주의의 기치 아래 묶어내 다른 그룹들에 의한 민주적 정당의 설립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조직화를 통해 별도의 노동자 정당을 세우는 것이 필수적이라 여기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물론 그런 정당과 '연합할 수'는 없겠지만, 노동자들은 반동적인 제도들에 맞선 민주주의자들의 그 어떤 투쟁도 아주 강력하게 지지할 것이다.

 

인민주의가 가장 평범한 소부르주아 급진 이론으로 타락한——'인민의 벗들'이 아주 두드러진 증거다——사실은 우리의 사회적 관계의 적대적인 성격과 전체 노동인구의 해방을 위한 전사로서의 러시아 노동자의 역사적 임무를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절대주의 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고만을 그들 사이에 확산시킨 자들이 얼마나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부르주아 계급의 관념론자들까지 정치적 자유에 호의적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덕분이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을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을 독점하려 한다는 비난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이곳 러시아에서 노동인민에 대한 착취가 사회적 경제의 부르주아적 구성에 의해 설명되지 않고 토지 빈곤, 상환금, 또는 당국의 폭정에 의해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설명된다면, 가치의 형태와 부르주아 체제의 본질,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역할을 노동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이론이 완전히 자리 잡은 공장 노동자계급에도 속하지 못한 '인민' 대중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와 고용주의 관계(러시아의 자본주의는 정부에 의해 인위적으로 주입돼왔다)조차 설명해줄 수 없다면, 계급투쟁 이론을 노동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 이 나라 인민들이 자본주의와 그것이 만들어낸 프롤레타리아라는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 공산주의에 다다를 방법을 찾고자 한다면,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과 그 당연한 귀결——자본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를 열어젖힐 사람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역할——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분명 그런 조건에서 노동자에게 정치적 자유를 위해 싸우라고 요구하는 것은 진보적인 부르주아 계급을 위해 불구덩이에서 밤을 끄집어내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이유는 정치적 자유가 주되게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에 기여할 뿐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시켜주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늘 그렇듯, 인민주의자들과 나로도불치조차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 부르주아 계급을 상대로 하여……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이기 위한 조건을 용이하게 해줄 것이다. 나는 이를 자신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노동자들 사이에서만 혁명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경험적으로 확신하게 된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들 내에서 계속 소요를 일으키는 데 대한 반대 차원에서 일러두는 것이다. 그들 사회주의자들의 이론은 실천과 모순되며,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을 조직할 과업으로부터 노동자들을 흩어놓는 아주 심각한 잘못을 범하고 있다.¹³

 

부르주아 사회의 계급적대가 아직 제대로 성숙하지 않았고 농노제에 의해 억제되어 있는 시점에, 농노제가 지식인계급 전체의 일치된 반대와 투쟁을 불러옴으로써 그들 내에도 특별히 민주적인 측면이 있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상 사이의 간극은 전혀 깊지 않다는 환상을 빚어내는 시점에 떨쳐 일어난 것은 당연히 잘못이었다. 이제 경제 발전이 상당히 진행되어 예전에는 러시아 자본주의의 토대를 부정했던 사람들조차 이 나라가 자본주의 발전 경로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그런 환상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지식인계급'의 구성은 물질적 가치의 생산에 접어든 사회의 구성만큼이나 아주 뚜렷한 윤곽을 취하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는 자본가가 지배하고 다스리는 반면, 지식인계급 사이에서는 급속히 세를 불려가고 있는 출세주의자들과 부르주아 심부름꾼 무리가 방식을 정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지식인'은 그저 자족하며 받아들일 뿐이다. 이런 사실들을 부인할 수 없었던 우리의 급진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그걸 강하게 강조하고 그 부도덕함을 입증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비난을 가하고 틀렸음을 입증한 뒤…… 부끄럽게 만들려 애를 쏟는다. 부르주아 인텔리겐처가 자신이 부르주아적인 것을 부끄러워하도록 만들려는 이런 순진한 노력은, 우리의 소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인민의 몰락과 빈곤, 실업, 대중의 기아가 머지않았다는 이야기로 ('형님들'의 경험을 웅호하며) 부르주아들을 겁먹게 하려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부르주아 계급과 그 이론가들의 이러한 시도는 강불에 내던져지는 형벌에 처한 물고기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도를 넘기 시작한 자유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지식인계급'은 진보니, 과학이니, 진실이니, 인민이니 하는 무수한 표현들을 쏟아냈고, 불협화음과 우울, 낙담, 무관심이란 찾아볼 수 없이 민주주의로 온 심장이 불타올랐던 1860년대가 지나간 것을 비통해 한다.

 

이제는 그들의 특징이 된 단순함으로, 그들 신사양반들은 1860년대만 해도 의견일치가 지배적이었던 이유가 당시엔 존재하다가 이제는 사라져 되돌아올 수 없게 된 물질적 조건 때문에 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길 거부한다. 그때는 농노제가 모두를 똑같이 억눌렸고, 약간의 돈을 모아 편안하게 살기를 바랐던 농노 관리인이 있었으며, 지대를 받아내고 일일이 간섭하며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지주를 증오했던 기업형 농민이 있었다. 프롤레타리아화한 장원 농노와 빈곤에 빠진 농민은 상인에게 노예로 팔려갔으며, 이는 상인 제조업자와 노동자, 수공업자와 하청인에게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이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한 유일한 끈은 농노제에 대한 그들의 적개심이었다. 이런 와중에 그러한 의견일치 너머로 가장 날카로운 경제적 적대가 시작되었다. 그 적대가 너무나 거대하게 발전한 오늘날에조차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려면, 달콤한 환상에 얼마나 흠뻑 젖어 있어야 하는 걸까. 상황이 투쟁을 요구하는 시대에 의견일치가 존재하던 지난날로 돌아가고 싶어 눈물 흘리는 대신, 기꺼이 또는 마지못해 부르주아 계급의 신하가 되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에 서야 하는 시점이다.

 

만약 여러분이 '인민의 이익'에 관한 그럴듯하게 치장된 이야기를 믿는 걸 거부하고 좀 더 깊이 파고들어가본다면, 다양하고 순수한 진보적 조치들로 그들의(그 사람들 용어로는 "인민들의") 경제를 개선하고 지원하고 회복시키려는 꿈을 꾸는 철저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자들은 지배적인 생산관계하에서 그런 진보적 조치들이 끼칠 수 있는 유일한 효과는 대중의 프롤레타리아화를 더 한층 심화시키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지식인들의 계급적 성격을 드러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이 나라 소생산자들 역시 소부르주아에 불과하다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공고히 해준 데 대해 '인민의 벗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오랫동안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남은 환상과 신화들의 소멸을 불가피하게 재촉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인민의 벗들'이 이론들에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히고, 남용하고, 더럽힌 나머지, 그걸 간직해온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은 그것을 수정하거나 모두 포기하든지 아니면 그 신사양반들이 독점해 사용하게 내버려두든지 선택해야 하는 가혹한 딜레마에 처해 있다. '인민의 벗들'은 부유한 농민들이 개선된 농기구를 구입하고 있다며 의기양양하고 근엄하게 전세계에 선포하고, 카드놀이에 싫증난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줘야 한다며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확인한다. 그리고 같은 어조로 "인민의 시스템""지식인계급"을 이야기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잘난 체하는 과장된 표현들로 드높은 이상과 삶의 문제들의 이상적인 치유를 입에 올린다!

 

사회주의적 지식인계급은 자신들의 환상을 포기하고, 희망으로 바라는 러시아의 발전이 아닌 실질적인 발전, 그리고 있음직한 사회경제적 관계가 아닌 현실적인 관계의 지지를 추구하기 시작할 때에만 내실 있는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들의 이론적 활동은 러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경제적 적대와 그 연관성, 그리고 연속적인 발전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로 향해야만 한다. 그들은 정치역사와 법률 시스템의 특성, 또는 기존에 확립된 이론적 편견에 의해 언제나 감춰져왔던 적대를 드러내주어야 할 것이며, 명확한 생산관계 시스템으로서 우리의 현실을 하나의 완전한 그림으로 나타내주어야 하며, 현 체제에서는 노동인민의 착취와 강탈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경제 발전으로 표현된 현 체제에서 빠져나갈 길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에 기초한 이런 이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에 걸맞은 해답을 제공해주어야 할 것이며, 만약 그것이 과학이 요구하는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있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저항적 사고가 깨어날 때마다 반드시 그것을 사회민주주의의 바다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는 데 있어 더 큰 진전이 이루어질수록 사회민주주의는 더 빠르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현 체제의 가장 교활한 수호자들조차 프롤레타리아트 사상의 각성을 막을 수는 없다. 현 체제 자체가 필연적이고 불가피하게 생산자들의 가장 극심한 강탈과 프롤레타리아 및 그 예비군의 끊임없는 성장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 부의 진척과 생산력의 거대한 성장,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한 노동의 사회화와 나란히 병행될 것이다. 이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기까지 아무리 할 일이 많다 하더라도, 사회주의자들은 그걸 해내고야 말 것이다. 모든 계획에 있어 실질적 과정의 엄밀한 공식화를 요구하는 유일하게 과학적인 방법론이라 할 수 있는 유물론이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그 사상들을 채택한 사회민주주의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보장한다. 사회민주주의의 성공은 이 나라 자유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을 뒤흔들어 놓아, 어떤 마르크스주의자가 말했던 것처럼 그들이 펴내는 월간지들도 이제는 더 이상 따분하지가 않을 정도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적 활동의 필요성과 중요성, 방대함을 강조함에 있어서 나는 그 활동이 실천적 활동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는 결코 말하고 싶지 않다.¹³전자가 완성될 때까지 후자를 연기해야 할 이유는 많지 않다.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을 승배하는 사람들이나 공상적 사회주의의 추종자들만이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의 임무가 나라를 위해 (현재의) '발전 경로'(와는) '다른 경로'를 추구하는 것이라 여긴다면, 당연히 천재적인 철학자들이 그 '다른 경로'를 발견하고 가리킬 때에만 실천 활동이 가능해질 테고, 거꾸로 말하면 그 경로가 포착되고 표시되기만 하면 실천 활동은 그냥 끝을 맺게 된다. 그때부터는 '새로이 발견된' '다른 경로'를 따라 '조국'을 안내할 사람들의 역할이 시작될 테니 말이다. 반면 사회주의자들의 임무가 현재의 사회적·경제적 발전의 실질적인 길을 가로막고서 실질적이고 진정한 적들에 맞서 현실의 투쟁을 벌이는 프롤레타리아의 이념적 지도부 역할이라고 할 때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 상황에서의 이론 활동과 실천 활동은, 독일의 유명한 사회민주주의자 리프크네히트(Liebknecht)가 적절히 표현한 다음과 같은 말로 수렴된다.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앞서 말한 이론적 활동 없이는 사상적 지도자가 될 수 없듯이, 이론 활동을 대의의 요청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노동자들 사이에서 그 이론의 결과를 확산시켜 그들의 조직화를 돕지 못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과업의 제시는 사회주의자 그룹들이 아주 흔히 겪는 교조주의와 종파주의로부터 사회민주주의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교리의 최고이자 유일한 기준이 실제적인 사회적·경제적 발전 과정과 일치하는 곳에서는 교조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있을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의 조직화를 촉진하는 것이 그 임무가 되고, 따라서 '지식인계급' 내부에서 특정한 지도자들을 내오는 것이 불필요해질 때 역시 종파주의가 생겨날 수 없다.

 

그러므로 다양한 이론적 문제들에 관해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치 활동 방식은 그 그룹이 생겨난 이래로 변함없이 유지돼왔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정치적 활동은 러시아에서 노동계급 운동의 조직화와 발전을 촉진하고, 그 운동을 현재와 같이 지도 사상도 없이 간헐적으로 시위와 '폭동'과 파업을 벌이는 수준에서 부르주아 체제를 겨냥한 러시아 노동계급 전체의 조직화된 투쟁과 착취자들로부터 빼앗긴 것을 되찾아오는 활동, 노동인민의 억압에 기초한 사회 체제를 폐지하는 운동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또한 이러한 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러시아 피착취 노동인민의 유일하고도 자연스러운 대표는 러시아 노동자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공통된 확신이다.¹³

 

여기서 자연스럽다는 건, 소멸 직전에 있는 농노 경제의 자투리들을 무시한다면 러시아 노동인민에 대한 착취가 사실상 어디에서나 자본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생산자 대중에 대한 착취는 소규모로 흩어져 있고 덜 발달되어 있지만, 공장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는 대규모이며 사회화되어 있고 집중되어 있다. 생산자들이 받는 착취는 여전히 중세적 형태와 다양한 정치적·법적·관습적인 뒷과 술수와 장치들에 얽혀 있어, 노동인민과 그들의 사상가들이 노동인민을 억압하는 체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을 방해하고 그 체제에서 벗어날 방안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알 수 없게 한다. 반대로 공장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전혀 혼동할 필요가 없을 만큼 순수한 형태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완전히 발전해 있는 상태다. 노동자는 자신이 자본에 의해 억압하고 있으며 부르주아 계급을 상대로 하여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직접적인 경제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물질적 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그 투쟁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요구하며, 개개인이 아닌 하나의 계급에 맞서는 전쟁, 공장에서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노동인민을 억압하고 찢밟는 계급을 상대로 하는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공장 노동자가 착취받는 인민의 대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대표가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에서 자신의 임무를 계속 수행하게 하기 위해 '관점들'로 그를 열광시킬 필요는 전혀 없다. 단지 필요한 건 그에게 자신의 위치를 이해시키는 것, 그를 억압하는 체제의 정치경제적 구조와 그 체제에서는 계급적대가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것뿐이다. 자본주의적 관계의 일반적 체제에서 공장 노동자의 이러한 지위는 그를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한 유일한 전사로 만든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의 높은 발전 단계인 대규모 기계 공업만이 그 투쟁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과 사회 세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발전의 형태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 물질적 조건이 부재한 다른 모든 부문에서는 생산이 수천 개의 조그마한 사업장들로 산재돼 있고 (가장 평등한 공동체 토지소유 형태 아래서조차 기업들로 분산된다), 대부분의 경우 착취받는 자들이 여전히 조그마한 사업장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이 맞서 싸워야 할 바로 그 부르주아 체제에 묶여 있다. 이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회 세력이 발전하는 걸 지연시키고 방해한다. 흩어져 있고 개별적이며 사소한 착취는 노동인민을 하나의 지역에 묶어놓은 채 그들을 분리시키고, 그들이 계급적 연대에 눈을 뜨는 걸 막으며, 억압이 몇몇 특정 개인이 아닌 전체 경제 시스템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이루어질 그들의 단결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반대로 대규모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과거 사회와 특정 지역 및 특정 착취자와 모든 노동자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끊어놓고,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며, 그들을 사고하게 만들 뿐 아니라 조직화된 투쟁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에 놓이게 한다. 그러므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모든 관심과 활동을 집중시켜야 할 대상은 바로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의 선진적 대표자들이 과학적 사회주의와 러시아 노동자의 역사적 임무에 통달할 때, 그러한 사상들이 널리 확산될 때, 그리고 현재 드문드문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경제 전투를 의식적인 계급투쟁으로 전화시키기 위한 안정적인 조직이 노동자들 사이에 형성될 때, 바로 그때 모든 민주주의적 분파들의 최선두에 선 러시아 노동자들이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열려 있는 정치투쟁의 넓은 길을 따라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나란히)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 공산주의 혁명의 승리로 이끌게 될 것이다.

 

1894년 봄과 여름에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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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벗들의 정치 강령을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인민의 벗들'의 이론적 견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 듯하니, 이제부터는 그들의 정치 강령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그들은 무슨 수로 자기들이 '불을 끄겠다'고 나서는 걸까? 그들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제안 대신에 어떤 활로를 제시하고 있을까?

 

유자코프 선생은 농업부라는 제목의 글(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0)에서 "농민은행의 개편, 식민화 부서의 설립, 인민 농업을 위한 국유지 토지 임대차의 규제 …… 토지 임대의 연구와 규제 등이 인민 농업을 회복시키고 막 생겨나는 금권정치의 경제적 폭력으로부터 인민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경제 발전의 문제점들이란 글에서는 "인민 농업의 회복"을 위한 이러한 계획들이 뒤이은 "최초의, 그러나 필수적인 조치들"에 의해 보완된다고 밝혔는데, "마을공동체에 당장 지장을 주는 모든 규제의 제거, 보호감독의 면제, 공동 경작의 채택(농업의 사회화), 땅에서 얻는 원료의 공동체 가공 개발" 같은 조치들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크리벤코 선생과 카리세프(Karyshev) 선생은 여기에다 "저금리 신용, 집단 농장 형태의 농업, 보장된 시장, 고용주들의 이윤을 없앨 가능성"(이는 나중에 따로 다루게 될 것이다), "값싼 엔진을 비롯한 기술 혁신의 창안", 마지막으로 "박물관, 창고, 대리점"을 덧붙이고 있다.

 

이와 같은 강령을 검토해보면, 이 신사양반들이 현대 사회의 입장을(즉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채로 자본주의 체제의 입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을 고치고 끼워맞춰서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모든 진보적인 조치들——저금리 신용, 기계 개량, 은행 등——은 부르주아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어떠한 개혁도 쓸모가 없고, 신용, 이민, 세금 개혁, 모든 토지의 농민에게로의 이전은 어느 것 하나 눈에 띄게 바꾸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반대로 지금처럼 과도한 '보호감독'과 봉건적 부과금의 존속, 농민의 토지 예속 등에 의해 지체된 자본주의 경제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갈 거라던 니콜라이-온의 말은——이는 그의 가장 귀중한 이론들 중 하나로, '인민의 벗들'은 이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지극히 옳았다. 그는 바실치코프 왕자(Prince Vasilchikov, 사상적으로 의심의 여지 없는 '인민의 벗')처럼 신용의 확대, 발전을 소망하는 경제학자들은 부르주아 같은 "자유주의적인 것"을 바라면서 "자본주의 관계의 발전과 강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 ('농민층 내의') 생산 관계의 적대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러한 적대를 공개적인 장으로 끌어내려 애쓰거나 적대의 결과로 예속화된 사람들 편에 합류해 그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을 도우려 하기보다는 모든 이를 만족시킬 만한 조치들로 투쟁을 멈추게 함으로써 화해와 통합을 이루기를 꿈꾼다. 이런 모든 조치들의 결과물은 당연히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종류의 신용⁸⁷, 개량, 은행 그리고 유사한 '진보적' 조치들이 오로지 적절히 운영되고 틀이 잡힌 농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확실한 '저축'을 보유한 사람들, 즉 극소수 소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만 활용 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하려면 앞서 제시된 분화의 사례들을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농민은행과 유사 기관들을 아무리 개편한다 할지라도, 그 동안 빼앗겨왔고 또 계속 빼앗기고 있는 인민 대중 입장에서는 적절한 농업 수단은 물론이고 생계를 이을 수단조차 부족하다는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사실을 조금도 바꿔놓지 못할 것이다.

 

'집단 농장''공동 경작'도 마찬가지다. 유자코프 선생은 공동 경작을 가리켜 "농업의 사회화"라고 불렀다. 물론 이는 아주 웃기는 이야기로, 사회화는 단일 마을의 경계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생산이 조직되는 걸 요구하고, 생산수단을 독점해 현재 러시아의 사회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착취자들'의 재산 몰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시시한 속물적인 훈계가 아닌 투쟁과 투쟁, 또 투쟁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들의 그런 조치들이 온건하고 리버럴한 반쪽짜리 조치들로 변모해 인정 많은 부르주아의 판대함에 근근이 연명해가는 동안, 피착취자들로 하여금 투쟁보다는 몇몇 개인들 차원에서 가능한 개량적 조치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함으로써 훨씬 더 많은 해악을 끼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다. 그들 신사양반들이 러시아인의 삶에서의 적대를 숨기기 위해 얼마나 터무니없는 시도를 하는지는——물론 현재의 투쟁을 끝내려는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그리는 걸 텐데, 지옥으로 가는 길을 닦는 거나 다름 없다——크리벤코 선생의 다음 주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인텔리겐처가 공장주들의 기업을 지휘하자, 그들은 대중 산업을 지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철학 전체는, 투쟁과 착취가 존재하지만 만약…… 만약 착취자들이 없다면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짖어대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연 필자인 크리벤코 선생은 이런 쓸데없는 문구로 무슨 뜻을 전달하려던 것이었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러시아의 대학과 기타 교육기관들은 오로지 자신들을 먹여 살려줄 누군가를 찾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는 '인텔리겐처'라는 상표를 찍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오늘날 러시아에서 이러한 '인텔리겐처'를 지탱할 수단을 소유한 건 오직 소수 부르주아뿐이란 현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인민의 벗들'이 부르주아 계급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까닭에 러시아의 부르주아 지식인계급이 사라지게 될 거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 만약 그들이 부르주아 지식인계급이 아니라면 '그렇지도 모른다.' 그들은 부르주아 지식인계급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 러시아에 부르주아 계급도, 자본주의도 없다면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만약''그리고'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데 만족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신사양반들은 자본주의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보태는 걸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잘못된 무언가를 들여다보기를 철저히 거부하고 있다. 만약 일정한 '결함들'이 제거된다면, 그들로서는 자본주의하에서 살아가는 게 어쩌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벤코 선생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또 어떤가.

 

"자본주의 생산과 산업의 자본주의화는 공장제 수공업이 인민들로부터 오로지 결별만 하는 출구가 결코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한 인민들의 삶으로 들어와 농업과 원료 산업으로 더 가깝게 접근할 수도 있다.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성사될 수 있고, 그런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161)

 

크리벤코 선생은 미하일롭스키 선생과 비교해봤을 때, 예를 들어 솔직함과 단도직입적인 면 같은 수많은 장점들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주제를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고 꼼지락대기만 하다가 부드럽고 미려한 문장들로 지면을 채운다면, 사업가 스타일의 실용적 인물인 크리벤코 선생은 직설적으로 비판을 하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신의 터무니없는 견해 일체를 거리낌 없이 독자 앞에 펼쳐놓는다. "자본주의는 인민의 삶으로 들어올 수 있다." 세상에나! 말인즉슨, 노동인민이 생산수단과 결별하지 않고서도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건 확실히 마음에 드는 상황이다. 적어도 지금 '인민의 벗들'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아주 명확해졌으니 말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없는 상품경제, 강탈도 착취도 없이 인간적인 지주와 자유주의적인 관료들의 팔 아래서 평화롭게 무위도식하는 소부르주아 계급만이 있는 자본주의를 원한다. 러시아에 혜택을 줄 의도를 지닌 부서 관료들의 진지한 태도에 힘입은 그들은 늑대가 욕심을 감추고 양이 가죽을 감추듯 자신들의 속셈을 어떻게 감출지 궁리를 시작한다. 그래서 그 속셈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알기 위해서는 동일한 필자의 글('우리의 문화 용병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2)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 글에서 크리벤코 선생은 "집단농장과 국유 형태의 산업은 현 상황에서 그다지 품어볼 만한 상상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다음의 구상은 가능하겠다"라고 주장하며——확실히 그에게 '실질적인 경제 문제들을 해결'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인상이 느껴진다——, 소액(100루블을 넘지 않는)의 지분으로 한 합자회사를 통해 돈 강 지역을 기술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사무실을 방문한 어느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꺼낸다. 필자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권유를 받게 된다. "지분은 사적인 개인들이 아니라 마을공동체 소유가 될 겁니다. 회사에 고용된 마을 주민의 일부는 통상적인 임금을 받게 되고, 마을공동체는 토지와의 연결고리를 유지시켜준다는 보장을 해주는 거죠."

 

정말 경영의 귀재 아닌가? 인민의 삶에 자본주의가 존경스러우리만치 단순하고 쉽게 도입되고, 그 파멸적인 특성들이 모두 제거되는 셈이니 말이다! 단지 요구되는 거라곤 시골 부자들이 공동체를 통해 지분⁸⁸을 사들이고 기업으로부터 배당금을 받는 것이 전부며, 그 속에서 공동체 "주민의 일부"는 일자리를 얻고 토지와의 유대관계를 보장받는다. 그런 유대관계는 토지로부터 생계를 보장받기에는 불충분하지만(아니면 누가 '통상적인 임금'을 위해 일하러 가겠는가?), 주민들을 지역에 묶어둔 채 지역 자본주의 기업의 노예로 만들고 그들이 주인도 바꾸지 못하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여기서 주인이란 곧 자본가를 말하는 것으로,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사람을 달리 부를 방도가 없기 때문에 아주 타당한 표현이라 하겠다.

 

독자들은 일고의 관심도 기울일 가치가 없어 보이는 이런 헛소리에 이미 이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한 나에게 짜증을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헛소리일지라도 그것을 연구할 가치와 필요는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러시아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적·경제적 관계들을 반영하고 있고, 그 결과 이 나라에 아주 널리 퍼져 있는 사회 통념들 가운데 하나이기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앞으로 오랫동안 생각해봐야 할 문제기 때문이다. 핵심은 러시아에서 봉건적 생산양식으로부터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의 전환이 토지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하고 지주에게 소작료를 지불할 수 없게 된(바로 이 순간까지도 농민은 소작료를 지불하고 있다) 농민으로 하여금 예전의 좋았던 시절에는 독립적인 형태를 띠었거나(예를 들어 수레꾼 같은) 독립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런 유형의 고용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좋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노동이라 여겨졌던 '외부 고용'에 어쩔 수 없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고, 또 계속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농민들은 오늘날과 비교해볼 때 일정 정도 안녕을 보장받았었다. 심만 땅에 달하는 귀족경찰들과 러시아의 토지를 끌어모으던 초창기 부르주아들의 보호 아래서 평온하고도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농노로서의 안녕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민의 벗들'은 그러한 시스템의 그늘을 간단히 무시한 채 이상화하고, 환상을 품는다. 여기서 내가 '환상'이라고 표현한 건, 그 시스템이 오래전에 작동을 멈춰버렸을 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대규모 재산 강탈을 불러온, 그리고 과거의 '고용'을 족쇄에서 풀려난 '일손들'에 대한 착취로 변화시킨 자본주의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파괴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부르주아 기사들은 농민과 토지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길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연결고리를 단독으로 보장해주는 농노제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농노제는 그 연결고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품생산과 자본주의에 의해서 이미 붕괴되었다. 그들은 농민을 토지로부터 멀리 내쫓지 않는 외부 고용, ——노동이 시장을 위해 이루어지는 반면——경쟁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자본을 창출하지 않으며 인민 대중을 자본의 노예로 만들지 않는 외부 고용을 바란다.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에나 들어맞을 법한 이런 주장에 대해, 그들은 여기저기서 좋은 것을 '취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물론 실제로는 이러한 유치한 바람은 오직 현실을 무시하는 반동적인 환상, 새로운 시스템의 정말로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측면들을 이해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력, 반은 농노, 반은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과거의 훌륭한 시스템, 즉 착취와 억압의 공포로 가득 차고 벗어날 가능성이 없는 시스템을 영속화하는 조치들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질 뿐이다.

 

반동들 사이에서 '인민의 벗들'을 구분해주는 이런 설명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두 가지 사례들을 인용해보겠다.

 

모스크바 젬스트보 통계에서 우리는 (포돌스크 군에 사는) K 여사라는 사람의 농장에 대한 묘사를 읽을 수 있는데,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것은(묘사 자체가 아니라 농장이) 모스크바의 통계학자들과 V. V. 선생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V. V. 선생이 어느 잡지 기고문에서 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V. 오를로프(Orlov) 선생은 이 유명한 K 여사의 농장을 '농업이 건강한 상태에 있고, 개인 토지소유주들의 농장들도 더 잘 운영되고 있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논지의 '확실한 실제 확인 사례'로 여겼다. 그 여인의 농장에 대한 오를로프의 주장에 비춰볼 때, 그녀는 겨울에 밀가루를 꿔주는 대가로 자신의 땅을 경작하는 지역 농민들의 노동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듯했다. 여인은 농민들에게 특히나 친절하게 굴며 도움을 주었고, 그래서 농민들은 읍에서 가장 잘사는 축에 속할 뿐 아니라 "거의 새로운 추수철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예전에는 성 니콜라스 날까지도 버티지 못했다)" 있을 만큼 충분한 곡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의문은 바로 이 대목에서 고개를 든다. N. 카블루코프(Kablukov)(5, 175)와 오를로프 선생(2, 55~9쪽 등)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방식''농민과 지주 간의 적대적 이해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왜냐하면 K 여사는 농민들의 노동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착취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K 여사는 착취받는 사람들을 향한 자신의 친절함 뒤에 감춰진 착취를 보지 못한 데 대해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오를로프는 그렇지 않다. 그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보이는 친절함에 황홀해하며 공장 소유주가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그들에게 잡화점과 주거 등을 제공해주는 사례들을 열광적으로 들려주는 서구의 박애주의자들과 정확히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적대적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런 '사실들'의 존재로부터 결론을 끌어오는 것은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첫 번째 핵심이다.

 

두 번째 핵심은 우리가 오를로프 선생의 설명을 통해 K 여사의 농민들이 '뛰어난 수확고 덕분에(그 여주인은 좋은 씨앗을 제공했다) 가축을 확보했고 '유복한' 농장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이들 '유복한 농민들'"거의"가 아니라 완전히 번창하게 되었고, '다수'가 아닌 그들 모두가 새로운 추수가 "거의" 되돌아올 때까지가 아니라 정확히 그 시기까지 충분한 곡식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제 이들 농민들이 충분한 토지와 '목장 및 목초지'를 소유하고 있다고도 가정해보자. 물론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농민들은 K 여사에게 토지를 임차한 뒤 노동으로 그 대가를 지급한다(이것이 번창 아닌가!). 그럴 경우——즉 농민 농업이 정말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을 경우——오를로프 선생은 정말로 이 농민들이 스스로 동의해서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K 여사의 사유지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철저히, 정확히, 그리고 신속히 수행'할 거라고 믿는 걸까? 또는 어쩌면 그런 어머니 같은 보살핌으로 이들 농민들에게 쿠폰을 뽑아내는 이 친절한 여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결국 목초지와 목장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절망적인 현재 상황보다 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믿는 걸까?

 

분명 '인민의 벗들'의 생각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진정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로서 그들은 착취를 없애기보다는 완화시키기를 바라고, 결속보다는 회유를 원한다. 편협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맹렬히 비판하는 관점에서부터 시작된 그들의 드넓은 이상은 지주와 자본가들이 공정하게 대해주기만 한다면 '번영을 구가하는' 농민들이 그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거라는 생각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유자코프 선생은 러시아 인민의 토지소유 할당량(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885, 9)이라는 자신의 유명한 글에서 "인민들의" 토지소유, 즉 우리 자유주의자들의 용어로는 자본주의와 착취를 배제하는 토지소유의 규모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상세히 설명했다. , 크리벤코 선생의 탁월한 설명이 있은 뒤, 우리는 그 역시도 "자본주의를 인민의 삶에 도입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주의 신분으로서 그는 분여지를 통해 "식량과 지불금"을 충당하는⁸⁹ 반면 나머지는 "일자리"를 통해 얻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달리 말해, 그는 농민이 토지와의 연관성을 유지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분여지'에서 지주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일자리'에서 자본가에 의해 이중의 착취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단지 운명이라고 체념해버린 것이다. 이중 착취에 시달리는 소생산자들의 이러한 상태와 그 생활조건은 더구나 필연적으로 주눅 들고 짓밟힌 심리를 낳아 피억압계급의 승리는 고사하고 투쟁에 대한 모든 희망을 앗아가버렸다. 이와 같은 반()중세적 상황은 '인민의 벗들'의 전망과 이상의 극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 개혁 이후 역사 전체를 통틀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한 자본주의가 옛 러시아를 떠받치던 기둥——가부장적인 반()농노 상태의 농민층——을 뿌리째 뽑아 그들을 중세와 반()봉건적 상황에서 끌어내고 현대의 순수한 자본주의적인 환경에 가져다놓고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오랜 고향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아 러시아 곳곳을 헤매다 노예의 사슬을 끊고 지역의 '일자리제공자'에게로 갈 수밖에 없게 만들으로써 전체적인 계급 착취의 토대가 독사 같은 특정 인물의 약탈과는 거리가 먼 계급 착취라는 사실을 드러내자, 자본주의가 가축의 수준으로 주눅 들고 굴복한 나머지 농민 인구를 한꺼번에 점점 더 복잡한 사회적·정치적 삶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이기 시작하자, 우리 기사님들은 옛 기둥들의 몰락과 파괴에 대해 올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지금은 눈이 멀어 이러한 새로운 삶의 양식의 혁명적 측면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예전의 착취 체제에 전혀 묶여 있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위치에 있는 새로운 사회 세력을 자본주의가 어떻게 창출해내는지를 전혀 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좋았던 시절에 대해 울부짖는 모습을 오늘날까지 계속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인민의 벗들'은 현 시스템에서의 어떠한 급진적 변화도 바라는 기미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들은 현존하는 토대에서의 자유주의적인 조치들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으며, 실제로 크리벤코 선생은 그런 조치들을 고안함에 있어 거드름 피우는 토착 하급관리 같은 행정 능력들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대체로 우리 인민 산업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와 급진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 문제는 특별한 조사와, 산업을 인민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과 적용 과정에서 심각한 장애물에 부딪힐 수 있는 것들로 나눌 것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크리벤코 선생은 다양한 산업들을 자본주의화되지 않은 것과 이미 자본주의화가 발생한 것, 그리고 "대규모 산업과 생존을 놓고 경쟁할" 수 있는 것들로 나누면서 그런 분할의 사례를 우리에게 직접 제시한다.

 

또한 이 행정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첫 번째 경우에 소생산은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변동으로 인해 소생산자들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지는 시장으로부터 그것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것이 지역 시장의 팽창과 보다 더 큰 시장으로의 합병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술 진보로부터도 그럴 수 있을까? 또는 그 기술 진보——상품 생산에서의——가 자본주의적인 필요는 없는 걸까? 마지막의 경우에 필자는 '대규모 생산 조직 역시' 요구한다. "명백히 여기서 필요한 것은 대규모 생산 조직이고,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기계 등이나 또는 이러한 조건과 균형을 맞출 다른 무언가, 즉 값싼 신용, 불필요한 중간상인들의 제거, 집단 농장 형태 농업과 고용주들의 이윤을 처분할 가능성, 시장의 확보, 값싼 엔진의 개발과 그 외 기술적 개선, 또는 다른 혜택들에 의해 보상받는다는 전제하에서의 임금의 일부 삭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논리는 말로는 드문 이상을 이야기하면서도 행동으로는 틀에 박힌 자유주의를 드러내는 '인민의 벗들'에게는 아주 특징적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철학자는 고용주들의 이윤을 처분할 가능성과 대규모 농업의 조직화를 다름 아닌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아주 훌륭하다. 이것이야 말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어떻게 그것을 달성하기를 원하는가? 고용주 없이 대규모 생산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 경제의 상품 구조를 철폐하고 그것을 공동체, 공산주의 구조로 대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아래서는 현재와 같이 생산이 시장에 의해 규율되는 게 아니라 생산자 자신, 노동자 조직 자체에 의해 규율되고, 생산수단은 사적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에 의해 소유된다. 사적 전유로부터 공동체적 전유로의 변화는 명백히 우선 생산 형태의 변화를 필요로 하고, 소생산자들의 분리되어 있고 규모가 작으며 고립된 생산 과정이 단일한 사회적 생산 과정으로 합쳐지는 것을 필요로 한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자본주의가 창출해낸 바로 그 물질적 조건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스스로 자본주의를 토대로 삼을 의향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행동을 제안하는가? 그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품경제의 철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분명히 그들의 드림은 이상은 이 사회적 생산 시스템의 경계를 절대 초월할 수 없다. 더구나 고용주의 이윤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윤'을 획득하는 고용주들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오는 게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조국을 떠받치는 이러한 기둥들을 빼앗아오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체제에 맞선 대중적 혁명 운동이 필요하다. 이 체제와는 전혀 유대관계가 없는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만이 가능한 운동 말이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머릿속에 투쟁을 전혀 그리고 있지 않고, 고용주들 스스로의 관리 기관들 말고도 다른 유형의 공적인 인물들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분명 그들은 '고용주의 이윤'에 맞선 어떠한 진지한 조치들을 취할 의향을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다. 크리벤코 선생은 단지 자신의 허가 자신을 압도하는 걸 허락했을 뿐이다. 그리고서 그는 즉시 자신의 견해를 수정했다. '고용주의 이윤을 처분할 가능성'같은 그런 것이 '다른 무언가', 즉 신용과 조직된 마케팅, 기술적 개선에 의해 '균형이 맞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아주 만족스럽게 정리된다. '이윤'을 얻을 신성한 권리를 철폐하는 대신에, 다시 말해 고용주 양반들을 아주 화나게 할 절차 대신에 자본주의에 싸움을 위한 더 나은 무기를 제공하고 우리 '인민의' 소부르주아들을 강화하고 굳건히 하며 발전시킬 뿐인 아주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조치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인민의 벗들'이 이러한 소부르주아만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의심을 전혀 남기지 않기 위해서, 크리벤코 선생은 다음과 같이 인상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고용주 이윤의 철폐는 '임금의 삭감을 통해 균형이 맞춰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는 완전히 횟설수설처럼 들린다. 그러나 아니다. 그것은 소부르주아 사상을 일관되게 적용한 표현이었다. 필자는 거대자본과 소자본 사이의 투쟁 같은 사실을 관찰하며 진정한 '인민의 벗'으로서 당연히 소…… 자본가의 편에 선다. 더 나아가 그는 소자본가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임금 삭감이라는 사실을 들은 바 있었다. 이는 노동일의 연장과 함께 러시아의 수많은 산업들에서 아주 정확하게 관찰되고 확인된 사실이었다. 따라서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소자본가들을 구하기를 바랐던 그는 '다른 혜택들에 의해 보상받는다는 전제하에서의 임금의 일부 삭감'을 제안한다! 이제 고용주 양반들은 자신들의 '이윤'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내 생각에 그들은 고용주들에 맞서 임금 삭감 투쟁을 계획하는 이런 훌륭한 행정가를 기꺼이 재무장관 자리에 앉히려 들 것이다.

 

순수한 혈통의 부르주아들이 실질적인 문제를 다뤄야 하는 바로 그 순간,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자비롭고 자유주의적인 행정가들을 슬쩍 쳐다보는 사례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12호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라는, 독점 문제를 다룬 글이 그것이다.

 

그 글에서 필자는 "독점과 신디케이트 같은 것들은 발전된 산업의 이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러한 제도들이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러시아에서도 나타나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다. "설탕이나 석유 산업은 아직까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설탕과 등유의 소비는 여전히 사실상 태동기에 머무르고 있고,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볼 때 해당 상품들의 일인당 소비는 미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산업 분야들은 발전할 여지가 여전히 아주 크고, 지금도 상당한 액수의 자본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순간, 필자가 국내 시장의 위축에 대해 루스코에 보가츠트보가 가장 선호하는 발상이 뭐였는지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은 특징적이다. 그는 국내 시장이 여전히 상당한 발전 전망을 갖고 있고, 위축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런 결론에 도달한 건, 소비 규모가 더 큰 서구와의 비교를 통해서였다. 이유는 뭘까? 서구의 문화수준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서로 간의 더욱 빈번한 교류로 이끌고 각각의 지역들이 중세식으로 고립되어 있던 상황을 무너뜨린 자본주의 기술의 발전, 상품경제와 교환의 성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문화의 물질적 토대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반()중세적 농민층이 아직 여전히 농촌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쪼개져 있지 않았던 대혁명 이전만 해도 프랑스의 문화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만약 필자가 러시아의 생활상을 좀 더 면밀히 검토했더라면, 그는 예를 들어 자본주의가 발전한 지역에서 농민 인구가 필요로 하는 수준들이 순수한 농업 지역보다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주민들의 삶 전체에 산업으로서 그 영향을 끼칠 정도까지 발전한 우리 수공업을 연구했던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거론하는 부분이다.⁹⁰

 

'인민의 벗들'은 그런 '하찮은 것들'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 가능한 해명이란 '단지' 문화나 전반적으로 삶이 점점 복잡해진다든지 하는 것뿐이며, 이런 문화와 복잡성의 물질적 토대에 대해서는 연구조차 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적어도 우리 농촌의 경제 상황을 검토라도 해봤더라면, 국내 시장을 창출하는 게 바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의 농민층의 분화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시장의 성장이 결코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앞에서 언급한 국내 문제 연대기라는 글에서는 계속해서 "전반적으로 생산 발전 수준이 낮고 진취성과 자발성이 부족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독점은 국가 경쟁력의 발전을 훨씬 더 지연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담배 독점을 거론하며, 그것이 "인민 유통 가운데 15,400만 루블을 앗아갈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이는 우리 경제 시스템의 토대가 상품경제이며, 그결 선도하는 세력은 다른 모든 곳에서 그렇듯 부르주아 계급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한 것이다. 그리고 글의 필자는 부르주아 계급이 독점의 방해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 대신에 "국가"를 거론하고, 상품과 부르주아 유통을 이야기하는 대신에 "인민" 유통¹을 들먹인다. 부르주아라면 두 용어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결코 알아차릴 수 없다. 나는 그 차이가 정말 얼마나 극명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인민의 벗들'의 시각에서는 권위 있는 잡지인 조국연보2(1872)에 실린 금권정치와 그 토대라는 글의 일부를 인용해보고자 한다.

 

"마를로(Marlo)에 따르면, 금권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유주의적 정부 형태에 대한 사랑, 아니면 취득의 자유라는 원칙에 대한 사랑이다. 이런 특징을 받아들여 8년 또는 10년 전의 입장이 어땠는지를 돌이켜보면, 자유주의 측면에 있어서 우리가 엄청난 발걸음을 내디뎌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어떤 신문이나 잡지를 봐도, 그들 모두 일정 정도 민주주의 원칙을 대표하는 것으로 느껴지고, 인민의 이익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주의적 견해들과 나란히, 그리고 심지어 그것들을 빙자하여(이것에 주목하라)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누누이 금권정치적 야망들이 추구된다."

 

필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상인들이 재무장관에게 했던 인사말을 예시로 인용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금융에 관한 러시아의 입장을 사기업의 아주 폭넓은 확대 가능성에 바탕을 둠으로써 좋은 결실을 맺게 된 데 대해" 러시아 부르주아 계급의 가장 신망 있는 조직이 보내는 감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필자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금권주의 요소들과 성향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 사회에, 그것도 많이 존재한다.“

 

여기서 보다시피, 위대한 해방을 위한 개혁(유자코프 선생이 간파했듯이 "인민의" 생산을 위한 발전의 평화롭고 합당한 길을 열었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금권정치를 위한 발전의 길만을 열었을 뿐인)의 감동들이 여전히 생생하고 새롭던 머나먼 과거의 여러분 선조들은 스스로 금권정치, 즉 러시아 사기업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들은 "진취성과 자발성"의 발달에 힘입은 "인민"의 유통과 "국가 경쟁력"의 발전을 이야기하면서도, 왜 그러한 발전의 적대적 성격, 진취성과 자발성의 착취적 성격은 언급하지 않는가? 물론 독점이나 그와 유사한 제도들에 대한 반대 의견을 피력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것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노동인민의 상황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인민은 그 모든 중세적 속박 위에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현대 부르주아적인 속박에 의해 족쇄가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점의 폐지가 전체 "인민"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경제가 나라의 경제적 삶의 토대가 된 상황에서 중세적 시스템의 생존은 자본주의의 비참한 현실에다 훨씬 더 가혹한 중세적 고통을 더할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완전히 폐지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에도——이는 더 빠르고 더 급진적일수록 좋다——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부르주아 사회가 물려받은 반()봉건적 속박들을 제거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손발을 풀어주고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하는 그들의 투쟁을 촉진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을 숨김 없이 말하려면 바로 이런 이야기를 꺼냈어야만 했다. 부르주아 체제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독점과 그 밖의 모든 종류의 중세적 제약들(러시아에는 그 종류가 차고 넘친다)을 폐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라고 말이다. 딱 거기까지다. 부르주아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중세와 봉건제도에 맞서 전체 "인민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연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품을 수 없었고, "인민들" 내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깊고 화해할 수 없는 적대를 망각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것으로 '인민의 벗들'이 쿡 흥분할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농촌의 요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는데, 특히 크리벤코 선생은 "몇 년 전 몇몇 신문들이 시골에서 필요로 하는 직업들과 지식인들의 유형을 논하는 과정에서 그 목록이 아주 깊고 다양하며, 남녀 의사들과 보조의사들, 변호사, 교사, 도서관 사서, 서점주인, 농경제학자, 삼림 전문가와 농업 전문가, 아주 다양한 분야의 기술자들, 신용기관의 모집인과 관리자, 창고지기 등 거의 모든 직업군을 포괄한다는 게 증명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고, 활동이 경제 영역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지식인들"(??)과 삼림 및 농업 전문가, 기술자 등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농촌에서 그들을 어떤 식으로 필요로 하는지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농촌이란 과연 어떤 농촌을 말하는 걸까? '저축한 돈'이 있어서 크리벤코 선생이 기꺼이 '지식인'들이라 부르는 그 '전문가'들 모두에게 각자 기여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지주들과 기업형 농민들의 농촌을 말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때의 농촌은 실제로 오랫동안 전문가들과 신용, 창고에 목말라왔고, 이 나라 모든 경제 문헌에서도 그걸 증언해주고 있다. 그러나 훨씬 더 방대한 또 다른 농촌이 존재하고, 그런 사실을 좀 더 자주 떠올려보는 것도 '인민의 벗들'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또 다른 농촌이란, 몰락하고 갈취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농민들의 농촌이다. 그들은 '저축한 돈'이라고는 전혀 없어 '지식인들'의 노동에 대가를 지불할 수 없을 뿐더러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빵조차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당신들이 창고를 지어서 돕고자 하는 농촌은 바로 그런 곳이다!! ()도 없고 있어도 고작 한 마리뿐인 농민들이 거기에 뭘 보관한단 말인가? 웃기자? 그들은 과거 1891년에 당신들이 인간미 넘치고 자유주의적인 처방을 완수할 무렵 집이나 여권, 가게에다 일상적인 '창고'를 설치했던 시골과 도시의 부농들에게 말을 똑똑 저당 잡힌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건 자신의 '노동력'뿐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상품을 보관할 '창고'는 아직까지 러시아의 관료들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들 '민주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진부한지에 대해서는 '농민층' 내의 기술적 진보에 대한 이러한 감상적인 사고와 바로 그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착취에 눈을 감는 행위보다 더 두드러진 증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루스코에 보가츠트보2호에서 백치 자유주의자의 열정을 지닌 카리세프 선생은 아메리카귀리, 바라호밀, 말먹이 귀리 등의 "개량종 씨앗이 농장에서 확산되는" 것과 같은, 농민 농업에서 "완벽함과 개선"을 이룬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일부 지역에서 농민들은 종자를 키울 특수한 땅을 별도로 떼어놓고 조심스럽게 간 뒤, 거기에다 미리 선별한 곡물 샘플들을 손으로 심는다." 그리고 경운기, 가벼운 쟁기, 탈곡기, 키질 기계, 종자 분류기 같은 "개량 농기구와 기계 영역"²에서의 많은 다양한 혁신들이" 관찰된다. 카리세프는 인산비료, 아교 반죽, 비둘기 배설물 같은 "아주 다양한 종류의 비료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지방 주 재원들이 인산비료의 판매를 위해 마을에 젬스트보 상점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V. V. 선생의 농민 농업의 진보적 경향(크리벤코 선생도 이 책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에서 자료를 인용한 카리세프 선생의 글은 이 모든 감동적인 진보에 감화된 나머지 거의 열정의 수준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우리가 간략하게만 제시할 수 있었던 이러한 보고서들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동시에 애처로움도 느끼게 한다. …… 여기서 용기를 준다는 건, 이 사람들이 비록 가난하고 빚에 시달리며 상당수는 말 한 마리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고, 절망에 굴하지 않으며, 자신의 직업을 바꾸지 않은 채 여전히 땅에 대한 진정성을 잃지 않고 그것을 적절히 일구는 일에 자신들의 미래와 힘과 부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물론이지! 인산비료와 종자 분류기, 탈곡기, 말먹이 귀리를 구입하는 이들이 가난하고 말 한 마리 없는 농민들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 성스러우리만치 단순한 자들이여! 어느 여대생이 아니라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 소지자인 교수가 쓴 글이 이 정도라니! 아니, 동의 못 할지 몰라도 이건 그저 그들의 단순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적절한 관리를 가능케 할 방법을 열정적으로 탐구하고, 경작과 씨 뿌리기, 농기구, 비료 등에 있어 새로운 방식들을 연구하며, 자신들을 먹여 살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조만간 백 배의 보상을 안겨줄 모든 방안을 찾아나서고 있다.³ …… 그리고 애처롭다는 건"(어쩌면 여러분은 이 대목에서 최소한 '인민의 벗들'이 기업형 농민들의 손에 땅이 집중되는 현상을 낳는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강탈과 그것이 자본과 농업 개선의 토대로 전환되는 현실을 언급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강탈을 통해 탈곡기와 종자 분류기, 키질 기계 따위들을 활용하는 토착 '기업의' 성공에 기여할 '자유롭고' '값싼' '일손들을' 시장에 던져놓는 행위에 대한 설명? 그런 내용은 전혀 없었다!) "각성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과학 분야, 박물관, 창고, 위원회 같은 기구들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우리들이 농업을 개선하기 위해 분투하는 농민에게 과연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맞는 말이오, 신사양반들, 이렇듯 당신들은 "과학""위원회 같은 기구들"과 나란히 놓는군요…… '인민의 벗들'을 연구해야 할 시기는 그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싸울 무렵이 아니다. 그때는 그들이 '선조들의 이상'이라는 누더기로 기운 제복을 걸쳐 입는 시기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은 평상복을 입고 있을 때는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논한다. 이 때가 바로 그들을 연구할 적기다. 이들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제대로 된 특색과 취향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농민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물론 아주 초보적인 형태의 것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 발달은 몹시 느리다. 농민은 모범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가 실험용으로 조성한 밭과 모범 농장들은 대체 어디에 있던 말인가? 농민은 활자로 된 정보를 갈구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우리의 농경 문헌들은 또 어디에 있는가? …… 농민은 비료와 농기구, 종자를 얻으려 애쓰지만, 그것들을 도매로 구입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할 우리의 젬스트보 상점들은 어디에 있는가? …… 실무진들과 개인, 젬스트보, 당신들은 어디에 있는가? 나서서 일을 하라, 오랫동안 무르익어왔던 그 시기가 다가왔다. 러시아 인민들의 진심 어린 감사가 당신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질지니!⁹⁴"루스코에 보가츠트보, 2, 19)

 

이렇듯 '인민의' 소부르주아 계급 벗들은 소부르주아 식 진보의 잔치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우리 농촌 경제에 대한 분석과 완전히 동떨어진, 오늘날의 경제학 역사에서 이토록 놀라운 사실——'농민층'의 엄청난 강탈과 농민 농업에서의 전반적인 진보가 나란히 병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동시에, '농민층'을 조화롭고 동질적인 하나의 전체로 묘사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와 이 모든 진보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납득하게 된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여전히 이 모든 것에 귀를 닫고 있다. 옛 러시아의 사회혁명적 인민주의의 훌륭한 장점들을 잃어버린 그들은 인민주의의 커다란 실수 중 하나, 즉 농민층 내의 계급적대를 이해하지 못한 실수를 절대 바로잡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호르비치⁹⁵"70년대'의 농민주의자들(인민주의자들)은 농민층 내에 자연스레 존재하는 계급적대를 몰랐기에, 그것을 '착취자'——쿨락 또는 기생자——와 그 희생자인 공산주의 정신에 물든 농민의 적대로만 국한해 파악했다"고 적절히 말한다.⁹⁶ 글렙 우스펜스키(Gleb Uspensky)⁹⁷만이 회의주의적 입장에서 역설적 미소로 보편적 환상을 거부했다. 농민층에 대한 완벽한 지식과 현상의 본질 그 자체를 꿰뚫는 비범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그는 개인주의가 고리대금업자와 채무자 사이뿐만 아니라 대체로 농민들 사이에서도 경제적 관계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글 판박이(루스카야 미슬, 1882, 1)를 참조하기 바란다.

 

농촌 경제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가 아주 부족했고, 농민층의 분화가 아직 그렇게 뚜렷하지 않았던 1860년대와 70년대에 그러한 환상에 굴복한 것은 용서할 수 있고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러한 분화를 모르쇠 하려면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야만 한다. 농민층의 몰락이 정점에 달해 있고 사방에서 농민 농업에서의 진보적 경향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들려오는 최근에는 특히 더 그렇다. V. V. 선생(역시 의심의 여지 없는 '인민의 벗'이라 할)도 전적으로 그 주제만을 다루는 책 한 권을 썼는데, 사실관계의 부정확성에 관해서는 그다지 비난거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적인 측면에서나 농경법적인 측면에서의 농민층의 진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건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강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인민의 벗들''농민'이 스스로를 먹여 살려줄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새로운 경작법을 간절하게 찾아 헤매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들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다. 동전의 이면, 즉 바로 그 농민이 땅으로부터 심하게 분리되고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한 채 말이다. 그들은 농민으로부터 분리된 토지가 자본으로 전환되고 국내 시장이 창출되는 과정 같은 눈앞의 사실들을 보지 않으려고 타조처럼 모래에 머리를 묻는다.⁹⁸ 이 나라 공동체 농민들 사이에 실재하는 이러한 양 갈래의 정반대 과정들을 부정하고, 우리 사회의 부르주아적 성격 말고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들을 설명해보려고 애써보라.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인도주의적이고 자비로운 문구들을 연호하는 것은 그들의 과학, 그들의 정치 '활동' 전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게다가 그들은 현질서의 가장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땜질식 처방을 정규 철학으로까지 끌어올린다. 크리벤코 선생은 심오한 어조를 띤 채 이렇게 말한다. "사소하지만 진심 어린 활동을 하는 것이 크게 일을 벌여놓고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이 얼마나 참신하고 영리한가! 더 나아가 그는 "사소한 활동이란 게 결코 목적이 사소하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라고 말을 잇는다. 그리고 사소한 활동이 "적절하고 훌륭한" 결과로 이어진 "활동의 확장"의 사례로서, 어느 부인이 학교를 세운 일, 농민들 사이에서 협잡꾼들을 몰아내는가 하면 피고에게 자문을 해주기 위해 지방 순회법원에 동행하기로 한 변호사들의 일화, 앞서 살펴본 대로 "젬스트보의 노력과 결합돼 가장 변화한 중심지에" 수공업자들의 창고를 설립한 경우들을 든다.

 

물론 이 모두는 아주 숭고하고 인간적이며 자유주의적이다. 여기서 자유주의적이란 건, 부르주아 경제 시스템을 모든 중세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따라서 노동자가 그런 조치들에 의해 손상당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될 시스템 자체와 맞서 싸우기 쉽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자유주의 출판물들을 통해 이 모든 주장들을 접해왔다. 만약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신사양반들이 우리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지 않았다면, 이는 반대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맞선 "자유주의의 온건한 출발"을 알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우리 선조들의 이상"을 비난했다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나무랐다. 만약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우리는 그런 온건하고 세심한 자유주의적(즉 부르주아에게 봉사하는) 활동을 먼저 제안하고,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기꺼이 호응했을 것이다. 선조들과 그들의 이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말인데, 그들의 이론은 그릇되며 유토피아적이었지만 어쨌든 옛 러시아 인민주의자들은 그러한 "자유주의의 온건한 출발"⁹⁹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바 있다.

 

그러나 그런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하도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인지라 '인민의 벗들'은 그런 과거를 모조리 잊어버릴 수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제도에 대한 유물론적 비판이 사라지고 현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 유일하게 남은 수순은 정치적 급진주의에서 기획주의로 옮겨가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자신들의 전술을 통해 분명히 입증했다.

 

여기에 그런 기획주의의 몇 가지 사례들이 있다.

 

유자코프 선생은 "국유재산부를 농업부로 전환하는 조치는 우리 경제 발전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관리들의 자리를 바꾸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0)고 단언한다.

 

결국 모든 건 '요청을 받는' 존재가 누구냐에 달려 있다. 인민의 벗들이나 아니면 지주와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들이냐가 문제지, 이해관계 그 자체는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글에서 유자코프는 계속하여 "경제적 강자로부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 개입의 첫 번째 본연의 임무"라고 말한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12호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 또한 같은 표현을 사용해 유자코프의 주장을 지원하고 있다. 유자코프는 이런 박애주의적인 헛소리¹⁰⁰에 대한 설명이 그의 훌륭한 동료들인 서구 유럽의 자유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그것과 똑같다는 사실에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기 위해 동시에 이렇게 덧붙인다.

 

"글래스스톤(Gladstone)의 토지 법안들¹¹, 비스마르크(Bismarck)의 노동자보험, 공장 감독, 러시아의 농민은행 발상, 이주의 조직화, 쿨락의 이익에 반하는 조치들, 이 모두는 동일하게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 개입이라는 원칙을 적용한 시도들이다."

 

그래도 이 말은 솔직함이라는 미덕은 지니고 있다. 필자는 글래스스톤과 비스마르크처럼 자신도 현재의 사회적 관계를 고수하기를 원하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사회(부르주아 사회. 그는 서구 유럽의 글래스톤과 비스마르크 추종자들만큼이나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를 수습하고 봉합하길 바랄 뿐 그것과 맞서 싸우기는 원치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들의 근본적인 이론적 신념은 그들이 현재의 사회에 기초해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기구, 즉 국가를 개혁의 도구로 여긴다는 사실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들은 모든 계급에 우선하는 전지전능한 국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국가가 노동계급을 '지원해줄' 뿐만 아니라 (크리벤코 선생이 말했듯이) 현실적이고 적합한 시스템을 만들어낼 거라 기대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 골수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에게 기대할 건 아무것도 없다. 생산 조건 자체에 의해 해체되고 고립돼 있으며 한정된 공간과 착취자에게 묶여 있는 소생산자들은 간혹 프롤레타리아만큼이나 고통을 겪는 자신들의 착취와 억압의 계급적 성격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점이 바로 소부르주아 계급의 근본적이고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그들을 반동적인 계급으로 만드는 특징이기도 하다——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국가 역시도 계급적 성격을 떨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²

 

위대한 '인민의 벗들'이여, 그렇다면 왜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그리고 해방적 개혁 이래로 특히 정력적으로——부르주아 계급과 자본주의만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창출'했겠는가?

 

나라 안 살림살이가 상품경제와 상업, 공업의 발전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역사적 시기에, 절대적이고 이른바 초계급적인 정부가 그런 불성실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될까? 나라 안 살림살이에서의 그러한 변화들이 워낙 사회 깊숙이 정착돼 정부는 그걸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그 중간에 무수한 장애물을 가져다 놓았다는 사실, 바로 그 '절대적인' 정부가 내부적인 삶의 다른 조건에서는 또 다른 계급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창출'해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그러한 변화들을 정부 정책이 불러온 효과라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 '인민의 벗들'은 그런 질문들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보다시피 이 모든 것이 유물론, 변증법, '헤겔주의', '신비주의와 형이상학'이다. '인민의 벗들'은 이 정부에게 친절해지라고, 겸손해지라고 간청하면 모든 게 정상적으로 바로잡힐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뿐이다. 겸손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점에 관한 한 루스코에 보가츠트보를 인정해주어야 마땅하다. 실로 이 매체는 독립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러시아 자유주의 언론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인다고 하겠다. 다음을 보고 여러분이 직접 판단해보기 바란다.

 

"염세³와 인두세의 폐지, 토지상환금의 감축은 인민 농업에 상당한 위안이다"라고 유자코프 선생은 설명한다. 그래, 물론이지! 그러나 염세를 폐지하는 대신 수많은 간접세들을 새로이 부과하고 기존 세금들을 인상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냐? 인두세의 폐지와 함께 예전의 국유지 농민들을 회복시켜준다는 명분으로 그들이 지급하는 대금을 인상시킨 건 어쩔 텐가? 그리고 익히 알려진 상환금(정부는 환수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농민들에게 되돌려주지도 않았다) 감축이 이루어진 뒤 지불 대금과 토지로부터 얻는 수입 사이의 불균형, 즉 봉건적 면역지대¹⁰⁴가 직접적으로 부활한 건 지금도 유효하지 않은가? 그래도 괜찮아! 중요한 건 '첫걸음''원칙'이니까. 나머지는…… 나중에 우리가 간청하면 될 거야!

 

하지만 이것들은 꽃에 불과할 뿐, 이제 과실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1880년대는 인민들의 부담을 덜어주었고"(앞에서 말한 조치들에 의해서!) "인민들이 철저히 몰락하지 않도록 구해주었다."

 

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노예근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고전적인 문구로, 앞서 인용한 우리가 여전히 프롤레타리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미하일롭스키의 주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자유주의의 진화에 대한 시체드린의 예리한 묘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자인 그는 정부 당국에 '가급적' 개혁을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으로 시작해, 다음에는 '적어도 뭐라도' 달라고 구걸하다가,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아무거나 달라고' 애원하는 지점까지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래서 '인민의 벗들'이 이러한 지점까지 흔들리지 않는 입장을 받아들였다는 것 말고 달리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시는 기근이 수백만 명의 인민들을 막 덮쳤던 시기로, 그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장사꾼의 인색함으로 시작해 소심함으로 옮겨간 걸 알고도 그들은 정부가 인민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해주었다는 주장을 버젓이 칼럼에 옮겨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몇 년이 더 지나면 농민층에 대한 강탈이 훨씬 더 가속화될 것이고, 정부는 농업부를 창설한 데 이어 한두 가지 직접세를 폐지하는 대신 간접세 대여섯 가지를 새로이 부과할 것이며, 그러면 기근은 4천만 인민에게 영향을 끼칠 테고, 이들 신사양반들은 똑같은 방식의 글을 써낼 것이다. 굶주린 인구가 5천만 명이 아니라 4천만 명에 불과한데, 그건 정부가 인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해준 덕분이라고, 정부가 '인민의 벗들'의 말을 경청하고 농업부를 창설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밖에 다른 사례도 있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2호에서 러시아가 "다행히도"(원문의 표현 그대로다!) 후진국이며 "자신의 경제 시스템을 연대의 원칙¹⁰⁵에 기초할 수 있게끔 해준 요소들을 유지해왔다"고 주장한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는, 따라서 러시아가 "국제 문제에 있어서 경제적 결속의 주장자"로 행동할 수 있고, 러시아에게 주어진 이런 기회는 부인할 수 없는 "정치적 힘"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반동적 행위의 변치 않는 가장 확실한 방식에서 바로 유럽의 경찰관인 러시아였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에서 억압받는 러시아 인민들로 하여금 서구의 인민들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서 종사하는 치욕스러운 입장에 서도록 했다. 그것이 경제적 결속의 주장자로 묘사된 경찰관 러시아의 본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앞의 주장은 실로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인민의 벗' 선생들은 그 어떤 자유주의자도 능가할 것이다. 그들은 정부에 간청하고, 정부를 칭송하며, 엄청난 존경과 열정을 다해 기도를 바친다. 그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판석 위에 이마를 찧는 소리는 지나가던 이조차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다.

 

여러분은 속물의 독일식 정의를 기억하는가?

 

속물이란 무엇인가?

 

텅 빈 속을

 

두려움과 신의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채운 자여.

 

괴테

 

이런 식의 정의는 우리 실정과는 맞지 않는다. …… 신은 우리에게 부차적인 존재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다른 문제다. 만약 위의 정의에서 ""이란 단어를 "정부 당국"으로 대체한다면, 인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러시아 '인민의 벗들'의 이념적 상투성과 도덕 수준, 시민으로서의 용기를 정확히 표현한 셈이 될 것이다.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토록 터무니없는 '인민의 벗들'은 이른바 '인텔리겐처'에 대해서도 유사한 태도를 보인다. 크리벤코 선생은 이렇게 적고 있다. "문학은 …… 현상들을 사회적인 의미에 따라 평가하고, 모든 능동적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문학은 교사와 의사, 전문가가 부족하고 인민들은 가난과 병마와 문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발언해왔고, 그 발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탁자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거나 연극 공연을 보러 다니거나 귀족 대표가 주최한 파티에서 철갑상어를 뜯는 게 지겨워진 사람들이 보기 드문 자기희생 정신을 갖추고"(카드놀이와 연극과 철갑상어를 희생했다는 얘기다!) "수많은 장벽을 뚫고 앞으로 선뜻 나설 때, 문학은 그들을 환영해야 한다."

 

그리고 두 페이지를 넘어가, 경험으로 지혜를 얻게 된 왕년의 운동가는 집짓 사무적인 어조를 띠며 "지방감독관⁰⁶, 시장, 젬스트보 의장이나 위원 같은 직위를 새로운 규정에 따라 받아들일 것이나 말거나 하는 문제에 직면해 "망설이는" 사람들을 나무란다. "시민들의 요구와 의무에 관한 의식이 발전된 사회에서 그런 망설임과 태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회에서는 어떠한 필수적인 측면을 가진 개혁이라면 어쨌든 완전히 소화해서 그에 맞는 개혁의 측면들을 활용하고 발전시킬 것이고, 만약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사문화시킬 것이며, 개혁에 필수적인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기구는 완전히 소외된 상태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대관절 저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얼마나 한심하고 하찮은 기회주의이자 자화자찬에 빠진 소리란 말인가! 말인즉슨, 사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응접실용 가십거리들을 죄다 수집하고, 인민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해준 데 대해 정부에게 아첨하며, 카드놀이에 지겨워진 사람들을 환영하고, 지방감독관 같은 자리를 꺼리지 말라고 '대중'을 가르치는 게 문학의 임무라는 거다…… 혹시 내가 지금 네델랴Nedelya¹⁰⁷노보에 브레먀를 읽고 있는 건가? 아니, 이건 선진적인 러시아 민주주의자들의 기관지 루스코에 보가츠트보가 확실한데……

 

그리고도 그 신사양반들은 "선조들의 이상"을 이야기하고, 프랑스가 유럽 전역에 사회주의 사상을 쏟아붓자¹⁰⁸ 러시아에서 그 사상을 흡수해 헤르첸¹⁰⁹과 체르니셉스키(Chernyshevsky)¹¹의 이론과 가르침을 생산해낼 당시의 전통을 오직 자신들만이 수호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는 철저한 망신이며, 명백한 언어도단이자 모욕이다. 비록 루스코에 보가츠트보가 별로 재미있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이 같은 유형의 잡지 칼럼에서 그런 식의 발언들이 커다란 웃음이나 그 밖의 어떤 반응도 불러일으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다, 실로 당신들은 그 이상들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이 실제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는 카우츠키가 했던 다음 발언에 아주 적절히 묘사되어 있다.

 

"그 시대 모든 사회주의자는 시인이었고, 모든 시인은 사회주의자였다."

 

러시아의 공동체적 생활 체계라는 특수한 사회 질서에 대한 믿음, 그것으로 인해 이어지는 농민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믿음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정부에 맞서는 영웅적 투쟁의 대열에 서게 만들었다. 당신들, 당신들은 그 시대 가장 훌륭한 사람들의 엄청난 역사적 헌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그들의 기억을 충실으로 존경하지 않았다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묻는다. 그때의 믿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모두 사라져버리지 않았는가. V. V. 선생이 작년에 마을공동체가 인민들에게 공동의 노력을 연마시키고 이타적 감정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등의 주장¹¹¹을 폈을 당시, 심지어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양심에 찔린 나머지 게연찮게 V.V. 선생을 훈계하며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어떤 연구도 마을공동체와 이타주의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¹¹² 실제로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굳이 연구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신념을, 무조건적인 신념을 지녔던 시대가 있었다.

 

어떻게? ? 무슨 근거로?

 

"모든 사회주의자는 시인이었고, 모든 시인은 사회주의자였다."

 

게다가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농촌이 분화되면서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머지 인민을 자기네 발치 아래 두는 한 줌의 '쿨락'이 형성되고 있다는 데에 모든 양심적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는 이번에도 옳았다. 농촌은 실제로 분화되고 있었다. 아니, 농촌이 완전히 쪼개진 건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그리고 그 옛날의 러시아 농민사회주의도 그와 함께 쪼개지면서 한편으로는 노동자 사회주의에 자리를 내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물 소부르주아 급진주의로 타락했다. 이러한 변화는 타락이란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농민의 삶은 특수한 사회 질서이며 우리나라는 예외적인 발전 경로를 밟아왔다는 이론으로부터 일종의 희석된 절충주의가 등장했다. 이 절충주의는 상품경제가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고, 자본주의로 성장해갔다는 점은 더 이상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생산관계에 부르주아적 성격이 있고 그 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계급투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그와 더불어 근대 사회의 토대에 맞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농민들을 각성시킬 목적으로 고안된 정치 강령으로부터¹¹³ 근대 사회의 토대를 보존하면서 농민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수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강령이 등장했다.

 

엄밀히 말해, 이 모두는 이미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신사양반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무너뜨리는" 데 착수하는 순간 예상됐던 종류의 "비판"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은 러시아의 현실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구상을 솔직하고 양심적으로 설명하거나(그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처지였다. 만약 그들이 그 경제적 측면을 특별히 강조하는 동시에 "논박"을 할 때 사용했던 일반적이고 때로는 비유적이기까지 한 표현들을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검열을 우회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 본질에 반대되는 주장을 편다든지, 거기에서 끌어온 실질적 결론들의 정확성에 반론을 제기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추상적인 도식과 그 도식에 대한 믿음, 모든 나라가 그와 같은 국면을 거쳐야 한다는 확신을 담은 가장 공허한 문구들과 이미 우리가 미하일롭스키 선생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접한 바 있는 허튼소리에 스스로를 가두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철저하게 왜곡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예를 들어 크리벤코 선생은 마르크스가 "만약 우리가 소망하고"(?!) 그래서,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적·경제적 관계의 진화는 인간의 의지와 의식에 달려 있다는 건가? 한없이 무지하거나 비할 데 없이 뻔뻔스러운 소리가 따로 없군!) "또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자본주의의 부침을 피해 더 편리한 다른 경로"(원문 그대로의 표현이다!!!)"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기사님이 그런 허튼소리를 내뱉을 수 있었던 것은 의도적인 왜곡에 탐닉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마르크스의 편지'(법률 통신, 1888, 10)에서 러시아가 "자본주의 체제의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체르니셉스키를 마르크스가 높이 평가한 대목을 인용한 크리벤코 선생은 마르크스의 실제 발언(마지막 문장은 "(체르니셉스키)는 후자의 해결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였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부분에 따옴표를 닫으며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이런 견해들을 공유한다고 말한다."(186, 12, 크리벤코의 강조)

 

그러나 마르크스가 실제로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그래서 이 존경할 만한 비평가는 적어도 내가 그 '위대한 러시아 학자이자 비평가'를 존경한다는 이유로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자신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추론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러시아 '문인'과 범슬라브주의자¹¹에 대한 나의 비판으로부터도 내가 그의 견해들을 거부한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법률 통신, 1888, 10, 271)

 

따라서 마르크스는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자신을 러시아의 특수한 발전 노선이라는 사고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여길 권리가 없고, 자기 또한 그런 사고를 지닌 사람들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크리벤코 선생은 마르크스가 그런 특수한 발전 노선을 "인정했다"는 뜻으로 그걸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새빨간 왜곡이었다. 방금 인용한 마르크스의 발언은 그가 그 문제를 다음과 같이 피해 넘겼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히 보여준다.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두 가지 모순되는 주장들 가운데 하나를 근거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즉 그는 러시아의 전반적인 정세에 관한 나의 견해들 중 하나를 근거로 하여 스스로의 결론을 이끌어낼 만한 바탕이 전혀 안 돼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발언들이 잘못 해석될 여지를 없애기 위해 마르크스는 같은 '편지'에서 자신의 이론이 러시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제시했다. 이 답변은 마르크스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자체와 그 질문의 답을 결정할 수도 있는 러시아의 데이터 검토를 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아주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만약 러시아가 서구 유럽 국가들을 모범으로 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려는 경향을——그리고 이 점에 있어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던 최근에——보인다면, 우선 농민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힘들 것"¹¹이라고 답했다.

 

내 생각에 이 대목은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다. 질문은 러시아가 자본주의 국가가 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가, 농민들의 몰락이 자본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탄생 과정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만약' 러시아가 그런 경향을 보인다면, 농민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한다. 달리 말해 마르크스의 이론은 특정 국가들의 경제 시스템의 진화를 연구하고 설명하는 것이었으며, 러시아에 그 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오로지 유물론적 방법론과 정치경제학 이론의 확립된 관행들을 활용해 러시아의 생산관계와 그 진화를 연구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¹¹

 

새로운 방법론과 정치경제학 이론의 정교한 완성은 사회과학에서의 거대한 진보이자 사회주의를 향한 엄청난 진전이었기에, 자본이 등장한 직후 '러시아 자본주의의 운명'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 주요한 이론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 문제를 둘러싸고 엄청나게 열린 논쟁들이 펼쳐졌으며, 강령상의 핵심 지점들도 그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리고 (10년 전) 러시아가 자본주의로 진화하였는지를 놓고 어느 개별적 사회주의자 그룹이 러시아의 경제 현실에 관한 데이터를 토대로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을 때는, 거기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확한 비판은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똑같은 방법론적·이론적 일반 원칙들을 받아들인 이들 가운데서도 데이터에 대해 다르게 설명하는 비판의 목소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맞서 진정한 성전에 돌입한 '인민의 벗들'은 역사나 사실관계의 검토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내놓는 법이 없다. 첫 번째 글에서 본 바와 같이, 그들은 이러한 러시아연구들로 문제를 처리한다. 게다가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의 합의나 의견일치 부족에 대해서도 자신의 재치를 드러낸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런 뒤 '우리의 저명한'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진짜''가짜'로 나누는 말장난을 하고는 마음껏 웃음을 터뜨린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 완전한 일치가 지배적이지 않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첫째로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이 사실을 잘못 전달하고 있으며, 둘째로 현실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약점이 아닌 강점과 생명력을 증명해주고 있다. 최근 시기의 특징이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사회주의자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회민주주의적 관점들에 도달하고 있으며, 그러한 까닭에 러시아가 봉토제도로부터 성장한 부르주아 사회이고 그 정치 형태는 계급국가이며 노동인민의 착취를 끌장낼 유일한 방안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이라는 근본적이고 주요한 논지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논쟁의 방법과 러시아인의 삶의 이러저러한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에 있어 특정한 수많은 문제들을 놓고 의견을 달리한다. 따라서 나는 앞서 언급한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근본적이고 공통적인 논지의 한계 내에서, 예를 들어 농민 개혁이나 농업과 수공업의 경제적 상황, 토지 임차 등 피상적인 어조로만 다뤄져왔던 문제들에 관해서도 의견 차이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미리 미하일롭스키 선생을 기쁘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농민 개혁이 러시아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순탄한 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자본가의 이익을 대표하는 이들이 아닌 '인민의 벗들'에게 국가의 부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을공동체가 농업과 제조업을 사회화해 그것들이 수공업자에 의한 대량생산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인민의 토지 임차가 인민의 농업을 떠받치고 있다는 등의 '승고한 진리'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이는 데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함의는, 러시아의 실제적인 현재의 경제구조를 명확한 생산관계 시스템으로 해명하고 실제적인 경제적 진화나 정치를 비롯한 여타 모든 유형의 상부구조에 대한 해명을 추구하는 사람들 내의 의견 차이로 대체되어왔다.

 

그리고 만약 그런 노력이——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된 입장을 받아들여 공동의 정치적 행동으로 확실히 연결시키고, 따라서 그러한 공통된 입장을 받아들이는 모두가 스스로를 '사회민주주의자'라 부를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게 되는 한편으로——다양한 해결책들이 열려 있는 수많은 특별한 문제들에 대해 광범위한 의견 차이의 여지를 여전히 남겨놓는다면, 당연히 그것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힘과 생명력을 입증해주는 것에 불과하다.¹¹

 

더군다나 그런 노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다양한 측면들을 통합해줄 기관도 없거니와 있을 수도 없고, 오늘날 만연해 있는 경찰의 감시 상황에 비춰볼 때 개인적인 교류도 극도로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적절한 토론을 할 수도,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도 없고 따라서 서로 의견이 상충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재미있지 않은가?

 

사회민주주의자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을 상대로 한 '반론'에서 크리벤코 선생이 언급한 내용은 일정 정도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일부 독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 분열 비슷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고,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과거의 사회민주주의자들로부터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게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공개적으로 방어해온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과 정책을 비판하거나 다른 어떤 종류의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한 적이 없었다. 진실은 크리벤코와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응접실에서나 나눌법한 가십거리들에 귀 기울여왔고, 자신들의 지각 없는 자유주의적 언행을 감추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들먹이는 여러 다양한 자유주의자들을 주시해왔으며, 전매특허인 영리함과 전술을 동원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왔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비판"이 일련의 일상적인 부조리와 추잡한 공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크리벤코 선생은 "우리는 일관되게 여기에('우리는 자본주의 산업 발전에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해답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농민들의 땅을 사들이거나 상점과 선술집을 여는 것을 꺼려서는 안 된다. 수많은 여관주인들이 러시아 의회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벌이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업자들이 농민들의 곡식을 사들이는 것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재미있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인민의 벗'에게 러시아 곳곳에서 벌어지는 노동인민에 대한 착취는 본질상 자본주의적이며, 기업형 농민들과 유통업자들은 이러한 정치·경제적 특징들 때문에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분류되어야 하고, 그런 현실이 농민 분화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증명한다는 것을 일러주자. 그러면 그는 비명을 지르며 그건 서구 유럽의 공식과 추상적인 방안들을 무차별적으로 빌려오는 행위이자 터무니없는 이단이라고(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단적' 주장의 실제 의미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회피하면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불러일으킨 '공포'에 색이 입혀져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고귀한 과학과 순수한 이상은 옆으로 밀려나고 농민의 곡식과 땅을 사들이는 자들이 단순히 타인의 물건을 '동경하는 이들'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대표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들의 손아귀에 생산수단을 집중시킴으로써 이미 모든 영역에서 인민의 노동을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게 압력을 가해 부르주아적 성격의 정책을 입안하고 강요하며 결정짓고 있다는 사실을 저 '인민의 벗'에게 입증해 보이자. 그러면 그는 버럭 화를 내며 우리 정부의 전지전능함을 외치기 시작하고는, '인민의 벗들'이 아닌 자본주의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들을 '끌어들이는 행위'가 치명적인 착오이자 불행이라고, 인공적으로 자본주의를 이식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 그들은 러시아 의회 내의 여관 주인들이 자본주의를 대표한다는 사실, 즉 이른바 계급의 꼭대기에 올라선 바로 이 정부의 구성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사양반들, 러시아 자본주의의 이익이 오직 '의회'에서만, 그리고 '여관 주인들'에 의해서만 대표된다고 생각하시오?

 

추잡한 공격들과 관련해서는 이미 미하일롭스키 선생을 통해 그 사례들을 충분히 지켜봐왔고, 눈꼴 시린 사회민주주의를 전멸시키기 위한 열망 속에 "일부는 자본주의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게 유일한 목적이라 주장하며 (물론 전문가나 사무직 노동자 같은 한직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 공장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한 크리벤코 선생을 통해서도 다시 그걸 확인할 수 있겠다. 이런 명백히 품위를 상실한 발언들에 대해 일일이 답변할 필요는 없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일 테고, 그만 여기서 마침표를 찍도록 하자.

 

아무튼 신사양반들, 그런 정신 상태를 용감하게 계속 유지하길 바라오! 당신들이 말한 대로 이미 여러 조치들을 통해 (설사 흠이 있었다 하더라도) 인민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원해주었던 황실 정부는 앞으로도 아무런 결함 없이 그렇게 해나가게 될 것이며, 그래서 당신들의 진부함과 무지가 드러나는 걸 막아줄 테니 말이오. 이제껏 그래왔듯이 '교양 넘치는 상류 사회'는 막간을 이용해 철갑상어와 카드놀이를 즐기며 기꺼이 '형제'를 들먹이고 그의 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한' 자비로운 사업들을 고안해낼 것이오. 그리고 그 형제를 대표하는 자들은 지방감독관 같은 농민들의 주머니를 감독하는 자리들을 차지하고 앉아 시민적 요구와 의무들에 관한 발달된 의식을 자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네로부터 알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을 것이오. 그러나 그 정신을 계속 이어가시게나들! 절대 방해받지 않을 뿐 아니라 지지와 칭찬까지 받게 될지도 모르니……. 물론 부레닌과 그 지지자들의 입으로부터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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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론에서는, 역사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상대로 하여 공개적인 전쟁에 돌입한 또 다른 '인민의 벗' 크리베코 선생을 만나보도록 하자.

 

하지만 우리는 미하일롭스키나 유자코프의 글들에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의 글들(우리의 문화 용병들, 1893, 12, 그리고 여행 중에 보낸 편지, 1894, 1)을 검토할 것이다. 그 글들을 완전히 분석하는 것은 첫째 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 일반에 대한 그들의 반론과, 둘째 그들의 정치경제 이론의 실체를 분명히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이제 우리는 '인민의 벗들'의 사고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전술, 실질적 목표, 그리고 정치 강령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견해를 밝힐 때, 어디에서도 직접적으로 그 강령을 일관성 있고 완전하게 제시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명의 기고자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을 정도로 의견일치를 보인 한 잡지의 다양한 글들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앞에서 언급한 크리베코의 글들을 우선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 이유는 그의 글들에 많은 자료가 담겨 있는데다가, 미하일롭스키가 사회주의자고 유자코프가 경제학자인 것처럼 크리벤코는 해당 잡지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실용적인 인물이자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강령으로 넘어가기 전에 우리가 정말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이론적 핵심이 한 가지 더 있다. 우리는 유자코프 선생이 인민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인민들의 토지 임차에 대해 의미 없는 문구들을 늘어놓는 것을, 자신이 우리 농민들의 경제적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의 의미 없는 문구들로 문제들을 농치는 것을 지켜봐야겠다. 그는 수공업에 대해서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았고, 대규모 공장 산업의 성장에 관한 자료를 다루는 것으로만 국한했다. 그래 놓고는 수공업에 대해 정확히 똑같은 문구들을 반복해서 늘어놓는다. 그는 "우리 인민들의 산업", 즉 수공업을 자본주의적 산업에 똑같이 대비시키면서(12, 180~1) "인민들의 생산은"(원래의 표현 그대로다!) "대부분의 경우에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반면, 자본주의적 산업은 "흔히 인위적으로 창출된다"고 말한다. 또 다른 단락에서도 그는 "소규모 인민 산업""대규모 자본주의적 산업"과 대비시키고 있는데, 만약 여러분이 눈에 띄는 전자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그저 전자는 "규모가 작고"⁵⁴ 노동 도구들이 생산자와 결합되어 있다는(이 두 번째 정의는 앞에서 언급한 미하일롭스키의 글에서 내가 빌려왔다) 대답만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 경제구조를 정의내리는 것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데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면 크리벤코 선생은 오늘날까지 "소규모 인민 산업""대규모 자본주의적 산업"보다 총생산량도 훨씬 많고 더 많은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수공업자들의 숫자가 400만 명에 달한다는 데이터를 거론하고 있는데, 또 다른 자료에서는 70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수공업을 지배하는 경제 형태가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대부분의 수공업자들이 생산에서 전혀 독립적이지 않고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 그들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원료를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상인들이 대준 원료를 가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러한 형태가 지배적이라는 데이터는 합법적인 출판물에서도 인용되어왔다. 예를 들어 유명한 통계학자인 S. 카리조메노프(Kharizomenov)의 글 가운데 법률 통신》⁵⁵(1883, 11호와 12)에 실린 뛰어난 글을 인용해보자. 수공업이 가장 고도로 발달된 중부 지방 주들에게서의 수공업에 관한 기존에 발표된 데이터를 요약하면서 카리조메노프는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의 절대적인 우위, 즉 의문의 여지 없이 자본주의 형태의 산업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소규모 독립적인 산업의 경제적 역할을 규정할 때, 우리는 다음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모스크바 주에서는 연간 수공업 매출액의 86.5퍼센트가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에 의해 발생하고, 소규모 독립적인 산업에 의한 것은 13.5퍼센트에 불과하다. 블라디미르 주의 알렉산드로프와 포크로프 군에서는 연간 수공업 매출액의 96퍼센트가 대규모 가내생산과 제조업 체계에 해당하고, 4퍼센트만이 소규모 독립적인 산업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한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반박하려 하지 않았고, 반박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사실들을 무시한 채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그런 산업을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인민" 산업이라 부를 수 있으며, 진정한 산업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논할 수 있다 말인가?

 

이렇게 사실관계를 대놓고 무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딱 한 가지 설명만이 가능하다. 즉 러시아의 자유주의자들이 다 그렇듯 '인민의 벗들' 역시도 이 모두를 단지 평범한 '결함들'이라 치부함으로써 러시아 노동인민의 착취와 계급적대를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또 다른 원인은, 예를 들어 크리벤코 선생이 "파블로보의 날붙이 사업""()장인 성격의 사업"이라 부른 데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런 주제에 대한 그들의 지식이 너무나 깊은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인민의 벗들'이 도달한 왜곡의 깊이는 가히 놀랍다는 말밖에는 덧붙일 말이 없겠다! 이 대목에서 어떻게 파블로보의 칼 장수들이 장인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어쩌면 크리벤코는 상인이 수공업자로부터 물건을 주문해 그것들을 니지니 노브고로드 장터로 보내는 시스템을 장인 산업이라 여기는 건 아닐까? 너무나 우습게도, 그런 것 같다. 실제로 칼 제조는 (외관상) 생산자들이 독립성을 지닌 소규모 수공업 형태로부터 (파블로보의 다른 산업들과 비교해볼 때) 가장 동떨어져 있다. N. F. 안넨스키(Annensky)"요리용과 공업용 칼 생산"⁵⁶은 이미 대부분 공장에 접근하고 있거나, 더 정확히는 공장제 수공업 형태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 주에서 요리용 칼 제조에 종사하는 396명의 수공업자들 가운데 단 62(16퍼센트)만이 시장을 위해 일하고, 273(69퍼센트)은 주인⁵⁷을 위해 일하며, 61(15퍼센트)은 임금노동자들이다. 따라서 그들 중 고용주에게 직접적으로 예속돼 있지 않은 비율은 6분의 1에 불과하다. 칼 산업의 다른 부문에 대해 같은 필자는 그것이 "테이블 나이프와 자물쇠의 중간 위치를 차지한다. 이 부문의 수공업자들 대부분은 주인을 위해 일하지만, 그들과 더불어 시장과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독립적인 수공업자들이 여전히 아주 많다"고 말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 주에는 이런 종류의 칼을 생산하는 수공업자들이 총 2,552명 있는데, 그 중 48퍼센트(1,236)는 시장을 위해 일하고, 42퍼센트(1,058)는 주인을 위해 일하며, 10퍼센트(258)는 임금노동자들이다. 결과적으로 여기에서도 독립적인(?) 수공업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시장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또한 단지 겉으로만 독립적으로 보일 뿐이다. 실제로 그들은 구매자의 자본에 덜 예속돼 있는 게 아니다. 21,983명의 근로인민, 즉 일하는 사람 전체의⁵⁸ 84.5퍼센트가 공업에 종사하고 있는 니지니 노브고로드 주의 고르바토프 군 전체의 산업 통계를 불러온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금속, 가죽제품, 마구류, 펠트 천, 삼 방적 등의 산업에 종사하는 10,808명의 노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산업 경제에 관한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즉 수공업자들의 35.6퍼센트는 시장을 위해 일하고, 46.7퍼센트는 주인을 위해 일하며, 17.7퍼센트는 임금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도 우리는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가 우위에 있고, 노동이 자본에 예속돼 있는 관계가 지배적임을 알게 된다.

 

'인민의 벗들'이 그토록 자유롭게 이런 종류의 사실들을 무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 자본가는 거대한 기계 회사를 운영하는 부유하고 교육받은 고용주라는 일반적이고 통속적인 생각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용어의 과학적인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거부한다. 앞의 장에서 우리는 유자코프 선생이 자본주의의 출발을 정확히 기계 공업에서 시작하면서 단순 협업과 매뉴팩처를 생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널리 만연돼 있는 실수로, 부수적으로는 이 나라 수공업의 자본주의적 구성이 무시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가 자본주의적 산업 형태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는 이미 높은 발전 수준에 도달한 상품경제, 생산수단이 개인들의 손에 집중되는 현상, 수중에 생산수단을 지니고 있지 못해 자신의 노동을 타인 소유의 생산수단에 적용시키며 스스로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대중의 착취라는 그 모든 특징들이 담겨 있다. 분명 그 구성에 있어 수공업은 순전히 자본주의적이며, (주로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 때문에) 기술적으로 뒤떨어져 있고 노동자들이 여전히 소규모 농지를 계속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대규모 기계 공업과는 다르다. 후자의 상황은 특히 '인민의 벗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는데, 그들은 진정한 형이상학자들이라는 성격에 걸맞게 노골적이고 정반대로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 그래, 아니, 아니, 여기에서는 그게 뭐든 간에 이보다 더한 게 생겨나는 법이야"라는 것이다.

 

만약 노동자들에게 땅이 없다면, 그건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만약 그들에게 땅이 있다면, 그건 자본주의가 아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그들은 경제의 전반적인 사회적 구조를 보지 않은 채 그런 철학을 위안 삼아 자기 자신을 그 속에 가둔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다른 뻔뻔한 '농민' 토지소유주들로부터 강탈당한 그들의 끔찍한 빈곤이 전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을 망각해버린다.

 

그들은 자본주의가——여전히 비교적 낮은 발전 수준이긴 하지만——어디에서도 노동자를 토지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킬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듯하다. 서구 유럽의 경우 마르크스는 오직 대규모 기계 공업만이 노동자를 영원히 착취한다는 법칙을 확립했다. 따라서 '인민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투적인 논법은 완전히 쓸모없다는 게 명백하다. 왜냐하면 단순 협업과 공장제 수공업의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토지로부터의 완전한 분리와 어디에도 연결된 적이 없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자본주의이길 멈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규모 기계 산업——이 형태는 우리 산업의 가장 크고 중요한 부분을 떠맡고 있다——에 대해서는, 우리 삶의 모든 구체적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이 역시 서구 자본주의 어디에서나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토지와의 연결고리를 계속 유지하는 결코 그냥 냅두지 않을 거라는 뜻이 된다. 말이 난 김에, 이러한 사실은 데멘티에프(Dementyev)에 의해 엄밀한 통계자료를 통해 입증된 바 있는데, 거기서 그는 (마르크스와는 아주 별개로) 기계를 이용한 생산이 노동자의 완전한 토지로부터의 분리와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이러한 연구는 러시아가 자본주의 국가이며, 러시아 노동자들의 토지와의 연결고리는 아주 미약하고 실제하지 않는데다, 자산 소유자(화폐 소유자, 구매자, 부유한 농민, 공장제 수공업자 등)의 권력은 아주 굳건히 확립돼 있으며, 기술적 진전이 한 차례 더 일어나게 되면 (오랫동안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활해왔던) '농민'이 그야말로 노동자로 변신하기에 충분할 거라는 걸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러나 이 나라 수공업의 경제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인민의 벗들'의 잘못은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이 '주인을 위해서' 행해지지 않는 산업들에 대해서조차 그들의 생각은 경작자에 대한 생각(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만큼이나 피상적이다. 어쨌든 그들이 아는 거라고는 세상에는 노동하는 인민과 결합'될 수도 있는' 생산수단 같은 것이 존재하고 그것은 아주 좋은 것인 반면, 그들과 분리'될 수도 있는' 생산수단은 아주 나쁜 거라는 점 말고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주제넘게도 정치 경제에 관한 질문들에 의견을 늘어놓는 신사양반들의 생각이 피상적인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화되어가는 산업과 그렇지 않은(소규모 생산이 자유로이 존재하는) 산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크리벤코 선생은 한 편으로 특정 분야들에서 "기본적인 생산 비용"이 얼마 안 되고 따라서 소규모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한 예로 벽돌 산업을 거론하는데, 거기서는 비용이 벽돌공장 연간 매출액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사실관계를 언급한 거의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에(되풀이하건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이고 정확한 묘사와 분석을 씻어 버린 채 소부르주아적 '이상'의 영역으로 날아오르는 걸 선호하는 게 주관적 사회학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다), '인민의 벗들'이 현실에 대해 어떤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걸 예로 들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우리는 모스크바 제스트보의 경제 통계(보고서, 7, 2)에서 벽돌 산업(백토로부터 벽돌을 만들어내는)에 대한 서술을 볼 수 있다. 해당 산업은 주로 보고로즈코에 군의 세 개 읍에 집중되어 있는데, 233개 시설에서 1,402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하면서 (이중 41퍼센트를 차지하는 567명은 가족 노동자들이다. '가족' 노동자는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주인의 가족 가운데 노동에 참여하는 구성원을 뜻한다) 357천 루블의 가치에 해당하는 연간 총생산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 산업은 오래된 산업이지만, 철도 건설로 인해 판매가 대폭 촉진된 덕분에 지난 15년 사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철도가 건설되기 전에는 가족 생산 형태가 지배적이었으나, 현재는 임금노동자의 착취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한 이 산업은 판매를 위해 소규모 업자들이 대규모 업자들에 의존하는 현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자금 부족' 때문에 소규모 업자는 대규모 업자에게 아주 형편없는 가격에 그 자리에서 벽돌을(때로는 굽지 않은 '미가공품') 내다 파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의존성과는 별개로 그 논문에 첨부된, 노동자들의 수와 각 시설 당 연간 총생산량이 표시된 수공업자 가구별 통계 조사 덕분에 해당 산업의 구조 역시도 익히 알 수 있었다.

 

상품경제가 곧 자본주의 경제라는, 즉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상품경제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된다는 법칙이 이 산업에 적용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시설들의 규모를 비교해봐야 한다. 문제는 정확히 생산량에서의 역할과 임금노동의 착취에 따른 소규모와 대규모 시설들 사이의 관계다. 노동자들의 숫자를 기초로 하여, 우리는 수공업자 시설들을 ()(가족 노동자와 고용 노동자를 모두 포함해) 1~5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시설, ()6~10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시설, ()10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한 시설, 이렇게 세 집단으로 나눈다.

 

시설들의 규모, 노동자들의 전체 수, 각 집단별 생산량의 가치를 검토한 결과, 우리는 다음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도표 참조>

 

이 수치들을 살펴보면 부르주아 또는 그와 동일한 것, 산업의 자본주의적 구조를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시설이 크면 클수록 노동생산성은 더 높아지고¹(중간 집단은 예외다), 임금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더 심해지며², 생산의 집중도 역시 더 커지는 것이다.³

 

거의 전적으로 임금노동에 기초하고 있는 세 번째 집단은 전체 시설 수의 10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총생산량은 44퍼센트에 달한다.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이 이렇게 집중되는 현상, 다수(임금노동자들)의 착취와 연결되어 있는 이런 현상은 소생산자들의 원청(대규모 경영주들은 사실상 원청이다)에 대한 의존과 해당 산업에서의 노동의 억압을 설명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계급에 대한 강탈과 착취의 원인이 생산관계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다시피 러시아의 인민주의 경향 사회주의자들은 그와 반대되는 견해를 지녔고, 수공업에서의 노동의 억압의 원인이 생산관계에(그들은 생산관계가 착취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있지 않고 다른 그 무언가, 즉 농업과 재정정책 등에 있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그런 견해를 굽히지 않고 이제 거의 편견의 철용성을 구축하게 된 근본 토대는 무엇이었고 또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혹시 수공업에서의 생산관계에 대한 개념이 달라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사실관계, 즉 경제구조의 실제 형태들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묘사하려는 시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지속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사회과학의 유일한 과학적 방법론, 즉 유물론적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는 나이든 사회주의자들의 사고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수공업에 관한 한 그들은 착취의 원인을 생산관계 외부로 그 책임을 돌린다. 반면 대규모 공장 자본주의에 관한 한, 그들은 거기에서 착취의 원인이 정확히 생산관계에 있다는 걸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결과는 화해할 수 없는 모순, 부조화였다. 수공업적 생산관계(이제껏 연구된 적이 없었다!)에서는 자본주의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대규모 자본주의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수공업과 자본주의적 산업 사이의 연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전자를 "인민의" 공업으로, 후자를 "인위적인" 산업으로 대비시켰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가 우리의 "인민의 시스템"과 모순된다는 발상인 듯하다. 이러한 사고는 오늘날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최근에는 니콜라이-(Nikolai-on) 선생의 수정과 개선을 거쳐 러시아 대중들에게 제시된 바 있으며, 가히 경탄스러울 정도로 비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관성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니콜라이-온에 따르면 공장 자본주의는 실제 현실에 기초해 판단되는 반면, 수공업은 '그렇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기초해 판단이 이루어진다. 전자는 생산관계의 분석에 기초해 판단되지만, 후자는 생산관계를 따로 검토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판단되며, 그 문제는 곧장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우리가 생산관계의 분석에 시선을 돌리기만 한다면, "인민의 시스템"들이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고 맹아적인 상태이긴 하나 지극히 동일한 자본주의 생산관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만약 우리가 모든 수공업자들이 동등하다는 안일한 편견을 거부하고 그들 사이의 차이들을 정확히 제시한다면——공장의 '자본가''수공업자' 사이의 차이가 '수공업자' 서로 간의 차이보다 작다는 게 때때로 증명될 거라는 사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인민의 시스템"과 모순되는 게 아니라 그것의 뒤를 잇는 직접적이고 당면한 연속이자 발전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앞에서 인용한 사례가 적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겠다. 주어진 사례에서 임금노동자들의 비율이 대체로 너무 높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⁶⁴ 그러나 실제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그들이 드러내는 관계, 즉 그 관계는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적이고 그 부르주아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든 약하게 드러나든 간에 그런 상태가 중단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이번엔 의도적으로 부르주아적 성격이 약한 걸로 골라볼 텐데, (모스크바 주의 산업에 관한 이사예프(Isayev) 선생의 책에 등장하는) 도자기 공업이 그것이다. 이사예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수한 가내공업"인 도자기 공업은 당연히 소규모 농민 공업의 대표주자로 여겨질 수도 있다. 기술이 지극히 단순하고, 장비는 아주 작으며, 생산된 물건들이 보편적이고 필수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 앞선 사례에서처럼 동일한 세부사항들을 제시하는 도자기 장인들에 대한 가구별 통계조사 덕분에 우리는 그것의 경제구조도 연구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도자기 공업은 수량은 러시아 소규모 "인민" 공업의 아주 전형적인 사례다. 우리는 수공업자들을 () (가족 노동자와 고용 노동자를 모두 포함해) 1~3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수공업자, () 4~5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수공업자, () 5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한 수공업자, 이렇게 세 집단으로 나눈 다음 동일한 계산을 실시한다.

 

<도표 참조>

 

명백히 이 공업 역시도——그리고 유사한 사례들이 무수히 인용될 수 있겠다——부르주아적 관계라 할 수 있다. 상품경제로부터 발생하는 동일한 분리, 특히 자본주의적 분리가 발견되고, 이는 맨 위의 집단에서 이미 주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임금노동의 착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맨 위의 집단은 전체 시설들의 8분의 1을 차지하고 전체 노동자의 30퍼센트가 총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생산하며, 노동생산성은 평균보다 상당히 위에 있다. 이러한 생산관계만으로도 원청의 등장과 권력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규모가 더 크고 이웃이 더 많이 나는 시설들을 소유하고 타인의 노동으로부터 ''이익을 얻는(맨 위의 도공 집단에서는 시설당 평균 5.5명의 임금노동자들이 일한다) 소수가 어떻게 '절약된 돈'을 축적하는지, 왜 다수는 몰락하고 심지어 소()장인들은 생계조차 이을 수 없는지를 알 수 있다. 다수가 소수에게 예속되는 건 확실한 사실이며 필연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어진 생산관계의 자본주의적 성격 때문에 그렇다. 이러한 관계들은 상품경제에 의해 조직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이 개인의 수중으로 넘어가 그들의 손에서 노동인민을 억압하고 노예화하는 수단, 대중의 착취를 통해 개인적인 부를 쌓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관계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관계가 여전히 덜 발달되었기 때문에, 생산자들의 몰락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자본의 축적이 무시해도 될 정도이기 때문에 착취와 억압이 보다 덜 뚜렷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다. 그것은 오로지 노예의 형태를 띤 보다 더 조악한 착취로 이끌 뿐이다. 즉 아직은 노동자의 노동력을 가지고 그대로 구입하기에 그를 직접적으로 종속시킬 수 없었던 자본이 노동자를 고리대금에 의한 착취의 진정한 그물에 얽어넣고 악랄한 방법으로 묶어놓음으로써 잉여가치뿐만 아니라 임금의 상당 부분을 강탈해가고, 더 나아가 그로 하여금 '주인'을 바꾸지 못하게 함으로써 고통을 가하며, 자본이 그에게 일거리를 '준다는' 사실을 혜택으로 여기도록 강요함으로써 그를 모욕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인민의" 산업이 존재한다면, 단 한 명의 노동자도 러시아의 '독립적인' 수공업자로서의 지위를 그런 지위와 맞바꾸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급진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조치들은 노동인민의 착취와 자본에 대한 노예화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며, 여전히 고립된 실험에 머무르거나 노동인민의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키고, 주어진 자본주의적 관계를 세련되게 다듬고 발전시키며 강화시킬 뿐이라는 사실도 명백하다 하겠다.

 

하지만 '인민의 벗들'은 전체적인 비참한 상황과 상대적으로 작은 시설, 극도로 낮은 노동생산성, 원시적인 기술과 소수의 임금노동자들에도 불구하고 농민 산업이 자본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인민들 사이의 특정한 관계이며, 그 관계는 비교 대상 범주가 더 높은 발전 수준에 있건 더 낮은 발전 수준에 있건 간에 똑같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도 그걸 절대 이해하지 못해왔다. 그들은 언제나 자본의 그런 정의에 반대해왔다. 나는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마르크스 이론에 관한) 지버(Sieber)의 책에 대한 글을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에 기고하면서 그러한 정의(자본은 관계다)를 인용하며 분개한 마음에 그 뒤에다 느낌표를 달아놓았던 사실을 기억한다.

 

부르주아 체제의 범주를 영원하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르주아 철학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자본에 대해서도 그들이 추가 생산을 위해 쓸모가 있는 축적된 노동이라는 그런 정의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을 인간 사회의 영원한 범주로 묘사하고, 그런 행위를 통해 상품경제에 의해 조직된 '축적된 노동'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중으로 들어가 타인의 노동의 착취를 위해 기여하는 역사적으로 명확하고 특정한 경제 구성체의 본질을 흐린다. 그리고 그것이 생산관계의 명확한 시스템에 대한 분석과 연구 대신에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체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일련의 시시한 말 따위를 제시하고 소부르주아 도덕의 감상적인 어린애 장난 같은 것과 뒤섞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이제 보라. '인민의 벗들'이 이 산업을 "인민의" 공업이라 부르고 그것을 자본주의 산업과 비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이 신사양반들이 소부르주아 이념가들이며, 소생산자들이 상품경제 체제하에 살고 활동하면서(내가 그들을 소부르주아라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과 시장과의 관계가 반드시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들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놓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이러한 현실 구조를 연구하려 하지 않는가? 그랬더라면 우리 "인민의" 산업들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결과에 대해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대신에, 자본주의 노선에 따라 조직되지 않고도 어쨌든 발전을 이룬 수공업 분야가 러시아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소수에 의한 생산수단의 독점, 다수로부터의 소외, 임금노동의 착취가(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본질은 상품경제에 의해 조직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이 개인에 의해 점유되는 것이다) 이런 개념에 필연적이고 적당한 특징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아무쪼록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와 '스스로의' 역사를 제시해주기 바란다.

 

실제로 우리의 "인민" 수공업의 구조는 자본주의 발전의 전체적인 역사에 있어 훌륭한 실례를 제공해준다. 분명히 그것은 한 예로 단순 협업의 형태(도자기 공업에서 맨 위의 집단)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기원과 시작을 나타내준다. 더 나아가——상품경제 덕분에——개별 개인들의 수중에 축적된 '저축'이 어떻게 자본이 되는지, 그래서 이들 저축 소유자들만이 대규모 처분에 필요한 자금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일차적으로 판매를 독점하고 그들로 하여금 멀리 떨어진 시장에서 상품들이 팔려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지, 이들 상인자본(Kaufmannskapital)이 생산자 대중을 어떻게 노예화하고 자본주의 기계제 수공업, 즉 대규모 생산의 자본주의 가내 시스템을 조직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장의 확대와 늘어나는 경쟁이 어떻게 개선된 기술로 이어지고 이러한 상인자본이 산업자본이 되며 대규모 기계제 생산을 조직하는지 또한 보여준다. 그래서 강해진 힘을 바탕으로 수백만 노동인민과 지역 전체를 노예화한 자본이 공공연하고 뻔뻔하게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정부를 자신의 하인으로 변모시키는 순간, 우리의 천재적인 '인민의 벗들''자본주의 이식'과 그 '인위적인 생성'에 대해 비명을 질러낸다.

 

실로 적절한 발견 아닌가!

 

그러므로 크리벤코 선생이 인민의, 현실적인, 적합한 따위의 산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단지 우리 수공업이 다양한 발전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일 뿐이라는 사실을 감추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유자코프 선생의 경우를 통해 이런 식의 수법들을 익히 보아왔다. 그는 농민 개혁을 연구하는 대신에 기념비적인 선언⁶⁵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한 공허한 문구들을 활용했고, 토지 지대를 연구하는 대신에 그것을 인민의 지대라 이름 불렀으며, 국내 시장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위해 형성되고 있는지를 연구하는 대신에 시장의 부족으로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봉쇄된다는 등의 철학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바 있다.

 

이 대목에서, '인민의 벗' 선생들이 사실을 얼마나 왜곡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나는 한 가지 예를 더 검토해볼까 한다.⁶⁶ 우리의 주관적인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가장 정확한 언급 중 하나, 즉 크리벤코 선생이 보로네시 농민들의 예산에 대해 언급했던(1894, 1) 부분을 무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드물게 자세를 낮춰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 자신이 선택한 데이터를 기초로 삼아보면, 러시아 급진주의자들과 '인민의 벗들'의 사고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사고 가운데 현실에서 어떤 생각이 더 정확한지를 확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로네시 제스트보 통계학자인 시체르비나(Shcherbina)는 오스트로고즈스크 군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전형적인 농가 24곳의 예산 항목들을 덧붙이며 본문에서 그것들을 분석했다.⁶⁷

 

크리벤코 선생은 이러한 분석을 재현하면서도, 그 방법론이 우리 소농들의 경제를 알기 위한 목적에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거나 보기를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24곳의 예산은 크리벤코 선생 자신이 지적하듯이(159) 완전히 서로 다른——잘살거나 중간이거나 가난한——가구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시체르비나와 마찬가지로 그도 전혀 다른 유형의 가구들을 한 덩이로 묶어 그 평균 수치들을 활용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그들 간의 차이를 완전히 숨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 소규모 생산자들 내부의 분화는 아주 일반적이고 주요한 사실이라서(오랫동안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여기에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관심을 환기시켜왔다. 플레하노프의 저작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크리벤코 선생이 선택한 빈약한 데이터에 의해서조차 아주 뚜렷이 감지된다. 그러나 그는 농민들의 농업을 다룰 때 그들을 농장 규모와 농업 유형에 따른 범주로 나누는 대신, 시체르비나 선생이 그랬듯이 그들을 법적인 범주, 즉 과거의 국유지 농민과 과거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으로 구분하고 자신의 모든 관심을 후자와 비교했을 때 전자의 번영에 돌리면서 같은 범주 내 농민들 간의 차이가 범주 간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⁶⁸ 이를 증명하기 위해 나는 24명 농민들을 세 개의 집단으로 나눠 (a)6명의 잘사는 농민들, (b)11명의 평균적인 농민들, (c)7명의 가난한 농민들을 골라 보기로 한다. 예를 들어 크리벤코 선생은 과거 국유지 농민의 농가당 지출이 541.3루블이고, 예전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들의 지출은 417.7루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서로 다른 농민들의 지출이 동등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한 예로 과거 국유지 농민들 중에는 지출이 84.7루블인 사람이 있는 반면 (설사 1,456.2루블을 지출하는 독일 이주민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사람은 그 10배에 해당하는 887.4루블이었다. 만약 이를 한데 묶어놓는다면 과연 평균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내가 제시하는 범주들로 분류를 할 경우, 잘사는 농민의 농가당 평균 지출은 855.86루블이고, 중간층 농민은 471.61루블, 가난한 농민은 223.78루블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⁶⁹ 그리고 그 비율은 대략 4:2:1이다.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시체르비나의 발자취를 따라 크리벤코 선생은 다양한 법적 범주의 농민들 사이의 개인적인 필요에 따른 경비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국유지 농민들이 연간 채소 음식에 지출하는 일인당 경비는 13.4루블이고, 과거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들은 12.2루블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범주에 따라 구분할 경우, 그 수치는 (a)17.7루블, (b)14.5루블, (c)13.1루블이었다. 과거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들이 일인당 고기와 유제품에 지출하는 경비는 5.2루블이고, 과거의 국유지 농민들은 7.7루블이었다. 반면 경제적 범주에 따라 구분할 경우, 그 수치는 각각 11.7루블, 5.8루블, 3.6루블이었다. 이렇듯 범적인 범주에 따른 계산은 이러한 커다란 차이를 덮어버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따라서 정녕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크리벤코 선생은 과거의 국유지 농민들의 소득이 예전 지주 밑에 있던 농민들의 소득보다 53.7퍼센트 더 크다고 말한다. (24명 농민의) 전체적인 평균은 539루블이고, 두 범주로 나누면 각각 600루블 이상과 약 400루블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면, 소득은 (a)1,053.2루블, (b)473.8루블, (c)202.4루블로, 최대 5:1의 비율일 뿐 3:2가 아니었다.

 

또한 크리벤코 선생은 "과거 국유지 농민들의 농가당 자본 가치는 1,060루블이고, 과거 지주 밑에 있던 농민들은 635루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적 범주에 따라 구분할 경우⁷⁰, 그 수치는 (a)1,737.91루블, (b)786.42루블, (c)363.38루블이었다. 다시 최대 비율은 5:1이지, 3:2가 아니다. 이렇게 '농민'을 법적인 범주로 구분함으로써 필자는 이와 같은 '농민'의 경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으로부터 스스로 떨어져버린 것이다.

 

만약 우리가 경제적 능력에 따른 다양한 유형의 농가들을 검토한다면, 잘사는 농가는 평균 1,053.2루블의 소득을 올리고 855.86루블의 경비를 지출해, 197.34루블의 순수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에 비해 중간층 가구는 473.8루블의 소득을 올리고 471.61루블의 경비를 지출해, 농가당 2.19루블의 순수익을 거둔다(신용 부채와 체납금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분명 이는 생계를 잇기에는 부족한 금액으로, 농가 11곳 가운데 5곳이 적자였다. 반면 최하층 가난한 집단은 직접적인 손실을 보면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소득이 202.4루블, 경비가 223.78루블로, 21.38루블의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¹ 만약 우리가 농가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전체적인 평균(순수익 44.11루블)을 낸다면, 실제 그림이 완전히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건 명백하다. 그럴 경우 순수익을 확보한 6명의 잘사는 농민들이 농업 노동자들(8)을 고용한 사실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농업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순수익을 거두들여 '산업'에 의존할 필요성을 사실상 덜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 부유한 농민들은 모두 합쳐 자신들 예산의 6.5퍼센트만 산업으로 충당한다(6,319.5루블 가운데 412루블). 게다가 이들 산업들은——시체르비나 선생이 언젠가 언급한 것처럼——'운반'이나 심지어 '양치기'와 같은 유형으로, 의존과는 거리가 멀고 타인의 착취를 미리 전제로 한다(바로 이 경우, 축적된 '저축'은 상인자본으로 전환된다). 이들 농민들은 4개의 산업 시설들을 소유하고, 거기서 320루블의 소득(전체의 5퍼센트)²을 거두들이고 있었다.

 

중간층 농민들의 경제는 유형이 달랐다. 우리가 지켜봤듯이 그들은 거의 생계를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농사만으로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울 수가 없어 소득의 19퍼센트를 이른바 산업으로부터 충당하고 있었다. 그것이 과연 어떤 종류의 산업인지는 시체르비나 선생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는데, 7명의 농민 가운데 오직 두 사람만이 독립적인 산업(양복업과 숯 제조)에 종사하고, 나머지 5명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고 있었다("저지대에서 풀을 베거나"³, "양조장에서 일한다든지", "주수철에 납품을 팔고", "양을 보살피며", "현지 주민의 사유지에서 일을 한다"). 그들은 이미 반만 농민이고 반은 노동자다. 부업을 함으로써 그들은 농사를 등한시하게 될 수밖에 없고 결국 그들 자신의 농사가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가난한 농민들의 경우, 그들은 순전히 손해를 보면서 농사를 짓는다. 그들의 가계예산에서는 "산업"의 중요성이 훨씬 더 컸고(소득의 24퍼센트), 이때의 산업이란 거의 전적으로(농민 한 명만 제외하고) 노동력의 판매였다. 그들 중 2명의 경우 "산업"(농장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이 전체 소득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소생산자들의 완전한 분화 과정이라는 사실은 아주 명백하다. 소생산자들 중 상위 집단은 부르주아로 변신했고, 하위 집단은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 우리가 전체적인 평균을 택한다면 당연히 거기에서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고, 시골 지역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필자로 하여금 다음의 방법론을 채택하는 게 가능하게 만든 것은 그가 오로지 그러한 허구의 평균을 갖고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해당 군 전체의 농민 농업에서 전형적인 농가들의 지위를 측정하기 위해 시체르비나 선생은 농민들을 분여지 크기에 따른 집단으로 나눴더니, 선택된 농가 24곳의 (전반적인 평균) 변형 수준이 군 내 평균보다 약 3분의 1 가량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런 계산법은 만족스럽다고 여겨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들 24명 농민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고 분여지 크기에 따른 분류는 농민층의 분화를 감춰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여지가 번영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크리벤코 선생의 이론은 완전히 틀렸다. 마을공동체 내 토지를 "동등하게" 분배한다고 해서 말을 소유하지 않은 구성원들이 토지를 포기한 채 일자리를 찾아 떠나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것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사실, 또는 다수의 말을 소유한 구성원들이 거대한 땅을 임차해 이윤이 발생하는 큰 농장을 운영하는 것 또한 막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농가 24곳의 예산을 가지고 따져보면, 6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한 명의 부유한 농민이 758.5루블의 총소득을 거둬들이고 있었고, 7.1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중간층 농민은 391.5루블, 6.9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가난한 농민은 109.5루블을 거둬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다양한 집단 간의 소득 비율이 4:2:1인 반면 분여지 비율은 2.6:1.08:1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아주 당연한 것인데, 예를 들어 가구당 22.1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부유한 농민들은 각각 8.8데샤티나를 추가로 더 빌리는 반면 분여지를 더 적게 보유한(9.2데샤티나) 중간층 농민들은 더 적은 규모의 분여지——7.7데샤티나——를 빌렸고, 훨씬 더 적은 분여지(8.5데샤티나)를 보유한 가난한 농민들은 불과 2.8데샤티나만 추가로 임차한다는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⁷⁴ 그래서 크리벤코 선생이 "불행히도 시체르비나 선생이 제시한 데이터는 주 단위는 말할 것도 없고 군 단위에서조차 전체적인 상황을 정확히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전체적인 평균을 계산하는 잘못된 방법론(크리벤코 선생이 절대 의지하지 말았어야 하는 방법론)에 의지하는 당신의 행동도 측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말해 시체르비나 선생의 데이터는 아주 포괄적이고 귀중해서 우리로 하여금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크리벤코 선생이 그리지 못했다면 비난받을 대상은 시체르비나 선생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시체르비나 선생은 197쪽에서 농사용 가축에 따른 농민들의 분류를 제시했을 뿐 분여지에 따른 분류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즉 법적인 구분이 아니라 경제적 구분에 따른 분류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선택된 전형적인 24곳 농가의 다양한 범주들 사이의 비율이 해당 군을 통틀어 다양한 경제 집단들 사이의 비율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 분류는 다음과 같았다.

 

<도표 참조>

 

앞에서 볼 때, 전형적인 24곳 농가의 전체적인 평균이 해당 군 내 농가보다 전반적으로 운영 면에서 뛰어나다는 점은 의심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허구의 평균 대신에 경제적 범주를 택해보면, 제대로 된 비교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전형적인 농가들에서 일하는 농장 노동자들이 농사용 가축을 갖고 있지 못한 농민들보다 다소 아래에 위치해 있지만, 그들에 매우 근접해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가난한 농민들은 농사용 가축을 한 마리 보유한 농민들에 아주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소의 숫자는 가난한 농민들이 2.8마리, 말을 한 마리 보유한 농민들이 3.0마리로, 0.2마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중간층 농민은 농사용 가축을 두세 마리 보유한 농민들보다 약간 위에 위치해 있다(그들은 소는 약간 더 많고 땅은 약간 더 적다). 반면 부유한 농민들은 농사용 가축을 네 마리 이상 보유한 농민들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한 상태에서 그들에 근접해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군 전체에서 이윤이 나는 농사에 규칙적으로 종사하면서 외부 일자리를 찾을 필요가 없는 농민들이 10분의 1을 넘어선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가 있다(그들의 소득은——중요하게 언급할 가치가 있다——화폐로 표현되며, 따라서 상업적 성격의 농업을 전제로 한다). 대체로 그들은 고용된 노동자들의 일손을 빌려 농사를 짓는다. 전체 가구의 4분의 1 이상이 정규 농업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일시적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가구의 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반면 군 내 농민의 절반 이상은 가난하고(말이 없는 농민 26퍼센트+한 마리가 있는 농민 31.3퍼센트=57.3퍼센트로, 60퍼센트에 가깝다) 순전히 적자 상태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가차 없는 강탈에 꾸준히 시달린 끝에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고, 농민들의 약 4분의 1은 이미 농업보다는 임금노동에 더 많이 생계를 의지한다. 나머지 중간층 농민들은 어쨌든 정기적인 손실을 보면서 농사를 짓는데, 외부 수입으로 그걸 보충하고, 따라서 어쨌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

 

나는 크리벤코 선생이 제시한 그림이 실제 상황을 얼마나 왜곡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들 데이터를 아주 구체적으로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는 전체적인 평균을 가지고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고, 당연히 그 결과는 허구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거짓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전형적인 24가구의 예산 중에서) 한 명의 잘사는 농민의 총소득(+197.34루블)이 가난한 아홉 농가의 적자를 메워주고(-21.38×9=-192.42), 그래서 해당 군 내 10퍼센트의 부유한 농민들이 57퍼센트의 가난한 농민들의 적자를 상쇄해줄 뿐만 아니라 일정 정도 잉여를 산출해낸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리고 24곳 농가의 평균예산으로부터 44.14루블의 잉여를 이끌어낸——또는 신용 부채와 체납금 15.97루블을 차감한——크리벤코 선생은 그저 중간층과 중하층 농민들의 '쇠퇴'를 이야기할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마도 중간층 농민들을 언급할 때만 쇠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반면⁷⁸, 가난한 농민 대중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수탈, 즉 상대적으로 크고 튼튼하게 자리 잡은 농장을 소유한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이 집중된 결과로 인한 강탈을 목격한다.

 

이러한 후자의 상황을 무시했기 때문에 크리벤코 선생은 농가 예산들의 또 다른 아주 흥미로운 특징, 다시 말해 농민층의 분화가 국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들이 마찬가지로 증명해준다는 것을 관찰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최상위에서 밑바닥까지 훑어보면, 산업, 곧 주로 노동력의 판매로부터 얻는 소득의 중요성이 점점 커진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부유한 농민과 중간층 농민, 그리고 가난한 농민 각각의 총예산의 6.5퍼센트, 18.8퍼센트, 23.6퍼센트). 다른 한편으로 맨 밑바닥에서 최상위의 순서로 훑어보면, 농업의 상품적(이라기보다는 부르주아적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성격이 증가하고 처분되는 농산품의 비율이 늘어난다는 것을 목격한다. 각 범주별로 농업에서 거둬들이는 총소득은 a3,861.7/1,774.4, b3,163.8/899.9, c689.9/175.25.

 

분모는 소득의 화폐 부문을 가리키는데,⁷⁹ 최상위 범주에서 맨 밑바닥으로 가면서 각각 45.9퍼센트, 28.3퍼센트, 25.4퍼센트를 차지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강탈당한 농민들로부터 가져간 생산수단이 어떻게 자본으로 변화하는지를 똑똑히 보게 된다.

 

그러한 방식으로는 크리벤코 선생이 활용된 자료로부터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었음은 아주 분명하다. 철도로 같은 여행한 그 지역 한 농민으로부터 들은 것에 기초해 노브고로드 주 농민 농업의 화폐적 성격을 묘사한 뒤에야 그는 "가능한 저렴하게 풀을 베" "그것을 가능한 좋은 가격에 팔기 위한" "특별한 능력들""배양하고"(156)⁸⁰ 한 가지에 물두하게끔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러한 환경, 즉 상품경제라는 정확한 결론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상품경제는 "상업적인 재능을 일깨우고 세련되게 만드는 학교"로서 기능한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 콜파예프(Kolpayev)와 데루노프(Derunov)¹, 그 외 다른 유형의 피를 빨아먹는 착취자들이 되는² 반면, 우직하고 둔한 사람들은 뒤처지고 퇴화해 궁핍해진 끝에 농장 노동자 대열로 들어섰다."(156)

 

전혀 다른 조건들이 지배적인 주——농업이 주산업인 주(보로네시)——의 데이터에서도 도달한 결론은 정확히 같았다. 이를 본 사람들은 상품경제 체제가 나라 전반의 경제 생활의 주된 배경이자 특히 "공동체" "농민층"의 가장 큰 바탕으로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상황이 아주 명확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품경제만으로도 "인민들""농민층"이 프롤레타리아(몰락해서 농장 노동자 대열에 들어선)와 부르주아지(피를 빨아먹는 착취자들)로 분화되고 있다는, 즉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두드러진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감히 말하지 못한다(그건 너무 "가혹한" 요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크리벤코 선생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그는 생산관계의 자본주의적 성격의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덧붙였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일부 사람들"의 관점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이루어졌을 테고, 그가 공허한 미사여구로 그들의 견해를 폐기처분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며, 그 역시 실질적인 문제의 분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 "일부 사람들"과의 싸움에 의도적으로 나서지 않는 바람에 그는 스스로 화폐경제가 "재능 있는" 착취자들과 "우직한" 농장 노동자들을 만들어내는 "학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것을 자본주의의 저항할 수 없는 임무라 여긴다."(, 물론이지! 이러한 "학교"와 그것을 지배하는 "착취자들"에 맞선 투쟁을 그들의 관료와 지식인 끄나풀들과 함께 벌여나가야만 한다고 믿는 것은 자본주의가 극복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학교"와 그 착취자들에게 완전한 면죄부를 부여하고 반쪽짜리 자유주의적인 조치들의 힘을 빌려 자본주의의 산물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은 '인민의 벗들'의 진정한 속성이다!) "우리는 문제를 다소 다르게 바라본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는 의심할 나위 없이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이는 착취자들과 농장 노동자들의 학교에 대한 언급을 가리키는 대목이다) "그 역할이 모두를 아우르기에 너무나 결정적이어서 그 외 다른 어떤 요인도 국민 경제에서 발생하는 변화에는 책임이 없고, 미래에 다른 어떤 해결책도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160)

 

과연 그렇군!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정확하고 직설적인 묘사 대신에, '농민층'이 왜 착취자들과 농장 노동자들로 갈라지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는 대신에, 크리벤코 선생은 "자본주의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알맹이 없는 문장으로 그 문제를 일축해버린다. 글쎄, 그렇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것이다.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려면 그는 다른 어떤 요인들이 '결정적'이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지적한 것 외에, 즉 착취자들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³ 외에 다른 어떤 '해결책'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게 아니면 혹시 다음의 문장을 두고 자신이 보여주었다고 여기는 걸까? 우스울지 몰라도, '인민의 벗들'로부터 뭘 더 기대하겠는가.

 

"우리가 알다시피 맨 먼저 쇠락한 이들은 토지가 빈약한 취약 농가들이다." 5데샤티나 미만의 분여지를 보유한 농가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15.7데샤티나의 분여지를 확보한 전형적인 국유지 농민 농장들은 안정성 면에서 차이가 난다. …… 실제로 그 정도 소득(80루블의 순수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들은 추가로 5데샤티나를 임차하지만, 그건 그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줄 뿐이다."

 

아니, 높은 '토지 빈곤'을 자본주의와 연결시키는 이런 '수정주의적 사고'는 과연 무엇에 해당하는가? 조금밖에 못 가진 사람들은 그마저도 잃어버리는 반면, 많이 가진(각각 15.7데샤티나씩)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걸 얻게 된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⁸⁴ 그러나 이는 일부 사람들은 몰락하고 다른 이들은 부유해진다는 말을 아무 의미 없이 바꿔 말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 어떤 것도 해명해주지 못하는(농민들이 분여지를 공짜로 받는 게 아니라 그걸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지 빈곤에 대한 의미 없는 이야기와 결별할 가장 좋은 시점이 다가왔다. 그것은 단지 과정만을 묘사해줄 뿐이며, 더군다나 부정확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토지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생산수단 전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며, 농민들이 토지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토지로부터 분리되고 있으며, 날로 성장하는 자본주의에 의해 수탈당하고 있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벤코 선생은 자신의 철학적인 담론을 마무리 지으며 "농업이 어떠한 상황 아래서도 '자연발생성'을 유지하며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의도는 없다"고 말한다(말이 또 바뀌는군! 화폐 경제라는 학교가 이미 존재하고, 그것은 교환을 전제로 하며, 그 결과 농업이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건 당신이 아니었던가? 왜 또 뭐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꺼냈을까 하겠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인위적으로 분리된 산업을 창출하는 것이 비이성적이며"(컴퓨터 파블로보의 수공업이 "분리"되어 있는지, 누가 그것을 "인위적으로" "창출"했으며, 언제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노동자를 땅과 생산도구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선행하고 그것을 증진시키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전부다."

 

여기서 그는 다시, 만약 노동자가 토지로부터 분리돼 착취자의 손아귀로 넘어간다면 이는 노동자가 '가난하기' 때문이며 착취자가 땅이 '많기' 때문이라는 심오한 사상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부류의 철학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결정적 요인으로 간주하는 '편협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난을 해준다! 나는 농민과 수공업자의 분화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한 번 더 고찰해보았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문제를 어떻게 묘사하고 설명하는지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관적 사회학자가 보기엔 농민들은 '가난해지는' 반면 '돈을 쫓는 이들''착취자들''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윤을 이끌어낸다'는 걸 의미하는 사실관계들이, 유물론자에게 있어서는 상품 생산 자체의 필요에 따른 상품 생산자들의 부르주아적 분화를 의미한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자산계급과 무산계급 사이의 투쟁이 공장에서 뿐만 아니라 머나면 오지 마을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논지, 모든 곳에서 이러한 투쟁은 상품경제의 결과로 등장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투쟁이라는 (앞서 1부에서 인용⁸⁵) 논지의 근거로 작용하는 사실관계들이 어떠한 것들인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젬스트보 통계가 제공한 존경스러운 자료 덕분에 정확히 서술될 수 있었던 농민들과 수공업자들의 해체와 탈농민화는 러시아의 현실을 바라보는 사회민주주의적 인식, 다시 말해 농민과 수공업자가 그 단어의 '단정적인' 의미에서 소생산자, 곧 소부르주아라는 인식의 정확성의 실질적 증거를 제공해준다. 이러한 논지는 소생산자들이 살아가는 상품경제의 환경이나 그러한 환경 때문에 그들이 자본주의적으로 분화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옛 농민사회주의에 맞서는 것으로서의 노동계급 사회주의 이론의 핵심이라 불릴 수 있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를 진지하게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간에 자신의 주장을 여기에 집중시켜야 했을 뿐더러, 정치경제학의 시각에서 봤을 때 러시아가 상품경제 체제가 아니며, 그래서 농민층의 해체가 상품경제 체제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인민 대중의 강탈과 노동인민의 착취는 이 나라 사회(농민을 포함한) 경제의 자본주의적 구조인 부르주아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게나, 신사양반들!

 

내가 사회민주주의 이론의 실증적 증거로 택하기를 선호하는 것이 농민과 수공업 경제에 관한 데이터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만약 '인민의 벗들'의 관점을 비판하면서 내가 그들의 사고를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대조하는 데 그쳤더라면, 그건 유물론적 방법론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덧붙여 '인민주의적' 사고에 대해 설명하고, 이 나라의 현재 사회적·경제적 현실에서 그들의 물질적 토대를 증명해야만 한다. 이 나라 농민과 수공업자의 경제에 관한 예증과 사례들은 '농민'의 신망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인민의 벗들'이 농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들은 이 나라 농촌 경제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증명해주고, 따라서 '인민의 벗들'을 소부르주아의 이념가들로 분류하는 게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그것들은 이 나라 급진주의자들의 사상과 계획들이 소부르주아들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내준다. 그들의 계획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면 훨씬 더 분명해질 이런 연관관계는 도대체 급진적인 사상들이 왜 그토록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또한 그것은 '인민의 벗들'의 정치적 노예근성과, 기꺼이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의 태도 역시도 훌륭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가 아직 채 발달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그와 같은 경제학적 측면들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고찰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인민주의자들이 보통 자신들의 이론을 위한 자료를 끌어오리는 그런 경제학에 대한 연구와 서술은 사회민주주의 경향에 대해 이곳 인민들 사이에 아주 만연해 있는 반발의식에 실질적으로 대답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자본주의가 "인민의 시스템"과 모순된다는 일반적인 생각으로부터 더 나아가, 그리고 대규모 자본주의를 진보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강도 같은 현 체제에 맞서 싸우는 토대로 삼고 싶어하는 것이 다름 아닌 대규모 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이 나라 급진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농민 대중의 이익을 무시한 채 "모든 농민을 공장의 용광로로 밀어넣기를" 바란다는 등의 비난을 한다.

 

이 모든 주장들은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실제 있는 그대로 판단하면서도 시골 지역의 경우에는 '그렇지도 모른다'고 판단하는, 놀라우리만치 비논리적이고 이상한 과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당연히, 그들에게 실제 농촌과 그곳의 실제 경제 상태를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답변은 있을 수 없다.

 

농촌의 경제 환경을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러시아 농촌이 따로 떨어진 작은 지역들의 사회적·경제적 생활을 규정하는 작고 흩어진 시장들의(또는 중앙 시장의 작은 부문들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지역에서 우리는 시장이 규제하는 사회적·경제적 구조에 대체로 특징적인 모든 현상을 발견한다. 한때 동등하고 가부장적이었던 직접생산자들이 부자와 가난한 이들로 분화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며, 노동인민 주위에 그룹을 치고 그들에게서 생명소를 빨아가는 자본, 특히 상인자본의 부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급진주의자들이 제시한 농민 경제에 관한 묘사를 농촌의 경제 생활에 관한 정확한 1차 데이터와 비교해보면, 그들의 비판적 사고 체계에서는 각 지역의 시장에 때 지어 모여 있는 영세한 장사치들과 행상, 중개인들, 시장을 장악한 채 노동인민들을 가차 없이 억압하는 소착취자 무리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들은 대개 "더 이상 농민들은 없고 장사치들만 있다"는 언급 정도만으로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래, 그 말은 아주 옳다. '더 이상 농민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상인들' 모두를 뚜렷이 구별되는 집단, 즉 정확한 정치경제학 용어로 말하자면 영리 기업에 종사하고 그 정도가 어떻게든 간에 타인의 노동을 점유하는 사람들로 취급하려고 시도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 집단의 경제적 힘과 그들이 지역 전체의 경제 생활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정확히 수치로 표현하려 노력해보라. 그런 다음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다 팔고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더 이상 농민이 아니게 된' 사람들을 정반대 집단으로 설정해보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진지한 조사를 위한 기초적인 요구조건들을 충족시켜나가려 애쓰다 보면, 부르주아적 분화라는 아주 생생한 그림을 얻게 될 것이고 더 이상 "인민의 시스템"이라는 신화는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될 테니 말이다. 이런 소규모 시골 착취자들 무리는 끔찍한 세력을 대표한다. 특히 고립된 채 혼자 일하는 임금노동자를 억압하고, 그를 자신들에게 얽어매 일말의 구제받을 희망조차 앗아가기 때문에 끔찍하다. 그리고 앞서 묘사된 그 시스템의 특징인 낮은 노동생산성과 의사소통 수단의 부재에서 기인한 시골의 야만적인 환경에 비춰볼 때 그들에 의한 착취는 노동의 강탈일 뿐만 아니라 농촌에서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인간 존엄의 아시아적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제 이 실제의 시골을 우리의 자본주의와 비교해본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 나라 자본주의의 역할을 진보적이라 여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작고 흩어진 시장들을 전국적인 차원의 단일 시장으로 한데 끌어모으고, 선의를 가진 소규모 착취자 무리들을 대신해서 한 줌의 커다란 '조국의 대들보들'을 창조해내며, 노동을 사회화하고 그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한편, 지역 착취자들에 의한 노동인민의 예속을 박살내고 그들을 대규모 자본에 종속시킨다. 그리고 이때의 종속은 노동의 억압과 점진적인 소멸, 야만성, 신체를 손상당한 여성과 아이들 등 그 모든 공포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예속과 비교해볼 때 진보적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노동자계급의 의식을 각성시키고, 침묵하거나 일관성 없던 불만을 의식적인 투쟁으로 전환시키며, 흩뿌리진 채 벌어지던 사소하고 무분별한 반란을 모든 노동인민의 해방을 위한 조직화된 계급투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은 대규모 자본주의의 존재라는 바로 그 조건 자체로부터 동력이 생겨나며, 따라서 의심할 나위 없이 일정한 성공을 확신할 수 있다.

 

아무튼 농민 대중을 무시한다는 비난에 대한 응답으로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다음과 같은 말들을 인용함으로써 전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비판은 사슬을 장식하고 있던 가공의 꽃들을 뽑아버렸는데, 그것은 인간이 상상 속의 장식물이 벗겨진 족쇄를 그대로 차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슬을 벗어던져버리고 살아있는 꽃을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농촌을 장식한 가공의 꽃들을 뽑아버리고, 이상화와 환상에 맞서 싸우며 그것을 파괴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해나가고 있다. 농민 대중을 현재의 억압과 점진적인 소멸, 노예화 상태에 머무르지 않게 하고, 어디서나 노동인민을 속박하는 사슬의 정체가 무엇이며 그 사슬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프롤레타리아가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래서 그들이 그에 맞서 떨쳐일어나 사슬을 벗어던지고 현실의 꽃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민의 벗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그토록 극도로 혐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처한 위치 덕분에 스스로 계급의식을 획득하고 계급투쟁을 시작할 수 있게 된 노동인민의 대표들에게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와 같은 사상을 펼쳐놓는 순간, 그들은 농민들을 공장의 용광로로 밀어넣기를 원한다는 비난에 처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그들은 과연 어떤 이들인가?

 

'정부''사회', 즉 도처에서 노동인민을 속박해온 부르주아 기관들에, 노동인민의 해방을 향한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도 이런 무대 없는 인종들이 건방지게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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