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1
본 도표와 추가 도표는 본문에서 언급된 오스트로고즈스크 군(郡) 내 전형적인 농가 24곳의 농가 예산 및 경제적 구성 지표를 요약·정리한 자료이다.
해당 자료는 농가의 수입과 지출 구조, 그리고 자본 축적 및 수탈의 양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초 토대를 제공한다.
첫째, 제1~21열, 제25~29열은 『통계 초록』의 원자료를 그대로 인용하였다. 제22열은 호밀, 밀, 귀리·보리, 기장·메밀, 기타 곡물, 감자, 채소, 건초 등 8개 항목에 관한 세로줄을 합산한 것이며, 제24열은 말, 소, 양, 돼지, 가금류, 가죽·양털, 지방·고기, 유제품, 버터 등 9개 항목에 관한 세로줄을 집계한 것이다. 제30~34열은 식료품 및 보드카·차 등 12개 가계 소비 지출 항목의 세로줄을, 제35열은 비누, 등유, 양초, 옷, 식기 등 4개 생활용품 지출 항목의 세로줄을 각각 합산하여 구성하였다. 왕겨와 짚을 제외한 곡물 수입 (제23열)의 산출 근거는 본문의 기술을 따른다.
둘째, 경지 규모 (제8열)는 임차 토지와 분여지 내 경지 면적을 데샤티나 단위로 합산하여 도출하였다.
셋째, ‘수입원’ 및 ‘지출 분포’ 항목의 하단 수치는 수입과 지출의 화폐화된 금액을 나타낸다. 특히 제25~28열과 37~42열의 수입 및 지출은 전액 화폐 가치로 환산된 수치이다. 이러한 금전적 수치는 총수입에서 각 가구의 자가 소비액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산출되었다.
가구 분류별 인구 및 분여지 통계 (부록 1)
가구의 분류 및 그 수 | 구분 | 남녀를 더한 수 | 노동력 인구(성인 남자의 수) | 농업 노동자가 있는 가구 | 농업 노동자 수(남녀) | 분여지(데샤티나) |
부유한 가구 6 | 계 | 47 | 11 | 6 | 8 | 132.6 |
| 가구당 평균 | 7.83 | 1.8 | — | — | 22.1 |
중간 가구 11 | 계 | 92 | 26 | 2 | 2 | 101.2 |
| 가구당 평균 | 8.36 | 2.4 | — | — | 9.2 |
가난한 가구 7 | 계 | 37 | 10 | 2 | 2 | 57.8 |
| 가구당 평균 | 5.28 | 1.4 | — | — | 8.5 |
총 24가구 | 계 | 176 | 47 | 10 | 12 | 291.6 |
| 가구당 평균 | 7.33 | 1.9 | — | — | 12.1 |
농업노동자 2 (가난한 가구에 포함) | 계 | 9 | 2 | — | — | 14.4 |
| 가구당 평균 | 4.5 | 1 | — | — | 7.2 |
가구 분류별 토지 점유 및 자본 재산 통계
가구의 분류 및 그 수 | 구분 | 임차지 가구 수 | 임차지 면적(데샤티나) | 총 경작지 | 건물의 수 | 공업 제조소 수 | 농업 기구의 수 | 집수레용 동물 | 가축의 총계 |
부유한 가구 6 | 계 | 6 | 52.8 | 123.4 | 52 | 4 | 224 | 35 | 81 |
| 가구당 평균 | — | 8.8 | 20.6 | 8.6 | — | 37.3 | 5.8 | 13.5 |
중간 가구 11 | 계 | 10 | 85.5 | 140.2 | 70 | — | 338 | 40 | 89.1 |
| 가구당 평균 | — | 7.7 | 12.7 | 6.4 | — | 30.7 | 3.6 | 8.1 |
가난한 가구 7 | 계 | 4 | 19.8 | 49.8 | 31 | — | 108 | 7 | 15.3 |
| 가구당 평균 | — | 2.8 | 7.1 | 4.4 | — | 15.4 | 1 | 2.2 |
총 24가구 | 계 | 20 | 158.1 | 313.4 | 153 | 4 | 670 | 82 | 185.4 |
| 가구당 평균 | — | 6.6 | 13 | 6.4 | — | 27.9 | 3.4 | 7.7 |
농업노동자 2 (가난한 가구에 포함) | 계 | — | — | 6.8 | 6 | — | 11 | — | 1.1 |
| 가구당 평균 | — | — | 3.4 | 3 | — | 5.5 | — | 0.5 |
자산 가치 평가 및 미수 대부금 현황 (루블 환산)
가구의 분류 및 그 수 | 구분 | 건물 | 기타 부동산 | 도구 | 가정용품 | 의복 | 가축 및 꿀벌 | 총계 | 체불 대부금 |
부유한 가구 6 | 계 | 2,696 | 2,237 | 670.8 | 453 | 1,294.2 | 3,076.5 | 10,427.5 | 80 |
| 가구당 평균 | 449.33 | 372.83 | 111.8 | 75.5 | 215.7 | 512.75 | 1,737.91 | 13.3 |
중간 가구 11 | 계 | 2,362 | 318 | 532.9 | 435.9 | 2,094.2 | 2,907.7 | 8,650.7 | 357 |
| 가구당 평균 | 214.73 | 28.91 | 48.44 | 39.63 | 190.38 | 264.33 | 786.42 | 32.4 |
가난한 가구 7 | 계 | 835 | 90 | 112.3 | 254 | 647.1 | 605.3 | 2,543.7 | 233.6 |
| 가구당 평균 | 119.28 | 12.85 | 16.04 | 36.29 | 92.45 | 86.47 | 363.38 | 33.4 |
총 24가구 | 계 | 5,893 | 2,645 | 1,316 | 1,142.9 | 4,035.5 | 6,589.5 | 21,621.9 | 670.6 |
| 가구당 평균 | 245.55 | 110.21 | 54.83 | 47.62 | 168.14 | 274.56 | 900.91 | 27.9 |
농업노동자 2 (가난한 가구에 포함) | 계 | 155 | 25 | 6.4 | 76.8 | 129.3 | 9.1 | 401.6 | 50 |
| 가구당 평균 | 77.5 | 12.5 | 3.2 | 38.4 | 64.65 | 4.55 | 200.8 | 25 |
농가 계급별 수입원 구조 (루블)
가구의 분류 및 그 수 | 구분 | 농업 수입: 총계 | 농업 수입: 곡물 수입 | 가축 사육 | 양봉 및 원예 | 공업 | 제조소 | 기타 | 수입 총계 |
부유한 가구 6 | 계 | 61.2% (3,861.7) | 2,598.2 | 15.4% (972.6) | 4.3% (271) | 6.5% (412) | 5% (320) | 7.6% (482.2) | 100% (6,319.5) |
| 가구당 평균 | 643.6 | — | 162.1 | 45.2 | 68.6 | 53.3 | 80.4 | 1,053.2 |
중간 가구 11 | 계 | 60.7% (3,163.8) | 2,203.8 | 16.1% (837.5) | 0.7% (36.1) | 18.8% (979.3) | — | 3.7% (195.5) | 100% (5,212.2) |
| 가구당 평균 | 287.7 | — | 76.1 | 3.2 | 89 | — | 17.8 | 473.8 |
가난한 가구 7 | 계 | 48.7% (689.9) | 502.08 | 22.9% (324.2) | 1.9% (27) | 23.8% (336.8) | — | 2.7% (39) | 100% (1,416.9) |
| 가구당 평균 | 98.5 | — | 46.3 | 3.9 | 48.1 | — | 5.5 | 202.4 |
총 24가구 | 계 | 59.6% (7,715.4) | 5,304.8 | 16.5% (2,134.3) | 2.6% (334.1) | 13.3% (1,728.1) | 2.5% (320) | 5.5% (716.7) | 100% (12,948.6) |
| 가구당 평균 | 321.5 | — | 88.9 | 13.9 | 72 | 13.3 | 29.9 | 539.5 |
농업노동자 2 (가난한 가구에 포함) | 계 | 59.5% (118) | — | 5.7% (11.4) | — | 128.8 | — | 2.0% (4) | 100% (198) |
| 가구당 평균 | 29.75 | — | 2.85 | — | 64.4 | — | 2 | 99 |
농가 계급별 지출 구조 (루블)
가구의 분류 및 그 수 | 구분 | 식량: 총계 | 식량: 채소 | 식량: 기타 | 식량: 우유·육류 | 식량: 소금·보드카·차 | 옷감 및 가정 필수품 | 가축 사육 | 도구 및 가축 |
부유한 가구 6 | 계 | 29.2% (1,500.6) | 823.8 | 676.8 | 561.3 | 115.5 | 8.2% (423.8) | 24.9% (1,276.6) | 9.4% (484.5) |
| 가구당 평균 | 250.1 | — | — | — | — | 70.63 | 212.76 | 80.75 |
중간 가구 11 | 계 | 37.6% (1,951.9) | 1,337.3 | 614.6 | 534.3 | 80.3 | 10.6% (548.1) | 21.2% (1,098.2) | 5% (256) |
| 가구당 평균 | 177.45 | — | — | — | — | 49.83 | 99.84 | 23.27 |
가난한 가구 7 | 계 | 42.1% (660.8) | 487.7 | 173.1 | 134.4 | 38.7 | 14.6% (229.6) | 15.6% (243.7) | 7.1% (110.6) |
| 가구당 평균 | 94.4 | — | — | — | — | 32.8 | 34.81 | 15.8 |
총 24가구 | 계 | 34.6% (4,113.3) | 2,648.8 | 1,464.5 | 1,230 | 234.5 | 10.1% (1,201.5) | 22.2% (2,618.5) | 7.1% (851.3) |
| 가구당 평균 | 171.39 | 110.37 | 61.02 | 51.25 | 9.77 | 50.06 | 109.1 | 35.46 |
농업노동자 2 (가난한 가구에 포함) | 계 | 81.7% (161.8) | 72.1 | 9.6 | 6.1 | 3.5 | 14.91% (29.5) | 8 (15.8) | 53.2 (26.9) |
| 가구당 평균 | 40.85 | — | — | — | — | 7.45 | 4 | 26.6 |
지출 분포 및 재정 수지 통계 (루블)
가구의 분류 및 그 수 | 구분 | 노동자 및 양치기 | 지대 | 세금 및 부담금 | 성직자 사례금 | 기타 | 총계(루블) | 흑자(+) 또는 적자(-) |
부유한 가구 6 | 계 | 13.5% (691.7) | 6.5% (332) | 4.9% (253.5) | 1.1% (56) | 2.3% (116.5) | 100% (5,135.2) | +1,184.3 |
| 가구당 평균 | 115.29 | 55.33 | 42.25 | 9.33 | 19.42 | 855.86 | +197.34 |
중간 가구 11 | 계 | 0.9% (47.6) | 6.8% (351.7) | 4.9% (254.9) | 1.3% (69.9) | 11.7% (609.4) | 100% (5,187.7) | +24.5 |
| 가구당 평균 | 4.33 | 31.97 | 23.17 | 6.35 | 55.4 | 471.6 | +2.19 |
가난한 가구 7 | 계 | 1.6% (24.3) | 6% (94.5) | 6.5% (101.8) | 1.8% (28) | 4.7% (73.2) | 100% (1,566.5) | -149.6 |
| 가구당 평균 | 3.47 | 13.5 | 14.54 | 4 | 10.46 | 223.78 | -21.38 |
총 24가구 | 계 | 6.4% (763.6) | 6.5% (778.2) | 5.1% (610.2) | 1.3% (153.9) | 4.7% (799.1) | 100% (11,889.4) | +1,059.2 |
| 가구당 평균 | 31.82 | 32.43 | 25.43 | 6.41 | 33.29 | 495.39 | +44.11 |
농업노동자 2 (가난한 가구에 포함) | 계 | 0.4% (0.8) | — | 22.6 | 2.8 | 3.3 | 100% (186.9) | +11.1 |
| 가구당 평균 | 0.2 | — | 11.3 | 1.4 | 1.65 | 93.45 | +5.55 |
부록 2
스트루베가 니콜라이 온의 이론적 오류를 지적하며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투쟁 및 국가 이론이 러시아의 정치경제학자들에게 생소하다’는 논지를 비판의 기초로 삼은 것은 매우 타당한 분석이다. 필자는 특정 단편 논문만을 근거로 상대의 이론 체계 전체를 단정하는 정황을 경계하기에 스트루베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으나, 해당 분석만큼은 정확하다고 판단한다. 니콜라이 온의 근본적 한계는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한 계급 투쟁의 객관적 역동성을 파악하지 못한 점에 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 체계의 핵심 축인 계급 투쟁 원칙을 간과한 채 스스로를 엄격한 신봉자로 규정하는 것은 심각한 이론적 모순이자 비판받아 마땅한 오류이다. 따라서 이러한 계급 투쟁 관점의 부재를 재정립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이론적 명제와 연구로부터 사회민주주의적 결론을 도출하는 정당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니콜라이 온이 러시아의 역사적 특수성과 현실적 조건만을 예외로 두고 마르크스 이론을 수용했을 개연성 또한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경우 마르크스의 이론이 러시아의 사회 체제를 설명한다고 규정할 수는 없게 된다. 나아가 이론을 변개하여 계급 관계와 계급 투쟁이 내재하지 않는 독자적 자본주의 개념을 도출해야 하므로, 마르크스 이론이나 자본주의라는 범주 자체를 적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가 마르크스주의의 일부 이론 체계만을 수용하고 나머지 핵심 요소를 거부하고자 했다면 명확한 논리적 근거와 이론적 당위성을 제시했어야 함에도, 이에 대한 어떠한 이론적 시도도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 내 계급 투쟁을 간과하는 경향은 자본주의 사회의 실제적·정치적 역동성을 도외시한 채 공상적 열망의 한계에 머무르는 드러낸다. 이러한 시각에서 니콜라이 온을 공상주의자로 규정한 스트루베의 비판은 이론적으로 지극히 타당하다. 나아가 부르주아 관념론과 ‘사회’ 및 ‘국가’라는 추상적 범주에 의존하는 태도는 사회주의 진영 내에 이론적 혼선을 가중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적대를 약화시켜, 결과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조직화와 투쟁 노선 확립을 저해하는 반동적 결과로 귀결된다.
스트루베의 논의에 대한 연장선에서,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6호에 수록된 니콜라이 온의 반론 역시 분석적 검토가 요구된다.
니콜라이 온은 공장 노동자 수의 증가율이 인구 증가율에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 자료를 근거로, “러시아 자본주의가 자체적 발전을 스스로 제약하여 ‘역사적 과제 수행’과 거리가 먼 상태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서유럽 및 북아메리카와는 구별되는 독자적 발전 경로의 당위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러시아가 자본주의적 발전 경로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에 내재한 마을 공동체 파괴의 역동성과 계급적 귀결을 도외시한 이론적 모순을 내포한다.
해당 기술은 V. V. 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해 고안해 낸 전형적인 반론의 구도를 체현한다. 이는 ‘인민의 삶에 자본주의를 정착시키는’ 과제를 순전히 국가적 내치 사안으로 취급하는 행정 관료적 시각에 불과하다. 즉 자본주의의 역사적 ‘임무’가 수행되면 수용하고, 그렇지 못하면 배척한다는 식의 논리다! 이러한 주장이 지닌 논리적 허구성을 차치하더라도, 그들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임무’ 자체를 지극히 편협하고 왜곡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자신들이 지닌 관점의 한계를 합법적 언로가 봉쇄되어 반론조차 제기하기 어려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탓으로 돌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의 변혁적·혁명적 역할은 노동의 사회화 과정 자체를 매개로 “노동자 계급을 단련하고 단결시키며 조직화한다”는 점에 존재한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의 작동 기제는 프롤레타리아트를 투쟁으로 훈련시키고 그들의 “반란”을 조직하며, 이들을 계급적으로 결집시켜 “수탈자에 대한 수탈”과 정치권력 쟁취를 담보하며 “소수 수탈자들”로부터 생산 수단을 몰수하여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는 물질적 토대를 창출한다 (『자본』, 650쪽).
마르크스의 분석 체계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혁성은 단순한 ‘공장 노동자 수의 수량적 증가’에 있지 않고, 생산 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 과정에 존재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교조적·편협한 해석자들은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의 사회화를 단순히 공장 노동자들이 한 공간에 집결하여 노동하는 물리적 현상으로 축소 기술하였다. 그 결과 자본주의의 변혁적 역할 수행 여부를 공장 노동자 수의 증감으로만 평가하는 이론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공장 노동자 수의 감소를 자본주의의 역사적 임무 실패로 규정하고 이를 근거로 지식인 계급 주도의 독자적 발전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니콜라이 온의 주장은 이러한 편합한 관점의 틀에 기반한 대표적 논거이다.
러시아 지식인 계급은 사회 발전의 ‘독자적 경로’를 도출하기 위해 수십 년간 이론적 모색을 거듭하며, 자본주의가 실업과 경제 위기를 수반하는 ‘부적절한’ 발전 경로임을 입증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들은 1880년과 1893년의 경제 위기를 단서로 제시하며, 자본주의적 발전 체제 내에서 나타난 파국적 징후들을 근거로 기존 노선으로부터의 즉각적인 이탈과 독자적 경로 설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정세의 악화와 비판 속에서도 자본주의적 수탈과 이윤 추구를 단절하지 않는다. 산업 자본 단계로의 진입에 따른 이윤율 감소 직면하자, 이들은 여전히 높은 이윤율을 보장하는 ‘본원적 축적 조건’이 유지되고 농민 분화가 미진한 동부 및 북부 변방 지대로 자본을 확장하며 한계 상황을 돌파하려 시도한다. 지식인 계급은 이러한 구조적 파국과 사회적 추락을 끊임없이 경고하지만, 자본주의의 작동은 무수한 소자본가와 농민을 내쫓고 빈곤과 실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뿐이다. ‘지식인 계급’은 이를 해외 시장의 부재 및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하며 구조적 오류를 타령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전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역사적 역동을 직시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낸다.
부르주아 계급은 ‘지식인 계급’의 논쟁에 개의치 않은 채 자본주의적 확장을 지속한다. 이들은 식민지로 이어지는 철도 건설 등 대규모 사업을 감행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영역을 미개척 지대로 확대하고, 산업 및 농업 부르주아지를 신속히 형성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생산자 대중은 만성적 기아에 시달리는 실업자 대열로 전락하며, 자본주의의 내적 동학에 따른 계급적 분화는 한층 가속화된다.
니콜라이 온은 인구 구성 지표를 바탕으로 러시아 자본주의가 생산자 대중의 흡수에 실패하고 자체적인 발전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그는 서구 자본주의적 발전 경로와는 차별화되는 러시아만의 독자적 경제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러시아 사회가 이미 자본주의적 발전 단계에 진입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내재된 계급적 대립과 공동체 해체의 객관적 과정을 직시하지 못한 이론적 모순을 드러낸다.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불안전성이나 공장 노동자 수의 완만한 증가만을 근거로 잘못된 발전 경로를 타령하는 태도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역동을 오인한 유치한 시각에 불과하다. 스트루베의 원문을 정확히 검토해 보면, 미국과 러시아의 농업 인구 비중 차이 (44% 대 80%의 격차)를 매개로 자본주의가 수행해야 할 역사적 과제, 즉 산업화에 수반되는 인구의 구조적 전환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니콜라이 온은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객관적 사회화 기능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이론적 왜곡을 저지르고 있다.
해당 지문에서 ‘임무’라는 용어는 이론상 불완전하나, 스트루베의 핵심 요지는 분명하다. 이는 니콜라이 온 스스로도 인정한 러시아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이 농촌 인구의 감소를 동반하며, 이러한 현상이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일반적 법칙에 해당함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니콜라이 온이 이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1) 자본주의 고유의 이러한 인구 이동 경향을 자신이 결코 도외시하지 않았음을 입증하거나, (2) 자본주의 제체 자체에 농촌 인구를 감소시키는 내적 경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증명했어야 한다.
니콜라이 온은 인구의 1%에 불과한 공장 노동자 통계만을 제시하며 스트루베의 비판을 반박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스트루베가 언급한 수치는 공장 노동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비농업 종사 인구’ 전체를 가리키는 지표이다. 공장 노동자와 비농업 종사 인구를 동일시하는 것은 분석적 오류이며, 실제로 미국 인구의 56%와 러시아 인구의 20%를 단순히 공장 노동자로 규정할 수는 없다. 핵심은 공장 노동자 수의 수량적 비율이 아니라, 자본주의 전개에 따라 농업 종사 인구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구조적 법칙성에 있다. 니콜라이 온은 이러한 농업 인구의 감소 경향 자체를 부정하지 못한 채 범주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본질적인 논점을 회피하고 있다.
크리벤코를 거치며 왜곡된 해당 대목의 본의를 올바르게 바로잡는 작업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임무’에 관한 니콜라이 온의 독단적 규정을 비판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이다. 스트루베가 지적했듯, 인구의 산업적 구성에서 농업 종사 비율의 감소 (미국의 44% 대 러시아의 80%)는 자본주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반적·구조적 법칙이지 단순한 공장 노동자의 수량적 비중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니콜라이 온의 주장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이 지닌 고유한 인구 구조 재편 법칙과 사회적 노동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단선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이론적 오류에 불과하다.
첫째, 공장 노동자의 수치만을 자본주의 생산 종사자 전체와 동일시하는 것은 대규모 기계 공업만을 자본주의의 출발점으로 간주하는 소부르주아 경제학의 오류를 반복 및 심화하는 부적절한 설정이다. 상인 자본으로부터 통상 임금을 받으며 그들의 원자재로 노동을 수행하는 수백만 명의 수공업자 역시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에 포섭된 생산자이다. 마찬가지로 고정 농업 노동자, 일용직 농업 노동자, 건축 산업 노동자 등은 모두 고용주에게 임금을 받으며 잉여 가치를 수탈당하는 자본주의적 착취 대상에 해당한다.
둘째, 공장 노동자 수 (140만 명)를 전체 인구와 단순 비교하여 백분율로 산출하는 방식 역시 방법론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이는 생산 연령 인구와 비생산 연령 인구를 비교하거나, 물질적 가치 생산 종사자와 ‘비생산적 전문직’ 종사자를 동일한 선상에 놓는 왜곡된 대조에 불과하다. 공장 노동자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비노동 가족 구성원은 물론, 상층 계급과 군인, 공무원 등 비생산 부양 인구까지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생산자이다. 따라서 이러한 비생산 인구 집단을 공장 노동자와 대립시켜 단순 농촌 인구로 분류하는 것은 명백한 이론적·통계적 오류이다. 또한 어업과 같은 산업 부문을 공장 산업과 구분한다는 이유만으로 농업 범주에 임의적으로 결부시키는 것 역시 지극히 부당하다. 인구의 산업적 구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질적 가치 생산에 종사하는 인구를 비생산 인구 (비노동자, 군인, 공무원, 성직자 등)와 엄격히 분리한 뒤, 이를 국가 전체 노동의 산업별 분야로 세분화하여 분석했어야 한다. 이러한 정밀한 통계 산출이 불가하다면, 전체 인구의 1%만이 공장 산업에 관계되어 있다는 식의 왜곡된 통계를 제시하기보다 인구 구성 비중 산정 자체를 유보하는 것이 이론상 타당하다.
셋째, 자본주의의 변혁적·혁명적 역할이 오직 공장 노동자의 결속 및 집결에만 존재한다는 발상은 마르크스주의의 노동 사회화 개념을 극도로 단선적으로 왜곡한 결과이다. 마르크스가 규정한 노동의 사회화는 단순한 공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내 노동자들의 수량적 집적이 아니라, 생산 수단의 집중, 분업의 발전, 그리고 사회 전체에 걸친 생산 관계의 상호 의존성 확대를 포섭한다. 그럼에도 니콜라이 온 등은 소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노동의 사회화를 공장 노동자의 물리적 결속으로 축소 해석하여, 자본주의가 농업 및 수공업 등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전개하는 실질적인 계급적·생산적 재편 과정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론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내재된 노동의 사회화는 단순히 다수의 노동자가 한 공장이라는 공간에 모여 일하는 물리적 집합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정립한 사회화의 본질적 의미는 첫째, 생산이 개별적·파편적 소비가 아닌 사회 전체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이루어진다는 점, 둘째, 분업과 협업의 확대를 매개로 개별 노동자들의 노동이 하나의 사회적 총노동으로 결합되어 작동한다는 점에 존재한다.
니콜라이 온 역시 이러한 사회화의 두 가지 특성, 즉 사회 전체를 위한 생산과 공동 생산물 획득을 위한 노동자들의 결합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임무’ 완수 여부를 공장 노동자 수의 증감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스스로 제시한 이론적 전제와 충돌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공장 노동자 계급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선봉적 역할을 수행하고 혁명적 운동의 핵심 주체로 부상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곧 자본주의적 사회화 전체를 공장 노동자의 수치와 동일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사회화 과정은 농업 및 수공업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생산 관계를 재편하며 진행되는 객관적 역동성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의미’를 단지 공장 노동자 수로 축약하는 태도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자의적으로 축소·왜곡하는 오류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소책자 『주택 문제에 대하여 (Zur Wohnungsfrage)』에서 독일의 산업 구조와 토지 소유 임금 노동자를 분석한 논지는 자본주의 발전과 노동자 계급의 형성 과정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엥겔스에 따르면 “소농의 고통 심화로 확대된 농촌의 가내 공업은 독일 신흥 대규모 공업의 광범위한 기초를 형성하였으나, 농업과 공업의 결합은 생산자의 안녕이 아닌 거주지 고착에 따른 자본의 수탈 강화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가내 공업의 확산은 농촌 지역을 산업 지형으로 결부해 독일의 산업 혁명을 전면적인 영토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혁명적 노동 계급 운동이 대도시 중심지에 국한되지 않고 수많은 소도시와 농촌 지역으로 확산되어 지속적이며 억누를 수 없는 전진을 이루게 한 구조적 배경으로 작용한다.”
자본주의의 사회화 및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형성은 단지 기계제 대공장의 수량적 통계나 공장 노동자의 비중만으로 국한되지 않으며, 가내 공업과 수공업 등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수탈 구조 속에서 다각도로 전개된다. 엥겔스가 제시한 독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농촌 가내 공업의 확대는 생산자에 대한 자본의 수탈을 강화하는 한편, 농촌 지역을 자본주의적 산업 지형으로 결합하여 혁명적 노동 계급 운동을 농촌과 소도시로까지 확산시키는 물질적 토대가 되었다.
러시아의 수공업 역시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에 깊이 포섭되어 있음에도, 인민주의자들은 이를 ‘인민 산업’으로 포장하며 공장 노동자 수치만을 자본주의의 범위로 축소하는 오류를 범한다. 공장과 제조업을 단순한 부동산이나 자선 사업 기관 수준의 미미한 일면에 치환하며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분석을 비하하는 크레벤코의 시각은, 자본주의가 생산자 대중 전체를 착취하고 재편하는 객관적 역동성을 직시하지 못한 단선적이고 임의적인 단정에 불과하다.
이류 부르주아 철학자들의 논리적 왜곡은 새삼스럽지 않으나, 니콜라이 온이 동일한 오류에 빠져든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마르크스가 『자본』 393쪽에서 제시한 1861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인구 통계에 따르면, 전체 2,000만 명 중 주요 공장 산업 종사자는 160만 5,440명에 불과한 반면 하인 계급은 120만 8,648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마르크스는 2판 각주에서 이 계급의 급속한 성장을 지목하였는데, ‘자본주의의 구조적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 160만 명을 2,000만 명으로 나누어 비중이 8% 미만에 불과하다고 단정하는 방식이 적용된다면, 이는 인구의 12분의 1조차 포섭시키지 못한 영국 자본주의를 ‘실패한 발전 경로’로 규정하고 비자본주의적 독자적 경로를 모색하자는 무의미한 주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니콜라이 온처럼 공장 노동자의 수량적 비중만을 근거로 자본주의의 사회화 및 역사적 임무를 평가하는 태도는, 통계적 수치에 매몰되어 자본주의 생산 양식이 지닌 구조적 역동성과 사회화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이론적 한계를 극명히 드러낸다.
니콜라이 온은 러시아 자본주의가 서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서 볼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역할을 창출하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독립적인 노동 계급 운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비자본주의적 발전 경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미하일롭스키 역시 마르크스의 이론이 이미 프롤레타리아트가 형성된 조건에서 도출된 것이며,『철학의 빈곤』을 근거로 러시아의 빈곤은 전복적·혁명적 동력을 내포하지 않은 단순한 고난에 불과하다고 강변하다. 그러나 이는 마르크스주의 형성기에 대한 피상적 이해에 불과하다.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과 공산주의 강령을 작성하던 1848년 이전 마르크스가 독일 역시 전면적인 노동 운동이 미약하고 정치적 자유가 부재한 가운데 지하 소조 중심의 활동 등의 활동이 주를 이루어 현재 러시아가 직면한 조건과 다를 바 없었다. 오늘날 목도되는 폭넓은 사회민주주의 운동과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의 확산은 20여 년에 걸친 사회주의자들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조직·선전 활동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그 당시에는 정치적 자유조차 부재하여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은 지하 소조로 국한되어 있었다. 자본주의의 혁명적·계급적 역할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사회민주주의 노동 운동이 본격화되고,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이 체계화되었으며, 대규모 공업의 확산과 함께 노동자 계급 내부에서 이론을 전파할 역량 있는 주체들이 등판한 것은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미하일롭스키 등 예외론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노동자 계급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이끈 사회주의자들의 방대한 실천 활동을 외면한 채, 마르크스에게 자동주의적이고 숙명론적인 관점을 강제로 덧씌우고 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자의 조직화와 사회화가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전제하며, 자본주의의 존재에도, 노동 운동이 가시화되지 않은 까닭을 주체적 조직·선전의 미비가 아닌 자본주의 자체의 임무 미완수에서 찾으려 한다.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기만은 국제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역사적 실천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공개적 투쟁으로 이미 반박된 논리다. 카우츠키의 지적대로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 계급 운동과 사회주의 이론의 결합으로 성립한다. 따라서 러시아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업을 ‘현실화’하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역사적 조건과 계급 투쟁의 다각적인 양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이론을 대중화하여 프롤레타리아트를 독자적 정치 세력으로 결집시키는 조직적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 역시 이러한 계급적 과업이 완수되었다고 선언한 적이 없으며, 집단적이고 지속적인 실천에 기반하여 비로소 혁명적 토대가 확립됨을 일관되게 천명해 왔다.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파편화된 이해 외에도 자본주의의 역사적 역할을 부인하는 통속적 토식은 ‘인민의 체제’라는 허구적 관념에 기초해 있다. 소농의 해체와 농민의 내부의 부르부아적 분화를 포착하지 못한 채 ‘마을 공동체’라는 허구적 인민 체제에 고착하는 시각은, 농촌의 정치경제적 구조를 외면한 피상적 관념에 불과하다. 토지 소유권의 형식적 변화에 매몰되어 이를 경제 조직의 본질과 동일시하는 태도는 공동체 내부에서 한창 진행 중인 자본주의적 계급 분화를 직시하지 못하는 이론적 정체를 드러낸다.
문제적 ‘마을 공동체’의 ‘농민들’이 프롤레타리아와 자본의 대립 구도로 분화할 때, 예외론자들은 이를 농촌의 초기 형태의 중세 자본주의 형성 과정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농촌의 정치경제적 구조를 외면한다. 이들은 ‘조국을 위한 독자적 경로’를 모색하며 소위 ‘평등한 마을 공동체’ 내부에서 부르주아적 분화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 농민 토지 소유권의 형식적 변화에만 매몰되어 이를 경제 조직의 본질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전개는 중세적 마을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봉건적 토지 지배를 해체한다. 이 과정에서 토지를 박탈당한 농민들은 러시아 전역을 유랑하며 지주, 철도 사업자, 도시 노동자, 부농의 농업 노동자로 전락한다. 이러한 유랑 속에서 ‘농민’은 자신이 자본에게 수탈당하고 있으며, 그 수탈 주체가 ‘지주’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매수하는 같은 ‘농민 형제’라는 계급적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나아가 국가 권력이 노동자들의 생존권 주장과 봉기를 진압하여 자본가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사실, 그리고 부와 사치의 증대 속에서 노동 조건의 악화와 수탈, 실업이 상시적인 구조적 모순으로 고착됨을 목도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예외론적 비판자들은 공장 노동자의 완만한 증가만을 근거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업 수행 여부’와 독자적 경로의 타당성만을 관념적으로 논의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편협하고 교조적이며 악의적이라는 식의 비난은, 러시아 현실에서 전개되는 자본주의적 착취의 객관적 역동성을 외면하고 유토피아적 관념론으로 도피하려는 주관적 시각에서 비롯된다. 이들이 간과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자본주의 발전의 불완전성이 아니라, 계급적 적대와 계급적 투쟁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관념적 유토피아주의 (마닐로프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적 수탈이 사회 전반에 관철되는 조건에서 필요한 것은 비자본주의적 발전 경로라는 허구를 좇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 조직성과 의식성을 부여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실천에 투신하는 것이다.
끝으로, 《러시아의 부》 같은 호 (6호)에서 전개된 스트루베의 비판적 논법에 대응하는 니콜라이온의 논조는, 비판의 핵심인 자본주의적 인구 이동 법칙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보다 선동적 용어 사용을 문제 삼는 수사적 회피에 머문다.
니콜라이 온은 “스트루베가 독일 학술지에 게재한 글에서 ‘유토피아’나 ‘반동적 구상’과 같은 개념을 남발하는 방식이 부적절하며, 이미 독자 대중이 성숙한 단계에 이르러 이러한 수사적 비난이 의도한 비판적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128쪽)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상대방의 논리적·통계적 허점을 규명하는 실질적 반론이 아니라, 본질적 논점을 우회하여 비판의 수사적 형식만을 문제 삼는 이론적 빈곤함을 드러낼 뿐이다.
스트루베가 비판 과정에서 ‘유토피아’나 ‘반동적 구상’과 같은 이론적 규정을 사용한 것을 두고 “부적절한 방식”을 동원했다고 비난하는 니콜라이 온의 주장은 논쟁의 본질을 회피하는 수사적 전가에 지나지 않는다.
본래 비판적 어휘나 경고성 표현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규정되는 경우는, 객관적 근거와 명확한 이론적 논증 없이 단지 상대방을 비난하고 깎아내리기 위해 자의적인 어휘를 동원할 때이다.
그러나 스트루베의 지적은 자본주의 발전의 구조적 법칙성에 기초한 논리적 비판이었던 반면, 이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용어의 어감만을 문제 삼는 니콜라이 온이야말로 본질적인 이론적 논점을 우회하는 불필요한 수사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상대방의 견해를 “근심거리”나 “끔찍한 단어”로 치부하는 방식이 비판적 논증의 본질을 결여한 수사적 비난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거친 비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실재하는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이론적 분석과 객관적 논거에 기반하고 있다면, 이를 단지 “부적절한 방식”으로 폄하할 수는 없다.
실제로 니콜라이 온 스스로도 슬로님스키 (Slonimsky)를 향해 소수공업과 소농 토지 소유권 방어의 반동성과 공상성을 지적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의 비판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규정되지 않는 이유는, 선명한 관점과 체계적인 논리에 바탕을 두고 상대의 유토피아적 한계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논리적 근거를 갖춘 구조적 비판과 단순한 수사적 회피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스트루베가 니콜라이 온의 주장을 반동적 구상이자 순진한 이상주의로 규정한 근거는 명확하고 구체적이다. 첫째, 니콜라이 온은 ‘생산의 사회화’를 지향하면서도 국가와 사회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였는데, 이는 국가가 지배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규정과 계급 투쟁의 역동성을 포착하지 못한 결과이다. 둘째, 현실의 자본주의적 전개 과정을 외면한 채 단지 주관적 당위에 기반하여 ‘자본주의 없는 생산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것은 역사의 객관적 발전 법칙을 무시한 관념론적 포착에 불과하다. 자연 경제의 해체와 농촌 인구의 감소를 동반하는 자본주의의 전개는 가부장적 질서를 파괴하고 현대 국가를 공개적인 계급 투쟁의 장으로 끌어낸다. 따라서 생산의 실질적 사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관념적 호소가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이 분출시키는 객관적 동력과 현실적 계급 세력에 주목해야 한다.
스트루베가 니콜라이 온의 방법론을 비판하며 제시한 논거들은 객관적·이론적 근거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니콜라이 온은 자본주의 체제에 내제된 계급 투쟁의 객관적 역동성을 도외시한 채, 국가와 사회가 계급적 이해관계를 사상하여 노동 사회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관념론적 착오에 빠져 있다. 계급 국가의 본질을 외면하고 지배 계급의 도구인 국가에 사회주의적 개조를 호소하는 태도는 순진한 반동적 이상주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니콜라이 온은 스트루베의 구조적 비판에 담긴 명확한 이론적 요지를 반박하기는커녕, 검열로 인해 상대방의 제대로 된 실질적 반론이 봉쇄된 지면에 의존하여 ‘부적절한 수사’만을 문제 삼는 본말전도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상대의 정당한 비판을 우회하려는 이론적 빈곤함의 논쟁 방식이자 전형적인 수사적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스트루베가 자본주의와 분리된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노동의 사회화를 이루겠다는 구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체제에 의존하는 관념적 구상이다. 니콜라이 온이 스스로 인정했듯, 1861년 이전의 생산 단위는 ‘가구’와 ‘마을 공동체’에 국한되어 낮은 생산성과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개요」, 106~107쪽), 이후 진행된 노동의 사회적 분업 심화는 이러한 고립성을 해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는 다름 아닌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이 파편화된 생산 단위의 한계를 파쇄하고 사회 전반에 걸친 노동의 실질적 사회화를 이끌어냈음을 입증했다. 이처럼 자본주의로 촉발된 노동의 사회화의 객관적 역동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에 부재한 마을 공동체에 기대어 역행적 구상을 모색하는 것은 니콜라이 온 자신의 이론적 전제와 부합하지 않는 논리적 모순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미 노동을 사회화해온 자본주의가 아닌, 그 해체를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비로소 사회 전반적인 노동 사회화를 성립하게 했던 마을 공동체에 노동 사회화의 근거를 두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인 반동적 공상에 불과하다. 이는 스트루베의 핵심적 논지이자 체계적인 논리 전개의 결론이다. 이에 대한 찬반을 차치하고, 그의 철저한 비판이 객관적 분석과 명확한 전제로부터 도출된 논리적 필연성임을 감안한다면, 이를 단지 ‘수사적 비난’이나 ‘주관적 비난’으로 치부하는 니콜라이 온의 태도는 타당한 반론이 될 수 없다.
스트루베가 자본주의적 전개로 촉발된 노동의 사회화와 “공개적 계급 투쟁의 국면을 전망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개진했음에도, 니콜라이 온은 상대를 농민 토지 수탈의 대변자로 왜곡하며 논쟁을 종결하는 비약적 태도를 취한다. 더욱이 검열로 인해 스트루베가 공개적 계급 투쟁에 기반한 세력의 실체를 합법적 출판물에서 상술할 수 없다는 구조적 제약을 포착하면서도 이러한 왜곡을 가한 것은, 니콜라이 온의 논쟁 방식이 객관적 이론 검증을 이탈한 전적으로 ‘부적절한’ 수사적 회피였음을 명증한다.
부록 3
자유주의자와 급진주의 논객들이 유포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는 검열이라는 제도적 제약 속에서 심각하게 왜곡되고 자의적으로 축소된 형태에 불과하다. 이들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추어 변증법적 소유 이행론이라는 표피적 측면만을 마르크스주의의 전부인 양 다루면서, 모든 형태의 착취와 적대를 폭로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자각을 촉진하려는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적 방법론의의 실질적 핵심과 계급 투쟁의 원리를 완전히 도외시하였다!
절대주의 체제의 검열로 왜곡·파편화된 극히 일부의 단편만을 근거로 마르크스주의 전체의 이론적 한계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의 비판은, 자신들의 무지와 이론적 태만을 자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론의 본질적 특성을 생략한 채 자의적으로 축소된 왜곡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는, 검열이라는 구조적 한계와 비판 대상의 실질적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소부르주아적 논객들의 분석적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계급 투쟁과 자본주의 사회에 필연적으로 내재된 적대, 그리고 그 적대의 심화 과정을 포착하지 못하는 이례적인 현상은 러시아의 특수한 지적 지형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혁명적 역할에 대한 자각조차 결여한 채, ‘화폐 경제’나 그 ‘필연성’과 같은 범주를 담아낸 순전한 부르주아적 기획을 내놓으면서도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로 규정하는 행태는, 미하일롭스키 식의 비논리적·관념적 사고 방식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는 자의적 왜곡에 불과하다.
마르크스 이론의 총체적 가치는 그것이 지닌 “본질적인 비판성과 혁명성”에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은 이론 자체에 유기적으로 내재되어 있는데, 이는 현대 사회의 모든 적대와 착취 형태를 폭로하고 그 역사적 변증법을 규명하여 그 일시적인 성격과 다른 형태로의 변화의 불가피성을 제시하는 한편, 모든 착취의 신속한 종식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임무를 직접적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이 지닌 거부할 수 없는 타당성은 엄밀한 과학성과 혁명성이 우연이 아닌 본질적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즉 체계 정립자 개인의 과학자적 자질과 혁명가적 자질의 유기적 결합은, 사회과학의 본래 목적이 현실의 경제 투쟁 속에서 억압받는 계급을 실천적으로 지원하고 해방하는 데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명제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과학의 직접적인 임무는 진정한 투쟁의 구호를 제시하는 것, 즉 당면한 투쟁을 명확한 생산관계 체제의 객관적 산물로 파악하고 그 불가피성과 내용, 발전 경로 및 조건들을 규명하는 데 있다.
그러나 세분화된 모든 투쟁 형태를 세밀히 분석하고, 매 단계의 이행 과정을 추적하며, 특정 국면의 일반적 속성과 모든 착취·억압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철폐라는 총체적 목표를 유지하지 않고서는 ‘투쟁의 구호’를 도출 하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적 과학은 현상에 대한 단순한 당위적 규범이나 관념적 비판에서 탈피하고, 현실의 경제적 적대와 계급 투쟁의 객관적 법칙성을 정밀하게 규명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실천적 해방 투쟁에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자유주의 및 급진주의 논객들이 왜곡한 자의적으로 구성된 마르크스주의와 마르크스의 본래 ‘비판적·혁명적’ 이론을 대조하면,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그 핵심적 정수를 사장시킨 인민주의자들의 이론적 왜곡이 극명히 드러난다. 스스로를 ‘노동 인민의 대변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의 필연적 구성 요소인 계급 투쟁과 혁명적 실천을 도려내어, 실천적 지침으로서의 동력을 상실한 ‘퇴행적 관념론’으로 이론을 격하시켰음은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요구와 인민주의 문헌을 비교하면, 인민주의가 보여주는 관념론적 한계와 비자본주의적 공상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인민주의 문헌은 노동 인민의 궁핍을 연구·서술하고 도덕적 설교를 늘어놓는 데 머물 뿐, 농노제를 착취와 계급 적대, 특정한 법적·정치적 구조를 낳은 명확한 경제 구조로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한 지주의 학대와 불의로 치부하였다. 마찬가지로 농민 개혁을 계급 간의 충돌이 아닌 정부 당국의 정책적 실수나 ‘잘못된 경로’의 선택으로 다루었으며, 개혁 이후의 러시아 역시 적대적 생산관계의 전개 과정이 아닌 규범적 발전에서의 탈선으로 서술하였다. 이처럼 현실의 객관적 경제 구조와 계급적 적대를 직시하지 못한 채 궁핍에 대한 관념적 탄식 (한탄)에 빠져드는 태도는, 현상에 대한 단순한 비판을 탈피하고 생산관계의 법칙성과 계급 투쟁의 불가피성을 규명하려는 마르크스주의의 요구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소부르주아적 유토피아주의의 한계를 보여준다.
공상적 인민주의의 이론적 유효성이 해체되는 조건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현대 사회의 적대적 생산관계와 계급 투쟁을 규명하는 유일한 혁명 이론으로 정립된다. 따라서 사회주의 운동이 실천적·이론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비자본주의적 발전 경로에 대한 공상을 극복하고,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혁명적 원리를 러시아의 구체적 현실에 철저히 적용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현실의 객관적 발전 법칙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역동성에 기반한 신속하고 선명한 실천만이 혁명 과업의 완수를 담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인민의 벗들’ 지식인층을 향해 인민에게 계몽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실질적 산업을 창출하라고 촉구하는 행태는, 당대 지적 지형의 빈곤함과 왜곡을 여실히 입증한다. 이러한 경향성을 선명히 파악하기 위해 나로도불치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나로도프랍치 (Narodopravtsi)’의 주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민의권리당 (Narodnoye Pravo party)이 1894년 간행한 소책자 『시급한 쟁점』에 나타난 관점은, 객관적 생산관계의 법칙성을 외면한 채 지식인의 주관적 열의와 시혜적 역할에 의존하려는 인민주의적 관념론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민주의자들은 “정치적 자유의 확대 상황에서도 노동 인민의 독립적 경제 기반을 보장하는 기존 경제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거나, 정치 개혁이 아닌 체계적인 계획 경제 개혁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나로도프랍치는 이러한 관념적 논리를 반박한 후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논지를 이어간다.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의 옹호자가 아니며, 그들의 이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집단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지방 감독관 (Zemsky Nachalnik)의 통제 아래 부르주아지의 침범으로부터 ‘계획적인 경제 개혁’을 보호받는 길과, 인민의 조직적 권익 방어가 보장되는 부르주아 정치 정당 기반의 경제 개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인민에게는 후자가 명백히 부합하다. 현재 인민에게서 독자적 경제 구조를 박탈하는 것은 ‘정치 개혁’이 아니라, 인민의 노동에 대한 철저한 착취로 관철되는 부르주아 정책 그 자체이다. 당대 체제에는 기본적인 정치적 자유는커녕 입헌국의 농경민과 자본가조차 상정하지 않는 신분적 특권 (social-estate)의 보호만이 존재하며, ‘부르주아 의회 제도’나 독자적 사회 영역은 전무하다. 대신 자신들의 산업적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주의 장벽 구축을 요구하는 나이데노프 (Naidenov), 모로조프 (Morozov), 카지 (Kazi), 비엘로프 (Byelov) 등 대자본가 집단과, 토지 1데샤티나당 100루블에 달하는 무이자 대출을 요구하는 ‘특권 귀족’의 대표들이 국가 기구에 초대되어 경제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인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지방 감독관이나 농업 근로대 기획 역시 관료주의적 절대주의 체제가 추구하는 수탈 정책을 공식화한 것에 불과하다. 나아가 인민에게 분여지를 부여한 유일한 이유가 세금 납부와 부역 강제에 있음을 공공연히 표명한 볼로그다 주지사의 회람문은, 전제 군주정 및 관료주의적 절대주의 체제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수탈 정책의 실체를 보여준다.”
인민의권리당 (나로도프랍치)이 상정한 ‘인민’과 ‘사회’의 개념이 지닌 관념적 모순에도, 이들의 출범은 ‘조국을 위한 독자적 경로’라는 관념적 공상을 완전히 탈피하고 구체적인 혁명적 요소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는 민주주의 정당을 건설하려는 뚜렷한 모색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가 모색 단계에 머무르는 까닭은 핵심 논지를 일관되게 관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전히 사회주의 세력과의 무차별적 결합을 도모하는 한편,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급진화가 지식인층과의 단절을 초래한다는 오류에 빠져 노동 계급 운동의 무력함을 선언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노동 계급 운동은 계급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자본과의 경제 투쟁, 그리고 이와 불가분하게 결합된 정치 투쟁에 기반할 때 비로소 강력한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이념적 기원이 다른 정당 간의 진정한 동맹은 상이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각 조직의 독자성이 전제될 때 비로소 성립하다는 사실 또한 외면되었다. 나로도프랍치는 스스로를 ‘사회-혁명당’으로 규정하면서도 (1894년 2월 19일자 「인민의권리당 선언문」), 실제로는 ‘실질적’ 사회주의적 의제를 회피한 채 정치 개혁의 틀 내에 자족하였으며, 이들이 주창한 사회주의는 입헌주의의 재판에 불과했다. 다만 인민주의적 한계를 지닌 나로도불치에서 출발했음을 고려할 때, 정치 강령에 근거하여 사회주의와 구분되는 독자적 정치 투쟁의 영역을 설정하여 일보 전진을 이룬 점은 인정되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나로도프랍치가 현존 경제 체제에 대립하고 민주주의적 이해관계에 결합된 사회 세력과 실질적 유대를 강화하며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관료 체제에 대한 무비판적인 신뢰로 인해 정치 투쟁의 당위성을 도출하지 못하는 ‘인민의 벗들’의 인민주의는 논리적·실천적 한계를 지닌다. 이들의 주장은 사회주의적 지향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노동 인민이 직면한 억압의 근본 원인과 현존하는 계급 투쟁의 객관적 성격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유토피아적·주관주의적 타협주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점을 지닌 인민주의적 관념론은 정치적 급진주의자들과 과학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적·실천적 비판에 직면하여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