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1
이 추가 도표는 본문에서 언급한 24곳 농가의 예산에 관한 데이터를 담고 있다.
오스트로고즈스크 군의 전형적인 농가 24곳의 구성과 예산—요약
표에 대한 설명
1. 첫 번째 21개의 세로줄은 『통계 초록』에서 통째로 가져왔다. 22번 세로줄은 호밀, 밀, 귀리와 보리, 기장과 메밀, 기타 곡물, 감자, 채소, 건초(8개의 세로줄)에 관한 『통계 초록』의 세로줄들을 합한 것이다. 왕겨와 짚을 제외한 곡물(23번 세로줄)로 벌어들인 수입이 어떻게 산출됐는지는 본문에서 설명한 바 있다. 24번 세로줄은 말, 소, 양, 돼지, 가금류, 가죽과 양털, 등, 지방과 고기, 유제품, 버터(9개의 세로줄)에 관한 『통계 초록』의 세로줄들을 합한 것이다. 25~29번 세로줄은 『통계 초록』에서 통째로 가져왔다. 30~34번 세로줄은 호밀, 밀, 기장과 메밀, 감자, 채소, 소금, 버터, 지방과 고기, 생선, 유제품, 보드카와 차(12개의 세로줄)에 지출된 비용에 관한 『통계 초록』의 세로줄들을 합한 것이다. 35번 세로줄은 비누, 등유, 양초, 옷, 식기(4개의 세로줄)에 지출된 비용을 제시한 『통계 초록』의 세로줄들을 합한 것이다.
2. 8번 세로줄은 임차 토지와 분여지에서 경지의 규모(『통계 초록』에는 여기에 관한 세로줄이 따로 있다)를 데샤티나로 합산해 얻은 것이다.
3. '수입원'과 '지출의 분포'에 관한 세로줄에서 맨 아래 줄들의 수치는 수입과 지출의 금전적인 부분을 가리킨다. 25번에서 28번 세로줄, 그리고 37번에서 42번 세로줄에서는 소득(혹은 지출)이 완전히 화폐로 환산돼 있다. 금전적인 부분은 총소득에서 가구별로 소비한 금액을 제하는 방식으로 산출되었다(필자는 그것을 별도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도표 참조>
부록 2
스트루베 선생은 '계급투쟁과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러시아의 정치경제학자들에게 완전히 낮선 것이다'라는 논지를 니콜라이-온에 대한 비판의 기초로 삼고 있는데, 이는 아주 올바른 것이었다. 나는 크리벤코 선생처럼 한 편의 글 (4단짜리)을 스트루베 선생의 사고 체계 판단의 토대로 삼을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가 내놓은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건 아니며 따라서 그의 글 전체가 아닌 일부의 진술들만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밝혀두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부분은 어쨌든 아주 정확한 판단이었다. 니콜라이-온 선생의 근본적인 오류는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한 계급투쟁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런 하나의 오류를 수정하는 건 그의 이론적 명제와 연구들로부터도 반드시 사회민주주의적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계급 투쟁을 간과한다는 건 실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엄청난 오해를 드러내는 것이며, 아주 열심히 마르크스주의의 엄격한 신봉자 행세를 해왔다는 점에서 니콜라이-온 선생은 더욱더 비난받아 마땅하다. 마르크스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는 사람이 어떻게 계급투쟁의 원칙이 그의 사고 체계 전체의 중심축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니콜라이-온 선생이 러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부분만을 예외로 한 채 마르크스의 이론을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엔 우선 마르크스의 이론이 이 나라의 체제를 설명해준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론을 수정해, 적대적 관계와 계급투쟁이 내재돼 있지 않은 별개의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생각해내야 했을 테니가 마르크스 이론과 자본주의는 입에 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마르크스주의의 A만 받아들이고 B는 거부하려면, 명확한 단서와 함께 그 이유를 설명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니콜라이-온은 그런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투쟁을 무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사실로 인해 이 사회의 사회적·정치적 삶의 모든 실제 내용들을 무시하는 것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 할 때 실현되기 힘든 소망들의 영역에서 불가피하게 맴도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스트루베 선생이 계급투쟁을 이해하지 못한 니콜라이-온 선생을 가리켜 공상주의자라고 결론내린 건 지극히 옳았다. 또한 '사회'와 '국가', 즉 부르주아 관념론자들과 정치인들에게 호소한다는 건 사회주의자들에게 혼란만 안겨주어 그들로 하여금 프롤레타리아트의 최대 적들을 자신들의 동맹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해방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강화하고 명확히 하고 조직화하도록 돕기보다는 오로지 방해만 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계급투쟁을 이해하지 못했던 니콜라이-온 선생은 반동적이기도 했다.
스트루베의 글을 언급했으므로, 《루스코에 보가츠트보》 6호에 실린 니콜라이-온 선생의 답변을 다루지 않을 수 없겠다.¹³⁹
니콜라이-온은 공장 노동자가 인구보다 느리게 증가하고 있다는 자료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 그 '역사적 임무'의 달성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자본주의는 자신의 발전을 스스로 억제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이 바로 '서구 유럽이 따랐고 또 여전히 따르고 있는 것과는 구별되는 조국의 발전 경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천 배 더 올바른 이유다."(러시아가 바로 그러한 자본주의 경로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인물이 이런 글을 썼다니! 그리고 니콜라이-온 선생에 따르면, 그 "역사적 임무"가 달성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마을공동체에 적대적인 경제 동향(즉 자본주의)이 그 통합의 의미가 아주 특징적인 서구 유럽이나 특별한 영향력을 지니며 나타나기 시작한 북아메리카와는 달리 조금도 드러나지 않은 채, 그 존재의 기반 자체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여기서의 그의 주장은 저 유명한 V. V. 선생이 고안해낸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반론의 아주 표준적인 형태다. 그것은 '인민의 삶에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문제를 국가적인 사안으로 인식했던 정부 관리의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즉 그 '임무'를 달성하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치'라는 것이다! 이런 영리한 주장이 지닌 다른 모든 미덕들은 제쳐놓고서라도, V. Y. 선생은 자본주의의 바로 그 '임무'를 어처구니 없고 말도 안 되는 거짓되고 편협한 방식으로 이해했고, 니콜라이-온 선생은 분명 지금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이들 신사양반들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자신들의 이해의 편협함을, 합법적인 언로가 봉쇄되어 있어 죽은 사람처럼 중상모략에 시달리고만 있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탓으로 돌리는 무례를 범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지켜본 바와 같이, 자본주의의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역할은 노동을 사회화하면서 동시에 바로 그 과정이라는 기제를 통해 "노동계급을 규율하고 단결시키고 조직화해냈다"는 사실에 있다. 즉 자본주의의 작동은 투쟁을 위해 그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의 "반란"을 조직화해냈으며, 그들을 단결시켜 "빼앗은 자들로부터 빼앗긴 것을 되찾아오고" 정치권력을 쟁취하며 "소수의 강탈자들"로부터 생산수단을 빼내와 사회에 되돌려주는 걸 가능케 했다.(『자본』, 650쪽)¹⁴⁰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공식화한 방식은 바로 이랬다.
물론 여기서 '공장 노동자들의 숫자'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만을 이야기했고, 그런 기준들은 '공장 노동자들의 숫자'와는 아무런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없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를 예외적으로 해석한 자들은 이를 잘못 해석해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의 사회화가 공장 노동자들이 한 지붕 아래 일하는 걸 가리키고, 따라서 자본주의의 진보적인 역할도 그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는…… 즉 공장 노동자들의 수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만약 공장 노동자들의 수가 증가한다면 자본주의는 자신의 진보적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고, 감소한다면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잘못 완수하고"(니콜라이-온의 글 가운데 103쪽) 있는 것이며, 그래서 '지식인계급'이 '조국을 위한 다른 발전 경로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지식인계급은 그렇게 '다른 경로'를 추구하는 작업에 나섰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그걸 찾아 헤매며, 자본주의는 실업과 위기로 이어질 뿐이기에 '잘못된' 발전 노선이라는 걸 입증하려¹⁴¹ 전력을 다해왔다. 그들은 우리가 1880년에 위기를 맞이했고, 1893년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으며, 이제 우리에게 만사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이상 그 경로를 벗어날 시기가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부르주아 계급은 우화에 나오는 고양이처럼 "들은 체 만 체 계속 먹기만 한다."¹⁴² 물론 만사가 '잘못' 돌아가면 더 이상 엄청난 이윤을 거둘 수가 없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의 노래를 똑같이 따라 부르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 자본에 힘입어 새로운 철도 건설에 정력적으로 매달린다. 반면 '우리'에게 만사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이유는, 예전의 위치에 있을 때 '우리'가 이미 인민들을 감쪽같이 골라넣고 이제 상인자본만큼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할 산업자본의 영역으로 진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백 퍼센트의 이윤을 생산해낼 '본원적 축적'이 여전히 가능하고 농민들 가운데 부르주아로의 분화가 여전히 완전히 진행되지 않은 유럽 러시아의 동부와 북부 국경 지대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지식인계급은 이 모두를 감지하고 '우리'가 다시 추락으로 향하고 있다며 끊임없이 협박한다. 그리고 새로운 추락이 실제로 우리를 덮친다. 무수히 많은 소자본가들이 대자본가들에 의해 짓밟히고, 무수히 많은 농민들이 점점 부르주아 계급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있는 농업 바깥으로 내몰리고 있다. 빈곤과 실업, 굶주림의 바다는 엄청나게 커져가고, 똑똑한 양심을 지닌 '지식인계급'은 자신들의 예언을 들먹이며 해외 시장의 부재를 우리의 자본주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로 들이대면서 끊임없이 잘못된 경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부르주아 계급은 "들은 체 만 체 계속 먹기만 한다." '지식인계급'이 새로운 경로를 찾아나서는 동안,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식민지로 이어지는 철도 건설을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들을 벌이고, 그곳에서 그들은 스스로 시장을 창출해 부르주아 체제의 매력을 신생국들에게 소개하는 한편 이례적인 속도로 산업과 농업 부르주아 계급을 형성해내며, 생산자 대중들을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리는 실업자 대열로 내동댕이친다.
정말로 사회주의자들은 잘못된 경로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고 공장 노동자들의 수가 느리게 증가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애쓰는 데 스스로를 계속 가둬놓을 것인가?
이런 유치한 생각¹⁴³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나는 니콜라이-온 선생이 자신이 비판한 스트루베 선생의 글 가운데 일부 단락을 몹시 부정확하게 인용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글을 그대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필자(즉 니콜라이-온 선생)가 인구의 직업 구성에 있어서 러시아와 미국의 차이를 지적할 때——러시아의 경우 유급으로 고용된 인구 전체의 80퍼센트가 농업에 관계된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미국에서는 그 비율이 44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는 러시아의 자본주의 발전이 80퍼센트와 44퍼센트 사이의 차이를 제거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임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여기서 "임무"라는 단어는 아주 부적절하다. 그러나 스트루베 선생의 생각은 명확하다. 즉 러시아의 자본주의 발전(그 발전이 실제로 자본주의적이라는 점은 니콜라이-온 자신도 인정한다)이 농촌 인구를 감소시키겠지만 사실상 그것이 자본주의의 일반법칙이라는 사실을 니콜라이-온 선생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異論)에 반박하려면 니콜라이-온 선생은 (1)자신이 자본주의의 그런 경향을 간과하지 않았다거나, (2)자본주의가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대신에 니콜라이-온 선생은 이 나라 공장 노동자의 수(그의 추산에 따르면 인구의 1퍼센트)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런데 스트루베 선생이 언제 공장 노동자들 이야기를 했었나? 그럼 러시아 인구의 20퍼센트와 미국 인구의 56퍼센트가 공장 노동자들을 대표한단 말인가? '공장 노동자'란 단어와 '농업에 관계되지 않은 인구'란 단어가 동일한 의미인가? 농업과 관련된 인구 비율이 러시아에서도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내가 이를 지적하는 이유는 크리벤코 선생이 이미 해당 잡지에서 그 단락을 왜곡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걸 바로잡는 게 더더욱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우리의 자본주의가 그 임무를 잘못 완수하고 있다'는 니콜라이-온 선생의 생각 자체로 이야기를 옮겨가보도록 하자.
첫째, 「개요」¹⁴⁴의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공장 노동자들의 수를 자본주의 생산에 관계된 노동자들의 수와 동일시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는 대규모 기계 공업을 자본주의의 첫 출발로 삼은 러시아 소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잘못을 되풀이하는(그리고 심지어 심화시키는) 셈이다. 상인들로부터 통상적인 임금을 받으면서 그들의 재료를 가지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수백만 명의 러시아 수공업자들은 자본주의 생산에 관계된 사람들이 아니란 말인가? 고정적인 농장 노동자들과 농업 분야의 일용직 노동자들도 자신의 고용주로부터 임금을 받고 잉여가치를 그들에게 넘겨주고 있지 않은가? 건축 산업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착취의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그리고 기타 등등.¹⁴⁵
둘째로, 공장 노동자들의 숫자(140만 명)를 전체 인구와 비교하고, 그 비율을 백분율로 표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건 신체 건강한 인구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거나, 물질적 가치의 생산에 관계된 사람들을 '자유로운 전문직' 종사자들과 비교하는 등과 같이 그저 비교할 수 없는 대상들을 비교하는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공장 노동자들은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일정 숫자의 가족 구성원들을 각각 부양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고용주들과 상인 무리들은 제외하더라도——수많은 군인과 공무원, 그리고 그와 유사한 상류층들을 부양하고 있음에도, 어떻게 당신들은 그 잡탕들을 공장 노동자와 대비시켜 농촌 인구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러시아에는 어업 같은 산업들이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산업들을 공장 산업과 대비시켜 농업과 결부시키는 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 만약 당신들이 러시아 인구의 직업 구성을 알고자 한다면, 맨 먼저 물질적 가치의 생산에 관계된 인구(결과적으로 비노동 인구와 군인, 공무원, 성직자 등을 제외한 인구)를 특수한 집단으로 분류해낸 다음, 그들을 국가 차원 노동의 다양한 분야별로 나누려는 시도를 했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것을 하기 위한 데이터를 손에 넣을 수 없다면, 인구의 1퍼센트(??!!)가 공장 산업에 관계돼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기보다는 그런 식의 계산¹⁴⁶ 자체를 자제했어야 한다.
셋째로——그리고 이것이 자본주의의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역할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가장 주되게, 그리고 터무니없이 왜곡한 대목이다——, 자본주의의 '통합의 의미'가 오직 공장 노동자들을 결속시켰다는 측면에서만 드러난다는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조국 연보》에 실린 노동의 사회화에 관한 글들에서 그런 마르크스주의적 사고를 빌려온 건가?
당신들도 한 지붕 아래서 일하는 것과 그걸 동일시하는 건가?
그렇지 않다. 이 점에 대해 니콜라이-온 선생을 비난할 수는 없을 듯한데, 왜냐하면 그가 《루스코에 보가츠트보》6호에 기고한 자신의 글 2쪽에서 자본에 의한 노동의 사회화의 두 가지 특징, (1)사회 전체를 위해 일한다는 것과 (2)공동노동의 산물을 획득하기 위한 개별 노동자들의 결합이라는 측면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임무'를 공장 노동자의 수에 따라 판단하는 이유는 뭔가? 전체적으로 그 '임무'가 자본주의의 발전과 노동의 사회화, 프롤레타리아의 전반적인 형성과 그 중에서도 공장 노동자들의 선봉적인 역할에 의해 완수되는 시점에 이르러서 말이다. 물론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운동이 노동자들의 수와 그 집중, 발전 정도 등에 달려 있다는 건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자본주의의 '통합의 의미'를 공장 노동자들의 수와 동일시할 권리를 우리에게 부여하는 건 전혀 아니다. 그런 행동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좁히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그럼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주택 문제에 대하여Zur Wohnungsfrage』란 소책자에서 독일의 산업을 언급하며, 땅조각이나 뒷발을 소유한 임금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이 존재하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그는 서구 유럽만을 거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뒷발이나 …… 농업과 함께 이루어지는 시골의 가내공업은 독일의 신흥 대규모 공업의 광범위한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내 공업은 독일 소농들의 고통이 가중됨에 따라 (러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점점 늘어나고 있으나, 공업과 농업의 '결합'은 가내생산자인 수공업자의 '안녕'이 아니라 정반대로 한층 더한 '억압'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묶여 있는 그들은 어떤 가격이라도 마지못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가내 대량 생산 체제가 폭넓게 발달한 러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잉여가치뿐만 아니라 임금의 상당 부분까지도 자본주의자들에게 고스란히 내주어야 한다. "그것은 문제의 한 측면인 동시에 반대의 측면도 지니고 있다. …… 가내공업이 확대됨에 따라 소농 지역은 오늘날의 산업 지형으로 차례차례 골라들어가고 있다. 독일의 산업혁명이 영국과 프랑스보다 훨씬 더 넓은 영토에 걸쳐 확산된 건 바로 가내공업에 의한 시골 지역의 이러한 변혁 때문이다. …… 이는 영국과 프랑스와는 대조적으로 독일에서 혁명적 노동계급 운동이 도시 중심지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지역에 걸쳐 엄청나게 확산된 이유와, 결과적으로 그 운동이 차분하면서도 조금씩 억누를 수 없는 전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독일의 수도와 다른 대도시들에서 봉기가 성공하려면 대다수 소도시들과 시골 지역 상당수에서 혁명적 변화의 기운이 무르익었을 때에만 가능할 거라는 점은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¹⁴⁷
보다시피, "자본주의의 통합의 의미"와 더불어 노동계급 운동의 성공 역시 공장 노동자들의 숫자뿐만 아니라…… 수공업자들의 숫자에도 의존하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러시아 수공업의 절대 다수가 순수하게 자본주의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우리 예외론자들은 일종의 "인민" 산업으로서의 그것을 자본주의와 대비시키고, 공장 노동자들의 숫자를 통해 '자본주의의 직접적인 처분에 맡겨진 인구의 비율'을 판단하고 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공장 노동자들에게 모든 관심을 기울이기를 원하나, 전체 1억 인민들 중 백만 명에 불과하고 사회의 작은 한 귀통이만 차지할 뿐인 그들에게 전념하는 것은 부동산이나 자선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국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던 크리벤코 선생의 주장(《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2호)을 떠올리게 한다. 공장과 제조소들이 부동산이나 자선기관처럼 사회의 작은 한 귀통이에 불과하다니, 당신은 정말 대단한 천재인 것 같소, 크리벤코 선생!! 정녕 부동산 기관들이 사회 전체를 위한 재화를 생산한다고? 그럼 부동산 기관들에서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틀림없이 노동인민의 착취와 강탈이 해명되겠군요. 노동계급 해방의 첫 발을 들어올릴 선진적인 프롤레타리아의 대표들도 분명 그곳에서 찾아야 할 테고 말이오.
이류 부르주아 철학자들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니콜라이-온 선생의 글에서 그런 식의 주장을 읽어야 한다는 건 유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393쪽에서 잉글랜드의 인구 구성에 대한 수치들을 인용하고 있다. 1861년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인구는 총 2천만 명이었는데, 이 중 160만 5,440명은 주요 공장 산업 부문에 종사하고 있었다.¹⁴⁸ 뿐만 아니라 하인 계급 구성원들은 120만 8,648명으로, 2판 각주에서 마르크스는 이 계급의 아주 급속한 성장을 거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자본주의의 통합의 의미'를 판단하기 위해 160만 명을 2천만 명으로 나눈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영국에 존재한다고 상상해보라!! 결과는 12분의 1에 못 미치는 8퍼센트일 것이다!! 과연 인구의 12분의 1조차 통합시키지 못하고, 더군다나 '우리' 영국인들이 '잘못된 경로'를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가차원 노동'의 순손실을 상징하는 '가사 노예' 계급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본주의의 '임무'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말인가! 그럼 이 경우에도 우리가 '조국을 위한 다른' 비자본주의적 '발전 경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게 확실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니콜라이-온 선생의 주장에는 또 다른 핵심이 존재한다. 그가 이 나라의 자본주의는 '서구 유럽에서 아주 특징적이며, 북아메리카에서 특별한 영향력을 갖고 나타나기 시작한' 통합적 역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때는, 분명 노동 계급 운동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 나라에서는 자본주의가 노동계급 운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경로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주장은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기대하던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이미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작업을 진행했소,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이렇게 꾸짖었다. 어느 마르크스주의자가 미하일롭스키에게 그가 빈곤에서 오직 빈곤밖에는 보지 못한다고 비판했을 때, 그의 대답은 이랬다. "이 언급은 늘 그렇듯 마르크스의 말에서 통째로 가져온 것이오. 그러나 우리가 『철학의 빈곤』에 나오는 그 단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우리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고 우리가 겪는 빈곤은 말 그대로 빈곤에 불과하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오." 하지만 실제로 『철학의 빈곤』에서는 미하일롭스키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건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서 마르크스는 빈곤에서 과거 사회를 전복할 혁명적이고 파괴적인 측면은 보지 못한 채 그저 빈곤 자체만을 바라봤던 고루한 공산주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¹⁴⁹ 분명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그것이 우리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근거로서 노동계급 운동이 '발현할 징후'가 전혀 없다는 걸 들고 있다. 이런 주장과 관련해, 우선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이미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작업을 진행했다는 식의 사고는 현실을 아주 피상적으로만 들여다봤을 때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강령이 작성된 건 1848년 이전의 일이었다. 그럼 당시 독일에 노동계급 운동¹⁵⁰이 존재하고 있었던가? 그때는 정치적 자유조차 없었고,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은 비밀 서클에만 한정돼 있었다(오늘날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혁명적이고 통합적인 역할을 모두에게 아주 분명히 각인시켰던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이 시작되고,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이 명확한 모양새를 갖추고, 대규모 공업이 보다 널리 확산되는 한편, 노동계급 내에서 사회주의 이론을 전파할 재능 있고 원기왕성한 많은 이들이 등장한 건 그보다 20년 후의 일이었다. 역사적 사실들을 잘못 전달하고, 노동계급 운동에 의식과 조직화를 제공한 사회주의자들의 방대한 활동을 망각한 데 더해 우리의 철학자들은 가장 분별없는 숙명론적 관점을 마르크스에게 억지로 떠안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마르크스의 견해에서 볼 때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사회화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고, 따라서 만약 우리가 자본주의는 목격하면서도 노동계급 운동은 보지 못한다면 그건 자본주의가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노동자들 내에서 조직화와 선전을 여전히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우리에게 확인한다. 우리네 예외론적 철학자들의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술수는 반박할 가치조차 없고, 만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모든 활동과 마르크스주의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행하는 모든 공개 연설로 그 잘못이 입증된다. 사회민주주의는 ——카우츠키가 아주 타당하게 지적했듯이——노동계급 운동과 사회주의의 융합이다. 자본주의의 진보적 과업이 이 나라에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최대한 정력을 다해 활동에 나서야만 한다. 그들은 러시아의 역사와 현재 위치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을 보다 더 세밀하게 이해하고, 러시아에서 특히나 복잡하게 감춰진 모든 형태의 계급투쟁과 착취를 더욱 구체적으로 연구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그 이론을 대중화하고 노동자에게 알려나가야 할 것이며, 사회민주주의 사상을 전파하고 노동자들을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결합시키기 위해 그들이 그 이론을 흡수하고 우리 조건에 가장 적합한 조직화 형식을 강구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사상가로서의 이러한 역할을 이미 완수하고 이행했다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그 역할에는 끝이 없다), 자신들은 단지 막 시작한 것에 불과할 뿐 지속적인 무언가를 창조해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언제나 강조해왔다.
또한 마르크스 이론에 관한 불충분하고 터무니없이 편협한 개념 외에도 이 나라 자본주의에 진보적인 역할이 부족하다는 통상적인 반대 의견은 "인민의 시스템"이라는 가공의 어리석은 사고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악명 높은 '마을공동체'의 '농민들'이 빈민과 부자, 프롤레타리아의 대표와 자본의 대표로 쪼개질 때, 그들은 그것이 초기 형태의 중세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시골의 정치-경제적 구조를 애써 외면했다. '조국을 위한 다른 경로'를 모색하면서 그들은 마치 농민의 순수한 부르주아적 분화가 '평등한 마을공동체' 내에서 한창 진행 중에 있지 않은 듯이 농민 토지소유권의 형식상 변화에 대해 떠들어대지만, 정작 그것을 경제 조직의 형태와 혼동하는 용납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이 자본주의가 발전해 좁은 형태의 중세 마을 자본주의를 탈피하고 토지의 봉건적 힘을 박살내는 동시에, 오랫동안 발가벗겨지고 굶주려왔던 농민으로 하여금 기세등등한 부농들이 공평하게 나눠 가질 수 있도록 토지를 공동체에 넘겨주고 고향을 떠나 한동안 일자리도 없이 러시아 전역을 떠돌아다니다 오늘은 지주, 내일은 철도업자, 또 그 다음 날은 도시의 인부나 부유한 농민의 농장 노동자로 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시기에 말이다. 오늘날 주인을 바꿔가며 러시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그 '농민'은 어디를 가든 자신이 가장 추잡스럽게 약탈당하고 있으며 다른 빈민들도 똑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자신을 강탈하는 게 반드시 '주인'만이 아니라 노동력을 돈주고 살 수 있는 '자신의 농민 형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정부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가장 초보적인 권리라도 지키려는 시도에서 벌인 그들의 폭동을 빈번이 진압하는 방식으로 언제나 그의 주인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며, 일은 갈수록 점점 힘들어지고 부와 사치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반면 러시아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은 꾸준히 악화되고 강탈은 더욱 심해지며 실업이 일상화되어가는 현실을 목격한다. 바로 이런 시기에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자들은 조국을 위한 다른 경로를 모색하고, 바로 이런 시기에 그들은 공장 노동자들의 수가 얼마나 천천히 증가하는가를 들여다보며 자본주의의 진보적인 역할을 인정할지 말아야 할지, 우리의 자본주의를 거부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것이 '역사적 임무를 아주아주 잘못 완수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경로를 견고 있다고 판단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와 같은 심오한 문제를 숙고하는 데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으나, 참으로 고귀하고도 자비로운 일 아닌가?
그리고 노동인민의 자본주의적 착취가 러시아 방방곡곡에 존재하는 시점에서 조국을 위한 다른 경로를 모색하는 것은 곧 현실에서 도피해 유토피아의 영역으로 접어드는 걸 의미한다고 말하는 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또 얼마나 편협하고 교조적이며 사악하단 말인가. 그들은 임무를 잘못 완수하고 있는 건 우리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차츰 희미해지는 러시아 사회의 적대적 계급들 간의 케케묵은 경제적 투쟁을 꿈꾸는 것이 곧 마닐로프주의¹⁵¹로 타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그 투쟁에 조직화와 암묵적 합의를 보태기 위해서는 사회민주주의적 활동에 착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거부하는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이들이었다.
끝으로, 우리는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같은 호(6호)에서 니콜라이-온 선생이 스트루베 선생에게 가한 또 다른 공격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는 "스트루베 선생의 논쟁 방식에서 드러나는 어떤 특이점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한 진지한 독일 잡지에 독일 대중들을 위한 글을 쓰고 있지만, 그가 동원한 방식들은 완전히 부적절해 보인다. 우리는 독일뿐 아니라 러시아 대중들 역시도 이미 '성숙기'에 도달해 그의 글에서 넘쳐나는 그 모든 '근심거리들'에 감탄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모든 칼럼에서 마주치게 되는 '유토피아'나 '반동적 구상' 같은 '끔찍한 단어들은 오늘날, 아아, 스트루베 선생이 분명 확신하는 효과를 낳지 못하고 있다."(128쪽)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니콜라이-온과 스트루베 선생 간의 이러한 논쟁에서 과연 "부적절한 방식들"이 동원되었는지, 그리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누구에 의해서였는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스트루베 선생은 한 진지한 글에서 "근심거리들"과 "끔찍한 단어들"로 대중들의 감탄을 자아내려 했다는 이유로 "부적절한 방식들"을 동원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보통 "근심거리들"과 "끔찍한 단어들"을 동원했다는 의미는, 상대방이 뚜렷하고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고 반드시 글쓴이의 견해와 일치한다고도 말할 수 없지만 단순히 누군가를 욕하고 나무라기 위한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심하게 반대하는 상황을 뜻한다.
물론 자신의 심한 반감을 "근심거리들"로 바꾸어 표현하는데는 그러한 특징이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슬로님스키(Slonimsky) 선생은 니콜라이-온 선생에게 심한 말을 퍼부었지만, 현 질서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한 평범한 자유주의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아주 뚜렷하고 명확하게 밝힌 바 있다. 그는 누구를 마음대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부적절한 방식들"로 인해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경험스러운 주장을 아주 명시적으로 내놓았던 인물이었다. 니콜라이-온 선생의 경우에도 슬로님스키 선생을 교화하고 가르치기 위한 차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옳다고 여겨져 온") 마르크스의 말들을 인용하며 그가 원하던 소규모 수공업과 소농민 토지소유권의 방어가 얼마나 반동적이고 공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에 관해 그에게 심한 말을 퍼냈고,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단순하다"는 따위의 비난을 가한 적이 있었다. 스트루베 선생의 글 못지않은 욕설들이(말줄로 강조돼 있다) "넘쳐나는" 니콜라이-온 선생의 글을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나 이 경우에 우리는 "부적절한 방식"을 거론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주장 하나하나가 다 이유를 가지고 있고, 설사 그것이 틀렸다 할지라도 글쓴이의 명확한 관점과 견해 체계에 따른 것이며, 만약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필시 상대방이 단순하고 편협하며 반동적인 이상주의자로 인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런 문제제기가 스트루베 선생의 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살펴보자. 니콜라이-온 선생을 필연적으로 반동적인 구상과 단순함으로 귀결되는 이상주의자라 비난하면서 그는 그 이유들을 아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로는 니콜라이-온 선생이 "생산의 사회화"를 염원하면서 "사회와 국가에 호소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는 "계급투쟁과 국가에 관한 마르크스의 교리가 러시아의 정치경제학자인 그에게는 완전히 생소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며, 국가는 "지배계급을 대표"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는 "만약 우리가 단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꼭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상의 경제 체제를 현실 자본주의와 대비시킨다면, 다시 말해 만약 우리가 자본주의 없는 생산의 사회화를 원한다면, 그것은 인식의 순진함을 보여주는 증거에 불과하고 역사와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자연경제의 제거, 그리고 농촌 인구의 감소와 더불어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러시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부장제 시대의 땅거미 사이로 현대 국가가 등장해 공개적인 계급투쟁의 밝은 빛으로 성큼 나아갈 것이고, 생산의 사회화를 위해서는 다른 힘과 요인들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글쎄, 이 정도면 뚜렷하고 정확한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니콜라이-온 선생의 사고에 관한 스트루베 선생의 구체적인 언급에 담긴 진실을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니콜라이-온 선생은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된 계급투쟁을 정말로 감안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사회와 국가를 이야기하고, 계급투쟁을 망각한 채 그걸 도외시하고 있다. 일례로 그는 국가가 마을공동체를 통해 노동을 사회화하는 대신에 자본주의를 지원했다고 말한다. 분명 그는 국가가 이래저래 행동할 수 있고 따라서 계급 위에 서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근심거리들"에 의지한다고 스트루베 선생을 비난하는 것은 그저 부당하다고 울부짖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명확하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계급국가라고 믿는 사람이 노동을 사회화하기 위해, 즉 지배계급들을 없애기 위해 국가에다 호소하는 사람을 순진하고 반동적인 이상주의자가 아니라고 간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란 게 확실하지 않은가? 더 나아가, 누군가 상대방을 "근심거리들"에 의존한다고 비난하면서도 그가 명확히 밝힌 견해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면, 더군다나 검열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의 견해가 실릴 수도 없는 잡지에다 대고 그 사람을 비난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가리켜 "완전히 부적절한 방식"이라고 평가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보자. 스트루베 선생의 두 번째 주장은 명확히 공식화되어 있는 대목이다. 자본주의와 동떨어진 마을공동체를 통한 노동의 사회화가 가상의 체제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니콜라이-온 선생 자신도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가 있었다. 즉 1861년 이전에는 생산 단위가 "가족"과 "마을공동체"로 구성돼 있었고(「개요」, 106~7쪽), 이 "작고 흩어진 자급자족형 생산은 상당한 수준으로까지는 발전할 수가 없어 아주 일상적인 그 본질과 낮은 생산성이 일반적이었으며", 뒤이은 변화는 "노동의 사회적 분업이 점점 더 깊어졌다"는 걸 의미했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자본주의가 예전의 좁은 생산 단위의 경계를 탈피해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을 사회화했다는 것을 뜻했다. 곧 니콜라이-온 선생 역시 자본주의에 의한 노동의 사회화를 인정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이미 노동을 사회화해온 자본주의가 아니라, 그 봉괴로 인해 최초로 사회 전반적인 노동의 사회화를 불러왔던 마을공동체에 노동의 사회화의 근거를 두고자 했던 그는 반동적인 몽상가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스트루베 선생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진실이나 거짓이냐의 문제로 인식할지 모르나, 니콜라이-온 선생에 관한 그의 신랄한 논평이 이런 견해로부터 출발해 논리적인 필연성을 따르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가리켜 "근심거리들"이라 말하는 것은 전혀 적절치 않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더구나 스트루베 선생이 자신은 노동의 사회화를 바라고, 그것이 자본주의를 통해 이루어지길 원하며, 따라서 "공개적인 계급투쟁의 밝은 빛"을 통해 가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세력들에 스스로 기반을 두기를 염원한다고 명확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농민들이 토지를 빼앗기기를 바란다고 탓하면서 논쟁을 마무리한 니콜라이-온 선생의 태도는 진실과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스트루베 선생이 검열 때문에 입에 재갈이 물린 상태라 공개적인 계급투쟁의 밝은 빛을 통해 앞으로 나선 세력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당 잡지에서 꺼낼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니콜라이-온 선생의 논쟁 방식이 전적으로 "부적절했다"는 사실은 거의 부정할 수 없다.
부록 3
내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거론한 건 마르크스주의자 자신들을 염두에 두고 한 이야기였다. 이와 관련해 이 나라 자유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이 합법적인 출판물에서 소상히 설명한 마르크스주의는 아주 터무니없이 편협하고 왜곡된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들의 설명은 참으로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 혁명적인 이론이 검열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¹⁵²에 맞게 마구 훼손된 물이라니! 우리의 평론가들은 참으로 속 편하게도 그런 활동을 수행해나간다! 그들의 설명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소유주의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사유재산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지와 그것이 정반대로 변화해 사회화되는지에 대한 원리로 사실상 축소되어 있다. 그리고 그 평론가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사회학적 방법론의 모든 구체적인 특성들은 무시한 채 그 전체적인 알맹이가 계급투쟁의 원리와 연구의 직접적인 목적, 즉 모든 형태의 적대와 착취를 폭로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하여금 그것들을 폐지하도록 돕는 등의 '계획'에 있다고 사뭇 진지한 태도로 추정한다. 그에 따라 그 결과가 너무나 하찮고 제한적이라 우리의 급진주의자들이 가련한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애도하는 데까지 이른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아무럼 그래야지! 만약 러시아의 절대주의와 반동 체제가 마르크스주의에 관해 완전하고 정확하고도 완성된 설명을 제시하고 거리낌 없이 그 반론을 내놓는 게 가능했다면, 애초부터 절대주의와 반동이라고 할 수도 없었겠지! 그리고 이 나라 자유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알았더라면(독일의 문헌들을 통해서라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은 검열당한 언론에서 그것을 왜곡한 사실을 부끄러워했을 테고 말이다. 어떤 한 이론을 상세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조용히 입을 다물든지, 아니면 그걸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가장 본질적인 특성들을 빼먹고 넘어간 데 대해 마음의 거리낌이라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중 극히 일부만을 해명하고 난 뒤 그 원리가 편협하다고 아우성치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실로 마르크스주의자로 간주되는 사람들이 계급투쟁도, 자본주의 사회에 필연적으로 내재된 적대도, 그 적대의 성장도 모르는 오로지 러시아에서만 가능한 그런 불합리한 상황은 그렇게밖에는 설명될 수가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역할이라는 개념도 없고, 심지어 '화폐 경제'나 그 '필연성' 같은 표현들을 담고 있는 한 순전히 부르주아의 기획일 수밖에 없는 것들을 내놓는 그들이 확실히 마르크스주의자로 간주되려면 미하일롭스키 선생 같은 지적 심오함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반면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론이 지니는 총체적인 가치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비판적이고"¹⁵³ "혁명적"¹⁵⁴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후자의 특질은 마르크스주의에 실로 완전하고도 절대적으로 내재된 것이었다. 그의 이론은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적대와 착취를 폭로하고 그 진화를 추적하며, 그 일시적인 성격과 다른 형태로의 변화의 불가피성을 실증하는 한편, 따라서 모든 착취를 가능한 빠르고 쉽게 종식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봉사한다는 임무를 스스로 직접적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을 끌어당기는 그의 이론의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은 엄밀하고도 비할 데 없이 과학적인 특성(사회과학에서는 결정적인 부분이다)을 혁명적인 특성과 결합시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결코 우연에 의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정확히 근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원리의 창시자가 개인적으로 과학자이자 혁명가로서의 자질을 겸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두 가지 특징이 본질적이고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이론의 역할이나 과학의 목적이란 게 현실에서의 경제투쟁에서 억압받는 계급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투쟁을 멈춰라, 당신들의 투쟁은 전부 무의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일은 진정한 투쟁의 구호를 세상에 제시하는 게 전부다.¹⁵⁵
그러므로 마르크스에 따르면 과학의 직접적인 임무는 진정한 투쟁의 구호를 제시하는 것, 다시 말해 지금의 투쟁을 명확한 생산관계 시스템의 산물로서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 당면 투쟁의 불가피성과 그 내용, 발전 경로 및 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분리된 형태의 투쟁을 세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면, 매 단계의 투쟁이 하나의 형태에서 또 다른 형태로 이행되는 과정을 추적해 어떤 특정한 순간에라도 그 투쟁의 일반적인 속성과 모든 착취 및 억압의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철폐라는 총체적인 목표를 놓치지 않고 그 상황을 제대로 규정해내지 못한다면, '투쟁의 구호'를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저 유명한' 미하일롭스키가 자신의 '비판'에서 소상히 설명한 뒤 씨름했던 그 따분한 쓰레기 같은 이론과 마르크스의 '비판적이고 혁명적인' 이론을 한번 비교해보라. 분명 스스로를 '노동인민의 사상가들'이라 여기면서도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필수적인 부분들은 흔적을 지워 없애 버림으로써 그 이론을 '낡고 낡은 동전'으로 변형시키는 데 머무른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인민의 이념적 대변자가 되고자 소망에서 결국 비롯된, 전체적으로는 우리 경제 시스템과 구체적으로는 농민들의 현 상황과 역사에 주력한 인민주의 문헌을 마르크스 이론의 요구들과 한 번 비교해보라. 분명 고통을 연구하고 묘사하며 그것에 대해 설교를 늘어놓는 데 그친 이론에 만족할 수 있는 사회주의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거기서 농노제는 이러이러한 착취와 이러이러한 적대적 계급들과 특정한 정치적·법적 체계 따위를 낳은 명확한 형태의 경제구조가 아닌, 그저 지주들에 의한 학대와 농민들에 대한 불의로만 그려지고 있다. 농민 개혁 또한 뚜렷한 경제 형태들과 계급들 간의 충돌이 아닌, 최선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실수로 '잘못된 경로'를 '선택한' 정부 당국이 취한 조치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개혁 이후의 러시아는 특정한 발전에 따른 명확한 적대적 생산관계 체계로서가 아닌, 노동인민의 고통을 동반한 진정한 경로로부터의 일탈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이론이 전혀 신빙성이 없음을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사회주의자들이 현재의 지식 수준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혁명 이론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빨리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들은 그 이론을 러시아에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더 빨리 쏟아붓게 될 것이다. 보다 더 확실하고 빠른 움직임이 혁명 과업의 성공을 보장할 거라는 의미인 것이다.
실질적이고 제대로 된 산업을 '창출'해내기 위해 '인민들'을 상대로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는 등과 같은 지식인계급에 대한 '인민의 벗들'의 요구가 오늘날의 '빈약한 러시아의 사상 풍토'를 얼마나 크게 변질시켰는지를 드러내줄 생생한 예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 다시 말해 나로도불치의 직계 자손이라 할 수 있는 '나로도프랍치(Narodopravtsi)'의 견해를 인용해볼 필요가 있겠다. 인민의권리당(Narodnoye Pravo party)¹⁵⁶이 1894년에 펴낸 『시급한 쟁점이라는 소책자를 참조하기 바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심지어 폭넓은 자유를 누리는 조건하에서조차 러시아는 생산에서의 독립적인 지위를 노동인민에게 보장해주는(!) 경제구조와 작별을 고해서는 안 된다"거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치 개혁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경제 개혁"이라고 말하는 부류의 인민주의자들을 멋지게 반박한 뒤, 나로도프랍치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의 수호자가 아니요, 그들의 이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만약 지방감독관(Zemsky Nachalnik)들의 보호하에서 그들로 하여금 부르주아 계급의 침범으로부터 '계획적인 경제 개혁'을 열심히 지켜내게 하느냐, 아니면 정치 정당에 기초한 부르주아 계급 자체의 보호하에서, 다시 말해 인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조직적으로 방어하는 걸 보장하는 상황하에서의 경제 개혁이냐를 놓고 선택하라는 알맞은 운명이 인민들에게 주어진다면, 우리는 인민들이 분명 후자를 선택하는 게 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는 인민들에게서 사이비 독립 경제구조를 빼앗아 가겠다고 위협하는 '정치 개혁'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는 거라곤 누구든 어디서나 의숙하게 부르주아 정책이라 부르는 것만이 존재할 뿐이며, 그것은 인민의 노동에 대한 가장 철저한 착취로 표현된다. 우리에게는 폭넓은 자유는커녕 좁은 의미의 자유도 없으며, 입힌 국가들의 농경민과 자본가들은 더 이상 꿈도 꾸지 않는 계급(social-estate)¹⁵⁷ 이익의 보호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부르주아 의회제도'란 게 없으며, 행정 기구의 포탄 사정거리 안에서는 사회도 허락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는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하는 나이데노프(Naidenov)와 모로조프(Morozov), 카지(Kazi), 비엘로프(Byelov) 같은 신사양반들이 있으며, 그들 옆에는 1데샤티나당 거금 100루블씩을 자신들에게 무이자로 대출해줄 것을 요구하기에까지 이른 '충성스러운 귀족'의 대표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위원회의 일원으로 초대돼 공손히 경청되는 분위기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고, 이 나라 경제 생활에 영향을 끼칠 중차대한 사안들에서 결정적인 발언권을 갖는다. 그러나 인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내세운 사람들이 과연 누구였던가? 그들 지방감독관 아니었던가? 농업 근로대가 기획되고 있는 것도 인민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나? 비단 그뿐 아니라 인민들에게 분여지를 부여했던 유일한 이유는 블로그다 주지사가 자신의 회람문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로 하여금 세금을 납부하고 부역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거의 빈정거림에 가깝게 솔직히 막 공표되지 않았나? 그는 전제 군주국, 아니 보다 정확히는 관료주의적 절대주의 체제가 숙명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정책을 단지 공식화하고 소리 높여 표현했을 뿐이었다."
비록 자신들이 이익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대상인 '인민'과 노동의 이해관계를 보호해줄 믿을 만한 기관이라고 계속해서 여겨온 '사회'에 대한 나로도프랍치의 개념이 모호하다고는 하나, 인민의권리당의 창설이 '조국을 위한 다른 경로'에 관한 착각과 몽상을 완전히 버리고 진정한 경로를 두려움 없이 인정하며 혁명 투쟁을 위한 요소들의 기반을 모색하는 데 있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누군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민주적인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분투를 뚜렷이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분투'일 수밖에 없는 것은 불행하게도 나로도프랍치가 자신들의 기본적인 논지를 일관되게 실행에 옮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사회주의자들과의 융합과 동맹을 이야기하고, 노동자들을 한날 정치적 급진주의로 끌어들이는 것은 지식 노동자들을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을 의미할 뿐임을 깨닫길 거부하며, 노동계급 운동에게 무기력하다는 선고를 내린다. 노동계급 운동은 전적으로 노동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고 자본에 맞선 경제투쟁을 벌일 때만이 강해질 수 있으며, 그런 경제투쟁은 자본의 하수인들에 맞선 정치투쟁과 불가분하게 묶여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혁명 분파들의 '융합'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독립된 조직과 특정한 사례들에 있어서의 두 정당의 공동 행동에 의해 훨씬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를 거부한다.¹⁵⁸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당을 '사회-혁명'당이라고 계속해서 부르고 있지만 (1894년 2월 19일자 「인민의권리당 선언문」참조), 동시에 스스로를 정치 개혁에만 국한시키고 우리의 '지굿지굿한' 사회주의적 사안들은 아주 주도면밀하게 회피하고 있다. 실로 착각에 맞선 투쟁을 열렬히 촉구하는 정당이 타인에게 착각을 조장해서는 안 되는 법임에도 이들은 '선언문'의 맨 첫 부분에서부터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주의는 단지 입헌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반복하건대, 그들이 나로도불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나로도프랍치를 정확히 판단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들이 오로지 정치 강령에 근거한——사회주의와는 관계 없는——정치투쟁만을 염두에 둠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갔다¹⁵⁹는 사실은 인정해야만 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진정으로 나로도프랍치의 성공을 바라며, 그들의 정당이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그래서 현재의 경제 시스템¹⁶⁰을 편들고¹⁶¹ 민주주의와 아주 밀접하게 일상의 이해관계가 묶여 있는 사회 분파들과 긴밀한 유대를 형성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관료 체제에 대한 신뢰를 표명하면서 정치투쟁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사회주의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을 뿐더러 노동인민이 억압받는 원인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계급투쟁의 성격을 전혀 짐작조차 못하는 '인민의 벗들'의 타협적이고 비겁하고 감상적이고 공상적인 인민주의는 정치적 급진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 양측으로부터 공격당할 경우 결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