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결론에서는, 역사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상대로 하여 공개적인 전쟁에 돌입한 또 다른 '인민의 벗' 크리베코 선생을 만나보도록 하자.
하지만 우리는 미하일롭스키나 유자코프의 글들에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의 글들(「우리의 문화 용병들」, 1893년, 12호, 그리고 「여행 중에 보낸 편지」, 1894년, 1호)을 검토할 것이다. 그 글들을 완전히 분석하는 것은 첫째 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 일반에 대한 그들의 반론과, 둘째 그들의 정치경제 이론의 실체를 분명히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이제 우리는 '인민의 벗들'의 사고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전술, 실질적 목표, 그리고 정치 강령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견해를 밝힐 때, 어디에서도 직접적으로 그 강령을 일관성 있고 완전하게 제시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명의 기고자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을 정도로 의견일치를 보인 한 잡지의 다양한 글들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앞에서 언급한 크리베코의 글들을 우선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 이유는 그의 글들에 많은 자료가 담겨 있는데다가, 미하일롭스키가 사회주의자고 유자코프가 경제학자인 것처럼 크리벤코는 해당 잡지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실용적인 인물이자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강령으로 넘어가기 전에 우리가 정말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이론적 핵심이 한 가지 더 있다. 우리는 유자코프 선생이 인민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인민들의 토지 임차에 대해 의미 없는 문구들을 늘어놓는 것을, 자신이 우리 농민들의 경제적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의 의미 없는 문구들로 문제들을 농치는 것을 지켜봐야겠다. 그는 수공업에 대해서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았고, 대규모 공장 산업의 성장에 관한 자료를 다루는 것으로만 국한했다. 그래 놓고는 수공업에 대해 정확히 똑같은 문구들을 반복해서 늘어놓는다. 그는 "우리 인민들의 산업", 즉 수공업을 자본주의적 산업에 똑같이 대비시키면서(12호, 180~1쪽) "인민들의 생산은"(원래의 표현 그대로다!) "대부분의 경우에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반면, 자본주의적 산업은 "흔히 인위적으로 창출된다"고 말한다. 또 다른 단락에서도 그는 "소규모 인민 산업"을 "대규모 자본주의적 산업"과 대비시키고 있는데, 만약 여러분이 눈에 띄는 전자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그저 전자는 "규모가 작고"⁵⁴ 노동 도구들이 생산자와 결합되어 있다는(이 두 번째 정의는 앞에서 언급한 미하일롭스키의 글에서 내가 빌려왔다) 대답만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 경제구조를 정의내리는 것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데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면 크리벤코 선생은 오늘날까지 "소규모 인민 산업"은 "대규모 자본주의적 산업"보다 총생산량도 훨씬 많고 더 많은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수공업자들의 숫자가 400만 명에 달한다는 데이터를 거론하고 있는데, 또 다른 자료에서는 70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수공업을 지배하는 경제 형태가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대부분의 수공업자들이 생산에서 전혀 독립적이지 않고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 그들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원료를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상인들이 대준 원료를 가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러한 형태가 지배적이라는 데이터는 합법적인 출판물에서도 인용되어왔다. 예를 들어 유명한 통계학자인 S. 카리조메노프(Kharizomenov)의 글 가운데 《법률 통신》⁵⁵(1883년, 11호와 12호)에 실린 뛰어난 글을 인용해보자. 수공업이 가장 고도로 발달된 중부 지방 주들에게서의 수공업에 관한 기존에 발표된 데이터를 요약하면서 카리조메노프는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의 절대적인 우위, 즉 의문의 여지 없이 자본주의 형태의 산업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소규모 독립적인 산업의 경제적 역할을 규정할 때, 우리는 다음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모스크바 주에서는 연간 수공업 매출액의 86.5퍼센트가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에 의해 발생하고, 소규모 독립적인 산업에 의한 것은 13.5퍼센트에 불과하다. 블라디미르 주의 알렉산드로프와 포크로프 군에서는 연간 수공업 매출액의 96퍼센트가 대규모 가내생산과 제조업 체계에 해당하고, 4퍼센트만이 소규모 독립적인 산업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한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반박하려 하지 않았고, 반박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사실들을 무시한 채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그런 산업을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인민" 산업이라 부를 수 있으며, 진정한 산업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논할 수 있다 말인가?
이렇게 사실관계를 대놓고 무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딱 한 가지 설명만이 가능하다. 즉 러시아의 자유주의자들이 다 그렇듯 '인민의 벗들' 역시도 이 모두를 단지 평범한 '결함들'이라 치부함으로써 러시아 노동인민의 착취와 계급적대를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또 다른 원인은, 예를 들어 크리벤코 선생이 "파블로보의 날붙이 사업"을 "반(半)장인 성격의 사업"이라 부른 데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런 주제에 대한 그들의 지식이 너무나 깊은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인민의 벗들'이 도달한 왜곡의 깊이는 가히 놀랍다는 말밖에는 덧붙일 말이 없겠다! 이 대목에서 어떻게 파블로보의 칼 장수들이 장인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어쩌면 크리벤코는 상인이 수공업자로부터 물건을 주문해 그것들을 니지니 노브고로드 장터로 보내는 시스템을 장인 산업이라 여기는 건 아닐까? 너무나 우습게도, 그런 것 같다. 실제로 칼 제조는 (외관상) 생산자들이 독립성을 지닌 소규모 수공업 형태로부터 (파블로보의 다른 산업들과 비교해볼 때) 가장 동떨어져 있다. N. F. 안넨스키(Annensky)는 "요리용과 공업용 칼 생산"⁵⁶은 이미 대부분 공장에 접근하고 있거나, 더 정확히는 공장제 수공업 형태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 주에서 요리용 칼 제조에 종사하는 396명의 수공업자들 가운데 단 62명(16퍼센트)만이 시장을 위해 일하고, 273명(69퍼센트)은 주인⁵⁷을 위해 일하며, 61명(15퍼센트)은 임금노동자들이다. 따라서 그들 중 고용주에게 직접적으로 예속돼 있지 않은 비율은 6분의 1에 불과하다. 칼 산업의 다른 부문에 대해 같은 필자는 그것이 "테이블 나이프와 자물쇠의 중간 위치를 차지한다. 이 부문의 수공업자들 대부분은 주인을 위해 일하지만, 그들과 더불어 시장과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독립적인 수공업자들이 여전히 아주 많다"고 말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 주에는 이런 종류의 칼을 생산하는 수공업자들이 총 2,552명 있는데, 그 중 48퍼센트(1,236명)는 시장을 위해 일하고, 42퍼센트(1,058명)는 주인을 위해 일하며, 10퍼센트(258명)는 임금노동자들이다. 결과적으로 여기에서도 독립적인(?) 수공업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시장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또한 단지 겉으로만 독립적으로 보일 뿐이다. 실제로 그들은 구매자의 자본에 덜 예속돼 있는 게 아니다. 21,983명의 근로인민, 즉 일하는 사람 전체의⁵⁸ 84.5퍼센트가 공업에 종사하고 있는 니지니 노브고로드 주의 고르바토프 군 전체의 산업 통계를 불러온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금속, 가죽제품, 마구류, 펠트 천, 삼 방적 등의 산업에 종사하는 10,808명의 노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산업 경제에 관한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즉 수공업자들의 35.6퍼센트는 시장을 위해 일하고, 46.7퍼센트는 주인을 위해 일하며, 17.7퍼센트는 임금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도 우리는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가 우위에 있고, 노동이 자본에 예속돼 있는 관계가 지배적임을 알게 된다.
'인민의 벗들'이 그토록 자유롭게 이런 종류의 사실들을 무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 자본가는 거대한 기계 회사를 운영하는 부유하고 교육받은 고용주라는 일반적이고 통속적인 생각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용어의 과학적인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거부한다. 앞의 장에서 우리는 유자코프 선생이 자본주의의 출발을 정확히 기계 공업에서 시작하면서 단순 협업과 매뉴팩처를 생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널리 만연돼 있는 실수로, 부수적으로는 이 나라 수공업의 자본주의적 구성이 무시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가 자본주의적 산업 형태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는 이미 높은 발전 수준에 도달한 상품경제, 생산수단이 개인들의 손에 집중되는 현상, 수중에 생산수단을 지니고 있지 못해 자신의 노동을 타인 소유의 생산수단에 적용시키며 스스로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대중의 착취라는 그 모든 특징들이 담겨 있다. 분명 그 구성에 있어 수공업은 순전히 자본주의적이며, (주로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 때문에) 기술적으로 뒤떨어져 있고 노동자들이 여전히 소규모 농지를 계속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대규모 기계 공업과는 다르다. 후자의 상황은 특히 '인민의 벗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는데, 그들은 진정한 형이상학자들이라는 성격에 걸맞게 노골적이고 정반대로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 그래, 아니, 아니, 여기에서는 그게 뭐든 간에 이보다 더한 게 생겨나는 법이야"라는 것이다.
만약 노동자들에게 땅이 없다면, 그건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만약 그들에게 땅이 있다면, 그건 자본주의가 아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그들은 경제의 전반적인 사회적 구조를 보지 않은 채 그런 철학을 위안 삼아 자기 자신을 그 속에 가둔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다른 뻔뻔한 '농민' 토지소유주들로부터 강탈당한 그들의 끔찍한 빈곤이 전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을 망각해버린다.
그들은 자본주의가——여전히 비교적 낮은 발전 수준이긴 하지만——어디에서도 노동자를 토지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킬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듯하다. 서구 유럽의 경우 마르크스는 오직 대규모 기계 공업만이 노동자를 영원히 착취한다는 법칙을 확립했다. 따라서 '인민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투적인 논법은 완전히 쓸모없다는 게 명백하다. 왜냐하면 단순 협업과 공장제 수공업의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토지로부터의 완전한 분리와 어디에도 연결된 적이 없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자본주의이길 멈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규모 기계 산업——이 형태는 우리 산업의 가장 크고 중요한 부분을 떠맡고 있다——에 대해서는, 우리 삶의 모든 구체적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이 역시 서구 자본주의 어디에서나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토지와의 연결고리를 계속 유지하는 결코 그냥 냅두지 않을 거라는 뜻이 된다. 말이 난 김에, 이러한 사실은 데멘티에프(Dementyev)에 의해 엄밀한 통계자료를 통해 입증된 바 있는데, 거기서 그는 (마르크스와는 아주 별개로) 기계를 이용한 생산이 노동자의 완전한 토지로부터의 분리와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이러한 연구는 러시아가 자본주의 국가이며, 러시아 노동자들의 토지와의 연결고리는 아주 미약하고 실제하지 않는데다, 자산 소유자(화폐 소유자, 구매자, 부유한 농민, 공장제 수공업자 등)의 권력은 아주 굳건히 확립돼 있으며, 기술적 진전이 한 차례 더 일어나게 되면 (오랫동안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활해왔던) '농민'이 그야말로 노동자로 변신하기에 충분할 거라는 걸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러나 이 나라 수공업의 경제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인민의 벗들'의 잘못은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이 '주인을 위해서' 행해지지 않는 산업들에 대해서조차 그들의 생각은 경작자에 대한 생각(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만큼이나 피상적이다. 어쨌든 그들이 아는 거라고는 세상에는 노동하는 인민과 결합'될 수도 있는' 생산수단 같은 것이 존재하고 그것은 아주 좋은 것인 반면, 그들과 분리'될 수도 있는' 생산수단은 아주 나쁜 거라는 점 말고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주제넘게도 정치 경제에 관한 질문들에 의견을 늘어놓는 신사양반들의 생각이 피상적인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화되어가는 산업과 그렇지 않은(소규모 생산이 자유로이 존재하는) 산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크리벤코 선생은 한 편으로 특정 분야들에서 "기본적인 생산 비용"이 얼마 안 되고 따라서 소규모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한 예로 벽돌 산업을 거론하는데, 거기서는 비용이 벽돌공장 연간 매출액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사실관계를 언급한 거의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에(되풀이하건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이고 정확한 묘사와 분석을 씻어 버린 채 소부르주아적 '이상'의 영역으로 날아오르는 걸 선호하는 게 주관적 사회학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다), '인민의 벗들'이 현실에 대해 어떤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걸 예로 들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우리는 모스크바 제스트보의 경제 통계(『보고서』, 7권, 2부)에서 벽돌 산업(백토로부터 벽돌을 만들어내는)에 대한 서술을 볼 수 있다. 해당 산업은 주로 보고로즈코에 군의 세 개 읍에 집중되어 있는데, 233개 시설에서 1,402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하면서 (이중 41퍼센트를 차지하는 567명은 가족 노동자들이다. '가족' 노동자는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주인의 가족 가운데 노동에 참여하는 구성원을 뜻한다) 35만 7천 루블의 가치에 해당하는 연간 총생산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 산업은 오래된 산업이지만, 철도 건설로 인해 판매가 대폭 촉진된 덕분에 지난 15년 사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철도가 건설되기 전에는 가족 생산 형태가 지배적이었으나, 현재는 임금노동자의 착취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한 이 산업은 판매를 위해 소규모 업자들이 대규모 업자들에 의존하는 현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자금 부족' 때문에 소규모 업자는 대규모 업자에게 아주 형편없는 가격에 그 자리에서 벽돌을(때로는 굽지 않은 '미가공품'을) 내다 파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의존성과는 별개로 그 논문에 첨부된, 노동자들의 수와 각 시설 당 연간 총생산량이 표시된 수공업자 가구별 통계 조사 덕분에 해당 산업의 구조 역시도 익히 알 수 있었다.
상품경제가 곧 자본주의 경제라는, 즉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상품경제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된다는 법칙이 이 산업에 적용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시설들의 규모를 비교해봐야 한다. 문제는 정확히 생산량에서의 역할과 임금노동의 착취에 따른 소규모와 대규모 시설들 사이의 관계다. 노동자들의 숫자를 기초로 하여, 우리는 수공업자 시설들을 (Ⅰ)(가족 노동자와 고용 노동자를 모두 포함해) 1~5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시설, (Ⅱ)6~10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시설, (Ⅲ)10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한 시설, 이렇게 세 집단으로 나눈다.
시설들의 규모, 노동자들의 전체 수, 각 집단별 생산량의 가치를 검토한 결과, 우리는 다음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도표 참조>
이 수치들을 살펴보면 부르주아 또는 그와 동일한 것, 산업의 자본주의적 구조를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시설이 크면 클수록 노동생산성은 더 높아지고⁶¹(중간 집단은 예외다), 임금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더 심해지며⁶², 생산의 집중도 역시 더 커지는 것이다.⁶³
거의 전적으로 임금노동에 기초하고 있는 세 번째 집단은 전체 시설 수의 10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총생산량은 44퍼센트에 달한다.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이 이렇게 집중되는 현상, 다수(임금노동자들)의 착취와 연결되어 있는 이런 현상은 소생산자들의 원청(대규모 경영주들은 사실상 원청이다)에 대한 의존과 해당 산업에서의 노동의 억압을 설명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계급에 대한 강탈과 착취의 원인이 생산관계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다시피 러시아의 인민주의 경향 사회주의자들은 그와 반대되는 견해를 지녔고, 수공업에서의 노동의 억압의 원인이 생산관계에(그들은 생산관계가 착취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있지 않고 다른 그 무언가, 즉 농업과 재정정책 등에 있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그런 견해를 굽히지 않고 이제 거의 편견의 철용성을 구축하게 된 근본 토대는 무엇이었고 또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혹시 수공업에서의 생산관계에 대한 개념이 달라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사실관계, 즉 경제구조의 실제 형태들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묘사하려는 시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지속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사회과학의 유일한 과학적 방법론, 즉 유물론적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는 나이든 사회주의자들의 사고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수공업에 관한 한 그들은 착취의 원인을 생산관계 외부로 그 책임을 돌린다. 반면 대규모 공장 자본주의에 관한 한, 그들은 거기에서 착취의 원인이 정확히 생산관계에 있다는 걸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결과는 화해할 수 없는 모순, 부조화였다. 수공업적 생산관계(이제껏 연구된 적이 없었다!)에서는 자본주의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대규모 자본주의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수공업과 자본주의적 산업 사이의 연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전자를 "인민의" 공업으로, 후자를 "인위적인" 산업으로 대비시켰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가 우리의 "인민의 시스템"과 모순된다는 발상인 듯하다. 이러한 사고는 오늘날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최근에는 니콜라이-온(Nikolai-on) 선생의 수정과 개선을 거쳐 러시아 대중들에게 제시된 바 있으며, 가히 경탄스러울 정도로 비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관성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니콜라이-온에 따르면 공장 자본주의는 실제 현실에 기초해 판단되는 반면, 수공업은 '그렇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기초해 판단이 이루어진다. 전자는 생산관계의 분석에 기초해 판단되지만, 후자는 생산관계를 따로 검토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판단되며, 그 문제는 곧장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우리가 생산관계의 분석에 시선을 돌리기만 한다면, "인민의 시스템"들이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고 맹아적인 상태이긴 하나 지극히 동일한 자본주의 생산관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만약 우리가 모든 수공업자들이 동등하다는 안일한 편견을 거부하고 그들 사이의 차이들을 정확히 제시한다면——공장의 '자본가'와 '수공업자' 사이의 차이가 '수공업자' 서로 간의 차이보다 작다는 게 때때로 증명될 거라는 사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인민의 시스템"과 모순되는 게 아니라 그것의 뒤를 잇는 직접적이고 당면한 연속이자 발전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앞에서 인용한 사례가 적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겠다. 주어진 사례에서 임금노동자들의 비율이 대체로 너무 높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⁶⁴ 그러나 실제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그들이 드러내는 관계, 즉 그 관계는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적이고 그 부르주아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든 약하게 드러나든 간에 그런 상태가 중단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이번엔 의도적으로 부르주아적 성격이 약한 걸로 골라볼 텐데, (모스크바 주의 산업에 관한 이사예프(Isayev) 선생의 책에 등장하는) 도자기 공업이 그것이다. 이사예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수한 가내공업"인 도자기 공업은 당연히 소규모 농민 공업의 대표주자로 여겨질 수도 있다. 기술이 지극히 단순하고, 장비는 아주 작으며, 생산된 물건들이 보편적이고 필수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자, 앞선 사례에서처럼 동일한 세부사항들을 제시하는 도자기 장인들에 대한 가구별 통계조사 덕분에 우리는 그것의 경제구조도 연구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도자기 공업은 수량은 러시아 소규모 "인민" 공업의 아주 전형적인 사례다. 우리는 수공업자들을 (Ⅰ) (가족 노동자와 고용 노동자를 모두 포함해) 1~3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수공업자, (Ⅱ) 4~5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수공업자, (Ⅲ) 5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한 수공업자, 이렇게 세 집단으로 나눈 다음 동일한 계산을 실시한다.
<도표 참조>
명백히 이 공업 역시도——그리고 유사한 사례들이 무수히 인용될 수 있겠다——부르주아적 관계라 할 수 있다. 상품경제로부터 발생하는 동일한 분리, 특히 자본주의적 분리가 발견되고, 이는 맨 위의 집단에서 이미 주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임금노동의 착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맨 위의 집단은 전체 시설들의 8분의 1을 차지하고 전체 노동자의 30퍼센트가 총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생산하며, 노동생산성은 평균보다 상당히 위에 있다. 이러한 생산관계만으로도 원청의 등장과 권력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규모가 더 크고 이웃이 더 많이 나는 시설들을 소유하고 타인의 노동으로부터 '순'이익을 얻는(맨 위의 도공 집단에서는 시설당 평균 5.5명의 임금노동자들이 일한다) 소수가 어떻게 '절약된 돈'을 축적하는지, 왜 다수는 몰락하고 심지어 소(小)장인들은 생계조차 이을 수 없는지를 알 수 있다. 다수가 소수에게 예속되는 건 확실한 사실이며 필연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어진 생산관계의 자본주의적 성격 때문에 그렇다. 이러한 관계들은 상품경제에 의해 조직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이 개인의 수중으로 넘어가 그들의 손에서 노동인민을 억압하고 노예화하는 수단, 대중의 착취를 통해 개인적인 부를 쌓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관계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관계가 여전히 덜 발달되었기 때문에, 생산자들의 몰락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자본의 축적이 무시해도 될 정도이기 때문에 착취와 억압이 보다 덜 뚜렷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다. 그것은 오로지 노예의 형태를 띤 보다 더 조악한 착취로 이끌 뿐이다. 즉 아직은 노동자의 노동력을 가지고 그대로 구입하기에 그를 직접적으로 종속시킬 수 없었던 자본이 노동자를 고리대금에 의한 착취의 진정한 그물에 얽어넣고 악랄한 방법으로 묶어놓음으로써 잉여가치뿐만 아니라 임금의 상당 부분을 강탈해가고, 더 나아가 그로 하여금 '주인'을 바꾸지 못하게 함으로써 고통을 가하며, 자본이 그에게 일거리를 '준다는' 사실을 혜택으로 여기도록 강요함으로써 그를 모욕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인민의" 산업이 존재한다면, 단 한 명의 노동자도 러시아의 '독립적인' 수공업자로서의 지위를 그런 지위와 맞바꾸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급진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조치들은 노동인민의 착취와 자본에 대한 노예화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며, 여전히 고립된 실험에 머무르거나 노동인민의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키고, 주어진 자본주의적 관계를 세련되게 다듬고 발전시키며 강화시킬 뿐이라는 사실도 명백하다 하겠다.
하지만 '인민의 벗들'은 전체적인 비참한 상황과 상대적으로 작은 시설, 극도로 낮은 노동생산성, 원시적인 기술과 소수의 임금노동자들에도 불구하고 농민 산업이 자본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인민들 사이의 특정한 관계이며, 그 관계는 비교 대상 범주가 더 높은 발전 수준에 있건 더 낮은 발전 수준에 있건 간에 똑같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도 그걸 절대 이해하지 못해왔다. 그들은 언제나 자본의 그런 정의에 반대해왔다. 나는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마르크스 이론에 관한) 지버(Sieber)의 책에 대한 글을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에 기고하면서 그러한 정의(자본은 관계다)를 인용하며 분개한 마음에 그 뒤에다 느낌표를 달아놓았던 사실을 기억한다.
부르주아 체제의 범주를 영원하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르주아 철학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자본에 대해서도 그들이 추가 생산을 위해 쓸모가 있는 축적된 노동이라는 그런 정의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을 인간 사회의 영원한 범주로 묘사하고, 그런 행위를 통해 상품경제에 의해 조직된 '축적된 노동'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중으로 들어가 타인의 노동의 착취를 위해 기여하는 역사적으로 명확하고 특정한 경제 구성체의 본질을 흐린다. 그리고 그것이 생산관계의 명확한 시스템에 대한 분석과 연구 대신에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체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일련의 시시한 말 따위를 제시하고 소부르주아 도덕의 감상적인 어린애 장난 같은 것과 뒤섞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이제 보라. '인민의 벗들'이 이 산업을 "인민의" 공업이라 부르고 그것을 자본주의 산업과 비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이 신사양반들이 소부르주아 이념가들이며, 소생산자들이 상품경제 체제하에 살고 활동하면서(내가 그들을 소부르주아라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과 시장과의 관계가 반드시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들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놓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이러한 현실 구조를 연구하려 하지 않는가? 그랬더라면 우리 "인민의" 산업들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결과에 대해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대신에, 자본주의 노선에 따라 조직되지 않고도 어쨌든 발전을 이룬 수공업 분야가 러시아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소수에 의한 생산수단의 독점, 다수로부터의 소외, 임금노동의 착취가(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본질은 상품경제에 의해 조직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이 개인에 의해 점유되는 것이다) 이런 개념에 필연적이고 적당한 특징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아무쪼록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와 '스스로의' 역사를 제시해주기 바란다.
실제로 우리의 "인민" 수공업의 구조는 자본주의 발전의 전체적인 역사에 있어 훌륭한 실례를 제공해준다. 분명히 그것은 한 예로 단순 협업의 형태(도자기 공업에서 맨 위의 집단)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기원과 시작을 나타내준다. 더 나아가——상품경제 덕분에——개별 개인들의 수중에 축적된 '저축'이 어떻게 자본이 되는지, 그래서 이들 저축 소유자들만이 대규모 처분에 필요한 자금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일차적으로 판매를 독점하고 그들로 하여금 멀리 떨어진 시장에서 상품들이 팔려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지, 이들 상인자본(Kaufmannskapital)이 생산자 대중을 어떻게 노예화하고 자본주의 기계제 수공업, 즉 대규모 생산의 자본주의 가내 시스템을 조직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장의 확대와 늘어나는 경쟁이 어떻게 개선된 기술로 이어지고 이러한 상인자본이 산업자본이 되며 대규모 기계제 생산을 조직하는지 또한 보여준다. 그래서 강해진 힘을 바탕으로 수백만 노동인민과 지역 전체를 노예화한 자본이 공공연하고 뻔뻔하게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정부를 자신의 하인으로 변모시키는 순간, 우리의 천재적인 '인민의 벗들'은 '자본주의 이식'과 그 '인위적인 생성'에 대해 비명을 질러낸다.
실로 적절한 발견 아닌가!
그러므로 크리벤코 선생이 인민의, 현실적인, 적합한 따위의 산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단지 우리 수공업이 다양한 발전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일 뿐이라는 사실을 감추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유자코프 선생의 경우를 통해 이런 식의 수법들을 익히 보아왔다. 그는 농민 개혁을 연구하는 대신에 기념비적인 선언⁶⁵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한 공허한 문구들을 활용했고, 토지 지대를 연구하는 대신에 그것을 인민의 지대라 이름 불렀으며, 국내 시장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위해 형성되고 있는지를 연구하는 대신에 시장의 부족으로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봉쇄된다는 등의 철학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바 있다.
이 대목에서, '인민의 벗' 선생들이 사실을 얼마나 왜곡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나는 한 가지 예를 더 검토해볼까 한다.⁶⁶ 우리의 주관적인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가장 정확한 언급 중 하나, 즉 크리벤코 선생이 보로네시 농민들의 예산에 대해 언급했던(1894년, 1호) 부분을 무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드물게 자세를 낮춰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 자신이 선택한 데이터를 기초로 삼아보면, 러시아 급진주의자들과 '인민의 벗들'의 사고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사고 가운데 현실에서 어떤 생각이 더 정확한지를 확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로네시 제스트보 통계학자인 시체르비나(Shcherbina)는 오스트로고즈스크 군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전형적인 농가 24곳의 예산 항목들을 덧붙이며 본문에서 그것들을 분석했다.⁶⁷
크리벤코 선생은 이러한 분석을 재현하면서도, 그 방법론이 우리 소농들의 경제를 알기 위한 목적에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거나 보기를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24곳의 예산은 크리벤코 선생 자신이 지적하듯이(159쪽) 완전히 서로 다른——잘살거나 중간이거나 가난한——가구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시체르비나와 마찬가지로 그도 전혀 다른 유형의 가구들을 한 덩이로 묶어 그 평균 수치들을 활용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그들 간의 차이를 완전히 숨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 소규모 생산자들 내부의 분화는 아주 일반적이고 주요한 사실이라서(오랫동안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여기에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관심을 환기시켜왔다. 플레하노프의 저작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크리벤코 선생이 선택한 빈약한 데이터에 의해서조차 아주 뚜렷이 감지된다. 그러나 그는 농민들의 농업을 다룰 때 그들을 농장 규모와 농업 유형에 따른 범주로 나누는 대신, 시체르비나 선생이 그랬듯이 그들을 법적인 범주, 즉 과거의 국유지 농민과 과거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으로 구분하고 자신의 모든 관심을 후자와 비교했을 때 전자의 번영에 돌리면서 같은 범주 내 농민들 간의 차이가 범주 간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⁶⁸ 이를 증명하기 위해 나는 24명 농민들을 세 개의 집단으로 나눠 (a)6명의 잘사는 농민들, (b)11명의 평균적인 농민들, (c)7명의 가난한 농민들을 골라 보기로 한다. 예를 들어 크리벤코 선생은 과거 국유지 농민의 농가당 지출이 541.3루블이고, 예전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들의 지출은 417.7루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서로 다른 농민들의 지출이 동등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한 예로 과거 국유지 농민들 중에는 지출이 84.7루블인 사람이 있는 반면 (설사 1,456.2루블을 지출하는 독일 이주민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사람은 그 10배에 해당하는 887.4루블이었다. 만약 이를 한데 묶어놓는다면 과연 평균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내가 제시하는 범주들로 분류를 할 경우, 잘사는 농민의 농가당 평균 지출은 855.86루블이고, 중간층 농민은 471.61루블, 가난한 농민은 223.78루블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⁶⁹ 그리고 그 비율은 대략 4:2:1이다.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시체르비나의 발자취를 따라 크리벤코 선생은 다양한 법적 범주의 농민들 사이의 개인적인 필요에 따른 경비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국유지 농민들이 연간 채소 음식에 지출하는 일인당 경비는 13.4루블이고, 과거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들은 12.2루블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범주에 따라 구분할 경우, 그 수치는 (a)17.7루블, (b)14.5루블, (c)13.1루블이었다. 과거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들이 일인당 고기와 유제품에 지출하는 경비는 5.2루블이고, 과거의 국유지 농민들은 7.7루블이었다. 반면 경제적 범주에 따라 구분할 경우, 그 수치는 각각 11.7루블, 5.8루블, 3.6루블이었다. 이렇듯 범적인 범주에 따른 계산은 이러한 커다란 차이를 덮어버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따라서 정녕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크리벤코 선생은 과거의 국유지 농민들의 소득이 예전 지주 밑에 있던 농민들의 소득보다 53.7퍼센트 더 크다고 말한다. (24명 농민의) 전체적인 평균은 539루블이고, 두 범주로 나누면 각각 600루블 이상과 약 400루블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면, 소득은 (a)1,053.2루블, (b)473.8루블, (c)202.4루블로, 최대 5:1의 비율일 뿐 3:2가 아니었다.
또한 크리벤코 선생은 "과거 국유지 농민들의 농가당 자본 가치는 1,060루블이고, 과거 지주 밑에 있던 농민들은 635루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적 범주에 따라 구분할 경우⁷⁰, 그 수치는 (a)1,737.91루블, (b)786.42루블, (c)363.38루블이었다. 다시 최대 비율은 5:1이지, 3:2가 아니다. 이렇게 '농민'을 법적인 범주로 구분함으로써 필자는 이와 같은 '농민'의 경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으로부터 스스로 떨어져버린 것이다.
만약 우리가 경제적 능력에 따른 다양한 유형의 농가들을 검토한다면, 잘사는 농가는 평균 1,053.2루블의 소득을 올리고 855.86루블의 경비를 지출해, 197.34루블의 순수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에 비해 중간층 가구는 473.8루블의 소득을 올리고 471.61루블의 경비를 지출해, 농가당 2.19루블의 순수익을 거둔다(신용 부채와 체납금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분명 이는 생계를 잇기에는 부족한 금액으로, 농가 11곳 가운데 5곳이 적자였다. 반면 최하층 가난한 집단은 직접적인 손실을 보면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소득이 202.4루블, 경비가 223.78루블로, 21.38루블의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⁷¹ 만약 우리가 농가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전체적인 평균(순수익 44.11루블)을 낸다면, 실제 그림이 완전히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건 명백하다. 그럴 경우 순수익을 확보한 6명의 잘사는 농민들이 농업 노동자들(8명)을 고용한 사실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농업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순수익을 거두들여 '산업'에 의존할 필요성을 사실상 덜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 부유한 농민들은 모두 합쳐 자신들 예산의 6.5퍼센트만 산업으로 충당한다(총 6,319.5루블 가운데 412루블). 게다가 이들 산업들은——시체르비나 선생이 언젠가 언급한 것처럼——'운반'이나 심지어 '양치기'와 같은 유형으로, 의존과는 거리가 멀고 타인의 착취를 미리 전제로 한다(바로 이 경우, 축적된 '저축'은 상인자본으로 전환된다). 이들 농민들은 4개의 산업 시설들을 소유하고, 거기서 320루블의 소득(전체의 5퍼센트)⁷²을 거두들이고 있었다.
중간층 농민들의 경제는 유형이 달랐다. 우리가 지켜봤듯이 그들은 거의 생계를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농사만으로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울 수가 없어 소득의 19퍼센트를 이른바 산업으로부터 충당하고 있었다. 그것이 과연 어떤 종류의 산업인지는 시체르비나 선생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는데, 7명의 농민 가운데 오직 두 사람만이 독립적인 산업(양복업과 숯 제조)에 종사하고, 나머지 5명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고 있었다("저지대에서 풀을 베거나"⁷³, "양조장에서 일한다든지", "주수철에 납품을 팔고", "양을 보살피며", "현지 주민의 사유지에서 일을 한다"). 그들은 이미 반만 농민이고 반은 노동자다. 부업을 함으로써 그들은 농사를 등한시하게 될 수밖에 없고 결국 그들 자신의 농사가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가난한 농민들의 경우, 그들은 순전히 손해를 보면서 농사를 짓는다. 그들의 가계예산에서는 "산업"의 중요성이 훨씬 더 컸고(소득의 24퍼센트), 이때의 산업이란 거의 전적으로(농민 한 명만 제외하고) 노동력의 판매였다. 그들 중 2명의 경우 "산업"(농장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이 전체 소득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소생산자들의 완전한 분화 과정이라는 사실은 아주 명백하다. 소생산자들 중 상위 집단은 부르주아로 변신했고, 하위 집단은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 우리가 전체적인 평균을 택한다면 당연히 거기에서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고, 시골 지역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필자로 하여금 다음의 방법론을 채택하는 게 가능하게 만든 것은 그가 오로지 그러한 허구의 평균을 갖고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해당 군 전체의 농민 농업에서 전형적인 농가들의 지위를 측정하기 위해 시체르비나 선생은 농민들을 분여지 크기에 따른 집단으로 나눴더니, 선택된 농가 24곳의 (전반적인 평균) 변형 수준이 군 내 평균보다 약 3분의 1 가량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런 계산법은 만족스럽다고 여겨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들 24명 농민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고 분여지 크기에 따른 분류는 농민층의 분화를 감춰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여지가 번영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크리벤코 선생의 이론은 완전히 틀렸다. 마을공동체 내 토지를 "동등하게" 분배한다고 해서 말을 소유하지 않은 구성원들이 토지를 포기한 채 일자리를 찾아 떠나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것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사실, 또는 다수의 말을 소유한 구성원들이 거대한 땅을 임차해 이윤이 발생하는 큰 농장을 운영하는 것 또한 막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농가 24곳의 예산을 가지고 따져보면, 6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한 명의 부유한 농민이 758.5루블의 총소득을 거둬들이고 있었고, 7.1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중간층 농민은 391.5루블, 6.9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가난한 농민은 109.5루블을 거둬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다양한 집단 간의 소득 비율이 4:2:1인 반면 분여지 비율은 2.6:1.08:1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아주 당연한 것인데, 예를 들어 가구당 22.1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부유한 농민들은 각각 8.8데샤티나를 추가로 더 빌리는 반면 분여지를 더 적게 보유한(9.2데샤티나) 중간층 농민들은 더 적은 규모의 분여지——7.7데샤티나——를 빌렸고, 훨씬 더 적은 분여지(8.5데샤티나)를 보유한 가난한 농민들은 불과 2.8데샤티나만 추가로 임차한다는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⁷⁴ 그래서 크리벤코 선생이 "불행히도 시체르비나 선생이 제시한 데이터는 주 단위는 말할 것도 없고 군 단위에서조차 전체적인 상황을 정확히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전체적인 평균을 계산하는 잘못된 방법론(크리벤코 선생이 절대 의지하지 말았어야 하는 방법론)에 의지하는 당신의 행동도 측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말해 시체르비나 선생의 데이터는 아주 포괄적이고 귀중해서 우리로 하여금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크리벤코 선생이 그리지 못했다면 비난받을 대상은 시체르비나 선생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시체르비나 선생은 197쪽에서 농사용 가축에 따른 농민들의 분류를 제시했을 뿐 분여지에 따른 분류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즉 법적인 구분이 아니라 경제적 구분에 따른 분류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선택된 전형적인 24곳 농가의 다양한 범주들 사이의 비율이 해당 군을 통틀어 다양한 경제 집단들 사이의 비율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 분류는 다음과 같았다.
<도표 참조>
앞에서 볼 때, 전형적인 24곳 농가의 전체적인 평균이 해당 군 내 농가보다 전반적으로 운영 면에서 뛰어나다는 점은 의심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허구의 평균 대신에 경제적 범주를 택해보면, 제대로 된 비교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전형적인 농가들에서 일하는 농장 노동자들이 농사용 가축을 갖고 있지 못한 농민들보다 다소 아래에 위치해 있지만, 그들에 매우 근접해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가난한 농민들은 농사용 가축을 한 마리 보유한 농민들에 아주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소의 숫자는 가난한 농민들이 2.8마리, 말을 한 마리 보유한 농민들이 3.0마리로, 0.2마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중간층 농민은 농사용 가축을 두세 마리 보유한 농민들보다 약간 위에 위치해 있다(그들은 소는 약간 더 많고 땅은 약간 더 적다). 반면 부유한 농민들은 농사용 가축을 네 마리 이상 보유한 농민들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한 상태에서 그들에 근접해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군 전체에서 이윤이 나는 농사에 규칙적으로 종사하면서 외부 일자리를 찾을 필요가 없는 농민들이 10분의 1을 넘어선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가 있다(그들의 소득은——중요하게 언급할 가치가 있다——화폐로 표현되며, 따라서 상업적 성격의 농업을 전제로 한다). 대체로 그들은 고용된 노동자들의 일손을 빌려 농사를 짓는다. 전체 가구의 4분의 1 이상이 정규 농업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일시적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가구의 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반면 군 내 농민의 절반 이상은 가난하고(말이 없는 농민 26퍼센트+한 마리가 있는 농민 31.3퍼센트=57.3퍼센트로, 60퍼센트에 가깝다) 순전히 적자 상태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가차 없는 강탈에 꾸준히 시달린 끝에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고, 농민들의 약 4분의 1은 이미 농업보다는 임금노동에 더 많이 생계를 의지한다. 나머지 중간층 농민들은 어쨌든 정기적인 손실을 보면서 농사를 짓는데, 외부 수입으로 그걸 보충하고, 따라서 어쨌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
나는 크리벤코 선생이 제시한 그림이 실제 상황을 얼마나 왜곡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들 데이터를 아주 구체적으로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는 전체적인 평균을 가지고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고, 당연히 그 결과는 허구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거짓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전형적인 24가구의 예산 중에서) 한 명의 잘사는 농민의 총소득(+197.34루블)이 가난한 아홉 농가의 적자를 메워주고(-21.38×9=-192.42), 그래서 해당 군 내 10퍼센트의 부유한 농민들이 57퍼센트의 가난한 농민들의 적자를 상쇄해줄 뿐만 아니라 일정 정도 잉여를 산출해낸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리고 24곳 농가의 평균예산으로부터 44.14루블의 잉여를 이끌어낸——또는 신용 부채와 체납금 15.97루블을 차감한——크리벤코 선생은 그저 중간층과 중하층 농민들의 '쇠퇴'를 이야기할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마도 중간층 농민들을 언급할 때만 쇠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반면⁷⁸, 가난한 농민 대중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수탈, 즉 상대적으로 크고 튼튼하게 자리 잡은 농장을 소유한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이 집중된 결과로 인한 강탈을 목격한다.
이러한 후자의 상황을 무시했기 때문에 크리벤코 선생은 농가 예산들의 또 다른 아주 흥미로운 특징, 다시 말해 농민층의 분화가 국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들이 마찬가지로 증명해준다는 것을 관찰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최상위에서 밑바닥까지 훑어보면, 산업, 곧 주로 노동력의 판매로부터 얻는 소득의 중요성이 점점 커진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부유한 농민과 중간층 농민, 그리고 가난한 농민 각각의 총예산의 6.5퍼센트, 18.8퍼센트, 23.6퍼센트). 다른 한편으로 맨 밑바닥에서 최상위의 순서로 훑어보면, 농업의 상품적(이라기보다는 부르주아적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성격이 증가하고 처분되는 농산품의 비율이 늘어난다는 것을 목격한다. 각 범주별로 농업에서 거둬들이는 총소득은 a는 3,861.7/1,774.4, b는 3,163.8/899.9, c는 689.9/175.25다.
분모는 소득의 화폐 부문을 가리키는데,⁷⁹ 최상위 범주에서 맨 밑바닥으로 가면서 각각 45.9퍼센트, 28.3퍼센트, 25.4퍼센트를 차지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강탈당한 농민들로부터 가져간 생산수단이 어떻게 자본으로 변화하는지를 똑똑히 보게 된다.
그러한 방식으로는 크리벤코 선생이 활용된 자료로부터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었음은 아주 분명하다. 철도로 같은 여행한 그 지역 한 농민으로부터 들은 것에 기초해 노브고로드 주 농민 농업의 화폐적 성격을 묘사한 뒤에야 그는 "가능한 저렴하게 풀을 베" "그것을 가능한 좋은 가격에 팔기 위한" "특별한 능력들"을 "배양하고"(156쪽)⁸⁰ 한 가지에 물두하게끔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러한 환경, 즉 상품경제라는 정확한 결론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상품경제는 "상업적인 재능을 일깨우고 세련되게 만드는 학교"로서 기능한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 콜파예프(Kolpayev)와 데루노프(Derunov)⁸¹, 그 외 다른 유형의 피를 빨아먹는 착취자들이 되는⁸² 반면, 우직하고 둔한 사람들은 뒤처지고 퇴화해 궁핍해진 끝에 농장 노동자 대열로 들어섰다."(156쪽)
전혀 다른 조건들이 지배적인 주——농업이 주산업인 주(보로네시)——의 데이터에서도 도달한 결론은 정확히 같았다. 이를 본 사람들은 상품경제 체제가 나라 전반의 경제 생활의 주된 배경이자 특히 "공동체" "농민층"의 가장 큰 바탕으로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상황이 아주 명확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품경제만으로도 "인민들"과 "농민층"이 프롤레타리아(몰락해서 농장 노동자 대열에 들어선)와 부르주아지(피를 빨아먹는 착취자들)로 분화되고 있다는, 즉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두드러진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감히 말하지 못한다(그건 너무 "가혹한" 요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크리벤코 선생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그는 생산관계의 자본주의적 성격의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덧붙였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일부 사람들"의 관점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이루어졌을 테고, 그가 공허한 미사여구로 그들의 견해를 폐기처분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며, 그 역시 실질적인 문제의 분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 "일부 사람들"과의 싸움에 의도적으로 나서지 않는 바람에 그는 스스로 화폐경제가 "재능 있는" 착취자들과 "우직한" 농장 노동자들을 만들어내는 "학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것을 자본주의의 저항할 수 없는 임무라 여긴다."(음, 물론이지! 이러한 "학교"와 그것을 지배하는 "착취자들"에 맞선 투쟁을 그들의 관료와 지식인 끄나풀들과 함께 벌여나가야만 한다고 믿는 것은 자본주의가 극복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학교"와 그 착취자들에게 완전한 면죄부를 부여하고 반쪽짜리 자유주의적인 조치들의 힘을 빌려 자본주의의 산물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은 '인민의 벗들'의 진정한 속성이다!) "우리는 문제를 다소 다르게 바라본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는 의심할 나위 없이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이는 착취자들과 농장 노동자들의 학교에 대한 언급을 가리키는 대목이다) "그 역할이 모두를 아우르기에 너무나 결정적이어서 그 외 다른 어떤 요인도 국민 경제에서 발생하는 변화에는 책임이 없고, 미래에 다른 어떤 해결책도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160쪽)
과연 그렇군!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정확하고 직설적인 묘사 대신에, '농민층'이 왜 착취자들과 농장 노동자들로 갈라지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는 대신에, 크리벤코 선생은 "자본주의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알맹이 없는 문장으로 그 문제를 일축해버린다. 글쎄, 그렇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것이다.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려면 그는 다른 어떤 요인들이 '결정적'이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지적한 것 외에, 즉 착취자들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⁸³ 외에 다른 어떤 '해결책'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게 아니면 혹시 다음의 문장을 두고 자신이 보여주었다고 여기는 걸까? 우스울지 몰라도, '인민의 벗들'로부터 뭘 더 기대하겠는가.
"우리가 알다시피 맨 먼저 쇠락한 이들은 토지가 빈약한 취약 농가들이다." 즉 5데샤티나 미만의 분여지를 보유한 농가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15.7데샤티나의 분여지를 확보한 전형적인 국유지 농민 농장들은 안정성 면에서 차이가 난다. …… 실제로 그 정도 소득(80루블의 순수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들은 추가로 5데샤티나를 임차하지만, 그건 그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줄 뿐이다."
아니, 높은 '토지 빈곤'을 자본주의와 연결시키는 이런 '수정주의적 사고'는 과연 무엇에 해당하는가? 조금밖에 못 가진 사람들은 그마저도 잃어버리는 반면, 많이 가진(각각 15.7데샤티나씩)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걸 얻게 된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⁸⁴ 그러나 이는 일부 사람들은 몰락하고 다른 이들은 부유해진다는 말을 아무 의미 없이 바꿔 말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 어떤 것도 해명해주지 못하는(농민들이 분여지를 공짜로 받는 게 아니라 그걸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지 빈곤에 대한 의미 없는 이야기와 결별할 가장 좋은 시점이 다가왔다. 그것은 단지 과정만을 묘사해줄 뿐이며, 더군다나 부정확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토지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생산수단 전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며, 농민들이 토지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토지로부터 분리되고 있으며, 날로 성장하는 자본주의에 의해 수탈당하고 있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벤코 선생은 자신의 철학적인 담론을 마무리 지으며 "농업이 어떠한 상황 아래서도 '자연발생성'을 유지하며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의도는 없다"고 말한다(말이 또 바뀌는군! 화폐 경제라는 학교가 이미 존재하고, 그것은 교환을 전제로 하며, 그 결과 농업이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건 당신이 아니었던가? 왜 또 뭐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꺼냈을까 하겠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인위적으로 분리된 산업을 창출하는 것이 비이성적이며"(컴퓨터 파블로보의 수공업이 "분리"되어 있는지, 누가 그것을 "인위적으로" "창출"했으며, 언제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노동자를 땅과 생산도구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선행하고 그것을 증진시키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전부다."
여기서 그는 다시, 만약 노동자가 토지로부터 분리돼 착취자의 손아귀로 넘어간다면 이는 노동자가 '가난하기' 때문이며 착취자가 땅이 '많기' 때문이라는 심오한 사상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부류의 철학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결정적 요인으로 간주하는 '편협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난을 해준다! 나는 농민과 수공업자의 분화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한 번 더 고찰해보았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문제를 어떻게 묘사하고 설명하는지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관적 사회학자가 보기엔 농민들은 '가난해지는' 반면 '돈을 쫓는 이들'과 '착취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윤을 이끌어낸다'는 걸 의미하는 사실관계들이, 유물론자에게 있어서는 상품 생산 자체의 필요에 따른 상품 생산자들의 부르주아적 분화를 의미한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자산계급과 무산계급 사이의 투쟁이 공장에서 뿐만 아니라 머나면 오지 마을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논지, 모든 곳에서 이러한 투쟁은 상품경제의 결과로 등장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투쟁이라는 (앞서 1부에서 인용⁸⁵한) 논지의 근거로 작용하는 사실관계들이 어떠한 것들인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젬스트보 통계가 제공한 존경스러운 자료 덕분에 정확히 서술될 수 있었던 농민들과 수공업자들의 해체와 탈농민화는 러시아의 현실을 바라보는 사회민주주의적 인식, 다시 말해 농민과 수공업자가 그 단어의 '단정적인' 의미에서 소생산자, 곧 소부르주아라는 인식의 정확성의 실질적 증거를 제공해준다. 이러한 논지는 소생산자들이 살아가는 상품경제의 환경이나 그러한 환경 때문에 그들이 자본주의적으로 분화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옛 농민사회주의에 맞서는 것으로서의 노동계급 사회주의 이론의 핵심이라 불릴 수 있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를 진지하게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간에 자신의 주장을 여기에 집중시켜야 했을 뿐더러, 정치경제학의 시각에서 봤을 때 러시아가 상품경제 체제가 아니며, 그래서 농민층의 해체가 상품경제 체제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인민 대중의 강탈과 노동인민의 착취는 이 나라 사회(농민을 포함한) 경제의 자본주의적 구조인 부르주아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게나, 신사양반들!
내가 사회민주주의 이론의 실증적 증거로 택하기를 선호하는 것이 농민과 수공업 경제에 관한 데이터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만약 '인민의 벗들'의 관점을 비판하면서 내가 그들의 사고를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대조하는 데 그쳤더라면, 그건 유물론적 방법론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덧붙여 '인민주의적' 사고에 대해 설명하고, 이 나라의 현재 사회적·경제적 현실에서 그들의 물질적 토대를 증명해야만 한다. 이 나라 농민과 수공업자의 경제에 관한 예증과 사례들은 '농민'의 신망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인민의 벗들'이 농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들은 이 나라 농촌 경제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증명해주고, 따라서 '인민의 벗들'을 소부르주아의 이념가들로 분류하는 게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그것들은 이 나라 급진주의자들의 사상과 계획들이 소부르주아들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내준다. 그들의 계획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면 훨씬 더 분명해질 이런 연관관계는 도대체 급진적인 사상들이 왜 그토록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또한 그것은 '인민의 벗들'의 정치적 노예근성과, 기꺼이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의 태도 역시도 훌륭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가 아직 채 발달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그와 같은 경제학적 측면들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고찰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인민주의자들이 보통 자신들의 이론을 위한 자료를 끌어오리는 그런 경제학에 대한 연구와 서술은 사회민주주의 경향에 대해 이곳 인민들 사이에 아주 만연해 있는 반발의식에 실질적으로 대답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자본주의가 "인민의 시스템"과 모순된다는 일반적인 생각으로부터 더 나아가, 그리고 대규모 자본주의를 진보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강도 같은 현 체제에 맞서 싸우는 토대로 삼고 싶어하는 것이 다름 아닌 대규모 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이 나라 급진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농민 대중의 이익을 무시한 채 "모든 농민을 공장의 용광로로 밀어넣기를" 바란다는 등의 비난을 한다.
이 모든 주장들은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실제 있는 그대로 판단하면서도 시골 지역의 경우에는 '그렇지도 모른다'고 판단하는, 놀라우리만치 비논리적이고 이상한 과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당연히, 그들에게 실제 농촌과 그곳의 실제 경제 상태를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답변은 있을 수 없다.
농촌의 경제 환경을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러시아 농촌이 따로 떨어진 작은 지역들의 사회적·경제적 생활을 규정하는 작고 흩어진 시장들의(또는 중앙 시장의 작은 부문들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지역에서 우리는 시장이 규제하는 사회적·경제적 구조에 대체로 특징적인 모든 현상을 발견한다. 한때 동등하고 가부장적이었던 직접생산자들이 부자와 가난한 이들로 분화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며, 노동인민 주위에 그룹을 치고 그들에게서 생명소를 빨아가는 자본, 특히 상인자본의 부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급진주의자들이 제시한 농민 경제에 관한 묘사를 농촌의 경제 생활에 관한 정확한 1차 데이터와 비교해보면, 그들의 비판적 사고 체계에서는 각 지역의 시장에 때 지어 모여 있는 영세한 장사치들과 행상, 중개인들, 시장을 장악한 채 노동인민들을 가차 없이 억압하는 소착취자 무리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들은 대개 "더 이상 농민들은 없고 장사치들만 있다"는 언급 정도만으로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래, 그 말은 아주 옳다. '더 이상 농민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상인들' 모두를 뚜렷이 구별되는 집단, 즉 정확한 정치경제학 용어로 말하자면 영리 기업에 종사하고 그 정도가 어떻게든 간에 타인의 노동을 점유하는 사람들로 취급하려고 시도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 집단의 경제적 힘과 그들이 지역 전체의 경제 생활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정확히 수치로 표현하려 노력해보라. 그런 다음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다 팔고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더 이상 농민이 아니게 된' 사람들을 정반대 집단으로 설정해보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진지한 조사를 위한 기초적인 요구조건들을 충족시켜나가려 애쓰다 보면, 부르주아적 분화라는 아주 생생한 그림을 얻게 될 것이고 더 이상 "인민의 시스템"이라는 신화는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될 테니 말이다. 이런 소규모 시골 착취자들 무리는 끔찍한 세력을 대표한다. 특히 고립된 채 혼자 일하는 임금노동자를 억압하고, 그를 자신들에게 얽어매 일말의 구제받을 희망조차 앗아가기 때문에 끔찍하다. 그리고 앞서 묘사된 그 시스템의 특징인 낮은 노동생산성과 의사소통 수단의 부재에서 기인한 시골의 야만적인 환경에 비춰볼 때 그들에 의한 착취는 노동의 강탈일 뿐만 아니라 농촌에서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인간 존엄의 아시아적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제 이 실제의 시골을 우리의 자본주의와 비교해본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 나라 자본주의의 역할을 진보적이라 여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작고 흩어진 시장들을 전국적인 차원의 단일 시장으로 한데 끌어모으고, 선의를 가진 소규모 착취자 무리들을 대신해서 한 줌의 커다란 '조국의 대들보들'을 창조해내며, 노동을 사회화하고 그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한편, 지역 착취자들에 의한 노동인민의 예속을 박살내고 그들을 대규모 자본에 종속시킨다. 그리고 이때의 종속은 노동의 억압과 점진적인 소멸, 야만성, 신체를 손상당한 여성과 아이들 등 그 모든 공포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예속과 비교해볼 때 진보적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노동자계급의 의식을 각성시키고, 침묵하거나 일관성 없던 불만을 의식적인 투쟁으로 전환시키며, 흩뿌리진 채 벌어지던 사소하고 무분별한 반란을 모든 노동인민의 해방을 위한 조직화된 계급투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은 대규모 자본주의의 존재라는 바로 그 조건 자체로부터 동력이 생겨나며, 따라서 의심할 나위 없이 일정한 성공을 확신할 수 있다.
아무튼 농민 대중을 무시한다는 비난에 대한 응답으로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다음과 같은 말들을 인용함으로써 전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비판은 사슬을 장식하고 있던 가공의 꽃들을 뽑아버렸는데, 그것은 인간이 상상 속의 장식물이 벗겨진 족쇄를 그대로 차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슬을 벗어던져버리고 살아있는 꽃을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농촌을 장식한 가공의 꽃들을 뽑아버리고, 이상화와 환상에 맞서 싸우며 그것을 파괴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해나가고 있다. 농민 대중을 현재의 억압과 점진적인 소멸, 노예화 상태에 머무르지 않게 하고, 어디서나 노동인민을 속박하는 사슬의 정체가 무엇이며 그 사슬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프롤레타리아가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래서 그들이 그에 맞서 떨쳐일어나 사슬을 벗어던지고 현실의 꽃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민의 벗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그토록 극도로 혐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처한 위치 덕분에 스스로 계급의식을 획득하고 계급투쟁을 시작할 수 있게 된 노동인민의 대표들에게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와 같은 사상을 펼쳐놓는 순간, 그들은 농민들을 공장의 용광로로 밀어넣기를 원한다는 비난에 처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그들은 과연 어떤 이들인가?
'정부'와 '사회', 즉 도처에서 노동인민을 속박해온 부르주아 기관들에, 노동인민의 해방을 향한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도 이런 무대 없는 인종들이 건방지게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