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의미가 있을 결론

 

결론으로 들어가, 심층팔구 여러 명의 독자가 이미 품어보았음직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놓는 것도 어쩌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왜 저런 신사양반들과 이토록 긴 지면을 할애해 논쟁하였단 말인가? 그들이 기꺼이 반론이라 부르는 그 자유주의적인, 검열을 통과한 추잡한 주장들의 나열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 또는 '교양 있는'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이러한 맹공격으로부터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그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격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전체를 이뤄 하나로 녹아들어갔던 (예를 들어 체르니셉스키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 사회 발전의 시기가 아직은 되살아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지고 확실한 증거가 되고 있다. 러시아의 민주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 사이에는 사상적으로 심오한 질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오늘날 일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여전히 고수되면서 그들의 이론과 실천에 가장 해로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런 생각에는 전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사상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존재하며, 그래서 지금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그린 사실을 알아야 할 때, 민주주의자들의 사상과의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결별이 불가피하고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때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상이 태동했던 시절에 실제로 러시아 민주주의자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인민의 벗들'은 그런 비교를 위한 충분한 재료를 제공해준다.

 

이 점과 관련해 독일의 한 출판물(1893102중앙 사회 정책 신문 Sozialpolitisches Centralblatt¹²1편에 실린 러시아의 자본주의 발전에 관하여란 글)에서 니콜라이-온 선생의 공상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폈던 스트루베 선생을 크리벤코 선생이 공격하고 나선 사실은 아주 흥미롭다. 크리벤코 선생은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마을공동체와 분여지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국민적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그가 "전적으로 공상적인 본질"을 지닌다고 말하는)로 분류했다는 이유를 들어 스트루베 선생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와 연관 지은 그러한 끔찍한 비난에 얼마나 격분했던지, 우리의 훌륭한 필자는 다음과 같이 고함을 지르기에 이른다. "마을공동체와 분여지를 옹호한 이들이 과연 누구였던가? 농민들을 위해 규제를 만들고, 공동체와 농민의 경제적 독립을 개혁의 기초로 삼은 사람들 아니던가. 역사 연구자들과 동시대 삶을 연구하던 이들, 그리고 진지하고 존경받는 언론들 거의 대부분이 그런 원칙들을 지지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가 '()국민적 사회주의'라는 망상의 피해자들이란 말인가?"

 

존경하는 '인민의 벗'이여, 부디 진정하시게나! 그대는 사회주의와 연관 지은 지독한 비판에 겁먹은 나머지 스트루베 선생의 "하찮은 글"을 꼼꼼히 읽어보지도 않았나 보오. 실제로 "마을공동체와 분여지"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사회주의와 연관돼 있다고 비난하는 행위는 실로 부당한 일 아니겠소! 도대체 거기에 사회주의적인 측면이 뭐가 있다 말이오? 우리가 알다시피, 사회주의란 노동인민의 착취에 맞선 저항과 투쟁, 착취의 완전한 철폐를 위한 투쟁에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분여지를 옹호한다는 것"은 한때 농민들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던 모든 토지에 대해 그들이 이제 상환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토지대금 상환이 아니라 개혁 이전에 농민들이 보유했던 토지의 무상 보유를 지지한다 할지라도, 이곳 러시아에서처럼¹²¹ 서구 전역에서도 부르주아 사회의 토대가 됐던 게 다름 아닌 (봉건 시기에 차츰 진화했던) 농민의 토지소유권이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마을공동체를 옹호한다는 것", 즉 토지를 분배하는 관례적인 방식들에 경찰이 개입하는 행위를 반대하고 나선다는 것 역시도, 공동체 내에서 노동인민의 착취가 충분히 존재할 수 있고 또 발생하고 있다는 걸 누구나 아는 상황에서는 사회주의적이지 않다. 그것은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다른 의미로까지 확대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며, 만약 그게 옳다면 포베도노스체프(Pobedonostsev) 선생¹²² 또한 사회주의자로 분류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스트루베 선생은 그런 지독하고 부당한 처사에 잘못이 없다. 그는 인민주의자들의 "전국민적 사회주의라는 공상주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인민주의자들에 대한 반론으로서 플레하노프의 우리의 의견 차이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스트루베 선생이 인민주의자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플레하노프는 의심할 나위 없이 사회주의자들, 다시 말해 "진지하고 존경받는" 언론과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을 격렬히 비판했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크리벤코 선생은 인민주의자들을 겨냥한 비판을 마치 자신에게 가해진 비판인 것처럼 여길만한 이유가 없다. 하지만 만약 그가 자신이 신봉하고 있는 사조에 대한 스트루베 선생의 견해를 알고 싶어 안달이라면, 스트루베 선생의 글에 나온 아래의 단락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걸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에다 번역해 옮기지 않은 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해갈수록 방금 서술한 철학(인민주의 철학)은 그 토대를 상실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그 조짐이 목격돼온 타협¹²³이 가능하고 또 그것을 추구하는 무색무취의 개혁적 사조로 퇴조하든지, 실질적인 발전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그 뒤에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이론과 실질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든지, 달리 말해 더 이상 공상주의에 빠져 있지 않게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만약 크리벤코 선생이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타협이 가능한 사조의 시작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에게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이론적 견해들을 흘릴 듯하다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해당 잡지는 러시아의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인식을 인민주의 교리의 조각들로 짜맞추려는 한심한 시도를 대표하며, 그들의 정치 구상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기초해 소생산자들의 살림살이를 개선하고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있어 가장 특징적이고 의미심장한 현상들 가운데 하나는, 대략적으로 말해 인민주의가 소부르주아 기회주의로 타락해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루스코에 보가츠트보가 품은 구성의 실체——이민 규제, 토지 임차, 값싼 신용, 박물관, 창고, 기술 개선, 집단농장, 공동 토지 경작과 나머지 모든 것들——를 예로 들어보면, 봉건지주들의 기관지도 아니고 어음 신문¹²에 속하지도 않은 '진지하고 존경받는' 자유주의 언론 진영 전반에 그런 견해가 참으로 널리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런 모든 조치들이 필요하고 요긴하고 시급하며 '무해하다'는 생각은 지식인계급 전체에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고 또 아주 널리 퍼져 있다. 여러분은 모든 지방정부의 연구와 보고서들에 나온 서술과 신문 등에서 그런 견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것을 인민주의라고 간주한다면, 그 성공은 의심할 나위 없이 실로 엄청나고 명백하다.

 

물론 그것은 (과거 관례적인 의미에서의) 인민주의가 전혀 아니지만, 그 성공과 엄청난 파급 효과는 자유주의와 날카롭게 대립했던 사회혁명적 인민주의를 한낮 고양된 기회주의로 변형시키고 자유주의와 통합시켜 오로지 소부르주아의 이익만을 대변하도록 함으로써 인민주의의 품격을 떨어뜨린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 하겠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앞서 제시된 농민과 수공업자들의 분화라는 광경에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겠다. 이것은 결코 따로 떨어져 있거나 새로운 사실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단지 우리의 반대자들조차 그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던 농촌의 '착취자들''농장 노동자들''무리'를 정치경제학적 측면에서 표현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인민주의적' 조치들이 소부르주아를 강화시켜주는 데 기여할 뿐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또 그 외 다른 조치들(집단농장과 공동경작)도 그들 '무리' 자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보잘것없는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고, 자유주의 부르주아 계급이 유럽 전역에서 아주 친절하게 일궈놓았던 그런 유형의 비참한 실험으로 그치게 될 운명이다. 그러나 그와 똑같은 이유에서 예르몰로프(Yermolov)와 비테(Witte)¹²같은 자들조차 그런 유의 진보에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지를 보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인텔리겐처'가 혁명적 활동에서 손을 떼고 계급적대를 무마하기 위한 화해와 통합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만 한다면, 그러한 '실험들을 위한' 자금을 기꺼이 대출 것이다. 그러나 잘 부탁하오, 신사양반들!

 

그렇다면 인민주의를 이러한 타락으로 이끈 과정이 무엇이 있는지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인민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 이론은 아주 탄탄했다. 인민의 삶의 특수한 방식에 대한 관점에서 출발한 그것은 '공동체' 농민의 공산주의적 본능을 믿었고, 그 이유로 농민을 타고난 사회주의의 전사로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생활 현실에 대한 이론적 정교함과 확인 작업이 부족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의 특질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기초로 한 정치적 구상을 적용시킬 경험도 일천했다.

 

그래서 이 이론의 발전은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의 두 가지 길을 따라 나아가게 되었다. 이론적 작업은 주로 토지소유의 형태를 연구하는 작업으로 집중되었는데, 그들은 거기에서 공산주의의 기초적인 모습을 확인하길 원했다. 이 작업은 아주 다양한 종류의 방법으로 사실자료들을 생산해냈다. 그러나 주로 토지소유권의 형태와 관련이 된 그 자료들은 연구자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농촌의 경제 상황을 완전히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이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선 생산 관계들을 추려내고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데 필요한 믿을만한 사회과학상의 방법 이론이 부족했고, 다음으로는 수집된 사실 자료들이 농민 경제에 암울한 영향을 미치는 당면한 어려움들과 농민들의 당면 요구가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연구자들의 관심은 토지 빈곤, 높은 소작료, 권리의 부족, 억압받고 짓밟힌 농민들의 상황 같은 어려움들을 연구하는 데 집중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풍부한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고 연구되고 설명되어서, 만약 이 나라가 계급 국가가 아니라면, 정책이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요구'에 관한 공정한 토론에 의해 결정된다면 당연히 그런 어려움들을 제거할 필요성이 수천 번도 더 납득되었을 것이다. 사회와 국가를 '설득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었던 순진무구한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수집한 구체적인 사실들에 완전히 매몰된 나머지, 당면한 어려움들에 의해 사실상 궤멸 상태에 놓여 있던 경제의 주된 배경과 농촌의 정치경제적 구조는 망각하고 말았다. 자연히 그 결과는 자신들의 손에 경제를 틀어쥔 계급, 주어진 경제 시스템과 공동체 내 사회적·경제적 관계에서 유일하게 버틸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착취를 폐지하기 위한 토대와 버팀목이 돼줄 제도를 연구할 방향으로 시작됐던 이론 작업은 그러한 착취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는 바로 그 소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대변해줄 계획을 고안해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실천적인 혁명 활동 역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농민의 공산주의적 본능에 대한 믿음은 당연히 사회주의자들에게 정치를 외면하고 '인민 속으로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수많은 원기왕성하고 재능 있는 인물들이 이러한 과정을 이행하는 데 착수했지만, 현실은 그들로 하여금 농민의 본성이 공산주의적이리라는 발상이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는지만 깨닫게 했다. 결국 그들은 농민이 아니라 정부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결정하게 됐다. 그들의 모든 활동은 정부에 대항하는 투쟁에 집중되었으며, 그 투쟁은 지식인들에 의해서만 진행되었다. 간혹 거기에 노동자들이 가담할 뿐이었다. 처음에 이 투쟁은 사회주의의 이름 아래 전개되었으며, 인민은 사회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오로지 권력을 쟁취함으로써만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혁명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는 이론을 기초로 삼았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이 이론은 분명 완전히 신뢰를 잃어갔고, 정부에 맞선 나로도불치의 투쟁은 정치적 자유를 위한 급진주의자들의 투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활동 또한 출발점과는 정반대의 결과들로 이어졌다. 이 경우에 있어서도 급진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강령이 나타난 것이다. 엄밀히 말해 이 과정은 아직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미 명확한 한계가 정해져 있다. 인민주의가 이렇게 전개된 과정은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교리가 순전히 농민의 경제가 특수한 (공동체적) 시스템이라는 신화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실과 맞닥뜨리자 그 신화는 사라져버렸고, 농민사회주의는 소부르주아 농민의 급진적·민주적 표현으로 변해갔다.

 

여기서 민주주의자들의 진화 과정에 대한 몇 가지 예시들을 들어보겠다.

 

크리벤코 선생은 "어렴풋이 무르익어가는 순수 러시아산 해파리같이 훌륭한 정서들로만 가득 찬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희생이나 삶에서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행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간만이 생겨났다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훌륭한 뛰어난 것이었지만, 그것이 어디에 적용되는지를 잘 살펴보자. "후자의 경우, 나는 다음과 같이 짜증스러운 사례를 알고 있다. 러시아 남부에 형제에 대한 사랑과 선의로 돌돌 뭉친 몇몇 젊은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농민에게 지대한 관심과 존경을 보여주었으며, 농민들을 귀한 손님처럼 여겨 차와 비스킷을 가져다주고 그들과 똑같은 접시에 음식을 나눠 먹었다. 그들은 농민들에게 더 많은 대가를 지불했으며, 돈을 빌려주거나 사례금을 주거나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돈을 주기도 했다. 그들은 농민들에게 유럽의 제도와 노동자 연대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편 같은 지역에는 슈미트라는 젊은 독일인도 살고 있었는데, 토지관리인이라고는 하나 그냥 정원사에 더 가까웠던 그 남자는 어떤 휴머니즘적 사상도 지니고 있지 않은 전형적인 냉철한 독일인이었다." 3, 4년이 흐른 뒤, 그들은 갈라져 각자 다른 길을 갔다. 그리고 또 20년이 지난 뒤, 그 지역을 다시 찾은 필자는 "슈미트 씨가 농민들에게 포도 키우는 법을 가르쳐준 덕분에 이제 농민들은" 연간 75~100루블에 이르는 "어느 정도의 소득을 거두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정원사 슈미트를 슈미트 씨로 높여 부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농민들은 그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유지하게 됐고, 반면 "농민에게 친절한 감정만 갖고 있었을 뿐 실제로 아무것도 손에 쥐어주지 않았던 젊은이들은 기억에서조차 사라졌다."

 

계산해보면 앞에서 서술한 사례는 대략 1869~70, 즉 러시아 인민주의 성향의 사회주의자들이 "유럽의 제도를" 중에서도 가장 선진적이고 중요한 인터내셔널(the International)이라는 것을 러시아에 도입하려고 시도할 무렵에 벌어진 일들이었다.¹²

 

확실히 크리벤코 선생의 설명은 다소 너무 지나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그래서인지 그는 서둘러 다음과 같이 유보적인 단서를 달아놓기는 했다.

 

"물론 슈미트가 그 청년들보다 더 나았다고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그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역과 주민들에게 좀 더 오래도록 지속적인 인상을 남겨준 이유가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것이다."(이런 헛소리가 또 있을까?! "그가 중요한 무언가를 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반대로, 그의 행동은 아주 하찮고 아무런 대가도 치를 필요 없는 우연적인 행동에 불과했지만, 모두에게 확실히 필수적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다."

 

보다시피 이런 유보적인 설명은 아주 모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핵심은 그 모호함이 아니라, 필자가 그 두 활동 유형 사이에 근본적인 성향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의심해보지도 않은 채 한쪽의 성과 없는 활동을 다른 쪽의 성공과 대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동시대 민주주의자의 외관을 규정하는 데 있어 위의 사례가 아주 특징적인 것이 되게 해주는 중요한 핵심인 것이다.

 

농민들에게 "유럽의 제도와 노동자 연대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던 젊은이들은 분명 농민들에게 사회적인 삶의 틀을 바꾸고자 하는 염원을 불어넣기를 바랐을 것이다(내 결론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크리벤코 선생의 이야기를 통해 미뤄볼 때 이치에 맞는 결론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들은 농민들의 마음을 휘저어, 노동인민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낳는 동시대 사회에 맞서 농민들이 사회혁명의 대열에 동참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반면 "슈미트 씨"는 전문가로서 그저 타인의 일처리를 도와주고 싶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글쎄, 그런데도 목적이 정반대인 그 두 가지 활동 유형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마치 건물을 무너뜨리려다 실패한 사람을 그 건물을 보강하려 한 사람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제대로 이치에 맞는 비교를 하려면, 그는 인민 속으로 들어가 농민들에게 혁명의 기운을 북돋우려던 그 젊은 남녀들의 노력이 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는지를 들여다봤어야 한다. '농민층'이 정말로 노동인민과 착취받는 주민들을 대표한다고 믿었던 게 잘못이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농민층이 단일한 계급을 이루고(이는 농노제 몰락이라는 시대적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착각이다. 당시 농민층은 확실히 하나의 계급으로 등장했지만, 봉건사회의 계급일 뿐이었다) 있지 않고 그 내부에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형성되고 있어서였는지를 조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과거의 사회주의 이론들과 그 이론들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적 비판을 검토했었어야 한다. 그러나 크리벤코 선생은 그렇게 하는 대신에 "슈미트 씨"의 노력이 '확실히 필수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인민의 벗' 선생, 실례지만 우리가 열린 자세를 거듭 강조하는 이유가 뭐겠소? 누구든 의심을 품어보라는 것 아니오? 포도밭에 투자해 연간 75~100루블의 소득을 올리는 것보다 더 필수적인¹²게 뭐겠소?

 

크리벤코는 한 명의 농민이 포도밭에 투자한다면 그것은 고립된 활동에 불과하지만, 여러 명이 투자한다면 그것은 공동의 확산된 활동이고 작은 일거리를 실질적이고 적합한 노력으로 변화시키는 활동이라는 걸 계속해서 설명한다. 마치 A. N. 엥겔하트(Engelhardt)¹²가 자신의 사유지에 인산비료를 사용한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사용하게 만들었던 사례처럼 말이다.

 

, 이런 민주주의자, 정말 멋지지 않은가!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이번에는 농민 개혁에 대한 의견에서 가져온 사례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에 민주주의자의 한 사람이었던 체르니셉스키는 농민 개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침묵을 지켰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개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회적인 표현을 한 바 있다.

 

"내가 여러분의 저녁식사를 위한 식량을 보호하려는 조치들에 관심을 갖는다고 가정해보라. 만약 여러분을 향한 내 친절한 마음 덕분에 내가 그런 조치를 취하게 된다면, 그런 나의 열의는 그 식량이 여러분의 것이고 그렇게 준비된 저녁식사는 여러분에게 유익하고 이로울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한 것임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식량이 여러분들 소유가 아니고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식사비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이 글은 개혁 이전에 쓰인 것이다. 그러나 유자코프 선생을 비롯한 이들은 농민들에게 안위를 제공하는 것이 개혁의 근본원칙이라고 현재 주장한다) 엄청난 고초를 겪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 매겨져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됐을 때, 내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보라. 내가 그런 불편한 사실들을 알게 됐을 때,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 그 효용성을 보장해줄 조건들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에 골머리를 써인다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일부 사람들이 유리한 조건으로 소유권을 받게 되는 상황에 우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그들의 소유권 보유에 신경을 쓰겠는가? …… 그 식량이 내가 아끼는 친구에게 피해만 줄 거라면, 식량을 전부 잃어버리는 게 훨씬 더 낫다! 그것이 여러분을 몰락으로 이끌 뿐이라면, 그 일 전체를 그만두는 편이 훨씬 더 낫다!"

 

나는 체르니셉스키가 그 시대의 현실을 얼마나 깊이 있고 훌륭하게 이해했는지, 그가 농민들이 지불해야 할 상환금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러시아 사회계급들 간의 적대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단락들을 별도로 강조했다. 검열에 노출된 언론에서 그런 순수하게 혁명적인 생각들을 소상하게 설명할 줄 아는 그의 능력에 주목하는 것 역시도 중요하겠다. 그는 불법화된 저술들에서는 똑같은 내용의 글을 에두른 표현 없이 쓴 적이 있는데, 서문을 위한 서문에서 (체르니셉스키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설정한 인물인) 불긴(Volgin)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지주들의 정당의 손에 농민의 해방을 맡기시오. 그다지 별 차이도 없을 테니까."¹³그리고 지주들의 정당은 농민들에게 토지를 할당해주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차이가 엄청날 거라는 대화 상대방의 언급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답한다.

 

"아니, 차이는 별로 크지 않고 무의미할 정도일 거요. 만약 농민들이 상환금을 치르지 않고도 토지를 확보할 수 있다면, 그 차이는 엄청나겠지요.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서 물건을 가져가는 것과 그의 수중에 그대로 두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물건을 가져가면서 그에게 대금을 치른다면 완전히 똑같은 셈입니다. 지주 정당과 혁신주의자들의 구상 간의 유일한 차이는 전자가 더 단순하고 시간이 짧게 걸린다는 것뿐입니다. 차라리 그 편이 훨씬 더 나은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불필요한 요식 행위가 줄어든다면, 십중팔구 농민들의 부담도 덜할 겁니다. 돈을 가진 농민들은 땅을 살 것이고, 돈이 없는 농민들에게는 땅을 사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땅을 사라고 강요하는 건 그들을 몰락시킬 뿐입니다. 토지 상환금을 내리는 건 사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농민 개혁이 막 도입되고 있던 그 시대에(당시엔 서구 유럽에서조차 그것이 적절히 규명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부르주아적인 본질을 이렇게도 명확하게 꿰뚫어본다는 건 체르니셉스키 같은 사람의 비범한 재능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당시 이미 러시아 '사회''국가'가 노동인민과는 화해할 수 없을 만큼 적대적이었던 사회 계급들에 의해 지배되며 통치되고 있다는 사실과 농민층의 몰락과 강탈은 그들에 의해 명백히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체르니셉스키는 우리의 사회적 적대관계를 눈에 띄지 않게 가리는 정부의 존재가 노동인민의 조건을 훨씬 더 악화시키는 끔찍한 악마라는 사실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긴은 계속해서 "사실대로 말하자면, 농민들은 토지 없이 해방되는 편이 더 나을 것이오"라고 말한다(즉 이 나라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봉건지주들이 농노 소유주로서의 이해관계를 감춘 채 위선적인 절대주의 정부의 절충안 뒤에 숨는 대신 숨김없이 솔직하게 행동하고 마음속에 담은 생각들을 모두 털어놓는다면,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을 거라는 뜻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나는 자유주의자들이나 지주들이 농민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나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농민들이 해방되었는지 아닌지에 관해서도 신이 나서 흥분할 만한 이유를 전혀 찾을 수가 없구려. 내 생각엔 그건 별로 중요치가 않소. 차라리 지주들이 솔직해지면 더 좋겠단 말이오."

 

그리고 여기 '수신인 없는 편지들'에서 가져온 단락도 있다. "그들은 농민들을 해방시키라고 말한다. …… 그럴 만한 힘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 힘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만한 힘이 부족할 때 일에 달려드는 건 소용없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뻔히 보인다. 그들은 농민들을 해방시키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될까? 글쎄,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에 달려들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스스로 판단해보기 바란다.

 

그저 일을 그르치고, 결과는 끔찍할 것이다."¹³¹

 

체르니셉스키는 러시아의 봉건 관료제 국가가 농민들을 해방시킬 수 없다는 사실, 즉 봉건적인 농노 소유주들을 타도할 수 없다는 사실과 '끔찍한' 무언가, 다시 말해 자유주의자들과 지주들의 이해관계 사이에서 보잘것없는 타협(구입에 불과한 환수)만이 가능할 거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타협을 위해서는 안위와 자유라는 환상을 동원해 농민들을 기만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것은 실제로는 농민들을 몰락으로 이끌어 지주들에게 완전히 팔아먹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개혁에 저항하고 맹렬히 비난했으며, 그것이 실패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정부가 자유주의자들과 지주 사이의 졸타기에 꼼짝 묶여 추락함으로써 러시아가 공개적인 계급투쟁의 길에 올라서기를 원했다.

 

그러나 체르니셉스키의 훌륭한 예언이 현실화되고 지난 30년간의 역사가 그 모든 경제적·정치적 환상들을 가차 없이 드러내 보여준 오늘날,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자들'은 개혁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그것을 '인민의' 생산에 대한 허가로 여기며, 거기에서 노동인민에 적대적인 사회 계급들을 설득시킬 방안을 찾을 가능성의 증거를 끌어낼 궁리를 한다. 되풀이하건대, 농민 개혁을 향한 그들의 태도는 우리의 민주주의자들이 얼마나 뼛속 깊이 부르주아로 변신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증거다. 그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오히려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다.

 

이 대목에서 비교를 위해 1872년의 조국 연보를 한번 예로 들어볼까 한다. 나는 앞서 이미 "위대한 해방을 위한" 개혁이 있은 뒤 첫 10년간 러시아 사회가 이룩한 자유주의에 있어서의 (금권정치의 이해관계를 감춘)성공을 다룬 금권정치와 그 토대의 몇몇 구절들을 인용한 바 있다.

 

같은 글에서 바로 그 필자는 예전에는 개혁에 관해서 징징거리고 좋았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흐느끼는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사람들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고 쓴 적이 있다. "모두가 새로운 질서에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만족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어떻게 문학 "자체가 금권정치의 기관이 돼" "민주주의를 빙자하여" 금권정치의 이해관계와 열망을 옹호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주장을 조금 더 자세히 검토해보도록 하자. 필자는 개혁이 가져다준 새로운 질서에 "모두가" 기뻐한다는 사실과, 새로운 질서의 명백히 적대적인 부르주아 특성들에도 불구하고 "모두가"(물론 노동인민이 아닌 "사회""지식인계급"의 대표들이) 행복해하며 만족해한다는 사실에 불만이었다. 대중은 자유주의가 단지 노동인민 대중의 희생과 불리함을 당연히 그 대가로 한 "취득의 자유"를 가려줄 뿐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반대하고 나섰다. 그의 주장에서 가치가 있는 건 사회주의자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반대한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우리는 금권정치가 민주주의에 의해 가려진 데 대한 이러한 반대가 해당 잡지의 전반적인 논리와 모순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들은 농민 개혁 안에 부르주아적 특성들과 요소,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러시아의 지식인계급 및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러시아에 자본주의를 위한 토대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부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집단의 존재를 느끼고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러시아 사회 내의 적대를 감지한 조국 연보가 부르주아 자유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 그들은 선구적인 사회주의자들 모두가 공유했던 대의명분하에 투쟁을 벌인 셈이었다. 선구적 사회주의자들은 비록 적대성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적대성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만들어낸 사회구조 자체와 싸우기를 소망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국 연보는 진보적이었다(물론 프롤레타리아의 시각에서 볼 때 그랬다). 그런데 '인민의 벗들'은 이런 적대관계를 망각했고, 이 나라 신성 러시아의 순혈 부르주아들이 '민주주의의 외피 아래' 몸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모든 지각 능력을 잃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와의 관계에서) 반동적인 이유다. 그들은 적대관계에 대해 얼버무리고 넘어갈 뿐 아니라, 투쟁이 아닌 유화적인 '고양' 활동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신사양반들, 1860년대에 민주주의자로서 금권정치를 대표했던 말끔한 눈썹의 러시아 자유주의자가 1890년대에 접어들어 자신의 눈썹이 시민들의 근심으로 뒤덮였다는 이유만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이념가이기를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

 

현재의 사회적·경제적 관계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도 대규모 '획득의 자유', 즉 거대한 신용과 거대한 자본, 거대한 기술개선을 획득할 자유가 단지 소규모 신용과 소규모 자본, 소규모 기술 개선을 취득할 자유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유주의적, 다시 말해 부르주아적이기를 멈추었겠으?

 

거듭 말하건대, 그들은 이 나라 질서에서의 급진적인 변화나 급진적인 시각 변화의 영향에 따라 자신들의 견해를 바꾼게 아니다. 그들은 그저 망각했을 뿐이다.

 

한때 그들의 선배들을——이론의 불건전함과 순진무구함, 현실에 대한 공상적 견해에도 불구하고——진보적으로 만들었던 유일한 특성을 잃어버린 '인민의 벗들'은 그 모든 시간 동안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 러시아의 현실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분석은 차치하고서라도 지난 30년간의 러시아 정치 역사는 그들에게 많은 걸 가르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1860년대' 당시, 봉건 지주들의 권력은 차츰 무너지고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아주 결정적인 패배를 맛봤고, 그래서 슬그머니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고개를 쳐들었다. 진보, 과학, 우수성, 불의에 맞선 투쟁, 인민의 이익, 인민의 양심, 인민의 힘 등등에 관한 자유주의적 미사여구들이——오늘날 이 특별한 불황의 시기에 우리의 급진적 불평불만꾼들과 자유주의 입담꾼들이 살롱과 기념일 만찬과 잡지와 신문에서 토해내는 미사여구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여기저기 넘쳐났다. 자유주의자들은 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지만 타당한 기준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만큼 충분히 강력하다는 걸 입증했다. 당시에도 러시아에 '공개적인 계급투쟁의 밝은 빛'이 비친 건 아니었으나, 그 빛은 지금보다는 더 밝았고, 그래서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은 조금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독한 현실을 해명하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쪽을 택했던 노동인민의 관념론자들조차도 자유주의는 금권정치가 두른 외피일 뿐이며 새로운 질서는 곧 부르주아 질서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두가 가능했던 건 봉건 지주들이 무대에서 제거된 덕분이었다. 그들은 당시의 여전한 단순 폐해들로 관심을 분산시키지 않았고, (비교적) 순수한 형태의 새로운 질서가 목격되는 걸 막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대 우리 민주주의자들은 금권주의적 자유주의를 비난하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우리의 자본주의적 사회·경제구조 아래에서는 그것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고, 과거의 봉토제도와 비교해볼 때 새로운 삶의 체제가 갖는 진보적 성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 체제가 만들어낸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인 역할 역시 이해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 '자유''인간성'의 체제에 '코웃음을 치는 데' 그쳤을 뿐이고, 그 부르주아적 성격을 우연이라고 상상했으며, 다른 어떤 종류의 사회적 관계가 '인민의 시스템'에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거라 기대했다.

 

그후 역사는 그들에게 다른 사회적 관계들을 보여주었다. 개혁에 의해 터무니없이 이익이 손상되었을 뿐 완전히 궤멸되지는 않은 봉건 지주들은 (한동안) 되살아나 부르주아적 사회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생생히 보여주었고, 우리의 민주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순진무구한 (부르주아적인 감각할 수는 있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던) 민주주의를 사회민주주의로 진전시키고 변형시키는 대신 두려움에 사로잡혀 허우적대다가 자유주의자들로 퇴보한 다음 이제 자신들의 찰거머리가——즉 그들의 이론과 강령들이——'진지하고 존경받는 언론 전체'에 의해 공유된다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견잡을 수 없을 만큼 무분별하고 약탈한 반동의 형태로 보여주었다. 이는 사람들에게 아주 인상적인 교훈을 남겼을 것이고, 인민의 특별한 삶의 양식과 인민의 사회주의적 본능, 그리고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계급의 우연적 성격에 대한 옛 사회주의자들의 환상은 너무나 명백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눈 앞에서 펼쳐진 현실들을 똑바로 쳐다본 뒤, 러시아에는 부르주아와 소멸 직전의 봉건적 관계 말고는 다른 어떤 사회경제적 관계도 존재하지 않았고 또 존재하지 않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따라서 노동계급 운동을 거치는 것 말고는 사회주의로 향하는 길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민주주의자들은 거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으며, 소부르주아 사회주의라는 순진한 환상은 소부르주아 진보라는 실질적 온건함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오늘날 노동인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들로 자처하고 나선 이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이론은 분명 반동적이다. 그 이론들은 현재 러시아의 사회적·경제적 적대관계를 모호하게 하고, '향상', '개량' 등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 조치들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화해와 통합이 가능한 것처럼 주장한다. 그것들은 국가를 초계급적인 것, 착취받는 인민에게 진심 어린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그리기에 적합한 존재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반동적이다.

 

마지막으로 그 이론들은 단순히 투쟁의 필요성, 즉 해방을 위한 노동인민 스스로의 절박한 투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반동적이다. 예를 들어 '인민의 벗들'은 자기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노동자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저런,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사무실을 방문한 기술자 한 사람이 거기에서 '자본주의를 인민의 삶에 도입하기' 위한 '계획'을 거의 완벽하게 구성해냈나 보다.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소부르주아 사상 및 이론들과 단호하고 완전하게 결별해야 한다. 그것이 이 투쟁에서 얻을 수 있는 주요하고 쓸모 있는 교훈이다.

 

여기서 나는 소부르주아 사상과의 단절을 주장했지 '인민의 벗들'이나 그들의 사상과의 단절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그 이유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는 무언가와는 아예 단절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민의 벗들'은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사상들 가운데 하나의 경향을 대표할 뿐이다. 그리고 이 경우 내가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사상들, 남은 러시아 농민사회주의 사상들과 전체적으로 단절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남은 사상의 대리자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성장에 접목은커녕 오히려 반마르크스주의 운동이 그들로 하여금 소부르주아 사상들을 유달리 풍부하고 선명하게 표명하도록 유도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사상들을 동 시대 사회주의 및 러시아의 실상과 비교해보면, 그 사상들이 얼마나 시대에 뒤쳐져 있는지, 그리고 완전한 이론적 토대의 흔적을 모조리 상실한 채 한심한 절충주의와 가장 명백한 기회주의적 고양 프로그램의 단계로까지 전락했는지를 놀랄 만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물론 그게 남은 사회주의 사상 전반의 과실이 아니라 누구도 사회주의자로 분류해주지 않는 문제의 신사양반들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런 주장은 상당히 불합리하다. 나는 그런 남은 이론들은 퇴화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써왔다. 특히 그런 신사양반들에 대한 비판은 가급적 최대한으로 줄이고, 남은 러시아 사회주의의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신조들에 가능한 많은 비판의 공간을 할애하려고 이제껏 노력해왔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런 신조들을 부정확하거나 부적절하게 규정했다든지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이 있다는 걸 사회주의자들이 발견하게 된다면, 다음과 같이 아주 겸손한 요청으로 답변을 대신하고자 한다. "신사양반들, 부디 여러분이 직접 밝히고 제대로 충분히 설명해주시오!"

 

정말이지 사회주의자들과 논쟁할 기회를 갖는 것을 사회민주주의자들만큼 반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신사양반들이 직접적이고 끈질기며 단호한 도전을 해오지 않는데도 우리가 그들의 '논박'에 답하는 걸 기꺼이 할 리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우리가 이 신물 나는 진부한 자유주의적 미사여구와 속물적 훈계들을 읽고 또 읽어 억지로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게 불필요하다고 봐야 할까?

 

확실히 오늘날 그런 사상들이 옳다는 걸 입증하고 소상히 설명할 임무가 오로지 그 신사양반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나는 또한 내가 사회주의와 관련된 소부르주아 사상들과 단절할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데에도 여러분이 주목해주기를 부탁드린다. 우리가 검토한 소부르주아 이론들은 스스로 사회주의 이론이라고 주장하는 한 무조건 반동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속에는 사회주의적인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을, 즉 그 이론들은 모두 노동인민의 착취를 해명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고 따라서 그들의 해방을 위한 도구로 쓰일 수 없으며 사실상 소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그 이론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달라야 하고 그래서 우리는 '소부르주아 계급과 그들의 구성에 대한 노동계급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소부르주아 계급의 이중적 성격이 고려되지 않으면(러시아에서는 거대 부르주아 계급과 아직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소부르주아 계급 사이의 적대 때문에 이런 이중성이 특히 뚜렷하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보통의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내세우는 한, 다시 말해 중세시대와 농노제의 존속에 맞서 싸운다는 점에 있어서 진보적이다. 반면 또 그들은 소부르주아 계급으로서의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싸우고, 이 나라의 전반적인 발전을 부르주아 노선에 따라 지연시키고 되돌리려 애쓴다는 점에서는 반동적이다. 예를 들어 농민들을 감독하기 위한 여타 수많은 기획들뿐 아니라 악명 높은 분여지의 양도 불가 같은 식의 반동적 요구들은 노동인민을 보호한다는 그럴듯한 말로 대개 가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분명 그들의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며, 동시에 해방을 향한 노동인민의 투쟁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부르주아적 구상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들은 서로 엄격한 구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우리는 그 이론들이 어쨌든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부인하고 그 반동적인 측면과 맞서 싸워야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론들이 가지는 민주적인 측면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소부르주아 이론들을 절대적으로 거부하긴 하나 그것이 소부르주아들로 하여금 그들의 구상 속에 민주주의를 포함시키는 것까지 막아서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반대로 민주주의를 훨씬 더 강력하게 주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하나의 사례를 제시할까 한다. 앞서 우리는 소부르주아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이들의 이론적인 상투적 요소들을 언제나 형성해온 세 가지 주요 논지들, 곧 토지 빈곤, 높은 지불금, 당국의 폭정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악행들의 폐지 요구에는 사회주의적인 측면이 전혀 없다. 그것은 강탈과 착취를 조금도 해명해주지 못하며, 그런 악행들의 제거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억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억압을 더욱 가중시키는 중세의 찌꺼기를 없애줄 것이며, 자본을 상대로 한 노동자의 직접적인 투쟁을 촉진시켜줄 뿐 아니라, 그런 이유로 인해 민주적 요구로서 노동자들의 가장 활발한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지불금과 세금의 문제는 소부르주아만이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농민들이 내는 지불금은 많은 측면에서 볼 때 농노제의 유물일 뿐이다. 예를 들어 토지상환금은 즉시 무조건적으로 폐지되어야만 한다. 농민들과 소도시 사람들만이 지불하고 '상류층'에게는 면제되는 세금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경제적·정치적 침체를 야기하는 중세적 관계의 이 유물들을 폐지하려는 요구에 언제나 지지를 보낼 것이다. 토지 빈곤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적용될 수 있겠고 말이다. 이와 관련해 나는 그런 불평의 목소리가 가진 부르주아적 성격에 대해서도 이미 충분히 그 증거를 제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농민 개혁에 따른 토지 절취의 허용은 분명 지주들의 이익을 위해 농민들을 강탈함으로써 엄청난 반동 세력인 그들에게 직접적인(농민에게서 땅을 탈취해) 동시에 간접적으로(분여지를 구분하는 영리한 방식으로) 이바지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농민들에게서 빼앗아간 토지를 그들에게 즉각 되돌려줄 것과 봉건제도 및 전통의 보루인 토지소유권의 완전한 폐지를 아주 필사적으로 주장할 것이다. 토지의 국유화와 동시에 일어나는 후자의 경우에는 이미 이 나라에서 형성되고 있는 자본주의 농업 관계를 더욱 급속하고 풍부히 변창시킬 뿐일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사회주의적인 측면을 전혀 담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민주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토지귀족의 힘을 완전히 꺾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조치로서 아주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농민들이 수탈되고 착취받는 원인으로 농민들의 부족한 권리를 지목할 수 있는 건 유자코프와 V. V.를 따르는 자들만이 유일하다. 당국에 의한 농민 억압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며, 그것은 단순한 억압 그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농민들을, 토지귀족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한 '천한 무리'로 취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시민으로서의 일반적인 권리는 그들에게 특별한 호의로서만(예를 들어 이주¹³²) 베풀어질 뿐이며, 마치 농민들이 노역장 수용자들이라도 되는 양 하급관리조차 거드름을 피우며 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농민들의 시민적 권리의 완전한 회복과 모든 귀족 특권의 완전한 폐지, 농민에 대한 관리 감독의 철폐, 스스로의 일을 직접 알아서 할 수 있는 농민들의 권리를 조금도 거리낌 없이 지지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고수하는 러시아의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누구보다 자신들을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불리야 하며, 자신들의 활동에서 민주주의의 거대한 중요성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¹³³

 

러시아에서 중세적·()봉건제적 유물들은 (서구 유럽과 비교해볼 때)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그것들이 프롤레타리아트와 인민들을 억압하는 명백가 되어 모든 계급의 정치사상의 성장을 지연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봉건제도를 절대왕정, 사회적 신분제, 관료체제에 맞서는 투쟁이 노동자들에게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제도들이 얼마나 반동적인지, 자본에 의한 노동의 탄압을 어떻게 강화하는지, 노동인민들에게 어떤 모델적인 압력을 행사하는지, 어떻게 자본을 중세적 형태로 계속 머무르게 하는지, 노동의 착취에 관한 한 현대의 산업 형태에는 못 미치지만 해방을 위한 투쟁에 지독한 난관을 심어놓는지를 노동자들에게 최대한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이러한 반동의 기둥들¹³을 쓰러뜨리지 않고서는 부르주아 계급을 상대로 하여 성공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그것들이 존재하는 한, 러시아의 농촌 프롤레타리아는 언제까지나 짓밟히고 주눅 든 존재로서 영리하고 끈기 있는 저항 대신에 자포자기식의 불만소리밖에 할 줄 모르는 상태로 남아, 노동계급의 승리를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그들의 지지는 영원히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절대왕정과 반동적인 사회 신분 및 제도들에 맞서 급진적인 민주주의자들과 나란히 싸우는 것이 노동계급의 직접적인 의무인 이유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자들에게 그런 의무를 명심시켜줘야 할 것이며, 그런 제도들을 모두에 맞서 싸우는 것이 부르주아 계급을 상대로 한 투쟁을 촉진할 수단으로서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인식시키는 작업을 한시라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노동인민들의 주적, 즉 태생적으로는 순수하게 민주적이었으나 특히 이곳 러시아에서는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는 한편 노동자들을 억누르기 위해 반동들과 손잡고 노동계급 운동의 출현을 더 한층 방해하는 경향이 있는 자본을 상대로 한 승리의 길을 열어줄 전면적인 민주적 요구들의 성취가 노동자들에게 필요하다는 인식도 심어주어야 할 테고 말이다.

 

이제까지 이야기한 내용들로 절대왕정과 정치적 자유를 향한, 그리고 최근 들어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는 정치적 자유를 얻기 위한 모든 혁명 그룹들의 '연합''동맹'을 지향하는 경향¹³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태도를 정의 내리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경향은 다소 독특하고 특징적이다.

 

여기서 독특하다는 건, 이런저런 점에서 일치하는 명확한 계획을 지닌 명확한 하나의 그룹이나 여러 그룹들로부터 '동맹'을 위한 제안이 나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랬다면, 동맹의 문제가 각각의 따로 떨어진 경우에 맞게 연합한 그룹들의 대표들에 의해서 해결될 구체적인 문제가 되었을 것이고, 특별히 '연합'하려는 경향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향은 실제로 존재하고, 그야말로 과거로부터 표류해 아직 새로운 곳에 정박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절대주의 체제에 맞선 전사들이 여태껏 토대로 삼아왔던 이론은 명백히 무너져내리고 있고, 투쟁에 필수적인 연대와 조직을 위한 조건들을 파괴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이들 '연합 세력''동맹 지지자들'은 그런 이론을 창조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 그것을 절대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와 정치적 자유에 대한 요구로 축소시키는 동시에, 사회주의적인 문제와 비사회주의적인 문제를 포함한 다른 모든 문제들을 얼버무려 넘기는 거라 생각하는 듯하다. 통합을 향한 첫 번째 시도에서의 그런 순진한 오류는 필시 밑바닥부터 뒤집히게 되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특징적인 것은 이러한 '연합'의 경향이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인민주의가 정치적으로 봤을 때 급진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 내가 앞에서 개괄하려 했던 과정의 마지막 단계들 중 하나를 대표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된 기치 아래 모인 모든 비사회민주주의적 혁명 그룹들의 연합은 오직 러시아 예외주의라는 남은 편견을 끝장내기 위한 민주적 요구들을 담은 지속성 있는 강령이 마련됐을 때만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런 민주적 정당을 설립하는 것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유용한 발걸음이 될 거라는 걸 믿는다. 그리고 그들의 반인민주의 활동은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모든 편견과 신화를 뿌리째 뽑고 사회주의자들을 마르크스주의의 기치 아래 묶어내 다른 그룹들에 의한 민주적 정당의 설립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조직화를 통해 별도의 노동자 정당을 세우는 것이 필수적이라 여기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물론 그런 정당과 '연합할 수'는 없겠지만, 노동자들은 반동적인 제도들에 맞선 민주주의자들의 그 어떤 투쟁도 아주 강력하게 지지할 것이다.

 

인민주의가 가장 평범한 소부르주아 급진 이론으로 타락한——'인민의 벗들'이 아주 두드러진 증거다——사실은 우리의 사회적 관계의 적대적인 성격과 전체 노동인구의 해방을 위한 전사로서의 러시아 노동자의 역사적 임무를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절대주의 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고만을 그들 사이에 확산시킨 자들이 얼마나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부르주아 계급의 관념론자들까지 정치적 자유에 호의적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덕분이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을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을 독점하려 한다는 비난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이곳 러시아에서 노동인민에 대한 착취가 사회적 경제의 부르주아적 구성에 의해 설명되지 않고 토지 빈곤, 상환금, 또는 당국의 폭정에 의해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설명된다면, 가치의 형태와 부르주아 체제의 본질,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역할을 노동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이론이 완전히 자리 잡은 공장 노동자계급에도 속하지 못한 '인민' 대중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와 고용주의 관계(러시아의 자본주의는 정부에 의해 인위적으로 주입돼왔다)조차 설명해줄 수 없다면, 계급투쟁 이론을 노동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 이 나라 인민들이 자본주의와 그것이 만들어낸 프롤레타리아라는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 공산주의에 다다를 방법을 찾고자 한다면,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과 그 당연한 귀결——자본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를 열어젖힐 사람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역할——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분명 그런 조건에서 노동자에게 정치적 자유를 위해 싸우라고 요구하는 것은 진보적인 부르주아 계급을 위해 불구덩이에서 밤을 끄집어내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이유는 정치적 자유가 주되게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에 기여할 뿐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시켜주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늘 그렇듯, 인민주의자들과 나로도불치조차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 부르주아 계급을 상대로 하여……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이기 위한 조건을 용이하게 해줄 것이다. 나는 이를 자신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노동자들 사이에서만 혁명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경험적으로 확신하게 된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들 내에서 계속 소요를 일으키는 데 대한 반대 차원에서 일러두는 것이다. 그들 사회주의자들의 이론은 실천과 모순되며,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을 조직할 과업으로부터 노동자들을 흩어놓는 아주 심각한 잘못을 범하고 있다.¹³

 

부르주아 사회의 계급적대가 아직 제대로 성숙하지 않았고 농노제에 의해 억제되어 있는 시점에, 농노제가 지식인계급 전체의 일치된 반대와 투쟁을 불러옴으로써 그들 내에도 특별히 민주적인 측면이 있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상 사이의 간극은 전혀 깊지 않다는 환상을 빚어내는 시점에 떨쳐 일어난 것은 당연히 잘못이었다. 이제 경제 발전이 상당히 진행되어 예전에는 러시아 자본주의의 토대를 부정했던 사람들조차 이 나라가 자본주의 발전 경로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그런 환상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지식인계급'의 구성은 물질적 가치의 생산에 접어든 사회의 구성만큼이나 아주 뚜렷한 윤곽을 취하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는 자본가가 지배하고 다스리는 반면, 지식인계급 사이에서는 급속히 세를 불려가고 있는 출세주의자들과 부르주아 심부름꾼 무리가 방식을 정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지식인'은 그저 자족하며 받아들일 뿐이다. 이런 사실들을 부인할 수 없었던 우리의 급진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그걸 강하게 강조하고 그 부도덕함을 입증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비난을 가하고 틀렸음을 입증한 뒤…… 부끄럽게 만들려 애를 쏟는다. 부르주아 인텔리겐처가 자신이 부르주아적인 것을 부끄러워하도록 만들려는 이런 순진한 노력은, 우리의 소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인민의 몰락과 빈곤, 실업, 대중의 기아가 머지않았다는 이야기로 ('형님들'의 경험을 웅호하며) 부르주아들을 겁먹게 하려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부르주아 계급과 그 이론가들의 이러한 시도는 강불에 내던져지는 형벌에 처한 물고기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도를 넘기 시작한 자유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지식인계급'은 진보니, 과학이니, 진실이니, 인민이니 하는 무수한 표현들을 쏟아냈고, 불협화음과 우울, 낙담, 무관심이란 찾아볼 수 없이 민주주의로 온 심장이 불타올랐던 1860년대가 지나간 것을 비통해 한다.

 

이제는 그들의 특징이 된 단순함으로, 그들 신사양반들은 1860년대만 해도 의견일치가 지배적이었던 이유가 당시엔 존재하다가 이제는 사라져 되돌아올 수 없게 된 물질적 조건 때문에 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길 거부한다. 그때는 농노제가 모두를 똑같이 억눌렸고, 약간의 돈을 모아 편안하게 살기를 바랐던 농노 관리인이 있었으며, 지대를 받아내고 일일이 간섭하며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지주를 증오했던 기업형 농민이 있었다. 프롤레타리아화한 장원 농노와 빈곤에 빠진 농민은 상인에게 노예로 팔려갔으며, 이는 상인 제조업자와 노동자, 수공업자와 하청인에게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이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한 유일한 끈은 농노제에 대한 그들의 적개심이었다. 이런 와중에 그러한 의견일치 너머로 가장 날카로운 경제적 적대가 시작되었다. 그 적대가 너무나 거대하게 발전한 오늘날에조차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려면, 달콤한 환상에 얼마나 흠뻑 젖어 있어야 하는 걸까. 상황이 투쟁을 요구하는 시대에 의견일치가 존재하던 지난날로 돌아가고 싶어 눈물 흘리는 대신, 기꺼이 또는 마지못해 부르주아 계급의 신하가 되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에 서야 하는 시점이다.

 

만약 여러분이 '인민의 이익'에 관한 그럴듯하게 치장된 이야기를 믿는 걸 거부하고 좀 더 깊이 파고들어가본다면, 다양하고 순수한 진보적 조치들로 그들의(그 사람들 용어로는 "인민들의") 경제를 개선하고 지원하고 회복시키려는 꿈을 꾸는 철저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자들은 지배적인 생산관계하에서 그런 진보적 조치들이 끼칠 수 있는 유일한 효과는 대중의 프롤레타리아화를 더 한층 심화시키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지식인들의 계급적 성격을 드러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이 나라 소생산자들 역시 소부르주아에 불과하다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공고히 해준 데 대해 '인민의 벗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오랫동안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남은 환상과 신화들의 소멸을 불가피하게 재촉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인민의 벗들'이 이론들에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히고, 남용하고, 더럽힌 나머지, 그걸 간직해온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은 그것을 수정하거나 모두 포기하든지 아니면 그 신사양반들이 독점해 사용하게 내버려두든지 선택해야 하는 가혹한 딜레마에 처해 있다. '인민의 벗들'은 부유한 농민들이 개선된 농기구를 구입하고 있다며 의기양양하고 근엄하게 전세계에 선포하고, 카드놀이에 싫증난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줘야 한다며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확인한다. 그리고 같은 어조로 "인민의 시스템""지식인계급"을 이야기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잘난 체하는 과장된 표현들로 드높은 이상과 삶의 문제들의 이상적인 치유를 입에 올린다!

 

사회주의적 지식인계급은 자신들의 환상을 포기하고, 희망으로 바라는 러시아의 발전이 아닌 실질적인 발전, 그리고 있음직한 사회경제적 관계가 아닌 현실적인 관계의 지지를 추구하기 시작할 때에만 내실 있는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들의 이론적 활동은 러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경제적 적대와 그 연관성, 그리고 연속적인 발전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로 향해야만 한다. 그들은 정치역사와 법률 시스템의 특성, 또는 기존에 확립된 이론적 편견에 의해 언제나 감춰져왔던 적대를 드러내주어야 할 것이며, 명확한 생산관계 시스템으로서 우리의 현실을 하나의 완전한 그림으로 나타내주어야 하며, 현 체제에서는 노동인민의 착취와 강탈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경제 발전으로 표현된 현 체제에서 빠져나갈 길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에 기초한 이런 이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에 걸맞은 해답을 제공해주어야 할 것이며, 만약 그것이 과학이 요구하는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있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저항적 사고가 깨어날 때마다 반드시 그것을 사회민주주의의 바다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는 데 있어 더 큰 진전이 이루어질수록 사회민주주의는 더 빠르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현 체제의 가장 교활한 수호자들조차 프롤레타리아트 사상의 각성을 막을 수는 없다. 현 체제 자체가 필연적이고 불가피하게 생산자들의 가장 극심한 강탈과 프롤레타리아 및 그 예비군의 끊임없는 성장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 부의 진척과 생산력의 거대한 성장,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한 노동의 사회화와 나란히 병행될 것이다. 이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기까지 아무리 할 일이 많다 하더라도, 사회주의자들은 그걸 해내고야 말 것이다. 모든 계획에 있어 실질적 과정의 엄밀한 공식화를 요구하는 유일하게 과학적인 방법론이라 할 수 있는 유물론이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그 사상들을 채택한 사회민주주의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보장한다. 사회민주주의의 성공은 이 나라 자유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을 뒤흔들어 놓아, 어떤 마르크스주의자가 말했던 것처럼 그들이 펴내는 월간지들도 이제는 더 이상 따분하지가 않을 정도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적 활동의 필요성과 중요성, 방대함을 강조함에 있어서 나는 그 활동이 실천적 활동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는 결코 말하고 싶지 않다.¹³전자가 완성될 때까지 후자를 연기해야 할 이유는 많지 않다.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을 승배하는 사람들이나 공상적 사회주의의 추종자들만이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의 임무가 나라를 위해 (현재의) '발전 경로'(와는) '다른 경로'를 추구하는 것이라 여긴다면, 당연히 천재적인 철학자들이 그 '다른 경로'를 발견하고 가리킬 때에만 실천 활동이 가능해질 테고, 거꾸로 말하면 그 경로가 포착되고 표시되기만 하면 실천 활동은 그냥 끝을 맺게 된다. 그때부터는 '새로이 발견된' '다른 경로'를 따라 '조국'을 안내할 사람들의 역할이 시작될 테니 말이다. 반면 사회주의자들의 임무가 현재의 사회적·경제적 발전의 실질적인 길을 가로막고서 실질적이고 진정한 적들에 맞서 현실의 투쟁을 벌이는 프롤레타리아의 이념적 지도부 역할이라고 할 때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 상황에서의 이론 활동과 실천 활동은, 독일의 유명한 사회민주주의자 리프크네히트(Liebknecht)가 적절히 표현한 다음과 같은 말로 수렴된다.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앞서 말한 이론적 활동 없이는 사상적 지도자가 될 수 없듯이, 이론 활동을 대의의 요청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노동자들 사이에서 그 이론의 결과를 확산시켜 그들의 조직화를 돕지 못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과업의 제시는 사회주의자 그룹들이 아주 흔히 겪는 교조주의와 종파주의로부터 사회민주주의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교리의 최고이자 유일한 기준이 실제적인 사회적·경제적 발전 과정과 일치하는 곳에서는 교조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있을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의 조직화를 촉진하는 것이 그 임무가 되고, 따라서 '지식인계급' 내부에서 특정한 지도자들을 내오는 것이 불필요해질 때 역시 종파주의가 생겨날 수 없다.

 

그러므로 다양한 이론적 문제들에 관해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치 활동 방식은 그 그룹이 생겨난 이래로 변함없이 유지돼왔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정치적 활동은 러시아에서 노동계급 운동의 조직화와 발전을 촉진하고, 그 운동을 현재와 같이 지도 사상도 없이 간헐적으로 시위와 '폭동'과 파업을 벌이는 수준에서 부르주아 체제를 겨냥한 러시아 노동계급 전체의 조직화된 투쟁과 착취자들로부터 빼앗긴 것을 되찾아오는 활동, 노동인민의 억압에 기초한 사회 체제를 폐지하는 운동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또한 이러한 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러시아 피착취 노동인민의 유일하고도 자연스러운 대표는 러시아 노동자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공통된 확신이다.¹³

 

여기서 자연스럽다는 건, 소멸 직전에 있는 농노 경제의 자투리들을 무시한다면 러시아 노동인민에 대한 착취가 사실상 어디에서나 자본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생산자 대중에 대한 착취는 소규모로 흩어져 있고 덜 발달되어 있지만, 공장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는 대규모이며 사회화되어 있고 집중되어 있다. 생산자들이 받는 착취는 여전히 중세적 형태와 다양한 정치적·법적·관습적인 뒷과 술수와 장치들에 얽혀 있어, 노동인민과 그들의 사상가들이 노동인민을 억압하는 체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을 방해하고 그 체제에서 벗어날 방안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알 수 없게 한다. 반대로 공장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전혀 혼동할 필요가 없을 만큼 순수한 형태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완전히 발전해 있는 상태다. 노동자는 자신이 자본에 의해 억압하고 있으며 부르주아 계급을 상대로 하여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직접적인 경제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물질적 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그 투쟁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요구하며, 개개인이 아닌 하나의 계급에 맞서는 전쟁, 공장에서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노동인민을 억압하고 찢밟는 계급을 상대로 하는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공장 노동자가 착취받는 인민의 대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대표가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에서 자신의 임무를 계속 수행하게 하기 위해 '관점들'로 그를 열광시킬 필요는 전혀 없다. 단지 필요한 건 그에게 자신의 위치를 이해시키는 것, 그를 억압하는 체제의 정치경제적 구조와 그 체제에서는 계급적대가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것뿐이다. 자본주의적 관계의 일반적 체제에서 공장 노동자의 이러한 지위는 그를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한 유일한 전사로 만든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의 높은 발전 단계인 대규모 기계 공업만이 그 투쟁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과 사회 세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발전의 형태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 물질적 조건이 부재한 다른 모든 부문에서는 생산이 수천 개의 조그마한 사업장들로 산재돼 있고 (가장 평등한 공동체 토지소유 형태 아래서조차 기업들로 분산된다), 대부분의 경우 착취받는 자들이 여전히 조그마한 사업장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이 맞서 싸워야 할 바로 그 부르주아 체제에 묶여 있다. 이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회 세력이 발전하는 걸 지연시키고 방해한다. 흩어져 있고 개별적이며 사소한 착취는 노동인민을 하나의 지역에 묶어놓은 채 그들을 분리시키고, 그들이 계급적 연대에 눈을 뜨는 걸 막으며, 억압이 몇몇 특정 개인이 아닌 전체 경제 시스템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이루어질 그들의 단결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반대로 대규모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과거 사회와 특정 지역 및 특정 착취자와 모든 노동자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끊어놓고,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며, 그들을 사고하게 만들 뿐 아니라 조직화된 투쟁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에 놓이게 한다. 그러므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모든 관심과 활동을 집중시켜야 할 대상은 바로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의 선진적 대표자들이 과학적 사회주의와 러시아 노동자의 역사적 임무에 통달할 때, 그러한 사상들이 널리 확산될 때, 그리고 현재 드문드문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경제 전투를 의식적인 계급투쟁으로 전화시키기 위한 안정적인 조직이 노동자들 사이에 형성될 때, 바로 그때 모든 민주주의적 분파들의 최선두에 선 러시아 노동자들이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열려 있는 정치투쟁의 넓은 길을 따라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나란히)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 공산주의 혁명의 승리로 이끌게 될 것이다.

 

1894년 봄과 여름에 집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