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벗들의 정치 강령을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인민의 벗들'의 이론적 견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 듯하니, 이제부터는 그들의 정치 강령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그들은 무슨 수로 자기들이 '불을 끄겠다'고 나서는 걸까? 그들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제안 대신에 어떤 활로를 제시하고 있을까?

 

유자코프 선생은 농업부라는 제목의 글(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0)에서 "농민은행의 개편, 식민화 부서의 설립, 인민 농업을 위한 국유지 토지 임대차의 규제 …… 토지 임대의 연구와 규제 등이 인민 농업을 회복시키고 막 생겨나는 금권정치의 경제적 폭력으로부터 인민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경제 발전의 문제점들이란 글에서는 "인민 농업의 회복"을 위한 이러한 계획들이 뒤이은 "최초의, 그러나 필수적인 조치들"에 의해 보완된다고 밝혔는데, "마을공동체에 당장 지장을 주는 모든 규제의 제거, 보호감독의 면제, 공동 경작의 채택(농업의 사회화), 땅에서 얻는 원료의 공동체 가공 개발" 같은 조치들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크리벤코 선생과 카리세프(Karyshev) 선생은 여기에다 "저금리 신용, 집단 농장 형태의 농업, 보장된 시장, 고용주들의 이윤을 없앨 가능성"(이는 나중에 따로 다루게 될 것이다), "값싼 엔진을 비롯한 기술 혁신의 창안", 마지막으로 "박물관, 창고, 대리점"을 덧붙이고 있다.

 

이와 같은 강령을 검토해보면, 이 신사양반들이 현대 사회의 입장을(즉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채로 자본주의 체제의 입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을 고치고 끼워맞춰서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모든 진보적인 조치들——저금리 신용, 기계 개량, 은행 등——은 부르주아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어떠한 개혁도 쓸모가 없고, 신용, 이민, 세금 개혁, 모든 토지의 농민에게로의 이전은 어느 것 하나 눈에 띄게 바꾸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반대로 지금처럼 과도한 '보호감독'과 봉건적 부과금의 존속, 농민의 토지 예속 등에 의해 지체된 자본주의 경제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갈 거라던 니콜라이-온의 말은——이는 그의 가장 귀중한 이론들 중 하나로, '인민의 벗들'은 이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지극히 옳았다. 그는 바실치코프 왕자(Prince Vasilchikov, 사상적으로 의심의 여지 없는 '인민의 벗')처럼 신용의 확대, 발전을 소망하는 경제학자들은 부르주아 같은 "자유주의적인 것"을 바라면서 "자본주의 관계의 발전과 강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 ('농민층 내의') 생산 관계의 적대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러한 적대를 공개적인 장으로 끌어내려 애쓰거나 적대의 결과로 예속화된 사람들 편에 합류해 그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을 도우려 하기보다는 모든 이를 만족시킬 만한 조치들로 투쟁을 멈추게 함으로써 화해와 통합을 이루기를 꿈꾼다. 이런 모든 조치들의 결과물은 당연히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종류의 신용⁸⁷, 개량, 은행 그리고 유사한 '진보적' 조치들이 오로지 적절히 운영되고 틀이 잡힌 농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확실한 '저축'을 보유한 사람들, 즉 극소수 소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만 활용 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하려면 앞서 제시된 분화의 사례들을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농민은행과 유사 기관들을 아무리 개편한다 할지라도, 그 동안 빼앗겨왔고 또 계속 빼앗기고 있는 인민 대중 입장에서는 적절한 농업 수단은 물론이고 생계를 이을 수단조차 부족하다는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사실을 조금도 바꿔놓지 못할 것이다.

 

'집단 농장''공동 경작'도 마찬가지다. 유자코프 선생은 공동 경작을 가리켜 "농업의 사회화"라고 불렀다. 물론 이는 아주 웃기는 이야기로, 사회화는 단일 마을의 경계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생산이 조직되는 걸 요구하고, 생산수단을 독점해 현재 러시아의 사회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착취자들'의 재산 몰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시시한 속물적인 훈계가 아닌 투쟁과 투쟁, 또 투쟁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들의 그런 조치들이 온건하고 리버럴한 반쪽짜리 조치들로 변모해 인정 많은 부르주아의 판대함에 근근이 연명해가는 동안, 피착취자들로 하여금 투쟁보다는 몇몇 개인들 차원에서 가능한 개량적 조치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함으로써 훨씬 더 많은 해악을 끼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다. 그들 신사양반들이 러시아인의 삶에서의 적대를 숨기기 위해 얼마나 터무니없는 시도를 하는지는——물론 현재의 투쟁을 끝내려는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그리는 걸 텐데, 지옥으로 가는 길을 닦는 거나 다름 없다——크리벤코 선생의 다음 주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인텔리겐처가 공장주들의 기업을 지휘하자, 그들은 대중 산업을 지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철학 전체는, 투쟁과 착취가 존재하지만 만약…… 만약 착취자들이 없다면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짖어대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연 필자인 크리벤코 선생은 이런 쓸데없는 문구로 무슨 뜻을 전달하려던 것이었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러시아의 대학과 기타 교육기관들은 오로지 자신들을 먹여 살려줄 누군가를 찾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는 '인텔리겐처'라는 상표를 찍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오늘날 러시아에서 이러한 '인텔리겐처'를 지탱할 수단을 소유한 건 오직 소수 부르주아뿐이란 현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인민의 벗들'이 부르주아 계급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까닭에 러시아의 부르주아 지식인계급이 사라지게 될 거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 만약 그들이 부르주아 지식인계급이 아니라면 '그렇지도 모른다.' 그들은 부르주아 지식인계급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 러시아에 부르주아 계급도, 자본주의도 없다면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만약''그리고'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데 만족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신사양반들은 자본주의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보태는 걸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잘못된 무언가를 들여다보기를 철저히 거부하고 있다. 만약 일정한 '결함들'이 제거된다면, 그들로서는 자본주의하에서 살아가는 게 어쩌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벤코 선생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또 어떤가.

 

"자본주의 생산과 산업의 자본주의화는 공장제 수공업이 인민들로부터 오로지 결별만 하는 출구가 결코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한 인민들의 삶으로 들어와 농업과 원료 산업으로 더 가깝게 접근할 수도 있다.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성사될 수 있고, 그런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161)

 

크리벤코 선생은 미하일롭스키 선생과 비교해봤을 때, 예를 들어 솔직함과 단도직입적인 면 같은 수많은 장점들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주제를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고 꼼지락대기만 하다가 부드럽고 미려한 문장들로 지면을 채운다면, 사업가 스타일의 실용적 인물인 크리벤코 선생은 직설적으로 비판을 하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신의 터무니없는 견해 일체를 거리낌 없이 독자 앞에 펼쳐놓는다. "자본주의는 인민의 삶으로 들어올 수 있다." 세상에나! 말인즉슨, 노동인민이 생산수단과 결별하지 않고서도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건 확실히 마음에 드는 상황이다. 적어도 지금 '인민의 벗들'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아주 명확해졌으니 말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없는 상품경제, 강탈도 착취도 없이 인간적인 지주와 자유주의적인 관료들의 팔 아래서 평화롭게 무위도식하는 소부르주아 계급만이 있는 자본주의를 원한다. 러시아에 혜택을 줄 의도를 지닌 부서 관료들의 진지한 태도에 힘입은 그들은 늑대가 욕심을 감추고 양이 가죽을 감추듯 자신들의 속셈을 어떻게 감출지 궁리를 시작한다. 그래서 그 속셈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알기 위해서는 동일한 필자의 글('우리의 문화 용병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2)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 글에서 크리벤코 선생은 "집단농장과 국유 형태의 산업은 현 상황에서 그다지 품어볼 만한 상상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다음의 구상은 가능하겠다"라고 주장하며——확실히 그에게 '실질적인 경제 문제들을 해결'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인상이 느껴진다——, 소액(100루블을 넘지 않는)의 지분으로 한 합자회사를 통해 돈 강 지역을 기술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사무실을 방문한 어느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꺼낸다. 필자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권유를 받게 된다. "지분은 사적인 개인들이 아니라 마을공동체 소유가 될 겁니다. 회사에 고용된 마을 주민의 일부는 통상적인 임금을 받게 되고, 마을공동체는 토지와의 연결고리를 유지시켜준다는 보장을 해주는 거죠."

 

정말 경영의 귀재 아닌가? 인민의 삶에 자본주의가 존경스러우리만치 단순하고 쉽게 도입되고, 그 파멸적인 특성들이 모두 제거되는 셈이니 말이다! 단지 요구되는 거라곤 시골 부자들이 공동체를 통해 지분⁸⁸을 사들이고 기업으로부터 배당금을 받는 것이 전부며, 그 속에서 공동체 "주민의 일부"는 일자리를 얻고 토지와의 유대관계를 보장받는다. 그런 유대관계는 토지로부터 생계를 보장받기에는 불충분하지만(아니면 누가 '통상적인 임금'을 위해 일하러 가겠는가?), 주민들을 지역에 묶어둔 채 지역 자본주의 기업의 노예로 만들고 그들이 주인도 바꾸지 못하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여기서 주인이란 곧 자본가를 말하는 것으로,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사람을 달리 부를 방도가 없기 때문에 아주 타당한 표현이라 하겠다.

 

독자들은 일고의 관심도 기울일 가치가 없어 보이는 이런 헛소리에 이미 이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한 나에게 짜증을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헛소리일지라도 그것을 연구할 가치와 필요는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러시아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적·경제적 관계들을 반영하고 있고, 그 결과 이 나라에 아주 널리 퍼져 있는 사회 통념들 가운데 하나이기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앞으로 오랫동안 생각해봐야 할 문제기 때문이다. 핵심은 러시아에서 봉건적 생산양식으로부터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의 전환이 토지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하고 지주에게 소작료를 지불할 수 없게 된(바로 이 순간까지도 농민은 소작료를 지불하고 있다) 농민으로 하여금 예전의 좋았던 시절에는 독립적인 형태를 띠었거나(예를 들어 수레꾼 같은) 독립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런 유형의 고용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좋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노동이라 여겨졌던 '외부 고용'에 어쩔 수 없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고, 또 계속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농민들은 오늘날과 비교해볼 때 일정 정도 안녕을 보장받았었다. 심만 땅에 달하는 귀족경찰들과 러시아의 토지를 끌어모으던 초창기 부르주아들의 보호 아래서 평온하고도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농노로서의 안녕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민의 벗들'은 그러한 시스템의 그늘을 간단히 무시한 채 이상화하고, 환상을 품는다. 여기서 내가 '환상'이라고 표현한 건, 그 시스템이 오래전에 작동을 멈춰버렸을 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대규모 재산 강탈을 불러온, 그리고 과거의 '고용'을 족쇄에서 풀려난 '일손들'에 대한 착취로 변화시킨 자본주의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파괴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부르주아 기사들은 농민과 토지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길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연결고리를 단독으로 보장해주는 농노제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농노제는 그 연결고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품생산과 자본주의에 의해서 이미 붕괴되었다. 그들은 농민을 토지로부터 멀리 내쫓지 않는 외부 고용, ——노동이 시장을 위해 이루어지는 반면——경쟁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자본을 창출하지 않으며 인민 대중을 자본의 노예로 만들지 않는 외부 고용을 바란다.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에나 들어맞을 법한 이런 주장에 대해, 그들은 여기저기서 좋은 것을 '취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물론 실제로는 이러한 유치한 바람은 오직 현실을 무시하는 반동적인 환상, 새로운 시스템의 정말로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측면들을 이해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력, 반은 농노, 반은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과거의 훌륭한 시스템, 즉 착취와 억압의 공포로 가득 차고 벗어날 가능성이 없는 시스템을 영속화하는 조치들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질 뿐이다.

 

반동들 사이에서 '인민의 벗들'을 구분해주는 이런 설명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두 가지 사례들을 인용해보겠다.

 

모스크바 젬스트보 통계에서 우리는 (포돌스크 군에 사는) K 여사라는 사람의 농장에 대한 묘사를 읽을 수 있는데,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것은(묘사 자체가 아니라 농장이) 모스크바의 통계학자들과 V. V. 선생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V. V. 선생이 어느 잡지 기고문에서 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V. 오를로프(Orlov) 선생은 이 유명한 K 여사의 농장을 '농업이 건강한 상태에 있고, 개인 토지소유주들의 농장들도 더 잘 운영되고 있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논지의 '확실한 실제 확인 사례'로 여겼다. 그 여인의 농장에 대한 오를로프의 주장에 비춰볼 때, 그녀는 겨울에 밀가루를 꿔주는 대가로 자신의 땅을 경작하는 지역 농민들의 노동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듯했다. 여인은 농민들에게 특히나 친절하게 굴며 도움을 주었고, 그래서 농민들은 읍에서 가장 잘사는 축에 속할 뿐 아니라 "거의 새로운 추수철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예전에는 성 니콜라스 날까지도 버티지 못했다)" 있을 만큼 충분한 곡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의문은 바로 이 대목에서 고개를 든다. N. 카블루코프(Kablukov)(5, 175)와 오를로프 선생(2, 55~9쪽 등)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방식''농민과 지주 간의 적대적 이해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왜냐하면 K 여사는 농민들의 노동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착취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K 여사는 착취받는 사람들을 향한 자신의 친절함 뒤에 감춰진 착취를 보지 못한 데 대해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오를로프는 그렇지 않다. 그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보이는 친절함에 황홀해하며 공장 소유주가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그들에게 잡화점과 주거 등을 제공해주는 사례들을 열광적으로 들려주는 서구의 박애주의자들과 정확히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적대적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런 '사실들'의 존재로부터 결론을 끌어오는 것은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첫 번째 핵심이다.

 

두 번째 핵심은 우리가 오를로프 선생의 설명을 통해 K 여사의 농민들이 '뛰어난 수확고 덕분에(그 여주인은 좋은 씨앗을 제공했다) 가축을 확보했고 '유복한' 농장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이들 '유복한 농민들'"거의"가 아니라 완전히 번창하게 되었고, '다수'가 아닌 그들 모두가 새로운 추수가 "거의" 되돌아올 때까지가 아니라 정확히 그 시기까지 충분한 곡식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제 이들 농민들이 충분한 토지와 '목장 및 목초지'를 소유하고 있다고도 가정해보자. 물론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농민들은 K 여사에게 토지를 임차한 뒤 노동으로 그 대가를 지급한다(이것이 번창 아닌가!). 그럴 경우——즉 농민 농업이 정말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을 경우——오를로프 선생은 정말로 이 농민들이 스스로 동의해서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K 여사의 사유지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철저히, 정확히, 그리고 신속히 수행'할 거라고 믿는 걸까? 또는 어쩌면 그런 어머니 같은 보살핌으로 이들 농민들에게 쿠폰을 뽑아내는 이 친절한 여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결국 목초지와 목장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절망적인 현재 상황보다 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믿는 걸까?

 

분명 '인민의 벗들'의 생각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진정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로서 그들은 착취를 없애기보다는 완화시키기를 바라고, 결속보다는 회유를 원한다. 편협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맹렬히 비판하는 관점에서부터 시작된 그들의 드넓은 이상은 지주와 자본가들이 공정하게 대해주기만 한다면 '번영을 구가하는' 농민들이 그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거라는 생각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유자코프 선생은 러시아 인민의 토지소유 할당량(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885, 9)이라는 자신의 유명한 글에서 "인민들의" 토지소유, 즉 우리 자유주의자들의 용어로는 자본주의와 착취를 배제하는 토지소유의 규모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상세히 설명했다. , 크리벤코 선생의 탁월한 설명이 있은 뒤, 우리는 그 역시도 "자본주의를 인민의 삶에 도입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주의 신분으로서 그는 분여지를 통해 "식량과 지불금"을 충당하는⁸⁹ 반면 나머지는 "일자리"를 통해 얻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달리 말해, 그는 농민이 토지와의 연관성을 유지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분여지'에서 지주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일자리'에서 자본가에 의해 이중의 착취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단지 운명이라고 체념해버린 것이다. 이중 착취에 시달리는 소생산자들의 이러한 상태와 그 생활조건은 더구나 필연적으로 주눅 들고 짓밟힌 심리를 낳아 피억압계급의 승리는 고사하고 투쟁에 대한 모든 희망을 앗아가버렸다. 이와 같은 반()중세적 상황은 '인민의 벗들'의 전망과 이상의 극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 개혁 이후 역사 전체를 통틀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한 자본주의가 옛 러시아를 떠받치던 기둥——가부장적인 반()농노 상태의 농민층——을 뿌리째 뽑아 그들을 중세와 반()봉건적 상황에서 끌어내고 현대의 순수한 자본주의적인 환경에 가져다놓고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오랜 고향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아 러시아 곳곳을 헤매다 노예의 사슬을 끊고 지역의 '일자리제공자'에게로 갈 수밖에 없게 만들으로써 전체적인 계급 착취의 토대가 독사 같은 특정 인물의 약탈과는 거리가 먼 계급 착취라는 사실을 드러내자, 자본주의가 가축의 수준으로 주눅 들고 굴복한 나머지 농민 인구를 한꺼번에 점점 더 복잡한 사회적·정치적 삶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이기 시작하자, 우리 기사님들은 옛 기둥들의 몰락과 파괴에 대해 올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지금은 눈이 멀어 이러한 새로운 삶의 양식의 혁명적 측면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예전의 착취 체제에 전혀 묶여 있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위치에 있는 새로운 사회 세력을 자본주의가 어떻게 창출해내는지를 전혀 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좋았던 시절에 대해 울부짖는 모습을 오늘날까지 계속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인민의 벗들'은 현 시스템에서의 어떠한 급진적 변화도 바라는 기미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들은 현존하는 토대에서의 자유주의적인 조치들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으며, 실제로 크리벤코 선생은 그런 조치들을 고안함에 있어 거드름 피우는 토착 하급관리 같은 행정 능력들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대체로 우리 인민 산업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와 급진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 문제는 특별한 조사와, 산업을 인민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과 적용 과정에서 심각한 장애물에 부딪힐 수 있는 것들로 나눌 것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크리벤코 선생은 다양한 산업들을 자본주의화되지 않은 것과 이미 자본주의화가 발생한 것, 그리고 "대규모 산업과 생존을 놓고 경쟁할" 수 있는 것들로 나누면서 그런 분할의 사례를 우리에게 직접 제시한다.

 

또한 이 행정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첫 번째 경우에 소생산은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변동으로 인해 소생산자들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지는 시장으로부터 그것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것이 지역 시장의 팽창과 보다 더 큰 시장으로의 합병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술 진보로부터도 그럴 수 있을까? 또는 그 기술 진보——상품 생산에서의——가 자본주의적인 필요는 없는 걸까? 마지막의 경우에 필자는 '대규모 생산 조직 역시' 요구한다. "명백히 여기서 필요한 것은 대규모 생산 조직이고,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기계 등이나 또는 이러한 조건과 균형을 맞출 다른 무언가, 즉 값싼 신용, 불필요한 중간상인들의 제거, 집단 농장 형태 농업과 고용주들의 이윤을 처분할 가능성, 시장의 확보, 값싼 엔진의 개발과 그 외 기술적 개선, 또는 다른 혜택들에 의해 보상받는다는 전제하에서의 임금의 일부 삭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논리는 말로는 드문 이상을 이야기하면서도 행동으로는 틀에 박힌 자유주의를 드러내는 '인민의 벗들'에게는 아주 특징적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철학자는 고용주들의 이윤을 처분할 가능성과 대규모 농업의 조직화를 다름 아닌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아주 훌륭하다. 이것이야 말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어떻게 그것을 달성하기를 원하는가? 고용주 없이 대규모 생산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 경제의 상품 구조를 철폐하고 그것을 공동체, 공산주의 구조로 대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아래서는 현재와 같이 생산이 시장에 의해 규율되는 게 아니라 생산자 자신, 노동자 조직 자체에 의해 규율되고, 생산수단은 사적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에 의해 소유된다. 사적 전유로부터 공동체적 전유로의 변화는 명백히 우선 생산 형태의 변화를 필요로 하고, 소생산자들의 분리되어 있고 규모가 작으며 고립된 생산 과정이 단일한 사회적 생산 과정으로 합쳐지는 것을 필요로 한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자본주의가 창출해낸 바로 그 물질적 조건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스스로 자본주의를 토대로 삼을 의향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행동을 제안하는가? 그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품경제의 철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분명히 그들의 드림은 이상은 이 사회적 생산 시스템의 경계를 절대 초월할 수 없다. 더구나 고용주의 이윤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윤'을 획득하는 고용주들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오는 게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조국을 떠받치는 이러한 기둥들을 빼앗아오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체제에 맞선 대중적 혁명 운동이 필요하다. 이 체제와는 전혀 유대관계가 없는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만이 가능한 운동 말이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머릿속에 투쟁을 전혀 그리고 있지 않고, 고용주들 스스로의 관리 기관들 말고도 다른 유형의 공적인 인물들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분명 그들은 '고용주의 이윤'에 맞선 어떠한 진지한 조치들을 취할 의향을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다. 크리벤코 선생은 단지 자신의 허가 자신을 압도하는 걸 허락했을 뿐이다. 그리고서 그는 즉시 자신의 견해를 수정했다. '고용주의 이윤을 처분할 가능성'같은 그런 것이 '다른 무언가', 즉 신용과 조직된 마케팅, 기술적 개선에 의해 '균형이 맞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아주 만족스럽게 정리된다. '이윤'을 얻을 신성한 권리를 철폐하는 대신에, 다시 말해 고용주 양반들을 아주 화나게 할 절차 대신에 자본주의에 싸움을 위한 더 나은 무기를 제공하고 우리 '인민의' 소부르주아들을 강화하고 굳건히 하며 발전시킬 뿐인 아주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조치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인민의 벗들'이 이러한 소부르주아만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의심을 전혀 남기지 않기 위해서, 크리벤코 선생은 다음과 같이 인상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고용주 이윤의 철폐는 '임금의 삭감을 통해 균형이 맞춰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는 완전히 횟설수설처럼 들린다. 그러나 아니다. 그것은 소부르주아 사상을 일관되게 적용한 표현이었다. 필자는 거대자본과 소자본 사이의 투쟁 같은 사실을 관찰하며 진정한 '인민의 벗'으로서 당연히 소…… 자본가의 편에 선다. 더 나아가 그는 소자본가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임금 삭감이라는 사실을 들은 바 있었다. 이는 노동일의 연장과 함께 러시아의 수많은 산업들에서 아주 정확하게 관찰되고 확인된 사실이었다. 따라서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소자본가들을 구하기를 바랐던 그는 '다른 혜택들에 의해 보상받는다는 전제하에서의 임금의 일부 삭감'을 제안한다! 이제 고용주 양반들은 자신들의 '이윤'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내 생각에 그들은 고용주들에 맞서 임금 삭감 투쟁을 계획하는 이런 훌륭한 행정가를 기꺼이 재무장관 자리에 앉히려 들 것이다.

 

순수한 혈통의 부르주아들이 실질적인 문제를 다뤄야 하는 바로 그 순간,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자비롭고 자유주의적인 행정가들을 슬쩍 쳐다보는 사례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12호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라는, 독점 문제를 다룬 글이 그것이다.

 

그 글에서 필자는 "독점과 신디케이트 같은 것들은 발전된 산업의 이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러한 제도들이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러시아에서도 나타나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다. "설탕이나 석유 산업은 아직까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설탕과 등유의 소비는 여전히 사실상 태동기에 머무르고 있고,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볼 때 해당 상품들의 일인당 소비는 미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산업 분야들은 발전할 여지가 여전히 아주 크고, 지금도 상당한 액수의 자본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순간, 필자가 국내 시장의 위축에 대해 루스코에 보가츠트보가 가장 선호하는 발상이 뭐였는지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은 특징적이다. 그는 국내 시장이 여전히 상당한 발전 전망을 갖고 있고, 위축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런 결론에 도달한 건, 소비 규모가 더 큰 서구와의 비교를 통해서였다. 이유는 뭘까? 서구의 문화수준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서로 간의 더욱 빈번한 교류로 이끌고 각각의 지역들이 중세식으로 고립되어 있던 상황을 무너뜨린 자본주의 기술의 발전, 상품경제와 교환의 성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문화의 물질적 토대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반()중세적 농민층이 아직 여전히 농촌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쪼개져 있지 않았던 대혁명 이전만 해도 프랑스의 문화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만약 필자가 러시아의 생활상을 좀 더 면밀히 검토했더라면, 그는 예를 들어 자본주의가 발전한 지역에서 농민 인구가 필요로 하는 수준들이 순수한 농업 지역보다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주민들의 삶 전체에 산업으로서 그 영향을 끼칠 정도까지 발전한 우리 수공업을 연구했던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거론하는 부분이다.⁹⁰

 

'인민의 벗들'은 그런 '하찮은 것들'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 가능한 해명이란 '단지' 문화나 전반적으로 삶이 점점 복잡해진다든지 하는 것뿐이며, 이런 문화와 복잡성의 물질적 토대에 대해서는 연구조차 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적어도 우리 농촌의 경제 상황을 검토라도 해봤더라면, 국내 시장을 창출하는 게 바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의 농민층의 분화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시장의 성장이 결코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앞에서 언급한 국내 문제 연대기라는 글에서는 계속해서 "전반적으로 생산 발전 수준이 낮고 진취성과 자발성이 부족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독점은 국가 경쟁력의 발전을 훨씬 더 지연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담배 독점을 거론하며, 그것이 "인민 유통 가운데 15,400만 루블을 앗아갈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이는 우리 경제 시스템의 토대가 상품경제이며, 그결 선도하는 세력은 다른 모든 곳에서 그렇듯 부르주아 계급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한 것이다. 그리고 글의 필자는 부르주아 계급이 독점의 방해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 대신에 "국가"를 거론하고, 상품과 부르주아 유통을 이야기하는 대신에 "인민" 유통¹을 들먹인다. 부르주아라면 두 용어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결코 알아차릴 수 없다. 나는 그 차이가 정말 얼마나 극명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인민의 벗들'의 시각에서는 권위 있는 잡지인 조국연보2(1872)에 실린 금권정치와 그 토대라는 글의 일부를 인용해보고자 한다.

 

"마를로(Marlo)에 따르면, 금권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유주의적 정부 형태에 대한 사랑, 아니면 취득의 자유라는 원칙에 대한 사랑이다. 이런 특징을 받아들여 8년 또는 10년 전의 입장이 어땠는지를 돌이켜보면, 자유주의 측면에 있어서 우리가 엄청난 발걸음을 내디뎌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어떤 신문이나 잡지를 봐도, 그들 모두 일정 정도 민주주의 원칙을 대표하는 것으로 느껴지고, 인민의 이익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주의적 견해들과 나란히, 그리고 심지어 그것들을 빙자하여(이것에 주목하라)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누누이 금권정치적 야망들이 추구된다."

 

필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상인들이 재무장관에게 했던 인사말을 예시로 인용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금융에 관한 러시아의 입장을 사기업의 아주 폭넓은 확대 가능성에 바탕을 둠으로써 좋은 결실을 맺게 된 데 대해" 러시아 부르주아 계급의 가장 신망 있는 조직이 보내는 감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필자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금권주의 요소들과 성향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 사회에, 그것도 많이 존재한다.“

 

여기서 보다시피, 위대한 해방을 위한 개혁(유자코프 선생이 간파했듯이 "인민의" 생산을 위한 발전의 평화롭고 합당한 길을 열었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금권정치를 위한 발전의 길만을 열었을 뿐인)의 감동들이 여전히 생생하고 새롭던 머나먼 과거의 여러분 선조들은 스스로 금권정치, 즉 러시아 사기업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들은 "진취성과 자발성"의 발달에 힘입은 "인민"의 유통과 "국가 경쟁력"의 발전을 이야기하면서도, 왜 그러한 발전의 적대적 성격, 진취성과 자발성의 착취적 성격은 언급하지 않는가? 물론 독점이나 그와 유사한 제도들에 대한 반대 의견을 피력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것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노동인민의 상황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인민은 그 모든 중세적 속박 위에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현대 부르주아적인 속박에 의해 족쇄가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점의 폐지가 전체 "인민"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경제가 나라의 경제적 삶의 토대가 된 상황에서 중세적 시스템의 생존은 자본주의의 비참한 현실에다 훨씬 더 가혹한 중세적 고통을 더할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완전히 폐지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에도——이는 더 빠르고 더 급진적일수록 좋다——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부르주아 사회가 물려받은 반()봉건적 속박들을 제거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손발을 풀어주고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하는 그들의 투쟁을 촉진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을 숨김 없이 말하려면 바로 이런 이야기를 꺼냈어야만 했다. 부르주아 체제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독점과 그 밖의 모든 종류의 중세적 제약들(러시아에는 그 종류가 차고 넘친다)을 폐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라고 말이다. 딱 거기까지다. 부르주아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중세와 봉건제도에 맞서 전체 "인민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연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품을 수 없었고, "인민들" 내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깊고 화해할 수 없는 적대를 망각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것으로 '인민의 벗들'이 쿡 흥분할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농촌의 요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는데, 특히 크리벤코 선생은 "몇 년 전 몇몇 신문들이 시골에서 필요로 하는 직업들과 지식인들의 유형을 논하는 과정에서 그 목록이 아주 깊고 다양하며, 남녀 의사들과 보조의사들, 변호사, 교사, 도서관 사서, 서점주인, 농경제학자, 삼림 전문가와 농업 전문가, 아주 다양한 분야의 기술자들, 신용기관의 모집인과 관리자, 창고지기 등 거의 모든 직업군을 포괄한다는 게 증명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고, 활동이 경제 영역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지식인들"(??)과 삼림 및 농업 전문가, 기술자 등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농촌에서 그들을 어떤 식으로 필요로 하는지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농촌이란 과연 어떤 농촌을 말하는 걸까? '저축한 돈'이 있어서 크리벤코 선생이 기꺼이 '지식인'들이라 부르는 그 '전문가'들 모두에게 각자 기여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지주들과 기업형 농민들의 농촌을 말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때의 농촌은 실제로 오랫동안 전문가들과 신용, 창고에 목말라왔고, 이 나라 모든 경제 문헌에서도 그걸 증언해주고 있다. 그러나 훨씬 더 방대한 또 다른 농촌이 존재하고, 그런 사실을 좀 더 자주 떠올려보는 것도 '인민의 벗들'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또 다른 농촌이란, 몰락하고 갈취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농민들의 농촌이다. 그들은 '저축한 돈'이라고는 전혀 없어 '지식인들'의 노동에 대가를 지불할 수 없을 뿐더러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빵조차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당신들이 창고를 지어서 돕고자 하는 농촌은 바로 그런 곳이다!! ()도 없고 있어도 고작 한 마리뿐인 농민들이 거기에 뭘 보관한단 말인가? 웃기자? 그들은 과거 1891년에 당신들이 인간미 넘치고 자유주의적인 처방을 완수할 무렵 집이나 여권, 가게에다 일상적인 '창고'를 설치했던 시골과 도시의 부농들에게 말을 똑똑 저당 잡힌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건 자신의 '노동력'뿐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상품을 보관할 '창고'는 아직까지 러시아의 관료들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들 '민주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진부한지에 대해서는 '농민층' 내의 기술적 진보에 대한 이러한 감상적인 사고와 바로 그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착취에 눈을 감는 행위보다 더 두드러진 증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루스코에 보가츠트보2호에서 백치 자유주의자의 열정을 지닌 카리세프 선생은 아메리카귀리, 바라호밀, 말먹이 귀리 등의 "개량종 씨앗이 농장에서 확산되는" 것과 같은, 농민 농업에서 "완벽함과 개선"을 이룬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일부 지역에서 농민들은 종자를 키울 특수한 땅을 별도로 떼어놓고 조심스럽게 간 뒤, 거기에다 미리 선별한 곡물 샘플들을 손으로 심는다." 그리고 경운기, 가벼운 쟁기, 탈곡기, 키질 기계, 종자 분류기 같은 "개량 농기구와 기계 영역"²에서의 많은 다양한 혁신들이" 관찰된다. 카리세프는 인산비료, 아교 반죽, 비둘기 배설물 같은 "아주 다양한 종류의 비료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지방 주 재원들이 인산비료의 판매를 위해 마을에 젬스트보 상점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V. V. 선생의 농민 농업의 진보적 경향(크리벤코 선생도 이 책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에서 자료를 인용한 카리세프 선생의 글은 이 모든 감동적인 진보에 감화된 나머지 거의 열정의 수준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우리가 간략하게만 제시할 수 있었던 이러한 보고서들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동시에 애처로움도 느끼게 한다. …… 여기서 용기를 준다는 건, 이 사람들이 비록 가난하고 빚에 시달리며 상당수는 말 한 마리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고, 절망에 굴하지 않으며, 자신의 직업을 바꾸지 않은 채 여전히 땅에 대한 진정성을 잃지 않고 그것을 적절히 일구는 일에 자신들의 미래와 힘과 부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물론이지! 인산비료와 종자 분류기, 탈곡기, 말먹이 귀리를 구입하는 이들이 가난하고 말 한 마리 없는 농민들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 성스러우리만치 단순한 자들이여! 어느 여대생이 아니라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 소지자인 교수가 쓴 글이 이 정도라니! 아니, 동의 못 할지 몰라도 이건 그저 그들의 단순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적절한 관리를 가능케 할 방법을 열정적으로 탐구하고, 경작과 씨 뿌리기, 농기구, 비료 등에 있어 새로운 방식들을 연구하며, 자신들을 먹여 살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조만간 백 배의 보상을 안겨줄 모든 방안을 찾아나서고 있다.³ …… 그리고 애처롭다는 건"(어쩌면 여러분은 이 대목에서 최소한 '인민의 벗들'이 기업형 농민들의 손에 땅이 집중되는 현상을 낳는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강탈과 그것이 자본과 농업 개선의 토대로 전환되는 현실을 언급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강탈을 통해 탈곡기와 종자 분류기, 키질 기계 따위들을 활용하는 토착 '기업의' 성공에 기여할 '자유롭고' '값싼' '일손들을' 시장에 던져놓는 행위에 대한 설명? 그런 내용은 전혀 없었다!) "각성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과학 분야, 박물관, 창고, 위원회 같은 기구들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우리들이 농업을 개선하기 위해 분투하는 농민에게 과연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맞는 말이오, 신사양반들, 이렇듯 당신들은 "과학""위원회 같은 기구들"과 나란히 놓는군요…… '인민의 벗들'을 연구해야 할 시기는 그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싸울 무렵이 아니다. 그때는 그들이 '선조들의 이상'이라는 누더기로 기운 제복을 걸쳐 입는 시기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은 평상복을 입고 있을 때는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논한다. 이 때가 바로 그들을 연구할 적기다. 이들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제대로 된 특색과 취향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농민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물론 아주 초보적인 형태의 것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 발달은 몹시 느리다. 농민은 모범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가 실험용으로 조성한 밭과 모범 농장들은 대체 어디에 있던 말인가? 농민은 활자로 된 정보를 갈구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우리의 농경 문헌들은 또 어디에 있는가? …… 농민은 비료와 농기구, 종자를 얻으려 애쓰지만, 그것들을 도매로 구입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할 우리의 젬스트보 상점들은 어디에 있는가? …… 실무진들과 개인, 젬스트보, 당신들은 어디에 있는가? 나서서 일을 하라, 오랫동안 무르익어왔던 그 시기가 다가왔다. 러시아 인민들의 진심 어린 감사가 당신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질지니!⁹⁴"루스코에 보가츠트보, 2, 19)

 

이렇듯 '인민의' 소부르주아 계급 벗들은 소부르주아 식 진보의 잔치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우리 농촌 경제에 대한 분석과 완전히 동떨어진, 오늘날의 경제학 역사에서 이토록 놀라운 사실——'농민층'의 엄청난 강탈과 농민 농업에서의 전반적인 진보가 나란히 병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동시에, '농민층'을 조화롭고 동질적인 하나의 전체로 묘사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와 이 모든 진보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납득하게 된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여전히 이 모든 것에 귀를 닫고 있다. 옛 러시아의 사회혁명적 인민주의의 훌륭한 장점들을 잃어버린 그들은 인민주의의 커다란 실수 중 하나, 즉 농민층 내의 계급적대를 이해하지 못한 실수를 절대 바로잡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호르비치⁹⁵"70년대'의 농민주의자들(인민주의자들)은 농민층 내에 자연스레 존재하는 계급적대를 몰랐기에, 그것을 '착취자'——쿨락 또는 기생자——와 그 희생자인 공산주의 정신에 물든 농민의 적대로만 국한해 파악했다"고 적절히 말한다.⁹⁶ 글렙 우스펜스키(Gleb Uspensky)⁹⁷만이 회의주의적 입장에서 역설적 미소로 보편적 환상을 거부했다. 농민층에 대한 완벽한 지식과 현상의 본질 그 자체를 꿰뚫는 비범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그는 개인주의가 고리대금업자와 채무자 사이뿐만 아니라 대체로 농민들 사이에서도 경제적 관계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글 판박이(루스카야 미슬, 1882, 1)를 참조하기 바란다.

 

농촌 경제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가 아주 부족했고, 농민층의 분화가 아직 그렇게 뚜렷하지 않았던 1860년대와 70년대에 그러한 환상에 굴복한 것은 용서할 수 있고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러한 분화를 모르쇠 하려면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야만 한다. 농민층의 몰락이 정점에 달해 있고 사방에서 농민 농업에서의 진보적 경향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들려오는 최근에는 특히 더 그렇다. V. V. 선생(역시 의심의 여지 없는 '인민의 벗'이라 할)도 전적으로 그 주제만을 다루는 책 한 권을 썼는데, 사실관계의 부정확성에 관해서는 그다지 비난거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적인 측면에서나 농경법적인 측면에서의 농민층의 진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건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강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인민의 벗들''농민'이 스스로를 먹여 살려줄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새로운 경작법을 간절하게 찾아 헤매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들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다. 동전의 이면, 즉 바로 그 농민이 땅으로부터 심하게 분리되고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한 채 말이다. 그들은 농민으로부터 분리된 토지가 자본으로 전환되고 국내 시장이 창출되는 과정 같은 눈앞의 사실들을 보지 않으려고 타조처럼 모래에 머리를 묻는다.⁹⁸ 이 나라 공동체 농민들 사이에 실재하는 이러한 양 갈래의 정반대 과정들을 부정하고, 우리 사회의 부르주아적 성격 말고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들을 설명해보려고 애써보라.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인도주의적이고 자비로운 문구들을 연호하는 것은 그들의 과학, 그들의 정치 '활동' 전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게다가 그들은 현질서의 가장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땜질식 처방을 정규 철학으로까지 끌어올린다. 크리벤코 선생은 심오한 어조를 띤 채 이렇게 말한다. "사소하지만 진심 어린 활동을 하는 것이 크게 일을 벌여놓고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이 얼마나 참신하고 영리한가! 더 나아가 그는 "사소한 활동이란 게 결코 목적이 사소하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라고 말을 잇는다. 그리고 사소한 활동이 "적절하고 훌륭한" 결과로 이어진 "활동의 확장"의 사례로서, 어느 부인이 학교를 세운 일, 농민들 사이에서 협잡꾼들을 몰아내는가 하면 피고에게 자문을 해주기 위해 지방 순회법원에 동행하기로 한 변호사들의 일화, 앞서 살펴본 대로 "젬스트보의 노력과 결합돼 가장 변화한 중심지에" 수공업자들의 창고를 설립한 경우들을 든다.

 

물론 이 모두는 아주 숭고하고 인간적이며 자유주의적이다. 여기서 자유주의적이란 건, 부르주아 경제 시스템을 모든 중세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따라서 노동자가 그런 조치들에 의해 손상당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될 시스템 자체와 맞서 싸우기 쉽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자유주의 출판물들을 통해 이 모든 주장들을 접해왔다. 만약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신사양반들이 우리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지 않았다면, 이는 반대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맞선 "자유주의의 온건한 출발"을 알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우리 선조들의 이상"을 비난했다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나무랐다. 만약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우리는 그런 온건하고 세심한 자유주의적(즉 부르주아에게 봉사하는) 활동을 먼저 제안하고,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기꺼이 호응했을 것이다. 선조들과 그들의 이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말인데, 그들의 이론은 그릇되며 유토피아적이었지만 어쨌든 옛 러시아 인민주의자들은 그러한 "자유주의의 온건한 출발"⁹⁹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바 있다.

 

그러나 그런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하도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인지라 '인민의 벗들'은 그런 과거를 모조리 잊어버릴 수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제도에 대한 유물론적 비판이 사라지고 현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 유일하게 남은 수순은 정치적 급진주의에서 기획주의로 옮겨가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자신들의 전술을 통해 분명히 입증했다.

 

여기에 그런 기획주의의 몇 가지 사례들이 있다.

 

유자코프 선생은 "국유재산부를 농업부로 전환하는 조치는 우리 경제 발전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관리들의 자리를 바꾸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0)고 단언한다.

 

결국 모든 건 '요청을 받는' 존재가 누구냐에 달려 있다. 인민의 벗들이나 아니면 지주와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들이냐가 문제지, 이해관계 그 자체는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글에서 유자코프는 계속하여 "경제적 강자로부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 개입의 첫 번째 본연의 임무"라고 말한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12호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 또한 같은 표현을 사용해 유자코프의 주장을 지원하고 있다. 유자코프는 이런 박애주의적인 헛소리¹⁰⁰에 대한 설명이 그의 훌륭한 동료들인 서구 유럽의 자유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그것과 똑같다는 사실에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기 위해 동시에 이렇게 덧붙인다.

 

"글래스스톤(Gladstone)의 토지 법안들¹¹, 비스마르크(Bismarck)의 노동자보험, 공장 감독, 러시아의 농민은행 발상, 이주의 조직화, 쿨락의 이익에 반하는 조치들, 이 모두는 동일하게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 개입이라는 원칙을 적용한 시도들이다."

 

그래도 이 말은 솔직함이라는 미덕은 지니고 있다. 필자는 글래스스톤과 비스마르크처럼 자신도 현재의 사회적 관계를 고수하기를 원하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사회(부르주아 사회. 그는 서구 유럽의 글래스톤과 비스마르크 추종자들만큼이나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를 수습하고 봉합하길 바랄 뿐 그것과 맞서 싸우기는 원치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들의 근본적인 이론적 신념은 그들이 현재의 사회에 기초해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기구, 즉 국가를 개혁의 도구로 여긴다는 사실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들은 모든 계급에 우선하는 전지전능한 국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국가가 노동계급을 '지원해줄' 뿐만 아니라 (크리벤코 선생이 말했듯이) 현실적이고 적합한 시스템을 만들어낼 거라 기대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 골수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에게 기대할 건 아무것도 없다. 생산 조건 자체에 의해 해체되고 고립돼 있으며 한정된 공간과 착취자에게 묶여 있는 소생산자들은 간혹 프롤레타리아만큼이나 고통을 겪는 자신들의 착취와 억압의 계급적 성격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점이 바로 소부르주아 계급의 근본적이고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그들을 반동적인 계급으로 만드는 특징이기도 하다——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국가 역시도 계급적 성격을 떨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²

 

위대한 '인민의 벗들'이여, 그렇다면 왜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그리고 해방적 개혁 이래로 특히 정력적으로——부르주아 계급과 자본주의만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창출'했겠는가?

 

나라 안 살림살이가 상품경제와 상업, 공업의 발전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역사적 시기에, 절대적이고 이른바 초계급적인 정부가 그런 불성실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될까? 나라 안 살림살이에서의 그러한 변화들이 워낙 사회 깊숙이 정착돼 정부는 그걸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그 중간에 무수한 장애물을 가져다 놓았다는 사실, 바로 그 '절대적인' 정부가 내부적인 삶의 다른 조건에서는 또 다른 계급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창출'해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그러한 변화들을 정부 정책이 불러온 효과라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 '인민의 벗들'은 그런 질문들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보다시피 이 모든 것이 유물론, 변증법, '헤겔주의', '신비주의와 형이상학'이다. '인민의 벗들'은 이 정부에게 친절해지라고, 겸손해지라고 간청하면 모든 게 정상적으로 바로잡힐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뿐이다. 겸손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점에 관한 한 루스코에 보가츠트보를 인정해주어야 마땅하다. 실로 이 매체는 독립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러시아 자유주의 언론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인다고 하겠다. 다음을 보고 여러분이 직접 판단해보기 바란다.

 

"염세³와 인두세의 폐지, 토지상환금의 감축은 인민 농업에 상당한 위안이다"라고 유자코프 선생은 설명한다. 그래, 물론이지! 그러나 염세를 폐지하는 대신 수많은 간접세들을 새로이 부과하고 기존 세금들을 인상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냐? 인두세의 폐지와 함께 예전의 국유지 농민들을 회복시켜준다는 명분으로 그들이 지급하는 대금을 인상시킨 건 어쩔 텐가? 그리고 익히 알려진 상환금(정부는 환수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농민들에게 되돌려주지도 않았다) 감축이 이루어진 뒤 지불 대금과 토지로부터 얻는 수입 사이의 불균형, 즉 봉건적 면역지대¹⁰⁴가 직접적으로 부활한 건 지금도 유효하지 않은가? 그래도 괜찮아! 중요한 건 '첫걸음''원칙'이니까. 나머지는…… 나중에 우리가 간청하면 될 거야!

 

하지만 이것들은 꽃에 불과할 뿐, 이제 과실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1880년대는 인민들의 부담을 덜어주었고"(앞에서 말한 조치들에 의해서!) "인민들이 철저히 몰락하지 않도록 구해주었다."

 

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노예근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고전적인 문구로, 앞서 인용한 우리가 여전히 프롤레타리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미하일롭스키의 주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자유주의의 진화에 대한 시체드린의 예리한 묘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자인 그는 정부 당국에 '가급적' 개혁을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으로 시작해, 다음에는 '적어도 뭐라도' 달라고 구걸하다가,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아무거나 달라고' 애원하는 지점까지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래서 '인민의 벗들'이 이러한 지점까지 흔들리지 않는 입장을 받아들였다는 것 말고 달리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시는 기근이 수백만 명의 인민들을 막 덮쳤던 시기로, 그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장사꾼의 인색함으로 시작해 소심함으로 옮겨간 걸 알고도 그들은 정부가 인민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해주었다는 주장을 버젓이 칼럼에 옮겨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몇 년이 더 지나면 농민층에 대한 강탈이 훨씬 더 가속화될 것이고, 정부는 농업부를 창설한 데 이어 한두 가지 직접세를 폐지하는 대신 간접세 대여섯 가지를 새로이 부과할 것이며, 그러면 기근은 4천만 인민에게 영향을 끼칠 테고, 이들 신사양반들은 똑같은 방식의 글을 써낼 것이다. 굶주린 인구가 5천만 명이 아니라 4천만 명에 불과한데, 그건 정부가 인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해준 덕분이라고, 정부가 '인민의 벗들'의 말을 경청하고 농업부를 창설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밖에 다른 사례도 있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2호에서 러시아가 "다행히도"(원문의 표현 그대로다!) 후진국이며 "자신의 경제 시스템을 연대의 원칙¹⁰⁵에 기초할 수 있게끔 해준 요소들을 유지해왔다"고 주장한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는, 따라서 러시아가 "국제 문제에 있어서 경제적 결속의 주장자"로 행동할 수 있고, 러시아에게 주어진 이런 기회는 부인할 수 없는 "정치적 힘"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반동적 행위의 변치 않는 가장 확실한 방식에서 바로 유럽의 경찰관인 러시아였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에서 억압받는 러시아 인민들로 하여금 서구의 인민들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서 종사하는 치욕스러운 입장에 서도록 했다. 그것이 경제적 결속의 주장자로 묘사된 경찰관 러시아의 본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앞의 주장은 실로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인민의 벗' 선생들은 그 어떤 자유주의자도 능가할 것이다. 그들은 정부에 간청하고, 정부를 칭송하며, 엄청난 존경과 열정을 다해 기도를 바친다. 그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판석 위에 이마를 찧는 소리는 지나가던 이조차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다.

 

여러분은 속물의 독일식 정의를 기억하는가?

 

속물이란 무엇인가?

 

텅 빈 속을

 

두려움과 신의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채운 자여.

 

괴테

 

이런 식의 정의는 우리 실정과는 맞지 않는다. …… 신은 우리에게 부차적인 존재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다른 문제다. 만약 위의 정의에서 ""이란 단어를 "정부 당국"으로 대체한다면, 인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러시아 '인민의 벗들'의 이념적 상투성과 도덕 수준, 시민으로서의 용기를 정확히 표현한 셈이 될 것이다.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토록 터무니없는 '인민의 벗들'은 이른바 '인텔리겐처'에 대해서도 유사한 태도를 보인다. 크리벤코 선생은 이렇게 적고 있다. "문학은 …… 현상들을 사회적인 의미에 따라 평가하고, 모든 능동적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문학은 교사와 의사, 전문가가 부족하고 인민들은 가난과 병마와 문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발언해왔고, 그 발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탁자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거나 연극 공연을 보러 다니거나 귀족 대표가 주최한 파티에서 철갑상어를 뜯는 게 지겨워진 사람들이 보기 드문 자기희생 정신을 갖추고"(카드놀이와 연극과 철갑상어를 희생했다는 얘기다!) "수많은 장벽을 뚫고 앞으로 선뜻 나설 때, 문학은 그들을 환영해야 한다."

 

그리고 두 페이지를 넘어가, 경험으로 지혜를 얻게 된 왕년의 운동가는 집짓 사무적인 어조를 띠며 "지방감독관⁰⁶, 시장, 젬스트보 의장이나 위원 같은 직위를 새로운 규정에 따라 받아들일 것이나 말거나 하는 문제에 직면해 "망설이는" 사람들을 나무란다. "시민들의 요구와 의무에 관한 의식이 발전된 사회에서 그런 망설임과 태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회에서는 어떠한 필수적인 측면을 가진 개혁이라면 어쨌든 완전히 소화해서 그에 맞는 개혁의 측면들을 활용하고 발전시킬 것이고, 만약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사문화시킬 것이며, 개혁에 필수적인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기구는 완전히 소외된 상태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대관절 저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얼마나 한심하고 하찮은 기회주의이자 자화자찬에 빠진 소리란 말인가! 말인즉슨, 사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응접실용 가십거리들을 죄다 수집하고, 인민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해준 데 대해 정부에게 아첨하며, 카드놀이에 지겨워진 사람들을 환영하고, 지방감독관 같은 자리를 꺼리지 말라고 '대중'을 가르치는 게 문학의 임무라는 거다…… 혹시 내가 지금 네델랴Nedelya¹⁰⁷노보에 브레먀를 읽고 있는 건가? 아니, 이건 선진적인 러시아 민주주의자들의 기관지 루스코에 보가츠트보가 확실한데……

 

그리고도 그 신사양반들은 "선조들의 이상"을 이야기하고, 프랑스가 유럽 전역에 사회주의 사상을 쏟아붓자¹⁰⁸ 러시아에서 그 사상을 흡수해 헤르첸¹⁰⁹과 체르니셉스키(Chernyshevsky)¹¹의 이론과 가르침을 생산해낼 당시의 전통을 오직 자신들만이 수호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는 철저한 망신이며, 명백한 언어도단이자 모욕이다. 비록 루스코에 보가츠트보가 별로 재미있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이 같은 유형의 잡지 칼럼에서 그런 식의 발언들이 커다란 웃음이나 그 밖의 어떤 반응도 불러일으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다, 실로 당신들은 그 이상들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이 실제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는 카우츠키가 했던 다음 발언에 아주 적절히 묘사되어 있다.

 

"그 시대 모든 사회주의자는 시인이었고, 모든 시인은 사회주의자였다."

 

러시아의 공동체적 생활 체계라는 특수한 사회 질서에 대한 믿음, 그것으로 인해 이어지는 농민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믿음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정부에 맞서는 영웅적 투쟁의 대열에 서게 만들었다. 당신들, 당신들은 그 시대 가장 훌륭한 사람들의 엄청난 역사적 헌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그들의 기억을 충실으로 존경하지 않았다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묻는다. 그때의 믿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모두 사라져버리지 않았는가. V. V. 선생이 작년에 마을공동체가 인민들에게 공동의 노력을 연마시키고 이타적 감정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등의 주장¹¹¹을 폈을 당시, 심지어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양심에 찔린 나머지 게연찮게 V.V. 선생을 훈계하며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어떤 연구도 마을공동체와 이타주의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¹¹² 실제로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굳이 연구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신념을, 무조건적인 신념을 지녔던 시대가 있었다.

 

어떻게? ? 무슨 근거로?

 

"모든 사회주의자는 시인이었고, 모든 시인은 사회주의자였다."

 

게다가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농촌이 분화되면서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머지 인민을 자기네 발치 아래 두는 한 줌의 '쿨락'이 형성되고 있다는 데에 모든 양심적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는 이번에도 옳았다. 농촌은 실제로 분화되고 있었다. 아니, 농촌이 완전히 쪼개진 건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그리고 그 옛날의 러시아 농민사회주의도 그와 함께 쪼개지면서 한편으로는 노동자 사회주의에 자리를 내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물 소부르주아 급진주의로 타락했다. 이러한 변화는 타락이란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농민의 삶은 특수한 사회 질서이며 우리나라는 예외적인 발전 경로를 밟아왔다는 이론으로부터 일종의 희석된 절충주의가 등장했다. 이 절충주의는 상품경제가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고, 자본주의로 성장해갔다는 점은 더 이상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생산관계에 부르주아적 성격이 있고 그 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계급투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그와 더불어 근대 사회의 토대에 맞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농민들을 각성시킬 목적으로 고안된 정치 강령으로부터¹¹³ 근대 사회의 토대를 보존하면서 농민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수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강령이 등장했다.

 

엄밀히 말해, 이 모두는 이미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신사양반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무너뜨리는" 데 착수하는 순간 예상됐던 종류의 "비판"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은 러시아의 현실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구상을 솔직하고 양심적으로 설명하거나(그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처지였다. 만약 그들이 그 경제적 측면을 특별히 강조하는 동시에 "논박"을 할 때 사용했던 일반적이고 때로는 비유적이기까지 한 표현들을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검열을 우회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 본질에 반대되는 주장을 편다든지, 거기에서 끌어온 실질적 결론들의 정확성에 반론을 제기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추상적인 도식과 그 도식에 대한 믿음, 모든 나라가 그와 같은 국면을 거쳐야 한다는 확신을 담은 가장 공허한 문구들과 이미 우리가 미하일롭스키 선생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접한 바 있는 허튼소리에 스스로를 가두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철저하게 왜곡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예를 들어 크리벤코 선생은 마르크스가 "만약 우리가 소망하고"(?!) 그래서,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적·경제적 관계의 진화는 인간의 의지와 의식에 달려 있다는 건가? 한없이 무지하거나 비할 데 없이 뻔뻔스러운 소리가 따로 없군!) "또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자본주의의 부침을 피해 더 편리한 다른 경로"(원문 그대로의 표현이다!!!)"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기사님이 그런 허튼소리를 내뱉을 수 있었던 것은 의도적인 왜곡에 탐닉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마르크스의 편지'(법률 통신, 1888, 10)에서 러시아가 "자본주의 체제의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체르니셉스키를 마르크스가 높이 평가한 대목을 인용한 크리벤코 선생은 마르크스의 실제 발언(마지막 문장은 "(체르니셉스키)는 후자의 해결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였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부분에 따옴표를 닫으며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이런 견해들을 공유한다고 말한다."(186, 12, 크리벤코의 강조)

 

그러나 마르크스가 실제로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그래서 이 존경할 만한 비평가는 적어도 내가 그 '위대한 러시아 학자이자 비평가'를 존경한다는 이유로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자신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추론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러시아 '문인'과 범슬라브주의자¹¹에 대한 나의 비판으로부터도 내가 그의 견해들을 거부한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법률 통신, 1888, 10, 271)

 

따라서 마르크스는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자신을 러시아의 특수한 발전 노선이라는 사고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여길 권리가 없고, 자기 또한 그런 사고를 지닌 사람들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크리벤코 선생은 마르크스가 그런 특수한 발전 노선을 "인정했다"는 뜻으로 그걸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새빨간 왜곡이었다. 방금 인용한 마르크스의 발언은 그가 그 문제를 다음과 같이 피해 넘겼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히 보여준다.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두 가지 모순되는 주장들 가운데 하나를 근거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즉 그는 러시아의 전반적인 정세에 관한 나의 견해들 중 하나를 근거로 하여 스스로의 결론을 이끌어낼 만한 바탕이 전혀 안 돼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발언들이 잘못 해석될 여지를 없애기 위해 마르크스는 같은 '편지'에서 자신의 이론이 러시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제시했다. 이 답변은 마르크스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자체와 그 질문의 답을 결정할 수도 있는 러시아의 데이터 검토를 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아주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만약 러시아가 서구 유럽 국가들을 모범으로 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려는 경향을——그리고 이 점에 있어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던 최근에——보인다면, 우선 농민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힘들 것"¹¹이라고 답했다.

 

내 생각에 이 대목은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다. 질문은 러시아가 자본주의 국가가 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가, 농민들의 몰락이 자본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탄생 과정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만약' 러시아가 그런 경향을 보인다면, 농민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한다. 달리 말해 마르크스의 이론은 특정 국가들의 경제 시스템의 진화를 연구하고 설명하는 것이었으며, 러시아에 그 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오로지 유물론적 방법론과 정치경제학 이론의 확립된 관행들을 활용해 러시아의 생산관계와 그 진화를 연구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¹¹

 

새로운 방법론과 정치경제학 이론의 정교한 완성은 사회과학에서의 거대한 진보이자 사회주의를 향한 엄청난 진전이었기에, 자본이 등장한 직후 '러시아 자본주의의 운명'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 주요한 이론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 문제를 둘러싸고 엄청나게 열린 논쟁들이 펼쳐졌으며, 강령상의 핵심 지점들도 그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리고 (10년 전) 러시아가 자본주의로 진화하였는지를 놓고 어느 개별적 사회주의자 그룹이 러시아의 경제 현실에 관한 데이터를 토대로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을 때는, 거기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확한 비판은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똑같은 방법론적·이론적 일반 원칙들을 받아들인 이들 가운데서도 데이터에 대해 다르게 설명하는 비판의 목소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맞서 진정한 성전에 돌입한 '인민의 벗들'은 역사나 사실관계의 검토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내놓는 법이 없다. 첫 번째 글에서 본 바와 같이, 그들은 이러한 러시아연구들로 문제를 처리한다. 게다가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의 합의나 의견일치 부족에 대해서도 자신의 재치를 드러낸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런 뒤 '우리의 저명한'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진짜''가짜'로 나누는 말장난을 하고는 마음껏 웃음을 터뜨린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 완전한 일치가 지배적이지 않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첫째로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이 사실을 잘못 전달하고 있으며, 둘째로 현실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약점이 아닌 강점과 생명력을 증명해주고 있다. 최근 시기의 특징이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사회주의자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회민주주의적 관점들에 도달하고 있으며, 그러한 까닭에 러시아가 봉토제도로부터 성장한 부르주아 사회이고 그 정치 형태는 계급국가이며 노동인민의 착취를 끌장낼 유일한 방안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이라는 근본적이고 주요한 논지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논쟁의 방법과 러시아인의 삶의 이러저러한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에 있어 특정한 수많은 문제들을 놓고 의견을 달리한다. 따라서 나는 앞서 언급한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근본적이고 공통적인 논지의 한계 내에서, 예를 들어 농민 개혁이나 농업과 수공업의 경제적 상황, 토지 임차 등 피상적인 어조로만 다뤄져왔던 문제들에 관해서도 의견 차이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미리 미하일롭스키 선생을 기쁘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농민 개혁이 러시아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순탄한 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자본가의 이익을 대표하는 이들이 아닌 '인민의 벗들'에게 국가의 부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을공동체가 농업과 제조업을 사회화해 그것들이 수공업자에 의한 대량생산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인민의 토지 임차가 인민의 농업을 떠받치고 있다는 등의 '승고한 진리'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이는 데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함의는, 러시아의 실제적인 현재의 경제구조를 명확한 생산관계 시스템으로 해명하고 실제적인 경제적 진화나 정치를 비롯한 여타 모든 유형의 상부구조에 대한 해명을 추구하는 사람들 내의 의견 차이로 대체되어왔다.

 

그리고 만약 그런 노력이——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된 입장을 받아들여 공동의 정치적 행동으로 확실히 연결시키고, 따라서 그러한 공통된 입장을 받아들이는 모두가 스스로를 '사회민주주의자'라 부를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게 되는 한편으로——다양한 해결책들이 열려 있는 수많은 특별한 문제들에 대해 광범위한 의견 차이의 여지를 여전히 남겨놓는다면, 당연히 그것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힘과 생명력을 입증해주는 것에 불과하다.¹¹

 

더군다나 그런 노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다양한 측면들을 통합해줄 기관도 없거니와 있을 수도 없고, 오늘날 만연해 있는 경찰의 감시 상황에 비춰볼 때 개인적인 교류도 극도로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적절한 토론을 할 수도,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도 없고 따라서 서로 의견이 상충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재미있지 않은가?

 

사회민주주의자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을 상대로 한 '반론'에서 크리벤코 선생이 언급한 내용은 일정 정도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일부 독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 분열 비슷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고,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과거의 사회민주주의자들로부터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게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공개적으로 방어해온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과 정책을 비판하거나 다른 어떤 종류의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한 적이 없었다. 진실은 크리벤코와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응접실에서나 나눌법한 가십거리들에 귀 기울여왔고, 자신들의 지각 없는 자유주의적 언행을 감추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들먹이는 여러 다양한 자유주의자들을 주시해왔으며, 전매특허인 영리함과 전술을 동원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왔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비판"이 일련의 일상적인 부조리와 추잡한 공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크리벤코 선생은 "우리는 일관되게 여기에('우리는 자본주의 산업 발전에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해답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농민들의 땅을 사들이거나 상점과 선술집을 여는 것을 꺼려서는 안 된다. 수많은 여관주인들이 러시아 의회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벌이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업자들이 농민들의 곡식을 사들이는 것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재미있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인민의 벗'에게 러시아 곳곳에서 벌어지는 노동인민에 대한 착취는 본질상 자본주의적이며, 기업형 농민들과 유통업자들은 이러한 정치·경제적 특징들 때문에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분류되어야 하고, 그런 현실이 농민 분화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증명한다는 것을 일러주자. 그러면 그는 비명을 지르며 그건 서구 유럽의 공식과 추상적인 방안들을 무차별적으로 빌려오는 행위이자 터무니없는 이단이라고(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단적' 주장의 실제 의미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회피하면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불러일으킨 '공포'에 색이 입혀져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고귀한 과학과 순수한 이상은 옆으로 밀려나고 농민의 곡식과 땅을 사들이는 자들이 단순히 타인의 물건을 '동경하는 이들'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대표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들의 손아귀에 생산수단을 집중시킴으로써 이미 모든 영역에서 인민의 노동을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게 압력을 가해 부르주아적 성격의 정책을 입안하고 강요하며 결정짓고 있다는 사실을 저 '인민의 벗'에게 입증해 보이자. 그러면 그는 버럭 화를 내며 우리 정부의 전지전능함을 외치기 시작하고는, '인민의 벗들'이 아닌 자본주의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들을 '끌어들이는 행위'가 치명적인 착오이자 불행이라고, 인공적으로 자본주의를 이식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 그들은 러시아 의회 내의 여관 주인들이 자본주의를 대표한다는 사실, 즉 이른바 계급의 꼭대기에 올라선 바로 이 정부의 구성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사양반들, 러시아 자본주의의 이익이 오직 '의회'에서만, 그리고 '여관 주인들'에 의해서만 대표된다고 생각하시오?

 

추잡한 공격들과 관련해서는 이미 미하일롭스키 선생을 통해 그 사례들을 충분히 지켜봐왔고, 눈꼴 시린 사회민주주의를 전멸시키기 위한 열망 속에 "일부는 자본주의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게 유일한 목적이라 주장하며 (물론 전문가나 사무직 노동자 같은 한직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 공장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한 크리벤코 선생을 통해서도 다시 그걸 확인할 수 있겠다. 이런 명백히 품위를 상실한 발언들에 대해 일일이 답변할 필요는 없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일 테고, 그만 여기서 마침표를 찍도록 하자.

 

아무튼 신사양반들, 그런 정신 상태를 용감하게 계속 유지하길 바라오! 당신들이 말한 대로 이미 여러 조치들을 통해 (설사 흠이 있었다 하더라도) 인민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원해주었던 황실 정부는 앞으로도 아무런 결함 없이 그렇게 해나가게 될 것이며, 그래서 당신들의 진부함과 무지가 드러나는 걸 막아줄 테니 말이오. 이제껏 그래왔듯이 '교양 넘치는 상류 사회'는 막간을 이용해 철갑상어와 카드놀이를 즐기며 기꺼이 '형제'를 들먹이고 그의 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한' 자비로운 사업들을 고안해낼 것이오. 그리고 그 형제를 대표하는 자들은 지방감독관 같은 농민들의 주머니를 감독하는 자리들을 차지하고 앉아 시민적 요구와 의무들에 관한 발달된 의식을 자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네로부터 알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을 것이오. 그러나 그 정신을 계속 이어가시게나들! 절대 방해받지 않을 뿐 아니라 지지와 칭찬까지 받게 될지도 모르니……. 물론 부레닌과 그 지지자들의 입으로부터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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