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벗들의 정치 강령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의 철폐가 아닌 부분적 개량만을 목표로 삼는 나로드니키의 개량주의적 조치는 소부르주아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따라서 그들의 정치 강령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그 계급적 실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유자코프는 『농업부』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10호에서 “농민 은행 개편, 식민화 부서 설립, 국유지 임대차 규제, 토지 임대 연구 및 규제 등을 매개로 인민 농업을 재건하고 금권 정치의 경제적 폭력으로부터 농민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경제 발전의 문제점들」에서는 나아가 “마을 공동체에 대한 규제 및 보호 감독의 철회, 공동 경작과 가공의 도입”을 필수적 보완책으로 제시한다. 여기에 크리벤코와 카리셰프는 “저금리 신용, 집단 농장, 이윤 배제”, “기술 혁신”, “물류·유통 기반 시설 확충” 등을 추가적인 개량책으로 덧붙인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한 저금리 신용, 기술 개량, 금융 기구 등의 모든 개량주의적 조치는 기존 자본주의 생산 관계를 전제로 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현존 사회 체제의 틀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자본주의 질서를 해체하기는커녕, 결과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계급 분화를 촉진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현재의 생산관계 아래서 수행되는 어떠한 개량도 실효성을 거둘 수 없으며, 신용, 이민, 세제 개량, 농민으로의 토지 이전 등은 체제적 전환에 기여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는 과도한 ‘보호 감독’과 봉건적 부과금의 잔재, 농민의 토지 예속 등으로 지체되어 있던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을 가속화할 뿐이라고 본 니콜라이 온의 견해는 타당하다. 그는 바실치코프 왕자 (Prince Vasilchikov)와 같이 신용 확대를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이 “자유주의적 외양”을 띠면서도 실제로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심화와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간파하였다. 이들은 ‘농민층 내부’ 생산관계의 적대적 성격을 직시하지 못하고 이를 공론화하거나 수탈당하는 농민의 투쟁을 지원하기보다, 계급 간 화해와 통합을 유도하는 타협적인 조치로 투쟁을 무마하려 시도한다.
이러한 개량적 조치들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귀결되어 있다. 모든 종류의 신용, 기술 개량, 금융 기구 설치 등 ‘개량주의적’ 조치들은 안정적인 농장을 소유하고 일정 수준의 ‘저축’을 확보한 극소수 소부르주아 계급에게만 선택적으로 활용될 따름이다. 따라서 농민 은행을 비롯한 개량책을 아무리 개편한다 할지라도, 수탈 과정에서 생산 수단과 생계 기반을 상실한 인민 대중의 객관적 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는 없으며, 적절한 농업 수단은 물론 생계 유지 수단조차 부족하다는 결정적인 사실을 조금도 바꾸지 못한다.
생산 수단의 독점과 사회적 수탈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집단 농장’이나 ‘공동 경작’에 기초한 농업의 사회화를 도모하려는 나로드니키의 개량주의적 구상은 실상에 부합하지 않는 관념적 구상이다. 생산의 참된 사회화는 개별 마을 단위의 제한된 범위를 탈피한 사회적 규모로 확장된 생산 체제를 요구하며, 현존하는 ‘착취자 계급’의 생산 수단을 몰수하는 계급 투쟁을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개량적 조치들은 계급적 적대 관계의 본질을 완화·은폐하며, 피착취 대중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계급 투쟁 대신 부르주아지의 시혜에 의존하는 속물적 적응 방식에 안주하게 만드는 해악을 초래한다.
자본주의적 적대 구조를 둔화시키려는 이러한 관념적 개량주의는 실제 생산 현장에서 부르주아적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와 관련하여 지식인층이 공장 기업에 대한 통제를 매개로 대중 산업을 주도할 수 있다는 크리벤코의 주장은, 현실의 계급적 대립을 은폐하고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를 포장하려는 나로드니키적 사고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공장제 대규모 산업을 수용하면서도 그 자본주의적 본질을 은폐하려는 나로드니키의 관념적 개량주의는 “지식인층 공장주들의 기업에 대한 통제를 매개로 대중 산업을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주장으로 구체화된다.
‘착취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없다면 착취와 투쟁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크리벤코의 명제는 나로드니키 사상 전반에 깔린 관념적 회피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해마다 러시아의 교육 기관에서 배출되는 ‘지식인층’이 생계 기반을 찾아 소부르주아지에 흡수되는 객관적 현실 속에서,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를 떠받치는 이들 지식인이 스스로 부르주아지의 범주에서 벗어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가리는 일이다.
이들은 현존하는 자본주의의 계급적 대립과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기를 철저히 거부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일정한 ‘결함’만 제거된다면 부르주아 질서 내에서도 인민의 생존이 존속할 수 있다는 개량주의적 착각을 유포한다. 결과적으로 나로드니키는 ‘만약’이라는 가정적 명제 뒤에 숨어 자본주의의 적대적 생산 관계를 은폐하고, 부르주아적 지배 질서를 수용·정당화하는 실천적 우를 범한다.
“자본주의 생산과 산업의 자본주의화는 공장제 수공업이 인민들로부터 오로지 결별만 하는 출구가 결코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한 인민들의 삶으로 들어와 농업과 원료 산업으로 더 가깝게 접근할 수도 있다. 이는 다각적인 방식으로 성사될 수 있고, 그런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 (161쪽).
크리벤코는 미하일롭스키에 비해 직설적이고 명확하게 자신의 관점을 드러낸다. 미하일롭스키가 본질을 우회하며 미사여구로 논점을 가리는 반면, 실용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크리벤코는 자신의 소부르주아적 견해를 숨김없이 제시한다. “자본주의가 인민의 삶으로 들어올 수 있다”라는 그의 주장은 노동 인민이 생산 수단과 결별하지 않고서도 자본주의적 발전이 성립할 수 있다는 관념적 착각을 보여준다. 이는 ‘인민의 벗들’이 지향하는 바가 자본주의 없는 상품 경제, 강탈도 착취도 없이 인간적인 지주와 자유주의적인 관료의 보호 아래 유지되는 소부르주아적 상품 경제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한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모순을 은폐하고 관료 기구의 개입으로 체제를 정비하려 시도한다.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동일 필자의 논문 (「우리의 문화 용병들」,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12호)을 살펴보면, 크리벤코는 “집단 농장이나 국유화 형태의 산업이 현실적 대체안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하며 100루블을 넘지 않는 주식 기반의 합자 회사 형태를 구체적 구상으로 제시한다. 이는 마을 공동체가 지분을 소유하고 주민 일부가 임금 노동자로 종사하면서 토지 소유를 유지하는 형태”를 골자로 한다. 결국 이러한 구상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와 임노동을 수용하면서 이를 공동체적 외양으로 포장하려는 소부르주아적 개량을 정당화하는 데 귀결된다.
자본주의적 모순과 파괴성을 은폐하고 이를 농촌에 조화롭게 결합할 수 있다는 나로드니키의 구상은 소부르주아적 착각의 전형을 보여준다. 마을 공동체가 기업으로부터 배당금을 수령하고 “주민 일부”가 임노동에 종사하도록 만든다는 이들의 방안은, 농민을 토지에 묶어둔 채 현지 자본가의 지배 아래 예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착취 관계와 임노동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공동체적 질서의 외양으로 포장하여 노동 대중을 지속적인 수탈 상태에 머물게 하는 개량주의적 모순에 불과하다.
러시아에 실재하는 사회·경제적 관계를 왜곡하는 나로드니키적 관념론은 당대 사회에 지배적으로 유포된 대표적 통념이라는 점에서 이론적 규명의 대상이 된다. 러시아에서 봉건적 생산 양식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으로의 전환은, 농민으로 하여금 토지에 기반한 생계 유지와 지주에 대한 소작료 지불을 차단하여 과거의 독립적 노동 범주에 속하던 ‘외부 고용’에 예속되는 구조적 결과를 초래하였다. 과거 농민이 누리던 상대적 안녕이란 귀족 관료 기구와 초기 부르주아지의 보호 아래 유지되던 농노제적 무기력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조건을 직시하지 않은 채 자본주의의 적대적 본질을 은폐하고 관료 기구의 개입이나 소부르주아적 개량책으로 농촌 대중을 구제할 수 있다고 믿는 나로드니키의 구상은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수탈 구조를 정당화하는 관념적 착각에 불과하다.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체제의 그늘진 실상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이를 관념적으로 이상화하며 성립할 수 없는 착각을 품는다. 이러한 태도가 ‘착각’에 불과한 이유는, 해당 체제가 이미 동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농민에 대한 대규모 재산 수탈을 수반하고 과거의 봉건적 ‘고용’ 관계를 자본주의적 ‘임노동’ 착취로 변모시킨 자본주의의 침투로 말미암아 이미 역사적으로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소부르주아 사상가들은 농민과 토지의 ‘생산 조건과의 결합’를 유지하길 갈망하나, 정작 이를 단독으로 보장해 주던 농노제로의 회귀는 거부한다. 그러나 그 결합을 성립할 수 없게 만든 주범은 상품 생산과 자본주의의 침투로 말미암은 농노제의 역사적 해체이다. 이들은 농민을 토지로부터 분리하지 않는 외부 고용, 즉 생산이 시장을 향해 이루어짐에도 경쟁을 유발하지 않고 자본을 창출하지 않으며 대중을 자본의 노예로 전락시키지 않는 형태의 외부 고용이라는 관념적 헛된 구상을 제시한다.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에 의존하는 이들은 현실의 개별적 요소 중 편의에 따라 이로운 점만을 ‘취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치한 갈망은 현실을 무시하는 반동적 착각이자, 자본주의 체제가 지닌 발전적이고 변혁적인 측면을 파악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드러낼 뿐이다. 결국 이는 착취와 억압의 공포로 가득 차 벗어날 수 없었던 ‘반(半)농노·반(半)자유 노동’이라는 과거의 지배 질서를 영속화하는 조치에 동조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반동적 경향 내에서 ‘인민의 벗들’이 갖는 고유한 위치를 입증하기 위해 두 가지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모스크바 젬스트보 통계 자료에는 포돌스크 군 K 여사 농장에 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해당 농장은 모스크바 통계학자들뿐만 아니라 V. V. 에게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V. 오를로프 (Orlov)는 이 K 여사의 농장을 ‘농업의 건전한 상태와 사유지 경영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K 여사는 겨울철 밀가루를 대여해 주는 대가로 지역 농민들의 노동력을 확보하여 농장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시혜적 조치 덕분에 해당 지역 농민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곡물 수급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여인은 농민들에게 특유의 온정을 베풀고 구제를 제공하였으며, 그 결과 농민들은 해당 지역에서 가장 유복한 계급에 속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 니콜라스 날조차 버티지 못하던) 예전과 달리 거의 새로운 추수철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의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제기된다. N. 카블루코프 (Kablukov) (제5권, 175쪽)와 오를로프 (제2권, 55~9쪽 등)의 주장처럼 ‘이러한 방식’이 ‘농민과 지주 간의 적대적 이해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K 여사의 농장 경영은 본질적으로 농민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구조에 기반하므로, 착취 관계는 전혀 지워지지 않는다. 피착취자를 향한 온정주의적 태도 뒤에 숨은 착취의 본질을 보지 못한 K 여사의 시각적 한계는 차치하더라도,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오를로프의 판단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의 시각은 자본가의 자선적 형태에 매료되어 잡화점이나 주거 시설 등을 제공하는 공장주의 사례를 열광적으로 옹호하던 서구 박애주의자들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적대적 이해관계가 부재한다는 착시를 유발하는 단편적 ‘사실’에 집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구조적 본질을 외면한 편착에 불과하다. 즉,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본 비판의 첫 번째 핵심이다.
두 번째 핵심은 다음과 같다. 오를로프의 설명에 따르면 K 여사는 우수한 종자를 제공하여 높은 수확고를 거두게 하여 농민들로 하여금 가축을 확보하고 ‘유복한’ 농장을 유지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설령 ‘이들 농민’이 완전한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연중 충분한 곡식을 확보하며, 적정 규모의 ‘목장 및 목초지’를 소유하는 이상적인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전제해 보자.
그렇다면 농민 경제가 완전히 번영을 구가하는 상태에서도 이들이 ‘K 여사의 사유지 노동을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행할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또한, 농민들에게 온정주의적 보살핌을 제공하여 이윤을 수출하는 지주의 행태가, 목장 및 목초지의 결핍이라는 농민들의 궁핍한 현실보다 더 강력한 노동 유인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인민의 벗들’의 인식의 구조 역시 동일한 논리적 궤적을 그린다. 진정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로서 이들은 착취의 폐기 대신 완화를, 계급적 대립의 해결 대신 회유를 추구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한 비판에서 출발한 이들의 관념적 구상은, 지주와 자본가의 시혜적 태도가 전제된다면 농민이 ‘유복한 상태’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는 생각의 한계 내에 매몰되어 있다.
유자코프는 「러시아 인민의 토지 소유 할당량」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1885년, 제9호)에서 자본주의적 착취를 배제하는 ‘인민적’ 토지 소유의 적정 규모를 제시하고자 했다. 크리벤코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인민의 삶에 자본주의를 침투시키는”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였다. 지주 신분인 그는 분여지에서 “식량과 지불금”을 충당하고 나머지는 “일자리”를 얻어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농민이 토지와의 연관성을 유지한 채 ‘분여지’에서는 지주에게, ‘일자리’에서는 자본가에게 이중으로 착취당하는 구조적 처지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이중 착취와 소생산자의 예속적 생활 조건은 피억압 계급의 주체적 투쟁 역량을 마비시키며, 결국 이는 반(半)중세적 억압 질서를 영속화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그러나 개혁 이후 급속히 발전한 자본주의는 반(半)봉건적·가부장적 농민층이라는 구체제의 지지대를 해체하고 이들을 중세적 예속에서 끌어내어 현대 자본주의적 관계로 분리해 냈다. 자본주의가 농민을 생존을 위해 이동하는 임금 노동자로 전환함에 따라, 착취의 본질은 특정 개별 주체의 약탈이 아닌 체제 자체의 계급적 착취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침투가 농촌 대중을 복잡한 사회·정치적 역동 속으로 포섭해 들어가자, ‘인민의 벗들’은 구체제의 몰락과 파괴에 탄식하며 과거로의 회귀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새로운 생산 양식이 지닌 구조적 역동성과 옛 착취 체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회 세력의 등장이라는 혁명적 측면을 포착하지 못한 채, 반동적 착각을 답습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인민의 벗들’은 현 체제의 어떠한 급진적 변화도 추구하지 않는다. 이들은 현존하는 사회적 토대 위에서 시행되는 자유주의적 조치들에 전적으로 만족하며, 크리벤코 역시 이러한 개량책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관료적 행정 수완을 과시하는 데 머물러 있다.
그는 “구체적 조사를 거쳐 인민 산업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급진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즉, “산업을 인민의 삶에 결합할 수 있는 요소와 그 과정에서 직면할 구조적 장애 요인을 구분하여 정밀하게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크리벤코는 산업을 자본주의화의 진행 여부 및 “대규모 산업과의 경합 양상”에 따라 분류하고 체계화된 분할의 사례를 제시한다.
그는 이러한 구분을 바탕으로, “첫 번째 유형인 소생산 영역에서는 자본의 지배로부터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상품 생산이 진행되는 조건에서 소생산자들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분화되는 시장 관계, 지역 시장의 확대와 거대 시장으로의 흡수, 기술 발전에 수반되는 자본주의적 경향성을 회피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전제에 불과하다.
한편 ‘대규모 생산이 불가피한’ 영역에 대해 그는 자본주의적 집중과 경합할 수 있는 대체 조직 형태의 구상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값싼 신용의 제공, 중간 상인 배제, 집단 농업의 도입, 고용주 이윤의 사회적 처분, 시장 확보, 기술 개선과 더불어 여타 혜택으로 보상받는 조건에서의 임금 삭감 등으로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 기계 설비 등에 대응하는 대규모 생산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적 구조는 수사적으로 원대한 이상을 제시하면서도 실제 행위에서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개량주의로 귀결되는 ‘인민의 벗들’의 본질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들은 고용주 이윤의 사회적 처분과 대규모 생산 조직화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설정한다. 이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최종 목표와 외견상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방법론에서 결정적인 균열이 발생한다. 고용주의 존재를 배제한 대규모 생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생산을 시장 규율이 아닌 생산자 결사체의 지배하에 두고,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는 상품 경제의 전면적 폐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행은 분산되고 고립된 소생산 과정을 단일한 사회적 생산 체계로 재편하는 생산 형태의 연쇄적 전환을 요구하며, 이는 오직 자본주의가 창출한 물질적 토대 위에서만 성립 가능하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자본주의적 토대를 수용하기를 거부하며, 상품 경제의 철폐에 대해서는 외면으로 일관한다. 이들의 구상은 현존 사회적 생산 체제의 테두리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생산 수단의 독점에 기반한 고용주의 이윤을 박탈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적 혁명 운동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계급 투쟁의 필요성을 전면 부정하며 자본가 계급의 자기 관리 기구 외에 독자적 계급 주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포착하지 못한다.
결국 이들은 고용주 이윤을 실질적으로 제약할 어떠한 의사도 지니지 않는다. 크리벤코는 ‘이윤의 사회적 처분’이라는 표면적 구상이 초래할 파급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를 신용 제공, 유통 구조 조직, 기술 개선 등의 수단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타협안으로 후퇴한다. 이는 이윤 추구라는 자본의 정당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소부르주아적 생산자층을 자본주의 체제 내에 고착시키는 지극히 온건한 자유주의적 조치로 귀결된다.
나아가 소부르주아적 계급 기반을 은폐하지 않는 이들의 입장은, 이윤율의 보전이 ‘임금 삭감’의 집행을 동원하여 달성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확장된다. 이는 거대 자본과 소자본 간의 경쟁에서 소자본가의 생존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 시간 연장과 임금 삭감을 동원해 온 소부르주아적 생존 전략을 지속적으로 대변한 결과이다! 이등른 소자본의 보전을 명목으로 ‘타당한 보상이 전제된 임금의 일부 삭감’을 대책으로 제시하며, 결과적으로 자본가의 ‘이윤’ 구조를 철저히 보장하고 노동자에 대한 수탈을 정당화하는 반동적 논리에 이르게 된다.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의 자유주의적 행정가들이 지닌 부르주아적 본질은 독점 문제를 다룬 《러시아의 부》 제12호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해당 기사의 필자는 “독점과 신디케이트의 형성을 발달한 산업이 지향하는 최상위 단계”로 설정하면서, “자본주의적 경쟁이 미숙한” 러시아에서 이러한 현상이 출현하는 것에 경악을 표한다. 그는 “설탕과 석유 등 주요 산업 분야의 1인당 소비량이 미미하다는 사실을 들어, 이들 산업이 아직 태동기에 머물러 있으며 향후 막대한 자본을 흡수하며 확장될 여지가 크다”고 진단한다. 즉, 자본주의적 독점의 형성을 비판적으로 아우리기보다 자본의 팽창과 시장 확대를 정당화하는 부르주아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실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순간, 필자가 국내 시장의 위축에 대해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가 가장 선호하는 발상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은 특징적이다. 그는 국내 시장이 여전히 상당한 발전 전망을 갖고 있으며, 위축되지 않을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러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소비 규모가 더 큰 서구와의 비교에 기반하여 서구의 문명 수준이 더 높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사람들을 상호 간의 더욱 빈번한 교류로 이끌고 각 지역이 중세식으로 고립되어 있던 상황을 무너뜨린 자본주의 기술의 발전, 상품 경제와 교환의 성장 외에 이러한 문명의 물질적 토대는 무엇인가? 예컨대 반(半)중세적 농민층이 아직 농촌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분화되지 않았던 대혁명 이전 프랑스의 문명 수준 역시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필자가 러시아의 생활상을 좀 더 면밀히 검토했더라면, 자본주의가 발전한 지역 농민층의 생활 수준이 순수 농업 지역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포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주민들의 삶 전체에 산업으로서 영향력을 미칠 정도까지 발전한 수공업을 연구한 분석가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바다.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실질적인 변화나 발전 경향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해명이란 단지 ‘문명’의 확산이나 전반적인 삶의 복잡화 같은 피상적 현상에 머무르며, 정작 그 문명과 복잡다단한 사회적 구조를 성립하게 하는 물질적 토대에 대해서는 분석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농촌의 객관적 경제 실태를 세밀히 검토했더라면, 국내 시장을 창출하고 확장하는 근본적 동인이 다름 아닌 농민층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의 계급적 분화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들은 시장의 확장이 부르주아지의 성장으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도외시했다. 「국내 문제 연대기」에서 제시된 “생산 발전 수준이 미비하고 자발성이 부재한 조건에서 독점은 국가 경쟁력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나, 담배 독점이 “인민 유통의 영역에서 1억 5,400만 루블을 수탈할 것”이라는 추산은 이러한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경제 체제의 토대가 상품 경제이며 그 발전 경향을 주도하는 세력이 부르주아지라는 점을 망각한 논의다. 해당 필자는 부르주아지가 독점의 제약을 받는다는 본질 대신 ‘국가’를 상정하고, 부르주아적 유통 관계 대신 ‘인민’ 유통이라는 관념적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시각의 한계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 ‘인민의 벗들’ 사이에서 권위 있는 매체로 간주되던 《조국연보》 (1872년 제2호)에 실린 『금권정치와 그 토대』의 한 대목을 인용할 수 있다.
“마를로(Marlo)에 따르면 금권 정치의 핵심적 특징은 자유주의적 정치 체제 및 취득의 자유라는 원칙에 대한 옹호다. 이 기준을 적용해 지난 8~10년의 경과를 돌이켜보면 자유주의 측면에서 상당한 발걸음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 어떠한 언론 매체든 일정하게 민주주의적 원칙을 표방하며 인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적 수식과 병행하여, 또는 이를 빌미로 삼아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금권 정치적 지배 구상이 지속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상인들이 재무장관에게 전달한 인사말은 이러한 구조적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러시아의 금융 정책이 사기업의 광범위한 확장 여지에 기반하여 유의미한 결실을 거둔 점”에 대해 대표적 부르주아 조직으로서 감사를 표했다. 이는 “금권정치적 요소와 경향이 러시아 사회 내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본가 계급 스스로가 해답을 제시한 사례다.
이처럼 개혁 초기, 유자코프의 주장과 달리 ‘인민의’ 생산이 아닌 금권 정치의 발전 경로가 확립되던 시기의 선대 지식인들은 러시아 사기업이 지닌 부르주아적 성격을 자각하고 있었다.
‘인민의 벗들’이 실질적인 경제 발전 과정에서 작동하는 ‘진취성과 자발성’을 논할 때 그 적대적·착취적 성격을 도외시하는 것은 이론적 한계를 드러낸다. 이들은 “인민” 유통과 “국가 경쟁력”의 확장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이 관철되는 부르주아적 조건은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물론 노동 인민의 처지를 직접적으로 악화시키는 독점이나 중세적 전제 제도를 비판하고 이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노동 인민을 예속하는 핵심 기제는 중세적 속박 위에 포개진 현대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독점의 폐지, 즉 중세적 잔재의 청산은 자본주의적 비참함에 가중되던 전근대적 수탈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전체 노동 “인민”의 이익에 부합한다. 따라서 이러한 봉건적 유산은 가급적 철저하게 해체되어야 한다. 이는 부르주아 사회가 물려받은 구조적 제약을 청산함에 따라 노동 계급의 계급적 주체성을 확보하고,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이들의 계급 투쟁의 조건을 선명하게 정립하기 위함이다.
부르주아 체제에 맞서는 노동 계급의 투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독점과 제반 중세적 제약을 폐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제시해야 했다. 중세와 봉건 제도에 맞서 전체 ‘인민’의 이해관계가 상호 결합할 수 있다고 전제하거나, 그 내부에서 전개되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를 도외시하는 것은 부르주아적 시각에 불과하다.
‘인민의 벗들’은 농촌의 실제적인 요구와 계급적 조건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현상을 피상적으로 수용하는 한계를 보인다. 예컨대 크리벤코는 “농촌에 필요한 전문 직종과 지식인의 목록을 제시한 언론의 논의를 인용하며, 의사, 보조 의사, 법률가, 교사, 도서관 사서, 서점주인, 농경제학자, 삼림 전문가와 농업 전문가, 다양한 분야의 기술자, 신용 기관 관리자 등 다채로운 직업군이 망라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농촌 사회 내부의 계급적 분화와 수탈 관계를 도외시한 채 지식인층의 관료적·개량주의적 구상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인민의 벗들’이 제시하는 삼림·농업 전문가, 기술자 등 지식인 인력에 대한 농촌의 수요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때 그들이 말하는 ‘농촌’의 실체가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크레벤코가 ‘지식인’이라 칭하는 ‘전문가’들에게 대가를 지불할 자금력을 갖춘 주체는 지주와 기업형 부농층에 국한된다. 이들 상위 계급의 농촌은 실제로 전문가의 기술적 지원과 신용, 창고 시설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해왔으며, 이는 기존의 경제 문헌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이 간과하고 있는 또 다른 농촌, 즉 수탈과 몰락으로 피폐해지 광범위한 민중의 농촌이 존재한다. 이들은 전문가의 노동에 대가를 지불할 경제적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당장의 생계조차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인민의 벗들’이 구상하는 창고 건설 정책이 이러한 빈곤 농민층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허상이다. 생산 수단을 상실하거나 영세한 농지만을 보유한 농민들에게는 보관할 생산물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과거 기근 당시 생계 유지를 위해 시골과 도시의 부농들에게 토지와 생산 수단을 담보로 잡힌 채 자신의 ‘노동력’만을 유일한 상품으로 보유한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력을 보관할 ‘창고’란 관료적 개량주의 구상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자들’을 자처하는 집단이 제시하는 ‘농민층’ 내 기술적 발전론은 실상 농촌 내부에서 전개되는 대규모 착취 구조를 도외시한 피상적 주장에 불과하다. 예컨대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2호에서 카리세프는 아메리카귀리, 바라호밀, 말먹이 귀리 등 “개량종 씨앗의 보급 사례”를 들며 농민 농업이 “기술적 개선”을 이루었다고 강변한다. 그는 “농민들이 종자 육성용 필지를 별도로 설정하여 선별된 곡물을 재배하거나”, 경운기·탈곡기·종자 분류기 등 “개량 농기구”를 도입하는 양상을 성과의 증거로 제시한다. 나아가 인산비료, 아교 반죽, 비둘기 배설물 같은 “다양한 비료의 활용 및 이를 위한 젬스트보 상점 설치 구상”까지 언급한다. V. V.의 『농민 농업의 경향』에서 자료를 인용한 카리세프의 이러한 서술은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배제한 채 부르주아적 개량주의의 관점을 관념적으로 옹호하는 이론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2호에 게재된 카리세프의 서술은 관념적 위선과 소부르주아적 관념론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빈곤과 부채에 시달리는 농민들이 토지에 집착하며 개량을 시도하는 모습을 ‘희망’과 ‘시혜’라는 피상적 틀로 포장한다. 그러나 인산 비료, 종자 분류기, 탈곡기 등 선진 기술 수단을 도입할 자금력을 갖춘 주체는 영세 농민이 아닌 부농층에 국한된다. 사회적 생산 관계와 계급 분화를 도외시한 채 이를 전체 ‘농민’의 발전으로 치환하는 것은 정치경제학적 현실에 대한 무지이자 부르주아적 개량주의의 왜곡된 시각에 불과하다.
나아가 카리세프는 “농민의 사기를 북돋우고 젬스트보 상점이나 박물관, 모범 농장과 같은 외부적 지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관료주의적 계몽론을 펼친다. 그러나 이는 농촌 내부에서 전개되는 대규모 수탈과 농민층의 프롤레타리아트화 과정을 완전히 은폐하는 주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토지와 생산 수단을 상실하고 자신의 노동력만을 보유한 채 부농에게 예속되어 가는 민중의 현실을 외면한 채, “과학”과 “위원회에 기초한” 개량을 훈계하는 행태는 ‘인민의 벗들’이 지닌 소부르주아적 본질과 지식인 중심의 한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민의’ 소부르주아 계급 벗들은 소부르주아식 발전의 향연을 즐기고 있다!
농촌 경제에 대한 구조적 분석만으로도 우리는 핵심적 사실, 즉 ‘농민층’의 대규모 수탈과 농업 생산 내 기술적 발전과 동시 병행한다는 구조적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나아가 ‘농민층’을 파편화된 분화 과정을 외면한 채 동질적인 단일체로 규정하는 주장의 허구성 및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띠는 부르주아적 성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 완전히 귀를 닫고 있다. 과거 러시아 인민주의의 혁명적 유산을 상실한 이들은 농민층 내부의 계급 적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초기 인민주의의 결정적 한계마저 바로잡지 못한 채 한층 더 퇴행하고 있다.
70년대 인민주의자들은 농촌 사회 내부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계급 적대를 감지하지 못했기에, 이를 단순히 기생적 착취자인 ‘쿨락’과 공산주의적 본성을 지닌 ‘농민’ 사이의 대립으로만 단순화하여 파악했다. 그러나 글렙 우스펜스키 (Gleb Uspensky)는 이러한 보편적 착각을 거부하고 회의주의적 시각에서 현상의 본질을 파악했다. 농촌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춘 그는 고리대금업자와 채무자의 단순 대립 축을 벗어나 농민들 간의 내부적 경제 관계 전반에 개인주의적·자본주의적 원리가 이미 뿌리 깊게 작동하고 있음을 정확히 포착했다.
농촌 경제에 대한 정확한 실증 자료가 부족하고 농민층의 계급적 분화가 미미했던 1860~70년대에 발생한 이론적 한계는 시대적 구속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농민층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기술적 발전 경향이 동시에 확인되는 최근의 국면에서도 이러한 분화를 외면하는 것은 의도적인 현실 회피에 불과하다. V. V. 역시 해당 주제를 다룬 저술에서 기술·농경학적 측면의 개선을 명확한 사실로 제시하지만, 이는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수탈과 구조적으로 상응하는 현상이다. ‘인민의 벗들’은 ‘농민’의 기술적 수용 태도에만 주목할 뿐, 농민이 토지로부터 분리되는 구조적 과정은 도외시한다. 나아가 농민 분리와 함께 토지가 자본으로 전환되고 국내 시장이 형성되는 경제적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를 보인다. 공동체 농민 내부에서 전개되는 이러한 대립적·분화적 과정을 부르주아적 사회 성격 이외의 논리로 설명할 길이 없으며, 이들이 내세우는 인도주의적 수사는 과학적 분석과 실천적 한계를 은폐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현질서에 대한 개량주의적 타협을 정당화하는 ‘인민의 벗들’의 서술은 소부르주아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크리벤코는 “거창한 담론보다 사소한 실천이 더 낫다”는 논리를 펼치며, 학교 설립, 법률 자문, 젬스트보와의 연계에 바탕을 둔 수공업자 창고 설치 등을 그 성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자본주의적 수탈과 계급 분화라는 구조적 근본 원인을 외면한 채, 체제의 틀 안에서 잔재적 모순을 미봉하려는 관료주의적·개량주의적 땜질에 불과하다.
이러한 개량적 조치들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를 봉건적 잔재로부터 절연하여 부르주아 체제를 공고히 하는 자유주의적 범주에 속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노동 계급의 투쟁 대상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인민의 벗들’은 “온건한 자유주의적 행동”을 도덕적 출구로 제시하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혁명적 노선을 비판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부르주아적 질서에 봉사하는 개량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인민주의자들의 이론이 비현실적인 유토피아주의에 머물렀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타협안에 단호히 반대했다. 반면 현대의 ‘인민의 벗들’은 과거 인민주의의 혁명적 지향을 상실한 채, 체제 수용적인 온건 자유주의 노선으로 퇴행했음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까마득한 과거의 일에 불과하며,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역사적 유산을 완전히 망각한 태도를 보인다. 정치 제도에 대한 유물론적 비판을 상실하고 현대 국가가 띠는 계급적 성격을 파악하지 못할 때, 정치적 급진주의는 지식인 중심의 관료주의적 기회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이 이들의 이들의 전술적 행태에서 단적으로 입증된다.
이러한 기회주의의 단적인 사례로 “국유재산부를 농업부로 개편하는 조치가 제시된다.”
유자코프 “이러한 행정 기구의 변경이 경제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도 있으나 단순한 관료 직무의 교체에 그칠 수 있다” (《러시아의 부》, 제10호)고 주장한다.
결국 이는 지배 기구에 ‘청원을 제시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정책의 향방이 결정된다고 보는 시각으로, 기존 사회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수탈 구조 자체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 소부르주아 개량주의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같은 글에서 유자코프는 “경제적 강자로부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 개입의 첫 번째 본연의 임무”라는 주장을 이어간다. 《러시아의 부》 제12호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 역시 동일한 논지로 유자코프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유자코프는 이러한 박애주의적 수사가 서유럽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논리와 치밀하게 연동된다는 점을 숨기지 않으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글래스스톤 (Gladstone)의 토지 법안들, 비스마르크 (Bismarck)의 노동자 보험, 공장 감독, 러시아의 농민 은행 구상, 이주의 조직화, 쿨락의 이익에 반하는 조치들 등은 모두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 개입이라는 동일한 원칙을 적용한 시도이다.”
이 대목은 그나마 솔직함이라는 미덕은 지닌다. 필자는 글래스스톤이나 비스마르크처럼 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를 고수하고자 하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사회를 수습하고 재편하길 바랄 뿐 이에 맞서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현재의 사회에 기초해 지배 계급의 이익을 수호하는 기구인 국가를 개혁의 도구로 본다는 그들의 근본적 이론적 신념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들은 모든 계급 위에 존재하는 전지전능한 국가를 정당화하며, 국가가 노동 계급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적합한 체제를 창출해 내리라 기대한다. 따라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인 이들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산 조건 자체로 인해 해체·고립되어 있고 한정된 공간과 착취자에게 묶여 있는 소생산자들은, 간혹 프롤레타리아만큼이나 고통받으면서도 자신들이 겪는 착취와 억압의 계급적 성격을 파악하지 못한다. 바로 이 점이 이들을 반동적 계급으로 만드는 소부르주아지의 근본적 특징이며, 이들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국가 역시 계급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위대한 ‘인민의 벗들’이여, 그렇다면 본 노선이 지금까지, 특히 토지 개혁 이후 더욱 본격적으로 부르주아 계급과 자본주의만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창출’해 온 까닭은 무엇인가?
국내 경제가 상품 생산과 상공업의 발전으로 규정되는 역사적 시기에, 절대적이자 계급 중립적이라 자처하는 국가 기구가 이러한 방향성을 띤 배경은 무엇인가? 생산 양식의 구조적 변화가 사회 깊숙이 정착됨에 따라 제도적 장애물이 수반되었을 뿐이며, ‘국가 기구’ 역시 실제로는 특정한 계급적 기반을 ‘창출하고 수호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경제적 변화를 단순한 정부 정책의 산물로 재해석하여 축소하는 태도는 타당한가?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계급적·구조적 물음에 전혀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들에게 사회적 모순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유물론’, ‘변증법’, ‘형이상학’이라는 명목으로 매도 대상이 될 뿐이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온건하고 자비로운 정책을 건의하고 간청하는 것만으로 사회 문제 전체가 원만히 해결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관념론에 골몰해 있다.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순응주의와 자유주의적 비굴함에 있어서 《러시아의 부》는 러시아 자유주의 언론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퇴행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자코프는 “염세 및 인두세의 폐지와 토지 상환금 감축을 언급하며, 이를 인민 농업에 대한 국가의 전향적 정책이자 성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량주의적 관점은 수탈의 형태적 전환을 외면한 피상적 시각에 불과하다. 염세 폐지의 이면에는 각종 간접세의 부과와 인상이 뒤따랐으며, 인두세 폐지 과정에서는 국유지 농민의 부담금이 대폭 인상되었다. 또한 상환금 감축 조치 이후에도 지불 대금과 토지 수익 간의 심각한 격차가 지속되어 봉건적 면역 지대의 수탈 구조가 사실상 재현되었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외면한 채 국가의 시혜적 조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제도적 개량에 의존하는 소부르주아적 한계를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단지 꽃에 불과하며, 이제 과실의 실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880년대는 인민의 부담을 경감했고 인민이 완전히 몰락하지 않도록 구제했다.” (앞서 언급한 조치들에 힘입어!)
이 구절은 앞서 인용한 미하일롭스키의 주장, 곧 우리가 여전히 프롤레타리아를 창출해야 한다는 강변과 부합하는 부끄러운 노예근성의 고전적 표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러시아 자유주의의 진화에 대한 시체드린의 예리한 묘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자는 정부 당국을 향해 ‘가급적’ 개혁을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으로 시작해, ‘적어도 일부라도’ 달라고 구걸하다가, 마침내 ‘아무렇게나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달라고 애원하는 지점까지 일관된 수동성을 고수한다. ‘인민의 벗들’ 역시 이러한 굴종적 입장을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당시는 기근이 수백만 인민을 덮친 시기로, 이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상인의 인색함에서 소심함으로 이행했을 뿐임을 알면서도, 이들은 정부가 인민을 철저한 몰락에서 구제했다는 주장을 지면에 버젓이 실었다! 몇 년이 지나 농민층에 대한 수탈이 더욱 가속화되고, 정부가 농무성을 신설하는 한두 가지 직접세를 폐지하는 대신 간접세 대여섯 가지를 새로 부과하여 기근이 4천만 인민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더라도, 이들 신사는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할 것이다. 굶주린 인구가 5천만 명이 아니라 4천만 명에 불과한 것은 정부가 인민의 부담을 경감하고 몰락에서 구제한 덕분이며, 정부가 ‘인민의 벗들’의 제언을 수용하여 농무성을 창설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밖에도 또 다른 사례가 존재한다.
《러시아의 부》 제2호에서 러시아가 “다행히도” (원문의 표현 그대로다!) 후진국이며 “자신의 경제 체제를 연대의 원칙에 기초할 수 있게끔 해준 요소들을 유지해왔다”고 주장한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는, 따라서 러시아가 “국제 문제에 있어서 경제적 결속의 주장자”로 행동할 수 있으며 러시아에 주어진 이러한 기회는 부인할 수 없는 “정치적 역량”에 힘입어 강화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모든 반동적 행위의 변치 않는 가장 확실한 보루는 바로 유럽의 경찰관인 러시아였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에서 억압받는 러시아 인민으로 하여금 서구의 인민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종사하게 하는 치욕스러운 입장에 서게 했다. 그것이 바로 경제적 결속의 주장자로 포장된 경찰관 러시아의 실체다!
따라서 위의 주장은 실로 모든 한계를 넘어서는 궤변이다! ‘인민의 벗’들은 그 어떤 자유주의자조차 능가한다. 이들은 정부에 간청하고, 정부를 칭송하며, 지극한 존경과 열정을 다해 기도를 바친다. 그들이 이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바닥에 이마를 찧는 소리는 지나가던 이조차 섬뜩함을 자아낼 정도다.
여러분은 속물에 대한 괴테의 정의를 기억하는가?
속물이란 무엇인가?
텅 빈 속을
두려움과 신의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채운 자다.
— 괴테
이러한 정의는 러시아의 실정과 온전히 맞닿아 있지는 않다. 신은 이들에게 부차적 존재에 불과하며, 핵심은 정부 당국이다. 위 정의에서 ‘신’이라는 단어를 ‘정부 당국’으로 대체한다면, 자유주의적 러시아 ‘인민의 벗들’이 지닌 이념적 상투성과 도덕적 수준, 그리고 시민적 용기의 실상을 정확히 포착하게 된다.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토록 터무니없는 ‘인민의 벗들’은 이른바 ‘인텔리겐처’에 대해서도 상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크리벤코는 “문학이 사회적 현상들을 그 의미에 따라 평가하고 능동적 노력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교사와 의사 등 전문가가 부족하여 인민이 가난과 병마, 문맹에 시달리는 현실을 문학이 지속적으로 발언해 왔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카드놀이, 연극 감상, 귀족 주최 파티에서의 사치스러운 유흥에 환멸한 이들이 희귀한 자기희생 정신을 발휘하여 현장으로 나설 때 문학이 이들을 환영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는 소부르주아 지식인이 향락적 생활 양식을 절제하는 정서적 결단 따위를 대단한 계급적 헌신으로 포장하고, 구조적 모순에 대한 과학적 규명 대신 지식인의 시혜적 계몽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념론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치적 연륜으로 지혜를 얻게 된 왕년의 운동가는 사무적인 어법을 취하며 지방 감독관, 시장, 젬스트보 의장이나 위원 등 새로 제정된 규정에 따른 직위를 수용할 것인가를 두고 “망설이는” 이들을 비판한다. “그는 시민적 의식이 발달한 사회라면 필수적인 성격을 지닌 개혁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그 적극적 측면을 활용·발전시키고,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는 사문화할 것이며, 개혁에 아무런 유의미한 내용이 없다면 해당 기구 자체를 완전한 소외 상태로 남겨둘 것이므로 이러한 망설임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체제의 제도적 기구에 진입하여 개량적 미봉책을 수행하는 행위를 ‘개혁의 활용’으로 포장하고, 국가 권력 기구의 계급적 본질에 흡수·순응하는 개량주의적 실천을 합리화하는 소부르주아적 타협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에 이어 ‘인텔리겐처’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나는 ‘인민의 벗들’의 개량주의적 한계는 관념론적 타협으로 수렴한다. 이들은 카드놀이와 파티 등 향락적 생활을 절제하는 개인적 결단 따위를 대단한 계급적 헌신으로 포장하며 지식인의 시혜적 계몽을 칭송하는가 하면, 국가 권력 기구에 진입하여 미봉책을 수행하는 행위조차 ‘개혁의 활용’으로 합리화한다.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한 사교계의 가십을 수집하고 지배 기구의 시혜에 아첨하며 체제의 직위를 적극 수용하라고 계몽하는 이러한 주장은, 포장된 인민주의의 탈을 썼으나 실상은 국가 권력의 계급적 본질에 완전히 순응한 소부르주아적 기회주의이자 관념론적 비굴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인민의 벗들’은 “전통적 이상”을 수호한다는 구실로 혁명적 유산마저 심각하게 왜곡한다. 이들은 프랑스 혁명 사상이 전파되던 시기 헤르첸과 체르니셰프스키 (Chernyshevsky)가 정립한 혁명적 사상 전통을 오직 자신들만이 계승하고 있다고 자처한다. 그러나 체제의 제도적 기구에 진입하여 기회주의적 타협을 정당화하는 이들의 행태는 선조들의 혁명적 이상을 더럽히는 명백한 언어도단이자 모욕에 불과하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굴종과 속물적 타협주의를 인민주의의 전통으로 포장하는 것은 선대 선구자들의 유산에 대한 철저한 모독이다!
최초의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에 내포된 특성은 “그 시대 모든 사회주의자는 시인이었고, 모든 시인은 사회주의자였다.”라는 카우츠키의 지적에 명확히 집약되어 있다.
러시아의 공동체적 생활 체계라는 특수한 사회 질서와 이에 기반한 농민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신념은 청년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차르 체제에 맞서는 영웅적 투쟁으로 이끌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 시대 선구자들의 역사적 헌신과 유물론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뿐, 결코 이를 폄하하지 않는다. 반면 과거의 혁명적 신념을 상실한 V. V. 가 마을 공동체를 이타주의의 중심지라 미화했을 때, 미하일롭스키조차 “어떠한 연구도 마을 공동체와 이타주의 간의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해야 했을 만큼 관념적 민중주의의 논리는 이미 파산해 있었다. 객관적 연구가 아닌 무조건적인 맹신에 의존하던 과거의 관념론적 이상주의는 이미 소멸하였으며, 이를 미화하여 체제 타협의 명목으로 삼는 ‘인민의 벗들’의 태도는 청년기의 투쟁적 유산을 속물적 기회주의로 변질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적 질서에 대한 맹목적 신념에 기반했던 과거 농민 사회주의의 해체는 농촌 내부의 계급적 분화라는 객관적 조건과 결을 같이한다. 미하일롭스키조차 시인했듯, 농촌의 계급 분화는 통일체로서의 농민이라는 관념적 전제를 해체하여 한편으로는 농촌 프롤레타리아를,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적 쿨락을 출현시켰다. 이에 따라 과거의 농민 사회주의 역시 사상적 유효성을 상실한 채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로 이행하거나 소부르주아 급진주의로 타락하였다. 상품 경제의 발전과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수용하면서도 그 내부의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 필연적 계급 투쟁을 부정하는 절충주의는 이러한 사상적 퇴보의 산물이다. 결국 현존하는 생산관계의 근본적 변혁을 목표로 하던 정치 강령은 근대 사회의 토대를 보존한 채 농민의 처지를 부분적으로 ‘개선하려는’ 개량주의적 모순으로 귀결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분석을 “논박하고자” 시도한 《러시아의 부》 논객들의 태도는 객관적 비판의 비판적 언어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입각한 경제적·현실적 분석의 본질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구체적 결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려는 이론적 노력을 일절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검열을 피한다는 핑계 뒤에 숨어 추상적 도식과 역사적 진화 과정에 대한 공허한 문구를 되풀이하는 관념론적 왜곡을 자행한다. 예컨대 크리벤코가 마르크스를 인용하며 “인간의 소망과 의식적 의도에 따라 자본주의의 부침을 피하고 더 우회적인 경로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식의 왜곡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유물론적 역사관의 기치 아래 사회적·경제적 진화의 객관적 법칙성을 규명해 낸 이론적 본질을 모독하는 무지와 궤변의 전형이다.
크리벤코는 익히 알려진 ‘마르크스의 편지’ (《법률 통신》, 1888년, 10호)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인 왜곡을 자행한다. 러시아가 “자본주의 체제의 고통을 겪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고 본 체르니셰프스키의 주장을 마르크스가 평가한 대목을 들먹인 그는, “그 (체르니셰프스키)는 후자의 해결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마르크스의 원문을 인용한 직후 따옴표를 닫으며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런 이러한 견해들에 동조한다고 말한다” (186쪽, 12호, 크리벤코의 강조)라는 구절을 덧붙이며 인용문의 본뜻을 자의적으로 왜곡한다. 이는 선대 사상가의 원전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서술 구조를 왜곡하고 자신의 개량주의적 주장을 마르크스의 권위에 얹어 정당화하려는 수사적 공작에 불과하다. 관념론자들은 이러한 방식의 의도적 오독을 매개로 자본주의 발전의 객관적 법칙성과 변혁적 노동자 운동의 필연성을 부정하며, 자신들의 타협적 정치 강령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삼는다.
크리벤코는 체르니셰프스키를 다룬 마르크스의 언급을 인용하며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이러한 견해들을 동조한다고 말한다”라는 주장을 자의적으로 덧붙여 인용문의 본뜻을 왜곡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실제로 지적한 바는 체르니셰프스키에 대한 존경이 곧 그의 견해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러시아 ‘문인’과 당대 범슬라브주의자들에 대한 자신의 비판으로부터도 반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법률 통신》, 1888년, 10호, 271쪽). 이러한 의도적 서술 구조의 왜곡은 유물론적 역사관과 자본주의 발전의 객관적 법칙성을 부정하고, 인민의 의식적 지향이나 주관적 열망에 따라 자본주의를 피할 수 있다는 식의 궤변을 마르크스의 권위에 얹어 정당화하려는 수사적 공작에 불과하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미하일롭스키가 자신을 러시아의 특수한 발전 노선에 반대하는 인물로 단정할 권리가 없으며, 자신 역시 그러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을 존중한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그러나 크리벤코는 이를 마르크스가 특수한 발전 노선을 ‘인정’했다는 의미로 자의적으로 오독하며 왜곡을 자행한다.
마르크스는 해당 편지에서 “미하일롭스키가 자신의 견해 중 서로 모순되는 두 주장 중 하나만을 끌어다 쓸 뿐, 러시아 정세에 관한 객관적 결론을 이끌어낼 바탕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분명히 지적한다. 나아가 이러한 오독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론이 러시아에 적용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직접 언급한다. 마르크스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자체와 그 질문의 답을 결정할 수도 있는 러시아의 자료 검토를 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며, “러시아가 서구 유럽 국가들을 모범으로 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려는 경향을 보인다면, 우선 농민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되지 않고서는 성립하기 힘들 것”이라고 답하여 관념론적 민중주의자들의 특수 발전 노선이라는 관념론적 도식을 일축한다.
질문의 본질은 명확하다. 즉, 당시 러시아 사회가 자본주의 국가로 진입하려는 객관적 경향을 보이고 있는가, 그리고 농민의 해체와 몰락이 자본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문제였다. 마르크스는 러시아가 이러한 경로를 밟는다면 대다수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는 피할 수 없는 수순임을 지적한다. 결국 마르크스의 이론은 특정 사회의 경제 체제의 생산관계를 규명하는 방법론이며, 이를 러시아에 ‘적용’하는 길은 오직 유물론적 방법론과 정치경제학의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하여 러시아의 생산관계의 실체와 그 역사적 역동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뿐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방법론과 정치경제학 이론의 체계화는 사회과학의 이론적 도약이자 사회주의 운동의 비약적 발전을 의미했기에, 『자본』 출간 직후 ‘러시아 자본주의의 운명’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 이념적·이론적 핵심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이론적 논쟁이 전개되었으며, 운동의 정치적 강령 역시 이에 따라 결정되었다. 약 10년 전 특정 사회주의자 집단이 러시아 경제의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필연적 결론을 제시했을 때, 관념론적 민중주의 진영에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동일한 방법론과 이론적 원칙을 수용하는 이론가들 사이에서도 해당 자료의 분석적 귀결을 두고 실질적인 비판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러시아의 자본주의화라는 역사적 경향이 이미 관념적 수사에 머무르지 않고 과학적 분석으로 입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인민의 벗들’이 가하는 비판의 실상은 역사적 사실이나 현실 실증 자료에 대한 입증을 고의로 회피한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주의자들의 구체적 경제 분석을 진지하게 논박하기는커녕, 추상적 도식과 관념적 수사에 스스로를 가두며 상대의 진의를 일절 왜곡한다. 미하일롭스키가 사회민주주의 진영 내부의 각양각색의 토론을 두고 ‘진짜’와 ‘가짜’를 운운하며 말장난을 벌이는 태도 역시 이러한 본질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은 약점이 아닌 운동의 역동성을 증명한다. 러시아가 봉건제에서 이행한 부르주아 사회이며, 그 국가 형태는 계급 국가이고, 착취를 끝낼 유일한 길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이라는 근본적 논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되, 구체적 분석과 방도를 놓고 치열한 검증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지배 질서의 시혜나 공동체의 온정주의라는 ‘관념론적 도식’에 만장일치로 만족하는 소부르주아적 타협주의와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객관적 생산관계와 역사적 발전 법칙성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실천적 투쟁의 길을 걷는다.
동일한 이론적 입장을 수용하여 이를 집단적 정치 실천으로 전환하는 공통의 기반을 마련하고, 그 기반을 공고히 하는 이들이 ‘사회민주주의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확보하는 과정은 구체적 사안에 대한 각양각색의 광범위한 견해차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이러한 논쟁과 견해의 다양함은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내부적 분열에 빠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물론적 역사관의 과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러시아 사회의 현실의 제반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나가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역동성과 실천적 생동성을 명증하게 입증하는 지표에 불과하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 전개되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내부 토론과 진영 내 의견 차이는 운동의 분열이 아닌 이론적 역동성을 보여준다. 경찰의 집요한 감시와 통제 기구의 부재로 인해 개별적 연계와 토론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견해차는 당연한 현상이다. 이러한 난관에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급 투쟁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근본적 원칙에 합의하면서 구체적 현상에 대한 열띤 비판적 검증을 이어가는 것은, 관념론적 민중주의자들의 맹목적 만장일치와 대비되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강인한 역동성과 이론적 우위를 증명한다.
‘인민의 벗들’이 가하는 비판의 실상은 역사적 사실이나 현실의 실증적 자료에 대한 입증을 고의로 회피한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구체적 경제 분석을 진지하게 논박하기는커녕, 추상적 도식과 관념적 수사에 스스로를 가두며 상대의 진의를 왜곡한다.
크리벤코와 미하일롭스키가 마르크스주의자들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났다거나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등장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왜곡의 연장선이다. 사교계의 풍문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자유주의적 언행을 감추려고 마르크스주의를 들먹이는 함량 미달의 인사들을 주시하며 벌이는 이러한 말장난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헛된 시도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주의를 공개적으로 옹호해온 이들 중 그 누구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이론과 정책을 부정하거나 다른 형태의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한 적이 없으며, 인민의 벗들이 제시하는 ‘비판’이란 결국 상투적인 궤변과 추잡한 인신공격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인민의 벗들’의 이념적 타락은 자본주의적 발전에 대한 시혜적 용인과 기회주의적 개량주의 선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크리벤코는 “자본주의 산업 발전에 적극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농민의 토지 매매나 상점 및 선술집 개업 등” 부르주아적 영리 행위에 적극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농촌 착취의 주동자인 여관 주인들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을 환영하고 곡물 투기 업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침탈로부터 농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자본가와 쿨락의 이익을 공공연히 대변하는 소부르주아적 타협주의로의 전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크리벤코가 제기한 주장은 ‘인민의 벗’을 자처하는 부류가 빠진 기회주의적 개량주의의 실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타인의 노동을 수탈하여 형성된 농촌의 기업형 농민과 유통업자, 여관 주인 등은 객관적인 정치·경제적 특성에 입각하여 명백한 부르주아 계급의 체현자이자 농촌 분화의 주역들이다. 그러나 민중주의자들은 이러한 분석을 접할 때마다 서구적 도식의 무차별적 수입이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계급적 현실을 회피하다가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을 감행할 때는 고귀한 이상과 과학적 분석을 내던진 채 자본주의적 수탈자들을 옹호하는 본색을 드러낸다. 이처럼 착취의 주범들은 농민의 보호자로 포장하고 부르주아적 발전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그들의 논리는, 소부르주아 급진주의가 결국 자본가와 쿨락의 이익을 대변하는 개량주의적 타협으로 전락했음을 증명한다.
이처럼 국가 권력의 전지전능함을 둘러싼 ‘인민의 벗들’의 비판은 자승자박의 모순에 불과하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부르주아 계급의 국가 권력 지배를 지적할 때마다 정부의 중립성과 절대적 권한을 강변하며 자본주의의 인공적 수입을 경계하는 척한다. 그러나 동시에 의회 내 여관 주인과 곡물 상인들의 존재가 자본주의적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사실을 은영중에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국가 기구 자체가 이미 부르주아적 생산관계 위에 입각해 있음을 스스로 폭로한다. 결국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가 의회나 일부 소상인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생산과 유통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이를 국지적 현상으로 축소하려는 민중주의자들의 시도는, 계급 국가의 본질을 은폐하고 부르주아 지배 질서에 봉사하는 개량주의적 기만일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인신공격과 모독을 감행하는 크리벤코의 품위 상실한 발언들은 논박할 가치조차 없는 자승자박에 불과하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본주의 과정을 가속화하려는 목적”만으로 공장에 침투한다거나 사적 이권을 노린다는 식의 추잡한 비방을 퍼부으며 이념적 실체에 대한 객관적 검증을 회피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왜곡과 희화화로 침윤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이러한 궤변은, 과학적 유물론과 계급 투쟁의 정당성을 우회하려는 개량주의적 타협의 한계를 드러낼 뿐이다.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인민주의적 개량주의가 마침내 기득권 질서와 치밀하게 타협하며 체제 내화되는 이념적 반동의 과정을 선명히 드러낸다. 이들은 전제 정부의 시혜적 조치가 인민의 몰락을 막아주리라는 한가한 기망을 퍼뜨리며, 기득권층의 무지와 기만을 정당화하는 이념적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한다. 계급적 실체와 수탈 구조를 은폐한 채 ‘식견 넘치는 상류 사회’의 자선 사업이나 지방 감독관들의 피상적인 시혜 선전을 인민을 위한 길로 포장하는 것은 소부르주아 관념론의 한계이자 기만이다. 결국 계급 투쟁과 생산관계의 유물론적 분석을 회피한 채 지배 질서의 온정에 의존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반동적 언론인 부레닌 일파의 찬사를 받는 수준의 부르주아적 아첨으로 귀결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