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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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사건은 누군가가 되어가고 있는 한 소녀에 관한 것입니다. 그 소녀는 열세 살 입니다. 열세 살은 힘들고, 아프고, 아름답고, 난해하고, 들뜨는 나이지요. 지금 당장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알아낼 기회를 받을만한 소녀입니다.  앞으로 십 년 후면, 제 생각에, 이 소녀는 아주 놀라운 숙녀가 되어있을 겁니다. 

 
- [쌍둥이 별] 572 페이지  


 

이 것은 고작 13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안드로메다 별자리의 이름을 따와 안나라는 이름을 가진 귀여운 소녀. 그녀는 타고난 하키선수이고, 또 이성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사랑에 관한 초보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하고싶은 일도 많다. 다른 아이들처럼 친구집에 초대되어 친구와 함께 밤을 지내고 싶기도 하고, 국가대표가 주최하는 하키캠프에 참여도 하고싶다. 하지만 그렇게나 하고싶은 일이 많은 그녀에게 허락되는 것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그녀가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아니 특별하게 탄생된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들처럼 값싼 포도주나 보름달, 순간의 흥분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그녀는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특수하게 태어나게 된 아이이다. 그렇다. 그녀는 맞춤아이이다. 그녀는 희귀 백혈병에 걸린 언니를 살리기 위해 태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멋지게 치루어 냈다. 처음에는 탯줄에서 때어낸 제대혈이었다. 그 다음은 공여자림프구 였고, 그 다음은 과립구 였다. 그렇게 안나는 몇 번이나 언니 케이트의 병세를 따라 병원에 입원하고, 시체의 일부를 채취당하고, 치료를 받고 퇴원을 했다. 때문에 안나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했다. 친구들의 생일도, 가족간의 나들이도. 그리고 어느날 엄마는 '신장기증'을 하자고 한다. 언니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방법, 하지만 안나는 조용히 엄마를 따라 병원으로 가는 대신에 변호사를 찾는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찾기위해.

 

[쌍둥이 별]은 가족 구성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특수하게 태어난 아이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불치병에 걸린 가족을 둔 사람들을 비롯한 어떤 사람들은 맞춤아이가 희망의 불씨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존재한다. 때문에 맞춤아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에도 그 두 주장은 끊임없이 대립하고 반목한다. 굳이 나에게 누군가 어느 한편의 의견을 편들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에 속한다. 처음부터 무언가로 이용되기 위해서 조작되어져 태어난 아기, 진짜로 운이 좋아 제대혈만으로 병을 고치고 그 아기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나와 케이트의 경우처럼 제대혈, 림프구, 과립구, 그리고 마침내 신장기증까지 강요받아야 한다면? 과연 그 아이의 인권은? 그 아이의 행복은?

누군가의 생명과 누군가의 인권이 충돌되는 이 주제안에서 그 누구도 솔로몬처럼 해답을 줄 순 없다. 설사 솔로몬이 판결을 내린다 하더라고 이 문제에서는 공명정대해지기 힘들 것이다. 때문에 이 두꺼운 책을 쉴 사이없이 읽어내려갔다. 누구도 정답을 줄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과연 법은 어떤 답을 보여줄 것인지, 과연 그 결정은 안나와 케이트에게 어떤 결과를 미칠것인지.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깊이 빠져들었던 것은 이 이야기가 환자를 구성원으로 둔 가족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약하고 위태로운 여동생 때문에 오빠인 제시는 항상 소외받았고 결국에는 삐뚤어진 길을 가게된다. 부모님과 담을 쌓고 난폭하게 차를 몰고 불을 지른다. 엄마는 아픈 케이트를 돌보느라 제시와 안나에게 소홀해진다. 미안하지만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아이를 위해서 건강한 아이들에게 소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빠, 브라이언은 언제나 굳건히 자신의 가족을 지켜왔지만 사실은 그도 그 누구보다도 이 상황이 슬프고 괴롭다. 때문에 그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늦춘다. 이렇게 사실은 엄청나게 위태로웠던 가족, 그 안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왔던 케이트조차  사실은 죽음을 원하고 자살을 시도할만큼, 이 가정안에서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위태로움은 안나의 선택으로 깨어져버린다.

 

사실 안나는 언니에게 신장을 주기싫어서 소송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끝도 모르고 계속되는 치료로 죽는 것보다 더 괴로워하는 언니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소송을 선택한 것이었다. 엄마가 너무나 당연스레 안나에게 신장기증을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안나는 선뜻 자신의 신장을 언니에게 기증하고 이야기는 그대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사실 이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동안 수차례 이루어져 왔던 기증과 채혈에 안나의 의지가 결여되어왔다는 데에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이 점이 무엇보다도 부각되길 바랬고, 때문에 이 이야기의 결말에 실망하고 화가 났다. 갑작스러운 죽음과 자연스러운 신장기증이라니... 허! 참! 결국 작가는 안나의 존재를 필요에 의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작가 자신이 원했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을텐데, 너무나 허무하게도 그 자신이 선택한 결말이 그 것을 망쳐버렸다.  너무나 좋은 소재의 선택과 신선한 이야기 전개, 그리고 흡입력까지 너무나도 좋은 작품이 너무나 진부한 결말로 완전히 망가뜨려졌음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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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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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첸중가가 내려다보는 조용한 산골마을 칼림퐁, 그 안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초요유'. 이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와 평생을 얼굴에 분을 바르며 권위있어보이려 노력했던 전직 판사인 늙은 할아버지의 곁에는 사람도 돈이 없어 못사먹는 고기를 넣은 끼니를 매일 먹으며 튼튼한 몸매를 자랑하는, 왠지 사람처럼 보이는 암캐 무트가 자리를 잡고 있다. 실내와 실외의 온도차가 거의 없는, 아니 실내가 더 추울지도 모르는 오래된 건물안에서 요리사는 독기오른 전갈을 조심해가며 불을 붙이고, 이런 정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십대 소녀 사이는 자신을 가르치러 올 그리고 사랑하는 가정교사 지안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는 지안은 오지 않고, 초요유에는 한떼의 젊은이들이 들이닥쳐 판사 제무바이의 오래된-녹이 슬고 작동도 잘 되지 않을- 소총들을 강탈해간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는 커다란 혼란만이 남는다.

 

이 이야기는 조용하고 평화로와보이는 산골 조그만 마을에서 일어난 총기강탈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고, 영국과 미국, 인도를 넘나드는 거대한 이야기로 발전해 나간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그리고 그린카드를 얻기위해 목숨을 거는 인도인들이 넘쳐나는 미국. 수십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었지만 과거의 인도나 현재의 인도나 별반 다를 것이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혼란만이 가중되었을 뿐이다. 거기다 인도 내부 사정도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한 곳의 땅을 놓고 종족별, 나라별, 인종별로 편이 나뉘어 서로 자기땅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작가 키란데사이는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집필활동을 하고있다.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작품안에 잘 녹여내고 있다. 작가는 이른바 '좋은'부모를 만나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살면서 자신의 문학적 토양을 기름지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상실의 상속]이라는 작품을 써낼수 있었다. 인도라는 거대한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났음에도,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음에도, 그들은 아직 가난하고 영국의 식민지 잔재를 털어내기도 전에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 아래에서 다시한번 휘둘리고 있다.

 

키란데사이가 인도인으로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인도를 모두 경험하면서 이러한 혼돈에 주목을 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식민지 잔재에서도 아직 자유롭지 못하고,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 앞에서도 그들은 한 풀 숙이고 들어가야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인도 국내에서도 서로 단합하지 못하고 서로를 증오하고 저주하며 죽이려든다. 누구하나 잘 난 것도 없고, 더 가진 것도 없는 입장에서 말이다. 결국 키란데사이는 [상실의 상속]을 통해서 대를 이어, 시간을 타고 흐르는 그러한 혼돈 - 그 혼돈의 시작은 영국의 식민지배였을 것이다. - 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미 잃어버린 것이 시간에 따라 다시 회복되거나 충족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한 결핍만을 부르면서 유전되고 상속되어가는 인도의 현실을 그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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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 Free 러브 앤 프리 (New York Edition) - 개정판
다카하시 아유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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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어 온다. 여행이란 단어에서 우리는 자유를 느낀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 입 속의 혀를 부드럽게 굴려 ‘여행’이라고 말을 해보면, 어느새 내 코끝에는 한번도 맡아보지 못한 이국적인 향들이 진동을 한다. 어쩌면 여행과 자유는 이음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꽤나 성공했다는 다카하시 아유무, 그는 결혼 후 부인과 함께 언제까지일지도 모르는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결정한 것은 오직 여행의 시작은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돈이 떨어질 때까지만 지구 위의 곳곳을 발길 닿는 데로 방랑해보자는 두 가지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미련 없이 떠난다. 안정된 직장도 통장의 잔고도, 그들은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렇게 용감하게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방금 결혼한 따끈따끈한 신혼부부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갓 탄생을 알린 한 쌍의 신혼부부, 서로를 사랑하고 둘만이 있고 싶었기에 그렇듯 용감할 수 있었지 않을까?




이렇게나 용감한 부부는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시아, 유라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발길이 닿는 데로 움직인다. 그저 가는 곳마다 저렴한 집을 얻어서 일주일정도 머물고, 또 떠나고.. 그리고 마침내 일본으로 다시 돌아온다.

남들보다 조금 더 길게 떠났던 신혼여행에서 그들은 남들보다 좀 더 특별한 경험을 한다. 있는 것이라고는 모래언덕뿐인 사막에서 단 둘이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거리의 뮤지션과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 그렇게나 용감하게 떠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도쿄, 발달된 거대도시 안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였다.




그리고 마침내 처음 계획대로 통장의 잔고가 0이 되고, 비로소 그들이 돌아올 마음을 가지고 찾아온 일본에서 그들은 자신이 떠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깨닫는다. 아유무는 사야카가, 그리고 사야카는 아유무가 있었기에-바로 ‘네’가 있었기에 ‘나’는 떠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비록 되돌아온 일본에서는 일상의 고단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함께 했기에 행복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LOVE&FREE'라는 이름을 달게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유가 아니었나싶다. 그리고 만약 나도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어쩌면 싸우고 돌아올지도 모르고, 어쩌면 헤어져 다시는 보지 않을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경우의 수를 잊어버리고 떠난 그곳에서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얻고 돌아올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해볼만한 게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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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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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순간도 가늠해보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혹은 헛되이 흘려보낼 뿐이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던 중 어느날 “너는 앞으로 얼마 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라는 절망적인 선고를 듣게 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 유명한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를 착실히 밟아나갈 것이다. 처음엔 자신에게 떨어진 ‘죽음’의 선고를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왜 하필 자신에게 그런 일일 벌어져야 하는지 분노하며, 신을 찾아 믿음을 약속하는 등의 ‘죽음’을 놓고 협상을 하기도 하고 더 이상 자신의 ‘죽음’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용하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단계를 거쳐 수용의 단계에 이르면 ‘죽음’에 관한 모든 단계를 밟은 것이다.

죽음. 이 어둡고 칙칙한 현실을 선고받은 사람은 죽음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인생을 살아갔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고통과 슬픔 속에서 얻어낸 그의 철학과 생각은 살아갈 사람들에게 언제나 보고 배울만한 교훈으로 남는다.

랜디 포시라는 이름의 교수가 쓴 [마지막 강의]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가 남겨질 가족을 위해 남긴 글이다. 아직 어린 세 아이들 - 호기심 왕 딜런, 최고의 티거인 로건, 그리고 첫 만남부터 랜디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클로이 - 와 절대적인 지지자이며 사랑인 재이에게 그는 떠나기 전에 많은 것들을 해주고 싶었다. 가능한 그의 부재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게, 그리고 그가 죽기 전까지 그들을 사랑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강의] 또한 그러한 가족에 대한 랜디의 사랑을 증명하는 증거 중 하나이다.

이 책을 읽으려 한 것은 자발적인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뭐랄까, 요즘 나의 삶이 너무나 자포자기, 혹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랄까? 나라는 개인의 작은 힘으로는 대세라는 엄청난 파고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우울함 때문이랄까? 요즘의 나는 의욕도 없고, 삶의 의미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시간을 헛되이 소비할 뿐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서 내 정신을 차려보자는 굉장히 이기적인 생각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먹먹했다. 특히나 그가 식당에서 만난 한 여인과의 에피소드 -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그저 한낱 ‘사고’로 치부해 버리지만, 그에게는 너무도 사랑하는 하지만 곁에 있어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을 비교하게 되는 - 는 너무나 슬펐다.

내일 당장 “당신이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은 몇 달, 혹은 몇 시간입니다.”라는 선고를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떨까? 아마도 허겁지겁 난리를 치겠지? 어쩌면 계속해서 죽음의 5단계나 밟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남들처럼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위인들처럼 엄청난 업적을 남기고 싶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삶을 알차게 살고 싶을 뿐이다. 랜디 또한 그의 삶을 알차고 성실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죽음의 앞에서 이렇게 가족을 위해,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전할 무언가를 만들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죽음의 앞에서 황급히 마무리 지어야 할 그의 생애를 붙잡고 허둥대고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처럼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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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시네 - 르 클레지오, 영화를 꿈꾸다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이수원 옮김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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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문학의 연장이다. 영화와 문학은 story, 말 이야기라는 뿌리를 같이한다. 글로서 서술되어 수세기간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었던 문학은 전기의 발명과 뤼미에르 형제라는 인물들의 등장으로 ‘욕망’의 분출공간을 영상으로 확산되었다.

영화의 그 근원이 ‘문학의 그것과 뿌리를 같이 하는 것에 있어서, 작가들이 영화에 가지는, 그리고 영화인들이 문학에 가지는 특수한 애정과 끌림은 쉬이 이해된다.




르 클레지오의 『발라시네』는 작가가 영화라는 문화장르에 가지는 독특한 끌림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영화는 소설이나 시에서 영감을 얻는다.

영화들은 종종 소설가나 시인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발라시네』 50쪽에서 발췌




“내게는 영화를 옹호하는 주장들이 역으로 문학에 대한 찬사,

그것이 지니는 절제, 섬세함, 위임성에 대한 찬사로 들린다..”

―『발라시네』 53쪽에서 발췌




2008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한국에 머물면서 학생들을 지도할 정도로 지한파이기도 한 르 클레지오가 칸 영화제 조직위원장의 부탁을 받아 집필하게 된 이 에세이집은 그가 영화에 대해 알고 있고, 또 생각하는 것들과 영화에 얽힌 자신만의 추억 등을 풀어낸 책이기도 하다.

영화의 탄생과 최초의 영화, 그리고 몇 명의 영화인과 그들의 영화에 관하여 르 클레지오는 시종일관 작가다운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르 클레지오는 『발라시네』안에서 영화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한다. 빛과 전기의 발견, 그리고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영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그 영상과 필름- . 그리고 세계대전과 혁명등 세계사의 주요한 사건들이 영화에 미친 영향과 유명하지는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를 만들고 있을 제 3세계의 영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즘 새롭게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 영화까지...

영화에 관한 그의 식견은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심도 깊다. 영화의 처음과 시대 변화에 따른 영화의 소재 변화 등, 보통사람들이라면 그냥 한번 보고 즐기는 데에서 끝났을 영화에서 중요한 사회반영의 모습을 찾아내고 문학적 해설을 해 낼 수 있는 그의 모습은 굉장히 멋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가 『발라시네』를 통해 소개하는 영화들은 대중들에게 그다지 유명한 작품들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소개글을 보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뚜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좀더 대중에게 친근한 영화를 중심으로 글을 전개해 나갔다면, 독자들에게 더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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