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카첸중가가 내려다보는 조용한 산골마을 칼림퐁, 그 안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초요유'. 이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와 평생을 얼굴에 분을 바르며 권위있어보이려 노력했던 전직 판사인 늙은 할아버지의 곁에는 사람도 돈이 없어 못사먹는 고기를 넣은 끼니를 매일 먹으며 튼튼한 몸매를 자랑하는, 왠지 사람처럼 보이는 암캐 무트가 자리를 잡고 있다. 실내와 실외의 온도차가 거의 없는, 아니 실내가 더 추울지도 모르는 오래된 건물안에서 요리사는 독기오른 전갈을 조심해가며 불을 붙이고, 이런 정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십대 소녀 사이는 자신을 가르치러 올 그리고 사랑하는 가정교사 지안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는 지안은 오지 않고, 초요유에는 한떼의 젊은이들이 들이닥쳐 판사 제무바이의 오래된-녹이 슬고 작동도 잘 되지 않을- 소총들을 강탈해간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는 커다란 혼란만이 남는다.

 

이 이야기는 조용하고 평화로와보이는 산골 조그만 마을에서 일어난 총기강탈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고, 영국과 미국, 인도를 넘나드는 거대한 이야기로 발전해 나간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그리고 그린카드를 얻기위해 목숨을 거는 인도인들이 넘쳐나는 미국. 수십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었지만 과거의 인도나 현재의 인도나 별반 다를 것이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혼란만이 가중되었을 뿐이다. 거기다 인도 내부 사정도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한 곳의 땅을 놓고 종족별, 나라별, 인종별로 편이 나뉘어 서로 자기땅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작가 키란데사이는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집필활동을 하고있다.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작품안에 잘 녹여내고 있다. 작가는 이른바 '좋은'부모를 만나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살면서 자신의 문학적 토양을 기름지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상실의 상속]이라는 작품을 써낼수 있었다. 인도라는 거대한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났음에도,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음에도, 그들은 아직 가난하고 영국의 식민지 잔재를 털어내기도 전에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 아래에서 다시한번 휘둘리고 있다.

 

키란데사이가 인도인으로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인도를 모두 경험하면서 이러한 혼돈에 주목을 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식민지 잔재에서도 아직 자유롭지 못하고,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 앞에서도 그들은 한 풀 숙이고 들어가야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인도 국내에서도 서로 단합하지 못하고 서로를 증오하고 저주하며 죽이려든다. 누구하나 잘 난 것도 없고, 더 가진 것도 없는 입장에서 말이다. 결국 키란데사이는 [상실의 상속]을 통해서 대를 이어, 시간을 타고 흐르는 그러한 혼돈 - 그 혼돈의 시작은 영국의 식민지배였을 것이다. - 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미 잃어버린 것이 시간에 따라 다시 회복되거나 충족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한 결핍만을 부르면서 유전되고 상속되어가는 인도의 현실을 그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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