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장밋빛 시절 우리에게도 익숙한 매카시즘이 유행하였다. 요즘은 영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 대본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이때만 해도 전문적인 시나리오 작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들은 단지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직업의 최전선에서 물러나 익명으로 살아야만 했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블랙리스트의 대표적인 희생양이 되었다. 달튼 트럼보의 수난은 교도소 복역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반미활동심사위원회는 1975년에야 해체된다. 이는 현대판 주홍글씨의 일종으로 지난 박근혜 정부 이전이후에도 종종 볼 수 있다.
블랙리스트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대개 전근대적 통치구조나 보수 정부에서 흔히 자행되는 일이다. 즉 국가가 반정부적인 태도로 평가된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이다. 또한 국가 외에도 기업이나 다양한 형태의 조직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경험한 보수 정부는 공적 영역에서까지 자유를 외칠 정도로 극단적인 자유방임주의에 치우친다. 그러다가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이태원 참사 같은 끓는 주전자를 내동댕친다. 한편 교육부는 기어이 자유를 밀어넣어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만들겠다는 만행을 저지른다. 전 세계 사전을 뒤져보라, 글로컬 표준어는 오직 '민주주의'밖에 없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사태와 비슷한 모양새다. 현 정부의 자유에 대한 과잉집착은 심하게 말해서 자유당 또는 그들의 모태인 민주자유당의 정체성에 기인하지 않나 싶다. 다시 말하지만, 자유를 말한다고 해서 당신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확신할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국가, 어느 정부든 블랙리스트의 자유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달튼 트럼보가 쓴 수많은 시나리오 중 스탠리 큐브릭의 스파르타쿠스가 있다. TV 시리즈 스파르타쿠스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 20xx년 어느 저녁, 블랙리스트의 자유를 기리며:
현 정부가 MBC에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묻지마 때리고, YTN의 지분 매각을 통해 민영화로 입다물라 주리를 틀고, TBS 지원 폐지 조례로 무릅꿇 때까지 손발을 꽁꽁 묶는다. 우리가 지금껏 말하던 블랙리스트의 자유가 만천하에 실현되고 있다. 현 대통령의 헌법수호 정신은 법가의 법치주의를 더 없이 실현할 뿐만 아니라 19세기 이전의 헌법, 즉 성리학에 올인하는 왕정복고 식의 막태를 창발한다. 현 대통령, 현 법무부와 검찰은 법률을 개차반 만들며 무법의 시행령 통치를 하고 있다. 시행령이 법률 위에 올라서서 어디 마음껏 해 봐라, 국회를 넉아웃, 시킨다. 이제 도미노로 언론, 야당, 국민, 그 위에 발붙인 민주주의는 넉아웃, 된다. 정부에 대고 바른말하는 자, 말많은 자는 블랙리스트의 위력으로 너는 아웃,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