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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 : 일반판
켄 로치 감독, 데이브 존스 외 출연 / 아이브엔터테인먼트 / 2020년 5월
평점 :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당황스러운 법이다. 낯선 캄보디아로 끌려가 감금과 고문까지 당했으니 오죽할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가까스로 구조 요청을 한다. 주말이니 월요일에 다시 오라, 도와줄 게 없으니 현지 경찰에 직접 신고하라. 피해자 부모의 도움 요청에 대한 현지 대사관의 이메일 답변이나 외교부 장관의 현황 파악을 보면 충격적이다. 도대체 외무 공무원이 하는 일이 뭘까? 눈 앞의 재외국민 보호보다 매뉴얼 안내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실종 신고가 500건이 넘도록 국내서는 깜깜이 상태다. 행안부는 현재 인원으로도 넘친다며 경찰 주재관 증원을 거절한다. 경찰 주재관 1명 포함 총 3명으로 전역을 커버한다. 기껏 탈출하여 지역 경찰서에 신고하면 변호사를 데려오라는둥 딴전을 피운다. 이게 공무원의 민낯이다.
이 빵뺑이 놀이는 도무지 그치지 않는다. 까놓고 말해서 공무원은 국민에게 봉사하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다. 그저 직장을 다니는 것일 뿐이다. 1950년대 영화 이키루의 뺑뺑이 놀이가 공무원의 본질임을 새삼 확인시킨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책임을 다한다는 건 순전히 거짓말이다. 이명박 자원외교, 론스타, 엘리엇 & 메이슨, 대왕고래, 웨스팅하우스, 캄보디아에 꼬라박고 뜯기고 퍼줄지언정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돈을 쓸 수 없다. 12.3 내란의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의 쇠가죽 얼굴에서 잘 증명된다. 그 잔인한 뻔뻔함이 CCTV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권한은 하늘 높이 누리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책임은 절대 안 진다. 고위공직자나 법률가 출신일수록 오히려 법망을 빠져나가는 걸 자랑삼는다.
공무원의 책임 회피는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일선 공무원부터 고위 공직자까지 책임 회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공무원이 없어도 되겠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온몸이 검게 멍들 때까지 계속 두들겨패고 지진다. 억지로 마약을 빨며 대포통장에 5천7백 만원을 넣어달라 말한다. 실종 건수가 작년까지 500건이 넘는 것은 다니엘 블레이크가 복지수당을 받기 위한 지난한 과정과 비슷하다. 심장마비의 위협뿐만 아니라 복지신청주의와 그에 따른 까다로운 절차를 이겨내야 한다. 끝내 박모 군이 사망하고 나서야 외교부가 공식 통계를 집계하고 국수본부장과 외교부 차관이 캄보디아로 급파된다. 다니엘이 사망할 때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듯이 현실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제주항공 참사 가족들은 국회 앞에 피켓을 들고 있고, 또 누군가는 앞으로 범죄든 재난이든 죽어나가고,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이라며 고독하게 외칠 것이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