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의 한문은 일반인에게는 현대 한국의 법처럼 가려진 세계였다. 한문은 양반의 권력이며 아무나 다루는 게 아니었다. 한국의 평민은 아주 드물게 법원의 세계에 변호사와 들어가 본다. 그런 불문율이 판결문에도 적용되며 금서처럼 아무나 열어볼 수 없다. 다만 장미의 이름을 불러볼 뿐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작가노트에서 소설 장미의 이름의 제목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장미는 작가가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이는 독자 스스로가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붉은 장미를 14세기 유럽 황제와 교황의 극렬한 권력 투쟁 속에서 이름 없이 희생당한 평민이라고 이해하고 싶다.2021년 12월 24일. 이 땅에 또 한 번 전직 대통령 사면이란 이름으로 법치주의가 훼손되었다. 아울러 수많은 한국의 평민들의 희생으로 이룬 민주주의의 가치도 훼손되었다. 현 집권 정부와 집권당의 공허한 수정주의에 구토를 느낀다. 반란수괴 등 중범죄를 저지른 두 전직 대통령에 이어 총 21개 혐의 중범죄자가 20년 형의 반도 안 되는 4년 9개월 만에 사면되었다. 이미 예정된 일이나 다음번에는 百여(?) 조의 국고손실을 자행한 사업가 대통령인가? 이로써 한국의 법치주의는 고대 중국 진나라 법가의 법치주의이고 한국의 평민에게만 적용되는 통치 수단일 뿐이다. 또 한 번 공허한 사회 통합, 국민 통합의 플래카드에 구토를 느낀다. 실제로는 국가 통합이 아니라 집권 정부와 집권당의 정권 연장의 뻔지지르한 수사에 불과하다. 현 집권 정부와 집권당은 낯뜨거운 買표의 가면을 벗어야 한다. 한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또 다시 1945년 해방 무렵으로 회귀하고 있다. 공정, 정의, 평등의 이념에 어긋나는 특별사면의 폐지야말로 미래를 위해 절실히 요구된다. 더 나아가 실질적 민주주의와 진정한 개혁을 위해 연립 정부 구성이나 새로운 집권 세력의 입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를 위해 본연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 제도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2021년 독일 총선에서 한국의 거대 2당이나 180여 석의 의회 독점의 정치 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상 한국에서 이 두 정당이 본래의 다당제나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착을 가로막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바로 그 증거이며 이것은 엄연히 억지춘향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니다. 장기 집권을 위해 점점 뻔뻔해지는 집권당의 수정주의나 보수당의 구태의연은 어느 쪽도 민주주의의 미래와는 거리가 멀다. 독일은 전통적인 거대 정당인 사민당이 16년 만에 겨우 의회의 25.7%를 차지하며 승리 아닌 승리를 했을 뿐이다. 여당인 기민당•기사당은 24.1%로 밀려났고 14.8%의 녹색당과 11.5%의 자민당이 부상하였다. 왜 한국에서 정의당 같은 소수 정당은 집권할 수 없는가? 현재의 선거 제도로는 정의당뿐만 아니라 어느 소수 정당도 집권당은커녕 국회 내 교섭단체도 캐스팅 보트도 어렵다. 독일의 연정 구성에서 보듯이 현실적으로 연립 정부 형태가 그나마 바라볼 수 있는 길이다. 현 집권당이나 거대 야당은 털끝만큼도 이런 변화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평민이 조금이라도 자기의 삶을 바꾸려면 이런 정치 구조를 바꿀 선거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1993년 뉴질랜드는 의회의 의결이 아니라 국민투표로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버리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여기서 시사하는 바는 선거제도나 국회 의석을 결정하는 방법을 국회에 맡겼을 때 국민이 아닌 다수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선거제도의 개혁에 대해서:조성복, 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백상진 외,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의 모든 것강남훈, 기본소득과 정치개혁한국의 법치주의가 과거의 권위주의 정부나 군사 정부에 봉사하던 어두운 기억을 넘어 법가의 법치주의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민주주의의 곡선에서 만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