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에서도 일하지 않는 개체가 있다. 일개미는 이름처럼 모두 열심히 일할 것 같지만, 일본 학자들에 따르면 끝까지 나서지 않는 개미들이 있다. 그 비율이 80%나 된다. 일하는 개미는 20%정도인데, 그 20%를 제거하면 쉬고 있던 80%에서 20%가 일을 나가는 식으로 노동력은 일정 비율을 유지한다. 그런데 끝까지 안 나가는 놈도 있다. 일본 학자들이 개미 등에 점을 찍어 관찰한 결과 뒤로 살살 물러나면서 빠지는 놈들을 발견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런 얌체 개미가 있는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오래 살아남았다. 지나치게 성실한 개미들만 있으면 금방 피로 사화가 되어 위기가 닥치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런데 얌체들이 있는 나라는 힘든 시기가 되면 그놈들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위기를 극복한다. 나라도 나서야겠네, 하면서 나라를 구한다. 놀고먹는다고 끝까지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310p) ㅡㅡ인간 사회에도 얌체가 있다. 그런 이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라는 것인데, 당장 보면 열받는 것은 내 몫이다.
"어떻게든 되갔지."그러나 어떻게든 되는 일도, 저절로 괜찮아지는 일도 없었다.아버지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동안 할머니가, 엄마가 그리고 내가 종종거리며 어떻게든 되도록 애를 써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해결사가 되어야 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이제 할만큼 했어'하고 귀를 막을 수 없었다. 코로나 19가 시작되면서 우리 공동체도 여러 위기를 겪었다. '이를 악물다'라는 관용구가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는 정말 종일 이를 악물고 있었다. 밥을 하면서, 차를 타고 가면서, 글을 쓰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러나 그 말을 누구에게도 내뱉지 못했다. 겨우겨우 살아내려니 온종일 이를 악물었던 것 같다. 밤이 물러가고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아침이 두려웠던 그때, 방문 앞어서 야옹거리는 고양이들과 마당의 아픈 개들 때문에 일어났다. 늙고 병들고 장애가 있는 식구들을 돌보기 위히ㅣ 또ㅈ살았다. (137p) 이를 악물고도 살아야 했던 작가의 삶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그의 자존을 만들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아득 바득 살 일이 뭐가 있나.어차피 다 사라지는데 싸울 일이 뭐가 있나어차피 멸망 중이라는데 뭐하러 최선까지 다 하나.그래도 아득바득 사는 이들이 있고그래도 싸우고 전쟁까지 일으킨다.그래도 최선을 다하라고, 최선을 응원하는 말들이 넘친다.그래서 지구가 지금 이 모양이고 인류가 이 꼴이다.그래서 아픈 이들이 넘쳐난다.그래서 사라지는 종들이 넘쳐난다.그러니 우리는 좀 너그러워지기를.천천히 걷기를. 천천히 말하기를. 귀기울여 듣기를.
존 버거는 '듣기(Ways of Listening)'에 관한 책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온몸으로 들었다. 마치 내 말들이 빗물이고 그는 흙인 듯했다. 그는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모두 흡수했다. 그의 듣는 눈은 마치 높은 산속의 호수 같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 고요함, 그런 집중력은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을 빨며 자라는 디지털시대 인간들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 집중력을 지닌 세대는 영원히 사라진 듯하다. 내가 읽기를 마치자 그가 말했다. "집에 돌아가서 이 책을 반드시 완성하겠다고 약속해줘요.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로지 이 책에만 매달려요. 혹시 열받는 일이 생기면, 내가 당신 뒤에 서서 늙은 코끼리처럼 귀를 펄럭이며 열을 식혀주고 있다는 걸 기억해요." 그건 타인이 내게 해준 말 중 가장 아름다운 말이었다. 그가 그 말을 해주기 전까지 나는 늙은 코끼리가 내게 얼마나 절실히 필요했는지조차 몰랐다. (394p) 기억과 만남과 사랑이 있는 글들. 고통 속에서도 기억을 이어가고 그 기억을 남겨 놓는다.어떤 기억은 예술이 되는구나.
고추잠자리흙먼지에 쌓여 지나온 마을멀리 와 돌아보니 그곳이 복사꽃밭이었다어둑어둑 서쪽 하늘로 달도 기울고꽃잎 하나 내 어깨에 고추잠자리처럼 붙어 있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흙먼지에 쌓여 살아온 세월도 지나보면 그리운 꽃밭이 되는 듯.나는 얼마나 더 살아보아야 지금을 그리워하게 될까?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흙먼지의 시간이라도 살아가야겠지.달도 기우는 시간 꽃잎 하나를 벗하며 넘어가는 시인의 모습이 고즈넉하다.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하늘을 훨훨 나는 솔개가 아름답고꾸불텅꾸불텅 땅을 기는 굼벵이가 아름답다날렵하게 초원을 달리는 사슴이 아름답고손수레에 매달려 힘겹게 비탈길을 올라가는늙은이가 아름답다돋는 해를 향해 옷을 벗는 나팔꽃이 아름답고햇빛이 싫어 굴속에 숨죽이는 박쥐가 아름답다붉은 노을 동우해 지는 해가 아름답다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머지않아 가마득히 사라질 것이어어 더 아름답다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죽은 이도 아름답고 죽은 꽃도 아름답다.책꽂이도 아름답고 버스도 아름답지 않은가시인에게 묻고 싶어진다. 이 물음을 스스로 찾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