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내게 오시네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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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는 '듣기(Ways of Listening)'에 관한 책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온몸으로 들었다. 마치 내 말들이 빗물이고 그는 흙인 듯했다. 그는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모두 흡수했다. 그의 듣는 눈은 마치 높은 산속의 호수 같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 고요함, 그런 집중력은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을 빨며 자라는 디지털시대 인간들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 집중력을 지닌 세대는 영원히 사라진 듯하다.
내가 읽기를 마치자 그가 말했다. "집에 돌아가서 이 책을 반드시 완성하겠다고 약속해줘요.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로지 이 책에만 매달려요. 혹시 열받는 일이 생기면, 내가 당신 뒤에 서서 늙은 코끼리처럼 귀를 펄럭이며 열을 식혀주고 있다는 걸 기억해요."
그건 타인이 내게 해준 말 중 가장 아름다운 말이었다. 그가 그 말을 해주기 전까지 나는 늙은 코끼리가 내게 얼마나 절실히 필요했는지조차 몰랐다. (394p)


기억과 만남과 사랑이 있는 글들. 고통 속에서도 기억을 이어가고 그 기억을 남겨 놓는다.
어떤 기억은 예술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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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창비시선 518
신경림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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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잠자리

흙먼지에 쌓여 지나온 마을
멀리 와 돌아보니 그곳이 복사꽃밭이었다

어둑어둑 서쪽 하늘로 달도 기울고
꽃잎 하나 내 어깨에 고추잠자리처럼 붙어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흙먼지에 쌓여 살아온 세월도 지나보면 그리운 꽃밭이 되는 듯.
나는 얼마나 더 살아보아야 지금을 그리워하게 될까?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흙먼지의 시간이라도 살아가야겠지.
달도 기우는 시간 꽃잎 하나를 벗하며 넘어가는 시인의 모습이 고즈넉하다.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하늘을 훨훨 나는 솔개가 아름답고
꾸불텅꾸불텅 땅을 기는 굼벵이가 아름답다
날렵하게 초원을 달리는 사슴이 아름답고
손수레에 매달려 힘겹게 비탈길을 올라가는
늙은이가 아름답다

돋는 해를 향해 옷을 벗는 나팔꽃이 아름답고
햇빛이 싫어 굴속에 숨죽이는 박쥐가 아름답다

붉은 노을 동우해 지는 해가 아름답다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
머지않아 가마득히 사라질 것이어어 더 아름답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죽은 이도 아름답고 죽은 꽃도 아름답다.
책꽂이도 아름답고 버스도 아름답지 않은가
시인에게 묻고 싶어진다. 이 물음을 스스로 찾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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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좋은 날을 살아봐 - 제주 사는 미술치료사의 마음, 예술, 자연 이야기
정은혜 지음 / 아라의정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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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세상의 모든 꼬불꼬불한 것들이 황홀하다고 생각한다. 꼬불꼬불한 해안선도, 휘어지며 뻗어가는 호박 줄기도, 부분인지 전체인지도 말할 수 없는 산호도, 바닷속에서 펄렁거리는 갯민숭달팽이도. 그리고 길을 찾으며, 헤매며, 이리저리 다닌 나의 꼬불꼬불한 날들이 내게 가장 좋은 날이었다. 

(313p)


 꼬불꼬불한 길들을 많이 헤매며 다닌 나의 길들도 그럴까? 지금에 와서 황홀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를 이룬 부분이 되었다. 그때는 아니지만 지금은 좋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와서 다행이다.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너의 좋은 날을 살아봐' 하고 말하는 것, 그게 응원이고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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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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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만난 책과 사람들, 연구하며 부대끼는 마음을 솔직하게 내어 놓기도 하는 글에 내 마음도 움직인다.  



“모든 참사나 재난에서도 각 인간은 고유하거든요. 개인마다 고유한 관계와 역사와 상황 속에서 서로 다른 욕구와 고민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 공통의 사건을 겪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하나의 동일한 집단으로 여길 때가 많아요.”(300쪽)



고유한 개인을 들여다보지만 그 개인이 처한 관계와 제도를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 방법을 찾는 저자의 글은 묵직하지만 그 울림이 크다. 이 함께 읽고 부대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공동체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저는 어떤 예민한 사건을 놓고 이야기할 때면,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이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는 언어의 전선을 찾고 싶어요, 그래야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일반 시민들이 친구와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천안함 사건에 대해 토론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을 찾고 싶었어요, "설사 당신이 천안함 사건의 원인에 대해 국가의 발표와 다르게 생각하더라도, 군인들이 국가를 지키다 다쳤다면 거기에 대한 합당한 보상은 필요한 것 아니냐?"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맥락에서 산업재해라는 표현이 유용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산업재해라고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보게 되는 게 있어요.ㅣ 피해자의 몸이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그 사람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요, 천안함 사건을 이야기하면 보통, 사람들은 배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산업재해는 사람을 먼저 보게 하는 언어예요. 그런 변화가 사람들이 다른 렌즈를 통해 그 사건을 바라보게 하고, 생각을 달라지게 하는 힘인 것 같기도 하고요.

(302p)



나도 이 글을 읽고 다른 랜즈 하나를 얻게 되었다.. '산업재해'라는 렌즈로 천안함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이고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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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인터뷰하다 - 삶의 끝을 응시하며 인생의 의미를 묻는 시간
박산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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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앞으로 코앞에 놓인 해야 할 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어떤 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린 결말을 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싸운 친구와 화해하고, 자신의 흘러간 청춘을 애도하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는 전보다 더 너그러워질 수 있고요.”
_요양보호사 이은주


 죽음을 생각하고 행동하면 너그러워질 수 있다는 이은주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주 죽음을 떠올리고 나 자신을 너그럽게 만들었으면.


"구약 성서나 신약 성서에 나와 있는 이야기가 결국은 '인간이 다 같이 생존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한 신을 믿으라는게 아니고 생존 방법을 일려주는 거죠. 그러니까 인류의 조상이 살아오면서 무수한 고난을 겪으며 이렇게 '서로 사랑하고 도와가며 사는 게 신의 뜻이겠구나'라고 깨달은 걸  쓴 게 성경이라는 거죠. 성경 뿐만 아니라 불경도 그렇고, 다른 종교의 경전도 마찬가지로 일종의 생존 서적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사실 신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 홍성남 신부님 


인간의 행복을 위해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지. 종교를 위해 인간이 존재하게 되면 그때 종교는 사회에 독을 뿌리기도 한다. 그런 말씀을 자주 하시는 신부님에게 위로를 받는다. 생존 방법을 알려주는데도 그것을 외면하는 세상에 실망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랑하고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


“죽음이 일찍 왔다는 건 불행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운명을 불행으로 받아들이느냐, 행복으로 만드느냐는 당사자의 몫인 거죠. 저는 자신의 운명을 행복으로 만드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자식을 먼저 떠나보냈어도,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열심히 다른 사람을 돕고 사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_호스피스 의사 김여환


자신의 운명을 행복으로 만드는 기적을 주위에서 본다. 그 기적을 보며 함께 기뻐하고 기쁨을 나누며 산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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