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되갔지."그러나 어떻게든 되는 일도, 저절로 괜찮아지는 일도 없었다.아버지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동안 할머니가, 엄마가 그리고 내가 종종거리며 어떻게든 되도록 애를 써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해결사가 되어야 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이제 할만큼 했어'하고 귀를 막을 수 없었다. 코로나 19가 시작되면서 우리 공동체도 여러 위기를 겪었다. '이를 악물다'라는 관용구가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는 정말 종일 이를 악물고 있었다. 밥을 하면서, 차를 타고 가면서, 글을 쓰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러나 그 말을 누구에게도 내뱉지 못했다. 겨우겨우 살아내려니 온종일 이를 악물었던 것 같다. 밤이 물러가고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아침이 두려웠던 그때, 방문 앞어서 야옹거리는 고양이들과 마당의 아픈 개들 때문에 일어났다. 늙고 병들고 장애가 있는 식구들을 돌보기 위히ㅣ 또ㅈ살았다. (137p) 이를 악물고도 살아야 했던 작가의 삶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그의 자존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