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50년쯤 후에
▣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화려한 휴가>는 교양 있고 비판적인 사람들에게서 트집 잡히기 쉬운 영화다. 특히, 초인적인 인격과 강인함을 가진 전형적인 재난영화 영웅(안성기 분)이 후반부를 이끌어가게 만듦으로써 광주의 마지막 전사들을 덜 주체적으로 그린 건 그런 사람들에겐 적이 불만스런 일일 수밖에 없다. ‘역사를 왜곡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테고 ‘노회한 상업영화’(광주판 실미도?)라고 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비판이 근거 없는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참 예쁘다.
영화적 소재로 복권시킨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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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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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내내 관객들에게 말한다. “여러분, 여기는 광주입니다. 되도록 재미있게 보시라고 조금 각색하긴 했지만 여기는 분명히 광주입니다. 이곳에서 싸우고 사랑하다 죽어간 사람들의 피와 땀 냄새를 맡아보십시오.” 영화는 관객들을 27년 전 광주로 데려간다. 관객들은 광주 사람들과 함께 내내 울고 웃다 소스라치다 주먹을 불끈 쥔다. 영화는 폭도라면 폭도인 줄 알고 열사라면 열사인 줄 알며 살아온 맥없는 중년들이나 소싯적 광주의 진상에 분노했으나 이젠 아이의 성적과 주식 시세에나 분노하는 386들은 물론, 그 일이 일어날 때 어린아이였거나 아예 태어나지 않았을 뿐인 사람들까지 모두 광주로 데려간다.
2007년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광주로 데려갈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광주의 정신은 죽은 사람들과 함께 묻혔으며, 김대중의 집권과 자본화(흔히 ‘민주화’라 불리는)의 광풍은 광주의 모든 유산들을 체제내화했다. 광주의 흔적은 무공훈장을 가슴에 단 느물느물한 중년 남성들의 이전투구에서나 발견되며, 광주의 정신이 필요한 모든 현실적 저항에 오늘 광주는 결합하지 않는다. 지난 6월 광주의 보수화를 고뇌하다 쓸쓸히 돌아간 윤한봉 선생의 장례식 풍경은 오늘 광주의 처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를 비현실적이고 고집스런 사람으로 따돌리던 수많은 후배와 옛 동지들이 모두 출연한 기괴한 가면무도회는 말이다.
장선우씨가 광주 영화를 만들 드문 사회적 기회를 관념의 마스터베이션으로 소모해버린 이후 광주를 소재로 한 진지한 영화 구상은 구현이 어려워져버렸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나 <화려한 휴가>가 우리에게 왔다. <화려한 휴가>가 켄 로치의 영화처럼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도 담백하고 예술적인 영화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그러려면 그런 영화의 제작이 가능해지도록 만드는 다리가 필요하다. <화려한 휴가>는 바로 그 다리다. <화려한 휴가>는 도저한 예술적 형식미나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대신, 광주를 말하기 머쓱해진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호흡 안에서 광주를 속삭이게 만들었으며, 광주를 제작 가능한 영화적 소재의 하나로 복권시켰다.
예술성을 포기하기만 하면 대중성은 자연스럽게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일은 예술적인 영화를 만드는 일보다 덜 어렵지 않다. 김지훈씨는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 줄 아는 감독이다.(만일 이 영화가 상업적 의도만 무성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였다면 어쩔 뻔했는가?) 그러나 아무리 대중성과 상업성을 고려한다고 한들 아직 영화청년의 자의식이 남아 있을,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몇 해 동안 광주의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한 젊은 감독이, 마지막 도청의 전사들이 차례차례 죽어가면서 마지막 말을 남기는 장면을 그렇게 길게 신파조로 넣으면서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그와 소주 한 잔 나누고 싶어진다.
언젠가는 들불야학을…
지사적 풍모를 갖추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사만이 역사에 기여하는 건 아니다. <화려한 휴가>는 역사에 기여했다. 언젠가는 들불야학의 전사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넘어서는 광주 영화가 만들어지길 소망한다. 들불야학의 전사들은 그런 영화를 만들기에 차고 넘치는 소재다. 꼭 만들어질 것이다. 민우가 신애에게 남긴 마지막 말처럼, “한 50년쯤 후에”라도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