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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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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실제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아니, 실제보다 더 고통스럽기도하다. 그것에는 한계도 기한도 없다. -9p
나는 이런 삶을 원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살고있으니 이 삶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35p
찰나에 불과한 그 순간순간들이 삶의 의미일 수는 없을까. -1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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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레몬>으로 참 시끄러웠다. 왜? 라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보통 인기가 많은 책은 ‘무난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하는 편인데 이 책은 호기심이 동했다. 다른 시끄러운 책들과는 달리 무슨 내용일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전혀 예상되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난한 책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뒤늦게나마 읽어보게 되었다.
-2002년 다언의 언니 해언이 살해를 당한다. 용의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만우와 신정준. 그리고 윤태림. 경찰은 끝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다. 다언은 갑작스러운 언니의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기어코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범인은 누구인가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같은 주제이다. 그러니까 범인은 누구일까? 범인을 알아야 복수를 하던 원망을 하던 뭐라도 할 거 아닌가. 그러나 사실 이 소설에서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의문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범인을 밝히는 과정이 아니라 다언이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 죽은 자가 아니라 남은 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145p”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누가, 왜, 다른 사람의 삶을 가혹하게 하는 건지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가진다. 누가 그런거래? 걔가 왜 그런거래? 어떻게 한 거래? 우리는 ‘그래서 그 사람은 괜찮데?’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우리의 쾌락을 향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범인’에게만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범인이 아니라 피해자,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다. 그들이 어떻게 스러져 가는지. 그 전에 어떠한 상처를 받았는지 어떻게 죽은채로 살고 있는지. 그래야 우리가 무심코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지 않을 테니까.
-하나의 사건, 죽음이 불러오는 비극이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있는 소설이다.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죽은 자의 주위에 있던 인물들은 조금도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언도 만우도 태림도. 평생 그 사건을 회상하며, 또는 그 사건의 여파로 고통 받는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 봄을 잃은 줄도 모르고 잃었듯이, 나는 내 삶을 잃은 줄도 모르고 잃었다. -92p”라고 말하며 언니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오는 나날이 다언에겐 어떤 삶이었을까,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상처받았던 다언은 엄마의 상처도 껴안으려 했다. 단 둘만 남은 가족. 둘이서 받은 상처. 그러던 중 복수를 다짐하고 찾아간, 아니 자신의 슬픔을 해소해 보려고 찾아간 한만우의 집에서 다언은 언니의 죽음이 만든 또다른 슬픔을 마주하게 될뿐이다. 결국 가야할 길을 잃고 끊임없이 한만우의 집을 찾아가게 되는 다언. 서로의 상처를 보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조금의 위안은 되는 그 집을 자꾸만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끔찍한 무엇을 멈출 수 없다는 것, 그게 한 인간의 삶에서 어떤 무게일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190p”
-“노란 천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레몬. 이라고 나는 의미없이 중얼거렸다. 복수의 주문처럼 레몬, 레몬, 레몬이라고. -97p” 이 책의 제목이 왜 <레몬> 인지, 왜 꼭 그 제목이어야 했는지 다언은 왜 주문처럼 레몬을 읊었는지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다언이 기억하는 ‘색깔’이자 그 사건의 ‘여파’로써 남게 된 잔상인 것이다. 짧은 분량의 소설 속에 이렇게 진한 색체가 담긴 책을 나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책을 덮고 나면 머릿 속에 노오란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다.
-굉장히 짧은 한 권의 책에 굉장히 많은 기억과 상처가 담겨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 덤덤하게 쓰인 문체는 오히려 그 아픔을 더욱 절절히 느껴지게 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덧붙이자면. 모든 사건의 피해자, 그리고 그들의 주위 사람들의 고통은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말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