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곱 번째 방 - 개정증보판
오쓰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
아직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목소리도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인물은 틀림없이 존재하며 문 너머를 걸어다닌다. -38p <일곱 번째 방>
이제야 알았다. 죽음이란 바로 상실감이었다. -148p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죽음의 의미는 무거워지고 상실감은 깊어진다. 사랑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 같은 것의 앞뒷면이었다. -149p <양지의 시>
-
-야마시로 아사코와 같은 작가인 오츠이치. 본명은 아다치 히로타카 라고 한다. 그는 분위기에 따라 여러개의 필명을 사용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엠브리오 기담>의 야마시로 아사코와 <ZOO>의 오츠이치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야마시로 같은 경우에는 서정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작품을 쓰는 반면 오츠이치 같은 경우에는 좀 더 짙은 색의 스릴러와 호러, 미스터리를 집필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번에 고요한숨에서 출판 된 <일곱 번째 방>은 위에서 언급한 <ZOO>의 개정판이다. 기존 작품에서 <옛날 저녁놀 지던 공원에서>가 추가 된 작품집이다. 총 11개의 작품이 수록 된 단편집이며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꿰뚫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원래 야마시로 아사코를 좋아하기 때문에 고민도, 두려움도 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고, 한 편 한 편 모두 감탄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 시대 최고의 천재 작가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는 작가이다.
-<일곱 번째 방> 누나와 산책하던 도중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게 되고, 눈을 떠보니 정사각형 회색 콘크리트 방 속에 누나와 나 단 둘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천장 한가운데서 희미하게 빛나는 전구만이 유일한 물건인 방. 그리고 방의 한가운데 썩은내가 나는 도랑에서 물이 흐르고 있다. 하루에 한 번 식빵 한 장과 물이 배식되는 이 방에 누나와 나는 왜 갇힌 것일까? 궁금해하던 와중에 누나가 나한테 말했다. “도랑으로 들어가봐”
<SO-far> 어느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가 죽었다고 이야기하며 서로를 보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주인공 ‘나’에게는 두 사람이 모두 보이기 때문에, 중간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전달하며 이전과 다름 없이 세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님이 심하게 다툰 후 주인공의 눈에는 한 번에 한 사람만 보이게 된다.
<ZOO>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실종 됐다. 여자친구의 가족과 경찰은 그녀가 단순 가출을 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여자친구를 잃은 괴로움을 이겨내지 못한 주인공은 회사를 관두고 매일같이 길거리를 헤메이며 실종 된 여자친구를 찾으러 다니게 된다. 하지만 그는 알고있다. 여자친구는 실종 된 것이 아니라 살해당한 것이고, 그 범인은 자기 자신임을.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를 속이기 위하여 매일 여자친구를 찾으러 나간다.
<양지의 시> 최악의 바이러스가 퍼져 인간이 남지 않은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인간이 사이보그를 만들어 낸다. 자신이 죽을 날을 예상하고, 자신이 죽으면 무덤을 만들어달라고 말한다. 감정이 없는 사이보그는 인간을 보살피면서 점점 감정이 생겨나게 된다.
<신의 말> ‘나’가 하는 말에는 힘이 있어 뭐든지 현실로 만들어 버린다. 사나운 강아지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하거나, 잘 자라는 식물에게 시들라고 속삭이면 시들기도 하고, 심지어 선인장과 고양이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 진다. 세상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면서 ‘좋은 사람’인 척 살아가는 나는 자신을 한심하게 보는 것만 같은 동생의 눈초리를 점점 더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충격적인 말을 내뱉어버리고 만다.
<카라지와 요코> 쌍둥이 자매 카자리와 요코. 그러나 어머니는 동생인 카자리는 애지중지 키우지만 언니인 요코에게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학대를 한다. 요코와 카자리는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자란다. 점점 심해지는 학대 수위에 요코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몰라 두려움에 떨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날 요코는 누군가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주게 되고, 그 주인과 친구가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곤 자신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Closet> 형수의 과거 비밀을 알게 된 소설가 류지. 모든 가족이 모인 식탁에 류지만이 나타나지 않게 되고, 이상한 편지가 가족들에게 전달 된다. “류지는 살해 당했다.” 후유미는 류지의 형수 미키를 의심하며 자신의 추리를 선보인다. 반대로 미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혈액을 찾아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 ‘나’ 가족들과 휴양하러 간 숲속의 저택에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온몸에 피가 흥건하다. 구급차가 오기까지는 30여분이 걸린다. 늦기 전에 담당의사가 챙겨온 혈액을 수혈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죽을 위험에 처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수혈 가방. 가족들은 각자 어제의 기억을 더듬으며 혈액 가방을 찾는다.
<차가운 숲의 하얀 집> 마굿간에 살면서 백모에게 학대받던 소년. 그는 마굿간의 똥을 맨손으로 치우며 백모가 주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아간다. 어느날 백모는 소량의 돈을 주고 소년을 집에서 쫒아낸다. 그리고 소량의 돈마저 마을에서 바로 빼앗긴 소년은 숲속에 숨어서 살기로 결심하고, 숲 속에 집을 짓기 위해 돌맹이를 찾던 소년은 시체로 집을 짓기로 결정한다.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납치당한 비행기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비행기는 1시간 후면 추락할 예정이다. 그 전에 편안하게 죽고 싶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안락사 약을 사라는 남자와 너무 비싸다는 여자의 죽기전 마지막 딜. 한창 대화하는 그들에게 범인이 다가와 무엇을 하냐고 물어본다.
<옛날 저녁놀 지던 공원에서> ‘나’가 어린시절에 겪은 이야기. 공원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던 어린 나는 공원의 모래밭 끝이 어디일까 궁금해 모래 속으로 팔을 집어 넣곤 했다. 팔은 항상 끝도 없이 들어가 마치 땅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모래 속에서 나의 손을 잡는다.
-첫 번째 작품 부터 깜짝 놀랐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전개 시키려는거지? 생각하다가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전개에 한 번 감탄하고, 생각보다 뻔한 내용에 추리하기 쉽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결말에 소름이 돋으며 두 번 감탄하게 됐다.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과 <엠브리오 기담> 과 비슷하게 스릴과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두 작품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확실히 어둡고, 씁쓸함이 더 많이 감도는 분위기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 혹은 참을 수 없이 역겨워하는 것과 동시에 그것과 같은 인간의 본성이 깊게 베어있어 한 편 한 편 읽을 때 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페이지 넘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야마시로 아사코의 작품 두 권을 읽었음에도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읽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 없이,(이 작가의 작품이 재미있을 거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특히 <Closet> 과 <혈액을 찾아라> ,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를 읽으면서 더욱 감탄이 흘러 나왔는데, 다른 작품들처럼 마냥 무겁고 어둡기만 한 분위기가 아니라 블랙코미디로 웃음을 자아낸다. 독자는 우스운 상황에 미소를 흘리다가도 그 속에 담겨있는 어두운 모습에 소름이 끼치게 된다. 이 작품집에서 유일하게 <양지의 시>만이 마음이 따뜻해지는데, 아마도 그건 인간을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자리와 요코>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단편 영화의 원작이다. 책을 읽다가 알고 있는 내용이 나와서 뭐지? 하고 찾아보니 이 작품집 중 5개의 작품이 <ZOO 동물원> 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가 된 것이었다. 아마도 쌍둥이 자매 이야기는 유튜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한 편 한 편이 경이로웠던 작품집이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유일한 작품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특히나 <ZOO>를 읽고 싶었으나 절판 되어서 읽어볼 기회를 갖지 못했던 분들에게 <일곱 번째 방>의 출간은 아주 기쁜 소식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작가 책 안읽어본 사람 없게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