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박찬승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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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평화. 정의. 평등’을 외친 그 목소리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 더 나은 내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13p 들어가며

100명을 죽이면 또 다른 100명이 나올 것이다. 당신들이 아무리 막으려 해도 한 번 터진 물길은 계속해서 흘러넘칠 것이다. -23p 인종익

우리들이 씨앗을 뿌려두면, 언젠가는 반드시 싹이 트고, 누군가 독립의 뜻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생각 했을 따름이다. -52p 권동진

전날의 참극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255p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은 20세기 우리 근현대사에서 한국인이 하나로 뭉친 유일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344p


-믿음과 희망으로 피어난 전 국민적인 평화 시위는 조용하게 피어나 열정적으로 향기를 내뿜었다. 그 감동적인 역사가 이제 100주년을 맞이했다. 박찬승 저자는 1919년의 가장 방대하다고 할 수 있는 역사서를 편찬했다. 같은 민족을 위해서, 우리가 맞이할 영광적인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은 사람들. 두려움과 고통을 이겨내며 끝까지 ‘대한 독립 만세’를 와친 사람들. <1919>를 통해 그 당시의 자세한 사실과 그들의 용기와 고통. 그리고 희망을 알고, 잊지 말아야 한다.


평화적인 만세시위

3.1운동의 전개에 대해서


가급적 빨리 발표하지 않으면 발각될 우려가 있었고, 고종의 국장 전에 발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해서 3월 1일을 택했다. -125p 최린

한용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의 이자리는 조선 독립의 기초가 될 것” ... 라는 내용의 간단한 연설을 하고 건배를 한 뒤 만세 삼창을 제의했고, 참석자는 모두 일어나 만세 삼창을 했다. -191p

안중근이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대한 독립 만세’를 라틴어로 3전 외쳤으며, 사형을 당할 때도 ‘대한 독립 만세’ 와 ‘동양 평화 만세’를 외쳤다고 기록한다. 3.1운동 시기에 널리 퍼진 ‘대한 독립 만세’라는 구호는 혹시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204p

민족 대표의 만세운동 역시 이처럼 인도의 간디에게 영향을 받은 비폭력 무저항주의 운동의 새로운 방략으로 채택된 것이다. -203p

이번 기회에 조선은 독립해야만 한다. 우리는 생명을 걸고 이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71p 동서연합웅변대회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확산 됐을 때에도 일반인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거의 없었고, 이렇게 전개된 대부분의 만세시위는 평화 시위였다. -182p


-3월1일로 시위 날짜가 잡힌 경위와 ‘만세’ 를 외치며 시위하게 된 경위에 대한 저자의 추측과 당시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민족 대표들이 독립 선언과 연설, 만세 삼창을 한 후 스스로 잡혀들어간 장면은 가히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시위는 평화적으로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거리를 걸어다닐 뿐이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일본의 만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세를 외친 사람들


손병희는 3년 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1919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온몸이 마비되어가는 상황에서도 병보석은 줄곧 기각 됐고, 결국 1922년 5월 19일 심장마비로 서거하고 만다. -194p

계성학교 학생이던 김용해는 아버지가 마구 구타당하는 것을 보고 군인들에게 덤벼들었다가 하수구에 처박히고 마구 짓밟혀 빈사 상태가 됐다. 그는 그 상태로 아버지와 함께 수감 됐다가 이내 사망하고 말았다. -253p

서봉화가 헌병분대장을 향해 외쳤다. “이놈들아, 내 나라를 내놓아라!” 이에 헌병분대장은 태극기를 든 그의 어깨를 군도로 내리쳤다. 격노한 서봉화는 가슴을 헤치고 “이놈아, 찌를 테면 찔러보아라”라고 외쳤고, 이번에는 군도가 그의 배를 찔렀다. 서봉화는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숨졌다. -255p

헌병 하나가 달려 나와 유관순의 태극기를 부러뜨리고 머리채를 붙잡아 끌고 갔다. 이에 유중권과 이소제가 (유관순의 부모님) 뒤쫒아 나와 주재소 앞까지 뛰어가서 말렸다. 이때 다른 헌병 하나가 총을 쏘고 총검을 휘둘렀고, 유중권은 옆구리와 머리에 칼을 맞고 빈사상태에 빠졌다. 유중무는 쓰러진 형을 업고 유관순, 조인원 등 40여명과 함께 주재소로 밀고 들어갔다. -259p

김구응도 이때 헌병주재소 앞 시위를 주도하다가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가 쓰러지자 헌병들이 달려들었고, 개머리판과 총검 등으로 그의 두개골을 박살냈다. -260p


-<1919>는 잔혹한 장면은 거의 첨부하지 않고 상세한 3.1운동 전황과 과정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충격적인 일본군의 만행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러한 내용을 접하며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되찾기 위한 울림은 멈추지 않고 아름다운 노랫말로 한반도를 뒤덮었다는 사실에 한 번더 온몸에 전율이 흐르게 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친 사람들


정춘수는 사실 박희도가 본인의 승낙도 없이 추천한 것으로, ... 서울에서 보내온 선언서에 자기 이름이 올라 있는 것에 놀라고 의아해했으나, 곧 체념하고 자진 출두해 수감 된다. -143p

제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무기를 사용해 같은 민족을 해치는 겁니까? -260p 유관순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너무 많아 전부 들고오지 못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친 사람들’에는 대표적으로 두 분의 이름만 올려 보았다. 본인의 승낙도 없었지만 자진 출두한 정춘수 님과 대표적인 독립열사이신 유관순 님의 이야기를 발췌했다.


-책의 첫 부분에서는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초반의 일제 통치 이야기, 끝에는 독립을 위한 임시정부 수립에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때문에 3.1운동과 그 전후 사정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알 수 있다. 이 외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그저 우리 열사들의 고통과 노력을 잊지 않고,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그들이 원하던, 희망하던 미래를 펼쳐주는 것이 그들에게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볼 뿐이다. 이 도서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는 잘 해나가고 있는지 말이다.

그들의 고통과 노력을 잊지 말고, 그들의 희망을 실천하기 위해서, 그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대한민국 첫 번째 봄’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 <1919>를 한 번씩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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