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에게 전화 오는 이유는 한가지다.
"저기 어제 입은 내 양복에 뭐가 있거든? 그것 좀 찾아봐봐..찾았어? 그럼 거기 써있는 전화번호 좀 불러 줘"
"이번에 회사에서 추석 선물 나왔거든. 뭐 신청 할까? 1번은 000고 2번은000~~~~~~"
"지금 집에 갈께..."
"오늘 회식 있어. 술 한잔만 하고 갈께"
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때와 귀가에 관한 이야기 ...그것도 용건만 간단히...

우리도 10년전엔 일년여동안 나름대로 닭살커플로 연애를 했었다..일초라도 안보이면 이이렇게 허전한데 삼삼초는 어떻게 기다려~~~~하면서 매일 얼굴 보고 주말마다 데이트하고..밤마다 전화하고...우리집과 남편집이 걸어가기엔 멀고..택시타면 기본요금이거나 일,이백원 더 붙는 거리였기에 연애 시절 평일밤도 날이면 날마다 만났었다..주말이면 당근 데이트하고..일년 365일에 350일은 만났나보다..

회사 끝나고 일찍 만나도 밤10시정도에 만나서 가볍게 밥 먹고..맥주라도 한잔하거나 차마시고..이야기하다가..산본중앙공원 산책이라도하고..우리집에 12시에 데려다주고 가거나..그것도 아쉬우면 우리집앞 계단에서 이야기하다가 남편은 자기집으로 돌아 갔다..그때 우리집은 25층 아파트에 12층이었는데..계단에 방화문이 있어서 문 닫고 있으면 앉아서 이야기하기도 오붓하고 몰래 뽀뽀하기도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밤늦은 시간에 집에 가서 남편이 나에게 전화를 해야한다는 것이다..난 지금은 친구들에게도 전화 안해서 미움 받지만 그땐 전화 중독이라서 몇시간을 붙어 앉아 있다가 헤어졌어도  남편이 굿나잇 전화 안하면 삐졌었다..불쌍한 남편은 집에 가서 전화하고 빨리 끊고 잠자기를 바라지만 악독한 나는 한시간은 기본, 두시간은 선택으로 전화를 못 끊게 고문을 했더랬다..이이야기 저이야기....노래도 해보라고 했다가, 웃긴 이야기도 하라고 했다가 별짓을 다하는 나에게 맞춰주느라 남편은 수면부족으로 매일 피곤에 지쳐서 출근을 했나보다..

이것도 중독이 되다보니 매일밤 귀가시간은 12시가 넘어서, 남편이 하루라도 빨리 집에 들어가려고 용을 쓰면서 우리집 앞에 11시쯤에 데려다 주는 날이면..내가 악마의 유혹으로 살살 꼬셔서 집앞 계단에서 시간 채우고 12시 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우리부모님은 속이 시커멓다 못해 다 타버렸지만..그래도 딸래미가 연애해서 결혼이란걸 한다니 빨리 치워버릴 생각에 꾹꾹 참으셨으리라..

그런데..가장 큰 난관은 우리남편이 살았전 집이 바로 우리 큰시누이집이란 거다..정읍이 시댁이고 전주에서 학교를 다닌 남편은 학사장교로 복무하고 제대후에 취직을해서 큰누나집에 신세지고 있었다..매형도 같은 고향 출신으로 시누이와 국민학교 동창이라서 우리남편에겐 형같은 분이었다..

시누이가 누구냐면..바로 6남매의 장녀였다..밑에 3명의 여동생들은 엄마보다 무서운 언니..친언니지만 괜히 신경쓰이고 존재감을 주는 형제라는것이 공통적인 평가다..자매끼리 조잘조잘 수다도 떨련만 큰시누이만은 약간 고고하게 동생들이 노는것을 지켜보는 스타일이랄까? 자존심도 쎄고 책임감도 있기때문인가보다..어쨋든 이런 시누이가 보는 나는...서울출신에 오빠와 남동생 틈에서 오냐오냐 자라서 철없고, 대학 나왔다고 시골 어머니 무시할지도 모르는 큰며느리감으로 찍혀 있었던거다..그런데 멀쩡한 남동생이 인물도 없고.... 볼것도 없는 여자에게 빠져서 밤마다 늦게 들어와서 동생 얼굴도 못보고, 주말마다 데이트라고 나가니 속이 속이 아니었을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눈에 가시가 바로 전화...시누이남편은 낚시 좋아하고 친구들이 많아서 밤이면 밤마다 전화가 자주 오는편이었다..그런데 동생이란게 늦게 들어오다가 조금 일찍 들오왔나 싶으면 전화질을 한,두시간씩 하다보니 매형의 전화사용이 불편해진것이다..10년전이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서 삐삐가 온국민의 애용품이었고, 핸드폰이나 카폰은 재벌이나 들고 다닌던 시절이었다..매형은 삐삐가 오면 전화를 써야할텐데 처남때문에 전화를 못하니 옆에서 시누이는 속이 끓었을것이다..하지만 철없는 나는 그런것을 몰랐었다..

이런일이 한달 정도 쌓인 어느날, 전화 통화중인데 갑자기 시누이가 안방 전화기를 들곤 "우리남편이 전화를 써야하는데 끊어주면 좋겠다"요지의 말을 했다..그전에 남편에게 끊으란 말을 한 모양인데, 인사한다면서 시간을 끌다보니 ( 그때는 따랑해 어쩌구 하면서 끝인사도 길었지 않았나?) 시누이가 전화에 껴든거였다..너무 놀란 나는 "네..죄송합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는데..갑자기 서러워졌다..

남편이 밤12시전에는 전화를 짧게하자구 한적이 있어서 그럼 어차피 결혼하면 우리전화기를 놔야하니깐..자기방에 전화를 하나 놓아라 했었다..전화보증금이 20만원인가 되던때였다..쓸데없이 고집있는 남편은 그것도 누나에게 자존심 상하는지 싫다고 했었었다..그러다 이런일까지 겪게되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내가 며느리감 0순위이긴 하지만 아직 결혼날짜 잡은것도 아니고, 시골의 6남매의 장남인 자기 동생이 얼마나 잘났다고 나에게 이렇게 예의없이 할수있냐싶어서 다음날 남편 붙잡고 뭐라고 했다.."자기 조건이 뭐가 좋은줄 알아? 결혼전부터 이렇게 나에게 막 하면 난 4명이나 되는 시누이 시집살이 어떻게 이겨내냐? 난 못한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철이 없었다..하지만 그당시엔 시집살이로 확대 해석되면서 결혼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날 시누이집에선 야밤에 남편이 주방에서 혼자 쇠주마시다가 시누이가 봤나부다..왜그러냐고 묻기에 "시골 장남에 시누이가 4명인 내 조건이 좋은거 하나 없다더라.."했겠다..이말을 들은 시누이는 결혼한다는 남동생 방해했다가 평생 원망 들을까봐서 다음날 나를 호출해선 집에 오라고 했다..차한잔 마시면서 "나이 많은 내가 이런말 하긴 쉬운게 아니었다는둥..전화 통화하던거 껴든것은 미안하다. 너희들의 통화때문에 우리남편이 피해를 봐서  미안해서 그랬다..앞으로 서로 조심하자"면서 이야기를 하고..나도 미안했다고 해서 사건이 일단락 됐다..연애질에 눈이 멀어서 이성이 마비된 바퀴벌레 한쌍의 전화에 얽힌 추억이었다..

그리고 생각나는거 한가지..매일 전화하다가 시누이에게 미안해진 남편은 어느날 밤 전화를 걸었는데 자신의 방과 연결된 주방에 전화 말소리가 새어나가는것이 부담스러워했다..그래서 나의 충고로 침대이불을 뒤집어 쓰고 전화를 하다가 문열고 들어온 시누이에게 들켜서 무안했었다고 한다...시커멓게 큰 총각이 이불 뒤집에 쓰고 전화하다가 들켰으니 볼만했었겠다..^^

가장 백미는 깨진 공중전화박스에서 4시간 전화하기...남편이 야밤에 우리집에 전화를 하면 최대한 벨소리가 짧게 울리게 빨리 전화를 받았다..일찍 집에 들어간 날은 11시에도 전화하고 늦게 들어간 날은 새벽1시에도 전화하고...시누이와 안 좋은 사건후엔 남편은 일단 집에 들어가서 시누이에게 얼굴 도장을 찍은후에 츄리닝으로 옷 갈아 입고 집앞 공중전화로 나와서 전화를 했었다 (똥고집이라서 자기방에 새 전화 놓으란 내말은 안들었다) 밤새 서서 공중전화에서 전화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난 내방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 야밤에 서서 공중 전화하다가 지쳐서 꼬부리고 앉아  전화하는 남편에게 최대한 못끊게해서 한시간 이상씩 통화를 했었다..

어느날 겨울밤...남편이 전화하러 나오니 멀쩡한 박스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었다..그옆에 깨진 전화 박스에 들어 가서 전화하기 시작한 남편은 빨리 끊기를 원했지만 '따랑해"하는 나를 외면할수가 없었다..그리고 멀쩡한 옆박스로 옮기고 싶었지만 그럴려면 새벽에 다시 '따르릉' 전화벨 소리를 울려야 하기에 그것도 안되고..그래서 결국엔 깨진 전화 박스에 앉아서 겨울 찬바람 맞아가며 새벽까지 4시간을 전화를 햇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있다...그땐 무슨 이야기를 4시간을 했는지..지금 나에게 해보라면 할말이 없다..ㅠ.ㅠ..

가장 긴통화는? 광주에서 결혼하는 내친구 결혼식 전날...광주행 새벽기차 타러가야하는데..남편과의 전화가 길어져서 이러다 잠들면 괜히 기차 놓친다..내친김에 밤새 전화해 버리자면서 서울역으로 출발전까지 전화한날...밤 11시부터 시작한 전화를 5시정도까지 했으니 6시간 전화 통화했었다...^^

컴퓨터도 없고 메신저가 뭔지도 모르던 그때 그시절의 전화에 얽힌 몇가지 추억들이다..이젠 애나 어른이나 전국민이 핸드폰 가지고 다니고, 컴에서 메신저하면서 연애하는 시대지만 귀아프고 목아프게..우리남편은 춥고 다리 아프게..전화했던 그시절이 그립다...용건만 간단히 통화 3분 절대 안넘기는 우리남편...집에 와서도 부인 얼굴 보단 아이들 얼굴보고 텔레비젼보기에 바쁜 남편...그땐 가능한것이 이젠 왜 불가능할까?

우리남편을 만난지 10년이 지났고..올 12월 3일이면 우리 첫데이트 10주년이 된다....별걸다 기억하는 나는 이번엔 남편하고 둘이서만 여행을 하고 싶다..아이들 다 맡겨두고 둘이서 놀러가서 밤새 이야기 나누면서 연애시절을 추억하고 싶다..가장 좋은 장소는 예전 친정집인 산본 대림아파트 735동 1202호 계단이겠지만 이 나이에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뽀뽀할수도 없고...어디 물침대 푹신푹신한곳(?)이나 놀러갈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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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8-26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역시 연애는 좋은 거에요. 꼭 첫데이트 10주년 여행 성공하시길 바랍니다요!! 그나저나 저희 부부는 만난 지 14년째 되는군요. 헉!;;;

sooninara 2004-08-26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이 일등...그렇죠? 연애이야긴 재미있는데 살다보면 무덤덤해져서.아쉬워요..
10주년 기념식..화끈하게..ㅋㅋ..결과 보고서 올리죠...

비로그인 2004-08-26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하~~진짜 너무 한거 아녀요!!! 세상에!!!

비로그인 2004-08-26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 9년에 결혼 2년차인 저는 결혼전부터 뜨뜻미지근해져버려서 뜨거운 연애시절이 언제 있던가 싶어요. 수니나라님 보니까 옛날 생각 나네요. ... 여름도 다 지나갔는데 10주년 오붓한 자리 꼭 마련해서 '뜨겁게 달구시길' 바래요. 씨익.

진주 2004-08-26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65일 중에 데이트 안 한 날-15일은 과연 뭘 했을까요...?ㅎㅎ
목욕?(일년에 15일만 목욕하면 넘 더럽잖아요)
파마?
수니님도 대단하지만 남편분은 경이의 지경에 도달하신 분 같아요!

호랑녀 2004-08-26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우리 첨 만난 10주년 8월 6일이었는데... 지나갔다...
나나, 남편이나... 무덤덤해서...ㅠㅠ
아, 우리도 한때는 뜨거웠는데...
그나저나, 내 남자도 시골출신(정읍은 시 죠? 울 남편 살았던 곳은 군 면 리 중에서도 2구였다죠) 6남매 맏며느리인데, 뭘 믿고 뻣뻣하지?

부리 2004-08-2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었어요! 수니나라님은 연애얘기만 쓰면 대박을 치시네요. 근데 우리 번개 언제하죠? 담주 화요일은 어떤지요?

sooninara 2004-08-26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뽁스..진짜 너무 했지..그래도 평생중에 일년인데..미쳐서 살만하지..
처음과 끝님..9년 연애라니..왠만한 중년부부보다 고참이십니다..제친구도 7년 연애에 알것 모를것 다알고 동거까지 하다가 결혼했드랬습니다..겨론전 마지막 6개월은 본의 아니게 동거했는데..친정엄마가 딸래미가 시집은 늦게가고 말은 안듣자 내쫓았다지요^^
박찬미님...글쎄요? 맞춰보세요..ㅋㅋ 퍼머도 하고 목욕하고..추석,설 연휴엔 못 만나고, 남편 회식하면 못 만난날이 아마 15일쯤 될걸요..집 가깝다는 이유로 얼굴은 꼭 보려고 했었으니까요...
호랑녀님...울남편도 뭐 믿는지..뻣뻣하답니다..연애할때만 부드러웠습니다..제가 속았죠^^

sooninara 2004-08-26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전 주중에는 안되는데요^^ 토요일,일요일은 바쁘신가요?
그리고 앞으로 우려먹을 연애이야기가 몇개 더 있긴한데..분기별로 하나씩 우려먹을까 합니다..음하하하...

물만두 2004-08-26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물침대를 장만하심이... 아, 오늘도 내 허벅지는 멍이 들겟군...

sooninara 2004-08-26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물만두님...우리집은 안되어요..아이들이 침대에서 뛰다간 물벼락을 맞을듯...
허벅지는 죄송합니다..^^
따우님..제생각엔 제가 연애할때 너무 철딱서니가 없어서 알콩달콩해 보이는건데..주변 사람들에겐 피해가 있었죠..따우님이 철이 들어서 그런것일수도..연애는 원래 유치해야 잼나는 면도 있잖아요..
비포 애프터...저렇게 삼돌이처럼 나에게 잘했던 남편이....흑흑..이젠 저를 삼월이 보듯 하네요...엉엉....

ceylontea 2004-08-30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긴 이야기 읽다가 딴 일로 불려다니다 댓글도 안달았었네요..
전 저희 남편 전화 너무 안해서 많이 삐졌더랬습니다... 나중엔 으례 그런 사람이거니 했지만 그래도 서운하던걸요... 넘 부러워요..

nugool 2004-08-3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공중전화는.. 울 서방도 애용하던 건데... 저흰 올해가 15년이예요. 윽..

sooninara 2004-08-3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공중전화 연애할때가 더 낭만이 있었던것 같아요..요즘은 너나없이 다 휴대폰이 있으니 그런 이야기하면 정말 구세대가 되겠죠...

로드무비 2004-08-3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따랑해!~라니, 아이구!

sooninara 2004-08-3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 지났지만..100년은 지난것 같아요..지금 이사람이 그때 그사람인가 싶어서 이상해요..우리남편..지금은 3분도 통화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