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합리적으로 유추해 내는 것이 어려운 건, 보이지 않는 면을 볼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오만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세상이 하도 시끄럽다보니..저절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기 저 백자 달항아리 보이세요?
식당 한편에 놓인 협탁 위에 하얗고 둥근 도자기가 올려져 있었다.
"우리가 이 일을 보는 거리가 저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저 자기의 뒷면을 보지 못해요. 물론 그 안쪽도"
그가 독백하듯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보이지 않는 저 뒷면의 상황을 비교적 합리적인 근거로 유추해 내는 것뿐이에요"/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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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란 말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는 건 내가 이제 그 시간으로 조금씩 가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애써 멀리하고 싶었던 주제였는데, 이제는 좀 친하(?)게 지내보고 싶은 마음. 노년을 잘 살아내기 위한 가이드책인가 싶었는데, 노년을 주제로 쓴 책들을 위한 책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을 잃는다는 건 이제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그럼에도 받아들여지기가 참 쉽지 않은... 굳이 책으로까지 읽어야 하는걸까 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는데, 막연한 불안을 가지기 보다는, 앞서간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롯이 기억을 잃어버린 이에 관한 이야기부터, 박완서작가님의 단편 '마른 꽃'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된 (이미 고인이 되셨다...)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읽고 싶어졌다. 


나이가 들기 전에도 분명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이었을 텐데, 어째서 노년이 될 수록 생존, 가족간의 네트워크도,돌봄과 죽음이..무거운 숙제처럼 찾아오게 된 걸까... 읽기를 시작하고, 건강과 죽음..을 다룬 이야기 앞에서 답답함이 밀려왔는데... 중요한 건 역시 '삶'이 아닐까 싶다. 노년이란 단어 속에 함몰되지 말아야겠다. 청춘시절에도 고통은 있었으니까.. 책을 읽는 다고 노년의 삶의 질이 확 달라진다는 보장은 할 수 없지만.. 노력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노년을 읽습니다'를 읽으면서 알았다. 나는 여전히 본질적인 질문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잘 늙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걸.  AI시대에 이런 고민이 무의미해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잘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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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없는 밤의 도시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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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없는 밤의 도시를 상상해 본다. 

하늘에 가득한 별빛이 찬란한 풍경을 상상했더랬다.하지만 소설은 내가 상상한 낭만을 여지없이 깨부순다.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추악하게 일그러진 인간의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총 네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아름다운 괴물' 과 '인생 리셋' 은 평범하고 예상 가능한 전개라 아쉬웠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괴물' 이란 제목 덕분에..이 소설 전체에 흐르는 화두가 '괴물'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건 좀 아이러니 하긴 하다. 나는 분명 피해자였는데,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그보다는 '괴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 걸까.. 아니면 꾹꾹 눌러 왔던 어둠이라는 내 본성이 어느 순간 드러나 버리게 된 걸까... 표제적인 '불빛 없는 밤의 도시' 와 '보름' 을 인상적이라 생각했던 건, 마냥 피해자로 살아갈 것 같은, 그래서 절대 괴물이란 세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이들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서 두 편은 괴물이 될 여지가 보였다면, 인상적으로 읽게 된 두 편의 이야기 속 이들은, 피해자의 삶을 감내 하며 살아갈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생각은 절반만 맞는것 같긴 하다. '불빛 없는 밤의 도시'에 등장하는 시장을 죽이고 싶은 이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만약 내가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이런 가정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그러나 누군가 그런 가정을 하게 된다면 ...어둠이 도와준다면 기꺼이 괴물이 되지 않을까.. 중요한 건 내가 괴물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하게 괴물이 되어 간다는 사실일게다. 


불빛이 꺼진 도시의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어둠 속은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모두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의 소리를 들었다. 나는 괴물사람이 되지 않을 거란 자신을 할 수 없어 더 두려운 마음으로 읽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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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없는 밤의 도시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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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덫에 걸리는 순간 우리 모두 괴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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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ㅣ 텍스투라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노승영 옮김 / 읻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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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레카'를 보기 전 원작이 따로 있는지 찾아 보았다. 포의 <<유레카>>가 보였다. 원작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짧은 분량이라 먼저 읽어보았다. 난해하고 어려웠지만, 길지 않은 분량이라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솔직하게는, 영화 '유레카'를 떠올려 볼 수 있는 지점들을 만나는 순간이 있어 포기하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구는 행성 단위의 관점에서만 고려될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한 사람은 인류가 되며 인류는 우주적 지성체 가족의 일원이 된다"/14쪽


영화가 시작되고 코즈에가 했던 말과 기시감을 느끼게 된 지점이다. 아직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어째서 우리 모두가 사라지는 것처럼 이야기 했던 걸까 하고... 포선생의 논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는 순간이라니.. 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영화 '유레카'를 내내 따라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태초에 하나였던 우주가 폭발하면서 원자와 인간이 파편으로 쪼개져 외로움을 느끼게 된 것처럼, 영화 '유레카'는 버스 납치사건으로 트라우마라는 삶의 파편을 직격탄을 맞게 된다. 그래서 포선생의 이론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영화 속 유레카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을 찾고 싶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성격이나 본질에 대해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모른다 -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이해하려면 우리 자신이 하느님이어여 한다" /38~39쪽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데, 오독이 허락되는 자유(?)라니. 영화(유레카)에서 버스납치사건에 피해자가 된 이들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2차 3차 피해가 그들에게로 향할 뿐.. 누가 그들의 고통을 알 수 있을까.정말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그들과 같은 고통을 겪은 이들만이?? 그런데 사촌이란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는 말을 보면..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영혼은 더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한 슬픔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기쁨을 확대하려는 바람으로-그것이 헛된 바람일지라도-스스로의 목적을 증진하고자 한다"/171쪽


제목만 갔을 뿐 아무런 연관도 없는 두 작품이다.하지만 영화 덕분에 이 난해한 책을 읽어낼 수 있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그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하지만 포의 <유레카>를 읽으면서.깨달았다.트라우마라는 분자가 폭발할 때 치유라는 거대한 에너지가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기분  영화와  책 어디에도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유레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든 건, 세피아톤이던 영화 속 배경이 컬러로 바뀌어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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