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즈음에 <적과흑>을 읽었더랬다. 당시에는 스탕달 소설을 읽어낸다는 뿌듯함에 정신없이 읽기만 했는데,다시 읽으면서..번역이 참 '올드'하다는 느낌을 지을수가 없었다. 유독 스탕달 작품은 출판사들이 출간하지 않는 걸까 생각했는데.. 문동과,열린책들에서 나와 있었다. 알았다면.도서관 빌려와 비교하며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그런데 아동서에 그림으로 그려진 '적과흑'(웅진다책,알라딘 검색되지 않는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읽어 보고 싶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적과 흑'은 어떤 느낌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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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유리 동물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8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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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동물원'이 무대에 올려진다는 소식 듣자마자 예매를 했다. 예전에도 분명 연극으로 만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보고 싶어졌던 거다. 그런데, 그때 본 연극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위 고양이'였다.


공교롭게도,뜨거운 양철..을 본 시간도, 올해 '유리 동물원'을 보는 날이 같다. 뜨거운 지붕.. 덕분에 '유리 동물원'도 함께 읽었지만, 세세한 독후기를 남겨 놓지 않았더랬다. 언젠가 '유리 동물원'을 보게 된다면...? 하고 생각했던 걸까... 시간이 흘러 결국,연극으로도 만나게 되었고, 다시 작품을 읽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등장 인물은 엄마,딸,아들,그리고 '신사 방문객' 총 네 명이 전부다. 직장 동료로 등장하는 오코너를 굳이 '신사 방문객'으로 설명한 이유가 궁금했다.아마, 이 작품에서 어떤 상징성을 갖는 역활(?)이라 그렇다는 걸 다시 읽으면서 알았다. 로라가 청혼 받기를 희망한 어맨다 윙필드(엄마)의 마음을 대변해 주기 위한 은유.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미국 남부 사회에서 청혼 가능성 있는 남성이 찾아오는 문화를 일컫는 말이란다. 2017년 읽을 때는 궁금하지 않았거나, 기록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확실(?)히 각인되려나. 내용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처음 읽을 때는 분명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로라..가 안타까웠는데, 다시 읽으면서,로라를 그렇게 불행(?)하게 만든 건 엄마의 책임도 한몫한 건 아니였을까 생각했다.


"말도 안 돼 로라. 그런 말은 절대로 절대로 쓰면 안된다고 말했지. 이런 너는 절름발이가 아니야. 단지 작은 결점을 갖고 있을 뿐이지.... 거의 나타나지도 않아! 그런 사소한 단점을 갖고 있을 경우에 사람들은 그걸 보상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개발하지(...)"/220쪽



그녀에게 자녀들은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대리인게 불과했다.딸의 장애 조차 억지로 당당함을 연기하게 만드는 엄마의 태도는,당당함이 아니라 마주하기 두려운 현실을 외면하려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엄마라는 이름과,사랑하는 마음이란 감옥이,그녀의 아이들의 영혼을 가둬버린 기분이 들었다.엄마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동물원은 그래서 깨지기가 쉽지 않다. 우선 엄마부터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곳을 깨뜨려야 할텐데..쉽지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비극이다. 그녀가 바라는 구원은 쉽게 마주할 수 없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통한 행복을 찾으려는 마음부터 깨뜨려야 가능할테니까...


"누구나 문제를 갖고 있어요. 로라 양뿐만 아니라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지요. 당신은 유독 자기만 문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죠. 실망한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여기면서 말이죠.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로라 양만큼 실망한 사람을 많이 보게 될 거예요(..)"/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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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ㅣ 창비세계문학 11
알베르 카뮈 지음, 유영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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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을 다시 읽게 된 건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을 예매했기 때문이다.어떻게 연극으로 만들었을까를 상상하며 책장을 넘기다,생각났다. 내가 예전에 '전락'을 읽으면서 일인극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이'콘트라베이스' 같은 느낌 -1인칭 고백 체라서- 기억났다.


자기애가 넘치던 남자(변호사)가 어느 날 센강에서 한 여인의 자살을 방관한 일을 계기로 자신의 삶이 위선적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암스테르담에서 '속죄판사'라는 신분으로 변신해 낯선이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고백한다.평생 잘난척만 하며 살아가던 남자가 이렇게 쉽게(?)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나는 의심했다.그것 또한 또다른 위선은 아닐까..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문제를 고백하는 순간,뭔가 물귀신작전..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데, 당신들은 괜찮아? 잘못 한게 없어..왜 스스로 한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않는 거지...너희들 모두 스스로 정당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 하지 않니...? 이 물음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있을까? 고백과 자기비하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하다가.나는 끝내 남자가 진정 속죄판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속죄판사라는 역활을 자처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물귀신작전을 벌인 행동은 얄미웠고,그가 쏟아내는 수다에 가끔은 귀를 닫고 싶었는데, 요즘 모두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상대를 향한 화살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세상은 덜 시끄럽지 않을까.. 이 물귀신작전 같은 전락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작동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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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읽은 말인지 내 생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누구도 자신의 쾌락 속에서는 위선자가 아니다'라는 말도 있잖습니까,선생님?" /66쪽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검색해봤다. 속죄판사의 생각(?)아 아니었다.^^


사무엘존슨이 한 말이라고 했다.그런데 그의 책이 아닌 제임스 보스웰이 쓴 <<사무엘 존슨 전기>>에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경과 사무엘 존슨이 나눈 대화에서 나온 말이라고... 그런데 알라딘에서 사무엘 존슨..검색이 되지 않았다.(분명 내가 알고 있는 작가 같았는데 말이다..)  새뮤얼 존슨..으로 검색하니 비로소..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덕분에 읽어 보게 되었다(2023년) 읽어 보라 강요(?)한 것도 아닌데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설명만 듣고도 편견을 가진 터라..고루하거나,..지나치게 '착한' 이야기만 어떡하나 내심 걱정을 했더랬다. 그러나 미들마치가 지나치게 교훈(?)적으로만 흘러가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에 <라셀라스>에 대한 기대감이 은근 있었음을 고백한다. 당연히 계몽적인 냄새만 풍기고 있다는 인상도 들지 않았다.(오히려 착한(?)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었도 되나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는 주제에 관한 이야기였다.아마 평생동안 붙들고 있을 주제의 질문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결론도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결론이 아무것도 없는 결론"/246쪽 역설적이게도 결론이 날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한 주제라서 흥미로웠다. 행복이 지나쳐 또다른 행복한 삶을 동경하는 라셀라스 왕자의 이야기로 시작할 때만 해도  뻔허게 흘러가면 안되는데 하는 조바심... 다분히 도식적인 형태의 모습들이 그려지기도 했지만  부담스럽지 않았다. 설교형식이 아니라..이야기 속에 서서히 행복에 관한 주제를 녹아들게 한 덕분인지도 모르겠다,욕망에서 자유롭고자 은둔을 택하는 삶에도 함정은 있었으며, 인간본성에 또아리를 튼 탐욕의 본질도 만났다. 그러는 사이 두려움에 떨던 페쿠아가 납치가 되고 나서 비로소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행복을 찾아가려 애쓸때 보다. 현실에 부딪히는 그 순간 헤쳐 나가는 그 과정 속에서 얻게 되는 것들이 비로소 더 많다는 생각..."어느 한 지역이  이익을 얻으면 다른 한 지역이 손해를 입게 된다네"/209쪽  행복한 삶을 동경하지 않는 이는 없을 거다. 문제는 자신이 행복한 순간에도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행복을 쫒으려 한다는 점일게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집요할 정도로 행복하고 싶다고 자신을 들볶게 될까...'불확실성' 때문이란 생각을 했다. 행복에 관한 명언은 많다.그런데 행복을 쫓으려는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것을 하게 되면 행복해질수 있다는 생각보다, 무엇을 통해 내가 행복해지는 길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너무도 당여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으나...<미들마치> 덕분에 나는 조지 엘리엇이 '라셀라스'이야기의 어느 지점에서 매력에 빠진 걸까..를 살피며 읽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덕분에 페쿠아가 납치되었을 때 그녀를 거짓으로 걱정하던 이들을 보면서 미들마치의 사람들이 시샘에서 비롯된 소문내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랑에 관해서도 그랬고.."많은 경우 그들은 자신들처럼 변변찮은 사내들과 사랑에 빠졌는데 사실은 그저 노닥거리는 것에 불과하면서 사랑에 빠져 있다고 착각하곤 했다. 그들은 거의 항상 상대의 분별력이나 덕성을 도외시한 채 애정을 품었으며 따라서 그런 애정의 종착지는 안달과 속상함뿐이었다"/122쪽 네카야 공주 모습에서 미들마치의 도로시아가 연상되기도 했다. "공주는 지상의 모든 것들 가운데 지식이야말로 으뜸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먼저 세상의 모든 학문을 익히고 배우기를 희망했으며 그런 다음 학문하는 여성들의 대학을 설립하여 이를 운영해 나가고자 했다(...)"/247쪽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독후기 보면서, 카뮈선생께서 새뮤얼 존슨의 생각을 자양분 삼았을수..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행복'에 관해서도... (알라딘 검색은 살짝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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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죄인들이나 피고인들의 잘못이 내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 한, 정확히 이 범위 내에서만 이들 편이 되어주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들의 죄상에 관해 그토록 열변을 토했던 건 내가 이 죄의 피해자다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막상 내가 위협받게 되면 이번엔 나 자신이 재판관이 될 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인간, 즉 모든 법을 무시하고 범인을 때려눕혀 기어이 무릎을 끓리려고 하는 폭군으로 돌변해버렸으니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생님, 내가 정의를 위해 부름받은 자이며 과부나 고아를 지키도록 운명 지어진 변호사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57쪽










무대에 올려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예매를 했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질때마다,판사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법을 해석하는 기준이 궁금해진다. 그들은 정말 인간애가 넘쳐서..사형 판결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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