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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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려고 생각하면 걷는 것은 자신임에 틀림없지만 그렇게 걷자고 생각하는 마음과 걷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불쑥 샘솟는지, 형님에게는 그게 커다란 의문이었던 거네"/369쪽

 

 


일본어 잘 하시는 지인에게 표지 문장 해석을 요청 했다.인용된 독일 속담의 문장이었다. 독일 속담이라고는 하는데 출전은 알 수 없다고 했다.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결 고리가 없다는 뜻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렵다는 뜻이였을까?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다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 비로서 '행인' 이란 제목이 궁금해졌는데...생각과 마음의 불일치에서 오는 어떤 괴리감에 대한 무엇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소세키의 전기3부작을 읽고 난 후..후기 3부작이 보여 읽어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춘분..을 읽을 때도 느낀 거지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 몹시 지친다 싶었더니, 후기3부작에서 내가 미처 찾아내지 못했던 것은..후기 '에고(ego)' 3부작이었다는 사실. 오래 전 '마음'을 읽을 때는 저와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이번에는 어떤 시선으로 읽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무튼  '에고'에 관한 이야기라서 이치로란 인물에 대해서는 공감도 되고, 공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수시로 반복되는 기분이 들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연구를 하기 시작했는데...연구를 하면 할 수록 고독해졌고, 외로워지는 모순들..사람을 믿을 수 없고..누구도 신뢰 할 수 없다는 건 얼마나 잔인한가..너무 많이 알아서..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역시 이치로가 만들어 놓은 함정은 아닐까... 이치로가 주변인들에게 행하는 모습은 잔인하기도 하고, 스스로 거미줄에 걸린 것 같은 기분에서 드러내놓은 화두는 또 가슴에 와서 콕 박히는 기분...아내를 신뢰하지 못해서,동생을 믿지 못하는 것 같은 행동은...사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20년 이상 00의 가슴속에 감춰져 있는 그 비밀을 파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녀에게는 천하의 모든 사람이 다 갖고 있는 두 눈을 잃고 남들로부터 거의 반편이 취급을 받는 것보다 한 번 장래를 약속한 사람의 마음을 확실히 손에 잡을 수 없었다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240쪽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이치로와 주변인들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에고에 대한 사례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다 읽고 난 후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이치로의 고민보다 아버지가 들려준 에피소드 였다. 이치로만 에고에 사로 잡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버린 남자에 대해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자신이 맹인이 되었다는 사실 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 얼마나 강한 에고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이치로처럼 드러내놓고 에고에 몸부림치는 이들이 있고, 그녀처럼 에고를 숨기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에고 가 없는 삶은, 허수아비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에고가 강한 것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이도저도 아닌 행인..처럼 될 바에는 에고를 조금 덜어 내놓고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싶은데, 그러면 소세키선생은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믿고 싶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을 행복하게 할 힘이 있을 리 없네.구름에 싸인 태양을 보고 왜 따뜻한 빛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그렇게 다그치는 쪽이 억지일 걸세(...)우선 형님의 머리를 에워싸고 있는 구름을 걷어내주는 게 좋을 걸세(...)"/4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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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을 보면 그 여자의 성격이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37쪽


"조용히 부는 바람 같은 사랑이나 눈물 같은 사랑, 탄식의 사랑이 아닙니다.폭풍우 같은 사랑, 달력에도 실려 있지 않은 엄청난 폭우같은 사랑 비수 같은 사랑입니다"

비수 같은 사랑이 자줏빛인가요?"

"비수 같은 사랑이 자줏빛이 아니라 자줏빛 사랑이 비수 같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자르면 자줏빛 피가 나온다는 뜻인가요?'

"사랑이 화를 내면 비수가 자줏빛으로 번뜩인다는 뜻입니다"

"세익스피어가 그런 이야기를 썼나요?"

'셰익스피어가 쓴 것을 제가 평한 것입니다. 안토니우스가 로마에서 옥타비아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령이 가져왔을 때 클레오파트라의...."

"질투심으로 자줏빛이 짙게 물들었겠네요?" /39쪽




오노와 후지오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부분을 읽으면서..다시 세익스피어의 비극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처음 읽었을 때..몰입감이 크지 않았는데..이번에도 몰입감은 깊지 못했다..역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주제가 '사랑'이란 설명에 쉬이 동이 할 수 없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세익스피어의 비극이 아니라..온전하게 역사를 다룬 이야기를 읽고 나면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무튼 <우미인초>에서 후지오의 죽음을 보면서..소세키선생 역시 클레오파트라 보다는 안토니우스에게 조금은 후한 점 수를 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질투의 마음,배신의 마음, 유혹의 마음...도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는 사랑보다, 질투와 배신과, 욕망이 더 크게 보일 뿐이었다.해서 안토니가 사랑했을 지도 모를 그 마음이 애처롭게 보였다기 보다..국민보다 오로지 자신의 사랑에 관심을 가진 리더를 백성들이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하는 마음으로 읽고 말았다 안토니가 말한다...."(....) 배알 없는 백성들은 쌓은 공이 없는 자를 그 가치만 보고는 절대 사랑 않는데도 폼페이 대장군 칭호와 그의 모든 훌륭한 자실을 다 그의 아들에게 퍼붓기 시작했고(.....)"/495쪽






 책을 읽게 되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었다고 생각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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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신세를 지고 있었다고? 부모님 신세를 지면서 빈둥거렸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럼 파락호구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310쪽



파락호의 사전적 의미는... 놀고먹눈 곤달이나 불량배. 몰락한 집안..방탕하게 생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그런데 파락호..라는 카페가 검색되어 호기심이 발동했다. 마침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이라 찾아가 보게 되었다





破落戶카페 한자가 풍비박산 의미의 뜻과 같아서..내심 파락호라고 지은 이유가 더 궁금해졌지만..물어보지는 못했다. 이름과 달리 커피맛이 좋았다(약과는..취향이 아니었지만^^) 다음에 다시 찾고 싶은 곳... 갱부를 읽다가 전혀 뜻하지 않은 카페를 찾게 될 줄이야...파락호.라고 지은 이유를 언젠가 물어보게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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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유한한 것..

세계는 돌고 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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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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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소세키의 '그 후'를 재미나게 읽었다. 그러나, 전기 3부작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최근 '도련님'을 다시 읽고 나서야 오래전 구입만 하고 읽어내지 못한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가 보였다. '도련님'에 대한 언급이 많지 않아 당혹스러웠지만, 전기3부작을 읽어 볼 기회가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란히 세 편을 읽는 것은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조금은 건조하게 느껴진 '산시로'를 읽고 나서도 '문'까지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갖게 했다.만약 3부작이란 점을 염두해 두지 않고 오로지 '산시로' 만 읽었다면 문까지 읽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문'만 골라 읽었다면 소스케에 대한 감정이 또 달랐을 것도 같고. 이어진 듯 다른 느낌이 갖는 매력을 느낄수 있었다. <산시로>와 <그 후>에서 인간이 얼마나 열등한 존재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면, <문>에서는 그럼에도 열등한 인간이란 점을 감내하려는 인물이 보여 애닮게 느껴졌다. 가난하지만 부부애만큼은 남부러울 것 없는 소스케와 오요네에게는 어떤 불안이 있어 힘든 것일까.... 따라 가다 어느 순간 뒤통수를 얹어 맞은 듯한 기분이...그들에게는 세상에서 죄라고 불리워질 만한 부분이 있었다. 문제는 부부 역시 그런 상황에 대해 애써 항변하기 보다 오히려 숙명처럼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다. 가난도 ,그들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도 원죄가 있어서라고 생각한다.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으로 원죄가 씻겨 나갈수 있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불안이 한계치에 달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말았다. 소스케는 참선의 방법을 택하게 된다. 종교를 믿을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는 정말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걸까?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너라"하는 목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이 문의 빗장을 열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을 머릿속에서 분명히 마련했다.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열 힘은 조금도 키울 수 없었다.(....)그는 문을 지나는 사람이 아니었다.또한 문을 지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아니었다.요컨대 그는 문 아래에 옴짝달싹 못하고 서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252~253쪽

 

열등한 존재이면서도, 열등하지 않은 인간인척 하는 이들 보다는 소스케가 인간적인물은 아닐까 생각했다. 보통의 이야기라면 주인공 남자가 어떻게든 문을 열고 나가거나, 끝내버리는 결말일텐데.. 소세키의 <문>은 그렇지 않았다. 너무도 인간적인 소설이란 생각을 했다. 머리로는 운명 앞에 당당히 맞서라고 말하지만..현실에서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은 얼마나 많은가? 핑계 같은 이유들이라 할 지라도 '강상중과 함께 읽는...'에서 지금은 '문'이 가장 좋다고 느껴진 이유에, 내 역시 좋아요를 눌렀다. 비교하며 읽을 생각은 아니었다.(감히 그럴 깜냥도 되지 않을테고..) 그런데 '문'이 제일 좋았다.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연민의 감정이 느껴진 탓인 것 같다. 운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이들의 삶에는 저마다 사연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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